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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3세


           (3) 그의 아내 : 레이디 앤 네빌(Anne Neville)마리 반필드(Marie Barnfield) 씀  어릴 적  앤 네빌(Anne Neville)은 리처드 3세의 아내이자 왕비이다.

그녀는 워릭 백작 부부인 리처드 네빌(Richard Neville)과 앤 보챔프(Beauchamp)의 둘째 딸이며, 그녀의 언니 이자벨(Isabel Neville, 1451년생)은 클라렌스 공작부인이다.

앤은 에이븐 강(Avon River)이 내려다 보이는 워릭 성(Warwick Castle)에서 1456년 6월 11일에 태어났으며, 그 마을에 있는 성모 마리아 신학대학 겸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녀의 부모는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가문의 대를 이을 아들을 바라고 있었지만, 결국에 두 딸이 자신들 부부의 상속자가 될 것임을 서서히 받아들여야만 했을 것이다.

앤이 태어났을 때 그녀의 아버지인 워릭 백작은 이미 정치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고, 전 해 세인트 알번스(St. Albans)의 첫번째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던 덕분에 칼레의 수비대장(Captain of Calais)으로 임명된 상태였다.

앤이 거의 한 살이 다 되었을 때 워릭 백작 부부는 칼레에 거처를 차렸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앤은 이후 3년을 부모 그리고 언니와 함께 보냈을 것이다.

  <워릭 성>   요크 가문의 승리와 함께 워릭은 섬으로 돌아왔다.

에드워드 왕의 수석 외교관이자 군인으로서, 워릭 백작은 종종 집을 떠난 상태였을 것이고, 이자벨과 앤은 아마도 어머니와 함께 성에 남았을 것이다.

두 소녀가 어디에 살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노스 요크셔(North Yorkshire)의 미들험 성(Middleham Castle)이 아마도 그들의 거처였을 듯 하다.

앤은 친삼촌인 조지 네빌(George Neville)이 1465녀 9월에 요크의 총대주교로서 즉위식을 가질 때 처음으로 대중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때 그녀의 나이 9살이었다.

또한 같은 해 왕의 막내 동생인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Richard, Duke of Gloucester, 1452년생)가 프랜시스 로벨 경(Francis Lord Lovell, 1456년생) 및 몇몇 귀족 자제들과 함께 워릭 백작의 궁정에 합류하기도 하였다.

그 전 해 앤의 아버지와 에드워드 왕의 관계에 균열이 생겼는데, 에드워드 왕이 프랑스의 신부를 아내로 맞아들이라는 워릭 백작의 외교적 중재를 고작 젠트리 계급의 딸인 엘리자베스 우드빌(Elizabeth Woodville)과 비밀리에 결혼하였음을 공언하는 것으로 답하였기 때문이다.

새 왕비는 자매들이 여럿이었고, 때문에 워릭 백작은 왕국 내 유력한 사윗감을 그녀들에게 뺏길 판국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왕은 당시 글로스터 공작과 로벨을 각각 이자벨과 앤의 신랑감으로 찍고 있던 듯 하다.

 하지만 워릭은 당시에 자신의 두 딸을 왕의 두 동생과 각각 결혼시키려는 야망을 갖고 있었다.

이 경우라면 글로스터 공작은 이자벨이 아닌 앤과 혼인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에 이자벨이 클라렌스 공작과 결혼하게 되면, 앤과 글로스터의 결혼은 ‘근친혼’의 범주에 들어가 불법이 된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힉스(Hicks), 앤 네빌, Tempus, 2006, 2006년도판 BBC 역사 매거진 ‘리처드 3세 왕은 과연 근친상간을 저질렀나?'). ‘법적으로’ 혼인이 제한되는 경우는 성적인 결합으로 인하여 ‘하나의 육체’가 되었을 때만 국한되었다.

즉 이에 따르면, 사면장 없이 이전 배우자의 친척, 또는 이론적으로 이전 애인과의 친척과 결혼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하지만 결혼하는 두 사람의 혈연자가 친척, 또는 ‘혼인 관계’라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워릭의 계획한 이중 결혼식의 유일한 장애물은 왕이었다.

왕은 클라렌스의 조지의 결혼이 중요한 외교적 흥정 대상일 것이 때문에, 자신의 맏아우를 워릭 가문의 후계자로 넘겨주는 것을 반대하엿다.

워릭 가문의 자매는 매우 좋은 신부감이었으나, 그들은 아버지의 샐리스버리(Salisbury) 백작령과 어머니의 광대한 영지들, 즉 워릭(Warwick)과 남서쪽의 디스펜서(Despencer) 백작령 등을 균등하게 상속받아야 했다.

(북쪽에 있는 네빌 가문의 영토는 남자 후계자에게만 상속이 가능하였기 때문에, 워릭 백작이 아닌 그의 가장 가까운 남자 친척에게 상속될 예정이었다.

)  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워릭은 클라렌스의 동의를 얻어 교황에게 사면장을 요청하는 사절을 보냈다.

교회법으로 볼 때 그의 딸들은 왕의 동생들과 원칙적으로 결혼할 수 없는 가까운 친척 사이였기 때문이었다1. 우리는 적어도 워릭 백작이 이자벨의 결혼에 대한 사면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데, 이를 증명하는 문서가 현존하기 때문이다.

리처드와 앤의 결혼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증거는 아니고, 정황을 보았을 때 사면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두 쌍의 결혼에 대한 사면장들은 바티칸 기록 보관소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때는 바야흐로 1468년 말, 워릭 백작과 왕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져버렸고, 리처드는 누구의 편이 될 것이냐는 다그침을 받았다.

리처드는 왕의 편이 되기로 결심하였다.

그가 떠남으로서, 앤과의 결혼은 깨진 것으로 간주되었다.

한편 로벨 경은 이미 앤의 사촌인 앤 피츠휴(Anne FitzHugh)와 결혼한 상태였다.

  랭카스터의 웨일즈 왕자와 결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라렌스는 워릭과 함께 음모를 꾸며 1469년 7월 12일 칼레에서 이자벨 네빌과 비밀 결혼식을 치렀다.

이 결혼은 클라렌스와 워릭이 반역을 일으키는 기초가 되었다.

그들은  왕의 총신들을 박살내고 에드워드 왕을 포로로 가뒀다.

아마도 클라렌스가 에드워드 대신 왕이 되고 네빌이 배후에서 조종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이러한 쿠데타를 지속시키는 데 실패하였다.

그들은 왕과 재화합하였지만,  이내 반란을 또 일으켰고, 이번에도 역시 실패하였다.

앤은 부모와 언니, 그리고 형부인 클라렌스와 함께 프랑스로 망명 생활을 떠났다.

이 자벨이 낳은 첫 아이는 배에서 사산되었다.

          <랭카스터 가문 : 헨리 6세, 그의 아내 앙주의 마거릿, 부부의 아들 랭카스터의 에드워드>랭카스터의 에드워드는 19세기에 판화에 그려진 초상화이고, 당시의 모습을 묘사한 초상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요크 가문 : 에드워드 4세와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우드빌(Elizabeth Woodville)> 에드워드 4세가 랭카스터파의 일개 과부인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결혼한 덕분에 불필요한 정치적 파란을 겪게 되었고, 이는 그 자신의 일시적 퇴위와 바넷, 툭스버리에서 벌어진 두 차례의 참혹한 전투를 초래하였다.

 당대 최고의 미녀로 평가받은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자신의 낮은 신분 때문에 정도 이상의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이것이 앤이 헨리 6세와 앙주의 마거릿(Margaret of Anjou)의 유일한 아들이자 후계자인 랭카스터의 에드워드(Edward of Lancaster)와 결혼하게 된 전후배경이다.

마거릿 왕비는 프랑스의 루이 11세를 설득하여 지원을 약속받은 후, 에드워드 왕과 군사작전으로 결판을 내기 위해 워릭과 동맹을 맺었다.

랭카스터의 에드워드와 앤은 8촌지간2이었기 때문에 교황의 사면장 없이 결혼할 수 없었지만, 1470년 7월 25일 에드워드와 앤은 서로 낯설어 하면서 앙제(Angers) 성당에서 엄숙한 약혼식을 올렸다.

1주일 후 워릭과 클라렌스는 앤과 그녀의 어머니를 프랑스에 남기고 영국을 침공하였다.

에드워드 4세는 패하여 해외로 달아났고, 헨리 6세는 복위하였다.

교황의 사면장이 도착하자, 앤과 랭카스터의 에드워드는 12월 13일 앙부아즈(Anboise)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 때 웨일즈 왕자는 17세, 앤은 14세였다.

  크리스마스 이후, 젊은 왕세자 부부는 각자 어머니를 대동하고 디프(Dieppe) 해안으로 이동하여 영국으로 가는 배를 탔다.

폭풍우가 몰아쳤지만, 그들은 3월이 되기 전에 웨이머스(Weymouth) 항을 목표로 출발하였다.

당시 앤은 웨일즈 왕자 및 마거릿 왕비와 한 배에 타고 있었고, 워릭 백작부인은 다른 배를 타고 있었다.

날씨 상태는 그때까지도 나빠서, 앤의 어머니를 태우고 있던 배는 홀로 떨어져 동쪽으로 수 마일이 떨어진 곳으로 표류하였다.

그들은 1471년 4월 14일에 상륙하였으나, 바로 그 때 다시 세워진 왕권이 몰락한 것을 목격하였다.

에드워드 왕이 다시 돌아와 런던을 접수하였으며, 클라렌스는 다시 요크 가문 쪽으로 붙었고, 바로 그 날 바넷 전투에서 워릭 백작이 전사하였다.

워릭 백작부인은 이 소식을 듣고 뉴 포레스트(New Forest)에 있는 볼리유 수도원(Baeulieu Abbey)의 성소로 들어갔다3. 앤은 툭스버리(Tewkesbury)로 향하는 행렬에 억지로 끼어 이동하였고, 바로 그곳에서 일어난 전투에서 에드워드 왕의 군대가 랭카스터의 군대를 박살냈다.

랭카스터의 에드워드는 병사들과 함께 전사하였으며, 앤은 언니 이자벨과 형부인 클라렌스 공작의 감시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결혼으로 인한 분쟁  앤의 아버지와 남편은 모두 반역자로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볼리유 수도원의 성소로 도피하였으며, 에드워드 왕은 이를 적대행위로 간주하고, 곧 무장한 경비병들로 그녀를 감시하게 하였다(BL MS Cotton Julius BXII, f. 317). 부모의 영지는 모두 몰수당했으며, 원래 앤과 이자벨이 나눠 가져할 영지를 이자벨의 남편인 클라렌스가 모두 차지하였다.

원래대로라면 앤의 어린 사촌인 조지 네빌(George Neville)에게 주어졌어야 할 영국 북쪽에 있는 네빌 가문의 영지도, 조지 네빌의 아버지인 몽태규 후작(John Neville, Marquess of Montagu)이 바넷 전투에서 반역자로 죽는 바람에, 글로스터 공작이 가져가고 말았다.

앤의 언니인 이자벨과 클라렌스 공작 모두 앤의 재혼 또는 워릭과 샐리스버리의 영지 상속권을 허락하지 않을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9개월이 조금 못미치는 시간 동안 리처드는 끊임 없이 앤과 결혼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는 양자 모두에게 신중한 결합이었으며, 또한 앤의 아버지과 원래 점지해주던 혼사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감시자 노릇을 하던 클라렌스는 동생이 앤의 배후에 있다고 보고, 앤의 존재를 비밀로 하고자 하였다.

아마도 그는 처제를 주방의 하녀로 모습을 감추게 하려고 했던 듯 싶다.

하지만 앤은 이를 거부하고 자신의 상속권을 위해서 싸웠을 것이다.

결국에 리처드가 앤을 찾아냈고, 그녀를 데리고 런던의 성 마틴(St. Martin) 수도원의 성소의 은신처로 갔다.

    <앤 네빌과 리처드의 사인>앤 네빌은 "Anne Warwick"이라 썼고, 리처드는 "R(ichard) Gloucester"라 썼다.

   앤은 이에 리처드와 결혼하기로 동의하였고, 최종적인 사면권을 얻기 위해 로마로 사절을 보냈다.

리처드는 이전에 앤이 결혼하였던 랭카스터의 에드워드와 8촌 지간이었기 때문에 교황의 사면장 없이 결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472년 2월, 에드워드의 압력에 의하여 클라렌스는 리처드와 앤이 ‘재산을 나누어 갖지 않는 조건 하에서’ 그들의 결혼을 마지못해 동의하였다.

하지만 그 해 3월 18일까지, 클라렌스는 리처드에게 몇몇 영지들을 양도하는데 동의하였다.

(CPR 1467-77, p. 330). 리처드와 앤의 사면장은 4월 22일에 로마에서 비준되었고, 영국으로 출발한 것은 6월쯤이었을 것이다.

당시 상황을 보건대 리처드와 앤은 클라렌스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면장이 도착하기 전인 1473년 1월에 결혼 한 듯 하다.

당시 앤의 나이 16세, 리처드의 나이 19세 또는 20세였다.

1473년 여름에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는 왕의 허락을 받아 볼리유의 성소에서 머무르고 있던 앤의 어머니를 데리고 미들험에 있는 자신의 궁정으로 모셔갔다.

  하지만 워릭 백작부인은 자신의 영지를 회복하지 못하였다.

두 딸과 사위들의 금전적인 욕심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에드워드 왕이 워릭 백작부인의 재혼이라는 위험을 감수하려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녀가 재혼한다면, 그 남편은 그녀의 광대한 영지와 재산 덕분에 왕국에서 가장 막강한 인물이 될 터였다.

백작부인의 영지를 두 딸과 사위들에게 상속하면 상황이 안정될 것으로 보였으나, 클라렌스는 이를 방해하려 들었다.

1473년 가을까지 그는 글로스터 공작에 대항하여 무장하였으며, 이 상황은 곧 클라렌스에게 동정심을 느끼고 있던 한 영국인 방문자에 의해 프랑스 궁정에도 보고되었다.

  <클라렌스 공작 부부, 조지 플란타지넷과 이자벨 네빌. 카디프 성당의 스테인글라스>   ‘글로스터 공작은 강제로 이전에 웨일즈 왕자와 결혼하였던 고(故) 워릭 백작의 딸을 아내로 취했으며, 클라렌스 공작에 맞서 끊임 없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클라렌스는 그의 형인 에드워드 왕과 이전에 워릭 백작령을 받기로 약속한 적이 있기 때문에, 글로스터가 백작의 둘째 딸과 결혼하는 것을 이유로 영지를 나누어 갖는 것을 원하치 않고 있습니다.

’ (Calendar of Milanese State Papers, p. 177).  결혼이 강요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이나 또는 그러한 두려움은 근거 없는 얘기다.

하지만 그러하였기 때문에, 클라렌스가 리처드와 앤의 결혼이 교회법으로 봤을 때 원래 무효라는 점을 들어서라도 리처드가 워릭 백작령의 일부라도 상속 받는 것을 반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강요된 결혼은 특히 지주 계급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었다.

특히 신부 측의 부모 또는 보호자가 아닌 신랑에 의한 강요라면 더했다.

  당대의 사회는 특히 신부의 가족 또는 보호자의 의사에 반하여 상속녀를 유혹하는 일을 도둑질을 목적으로 한 ‘유괴(raptus4)’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당대의 사회 통념상 유괴와 가출은 그 뜻에서 차이가 거의 없었다.

클라렌스의 감시에서 앤을 성 마틴 수도원의 성소로 데려온 일은, 리처드가 그녀를 유괴한 것으로 보여질 수도 있었다.

클라렌스가 리처드의 납치설을 주장한 근거는 이러한 점들에서 나온 것이 거의 확실하다.

하지만 교회법이 당대의 사회 관습을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신부가 직접 동의하는 경우라면, 신부측 가족의 동의가 없어도, 신랑과 신부의 정당한 결혼이 가능하였다.

이에 따라 육체적인 성관계나 동거하는 것도 법적으로 가능하였다.

비록 그 결혼이 실제로 ‘강요’에 의해 이뤄진 것이어도 그러하였다.

  클라렌스는 영지의 분할 상속을 막기 위해 동생의 결혼이 유괴에 의한 것이었다고 줄기차게 주장하였다.

클라렌스가 그 결혼에 대해 교회법에 의거하여 더욱 강하게 반대했다고 했을지라도, 기록으로 남겨진 바는 없다.

   결국에 클라렌스는 자신의 영지를 압수하겠다는 왕의 위협에 굴복하였다.

영지 상속에 대한 분란은 1474년 5월 의회의 의결로 가라앉았다.

연대기 작가 크로울랜드(Crowland)는 ‘워릭 백작 부인이 자연스레 죽은 것처럼’ 간주하여 그녀의 영지를 즉시 두 딸들과 사위들한테 즉시 지급할 것을 명시한 포고령에 경악하였다.

클라렌스가 그때까지도 워릭 백작부인의 상속재산 대부분을 사실상 보유하고 있었고, 리처드와 앤의 몫으로 돌아간 것은 다른 가문의 재산에 속하는 것이었다.

클라렌스는 앤과 리처드의 결혼의 적법성에 대하여 끊임 없이 중상모략을 가하였다.

즉, 교회가 그들의 결혼이 무효라고 선언함으로서 리처드와 앤이 이혼하게 된 상태에서 다시 재결합하는 경우, 그들의 권리를 지켜줄 법적 문구를 발표해버리는 식이었다.

또한 클라렌스는 리처드가 앤과 두 번째 결혼을 하기 위해선 지켜야 할 권리들은 이러저러한 것들이 있다는 식으로 떠들고 다녔다 (C. Given-Wilson [ed.], Parliament rolls of Medieval England, Edward IV - October 1472 - 2nd roll). 하지만 그 어떠한 교회 법정도 혼인의 적법성에 대하여 이렇게까지 대중 앞에서 선언해야 한다고 요청한 적이 없었다.

또한 리처드와 앤의 결혼은 서로간 호의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하며, 부부 사이는 앤이 죽을 때까지 이어졌다.

   글로스터 공작부인<글로스터 공작부부, 앤과 리처드>  공작부인으로서 앤의 활동은 살짝 훑어볼 수 있는 정도이다.

1475년과 1477년 사이의 예시는 그 일면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1475년, 리처드는 프랑스로 원정을 가는 바람에 자리를 비웠다.

이 때 앤은 요크 시의 시장 및 시의원들과 함께 서신으로 왕래하였으며, 특히 그녀에게 중요한 편지 한 통은 그레이스톡 경(Loard Greystock)을 비롯한 남편의 참사회 회원들의 손에 딸려 보내기도 하였다 (York City Chamberlains’ Account Rolls, Surtees Soc. Vol. 192, 1980, p. 152). 리처드와 앤의 유일한 아들인 에드워드(Edward)는 1476년 봄 또는 여름에 미들험(Middleham)에서 태어났다.

적어도 공식 기록에 따르면, 에드워드는 유아기를 무사히 넘긴 부부의 유일한 혈육이다.

같은 해에, 앤은 네빌 가문의 조상들이 묻혀있는 더럼 수도원(Durham Priory)의 자선 회원5이 되었다.

12월에 그녀는 아마도 리처드와 함께 런던에 있었던 듯 싶다.

당시 리처드는 ‘공작 각하의 분부에 의하여, 각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아내를 위하여 대령하라고 했던 모피’와 ‘공작부인께 대령하라고 명령하셨던 비단옷과 다른 물품들’에 대한 비용을 자신의 동-잉글랜드의 영지에 달아놓았다.

1477년 리처드와 앤은 요크의 성체 협회(Corpus Christi Guild)에 가입하였다.

앤은 자신의 개인사제를 승진시키기 위하여 더럼 수도원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아마도 같은 해에 케임브릿지의 퀸스 컬리지(Queen’s College)에 부부가 공동으로 기부금을 전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왕비가 되다.

  <리처드 3세와 앤 왕비><리처드 3세, 아내와 함께 대관식을 치르다>영드 The White Queen 8화의 한 장면 (배우는 아뉴린 바너드(Aneurin Barnard), 페이 마세이(Faye Marsay))   에드워드 4세의 죽음 이후, 리처드는 남쪽으로 가서 어린 에드워드 5세의 호국경 자리를 꿰찼다.

앤은 한 달 후에 런던으로 향했고, 6월 5일 화요일에 도착하였다.

곧 정치적 위기가 발생하였고, 결국에 리처드가 왕위를 차지하였다.

같은 시기에 앤은 언니 이자벨의 아들이자 고아인 상태로 도르셋 후작의 후견을 받고 있었던 워릭 백작 에드워드(Edward Plantagenet, Earl of Warwick)을 돌보기로 하였다(Mancini).  리처드와 앤은 공동으로 대관식을 치렀다.

웨스트민스터 타워에서 치러진 식 하루 전에, 그녀는 여성용 가운과 길이가 27야드(=11.88m)나 되는 금으로 수놓인 흰색 망토를 입었다.

그 망토는 담비와 족제비의 털로 만들어졌고, 흰색 비단과 금으로 수놓여진 레이스로 장식되어 있었다(Laynesmith, p. 92). 대관식은 아침 7시에 웨스트민스터의 홀에서 사원으로 걸어서 행진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으며, 그곳에서 부부는 미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대관식과 도유식6을 치렀다.

그 날은 장엄한 축하 연회와 함께 끝났으며, 그 자리에서 리처드는 금으로 만든 접시에, 앤은 금박을 입힌 접시에 음식을 대접받았다.

  <리처드 3세의 가족 : (왼쪽부터) 왕비 앤 네빌, 리처드 3세, 부부의 아들 미들험의 에드워드>   왕비로서 앤이 군림했던 시간은 짧았고, 당시 왕비의 궁정에서 남겨진 기록도 없어서, 아직도 그녀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남아있는 증거에 따르면, 앤이 글로스터 공작부인일 때부터 그녀를 모시던 북부 신사계급 출신 여인들이 그대로 왕비의 시녀로서 궁정에서 봉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종종 남편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그의 대관식 기간 동안, 앤은 워릭에 도착하여 리처드를 잠시 멈춰 세우고, 그녀가 일전에 윈저(Windsor)에서 접견하였던 에스파냐 대사를 만나게 하였다.

부부는 앤의 고향(=워릭)에서 1주일 정도 머물렀다.

이후 앤과 리처드는 요크를 방문하였고, 그곳에서 7살 먹은 아들 에드워드를 웨일즈 왕자로 선포하였다.

국왕 일행은 다시 남쪽으로 향했고, 폰티프락스(Pontefract)를 방문하여 2주일을 머물렀다.

 앤은 크리스마스 축제 기간을 위해 남편과 함께 웨스트민스터에 머물렀다.

3월에, 그녀와 리처드는 이틀 동안 말을 타고 케임브릿지의 퀸스 컬리지로 행차하였고, 그곳에서 '가장 거룩하신 앤 왕비 마마(께서는)..... 막대한 기부금으로 대학의 재정을 크게 늘려주셨다' (Laynesmith, p. 256). 그에 대한 보답으로, 케임브릿지 대학의 간부들은 매해 5월 2일에 '가장 고명하신 군주(=리처드)와 전하의 사랑하시는 앤 왕비 마마를 위하여' 미사를 치르기로 결의하였다 (Hammond, p. 20). 이후 부부는 노팅엄(Nottingham)에 궁정을 차렸는데, 그곳에서 아들 에드워드 왕자가 미들험에서 죽었다는 불의의 소식을 들었다.

'여러분은 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갑작스러운 비탄에 압도되어 거의 제정신이 아닌 것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 (Crowland, p. 171).  에드워드 왕자의 죽음은 리처드와 앤에게 개인적인 비극일 뿐만 아니라 왕조에도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이제 통치 왕조의 안정성과 왕조의 지속을 보장해줄 후계자가 사라졌다.

헨리 튜더(Henry Tudor)는 에드워드 4세의 맏딸인 요크의 엘리자베스(Elizabeth of York)를 미래의 배우자로 맞겠다고 선언함에 따라, 앤이 또 아들을 낳아야할 필요성이 시급히 대두되었다.

그녀는 아직 27세였고 건강해보였으며, 그랬기 때문에 리처드와 함께 국내를 여행할 수 있던 것으로 보인다.

리처드가 어디를 갔던지 간에, 즉 예를 들어 리처드가 스코틀랜드에 대항하여 해상작전을 진두지휘하기 위해 스카보로(Scarborough)에 주둔지를 차렸을 때조차도, 앤은 역시 그곳에 있었다.

앤이 스카보로에서 머물렀던 사각형의 탑은 1538년에 여행객 존 릴런드(John Leland)에 의해 '왕비의 타워 또는 임시거처(The Queens Towre or lodging)'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The Itinerary of John leland the Antiquary, ed. Thomas Hearne, Vol. 1, 1745, p. 62). 앤은 리처드와 함께 왕비로서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였다.

이 때 앤의 시녀로서 에드워드 4세의 맏딸인 요크의 엘리자베스와 (아마도) 그 여동생들도 함께 머무르고 있었다.

그 해 3월에 엘리자베스와 그녀의 자매들은 어머니와 함께 성소에서 나오는 것이 허락되었던 것이다.

크로울랜드의 연대기는 크리스마스 축제 기간에 '지나칠 정도로 많은 관심이 춤과 환락에 쏟아졌으며' 앤 왕비와 레이디 엘리자베스가 옷을 자주 바꿔 입었는 사실을 우리에게 들려주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십이야에7, 헨리 튜더가 1485년 여름에 영국을 침공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당도하였다.

  그 즉시, 리처드에 대한 적대적인 소문이 만연하게 되었다.

'그러한 소문들은 리처드에게 악의를 품고 있는 자들이 꾸며내어 퍼트린 것이다' (Lander, p. 255). 크로울랜드에 따르면, 크리스마스 축제 기간 동엔에 왕은 엘리자베스에게 호의를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왕이 앤이 죽고 난 뒤, 또는 '이미 그 근거가 충분한 것으로 보이므로 앤하고 이혼한 뒤에' 엘리자베스와 결혼하기로 결심하였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다고 한다.

하지만 이 연대기 작가는 왕이 앤과 이혼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 제시하지 않고 있지만, 이는 아마도 클라렌스가 이전에 리처드와 앤의 결혼을 중상모략하면서 했던 바로 그 주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앤은 '바로 며칠 뒤에' 죽을 병에 걸렸으며, 이 상황에서도 리처드가 이혼을 고려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면 다소 놀라운 일이 될 것이므로, 앞선 소문은 이제 그가 아내를 독살하려 한다는 루머로 대체되었을 것이다8. 앤의 병세에 대하여 우리가 갖고 있는 증거는, 앤의 병세가 2달 동안 지속되었다는 것, 그리고 의사들이 리처드에게 그녀의 침상으로 다가가지 말라고 조언한 것 정도이다.

  현재 남겨진 증거로 보면, 리처드는 자신이 홀아비가 되었을 경우를 대비하여 조카인 엘리자베스의 결혼 협상을 고려했던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리처드가 조카와 직접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포르투갈의 공주와 결혼하고 동시에 조카를 포르투갈의 왕자와 결혼시키려는 계획이었다.

 앤은 만 29세 생일을 석 달 남겨두고 1485년 3월 16일에 죽었다.

바로 그 날, 영국엔 개기일식이 관측되었다.

그녀는 '왕비에게 어울리는 경의를 받으며'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다.

(crowland, p. 175). 보챔프 가문의 여러 위인전을 작성하였던 존 로스(John Rous)에 의하면, 앤은 '품위가 있었으며, 상냥하고 아름다웠다.

그녀의 행동은 늘 칭찬할만 하였고, 고결하였으며, 그녀의 이름인 '앤(Anne)'이 나타내고 있듯이 우아함으로 가득차있었다.

' 이제 앤의 이야기에서 후기를 쓸 때가 왔다.

3월 30일, 리처드는 런던 시장과 시민들 및 가능한 많은 영주들을 성 요한 자선회당(Hospital of St. John)의 대강당에 불러모았고, 엘리자베스와 결혼하기 위하여 앤을 독살하였다는 루머에 대해 '크고 분명한 목소리로' 연설하였다.

'왕은 이전의 일에 대해 슬픔과 언짢음을 보여주면서, 그런식으로 결혼하려는 것이 절대로 자신의 생각도 아니고 그럴 마음도 없으며, 왕비의 죽음에 결코 기뻐한 적도, 또한 바란 적도 없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왕비의 죽음 때문에 큰 비탄에 사로잡혔으며, 남자로서 견딜 수 없을만큼 괴롭다고 하였다.

