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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3세


영국 레스터대학은 수개월에 걸친 DNA 조사 결과 리처드 3세의 유골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4일 영국 BBC 등이 보도했다.

                                레스터 대학이 공개한 리처드 3세의 유골 모습. 영국 레스터대는 4일 회견을 열고 DNA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두개골에 대한 조사를 이끈 조 애플비 레스터대 고고학과 및 고대사 교수는 “두개골이 부서기기 쉽긴 하지만 상태가 좋아 연구진에게 세세한 정보를 줄수 있었다”며 “가능한 자세하게 흥미로운 특징들을 조사할 수 있도록 고해상도의 스캔 작업을 벌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사람이 리처드 3세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그 특징들에 대한 생물학적 이력을 추적했고 폭력적인 죽음의 흔적을 찾기 위해 유골을 세심하게 관찰했다”고 밝혔다.

그는 “유골에서 발견된 증거들이 유골이 리처드 3세의 것임을 강하게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유전자 조사는 모계를 통해서만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통해 이뤄졌다.

3개월 이상 걸렸던 유전자 조사에서 DNA 표본을 제공한 후손은 캐나다의 가구 제작자인 마이클 입센(55)이다.

 DNA 검사 결과 2005년 세상을 뜬 그의 모친이 왕의 누이였던 요크의 앤의 직계 후손인 것으로 밝혀졌다.

                          리차드3세 유해가 발견된 영국 레스터(Leicester)의 시의회 주차장 지하의 옛 교회터                                                           발굴작업인 Mathew Morris 박사 유전학자인 튜리 박사는 “유전자 분석은 어려웠지만 마침내 표본을 얻어 낼 수 있었다.

유골의 DNA 염기서열을 확인한 결과 리처드왕의 후손인 마이클 입센과 일치했다”며 “DNA조사는 유골들이 리처드 3세의 것임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레스터 대학 연구진은 주차장 지하에서 발견된 유골이 리차드 3세라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고 확언했었다.

이후 유골은 DNA 조사를 포함해 탄소연대측정과 환경 분석과 같은 일련의 시험들을 거쳤다.

                                        발굴 당시 리차드3세 유해 모습. 확연하게 휘어진 착추가 보인다.

 고고학자들은 리처드 3세가 문헌 기록대로 매우 폭력적으로 죽음을 맞았다고 보고 있다.

조사 결과 머리쪽에 단검류로 강한 충격을 받은 흔적이 있고 유골의 척추에선 화살촉이 발견되었다.

 세익스피어의 회곡에 ‘꼽추’로 묘사되었듯이 심하게 휘어있는 척추도 일치한다.

시신이 고위직의 장례에 사용되었던 성당 부지에서 발견된 것도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 증거로 제시됐다.

두개골은 리처드 3세의 생존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는 데 이용되었다.

                  리처드 3세(Richard Ⅲ, 1452

1485년)은 영국 요크 왕가 최후의 왕이다.

에드워드 4세의 막내 동생으로, 에드워드 4세가 죽자 당시 12세였던 그의 아들 에드워드 5세을 대신해 섭정으로 영국을 다스리다가 되었다.

      하지만 에드워드 5세의 대관식을 치르기도 전에, 에드워드 5세의 어머니였던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에드워드 4세의 결혼이 무효라 주장하여 대관을 취소시키고, 약 2달 후인 6월 경에 자신이 왕위에 오른다.

  두 조카(에드워드 5세와 그 동생)는 8월 이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리처드 3세가 런던탑에 가두어 살해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1485년 보스워즈에서 있었던 헨리 튜더와의 싸움에서 전사하였다.

(전투에서 죽은 마지막 영국왕이자, 영국땅의 전투에서 죽은 두 왕 중 한 명이다.

(첫 번째는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죽은 해롤드 2세))튜더 시대를 거치며 흔히 권세욕이 강하고 책략이 뛰어난 것으로 묘사되게 되었다.

리처드 3세는 1483년부터 1485년 장미전쟁으로 불리는 영국 왕위 계승 전쟁에서 패해 사망하기까지 2년 간 영국을 통치했다.

영국 역사가들은 그의 죽음과 함께 중세 시대가 막을 내렸다고 보고 있다.

 그는 웨일스의 보즈워스 전투 중에 사망했는데 영국 왕이 전투에서 사망한 마지막 사례이다.

흰 장미를 표식으로 삼은 요크 왕가의 리처드 3세와의 왕위 쟁탈전에서 승리한 랭커스터 왕가는 후에 붉은 장미를 표식으로 삼았다.

리처드 3세의 뒤를 이어 랭커스터 왕가의 헨리 7세가 튜더 왕조를 열었다.

 리처드 3세는 튜더 왕조가 들어선 이후 형과 조카, 부인마저 서슴지않고 살해하는 폭군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세익스피어가 일조를 했다.

그는 리처드 3세를 그의 회곡에서 영국 왕 중에서 가장 사악한 사람의 하나로 기록했다.

 많은 역사가들 사이에서 그는 여전히 그의 조카인 에드워드 5세를 죽인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오늘날 영국에선 그가 에드워드 5세를 유폐만 시켰을 뿐이고 폭군의 이미지는 승자에 의해 왜곡된 것이라는 주장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리처드 3세는 그의 조카 에드워드 5세를 런던탑에 유폐시킨 뒤 왕위를 찬탈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차드3세의 유해를 수습중인 고고학발굴팀  이번 유골의 발견은 그 진위를 밝힐 절호의 기회이자 그 결과에 따라 역사를 다시 써야할 만큼 파급력이 있다는 평가이다.

이날 회견 장에서 조사에 참여한 레스터 대학의 린 폭스홀 교수는 “그는 이제 우리가 리처드 3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재평가해야할 지 모른다”고 답했다.

                                          발굴 당시 발견된 성당 성가대석 부조 파편  리처드 3세의 연구회를 이끌고 있는 필 스폰 박사는 “리처드에 관심있는 누구에게나 절호의 기회로 500여년의 리처드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소식”이라며 “리처드 왕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자 세익스피어의 희곡은 단지 꾸며낸 이야기일 뿐임을 환기시켜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발굴당시 리차드3세 유해 모습 수년간 리처드 3세를 추적해 온 영화 극작가 필리파 랭글리는 “그의 이야기를 다시 되돌아보는 계기”라며 “튜더 왕가의 역사가들이 기록하기 이전의 진짜 그의 모습을 발견하길 원한다”고 CNN에 전했다.

 그는 “리처드 3세는 중세 시대의 사람이다”며 “그를 15세기의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다른 왕과 공작, 귀족 등도 그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한 일을 했다는 걸 알수 있다”고 덧붙였다.

 리처드 테일러 레스터 대학의 부교무과장은 “최근의 고고학적 발견 중에서 가장 중요한 발굴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에 영광스럽다”고 전했다.

                                                      레스터 성당안에 있는 리차드3세의 묘비                 사진 자료 Associated Press / 구성 : 수연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장미전쟁"이라는 것을 배웠다면 너무 쉽게 이해가 되는 작품이에요

그럼 <리차드 3세>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고 어떤 역사적인 배경이 있었는지를 알아볼게요

이 작품에 등장하는 "리차드 3세"는 실존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극을 셰익스피어 사극이라고도 불린다.

영국의 대표적인 폭군"리차드 3세" 영국의 국왕이자 가장 추악한 폭군으로 알려진 "리차드 3세"는 요크 왕가의 '에드워드 4세'의 막내 동생이지만 조카를 죽이고 자신이 왕에 오르면서 요크 왕가의 마지막 왕이지만, 영국의 가장 사악한 군주로 알려져 있다.

  1455

1485년까지 플랜태저넷 왕가에 뿌리를 두고 있는 요크셔 왕가와 랭커스터 왕가는 왕위 계승을 두고 장미전쟁(요크 왕가는 흰 장미를,  랭커스터 왕가는 붉은 장미를 표식으로 삼았다)을 치루고 있었다.

당시 "리차드 3세"의 형이었던 '에드워드 4세'가 랭커스터 왕가였던 '헨리 6세'를 폐위시키고 왕위에 올랐다.

1483년 '에드워드 4세'가 사망하자 어린 조카 '에드워드 5세'가 왕위에 오르자 그는 자신의 조카의 어머니(형수)였던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자신의 형인 '에드워드 4세' 결혼이 무효라고 주장하며 결국 조카를 런던 탑에 가두어 죽게 만들고 왕위에 올랐지만, 1483

1485년 장미전쟁(영국 왕위계승 전쟁)에서 패하면서 2년 간 짧은 영국을 통치하였다.

  왕위 찬탈 2년만에 "리차드 3세"는 1485년 웨일즈 보즈워스 전투에서 헨리 튜더(헨리 7세)에게 패하면서 사망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요크 왕가는 몰락하고 만다.

(영국 역사상 왕이 전쟁에서 사망한 마지막 왕으로 기록되어 있다.

) "리차드 3세"의 뒤를 이어 랭커스터 왕가의 '헨리 7세'가 튜더 왕조를 열었다.

  역사학자들은 "리차드 3세"가 죽으면서중세시대가 막을 내렸다"라고 한다.

셰익스피어는 "리차드 3세"를 사악한 왕의 이미지를 극대화 시킨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역사적으로는 폭군이 아니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 아무튼 셰익스피어의 작품 <리차드 3세>는 영국 역사상 가장 사악한 폭군으로 작품은 이야기 하고 있다.

 "리차드 3세"와 유사한우리나라 조선의 왕은 누구? 절대 악인이라 칭하는 "리차드 3세"(1452년에 태어남)와 동시대에 한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바로 조선의 7대 임금 "세조"(1417년 태어남)는 어린 조카 단종을 폐위시키고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보내 17세의 어린 나이에 사망케 하고 1455년부터 1468년까지 왕위에 있었다.

영화 '관상'에서도 배우 이정재가 연기한 역할이 세조 모습인데 이 영화에서도 "세조"는 폭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 본격적으로 2017 한예종 지정작품 셰익피어 作 <리차드 3세> 작품을 알아보자.  이 작품의 쓰여진 시기는 <헨리 6세> 3부작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이 극의 줄거리는 <헨리 6세 3부>를 이어받고 있는데,(위에서 언급한 장미전쟁이 계속되고 있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헨리 6세 3부>는 1591년에 공연되었다.

그리고 1592년 6월 런던에 역병이 유행하여 모든 극장이 일시적으로 폐쇄되었다.

따라서 이 극의 제작 연대를 1591년에서 1592년 6월 사이일 것으로 추정한다.

  이 극의 직접적인 자료는 홀린세드의 "영국일기(英國日記)"와 홀의 "사기(史記)"이며, 부분적으로는 토머스 모어의 소설 <리차드 3세>도 참조했으리라 생각된다.

 실존인물인 "리차드 3세"는 1483년에 즉위하여 1485년 보즈워드에서 전사함으로, 그의 재위기간은 2년밖에 안된다.

 그리고 에드워드 4세가 복위한 1471년부터 시작하여 15년간에 이르는 사실을 담고 있지만,  이 극은 그것을 2,3주일의 사건으로 압축되어 표현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 극은 비극적 색체가 짙은 셰익스피어 사극(史劇)이다.

<리차드 3세>가 인과응보를 받는 운명은 그리스 비극과 패턴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인과응보의 여신 [네메시스]에게 복수당하는 것은 "리차드 왕" 한 사람뿐이 아니라 '클레런스', '헤이스팅즈', '버킹엄' 그리고 '에드워드 4세'까지도 모두 그 대상이다.

'마가렛'은 배후에서 저주의 의식을 주관하는 [네메시스] 역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형식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악마론의 형식과도 일치한다.

자기만은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차례차례 함정에 빠지고, 끝으로 남의 운명 뿐 아니라 자신의 운명까지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리차드" 그 자신도 파멸하고 만다.

이렇게 극 전체에 운명의 존재가 일관하고 있다.

 리차드는 불구자인데다 잔인한 권모술수에 뛰어난 철저한 악역이다.

그뿐 아니라, 그는 자신의 악을 의식하여 그것을 감추려 들지 않고 오히려 공개적이며, 수단으로 위선의 탈을 쓰는 수가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자기가 위선을 가장하고 있음을 자타에게 감추려고 하지 않고 도리어 공개해 버리거나, 또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상대방의 둔감함을 조소하기도 한다.

그는 적어도 자신은 그 위선을 분명히 의식하지 않고서는 배겨내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는 또한 쉴새 없이 연기를 한다.

겸손한 성자를 가장하여 위선을 연기할 뿐아니라, 극 초반의 독백이며 앤에게 구애하는 장면, 그는 줄곧 연기를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중세극이나 로마극에서의 악역을 조상으로 하는 리차드 왕은 악을 위한 악을 마음껏 발휘하여 희열을 느끼고 끝내는 절망 속에 파멸하지만, 내적갈등은 전혀 검험하지 않는다.

이 점이 후기의 대비극의 주인공들과 다른 점이다.

리차드의 운명은 권력의 절정이 곧 추락이고, 이래서 <헨리 6세 제1부>부터 회전하기 시작한 운명의 거대한 수레바퀴는 한 바퀴 빙 돌아가서 다시 원점에 도달한 셈이다.

등장인물 분석을 통해 <리차드 3세> 이해하기!
*리차드 3세 역사적 인물(1452

1485)이며, 그가 죽기전 1483

1485년까지 영국을 통치하였다.

요크 가문의 마지막 왕인 그는 장미전쟁때 요크 가문을 위하여 싸워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는 당시 13살이었던 조카 에드워드 5세의 섭정이 되었는데, 자신의 조카가 적법한 왕위계승자가 아니라고 선언하였다.

리차드는 어린 조카와 그 동생인 요크 공작 리차드를 함께 런던 탑에 감금하고, 후에 그들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절대군주로서 훌륭한 통치력을 발휘했음에도 불구하고, 리차드 3세는 젊은 왕자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 때문에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1485년 랑가스터 가문 쪽으로 왕권을 주장한 리치먼드 백작인 헨리 튜더가 군대를 일으켜 리차드의 군대를 물리치고 보스워스 필드에서 그를 죽였다.

대중들의 상상 속에서 리차드 3세는 같은 이름의 셰익스피어의 극에 등장하는 괴물같은 꼽추로 남아 있지만, 이는 역사가인 라파엘홀린셰드의 <연대기>에 그의 등이 굽었다는 언급에서 기인한 것이고, 사실상 그가 꼽추였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더욱이 그가 정말 런던 탑에서 살해된 조카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지도 알려진 바 없다.

아마도 진정한 사실에 대해서 알 수 없었던 셰익스피어는 엘리자베스 1세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리차드의 사악함을 과장한 것으로 여겨진다.

사실상 왕권을 주장할 권리가 미약했지만 보스워스 필드에서 리차드를 죽이고 왕이 된 헨리 튜더는 여왕의 직계 선조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엘리자베스 시대에는 리차드를 거의 악마와 같은 인물로 묘사하고 선전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반대로 헨리는 적어도 왕권에 대한 분명한 도덕적 권리를 가지고 있었던 영웅적인 구원자로 제시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글로스터 공작 리차드(후일은 리차드 3세)요크 공작 리차드의 4남으로 <헨리 6세 2부>의 2막 6장 이후에서 <리차드 3세>로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부여받은 직위이다.

이 작위는 불운한 글로스터 공작 험프리의 작위로 악운의 전조로 작용하기도 한다.

*앤 왕비 역사적 인물(1456

1485)이며, 리차드 3세의 부인으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1막2장에서 죽은 남편과 그의 아버지인 헨리 6세의 살해자인 리차드의 구애를 받자 앤은 처음에는 그를 저주하며 비난한다.

그러나 앤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의 남편을 죽였다는 리차드의 말에 반쯤 최면이 걸린 듯 결국 그러부터 반지를 받는다.

4막1장에서 다시 등장할 때, 그녀는 이미 리차드의 아내이며, 왕권을 장악한 리차드의 왕비로서 왕관을 쓰기 위해 소환된다.

그녀는 리차드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예언하는데, 나중에 리차드의 대사를 통해 관객은 그녀의 말대로 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앤은 <헨리 6세 3부>에서 위릭 공작이 자신의 맏딸과 왕자의 결혼에 동의할 때 처음 언급된다.

역사적인 인물로서의 앤은 워릭의 막내 딸이었고, 왕자와 약혼은 햐였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

어쨋든 그녀는 1474년에 리차드와 결혼하였다.

역사적으로 그녀는 헨리 6세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극 속에 등장하는 그녀와 리차드의 대화는 전적으로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나중에 리차드가 엘리자베스 왕비의 딸에게 구애하는 장면과 대조되는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이 장면을 고안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앤은 살해당했다는 역사적인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에드워드 4세역사적 인물(1442

1483)이며 <헨리 6세 2부>와 <헨리 6세 3부> 그리고 <리차드 3세> 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헨리 6세 2부에서의 아버지 '요크 공작 리처드'가 반역죄로 체포되자 에드워드는 동생 리차드와 함께 보석을 신청한다.

3부에서는 요크 공작이 사후에 왕위를 물려줄 테니 자신의 생전만큼은 왕위를 유지하게 해달라는 '헨리 6세'의 간청에 응하자, 에드워드와 리차드 두 형제는 아버지에게 왕위에 오를것을 재촉한다.

남편의 비굴함에 분노한 헨리 6세의 왕비 '마가렛'이 찬탈 세력에 대항하여 군대를 일으키자 에드워드 형제는 토우튼 전투에서 승리하게 되고 맏형 에드워드가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 후 에드워드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프랑스의 보나부인과 결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사로운 감정으로 남편의 장원 문제 때문에 탄원하러 온 미망인 '그레이 부인 엘리자베스 우드빌'에게 반해 그녀를 왕비로 맞게된다.

이렇듯 군주로서의 공적인 의무를 망각하고 번번이 사적인 감정에 탐닉하거나 신중하지 못한 태도를 보이는 모습은 <리차드 3세>에서도 반복된다.

이 작품에서 에드워드는 기력이 쇠한 늙고 무능한 왕으로 그려지고 있다.

동생 리차드는 왕권에 대한 야심으로 우선 둘째 형 클라랜스 공작을 제거할 음모를 꾸미게 되는데, 에드워드는 이를 간파하지 못한 채 클라렌스의 죽음을 방치한다.

극의 초반에 잠시 모습을 보이다가 2막 2장에서 승하 소식이 전해지면서 리차드의 야심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엘리자베스 왕비 엘리자베스 우드빌 그레이는 역사적 인물(1437

1492)로서 <리차드 3세>에서 그녀는 엘리자베스 왕비로 등장하여 죽은 남편의 동생인 리차드와 권력을 두고 싸우는 상대가 된다.

그녀는 리차드가 왕권의 찬탈을 위해 죽인것으로 알려진 런던 탑의 어린 왕자들의 어머니이다.

그년느 세 명의 왕족 여인들로 구성된 코러스의 일원이 되어 왕비 마가렛, 늙은 글로스터 공작부인과 함께 런던 탑 밖에서 자신들의 운명을 한탄하는 상징적인 장면에 등장한다.

후에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 자신의 딸 엘리자베스 공주와 결혼하고자 하는 리차드의 음모로부터 딸을 지켜야 하는 처지에 놓이지만 결국 리차드의 감언이설에 넘어가게 된다.

*클레런스 공작 조지 요크(에드먼드 4세 동생)역사 속의 실존 인물(1449

1478)이며, <리차드 3세>에서는 리차드의 바로 손위 형으로 등장하는데 라차드의 맏형 에드먼드 4세가 승하하게 되면 바로 다음 왕위를 잇게 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다.

따라서 왕권의 야망에 젖어 있는 리차드는 맏형이 승하하게 될 경우를 대비하여 'G'로 시작하는 이르을 가진 자가 왕의 후선을 살해할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려 조지라는 이름을 가진 형을 제거할 음모를 꾸민다.

음흉하기 짝이 없는 리차드는 자신의 속내를 감춘 채 이 소문으로 런던 탑에 투옥된 형 클라렌스를 찾아가 모두가 엘리자베스 왕비의 음모 때문이라 하며 왕에게 클라렌스의 구명 운동을 탄원을 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클라렌스는 익사하여 지옥에 끌려가 자신이 살해한 사람들의 유령을 만나는 악몽을 꾸게 된다.

꿈에서 개어난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불안감에 사로잡히지만 여전히 리차드의 약속을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리차드는 자객을 보내 형 클라렌스를 살해한다.

자객들이 그를 칼로 찔러 죽인 후 시체를 포도주통에 쳐박아버림으로써 리차드의 왕권 탈취의 장애물 중 한 사람이 사라지게 된다.

