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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그러나 육사 출신이며 12.12사태의 주역 중 하나인 그가 군인답지 않은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구에서 태어났다.
1955년육군사관학교, 1968년육군대학을 졸업하고,베트남전쟁에 참전하였으며, 1974년 준장으로 진급하여 공수특전여단장과청와대경호실 작전차장보 등을 역임하였다.
1979년 ‘12·12사태’에 가담하여 수도경비사령관에 임명되었고, 민주정치세력 진압 등 신군부세력의 정권획득을 위한 일련의 과정에 참여하였다.
1980년 중장으로 진급, 국군보안사령관에 취임하였다.
1981년 대장으로 예편한 후 외교안보담당 정무제2장관, 1982년 체육부장관을 거쳐내무부 장관, 1983년서울올림픽대회 및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85년제12대 국회의원선거에서민주정의당(민정당) 전국구의원으로 선출되어 민정당 대표위원에 임명되었다.
1987년 6월 민정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어 ‘6·29선언’을 발표, 정국(政局)을 대화합의 국면으로 전환시켰다.
[출처]노태우 | 두산백과 노태우대통령을 사람들은 흔히 물대통령이라고 불렀다.
이는 사실 노태우씨가 추구한 정치적인 행보와 치적을 말할 대나 각 대통령이 걸어온 과정을 논할 대도 적용되는 것인데, 틀린 말이 아니다.
노태우대통령을 사실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맹물과도 같은 노태우씨의 존재감이나 퍼스낼리티에 기인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맹물처럼 희멀겋고 싱겁고 다른 대통령과 비교햇을 때에도 카리스마와 개성도 부족한 면이 이런 말들을 만들어 냈을 것이리라. 어찌보면 그는 우리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는 소시민적 유형의 인간이라고 말할 수도 잇을 것이다.
그는 그래서 '평범함'의 극치였던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굳이 튀는 것을 싫어했었다고 한다.
그는 육사 동기생 전두환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적극적이고 활발햇던 전두환과는 달리 온순하고 소심한 사람이었다.
사람을 몰고 다니는 전두환과는 달리 그의 부변에는 후배들이 별로 없었다.
그의 위관시절 별명이 '아까징끼(일명 빨간약)'였다.
럭비부에서 달리기를 잘했지만 언제나 몸을 사려서 붙여진 별명이었다고 한다.
또 점프훈련에서도 안전을 너무 생각하여 항상 철모 대신 더 단단한 헬기조종사용 파이퍼를 썼다고 한다.
그는 친구 전두환과는 평생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군에서는 확고한 위치를 가지고 있었던 친구를 묵묵히 따르는 것이 그의 몫이었다.
전두환이 거친 작전차장보, 육군참모총장 보안사령관, 공수부대 여단장 등 직위를 고스란히 물려받았고 친구가 벌여 놓은 일을 묵묵히 수습해 나가는 스타일이었다.
이러한 행보를 두고 사람들은 "전두환이 깨트린 사발 노태우가 맞춘다"라고 말하곤 했다.
물론 노태우는 내심 전두환에 대한 섭섭한 감정이 있었다고 한다.
전두환은 언제나 친구 노태우를 2인자로 인정하지 않았고 그에 대한 권력을 제한했다.
그를 불러 크게 혼낸적도 많았다고 한다.
노태우는 그때마다 반항하거나 불쾌하기보다는 홀로 한강 같은 곳을 찾아 울부짖거나 평소 취미였던 만화책을 넘기면서 분한 마음을 삭혔다고 한다.
한번은 전두환이 노태우의 우는 모습을 보고 노신영총리 등이 잇는 앞에서 "노태우, 너 한강에서 울었다며?"라고 놀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세상에 맞서기 보다는 홀로 삭히며 갈등을 피하는 타입이었다.
전두환의 백담사 귀양으로 둘 사이는 멀어졌지만, 노태우의 소심한 성격 탓에 정작 싸움이 붙은 것은 영부인들이었다고 한다.
전두환의 부인 이순자와 노태우의 부인 김옥숙은 언니동생 사이로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었다.
당연히 김옥숙이 이순자를 깍듯이 모시는 관계였다.
하지만 귀향 사건으로 영부인 사이의 우정에 금이갔고 1시간이 넘게 전화로 싸우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노태우는 일찍이 본인 스스로 앞장서서 나갔다기보다는 철저한 2인자의 처세술을 통하여 자기의 몫을 확보해 나가는 소시민적인 지도자였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후배들에게도 무시당하기 일쑤였단다.
노태우는 전국구 초선으로 내정된 시기에 권정달 민정당 사무총장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권 사무총장은 노태우의 육사 4년 후배였다.
하지만 권사무총장은 당시 당 요직에 있었던 5공 거물급 인사였던 반면육사 선배 노태우는 정치 초년병에 불과했다.
권사무총장은 노태우를 방에서 맞이했지만 상석을 내주기는커녕 간단한 인사만 나누고 면전에서 다른 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등 무시하는 것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노태우의 얼굴은 점점 흙빛으로 변했고 두말하지 않고 그대로 나와 버렸다고 한다.
국정 운영에 있어서도 노태우는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아마도 노태우만큼 비서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대통령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대외행사에서 준비된 원고가 아니면 발언을 하지 않았다.
