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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사진은 서울시에서 제공한 것입니다.

    천경자 1주기 추모전 ‘바람은 불어도 좋다.

어차피 부는 바람이다’는 1998년 천경자 화백이 서울시에 기증한 작품 93점 전체와 다른 작가들이 소장한 고(1974년), 막은내리고(1989년) 등 작품들이 전시됩니다.

오는 8월7일까지 서소문 본관 2층에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전시회는 ‘인생’, ‘여행’, ‘환상’ 등 3개의 주제와 아카이브로 구성돼 천경자의 학생 시절 작품부터 이후 60여년간 작품 세계, 관련 기록물 등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기존에 천경자 상설전시실로 사용되던 공간은 아카아브 섹션으로 연출돼 어린시절부터 별세 전까지 천경자 화백의 사진과 수필집, 기고문, 기사, 삽화, 영상 등을 둘러볼 수 있도록 구성됩니다.

     그라나다 두자매. 사진: 서울시스카프를 쓴 엔자. 사진:서울시여인의시. 사진:서울시황혼의통곡.사진:서울시  백남준 타계 10주기를 맞아 열리는 ‘백남준 ∞ 플럭서스’ 추모전은 7월 31일까지 서소문 본관 3층에서 개최합니다.

    전시는 독일 쿤스트할레 미술관과 국내 소장가들로부터 대여한 소장품 200여점으로 구성됩니다.

백남준과 조지 마키우나스, 요셉 보이스, 오노 요코 등 1960

1990년대 플럭서스 일원으로 활동했던 작가들의 작품과 대형 멀티 모니터 설치작품들이 한 자리에 선보입니다.

백남준과 플럭서스, 백남준이 미술계에 미친 영향력과 순환적인 연결고리를 주제로 총 4개의 섹션을 시작과 끝의 구분 없이 자유로운 관람할 수 있습니다.

    백남준,태내기 자서전, 1981,1932년 뉴욕타임즈에 드로잉 후 양장제본, 사진:서울시W3, 1994, 64대의 모니터, dimensions variable with specific installations. 사진:서울시이와함께 서울시립미술관은 백남준 작가 서거 10주기를 기념해 백남준이 1937년부터 1949년까지 12년간 성장기를 보낸 종로구 창신동 집터에 ‘백남준기념관’을 조성합니다.

기념관 건물은 음식점으로 쓰였던 총면적 93.9㎡(약 28평)의 단층 한옥을 리모델링해 올해 11월 개관할 예정입니다.

   백남준,보이스 복스, 1961-1986,설치,병품, 빈티지TV, 액자, 판화, 드로잉, 사진 등 , 서울시립미술관 소장백남준,세 대의 카메라 참여, 1969작품 2001 재설치,CCTV,RGB 프로젝터, CRT모니터,아베 변환기, 사진:서울시  관심있으신 이웃님들은 한번 돌아보세요

^^*     지도보기50m� NAVER Corp.??? /OpenStreetMap
?? ???
?� NAVER Corp. /OpenStreetMap서울시립미술관서울특별시 중구 덕수궁길 61 서울시립미술관전화상세보기지도보기?  * 부친 천성욱은 한때 상여 (喪輿 )가게와 단청을 했으며, 이후  처가의 도움으로 양말공장을 운영하였으나, 술과 도박등으로   망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어린 천경자는 어머니와 더불어 외가살이를 시작하게 됨 ?외동딸을(어머니 박운아)  남장을 시켜 서당에까지 보낼 정도로 깨어 있던 외할아버지는 그 딸이 낳은 큰 손녀를 금지옥엽으로 예뻐하며 옥자(玉子) 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손녀는 밤마다 외할아버지의 무릎에 누워 '심청전' '흥부전' '수호지' '춘향전'을 듣다 잠이 들었고 천자문과 창까지 배우며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보통학교 1학년 때 일본인 담임 선생이 그림에 소질을 발견해냈고 대청마루 흰 회벽에 (전근 간 여선생을 그리워하며) 그린 여인상이 외할머니 눈에 띄어 매를 맞기도 한다.

?(전남 고흥? 팔영산 자락)?어린 옥자는 아버지 천성욱을 원망하며 성장했지만, 그의 타고난 색채감과과 끼는 전통안료를 다루던아버지에게 온 것이다.

?이후,?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현 전남여고)에 다니며, 그 끼를 키우게 되는데,..." 물리시험 시간에 출제된 "물 펌프의 원리를 설명"하라는 문제의 답안에  "펌프 물 깃는 여인을 그려 제출했었다"는 일화 도 있으니,..^^*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현 전남여고) 시절 혼담이 오가던 무렵??"나는 아버지로부터 유학 건으로 꾸중을 듣다가 다듬잇돌 위에 앉아 '히히 하하하' 미친 시늉을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마늘쪽처럼 세모진 눈을 하고 나를 슬프게 쏘아보셨고 미친 시늉을 하던 나는 정말로 울음이 터져 큰 소리로 통곡해 버렸다.

어쨌든 그 슬픈 연극으로 나는 일본 동경여자 미술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수필집 탱고가 흐르는 황혼)?결국 일본 유학을 적극 지지한 김임년 선생의 당부대로  1940년 17세 때 여수항을 출발해 도쿄 유학길에 오른다.

?(스승? 김임년 선생 개인전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천화백 (1992 년 )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현 여자미술대학)에 입학하던 이 무렵 본명이던 옥자(玉子)를 버리고 경자(鏡子)라는 이름을 스스로 지어 붙인다.

도쿄에서는 야수파나 입체파 등을 가르치던 서양화 고등과 보다는 곱고 섬세한 일본화 풍이 마음에 들어 일본화 고등과로 가서(우향 박래현과 동문수학) 모델을 보고 관찰해 섬세하게 사생하는 법을 집중적으로 교육받게 되는데,..?그의 인물수업을 지도하던 "고바야가와 기요시 선생은 "조선 사람이 일본인을 그리려고 하면,제대로 표현하기 힘들 것이니, 조선 사람을 그려야 한다" 며 그 틀을 깨주었다 한다.

? [1942 년 작 조부(祖父)]?그리하여 일본 유학 중에 그린 작품  '조부(祖父)' 는 1942년 제22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게되며?*당시 '조부'는 고혈압으로 반신불수가 된 몸이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의 모델이 되어준 외할아버지의 초상화 일본 유학시절 그린 [외할아버지 지인의 초상화] 사진출처:최경필 의 "남도 야그" *20 살 이전에 그려진 것으로, 구한말 어진화사 석지(石芝 蔡龍臣) 채용신의 작품을 마주한 듯  주인공 내면의 심상까지 담아낸  공필초상이다.

 [1943년 '노부(老婦) ]  이어 그 다음해인 1943년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외할머니를 그린 졸업 작품 '노부(老婦)'가 입선하면서 재능을 인정받게되며,고흥에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일본 유학까지 다녀오면서 하이힐에 양장을 차려입었던 천경자의 청년기는 그가 평생 간직했던 자부심의 바탕이 되었다.

? 결혼?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던 길에 표를 구하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던 자신을 도쿄역에서 우연히 만나 표를 건넨 명문대생 이철식과 1944년 결혼을 하고 1945년 첫 딸 이혜선.,이후 둘째 이남훈을 낳았다.

??[전남여고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앞줄 중앙이 천경자 화백,바로뒤 좌측이 동생 옥희"]?*우애가 깊었던 동생 "옥희"의 폐렴치료를 위해  모교에서 작품판매 개인전을 했었던 언니 ?1946년부터 전남여자고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했지만, 학생운동을 해오던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길지 못했다.

??[1947' 조락] [1950' 단장] *새색시 시절의 모습을 그린 화가 천경자의 자화상 6.25 전쟁 통에, 아끼던 동생 천옥희마저 폐병으로 숨진 후??[1952' 내가 죽은 뒤]?? 전남 모 신문 사회부 였던 두 번째 남편 김남중을 만난다.

남편 없이 두 아이를 기르던 천경자 화백은, 유머 넘치고 건장했던 그에게 푹 빠지게 되는데,        "청춘에 메말라 버린 나는 목 타는 사막에서 감로수를 마신 듯한 기분이었다"고 ,..그러나, 그는 부인이 있는 사람이었고 주변에 항상 여성들이 있었다.

또 떳떳하지 못한 관계에 대한 자괴감과 그의 변덕스러운 태도 때문에 천경자는 그를 기다리면서도 결별을 결심하는 고통의 나날을 이어간다.