이 작품에서 클라렌스의 역은 상대적으로 미미하지만 리차드의 일련의 왕권 탈취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클라렌스가 꿈을 꾼 후 느끼는 정신적인 고통이나 불안감, 그리고 그가 살해당하는 끔찍한 장면 등은 관객에게 리차드의 악행을 보다 더 소름끼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클라렌스의 살해 장면은 실제 영국 역사의 내용과 다르다.

실제로 클라렌스는 여러 차례 에드워드 4세에 대한 음모에 가담했었고 리차드는 그를 위해 여러번 탄원하기도 했었다.

에드워드 4세는 마침내 클라렌스를 반란죄로 재판에 회부하게 되고 사형을 선고한다.

그러나 사형이 은밀히 진행되어 혹시 리차드가 암살하지 않았나 하는 소문이 그치질 않았다.

바로 이점을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작품에서 리차드의 사악함을 드러내는 장면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클라렌스는 <헨리 6세 3부>에도 등장하는데 여기에서는 클라렌스 공작이라는 칭호를 받기 전 조지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리치먼드 백작 역사적 인물(1457

1509)이며, <헨리 6세 3부>와 <리차드 3세>에 나오는 등장인물이다.

<헨리 6세 3부>에서 리치먼드는 어린 소년으로 등장하는데, 헨리 왕은 어린 헨리 리치먼드가 언젠가는 영국의 왕이 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리차드 3세>에서 리치먼드는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리차드의 대항할 반군을 이끌고 등장하여 자신의 군대에서 전투를 대비시킨다.

리차드와 반대편 평야에 진을 치고 있던 그는 리차드가 혼령들에게 시달림을 당하고 있는 바로 그 시간에 잠을 자고 있다.

보스워스 전투에서 그는 리차드와 단신으로 결투를 하여 그를 죽이게 되는데, 그의 승리는 영국을 리차드의 사악함에서 구출한 사건으로 여겨진다.

그는 스스로 왕이 된 것을 포고하고 튜더 가문에 의하여 영국에 평화의 시대가 온것을 알린다.

역사적으로 리치먼드 백작인 헨리 튜더는 헨리 7세가 되어 1485년부터 1509년까지 영국을 통치했다.

*버킹엄 공작 역사적 인물(1455

1483)이며, <리차드 3세>에서 리차드의 가장 중요한 지지자이지만 왕이 된 후에 리차드가 자신의 고마움을 잊고 약속을 지키지 않자 리차드를 배신했다가 곧 사로잡혀 처형당한다.

버킹엄은 리차드가 왕이 되기 전 그의 대변인 역할을 하며, 특히 런던 시장과 시민들을 설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의 과장되면서도 모호한 대화술은 교활한 정치가의 전형을 보여주며, 특히 헤이스팅스를 함정에 빠뜨리는 음모를 꾸미는 등의 여러 상황에서 라차드의 중요한 조언자 역할을 한다.

 하지만 4막2장에서 리차드가 왕이 된 후에 웨일즈의 왕자 형제를 죽이면서 더욱 권력에 집착하자, 버킹엄은 약간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에 화가 난 리차드는 버킹엄에게 약속했던 백작령을 거절하고, 버킹엄은 자신이 헤이스팅스가 겪었던 운명에 처할 위험 속에 있음을 감지한다.

그는 반군을 일으키지만 곧 체포되고, 5막1장에서 사형되기 직전에 과거의 명세들과 예언들을 회상하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거의 희랍극의 코러스처럼 말한다.

 셰익스피어가 출전으로 삼은 역사적 자료들은 버킹엄이 반란을 일으킨 것에 대해 몇가지 가능한 동기를 제공했지만, 셰익스피어는 분명히 사실이 아닌 것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리차드가 그의 변절 이전에 버킹엄에게 백작령을 주었기 때문이다.

버킹엄의 반란에 대한 분명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는 리치먼드가 리차드를 무너뜨리기를 기대했을 수도 있고, 스스로 왕권에 대한 야심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는 리차드 2세의 막내형제인 글로스터 공작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2017 한예종 지정작품 <리차드 3세>의 장면별 작품 줄거리!
1막1장 - 글로스터 공작인 리차드가 등장하여 장미전쟁에서 요크가문이 승리하면서 모처럼 맞은 태평성대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피력한다.

그는 신체적 결함 때문에 연예나 유흥을 즐기지 못하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면서, 평화의 적이 되어 왕권을 찬탈하기 위한 음모를 획책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는 'G'로 시작되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왕권을 차지할 것이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려서 둘째 형인 클라렌스 공작 조지와 맏형이자 국왕이니 에드워드 4세 사이를 이간질한다.

리차드는 국왕의 명령에 의해서 런던 탑으로 끌려가던 클라렌스를 만나 그의 처지를 동정하는 척하면서, 그가 투옥되는 원인을 엘리자베스 왕비 일당의 공작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1막2장 - 리차드는 앤 부인이 시아버지인 헨리 6세의 상여를 따라가는 것을 목격하고 영구 행렬을 가로막는다.

앤은 리차드를 헨리 6세와 남편인 에드워드를 살해한 장본인으로 지목하면서 그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리차드는 그들을 죽인 이유가 아름다운 그녀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둘러대면서 그녀에게 구애한다.

그녀는 처음에 그의 이런 변명을 경멸하지만, 결국 반신반의하면서도 그에게 설득되고 만다.

1막3장 - 엘레자베스 왕비와 그레이, 도넷, 리버스가 국왕 에드워드의 병세를 걱정하면서, 그가 죽으면 그들을 미워하는 리차드가 에드워드 왕세자의 섭정 역을 맡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리차드가 등장하여 요크 가문에 대한 왕비 집안의 충성심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어서 죽은 헨리 6세의 부인인 마가렛 왕비가 유령처럼 나타나서 현재 권세를 누리고 있는 모든 자들에게 천벌이 내릴 것이라고 저주를 퍼붓는다.

그때까지 서로 다투던 리차드와 왕비 일당이 마가렛의 저주를 받자 합세하여 그녀를 질책한다.

1막4장 - 런던 탑에 갇힌 클라렌스가 간밤에 꾸었던 악몽을 이야기한다.

그는 배를 타고 가다가 글로스터에게 우연히 떠밀려 물에 빠져 죽는 꿈을 꾸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명부에 세계에서 그가 생전에 랑카스터 가를 배신했던 일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꿈을 꾸었다고 말한다.

다시 잠을 자던 그는 자객들의 난입 소리에 놀라서 깨어난다.

그는 자객들에게 암살의 부당성을 역설하지만 죽음을 면하지 못한다.

자객들 중 한 명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도망친다.

2막1장 - 국왕 에드워드는 반목을 일삼던 왕비 일당과 신하들을 화해시키면서 흡족해한다.

그러나 이때 리차드가 나타나서 클라렌스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자 평화의 분위기는 깨어지고 에드워드 왕은 다시 근심에 빠진다.

에드워드 왕은 클라렌스의 처형을 취소하는 명령을 내렸었다고 말하지만, 리차드는 처형 명령이 이미 살해된 뒤 취소 명령이 전달되었다고 대답한다.

2막2장 - 국왕의 모친인 요크 공작부인이 손자들과 이야기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그녀는 손자들에게 자신의 울적한 표정이 클라렌스의 죽음 때문이 아니라 에드워드 왕의 위독한 증세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때 엘리자베스 왕비가 나타나서 에드워드 왕이 서거했다고 전하면서 비탄에 빠진다.

리차드를 위시한 조정의 대신들은 에드워드 왕자를 러들로우에서 런던으로 호위해 올 준비를 한다.

2막3장 - 정국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을 다루고 있는 장면인데, 그들은 어린 왕자가 왕위를 계승하면 왕자의 외가 쪽과 친가 쪽 사이에 권력 투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2막4장 - 엘리자베스 왕비는 리버스와 그레이가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신변에 위협을 느끼면서 어린 아들인 요크와 함께 성소로 피신한다.

할머니인 요크 공작부인도 동행한다.

3막1장 - 에드워드 왕자가 조정 대신들과 런던 시장의 환영을 받으면서 런던에 도착한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와 동생인 요크가 환영하러 나오지 않은 것을 알고 섭섭해 한다.

버킹엄이 추기경에게 성소로 가서 요크를 데리고 오라고 말한다.

에드워드와 요크는 당분간 런던 탑에 머물러 있으라는 리차드의 충고를 마지못해 받아들인다.

케이츠비는 리차드를 국왕으로 추대하는 일에 관한 헤이스팅즈의 견해를 알아보기 위해서 버킹엄과 헤어진다.

리차드는 버킹엄에게 왕위를 차지하도록 도와준 대가로 해리포드의 백작영지를 하사하겠다고 약속한다.

3막2장 - 스탠리 경의 사자가 헤이스팅즈에게 자신의 주인이 리차드에 관한 악몽을 꾸었다고 말을 전한다.

헤이스팅즈는 스탠리의 이런 우려를 묵살한다.

케이츠비가 헤이스팅즈에게 그의 정적이었던 리버스, 그레이, 그리고 보온이 폼프리트에서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그러나 헤이스팅즈는 리차드를 왕으로 추대하자는 케이츠비의 제안을 거절한다.

헤이스팅즈는 버킹엄과 함께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 런던 탑으로 간다.

3막3장 - 래트클리프가 리버스, 그레이, 그리고 보온을 처형장으로 호송해 간다.

3막4장 - 조정 대신들이 런던 탑에서 에드워드 왕자의 대관식을 논의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리차드가 회의장에 늦게 나타나서는 자신에게 저주를 내리기 위해서 엘리자베스 왕비와 더불어 굿을 한 쇼어 부인을 헤이스팅즈가 보호하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비난한다.

그는 케이츠비에게 헤이스팅즈를 처형하라고 명령한다.

3막5장 - 리차드와 버킹엄은 런던 시장을 불러서 헤이스팅즈의 대역죄와 그를 즉결 처분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리차드는 버킹엄에게 런던 시장을 따라 길드홀로 가서 죽은 에드워드 왕이 호색가였다는 소문과 왕자들이 적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라고 지시한다.

3막6장 - 필경사가 등장하여 헤이스팅즈의 처형이 있기 수 시간 전에 이미 그를 제거하기 위한 각본이 세워져 있었다고 말한다.

3막7장 - 시민들은 왕자들이 서자일 수도 있다는 버킹엄의 주장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한편, 리차드는 런던 시장과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명의 주교를 대동하고 독실한 종교인인 척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버킹엄이 그에게 왕위를 수락해달라고 여러 차례 간청하자, 그는 못이긴 척 왕위를 받아들인다.

4막1장 - 엘리자베스 왕비는 런던 탑에 있는 왕자를 만나는 것을 금지 당한다.

그년느 스탠리로부터 리차드의 대관식 소식을 듣고 절망한다.

그녀는 도셋에게 프랑스로 가서 리치먼드와 합세하라고 말한다.

글로스터의 아내인 앤 부인은 왕비가 되어 장차 겪을 불행을 예상한다.

4막2장 - 버킹엄은 에드워드 왕자를 암살해야겠다는 리차드의 말을 듣고, 이에 동의해야 할지 머뭇거리다가 그의 신임을 잃는다.

리차드는 제임스 티렐을 은밀히 불러서 런던 탑에 있는 두 왕자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내린다.

그는 스탠리로부터 도셋이 리치먼드와 합세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케이츠비에게 앤 왕비가 위독하다는 소문을 퍼뜨리라고 명령하면서, 자신의 왕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죽은 에드워드의 딸인 요크의 엘리자베스와의 결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두 왕자의 암살 계획에 찬성하기로 작정한 버킹엄이 나타나서 리차드가 이저에 약속했던 해리포드의 백작영지를 달라고 요구하지만, 리차드는 그의 요구를 못 들은 척 딴 전을 피우다가 결국 거절한다.

버킹엄은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웨일즈로 피신한다.

4막3장 - 티렐이 리차드에게 두 왕자를 암살했다는 보고를 한다.

리차드는 리치먼드가 요크의 엘리자베스와 결혼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자신이 먼저 그녀와의 혼인을 성사시켜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이때, 래트클리프가 나타나서 일리 주교가 리치먼드 편에 합세했으며, 버킹엄은 웨일즈의 지원을 업고 반란을 일으켰다고 보고한다.

4막4장 - 마가렛 왕비가 배후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엘리자베스 왕비와 요크 공작부인이 나타나서 그들에게 닥친 불행을 한탄한다.

마가렛 왕비가 전면에 나서면서 모든 불행의 원인을 리차드에게 돌린다.

요크 공작부인과 엘리자베스 왕비는 전장으로 떠나던 리차드를 만나 그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리차드는 엘리자베스 왕비에게 자신의 청혼을 받아들이도록 그녀의 딸을 설득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녀는 그의 위협과 감언이설에도 불구하고 요청을 거부하다가, 딸의 뜻을 서면으로 알려주겠다고 말한다.

한편, 리차드는 리치먼드가 이끄는 군대가 곧 상륙할 것이라는 보고를 받고, 스탠리의 충성심을 담보하기 위해 그의 아들을 볼모로 잡는다.

전령들이 반란군의 수효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윽고 케이츠비가 버킹엄을 생포했다는 소식과 리치먼드의 군대가 밀포드 헤이븐에 상륙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4막5장 - 스탠리는 리치먼드를 비밀리에 지원하겠다는 내용과 엘리자베스 왕비가 그녀의 딸과 리치먼드의 결혼에 동의했다는 내용이 담긴 것을 리치먼드에게 전한다.

5막1장 - 버킹엄이 처형장으로 끌려가면서, 자신의 운명적인 종말과 마가렛 왕비의 저주를 회상한다.

5막2장 - 리치먼드가 그의 군대를 이끌고 레스터로 진군한다.

5막3장 - 리차드의 군대가 보즈워스 평원에 군막을 설치하고 다음 날의 결전에 대비한다.

5막4장 - 리치먼드가 군막에서 스탠리에게 밀서를 보내고 다음날 전투 계획을 세운다.

5막5장 - 리차드 진영과 리치먼드 진영을 번갈아 보여주는 장면이다.

우선 리차드가 이런저런 지시를 한 후 물러나서 잠든다.

리치먼드 진영에 스탠리가 비밀리에 나타나서 다음 날 전투에서 은밀히 지원할 것을 약속한 후 돌아간다.

리치먼드는 기도를 올린 후 잠든다.

리차드는 악몽을 꾼다.

그가 죽인 에드워드, 헨리 6세, 클라렌스, 리버스, 그레이, 보온, 두 명의 왕자, 헤이스팅즈, 앤 왕비, 그리고 버킹엄의 유령들이 차례로 나타나서 그에게 저주를 내리고, 리치먼드에게는 승리를 기원해 준다.

리차드는 놀라서 식은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난다.

그는 절망한다.

리치먼드는 상쾌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난 간밤에 길몽을 꾸었다고 말한다.

그는 병사들의 결전 의지를 복돋우는 연설을 한다.

5막6장 - 리차드는 작전을 지시하고는 병사들에게 연설한다.

5막7장 - 전투장면이다.

리차드의 말이 죽는다.

그러나 리차드는 후퇴하지 않는다.

5막8장 - 리치먼드는 리차드와의 일대일 대결에서 그를 쓰러뜨린다.

스탠리가 리차드의 왕관을 벗겨 리치먼드에게 씌운다.

리치먼드는 적군의 병사들에게 사면령을 내린다.

그리고 엘리자베스와 결혼함으로써 요크 가문과 랑카스터 가문을 결합시키고 내란을 종식시키겠다고 선언한다.

한예종 지정작품 <리차드 3세> 전문가들의 평가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동시대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리차드는 인물의 성격을 창조해 내는 셰익스피어의 비범한 재능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로 자주 인용되기도 한다.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 리차드는 <오델로>의 이아고와 더불어 음흉한 사탄의 전형으로 간주되었다.

4막4장에서 '엘리자베스 왕비'와 '요크 공작'이 '마가렛 왕비'와 합세하여 '리차드'를 비난하는 대목은 여성 등장인물들이 개인적인 입장을 넘어서 가부장적 문화에 집단적으로 저항하는 것으로 볼수 있다.

또한 신체불구가 반사회적인 욕망에 대한 원인으로 작용하는 비정상인의 정신 병리적 현상을 예시하는 인물이 바로 '리차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리차드의 반사회적인 행위 동기는 또한 왜곡된 성적 욕망의 분출이라는 관점에서 다각도로 조명되어 왔고,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러가지 추론과 학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은 <리차드 3세>가 그만큼 영국 역사상 강한 임팩트를 주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극을 볼링브룩의 리차드 2세 왕위 찬탈로 비롯된 장미 전쟁의 최종편으로 간주하면서 리차드를 신이 영국에 내린 재앙의 대행자로 그리고 리치먼드를 랑카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을 결합한 튜더 왕조의 시조로 간주하고 있다.

.!! 4월에 한다면서요!! 카리스마 넘치는 리차드 3세가 되지않을까싶습니다.

밑에는 새 티저영상입니다.

이젠 궁금해집니다.

셜록이 먼저나올지 아님 할로우 크라운이 먼저 나올지. 마틴님 그라함 노튼쇼 나가서 아마도 크리스마스 쯔음에 방여하지않을까 그렇게 이야기 했다면서요. 그럼 내년 1월까지는 안기다려도 되는겁니까 ㅠ_ㅠ https://youtu.be/W0kO-pVsc3E동영상The Hollow Crown: Trailer - BBC TwoProgramme website: http://bbc.in/1raHbMV A world class cast tell Shakespeare's bloody history of the English Thronewww.youtube.comIan McKellen: 2nd in a series of short videos I’m doing, asking friends what they think of the new Heuristic App for iPad “The Tempest.” Perhaps you can identify these splendid actors. Sorry for the portrait mode.이안 맥켈런: 두번째 숏비디오 촬영하고 있는데요, 친구들에게 새로운 휴리스틱 아이패드 앱인 "템페스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묻고있어요. 아마도 이 훌륭한 배우가 누군지 알아보겠죠. 포트레잇 모드(인물사진 모드)여서 미안해요. 베네딕트: 다음에 제가 작업할때 쓸거에요. 엄청 좋으네요. 이안: 훌륭해요, 고마워요. 베네딕트: 알겠습니다.

 네? 이안: 맞아요, 고마워요. 셰익스피어 앱이라고 합니다 ㅋㅋㅋ 영상은 이안 맥켈런님 페이스북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셰익스피어 400주년 행사를 기념해서 나온 앱이라고 하네요. 아 베니님 엄청 귀여워요!!! ㅋㅋㅋㅋㅋ 요즘 얼굴이 자주 보여서 좋습니다 +_+ https://www.facebook.com/ianmckellen/  여기서 이긴 헨리 튜더는 장미 전쟁을 종식시키고 튜더조를 창건하게 됩니다.

리처드 3 세는 플랜태저넷 왕조의 마지막 왕으로 기록됩니다.

    (리처드 3 세의 초상화 Portrait of Richard III of England, painted c. 1520 (approximate date from tree-rings on panel), after a lost original, for the Paston family, owned by the Society of Antiquaries, London, since 1828. )     리처드 3 세는 기본적으로 패배자의 포지션이기 때문에 역사에서 좋게 묘사될 수 없는 인물입니다.

특히 권력을 장악한 과정 부터가 악인으로 후세에 묘사되기 충분한 이유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는 요크공 리처드 플랜태저넷 (Richard Plantagenet, Duke of York) 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는데 척추 기형 (흔히 그는 꼽추라고 묘사됨) 및 한쪽 다리를 저는 모습으로 묘사되곤 합니다.

    막내인 그가 권좌에 오르게 된 것은 형인 에드워드 4 세 (Edward IV) 가 죽으면서 아들인 12살의 에드워드 5 세 (Edward V) 가 왕좌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어린 왕을 보좌하기 위해 삼촌인 리처드 3 세 (당시에는 글로스터 공  Duke of Gloucester) 은 호국경 (Lord Protector) 의 자리에 올라 실권을 장악하지만 갑자기 왕자들 (에드워드 5 세 및 동생인 요크공 리처드) 을 런던탑에 유폐하고 2 달 뒤 선왕 에드워드 4 세와 왕비 엘리자베스 우드빌 (Elizabeth Woodville) 의 결혼이 무효라고 주장하며 자신이 대신 왕위에 올라 리처드 3 세가 됩니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강력한 국민적 저항과 반발이 따를 수 밖에 없었는데 선왕과 엘리자베스 왕비 사이의 아이들인 에드워드 5 세와 리처드 왕자는 런던탑에 유폐되어 살해당했다는 설이 당시부터 지금까지 설득력 있게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정황이 당시에 알려지지 않아서 오랜 세월 전해내려지는 런던탑의 왕자들 (Princes in the Tower) 전설이 탄생했습니다.