....' (Lander, pp. 255-6).주요 출처 / 더 읽어보세요데이비드 볼드윈(David Baldwin) "리처드 3세(Richard III)" 스트로우드(Stroud), 2012마리 반필드(Marie Barnfield), "무효화된 혼인 제한, 교황 사면장과 이혼 : 리처드 3세와 그의 결혼에 대하여(Diriment impediments, Dispensations and Divorce : Richard III and Matrimony', The Ricardian, Vol. XVII, 2007 PP. 84-98아네트 카슨(Annette Carson), "리처드 3세 : 비난받는 왕(Richard III : The Maligned King)" 스트로우드, 2008P. D. 클라크(P. D. Clarke), "영국 왕가의 혼인과 15세기 로마 교황청 법원(English royal marriages and the Papal Penitentiary in the fifteenth century)", 영국 역사 비평(English History Review), 120, 2005로스 연대기(The Rows roll). W. H. 커토프(W. H. Courthope) 편집, 런던, 1859.로다 에드워즈(Rhoda Edwards), "리처드 3세의 순방, 1483-1485(The Itinerary of Richard III, 1483-1485)", 글로스터, 1983중세 영국 의회 의사록(Parliament rolls of Medieval England), 크리스토퍼 기븐-윌슨(Christopher Given-Wilson) 편집.P. W. 헤이먼드(P. W. Hammond), "웨일스 왕자, 미들험의 에드워드(Edward of Middleham, Prince of Wales), 켄트, 1973.리처드 3세의 대관식 : 현존하는 기록들(the Coronation of Richard III : The Extant Documents), P. W. 헤이먼드와 A. F. 서튼(A. F. Sutton) 편집. 글로스터, 1983.H. 힘홀즈(H. Helmholz) "중세 영국의 결혼 소송(Marriage Litigation in Medieval England)", 케임브릿지, 1974 (2007년에 페이퍼북 판이 나옴)마이클 힉스 :- 앤 네빌(Anne Neville), 스트로우드, 2006- 그릇되고 이랬다 저랬다하며 거짓말을 일삼는 클라렌스(False, Fleeting, Perjur'd Clarence), 글로스터, 1980- 리처드 3세(Richard III), 스트로우드, 2000 (개정판)- 국왕 옹립자 워릭(Warwick the Kingmaker), 옥스포드, 1998 (2002년에 페이퍼북 판이 나옴)- 왕자는 한 명? 아니면 두 명? (One prince or tow?', The Ricardian, Vol. IX, 1993, pp. 469-72.J. L. 레인스미스(J. L. Laynesmith), "마지막 중세의 왕비들(The Last Medieval Queens)", 옥스포드, 2004J. R. 랜더(J. R. Lander), "장미 전쟁(The Wars of the Roses), 런던, 1974 (White Lion 판)로즈머리 호우록스(Rosemary horrox), 앤 서튼(Anne Sutton), "글로스터 공적으로서 리처드의 몇몇 지출내역, 1475-7(Some expenses of Richard Duke of Gloucester, 1475-7)", The Ricardian, Vol. VI, 1983, pp. 266-9.1459-1486년 기간의 크로울랜드 연대기, N. 프로니(N. Pronay), J. 콕스(J. Cox) 편집, 런던, 1986.셜리 ㅁ. 싱클레어(Shelley A. Sinclair) "이자벨 버틀러의 유괴 : 랭카스터 왕조 시절 잉글랜드의 납치와 부의 추구(The 'ravishing' of Isabel Boteler : abduction and the pursuit of wealth in Lncasterian England), The Ricardian, Vol. XI, no 146, 1999년 9월배리 윌리엄즈(Barrie Williams) :- 포르투갈과의 외교관계와 신앙심 깊은 공주의 중요성(The Portuguese connection and the significance of the holy princess'), The Ricardian, Vol. VI, pp. 138-5- 포르투갈과 맺은 결혼 협상들 : 그 대답 (The Portuguese marriage negotiations : a reply), The Ricardian, Vol. VI, pp. 235-6에드워드 4세의 어머니 세실리 네빌은 워릭 백작의 고모였다.

그래서 클라렌스와 글로스터 형제는, 나이 차이는 거의 안나지만, 이자벨과 앤 자매의 5촌 당숙이 된다.

즉, 앤의 친할아버지의 어머니인 조앤 보퍼트(Joan Beaufort)는 랭카스터의 에드워드의 친증조할아버지인 헨리 4세의 의붓동생이다.

당시 성소로 들어가면 죄인이라도 끌어내지 않는 게 관행이었다.

일종의 치외법권인 셈이다.

워릭 백작부인은 워릭 백작이 전사하고 에드워드 4세가 복위함에 따라서 자신이 반역자가 된 셈이기 때문에 성소로 도피한 것이다.

라틴어 단어 rapere(빼앗다)의 수동태 과거분사에서 유래에는 sister로 되어 있는데, 최소한 수녀는 아닐 것이 확실하므로, 능력이 닿는 대로 가장 비슷할 것 같은 뜻의 단어로 번역해서 넣었다.

하느님의 가호를 받아 통치자가 되었음을 선포하는 의식이다.

역대 기독교도 왕들의 호칭에 DEI GRATIA라고 되어 있는 문구는, 바로 이 의식을 치렀음을 암시한다.

크리스마스 축제는 12월 25일에 시작하여 12일 동안 이어지며, Twelfth Night라 하면 크리스마스로부터 12일째인 1월 6일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1)앤의 죽음 2)앤과 이혼 두 가지 헛소문이 있었는데, 앤이 아프자마자 2)를 기각하고 앤이 독살당하는 것으로 1)의 설이 우세해졌다는 것이다.

.. 그래도 문화생활을 좋아하는 다나는 힐링을 하러 명동예술 극장에 들렸답니다


제가 오늘 소개해드릴 연극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리차드 3세'입니다.

'리차드 3세'는 중국 내한공연이었어요! (한국말 자막이 옆 화면에 다 나와있어서 괜찮아요!!)왕시아오잉 중국 국가화극원 부원장은 우리나라에서 <패왕가행>으로 이미 잘 알려진 연출가라고 합니다 ㅎㅎ줄거리:1930년대 영국, 왕의 암살로 끝난 시민전쟁으로 요오크카의 맏이 에드워드가 왕위에 오르나 그의 왕권에 불만을 품은 막내 동생 리차드 글로쎄스터(Richard III: 로렌스 올리비에 분)은 마음에 두고 있던 앤(Lady Anne Neville: 클레어 브룸 분)을 얻기 위해 그녀의 남편을 처참히 죽이고 아내로 맞게 된다.

리차드는 자신의 집권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갈 계획을 세운다.

맨처음 희생자는 자신의 정치적 야심에 걸림돌로 여기는 큰 형 클러랜스(George, Duke of Clarence: 존 제일거드 분)를 탑에 가두어 끝내 심복 타이렛(James Tyrell: 패트릭 드로튼 분)을 시켜 살해한다.

이어 엘리자베스(Elizabeth Woodville, Queen Elizabeth: 매리 커리지 분) 오빠 리버스(Antony Woodville, Earl Rivers: 클리브 모톤 분)는 정부와 정사 중 리차드에 의해 비참하게 살해된다.

또한 리차드는 어린 승계자 웨일즈 왕자(Edward, Prince Of Wales: 폴 휴스턴 분)와 웨일즈의 동생 제임스도 탑에 가두어 살해한 후 호민관의 지위에 오른다.

그런 다음 카리스마적인 리차드를 추앙하는 무리들에 의해 '리차드 3세'로 추대됨으로써 그의 숙원인 제왕의 자리에 서게 된다.

그러나 새로운 왕, 리차드 3세에 반대하는 세력은 점점 더 거세게 밀려온다.

한편 색마 리차드는 엘리자베스 여왕을 설득해 그녀의 딸과 결혼하려 하나 자신과 숙명의 대결자 헨리 리치몬드에게 빼앗기고 만다.

결국 '이기기 전엔 죽어도 물러서지 않는다'던 리차드는 민의의 대변자, 헨리 리치몬드가 이끄는 군대에 도전을 받아 불길 속에서 추락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맨 마지막 커튼콜의 모습이에요!!거의 2시간 넘어서의 러닝타임을 한번도 쉬지않고 연기를 한 배우님들이 정말 대단하더라고요!!열심히 저는 박수를 쳤답니다 ㅋㅋㅋㅋㅋㅋ저의 연극관람후기는우선 중국연극답게 아무리 배경이 영국이라지만 좀 화려하고, 중국느낌이 많이 나는 연극이었던것 같아요.의상도 1930년대 영국의 의상이 아닌 중국느낌이 강하다고 해야하나....아무튼 역시 중국! 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그리고 배우들은 중국어로 연기를 했기 때문에 혹시 알아들을 수 있었더라면 훨씬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었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네요 ㅠㅠㅠ 하지만 얻은것도 많은 연극이었던 것 같아요권력에 대한 욕심에 형제까지 이간질 시키고 죽이기 까지 하는 리차드3세는 결국 자신을 따르던 시민들에 의해 비참하게 살해당하고 맙니다.

하지만 이것은 마땅히 권력을 탐한 댓가가 되는 것이죠.사실 이것은 우리들의 현재의 삶의 모습과 많이 연관되는 부분인것 같아요우리는 자신이 얻을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욕망이 커지게 되죠. 누구나 마찬가지인것 같아요하지만 우리 옛말에 '분수대로 살아라'라는 말이 있듯이만약 리차드3세가 권력을 탐하지 않고 형제들과 함께 살기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협력하고 서로 도왔다면 결국 그의 죽음은 그리 일찍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고자신이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는 그 무의식중의 죄의식에 고통스러워하지도 , 자신의 권력에 대해서 불안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삶은 결국 현재 내가 갖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크나큰 욕심은 결국 화를 일으킨다라는 깨우침을 주는 것 같고 더불어 권력이라는 것은 쉽게 얻을 수 없지만 잃기는 쉽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이제 곧 총선인데 다른말은 하지 않고 권력에 대한 욕심보다는 서로서로 격려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분들이 나오셨으면 하는 마음이네요!후기는 저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좋은 감상 후기 있으시면 함께 나누고 싶네요ㅎㅎ오늘 포스팅은 이만 마칠게요 총 5막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주인공 리처드의 음산한 독백으로 시작되는데, 리처드는 이 독백을 통해 관객들에게 자신의 악랄한 천성과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계획하고 있는 음모를 여실히 들어낸다.

 햄릿의 독백만큼은 아닐지라도, 역사극 중에서만큼은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이 독백 전문을 한번 해석해 보았다.

  Now is the winter of our discontentMade glorious summer by this sun of York;"요크의 태양에 의해 불만의 겨울이 가고 찬란한 여름이 도래했다"*Now - 연극을 시작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단어가 있을까. *winter of our discontent - "불만의 겨울", 리처드의 첫째형인 에드워드가 이끄는 요크가와 헨리 6세가 이끄는 랭카스터가가 왕위를 두고 싸웠던 내전인 '장미전쟁'을 일컫는다.

(장미전쟁의 발단과 전개에 관한 내용은 셰익스피어가 처녀작 '헨리 6세' 3부작에서 자세히 소개된다.

) 그러나 '리처드 3세' 연극이 시작되는 배경은 전쟁이 요크가의 승리로 끝나고 (made glorious summer - '불만한 겨울'이 '찬란한 여름'이 되었으니 전쟁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에드워드가 왕위에 오른  이후다.

*sun - 여기서 'sun'은 'sun'과 'son'의 발음의 유사성을 이용해 교모히 두 개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불만의 겨울'이 뜨거운 '요크가의 태양(sun of York)'에 의해 '찬란한 여름'으로 바뀌었으니 '태양'을            의미하는 'sun'으로 풀이할 수도 있고, '요크가의 아들(son of York)' 인 에드워드에 의해 '불만의 겨울'           로 상징되는 내전이 끝나게 되었으니 '아들'을 의미하는 'son'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는 것.  And all the clouds that lour'd upon our houseIn the deep bosom of the ocean buried."이제 우리 가문을 내리덮던 구름들도 대양의 깊은 가슴 속에 묻혀버렸다"*clouds/lour'd/house - 모두[au]발음이 들어가는 단어들이다.

비슷한 소리가 나는 세 단어를 열거해 놓음                             으로써 문장이 리듬감을 갖게 된다.

 Now are our brows bound with victorious wreaths;"이제 우리의 이마는 화환이 장식하고 있고,"*wreaths-개선자들이 쓰는 화환, 월계관을 뜻한다.

요크가문이 승리를 거두었다는 뜻으로,               이 대사부터 리처드는 전쟁이 승리로 끝나면서 주변의 모습이 어떻게 변하게                되었는지 설명하기 시작한다.

 Our bruised arms hung up for monuments;"상처투성이 갑옷은 기념물이 되어 벽에 걸려 있다"*bruised - "멍이 든", 즉 전쟁통에 상처 투성이가 된 갑옷을 의미한다.

                그런 갑옷이 이제는 무용지물이 되어 장식품꼴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Our stern alarums chang'd to merry meetings,Our dreadful marches to delightful measures."준엄한 전투령은 흥겨운 연회로, 무시무시한 행군도 경쾌한 춤으로 바뀌었다"*alarums- 현대영어의 'alarm'에 해당된다.

*measures- 여기서는 현대영어가 가진 'measure'의 뜻과는 다른 뜻이 사용되었다.

                   이 문장에서의 measure는 '춤'이라는 뜻이다.

 Grim-visag'd war hath smooth'd his wrinkled front;"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있던 전쟁도 이젠 온화한 표정을 짓고"*Grim-visag'd war-"험상궂은 얼굴을 한 전쟁" 전쟁을 의인화한 표현이다.

                     잔뜩 인상을 찌푸리던 전쟁이 "이마의 주름살을 폈으니" (smooth'd hs wrinkled front),                      이 역시 전쟁이 모두 끝났음을 뜻하는 말이다.

 And now,--instead of mounting barbed steedsTo fright the souls of fearful adversaries,--He capers nimbly in a lady's chamberTo the lascivious pleasing of a lute."그리고 이제는, 겁쟁이 적들의 간담을 서늘케하기 위해화려하게 무장한 군마에 올라타는 대신,그는 여인의 침실에서 음탕한 류트가락에 맞춰깡총거리며 야단법석이 아닌가"*barbed steeds-'화려하게 무장한 군마', 리처드는 전쟁을 즐기는 군인이다.

                       이 표현을 통해 전쟁을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리처드의 시선을 엿볼 수 있다.

*fearful-"겁먹은"(frightened)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무시무시한"(frightening)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He-여기서 "그"는 왕좌에 오른 리처드의 첫째 형 에드워드 4세를 칭하는 것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극 중 에드워드는 왕비인 엘리자베스 외에 쇼어부인(Mistress Shore)과도        은밀한 사랑을 나누는데, 전쟁이 끝난 이후 여자에 정신이 팔려있는 에드워드를 리처드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But I,--that am not shap'd for sportive tricks,Nor made to court an amorous looking-glass;"하지만 나는 호색과는 거리가 멀게 태여났을 뿐만 아니라거울을 들여다보고 좋아할만큼 생겨먹지도 못했다"이 대사부터 리처드는 본격적으로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제까지의 대사가 주변의 모습을 단순히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면 이제부터는본격적으로 리처드의 본심과 본성이 들어나게 되는 것이다.

 I, that am rudely stamp'd, and want love's majestyTo strut before a wanton ambling nymph;"나는 꼴사납게 생긴데다, 요염을 피우며 걷는 음탕만 미녀들 앞에서건들거리며 활보할만한 배알도 없다.

"*rudely stamp'd -직역하자면 '대충대충 찍어낸'이라는 뜻이다.

자신이 꼴사납게 태어난 것을                           동전따위를 대충 찍어내는 것에 빗대어 표현한 말이다.

*want-셰익스피어의 어휘 중 want는 종종 'lack'의 의미를 갖는다.

여인네들 앞에서 이토록 자신없다던 리처드는 극중 역설적으로 레이디 앤에게 청혼하는데 성공한다.

레이디 앤의 남편이었던 에드워드왕자와 시아버지였던 헨리6세 모두 리처드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럼에도 앤이 철천지 원수인 리처드의 청혼에 넘어갔다는 것은, 리처드가 그만큼 탁월한 언변술과 연기력을 가졌다는 뜻이다.

1막 2장에서 리처드가 레이디 앤을 설득하는 장면은 기억할만한 명장면이다.

 I, that am curtail'd of this fair proportion,Cheated of feature by dissembling nature,"나는 협잡꾼같은 자연에 속아, 신체의 균형이 뒤틀려버렸다.

"리처드가 왜 자신의 외모에 불만을 갖고 있는지 그 이유가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Deform'd, unfinish'd, sent before my timeInto this breathing world scarce half made up,"기형에다가, 설익은 채, 형체가 반도 만들어지기 전이 세상에 태어나 버리고 말았다"*Deform'd, unfinish'd - 순간 튀어나오는 이 두 단어는 실제로 대사를 칠때 관객에게 상당한 임팩트를 남긴다.

  *unfinish'd - 뒤에 나오는 문장과 상통하는 단어다.

자신이 어머니 뱃속에서 제대로 형상이                    갖추어지기도 전, 즉 정상적으로 '완성되기도 전'에 태어났다는 뜻이다.

 And that so lamely and unfashionableThat dogs bark at me as I halt by them;--"그 절뚝거리는 모양새가 어찌나 꼴사나운지내가 앞에 서면 개마저 짖어댄다.

" 리처드 자신의 말처럼 리처드는 흉칙하게 태어난 불구다.

곱추인데다가 얼굴은 못생기고  한쪽 팔은 기형적으로 뒤틀렸으며 다리마저 절뚝거린다.

실제 역사상의 리처드 3세가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아마 셰익스피어는 리처드의 사악한 본성을 시각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이런 설정을 한 것 같다.

(당시에는 악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 신체적 장애를 갖고 태어난다고 믿었다) Why I, in ths weak piping time of peace,Have no delight to pass away the time,Unless to spy my shadow in the sun,And descant on mine own deformity:"나약한 피리 소리 들리는 평화시대라 할 지라도,나는 살아가는 데 낙이 없다.

기껏해야 양지에서 내 그림자나 들여다 보며그 병신꼴을 즉흥시로 읊어볼 뿐."*weak piping time of peace - 목동들이 즐겨 부는 피리(pipe)는 군악대의 장엄한  북소리나                                           트럼펫과 대조되는 소재로서, 평화시대를 곱지않게 바라보는 리처드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거기다가 "나약하게 울리는 피리소리(weak piping)"라고                                           하였으니 이 평화가 곳 깨지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에서 리처드의 계략에 의해 영국은 다시금 혼란에 싸이게 된다.

)  And therefore,--since I cannot prove a lover,To entertain these fair well-spoken days,--I am determined to prove a villain,And hate the idle pleasures of these days."그러므로 이 평화로운 날들을 즐길만한 미남자가 되지 못할 바에야내가 악담임을 드러내고 오늘날의 이 헛된 쾌락을 증오해 주겠다" Plots have I laid, inductions dangerous,By drunken prophecies, libels, and dreams,To set my brother Clarence and the kingIn deadly hate the one against the other:"음모는 이미 짜 놓았다.

시작은 위험하겠지만,터무니없는 예언과, 중상모략, 해몽으로 나의 형제인 클라렌스와 국왕이 서로를 죽도록 미워하도록 이간질하는 거다.

"*inductions-고어로서, '시작', '서막'등을 의미한다.

클라렌스는 리처드의 둘째형이다.

국왕과 왕자가 죽고 나면 그 다음 서열이 되는클라렌스를 없애기 위해 리처드가 음모를 짰음을 말해주는 부분이다.

 And if King Edward be as true and justAs I am subtle, false, and treacherous,This day should Clarence closely be mew'd up,--About a prophecy which says that GOf Edward's heirs the murderer shall be."나는 간악하고 교활한 반역자이지만,에드워드 왕이 진실되고 정의롭다면오늘 클라렌스는 필시 투옥신세를 면치 못할 거다.

이름에 G가 들어간 이가 에드워드의 후계자를 죽이게 될 거란 예언이 돌고 있으니까."*mew'd up-(='caged') '투옥된다'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클라렌스공의 이름은 조지(George)다.

때문에 에드워드 왕은 리처드가 퍼트린 이 소문을 믿고 '이름에 G가 들어간 이'인 클라렌스를 투옥하고 결국에는 사형선고까지 내리게 된다.

그러나 사실 에드워드의 후계자를 죽이게 될 'G가 들어간 이'는 조지 클라렌스가 아닌 리처드 글로스터(Richard Gloucester), 즉 리처드 본인이다.

 Dive, thoughts, down to my soul:--here Clarence comes."음모여, 내 영혼 속 깊이 숨어있어라, 여기 클라렌스가 온다.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온갖 음흉한 생각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듯한 재밌는 문장이다.

무대에 클라렌스가 등장하는 것으로 리처드의 독백은 이렇게 끝이 난다.

 연극을 보는 관객은 이 독백만 듣고서도 리처드 3세가 심상치 않은 악당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관객들에게 자신이 행한 악행과 앞으로 행할 악행에 대해 저렇게 자신있게 말하는 것을 보면 리처드는 악행 자체를 즐기는 인간이라는 사실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악행을 저지른 후 죄책감에 홀로 괴로워 하는 '햄릿'의 클로디어스나 '맥베스'의 맥베스와 비교해 보았을 때, 리처드는 향후 전개될 이야기에서도 잘못에 대해 괴로워 하기는 커녕 오히려 자랑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리처드 3세는 단연코 최고의 '중세 느와르'다.

셰익스피어가 재미없고 따분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당장 이 작품을 읽어보라.  ? 리처드 3세, 내가 가장 좋아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하나로 온갖 권모술수로 왕위에 올랐으나 결국 패망하고 마는 영국 왕 리처드 3세의 일생을 다룬 역사극이다.

 이 작품 최고의 매력은 빠르게 전개되는 스토리의 극적 재미와 지극히 악랄한 캐릭터의 심층적인 묘사다.

총 5막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주인공 리처드의 음산한 독백으로 시작되는데, 리처드는 이 독백을 통해 관객들에게 자신의 악랄한 천성과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계획하고 있는 음모를 여실히 들어낸다.

 햄릿의 독백만큼은 아닐지라도, 역사극 중에서만큼은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이 독백 전문을 한번 해석해 보았다.

  Now is the winter of our discontentMade glorious summer by this sun of York;"요크의 태양에 의해 불만의 겨울이 가고 찬란한 여름이 도래했다"*Now - 연극을 시작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단어가 있을까. *winter of our discontent - "불만의 겨울", 리처드의 첫째형인 에드워드가 이끄는 요크가와 헨리 6세가 이끄는 랭카스터가가 왕위를 두고 싸웠던 내전인 '장미전쟁'을 일컫는다.

(장미전쟁의 발단과 전개에 관한 내용은 셰익스피어가 처녀작 '헨리 6세' 3부작에서 자세히 소개된다.

) 그러나 '리처드 3세' 연극이 시작되는 배경은 전쟁이 요크가의 승리로 끝나고 (made glorious summer - '불만한 겨울'이 '찬란한 여름'이 되었으니 전쟁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에드워드가 왕위에 오른  이후다.

*sun - 여기서 'sun'은 'sun'과 'son'의 발음의 유사성을 이용해 교모히 두 개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불만의 겨울'이 뜨거운 '요크가의 태양(sun of York)'에 의해 '찬란한 여름'으로 바뀌었으니 '태양'을            의미하는 'sun'으로 풀이할 수도 있고, '요크가의 아들(son of York)' 인 에드워드에 의해 '불만의 겨울'           로 상징되는 내전이 끝나게 되었으니 '아들'을 의미하는 'son'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는 것.  And all the clouds that lour'd upon our houseIn the deep bosom of the ocean buried."이제 우리 가문을 내리덮던 구름들도 대양의 깊은 가슴 속에 묻혀버렸다"*clouds/lour'd/house - 모두[au]발음이 들어가는 단어들이다.

비슷한 소리가 나는 세 단어를 열거해 놓음                             으로써 문장이 리듬감을 갖게 된다.

 Now are our brows bound with victorious wreaths;"이제 우리의 이마는 화환이 장식하고 있고,"*wreaths-개선자들이 쓰는 화환, 월계관을 뜻한다.

요크가문이 승리를 거두었다는 뜻으로,               이 대사부터 리처드는 전쟁이 승리로 끝나면서 주변의 모습이 어떻게 변하게                되었는지 설명하기 시작한다.

 Our bruised arms hung up for monuments;"상처투성이 갑옷은 기념물이 되어 벽에 걸려 있다"*bruised - "멍이 든", 즉 전쟁통에 상처 투성이가 된 갑옷을 의미한다.

                그런 갑옷이 이제는 무용지물이 되어 장식품꼴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Our stern alarums chang'd to merry meetings,Our dreadful marches to delightful measures."준엄한 전투령은 흥겨운 연회로, 무시무시한 행군도 경쾌한 춤으로 바뀌었다"*alarums- 현대영어의 'alarm'에 해당된다.

*measures- 여기서는 현대영어가 가진 'measure'의 뜻과는 다른 뜻이 사용되었다.

                   이 문장에서의 measure는 '춤'이라는 뜻이다.

 Grim-visag'd war hath smooth'd his wrinkled front;"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있던 전쟁도 이젠 온화한 표정을 짓고"*Grim-visag'd war-"험상궂은 얼굴을 한 전쟁" 전쟁을 의인화한 표현이다.

                     잔뜩 인상을 찌푸리던 전쟁이 "이마의 주름살을 폈으니" (smooth'd hs wrinkled front),                      이 역시 전쟁이 모두 끝났음을 뜻하는 말이다.

 And now,--instead of mounting barbed steedsTo fright the souls of fearful adversaries,--He capers nimbly in a lady's chamberTo the lascivious pleasing of a lute."그리고 이제는, 겁쟁이 적들의 간담을 서늘케하기 위해화려하게 무장한 군마에 올라타는 대신,그는 여인의 침실에서 음탕한 류트가락에 맞춰깡총거리며 야단법석이 아닌가"*barbed steeds-'화려하게 무장한 군마', 리처드는 전쟁을 즐기는 군인이다.

                       이 표현을 통해 전쟁을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리처드의 시선을 엿볼 수 있다.

*fearful-"겁먹은"(frightened)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무시무시한"(frightening)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He-여기서 "그"는 왕좌에 오른 리처드의 첫째 형 에드워드 4세를 칭하는 것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극 중 에드워드는 왕비인 엘리자베스 외에 쇼어부인(Mistress Shore)과도        은밀한 사랑을 나누는데, 전쟁이 끝난 이후 여자에 정신이 팔려있는 에드워드를 리처드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But I,--that am not shap'd for sportive tricks,Nor made to court an amorous looking-glass;"하지만 나는 호색과는 거리가 멀게 태여났을 뿐만 아니라거울을 들여다보고 좋아할만큼 생겨먹지도 못했다"이 대사부터 리처드는 본격적으로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제까지의 대사가 주변의 모습을 단순히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면 이제부터는본격적으로 리처드의 본심과 본성이 들어나게 되는 것이다.

 I, that am rudely stamp'd, and want love's majestyTo strut before a wanton ambling nymph;"나는 꼴사납게 생긴데다, 요염을 피우며 걷는 음탕만 미녀들 앞에서건들거리며 활보할만한 배알도 없다.

"*rudely stamp'd -직역하자면 '대충대충 찍어낸'이라는 뜻이다.

자신이 꼴사납게 태어난 것을                           동전따위를 대충 찍어내는 것에 빗대어 표현한 말이다.

*want-셰익스피어의 어휘 중 want는 종종 'lack'의 의미를 갖는다.

여인네들 앞에서 이토록 자신없다던 리처드는 극중 역설적으로 레이디 앤에게 청혼하는데 성공한다.

레이디 앤의 남편이었던 에드워드왕자와 시아버지였던 헨리6세 모두 리처드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럼에도 앤이 철천지 원수인 리처드의 청혼에 넘어갔다는 것은, 리처드가 그만큼 탁월한 언변술과 연기력을 가졌다는 뜻이다.

1막 2장에서 리처드가 레이디 앤을 설득하는 장면은 기억할만한 명장면이다.

 I, that am curtail'd of this fair proportion,Cheated of feature by dissembling nature,"나는 협잡꾼같은 자연에 속아, 신체의 균형이 뒤틀려버렸다.

"리처드가 왜 자신의 외모에 불만을 갖고 있는지 그 이유가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Deform'd, unfinish'd, sent before my timeInto this breathing world scarce half made up,"기형에다가, 설익은 채, 형체가 반도 만들어지기 전이 세상에 태어나 버리고 말았다"*Deform'd, unfinish'd - 순간 튀어나오는 이 두 단어는 실제로 대사를 칠때 관객에게 상당한 임팩트를 남긴다.

  *unfinish'd - 뒤에 나오는 문장과 상통하는 단어다.

자신이 어머니 뱃속에서 제대로 형상이                    갖추어지기도 전, 즉 정상적으로 '완성되기도 전'에 태어났다는 뜻이다.

 And that so lamely and unfashionableThat dogs bark at me as I halt by them;--"그 절뚝거리는 모양새가 어찌나 꼴사나운지내가 앞에 서면 개마저 짖어댄다.

" 리처드 자신의 말처럼 리처드는 흉칙하게 태어난 불구다.

곱추인데다가 얼굴은 못생기고  한쪽 팔은 기형적으로 뒤틀렸으며 다리마저 절뚝거린다.

실제 역사상의 리처드 3세가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아마 셰익스피어는 리처드의 사악한 본성을 시각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이런 설정을 한 것 같다.

(당시에는 악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 신체적 장애를 갖고 태어난다고 믿었다) Why I, in ths weak piping time of peace,Have no delight to pass away the time,Unless to spy my shadow in the sun,And descant on mine own deformity:"나약한 피리 소리 들리는 평화시대라 할 지라도,나는 살아가는 데 낙이 없다.

기껏해야 양지에서 내 그림자나 들여다 보며그 병신꼴을 즉흥시로 읊어볼 뿐."*weak piping time of peace - 목동들이 즐겨 부는 피리(pipe)는 군악대의 장엄한  북소리나                                           트럼펫과 대조되는 소재로서, 평화시대를 곱지않게 바라보는 리처드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거기다가 "나약하게 울리는 피리소리(weak piping)"라고                                           하였으니 이 평화가 곳 깨지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에서 리처드의 계략에 의해 영국은 다시금 혼란에 싸이게 된다.