언제나 행사를 앞두고는 밤을 새워가며 원고를 고치고 또 고쳤다.
이런 성격 때문에 즉석연설은 거의 없었고 그의 연설은 그래서 항상 부자연스러울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조심성 있는 성격은 그의 말과 관련되어서는 구설수에 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1981년 7월 15일 육군 대장으로 전역하는 노태우1988년 3월 13일 취임 후 처음으로 고향을 찾은 노태우호주의 호크 총리 내외가 방한했을 때의 노태우.김옥숙여사, 노태우씨부부는 테니스솜씨가 수준급이었다고 한다.
첫 외손주인 최윤정을 안은 김옥숙여사노태우대통령의 휘호전역식에서의 노태우.김옥숙여사 부부대구공고 재학시절의 노태우(앉아 있는 사람)육사시절의 노태우(아래 왼쪽), 뒤의 가운데가 전두환생도육사 시절 럭비선수였던 노태우(뒷줄 왼쪽에서 세번째), 1955년도의 모습육사 생도시절의 노태우 1987년 6.29선언을 발표하는 노태우 "노태우 전 대통령은 암 때문에 암병동에 입원한 것이 아니라 일반병동보다 암병동 특실이 비교적 생활하기에 편해 암병동으로 입원한 것"이라고 발표를 했네요!! ?????????[소뇌위축증 노태우 서울대병원 입원] 노태우 서울대병원 입원 & 노태우 소뇌위축증 노태우 前 대통령은 1932년 12월 4일 대구광역시 출생이며 육군사관학교 졸업했고,1990.05 제1대 민주자유당 총재를 거쳐 13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제 6공화국을 출범시키고 통일민주당과 신민주공화당을 합당하여 민주자유당을 출범시켰습니다.
러시아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여 한국과 러시아의 국교 회복의 새전기를 마련했으며 1992년에는 중국과 국교수립을 하였습니다.
대통령 퇴임 후에 비자금 관련으로 1212사태, 518광주민주화운동 관련으로 구속기소되었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석방되었습니다.
[노태우 서울대병원 입원] 현재 노태우 소뇌위축증 2002년 전립선암 수술을 받았으며 한때 건강 악화로 의료진이 치료를 포기할 정도로 위중하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으며 노태우, 서울대병원 입원은 여러차례였습니다.
[노태우 서울대병원 입원] 노태우 기관지 속 7cm 침 제거 수술 2011년에는 호흡 곤란 증세로 노태우, 서울대병원 입원 후 정밀 검사를 받았는데, 기관지에 길이가 7cm쯤 되는 한방 침이 박혀 있는 상태여서 화제가 됐었죠. 평소 가끔 침을 맞았지만 어쩌다 몸속에 침이 들어가게 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노태우 아들 노재헌 변호사는 “운동 기능이 떨어져 근육을 자극하는 데 좋다는 침을 맞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노 전 대통령, 서울대병원 입원 후 침 제거 수술을 받았습니다.
노태우 소뇌우축증 * 노태우 소뇌위축증 노 전 대통령은 10여 년 전 수술을 받으면서 기관 절개를 하고 의료용 튜브를 통해 호흡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거동이 불편하지만 지인들이 찾아가면 전부 알아보고 반가워할 정도였습니다.
듣는 데도 문제는 없는데 말을 하지 못해 부인 김옥숙 여사나 최측근 비서관들만 눈빛을 통해 대강의 의사를 파악하는 정도였답니다.
[노태우 소뇌우축증] 노태우 소뇌위축증으로 퇴행성 변화 노 전 대통령은 소뇌에 퇴행성 변화가 오고 크기가 줄어들어 운동 기능을 상실하는 ‘소뇌위축증’이라는 희소병을 앓고 있는데, 이 병은 소뇌가 조금씩 작아지는 병으로 현재로서는 마땅한 치료법이 없어 가족들도 더 이상 상태가 나빠지지 않기만 바라고 있었다는군요. 클릭↓↓↓ 노태우 소뇌위축증 └ 접기 노태우 서울대병원 입원 & 소뇌위축증 12사태 때 합수본부측에 섰고 5공화국 들어서 교통부장관까지 지냈다.
그러나 6공 때 5공 비리 청산 과정에서 수감되기도 했다.
전두환대통령과 동향이며 육사 동기이며 오성회 동기인 노태우씨의 표정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비교적 어린 나이부터 팀의 주전 자리를 차지한 선수로 현재 공수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장 이름을 알린 장면은 2016년 5월15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경기에서 생긴 벤치 클리어링이다, 8회초 호세 바티스타가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한 후, 내야땅볼 때 2루수 오도어를 향해 깊은 슬라이딩을 했고 결국 오도어와 시비가 붙었다.
오도어의 펀치는 바티스타의 안면을 정통으로 강타당하고 만다.
최근 7경기에서 타율 4할1푼7리(24타수 10안타) 을 기록중입니다.
좋은 기록에도 플래툰 시스템으로 기용되고 있어 컨디션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자신이 출장하는 경기에서는 늘 자기 몫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올린 그의 시즌 성적은 3할4푼4리(120타수 42안타) 3홈런 11타점입니다.