이는 수많은 문학 작품이나 혹은 회화들의 소재가 되었는데 상당수는 꽤 미소년으로 묘사된 왕자들이 사악한 삼촌에 의해 살해당하는 내용입니다.

    (런던 탑의 왕자들 1878 년 작  Royal Holloway collection)            이 사건을 소재로한 가장 유명한 작품은 역시 세익스피어의 희곡 리처드 3 세일 것입니다.

리처드 3 세에서 세익스피어는 새로운 형태의 악당으로 리처드 3 세를 재탄생시켜 권선징악이 주된 내용이 되는 중세극과는 또 다른 현대적 악인의 해석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리처드 3 세는 항상 선이 승리하는 중세 전통극이 아니라 르네상스 시대의 세속적 인간관에 맞춘 새로운 희극이었습니다.

리처드 3 세의 뒤틀린 욕망과 정해진 듯 한 파멸의 길로 접어드는 과정은 중세 도덕극에서는 보기 힘든 요소였습니다.

    세익스피어의 리처드 3 세는 리처드 3세를 불구이자 잔학과 음모의 화신이고 전형적인 폭군으로 묘사한 토머스 모어의 원전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입니다.

하지만 후세에 과연 진짜 리처드 3 세가 그렇게 악인이고 폭군이기만 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소 엇갈리고 있습니다.

    사실 리처드 3 세가 형이 죽은 후 호국경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냥 왕의 동생이어서가 아니라 실제 장미 전쟁에서 보여준 뛰어난 군사 지휘관으로써의 자질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1470 년 부터 형을 도와 랭커스터가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인공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그는 헨리 7 세와 그가 개창한 튜더 왕조의 공적 1 호 였기 때문에 이후 역사에서는 불구, 탐욕의 화신, 사악한 음모를 꾸미는 인간 등으로 주로 묘사되었습니다.

아무튼 짧은 재위 기간에도 불구하고 후세에 널리 알려진 - 주로는 물론 세익스피어의 리처드 3 세와 런던 탑의 왕자 전설 덕 - 리처드 3 세의 유골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영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흥미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이 유골은 2012 년 레스터 대학 (University of Leicester ) 의 고고학자들이 2012 년 부터 발굴한 것으로 당시 보스워스 전투가 벌어진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Greyfriars 교회 터에서 발견되었는데 현재는 주자창으로 사용되는 곳입니다.

연구팀은 여기서 척추가 심하게 휘어진 유골을 발견했는데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으로 500 년 정도 된 것이고 10 개 이상의 인위적인 상처를 유골에서 발견해서 유골의 주인공이 무기로 살해당했음을 입증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어머니쪽 혈통 (그의 대에서 왕조가 끊겼고 자식들은 후사를 남기지 못했음) 의 후손들에서 발견된 DNA 였습니다.

이 DNA 를 서로 대조하므로써 연구팀은 이 유골이 리처드 3 세의 것임을 증명했습니다.

    (발굴된 리처드 3 세의 유골. 척추가 심하게 휘어진 것으로 봐서 적어도 당대의 묘사 중 척추 기형이었다는 이야기는 사실로 판명되었음.  The complete skeleton showing the curve of the spine. (Credit: Copyright University of Leicester) )   사실 리처드 3 세처럼 전투중 사망해 어디 매장되었는지 알 수 없는 경우 이렇게 유골을 발견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최신의 고고학적 기법과 DNA 대조를 통해 이렇게 알아낸 것은 나름 천운이라고 해야겠죠. 다만 유골의 주인공은 그다지 운이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아무튼 이 발견은 꽤 흥미로운 뉴스 같습니다.

    참고       http://www.sciencedaily.com/releases/2013/02/130204094610.htm http://en.wikipedia.org/wiki/Richard_III 중국 정부가 선정한 문화리더 ‘사개일비(四?一批)’ 인재로 채택되기도 한 연출가 왕 시아오잉은 이번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중국 최고 연출가로서의 면모를 자랑한다.

중국어 특유의 리듬감과 함께 경극으로 재탄생한 리차드 3세는 그 어떤 셰익스피어 무대보다 신선한 경험을 선사한다.

낯선 만큼 새로운 중국 대륙의 옷을 입은 <리차드 3세>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단 3일뿐이다.

리차드 3세는 권력에 대한 집착으로 눈이 멀어 모든 것을 잃는 실존 인물이다.

셰익스피어가 이 비극적 인물의 이야기에 본인 특유의 상상력을 녹여내 한 편의 역사극을 낳았고, 중국의 국가대표 극단이 이를 풍성한 이미지와 함께 재탄생시킨다.

텅 빈 무대, 새하얀 배경은 주인공이 하나하나 맛보는 인간의 죄악으로 더럽혀진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부질없는 것. 마지막 순간 모든 글자가 붉게 물드는 배경 아래로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말, 말을 다오! 내 왕관을 내 줄 터이니 말을 다오!”라는 마지막 순간의 대사처럼 권력과 소유욕은 허무함 그 자체이다.

이번 공연은 400년 전, 헛된 욕망의 위험성을 알린 셰익스피어의 메시지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감 없이 전달해줄 것이다.

<혈맥>'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뼈아픈 우리 역사를 생생하게 그려낸 사실주의 희곡의 대표작가 김영수 원작'거지 움 같은 땅굴생활' 속 가족의 의미를 묻다‘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으로 한국 근대 사실주의 희곡의 대표작 <혈맥>(1948)을 선보인다.

작가 김영수는 광복 직후의 세태를 배경으로, 혼란스러운 시대상과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극빈한 계층을 있는 생동감 있게 그려내 근대 사실주의 희곡 형성사의 절정에 이 작품을 올려놓았다.

한 시대의 종막과 새 시대의 도래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이후 영화화되어 대종상 및 청룡영화상을 휩쓸기도 했다.

<황금용>, <리어왕> 등의 작품에서 인상적인 세련미를 보여준 연출가 윤광진, 시적인 무대로 작품을 물들일 무대 디자이너 이태섭, 무게감 있는 배우 장두이, 이호성 등이 함께해 기억에서 사라진 우리의 과거를 꺼내 깊이있는 무대로 완성한다.

광복 직후인 1947년, 나란히 늘어선 세 개의 주인 없는 방공호에 도시 빈민들이 둥지를 튼다.

주민들의 공통된 소망은 단 하나, ‘거지 움 같은 이 땅굴생활’을 하루 빨리 청산하는 것이다.

좁디좁은 방공호의 주인이 되기 위해 문패를 달고, 가난을 벗어나는 일은 영어밖에 없다며 자식을 다그치는 그들의 모습은 현재의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고난의 상황 속에서도 결국 가족이라는 구심점으로 돌아온 이들이 우리를 향해 혈맥으로 이어진 ‘가족’의 의미를 되묻는다.

<국물 있사옵니다>대한민국 희극정신의 대표주자 이근삼, 풍자와 아이러니로 현대인을 투시하다!국물도 없는 인생들을 위한 '국물처세술'어느 날 '새 상식'에 눈뜬 샐러리맨의 이야기!대한민국의 역사와 사람들, 우리가 오랜 시간 간직해 온 이야기의 힘은 강력했다.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를 통해 새롭게 재조명된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 <이영녀>, <토막>의 뜨거운 호응을 2016년에도 계속해서 이어간다.

그 네 번째 작품은 한국 희극의 저력을 보여줄 이근삼의 <국물 있사옵니다>(1966)이다.

객석의 즐거운 반응을 통해 희극의 중요성을 되새김질한 작가 이근삼은 리얼리즘을 극복하고, 혁신적으로 형식을 실험하는 동시에 우리 연극의 완만했던 템포를 빠르게 이끌어 냄으로써 당시 젊은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50년이 흐른 지금, 희극의 밑바닥에 흐르는 인생의 비극성을 음미해 주기를 원했던 작가의 바람이 사람에 대해 따뜻하지만 집요한 탐구를 멈추지 않는 연출가 서충식, 그리고 박완규를 비롯한 사람 냄새나는 배우들을 통해 실현된다.

국물도 없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력투구 중인 당신에게 ‘새 상식’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한 사람이 있다.

마냥 어리숙하게 살다 ‘새 상식’에 눈을 뜬 후 초고속 출세에 성공한 샐러리맨 김상범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상식적인 그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지만 한편으론 알 수 없는 씁쓸함이 묻어난다.

작가 이근삼은 전도된 가치관과 상식이 안 통하는 사회의 부조리를 풍자와 아이러니를 통해 통렬히 고발했다.

김상범이 가르쳐 주는 ‘국물처세술’을 우리 인생에 적용할지 말지에 대한 결정권은 극장 문을 나서는 당신의 손에 쥐어져 있다.

리뷰이벤트, 이렇게 참여하세요!국립극단?의 <리차드 3세>, <혈맥>, <한국인의 초상>을 관람하시고 난 후,1. 여러분의 개인 블로그, 포스트, 폴라 중 원하시는 곳에 리뷰를 작성하시고2. 꼭 #(태그)를 달아주세요.(#국립극단리뷰, #국립극단, #리차드3세리뷰, #리차드3세, #혈맥리뷰 #혈맥 #국물있사옵니다리뷰 #국물있사옵니다)3. 작성하신 블로그/포스트/폴라의 url을 아래 댓글에 남겨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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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3세>명동예술극장     2016. 4. 1

4. 3<혈맥>명동예술극장     2016. 4. 20

5. 15<국물 있사옵니다>백성희장민호극장     2016. 4. 6

4. 24이렇게 선정합니다!4월 30일까지의 댓글 참여자 중1. 10분을 선정하여,2. 5월 6일(금)에3. 네이버 책문화 블로그를 통하여 발표할 예정입니다.

선정되신 10분께는현금처럼 사용 가능한 네이버페이 포인트 2만원을 선물로 드립니다.

네이버페이 포인트는 선정 발표 일주일 후, 사용 안내 메일과 함께 네이버 개별 ID로 지급됩니다.

* 리뷰 선정은 '국립극단'에서 진행합니다.

* 5/6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됨에 따라, 선정자 발표는 5/9일(월)에 진행됩니다.

4월 리뷰 선정자 발표안녕하세요, 문화지기입니다.

수준 높은 리뷰와 관심 감사 드립니다.

^^국립극단에서 선정해 주신 총 10분입니다.

선정 안내 E-mail은 5/9일 발송되며 안내에 따라 네이버페이 포인트는 5/13일 지급됩니다.

Joan 님크리슈머 님모짜렐라 님레어소보루 님박졔 님경윤 님삶도 공연만 같아라 님G DDON GO 님산토리아 님햇콩빈 님국립극단의 리뷰 이벤트는 5월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지속적인 관심과 많은 참여, 입소문 부탁드려요

1탄, 12월 <시련> 참여 리뷰 및 선정자 보러 가기2탄, 1월 <겨울이야기> 참여 리뷰 및 선정자 보러 가기3탄, 3월 <빛의 제국> & <한국인의 초상> 참여 리뷰 및 선정자 보러 가기여러분의 리뷰가 좋은 공연을 만드는 힘이 됩니다

! ^^많은 참여 부탁드릴게요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장미전쟁"이라는 것을 배웠다면 너무 쉽게 이해가 되는 작품이에요

그럼 <리차드 3세>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고 어떤 역사적인 배경이 있었는지를 알아볼게요

이 작품에 등장하는 "리차드 3세"는 실존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극을 셰익스피어 사극이라고도 불린다.

영국의 대표적인 폭군"리차드 3세" 영국의 국왕이자 가장 추악한 폭군으로 알려진 "리차드 3세"는 요크 왕가의 '에드워드 4세'의 막내 동생이지만 조카를 죽이고 자신이 왕에 오르면서 요크 왕가의 마지막 왕이지만, 영국의 가장 사악한 군주로 알려져 있다.

  1455

1485년까지 플랜태저넷 왕가에 뿌리를 두고 있는 요크셔 왕가와 랭커스터 왕가는 왕위 계승을 두고 장미전쟁(요크 왕가는 흰 장미를,  랭커스터 왕가는 붉은 장미를 표식으로 삼았다)을 치루고 있었다.

당시 "리차드 3세"의 형이었던 '에드워드 4세'가 랭커스터 왕가였던 '헨리 6세'를 폐위시키고 왕위에 올랐다.

1483년 '에드워드 4세'가 사망하자 어린 조카 '에드워드 5세'가 왕위에 오르자 그는 자신의 조카의 어머니(형수)였던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자신의 형인 '에드워드 4세' 결혼이 무효라고 주장하며 결국 조카를 런던 탑에 가두어 죽게 만들고 왕위에 올랐지만, 1483

1485년 장미전쟁(영국 왕위계승 전쟁)에서 패하면서 2년 간 짧은 영국을 통치하였다.

  왕위 찬탈 2년만에 "리차드 3세"는 1485년 웨일즈 보즈워스 전투에서 헨리 튜더(헨리 7세)에게 패하면서 사망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요크 왕가는 몰락하고 만다.

(영국 역사상 왕이 전쟁에서 사망한 마지막 왕으로 기록되어 있다.

) "리차드 3세"의 뒤를 이어 랭커스터 왕가의 '헨리 7세'가 튜더 왕조를 열었다.

  역사학자들은 "리차드 3세"가 죽으면서중세시대가 막을 내렸다"라고 한다.

셰익스피어는 "리차드 3세"를 사악한 왕의 이미지를 극대화 시킨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역사적으로는 폭군이 아니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 아무튼 셰익스피어의 작품 <리차드 3세>는 영국 역사상 가장 사악한 폭군으로 작품은 이야기 하고 있다.

 "리차드 3세"와 유사한우리나라 조선의 왕은 누구? 절대 악인이라 칭하는 "리차드 3세"(1452년에 태어남)와 동시대에 한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바로 조선의 7대 임금 "세조"(1417년 태어남)는 어린 조카 단종을 폐위시키고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보내 17세의 어린 나이에 사망케 하고 1455년부터 1468년까지 왕위에 있었다.

영화 '관상'에서도 배우 이정재가 연기한 역할이 세조 모습인데 이 영화에서도 "세조"는 폭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 본격적으로 2017 한예종 지정작품 셰익피어 作 <리차드 3세> 작품을 알아보자.  이 작품의 쓰여진 시기는 <헨리 6세> 3부작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이 극의 줄거리는 <헨리 6세 3부>를 이어받고 있는데,(위에서 언급한 장미전쟁이 계속되고 있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헨리 6세 3부>는 1591년에 공연되었다.

그리고 1592년 6월 런던에 역병이 유행하여 모든 극장이 일시적으로 폐쇄되었다.

따라서 이 극의 제작 연대를 1591년에서 1592년 6월 사이일 것으로 추정한다.

  이 극의 직접적인 자료는 홀린세드의 "영국일기(英國日記)"와 홀의 "사기(史記)"이며, 부분적으로는 토머스 모어의 소설 <리차드 3세>도 참조했으리라 생각된다.

 실존인물인 "리차드 3세"는 1483년에 즉위하여 1485년 보즈워드에서 전사함으로, 그의 재위기간은 2년밖에 안된다.

 그리고 에드워드 4세가 복위한 1471년부터 시작하여 15년간에 이르는 사실을 담고 있지만,  이 극은 그것을 2,3주일의 사건으로 압축되어 표현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 극은 비극적 색체가 짙은 셰익스피어 사극(史劇)이다.

<리차드 3세>가 인과응보를 받는 운명은 그리스 비극과 패턴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인과응보의 여신 [네메시스]에게 복수당하는 것은 "리차드 왕" 한 사람뿐이 아니라 '클레런스', '헤이스팅즈', '버킹엄' 그리고 '에드워드 4세'까지도 모두 그 대상이다.

'마가렛'은 배후에서 저주의 의식을 주관하는 [네메시스] 역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형식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악마론의 형식과도 일치한다.

자기만은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차례차례 함정에 빠지고, 끝으로 남의 운명 뿐 아니라 자신의 운명까지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리차드" 그 자신도 파멸하고 만다.

이렇게 극 전체에 운명의 존재가 일관하고 있다.

 리차드는 불구자인데다 잔인한 권모술수에 뛰어난 철저한 악역이다.

그뿐 아니라, 그는 자신의 악을 의식하여 그것을 감추려 들지 않고 오히려 공개적이며, 수단으로 위선의 탈을 쓰는 수가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자기가 위선을 가장하고 있음을 자타에게 감추려고 하지 않고 도리어 공개해 버리거나, 또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상대방의 둔감함을 조소하기도 한다.

그는 적어도 자신은 그 위선을 분명히 의식하지 않고서는 배겨내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는 또한 쉴새 없이 연기를 한다.

겸손한 성자를 가장하여 위선을 연기할 뿐아니라, 극 초반의 독백이며 앤에게 구애하는 장면, 그는 줄곧 연기를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중세극이나 로마극에서의 악역을 조상으로 하는 리차드 왕은 악을 위한 악을 마음껏 발휘하여 희열을 느끼고 끝내는 절망 속에 파멸하지만, 내적갈등은 전혀 검험하지 않는다.

이 점이 후기의 대비극의 주인공들과 다른 점이다.

리차드의 운명은 권력의 절정이 곧 추락이고, 이래서 <헨리 6세 제1부>부터 회전하기 시작한 운명의 거대한 수레바퀴는 한 바퀴 빙 돌아가서 다시 원점에 도달한 셈이다.

등장인물 분석을 통해 <리차드 3세> 이해하기!
*리차드 3세 역사적 인물(1452

1485)이며, 그가 죽기전 1483

1485년까지 영국을 통치하였다.

요크 가문의 마지막 왕인 그는 장미전쟁때 요크 가문을 위하여 싸워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는 당시 13살이었던 조카 에드워드 5세의 섭정이 되었는데, 자신의 조카가 적법한 왕위계승자가 아니라고 선언하였다.

리차드는 어린 조카와 그 동생인 요크 공작 리차드를 함께 런던 탑에 감금하고, 후에 그들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절대군주로서 훌륭한 통치력을 발휘했음에도 불구하고, 리차드 3세는 젊은 왕자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 때문에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1485년 랑가스터 가문 쪽으로 왕권을 주장한 리치먼드 백작인 헨리 튜더가 군대를 일으켜 리차드의 군대를 물리치고 보스워스 필드에서 그를 죽였다.

대중들의 상상 속에서 리차드 3세는 같은 이름의 셰익스피어의 극에 등장하는 괴물같은 꼽추로 남아 있지만, 이는 역사가인 라파엘홀린셰드의 <연대기>에 그의 등이 굽었다는 언급에서 기인한 것이고, 사실상 그가 꼽추였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리처드3세] 분석을 해보면


더욱이 그가 정말 런던 탑에서 살해된 조카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지도 알려진 바 없다.

아마도 진정한 사실에 대해서 알 수 없었던 셰익스피어는 엘리자베스 1세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리차드의 사악함을 과장한 것으로 여겨진다.

사실상 왕권을 주장할 권리가 미약했지만 보스워스 필드에서 리차드를 죽이고 왕이 된 헨리 튜더는 여왕의 직계 선조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엘리자베스 시대에는 리차드를 거의 악마와 같은 인물로 묘사하고 선전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반대로 헨리는 적어도 왕권에 대한 분명한 도덕적 권리를 가지고 있었던 영웅적인 구원자로 제시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글로스터 공작 리차드(후일은 리차드 3세)요크 공작 리차드의 4남으로 <헨리 6세 2부>의 2막 6장 이후에서 <리차드 3세>로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부여받은 직위이다.

이 작위는 불운한 글로스터 공작 험프리의 작위로 악운의 전조로 작용하기도 한다.

*앤 왕비 역사적 인물(1456

1485)이며, 리차드 3세의 부인으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1막2장에서 죽은 남편과 그의 아버지인 헨리 6세의 살해자인 리차드의 구애를 받자 앤은 처음에는 그를 저주하며 비난한다.

그러나 앤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의 남편을 죽였다는 리차드의 말에 반쯤 최면이 걸린 듯 결국 그러부터 반지를 받는다.

4막1장에서 다시 등장할 때, 그녀는 이미 리차드의 아내이며, 왕권을 장악한 리차드의 왕비로서 왕관을 쓰기 위해 소환된다.

그녀는 리차드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예언하는데, 나중에 리차드의 대사를 통해 관객은 그녀의 말대로 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앤은 <헨리 6세 3부>에서 위릭 공작이 자신의 맏딸과 왕자의 결혼에 동의할 때 처음 언급된다.