)  And therefore,--since I cannot prove a lover,To entertain these fair well-spoken days,--I am determined to prove a villain,And hate the idle pleasures of these days."그러므로 이 평화로운 날들을 즐길만한 미남자가 되지 못할 바에야내가 악담임을 드러내고 오늘날의 이 헛된 쾌락을 증오해 주겠다" Plots have I laid, inductions dangerous,By drunken prophecies, libels, and dreams,To set my brother Clarence and the kingIn deadly hate the one against the other:"음모는 이미 짜 놓았다.

시작은 위험하겠지만,터무니없는 예언과, 중상모략, 해몽으로 나의 형제인 클라렌스와 국왕이 서로를 죽도록 미워하도록 이간질하는 거다.

"*inductions-고어로서, '시작', '서막'등을 의미한다.

클라렌스는 리처드의 둘째형이다.

국왕과 왕자가 죽고 나면 그 다음 서열이 되는클라렌스를 없애기 위해 리처드가 음모를 짰음을 말해주는 부분이다.

 And if King Edward be as true and justAs I am subtle, false, and treacherous,This day should Clarence closely be mew'd up,--About a prophecy which says that GOf Edward's heirs the murderer shall be."나는 간악하고 교활한 반역자이지만,에드워드 왕이 진실되고 정의롭다면오늘 클라렌스는 필시 투옥신세를 면치 못할 거다.

이름에 G가 들어간 이가 에드워드의 후계자를 죽이게 될 거란 예언이 돌고 있으니까."*mew'd up-(='caged') '투옥된다'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클라렌스공의 이름은 조지(George)다.

때문에 에드워드 왕은 리처드가 퍼트린 이 소문을 믿고 '이름에 G가 들어간 이'인 클라렌스를 투옥하고 결국에는 사형선고까지 내리게 된다.

그러나 사실 에드워드의 후계자를 죽이게 될 'G가 들어간 이'는 조지 클라렌스가 아닌 리처드 글로스터(Richard Gloucester), 즉 리처드 본인이다.

 Dive, thoughts, down to my soul:--here Clarence comes."음모여, 내 영혼 속 깊이 숨어있어라, 여기 클라렌스가 온다.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온갖 음흉한 생각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듯한 재밌는 문장이다.

무대에 클라렌스가 등장하는 것으로 리처드의 독백은 이렇게 끝이 난다.

 연극을 보는 관객은 이 독백만 듣고서도 리처드 3세가 심상치 않은 악당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관객들에게 자신이 행한 악행과 앞으로 행할 악행에 대해 저렇게 자신있게 말하는 것을 보면 리처드는 악행 자체를 즐기는 인간이라는 사실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악행을 저지른 후 죄책감에 홀로 괴로워 하는 '햄릿'의 클로디어스나 '맥베스'의 맥베스와 비교해 보았을 때, 리처드는 향후 전개될 이야기에서도 잘못에 대해 괴로워 하기는 커녕 오히려 자랑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리처드 3세는 단연코 최고의 '중세 느와르'다.

셰익스피어가 재미없고 따분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당장 이 작품을 읽어보라. ? 리처드 3세, 내가 가장 좋아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하나로 온갖 권모술수로 왕위에 올랐으나 결국 패망하고 마는 영국 왕 리처드 3세의 일생을 다룬 역사극이다.

 이 작품 최고의 매력은 빠르게 전개되는 스토리의 극적 재미와 지극히 악랄한 캐릭터의 심층적인 묘사다.

총 5막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주인공 리처드의 음산한 독백으로 시작되는데, 리처드는 이 독백을 통해 관객들에게 자신의 악랄한 천성과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계획하고 있는 음모를 여실히 들어낸다.

 햄릿의 독백만큼은 아닐지라도, 역사극 중에서만큼은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이 독백 전문을 한번 해석해 보았다.

  Now is the winter of our discontentMade glorious summer by this sun of York;"요크의 태양에 의해 불만의 겨울이 가고 찬란한 여름이 도래했다"*Now - 연극을 시작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단어가 있을까. *winter of our discontent - "불만의 겨울", 리처드의 첫째형인 에드워드가 이끄는 요크가와 헨리 6세가 이끄는 랭카스터가가 왕위를 두고 싸웠던 내전인 '장미전쟁'을 일컫는다.

(장미전쟁의 발단과 전개에 관한 내용은 셰익스피어가 처녀작 '헨리 6세' 3부작에서 자세히 소개된다.

) 그러나 '리처드 3세' 연극이 시작되는 배경은 전쟁이 요크가의 승리로 끝나고 (made glorious summer - '불만한 겨울'이 '찬란한 여름'이 되었으니 전쟁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에드워드가 왕위에 오른  이후다.

*sun - 여기서 'sun'은 'sun'과 'son'의 발음의 유사성을 이용해 교모히 두 개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불만의 겨울'이 뜨거운 '요크가의 태양(sun of York)'에 의해 '찬란한 여름'으로 바뀌었으니 '태양'을            의미하는 'sun'으로 풀이할 수도 있고, '요크가의 아들(son of York)' 인 에드워드에 의해 '불만의 겨울'           로 상징되는 내전이 끝나게 되었으니 '아들'을 의미하는 'son'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는 것.  And all the clouds that lour'd upon our houseIn the deep bosom of the ocean buried."이제 우리 가문을 내리덮던 구름들도 대양의 깊은 가슴 속에 묻혀버렸다"*clouds/lour'd/house - 모두[au]발음이 들어가는 단어들이다.

비슷한 소리가 나는 세 단어를 열거해 놓음                             으로써 문장이 리듬감을 갖게 된다.

 Now are our brows bound with victorious wreaths;"이제 우리의 이마는 화환이 장식하고 있고,"*wreaths-개선자들이 쓰는 화환, 월계관을 뜻한다.

요크가문이 승리를 거두었다는 뜻으로,               이 대사부터 리처드는 전쟁이 승리로 끝나면서 주변의 모습이 어떻게 변하게                되었는지 설명하기 시작한다.

 Our bruised arms hung up for monuments;"상처투성이 갑옷은 기념물이 되어 벽에 걸려 있다"*bruised - "멍이 든", 즉 전쟁통에 상처 투성이가 된 갑옷을 의미한다.

                그런 갑옷이 이제는 무용지물이 되어 장식품꼴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Our stern alarums chang'd to merry meetings,Our dreadful marches to delightful measures."준엄한 전투령은 흥겨운 연회로, 무시무시한 행군도 경쾌한 춤으로 바뀌었다"*alarums- 현대영어의 'alarm'에 해당된다.

*measures- 여기서는 현대영어가 가진 'measure'의 뜻과는 다른 뜻이 사용되었다.

                   이 문장에서의 measure는 '춤'이라는 뜻이다.

 Grim-visag'd war hath smooth'd his wrinkled front;"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있던 전쟁도 이젠 온화한 표정을 짓고"*Grim-visag'd war-"험상궂은 얼굴을 한 전쟁" 전쟁을 의인화한 표현이다.

                     잔뜩 인상을 찌푸리던 전쟁이 "이마의 주름살을 폈으니" (smooth'd hs wrinkled front),                      이 역시 전쟁이 모두 끝났음을 뜻하는 말이다.

 And now,--instead of mounting barbed steedsTo fright the souls of fearful adversaries,--He capers nimbly in a lady's chamberTo the lascivious pleasing of a lute."그리고 이제는, 겁쟁이 적들의 간담을 서늘케하기 위해화려하게 무장한 군마에 올라타는 대신,그는 여인의 침실에서 음탕한 류트가락에 맞춰깡총거리며 야단법석이 아닌가"*barbed steeds-'화려하게 무장한 군마', 리처드는 전쟁을 즐기는 군인이다.

                       이 표현을 통해 전쟁을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리처드의 시선을 엿볼 수 있다.

*fearful-"겁먹은"(frightened)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무시무시한"(frightening)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He-여기서 "그"는 왕좌에 오른 리처드의 첫째 형 에드워드 4세를 칭하는 것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극 중 에드워드는 왕비인 엘리자베스 외에 쇼어부인(Mistress Shore)과도        은밀한 사랑을 나누는데, 전쟁이 끝난 이후 여자에 정신이 팔려있는 에드워드를 리처드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But I,--that am not shap'd for sportive tricks,Nor made to court an amorous looking-glass;"하지만 나는 호색과는 거리가 멀게 태여났을 뿐만 아니라거울을 들여다보고 좋아할만큼 생겨먹지도 못했다"이 대사부터 리처드는 본격적으로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제까지의 대사가 주변의 모습을 단순히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면 이제부터는본격적으로 리처드의 본심과 본성이 들어나게 되는 것이다.

 I, that am rudely stamp'd, and want love's majestyTo strut before a wanton ambling nymph;"나는 꼴사납게 생긴데다, 요염을 피우며 걷는 음탕만 미녀들 앞에서건들거리며 활보할만한 배알도 없다.

"*rudely stamp'd -직역하자면 '대충대충 찍어낸'이라는 뜻이다.

자신이 꼴사납게 태어난 것을                           동전따위를 대충 찍어내는 것에 빗대어 표현한 말이다.

*want-셰익스피어의 어휘 중 want는 종종 'lack'의 의미를 갖는다.

여인네들 앞에서 이토록 자신없다던 리처드는 극중 역설적으로 레이디 앤에게 청혼하는데 성공한다.

레이디 앤의 남편이었던 에드워드왕자와 시아버지였던 헨리6세 모두 리처드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럼에도 앤이 철천지 원수인 리처드의 청혼에 넘어갔다는 것은, 리처드가 그만큼 탁월한 언변술과 연기력을 가졌다는 뜻이다.

1막 2장에서 리처드가 레이디 앤을 설득하는 장면은 기억할만한 명장면이다.

 I, that am curtail'd of this fair proportion,Cheated of feature by dissembling nature,"나는 협잡꾼같은 자연에 속아, 신체의 균형이 뒤틀려버렸다.

"리처드가 왜 자신의 외모에 불만을 갖고 있는지 그 이유가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Deform'd, unfinish'd, sent before my timeInto this breathing world scarce half made up,"기형에다가, 설익은 채, 형체가 반도 만들어지기 전이 세상에 태어나 버리고 말았다"*Deform'd, unfinish'd - 순간 튀어나오는 이 두 단어는 실제로 대사를 칠때 관객에게 상당한 임팩트를 남긴다.

  *unfinish'd - 뒤에 나오는 문장과 상통하는 단어다.

자신이 어머니 뱃속에서 제대로 형상이                    갖추어지기도 전, 즉 정상적으로 '완성되기도 전'에 태어났다는 뜻이다.

 And that so lamely and unfashionableThat dogs bark at me as I halt by them;--"그 절뚝거리는 모양새가 어찌나 꼴사나운지내가 앞에 서면 개마저 짖어댄다.

" 리처드 자신의 말처럼 리처드는 흉칙하게 태어난 불구다.

곱추인데다가 얼굴은 못생기고  한쪽 팔은 기형적으로 뒤틀렸으며 다리마저 절뚝거린다.

실제 역사상의 리처드 3세가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아마 셰익스피어는 리처드의 사악한 본성을 시각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이런 설정을 한 것 같다.

(당시에는 악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 신체적 장애를 갖고 태어난다고 믿었다) Why I, in ths weak piping time of peace,Have no delight to pass away the time,Unless to spy my shadow in the sun,And descant on mine own deformity:"나약한 피리 소리 들리는 평화시대라 할 지라도,나는 살아가는 데 낙이 없다.

기껏해야 양지에서 내 그림자나 들여다 보며그 병신꼴을 즉흥시로 읊어볼 뿐."*weak piping time of peace - 목동들이 즐겨 부는 피리(pipe)는 군악대의 장엄한  북소리나                                           트럼펫과 대조되는 소재로서, 평화시대를 곱지않게 바라보는 리처드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거기다가 "나약하게 울리는 피리소리(weak piping)"라고                                           하였으니 이 평화가 곳 깨지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에서 리처드의 계략에 의해 영국은 다시금 혼란에 싸이게 된다.

)  And therefore,--since I cannot prove a lover,To entertain these fair well-spoken days,--I am determined to prove a villain,And hate the idle pleasures of these days."그러므로 이 평화로운 날들을 즐길만한 미남자가 되지 못할 바에야내가 악담임을 드러내고 오늘날의 이 헛된 쾌락을 증오해 주겠다" Plots have I laid, inductions dangerous,By drunken prophecies, libels, and dreams,To set my brother Clarence and the kingIn deadly hate the one against the other:"음모는 이미 짜 놓았다.

시작은 위험하겠지만,터무니없는 예언과, 중상모략, 해몽으로 나의 형제인 클라렌스와 국왕이 서로를 죽도록 미워하도록 이간질하는 거다.

"*inductions-고어로서, '시작', '서막'등을 의미한다.

클라렌스는 리처드의 둘째형이다.

국왕과 왕자가 죽고 나면 그 다음 서열이 되는클라렌스를 없애기 위해 리처드가 음모를 짰음을 말해주는 부분이다.

 And if King Edward be as true and justAs I am subtle, false, and treacherous,This day should Clarence closely be mew'd up,--About a prophecy which says that GOf Edward's heirs the murderer shall be."나는 간악하고 교활한 반역자이지만,에드워드 왕이 진실되고 정의롭다면오늘 클라렌스는 필시 투옥신세를 면치 못할 거다.

이름에 G가 들어간 이가 에드워드의 후계자를 죽이게 될 거란 예언이 돌고 있으니까."*mew'd up-(='caged') '투옥된다'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클라렌스공의 이름은 조지(George)다.

때문에 에드워드 왕은 리처드가 퍼트린 이 소문을 믿고 '이름에 G가 들어간 이'인 클라렌스를 투옥하고 결국에는 사형선고까지 내리게 된다.

그러나 사실 에드워드의 후계자를 죽이게 될 'G가 들어간 이'는 조지 클라렌스가 아닌 리처드 글로스터(Richard Gloucester), 즉 리처드 본인이다.

 Dive, thoughts, down to my soul:--here Clarence comes."음모여, 내 영혼 속 깊이 숨어있어라, 여기 클라렌스가 온다.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온갖 음흉한 생각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듯한 재밌는 문장이다.

무대에 클라렌스가 등장하는 것으로 리처드의 독백은 이렇게 끝이 난다.

 연극을 보는 관객은 이 독백만 듣고서도 리처드 3세가 심상치 않은 악당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관객들에게 자신이 행한 악행과 앞으로 행할 악행에 대해 저렇게 자신있게 말하는 것을 보면 리처드는 악행 자체를 즐기는 인간이라는 사실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악행을 저지른 후 죄책감에 홀로 괴로워 하는 '햄릿'의 클로디어스나 '맥베스'의 맥베스와 비교해 보았을 때, 리처드는 향후 전개될 이야기에서도 잘못에 대해 괴로워 하기는 커녕 오히려 자랑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리처드 3세는 단연코 최고의 '중세 느와르'다.

셰익스피어가 재미없고 따분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당장 이 작품을 읽어보라.  뛰어난 행정능력을 인정받아지지자들의 협조를 받으며 즉위했지만조카를 잔인하게 숙청했다는 면에서 신뢰를 잃고 보즈워스 전투에서아군의 ☆배신☆으로 전사했다고 하네요..뛰어난 행정가이자 군인이었지만 ☆도덕성의 결함☆으로지지세력을 잃으면 오래 못간다는것을잘 보여준 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 얘는 항상 사회성의 결함,사교성의 결함,성격파탄자,소시오패스,은둔형 외톨이,도덕성의 결함 이런 애들만 맡지???)하지만 이건 사극이 아니라 셰익스피어의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거니까좀 다를 수도 있겠죠?왕쟈님도 아니고 왕이래요 왕☆THE KING☆ (하지만 도덕성의 결함이 있지)왕관 너무 좋아하는 우리 애들.Honey, you should see me in a crown필터 좀 다르게 한거랑 확대한거와...진짜 이쁘다.

..저런 왕이라면 진짜 좋아할 수 있어요ㅠㅠ(도덕성의 결함이라도)리처드 3세의 초상왼쪽이 만약에 그 보즈워스 전투라면리처드 3세는 저기서 전사하는 건가요예고편 보니까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던데요.그래도 잼있겠다.

방영일이..5월 7일 한국시각으로 새벽 5시랬죠?저 그때 어떻게 일어나요..토요일이라 다행이지 일요일이었어봐학교가서 하루종일 졸지.하지만 토욜이니 5시에 일어나 우리리처드 3세를 보고 다시 잠들겠습니다.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장미전쟁"이라는 것을 배웠다면 너무 쉽게 이해가 되는 작품이에요

그럼 <리차드 3세>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고 어떤 역사적인 배경이 있었는지를 알아볼게요

이 작품에 등장하는 "리차드 3세"는 실존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극을 셰익스피어 사극이라고도 불린다.

영국의 대표적인 폭군"리차드 3세" 영국의 국왕이자 가장 추악한 폭군으로 알려진 "리차드 3세"는 요크 왕가의 '에드워드 4세'의 막내 동생이지만 조카를 죽이고 자신이 왕에 오르면서 요크 왕가의 마지막 왕이지만, 영국의 가장 사악한 군주로 알려져 있다.

  1455

1485년까지 플랜태저넷 왕가에 뿌리를 두고 있는 요크셔 왕가와 랭커스터 왕가는 왕위 계승을 두고 장미전쟁(요크 왕가는 흰 장미를,  랭커스터 왕가는 붉은 장미를 표식으로 삼았다)을 치루고 있었다.

당시 "리차드 3세"의 형이었던 '에드워드 4세'가 랭커스터 왕가였던 '헨리 6세'를 폐위시키고 왕위에 올랐다.

1483년 '에드워드 4세'가 사망하자 어린 조카 '에드워드 5세'가 왕위에 오르자 그는 자신의 조카의 어머니(형수)였던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자신의 형인 '에드워드 4세' 결혼이 무효라고 주장하며 결국 조카를 런던 탑에 가두어 죽게 만들고 왕위에 올랐지만, 1483

1485년 장미전쟁(영국 왕위계승 전쟁)에서 패하면서 2년 간 짧은 영국을 통치하였다.

  왕위 찬탈 2년만에 "리차드 3세"는 1485년 웨일즈 보즈워스 전투에서 헨리 튜더(헨리 7세)에게 패하면서 사망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요크 왕가는 몰락하고 만다.

(영국 역사상 왕이 전쟁에서 사망한 마지막 왕으로 기록되어 있다.

) "리차드 3세"의 뒤를 이어 랭커스터 왕가의 '헨리 7세'가 튜더 왕조를 열었다.

  역사학자들은 "리차드 3세"가 죽으면서중세시대가 막을 내렸다"라고 한다.

셰익스피어는 "리차드 3세"를 사악한 왕의 이미지를 극대화 시킨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역사적으로는 폭군이 아니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 아무튼 셰익스피어의 작품 <리차드 3세>는 영국 역사상 가장 사악한 폭군으로 작품은 이야기 하고 있다.

 "리차드 3세"와 유사한우리나라 조선의 왕은 누구? 절대 악인이라 칭하는 "리차드 3세"(1452년에 태어남)와 동시대에 한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바로 조선의 7대 임금 "세조"(1417년 태어남)는 어린 조카 단종을 폐위시키고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보내 17세의 어린 나이에 사망케 하고 1455년부터 1468년까지 왕위에 있었다.

영화 '관상'에서도 배우 이정재가 연기한 역할이 세조 모습인데 이 영화에서도 "세조"는 폭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 본격적으로 2017 한예종 지정작품 셰익피어 作 <리차드 3세> 작품을 알아보자.  이 작품의 쓰여진 시기는 <헨리 6세> 3부작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이 극의 줄거리는 <헨리 6세 3부>를 이어받고 있는데,(위에서 언급한 장미전쟁이 계속되고 있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헨리 6세 3부>는 1591년에 공연되었다.

그리고 1592년 6월 런던에 역병이 유행하여 모든 극장이 일시적으로 폐쇄되었다.

따라서 이 극의 제작 연대를 1591년에서 1592년 6월 사이일 것으로 추정한다.

  이 극의 직접적인 자료는 홀린세드의 "영국일기(英國日記)"와 홀의 "사기(史記)"이며, 부분적으로는 토머스 모어의 소설 <리차드 3세>도 참조했으리라 생각된다.

 실존인물인 "리차드 3세"는 1483년에 즉위하여 1485년 보즈워드에서 전사함으로, 그의 재위기간은 2년밖에 안된다.

 그리고 에드워드 4세가 복위한 1471년부터 시작하여 15년간에 이르는 사실을 담고 있지만,  이 극은 그것을 2,3주일의 사건으로 압축되어 표현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 극은 비극적 색체가 짙은 셰익스피어 사극(史劇)이다.

<리차드 3세>가 인과응보를 받는 운명은 그리스 비극과 패턴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인과응보의 여신 [네메시스]에게 복수당하는 것은 "리차드 왕" 한 사람뿐이 아니라 '클레런스', '헤이스팅즈', '버킹엄' 그리고 '에드워드 4세'까지도 모두 그 대상이다.

'마가렛'은 배후에서 저주의 의식을 주관하는 [네메시스] 역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형식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악마론의 형식과도 일치한다.

자기만은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차례차례 함정에 빠지고, 끝으로 남의 운명 뿐 아니라 자신의 운명까지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리차드" 그 자신도 파멸하고 만다.

이렇게 극 전체에 운명의 존재가 일관하고 있다.

 리차드는 불구자인데다 잔인한 권모술수에 뛰어난 철저한 악역이다.

그뿐 아니라, 그는 자신의 악을 의식하여 그것을 감추려 들지 않고 오히려 공개적이며, 수단으로 위선의 탈을 쓰는 수가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자기가 위선을 가장하고 있음을 자타에게 감추려고 하지 않고 도리어 공개해 버리거나, 또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상대방의 둔감함을 조소하기도 한다.

그는 적어도 자신은 그 위선을 분명히 의식하지 않고서는 배겨내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는 또한 쉴새 없이 연기를 한다.

겸손한 성자를 가장하여 위선을 연기할 뿐아니라, 극 초반의 독백이며 앤에게 구애하는 장면, 그는 줄곧 연기를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중세극이나 로마극에서의 악역을 조상으로 하는 리차드 왕은 악을 위한 악을 마음껏 발휘하여 희열을 느끼고 끝내는 절망 속에 파멸하지만, 내적갈등은 전혀 검험하지 않는다.

이 점이 후기의 대비극의 주인공들과 다른 점이다.

리차드의 운명은 권력의 절정이 곧 추락이고, 이래서 <헨리 6세 제1부>부터 회전하기 시작한 운명의 거대한 수레바퀴는 한 바퀴 빙 돌아가서 다시 원점에 도달한 셈이다.

등장인물 분석을 통해 <리차드 3세> 이해하기!
*리차드 3세 역사적 인물(1452

1485)이며, 그가 죽기전 1483

1485년까지 영국을 통치하였다.

요크 가문의 마지막 왕인 그는 장미전쟁때 요크 가문을 위하여 싸워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는 당시 13살이었던 조카 에드워드 5세의 섭정이 되었는데, 자신의 조카가 적법한 왕위계승자가 아니라고 선언하였다.

리차드는 어린 조카와 그 동생인 요크 공작 리차드를 함께 런던 탑에 감금하고, 후에 그들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절대군주로서 훌륭한 통치력을 발휘했음에도 불구하고, 리차드 3세는 젊은 왕자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 때문에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1485년 랑가스터 가문 쪽으로 왕권을 주장한 리치먼드 백작인 헨리 튜더가 군대를 일으켜 리차드의 군대를 물리치고 보스워스 필드에서 그를 죽였다.

대중들의 상상 속에서 리차드 3세는 같은 이름의 셰익스피어의 극에 등장하는 괴물같은 꼽추로 남아 있지만, 이는 역사가인 라파엘홀린셰드의 <연대기>에 그의 등이 굽었다는 언급에서 기인한 것이고, 사실상 그가 꼽추였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더욱이 그가 정말 런던 탑에서 살해된 조카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지도 알려진 바 없다.

아마도 진정한 사실에 대해서 알 수 없었던 셰익스피어는 엘리자베스 1세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리차드의 사악함을 과장한 것으로 여겨진다.

사실상 왕권을 주장할 권리가 미약했지만 보스워스 필드에서 리차드를 죽이고 왕이 된 헨리 튜더는 여왕의 직계 선조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엘리자베스 시대에는 리차드를 거의 악마와 같은 인물로 묘사하고 선전하는 것이 중요했다.

[리처드 3세] 사실은.


그렇게 함으로써 반대로 헨리는 적어도 왕권에 대한 분명한 도덕적 권리를 가지고 있었던 영웅적인 구원자로 제시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글로스터 공작 리차드(후일은 리차드 3세)요크 공작 리차드의 4남으로 <헨리 6세 2부>의 2막 6장 이후에서 <리차드 3세>로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부여받은 직위이다.

이 작위는 불운한 글로스터 공작 험프리의 작위로 악운의 전조로 작용하기도 한다.

*앤 왕비 역사적 인물(1456

1485)이며, 리차드 3세의 부인으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1막2장에서 죽은 남편과 그의 아버지인 헨리 6세의 살해자인 리차드의 구애를 받자 앤은 처음에는 그를 저주하며 비난한다.

그러나 앤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의 남편을 죽였다는 리차드의 말에 반쯤 최면이 걸린 듯 결국 그러부터 반지를 받는다.

4막1장에서 다시 등장할 때, 그녀는 이미 리차드의 아내이며, 왕권을 장악한 리차드의 왕비로서 왕관을 쓰기 위해 소환된다.

그녀는 리차드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예언하는데, 나중에 리차드의 대사를 통해 관객은 그녀의 말대로 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앤은 <헨리 6세 3부>에서 위릭 공작이 자신의 맏딸과 왕자의 결혼에 동의할 때 처음 언급된다.

역사적인 인물로서의 앤은 워릭의 막내 딸이었고, 왕자와 약혼은 햐였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

어쨋든 그녀는 1474년에 리차드와 결혼하였다.

역사적으로 그녀는 헨리 6세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극 속에 등장하는 그녀와 리차드의 대화는 전적으로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나중에 리차드가 엘리자베스 왕비의 딸에게 구애하는 장면과 대조되는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이 장면을 고안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앤은 살해당했다는 역사적인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에드워드 4세역사적 인물(1442

1483)이며 <헨리 6세 2부>와 <헨리 6세 3부> 그리고 <리차드 3세> 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헨리 6세 2부에서의 아버지 '요크 공작 리처드'가 반역죄로 체포되자 에드워드는 동생 리차드와 함께 보석을 신청한다.

3부에서는 요크 공작이 사후에 왕위를 물려줄 테니 자신의 생전만큼은 왕위를 유지하게 해달라는 '헨리 6세'의 간청에 응하자, 에드워드와 리차드 두 형제는 아버지에게 왕위에 오를것을 재촉한다.

남편의 비굴함에 분노한 헨리 6세의 왕비 '마가렛'이 찬탈 세력에 대항하여 군대를 일으키자 에드워드 형제는 토우튼 전투에서 승리하게 되고 맏형 에드워드가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 후 에드워드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프랑스의 보나부인과 결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사로운 감정으로 남편의 장원 문제 때문에 탄원하러 온 미망인 '그레이 부인 엘리자베스 우드빌'에게 반해 그녀를 왕비로 맞게된다.

이렇듯 군주로서의 공적인 의무를 망각하고 번번이 사적인 감정에 탐닉하거나 신중하지 못한 태도를 보이는 모습은 <리차드 3세>에서도 반복된다.

이 작품에서 에드워드는 기력이 쇠한 늙고 무능한 왕으로 그려지고 있다.

동생 리차드는 왕권에 대한 야심으로 우선 둘째 형 클라랜스 공작을 제거할 음모를 꾸미게 되는데, 에드워드는 이를 간파하지 못한 채 클라렌스의 죽음을 방치한다.

극의 초반에 잠시 모습을 보이다가 2막 2장에서 승하 소식이 전해지면서 리차드의 야심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엘리자베스 왕비 엘리자베스 우드빌 그레이는 역사적 인물(1437

1492)로서 <리차드 3세>에서 그녀는 엘리자베스 왕비로 등장하여 죽은 남편의 동생인 리차드와 권력을 두고 싸우는 상대가 된다.

그녀는 리차드가 왕권의 찬탈을 위해 죽인것으로 알려진 런던 탑의 어린 왕자들의 어머니이다.

그년느 세 명의 왕족 여인들로 구성된 코러스의 일원이 되어 왕비 마가렛, 늙은 글로스터 공작부인과 함께 런던 탑 밖에서 자신들의 운명을 한탄하는 상징적인 장면에 등장한다.

후에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 자신의 딸 엘리자베스 공주와 결혼하고자 하는 리차드의 음모로부터 딸을 지켜야 하는 처지에 놓이지만 결국 리차드의 감언이설에 넘어가게 된다.

*클레런스 공작 조지 요크(에드먼드 4세 동생)역사 속의 실존 인물(1449

1478)이며, <리차드 3세>에서는 리차드의 바로 손위 형으로 등장하는데 라차드의 맏형 에드먼드 4세가 승하하게 되면 바로 다음 왕위를 잇게 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다.