플래툰 시스템에 의해 규정 타석은 못들었지만 팀 내에서 가장 높은 타율과 출루율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입니다.
홈런을 기록한 7월 1일 시애틀 매리너스전을 앞두고 김현수는 “큰 활약을 하고 있다고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적은 타수를 기록하고 있고 남들보다 늦게 경기에 참여했기 때문에 아직 부족하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최근의 상승세에 대해서도 “타격은 좋을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이를 내가 조절할 수 없는 것이 야구다.
그러기에 한 경기씩 자신 있게 하려고 하고 있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자칫 우쭐할 수 있을만큼 놀라운 활약을 보이고 있음에도 겸손한 마음을 유지하며 경기에 나서고 있는 김현수 선수의 7월 1일 홈런 장면입니다.
2012-2014 세 시즌 연속으로 실버슬러거를 수상하며 20-20 클럽까지 가입한 공격형 유격수였고 그렇다고 수비력이 떨어지는 편도 아니었다.
2015시즌까지 워싱턴 내셔널스에서만 뛴 선수였음에도 두 명의 전체 1픽 유망주이자 슈퍼스타로 발돋움한 브라이스 하퍼와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에 가려져 있는 경향이 강했다.
2016시즌 앞두고 FA를 맞았고 의외로 그를 원하는 팀이 없어 고생했다.
결국 FA 재수를 노리고 텍사스 레인저스와 외야 전향을 조건으로 1년 800만 달러에 계약했다.
결국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외야수로 첫 시즌을 치루게 됐는데 의외로 외야 수비에서도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고 타격에서도 전성기 기량이 살아나고 있어 비교적 싼 값에 그를 영입한 텍사스 레인저스의 보배가 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맏딸 노소영(51)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지금은 (손으로 목청을 가리키며) 이걸 뚫어서 말씀을 못하시지만, 말씀하셨을 때 ‘내가 병이 나으면 교회를 제일 먼저 가겠다’고 하셨다”며 “2010년 하용조 목사님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했고, 어머니는 최근에 회심하시고 아버지를 위해 병석에서 기도하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버지가 형을 선고 받고 2년 넘게 수감되셨는데, 옥중에서 성경을 2번인가 독파하셨다”며 “그 때 담당 간수가 교회 장로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 장로 간수님은 항상 해맑게 웃으셨다고 하는데, 아버지의 유일한 불만은 뭘 물어보면 대답을 못 하셨다는 점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래서 더 열심히 성경을 읽으셨고 그게 지금의 변화로 이어진 것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노 관장은 “기도해준 분들에게 감사하다”며 “지금 아버지와 어머니가 같이 기도하신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누가 집안이 다 믿게 됐다고 그러면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됐다”며 “제가 어머니, 아버지에게 특별히 효도를 한 것도 아닌데 오랫동안 부처님을 모시고 사시다 이렇게 돼 감사하다”고 밝혔다.
가족 중 유일한 기독교인이던 그는 오랫동안 일주일에 두 세 번씩 노 전 대통령을 찾아 병세를 알아보고 위안한 뒤 기도를 해왔다.
노환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인 노 전 대통령은 지난 해 4월 폐에 침이 발견돼 제거 수술을 받고 원인을 알 수 없는 갑작스런 고열로 긴급 치료를 받기도 했다.
현재 위중한 상태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노석조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1988.2.25.
1993.2.24)을 지냈다.
육군사관학교 생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PX(군대 안의 매점)에서 쇠고기 통조림을 사서 맛있게 먹고 있었다.
[노태우] 그것을 알려줍니다.
흘깃 쳐다보며 지나가는 생도가 있어 부르고 보니 동기인 김복동이었다.
먹을 것이 모자라 배를 곯던 시절이었다.
노태우는 “어이! 배고프지, 같이 먹자”고 했다.
김복동은 “고맙다”며 함께 나누어 먹었다.
이 조그만 일이 계기가 되어 두 사람은 절친한 친구가 되고 미국 특수전학교와 심리전학교에도 함께 유학을 하게 된다.
그리고 김복동의 동생인 김옥숙을 아내로 맞기에 이른다.
1963년쯤에는 소령을 달고 육군방첩부대(후에 보안사령부를 거쳐 기무사령부로 개칭) 정보과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어느 날, ‘원충연 대령 반혁명사건’의 제보자 신원이 에 실렸다.
국방부 출입을 하던 손주환 (후에 상무)가 쓴 특종기사였다.
서울 소공동 방첩대 사무실에 연행된 손 는 출처를 밝히라는 요구에 “죽어도 밝힐 수 없다”고 버텼다.
노 소령은 손 를 보면서 ‘직업군인보다 더 직업의식과 국가관이 강한 사람들이 언론인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취조실에서의‘악연’이 ‘선연’(善緣)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당시의 관행으로 보면 고문을 해서라도 취재원을 밝혀내려 했을 텐데 노 소령은 오히려 손 의 ‘남자다움’에 매료되었다는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노태우는 손주환을 친구인 전두환 등에게 소개하고 베트남에서는 대대장과 특파원으로 다시 만나 더욱 절친한 사이로 어울리게 된다.
그리고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면서 손주환은 국회의원, 청와대 정무수석, 공보처장관 등의 요직을 거치며 그를 보필했다.