역사적인 인물로서의 앤은 워릭의 막내 딸이었고, 왕자와 약혼은 햐였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

어쨋든 그녀는 1474년에 리차드와 결혼하였다.

역사적으로 그녀는 헨리 6세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극 속에 등장하는 그녀와 리차드의 대화는 전적으로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나중에 리차드가 엘리자베스 왕비의 딸에게 구애하는 장면과 대조되는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이 장면을 고안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앤은 살해당했다는 역사적인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에드워드 4세역사적 인물(1442

1483)이며 <헨리 6세 2부>와 <헨리 6세 3부> 그리고 <리차드 3세> 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헨리 6세 2부에서의 아버지 '요크 공작 리처드'가 반역죄로 체포되자 에드워드는 동생 리차드와 함께 보석을 신청한다.

3부에서는 요크 공작이 사후에 왕위를 물려줄 테니 자신의 생전만큼은 왕위를 유지하게 해달라는 '헨리 6세'의 간청에 응하자, 에드워드와 리차드 두 형제는 아버지에게 왕위에 오를것을 재촉한다.

남편의 비굴함에 분노한 헨리 6세의 왕비 '마가렛'이 찬탈 세력에 대항하여 군대를 일으키자 에드워드 형제는 토우튼 전투에서 승리하게 되고 맏형 에드워드가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 후 에드워드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프랑스의 보나부인과 결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사로운 감정으로 남편의 장원 문제 때문에 탄원하러 온 미망인 '그레이 부인 엘리자베스 우드빌'에게 반해 그녀를 왕비로 맞게된다.

이렇듯 군주로서의 공적인 의무를 망각하고 번번이 사적인 감정에 탐닉하거나 신중하지 못한 태도를 보이는 모습은 <리차드 3세>에서도 반복된다.

이 작품에서 에드워드는 기력이 쇠한 늙고 무능한 왕으로 그려지고 있다.

동생 리차드는 왕권에 대한 야심으로 우선 둘째 형 클라랜스 공작을 제거할 음모를 꾸미게 되는데, 에드워드는 이를 간파하지 못한 채 클라렌스의 죽음을 방치한다.

극의 초반에 잠시 모습을 보이다가 2막 2장에서 승하 소식이 전해지면서 리차드의 야심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엘리자베스 왕비 엘리자베스 우드빌 그레이는 역사적 인물(1437

1492)로서 <리차드 3세>에서 그녀는 엘리자베스 왕비로 등장하여 죽은 남편의 동생인 리차드와 권력을 두고 싸우는 상대가 된다.

그녀는 리차드가 왕권의 찬탈을 위해 죽인것으로 알려진 런던 탑의 어린 왕자들의 어머니이다.

그년느 세 명의 왕족 여인들로 구성된 코러스의 일원이 되어 왕비 마가렛, 늙은 글로스터 공작부인과 함께 런던 탑 밖에서 자신들의 운명을 한탄하는 상징적인 장면에 등장한다.

후에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 자신의 딸 엘리자베스 공주와 결혼하고자 하는 리차드의 음모로부터 딸을 지켜야 하는 처지에 놓이지만 결국 리차드의 감언이설에 넘어가게 된다.

*클레런스 공작 조지 요크(에드먼드 4세 동생)역사 속의 실존 인물(1449

1478)이며, <리차드 3세>에서는 리차드의 바로 손위 형으로 등장하는데 라차드의 맏형 에드먼드 4세가 승하하게 되면 바로 다음 왕위를 잇게 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다.

따라서 왕권의 야망에 젖어 있는 리차드는 맏형이 승하하게 될 경우를 대비하여 'G'로 시작하는 이르을 가진 자가 왕의 후선을 살해할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려 조지라는 이름을 가진 형을 제거할 음모를 꾸민다.

음흉하기 짝이 없는 리차드는 자신의 속내를 감춘 채 이 소문으로 런던 탑에 투옥된 형 클라렌스를 찾아가 모두가 엘리자베스 왕비의 음모 때문이라 하며 왕에게 클라렌스의 구명 운동을 탄원을 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클라렌스는 익사하여 지옥에 끌려가 자신이 살해한 사람들의 유령을 만나는 악몽을 꾸게 된다.

꿈에서 개어난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불안감에 사로잡히지만 여전히 리차드의 약속을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리차드는 자객을 보내 형 클라렌스를 살해한다.

자객들이 그를 칼로 찔러 죽인 후 시체를 포도주통에 쳐박아버림으로써 리차드의 왕권 탈취의 장애물 중 한 사람이 사라지게 된다.

이 작품에서 클라렌스의 역은 상대적으로 미미하지만 리차드의 일련의 왕권 탈취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클라렌스가 꿈을 꾼 후 느끼는 정신적인 고통이나 불안감, 그리고 그가 살해당하는 끔찍한 장면 등은 관객에게 리차드의 악행을 보다 더 소름끼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클라렌스의 살해 장면은 실제 영국 역사의 내용과 다르다.

실제로 클라렌스는 여러 차례 에드워드 4세에 대한 음모에 가담했었고 리차드는 그를 위해 여러번 탄원하기도 했었다.

에드워드 4세는 마침내 클라렌스를 반란죄로 재판에 회부하게 되고 사형을 선고한다.

그러나 사형이 은밀히 진행되어 혹시 리차드가 암살하지 않았나 하는 소문이 그치질 않았다.

바로 이점을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작품에서 리차드의 사악함을 드러내는 장면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클라렌스는 <헨리 6세 3부>에도 등장하는데 여기에서는 클라렌스 공작이라는 칭호를 받기 전 조지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리치먼드 백작 역사적 인물(1457

1509)이며, <헨리 6세 3부>와 <리차드 3세>에 나오는 등장인물이다.

<헨리 6세 3부>에서 리치먼드는 어린 소년으로 등장하는데, 헨리 왕은 어린 헨리 리치먼드가 언젠가는 영국의 왕이 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리차드 3세>에서 리치먼드는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리차드의 대항할 반군을 이끌고 등장하여 자신의 군대에서 전투를 대비시킨다.

리차드와 반대편 평야에 진을 치고 있던 그는 리차드가 혼령들에게 시달림을 당하고 있는 바로 그 시간에 잠을 자고 있다.

보스워스 전투에서 그는 리차드와 단신으로 결투를 하여 그를 죽이게 되는데, 그의 승리는 영국을 리차드의 사악함에서 구출한 사건으로 여겨진다.

그는 스스로 왕이 된 것을 포고하고 튜더 가문에 의하여 영국에 평화의 시대가 온것을 알린다.

역사적으로 리치먼드 백작인 헨리 튜더는 헨리 7세가 되어 1485년부터 1509년까지 영국을 통치했다.

*버킹엄 공작 역사적 인물(1455

1483)이며, <리차드 3세>에서 리차드의 가장 중요한 지지자이지만 왕이 된 후에 리차드가 자신의 고마움을 잊고 약속을 지키지 않자 리차드를 배신했다가 곧 사로잡혀 처형당한다.

버킹엄은 리차드가 왕이 되기 전 그의 대변인 역할을 하며, 특히 런던 시장과 시민들을 설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의 과장되면서도 모호한 대화술은 교활한 정치가의 전형을 보여주며, 특히 헤이스팅스를 함정에 빠뜨리는 음모를 꾸미는 등의 여러 상황에서 라차드의 중요한 조언자 역할을 한다.

 하지만 4막2장에서 리차드가 왕이 된 후에 웨일즈의 왕자 형제를 죽이면서 더욱 권력에 집착하자, 버킹엄은 약간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에 화가 난 리차드는 버킹엄에게 약속했던 백작령을 거절하고, 버킹엄은 자신이 헤이스팅스가 겪었던 운명에 처할 위험 속에 있음을 감지한다.

그는 반군을 일으키지만 곧 체포되고, 5막1장에서 사형되기 직전에 과거의 명세들과 예언들을 회상하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거의 희랍극의 코러스처럼 말한다.

 셰익스피어가 출전으로 삼은 역사적 자료들은 버킹엄이 반란을 일으킨 것에 대해 몇가지 가능한 동기를 제공했지만, 셰익스피어는 분명히 사실이 아닌 것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리차드가 그의 변절 이전에 버킹엄에게 백작령을 주었기 때문이다.

버킹엄의 반란에 대한 분명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는 리치먼드가 리차드를 무너뜨리기를 기대했을 수도 있고, 스스로 왕권에 대한 야심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는 리차드 2세의 막내형제인 글로스터 공작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2017 한예종 지정작품 <리차드 3세>의 장면별 작품 줄거리!
1막1장 - 글로스터 공작인 리차드가 등장하여 장미전쟁에서 요크가문이 승리하면서 모처럼 맞은 태평성대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피력한다.

그는 신체적 결함 때문에 연예나 유흥을 즐기지 못하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면서, 평화의 적이 되어 왕권을 찬탈하기 위한 음모를 획책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는 'G'로 시작되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왕권을 차지할 것이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려서 둘째 형인 클라렌스 공작 조지와 맏형이자 국왕이니 에드워드 4세 사이를 이간질한다.

리차드는 국왕의 명령에 의해서 런던 탑으로 끌려가던 클라렌스를 만나 그의 처지를 동정하는 척하면서, 그가 투옥되는 원인을 엘리자베스 왕비 일당의 공작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1막2장 - 리차드는 앤 부인이 시아버지인 헨리 6세의 상여를 따라가는 것을 목격하고 영구 행렬을 가로막는다.

앤은 리차드를 헨리 6세와 남편인 에드워드를 살해한 장본인으로 지목하면서 그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리차드는 그들을 죽인 이유가 아름다운 그녀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둘러대면서 그녀에게 구애한다.

그녀는 처음에 그의 이런 변명을 경멸하지만, 결국 반신반의하면서도 그에게 설득되고 만다.

1막3장 - 엘레자베스 왕비와 그레이, 도넷, 리버스가 국왕 에드워드의 병세를 걱정하면서, 그가 죽으면 그들을 미워하는 리차드가 에드워드 왕세자의 섭정 역을 맡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리차드가 등장하여 요크 가문에 대한 왕비 집안의 충성심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어서 죽은 헨리 6세의 부인인 마가렛 왕비가 유령처럼 나타나서 현재 권세를 누리고 있는 모든 자들에게 천벌이 내릴 것이라고 저주를 퍼붓는다.

그때까지 서로 다투던 리차드와 왕비 일당이 마가렛의 저주를 받자 합세하여 그녀를 질책한다.

1막4장 - 런던 탑에 갇힌 클라렌스가 간밤에 꾸었던 악몽을 이야기한다.

그는 배를 타고 가다가 글로스터에게 우연히 떠밀려 물에 빠져 죽는 꿈을 꾸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명부에 세계에서 그가 생전에 랑카스터 가를 배신했던 일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꿈을 꾸었다고 말한다.

다시 잠을 자던 그는 자객들의 난입 소리에 놀라서 깨어난다.

그는 자객들에게 암살의 부당성을 역설하지만 죽음을 면하지 못한다.

자객들 중 한 명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도망친다.

2막1장 - 국왕 에드워드는 반목을 일삼던 왕비 일당과 신하들을 화해시키면서 흡족해한다.

그러나 이때 리차드가 나타나서 클라렌스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자 평화의 분위기는 깨어지고 에드워드 왕은 다시 근심에 빠진다.

에드워드 왕은 클라렌스의 처형을 취소하는 명령을 내렸었다고 말하지만, 리차드는 처형 명령이 이미 살해된 뒤 취소 명령이 전달되었다고 대답한다.

2막2장 - 국왕의 모친인 요크 공작부인이 손자들과 이야기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그녀는 손자들에게 자신의 울적한 표정이 클라렌스의 죽음 때문이 아니라 에드워드 왕의 위독한 증세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때 엘리자베스 왕비가 나타나서 에드워드 왕이 서거했다고 전하면서 비탄에 빠진다.

리차드를 위시한 조정의 대신들은 에드워드 왕자를 러들로우에서 런던으로 호위해 올 준비를 한다.

2막3장 - 정국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을 다루고 있는 장면인데, 그들은 어린 왕자가 왕위를 계승하면 왕자의 외가 쪽과 친가 쪽 사이에 권력 투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2막4장 - 엘리자베스 왕비는 리버스와 그레이가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신변에 위협을 느끼면서 어린 아들인 요크와 함께 성소로 피신한다.

할머니인 요크 공작부인도 동행한다.

3막1장 - 에드워드 왕자가 조정 대신들과 런던 시장의 환영을 받으면서 런던에 도착한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와 동생인 요크가 환영하러 나오지 않은 것을 알고 섭섭해 한다.

버킹엄이 추기경에게 성소로 가서 요크를 데리고 오라고 말한다.

에드워드와 요크는 당분간 런던 탑에 머물러 있으라는 리차드의 충고를 마지못해 받아들인다.

케이츠비는 리차드를 국왕으로 추대하는 일에 관한 헤이스팅즈의 견해를 알아보기 위해서 버킹엄과 헤어진다.

리차드는 버킹엄에게 왕위를 차지하도록 도와준 대가로 해리포드의 백작영지를 하사하겠다고 약속한다.

3막2장 - 스탠리 경의 사자가 헤이스팅즈에게 자신의 주인이 리차드에 관한 악몽을 꾸었다고 말을 전한다.

헤이스팅즈는 스탠리의 이런 우려를 묵살한다.

케이츠비가 헤이스팅즈에게 그의 정적이었던 리버스, 그레이, 그리고 보온이 폼프리트에서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그러나 헤이스팅즈는 리차드를 왕으로 추대하자는 케이츠비의 제안을 거절한다.

헤이스팅즈는 버킹엄과 함께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 런던 탑으로 간다.

3막3장 - 래트클리프가 리버스, 그레이, 그리고 보온을 처형장으로 호송해 간다.

3막4장 - 조정 대신들이 런던 탑에서 에드워드 왕자의 대관식을 논의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리차드가 회의장에 늦게 나타나서는 자신에게 저주를 내리기 위해서 엘리자베스 왕비와 더불어 굿을 한 쇼어 부인을 헤이스팅즈가 보호하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비난한다.

그는 케이츠비에게 헤이스팅즈를 처형하라고 명령한다.

3막5장 - 리차드와 버킹엄은 런던 시장을 불러서 헤이스팅즈의 대역죄와 그를 즉결 처분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리차드는 버킹엄에게 런던 시장을 따라 길드홀로 가서 죽은 에드워드 왕이 호색가였다는 소문과 왕자들이 적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라고 지시한다.

3막6장 - 필경사가 등장하여 헤이스팅즈의 처형이 있기 수 시간 전에 이미 그를 제거하기 위한 각본이 세워져 있었다고 말한다.

3막7장 - 시민들은 왕자들이 서자일 수도 있다는 버킹엄의 주장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한편, 리차드는 런던 시장과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명의 주교를 대동하고 독실한 종교인인 척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버킹엄이 그에게 왕위를 수락해달라고 여러 차례 간청하자, 그는 못이긴 척 왕위를 받아들인다.

4막1장 - 엘리자베스 왕비는 런던 탑에 있는 왕자를 만나는 것을 금지 당한다.

그년느 스탠리로부터 리차드의 대관식 소식을 듣고 절망한다.

그녀는 도셋에게 프랑스로 가서 리치먼드와 합세하라고 말한다.

글로스터의 아내인 앤 부인은 왕비가 되어 장차 겪을 불행을 예상한다.

4막2장 - 버킹엄은 에드워드 왕자를 암살해야겠다는 리차드의 말을 듣고, 이에 동의해야 할지 머뭇거리다가 그의 신임을 잃는다.

리차드는 제임스 티렐을 은밀히 불러서 런던 탑에 있는 두 왕자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내린다.

그는 스탠리로부터 도셋이 리치먼드와 합세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케이츠비에게 앤 왕비가 위독하다는 소문을 퍼뜨리라고 명령하면서, 자신의 왕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죽은 에드워드의 딸인 요크의 엘리자베스와의 결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두 왕자의 암살 계획에 찬성하기로 작정한 버킹엄이 나타나서 리차드가 이저에 약속했던 해리포드의 백작영지를 달라고 요구하지만, 리차드는 그의 요구를 못 들은 척 딴 전을 피우다가 결국 거절한다.

버킹엄은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웨일즈로 피신한다.

4막3장 - 티렐이 리차드에게 두 왕자를 암살했다는 보고를 한다.

리차드는 리치먼드가 요크의 엘리자베스와 결혼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자신이 먼저 그녀와의 혼인을 성사시켜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이때, 래트클리프가 나타나서 일리 주교가 리치먼드 편에 합세했으며, 버킹엄은 웨일즈의 지원을 업고 반란을 일으켰다고 보고한다.

4막4장 - 마가렛 왕비가 배후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엘리자베스 왕비와 요크 공작부인이 나타나서 그들에게 닥친 불행을 한탄한다.

마가렛 왕비가 전면에 나서면서 모든 불행의 원인을 리차드에게 돌린다.

요크 공작부인과 엘리자베스 왕비는 전장으로 떠나던 리차드를 만나 그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리차드는 엘리자베스 왕비에게 자신의 청혼을 받아들이도록 그녀의 딸을 설득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녀는 그의 위협과 감언이설에도 불구하고 요청을 거부하다가, 딸의 뜻을 서면으로 알려주겠다고 말한다.

한편, 리차드는 리치먼드가 이끄는 군대가 곧 상륙할 것이라는 보고를 받고, 스탠리의 충성심을 담보하기 위해 그의 아들을 볼모로 잡는다.

전령들이 반란군의 수효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윽고 케이츠비가 버킹엄을 생포했다는 소식과 리치먼드의 군대가 밀포드 헤이븐에 상륙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4막5장 - 스탠리는 리치먼드를 비밀리에 지원하겠다는 내용과 엘리자베스 왕비가 그녀의 딸과 리치먼드의 결혼에 동의했다는 내용이 담긴 것을 리치먼드에게 전한다.

5막1장 - 버킹엄이 처형장으로 끌려가면서, 자신의 운명적인 종말과 마가렛 왕비의 저주를 회상한다.

5막2장 - 리치먼드가 그의 군대를 이끌고 레스터로 진군한다.

5막3장 - 리차드의 군대가 보즈워스 평원에 군막을 설치하고 다음 날의 결전에 대비한다.

5막4장 - 리치먼드가 군막에서 스탠리에게 밀서를 보내고 다음날 전투 계획을 세운다.

5막5장 - 리차드 진영과 리치먼드 진영을 번갈아 보여주는 장면이다.

우선 리차드가 이런저런 지시를 한 후 물러나서 잠든다.

리치먼드 진영에 스탠리가 비밀리에 나타나서 다음 날 전투에서 은밀히 지원할 것을 약속한 후 돌아간다.

리치먼드는 기도를 올린 후 잠든다.

리차드는 악몽을 꾼다.

그가 죽인 에드워드, 헨리 6세, 클라렌스, 리버스, 그레이, 보온, 두 명의 왕자, 헤이스팅즈, 앤 왕비, 그리고 버킹엄의 유령들이 차례로 나타나서 그에게 저주를 내리고, 리치먼드에게는 승리를 기원해 준다.

리차드는 놀라서 식은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난다.

그는 절망한다.

리치먼드는 상쾌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난 간밤에 길몽을 꾸었다고 말한다.

그는 병사들의 결전 의지를 복돋우는 연설을 한다.

5막6장 - 리차드는 작전을 지시하고는 병사들에게 연설한다.

5막7장 - 전투장면이다.

리차드의 말이 죽는다.

그러나 리차드는 후퇴하지 않는다.

5막8장 - 리치먼드는 리차드와의 일대일 대결에서 그를 쓰러뜨린다.

스탠리가 리차드의 왕관을 벗겨 리치먼드에게 씌운다.

리치먼드는 적군의 병사들에게 사면령을 내린다.

그리고 엘리자베스와 결혼함으로써 요크 가문과 랑카스터 가문을 결합시키고 내란을 종식시키겠다고 선언한다.

한예종 지정작품 <리차드 3세> 전문가들의 평가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동시대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리차드는 인물의 성격을 창조해 내는 셰익스피어의 비범한 재능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로 자주 인용되기도 한다.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 리차드는 <오델로>의 이아고와 더불어 음흉한 사탄의 전형으로 간주되었다.

4막4장에서 '엘리자베스 왕비'와 '요크 공작'이 '마가렛 왕비'와 합세하여 '리차드'를 비난하는 대목은 여성 등장인물들이 개인적인 입장을 넘어서 가부장적 문화에 집단적으로 저항하는 것으로 볼수 있다.