?[1950' 생태 (生態)]?여동생마저 6·25전쟁이 끝나자마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첫 남편과 이혼을 한후그려진 작품 .실제로 뱀을 커다란 유리상자에 넣어두고 관찰해 가며 완성한 작품으로 현실적인 비애와 고통들이 꿈틀거리 듯 화면가득  기운생동한 느낌들이 전해져 온다.

 * 최초 그려진 33 마리의 뱀은,  상단에 서로 뒤엉켜  사랑을 나누는 두 마리를 추가로 그려주며  완성되는데,.. 새롭게 시작된  35 세 뱀띠 남자와 사랑을 위한 작가의 염원이 담겨있다.

   1952년 피란지인 부산에서 연 개인전에 내놓은 그림 '생태(生態)'는 천경자 화백의 작업을 다시금 화단이 주목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 아래 개구리 그림도 이 무렵에 선지에 수묵담채로 그려진 작품인데,..?더러 위작인 짝퉁그림들이 경매 사이트에 나돌고 있으니 주의를 요하며,...아래 참고작 과 비교해 보시길 참고작> 더 보기 └ 접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제나 기다리는 편이 된 나는 끝없이 두 갈래로 평행선을 이루는 철길을 아득히 바라보다가  그가 다가오는 소리에 가슴 설레고 형용할 수 없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두 번째 사랑!?[1954년 목화밭에서]   천경자 화백은 자녀 2남 2녀를 낳았다.

첫 남편 이철식과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김남중과 사이에 1남 1녀를 둔다.

  이 가운데 맏딸이 뉴욕에서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킨? 이혜선이다.

  2006년 갤러리현대 전시에서 처음 공개된 작품 "모기장 안의 쫑쫑이"에 등장하는 김종우는 천경자의 막내 아들  아이들에게는 남미짱(이혜선), 후닷닷(장남 이남훈), 미도파(둘째딸 김정희), 쫑쫑이(막내 김종우)라는 애칭을 붙여주고 자식들을 모델로,  때로는 사랑했던 남자를 모델로 그림을 그렸다.

??1954 년 홍익대학교 미대교수가 되었으며, 이후,홍익대학교 동양화과 과장을 역임.(1954

1974년 홍익대학교 교수로 재직) ???[1955'정(靜)]1955년 이 작품 '정(靜)' 으로천경자 화백은 대한미술협회전에서 '대통령상' 을 수상하게되며,??[1960' 놀이][1961' 전설(傳說)]?[1962' 두 사람] [1962' 비 개인 뒤][1963' 원(園)130*120]위의 작품은 2007년 국내 경매에서 11억 5천만원에 낙찰금년 3월  경매에서 17 억에 낙찰? 1963 년 日 동경 서촌화랑에서 개인전 ?[1964'여인들] 1965년 동경 이도 화랑(?廊)에서 개인전?[1966' 숙(宿)]?1967 말레이시아 정부초청 초대전 출품?[1968' 청춘의 문(靑春의 門)] 이 작품은 영화 '청춘의 문' 에 등장하는 여배우의 초상을 그린 작품으로,마치 꿈 속의 한 장면처럼 몽환적인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1968' 자살의 미(自殺의 美)]?1969 제10회 상파울로 비엔날레 출품 [1969' 자화상][1969'모래아 섬에서][1969' 타히티 소녀]  천경자 화백의 작품세계는?1942년부터 세계여행을 시작하는 1969년까지를 '전기', 1970년 서초동 시절부터 1990년대까지를 '후기' 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전기'(1942

1969년) 에는 주로 현실의 삶과 일상에서 느낀 체험을 바탕으로 삶과 죽음 등자신의 내면적 갈등을 보여 주고 있다.

 '후기' (1970

1990년)는 외부 자연에 존재하는 것들을 통해 자신의 꿈과 낭만을 실현하려는 시기로 볼 수 있는데,  특히 후기는 꽃과 여인을 소재로 환상을 표현하거나 해외 여행에서 느낀 이국적 정취를 통해 원시에 대한 향수를 반영하고 있다.

 작가의 소장품  큰 키에 파격적인 색깔과 무늬의 옷, 위태로울 정도로 뾰족했던 하이힐, 머리를 둘러싸는 커다란 화관이나 얼굴을 감싸는 커다란 선글라스, 가늘게 그린 눈썹과 붉게 칠한 입술, 담배를 문 모습으로 주변의 시선을 한몸에 받아오던 스타였다.

?? 반달형의 눈과 광대뼈가 인상적인 그는 당대의 패션리더이기도 했다.

언론과의 인터뷰를 마다하지 않았고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담긴 입담을 자랑한 그는 같은 시대를 살던 문인ㆍ화가들과도 진한 우정을 나눴다.

? 김환기, 박고석, 최순우, 김흥수, 유영국, 김현승, 고은 ,고바우 김성환등의 남성 예술인과 박경리, 한말숙, 전숙희 등 여성 문인들과 단짝이었다.

또 세대를 뛰어넘어  이덕화, 조용필 등 연예인들과 함께한 시간들도 사진으로 남아있다.

 소설가 박경리가 말하는 화가 천경자 오랜 지기인 화가 천경자를 '고약한 예술가'로 부른 시    '천경자를 노래함' 화가 천경자는가까이 갈 수도 없고멀리 갈 수도 없고매일 만나다시피했던 명동시절이나이십년 넘게만나지 못하는 지금이나거리는 멀어지지도가까와지지도 않았다.

  대담한 의상걸친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허기도 탐욕도 아닌 원색을 느낀다.

 어딘지 나른해 뵈지만분명하지 않을 때는 없었고그의 언어를 시적이라한다면속된 표현 아찔하게 감각적이다.

 마음만큼 행동하는 그는들쑥날쑥매끄러운 사람들 속에서세월의 찬 바람을 더욱 배웠을 것이다.

 꿈은 화폭에 있고시름은 담배에 있고용기있는 자유주의자정직한 생애?그러나그는 좀 고약한 예술가다.

?? '후기' (1970

1990년)와 1990 년 이후의 작품들은 차후 다시 시간을 내어 소개해 놓을 것을 약속드리며?

^^*  전시 및 초대전 * 55-1981 국전 추천, 초대작가 현대화랑 초대전 4회 * 1963 동경 서촌화랑에서 개인전 * 1965 동경 「이또」화랑에서 개인전 * 1967 말레시아 정부초청 초대전 출품 * 1969 제10회 상파울로 비엔날레 출품 * 1970 남태평양 풍물 시리이즈 스케치전 (신문회관화랑)  * 1973 천경자 화랑(현대화랑)   * 1974 아프리카 풍물 시리이즈 스케치전(현대화랑)   * 1977 한국현대동양화 유럽 巡廻展출전  * 1995 천경자 회고작품전 (호암갤러리) 당시 8 만 여명이 관람  * 2006  내 생애 아름다운 82페이지(현대화랑)   그림 못지않게 문학적 재능도 뛰어났던  천경자 화백?1955년의 '여인소묘'를 시작으로 단행본 15건과 수필집 10권, 신문잡지 연재 12 건 등으로 우리 일반 대중들과 함께해 왔다.

 저서?  1995 수필집 <탱고가 흐르는 황혼> | 1989 수필집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 | 1981 수필집 <캔맥주 한 잔의 유희> | 1980 화문집 <꿈과 바람의 세계> | 1978 자서전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 1974 화문집 <아프리카 기행화문집> | 1973수필 단행본 <천경자, 남태평양에 가다> | 1966 수필집 <언덕 위의 양옥집> | 1960 수필집 <유성이 가는 길> | 1955 수필집 <여인소묘>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1976년 잡지 '문학사상'에 연재하기 시작했었던 글을 모아 1978년 초판본   2006년에 새로 편집돼 나온 자서전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아래)    이상으로 천경자 화백의 삶과 작품 [1]을 사려가며바로 이어갈 다음 포스팅  "천경자 미인도에 감춰진 진실"에 앞서  끝으로 선생의 노년의 삶을  더듬어 보고  맺을까 합니다!   노년(老年)의 삶  천경자 화백의 노년에  찾아 온 큰 고비  1991년 '미인도' 위작 논란이었다.

당시 68세였던 천 화백은 "자기 그림도 몰라보는 화가"라는 수군거림 속에 절필을 선언??[문제의 그 미인도]? 천 화백은 4개월 후 다시 그림에만 몰두하기 위해 카리브해, 자메이카, 멕시코로 스케치 여행을 떠난다.