지금도 손주환은 노태우의 일이라면 만사제치고 달려갈 정도로 변함없는 충정을 보인다.
최근 발간된 <노태우 회고록>과 곧 출간될 <노태우를 말한다> 문집의 원고들을 손보느라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노태우 전 대통령을 이야기할 때면 목멘 소리로 말한다.
“운명”이라고- 올해 우리 나이로 노태우는 80세, 손주환은 73세이다.
1955년육군사관학교, 1968년육군대학을 졸업하고,베트남전쟁에 참전하였으며, 1974년 준장으로 진급하여 공수특전여단장과청와대경호실 작전차장보 등을 역임하였다.
1979년 ‘12·12사태’에 가담하여 수도경비사령관에 임명되었고, 민주정치세력 진압 등 신군부세력의 정권획득을 위한 일련의 과정에 참여하였다.
1980년 중장으로 진급, 국군보안사령관에 취임하였다.
1981년 대장으로 예편한 후 외교안보담당 정무제2장관, 1982년 체육부장관을 거쳐내무부 장관, 1983년서울올림픽대회 및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85년제12대 국회의원선거에서민주정의당(민정당) 전국구의원으로 선출되어 민정당 대표위원에 임명되었다.
1987년 6월 민정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어 ‘6·29선언’을 발표, 정국(政局)을 대화합의 국면으로 전환시켰다.
[출처]노태우 | 두산백과 노태우대통령을 사람들은 흔히 물대통령이라고 불렀다.
이는 사실 노태우씨가 추구한 정치적인 행보와 치적을 말할 대나 각 대통령이 걸어온 과정을 논할 대도 적용되는 것인데, 틀린 말이 아니다.
노태우대통령을 사실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맹물과도 같은 노태우씨의 존재감이나 퍼스낼리티에 기인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맹물처럼 희멀겋고 싱겁고 다른 대통령과 비교햇을 때에도 카리스마와 개성도 부족한 면이 이런 말들을 만들어 냈을 것이리라. 어찌보면 그는 우리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는 소시민적 유형의 인간이라고 말할 수도 잇을 것이다.
그는 그래서 '평범함'의 극치였던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굳이 튀는 것을 싫어했었다고 한다.
그는 육사 동기생 전두환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적극적이고 활발햇던 전두환과는 달리 온순하고 소심한 사람이었다.
사람을 몰고 다니는 전두환과는 달리 그의 부변에는 후배들이 별로 없었다.
그의 위관시절 별명이 '아까징끼(일명 빨간약)'였다.
럭비부에서 달리기를 잘했지만 언제나 몸을 사려서 붙여진 별명이었다고 한다.
또 점프훈련에서도 안전을 너무 생각하여 항상 철모 대신 더 단단한 헬기조종사용 파이퍼를 썼다고 한다.
그는 친구 전두환과는 평생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군에서는 확고한 위치를 가지고 있었던 친구를 묵묵히 따르는 것이 그의 몫이었다.
전두환이 거친 작전차장보, 육군참모총장 보안사령관, 공수부대 여단장 등 직위를 고스란히 물려받았고 친구가 벌여 놓은 일을 묵묵히 수습해 나가는 스타일이었다.
이러한 행보를 두고 사람들은 "전두환이 깨트린 사발 노태우가 맞춘다"라고 말하곤 했다.
물론 노태우는 내심 전두환에 대한 섭섭한 감정이 있었다고 한다.
전두환은 언제나 친구 노태우를 2인자로 인정하지 않았고 그에 대한 권력을 제한했다.
그를 불러 크게 혼낸적도 많았다고 한다.
노태우는 그때마다 반항하거나 불쾌하기보다는 홀로 한강 같은 곳을 찾아 울부짖거나 평소 취미였던 만화책을 넘기면서 분한 마음을 삭혔다고 한다.
[노태우] 의 매력 포인트
한번은 전두환이 노태우의 우는 모습을 보고 노신영총리 등이 잇는 앞에서 "노태우, 너 한강에서 울었다며?"라고 놀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세상에 맞서기 보다는 홀로 삭히며 갈등을 피하는 타입이었다.
전두환의 백담사 귀양으로 둘 사이는 멀어졌지만, 노태우의 소심한 성격 탓에 정작 싸움이 붙은 것은 영부인들이었다고 한다.
전두환의 부인 이순자와 노태우의 부인 김옥숙은 언니동생 사이로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었다.
당연히 김옥숙이 이순자를 깍듯이 모시는 관계였다.
하지만 귀향 사건으로 영부인 사이의 우정에 금이갔고 1시간이 넘게 전화로 싸우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노태우는 일찍이 본인 스스로 앞장서서 나갔다기보다는 철저한 2인자의 처세술을 통하여 자기의 몫을 확보해 나가는 소시민적인 지도자였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후배들에게도 무시당하기 일쑤였단다.
노태우는 전국구 초선으로 내정된 시기에 권정달 민정당 사무총장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권 사무총장은 노태우의 육사 4년 후배였다.
하지만 권사무총장은 당시 당 요직에 있었던 5공 거물급 인사였던 반면육사 선배 노태우는 정치 초년병에 불과했다.