또한 신체불구가 반사회적인 욕망에 대한 원인으로 작용하는 비정상인의 정신 병리적 현상을 예시하는 인물이 바로 '리차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리차드의 반사회적인 행위 동기는 또한 왜곡된 성적 욕망의 분출이라는 관점에서 다각도로 조명되어 왔고,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러가지 추론과 학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은 <리차드 3세>가 그만큼 영국 역사상 강한 임팩트를 주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극을 볼링브룩의 리차드 2세 왕위 찬탈로 비롯된 장미 전쟁의 최종편으로 간주하면서 리차드를 신이 영국에 내린 재앙의 대행자로 그리고 리치먼드를 랑카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을 결합한 튜더 왕조의 시조로 간주하고 있다.

.)조카였던 에드워드 5세의 자리를 빼앗고에드워드 5세와 그의 형제들을 런던탑에 가두었던 왕 입니다.

결국 조카가 죽었는데 리처드 3세가 그를 죽였다는 소문이 돌며 민심이 흉흉해 지기도 하였죠.게다가 바로 다음 왕이 튜터 왕조로 바뀌면서 ( *리처드 3세는 요크 왕조)역사에는 그의 악행이 많이 밝혀집니다.

각종 매체에서도 악인으로 등장하는 등 후세에도 그리 평가가 좋지 못한 국왕...뭐... 이게 중요한 건 아니구요...2012년 레스터에서 정체 불명의 유골이 발견됩니다.

3년 이라는 긴 시간동안의 검사 결과 리처드 3세가 유골의 주인이라고 밝혀집니다.

후세에 평가가 어떻든간에 영국의 왕 이었으니 무덤을 만들워 줘야 하겠죠.유골이 발견된 장소 (레스터) 와 리처드 3세 가문의 고향 (요크)이 두 지역 사이에서 무덤의 위치를 두고 법적 분쟁이 일어납니다.

결과는 유골이 발견된 레스터 지역의 승리로 돌아가죠.(무덤 위치를 두고 법적 소송까지 일어나다니.... 뭔가 섬짓하죠...?)우여곡절 끝에 영국 왕실이 주관하고 레스터 시에서 비용을 부담하는 형식의 성대한 장례식이 열립니다.

레스터 시 측에서는 이제 리처드 3세의 무덤을 통해 관광 수익을 올린 다는 계산이 있었겠죠.참고로 이 날 장례식에는 "The 오이" 베네딕트 컴버내치 가 참석합니다.

(리처드 3세의 후손 이라고 하네요... 왕족이었어...)흥미롭게도 장례식이 있던 날이 2015년 3월 26일 인데리처드 3세가 레스터에서 안식을 찾자마자강등권에 있던 "레스터 시티" 는잔여경기 9경기 중 7경기를 승리하면서 기적적으로 강등권에서 탈출하게 됩니다.

레스터 현지 팬들은 500여년 만에 안식을 찾은 왕의 은총이 아니냐는 농담이 퍼지기 시작하죠..그리고 2016 시즌이 시작되는데요...이게 무슨일인지...15/16 시즌이 시작되자,모두의 예상과는 다르게레스터 시티 는 미칠듯한 강함을 보여주며 리그 테이블 최상단에 이름을 올린채 시즌을 이어나가게 됩니다.

리처드 3세가 그려진 패러디가 나오고,그가 그려진 상품들이 판매되기 시작하기도 하죠.그리고 마침내,창단 130여년 만에 처음으로"1부리그 에서 우승하며"프리미어리그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레스터 시티.급기야 우승 확정 후에는영국의 가디언지 1면에 리처드 3세와 레스터 시티의 관계에 관한 기사마저 실리게 됩니다.

..(중략)  더러운 악마 같으니, 제발 꺼져 버리고,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말아 줘. 그대는 이 지상의 낙원을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만들어 놓지 않았는가. 자신의 무참한 소치를 보고 싶거든, 자, 이 살육의 실례를 좀 봐요. 오, 다들 봐요, 봐! 헨리 왕의 시체의 아문 상처는 다시 입을 열고 새로 피를 흘리고 있잖은가. 얼굴, 얼굴이나 붉혀요, 더러운 불구자 같으니! 그대가 나타났기 때문에 피가 있을 리 없는 차디찬 빈 혈관에서 이렇게 피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좀 봐요. 그대의 무참하고 비인간적인 악행으로 해서 이렇게 기이하게 피의 홍수가 벌어지잖는가. 오, 이 피를 만드신 신이여, 복수로 저 자를 죽여주소서! 오, 이 피를 들이마시는 대지여, 복수로 저 자를 죽여주소서! 오, 대지여, 입을 벌리고 저 자를 냉큼 삼켜 버리소서! 지옥의 마수에 쓰러진 이 왕의 피를 들이마시듯이!   - 셰익스피어, 『리처드 3세』 1막 2장 중(http://blog.naver.com/eggdegul?Redirect=Log&logNo=60008862895 참조)      ?? 동?서 고금을 불문하고 역사 속에서 차남과 그 이하 아들들은 항상 주인공이 아닌 주변 인물의 역할을 강요받았다.

안정적인 대물림을 위해 의도적으로 선택된 장자계승의 원칙은, 그러나 필연적으로 공격받고 비극을 잉태할 수밖에 없는 원칙이기도 했다.

단지 조금 늦게 태어났을 뿐 같은 아버지의 씨와 같은 어머니의 배를 빌어 태어난 이상 - 자신의 몫은 챙기고 싶다는 인간의 선천적인 욕망은 사회적 질서 유지를 위해 후천적으로 주입당하는 윤리의식으로 억누르기에는 너무나 강했기 때문이다.

신조차도 형 에서가 가진 장자권(長子權)을 비열한 수법으로 빼앗은 야곱을 벌주기는 커녕 두 눈 뜨고 쳐다볼 수밖에 없었던 것을 상기해 보자.  그러나 사회적 규범을 깨트린 자체는 금기를 범한 일탈행위로 냉정한 평가를 받게 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형도 아닌 형이 남긴 어린 조카들을 상대로 싸운다면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으로도 모자라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힘 없는 조카들을 해쳤다는 맹렬한 비난을 피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역사 속에서 강제로 왕관을 빼앗아 쓴 차남들에 대한 기록과 평가는 개인의 능력으로 뒷수습에 성공하고 후세의 안정을 도모하는 성군이 되지 못하는 이상 매우 냉정했다.

더욱이 결국 통치권의 유지에 실패하여 왕관과 목숨을 모두 잃고, 그를 위해 세상을 향해 대신 변명해 줄 만한 후손 하나 남기지 못한 채 역사의 패배자로 낙인 찍힌 잉글랜드의 리처드 3세 같은 인물에 대해서라면 말할 나위도 없었다.

  ?창세기의 등장인물 야곱은 아브라함의 손자이자 이삭의 아들로 원래는 상속권이 없는 차남이었다.

그러나 털복숭이 형 에서가 자리를 비운 사이 털가죽 코스프레(...)로 눈이 어두운 늙은 아버지마저 사기치는 데 성공한 야곱은 결국 그를 장남 에서로 착각한 아버지 이삭에 의해 축복을 받고 상속권까지 챙기게 된다.

?이후 ?야곱은 후일 이스라엘 12지파의 선조가 될 12명의 아들을 낳게 되는데 ?아브라함 가문의 적통이자 사실상의 중시조로 야곱은 오늘날까지도 이스라엘 민족에게 존경받는 조상 중 한 명이 된다.

사기당한 에서의 입장에서는 인과응보는 커녕 꿈도 희망도 없는 결말(...)?   ?  리처드 3세가 태어난 1452년은 잉글랜드에 한창 장미 전쟁의 광풍과 폐위와 찬탈이 일상적이었던 혼란스런 시대였다.

플랜태저넷 왕가의 분가(分家)들로 왕위계승권을 가지고 있던 두 개의 가문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의 대립이 점점 격해지던 시기, 리처드는 요크 가문의 본거지였던 노샘프턴의 포더링게이 성에서 3대 요크 공작 리처드 플랜태저넷과 세실 네빌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 당대의 유명인사들이 흔히 그렇듯이 리처드 3세의 어린 시절 또한 그다지 잘 알려진 편은 아니다.

 다만 세인트올번스 전투 이후 아들들의 안전을 염려한 모친 세실 네빌에 의해 위의 형인 조지(George, 후일의 클래런스 공작 Duke of Clarence)와 함께 사촌형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의 미들엄 성으로 보내져 그곳에서 유년기를 보냈다는 정도의 기록이 그의 어린 시절을 묘사한 기록의 전부이다.

리처드와 함께 자랐던 워릭 백작의 자녀들 중에는 후일 복잡한 과정을 거쳐 리처드와 결혼하게 되는 워릭의 딸 앤 네빌도 끼어 있었다.

         리처드 3세의 부모3대 요크 공작 리처드 플랜태저넷(Richard Plantagenet, 3rd Duke of York)세실 네빌 (Cecily Neville, Duchess of York)        ? 포더링게이 성(Fotheringay Castle)오른쪽 사진은 영화 『골든 에이지』에 묘사된 포더링게이 성. 현재는 왼쪽 사진처럼 폐허만 남아 있다.

[리처드3세] 놀랍네요.

요크 가문의 근거지로 리처드를 비롯한 여러 형제 자매들이 태어난 성이다.

오늘날에는 스코틀랜드 여왕인 메리 스튜어트가 처형당한 성으로 더 유명한 성.  ????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Richard Neville, 16th Earl of Warwick)왕가에 못지 않은 명문가였던 네빌 가문에서 태어난 워릭 백작은 리처드 3세의 어머니인 공작부인 세실 네빌의 친정 조카이자 그 역시 플랜태저넷 왕가의 피가 흐르는 대귀족이었다.

? 뛰어난 재능으로 그가 지지하는 인물들(헨리 6세, 에드워드 4세)마다 왕위에 오르거나 왕위를 되찾으면서 '킹 메이커(KingMaker, 국왕 제조기)'라는 별칭을 얻었다.

?      리처드가 유년기를 보낸 미들엄 성(Middleham Castle)   리처드의 아버지였던 요크 공작 리처드 플랜태저넷은 상당히 흥미로운 인물이다.

에드워드 3세의 넷째 왕자이자 1대 요크 공작이었던 랭글리의 에드먼드로부터 비롯된 요크 가문은 에드먼드의 장남이자 2대 요크 공작인 노리치의 에드워드에드워드, 에드먼드, 에드워드....Aㅏ를 비롯해 직계는 그다지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러나 노리치의 에드워드가 아들 없이 사망하고 대신 그의 조카인 리처드가 3대 요크 공작의 자리를 물려받으면서 요크 가문은 점차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      리처드 3세의 아버지였던 리처드 플랜태저넷은 1대 요크 공작 에드먼드의 차남의 아들에 불과했으나 백부였던 노리치의 에드워드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면서 요크 공작의 작위와 계승권을 모두 물려받았다.

'요크 왕가'로 따로 표기되기는 하지만 실제 요크 왕가는 중시조인 요크 공작의 작위명에서 기인한 명칭일 뿐 실제 부계는 랭카스터 왕가나 요크 왕가나 모두 에드워드 3세로부터 기인한 플랜태저넷 왕가였다.

 ???  그가 공작위에 있었을 때 잉글랜드의 왕은 랭커스터 가문의 헨리 6세로, 헨리 5세와 프랑스 공주인 카트린 드 발루아 사이에서 태어나 생후 9개월에 왕위에 올랐던 인물이다.

부왕 헨리 5세가 무자비했지만 신앙심이 깊고 리더십이 뛰어나 백년 전쟁 내내 계속된 프랑스에서의 영토 확장을 순조롭게 수행했던 것과 달리 헨리 6세는 개인적으로 무능했을 뿐 아니라 시대조차 그의 통치를 허용하지 않았다.

오를레앙의 성녀로 칭송받으며 갑작스럽게 등장한 여걸 잔 다르크가 불러온 프랑스의 기적적인 승리는 프랑스를 이미 다 된 밥 정도로 여기고 있던 그와 잉글랜드 인들에게는 재앙 중의 재앙이었다.

   결국 헨리 6세의 치세하인 1453년, 한때 프랑스 왕보다도 더 많은 프랑스 영토를 가지고 있었던 잉글랜드는 고작 조그만 항구도시 칼레 하나만을 남긴 채 프랑스에서 완전히 쫓겨났다.

사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잉글랜드가 그렇게 비참하게 프랑스를 떠나야 했던 것이 온전히 지도자인 헨리 6세의 잘못만은 아니었지만, 이유 여하를 떠나 본래 나라에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비난받는 것은 그 나라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인물인 법이다.

엄청난 대내외의 비난과 부왕이 물려주신 영토를 자신이 모두 잃었다는 상실감에 몸서리치던 헨리 6세는 결국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한 술 더 떠 스스로 발벗고 나서 친(親) 프랑스 정책을 취하기까지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어제의 적이었던 잉글랜드를 프랑스가 호의적으로 받아들일 리는 만무했다.

왕의 무능함과 그의 프랑스 혈통에 대한 편견은 곧 잉글랜드인들의 편협한 자부심에 불을 질렀다.

      오를레앙의 처녀, 프랑스의 구원자로 등장한 잔 다르크그녀의 등장과 프랑스의 승리로 백년전쟁은 끝나고 프랑스는 안정을 되찾았으나브리튼 섬으로 쫓겨간 잉글랜드의 귀족들은 또다시 30년에 걸친 내전인 장미전쟁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평화를 얻게 된다.

       헨리 6세특유의 무능함과 정신 불안, 우유부단함으로 장미전쟁의 시초가 되는 그는 결국 비참하게 삶을 마감하며 랭카스터 왕가의 마지막 왕이 되었다.

  왕의 정치가 백성들에게 비난받을 뿐 아니라 왕의 정신까지 이상해지자, 야심에 불타던 리처드 플랜태저넷은 때가 무르익었음을 깨달았다.

부계로는 에드워드 3세의 넷째 아들인 요크 공작 에드먼드의 피를, 모계로는 둘째 아들인 클래런스 공작 앤트워프의 라이오넬의 피를 물려받은 리처드 플랜태저넷은 자신의 모계를 강조하면 왕위 계승 순서상 자신에게 왕관이 돌아오는 것이 꿈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랭카스터 가문의 조상은 그 유명한 랭카스터 공작 곤트의 존으로, 곤트의 존은 에드워드 3세의 셋째 아들이었기 때문에 장자 우선의 계승 원칙을 생각해 보면 모계로 둘째 아들인 클래런스 공작의 직계 후손 리처드 플랜태저넷의 왕위 계승권이 랭카스터 가문보다 더 우선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리처드 플랜태저넷의 외할아버지인 로저 모티머는 리처드 2세에 의해 직접 적법한 왕위 계승자로 인정받았던 전력이 있었다.

        플랜태저넷 왕가 가계도.본래 에드워드 3세의 3남 가문으로 왕위 계승 서열에서 한참 밀려나 있던 랭카스터 가문은장손인 리처드 2세를 폐위시키고 2남 가문인 클래런스 가문을 무시한 뒤 왕좌를 이은 가문으로 태생적으로 왕권이 약해지면 언제든지 왕위 계승 문제가 터질 수 있는 불안한 위치에 있었다.

  ? 요크 가문은 에드워드 3세의 4남 가문으로 왕위계승서열에 있어서는 랭카스터 가문보다도 뒤였지만 2남 가문인 클래런스 가문의 상속녀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그 후계자인 리처드 플랜태저넷이 당주가 되면서 법적인 왕위 계승권에 있어서는 랭카스터 가문보다 우위에 서게 된다.

  .      리처드 플랜태저넷의 논리가 억지라고는 볼 수 없었지만 이미 랭카스터 가문이 왕위를 이어 몇 대를 내려온 만큼 여기서 무른다는 것은 정상적인 시대 같으면 아예 받아들여지지도 않았을 소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헨리 6세와 그의 왕비였던 앙주의 마거릿, 그리고 그들 부부의 총신들의 평판 나쁜 정치는 귀족들로 하여금 이 논리에 동의하게끔 만들었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당시 아들이 없었던 헨리 6세는 일단 자기가 죽을 때까지 왕관을 보장해 주기만 한다면 자신이 죽은 뒤에 요크 가문이 왕위를 잇건 말건 상관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사실 랭카스터 가문에는 왕위를 이을 법한 부계의 공자들이나 모계의 후손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크 가문이 왕위를 잇도록 허락하겠다는 것은 보통 특혜가 아니었다.

양 가는 그 쯤에서 타협하는 것처럼 보였다.

리처드 플랜태저넷은 왕관이 가져다 주는 달콤한 꿈에 젖어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물론 물 밑에서는 앉아서 왕위를 빼앗기게 생긴 랭카스터 가문 공자들의 반발이 들끓고 있음은 물론이었다.

       그러나 1453년 뒤늦게 헨리 6세의 후계자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가 태어나면서 상황은 완전히 반전되었다.

과거의 계약 이행을 요구하는 요크 가문과 직계에게 왕관을 물려주기 위한 랭카스터 가문의 피 튀기는 대립이 시작된 것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리처드 플랜태저넷을 위험 인물로 간주한 서머싯 공작 존 보퍼트와 왕비 앙주의 마거릿은 이제 그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 애써 숨기지도 않았다.

 1455년 전쟁의 서곡인 세인트올번스 전투 당시만 해도 이미지 관리를 위해 서머싯 일파를 비롯한 "역적"들을 왕의 주변에서 제거하기 위함이었느니 어쩌니 궁색한 핑계를 대던 리처드 플랜태저넷은 결국 "에드워드 3세의 3남에 불과한 랭카스터 공작의 아들인 헨리 4세가 흑태자의 아들 리처드 2세로부터 왕위를 찬탈했으니, 랭카스터 가문의 왕위계승은 원천적으로 무효이며 에드워드 3세의 2남 클래런스 공작의 정통 후계자이자 요크 가문의 수장인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에드워드 3세의 왕위계승자" 라는 주장을 앞세우며 본격적으로 군사를 일으켰다.

흰색 장미의 요크 가문과 붉은 장미의 랭커스터 가문의 두 문장에서 따온, 이름도 유명한 장미 전쟁((Wars of Roses, 1455년

1485년)의 시작이었다.

    ? ?   ?두 장미 문장의 가문의 다툼으로 '장미 전쟁'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막상 '장미 전쟁'이라는 단어 자체는 당대에는 쓰이지 않았고19세기 월터 스콧의 작품 『가이어스타인의 앤(Anne of Geierstein)』에서 언급되면서 비로소 대중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스콧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 『헨리 6세(Henry VI )』의 1부에서 런던 템플 처치(Temple Church)에 모인 귀족들이 지지하는 가문에 따라 흰 장미와 붉은 장미를 선택하는 장면에서 착안하여 '장미의 전쟁'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치열한 전투 끝에 노샘프턴에서 리처드 플랜태저넷에게 사로잡혀 포로가 된 헨리 6세는 비굴하게도 자신이 사망하면 아들 에드워드 왕자가 아닌 요크 가문을 후계자로 정하겠다는 본래의 약속을 다시 한번 반복하였다.

그러나 1460년 리처드 플랜태저넷이 웨이크필드에서 전사하고 이듬해인 1461년 세인트올번스 전투에서 헨리 6세가 감금 상태에서 벗어나자 약속은 폐기되었다.

 이 와중에 죽은 리처드 플랜태저넷의 아들이자 요크 가문의 새 수장 에드워드가 사촌 워릭 백작의 도움으로 헨리 6세의 왕위 계승을 부정하고 에드워드 4세로서 왕위에 오르면서 요크 왕가가 시작되었다.

          에드워드 4세요크 왕가의 왕으로는 최초의 왕.헨리 6세와 대립하며 즉위와 폐위를 거듭하나 결국 승리를 거두게 된다.

?    하지만 이후에도 헨리 6세와 랭커스터 가문의 투지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게다가 1470년 믿었던 사촌 워릭 백작이 에드워드 4세와 요크 가문을 배신하고 딸 앤을 헨리 6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와 결혼시킨 뒤 랭커스터 가문에 붙으면서 에드워드 4세는 비참하게 폐위되어 네덜란드로 도망치는 굴욕까지 감내해야 했다.

 요크 가문이 쫓겨나자 랭커스터 가문의 헨리 6세가 다시 왕이 되었으나 한 해도 못 가 다시 되돌아온 에드워드 4세는 헨리 6세 복위의 1등 공신이자 자신의 배신자였던 워릭 백작을 전사시키고 우위를 차지하였다.