?생애 마지막 전시라고 생각하고 72세 때인 1995년 호암갤러리에서 15년 만에 가진 대규모 전시는 8만명이 모여 줄을 서서 볼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었고  1998년 채색화와 스케치 등 자신의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뉴욕에 사는 장녀 이혜선과 살다가,...그곳에서 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다.

 1999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으로 선정.??2003년 뇌출혈로 쓰러지기 전까지, 뉴욕에서 드로잉과 미완성되었던 그림들을 작업하며       위작시비의 상처를 치유해? 가고 있었다 한다.

???2003 년 이후 장녀 이혜선은 어머니 천경자? 선생의 작품관리 권한을 대행하며 대리인으로서?어머니 작품들을 모실 미술관 건립에 열정을 가지고 물색하던중?2007년 3월 경기도 양주시와 협의.계약하며 (총 사업비 97 억) 대규모 미술관 건립이 추진된다.

?이와 더불어 ?2007 년  어머니의 고향 전남 고흥군과 협의.계약하고  드로잉 55점, 판화 11점 등 총 66점의 작품과작가의 소장품 일부를 기증 [천경자 전시관]이 개관된다.

 [고흥군에 전시된 선생의 드로잉作]   장녀 이혜선은 양주시 협약에 앞서 어머니 고향 고흥군에 미술관 건립제안을 했었으나 최초 군 예산부족으로 결렬된 후, 군에서 다시 요청해와 전시관이 마련 됨.  [고흥 천경자전시관. 일반 판매용 아트상품들]??이후, 전시장 여건과 (전시실조명 및 통풍,온.습도등) 수장고등 작품 보존,훼손 우려등의 이유로 ???개관후 ?4 년이 지난 2012 년에 모두 반환하고, 천경자 전시실은 아쉽게 문을 닫게된다.

??한편 양주시의 미술관 건립은  단체장교체 및 예산확보등으로 지연되다가  부지로 최종 선정된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에  지하1층 지상2층 (연면적 2,900 제곱미터)로뒤늦게 2009 년 착공하게 되는데,..터파기에서 드러난 암반층과 연접해 있던, 권율장군 묘역(문화재 보호구역)관련 문제로착공후 얼마되지 않아 ? 전면 백지화 되었고, 그 대신  연접한 다른 부지에???2014년 양주시립 장욱진 미술관이 개관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지난해 가을 ?10월 22일 천경자 가족은 어머니가 지난 8월 6일 새벽에타계하셨다고 국내에 밝혀왔다 _()_??그후 장녀 이혜선은  어머니가 남기고 가신 작품들과  유품들을 기증하고 전시할 미술관을 물색해 오던중 ? 다시 인연이 닿은 곳은  피란시절  첫 전람회를 열며 작품 활동의 발판으로 삼았던 부산  어린 천경자에게 화가의 길을 가도록 격려하고 이끌어 주셨던 김임년 선생이 사셨던 곳이며, 그의 아들  윤광운 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부산 부경대 ?지난해 12 월 ?10 일  부경대 총장과 천 화백의 작품 및 개인소장품 기증을 위한 협약을 맺고,그 다음날인 11일 ?회견을 열고 “어머니가 남긴 작품과 소장 중인 유품들( 드로잉과 미완성 작품 1000여 점을 비롯해 천 화백의 옷 컵 신발 안경 등 개인 소장품 3000여 점 등 모두 4000여 점)모두 부경대에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대학 측은 6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캠퍼스 내에 독립 건물 형태로 ‘천경자 기념미술관’을 짓기로 했으며,  기념관은 전시실, 영상 실, 수장고 등으로 구획하여 2020 년까지 완공하기로 협약하고,... (1986 년작 "막간") 당시 공개된 약속이행으로   금년, 4월26일 청운관 건물 1층 임시 전시실에서  고(故) 천경자 화백의 미완성 그림과 애장품등 *(부산에서 처음 공개되는 채색화 ‘막간’을 비롯해 꽃과 인물 등을 소재로 한 드로잉 등 모두 66점)이 전시될 예정이었으나, 최종 점검차 들린 장녀 이혜선의 지적처럼, 전시장 시설미비로 하루전에 전면 취소되었다'??이런 일련의 사안들과 더불어 고(故) 천경자 화백과 그의 두번째 남편인 고 김남중 전 전일그룹 회장 사이에서 태어난 차녀 김정희씨(63)는 지난 2월 부터,자신을 법적 자녀로 인정해달라는 친자확인 소송을 제기,  며칠전 6월10일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서울가정법원 가사3단독 김수정 판사는 정희씨와 동생 고 종우씨의 아들 등이 낸 친생자관계확인 소송에서 "정희씨 등과 천 화백에 사이에 친생자관계가 존재함을 확인한다"고 판결했다.

)??(1981년작 "장미와 여인")  *눈을 흐리게 뜨고 주시해 보시길 ^^? 또한,정희씨 측은 명백한 위작인 미인도를 계속해서 진품이라고 소개하는 것은 명예훼손이자 저작권 침해라 판단하여 지난 4월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6명을 사자명예훼손, 저작권법 위반,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혐의로 고소·고발하였고, ?     수사에 착수한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배용원 부장검사)는 지난 8일 그림을 감정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그 문제의 미인도를 제출받았으며,지난 8일에는 정희씨를 고소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하였고, 현재  다각도로 조사 분석하며 수사가 진행중이다.

? 수사가 진행중인 민감한 사안이기는 하지만,... 앞서 언급해 두었 듯바로 이어지게 될 다음 포스팅은  "미인도 속에 감춰진 진실"들과  위작을 구분해내는안목과 방법을 다루어 갈 예정입니다.

    늦었지만,  永眠에 드신 故 천경자 선생님의 명복을 기원드리며 _()_???"가장 나쁜 거짓말은 진실에 가까운 거짓말이다"? - 앙드레 지드-??                                                                                            현이의 다락방에서  "다 사랑"? ?   사진은 서울시에서 제공한 것입니다.

    천경자 1주기 추모전 ‘바람은 불어도 좋다.

어차피 부는 바람이다’는 1998년 천경자 화백이 서울시에 기증한 작품 93점 전체와 다른 작가들이 소장한 고(1974년), 막은내리고(1989년) 등 작품들이 전시됩니다.

오는 8월7일까지 서소문 본관 2층에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전시회는 ‘인생’, ‘여행’, ‘환상’ 등 3개의 주제와 아카이브로 구성돼 천경자의 학생 시절 작품부터 이후 60여년간 작품 세계, 관련 기록물 등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기존에 천경자 상설전시실로 사용되던 공간은 아카아브 섹션으로 연출돼 어린시절부터 별세 전까지 천경자 화백의 사진과 수필집, 기고문, 기사, 삽화, 영상 등을 둘러볼 수 있도록 구성됩니다.

     그라나다 두자매. 사진: 서울시스카프를 쓴 엔자. 사진:서울시여인의시. 사진:서울시황혼의통곡.사진:서울시  백남준 타계 10주기를 맞아 열리는 ‘백남준 ∞ 플럭서스’ 추모전은 7월 31일까지 서소문 본관 3층에서 개최합니다.

    전시는 독일 쿤스트할레 미술관과 국내 소장가들로부터 대여한 소장품 200여점으로 구성됩니다.

백남준과 조지 마키우나스, 요셉 보이스, 오노 요코 등 1960

1990년대 플럭서스 일원으로 활동했던 작가들의 작품과 대형 멀티 모니터 설치작품들이 한 자리에 선보입니다.

백남준과 플럭서스, 백남준이 미술계에 미친 영향력과 순환적인 연결고리를 주제로 총 4개의 섹션을 시작과 끝의 구분 없이 자유로운 관람할 수 있습니다.

    백남준,태내기 자서전, 1981,1932년 뉴욕타임즈에 드로잉 후 양장제본, 사진:서울시W3, 1994, 64대의 모니터, dimensions variable with specific installations. 사진:서울시이와함께 서울시립미술관은 백남준 작가 서거 10주기를 기념해 백남준이 1937년부터 1949년까지 12년간 성장기를 보낸 종로구 창신동 집터에 ‘백남준기념관’을 조성합니다.

[천경자] 대박이네요.


기념관 건물은 음식점으로 쓰였던 총면적 93.9㎡(약 28평)의 단층 한옥을 리모델링해 올해 11월 개관할 예정입니다.