따라서 왕권의 야망에 젖어 있는 리차드는 맏형이 승하하게 될 경우를 대비하여 'G'로 시작하는 이르을 가진 자가 왕의 후선을 살해할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려 조지라는 이름을 가진 형을 제거할 음모를 꾸민다.

음흉하기 짝이 없는 리차드는 자신의 속내를 감춘 채 이 소문으로 런던 탑에 투옥된 형 클라렌스를 찾아가 모두가 엘리자베스 왕비의 음모 때문이라 하며 왕에게 클라렌스의 구명 운동을 탄원을 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클라렌스는 익사하여 지옥에 끌려가 자신이 살해한 사람들의 유령을 만나는 악몽을 꾸게 된다.

꿈에서 개어난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불안감에 사로잡히지만 여전히 리차드의 약속을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리차드는 자객을 보내 형 클라렌스를 살해한다.

자객들이 그를 칼로 찔러 죽인 후 시체를 포도주통에 쳐박아버림으로써 리차드의 왕권 탈취의 장애물 중 한 사람이 사라지게 된다.

이 작품에서 클라렌스의 역은 상대적으로 미미하지만 리차드의 일련의 왕권 탈취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클라렌스가 꿈을 꾼 후 느끼는 정신적인 고통이나 불안감, 그리고 그가 살해당하는 끔찍한 장면 등은 관객에게 리차드의 악행을 보다 더 소름끼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클라렌스의 살해 장면은 실제 영국 역사의 내용과 다르다.

실제로 클라렌스는 여러 차례 에드워드 4세에 대한 음모에 가담했었고 리차드는 그를 위해 여러번 탄원하기도 했었다.

에드워드 4세는 마침내 클라렌스를 반란죄로 재판에 회부하게 되고 사형을 선고한다.

그러나 사형이 은밀히 진행되어 혹시 리차드가 암살하지 않았나 하는 소문이 그치질 않았다.

바로 이점을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작품에서 리차드의 사악함을 드러내는 장면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클라렌스는 <헨리 6세 3부>에도 등장하는데 여기에서는 클라렌스 공작이라는 칭호를 받기 전 조지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리치먼드 백작 역사적 인물(1457

1509)이며, <헨리 6세 3부>와 <리차드 3세>에 나오는 등장인물이다.

<헨리 6세 3부>에서 리치먼드는 어린 소년으로 등장하는데, 헨리 왕은 어린 헨리 리치먼드가 언젠가는 영국의 왕이 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리차드 3세>에서 리치먼드는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리차드의 대항할 반군을 이끌고 등장하여 자신의 군대에서 전투를 대비시킨다.

리차드와 반대편 평야에 진을 치고 있던 그는 리차드가 혼령들에게 시달림을 당하고 있는 바로 그 시간에 잠을 자고 있다.

보스워스 전투에서 그는 리차드와 단신으로 결투를 하여 그를 죽이게 되는데, 그의 승리는 영국을 리차드의 사악함에서 구출한 사건으로 여겨진다.

그는 스스로 왕이 된 것을 포고하고 튜더 가문에 의하여 영국에 평화의 시대가 온것을 알린다.

역사적으로 리치먼드 백작인 헨리 튜더는 헨리 7세가 되어 1485년부터 1509년까지 영국을 통치했다.

*버킹엄 공작 역사적 인물(1455

1483)이며, <리차드 3세>에서 리차드의 가장 중요한 지지자이지만 왕이 된 후에 리차드가 자신의 고마움을 잊고 약속을 지키지 않자 리차드를 배신했다가 곧 사로잡혀 처형당한다.

버킹엄은 리차드가 왕이 되기 전 그의 대변인 역할을 하며, 특히 런던 시장과 시민들을 설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의 과장되면서도 모호한 대화술은 교활한 정치가의 전형을 보여주며, 특히 헤이스팅스를 함정에 빠뜨리는 음모를 꾸미는 등의 여러 상황에서 라차드의 중요한 조언자 역할을 한다.

 하지만 4막2장에서 리차드가 왕이 된 후에 웨일즈의 왕자 형제를 죽이면서 더욱 권력에 집착하자, 버킹엄은 약간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에 화가 난 리차드는 버킹엄에게 약속했던 백작령을 거절하고, 버킹엄은 자신이 헤이스팅스가 겪었던 운명에 처할 위험 속에 있음을 감지한다.

그는 반군을 일으키지만 곧 체포되고, 5막1장에서 사형되기 직전에 과거의 명세들과 예언들을 회상하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거의 희랍극의 코러스처럼 말한다.

 셰익스피어가 출전으로 삼은 역사적 자료들은 버킹엄이 반란을 일으킨 것에 대해 몇가지 가능한 동기를 제공했지만, 셰익스피어는 분명히 사실이 아닌 것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리차드가 그의 변절 이전에 버킹엄에게 백작령을 주었기 때문이다.

버킹엄의 반란에 대한 분명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는 리치먼드가 리차드를 무너뜨리기를 기대했을 수도 있고, 스스로 왕권에 대한 야심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는 리차드 2세의 막내형제인 글로스터 공작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2017 한예종 지정작품 <리차드 3세>의 장면별 작품 줄거리!
1막1장 - 글로스터 공작인 리차드가 등장하여 장미전쟁에서 요크가문이 승리하면서 모처럼 맞은 태평성대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피력한다.

그는 신체적 결함 때문에 연예나 유흥을 즐기지 못하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면서, 평화의 적이 되어 왕권을 찬탈하기 위한 음모를 획책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는 'G'로 시작되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왕권을 차지할 것이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려서 둘째 형인 클라렌스 공작 조지와 맏형이자 국왕이니 에드워드 4세 사이를 이간질한다.

리차드는 국왕의 명령에 의해서 런던 탑으로 끌려가던 클라렌스를 만나 그의 처지를 동정하는 척하면서, 그가 투옥되는 원인을 엘리자베스 왕비 일당의 공작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1막2장 - 리차드는 앤 부인이 시아버지인 헨리 6세의 상여를 따라가는 것을 목격하고 영구 행렬을 가로막는다.

앤은 리차드를 헨리 6세와 남편인 에드워드를 살해한 장본인으로 지목하면서 그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리차드는 그들을 죽인 이유가 아름다운 그녀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둘러대면서 그녀에게 구애한다.

그녀는 처음에 그의 이런 변명을 경멸하지만, 결국 반신반의하면서도 그에게 설득되고 만다.

1막3장 - 엘레자베스 왕비와 그레이, 도넷, 리버스가 국왕 에드워드의 병세를 걱정하면서, 그가 죽으면 그들을 미워하는 리차드가 에드워드 왕세자의 섭정 역을 맡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리차드가 등장하여 요크 가문에 대한 왕비 집안의 충성심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어서 죽은 헨리 6세의 부인인 마가렛 왕비가 유령처럼 나타나서 현재 권세를 누리고 있는 모든 자들에게 천벌이 내릴 것이라고 저주를 퍼붓는다.

그때까지 서로 다투던 리차드와 왕비 일당이 마가렛의 저주를 받자 합세하여 그녀를 질책한다.

1막4장 - 런던 탑에 갇힌 클라렌스가 간밤에 꾸었던 악몽을 이야기한다.

그는 배를 타고 가다가 글로스터에게 우연히 떠밀려 물에 빠져 죽는 꿈을 꾸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명부에 세계에서 그가 생전에 랑카스터 가를 배신했던 일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꿈을 꾸었다고 말한다.

다시 잠을 자던 그는 자객들의 난입 소리에 놀라서 깨어난다.

그는 자객들에게 암살의 부당성을 역설하지만 죽음을 면하지 못한다.

자객들 중 한 명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도망친다.

2막1장 - 국왕 에드워드는 반목을 일삼던 왕비 일당과 신하들을 화해시키면서 흡족해한다.

그러나 이때 리차드가 나타나서 클라렌스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자 평화의 분위기는 깨어지고 에드워드 왕은 다시 근심에 빠진다.

에드워드 왕은 클라렌스의 처형을 취소하는 명령을 내렸었다고 말하지만, 리차드는 처형 명령이 이미 살해된 뒤 취소 명령이 전달되었다고 대답한다.

2막2장 - 국왕의 모친인 요크 공작부인이 손자들과 이야기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그녀는 손자들에게 자신의 울적한 표정이 클라렌스의 죽음 때문이 아니라 에드워드 왕의 위독한 증세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때 엘리자베스 왕비가 나타나서 에드워드 왕이 서거했다고 전하면서 비탄에 빠진다.

리차드를 위시한 조정의 대신들은 에드워드 왕자를 러들로우에서 런던으로 호위해 올 준비를 한다.

2막3장 - 정국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을 다루고 있는 장면인데, 그들은 어린 왕자가 왕위를 계승하면 왕자의 외가 쪽과 친가 쪽 사이에 권력 투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2막4장 - 엘리자베스 왕비는 리버스와 그레이가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신변에 위협을 느끼면서 어린 아들인 요크와 함께 성소로 피신한다.

할머니인 요크 공작부인도 동행한다.

3막1장 - 에드워드 왕자가 조정 대신들과 런던 시장의 환영을 받으면서 런던에 도착한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와 동생인 요크가 환영하러 나오지 않은 것을 알고 섭섭해 한다.

버킹엄이 추기경에게 성소로 가서 요크를 데리고 오라고 말한다.

에드워드와 요크는 당분간 런던 탑에 머물러 있으라는 리차드의 충고를 마지못해 받아들인다.

케이츠비는 리차드를 국왕으로 추대하는 일에 관한 헤이스팅즈의 견해를 알아보기 위해서 버킹엄과 헤어진다.

리차드는 버킹엄에게 왕위를 차지하도록 도와준 대가로 해리포드의 백작영지를 하사하겠다고 약속한다.

3막2장 - 스탠리 경의 사자가 헤이스팅즈에게 자신의 주인이 리차드에 관한 악몽을 꾸었다고 말을 전한다.

헤이스팅즈는 스탠리의 이런 우려를 묵살한다.

케이츠비가 헤이스팅즈에게 그의 정적이었던 리버스, 그레이, 그리고 보온이 폼프리트에서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그러나 헤이스팅즈는 리차드를 왕으로 추대하자는 케이츠비의 제안을 거절한다.

헤이스팅즈는 버킹엄과 함께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 런던 탑으로 간다.

3막3장 - 래트클리프가 리버스, 그레이, 그리고 보온을 처형장으로 호송해 간다.

3막4장 - 조정 대신들이 런던 탑에서 에드워드 왕자의 대관식을 논의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리차드가 회의장에 늦게 나타나서는 자신에게 저주를 내리기 위해서 엘리자베스 왕비와 더불어 굿을 한 쇼어 부인을 헤이스팅즈가 보호하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비난한다.

그는 케이츠비에게 헤이스팅즈를 처형하라고 명령한다.

3막5장 - 리차드와 버킹엄은 런던 시장을 불러서 헤이스팅즈의 대역죄와 그를 즉결 처분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리차드는 버킹엄에게 런던 시장을 따라 길드홀로 가서 죽은 에드워드 왕이 호색가였다는 소문과 왕자들이 적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라고 지시한다.

3막6장 - 필경사가 등장하여 헤이스팅즈의 처형이 있기 수 시간 전에 이미 그를 제거하기 위한 각본이 세워져 있었다고 말한다.

3막7장 - 시민들은 왕자들이 서자일 수도 있다는 버킹엄의 주장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한편, 리차드는 런던 시장과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명의 주교를 대동하고 독실한 종교인인 척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버킹엄이 그에게 왕위를 수락해달라고 여러 차례 간청하자, 그는 못이긴 척 왕위를 받아들인다.

4막1장 - 엘리자베스 왕비는 런던 탑에 있는 왕자를 만나는 것을 금지 당한다.

그년느 스탠리로부터 리차드의 대관식 소식을 듣고 절망한다.

그녀는 도셋에게 프랑스로 가서 리치먼드와 합세하라고 말한다.

글로스터의 아내인 앤 부인은 왕비가 되어 장차 겪을 불행을 예상한다.

4막2장 - 버킹엄은 에드워드 왕자를 암살해야겠다는 리차드의 말을 듣고, 이에 동의해야 할지 머뭇거리다가 그의 신임을 잃는다.

리차드는 제임스 티렐을 은밀히 불러서 런던 탑에 있는 두 왕자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내린다.

그는 스탠리로부터 도셋이 리치먼드와 합세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케이츠비에게 앤 왕비가 위독하다는 소문을 퍼뜨리라고 명령하면서, 자신의 왕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죽은 에드워드의 딸인 요크의 엘리자베스와의 결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두 왕자의 암살 계획에 찬성하기로 작정한 버킹엄이 나타나서 리차드가 이저에 약속했던 해리포드의 백작영지를 달라고 요구하지만, 리차드는 그의 요구를 못 들은 척 딴 전을 피우다가 결국 거절한다.

버킹엄은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웨일즈로 피신한다.

4막3장 - 티렐이 리차드에게 두 왕자를 암살했다는 보고를 한다.

리차드는 리치먼드가 요크의 엘리자베스와 결혼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자신이 먼저 그녀와의 혼인을 성사시켜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이때, 래트클리프가 나타나서 일리 주교가 리치먼드 편에 합세했으며, 버킹엄은 웨일즈의 지원을 업고 반란을 일으켰다고 보고한다.

4막4장 - 마가렛 왕비가 배후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엘리자베스 왕비와 요크 공작부인이 나타나서 그들에게 닥친 불행을 한탄한다.

마가렛 왕비가 전면에 나서면서 모든 불행의 원인을 리차드에게 돌린다.

요크 공작부인과 엘리자베스 왕비는 전장으로 떠나던 리차드를 만나 그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리차드는 엘리자베스 왕비에게 자신의 청혼을 받아들이도록 그녀의 딸을 설득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녀는 그의 위협과 감언이설에도 불구하고 요청을 거부하다가, 딸의 뜻을 서면으로 알려주겠다고 말한다.

한편, 리차드는 리치먼드가 이끄는 군대가 곧 상륙할 것이라는 보고를 받고, 스탠리의 충성심을 담보하기 위해 그의 아들을 볼모로 잡는다.

전령들이 반란군의 수효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윽고 케이츠비가 버킹엄을 생포했다는 소식과 리치먼드의 군대가 밀포드 헤이븐에 상륙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4막5장 - 스탠리는 리치먼드를 비밀리에 지원하겠다는 내용과 엘리자베스 왕비가 그녀의 딸과 리치먼드의 결혼에 동의했다는 내용이 담긴 것을 리치먼드에게 전한다.

5막1장 - 버킹엄이 처형장으로 끌려가면서, 자신의 운명적인 종말과 마가렛 왕비의 저주를 회상한다.

5막2장 - 리치먼드가 그의 군대를 이끌고 레스터로 진군한다.

5막3장 - 리차드의 군대가 보즈워스 평원에 군막을 설치하고 다음 날의 결전에 대비한다.

5막4장 - 리치먼드가 군막에서 스탠리에게 밀서를 보내고 다음날 전투 계획을 세운다.

5막5장 - 리차드 진영과 리치먼드 진영을 번갈아 보여주는 장면이다.

우선 리차드가 이런저런 지시를 한 후 물러나서 잠든다.

리치먼드 진영에 스탠리가 비밀리에 나타나서 다음 날 전투에서 은밀히 지원할 것을 약속한 후 돌아간다.

리치먼드는 기도를 올린 후 잠든다.

리차드는 악몽을 꾼다.

그가 죽인 에드워드, 헨리 6세, 클라렌스, 리버스, 그레이, 보온, 두 명의 왕자, 헤이스팅즈, 앤 왕비, 그리고 버킹엄의 유령들이 차례로 나타나서 그에게 저주를 내리고, 리치먼드에게는 승리를 기원해 준다.

리차드는 놀라서 식은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난다.

그는 절망한다.

리치먼드는 상쾌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난 간밤에 길몽을 꾸었다고 말한다.

그는 병사들의 결전 의지를 복돋우는 연설을 한다.

5막6장 - 리차드는 작전을 지시하고는 병사들에게 연설한다.

5막7장 - 전투장면이다.

리차드의 말이 죽는다.

그러나 리차드는 후퇴하지 않는다.

5막8장 - 리치먼드는 리차드와의 일대일 대결에서 그를 쓰러뜨린다.

스탠리가 리차드의 왕관을 벗겨 리치먼드에게 씌운다.

리치먼드는 적군의 병사들에게 사면령을 내린다.

그리고 엘리자베스와 결혼함으로써 요크 가문과 랑카스터 가문을 결합시키고 내란을 종식시키겠다고 선언한다.

한예종 지정작품 <리차드 3세> 전문가들의 평가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동시대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리차드는 인물의 성격을 창조해 내는 셰익스피어의 비범한 재능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로 자주 인용되기도 한다.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 리차드는 <오델로>의 이아고와 더불어 음흉한 사탄의 전형으로 간주되었다.

4막4장에서 '엘리자베스 왕비'와 '요크 공작'이 '마가렛 왕비'와 합세하여 '리차드'를 비난하는 대목은 여성 등장인물들이 개인적인 입장을 넘어서 가부장적 문화에 집단적으로 저항하는 것으로 볼수 있다.

또한 신체불구가 반사회적인 욕망에 대한 원인으로 작용하는 비정상인의 정신 병리적 현상을 예시하는 인물이 바로 '리차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리차드의 반사회적인 행위 동기는 또한 왜곡된 성적 욕망의 분출이라는 관점에서 다각도로 조명되어 왔고,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러가지 추론과 학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은 <리차드 3세>가 그만큼 영국 역사상 강한 임팩트를 주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극을 볼링브룩의 리차드 2세 왕위 찬탈로 비롯된 장미 전쟁의 최종편으로 간주하면서 리차드를 신이 영국에 내린 재앙의 대행자로 그리고 리치먼드를 랑카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을 결합한 튜더 왕조의 시조로 간주하고 있다.

1. 무대에서 본 적 없는 희곡인 경우2. 이미 관람한 희곡이라면    극단의 색이 뚜렷해 새로운 표현이 기대될 때3. 재해석은 좋지만 재창작은 아닐 것위 기준을 바탕으로 지난 일주일 간공연장을 찾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3편.1. 극단 목화 로미오와줄리엣 ('16.03.26)국립극장 달오름극장로미오와줄리엣은 이미 여러번 본 텍스트이지만극단 목화의 작품이기에 외면할 수가 없다.

한국적 미학을 추구해온 오태석 연출과 극단 목화는 이 작품에서도 그 이름에 걸맞았다.

한국적 언와와 몸짓, 놀이를 바탕으로10대의 장난과 정서까지-슬픈 사랑이야기임을 알지만개구진 모습을 보며 슬며시 웃을 수 밖에 없다.

좋은 텍스트만 보장된다면 오태석 연출의 작품은 기대가 매우 높아도 실망할 일이 없다.

2. 서울시극단 헨리4세 1&2 ('16.03.30)세종문화회관 M씨어터리차드2세의 왕관을 빼앗은 헨리4세.정작 왕관을 빼앗기는 리처드2세의 이야기는한국 국립극단 버젼으로도영국 셰익스피어글로브극장 버젼으로도 본적이 있지만그 후의 헨리4세 이야기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공연은 군더더기 없고 깔끔해서 좋았다.

헨리5세 역이 캐릭터도 배우도 돋보였고반면에 폴스타프역은 캐릭터도 배우도 올드해서 아쉬움이 있다.

제목이 헨리4세임에도 불구하고 헨리4세는 왕관을 헨리5세에게 넘기는 장면이 되어서야 돋보인다.

연극 리처드2세에서 리처드2세가 가장 돋보인 장면도헨리4세에게 왕관을 뺏기던 순간이었는데권력의 이양이라는 것은 참으로 극적인가보다.

김광보 연출은 공연의 성격과 종류에 상관없이 일정 수준의 퀄리티는 보장한다.

세종문화회관의 기획 작품은 그리 선호하지 않은 탓에서울시극단도 자주 찾지 않았던터라오히려 등장 배우들이 새롭고 좋았다.

기량도 안정적이어서 이번 세종문화회관의 시즌제의 도입을 계기로 종종 찾게 될 것 같다.

3. 중국국가화극원 리차드3세 ('16.04.02)명동예술극장왕위에 오르기 위해 형과 조카를 살해하며영국에 런던탑이라는 관광 명소를 제공한 바로 그 리차드3세 이야기.나 역시 다녀온바 있다.

ㅋㅋ중국국가화극원이라는 이름에서도 나타나듯이경극과 타악을 동원하여 중국 색채를 물씬 풍긴다.

등장 인물이 한 명씩 죽어 나갈때마다그에 맞춰 뒷 배경도 한 장씩 빨갛게 적시는 장면은종이에 붓으로 글자를 쓰는 것 같기도 하다.

셰익스피어는 희곡에서 리차드3세를 곱추로 묘사하였는데이번 연극에서는 리차드3세가 독백을 할때는 허리를 구부린 채 다리를 절다가도사람을 대할 때는 허리를 펴고 다리를 절지도 않는 연극적 허용이 자주 나왔다.

리차드3세를 단순히 야비한 악인보다는왕관을 탐낼만큼 강하고주변 사람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만큼자신감 있는 인물로 묘사하고 싶었던 듯 하다.

맥베스의 세 마녀를 리차드3세에 차용하여그의 왕관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는 장면도 나름의 차별점이었다.

따그하는 자세로 인사하는 커튼콜.공연 후 마지막도 타악으로 마무리 지었다.

           (3) 그의 아내 : 레이디 앤 네빌(Anne Neville)마리 반필드(Marie Barnfield) 씀  어릴 적  앤 네빌(Anne Neville)은 리처드 3세의 아내이자 왕비이다.

그녀는 워릭 백작 부부인 리처드 네빌(Richard Neville)과 앤 보챔프(Beauchamp)의 둘째 딸이며, 그녀의 언니 이자벨(Isabel Neville, 1451년생)은 클라렌스 공작부인이다.

앤은 에이븐 강(Avon River)이 내려다 보이는 워릭 성(Warwick Castle)에서 1456년 6월 11일에 태어났으며, 그 마을에 있는 성모 마리아 신학대학 겸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녀의 부모는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가문의 대를 이을 아들을 바라고 있었지만, 결국에 두 딸이 자신들 부부의 상속자가 될 것임을 서서히 받아들여야만 했을 것이다.

앤이 태어났을 때 그녀의 아버지인 워릭 백작은 이미 정치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고, 전 해 세인트 알번스(St. Albans)의 첫번째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던 덕분에 칼레의 수비대장(Captain of Calais)으로 임명된 상태였다.

앤이 거의 한 살이 다 되었을 때 워릭 백작 부부는 칼레에 거처를 차렸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앤은 이후 3년을 부모 그리고 언니와 함께 보냈을 것이다.

  <워릭 성>   요크 가문의 승리와 함께 워릭은 섬으로 돌아왔다.

에드워드 왕의 수석 외교관이자 군인으로서, 워릭 백작은 종종 집을 떠난 상태였을 것이고, 이자벨과 앤은 아마도 어머니와 함께 성에 남았을 것이다.

두 소녀가 어디에 살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노스 요크셔(North Yorkshire)의 미들험 성(Middleham Castle)이 아마도 그들의 거처였을 듯 하다.

앤은 친삼촌인 조지 네빌(George Neville)이 1465녀 9월에 요크의 총대주교로서 즉위식을 가질 때 처음으로 대중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때 그녀의 나이 9살이었다.

또한 같은 해 왕의 막내 동생인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Richard, Duke of Gloucester, 1452년생)가 프랜시스 로벨 경(Francis Lord Lovell, 1456년생) 및 몇몇 귀족 자제들과 함께 워릭 백작의 궁정에 합류하기도 하였다.

그 전 해 앤의 아버지와 에드워드 왕의 관계에 균열이 생겼는데, 에드워드 왕이 프랑스의 신부를 아내로 맞아들이라는 워릭 백작의 외교적 중재를 고작 젠트리 계급의 딸인 엘리자베스 우드빌(Elizabeth Woodville)과 비밀리에 결혼하였음을 공언하는 것으로 답하였기 때문이다.

새 왕비는 자매들이 여럿이었고, 때문에 워릭 백작은 왕국 내 유력한 사윗감을 그녀들에게 뺏길 판국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왕은 당시 글로스터 공작과 로벨을 각각 이자벨과 앤의 신랑감으로 찍고 있던 듯 하다.

 하지만 워릭은 당시에 자신의 두 딸을 왕의 두 동생과 각각 결혼시키려는 야망을 갖고 있었다.

이 경우라면 글로스터 공작은 이자벨이 아닌 앤과 혼인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에 이자벨이 클라렌스 공작과 결혼하게 되면, 앤과 글로스터의 결혼은 ‘근친혼’의 범주에 들어가 불법이 된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힉스(Hicks), 앤 네빌, Tempus, 2006, 2006년도판 BBC 역사 매거진 ‘리처드 3세 왕은 과연 근친상간을 저질렀나?'). ‘법적으로’ 혼인이 제한되는 경우는 성적인 결합으로 인하여 ‘하나의 육체’가 되었을 때만 국한되었다.

즉 이에 따르면, 사면장 없이 이전 배우자의 친척, 또는 이론적으로 이전 애인과의 친척과 결혼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하지만 결혼하는 두 사람의 혈연자가 친척, 또는 ‘혼인 관계’라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워릭의 계획한 이중 결혼식의 유일한 장애물은 왕이었다.

왕은 클라렌스의 조지의 결혼이 중요한 외교적 흥정 대상일 것이 때문에, 자신의 맏아우를 워릭 가문의 후계자로 넘겨주는 것을 반대하엿다.

워릭 가문의 자매는 매우 좋은 신부감이었으나, 그들은 아버지의 샐리스버리(Salisbury) 백작령과 어머니의 광대한 영지들, 즉 워릭(Warwick)과 남서쪽의 디스펜서(Despencer) 백작령 등을 균등하게 상속받아야 했다.

(북쪽에 있는 네빌 가문의 영토는 남자 후계자에게만 상속이 가능하였기 때문에, 워릭 백작이 아닌 그의 가장 가까운 남자 친척에게 상속될 예정이었다.

)  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워릭은 클라렌스의 동의를 얻어 교황에게 사면장을 요청하는 사절을 보냈다.

교회법으로 볼 때 그의 딸들은 왕의 동생들과 원칙적으로 결혼할 수 없는 가까운 친척 사이였기 때문이었다1. 우리는 적어도 워릭 백작이 이자벨의 결혼에 대한 사면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데, 이를 증명하는 문서가 현존하기 때문이다.

리처드와 앤의 결혼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증거는 아니고, 정황을 보았을 때 사면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두 쌍의 결혼에 대한 사면장들은 바티칸 기록 보관소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때는 바야흐로 1468년 말, 워릭 백작과 왕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져버렸고, 리처드는 누구의 편이 될 것이냐는 다그침을 받았다.

리처드는 왕의 편이 되기로 결심하였다.

그가 떠남으로서, 앤과의 결혼은 깨진 것으로 간주되었다.

한편 로벨 경은 이미 앤의 사촌인 앤 피츠휴(Anne FitzHugh)와 결혼한 상태였다.

  랭카스터의 웨일즈 왕자와 결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라렌스는 워릭과 함께 음모를 꾸며 1469년 7월 12일 칼레에서 이자벨 네빌과 비밀 결혼식을 치렀다.

이 결혼은 클라렌스와 워릭이 반역을 일으키는 기초가 되었다.

그들은  왕의 총신들을 박살내고 에드워드 왕을 포로로 가뒀다.

[리처드 3세] 세상에나..

아마도 클라렌스가 에드워드 대신 왕이 되고 네빌이 배후에서 조종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이러한 쿠데타를 지속시키는 데 실패하였다.

그들은 왕과 재화합하였지만,  이내 반란을 또 일으켰고, 이번에도 역시 실패하였다.

앤은 부모와 언니, 그리고 형부인 클라렌스와 함께 프랑스로 망명 생활을 떠났다.

이 자벨이 낳은 첫 아이는 배에서 사산되었다.

          <랭카스터 가문 : 헨리 6세, 그의 아내 앙주의 마거릿, 부부의 아들 랭카스터의 에드워드>랭카스터의 에드워드는 19세기에 판화에 그려진 초상화이고, 당시의 모습을 묘사한 초상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요크 가문 : 에드워드 4세와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우드빌(Elizabeth Woodville)> 에드워드 4세가 랭카스터파의 일개 과부인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결혼한 덕분에 불필요한 정치적 파란을 겪게 되었고, 이는 그 자신의 일시적 퇴위와 바넷, 툭스버리에서 벌어진 두 차례의 참혹한 전투를 초래하였다.

 당대 최고의 미녀로 평가받은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자신의 낮은 신분 때문에 정도 이상의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이것이 앤이 헨리 6세와 앙주의 마거릿(Margaret of Anjou)의 유일한 아들이자 후계자인 랭카스터의 에드워드(Edward of Lancaster)와 결혼하게 된 전후배경이다.

마거릿 왕비는 프랑스의 루이 11세를 설득하여 지원을 약속받은 후, 에드워드 왕과 군사작전으로 결판을 내기 위해 워릭과 동맹을 맺었다.

랭카스터의 에드워드와 앤은 8촌지간2이었기 때문에 교황의 사면장 없이 결혼할 수 없었지만, 1470년 7월 25일 에드워드와 앤은 서로 낯설어 하면서 앙제(Angers) 성당에서 엄숙한 약혼식을 올렸다.

1주일 후 워릭과 클라렌스는 앤과 그녀의 어머니를 프랑스에 남기고 영국을 침공하였다.