 최후의 저항을 불사하던 마거릿 왕비의 군대마저 1471년 투크스베리 전투에서 요크 가문의 군대에게 전멸당하면서 결국 헨리 6세는 살해되고 에드워드 4세와 요크 가문은 최종적인 승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헨리 6세의 아내 앙주의 마거릿나폴리 왕 앙주의 르네와 로렌 여공작 이사벨라의 딸로 강인하고 야심만만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아들의 왕위계승권을 지키기 위해 무능한 남편을 대신하여 요크 파와 맞붙었으나 투크스베리에서 패퇴하였다.

헨리 6세와 그녀 사이에서 태어난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 또한 17세의 나이에 투크스베리에서 죽음을 당한다.

1475년까지 4년여 간 감금 생활을 하던 그녀는 사촌인 프랑스 왕 루이 11세가 배상금을 내주면서 간신히 풀려나 고향 프랑스로 되돌아왔으나 52세를 일기로 가난 속에서 사망하였다.

     ? 에드워드 4세의 곁에서 리처드 3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보다도 충성스러운 수족으로 활약했다.

비록 리처드 플랜태저넷이 죽을 당시 리처드 3세의 나이는 고작 8세에 불과해 특별한 역할을 할 수 없었지만 에드워드 4세가 프랑스에 도망칠 당시에는 이미 18세의 늠름한 성인으로 성장한 뒤였으므로  큰형을 보필할 능력은 충분했다.

 리처드 3세 하면 보통 비열함과 음흉함이 필수적인 형용사로 떠오르지만 최소한 에드워드 4세에 대한 충성심에 있어서의 리처드 3세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사촌인 워릭 백작은 물론이고 심지어 같은 형제인 클래런스공 조지조차 에드워드 4세를 배신하고 헨리 4세에게 붙을 때에도 끝까지 배신하지 않았고, 워릭 백작의 위세에 에드워드 4세가 기약 없이 프랑스로 쫓겨날 때에도 그와 함께 했으며,  1471년 다시 잉글랜드에 돌아왔을 때에도 가장 최전선에 서서 랭커스터 가문의 군대를 패퇴시킨 것도 리처드 3세였다.

분명치는 않지만 앞 뒤 정황을 살펴봤을 때 1471년 5월 21일 런던탑에서 헨리 6세를 살해하는 사건에 리처드 3세가 직접 개입한 것도 확실해 보인다.

아무리 폐위된 왕이라도 왕은 손댈 수 없다고 생각했던 중세 시대에, 그는 분명 사방에서 몰아칠 비방을 각오하면서도 가문의 왕관을 위해 손에 피를 묻힌 것이다.

물론 이러한 뜨거운 충정은 보답을 받아서 에드워드 4세는 충성스러운 동생에게 글로스터 공작(Duke of Gloucester)의 작위와 막대한 영지를 내렸다.

그러나 에드워드 4세가 왕관의 무게를 향유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헨리 6세가 사망한 지 12년 후인 1483년 그 또한 황천길로 떠나게 된 것이다.

유약한 왕은 왕이라도 충분히 내쫓길 수 있다는 선례가 만들어진 지 겨우 12년 밖에 지나지 않은 잉글랜드의 새 주인이 된 인물은 공교롭게도 이제 겨우 12세 된 그의 아들 에드워드 5세였다.

왕실의 분위기가 벌써부터 묘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에드워드 5세     에드워드 4세의 왕비로 에드워드 5세의 모후였던 엘리자베스 우드빌(Elizabeth Woodville)은 일개 평범한 아낙네가 아니었다.

리버스 백작인 리처드 우드빌(Richard Woodville, 1st Earl Rivers)과 헨리 4세의 아들인 베드포드 공작의 미망인이었던 룩셈부르크의 자퀘타(Jacquetta of Luxembourg)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랭커스터 가문의 편이었던 그로비의 존 그레이 경(Sir John Grey)과 결혼해 두 아들을 두었고, 이들은 후일 9일 여왕 제인 그레이를 비롯한 그레이 자매들의 직계 조상이 된다.

  기가 막히는 미인이었던 그녀와 사랑에 빠진 에드워드 4세는 존 그레이가 전사하자 아직도 전쟁이 한창이던 1464년 주변의 모든 반대를 물리치고 기어이 노샘프턴의 그녀의 집에서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렸다.

잉글랜드 왕실 최초의 평민 왕비가 탄생한 것이다(왕실의 결혼 문제에서 왕족이 아닌 배우자는 아무리 고위 귀족이라도 무조건 평민으로 친다.

두 번째 평민 왕비는 바로 헨리 8세의 왕비인 앤 불린).    명문귀족의 딸이긴 하지만 왕족의 피가 섞이지 않은 그녀와 에드워드 4세의 결혼은 왕족은 당연히 왕족과 - 그것이 외국 왕족일지라도 -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당시에 곧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에드워드 4세가 대놓고 처갓집 식구들을 편애하며 후하게 대접하자 귀족들의 질투심에 불이 붙었다.

따지고 보면 에드워드 4세가 사촌인 워릭 백작에게 배신을 당한 것도 에드워드 4세가 막상 온갖 고생을 다하며 자신을 보필해준 워릭 백작보다 처남인 2대 리버스 백작 앤서니 우드빌(Anthony Woodville, 2nd Earl Rivers)을 더 편애하면서 워릭의 화를 돋운 탓이 컸다.

  게다가 친정의 위세를 드높이기 위한 엘리자베스 자신의 노력도 지나친 부분이 있었다.

여동생들인 캐서린과 메리를 각각 영국에서도 명문인 버킹엄 공작가의 스태퍼드가, 펨브로크 후작가인 허버트가에 시집보낸 것은 차라리 애교에 속했다(사실 그들의 결혼은 엘리자베스나 우드빌 가 뿐만이 아니라 왕의 동서가 되고픈 야심 있는 귀족들의 이해도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20대의 남동생 존을 60대의 노부인이지만 엄청나게 부유한 과부인 노퍽 공작 부인 캐서린 네빌(Catherine Neville, Dowager Duchess of Norfolk)과 결혼시킨 것은 누가 봐도 노골적으로 돈을 보고 결혼한 천박한 결혼의 전형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둘째 아들인 4살의 요크 공작 슈루즈버리의 리처드(Richard of Shrewsbury, Duke of York)를  노퍽 가의 상속녀인 5살의 앤 드 모브레이(Anne de Mowbray)와 약혼시키면서 모브레이가 죽으면 그녀의 막대한 유산을 노퍽 가의 다른 후계자가 아닌 자신의 아들에게 돌아가도록 조처하기도 했다.

귀족 사회의 상속법까지 무시하는 처사였다.

안그래도 엘리자베스가 낮은 신분으로 왕비가 된 것 만으로도 벼락 출세한 인물로 치부하며 뒷구멍으로 욕하던 귀족들은 이런 전횡이 더해지자 더더욱 곱지 않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엘리자베스의 살아 생전에 이미 형성된 '탐욕스러운 여자'라는 그녀의 이미지는 후세에까지 쭉 이어졌다.

그리고 그러한 왕비와 왕비의 일족에 대한 불만 귀족들의 행렬의 맨 앞에 자리한 귀족은 바로 글로스터 공작이었던 리처드 3세였다.

        엘리자베스 우드빌잉글랜드 최초의 평민 왕비였지만 그 못지 않게 당대부터 '탐욕스러운 여자'로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신분 차이가 나는 여자와 결혼을 감행하다니 낭만적인 인물로 보이지만 실은 엄청나게 여자를 밝히는 양아치(...) 였던 에드워드 4세는 처음 엘리자베스 우드빌을 보고 그녀에게 왕비도 아닌 정부(情婦)가 되어줄 것을 요구했는데"저는 왕비가 되기에는 너무 미천한 신분이지만, 정부가 되기에는 너무 높은 신분입니다.

" 라고 대꾸했다고 한다.

에드워드 4세는 그 말에 결국 그녀와의 결혼을 감행하였고, 그들 사이에서는 4남 6녀가 태어났다.

(날 이렇게 대한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 드립이 먹힌 전형적인 사례 -_-;;어쩌면 외손자 헨리 8세랑 이렇게 똑같은지 피가 무섭긴 무섭다.

...)      형 에드워드 4세가 살아 있을 때는 왕이 너무나 왕비와 처가를 옹호해서 어떻게 손댈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에드워드 4세가 죽자 상황은 돌변했다.

 왕비를 정치적으로 실각시키기 위한 그들의 음모는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1483년 에드워드 4세가 사망하자마자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에드워드 4세의 결혼은 무효로 선언되었다.

왕이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결혼하기 전에 엘리노어 버틀러(Lady Eleanor butler)와 혼인하기로 약속했으므로, 엘리자베스 우드빌과의 결혼은 중혼이며 따라서 무효라는 이유였다.

 엘리자베스 우드빌이 왕비의 칭호를 박탈당하고 하루 아침에 엘리자베스 그레이 부인(Lady Elizabeth Grey)으로 불리게 되면서 그녀와 왕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도 모두 서자로 취급되어 자동적으로 왕위계승권이 박탈되었다.

게다가 한술 더 떠 엘리자베스 우드빌에게는 마법으로 왕을 홀려 결혼한 마녀라는 누명까지 씌워져 있었다.

중세 시대에 마녀 의혹은 처형까지 갈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엘리자베스 우드빌을 궁지에 몰아넣은 리처드 3세는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대관식을 위해 이미 런던탑에 들어와 있던 에드워드 5세와 엘리자베스 우드빌을 구슬려 - 세 살짜리 어린애라도 리처드가 조카들을 제거할 것임을 빤히 알고 있었음에도 그녀가 어째서 자신의 아들들을 그의 손에 내주었는지는 여전히 역사의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런던탑으로 끌고 온 에드워드 5세의 동생 요크 공 리처드를 포함, 죽은 선왕의 두 아들을 모두 자신의 손아귀에 넣는 데 성공했다.

후세에 '런던탑의 왕자들'로 역사에 남은 두 왕자는 이후 시체조차 찾지 못하고 조용히 사라졌다.

   그에 앞서 왕비의 일족들과 일파들 - 리버스, 그레이, 홋 등이 모조리 제거된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들은 귀족 신분에 걸맞는 적법한 재판조차 받지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심지어 리처드의 충신이자 우드빌 일파의 제거에 앞장섰던 윌리엄 헤이스팅스(William Hastings)조차 어린 왕의 폐위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칼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그때까지 글로스터공 리처드에 불과했던 그는 "위기에 처해 있는 잉글랜드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어린 왕이 아닌 강력한 의지와 능력을 가진 자가 왕위에 올라야 한다" 는 미명 하에 영주와 귀족들의 "추대"를 받는 형식으로 드디어 정식으로 리처드 3세(Richard III )가 되었다.

같은 해 7월 6일의 일이었다.

      런던탑의 두 왕자들사가들은 두 형제가 숙부인 리처드에게 은밀하게 살해당했으며, 설령 이때 살아남았더라도그들의 존재가 왕위계승에 있어 큰 걸림돌이 되는 헨리 7세의 손에 제거되었으리라 추측한다.

이미 당시부터 그 생존여부가 미스테리였던 탓에 두 왕자를 사칭하는 가짜들도 많았다고 한다.

     한 편의 코미디였다.

나가도 너무 나갔다.

미움 받는 왕비였던 엘리자베스 우드빌을 실각시킬 때만 해도 환호하던 민심은 헤이스팅스를 처형하면서 심상치 않다가 리처드가 본격적으로 야심을 드러내며 남자 조카들은 죽이고 여자 조카들은 서녀(庶女)로 만든 뒤 왕위에 오르자 폭동을 일으킬 조짐마저 보였다.

비록 자신의 행위가 충분히 분란의 여자기 되리라는 점을 잘 알고 있던 리처드 3세가 미리 손을 써서 북부의 군대를 대거 런던에 입성시킨 덕에 불미스러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그의 부정한 행동으로 요크 가 내부에서도 분열과 불신, 불충이 솟아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리처드의 즉위와 요크 가문의 분열은 이미 다 죽은 것이나 다름 없었던 랭커스터 가문에게 한 줄기 빛이자 마지막 회생의 기회나 다름 없었다.

이런 기회를 틈타 갑자기 등장한 의외의 인물이 있었다.

바로 투스크베리 전투 이후 프랑스에 망명중이었던 랭커스터 왕가 계열의 리치먼드 백작 헨리 튜더(Henry Tudor, Earl of Richmond)였다.

       헨리 튜더튜더 왕가의 첫 왕이자 헨리 7세가 된다.

....뭔가 영국인 중에 진짜 우울하고 불쌍해보이는 얼굴이 있는데 그런 얼굴의 전형이신듯...ㅜㅜ명색이 그 뚱뚱하기로 유명한 헨리 8세의 친아빠인데 보면 볼수록 말라비틀어진 인상이라는 생각밖엔....생긴대로 노는 것인지 헨리 튜더는 왕이 된 뒤에도 절약과 검소에 엄청 집착하는 노랭이 왕으로 백성들에게 겁나게 인기가 없었다는 안습한 일화가 있다.

게다가 고생고생해서 자수성가한 대다수 인물들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인지 헨리 튜더는 결국 그렇게 아껴 모은 어마어마한 돈을 써보지도 못하고 자식들에게 물려준 뒤 사망했는데막상 그 엄청난 유산은 18세로 왕위에 오른 망나니 아들 헨리 8세가 10년도 못 가서 모조리 알뜰하게 말아먹고 만다(...)    독특한 가계와 이력을 타고난 헨리 튜더는 리처드 3세가 단 한번이라도 라이벌로 생각이나 해봤을까 싶을 만큼 혈통과 무사적 능력 모두에서 리처드 3세보다 뒤떨어졌던 인물이다.

 일단 튜더 가문의 지체 자체도 문제였다.

오언 튜더(Owen Tudor)라는 인물이 랭카스터 왕가의 왕인 헨리 5세의 미망인이자 헨리 6세의 모후로 프랑스 공주였던 발루아의 카트린(Catherine of Valois)과 결혼하기 전까지 튜더 가문은 깡촌 웨일스의 향신 가문으로, 한마디로 중앙 귀족들의 기준으로는 듣도 보도 못한 별 볼일 없는 가문에 불과했다.

이 결혼에서 카트린은 에드먼드(Edmund), 재스퍼(Jasper), 오언(Owen) 세 아들을 낳았다.

 아버지는 다르지만 그래도 같은 어머니의 배에서 난 동생들이라고 이들 튜더 3형제를 총애했던 헨리 6세는 수도사가 된 오언을 제외한 에드먼드와 재스퍼에게 각각 리치먼드 백작, 펨브로크 백작 작위를 주었다.

이들 중 장남인 에드먼드가 바로 헨리 튜더의 아버지이다.

게다가 에드먼드의 상승은 단지 백작이 된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바로 서머싯 공작가인 보퍼트 가문의 마지막 상속녀 마거릿 보퍼트(Lady Margaret Beaufort)와 결혼한 것이다.

 ? ? ?      랭카스터 왕가와 헨리 튜더의 가계비록 프랑스의 공주인 발루아의 카트린의 피를 물려받긴 했지만 왕위 계승권이 없던 튜더 가문은보퍼트 가문과의 혼사를 통해 랭카스터 가문의 왕위 계승권을 획득하였다.

     보퍼트 가문은 랭커스터 왕가의 시조인 곤트의 존의 직계로, 잉글랜드 최상위의 왕족 가문이었다.

그러나 플랜태저넷 왕가의 곤트의 존을 부계로 하는 가문임에도 불구하고 가문의 성이 '플랜태저넷'이 아니라 '보퍼트(Beaufort)'인 데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적자가 아니라 서자 계열이었다.

애첩 캐서린 스윈포드(Katherine Swynford)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은 곤트의 존은 아들에게 자신의 이름이기도 한 '존'이라는 이름과 함께 '보퍼트'라는 프랑스식 성(姓)도 주었다.

이후 정실 부인이 죽자 부랴부랴 스윈포드와 정식으로 결혼한 곤트의 존은 아들들을 적자로 인정했지만 보퍼트 가문의 위치는 매우 애매했다.

당시 유럽의 계승법상 한번 혼외 서자로 태어난 자식들은 나중에 정식으로 재혼한 뒤에도 왕위 계승권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록 리처드 2세가 이 보퍼트 사촌들을 삼촌 곤트의 존의 뜻에 따라 적출로 인정해 주었지만 막상 그들의 이복형으로 리처드 2세의 사망 이후 왕이 된 헨리 4세는 보퍼트 가문을 적출로는 인정했지만 왕위계승권은 없는 독특한 위치로 격하시켰다.

그러나 헨리 6세 이후 왕위계승권이 있는 변변한 사람들이 점차 사라지면서 랭카스터 가문 내에서 보퍼트 가문의 위치는 점점 올라갔다.

  왕가에서 왕위계승권은 언제나 중요한 것이었지만 특히 장미전쟁 당시의 왕위계승권은 언제라도 잉글랜드의 왕이 될 수 있는 천우의 기회를 제공하는 티켓으로서 엄청난 값어치가 있었다.

 비록 대단히 애매모호하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그저 그런 부계 출신으로 그 흥망이 철저히 왕에게 종속되어 있었던 에드먼드 튜더에게 이 결혼은 지체로 보나 재산으로 보나 엄청나게 유리한 혼사였다.

그러나 행이 오면 불행도 오는 법인지, 에드먼드는 12세의 신부와 행복한 신혼생활을 채 누리기도 전에 허무하게 전사해 버리고 말았다.

당시 임신 중이었던 마거릿은 1457년 13세의 나이(-_-;)에 홀로 에드먼드의 유복자 - 헨리 튜더를 낳았다.

운명의 장난인지 이후 마거릿은 두 번 재혼하지만 다시는 아이를 낳지 못했다.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인 마거릿이 바로 헨리 스태퍼드 경과 재혼하면서 어린 헨리의 교육은 숙부 재스퍼 튜더가 도맡았다.

튜더 가문에 있어서 유일한 왕위계승권자인 헨리는 단 하나뿐인 희망의 끈이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헨리는 그다지 전도 유망한 인물이 아니었다.

지나치게 마르고 약한 소년이었던 헨리는 학문은 좋아했지만 무술을 비롯한 군사적 재능에 있어서는 어린 시절부터 형 에드워드 4세의 곁에서 그를 보필하며 뛰어난 소질을 보였던 리처드에 비해 한참 뒤떨어졌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잔인함과 유혈을 싫어했을 뿐 아니라 소심하고 말수 적고 우울한 성격이었다.

비록 오랜 망명 생활과 전투를 겪으면서 특유의 리더십과 출신과 계파를 불문하고 자신의 편으로 받아들이는 포용력이 키워지기는 하지만 어린 시절의 헨리 튜더는 전란통에 군사를 이끌 무사, 지도자의 덕목으로 요구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영 시원찮았던 인물이었다.

   ? ?     젊은 시절의 헨리 튜더    랭카스터 가문이 마지막으로 전멸한 투크스베리 전투 당시 14세의 나이에 숙부 재스퍼 튜더와 함께 프랑스의 브르타뉴 공작령으로 망명한 헨리 튜더는 이후 요크 가문이 에드워드 4세의 치하에서 확고한 반석 위에 오르면서 세인의 기억에서 완전히 잊혀졌다.

만약 요크 가문이 분열되지 않았다면 헨리는 프랑스에서 망명객의 신분으로 가난 속에서 생애를 마쳤을 것이며, 튜더 왕조도, 헨리 8세도, 엘리자베스 1세의 치세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리처드의 무리한 왕위찬탈로 헨리에게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리처드가 왕위에 오른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가을, 결국 반란이 터졌다.

반란의 규모는 대수로운 것이 아니어서 금방 정리되었으나 리처드를 비롯한 모두를 놀라게 했던 점은 바로 반란의 주동자가 버킹엄 공작인 헨리 스태퍼드(Henry Stafford, 2nd Duke of Buckingham)였다는 점이었다.

왕의 가까운 친척이자 충실한 지지자였던 그는 리처드로부터 많은 은공을 받았으나 역시 헨리 튜더의 생모 마거릿 보퍼트의 사촌인 또다른 마거릿의 아들로 헨리 튜더와는 육촌지간이었으며 두번째 남편인 헨리 스태퍼드 경(Sir Humphrey Stafford)의 조카이기도 했다.

어쨌든 헨리 스테퍼드는 리처드를 몰아내고 헨리 튜더를 왕으로 세울 계획을 세웠다.

요크 파를 리처드로부터 떼어내어 자신들의 편으로 회유하는 것은 헨리 튜더의 생모 마거릿 보퍼트가 맡았다.