권사무총장은 노태우를 방에서 맞이했지만 상석을 내주기는커녕 간단한 인사만 나누고 면전에서 다른 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등 무시하는 것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노태우의 얼굴은 점점 흙빛으로 변했고 두말하지 않고 그대로 나와 버렸다고 한다.
국정 운영에 있어서도 노태우는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아마도 노태우만큼 비서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대통령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대외행사에서 준비된 원고가 아니면 발언을 하지 않았다.
언제나 행사를 앞두고는 밤을 새워가며 원고를 고치고 또 고쳤다.
이런 성격 때문에 즉석연설은 거의 없었고 그의 연설은 그래서 항상 부자연스러울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조심성 있는 성격은 그의 말과 관련되어서는 구설수에 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1981년 7월 15일 육군 대장으로 전역하는 노태우1988년 3월 13일 취임 후 처음으로 고향을 찾은 노태우호주의 호크 총리 내외가 방한했을 때의 노태우.김옥숙여사, 노태우씨부부는 테니스솜씨가 수준급이었다고 한다.
첫 외손주인 최윤정을 안은 김옥숙여사노태우대통령의 휘호전역식에서의 노태우.김옥숙여사 부부대구공고 재학시절의 노태우(앉아 있는 사람)육사시절의 노태우(아래 왼쪽), 뒤의 가운데가 전두환생도육사 시절 럭비선수였던 노태우(뒷줄 왼쪽에서 세번째), 1955년도의 모습육사 생도시절의 노태우 1987년 6.29선언을 발표하는 노태우 노 전 대통령의 맏딸 노소영(51)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지금은 (손으로 목청을 가리키며) 이걸 뚫어서 말씀을 못하시지만, 말씀하셨을 때 ‘내가 병이 나으면 교회를 제일 먼저 가겠다’고 하셨다”며 “2010년 하용조 목사님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했고, 어머니는 최근에 회심하시고 아버지를 위해 병석에서 기도하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버지가 형을 선고 받고 2년 넘게 수감되셨는데, 옥중에서 성경을 2번인가 독파하셨다”며 “그 때 담당 간수가 교회 장로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 장로 간수님은 항상 해맑게 웃으셨다고 하는데, 아버지의 유일한 불만은 뭘 물어보면 대답을 못 하셨다는 점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래서 더 열심히 성경을 읽으셨고 그게 지금의 변화로 이어진 것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노 관장은 “기도해준 분들에게 감사하다”며 “지금 아버지와 어머니가 같이 기도하신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누가 집안이 다 믿게 됐다고 그러면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됐다”며 “제가 어머니, 아버지에게 특별히 효도를 한 것도 아닌데 오랫동안 부처님을 모시고 사시다 이렇게 돼 감사하다”고 밝혔다.
가족 중 유일한 기독교인이던 그는 오랫동안 일주일에 두 세 번씩 노 전 대통령을 찾아 병세를 알아보고 위안한 뒤 기도를 해왔다.
노환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인 노 전 대통령은 지난 해 4월 폐에 침이 발견돼 제거 수술을 받고 원인을 알 수 없는 갑작스런 고열로 긴급 치료를 받기도 했다.
현재 위중한 상태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노석조 비교적 어린 나이부터 팀의 주전 자리를 차지한 선수로 현재 공수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장 이름을 알린 장면은 2016년 5월15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경기에서 생긴 벤치 클리어링이다, 8회초 호세 바티스타가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한 후, 내야땅볼 때 2루수 오도어를 향해 깊은 슬라이딩을 했고 결국 오도어와 시비가 붙었다.
오도어의 펀치는 바티스타의 안면을 정통으로 강타당하고 만다.
최근 7경기에서 타율 4할1푼7리(24타수 10안타) 을 기록중입니다.
좋은 기록에도 플래툰 시스템으로 기용되고 있어 컨디션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자신이 출장하는 경기에서는 늘 자기 몫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올린 그의 시즌 성적은 3할4푼4리(120타수 42안타) 3홈런 11타점입니다.
플래툰 시스템에 의해 규정 타석은 못들었지만 팀 내에서 가장 높은 타율과 출루율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입니다.
홈런을 기록한 7월 1일 시애틀 매리너스전을 앞두고 김현수는 “큰 활약을 하고 있다고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적은 타수를 기록하고 있고 남들보다 늦게 경기에 참여했기 때문에 아직 부족하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최근의 상승세에 대해서도 “타격은 좋을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이를 내가 조절할 수 없는 것이 야구다.
그러기에 한 경기씩 자신 있게 하려고 하고 있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자칫 우쭐할 수 있을만큼 놀라운 활약을 보이고 있음에도 겸손한 마음을 유지하며 경기에 나서고 있는 김현수 선수의 7월 1일 홈런 장면입니다.
2012-2014 세 시즌 연속으로 실버슬러거를 수상하며 20-20 클럽까지 가입한 공격형 유격수였고 그렇다고 수비력이 떨어지는 편도 아니었다.
2015시즌까지 워싱턴 내셔널스에서만 뛴 선수였음에도 두 명의 전체 1픽 유망주이자 슈퍼스타로 발돋움한 브라이스 하퍼와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에 가려져 있는 경향이 강했다.
2016시즌 앞두고 FA를 맞았고 의외로 그를 원하는 팀이 없어 고생했다.