   백남준,보이스 복스, 1961-1986,설치,병품, 빈티지TV, 액자, 판화, 드로잉, 사진 등 , 서울시립미술관 소장백남준,세 대의 카메라 참여, 1969작품 2001 재설치,CCTV,RGB 프로젝터, CRT모니터,아베 변환기, 사진:서울시  관심있으신 이웃님들은 한번 돌아보세요

^^*     지도보기50m� NAVER Corp.??? /OpenStreetMap
?? ???
?� NAVER Corp. /OpenStreetMap서울시립미술관서울특별시 중구 덕수궁길 61 서울시립미술관전화상세보기지도보기5cm서울시립미술관(1998년 작가 기증)천경자(1924

2015)는 전라남도 고흥 출신으로, 해방 이후 왜색으로 매도되어 배척받던 채색화를  여성적이고 환상적인 자신의 세계관과 결합시켜 최종적으로는 독특한 작품세계로 일궈낸 여류 화가이며, 많은 수의 저서도 집필하여 수필가로도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작가는 어렸을 적에는 연극배우를 지망했지만 이후 미술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으며, 1943년 <조부>, 1944년 <노부>로 조선미술전람회에 연이어 입선하여 화단에 정식으로 데뷔했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는 부산의 한 다방에서 수많은 독사들을 그린 작품 <생태>를 출품하여 화단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으며, 휴전 이후에는 잡지 등에 글을 투고하며 4명의 자식들을 부양하다 수화(樹話) 김환기(1913

1974)의 추천을 받고 상경하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의 교수가 되어 많은 후학들을 양성하였다2. 또한 여러 잡지의 표지화를 그렸고, 국전의 추천작가/심사위원직 등을 역임하였으며, 일본가 한국을 오가며 여러 차례 개인전도 갖는 등 작품활동 역시 활발히 하였다.

그리고 1969년부터는 유럽, 타히티, 아프리카, 남미 등 세계 각국을 여행하고 그곳의 이국적인 풍물을 작품 속에 담기 시작하면서 또 다시 화재를 불러일으켰고, 여행기 역시 책으로 출간하여 더더욱 대중들로부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1991년에는 희대의 위작 사건인 '미인도 위작 사건'에 휘말려 일시적으로 절필을 선언하는 아픔도 겪었다3. 1995년에는 호암갤러리에서 최초로 회고전을 개최하였으며, 1998년 서울시립미술관에 채색화와 드로잉 93점, 그리고 저작권을 기증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이후 2003년 뇌출혈로 병상에 눕게 된 뒤 외부와 연락을 끊고 칩거에 들어갔으며, 2015년 8월 사망하였음이 유족을 통해서 확인되었다.

<이탈리아 기행>은 천경자의 작품세계에서 새로운 변화의 기점이 되는 중요한 작품으로, 3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제작된 역작이며 1973년 현대화랑에서 열린 개인전에 출품되었다.

전술했듯이 천경자는 1969년부터 해외 여행을 시작하여 남태평양,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각지를 여행하고 귀국하였는대, 이때 직접 접한 이국적 인상과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거장들의 명화에 깊은 감명을 받고 이를 작품 속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서 흥미를 끈 이국적인 소재들을 한대 나열한 파노라마 식 구성을 취하고 있는대,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된 보티첼리의 '봄'의 도판 일부와 붉은 매니큐어가 칠해진 손, 양주, 이국적인 의상과 목걸이, 장갑, 트럼프 카드, 그리고 여행지의 풍경을 담은 사진 등이 그려져 있어 작가가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풍물에 감명을 받았음을 유추할 수 있다.

특히 서양의 거장인 보티첼리의 작품 '봄'의 일부가 중앙에 그려져 있어 시선을 끄는 점이 흥미로운대, 이는 작가가 고전 서양화에 유난히 감명을 받았음을 암시하며, 실제로 여행을 다녀온 이후 작가의 작품은 서양화풍의 사실적인 묘사가 강화되 더욱 세밀해진 화면을 보여준다(이는 작가 자신도 직접 언급한 것이다). 또한 왼편에 놓인 장미꽃, 안개꽃, 나리 등 다양한 꽃들을 모아 놓은 화려한 꽃다발도 눈에 띄는대, 유독 꽃만은 윤곽선이 비교적 흐릿하게 처리되어 있다.

이는 1970년대에 제작된 천경자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로, 마치 상상이나 기억 속의 꽃을 보는 듯 환상적이고 아련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는 1960년대 작품 속에서 여러 차례 등장했던 꽃구름을 계승하는 것이라 하겠다.

도판을 제공해 주신 서울시립미술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본명은 천옥자(千玉子).한국의 여류 채색화가인 이숙자(1942

), 이화자(1943

) 등도 그녀의 제자이다.

다만 대중들에게는 절필한 뒤 바로 미국으로 떠나버린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대, 사실은 절필 선언을 하고 얼마 뒤 재기하여 다시 작품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  * 부친 천성욱은 한때 상여 (喪輿 )가게와 단청을 했으며, 이후  처가의 도움으로 양말공장을 운영하였으나, 술과 도박등으로   망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어린 천경자는 어머니와 더불어 외가살이를 시작하게 됨 ?외동딸을(어머니 박운아)  남장을 시켜 서당에까지 보낼 정도로 깨어 있던 외할아버지는 그 딸이 낳은 큰 손녀를 금지옥엽으로 예뻐하며 옥자(玉子) 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손녀는 밤마다 외할아버지의 무릎에 누워 '심청전' '흥부전' '수호지' '춘향전'을 듣다 잠이 들었고 천자문과 창까지 배우며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보통학교 1학년 때 일본인 담임 선생이 그림에 소질을 발견해냈고 대청마루 흰 회벽에 (전근 간 여선생을 그리워하며) 그린 여인상이 외할머니 눈에 띄어 매를 맞기도 한다.

?(전남 고흥? 팔영산 자락)?어린 옥자는 아버지 천성욱을 원망하며 성장했지만, 그의 타고난 색채감과과 끼는 전통안료를 다루던아버지에게 온 것이다.

?이후,?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현 전남여고)에 다니며, 그 끼를 키우게 되는데,..." 물리시험 시간에 출제된 "물 펌프의 원리를 설명"하라는 문제의 답안에  "펌프 물 깃는 여인을 그려 제출했었다"는 일화 도 있으니,..^^*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현 전남여고) 시절 혼담이 오가던 무렵??"나는 아버지로부터 유학 건으로 꾸중을 듣다가 다듬잇돌 위에 앉아 '히히 하하하' 미친 시늉을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마늘쪽처럼 세모진 눈을 하고 나를 슬프게 쏘아보셨고 미친 시늉을 하던 나는 정말로 울음이 터져 큰 소리로 통곡해 버렸다.

어쨌든 그 슬픈 연극으로 나는 일본 동경여자 미술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수필집 탱고가 흐르는 황혼)?결국 일본 유학을 적극 지지한 김임년 선생의 당부대로  1940년 17세 때 여수항을 출발해 도쿄 유학길에 오른다.

?(스승? 김임년 선생 개인전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천화백 (1992 년 )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현 여자미술대학)에 입학하던 이 무렵 본명이던 옥자(玉子)를 버리고 경자(鏡子)라는 이름을 스스로 지어 붙인다.

도쿄에서는 야수파나 입체파 등을 가르치던 서양화 고등과 보다는 곱고 섬세한 일본화 풍이 마음에 들어 일본화 고등과로 가서(우향 박래현과 동문수학) 모델을 보고 관찰해 섬세하게 사생하는 법을 집중적으로 교육받게 되는데,..?그의 인물수업을 지도하던 "고바야가와 기요시 선생은 "조선 사람이 일본인을 그리려고 하면,제대로 표현하기 힘들 것이니, 조선 사람을 그려야 한다" 며 그 틀을 깨주었다 한다.

? [1942 년 작 조부(祖父)]?그리하여 일본 유학 중에 그린 작품  '조부(祖父)' 는 1942년 제22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게되며?*당시 '조부'는 고혈압으로 반신불수가 된 몸이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의 모델이 되어준 외할아버지의 초상화 일본 유학시절 그린 [외할아버지 지인의 초상화] 사진출처:최경필 의 "남도 야그" *20 살 이전에 그려진 것으로, 구한말 어진화사 석지(石芝 蔡龍臣) 채용신의 작품을 마주한 듯  주인공 내면의 심상까지 담아낸  공필초상이다.

 [1943년 '노부(老婦) ]  이어 그 다음해인 1943년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외할머니를 그린 졸업 작품 '노부(老婦)'가 입선하면서 재능을 인정받게되며,고흥에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일본 유학까지 다녀오면서 하이힐에 양장을 차려입었던 천경자의 청년기는 그가 평생 간직했던 자부심의 바탕이 되었다.