에드워드 4세는 패하여 해외로 달아났고, 헨리 6세는 복위하였다.

교황의 사면장이 도착하자, 앤과 랭카스터의 에드워드는 12월 13일 앙부아즈(Anboise)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 때 웨일즈 왕자는 17세, 앤은 14세였다.

  크리스마스 이후, 젊은 왕세자 부부는 각자 어머니를 대동하고 디프(Dieppe) 해안으로 이동하여 영국으로 가는 배를 탔다.

폭풍우가 몰아쳤지만, 그들은 3월이 되기 전에 웨이머스(Weymouth) 항을 목표로 출발하였다.

당시 앤은 웨일즈 왕자 및 마거릿 왕비와 한 배에 타고 있었고, 워릭 백작부인은 다른 배를 타고 있었다.

날씨 상태는 그때까지도 나빠서, 앤의 어머니를 태우고 있던 배는 홀로 떨어져 동쪽으로 수 마일이 떨어진 곳으로 표류하였다.

그들은 1471년 4월 14일에 상륙하였으나, 바로 그 때 다시 세워진 왕권이 몰락한 것을 목격하였다.

에드워드 왕이 다시 돌아와 런던을 접수하였으며, 클라렌스는 다시 요크 가문 쪽으로 붙었고, 바로 그 날 바넷 전투에서 워릭 백작이 전사하였다.

워릭 백작부인은 이 소식을 듣고 뉴 포레스트(New Forest)에 있는 볼리유 수도원(Baeulieu Abbey)의 성소로 들어갔다3. 앤은 툭스버리(Tewkesbury)로 향하는 행렬에 억지로 끼어 이동하였고, 바로 그곳에서 일어난 전투에서 에드워드 왕의 군대가 랭카스터의 군대를 박살냈다.

랭카스터의 에드워드는 병사들과 함께 전사하였으며, 앤은 언니 이자벨과 형부인 클라렌스 공작의 감시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결혼으로 인한 분쟁  앤의 아버지와 남편은 모두 반역자로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볼리유 수도원의 성소로 도피하였으며, 에드워드 왕은 이를 적대행위로 간주하고, 곧 무장한 경비병들로 그녀를 감시하게 하였다(BL MS Cotton Julius BXII, f. 317). 부모의 영지는 모두 몰수당했으며, 원래 앤과 이자벨이 나눠 가져할 영지를 이자벨의 남편인 클라렌스가 모두 차지하였다.

원래대로라면 앤의 어린 사촌인 조지 네빌(George Neville)에게 주어졌어야 할 영국 북쪽에 있는 네빌 가문의 영지도, 조지 네빌의 아버지인 몽태규 후작(John Neville, Marquess of Montagu)이 바넷 전투에서 반역자로 죽는 바람에, 글로스터 공작이 가져가고 말았다.

앤의 언니인 이자벨과 클라렌스 공작 모두 앤의 재혼 또는 워릭과 샐리스버리의 영지 상속권을 허락하지 않을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9개월이 조금 못미치는 시간 동안 리처드는 끊임 없이 앤과 결혼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는 양자 모두에게 신중한 결합이었으며, 또한 앤의 아버지과 원래 점지해주던 혼사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감시자 노릇을 하던 클라렌스는 동생이 앤의 배후에 있다고 보고, 앤의 존재를 비밀로 하고자 하였다.

아마도 그는 처제를 주방의 하녀로 모습을 감추게 하려고 했던 듯 싶다.

하지만 앤은 이를 거부하고 자신의 상속권을 위해서 싸웠을 것이다.

결국에 리처드가 앤을 찾아냈고, 그녀를 데리고 런던의 성 마틴(St. Martin) 수도원의 성소의 은신처로 갔다.

    <앤 네빌과 리처드의 사인>앤 네빌은 "Anne Warwick"이라 썼고, 리처드는 "R(ichard) Gloucester"라 썼다.

   앤은 이에 리처드와 결혼하기로 동의하였고, 최종적인 사면권을 얻기 위해 로마로 사절을 보냈다.

리처드는 이전에 앤이 결혼하였던 랭카스터의 에드워드와 8촌 지간이었기 때문에 교황의 사면장 없이 결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472년 2월, 에드워드의 압력에 의하여 클라렌스는 리처드와 앤이 ‘재산을 나누어 갖지 않는 조건 하에서’ 그들의 결혼을 마지못해 동의하였다.

하지만 그 해 3월 18일까지, 클라렌스는 리처드에게 몇몇 영지들을 양도하는데 동의하였다.

(CPR 1467-77, p. 330). 리처드와 앤의 사면장은 4월 22일에 로마에서 비준되었고, 영국으로 출발한 것은 6월쯤이었을 것이다.

당시 상황을 보건대 리처드와 앤은 클라렌스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면장이 도착하기 전인 1473년 1월에 결혼 한 듯 하다.

당시 앤의 나이 16세, 리처드의 나이 19세 또는 20세였다.

1473년 여름에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는 왕의 허락을 받아 볼리유의 성소에서 머무르고 있던 앤의 어머니를 데리고 미들험에 있는 자신의 궁정으로 모셔갔다.

  하지만 워릭 백작부인은 자신의 영지를 회복하지 못하였다.

두 딸과 사위들의 금전적인 욕심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에드워드 왕이 워릭 백작부인의 재혼이라는 위험을 감수하려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녀가 재혼한다면, 그 남편은 그녀의 광대한 영지와 재산 덕분에 왕국에서 가장 막강한 인물이 될 터였다.

백작부인의 영지를 두 딸과 사위들에게 상속하면 상황이 안정될 것으로 보였으나, 클라렌스는 이를 방해하려 들었다.

1473년 가을까지 그는 글로스터 공작에 대항하여 무장하였으며, 이 상황은 곧 클라렌스에게 동정심을 느끼고 있던 한 영국인 방문자에 의해 프랑스 궁정에도 보고되었다.

  <클라렌스 공작 부부, 조지 플란타지넷과 이자벨 네빌. 카디프 성당의 스테인글라스>   ‘글로스터 공작은 강제로 이전에 웨일즈 왕자와 결혼하였던 고(故) 워릭 백작의 딸을 아내로 취했으며, 클라렌스 공작에 맞서 끊임 없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클라렌스는 그의 형인 에드워드 왕과 이전에 워릭 백작령을 받기로 약속한 적이 있기 때문에, 글로스터가 백작의 둘째 딸과 결혼하는 것을 이유로 영지를 나누어 갖는 것을 원하치 않고 있습니다.

’ (Calendar of Milanese State Papers, p. 177).  결혼이 강요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이나 또는 그러한 두려움은 근거 없는 얘기다.

하지만 그러하였기 때문에, 클라렌스가 리처드와 앤의 결혼이 교회법으로 봤을 때 원래 무효라는 점을 들어서라도 리처드가 워릭 백작령의 일부라도 상속 받는 것을 반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강요된 결혼은 특히 지주 계급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었다.

특히 신부 측의 부모 또는 보호자가 아닌 신랑에 의한 강요라면 더했다.

  당대의 사회는 특히 신부의 가족 또는 보호자의 의사에 반하여 상속녀를 유혹하는 일을 도둑질을 목적으로 한 ‘유괴(raptus4)’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당대의 사회 통념상 유괴와 가출은 그 뜻에서 차이가 거의 없었다.

클라렌스의 감시에서 앤을 성 마틴 수도원의 성소로 데려온 일은, 리처드가 그녀를 유괴한 것으로 보여질 수도 있었다.

클라렌스가 리처드의 납치설을 주장한 근거는 이러한 점들에서 나온 것이 거의 확실하다.

하지만 교회법이 당대의 사회 관습을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신부가 직접 동의하는 경우라면, 신부측 가족의 동의가 없어도, 신랑과 신부의 정당한 결혼이 가능하였다.

이에 따라 육체적인 성관계나 동거하는 것도 법적으로 가능하였다.

비록 그 결혼이 실제로 ‘강요’에 의해 이뤄진 것이어도 그러하였다.

  클라렌스는 영지의 분할 상속을 막기 위해 동생의 결혼이 유괴에 의한 것이었다고 줄기차게 주장하였다.

클라렌스가 그 결혼에 대해 교회법에 의거하여 더욱 강하게 반대했다고 했을지라도, 기록으로 남겨진 바는 없다.

   결국에 클라렌스는 자신의 영지를 압수하겠다는 왕의 위협에 굴복하였다.

영지 상속에 대한 분란은 1474년 5월 의회의 의결로 가라앉았다.

연대기 작가 크로울랜드(Crowland)는 ‘워릭 백작 부인이 자연스레 죽은 것처럼’ 간주하여 그녀의 영지를 즉시 두 딸들과 사위들한테 즉시 지급할 것을 명시한 포고령에 경악하였다.

클라렌스가 그때까지도 워릭 백작부인의 상속재산 대부분을 사실상 보유하고 있었고, 리처드와 앤의 몫으로 돌아간 것은 다른 가문의 재산에 속하는 것이었다.

클라렌스는 앤과 리처드의 결혼의 적법성에 대하여 끊임 없이 중상모략을 가하였다.

즉, 교회가 그들의 결혼이 무효라고 선언함으로서 리처드와 앤이 이혼하게 된 상태에서 다시 재결합하는 경우, 그들의 권리를 지켜줄 법적 문구를 발표해버리는 식이었다.

또한 클라렌스는 리처드가 앤과 두 번째 결혼을 하기 위해선 지켜야 할 권리들은 이러저러한 것들이 있다는 식으로 떠들고 다녔다 (C. Given-Wilson [ed.], Parliament rolls of Medieval England, Edward IV - October 1472 - 2nd roll). 하지만 그 어떠한 교회 법정도 혼인의 적법성에 대하여 이렇게까지 대중 앞에서 선언해야 한다고 요청한 적이 없었다.

또한 리처드와 앤의 결혼은 서로간 호의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하며, 부부 사이는 앤이 죽을 때까지 이어졌다.

   글로스터 공작부인<글로스터 공작부부, 앤과 리처드>  공작부인으로서 앤의 활동은 살짝 훑어볼 수 있는 정도이다.

1475년과 1477년 사이의 예시는 그 일면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1475년, 리처드는 프랑스로 원정을 가는 바람에 자리를 비웠다.

이 때 앤은 요크 시의 시장 및 시의원들과 함께 서신으로 왕래하였으며, 특히 그녀에게 중요한 편지 한 통은 그레이스톡 경(Loard Greystock)을 비롯한 남편의 참사회 회원들의 손에 딸려 보내기도 하였다 (York City Chamberlains’ Account Rolls, Surtees Soc. Vol. 192, 1980, p. 152). 리처드와 앤의 유일한 아들인 에드워드(Edward)는 1476년 봄 또는 여름에 미들험(Middleham)에서 태어났다.

적어도 공식 기록에 따르면, 에드워드는 유아기를 무사히 넘긴 부부의 유일한 혈육이다.

같은 해에, 앤은 네빌 가문의 조상들이 묻혀있는 더럼 수도원(Durham Priory)의 자선 회원5이 되었다.

12월에 그녀는 아마도 리처드와 함께 런던에 있었던 듯 싶다.

당시 리처드는 ‘공작 각하의 분부에 의하여, 각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아내를 위하여 대령하라고 했던 모피’와 ‘공작부인께 대령하라고 명령하셨던 비단옷과 다른 물품들’에 대한 비용을 자신의 동-잉글랜드의 영지에 달아놓았다.

1477년 리처드와 앤은 요크의 성체 협회(Corpus Christi Guild)에 가입하였다.

앤은 자신의 개인사제를 승진시키기 위하여 더럼 수도원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아마도 같은 해에 케임브릿지의 퀸스 컬리지(Queen’s College)에 부부가 공동으로 기부금을 전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왕비가 되다.

  <리처드 3세와 앤 왕비><리처드 3세, 아내와 함께 대관식을 치르다>영드 The White Queen 8화의 한 장면 (배우는 아뉴린 바너드(Aneurin Barnard), 페이 마세이(Faye Marsay))   에드워드 4세의 죽음 이후, 리처드는 남쪽으로 가서 어린 에드워드 5세의 호국경 자리를 꿰찼다.

앤은 한 달 후에 런던으로 향했고, 6월 5일 화요일에 도착하였다.

곧 정치적 위기가 발생하였고, 결국에 리처드가 왕위를 차지하였다.

같은 시기에 앤은 언니 이자벨의 아들이자 고아인 상태로 도르셋 후작의 후견을 받고 있었던 워릭 백작 에드워드(Edward Plantagenet, Earl of Warwick)을 돌보기로 하였다(Mancini).  리처드와 앤은 공동으로 대관식을 치렀다.

웨스트민스터 타워에서 치러진 식 하루 전에, 그녀는 여성용 가운과 길이가 27야드(=11.88m)나 되는 금으로 수놓인 흰색 망토를 입었다.

그 망토는 담비와 족제비의 털로 만들어졌고, 흰색 비단과 금으로 수놓여진 레이스로 장식되어 있었다(Laynesmith, p. 92). 대관식은 아침 7시에 웨스트민스터의 홀에서 사원으로 걸어서 행진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으며, 그곳에서 부부는 미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대관식과 도유식6을 치렀다.

그 날은 장엄한 축하 연회와 함께 끝났으며, 그 자리에서 리처드는 금으로 만든 접시에, 앤은 금박을 입힌 접시에 음식을 대접받았다.

  <리처드 3세의 가족 : (왼쪽부터) 왕비 앤 네빌, 리처드 3세, 부부의 아들 미들험의 에드워드>   왕비로서 앤이 군림했던 시간은 짧았고, 당시 왕비의 궁정에서 남겨진 기록도 없어서, 아직도 그녀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남아있는 증거에 따르면, 앤이 글로스터 공작부인일 때부터 그녀를 모시던 북부 신사계급 출신 여인들이 그대로 왕비의 시녀로서 궁정에서 봉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종종 남편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그의 대관식 기간 동안, 앤은 워릭에 도착하여 리처드를 잠시 멈춰 세우고, 그녀가 일전에 윈저(Windsor)에서 접견하였던 에스파냐 대사를 만나게 하였다.

부부는 앤의 고향(=워릭)에서 1주일 정도 머물렀다.

이후 앤과 리처드는 요크를 방문하였고, 그곳에서 7살 먹은 아들 에드워드를 웨일즈 왕자로 선포하였다.

국왕 일행은 다시 남쪽으로 향했고, 폰티프락스(Pontefract)를 방문하여 2주일을 머물렀다.

 앤은 크리스마스 축제 기간을 위해 남편과 함께 웨스트민스터에 머물렀다.

3월에, 그녀와 리처드는 이틀 동안 말을 타고 케임브릿지의 퀸스 컬리지로 행차하였고, 그곳에서 '가장 거룩하신 앤 왕비 마마(께서는)..... 막대한 기부금으로 대학의 재정을 크게 늘려주셨다' (Laynesmith, p. 256). 그에 대한 보답으로, 케임브릿지 대학의 간부들은 매해 5월 2일에 '가장 고명하신 군주(=리처드)와 전하의 사랑하시는 앤 왕비 마마를 위하여' 미사를 치르기로 결의하였다 (Hammond, p. 20). 이후 부부는 노팅엄(Nottingham)에 궁정을 차렸는데, 그곳에서 아들 에드워드 왕자가 미들험에서 죽었다는 불의의 소식을 들었다.

'여러분은 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갑작스러운 비탄에 압도되어 거의 제정신이 아닌 것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 (Crowland, p. 171).  에드워드 왕자의 죽음은 리처드와 앤에게 개인적인 비극일 뿐만 아니라 왕조에도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이제 통치 왕조의 안정성과 왕조의 지속을 보장해줄 후계자가 사라졌다.

헨리 튜더(Henry Tudor)는 에드워드 4세의 맏딸인 요크의 엘리자베스(Elizabeth of York)를 미래의 배우자로 맞겠다고 선언함에 따라, 앤이 또 아들을 낳아야할 필요성이 시급히 대두되었다.

그녀는 아직 27세였고 건강해보였으며, 그랬기 때문에 리처드와 함께 국내를 여행할 수 있던 것으로 보인다.

리처드가 어디를 갔던지 간에, 즉 예를 들어 리처드가 스코틀랜드에 대항하여 해상작전을 진두지휘하기 위해 스카보로(Scarborough)에 주둔지를 차렸을 때조차도, 앤은 역시 그곳에 있었다.

앤이 스카보로에서 머물렀던 사각형의 탑은 1538년에 여행객 존 릴런드(John Leland)에 의해 '왕비의 타워 또는 임시거처(The Queens Towre or lodging)'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The Itinerary of John leland the Antiquary, ed. Thomas Hearne, Vol. 1, 1745, p. 62). 앤은 리처드와 함께 왕비로서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였다.

이 때 앤의 시녀로서 에드워드 4세의 맏딸인 요크의 엘리자베스와 (아마도) 그 여동생들도 함께 머무르고 있었다.

그 해 3월에 엘리자베스와 그녀의 자매들은 어머니와 함께 성소에서 나오는 것이 허락되었던 것이다.

크로울랜드의 연대기는 크리스마스 축제 기간에 '지나칠 정도로 많은 관심이 춤과 환락에 쏟아졌으며' 앤 왕비와 레이디 엘리자베스가 옷을 자주 바꿔 입었는 사실을 우리에게 들려주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십이야에7, 헨리 튜더가 1485년 여름에 영국을 침공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당도하였다.

  그 즉시, 리처드에 대한 적대적인 소문이 만연하게 되었다.

'그러한 소문들은 리처드에게 악의를 품고 있는 자들이 꾸며내어 퍼트린 것이다' (Lander, p. 255). 크로울랜드에 따르면, 크리스마스 축제 기간 동엔에 왕은 엘리자베스에게 호의를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왕이 앤이 죽고 난 뒤, 또는 '이미 그 근거가 충분한 것으로 보이므로 앤하고 이혼한 뒤에' 엘리자베스와 결혼하기로 결심하였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다고 한다.

하지만 이 연대기 작가는 왕이 앤과 이혼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 제시하지 않고 있지만, 이는 아마도 클라렌스가 이전에 리처드와 앤의 결혼을 중상모략하면서 했던 바로 그 주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앤은 '바로 며칠 뒤에' 죽을 병에 걸렸으며, 이 상황에서도 리처드가 이혼을 고려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면 다소 놀라운 일이 될 것이므로, 앞선 소문은 이제 그가 아내를 독살하려 한다는 루머로 대체되었을 것이다8. 앤의 병세에 대하여 우리가 갖고 있는 증거는, 앤의 병세가 2달 동안 지속되었다는 것, 그리고 의사들이 리처드에게 그녀의 침상으로 다가가지 말라고 조언한 것 정도이다.

  현재 남겨진 증거로 보면, 리처드는 자신이 홀아비가 되었을 경우를 대비하여 조카인 엘리자베스의 결혼 협상을 고려했던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리처드가 조카와 직접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포르투갈의 공주와 결혼하고 동시에 조카를 포르투갈의 왕자와 결혼시키려는 계획이었다.

 앤은 만 29세 생일을 석 달 남겨두고 1485년 3월 16일에 죽었다.

바로 그 날, 영국엔 개기일식이 관측되었다.

그녀는 '왕비에게 어울리는 경의를 받으며'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다.

(crowland, p. 175). 보챔프 가문의 여러 위인전을 작성하였던 존 로스(John Rous)에 의하면, 앤은 '품위가 있었으며, 상냥하고 아름다웠다.

그녀의 행동은 늘 칭찬할만 하였고, 고결하였으며, 그녀의 이름인 '앤(Anne)'이 나타내고 있듯이 우아함으로 가득차있었다.

' 이제 앤의 이야기에서 후기를 쓸 때가 왔다.

3월 30일, 리처드는 런던 시장과 시민들 및 가능한 많은 영주들을 성 요한 자선회당(Hospital of St. John)의 대강당에 불러모았고, 엘리자베스와 결혼하기 위하여 앤을 독살하였다는 루머에 대해 '크고 분명한 목소리로' 연설하였다.

'왕은 이전의 일에 대해 슬픔과 언짢음을 보여주면서, 그런식으로 결혼하려는 것이 절대로 자신의 생각도 아니고 그럴 마음도 없으며, 왕비의 죽음에 결코 기뻐한 적도, 또한 바란 적도 없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왕비의 죽음 때문에 큰 비탄에 사로잡혔으며, 남자로서 견딜 수 없을만큼 괴롭다고 하였다.

....' (Lander, pp. 255-6).주요 출처 / 더 읽어보세요데이비드 볼드윈(David Baldwin) "리처드 3세(Richard III)" 스트로우드(Stroud), 2012마리 반필드(Marie Barnfield), "무효화된 혼인 제한, 교황 사면장과 이혼 : 리처드 3세와 그의 결혼에 대하여(Diriment impediments, Dispensations and Divorce : Richard III and Matrimony', The Ricardian, Vol. XVII, 2007 PP. 84-98아네트 카슨(Annette Carson), "리처드 3세 : 비난받는 왕(Richard III : The Maligned King)" 스트로우드, 2008P. D. 클라크(P. D. Clarke), "영국 왕가의 혼인과 15세기 로마 교황청 법원(English royal marriages and the Papal Penitentiary in the fifteenth century)", 영국 역사 비평(English History Review), 120, 2005로스 연대기(The Rows roll). W. H. 커토프(W. H. Courthope) 편집, 런던, 1859.로다 에드워즈(Rhoda Edwards), "리처드 3세의 순방, 1483-1485(The Itinerary of Richard III, 1483-1485)", 글로스터, 1983중세 영국 의회 의사록(Parliament rolls of Medieval England), 크리스토퍼 기븐-윌슨(Christopher Given-Wilson) 편집.P. W. 헤이먼드(P. W. Hammond), "웨일스 왕자, 미들험의 에드워드(Edward of Middleham, Prince of Wales), 켄트, 1973.리처드 3세의 대관식 : 현존하는 기록들(the Coronation of Richard III : The Extant Documents), P. W. 헤이먼드와 A. F. 서튼(A. F. Sutton) 편집. 글로스터, 1983.H. 힘홀즈(H. Helmholz) "중세 영국의 결혼 소송(Marriage Litigation in Medieval England)", 케임브릿지, 1974 (2007년에 페이퍼북 판이 나옴)마이클 힉스 :- 앤 네빌(Anne Neville), 스트로우드, 2006- 그릇되고 이랬다 저랬다하며 거짓말을 일삼는 클라렌스(False, Fleeting, Perjur'd Clarence), 글로스터, 1980- 리처드 3세(Richard III), 스트로우드, 2000 (개정판)- 국왕 옹립자 워릭(Warwick the Kingmaker), 옥스포드, 1998 (2002년에 페이퍼북 판이 나옴)- 왕자는 한 명? 아니면 두 명? (One prince or tow?', The Ricardian, Vol. IX, 1993, pp. 469-72.J. L. 레인스미스(J. L. Laynesmith), "마지막 중세의 왕비들(The Last Medieval Queens)", 옥스포드, 2004J. R. 랜더(J. R. Lander), "장미 전쟁(The Wars of the Roses), 런던, 1974 (White Lion 판)로즈머리 호우록스(Rosemary horrox), 앤 서튼(Anne Sutton), "글로스터 공적으로서 리처드의 몇몇 지출내역, 1475-7(Some expenses of Richard Duke of Gloucester, 1475-7)", The Ricardian, Vol. VI, 1983, pp. 266-9.1459-1486년 기간의 크로울랜드 연대기, N. 프로니(N. Pronay), J. 콕스(J. Cox) 편집, 런던, 1986.셜리 ㅁ. 싱클레어(Shelley A. Sinclair) "이자벨 버틀러의 유괴 : 랭카스터 왕조 시절 잉글랜드의 납치와 부의 추구(The 'ravishing' of Isabel Boteler : abduction and the pursuit of wealth in Lncasterian England), The Ricardian, Vol. XI, no 146, 1999년 9월배리 윌리엄즈(Barrie Williams) :- 포르투갈과의 외교관계와 신앙심 깊은 공주의 중요성(The Portuguese connection and the significance of the holy princess'), The Ricardian, Vol. VI, pp. 138-5- 포르투갈과 맺은 결혼 협상들 : 그 대답 (The Portuguese marriage negotiations : a reply), The Ricardian, Vol. VI, pp. 235-6에드워드 4세의 어머니 세실리 네빌은 워릭 백작의 고모였다.

그래서 클라렌스와 글로스터 형제는, 나이 차이는 거의 안나지만, 이자벨과 앤 자매의 5촌 당숙이 된다.

즉, 앤의 친할아버지의 어머니인 조앤 보퍼트(Joan Beaufort)는 랭카스터의 에드워드의 친증조할아버지인 헨리 4세의 의붓동생이다.

당시 성소로 들어가면 죄인이라도 끌어내지 않는 게 관행이었다.

일종의 치외법권인 셈이다.

워릭 백작부인은 워릭 백작이 전사하고 에드워드 4세가 복위함에 따라서 자신이 반역자가 된 셈이기 때문에 성소로 도피한 것이다.

라틴어 단어 rapere(빼앗다)의 수동태 과거분사에서 유래에는 sister로 되어 있는데, 최소한 수녀는 아닐 것이 확실하므로, 능력이 닿는 대로 가장 비슷할 것 같은 뜻의 단어로 번역해서 넣었다.

하느님의 가호를 받아 통치자가 되었음을 선포하는 의식이다.

역대 기독교도 왕들의 호칭에 DEI GRATIA라고 되어 있는 문구는, 바로 이 의식을 치렀음을 암시한다.

크리스마스 축제는 12월 25일에 시작하여 12일 동안 이어지며, Twelfth Night라 하면 크리스마스로부터 12일째인 1월 6일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1)앤의 죽음 2)앤과 이혼 두 가지 헛소문이 있었는데, 앤이 아프자마자 2)를 기각하고 앤이 독살당하는 것으로 1)의 설이 우세해졌다는 것이다.

..마침 명동예술극장에서 이 공연이 올라왔다.

아..진짜 명동예술극장 라인업은 계속 관심을 가져야지.하마터면 모르고 지나갈 뻔했다.

ㅠㅠㅠ새벽에 급 표 찾다가 겨우 구해서 갈 수 있었다.

자리는 1열자리는 좋은데 자막보면서 무대 보니 눈이 돌아갈 것 같았다.

(아는 단어 나오면 혼자서 좋아하면서 관람;;;) 우리나라 배우들은 전공, 학력이랑 상관없이 보게 되는데, 이쪽은 좀 아닌 듯. 중앙 희극원이니 중앙 연극학원 출신들인데 연기에 구멍이 하나도 없다.

리차드 3세는 멀쩡하고 준수한 남자였다가 추악한 내면을 드러낼 때마다 곱추가 된다.

사람들이 죽어나갈 때마다 무대 뒤의 병풍 한면씩 피가 흐름. 나중엔 그 화선지의 먹물까지 함께 흘러내리는 장관을 연출한다.

마지막 대사의 一匹馬.. 一匹馬 .. (말 한필..주면 왕국도 내준다고 ) 셰익스피어 희곡을 연기할 때마다 주의해야하는 것은 그 많은 대사. 그런데 잘하기 힘들다는 것이 함정. 예전에 연극 햄릿 보러갔다가 대사 못한다고 분노하면서 나오기도 했었는데 ...이국적인 대사로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무랄 데가 없다.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러운 발성의 대사임. 그런데 ...아 ..왜 이렇게 성조를 모르겠지?  경극을 함께 넣은 것은 신선한 발상이었다.

이분 충격적이었다.

아니..그 할머니였는데 팜플렛 사진은 너무나도 어여쁜 언니가...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장미전쟁"이라는 것을 배웠다면 너무 쉽게 이해가 되는 작품이에요

그럼 <리차드 3세>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고 어떤 역사적인 배경이 있었는지를 알아볼게요

이 작품에 등장하는 "리차드 3세"는 실존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극을 셰익스피어 사극이라고도 불린다.

영국의 대표적인 폭군"리차드 3세" 영국의 국왕이자 가장 추악한 폭군으로 알려진 "리차드 3세"는 요크 왕가의 '에드워드 4세'의 막내 동생이지만 조카를 죽이고 자신이 왕에 오르면서 요크 왕가의 마지막 왕이지만, 영국의 가장 사악한 군주로 알려져 있다.

  1455

1485년까지 플랜태저넷 왕가에 뿌리를 두고 있는 요크셔 왕가와 랭커스터 왕가는 왕위 계승을 두고 장미전쟁(요크 왕가는 흰 장미를,  랭커스터 왕가는 붉은 장미를 표식으로 삼았다)을 치루고 있었다.

당시 "리차드 3세"의 형이었던 '에드워드 4세'가 랭커스터 왕가였던 '헨리 6세'를 폐위시키고 왕위에 올랐다.

1483년 '에드워드 4세'가 사망하자 어린 조카 '에드워드 5세'가 왕위에 오르자 그는 자신의 조카의 어머니(형수)였던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자신의 형인 '에드워드 4세' 결혼이 무효라고 주장하며 결국 조카를 런던 탑에 가두어 죽게 만들고 왕위에 올랐지만, 1483

1485년 장미전쟁(영국 왕위계승 전쟁)에서 패하면서 2년 간 짧은 영국을 통치하였다.

  왕위 찬탈 2년만에 "리차드 3세"는 1485년 웨일즈 보즈워스 전투에서 헨리 튜더(헨리 7세)에게 패하면서 사망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요크 왕가는 몰락하고 만다.