결국 FA 재수를 노리고 텍사스 레인저스와 외야 전향을 조건으로 1년 800만 달러에 계약했다.
결국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외야수로 첫 시즌을 치루게 됐는데 의외로 외야 수비에서도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고 타격에서도 전성기 기량이 살아나고 있어 비교적 싼 값에 그를 영입한 텍사스 레인저스의 보배가 되고 있다.
)+ 박정희 대통령 경호실장 시절... 차지철(경호실장)-전두환-노태우 (나름 의미있는 사진!!)왼쪽 첫번째 : 노태우 / 왼쪽 두번째 : 차지철 / 오른쪽 끝 : 전두환 ? + 1979/10/26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박정희 대통령의 비극) + 궁정동 안가 (박정희, 차지철 생을 달리한 마지막 1026 현장) + 10,26으로 박정희, 차지철 사망하고... + 1979/12/12 군사 구테타를 계기로 전두환-노태우 순으로 대통령이 되다 !!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드라마틱하고 재미있는 불행한 정치 현대사 입니다.
역사는 어찌보면 되풀이 되고 과거를 무시 못하는 학습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고려때 위화도 회군으로 군사 구테타로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했듯이...박정희가 군사 구테타로 대통령 되고, 또 이어서 군사 구테타로 전두환이 대통령 되고
좌든 우든... 상관 없습니다.
모든 것을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사실들을 투명하게 알려주고, 공유하고 그리고...판단은 각자 국민들이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들도 교육수준이 높아서 좌/우, 진보/보수를 상관하지 않고 옳고 그름을 판단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기산에서 맞붙은 두 진영. 제갈량은 사마의를 깰 계책이 이미 있었다.
다만, 상대가 지략이 뛰어난 사마의인 만큼, 군량 수송로의 요충지인 가정을 수비하는 것이 문제였다.
만약, 가정을 잃는다면, 촉나라의 중원 진출은 물거품이 되는 것이였다.
그 중책을 마속이 자원하고 나섰다.
그는 제갈량의 벗 마량의 동생으로, 평소 재갈량이 아끼는 재기 발랄한 장수였다.
하지만, 상대는 백전노장의 사마의라 주저하자, 마속은 다년간의 병략을 읽힌 내가 설마 가정 하나 못지키겠냐며, 만약 자신이 패한다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공언했다.
삼면이 절벽을 이룬 산위에 진을 치고 적을 유인한 후, 역공을 생각했던 마속은 산기슭을 포위만 한 채 공격하지 않는 적때문에 식수가 끊겨 다급해진 마속은 포위망을 뚫으려 했으나 결국 참패하고 말았다.
마속의 실패로 전군을 한중으로 후퇴시킨 제갈량은 그를 참형에 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속이 처형되는 날, 장수들이 '마속같은 유능한 장수를 잃는 것은 나라의 손실'이라며 설득했으나, 제갈량은 이렇게 말했다.
"마속은 정말 아까운 장수요. 하지만 사사로운 정에 끌리어 군율을 저버리면 군과 나라의 기강은 무너지는 법이라며, 마속을 참형시켰다.
마속이 형장으로 끌려가자 제갈량은 소맷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마룻바닥에 엎드려 울었다.
사자성어로 '읍참마속'은 ( 泣 울 읍. 斬 벨 참. 馬 말 마. 謖 일어날 속. ) '울면서 마속을 벤다'는 뜻으로 '법의 공정을 지키기 위해 사사로운 정을 버림'을 뜻한다.
마이클 샌델 - 정의란 무엇인가?하버드대 교수인 마이클 샌델 교수가 쓴 '정의란 무엇인가'가 철학인문학 서적으로서는 드물게 밀리언 셀러가 된게 벌써 몇 년 전일이다.
이는 정의란 것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의 시대적 갈망을 드러낸다.
무엇이 대한민국을 정의에 그렇게 목마르게 했는가? 최근 땅콩회항으로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조현아씨가 감옥에서 불면증 등 심리적 불안증세를 호소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항소심 공판에서 그녀의 초췌한 모습과 깊은 반성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기사가 각 신문의 인쇄를 차지하고 있다.
이쯤에서, 대통령의 특별 사면권이 다시 행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대 정권 사면의 특징은 측근들과 기업인들이 대상에서 빠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노태우 정부 시절 제 5공화국 비리관련자들, 김영삼 정부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과 집권 초기 비리 사건 연루자들이 대거 면죄부를, 김대중 정부는 2002년 외환위기 주범으로 꼽현던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등과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 김현철씨가 8.15 특사로 풀렸고, 노무현 정부는 최측근 안희정 충남도지사 및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이, 이명박 정부는 최측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및 기업인들에 대한 사면이 다른 정권에 비해 두드러졌다.
김우중 전 대우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회장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해 논란이 ?磯�.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인에 대한 대통령의 특별사면 이유가 '경제 활성화'지원을 위한 것이 대부분이다.
투자나 고용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 한다는 조건으로, 경제사범의 죄를 용서해주는 것이다.