? 결혼?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던 길에 표를 구하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던 자신을 도쿄역에서 우연히 만나 표를 건넨 명문대생 이철식과 1944년 결혼을 하고 1945년 첫 딸 이혜선.,이후 둘째 이남훈을 낳았다.

??[전남여고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앞줄 중앙이 천경자 화백,바로뒤 좌측이 동생 옥희"]?*우애가 깊었던 동생 "옥희"의 폐렴치료를 위해  모교에서 작품판매 개인전을 했었던 언니 ?1946년부터 전남여자고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했지만, 학생운동을 해오던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길지 못했다.

??[1947' 조락] [1950' 단장] *새색시 시절의 모습을 그린 화가 천경자의 자화상 6.25 전쟁 통에, 아끼던 동생 천옥희마저 폐병으로 숨진 후??[1952' 내가 죽은 뒤]?? 전남 모 신문 사회부 였던 두 번째 남편 김남중을 만난다.

남편 없이 두 아이를 기르던 천경자 화백은, 유머 넘치고 건장했던 그에게 푹 빠지게 되는데,        "청춘에 메말라 버린 나는 목 타는 사막에서 감로수를 마신 듯한 기분이었다"고 ,..그러나, 그는 부인이 있는 사람이었고 주변에 항상 여성들이 있었다.

또 떳떳하지 못한 관계에 대한 자괴감과 그의 변덕스러운 태도 때문에 천경자는 그를 기다리면서도 결별을 결심하는 고통의 나날을 이어간다.

?[1950' 생태 (生態)]?여동생마저 6·25전쟁이 끝나자마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첫 남편과 이혼을 한후그려진 작품 .실제로 뱀을 커다란 유리상자에 넣어두고 관찰해 가며 완성한 작품으로 현실적인 비애와 고통들이 꿈틀거리 듯 화면가득  기운생동한 느낌들이 전해져 온다.

 * 최초 그려진 33 마리의 뱀은,  상단에 서로 뒤엉켜  사랑을 나누는 두 마리를 추가로 그려주며  완성되는데,.. 새롭게 시작된  35 세 뱀띠 남자와 사랑을 위한 작가의 염원이 담겨있다.

   1952년 피란지인 부산에서 연 개인전에 내놓은 그림 '생태(生態)'는 천경자 화백의 작업을 다시금 화단이 주목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천경자] 는 진정 무엇인가.

 ?* 아래 개구리 그림도 이 무렵에 선지에 수묵담채로 그려진 작품인데,..?더러 위작인 짝퉁그림들이 경매 사이트에 나돌고 있으니 주의를 요하며,...아래 참고작 과 비교해 보시길 참고작> 더 보기 └ 접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제나 기다리는 편이 된 나는 끝없이 두 갈래로 평행선을 이루는 철길을 아득히 바라보다가  그가 다가오는 소리에 가슴 설레고 형용할 수 없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두 번째 사랑!?[1954년 목화밭에서]   천경자 화백은 자녀 2남 2녀를 낳았다.

첫 남편 이철식과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김남중과 사이에 1남 1녀를 둔다.

  이 가운데 맏딸이 뉴욕에서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킨? 이혜선이다.

  2006년 갤러리현대 전시에서 처음 공개된 작품 "모기장 안의 쫑쫑이"에 등장하는 김종우는 천경자의 막내 아들  아이들에게는 남미짱(이혜선), 후닷닷(장남 이남훈), 미도파(둘째딸 김정희), 쫑쫑이(막내 김종우)라는 애칭을 붙여주고 자식들을 모델로,  때로는 사랑했던 남자를 모델로 그림을 그렸다.

??1954 년 홍익대학교 미대교수가 되었으며, 이후,홍익대학교 동양화과 과장을 역임.(1954

1974년 홍익대학교 교수로 재직) ???[1955'정(靜)]1955년 이 작품 '정(靜)' 으로천경자 화백은 대한미술협회전에서 '대통령상' 을 수상하게되며,??[1960' 놀이][1961' 전설(傳說)]?[1962' 두 사람] [1962' 비 개인 뒤][1963' 원(園)130*120]위의 작품은 2007년 국내 경매에서 11억 5천만원에 낙찰금년 3월  경매에서 17 억에 낙찰? 1963 년 日 동경 서촌화랑에서 개인전 ?[1964'여인들] 1965년 동경 이도 화랑(?廊)에서 개인전?[1966' 숙(宿)]?1967 말레이시아 정부초청 초대전 출품?[1968' 청춘의 문(靑春의 門)] 이 작품은 영화 '청춘의 문' 에 등장하는 여배우의 초상을 그린 작품으로,마치 꿈 속의 한 장면처럼 몽환적인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1968' 자살의 미(自殺의 美)]?1969 제10회 상파울로 비엔날레 출품 [1969' 자화상][1969'모래아 섬에서][1969' 타히티 소녀]  천경자 화백의 작품세계는?1942년부터 세계여행을 시작하는 1969년까지를 '전기', 1970년 서초동 시절부터 1990년대까지를 '후기' 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전기'(1942

1969년) 에는 주로 현실의 삶과 일상에서 느낀 체험을 바탕으로 삶과 죽음 등자신의 내면적 갈등을 보여 주고 있다.

 '후기' (1970

1990년)는 외부 자연에 존재하는 것들을 통해 자신의 꿈과 낭만을 실현하려는 시기로 볼 수 있는데,  특히 후기는 꽃과 여인을 소재로 환상을 표현하거나 해외 여행에서 느낀 이국적 정취를 통해 원시에 대한 향수를 반영하고 있다.

 작가의 소장품  큰 키에 파격적인 색깔과 무늬의 옷, 위태로울 정도로 뾰족했던 하이힐, 머리를 둘러싸는 커다란 화관이나 얼굴을 감싸는 커다란 선글라스, 가늘게 그린 눈썹과 붉게 칠한 입술, 담배를 문 모습으로 주변의 시선을 한몸에 받아오던 스타였다.

?? 반달형의 눈과 광대뼈가 인상적인 그는 당대의 패션리더이기도 했다.

언론과의 인터뷰를 마다하지 않았고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담긴 입담을 자랑한 그는 같은 시대를 살던 문인ㆍ화가들과도 진한 우정을 나눴다.

? 김환기, 박고석, 최순우, 김흥수, 유영국, 김현승, 고은 ,고바우 김성환등의 남성 예술인과 박경리, 한말숙, 전숙희 등 여성 문인들과 단짝이었다.

또 세대를 뛰어넘어  이덕화, 조용필 등 연예인들과 함께한 시간들도 사진으로 남아있다.

 소설가 박경리가 말하는 화가 천경자 오랜 지기인 화가 천경자를 '고약한 예술가'로 부른 시    '천경자를 노래함' 화가 천경자는가까이 갈 수도 없고멀리 갈 수도 없고매일 만나다시피했던 명동시절이나이십년 넘게만나지 못하는 지금이나거리는 멀어지지도가까와지지도 않았다.

  대담한 의상걸친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허기도 탐욕도 아닌 원색을 느낀다.

 어딘지 나른해 뵈지만분명하지 않을 때는 없었고그의 언어를 시적이라한다면속된 표현 아찔하게 감각적이다.

 마음만큼 행동하는 그는들쑥날쑥매끄러운 사람들 속에서세월의 찬 바람을 더욱 배웠을 것이다.

 꿈은 화폭에 있고시름은 담배에 있고용기있는 자유주의자정직한 생애?그러나그는 좀 고약한 예술가다.

?? '후기' (1970

1990년)와 1990 년 이후의 작품들은 차후 다시 시간을 내어 소개해 놓을 것을 약속드리며?

^^*  전시 및 초대전 * 55-1981 국전 추천, 초대작가 현대화랑 초대전 4회 * 1963 동경 서촌화랑에서 개인전 * 1965 동경 「이또」화랑에서 개인전 * 1967 말레시아 정부초청 초대전 출품 * 1969 제10회 상파울로 비엔날레 출품 * 1970 남태평양 풍물 시리이즈 스케치전 (신문회관화랑)  * 1973 천경자 화랑(현대화랑)   * 1974 아프리카 풍물 시리이즈 스케치전(현대화랑)   * 1977 한국현대동양화 유럽 巡廻展출전  * 1995 천경자 회고작품전 (호암갤러리) 당시 8 만 여명이 관람  * 2006  내 생애 아름다운 82페이지(현대화랑)   그림 못지않게 문학적 재능도 뛰어났던  천경자 화백?1955년의 '여인소묘'를 시작으로 단행본 15건과 수필집 10권, 신문잡지 연재 12 건 등으로 우리 일반 대중들과 함께해 왔다.