(영국 역사상 왕이 전쟁에서 사망한 마지막 왕으로 기록되어 있다.

) "리차드 3세"의 뒤를 이어 랭커스터 왕가의 '헨리 7세'가 튜더 왕조를 열었다.

  역사학자들은 "리차드 3세"가 죽으면서중세시대가 막을 내렸다"라고 한다.

셰익스피어는 "리차드 3세"를 사악한 왕의 이미지를 극대화 시킨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역사적으로는 폭군이 아니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 아무튼 셰익스피어의 작품 <리차드 3세>는 영국 역사상 가장 사악한 폭군으로 작품은 이야기 하고 있다.

 "리차드 3세"와 유사한우리나라 조선의 왕은 누구? 절대 악인이라 칭하는 "리차드 3세"(1452년에 태어남)와 동시대에 한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바로 조선의 7대 임금 "세조"(1417년 태어남)는 어린 조카 단종을 폐위시키고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보내 17세의 어린 나이에 사망케 하고 1455년부터 1468년까지 왕위에 있었다.

영화 '관상'에서도 배우 이정재가 연기한 역할이 세조 모습인데 이 영화에서도 "세조"는 폭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 본격적으로 2017 한예종 지정작품 셰익피어 作 <리차드 3세> 작품을 알아보자.  이 작품의 쓰여진 시기는 <헨리 6세> 3부작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이 극의 줄거리는 <헨리 6세 3부>를 이어받고 있는데,(위에서 언급한 장미전쟁이 계속되고 있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헨리 6세 3부>는 1591년에 공연되었다.

그리고 1592년 6월 런던에 역병이 유행하여 모든 극장이 일시적으로 폐쇄되었다.

따라서 이 극의 제작 연대를 1591년에서 1592년 6월 사이일 것으로 추정한다.

  이 극의 직접적인 자료는 홀린세드의 "영국일기(英國日記)"와 홀의 "사기(史記)"이며, 부분적으로는 토머스 모어의 소설 <리차드 3세>도 참조했으리라 생각된다.

 실존인물인 "리차드 3세"는 1483년에 즉위하여 1485년 보즈워드에서 전사함으로, 그의 재위기간은 2년밖에 안된다.

 그리고 에드워드 4세가 복위한 1471년부터 시작하여 15년간에 이르는 사실을 담고 있지만,  이 극은 그것을 2,3주일의 사건으로 압축되어 표현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 극은 비극적 색체가 짙은 셰익스피어 사극(史劇)이다.

<리차드 3세>가 인과응보를 받는 운명은 그리스 비극과 패턴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인과응보의 여신 [네메시스]에게 복수당하는 것은 "리차드 왕" 한 사람뿐이 아니라 '클레런스', '헤이스팅즈', '버킹엄' 그리고 '에드워드 4세'까지도 모두 그 대상이다.

'마가렛'은 배후에서 저주의 의식을 주관하는 [네메시스] 역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형식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악마론의 형식과도 일치한다.

자기만은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차례차례 함정에 빠지고, 끝으로 남의 운명 뿐 아니라 자신의 운명까지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리차드" 그 자신도 파멸하고 만다.

이렇게 극 전체에 운명의 존재가 일관하고 있다.

 리차드는 불구자인데다 잔인한 권모술수에 뛰어난 철저한 악역이다.

그뿐 아니라, 그는 자신의 악을 의식하여 그것을 감추려 들지 않고 오히려 공개적이며, 수단으로 위선의 탈을 쓰는 수가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자기가 위선을 가장하고 있음을 자타에게 감추려고 하지 않고 도리어 공개해 버리거나, 또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상대방의 둔감함을 조소하기도 한다.

그는 적어도 자신은 그 위선을 분명히 의식하지 않고서는 배겨내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는 또한 쉴새 없이 연기를 한다.

겸손한 성자를 가장하여 위선을 연기할 뿐아니라, 극 초반의 독백이며 앤에게 구애하는 장면, 그는 줄곧 연기를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중세극이나 로마극에서의 악역을 조상으로 하는 리차드 왕은 악을 위한 악을 마음껏 발휘하여 희열을 느끼고 끝내는 절망 속에 파멸하지만, 내적갈등은 전혀 검험하지 않는다.

이 점이 후기의 대비극의 주인공들과 다른 점이다.

리차드의 운명은 권력의 절정이 곧 추락이고, 이래서 <헨리 6세 제1부>부터 회전하기 시작한 운명의 거대한 수레바퀴는 한 바퀴 빙 돌아가서 다시 원점에 도달한 셈이다.

등장인물 분석을 통해 <리차드 3세> 이해하기!
*리차드 3세 역사적 인물(1452

1485)이며, 그가 죽기전 1483

1485년까지 영국을 통치하였다.

요크 가문의 마지막 왕인 그는 장미전쟁때 요크 가문을 위하여 싸워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는 당시 13살이었던 조카 에드워드 5세의 섭정이 되었는데, 자신의 조카가 적법한 왕위계승자가 아니라고 선언하였다.

리차드는 어린 조카와 그 동생인 요크 공작 리차드를 함께 런던 탑에 감금하고, 후에 그들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절대군주로서 훌륭한 통치력을 발휘했음에도 불구하고, 리차드 3세는 젊은 왕자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 때문에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1485년 랑가스터 가문 쪽으로 왕권을 주장한 리치먼드 백작인 헨리 튜더가 군대를 일으켜 리차드의 군대를 물리치고 보스워스 필드에서 그를 죽였다.

대중들의 상상 속에서 리차드 3세는 같은 이름의 셰익스피어의 극에 등장하는 괴물같은 꼽추로 남아 있지만, 이는 역사가인 라파엘홀린셰드의 <연대기>에 그의 등이 굽었다는 언급에서 기인한 것이고, 사실상 그가 꼽추였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더욱이 그가 정말 런던 탑에서 살해된 조카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지도 알려진 바 없다.

아마도 진정한 사실에 대해서 알 수 없었던 셰익스피어는 엘리자베스 1세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리차드의 사악함을 과장한 것으로 여겨진다.

사실상 왕권을 주장할 권리가 미약했지만 보스워스 필드에서 리차드를 죽이고 왕이 된 헨리 튜더는 여왕의 직계 선조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엘리자베스 시대에는 리차드를 거의 악마와 같은 인물로 묘사하고 선전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반대로 헨리는 적어도 왕권에 대한 분명한 도덕적 권리를 가지고 있었던 영웅적인 구원자로 제시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글로스터 공작 리차드(후일은 리차드 3세)요크 공작 리차드의 4남으로 <헨리 6세 2부>의 2막 6장 이후에서 <리차드 3세>로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부여받은 직위이다.

이 작위는 불운한 글로스터 공작 험프리의 작위로 악운의 전조로 작용하기도 한다.

*앤 왕비 역사적 인물(1456

1485)이며, 리차드 3세의 부인으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1막2장에서 죽은 남편과 그의 아버지인 헨리 6세의 살해자인 리차드의 구애를 받자 앤은 처음에는 그를 저주하며 비난한다.

그러나 앤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의 남편을 죽였다는 리차드의 말에 반쯤 최면이 걸린 듯 결국 그러부터 반지를 받는다.

4막1장에서 다시 등장할 때, 그녀는 이미 리차드의 아내이며, 왕권을 장악한 리차드의 왕비로서 왕관을 쓰기 위해 소환된다.

그녀는 리차드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예언하는데, 나중에 리차드의 대사를 통해 관객은 그녀의 말대로 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앤은 <헨리 6세 3부>에서 위릭 공작이 자신의 맏딸과 왕자의 결혼에 동의할 때 처음 언급된다.

역사적인 인물로서의 앤은 워릭의 막내 딸이었고, 왕자와 약혼은 햐였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

어쨋든 그녀는 1474년에 리차드와 결혼하였다.

역사적으로 그녀는 헨리 6세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극 속에 등장하는 그녀와 리차드의 대화는 전적으로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나중에 리차드가 엘리자베스 왕비의 딸에게 구애하는 장면과 대조되는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이 장면을 고안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앤은 살해당했다는 역사적인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에드워드 4세역사적 인물(1442

1483)이며 <헨리 6세 2부>와 <헨리 6세 3부> 그리고 <리차드 3세> 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헨리 6세 2부에서의 아버지 '요크 공작 리처드'가 반역죄로 체포되자 에드워드는 동생 리차드와 함께 보석을 신청한다.

3부에서는 요크 공작이 사후에 왕위를 물려줄 테니 자신의 생전만큼은 왕위를 유지하게 해달라는 '헨리 6세'의 간청에 응하자, 에드워드와 리차드 두 형제는 아버지에게 왕위에 오를것을 재촉한다.

남편의 비굴함에 분노한 헨리 6세의 왕비 '마가렛'이 찬탈 세력에 대항하여 군대를 일으키자 에드워드 형제는 토우튼 전투에서 승리하게 되고 맏형 에드워드가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 후 에드워드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프랑스의 보나부인과 결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사로운 감정으로 남편의 장원 문제 때문에 탄원하러 온 미망인 '그레이 부인 엘리자베스 우드빌'에게 반해 그녀를 왕비로 맞게된다.

이렇듯 군주로서의 공적인 의무를 망각하고 번번이 사적인 감정에 탐닉하거나 신중하지 못한 태도를 보이는 모습은 <리차드 3세>에서도 반복된다.

이 작품에서 에드워드는 기력이 쇠한 늙고 무능한 왕으로 그려지고 있다.

동생 리차드는 왕권에 대한 야심으로 우선 둘째 형 클라랜스 공작을 제거할 음모를 꾸미게 되는데, 에드워드는 이를 간파하지 못한 채 클라렌스의 죽음을 방치한다.

극의 초반에 잠시 모습을 보이다가 2막 2장에서 승하 소식이 전해지면서 리차드의 야심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엘리자베스 왕비 엘리자베스 우드빌 그레이는 역사적 인물(1437

1492)로서 <리차드 3세>에서 그녀는 엘리자베스 왕비로 등장하여 죽은 남편의 동생인 리차드와 권력을 두고 싸우는 상대가 된다.

그녀는 리차드가 왕권의 찬탈을 위해 죽인것으로 알려진 런던 탑의 어린 왕자들의 어머니이다.

그년느 세 명의 왕족 여인들로 구성된 코러스의 일원이 되어 왕비 마가렛, 늙은 글로스터 공작부인과 함께 런던 탑 밖에서 자신들의 운명을 한탄하는 상징적인 장면에 등장한다.

후에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 자신의 딸 엘리자베스 공주와 결혼하고자 하는 리차드의 음모로부터 딸을 지켜야 하는 처지에 놓이지만 결국 리차드의 감언이설에 넘어가게 된다.

*클레런스 공작 조지 요크(에드먼드 4세 동생)역사 속의 실존 인물(1449

1478)이며, <리차드 3세>에서는 리차드의 바로 손위 형으로 등장하는데 라차드의 맏형 에드먼드 4세가 승하하게 되면 바로 다음 왕위를 잇게 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다.

따라서 왕권의 야망에 젖어 있는 리차드는 맏형이 승하하게 될 경우를 대비하여 'G'로 시작하는 이르을 가진 자가 왕의 후선을 살해할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려 조지라는 이름을 가진 형을 제거할 음모를 꾸민다.

음흉하기 짝이 없는 리차드는 자신의 속내를 감춘 채 이 소문으로 런던 탑에 투옥된 형 클라렌스를 찾아가 모두가 엘리자베스 왕비의 음모 때문이라 하며 왕에게 클라렌스의 구명 운동을 탄원을 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클라렌스는 익사하여 지옥에 끌려가 자신이 살해한 사람들의 유령을 만나는 악몽을 꾸게 된다.

꿈에서 개어난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불안감에 사로잡히지만 여전히 리차드의 약속을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리차드는 자객을 보내 형 클라렌스를 살해한다.

자객들이 그를 칼로 찔러 죽인 후 시체를 포도주통에 쳐박아버림으로써 리차드의 왕권 탈취의 장애물 중 한 사람이 사라지게 된다.

이 작품에서 클라렌스의 역은 상대적으로 미미하지만 리차드의 일련의 왕권 탈취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클라렌스가 꿈을 꾼 후 느끼는 정신적인 고통이나 불안감, 그리고 그가 살해당하는 끔찍한 장면 등은 관객에게 리차드의 악행을 보다 더 소름끼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클라렌스의 살해 장면은 실제 영국 역사의 내용과 다르다.

실제로 클라렌스는 여러 차례 에드워드 4세에 대한 음모에 가담했었고 리차드는 그를 위해 여러번 탄원하기도 했었다.

에드워드 4세는 마침내 클라렌스를 반란죄로 재판에 회부하게 되고 사형을 선고한다.

그러나 사형이 은밀히 진행되어 혹시 리차드가 암살하지 않았나 하는 소문이 그치질 않았다.

바로 이점을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작품에서 리차드의 사악함을 드러내는 장면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클라렌스는 <헨리 6세 3부>에도 등장하는데 여기에서는 클라렌스 공작이라는 칭호를 받기 전 조지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리치먼드 백작 역사적 인물(1457

1509)이며, <헨리 6세 3부>와 <리차드 3세>에 나오는 등장인물이다.

<헨리 6세 3부>에서 리치먼드는 어린 소년으로 등장하는데, 헨리 왕은 어린 헨리 리치먼드가 언젠가는 영국의 왕이 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리차드 3세>에서 리치먼드는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리차드의 대항할 반군을 이끌고 등장하여 자신의 군대에서 전투를 대비시킨다.

리차드와 반대편 평야에 진을 치고 있던 그는 리차드가 혼령들에게 시달림을 당하고 있는 바로 그 시간에 잠을 자고 있다.

보스워스 전투에서 그는 리차드와 단신으로 결투를 하여 그를 죽이게 되는데, 그의 승리는 영국을 리차드의 사악함에서 구출한 사건으로 여겨진다.

그는 스스로 왕이 된 것을 포고하고 튜더 가문에 의하여 영국에 평화의 시대가 온것을 알린다.

역사적으로 리치먼드 백작인 헨리 튜더는 헨리 7세가 되어 1485년부터 1509년까지 영국을 통치했다.

*버킹엄 공작 역사적 인물(1455

1483)이며, <리차드 3세>에서 리차드의 가장 중요한 지지자이지만 왕이 된 후에 리차드가 자신의 고마움을 잊고 약속을 지키지 않자 리차드를 배신했다가 곧 사로잡혀 처형당한다.

버킹엄은 리차드가 왕이 되기 전 그의 대변인 역할을 하며, 특히 런던 시장과 시민들을 설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의 과장되면서도 모호한 대화술은 교활한 정치가의 전형을 보여주며, 특히 헤이스팅스를 함정에 빠뜨리는 음모를 꾸미는 등의 여러 상황에서 라차드의 중요한 조언자 역할을 한다.

 하지만 4막2장에서 리차드가 왕이 된 후에 웨일즈의 왕자 형제를 죽이면서 더욱 권력에 집착하자, 버킹엄은 약간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에 화가 난 리차드는 버킹엄에게 약속했던 백작령을 거절하고, 버킹엄은 자신이 헤이스팅스가 겪었던 운명에 처할 위험 속에 있음을 감지한다.

그는 반군을 일으키지만 곧 체포되고, 5막1장에서 사형되기 직전에 과거의 명세들과 예언들을 회상하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거의 희랍극의 코러스처럼 말한다.

 셰익스피어가 출전으로 삼은 역사적 자료들은 버킹엄이 반란을 일으킨 것에 대해 몇가지 가능한 동기를 제공했지만, 셰익스피어는 분명히 사실이 아닌 것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리차드가 그의 변절 이전에 버킹엄에게 백작령을 주었기 때문이다.

버킹엄의 반란에 대한 분명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는 리치먼드가 리차드를 무너뜨리기를 기대했을 수도 있고, 스스로 왕권에 대한 야심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는 리차드 2세의 막내형제인 글로스터 공작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2017 한예종 지정작품 <리차드 3세>의 장면별 작품 줄거리!
1막1장 - 글로스터 공작인 리차드가 등장하여 장미전쟁에서 요크가문이 승리하면서 모처럼 맞은 태평성대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피력한다.

그는 신체적 결함 때문에 연예나 유흥을 즐기지 못하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면서, 평화의 적이 되어 왕권을 찬탈하기 위한 음모를 획책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는 'G'로 시작되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왕권을 차지할 것이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려서 둘째 형인 클라렌스 공작 조지와 맏형이자 국왕이니 에드워드 4세 사이를 이간질한다.

리차드는 국왕의 명령에 의해서 런던 탑으로 끌려가던 클라렌스를 만나 그의 처지를 동정하는 척하면서, 그가 투옥되는 원인을 엘리자베스 왕비 일당의 공작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1막2장 - 리차드는 앤 부인이 시아버지인 헨리 6세의 상여를 따라가는 것을 목격하고 영구 행렬을 가로막는다.

앤은 리차드를 헨리 6세와 남편인 에드워드를 살해한 장본인으로 지목하면서 그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리차드는 그들을 죽인 이유가 아름다운 그녀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둘러대면서 그녀에게 구애한다.

그녀는 처음에 그의 이런 변명을 경멸하지만, 결국 반신반의하면서도 그에게 설득되고 만다.

1막3장 - 엘레자베스 왕비와 그레이, 도넷, 리버스가 국왕 에드워드의 병세를 걱정하면서, 그가 죽으면 그들을 미워하는 리차드가 에드워드 왕세자의 섭정 역을 맡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리차드가 등장하여 요크 가문에 대한 왕비 집안의 충성심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어서 죽은 헨리 6세의 부인인 마가렛 왕비가 유령처럼 나타나서 현재 권세를 누리고 있는 모든 자들에게 천벌이 내릴 것이라고 저주를 퍼붓는다.

그때까지 서로 다투던 리차드와 왕비 일당이 마가렛의 저주를 받자 합세하여 그녀를 질책한다.

1막4장 - 런던 탑에 갇힌 클라렌스가 간밤에 꾸었던 악몽을 이야기한다.

그는 배를 타고 가다가 글로스터에게 우연히 떠밀려 물에 빠져 죽는 꿈을 꾸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명부에 세계에서 그가 생전에 랑카스터 가를 배신했던 일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꿈을 꾸었다고 말한다.

다시 잠을 자던 그는 자객들의 난입 소리에 놀라서 깨어난다.

그는 자객들에게 암살의 부당성을 역설하지만 죽음을 면하지 못한다.

자객들 중 한 명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도망친다.

2막1장 - 국왕 에드워드는 반목을 일삼던 왕비 일당과 신하들을 화해시키면서 흡족해한다.

그러나 이때 리차드가 나타나서 클라렌스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자 평화의 분위기는 깨어지고 에드워드 왕은 다시 근심에 빠진다.

에드워드 왕은 클라렌스의 처형을 취소하는 명령을 내렸었다고 말하지만, 리차드는 처형 명령이 이미 살해된 뒤 취소 명령이 전달되었다고 대답한다.

2막2장 - 국왕의 모친인 요크 공작부인이 손자들과 이야기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그녀는 손자들에게 자신의 울적한 표정이 클라렌스의 죽음 때문이 아니라 에드워드 왕의 위독한 증세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때 엘리자베스 왕비가 나타나서 에드워드 왕이 서거했다고 전하면서 비탄에 빠진다.

리차드를 위시한 조정의 대신들은 에드워드 왕자를 러들로우에서 런던으로 호위해 올 준비를 한다.

2막3장 - 정국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을 다루고 있는 장면인데, 그들은 어린 왕자가 왕위를 계승하면 왕자의 외가 쪽과 친가 쪽 사이에 권력 투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2막4장 - 엘리자베스 왕비는 리버스와 그레이가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신변에 위협을 느끼면서 어린 아들인 요크와 함께 성소로 피신한다.

할머니인 요크 공작부인도 동행한다.

3막1장 - 에드워드 왕자가 조정 대신들과 런던 시장의 환영을 받으면서 런던에 도착한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와 동생인 요크가 환영하러 나오지 않은 것을 알고 섭섭해 한다.

버킹엄이 추기경에게 성소로 가서 요크를 데리고 오라고 말한다.

에드워드와 요크는 당분간 런던 탑에 머물러 있으라는 리차드의 충고를 마지못해 받아들인다.

케이츠비는 리차드를 국왕으로 추대하는 일에 관한 헤이스팅즈의 견해를 알아보기 위해서 버킹엄과 헤어진다.

리차드는 버킹엄에게 왕위를 차지하도록 도와준 대가로 해리포드의 백작영지를 하사하겠다고 약속한다.

3막2장 - 스탠리 경의 사자가 헤이스팅즈에게 자신의 주인이 리차드에 관한 악몽을 꾸었다고 말을 전한다.

헤이스팅즈는 스탠리의 이런 우려를 묵살한다.

케이츠비가 헤이스팅즈에게 그의 정적이었던 리버스, 그레이, 그리고 보온이 폼프리트에서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그러나 헤이스팅즈는 리차드를 왕으로 추대하자는 케이츠비의 제안을 거절한다.

헤이스팅즈는 버킹엄과 함께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 런던 탑으로 간다.

3막3장 - 래트클리프가 리버스, 그레이, 그리고 보온을 처형장으로 호송해 간다.

3막4장 - 조정 대신들이 런던 탑에서 에드워드 왕자의 대관식을 논의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리차드가 회의장에 늦게 나타나서는 자신에게 저주를 내리기 위해서 엘리자베스 왕비와 더불어 굿을 한 쇼어 부인을 헤이스팅즈가 보호하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비난한다.

그는 케이츠비에게 헤이스팅즈를 처형하라고 명령한다.

3막5장 - 리차드와 버킹엄은 런던 시장을 불러서 헤이스팅즈의 대역죄와 그를 즉결 처분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리차드는 버킹엄에게 런던 시장을 따라 길드홀로 가서 죽은 에드워드 왕이 호색가였다는 소문과 왕자들이 적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라고 지시한다.

3막6장 - 필경사가 등장하여 헤이스팅즈의 처형이 있기 수 시간 전에 이미 그를 제거하기 위한 각본이 세워져 있었다고 말한다.

3막7장 - 시민들은 왕자들이 서자일 수도 있다는 버킹엄의 주장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한편, 리차드는 런던 시장과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명의 주교를 대동하고 독실한 종교인인 척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버킹엄이 그에게 왕위를 수락해달라고 여러 차례 간청하자, 그는 못이긴 척 왕위를 받아들인다.

4막1장 - 엘리자베스 왕비는 런던 탑에 있는 왕자를 만나는 것을 금지 당한다.

그년느 스탠리로부터 리차드의 대관식 소식을 듣고 절망한다.

그녀는 도셋에게 프랑스로 가서 리치먼드와 합세하라고 말한다.

글로스터의 아내인 앤 부인은 왕비가 되어 장차 겪을 불행을 예상한다.

4막2장 - 버킹엄은 에드워드 왕자를 암살해야겠다는 리차드의 말을 듣고, 이에 동의해야 할지 머뭇거리다가 그의 신임을 잃는다.

리차드는 제임스 티렐을 은밀히 불러서 런던 탑에 있는 두 왕자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내린다.

그는 스탠리로부터 도셋이 리치먼드와 합세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케이츠비에게 앤 왕비가 위독하다는 소문을 퍼뜨리라고 명령하면서, 자신의 왕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죽은 에드워드의 딸인 요크의 엘리자베스와의 결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두 왕자의 암살 계획에 찬성하기로 작정한 버킹엄이 나타나서 리차드가 이저에 약속했던 해리포드의 백작영지를 달라고 요구하지만, 리차드는 그의 요구를 못 들은 척 딴 전을 피우다가 결국 거절한다.

버킹엄은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웨일즈로 피신한다.

4막3장 - 티렐이 리차드에게 두 왕자를 암살했다는 보고를 한다.

리차드는 리치먼드가 요크의 엘리자베스와 결혼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자신이 먼저 그녀와의 혼인을 성사시켜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이때, 래트클리프가 나타나서 일리 주교가 리치먼드 편에 합세했으며, 버킹엄은 웨일즈의 지원을 업고 반란을 일으켰다고 보고한다.

4막4장 - 마가렛 왕비가 배후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엘리자베스 왕비와 요크 공작부인이 나타나서 그들에게 닥친 불행을 한탄한다.

마가렛 왕비가 전면에 나서면서 모든 불행의 원인을 리차드에게 돌린다.

요크 공작부인과 엘리자베스 왕비는 전장으로 떠나던 리차드를 만나 그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리차드는 엘리자베스 왕비에게 자신의 청혼을 받아들이도록 그녀의 딸을 설득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녀는 그의 위협과 감언이설에도 불구하고 요청을 거부하다가, 딸의 뜻을 서면으로 알려주겠다고 말한다.

한편, 리차드는 리치먼드가 이끄는 군대가 곧 상륙할 것이라는 보고를 받고, 스탠리의 충성심을 담보하기 위해 그의 아들을 볼모로 잡는다.

전령들이 반란군의 수효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윽고 케이츠비가 버킹엄을 생포했다는 소식과 리치먼드의 군대가 밀포드 헤이븐에 상륙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4막5장 - 스탠리는 리치먼드를 비밀리에 지원하겠다는 내용과 엘리자베스 왕비가 그녀의 딸과 리치먼드의 결혼에 동의했다는 내용이 담긴 것을 리치먼드에게 전한다.

5막1장 - 버킹엄이 처형장으로 끌려가면서, 자신의 운명적인 종말과 마가렛 왕비의 저주를 회상한다.

5막2장 - 리치먼드가 그의 군대를 이끌고 레스터로 진군한다.

5막3장 - 리차드의 군대가 보즈워스 평원에 군막을 설치하고 다음 날의 결전에 대비한다.

5막4장 - 리치먼드가 군막에서 스탠리에게 밀서를 보내고 다음날 전투 계획을 세운다.

5막5장 - 리차드 진영과 리치먼드 진영을 번갈아 보여주는 장면이다.

우선 리차드가 이런저런 지시를 한 후 물러나서 잠든다.

리치먼드 진영에 스탠리가 비밀리에 나타나서 다음 날 전투에서 은밀히 지원할 것을 약속한 후 돌아간다.

리치먼드는 기도를 올린 후 잠든다.

리차드는 악몽을 꾼다.

그가 죽인 에드워드, 헨리 6세, 클라렌스, 리버스, 그레이, 보온, 두 명의 왕자, 헤이스팅즈, 앤 왕비, 그리고 버킹엄의 유령들이 차례로 나타나서 그에게 저주를 내리고, 리치먼드에게는 승리를 기원해 준다.

리차드는 놀라서 식은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난다.

그는 절망한다.

리치먼드는 상쾌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난 간밤에 길몽을 꾸었다고 말한다.

그는 병사들의 결전 의지를 복돋우는 연설을 한다.

5막6장 - 리차드는 작전을 지시하고는 병사들에게 연설한다.

5막7장 - 전투장면이다.

리차드의 말이 죽는다.

그러나 리차드는 후퇴하지 않는다.

5막8장 - 리치먼드는 리차드와의 일대일 대결에서 그를 쓰러뜨린다.

스탠리가 리차드의 왕관을 벗겨 리치먼드에게 씌운다.

리치먼드는 적군의 병사들에게 사면령을 내린다.

그리고 엘리자베스와 결혼함으로써 요크 가문과 랑카스터 가문을 결합시키고 내란을 종식시키겠다고 선언한다.

한예종 지정작품 <리차드 3세> 전문가들의 평가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동시대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리차드는 인물의 성격을 창조해 내는 셰익스피어의 비범한 재능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로 자주 인용되기도 한다.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 리차드는 <오델로>의 이아고와 더불어 음흉한 사탄의 전형으로 간주되었다.

4막4장에서 '엘리자베스 왕비'와 '요크 공작'이 '마가렛 왕비'와 합세하여 '리차드'를 비난하는 대목은 여성 등장인물들이 개인적인 입장을 넘어서 가부장적 문화에 집단적으로 저항하는 것으로 볼수 있다.

또한 신체불구가 반사회적인 욕망에 대한 원인으로 작용하는 비정상인의 정신 병리적 현상을 예시하는 인물이 바로 '리차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리차드의 반사회적인 행위 동기는 또한 왜곡된 성적 욕망의 분출이라는 관점에서 다각도로 조명되어 왔고,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러가지 추론과 학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은 <리차드 3세>가 그만큼 영국 역사상 강한 임팩트를 주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극을 볼링브룩의 리차드 2세 왕위 찬탈로 비롯된 장미 전쟁의 최종편으로 간주하면서 리차드를 신이 영국에 내린 재앙의 대행자로 그리고 리치먼드를 랑카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을 결합한 튜더 왕조의 시조로 간주하고 있다.

 '헨리 5세'와 '리처드 3세'는 리처드 2세부터 리처드 3세까지의 플란타지넷 왕가 이야기를 다룬 역사 시리즈의 일부다.

물론 셰익스피어가 처음부터 시리즈를 기획하고 집필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작품을 읽어나가다 보면 긴 역사의 한토막이 여러 작품에 걸쳐 서술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말해, 정복자 에드워드 3세의 뒤를 이은 리처드 2세의 이야기는 '리처드 2세'에, 리처드 2세의 왕위를 찬탈한 헨리 볼링브록 (Henry Bolingbroke)의 이야기는 '헨리 4세' 1,2부에, 프랑스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헨리 5세의 영웅담은 '헨리 5세'에, 그의 뒤를 이은 헨리 6세와 장미전쟁, 에드워드 4세의 이야기는 '헨리 6세' 1,2,3부에, 에드워드 4세와 에드워드 5세, 리처드 3세의 이야기는 '리처드 3세'에 서술되어 있다.