이는 정의 위에 효율이 지배하는 방식인데, 이는 과연 옳은 방식인가?이승만 대통령과 반민특위1945년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후,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여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나라가 어지러운 시점에 그는 '선 정부 수립, 후 친일파 숙청'을 내세웠고, 정부 수립후에는 국론분열이나 민심혼란을 이유로 친일파 숙청을 노골적으로 반대했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소위 '반민특위'는 일제시대에 일본인과 협조하여 악질적으로 반민족적 행위를 한 자를 조사하기 위하여 제헌국회에서 설치한 특별위원회이다.
(위키참조) 반민특위는 친일분자를 색출하여 심판을 단행했으나, 이승만 대통령에게 충성하고, 그의 산하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정부관리들이 검거되자 그들이 정부수립의 공로자이며, 나라를 이끌어가기 위해 그들의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노골적으로 반민특위의 활동을 방해하였고, 결국 강제해산 당하게 된다.
결국 친일파를 청산할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누구보다 앞장서서 해야 할 나라의 지도자가 손수 중단시킨 최악의 지도력이였다.
프랑스의 나치 청산프랑스의 임시정부 대통령 드골은 이승만 대통령과 확연히 다른 지도력을 보인다.
드골은 나치 협력자들을 철저히 숙청하겠다고 밝혔는데, 그 이유는 국가와 민족을 배반한 나치 협력자들을 제거하지 않는 것은, 국가 전체에 전염하는 흉악한 종양들을 방치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국민을 단결시킬 수 있는 길은 애국자에게는 상을, 민족의 배반자 혹은 범죄자에게는 벌을 주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게는 국가를 이끌어 가기위해, 비록 나치 협력자였지만 훌륭한 지식인들의 도움이 필요 없었을까? (사진은 독일군의 아이를 낳은 한 프랑스 여인이 삭발당한 채 쫓겨나는 모습)드골의 지식인 처벌에 대한 굳은 의지는 그들의 천재성 혹은 뛰어난 업적들이, 국가의 반역에 사용되었을 때 대중들에게 얼마나 더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엄격했다.
예를 들어, 프랑스를 이끌어 갈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간주?榮� 브라지야크는, 많은 프랑스인들이 그의 사형선고에 찬성하면서도 그의 '천재성'이 안타깝다고 사면을 바랬고, 심지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카뮈조차, 나치 협력자 청산을 강력이 주장하면서도, 드골에게 그의 감형 탄원서를 올릴만큼 그는 많은 프랑스인들에게 영향이 큰 지식인이었다는 점이다.
(프랑스는 항상 나치협력자들의 머리를 모두 밀어버린 후 사람들이 모두 보도록 하고 공개처형을 하였다.
)그러나 드골은 프랑스 지식인 59인이 서명한 진정서를 기각했고, 브라지야크는 사형선고를 받은 지 2주 만에 총살형이 집행되었다.
나치 협력자들에 대한 드골의 의지는 지식인, 고위 관리, 군부, 대기업 사주들, 언론인, 언론사, 신문사, 연예계, 등 남녀노소, 지위여하를 막론하고 국가를 배반한 모든 자에게 적용?榮�. 프랑스의 나치 청산은 단 6 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프랑스의 연감 '퀴드' 2003년 판은 나치 협력자 청산결과를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치 협력자 조사대상 150만~200만 명, 체포되어 조사 받은 자 99만 명, 최고재판소와 숙청재판소에서 재판된 사건은 5만 7천 100여 건, 6천 766명에 사형선고, 782명 사형집행, 2천 802명에게 유기징역형, 3천 578명에 공민권 박탈했고, 시민재판소에서 11만 5천 건을 재판해 9만 5천 명이 부역죄를 선고받았고, 공직자 12만여 명은 시민재판소에서 행정처분을 받았다.
재판 받은 사람들은 군대 장교 4만 2천여 명, 정부 관료 2만 8천 750명, 경찰간부 170명, 판검사 334명, 헌법위원 18명이다.
”청산결과를 보면, 그 범위와 수의 크기에 나치 협력자 처벌에 대한 드골의 강력한 의지가 드러난다.
다시 위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드골에게는 전후 국가를 함께 이끌어 나갈 지식인의 도움이 필요 없었을까? 정의란 결과의 효율성을 재고하지 않는다.
올바른 국가관과 정의의 설립이 프랑스의 장기적인 발전에 훨씬 더 도움이 됐음은, 프랑스가 해방된 후 다른 나라와 같이 좌파와 우파가 분리되어 극심한 혼란을 겪지 않고 국민 전체가 나치 협력자 새굴과 조국 건설에 앞장 설 수 있게 된 요인이라고 학자들은 지적한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다12·12 사태와 5·18 민주화 운동 탄압 등으로 재판정에서 1996년 법정에서 전두환과 노태우가 만났다.
먼저 말을 꺼낸 이는 전두환이었다.
전두환은 노태우에게 "자네 구치소에서는 계란 후라이 주나?" 라고 묻고 "안 준다"고 노태우가 대답하자, 전두환은 다시 "우리도 안 줘"라고 말했다.
그들다운 뻔뻔한 대화였다.
1996년 3월 시작된 공판은 두 전직 대통령에게 반란죄, 내란죄, 수뢰죄를 적용하여 전두환에게 사형, 노태우에게는 징역 22년 6개월을 선고하였다.
그리고 대법원 상고심에서 전두환 무기징역, 노태우 징역 17년이 최종 확정됐다.