 저서?  1995 수필집 <탱고가 흐르는 황혼> | 1989 수필집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 | 1981 수필집 <캔맥주 한 잔의 유희> | 1980 화문집 <꿈과 바람의 세계> | 1978 자서전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 1974 화문집 <아프리카 기행화문집> | 1973수필 단행본 <천경자, 남태평양에 가다> | 1966 수필집 <언덕 위의 양옥집> | 1960 수필집 <유성이 가는 길> | 1955 수필집 <여인소묘>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1976년 잡지 '문학사상'에 연재하기 시작했었던 글을 모아 1978년 초판본   2006년에 새로 편집돼 나온 자서전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아래)    이상으로 천경자 화백의 삶과 작품 [1]을 사려가며바로 이어갈 다음 포스팅  "천경자 미인도에 감춰진 진실"에 앞서  끝으로 선생의 노년의 삶을  더듬어 보고  맺을까 합니다!   노년(老年)의 삶  천경자 화백의 노년에  찾아 온 큰 고비  1991년 '미인도' 위작 논란이었다.

당시 68세였던 천 화백은 "자기 그림도 몰라보는 화가"라는 수군거림 속에 절필을 선언??[문제의 그 미인도]? 천 화백은 4개월 후 다시 그림에만 몰두하기 위해 카리브해, 자메이카, 멕시코로 스케치 여행을 떠난다.

?생애 마지막 전시라고 생각하고 72세 때인 1995년 호암갤러리에서 15년 만에 가진 대규모 전시는 8만명이 모여 줄을 서서 볼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었고  1998년 채색화와 스케치 등 자신의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뉴욕에 사는 장녀 이혜선과 살다가,...그곳에서 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다.

 1999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으로 선정.??2003년 뇌출혈로 쓰러지기 전까지, 뉴욕에서 드로잉과 미완성되었던 그림들을 작업하며       위작시비의 상처를 치유해? 가고 있었다 한다.

???2003 년 이후 장녀 이혜선은 어머니 천경자? 선생의 작품관리 권한을 대행하며 대리인으로서?어머니 작품들을 모실 미술관 건립에 열정을 가지고 물색하던중?2007년 3월 경기도 양주시와 협의.계약하며 (총 사업비 97 억) 대규모 미술관 건립이 추진된다.

?이와 더불어 ?2007 년  어머니의 고향 전남 고흥군과 협의.계약하고  드로잉 55점, 판화 11점 등 총 66점의 작품과작가의 소장품 일부를 기증 [천경자 전시관]이 개관된다.

 [고흥군에 전시된 선생의 드로잉作]   장녀 이혜선은 양주시 협약에 앞서 어머니 고향 고흥군에 미술관 건립제안을 했었으나 최초 군 예산부족으로 결렬된 후, 군에서 다시 요청해와 전시관이 마련 됨.  [고흥 천경자전시관. 일반 판매용 아트상품들]??이후, 전시장 여건과 (전시실조명 및 통풍,온.습도등) 수장고등 작품 보존,훼손 우려등의 이유로 ???개관후 ?4 년이 지난 2012 년에 모두 반환하고, 천경자 전시실은 아쉽게 문을 닫게된다.

??한편 양주시의 미술관 건립은  단체장교체 및 예산확보등으로 지연되다가  부지로 최종 선정된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에  지하1층 지상2층 (연면적 2,900 제곱미터)로뒤늦게 2009 년 착공하게 되는데,..터파기에서 드러난 암반층과 연접해 있던, 권율장군 묘역(문화재 보호구역)관련 문제로착공후 얼마되지 않아 ? 전면 백지화 되었고, 그 대신  연접한 다른 부지에???2014년 양주시립 장욱진 미술관이 개관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지난해 가을 ?10월 22일 천경자 가족은 어머니가 지난 8월 6일 새벽에타계하셨다고 국내에 밝혀왔다 _()_??그후 장녀 이혜선은  어머니가 남기고 가신 작품들과  유품들을 기증하고 전시할 미술관을 물색해 오던중 ? 다시 인연이 닿은 곳은  피란시절  첫 전람회를 열며 작품 활동의 발판으로 삼았던 부산  어린 천경자에게 화가의 길을 가도록 격려하고 이끌어 주셨던 김임년 선생이 사셨던 곳이며, 그의 아들  윤광운 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부산 부경대 ?지난해 12 월 ?10 일  부경대 총장과 천 화백의 작품 및 개인소장품 기증을 위한 협약을 맺고,그 다음날인 11일 ?회견을 열고 “어머니가 남긴 작품과 소장 중인 유품들( 드로잉과 미완성 작품 1000여 점을 비롯해 천 화백의 옷 컵 신발 안경 등 개인 소장품 3000여 점 등 모두 4000여 점)모두 부경대에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대학 측은 6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캠퍼스 내에 독립 건물 형태로 ‘천경자 기념미술관’을 짓기로 했으며,  기념관은 전시실, 영상 실, 수장고 등으로 구획하여 2020 년까지 완공하기로 협약하고,... (1986 년작 "막간") 당시 공개된 약속이행으로   금년, 4월26일 청운관 건물 1층 임시 전시실에서  고(故) 천경자 화백의 미완성 그림과 애장품등 *(부산에서 처음 공개되는 채색화 ‘막간’을 비롯해 꽃과 인물 등을 소재로 한 드로잉 등 모두 66점)이 전시될 예정이었으나, 최종 점검차 들린 장녀 이혜선의 지적처럼, 전시장 시설미비로 하루전에 전면 취소되었다'??이런 일련의 사안들과 더불어 고(故) 천경자 화백과 그의 두번째 남편인 고 김남중 전 전일그룹 회장 사이에서 태어난 차녀 김정희씨(63)는 지난 2월 부터,자신을 법적 자녀로 인정해달라는 친자확인 소송을 제기,  며칠전 6월10일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서울가정법원 가사3단독 김수정 판사는 정희씨와 동생 고 종우씨의 아들 등이 낸 친생자관계확인 소송에서 "정희씨 등과 천 화백에 사이에 친생자관계가 존재함을 확인한다"고 판결했다.

)??(1981년작 "장미와 여인")  *눈을 흐리게 뜨고 주시해 보시길 ^^? 또한,정희씨 측은 명백한 위작인 미인도를 계속해서 진품이라고 소개하는 것은 명예훼손이자 저작권 침해라 판단하여 지난 4월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6명을 사자명예훼손, 저작권법 위반,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혐의로 고소·고발하였고, ?     수사에 착수한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배용원 부장검사)는 지난 8일 그림을 감정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그 문제의 미인도를 제출받았으며,지난 8일에는 정희씨를 고소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하였고, 현재  다각도로 조사 분석하며 수사가 진행중이다.

? 수사가 진행중인 민감한 사안이기는 하지만,... 앞서 언급해 두었 듯바로 이어지게 될 다음 포스팅은  "미인도 속에 감춰진 진실"들과  위작을 구분해내는안목과 방법을 다루어 갈 예정입니다.

    늦었지만,  永眠에 드신 故 천경자 선생님의 명복을 기원드리며 _()_???"가장 나쁜 거짓말은 진실에 가까운 거짓말이다"? - 앙드레 지드-??                                                                                            현이의 다락방에서  "다 사랑"? ?   작가는 어렸을 적에는 연극배우를 지망했지만 이후 미술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으며, 1943년 <조부>, 1944년 <노부>로 조선미술전람회에 연이어 입선하여 화단에 정식으로 데뷔했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는 부산의 한 다방에서 수많은 독사들을 그린 작품 <생태>를 출품하여 화단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으며, 휴전 이후에는 잡지 등에 글을 투고하며 4명의 자식들을 부양하다 수화(樹話) 김환기(1913

1974)의 추천을 받고 상경하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의 교수가 되어 많은 후학들을 양성하였다1. 또한 여러 잡지의 표지화를 그렸고, 국전의 추천작가/심사위원직 등을 역임하였으며, 일본가 한국을 오가며 여러 차례 개인전도 갖는 등 작품활동 역시 활발히 하였다.