시리즈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잇는 '리처드 3세'는 헨리 튜더가 보스워스 평원 전투에서 리처드 3세를 죽이고 헨리 7세로 즉위하는 것으로 끝이난다.

      '헨리 5세'와 '리처드 3세'를 읽으며 그 사이에 위치한 '헨리 6세'의 이야기가 항상 궁금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마음먹고 1,2, 3부를 모두 구해 읽어보게 되었다.

1,2부는 옥스퍼드 셰익스피어 출판본으로 읽었고, 3부는 같은 출판사 것을 구할 수가 없어 케임브릿지 셰익스피어 출판본으로 읽었다.

           '헨리 6세' 삼부작은 헨리 5세의 죽음 직후부터 후기 100년 전쟁과 장미전쟁, 에드워드 4세의 등극까지 방대한 내용을 다루는 역사 희곡이다.

그러다보니 읽기도 전에 지레 겁부터 먹고 망설여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예상 외로 헨리 6세는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매우 쉬운 문체로 이루어져 있었고, 내용전개 역시 복잡하지 않아 읽는 것이 쉽고 재밌었다.

셰익스피어의 처녀작이라 그런지, 앞서 언급한 '헨리 5세'나 '리처드 3세', 또는 '헨리 8세'같은 후기 작품과 비교해 보았을 때, '헨리 6세'는 일반 소설책을 읽듯이 읽어도 될 정도로 쉽다.

셰익스피어 특유의 은유와 화려한 수식은 여기서도 여전하지만 햄릿의 독백처럼 몇 번씩 읽고 생각해봐야 비로소 그 숨은 의미가 파악이 되는 난해한 대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사건의 전개역시 매우 빠르고 박진감 있어 읽는 내내 재미가 있다.

셰익스피어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이라면 헨리 6세를 그 시작으로 삼아도 될 것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헨리 6세'는 이야기상으로 '헨리 5세'와 '리처드 3세' 사이에 위치하는 작품이다.

그러다보니 낯익은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헨리 5세'에서 헨리국왕의 곁을 든든히 지켰던 엑세터, 샐리스버리, 탈봇, 글로스터 등이 영국측의 주요인물로 등장하며, 헨리 5세의 맞수였던 프랑스의 샤를 왕자는 헨리 6세 1부에서도 영국과 싸우는 프랑스군의 리더로 등장한다.

또한 '리처드 3세'의 주요 캐릭터인 리처드와 에드워드, 조지, 마가렛 왕비, 엘리자베스 그레이도 모습을 나타낸다.

            그러나 '헨리 5세'나 '리처드 3세'와 비교해 보았을 때, '헨리 6세'는 내용의 구성방식이 상당히 다르다.

'헨리 5세'와 '리처드 3세'에서는 제목 그대로 헨리 5세와 리처드 3세가 카리스마 있는 주인공으로 등장 해 극을 이끌어가는 반면, '헨리 6세'는 전체 극을 이끌어 간다고 할만한 주인공을 내세우지 않는다.

제목은 '헨리 6세'이지만 정작 헨리 6세는 전쟁 속에서 슬퍼하고 고뇌하는 유약한 인물로 묘사될 뿐, 사건 전개에 이렇다 할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리처드 3세'가 주인공 리처드의 독무대라 해도 좋을만큼 주인공이 극을 이끌어나가는 형태라고 한다면, '헨리 6세'에서는 탈봇, 서머셋, 요크, 글로스터 같은 여러 인물들이 사건을 전개해 나간다.

한 캐릭터가 극을 어느 정도 이끌어나가는가 싶으면 이내 죽거나 사라져버리고 다른 캐릭터가 바통을 이어받는 형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읽는 것이 다소 혼란스러울 수도 있는데, 1,2,3부 별로 주요하게 다루는 사건의 기본 축에 대한 이해만 놓치지 않는다면 그다지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1부에서는 후기 백년전쟁과 장미전쟁의 발단을 주로 다룬다.

영국과 프랑스의 싸움이 꽤 박진감 있게 다뤄지며, 랭커스터의 서머셋과 요크의 리처드가 정원에서 각각 붉은 장미와 하얀 장미를 뽑아드는 유명한 장면에서 '장미전쟁'이라는 용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헨리 5세' 2막 2장에서 헨리 5세가 사우스햄튼에서 반역을 진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헨리 6세'에서 요크가를 이끄는 요크공 리처드가 바로 당시 반역에 가담했던 케임브릿지 백작 리처드의 아들이다.

        양 가문이 티격태격하고 있는 동안, 내분에 휩싸이지 않고 소신껏 전투에 임하다 아들과 함께 장렬한 최후를 맞는 노장 탈봇 경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세력 다툼을 하느라 양쪽 가문 모두 탈봇에게 지원군을 보내주지 않은 것이 영국군이 패배할 수 밖에 없었던 요인으로 묘사되는데, 아마 영국인인 셰익스피어의 입장에서 프랑스군을 강하고 용감무쌍하게 그리는 것 보다는 영국 내부에 문제가 있었노라고 쓰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또한 잔 다르크 역시 '마녀', '창녀'등으로 표현되어 있다.

화형을 당하는 장면에서도 잔 다르크는 천한 혈통인 아버지를 부인하고, 살기 위해 거짓말까지 하는 모습을 보인다.

오히려 그런 잔 다르크를 고통 없이 죽여주라는 영국의 워윅이 훨씬 더 정의롭고 도덕적으로 보일 정도다.

  이런 모습들은 현대의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았을 때 터무니없을 수도 있지만, 당시 영국인으로서 영국인을 대상으로 집필을 해야 했을 셰익스피어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당시 셰익스피어가 참고했을 사료에 영국위주로 서술된 편협 된 정보 이상의 것이 있었을리도 만무하다.

          '선한 험프리 공의 죽음 (...With the Death of the Good Duke Humphrey)'이라는 부제가 붙은 2부에서는 영국의 내전이 본격화 된다.

당시 평민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글로스터 공 험프리가 모함을 받아 죽임을 당하는 내용이 꽤 비중있게 다루어지며, 요크 공 리처드가 왕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나섬에 따라 양쪽 가문 사이의 싸움도 점차 치열해진다.

유약한 헨리 6세를 대신하여 마가렛 왕비가 랭커스터 가를 이끌게 되며, 훗날 에드워드 4세가 될 요크공의 첫째 아들 에드워드와 리처드 3세로 왕위에 오를 셋째 아들 리처드도 드디어 등장하게 된다.

             삼부작 중 최고라는 평가를 듣는 3부의 원제는 '요크공 리처드의 비극과 선한 국왕 헨리 6세의 죽음(The True Tragedie of Richard Duke of Yorke, and the Death of Good King Henrie the Sixt)'이며 내용상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부분을 다룬다.

지금까지 요크 가문을 이끌어왔던 요크 공 리처드는 극 초반 마가렛 왕비와 클리포드에게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고, 요크 가문은 그의 장남 에드워드가 이끌게 된다.

랭커스터의 마가렛 왕비는 유약한 남편을 대신 해 가문을 이끄는 여장부로서의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마가렛은 결국 패배하고 '리처드 3세'에서는 유령처럼 성 안을 떠돌며 저주를 퍼붓는 폐인으로 전락하고 마는데, 마가렛의 그런 비극적 운명 때문에 그녀의 비열하고 거친 모습을 보면서도 오히려 그녀를 동정할 수 있었다.

          속편 격인 '리처드 3세'에서 주인공으로서 확고히 자리 매김할 리처드는 3부에서부터 사건 전개의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특히 3막 2장에서의 리처드의 긴 독백은 그의 악랄하고 야심찬 성미를 그대로 드러내 주며, '리처드 3세'까지 통틀어 그가 앞으로 맡게될 역할을 예고 해 준다.

(로렌스 올리비에는 58년 작 '리처드 3세'에서 이 대사를 상당부분 차용하기도 하였다) 또한 헨리 6세가 어린 리치몬드(헨리 튜더)를 보고 훗날 왕이 될 것이라 예언하는 부분이나 ("리치몬드가 어릴적에 헨리 6세가 예언을 한 적이 있지. 리치몬드가 왕이 될 것이라고..." -'리처드 3세' 3막 4장 리처드의 대사 中), 튜크스버리 전투, 워윅의 배신 등 '헨리 6세' 3부는 '리처드 3세'와 바로 이어지는 작품이라 해도 될 정도로 '리처드 3세'와의 연계성이 크다.

요크공이 비참하게 최후를 맞는 장면이나, 전쟁의 참사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헨리 왕의 모습, 어머니인 마가렛 왕비가 보는 앞에서 에드워드 왕자를 죽이는 장면 등 연극으로서의 드라마틱한 요소도 3부에서 절정에 이른다고 할 수 있겠다.

          헨리 6세 삼부작은 기대치 못한 즐거움을 안겨준 셰익스피어의 또 다른 걸작이었다.

셰익스피어나 장미전쟁에 관심 있거나, '헨리 5세'나 '리처드 3세'를 재미있게 읽었거나, 아니면 역사를 바탕으로 한 흥미진진한 희곡 작품을 찾는 사람이라면 '헨리 6세'를 읽고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이긴 헨리 튜더는 장미 전쟁을 종식시키고 튜더조를 창건하게 됩니다.

리처드 3 세는 플랜태저넷 왕조의 마지막 왕으로 기록됩니다.

    (리처드 3 세의 초상화 Portrait of Richard III of England, painted c. 1520 (approximate date from tree-rings on panel), after a lost original, for the Paston family, owned by the Society of Antiquaries, London, since 1828. )     리처드 3 세는 기본적으로 패배자의 포지션이기 때문에 역사에서 좋게 묘사될 수 없는 인물입니다.

특히 권력을 장악한 과정 부터가 악인으로 후세에 묘사되기 충분한 이유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는 요크공 리처드 플랜태저넷 (Richard Plantagenet, Duke of York) 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는데 척추 기형 (흔히 그는 꼽추라고 묘사됨) 및 한쪽 다리를 저는 모습으로 묘사되곤 합니다.

    막내인 그가 권좌에 오르게 된 것은 형인 에드워드 4 세 (Edward IV) 가 죽으면서 아들인 12살의 에드워드 5 세 (Edward V) 가 왕좌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어린 왕을 보좌하기 위해 삼촌인 리처드 3 세 (당시에는 글로스터 공  Duke of Gloucester) 은 호국경 (Lord Protector) 의 자리에 올라 실권을 장악하지만 갑자기 왕자들 (에드워드 5 세 및 동생인 요크공 리처드) 을 런던탑에 유폐하고 2 달 뒤 선왕 에드워드 4 세와 왕비 엘리자베스 우드빌 (Elizabeth Woodville) 의 결혼이 무효라고 주장하며 자신이 대신 왕위에 올라 리처드 3 세가 됩니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강력한 국민적 저항과 반발이 따를 수 밖에 없었는데 선왕과 엘리자베스 왕비 사이의 아이들인 에드워드 5 세와 리처드 왕자는 런던탑에 유폐되어 살해당했다는 설이 당시부터 지금까지 설득력 있게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정황이 당시에 알려지지 않아서 오랜 세월 전해내려지는 런던탑의 왕자들 (Princes in the Tower) 전설이 탄생했습니다.

이는 수많은 문학 작품이나 혹은 회화들의 소재가 되었는데 상당수는 꽤 미소년으로 묘사된 왕자들이 사악한 삼촌에 의해 살해당하는 내용입니다.

    (런던 탑의 왕자들 1878 년 작  Royal Holloway collection)            이 사건을 소재로한 가장 유명한 작품은 역시 세익스피어의 희곡 리처드 3 세일 것입니다.

리처드 3 세에서 세익스피어는 새로운 형태의 악당으로 리처드 3 세를 재탄생시켜 권선징악이 주된 내용이 되는 중세극과는 또 다른 현대적 악인의 해석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리처드 3 세는 항상 선이 승리하는 중세 전통극이 아니라 르네상스 시대의 세속적 인간관에 맞춘 새로운 희극이었습니다.

리처드 3 세의 뒤틀린 욕망과 정해진 듯 한 파멸의 길로 접어드는 과정은 중세 도덕극에서는 보기 힘든 요소였습니다.

    세익스피어의 리처드 3 세는 리처드 3세를 불구이자 잔학과 음모의 화신이고 전형적인 폭군으로 묘사한 토머스 모어의 원전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입니다.

하지만 후세에 과연 진짜 리처드 3 세가 그렇게 악인이고 폭군이기만 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소 엇갈리고 있습니다.

    사실 리처드 3 세가 형이 죽은 후 호국경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냥 왕의 동생이어서가 아니라 실제 장미 전쟁에서 보여준 뛰어난 군사 지휘관으로써의 자질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1470 년 부터 형을 도와 랭커스터가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인공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그는 헨리 7 세와 그가 개창한 튜더 왕조의 공적 1 호 였기 때문에 이후 역사에서는 불구, 탐욕의 화신, 사악한 음모를 꾸미는 인간 등으로 주로 묘사되었습니다.

아무튼 짧은 재위 기간에도 불구하고 후세에 널리 알려진 - 주로는 물론 세익스피어의 리처드 3 세와 런던 탑의 왕자 전설 덕 - 리처드 3 세의 유골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영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흥미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이 유골은 2012 년 레스터 대학 (University of Leicester ) 의 고고학자들이 2012 년 부터 발굴한 것으로 당시 보스워스 전투가 벌어진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Greyfriars 교회 터에서 발견되었는데 현재는 주자창으로 사용되는 곳입니다.

연구팀은 여기서 척추가 심하게 휘어진 유골을 발견했는데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으로 500 년 정도 된 것이고 10 개 이상의 인위적인 상처를 유골에서 발견해서 유골의 주인공이 무기로 살해당했음을 입증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어머니쪽 혈통 (그의 대에서 왕조가 끊겼고 자식들은 후사를 남기지 못했음) 의 후손들에서 발견된 DNA 였습니다.

이 DNA 를 서로 대조하므로써 연구팀은 이 유골이 리처드 3 세의 것임을 증명했습니다.

    (발굴된 리처드 3 세의 유골. 척추가 심하게 휘어진 것으로 봐서 적어도 당대의 묘사 중 척추 기형이었다는 이야기는 사실로 판명되었음.  The complete skeleton showing the curve of the spine. (Credit: Copyright University of Leicester) )   사실 리처드 3 세처럼 전투중 사망해 어디 매장되었는지 알 수 없는 경우 이렇게 유골을 발견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최신의 고고학적 기법과 DNA 대조를 통해 이렇게 알아낸 것은 나름 천운이라고 해야겠죠. 다만 유골의 주인공은 그다지 운이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아무튼 이 발견은 꽤 흥미로운 뉴스 같습니다.

    참고       http://www.sciencedaily.com/releases/2013/02/130204094610.htm http://en.wikipedia.org/wiki/Richard_III  '헨리 5세'와 '리처드 3세'는 리처드 2세부터 리처드 3세까지의 플란타지넷 왕가 이야기를 다룬 역사 시리즈의 일부다.

물론 셰익스피어가 처음부터 시리즈를 기획하고 집필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작품을 읽어나가다 보면 긴 역사의 한토막이 여러 작품에 걸쳐 서술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말해, 정복자 에드워드 3세의 뒤를 이은 리처드 2세의 이야기는 '리처드 2세'에, 리처드 2세의 왕위를 찬탈한 헨리 볼링브록 (Henry Bolingbroke)의 이야기는 '헨리 4세' 1,2부에, 프랑스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헨리 5세의 영웅담은 '헨리 5세'에, 그의 뒤를 이은 헨리 6세와 장미전쟁, 에드워드 4세의 이야기는 '헨리 6세' 1,2,3부에, 에드워드 4세와 에드워드 5세, 리처드 3세의 이야기는 '리처드 3세'에 서술되어 있다.

시리즈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잇는 '리처드 3세'는 헨리 튜더가 보스워스 평원 전투에서 리처드 3세를 죽이고 헨리 7세로 즉위하는 것으로 끝이난다.

      '헨리 5세'와 '리처드 3세'를 읽으며 그 사이에 위치한 '헨리 6세'의 이야기가 항상 궁금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마음먹고 1,2, 3부를 모두 구해 읽어보게 되었다.

1,2부는 옥스퍼드 셰익스피어 출판본으로 읽었고, 3부는 같은 출판사 것을 구할 수가 없어 케임브릿지 셰익스피어 출판본으로 읽었다.

           '헨리 6세' 삼부작은 헨리 5세의 죽음 직후부터 후기 100년 전쟁과 장미전쟁, 에드워드 4세의 등극까지 방대한 내용을 다루는 역사 희곡이다.

그러다보니 읽기도 전에 지레 겁부터 먹고 망설여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예상 외로 헨리 6세는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매우 쉬운 문체로 이루어져 있었고, 내용전개 역시 복잡하지 않아 읽는 것이 쉽고 재밌었다.

셰익스피어의 처녀작이라 그런지, 앞서 언급한 '헨리 5세'나 '리처드 3세', 또는 '헨리 8세'같은 후기 작품과 비교해 보았을 때, '헨리 6세'는 일반 소설책을 읽듯이 읽어도 될 정도로 쉽다.

셰익스피어 특유의 은유와 화려한 수식은 여기서도 여전하지만 햄릿의 독백처럼 몇 번씩 읽고 생각해봐야 비로소 그 숨은 의미가 파악이 되는 난해한 대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사건의 전개역시 매우 빠르고 박진감 있어 읽는 내내 재미가 있다.

셰익스피어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이라면 헨리 6세를 그 시작으로 삼아도 될 것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헨리 6세'는 이야기상으로 '헨리 5세'와 '리처드 3세' 사이에 위치하는 작품이다.

그러다보니 낯익은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헨리 5세'에서 헨리국왕의 곁을 든든히 지켰던 엑세터, 샐리스버리, 탈봇, 글로스터 등이 영국측의 주요인물로 등장하며, 헨리 5세의 맞수였던 프랑스의 샤를 왕자는 헨리 6세 1부에서도 영국과 싸우는 프랑스군의 리더로 등장한다.

또한 '리처드 3세'의 주요 캐릭터인 리처드와 에드워드, 조지, 마가렛 왕비, 엘리자베스 그레이도 모습을 나타낸다.

            그러나 '헨리 5세'나 '리처드 3세'와 비교해 보았을 때, '헨리 6세'는 내용의 구성방식이 상당히 다르다.

'헨리 5세'와 '리처드 3세'에서는 제목 그대로 헨리 5세와 리처드 3세가 카리스마 있는 주인공으로 등장 해 극을 이끌어가는 반면, '헨리 6세'는 전체 극을 이끌어 간다고 할만한 주인공을 내세우지 않는다.

제목은 '헨리 6세'이지만 정작 헨리 6세는 전쟁 속에서 슬퍼하고 고뇌하는 유약한 인물로 묘사될 뿐, 사건 전개에 이렇다 할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리처드 3세'가 주인공 리처드의 독무대라 해도 좋을만큼 주인공이 극을 이끌어나가는 형태라고 한다면, '헨리 6세'에서는 탈봇, 서머셋, 요크, 글로스터 같은 여러 인물들이 사건을 전개해 나간다.

한 캐릭터가 극을 어느 정도 이끌어나가는가 싶으면 이내 죽거나 사라져버리고 다른 캐릭터가 바통을 이어받는 형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읽는 것이 다소 혼란스러울 수도 있는데, 1,2,3부 별로 주요하게 다루는 사건의 기본 축에 대한 이해만 놓치지 않는다면 그다지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1부에서는 후기 백년전쟁과 장미전쟁의 발단을 주로 다룬다.

영국과 프랑스의 싸움이 꽤 박진감 있게 다뤄지며, 랭커스터의 서머셋과 요크의 리처드가 정원에서 각각 붉은 장미와 하얀 장미를 뽑아드는 유명한 장면에서 '장미전쟁'이라는 용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헨리 5세' 2막 2장에서 헨리 5세가 사우스햄튼에서 반역을 진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헨리 6세'에서 요크가를 이끄는 요크공 리처드가 바로 당시 반역에 가담했던 케임브릿지 백작 리처드의 아들이다.

        양 가문이 티격태격하고 있는 동안, 내분에 휩싸이지 않고 소신껏 전투에 임하다 아들과 함께 장렬한 최후를 맞는 노장 탈봇 경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세력 다툼을 하느라 양쪽 가문 모두 탈봇에게 지원군을 보내주지 않은 것이 영국군이 패배할 수 밖에 없었던 요인으로 묘사되는데, 아마 영국인인 셰익스피어의 입장에서 프랑스군을 강하고 용감무쌍하게 그리는 것 보다는 영국 내부에 문제가 있었노라고 쓰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또한 잔 다르크 역시 '마녀', '창녀'등으로 표현되어 있다.

화형을 당하는 장면에서도 잔 다르크는 천한 혈통인 아버지를 부인하고, 살기 위해 거짓말까지 하는 모습을 보인다.

오히려 그런 잔 다르크를 고통 없이 죽여주라는 영국의 워윅이 훨씬 더 정의롭고 도덕적으로 보일 정도다.

  이런 모습들은 현대의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았을 때 터무니없을 수도 있지만, 당시 영국인으로서 영국인을 대상으로 집필을 해야 했을 셰익스피어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당시 셰익스피어가 참고했을 사료에 영국위주로 서술된 편협 된 정보 이상의 것이 있었을리도 만무하다.

          '선한 험프리 공의 죽음 (...With the Death of the Good Duke Humphrey)'이라는 부제가 붙은 2부에서는 영국의 내전이 본격화 된다.

당시 평민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글로스터 공 험프리가 모함을 받아 죽임을 당하는 내용이 꽤 비중있게 다루어지며, 요크 공 리처드가 왕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나섬에 따라 양쪽 가문 사이의 싸움도 점차 치열해진다.

유약한 헨리 6세를 대신하여 마가렛 왕비가 랭커스터 가를 이끌게 되며, 훗날 에드워드 4세가 될 요크공의 첫째 아들 에드워드와 리처드 3세로 왕위에 오를 셋째 아들 리처드도 드디어 등장하게 된다.

             삼부작 중 최고라는 평가를 듣는 3부의 원제는 '요크공 리처드의 비극과 선한 국왕 헨리 6세의 죽음(The True Tragedie of Richard Duke of Yorke, and the Death of Good King Henrie the Sixt)'이며 내용상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부분을 다룬다.

지금까지 요크 가문을 이끌어왔던 요크 공 리처드는 극 초반 마가렛 왕비와 클리포드에게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고, 요크 가문은 그의 장남 에드워드가 이끌게 된다.

랭커스터의 마가렛 왕비는 유약한 남편을 대신 해 가문을 이끄는 여장부로서의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마가렛은 결국 패배하고 '리처드 3세'에서는 유령처럼 성 안을 떠돌며 저주를 퍼붓는 폐인으로 전락하고 마는데, 마가렛의 그런 비극적 운명 때문에 그녀의 비열하고 거친 모습을 보면서도 오히려 그녀를 동정할 수 있었다.

          속편 격인 '리처드 3세'에서 주인공으로서 확고히 자리 매김할 리처드는 3부에서부터 사건 전개의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특히 3막 2장에서의 리처드의 긴 독백은 그의 악랄하고 야심찬 성미를 그대로 드러내 주며, '리처드 3세'까지 통틀어 그가 앞으로 맡게될 역할을 예고 해 준다.

(로렌스 올리비에는 58년 작 '리처드 3세'에서 이 대사를 상당부분 차용하기도 하였다) 또한 헨리 6세가 어린 리치몬드(헨리 튜더)를 보고 훗날 왕이 될 것이라 예언하는 부분이나 ("리치몬드가 어릴적에 헨리 6세가 예언을 한 적이 있지. 리치몬드가 왕이 될 것이라고..." -'리처드 3세' 3막 4장 리처드의 대사 中), 튜크스버리 전투, 워윅의 배신 등 '헨리 6세' 3부는 '리처드 3세'와 바로 이어지는 작품이라 해도 될 정도로 '리처드 3세'와의 연계성이 크다.

요크공이 비참하게 최후를 맞는 장면이나, 전쟁의 참사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헨리 왕의 모습, 어머니인 마가렛 왕비가 보는 앞에서 에드워드 왕자를 죽이는 장면 등 연극으로서의 드라마틱한 요소도 3부에서 절정에 이른다고 할 수 있겠다.

          헨리 6세 삼부작은 기대치 못한 즐거움을 안겨준 셰익스피어의 또 다른 걸작이었다.

셰익스피어나 장미전쟁에 관심 있거나, '헨리 5세'나 '리처드 3세'를 재미있게 읽었거나, 아니면 역사를 바탕으로 한 흥미진진한 희곡 작품을 찾는 사람이라면 '헨리 6세'를 읽고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3) 그의 아내 : 레이디 앤 네빌(Anne Neville)마리 반필드(Marie Barnfield) 씀  어릴 적  앤 네빌(Anne Neville)은 리처드 3세의 아내이자 왕비이다.

그녀는 워릭 백작 부부인 리처드 네빌(Richard Neville)과 앤 보챔프(Beauchamp)의 둘째 딸이며, 그녀의 언니 이자벨(Isabel Neville, 1451년생)은 클라렌스 공작부인이다.

앤은 에이븐 강(Avon River)이 내려다 보이는 워릭 성(Warwick Castle)에서 1456년 6월 11일에 태어났으며, 그 마을에 있는 성모 마리아 신학대학 겸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녀의 부모는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가문의 대를 이을 아들을 바라고 있었지만, 결국에 두 딸이 자신들 부부의 상속자가 될 것임을 서서히 받아들여야만 했을 것이다.

앤이 태어났을 때 그녀의 아버지인 워릭 백작은 이미 정치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고, 전 해 세인트 알번스(St. Albans)의 첫번째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던 덕분에 칼레의 수비대장(Captain of Calais)으로 임명된 상태였다.

앤이 거의 한 살이 다 되었을 때 워릭 백작 부부는 칼레에 거처를 차렸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앤은 이후 3년을 부모 그리고 언니와 함께 보냈을 것이다.

  <워릭 성>   요크 가문의 승리와 함께 워릭은 섬으로 돌아왔다.

에드워드 왕의 수석 외교관이자 군인으로서, 워릭 백작은 종종 집을 떠난 상태였을 것이고, 이자벨과 앤은 아마도 어머니와 함께 성에 남았을 것이다.

두 소녀가 어디에 살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노스 요크셔(North Yorkshire)의 미들험 성(Middleham Castle)이 아마도 그들의 거처였을 듯 하다.

앤은 친삼촌인 조지 네빌(George Neville)이 1465녀 9월에 요크의 총대주교로서 즉위식을 가질 때 처음으로 대중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때 그녀의 나이 9살이었다.

또한 같은 해 왕의 막내 동생인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Richard, Duke of Gloucester, 1452년생)가 프랜시스 로벨 경(Francis Lord Lovell, 1456년생) 및 몇몇 귀족 자제들과 함께 워릭 백작의 궁정에 합류하기도 하였다.

그 전 해 앤의 아버지와 에드워드 왕의 관계에 균열이 생겼는데, 에드워드 왕이 프랑스의 신부를 아내로 맞아들이라는 워릭 백작의 외교적 중재를 고작 젠트리 계급의 딸인 엘리자베스 우드빌(Elizabeth Woodville)과 비밀리에 결혼하였음을 공언하는 것으로 답하였기 때문이다.

새 왕비는 자매들이 여럿이었고, 때문에 워릭 백작은 왕국 내 유력한 사윗감을 그녀들에게 뺏길 판국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왕은 당시 글로스터 공작과 로벨을 각각 이자벨과 앤의 신랑감으로 찍고 있던 듯 하다.

 하지만 워릭은 당시에 자신의 두 딸을 왕의 두 동생과 각각 결혼시키려는 야망을 갖고 있었다.

이 경우라면 글로스터 공작은 이자벨이 아닌 앤과 혼인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에 이자벨이 클라렌스 공작과 결혼하게 되면, 앤과 글로스터의 결혼은 ‘근친혼’의 범주에 들어가 불법이 된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힉스(Hicks), 앤 네빌, Tempus, 2006, 2006년도판 BBC 역사 매거진 ‘리처드 3세 왕은 과연 근친상간을 저질렀나?'). ‘법적으로’ 혼인이 제한되는 경우는 성적인 결합으로 인하여 ‘하나의 육체’가 되었을 때만 국한되었다.

즉 이에 따르면, 사면장 없이 이전 배우자의 친척, 또는 이론적으로 이전 애인과의 친척과 결혼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하지만 결혼하는 두 사람의 혈연자가 친척, 또는 ‘혼인 관계’라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워릭의 계획한 이중 결혼식의 유일한 장애물은 왕이었다.

왕은 클라렌스의 조지의 결혼이 중요한 외교적 흥정 대상일 것이 때문에, 자신의 맏아우를 워릭 가문의 후계자로 넘겨주는 것을 반대하엿다.

워릭 가문의 자매는 매우 좋은 신부감이었으나, 그들은 아버지의 샐리스버리(Salisbury) 백작령과 어머니의 광대한 영지들, 즉 워릭(Warwick)과 남서쪽의 디스펜서(Despencer) 백작령 등을 균등하게 상속받아야 했다.