그리고 1997년 12월 22일 대통령 김영삼이 국민 대화합을 명분으로 관련자를 모두 특별사면하여 두 전직 대통령은 구속 2년여 만에 출옥하였다.
두 대통령을 사면한게 김영삼 대통령인지 김대중 대통령인지 정확히 알진 못한다.
다만, 정치보복은 있어서는 안된다는 이유로 국민 대화합을 위한 두 범죄자의 특별사면이었다.
정치보복을 지양한 국민 대통합이란 명분. 그들이 내린 결정은 한 마디로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 어리석디 어리석은 결정이었다.
전 세계에 이런 나라가 있을까? 누구든 이러한 어리석은 결정에 관여한 사람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그 용서가 종교적인 사랑에서 나왔던지, 대승적인 차원에서 나왔던지, 혹은 소위 알려진 국민 대통합을 명분으로 나왔던지 간에 국가적, 사회적 결정은 그러한 결정이 국가에 장기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충분한 숙고후에 나와야 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어떠한 결정을 내릴 때는 그러한 결정이 내릴 때, 그것이 역사에 어떠한 선례를 남길지, 또 그러한 선례를 토대로 미래의 후손들이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어떠한 심리적 영향을 줄 것인지 아주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대한민국은 건국 초기부터 단추를 잘 못 끼웠다고 할 수 있다.
일본에게 나라를 팔아먹고 동포를 무자비하게 갉아먹은 매국노들을 대한민국은 눈감아줬다.
자유를 열망하며, 민주주의를 요구한 민중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한 천하의 쓰레기들을 대한민국은 눈감아줬다.
정경유착을 일쌈으며 법을 어긴 경제인들을, 대한민국은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며 사면해줬다.
정의롭지 못한 사회의 결과그렇담, 이번에는 가정을 해보자. 다시는 그럴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만약 혹시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의 지배하에 있게 된다면, 그 때는 좀 더 동포를 배신하고 나라를 배신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 우리는 이미 매국행위를 해도 처벌하지 받지 않는 선례를 보아왔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로,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쿠데타를 하고, 그 과정에서 민중의 희생이 필요한 결정을 내릴 때, 그 결정이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 우리는 이미 그 끔찍한 죄악에 대한 책임이 사면이라는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경제를 살릴 수만 있다면,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경제가 발전했기 때문에 그러한 비판을 삼가하는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부끄러운 대한민국이 배워야할 교훈1998년 비시 정권의 보르도 경찰서장 모리스 파�y이 나치 협력자의 심판대에 올랐다.
그는 프랑스 정권에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전쟁이 끝난 후 승승장구 했지만, 40년이 지난 후 그가 숨겨운 과거 행적이 (독일에 요청에 의해 유태인을 추방하는 문서에 서명한 것이 계속 발견됨) 드러나면서 10년 징역형을 받았다.
그 때 그의 나이 90세였다.
(출처 - http://m.blog.daum.net/jeanscorea/552)"반 세기를 넘긴 뒤에 나치 부역 행위자를 재판정에 세우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르몽드'가 한 중학생에게 위와 같이 질문하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적으로 안 된 일이지만 역사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어찌보면 너무나 냉정한 이 중학생의 대답을 곱씹어보자. 대한민국이 지나간 역사의 잘못에 대해 이렇게 엄격하게 정의를 집행한 적이 있었나? 정의보다는 효율을, 시대 상황을, 권력의 눈치를 항상 우선 순위로 세우지 않았나? 프랑스의 중학생이 말한 이 냉철한 대답은 아주 많은 걸 시사한다.
정의란 시대 상황을, 결과의 효율을, 사건의 관계망을 초월한다.
모든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
정의는 누가 더 한 차원 높은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지, 누가 더 용서하는 마음을 갖는지, 어떠한 결정이 더 효율적인지를 재는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그것은 한 국가의 국민 이념과 정서에 영향을 미치고, 대한민국의 미래 후손들의 옳고 그름을 선택하는 결단에 심리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대한민국에 도대체 정의란 어딨는가?)글의 서두에 언급한 읍참마속을 보도록 하자. 친한 벗의 동생이 작전에 실패했다.
그를 참수에 처하는 것은 분명 가슴아픈 일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무엇이 제갈량의 행동규범에 영향을 미쳤는냐는 것이다.
그가 정의를 집행하는 데 있어서 고려한 것은, 한 개인이 아닌 군과 나라의 기강이다.
만약, 그가 정 때문에 혹은 나라의 효율을 생각해서 그를 용서했다면, 전쟁중에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 군사가 또 나오더라도 선례로 인하여 처벌하기가 쉽지 않다.
이는 매국노에 대한 프랑스 중학생의 말과 일치한다.
분명 연세 많은 90살의 노인을 감옥에 가두는 것은 인간적으로는 가슴아픈 일이지만, 그럼에도 프랑스에서 그렇게 했던 이유는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큰 그림이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서 어떠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정의를 세우지 못한 그러한 판결 및 결정들에 프랑스의 한 중학생이 얘기한 인터뷰 내용은 분명 많은 걸 시사하며, 지금도 역사의 죄인인 전두환, 노태우를 처벌하지 못한 대한민국에 정의관에 분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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