자신의 주치의를 중간 다리로 삼아 비밀스럽게 전 왕비 엘리자베스 우드빌에게 접근하여 일이 성사되면 우드빌의 장녀인 요크의 엘리자베스(Elizabeth of York)를 헨리 튜더와 결혼시켜 왕비로 만들어주기로 약속한 것이다.

이미 아들들이 모두 리처드에게 제거된 것으로 믿고 실의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엘리자베스 우드빌로서도 이런 조건은 결코 섭섭한 조건이 아니었다.

  그러나 헨리 튜더가 미처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반란은 진압되어 버렸고 주동자인 헨리 스태퍼드마저 11월 2일 솔즈베리에서 처형되면서 이들의 계획도 모두 물거품으로 끝나는 듯 했다.

마거릿 보퍼트 역시 간신히 목숨만은 건졌지만 사권박탈을 당한 뒤 유폐되었다.

     ?    마거릿 보퍼트헨리 튜더의 생모로 헨리 튜더가 헨리 7세로 왕위에 오르면서며느리인 왕비 요크의 엘리자베스를 제치고 왕실과 정계를 아울러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당대 여성들에게는 가르쳐주지 않았던 라틴어를 독학할 정도로 지적이기도 했던 그녀의 영향으로튜더 왕가는 당대는 물론이고 후대에도 보기 드물게 공주들에게까지 단순한 귀족 아가씨들의 교양 이상의 높은 지적 수준을 요구한 왕가이기도 했다.

     해가 바뀌어 운명의 1485년이 밝았지만 여전히 리처드의 앞날은 밝지 못했다.

반란 진압에도 불구하고 리처드에 저항하며 프랑스의 헨리 튜더에게 투항하는 세력은 나날이 늘어갔다.

숙부인 재스퍼 튜더와 강경 랭카스터파인 옥스퍼드 백작 존 드 비어(John de Vere, Earl of Oxford)는 물론이고 리처드 정부에서 고위관직을 지냈던 제임스 블런트(James Blunt) 같은 인물조차 리처드의 몰락을 꿈꾸며 헨리 튜더에게 가담하는 실정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들 미들엄의 에드워드(Edward of Middleham, Prince of Wales)마저 11세의 나이로 요절한 데다가 강력한 워릭 백작의 딸이었던 아내 앤 왕비조차 그 뒤를 따랐다.

게다가 바야흐로 힘을 갖추기 시작한 헨리 튜더의 영국 본토 침공마저 눈앞에 와 있었다.

정국은 곧 터질 듯한 불안감으로 가득했다.

       리처드 3세와 그의 아내 앤 네빌.앤 네빌은 워릭 백작의 딸로 한 때 랭커스터 가문의 후계자인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와도 약혼했으나결국 리처드 3세와 결혼하여 아들 에드워드를 두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그녀는 리처드의 비열함을 욕하다가 결국 능란한 말빨에 넘어가 몸 주고 결혼까지 해주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_=)앤 네빌이 갑작스럽게 사망했을 때 일각에서는 리처드 3세가 분열된 일족들을 회유하기 위해조카인 요크의 엘리자베스와 결혼할 생각으로 아내를 독살하였다는 설이 퍼지기도 하였다.

      마침내 헨리 튜더를 비롯한 5백 여명의 망명자와 천 칠백 여명의 노르망디 용병들은 8월 7일 웨일즈의 밀포드 헤이븐에 도착했다.

비록 적은 병력이었지만 헨리 튜더의 계산대로 결전의 장소인 보스워스(Bosworth)에 도달하는 동안 많은 투항자와 병력이 합쳐지면서 그의 병력은 약 7천 명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리처드의 병력은 1만여 명이었고 노퍽 공작, 노섬벌랜드 공작 등 유명한 명장들이 진을 치고 있어 숫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헨리 튜더의 군대가 실수로 늪지를 지나면서 화살 공격을 받고 약간의 타격을 받은 데 반해 언덕의 고지를 차지한 리처드의 군대는 지형상으로도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

 결정타는 마거릿 보퍼트의 마지막 남편이자 헨리 튜더의 계부였던 더비 백작 토머스 스탠리(Thomas Stanley, 1st Earl of Derby)의 결단으로 이루어졌다.

마거릿 보퍼트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후계자인 조지 스트레인지 경이 리처드의 진영에 볼모로 잡혀 있었던 탓에 어느 진영에 설 것인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던 토머스 스탠리는 심지어 보스워스 전투에서 헨리 튜더와 리처드 양 진영이 맞붙기 시작했을 때조차 두 진영 사이에 서서 관망하고 있었다.

헨리 튜더의 입장에서는 스탠리가 합세하지 않는다면 승리가 요원했고, 리처드의 입장에서는 스탠리가 헨리 튜더에게 가지 않는다면 승리할 수 있지만 간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결국 스탠리는 헨리 튜더의 진영에 서서 리처드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국왕군의 괴멸과 함께 리처드는 전사하였다.

     보스워스 전투를 묘사한 실경도리처드의 죽음과 함께 요크 왕가는 막을 내렸고, 30년에 걸쳐 지루하게 이어지던 장미전쟁 역시 막을 내렸다.

     "우리는 백장미와 흑장미를 합할 것이오. 이번의 화해에 하늘이여 미소를 띠소서" 랭카스터 왕가의 붉은 장미와 요크 왕가의 흰 장미를 결합한 튜더 왕가의 장미 문장. 리처드 3세를 물리친 헨리 튜더는 그 해(1485년) 10월 30일 헨리 7세로 즉위하여 튜더 왕조를 연 뒤 1486년 1월 18일 에드워드 4세의 장녀인 요크의 엘리자베스와 결혼하였다.

이들의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이 바로 헨리 8세.      리처드 3세의 악마적인 이미지에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처드 3세』가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작품에서 리처드 3세는 꼽추의 몸을 지닌 장애인으로 야비한 성격을 지닌 것으로 묘사되는데2012년 주차장에서 발굴된 그의 시신 상태에 따르면 실제로도 심각한 척추측만증 환자였음이 확인된다.

?현재 리처드 3세에 대해 확실하게 알수 있는 사실은 왕의 동생이라는 지존한 신분이지만 당시에는 존재 자체가 악마의 저주로 여겨졌던 선천적 불구자였다는 점,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란의 시대에 태어나 나름 군사 지휘와 전투 참가 경험을 가졌다는 점,그리고 조카들의 권리를 빼앗고 자신이 왕위에 올랐다가 결국 비참하게 죽음을 맞았다는 점 정도이다.

?과연 그는 근본부터 사악한 인물이었을까? 아니면 셰익스피어가 묘사했던 것처럼 개들도 자기만 보면 짖어댈 정도로 추하게 태어난 스스로에게 절망해"악인이 되기로 마음먹은(I am determined to prove a villain)" 가련한 악당일까?아니면 랭카스터 왕가의 후예로 왕위를 이은 튜더 왕가의 통치를 받던 당대의 분위기와차남 주제에 조카들을 없애고 왕위에 올랐다는 윤리적 오점이 더해져  극악한 악인으로 묘사될 수밖에 없었던 역사의 패배자일까?진실은 어쩌면 셋 중 하나일 수도 있고, 셋 사이 그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다.

            (3) 그의 아내 : 레이디 앤 네빌(Anne Neville)마리 반필드(Marie Barnfield) 씀  어릴 적  앤 네빌(Anne Neville)은 리처드 3세의 아내이자 왕비이다.

그녀는 워릭 백작 부부인 리처드 네빌(Richard Neville)과 앤 보챔프(Beauchamp)의 둘째 딸이며, 그녀의 언니 이자벨(Isabel Neville, 1451년생)은 클라렌스 공작부인이다.

앤은 에이븐 강(Avon River)이 내려다 보이는 워릭 성(Warwick Castle)에서 1456년 6월 11일에 태어났으며, 그 마을에 있는 성모 마리아 신학대학 겸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녀의 부모는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가문의 대를 이을 아들을 바라고 있었지만, 결국에 두 딸이 자신들 부부의 상속자가 될 것임을 서서히 받아들여야만 했을 것이다.

앤이 태어났을 때 그녀의 아버지인 워릭 백작은 이미 정치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고, 전 해 세인트 알번스(St. Albans)의 첫번째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던 덕분에 칼레의 수비대장(Captain of Calais)으로 임명된 상태였다.

앤이 거의 한 살이 다 되었을 때 워릭 백작 부부는 칼레에 거처를 차렸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앤은 이후 3년을 부모 그리고 언니와 함께 보냈을 것이다.

  <워릭 성>   요크 가문의 승리와 함께 워릭은 섬으로 돌아왔다.

에드워드 왕의 수석 외교관이자 군인으로서, 워릭 백작은 종종 집을 떠난 상태였을 것이고, 이자벨과 앤은 아마도 어머니와 함께 성에 남았을 것이다.

두 소녀가 어디에 살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노스 요크셔(North Yorkshire)의 미들험 성(Middleham Castle)이 아마도 그들의 거처였을 듯 하다.

앤은 친삼촌인 조지 네빌(George Neville)이 1465녀 9월에 요크의 총대주교로서 즉위식을 가질 때 처음으로 대중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때 그녀의 나이 9살이었다.

또한 같은 해 왕의 막내 동생인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Richard, Duke of Gloucester, 1452년생)가 프랜시스 로벨 경(Francis Lord Lovell, 1456년생) 및 몇몇 귀족 자제들과 함께 워릭 백작의 궁정에 합류하기도 하였다.

그 전 해 앤의 아버지와 에드워드 왕의 관계에 균열이 생겼는데, 에드워드 왕이 프랑스의 신부를 아내로 맞아들이라는 워릭 백작의 외교적 중재를 고작 젠트리 계급의 딸인 엘리자베스 우드빌(Elizabeth Woodville)과 비밀리에 결혼하였음을 공언하는 것으로 답하였기 때문이다.

새 왕비는 자매들이 여럿이었고, 때문에 워릭 백작은 왕국 내 유력한 사윗감을 그녀들에게 뺏길 판국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왕은 당시 글로스터 공작과 로벨을 각각 이자벨과 앤의 신랑감으로 찍고 있던 듯 하다.

 하지만 워릭은 당시에 자신의 두 딸을 왕의 두 동생과 각각 결혼시키려는 야망을 갖고 있었다.

이 경우라면 글로스터 공작은 이자벨이 아닌 앤과 혼인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에 이자벨이 클라렌스 공작과 결혼하게 되면, 앤과 글로스터의 결혼은 ‘근친혼’의 범주에 들어가 불법이 된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힉스(Hicks), 앤 네빌, Tempus, 2006, 2006년도판 BBC 역사 매거진 ‘리처드 3세 왕은 과연 근친상간을 저질렀나?'). ‘법적으로’ 혼인이 제한되는 경우는 성적인 결합으로 인하여 ‘하나의 육체’가 되었을 때만 국한되었다.

즉 이에 따르면, 사면장 없이 이전 배우자의 친척, 또는 이론적으로 이전 애인과의 친척과 결혼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하지만 결혼하는 두 사람의 혈연자가 친척, 또는 ‘혼인 관계’라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워릭의 계획한 이중 결혼식의 유일한 장애물은 왕이었다.

왕은 클라렌스의 조지의 결혼이 중요한 외교적 흥정 대상일 것이 때문에, 자신의 맏아우를 워릭 가문의 후계자로 넘겨주는 것을 반대하엿다.

워릭 가문의 자매는 매우 좋은 신부감이었으나, 그들은 아버지의 샐리스버리(Salisbury) 백작령과 어머니의 광대한 영지들, 즉 워릭(Warwick)과 남서쪽의 디스펜서(Despencer) 백작령 등을 균등하게 상속받아야 했다.

(북쪽에 있는 네빌 가문의 영토는 남자 후계자에게만 상속이 가능하였기 때문에, 워릭 백작이 아닌 그의 가장 가까운 남자 친척에게 상속될 예정이었다.

)  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워릭은 클라렌스의 동의를 얻어 교황에게 사면장을 요청하는 사절을 보냈다.

교회법으로 볼 때 그의 딸들은 왕의 동생들과 원칙적으로 결혼할 수 없는 가까운 친척 사이였기 때문이었다1. 우리는 적어도 워릭 백작이 이자벨의 결혼에 대한 사면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데, 이를 증명하는 문서가 현존하기 때문이다.

리처드와 앤의 결혼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증거는 아니고, 정황을 보았을 때 사면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두 쌍의 결혼에 대한 사면장들은 바티칸 기록 보관소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때는 바야흐로 1468년 말, 워릭 백작과 왕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져버렸고, 리처드는 누구의 편이 될 것이냐는 다그침을 받았다.

리처드는 왕의 편이 되기로 결심하였다.

그가 떠남으로서, 앤과의 결혼은 깨진 것으로 간주되었다.

한편 로벨 경은 이미 앤의 사촌인 앤 피츠휴(Anne FitzHugh)와 결혼한 상태였다.

  랭카스터의 웨일즈 왕자와 결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라렌스는 워릭과 함께 음모를 꾸며 1469년 7월 12일 칼레에서 이자벨 네빌과 비밀 결혼식을 치렀다.

이 결혼은 클라렌스와 워릭이 반역을 일으키는 기초가 되었다.

그들은  왕의 총신들을 박살내고 에드워드 왕을 포로로 가뒀다.

아마도 클라렌스가 에드워드 대신 왕이 되고 네빌이 배후에서 조종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이러한 쿠데타를 지속시키는 데 실패하였다.

그들은 왕과 재화합하였지만,  이내 반란을 또 일으켰고, 이번에도 역시 실패하였다.

앤은 부모와 언니, 그리고 형부인 클라렌스와 함께 프랑스로 망명 생활을 떠났다.

이 자벨이 낳은 첫 아이는 배에서 사산되었다.

          <랭카스터 가문 : 헨리 6세, 그의 아내 앙주의 마거릿, 부부의 아들 랭카스터의 에드워드>랭카스터의 에드워드는 19세기에 판화에 그려진 초상화이고, 당시의 모습을 묘사한 초상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요크 가문 : 에드워드 4세와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우드빌(Elizabeth Woodville)> 에드워드 4세가 랭카스터파의 일개 과부인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결혼한 덕분에 불필요한 정치적 파란을 겪게 되었고, 이는 그 자신의 일시적 퇴위와 바넷, 툭스버리에서 벌어진 두 차례의 참혹한 전투를 초래하였다.

 당대 최고의 미녀로 평가받은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자신의 낮은 신분 때문에 정도 이상의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이것이 앤이 헨리 6세와 앙주의 마거릿(Margaret of Anjou)의 유일한 아들이자 후계자인 랭카스터의 에드워드(Edward of Lancaster)와 결혼하게 된 전후배경이다.

마거릿 왕비는 프랑스의 루이 11세를 설득하여 지원을 약속받은 후, 에드워드 왕과 군사작전으로 결판을 내기 위해 워릭과 동맹을 맺었다.

랭카스터의 에드워드와 앤은 8촌지간2이었기 때문에 교황의 사면장 없이 결혼할 수 없었지만, 1470년 7월 25일 에드워드와 앤은 서로 낯설어 하면서 앙제(Angers) 성당에서 엄숙한 약혼식을 올렸다.

1주일 후 워릭과 클라렌스는 앤과 그녀의 어머니를 프랑스에 남기고 영국을 침공하였다.

에드워드 4세는 패하여 해외로 달아났고, 헨리 6세는 복위하였다.

교황의 사면장이 도착하자, 앤과 랭카스터의 에드워드는 12월 13일 앙부아즈(Anboise)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 때 웨일즈 왕자는 17세, 앤은 14세였다.

  크리스마스 이후, 젊은 왕세자 부부는 각자 어머니를 대동하고 디프(Dieppe) 해안으로 이동하여 영국으로 가는 배를 탔다.

폭풍우가 몰아쳤지만, 그들은 3월이 되기 전에 웨이머스(Weymouth) 항을 목표로 출발하였다.

당시 앤은 웨일즈 왕자 및 마거릿 왕비와 한 배에 타고 있었고, 워릭 백작부인은 다른 배를 타고 있었다.

날씨 상태는 그때까지도 나빠서, 앤의 어머니를 태우고 있던 배는 홀로 떨어져 동쪽으로 수 마일이 떨어진 곳으로 표류하였다.

그들은 1471년 4월 14일에 상륙하였으나, 바로 그 때 다시 세워진 왕권이 몰락한 것을 목격하였다.

에드워드 왕이 다시 돌아와 런던을 접수하였으며, 클라렌스는 다시 요크 가문 쪽으로 붙었고, 바로 그 날 바넷 전투에서 워릭 백작이 전사하였다.

워릭 백작부인은 이 소식을 듣고 뉴 포레스트(New Forest)에 있는 볼리유 수도원(Baeulieu Abbey)의 성소로 들어갔다3. 앤은 툭스버리(Tewkesbury)로 향하는 행렬에 억지로 끼어 이동하였고, 바로 그곳에서 일어난 전투에서 에드워드 왕의 군대가 랭카스터의 군대를 박살냈다.

랭카스터의 에드워드는 병사들과 함께 전사하였으며, 앤은 언니 이자벨과 형부인 클라렌스 공작의 감시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결혼으로 인한 분쟁  앤의 아버지와 남편은 모두 반역자로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볼리유 수도원의 성소로 도피하였으며, 에드워드 왕은 이를 적대행위로 간주하고, 곧 무장한 경비병들로 그녀를 감시하게 하였다(BL MS Cotton Julius BXII, f. 317). 부모의 영지는 모두 몰수당했으며, 원래 앤과 이자벨이 나눠 가져할 영지를 이자벨의 남편인 클라렌스가 모두 차지하였다.

원래대로라면 앤의 어린 사촌인 조지 네빌(George Neville)에게 주어졌어야 할 영국 북쪽에 있는 네빌 가문의 영지도, 조지 네빌의 아버지인 몽태규 후작(John Neville, Marquess of Montagu)이 바넷 전투에서 반역자로 죽는 바람에, 글로스터 공작이 가져가고 말았다.

앤의 언니인 이자벨과 클라렌스 공작 모두 앤의 재혼 또는 워릭과 샐리스버리의 영지 상속권을 허락하지 않을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9개월이 조금 못미치는 시간 동안 리처드는 끊임 없이 앤과 결혼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는 양자 모두에게 신중한 결합이었으며, 또한 앤의 아버지과 원래 점지해주던 혼사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감시자 노릇을 하던 클라렌스는 동생이 앤의 배후에 있다고 보고, 앤의 존재를 비밀로 하고자 하였다.

아마도 그는 처제를 주방의 하녀로 모습을 감추게 하려고 했던 듯 싶다.

하지만 앤은 이를 거부하고 자신의 상속권을 위해서 싸웠을 것이다.

결국에 리처드가 앤을 찾아냈고, 그녀를 데리고 런던의 성 마틴(St. Martin) 수도원의 성소의 은신처로 갔다.

    <앤 네빌과 리처드의 사인>앤 네빌은 "Anne Warwick"이라 썼고, 리처드는 "R(ichard) Gloucester"라 썼다.

   앤은 이에 리처드와 결혼하기로 동의하였고, 최종적인 사면권을 얻기 위해 로마로 사절을 보냈다.

리처드는 이전에 앤이 결혼하였던 랭카스터의 에드워드와 8촌 지간이었기 때문에 교황의 사면장 없이 결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472년 2월, 에드워드의 압력에 의하여 클라렌스는 리처드와 앤이 ‘재산을 나누어 갖지 않는 조건 하에서’ 그들의 결혼을 마지못해 동의하였다.

하지만 그 해 3월 18일까지, 클라렌스는 리처드에게 몇몇 영지들을 양도하는데 동의하였다.

(CPR 1467-77, p. 330). 리처드와 앤의 사면장은 4월 22일에 로마에서 비준되었고, 영국으로 출발한 것은 6월쯤이었을 것이다.

당시 상황을 보건대 리처드와 앤은 클라렌스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면장이 도착하기 전인 1473년 1월에 결혼 한 듯 하다.

당시 앤의 나이 16세, 리처드의 나이 19세 또는 20세였다.

1473년 여름에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는 왕의 허락을 받아 볼리유의 성소에서 머무르고 있던 앤의 어머니를 데리고 미들험에 있는 자신의 궁정으로 모셔갔다.

  하지만 워릭 백작부인은 자신의 영지를 회복하지 못하였다.

두 딸과 사위들의 금전적인 욕심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에드워드 왕이 워릭 백작부인의 재혼이라는 위험을 감수하려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녀가 재혼한다면, 그 남편은 그녀의 광대한 영지와 재산 덕분에 왕국에서 가장 막강한 인물이 될 터였다.