(북쪽에 있는 네빌 가문의 영토는 남자 후계자에게만 상속이 가능하였기 때문에, 워릭 백작이 아닌 그의 가장 가까운 남자 친척에게 상속될 예정이었다.

)  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워릭은 클라렌스의 동의를 얻어 교황에게 사면장을 요청하는 사절을 보냈다.

교회법으로 볼 때 그의 딸들은 왕의 동생들과 원칙적으로 결혼할 수 없는 가까운 친척 사이였기 때문이었다1. 우리는 적어도 워릭 백작이 이자벨의 결혼에 대한 사면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데, 이를 증명하는 문서가 현존하기 때문이다.

리처드와 앤의 결혼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증거는 아니고, 정황을 보았을 때 사면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두 쌍의 결혼에 대한 사면장들은 바티칸 기록 보관소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때는 바야흐로 1468년 말, 워릭 백작과 왕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져버렸고, 리처드는 누구의 편이 될 것이냐는 다그침을 받았다.

리처드는 왕의 편이 되기로 결심하였다.

그가 떠남으로서, 앤과의 결혼은 깨진 것으로 간주되었다.

한편 로벨 경은 이미 앤의 사촌인 앤 피츠휴(Anne FitzHugh)와 결혼한 상태였다.

  랭카스터의 웨일즈 왕자와 결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라렌스는 워릭과 함께 음모를 꾸며 1469년 7월 12일 칼레에서 이자벨 네빌과 비밀 결혼식을 치렀다.

이 결혼은 클라렌스와 워릭이 반역을 일으키는 기초가 되었다.

그들은  왕의 총신들을 박살내고 에드워드 왕을 포로로 가뒀다.

아마도 클라렌스가 에드워드 대신 왕이 되고 네빌이 배후에서 조종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이러한 쿠데타를 지속시키는 데 실패하였다.

그들은 왕과 재화합하였지만,  이내 반란을 또 일으켰고, 이번에도 역시 실패하였다.

앤은 부모와 언니, 그리고 형부인 클라렌스와 함께 프랑스로 망명 생활을 떠났다.

이 자벨이 낳은 첫 아이는 배에서 사산되었다.

          <랭카스터 가문 : 헨리 6세, 그의 아내 앙주의 마거릿, 부부의 아들 랭카스터의 에드워드>랭카스터의 에드워드는 19세기에 판화에 그려진 초상화이고, 당시의 모습을 묘사한 초상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요크 가문 : 에드워드 4세와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우드빌(Elizabeth Woodville)> 에드워드 4세가 랭카스터파의 일개 과부인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결혼한 덕분에 불필요한 정치적 파란을 겪게 되었고, 이는 그 자신의 일시적 퇴위와 바넷, 툭스버리에서 벌어진 두 차례의 참혹한 전투를 초래하였다.

 당대 최고의 미녀로 평가받은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자신의 낮은 신분 때문에 정도 이상의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이것이 앤이 헨리 6세와 앙주의 마거릿(Margaret of Anjou)의 유일한 아들이자 후계자인 랭카스터의 에드워드(Edward of Lancaster)와 결혼하게 된 전후배경이다.

마거릿 왕비는 프랑스의 루이 11세를 설득하여 지원을 약속받은 후, 에드워드 왕과 군사작전으로 결판을 내기 위해 워릭과 동맹을 맺었다.

랭카스터의 에드워드와 앤은 8촌지간2이었기 때문에 교황의 사면장 없이 결혼할 수 없었지만, 1470년 7월 25일 에드워드와 앤은 서로 낯설어 하면서 앙제(Angers) 성당에서 엄숙한 약혼식을 올렸다.

1주일 후 워릭과 클라렌스는 앤과 그녀의 어머니를 프랑스에 남기고 영국을 침공하였다.

에드워드 4세는 패하여 해외로 달아났고, 헨리 6세는 복위하였다.

교황의 사면장이 도착하자, 앤과 랭카스터의 에드워드는 12월 13일 앙부아즈(Anboise)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 때 웨일즈 왕자는 17세, 앤은 14세였다.

  크리스마스 이후, 젊은 왕세자 부부는 각자 어머니를 대동하고 디프(Dieppe) 해안으로 이동하여 영국으로 가는 배를 탔다.

폭풍우가 몰아쳤지만, 그들은 3월이 되기 전에 웨이머스(Weymouth) 항을 목표로 출발하였다.

당시 앤은 웨일즈 왕자 및 마거릿 왕비와 한 배에 타고 있었고, 워릭 백작부인은 다른 배를 타고 있었다.

날씨 상태는 그때까지도 나빠서, 앤의 어머니를 태우고 있던 배는 홀로 떨어져 동쪽으로 수 마일이 떨어진 곳으로 표류하였다.

그들은 1471년 4월 14일에 상륙하였으나, 바로 그 때 다시 세워진 왕권이 몰락한 것을 목격하였다.

에드워드 왕이 다시 돌아와 런던을 접수하였으며, 클라렌스는 다시 요크 가문 쪽으로 붙었고, 바로 그 날 바넷 전투에서 워릭 백작이 전사하였다.

워릭 백작부인은 이 소식을 듣고 뉴 포레스트(New Forest)에 있는 볼리유 수도원(Baeulieu Abbey)의 성소로 들어갔다3. 앤은 툭스버리(Tewkesbury)로 향하는 행렬에 억지로 끼어 이동하였고, 바로 그곳에서 일어난 전투에서 에드워드 왕의 군대가 랭카스터의 군대를 박살냈다.

랭카스터의 에드워드는 병사들과 함께 전사하였으며, 앤은 언니 이자벨과 형부인 클라렌스 공작의 감시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결혼으로 인한 분쟁  앤의 아버지와 남편은 모두 반역자로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볼리유 수도원의 성소로 도피하였으며, 에드워드 왕은 이를 적대행위로 간주하고, 곧 무장한 경비병들로 그녀를 감시하게 하였다(BL MS Cotton Julius BXII, f. 317). 부모의 영지는 모두 몰수당했으며, 원래 앤과 이자벨이 나눠 가져할 영지를 이자벨의 남편인 클라렌스가 모두 차지하였다.

원래대로라면 앤의 어린 사촌인 조지 네빌(George Neville)에게 주어졌어야 할 영국 북쪽에 있는 네빌 가문의 영지도, 조지 네빌의 아버지인 몽태규 후작(John Neville, Marquess of Montagu)이 바넷 전투에서 반역자로 죽는 바람에, 글로스터 공작이 가져가고 말았다.

앤의 언니인 이자벨과 클라렌스 공작 모두 앤의 재혼 또는 워릭과 샐리스버리의 영지 상속권을 허락하지 않을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9개월이 조금 못미치는 시간 동안 리처드는 끊임 없이 앤과 결혼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는 양자 모두에게 신중한 결합이었으며, 또한 앤의 아버지과 원래 점지해주던 혼사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감시자 노릇을 하던 클라렌스는 동생이 앤의 배후에 있다고 보고, 앤의 존재를 비밀로 하고자 하였다.

아마도 그는 처제를 주방의 하녀로 모습을 감추게 하려고 했던 듯 싶다.

하지만 앤은 이를 거부하고 자신의 상속권을 위해서 싸웠을 것이다.

결국에 리처드가 앤을 찾아냈고, 그녀를 데리고 런던의 성 마틴(St. Martin) 수도원의 성소의 은신처로 갔다.

    <앤 네빌과 리처드의 사인>앤 네빌은 "Anne Warwick"이라 썼고, 리처드는 "R(ichard) Gloucester"라 썼다.

   앤은 이에 리처드와 결혼하기로 동의하였고, 최종적인 사면권을 얻기 위해 로마로 사절을 보냈다.

리처드는 이전에 앤이 결혼하였던 랭카스터의 에드워드와 8촌 지간이었기 때문에 교황의 사면장 없이 결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472년 2월, 에드워드의 압력에 의하여 클라렌스는 리처드와 앤이 ‘재산을 나누어 갖지 않는 조건 하에서’ 그들의 결혼을 마지못해 동의하였다.

하지만 그 해 3월 18일까지, 클라렌스는 리처드에게 몇몇 영지들을 양도하는데 동의하였다.

(CPR 1467-77, p. 330). 리처드와 앤의 사면장은 4월 22일에 로마에서 비준되었고, 영국으로 출발한 것은 6월쯤이었을 것이다.

당시 상황을 보건대 리처드와 앤은 클라렌스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면장이 도착하기 전인 1473년 1월에 결혼 한 듯 하다.

당시 앤의 나이 16세, 리처드의 나이 19세 또는 20세였다.

1473년 여름에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는 왕의 허락을 받아 볼리유의 성소에서 머무르고 있던 앤의 어머니를 데리고 미들험에 있는 자신의 궁정으로 모셔갔다.

  하지만 워릭 백작부인은 자신의 영지를 회복하지 못하였다.

두 딸과 사위들의 금전적인 욕심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에드워드 왕이 워릭 백작부인의 재혼이라는 위험을 감수하려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녀가 재혼한다면, 그 남편은 그녀의 광대한 영지와 재산 덕분에 왕국에서 가장 막강한 인물이 될 터였다.

백작부인의 영지를 두 딸과 사위들에게 상속하면 상황이 안정될 것으로 보였으나, 클라렌스는 이를 방해하려 들었다.

1473년 가을까지 그는 글로스터 공작에 대항하여 무장하였으며, 이 상황은 곧 클라렌스에게 동정심을 느끼고 있던 한 영국인 방문자에 의해 프랑스 궁정에도 보고되었다.

  <클라렌스 공작 부부, 조지 플란타지넷과 이자벨 네빌. 카디프 성당의 스테인글라스>   ‘글로스터 공작은 강제로 이전에 웨일즈 왕자와 결혼하였던 고(故) 워릭 백작의 딸을 아내로 취했으며, 클라렌스 공작에 맞서 끊임 없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클라렌스는 그의 형인 에드워드 왕과 이전에 워릭 백작령을 받기로 약속한 적이 있기 때문에, 글로스터가 백작의 둘째 딸과 결혼하는 것을 이유로 영지를 나누어 갖는 것을 원하치 않고 있습니다.

’ (Calendar of Milanese State Papers, p. 177).  결혼이 강요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이나 또는 그러한 두려움은 근거 없는 얘기다.

하지만 그러하였기 때문에, 클라렌스가 리처드와 앤의 결혼이 교회법으로 봤을 때 원래 무효라는 점을 들어서라도 리처드가 워릭 백작령의 일부라도 상속 받는 것을 반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강요된 결혼은 특히 지주 계급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었다.

특히 신부 측의 부모 또는 보호자가 아닌 신랑에 의한 강요라면 더했다.

  당대의 사회는 특히 신부의 가족 또는 보호자의 의사에 반하여 상속녀를 유혹하는 일을 도둑질을 목적으로 한 ‘유괴(raptus4)’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당대의 사회 통념상 유괴와 가출은 그 뜻에서 차이가 거의 없었다.

클라렌스의 감시에서 앤을 성 마틴 수도원의 성소로 데려온 일은, 리처드가 그녀를 유괴한 것으로 보여질 수도 있었다.

클라렌스가 리처드의 납치설을 주장한 근거는 이러한 점들에서 나온 것이 거의 확실하다.

하지만 교회법이 당대의 사회 관습을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신부가 직접 동의하는 경우라면, 신부측 가족의 동의가 없어도, 신랑과 신부의 정당한 결혼이 가능하였다.

이에 따라 육체적인 성관계나 동거하는 것도 법적으로 가능하였다.

비록 그 결혼이 실제로 ‘강요’에 의해 이뤄진 것이어도 그러하였다.

  클라렌스는 영지의 분할 상속을 막기 위해 동생의 결혼이 유괴에 의한 것이었다고 줄기차게 주장하였다.

클라렌스가 그 결혼에 대해 교회법에 의거하여 더욱 강하게 반대했다고 했을지라도, 기록으로 남겨진 바는 없다.

   결국에 클라렌스는 자신의 영지를 압수하겠다는 왕의 위협에 굴복하였다.

영지 상속에 대한 분란은 1474년 5월 의회의 의결로 가라앉았다.

연대기 작가 크로울랜드(Crowland)는 ‘워릭 백작 부인이 자연스레 죽은 것처럼’ 간주하여 그녀의 영지를 즉시 두 딸들과 사위들한테 즉시 지급할 것을 명시한 포고령에 경악하였다.

클라렌스가 그때까지도 워릭 백작부인의 상속재산 대부분을 사실상 보유하고 있었고, 리처드와 앤의 몫으로 돌아간 것은 다른 가문의 재산에 속하는 것이었다.

클라렌스는 앤과 리처드의 결혼의 적법성에 대하여 끊임 없이 중상모략을 가하였다.

즉, 교회가 그들의 결혼이 무효라고 선언함으로서 리처드와 앤이 이혼하게 된 상태에서 다시 재결합하는 경우, 그들의 권리를 지켜줄 법적 문구를 발표해버리는 식이었다.

또한 클라렌스는 리처드가 앤과 두 번째 결혼을 하기 위해선 지켜야 할 권리들은 이러저러한 것들이 있다는 식으로 떠들고 다녔다 (C. Given-Wilson [ed.], Parliament rolls of Medieval England, Edward IV - October 1472 - 2nd roll). 하지만 그 어떠한 교회 법정도 혼인의 적법성에 대하여 이렇게까지 대중 앞에서 선언해야 한다고 요청한 적이 없었다.

또한 리처드와 앤의 결혼은 서로간 호의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하며, 부부 사이는 앤이 죽을 때까지 이어졌다.

   글로스터 공작부인<글로스터 공작부부, 앤과 리처드>  공작부인으로서 앤의 활동은 살짝 훑어볼 수 있는 정도이다.

1475년과 1477년 사이의 예시는 그 일면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1475년, 리처드는 프랑스로 원정을 가는 바람에 자리를 비웠다.

이 때 앤은 요크 시의 시장 및 시의원들과 함께 서신으로 왕래하였으며, 특히 그녀에게 중요한 편지 한 통은 그레이스톡 경(Loard Greystock)을 비롯한 남편의 참사회 회원들의 손에 딸려 보내기도 하였다 (York City Chamberlains’ Account Rolls, Surtees Soc. Vol. 192, 1980, p. 152). 리처드와 앤의 유일한 아들인 에드워드(Edward)는 1476년 봄 또는 여름에 미들험(Middleham)에서 태어났다.

적어도 공식 기록에 따르면, 에드워드는 유아기를 무사히 넘긴 부부의 유일한 혈육이다.

같은 해에, 앤은 네빌 가문의 조상들이 묻혀있는 더럼 수도원(Durham Priory)의 자선 회원5이 되었다.

12월에 그녀는 아마도 리처드와 함께 런던에 있었던 듯 싶다.

당시 리처드는 ‘공작 각하의 분부에 의하여, 각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아내를 위하여 대령하라고 했던 모피’와 ‘공작부인께 대령하라고 명령하셨던 비단옷과 다른 물품들’에 대한 비용을 자신의 동-잉글랜드의 영지에 달아놓았다.

1477년 리처드와 앤은 요크의 성체 협회(Corpus Christi Guild)에 가입하였다.

앤은 자신의 개인사제를 승진시키기 위하여 더럼 수도원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아마도 같은 해에 케임브릿지의 퀸스 컬리지(Queen’s College)에 부부가 공동으로 기부금을 전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왕비가 되다.

  <리처드 3세와 앤 왕비><리처드 3세, 아내와 함께 대관식을 치르다>영드 The White Queen 8화의 한 장면 (배우는 아뉴린 바너드(Aneurin Barnard), 페이 마세이(Faye Marsay))   에드워드 4세의 죽음 이후, 리처드는 남쪽으로 가서 어린 에드워드 5세의 호국경 자리를 꿰찼다.

앤은 한 달 후에 런던으로 향했고, 6월 5일 화요일에 도착하였다.

곧 정치적 위기가 발생하였고, 결국에 리처드가 왕위를 차지하였다.

같은 시기에 앤은 언니 이자벨의 아들이자 고아인 상태로 도르셋 후작의 후견을 받고 있었던 워릭 백작 에드워드(Edward Plantagenet, Earl of Warwick)을 돌보기로 하였다(Mancini).  리처드와 앤은 공동으로 대관식을 치렀다.

웨스트민스터 타워에서 치러진 식 하루 전에, 그녀는 여성용 가운과 길이가 27야드(=11.88m)나 되는 금으로 수놓인 흰색 망토를 입었다.

그 망토는 담비와 족제비의 털로 만들어졌고, 흰색 비단과 금으로 수놓여진 레이스로 장식되어 있었다(Laynesmith, p. 92). 대관식은 아침 7시에 웨스트민스터의 홀에서 사원으로 걸어서 행진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으며, 그곳에서 부부는 미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대관식과 도유식6을 치렀다.

그 날은 장엄한 축하 연회와 함께 끝났으며, 그 자리에서 리처드는 금으로 만든 접시에, 앤은 금박을 입힌 접시에 음식을 대접받았다.

  <리처드 3세의 가족 : (왼쪽부터) 왕비 앤 네빌, 리처드 3세, 부부의 아들 미들험의 에드워드>   왕비로서 앤이 군림했던 시간은 짧았고, 당시 왕비의 궁정에서 남겨진 기록도 없어서, 아직도 그녀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남아있는 증거에 따르면, 앤이 글로스터 공작부인일 때부터 그녀를 모시던 북부 신사계급 출신 여인들이 그대로 왕비의 시녀로서 궁정에서 봉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종종 남편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그의 대관식 기간 동안, 앤은 워릭에 도착하여 리처드를 잠시 멈춰 세우고, 그녀가 일전에 윈저(Windsor)에서 접견하였던 에스파냐 대사를 만나게 하였다.

부부는 앤의 고향(=워릭)에서 1주일 정도 머물렀다.

이후 앤과 리처드는 요크를 방문하였고, 그곳에서 7살 먹은 아들 에드워드를 웨일즈 왕자로 선포하였다.

국왕 일행은 다시 남쪽으로 향했고, 폰티프락스(Pontefract)를 방문하여 2주일을 머물렀다.

 앤은 크리스마스 축제 기간을 위해 남편과 함께 웨스트민스터에 머물렀다.

3월에, 그녀와 리처드는 이틀 동안 말을 타고 케임브릿지의 퀸스 컬리지로 행차하였고, 그곳에서 '가장 거룩하신 앤 왕비 마마(께서는)..... 막대한 기부금으로 대학의 재정을 크게 늘려주셨다' (Laynesmith, p. 256). 그에 대한 보답으로, 케임브릿지 대학의 간부들은 매해 5월 2일에 '가장 고명하신 군주(=리처드)와 전하의 사랑하시는 앤 왕비 마마를 위하여' 미사를 치르기로 결의하였다 (Hammond, p. 20). 이후 부부는 노팅엄(Nottingham)에 궁정을 차렸는데, 그곳에서 아들 에드워드 왕자가 미들험에서 죽었다는 불의의 소식을 들었다.

'여러분은 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갑작스러운 비탄에 압도되어 거의 제정신이 아닌 것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 (Crowland, p. 171).  에드워드 왕자의 죽음은 리처드와 앤에게 개인적인 비극일 뿐만 아니라 왕조에도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이제 통치 왕조의 안정성과 왕조의 지속을 보장해줄 후계자가 사라졌다.

헨리 튜더(Henry Tudor)는 에드워드 4세의 맏딸인 요크의 엘리자베스(Elizabeth of York)를 미래의 배우자로 맞겠다고 선언함에 따라, 앤이 또 아들을 낳아야할 필요성이 시급히 대두되었다.

그녀는 아직 27세였고 건강해보였으며, 그랬기 때문에 리처드와 함께 국내를 여행할 수 있던 것으로 보인다.

리처드가 어디를 갔던지 간에, 즉 예를 들어 리처드가 스코틀랜드에 대항하여 해상작전을 진두지휘하기 위해 스카보로(Scarborough)에 주둔지를 차렸을 때조차도, 앤은 역시 그곳에 있었다.

앤이 스카보로에서 머물렀던 사각형의 탑은 1538년에 여행객 존 릴런드(John Leland)에 의해 '왕비의 타워 또는 임시거처(The Queens Towre or lodging)'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The Itinerary of John leland the Antiquary, ed. Thomas Hearne, Vol. 1, 1745, p. 62). 앤은 리처드와 함께 왕비로서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였다.

이 때 앤의 시녀로서 에드워드 4세의 맏딸인 요크의 엘리자베스와 (아마도) 그 여동생들도 함께 머무르고 있었다.

그 해 3월에 엘리자베스와 그녀의 자매들은 어머니와 함께 성소에서 나오는 것이 허락되었던 것이다.

크로울랜드의 연대기는 크리스마스 축제 기간에 '지나칠 정도로 많은 관심이 춤과 환락에 쏟아졌으며' 앤 왕비와 레이디 엘리자베스가 옷을 자주 바꿔 입었는 사실을 우리에게 들려주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십이야에7, 헨리 튜더가 1485년 여름에 영국을 침공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당도하였다.

  그 즉시, 리처드에 대한 적대적인 소문이 만연하게 되었다.

'그러한 소문들은 리처드에게 악의를 품고 있는 자들이 꾸며내어 퍼트린 것이다' (Lander, p. 255). 크로울랜드에 따르면, 크리스마스 축제 기간 동엔에 왕은 엘리자베스에게 호의를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왕이 앤이 죽고 난 뒤, 또는 '이미 그 근거가 충분한 것으로 보이므로 앤하고 이혼한 뒤에' 엘리자베스와 결혼하기로 결심하였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다고 한다.

하지만 이 연대기 작가는 왕이 앤과 이혼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 제시하지 않고 있지만, 이는 아마도 클라렌스가 이전에 리처드와 앤의 결혼을 중상모략하면서 했던 바로 그 주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앤은 '바로 며칠 뒤에' 죽을 병에 걸렸으며, 이 상황에서도 리처드가 이혼을 고려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면 다소 놀라운 일이 될 것이므로, 앞선 소문은 이제 그가 아내를 독살하려 한다는 루머로 대체되었을 것이다8. 앤의 병세에 대하여 우리가 갖고 있는 증거는, 앤의 병세가 2달 동안 지속되었다는 것, 그리고 의사들이 리처드에게 그녀의 침상으로 다가가지 말라고 조언한 것 정도이다.

  현재 남겨진 증거로 보면, 리처드는 자신이 홀아비가 되었을 경우를 대비하여 조카인 엘리자베스의 결혼 협상을 고려했던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리처드가 조카와 직접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포르투갈의 공주와 결혼하고 동시에 조카를 포르투갈의 왕자와 결혼시키려는 계획이었다.

 앤은 만 29세 생일을 석 달 남겨두고 1485년 3월 16일에 죽었다.

바로 그 날, 영국엔 개기일식이 관측되었다.

그녀는 '왕비에게 어울리는 경의를 받으며'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다.

(crowland, p. 175). 보챔프 가문의 여러 위인전을 작성하였던 존 로스(John Rous)에 의하면, 앤은 '품위가 있었으며, 상냥하고 아름다웠다.

그녀의 행동은 늘 칭찬할만 하였고, 고결하였으며, 그녀의 이름인 '앤(Anne)'이 나타내고 있듯이 우아함으로 가득차있었다.

' 이제 앤의 이야기에서 후기를 쓸 때가 왔다.

3월 30일, 리처드는 런던 시장과 시민들 및 가능한 많은 영주들을 성 요한 자선회당(Hospital of St. John)의 대강당에 불러모았고, 엘리자베스와 결혼하기 위하여 앤을 독살하였다는 루머에 대해 '크고 분명한 목소리로' 연설하였다.

'왕은 이전의 일에 대해 슬픔과 언짢음을 보여주면서, 그런식으로 결혼하려는 것이 절대로 자신의 생각도 아니고 그럴 마음도 없으며, 왕비의 죽음에 결코 기뻐한 적도, 또한 바란 적도 없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왕비의 죽음 때문에 큰 비탄에 사로잡혔으며, 남자로서 견딜 수 없을만큼 괴롭다고 하였다.

....' (Lander, pp. 255-6).주요 출처 / 더 읽어보세요데이비드 볼드윈(David Baldwin) "리처드 3세(Richard III)" 스트로우드(Stroud), 2012마리 반필드(Marie Barnfield), "무효화된 혼인 제한, 교황 사면장과 이혼 : 리처드 3세와 그의 결혼에 대하여(Diriment impediments, Dispensations and Divorce : Richard III and Matrimony', The Ricardian, Vol. XVII, 2007 PP. 84-98아네트 카슨(Annette Carson), "리처드 3세 : 비난받는 왕(Richard III : The Maligned King)" 스트로우드, 2008P. D. 클라크(P. D. Clarke), "영국 왕가의 혼인과 15세기 로마 교황청 법원(English royal marriages and the Papal Penitentiary in the fifteenth century)", 영국 역사 비평(English History Review), 120, 2005로스 연대기(The Rows roll). W. H. 커토프(W. H. Courthope) 편집, 런던, 1859.로다 에드워즈(Rhoda Edwards), "리처드 3세의 순방, 1483-1485(The Itinerary of Richard III, 1483-1485)", 글로스터, 1983중세 영국 의회 의사록(Parliament rolls of Medieval England), 크리스토퍼 기븐-윌슨(Christopher Given-Wilson) 편집.P. W. 헤이먼드(P. W. Hammond), "웨일스 왕자, 미들험의 에드워드(Edward of Middleham, Prince of Wales), 켄트, 1973.리처드 3세의 대관식 : 현존하는 기록들(the Coronation of Richard III : The Extant Documents), P. W. 헤이먼드와 A. F. 서튼(A. F. Sutton) 편집. 글로스터, 1983.H. 힘홀즈(H. Helmholz) "중세 영국의 결혼 소송(Marriage Litigation in Medieval England)", 케임브릿지, 1974 (2007년에 페이퍼북 판이 나옴)마이클 힉스 :- 앤 네빌(Anne Neville), 스트로우드, 2006- 그릇되고 이랬다 저랬다하며 거짓말을 일삼는 클라렌스(False, Fleeting, Perjur'd Clarence), 글로스터, 1980- 리처드 3세(Richard III), 스트로우드, 2000 (개정판)- 국왕 옹립자 워릭(Warwick the Kingmaker), 옥스포드, 1998 (2002년에 페이퍼북 판이 나옴)- 왕자는 한 명? 아니면 두 명? (One prince or tow?', The Ricardian, Vol. IX, 1993, pp. 469-72.J. L. 레인스미스(J. L. Laynesmith), "마지막 중세의 왕비들(The Last Medieval Queens)", 옥스포드, 2004J. R. 랜더(J. R. Lander), "장미 전쟁(The Wars of the Roses), 런던, 1974 (White Lion 판)로즈머리 호우록스(Rosemary horrox), 앤 서튼(Anne Sutton), "글로스터 공적으로서 리처드의 몇몇 지출내역, 1475-7(Some expenses of Richard Duke of Gloucester, 1475-7)", The Ricardian, Vol. VI, 1983, pp. 266-9.1459-1486년 기간의 크로울랜드 연대기, N. 프로니(N. Pronay), J. 콕스(J. Cox) 편집, 런던, 1986.셜리 ㅁ. 싱클레어(Shelley A. Sinclair) "이자벨 버틀러의 유괴 : 랭카스터 왕조 시절 잉글랜드의 납치와 부의 추구(The 'ravishing' of Isabel Boteler : abduction and the pursuit of wealth in Lncasterian England), The Ricardian, Vol. XI, no 146, 1999년 9월배리 윌리엄즈(Barrie Williams) :- 포르투갈과의 외교관계와 신앙심 깊은 공주의 중요성(The Portuguese connection and the significance of the holy princess'), The Ricardian, Vol. VI, pp. 138-5- 포르투갈과 맺은 결혼 협상들 : 그 대답 (The Portuguese marriage negotiations : a reply), The Ricardian, Vol. VI, pp. 235-6에드워드 4세의 어머니 세실리 네빌은 워릭 백작의 고모였다.

그래서 클라렌스와 글로스터 형제는, 나이 차이는 거의 안나지만, 이자벨과 앤 자매의 5촌 당숙이 된다.

즉, 앤의 친할아버지의 어머니인 조앤 보퍼트(Joan Beaufort)는 랭카스터의 에드워드의 친증조할아버지인 헨리 4세의 의붓동생이다.

당시 성소로 들어가면 죄인이라도 끌어내지 않는 게 관행이었다.

일종의 치외법권인 셈이다.

워릭 백작부인은 워릭 백작이 전사하고 에드워드 4세가 복위함에 따라서 자신이 반역자가 된 셈이기 때문에 성소로 도피한 것이다.

라틴어 단어 rapere(빼앗다)의 수동태 과거분사에서 유래에는 sister로 되어 있는데, 최소한 수녀는 아닐 것이 확실하므로, 능력이 닿는 대로 가장 비슷할 것 같은 뜻의 단어로 번역해서 넣었다.

하느님의 가호를 받아 통치자가 되었음을 선포하는 의식이다.

역대 기독교도 왕들의 호칭에 DEI GRATIA라고 되어 있는 문구는, 바로 이 의식을 치렀음을 암시한다.

크리스마스 축제는 12월 25일에 시작하여 12일 동안 이어지며, Twelfth Night라 하면 크리스마스로부터 12일째인 1월 6일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1)앤의 죽음 2)앤과 이혼 두 가지 헛소문이 있었는데, 앤이 아프자마자 2)를 기각하고 앤이 독살당하는 것으로 1)의 설이 우세해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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