그리고 1969년부터는 유럽, 타히티, 아프리카, 남미 등 세계 각국을 여행하고 그곳의 이국적인 풍물을 작품 속에 담기 시작하면서 또 다시 화재를 불러일으켰고, 여행기 역시 책으로 출간하여 더더욱 대중들로부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1991년에는 희대의 위작 사건인 '미인도 위작 사건'에 휘말려 일시적으로 절필을 선언하는 아픔도 겪었다2. 1995년에는 호암갤러리에서 최초로 회고전을 개최하였으며, 1998년 서울시립미술관에 채색화와 드로잉 93점, 그리고 저작권을 기증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이후 2003년 뇌출혈로 병상에 눕게 된 뒤 외부와 연락을 끊고 칩거에 들어갔으며, 2015년 8월 사망하였음이 유족을 통해서 확인되었다.

<생태(生態)>는 천경자의 초기 작품으로, 작가의 작품세계에서 아주 중요한 작품이다.

작가 역시 이 작품을 자신의 작품들 중에서도 무척 아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에서 천경자를 상징하는 소재 중 하나인 '뱀'이 처음으로 등장하였으며, 1951년 부산의 어느 다방에서 열린 개인전에 출품됨으로써 작가가 화단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수필을 쓰기도 했을 정도로 이 작품을 자신의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아꼈으며, 이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수필을 쓰기도 했을 정도인데 1999년 작가가 서울시립미술관에 93점의 작품을 기증할 때 그 중 한점에 포함되어1 현재는 서울시립미술관 천경자실에서 전시되고 있는 중이다.

작품 속에서 그려진 것은 한 뭉텅이의 푸른 독사들이다.

아직 천경자 특유의 환상적인 화풍이 확립되기 이전에 그려진 작품이라 전체적으로 사물을 사실적이고 꼼꼼하게 묘사되어 있다.

시퍼런 독사들이 또아리를 틀고 몰려있는 이미지는 섬뜩함과 동시에 공포스러운 인상을 준다.

이러한 독사 떼는 당시 풍경이나 정물, 인물을 주로 다루던 한국화단에서는 상당히 신선하면서 충격적인 주제였으며, 이 그림이 1951년 부산의 한 다방에서 열린 그녀의 개인전에 출품되었을 때 '여자가 뱀을 그렸다'며 입소문이 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려고 몰려들었다고 하니 당시 이 작품의 파급력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하 수 있다.

   작가는 왜 이렇게 섬뜩하고 징그러운 뱀 때들을 그린 것일까? 작가가 수필에서 언급한 바에 따르면,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였다고 한다.

당시 작가는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의 절대비극을 겪었고, 폐병을 앓던 여동생이 결국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으며, 사업의 실패로 가세가 기울면서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신문였던 연인과의 결혼 생활도 결국 파국에 이르고 말아 그야말로 죽을만큼 괴로웠던 시기였고, 결국 징그럽고 독살스러운 생명체인 뱀을 그림으로써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이다.

즉 이 작품에서 그려진 수많은 독사들은 작가의 고통스러웠던 과거의 기억들을 상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후 뱀은 작가의 작품에서 작품의 전환기나 인생의 전환기에 등장하게 되며, 천경자를 상징하는 사물 중 하나가 되었다.

여담으로 처음에 그렸을 때 뱀은 33마리였는데(성냥개비로 뱀의 머릿수를 세었다고 한다), 이후 2마리를 더 그려넣어 총 35마리의 뱀이 그려지게 되었다.

과거의 연인이였던 뱀띠 남자의 나이에 맞춘 것이다.

또한 작가는 이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뱀집에 가서 뱀들을 틈틈히 스케치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데(당시 준비하면서 그렸던 스케치도 서울시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작가가 이 작품에 각별히 힘을 들였음을 알 수 있는 일화다 사진은 서울시에서 제공한 것입니다.

    천경자 1주기 추모전 ‘바람은 불어도 좋다.

어차피 부는 바람이다’는 1998년 천경자 화백이 서울시에 기증한 작품 93점 전체와 다른 작가들이 소장한 고(1974년), 막은내리고(1989년) 등 작품들이 전시됩니다.

오는 8월7일까지 서소문 본관 2층에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전시회는 ‘인생’, ‘여행’, ‘환상’ 등 3개의 주제와 아카이브로 구성돼 천경자의 학생 시절 작품부터 이후 60여년간 작품 세계, 관련 기록물 등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기존에 천경자 상설전시실로 사용되던 공간은 아카아브 섹션으로 연출돼 어린시절부터 별세 전까지 천경자 화백의 사진과 수필집, 기고문, 기사, 삽화, 영상 등을 둘러볼 수 있도록 구성됩니다.

     그라나다 두자매. 사진: 서울시스카프를 쓴 엔자. 사진:서울시여인의시. 사진:서울시황혼의통곡.사진:서울시  백남준 타계 10주기를 맞아 열리는 ‘백남준 ∞ 플럭서스’ 추모전은 7월 31일까지 서소문 본관 3층에서 개최합니다.

    전시는 독일 쿤스트할레 미술관과 국내 소장가들로부터 대여한 소장품 200여점으로 구성됩니다.

백남준과 조지 마키우나스, 요셉 보이스, 오노 요코 등 1960

1990년대 플럭서스 일원으로 활동했던 작가들의 작품과 대형 멀티 모니터 설치작품들이 한 자리에 선보입니다.

백남준과 플럭서스, 백남준이 미술계에 미친 영향력과 순환적인 연결고리를 주제로 총 4개의 섹션을 시작과 끝의 구분 없이 자유로운 관람할 수 있습니다.

    백남준,태내기 자서전, 1981,1932년 뉴욕타임즈에 드로잉 후 양장제본, 사진:서울시W3, 1994, 64대의 모니터, dimensions variable with specific installations. 사진:서울시이와함께 서울시립미술관은 백남준 작가 서거 10주기를 기념해 백남준이 1937년부터 1949년까지 12년간 성장기를 보낸 종로구 창신동 집터에 ‘백남준기념관’을 조성합니다.

기념관 건물은 음식점으로 쓰였던 총면적 93.9㎡(약 28평)의 단층 한옥을 리모델링해 올해 11월 개관할 예정입니다.

   백남준,보이스 복스, 1961-1986,설치,병품, 빈티지TV, 액자, 판화, 드로잉, 사진 등 , 서울시립미술관 소장백남준,세 대의 카메라 참여, 1969작품 2001 재설치,CCTV,RGB 프로젝터, CRT모니터,아베 변환기, 사진:서울시  관심있으신 이웃님들은 한번 돌아보세요

^^*     지도보기50m� NAVER Corp.??? /OpenStreet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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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VER Corp. /OpenStreetMap서울시립미술관서울특별시 중구 덕수궁길 61 서울시립미술관전화상세보기지도보기 작가는 어렸을 적에는 연극배우를 지망했지만 이후 미술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으며, 1943년 <조부>, 1944년 <노부>로 조선미술전람회에 연이어 입선하여 화단에 정식으로 데뷔했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는 부산의 한 다방에서 수많은 독사들을 그린 작품 <생태>를 출품하여 화단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으며, 휴전 이후에는 잡지 등에 글을 투고하며 4명의 자식들을 부양하다 수화(樹話) 김환기(1913

1974)의 추천을 받고 상경하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의 교수가 되어 많은 후학들을 양성하였다2. 또한 여러 잡지의 표지화를 그렸고, 국전의 추천작가/심사위원직 등을 역임하였으며, 일본가 한국을 오가며 여러 차례 개인전도 갖는 등 작품활동 역시 활발히 하였다.

그리고 1969년부터는 유럽, 타히티, 아프리카, 남미 등 세계 각국을 여행하고 그곳의 이국적인 풍물을 작품 속에 담기 시작하면서 또 다시 화재를 불러일으켰고, 여행기 역시 책으로 출간하여 더더욱 대중들로부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1991년에는 희대의 위작 사건인 '미인도 위작 사건'에 휘말려 일시적으로 절필을 선언하는 아픔도 겪었다3. 1995년에는 호암갤러리에서 최초로 회고전을 개최하였으며, 1998년 서울시립미술관에 채색화와 드로잉 93점, 그리고 저작권을 기증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이후 2003년 뇌출혈로 병상에 눕게 된 뒤 외부와 연락을 끊고 칩거에 들어갔으며, 2015년 8월 사망하였음이 유족을 통해서 확인되었다.

<환상여행>은 1995년 호암갤러리에서 열린 천경자의 회고전에 출품된 작품으로4, 비록 1998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할 때까지 완성하지 못하기는 했지만 최만년에 천경자의 작품세계가 다다른 곳이 무엇이였는지 보여주는 귀중한 100호 크기의 대작이다5. 1980년대에 들어서부터 천경자의 작품은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하여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이전까지의 달콤한 분위기가 사라지고 어둡고 씁쓸한 분위기가 강조되었는대, 이는 작가가 점차 나이가 들어가며 자식들도 성장해 하나하나 떨어져 나가 점점 외로워 진 것도 어느정도 영향을 끼쳤겠지만 1991년에 터진 '미인도 위작 사건'으로 인하여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

일단 제목은 <환상여행>이라고는 하지만 그림 속 풍경은 여행지의 발랄한 분위기는 전혀 없으며, 오히려 피안(彼岸)이나 지옥에 온 것만 같은 암울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하단에는 여러 명의 여인들이 나름 관능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전혀 생기가 없고, 맨 왼쪽에 위치한 여인은 아예 웅크린 채 절망하고 있으며, 여인들과 함께 있는 강아지 3마리 조차도 전혀 생기가 없이 쭈그리고 있을 뿐이고, 한켠에 놓인 꽃다발 역시 원래의 빛을 잃은 채 말라 있다.

멀리 보이는 강물 위에는 사람들이 쪽배를 타고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고 있기는 하지만, 이들 조차도 살아있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죽은 자의 혼을 저승으로 이끄는 뱃사공들처럼 보인다.

 어쩌면 하단에 그려진 인물들은 죽은 뒤 저승에 묶여 있는 자들의 혼일지도 모르는 일으로, 작가는 생전 '앞으로의 그림은 저승과 같은 세계를 그린 그림이 될 것 같아요6'라고 언급한 것은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해 준다.

또 작품의 이곳저곳을 보면 지워지거나 추가적으로 덧칠되어 수정된 부분을 여럿 확인할 수 있는대, 이렇게 작품을 계속해서 수정해 나간 흔적은 천경자의 작품 속에서 빈번하게 확인되는 것으로, 작가가 작품을 제작하면서 철저히 완벽주의적인 시각으로 접근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7.도판을 제공해주신 서울시립미술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본명은 천옥자(千玉子).한국의 여류 채색화가인 이숙자(1942

), 이화자(1943

) 등도 그녀의 제자이다.

다만 대중들에게는 절필한 뒤 바로 미국으로 떠나버린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대, 사실은 절필 선언을 하고 얼마 뒤 재기하여 다시 작품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미완성 상태였지만 큐레이터의 권유로 출품하게 되었다고 한다.

천경자는 100호 이상의 대작을 몇 점 남기지 않았다.

출저:꽃과 영혼의 화가 천경자실제로 천경자는 완성하여 전시에 출품했던 작품이라 하더라도 여러 차례 고치곤 했다.

이는 당시 촬영되었던 사진과 현재 작품의 모습과 비교해보는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은 서울시에서 제공한 것입니다.

    천경자 1주기 추모전 ‘바람은 불어도 좋다.

어차피 부는 바람이다’는 1998년 천경자 화백이 서울시에 기증한 작품 93점 전체와 다른 작가들이 소장한 고(1974년), 막은내리고(1989년) 등 작품들이 전시됩니다.

오는 8월7일까지 서소문 본관 2층에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전시회는 ‘인생’, ‘여행’, ‘환상’ 등 3개의 주제와 아카이브로 구성돼 천경자의 학생 시절 작품부터 이후 60여년간 작품 세계, 관련 기록물 등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기존에 천경자 상설전시실로 사용되던 공간은 아카아브 섹션으로 연출돼 어린시절부터 별세 전까지 천경자 화백의 사진과 수필집, 기고문, 기사, 삽화, 영상 등을 둘러볼 수 있도록 구성됩니다.

     그라나다 두자매. 사진: 서울시스카프를 쓴 엔자. 사진:서울시여인의시. 사진:서울시황혼의통곡.사진:서울시  백남준 타계 10주기를 맞아 열리는 ‘백남준 ∞ 플럭서스’ 추모전은 7월 31일까지 서소문 본관 3층에서 개최합니다.

    전시는 독일 쿤스트할레 미술관과 국내 소장가들로부터 대여한 소장품 200여점으로 구성됩니다.

백남준과 조지 마키우나스, 요셉 보이스, 오노 요코 등 1960

1990년대 플럭서스 일원으로 활동했던 작가들의 작품과 대형 멀티 모니터 설치작품들이 한 자리에 선보입니다.

백남준과 플럭서스, 백남준이 미술계에 미친 영향력과 순환적인 연결고리를 주제로 총 4개의 섹션을 시작과 끝의 구분 없이 자유로운 관람할 수 있습니다.

    백남준,태내기 자서전, 1981,1932년 뉴욕타임즈에 드로잉 후 양장제본, 사진:서울시W3, 1994, 64대의 모니터, dimensions variable with specific installations. 사진:서울시이와함께 서울시립미술관은 백남준 작가 서거 10주기를 기념해 백남준이 1937년부터 1949년까지 12년간 성장기를 보낸 종로구 창신동 집터에 ‘백남준기념관’을 조성합니다.

기념관 건물은 음식점으로 쓰였던 총면적 93.9㎡(약 28평)의 단층 한옥을 리모델링해 올해 11월 개관할 예정입니다.

   백남준,보이스 복스, 1961-1986,설치,병품, 빈티지TV, 액자, 판화, 드로잉, 사진 등 , 서울시립미술관 소장백남준,세 대의 카메라 참여, 1969작품 2001 재설치,CCTV,RGB 프로젝터, CRT모니터,아베 변환기, 사진:서울시  관심있으신 이웃님들은 한번 돌아보세요

^^*     지도보기50m� NAVER Corp.??? /OpenStreetMap
?? ???
?� NAVER Corp. /OpenStreetMap서울시립미술관서울특별시 중구 덕수궁길 61 서울시립미술관전화상세보기지도보기천 화백의 경매 최고가는 2009년 9월 거래되었던 1978년 작품 '초원 II'입니다.

당시 경매가는 12억이었는데요. 이번에 '정원(園)'이 낙찰되면 최고가를 경신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드디어 천경자 작품 최고가를 깨뜨렸습니다.

작품 가격은 무려 17억입니다.

^.^천경자는 1962년 옥인동에 정착하여 비교적 안정되고 행복한 시절을 보내게 된다.

이번 출품작 '정원(園)'의 화면 속 여인들은 꽃에 둘러쌓인 정원을 배경으로 식탁에 앉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수성이지만 마치 유화를 그리듯이 끊임없는 붓의 중첩에 의해서 은은하게 비쳐오르는 중간색의 미묘한 색감을 이용해 모호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또한 여러색으로 구획된 부분이 한 화면에 드러나게 함으로써 구체적 인상이 있는 현실 공간과 환상의 무리가 있는 환상 공간이 함께 어울리는 독특한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뛰어난 색채감각과 파스텔톤이 연상시키는 행복감은 이 작품을 단연 돋보이게 하며 작가의 1960년대 작품 중 수작이라고 볼 수 있다.

[작품 설명 출처 : K옥션][ 천경자, 1962년.  《 정원 (園) 》  종이에 채색, 130 × 162 cm. <출처 : K-Auction> ]⊙ KRW 1,700,000,000  |  K옥션 2016년 3월    천경자의 독백입니다.

"한 인간의 인생과 예술은 情과 美, 無慾의 세 가지 신의 가호가 있어야 향기로운 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진리인 듯이 굳게 믿고 살아 왔다.

어쨌든 간에 이 三神님들이 뿌려주시는 빛을 받은 사람은 축복받은 예술가라고 믿고 싶다.

"'전생은 황후, 현생은 가난뱅이 화가'라고 했던 천경자 화백의 또 다른 작품들입니다.

[ 천경자, 1982년.  《 여인 》  종이에 채색, 47 x 34.7 cm. <출처 : Seoul Auction> ]⊙ KRW 780,000,000  |  서울옥션  2016년 3월   위의 작품은 2008년 서울옥션에서 5억원에 팔렸던 작품이군요.[ 천경자, 1975년.  《 여인 》  종이에 채색, 32 × 25 cm. <출처 : K-Auction> ]⊙ KRW 350,000,000

500,000,000  |  K옥션 2016년 3월[ 천경자.  《 여인 》  종이에 채색, 25.6 x 18.1 cm. <출처 : Seoul Auction> ]⊙ KRW 130,000,000

200,000,000  |  서울옥션  2016년 3월[ 천경자, 1979년.  《 아그라의 무희 》  종이에 채색, 32 × 24 cm. <출처 : K-Auction> ]⊙ KRW 120,000,000

180,000,000  |  K옥션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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