백작부인의 영지를 두 딸과 사위들에게 상속하면 상황이 안정될 것으로 보였으나, 클라렌스는 이를 방해하려 들었다.

1473년 가을까지 그는 글로스터 공작에 대항하여 무장하였으며, 이 상황은 곧 클라렌스에게 동정심을 느끼고 있던 한 영국인 방문자에 의해 프랑스 궁정에도 보고되었다.

  <클라렌스 공작 부부, 조지 플란타지넷과 이자벨 네빌. 카디프 성당의 스테인글라스>   ‘글로스터 공작은 강제로 이전에 웨일즈 왕자와 결혼하였던 고(故) 워릭 백작의 딸을 아내로 취했으며, 클라렌스 공작에 맞서 끊임 없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클라렌스는 그의 형인 에드워드 왕과 이전에 워릭 백작령을 받기로 약속한 적이 있기 때문에, 글로스터가 백작의 둘째 딸과 결혼하는 것을 이유로 영지를 나누어 갖는 것을 원하치 않고 있습니다.

’ (Calendar of Milanese State Papers, p. 177).  결혼이 강요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이나 또는 그러한 두려움은 근거 없는 얘기다.

하지만 그러하였기 때문에, 클라렌스가 리처드와 앤의 결혼이 교회법으로 봤을 때 원래 무효라는 점을 들어서라도 리처드가 워릭 백작령의 일부라도 상속 받는 것을 반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강요된 결혼은 특히 지주 계급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었다.

특히 신부 측의 부모 또는 보호자가 아닌 신랑에 의한 강요라면 더했다.

  당대의 사회는 특히 신부의 가족 또는 보호자의 의사에 반하여 상속녀를 유혹하는 일을 도둑질을 목적으로 한 ‘유괴(raptus4)’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당대의 사회 통념상 유괴와 가출은 그 뜻에서 차이가 거의 없었다.

클라렌스의 감시에서 앤을 성 마틴 수도원의 성소로 데려온 일은, 리처드가 그녀를 유괴한 것으로 보여질 수도 있었다.

클라렌스가 리처드의 납치설을 주장한 근거는 이러한 점들에서 나온 것이 거의 확실하다.

하지만 교회법이 당대의 사회 관습을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신부가 직접 동의하는 경우라면, 신부측 가족의 동의가 없어도, 신랑과 신부의 정당한 결혼이 가능하였다.

이에 따라 육체적인 성관계나 동거하는 것도 법적으로 가능하였다.

비록 그 결혼이 실제로 ‘강요’에 의해 이뤄진 것이어도 그러하였다.

  클라렌스는 영지의 분할 상속을 막기 위해 동생의 결혼이 유괴에 의한 것이었다고 줄기차게 주장하였다.

클라렌스가 그 결혼에 대해 교회법에 의거하여 더욱 강하게 반대했다고 했을지라도, 기록으로 남겨진 바는 없다.

   결국에 클라렌스는 자신의 영지를 압수하겠다는 왕의 위협에 굴복하였다.

영지 상속에 대한 분란은 1474년 5월 의회의 의결로 가라앉았다.

연대기 작가 크로울랜드(Crowland)는 ‘워릭 백작 부인이 자연스레 죽은 것처럼’ 간주하여 그녀의 영지를 즉시 두 딸들과 사위들한테 즉시 지급할 것을 명시한 포고령에 경악하였다.

클라렌스가 그때까지도 워릭 백작부인의 상속재산 대부분을 사실상 보유하고 있었고, 리처드와 앤의 몫으로 돌아간 것은 다른 가문의 재산에 속하는 것이었다.

클라렌스는 앤과 리처드의 결혼의 적법성에 대하여 끊임 없이 중상모략을 가하였다.

즉, 교회가 그들의 결혼이 무효라고 선언함으로서 리처드와 앤이 이혼하게 된 상태에서 다시 재결합하는 경우, 그들의 권리를 지켜줄 법적 문구를 발표해버리는 식이었다.

또한 클라렌스는 리처드가 앤과 두 번째 결혼을 하기 위해선 지켜야 할 권리들은 이러저러한 것들이 있다는 식으로 떠들고 다녔다 (C. Given-Wilson [ed.], Parliament rolls of Medieval England, Edward IV - October 1472 - 2nd roll). 하지만 그 어떠한 교회 법정도 혼인의 적법성에 대하여 이렇게까지 대중 앞에서 선언해야 한다고 요청한 적이 없었다.

또한 리처드와 앤의 결혼은 서로간 호의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하며, 부부 사이는 앤이 죽을 때까지 이어졌다.

   글로스터 공작부인<글로스터 공작부부, 앤과 리처드>  공작부인으로서 앤의 활동은 살짝 훑어볼 수 있는 정도이다.

1475년과 1477년 사이의 예시는 그 일면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1475년, 리처드는 프랑스로 원정을 가는 바람에 자리를 비웠다.

이 때 앤은 요크 시의 시장 및 시의원들과 함께 서신으로 왕래하였으며, 특히 그녀에게 중요한 편지 한 통은 그레이스톡 경(Loard Greystock)을 비롯한 남편의 참사회 회원들의 손에 딸려 보내기도 하였다 (York City Chamberlains’ Account Rolls, Surtees Soc. Vol. 192, 1980, p. 152). 리처드와 앤의 유일한 아들인 에드워드(Edward)는 1476년 봄 또는 여름에 미들험(Middleham)에서 태어났다.

적어도 공식 기록에 따르면, 에드워드는 유아기를 무사히 넘긴 부부의 유일한 혈육이다.

같은 해에, 앤은 네빌 가문의 조상들이 묻혀있는 더럼 수도원(Durham Priory)의 자선 회원5이 되었다.

12월에 그녀는 아마도 리처드와 함께 런던에 있었던 듯 싶다.

당시 리처드는 ‘공작 각하의 분부에 의하여, 각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아내를 위하여 대령하라고 했던 모피’와 ‘공작부인께 대령하라고 명령하셨던 비단옷과 다른 물품들’에 대한 비용을 자신의 동-잉글랜드의 영지에 달아놓았다.

1477년 리처드와 앤은 요크의 성체 협회(Corpus Christi Guild)에 가입하였다.

앤은 자신의 개인사제를 승진시키기 위하여 더럼 수도원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아마도 같은 해에 케임브릿지의 퀸스 컬리지(Queen’s College)에 부부가 공동으로 기부금을 전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왕비가 되다.

  <리처드 3세와 앤 왕비><리처드 3세, 아내와 함께 대관식을 치르다>영드 The White Queen 8화의 한 장면 (배우는 아뉴린 바너드(Aneurin Barnard), 페이 마세이(Faye Marsay))   에드워드 4세의 죽음 이후, 리처드는 남쪽으로 가서 어린 에드워드 5세의 호국경 자리를 꿰찼다.

앤은 한 달 후에 런던으로 향했고, 6월 5일 화요일에 도착하였다.

곧 정치적 위기가 발생하였고, 결국에 리처드가 왕위를 차지하였다.

같은 시기에 앤은 언니 이자벨의 아들이자 고아인 상태로 도르셋 후작의 후견을 받고 있었던 워릭 백작 에드워드(Edward Plantagenet, Earl of Warwick)을 돌보기로 하였다(Mancini).  리처드와 앤은 공동으로 대관식을 치렀다.

웨스트민스터 타워에서 치러진 식 하루 전에, 그녀는 여성용 가운과 길이가 27야드(=11.88m)나 되는 금으로 수놓인 흰색 망토를 입었다.

그 망토는 담비와 족제비의 털로 만들어졌고, 흰색 비단과 금으로 수놓여진 레이스로 장식되어 있었다(Laynesmith, p. 92). 대관식은 아침 7시에 웨스트민스터의 홀에서 사원으로 걸어서 행진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으며, 그곳에서 부부는 미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대관식과 도유식6을 치렀다.

그 날은 장엄한 축하 연회와 함께 끝났으며, 그 자리에서 리처드는 금으로 만든 접시에, 앤은 금박을 입힌 접시에 음식을 대접받았다.

  <리처드 3세의 가족 : (왼쪽부터) 왕비 앤 네빌, 리처드 3세, 부부의 아들 미들험의 에드워드>   왕비로서 앤이 군림했던 시간은 짧았고, 당시 왕비의 궁정에서 남겨진 기록도 없어서, 아직도 그녀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남아있는 증거에 따르면, 앤이 글로스터 공작부인일 때부터 그녀를 모시던 북부 신사계급 출신 여인들이 그대로 왕비의 시녀로서 궁정에서 봉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종종 남편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그의 대관식 기간 동안, 앤은 워릭에 도착하여 리처드를 잠시 멈춰 세우고, 그녀가 일전에 윈저(Windsor)에서 접견하였던 에스파냐 대사를 만나게 하였다.

부부는 앤의 고향(=워릭)에서 1주일 정도 머물렀다.

이후 앤과 리처드는 요크를 방문하였고, 그곳에서 7살 먹은 아들 에드워드를 웨일즈 왕자로 선포하였다.

국왕 일행은 다시 남쪽으로 향했고, 폰티프락스(Pontefract)를 방문하여 2주일을 머물렀다.

 앤은 크리스마스 축제 기간을 위해 남편과 함께 웨스트민스터에 머물렀다.

3월에, 그녀와 리처드는 이틀 동안 말을 타고 케임브릿지의 퀸스 컬리지로 행차하였고, 그곳에서 '가장 거룩하신 앤 왕비 마마(께서는)..... 막대한 기부금으로 대학의 재정을 크게 늘려주셨다' (Laynesmith, p. 256). 그에 대한 보답으로, 케임브릿지 대학의 간부들은 매해 5월 2일에 '가장 고명하신 군주(=리처드)와 전하의 사랑하시는 앤 왕비 마마를 위하여' 미사를 치르기로 결의하였다 (Hammond, p. 20). 이후 부부는 노팅엄(Nottingham)에 궁정을 차렸는데, 그곳에서 아들 에드워드 왕자가 미들험에서 죽었다는 불의의 소식을 들었다.

'여러분은 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갑작스러운 비탄에 압도되어 거의 제정신이 아닌 것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 (Crowland, p. 171).  에드워드 왕자의 죽음은 리처드와 앤에게 개인적인 비극일 뿐만 아니라 왕조에도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이제 통치 왕조의 안정성과 왕조의 지속을 보장해줄 후계자가 사라졌다.

헨리 튜더(Henry Tudor)는 에드워드 4세의 맏딸인 요크의 엘리자베스(Elizabeth of York)를 미래의 배우자로 맞겠다고 선언함에 따라, 앤이 또 아들을 낳아야할 필요성이 시급히 대두되었다.

그녀는 아직 27세였고 건강해보였으며, 그랬기 때문에 리처드와 함께 국내를 여행할 수 있던 것으로 보인다.

리처드가 어디를 갔던지 간에, 즉 예를 들어 리처드가 스코틀랜드에 대항하여 해상작전을 진두지휘하기 위해 스카보로(Scarborough)에 주둔지를 차렸을 때조차도, 앤은 역시 그곳에 있었다.

앤이 스카보로에서 머물렀던 사각형의 탑은 1538년에 여행객 존 릴런드(John Leland)에 의해 '왕비의 타워 또는 임시거처(The Queens Towre or lodging)'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The Itinerary of John leland the Antiquary, ed. Thomas Hearne, Vol. 1, 1745, p. 62). 앤은 리처드와 함께 왕비로서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였다.

이 때 앤의 시녀로서 에드워드 4세의 맏딸인 요크의 엘리자베스와 (아마도) 그 여동생들도 함께 머무르고 있었다.

그 해 3월에 엘리자베스와 그녀의 자매들은 어머니와 함께 성소에서 나오는 것이 허락되었던 것이다.

크로울랜드의 연대기는 크리스마스 축제 기간에 '지나칠 정도로 많은 관심이 춤과 환락에 쏟아졌으며' 앤 왕비와 레이디 엘리자베스가 옷을 자주 바꿔 입었는 사실을 우리에게 들려주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십이야에7, 헨리 튜더가 1485년 여름에 영국을 침공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당도하였다.

  그 즉시, 리처드에 대한 적대적인 소문이 만연하게 되었다.

'그러한 소문들은 리처드에게 악의를 품고 있는 자들이 꾸며내어 퍼트린 것이다' (Lander, p. 255). 크로울랜드에 따르면, 크리스마스 축제 기간 동엔에 왕은 엘리자베스에게 호의를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왕이 앤이 죽고 난 뒤, 또는 '이미 그 근거가 충분한 것으로 보이므로 앤하고 이혼한 뒤에' 엘리자베스와 결혼하기로 결심하였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다고 한다.

하지만 이 연대기 작가는 왕이 앤과 이혼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 제시하지 않고 있지만, 이는 아마도 클라렌스가 이전에 리처드와 앤의 결혼을 중상모략하면서 했던 바로 그 주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앤은 '바로 며칠 뒤에' 죽을 병에 걸렸으며, 이 상황에서도 리처드가 이혼을 고려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면 다소 놀라운 일이 될 것이므로, 앞선 소문은 이제 그가 아내를 독살하려 한다는 루머로 대체되었을 것이다8. 앤의 병세에 대하여 우리가 갖고 있는 증거는, 앤의 병세가 2달 동안 지속되었다는 것, 그리고 의사들이 리처드에게 그녀의 침상으로 다가가지 말라고 조언한 것 정도이다.

  현재 남겨진 증거로 보면, 리처드는 자신이 홀아비가 되었을 경우를 대비하여 조카인 엘리자베스의 결혼 협상을 고려했던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리처드가 조카와 직접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포르투갈의 공주와 결혼하고 동시에 조카를 포르투갈의 왕자와 결혼시키려는 계획이었다.

 앤은 만 29세 생일을 석 달 남겨두고 1485년 3월 16일에 죽었다.

바로 그 날, 영국엔 개기일식이 관측되었다.

그녀는 '왕비에게 어울리는 경의를 받으며'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다.

(crowland, p. 175). 보챔프 가문의 여러 위인전을 작성하였던 존 로스(John Rous)에 의하면, 앤은 '품위가 있었으며, 상냥하고 아름다웠다.

그녀의 행동은 늘 칭찬할만 하였고, 고결하였으며, 그녀의 이름인 '앤(Anne)'이 나타내고 있듯이 우아함으로 가득차있었다.

' 이제 앤의 이야기에서 후기를 쓸 때가 왔다.

3월 30일, 리처드는 런던 시장과 시민들 및 가능한 많은 영주들을 성 요한 자선회당(Hospital of St. John)의 대강당에 불러모았고, 엘리자베스와 결혼하기 위하여 앤을 독살하였다는 루머에 대해 '크고 분명한 목소리로' 연설하였다.

'왕은 이전의 일에 대해 슬픔과 언짢음을 보여주면서, 그런식으로 결혼하려는 것이 절대로 자신의 생각도 아니고 그럴 마음도 없으며, 왕비의 죽음에 결코 기뻐한 적도, 또한 바란 적도 없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왕비의 죽음 때문에 큰 비탄에 사로잡혔으며, 남자로서 견딜 수 없을만큼 괴롭다고 하였다.

....' (Lander, pp. 255-6).주요 출처 / 더 읽어보세요데이비드 볼드윈(David Baldwin) "리처드 3세(Richard III)" 스트로우드(Stroud), 2012마리 반필드(Marie Barnfield), "무효화된 혼인 제한, 교황 사면장과 이혼 : 리처드 3세와 그의 결혼에 대하여(Diriment impediments, Dispensations and Divorce : Richard III and Matrimony', The Ricardian, Vol. XVII, 2007 PP. 84-98아네트 카슨(Annette Carson), "리처드 3세 : 비난받는 왕(Richard III : The Maligned King)" 스트로우드, 2008P. D. 클라크(P. D. Clarke), "영국 왕가의 혼인과 15세기 로마 교황청 법원(English royal marriages and the Papal Penitentiary in the fifteenth century)", 영국 역사 비평(English History Review), 120, 2005로스 연대기(The Rows roll). W. H. 커토프(W. H. Courthope) 편집, 런던, 1859.로다 에드워즈(Rhoda Edwards), "리처드 3세의 순방, 1483-1485(The Itinerary of Richard III, 1483-1485)", 글로스터, 1983중세 영국 의회 의사록(Parliament rolls of Medieval England), 크리스토퍼 기븐-윌슨(Christopher Given-Wilson) 편집.P. W. 헤이먼드(P. W. Hammond), "웨일스 왕자, 미들험의 에드워드(Edward of Middleham, Prince of Wales), 켄트, 1973.리처드 3세의 대관식 : 현존하는 기록들(the Coronation of Richard III : The Extant Documents), P. W. 헤이먼드와 A. F. 서튼(A. F. Sutton) 편집. 글로스터, 1983.H. 힘홀즈(H. Helmholz) "중세 영국의 결혼 소송(Marriage Litigation in Medieval England)", 케임브릿지, 1974 (2007년에 페이퍼북 판이 나옴)마이클 힉스 :- 앤 네빌(Anne Neville), 스트로우드, 2006- 그릇되고 이랬다 저랬다하며 거짓말을 일삼는 클라렌스(False, Fleeting, Perjur'd Clarence), 글로스터, 1980- 리처드 3세(Richard III), 스트로우드, 2000 (개정판)- 국왕 옹립자 워릭(Warwick the Kingmaker), 옥스포드, 1998 (2002년에 페이퍼북 판이 나옴)- 왕자는 한 명? 아니면 두 명? (One prince or tow?', The Ricardian, Vol. IX, 1993, pp. 469-72.J. L. 레인스미스(J. L. Laynesmith), "마지막 중세의 왕비들(The Last Medieval Queens)", 옥스포드, 2004J. R. 랜더(J. R. Lander), "장미 전쟁(The Wars of the Roses), 런던, 1974 (White Lion 판)로즈머리 호우록스(Rosemary horrox), 앤 서튼(Anne Sutton), "글로스터 공적으로서 리처드의 몇몇 지출내역, 1475-7(Some expenses of Richard Duke of Gloucester, 1475-7)", The Ricardian, Vol. VI, 1983, pp. 266-9.1459-1486년 기간의 크로울랜드 연대기, N. 프로니(N. Pronay), J. 콕스(J. Cox) 편집, 런던, 1986.셜리 ㅁ. 싱클레어(Shelley A. Sinclair) "이자벨 버틀러의 유괴 : 랭카스터 왕조 시절 잉글랜드의 납치와 부의 추구(The 'ravishing' of Isabel Boteler : abduction and the pursuit of wealth in Lncasterian England), The Ricardian, Vol. XI, no 146, 1999년 9월배리 윌리엄즈(Barrie Williams) :- 포르투갈과의 외교관계와 신앙심 깊은 공주의 중요성(The Portuguese connection and the significance of the holy princess'), The Ricardian, Vol. VI, pp. 138-5- 포르투갈과 맺은 결혼 협상들 : 그 대답 (The Portuguese marriage negotiations : a reply), The Ricardian, Vol. VI, pp. 235-6에드워드 4세의 어머니 세실리 네빌은 워릭 백작의 고모였다.

그래서 클라렌스와 글로스터 형제는, 나이 차이는 거의 안나지만, 이자벨과 앤 자매의 5촌 당숙이 된다.

즉, 앤의 친할아버지의 어머니인 조앤 보퍼트(Joan Beaufort)는 랭카스터의 에드워드의 친증조할아버지인 헨리 4세의 의붓동생이다.

당시 성소로 들어가면 죄인이라도 끌어내지 않는 게 관행이었다.

일종의 치외법권인 셈이다.

워릭 백작부인은 워릭 백작이 전사하고 에드워드 4세가 복위함에 따라서 자신이 반역자가 된 셈이기 때문에 성소로 도피한 것이다.

라틴어 단어 rapere(빼앗다)의 수동태 과거분사에서 유래에는 sister로 되어 있는데, 최소한 수녀는 아닐 것이 확실하므로, 능력이 닿는 대로 가장 비슷할 것 같은 뜻의 단어로 번역해서 넣었다.

하느님의 가호를 받아 통치자가 되었음을 선포하는 의식이다.

역대 기독교도 왕들의 호칭에 DEI GRATIA라고 되어 있는 문구는, 바로 이 의식을 치렀음을 암시한다.

크리스마스 축제는 12월 25일에 시작하여 12일 동안 이어지며, Twelfth Night라 하면 크리스마스로부터 12일째인 1월 6일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1)앤의 죽음 2)앤과 이혼 두 가지 헛소문이 있었는데, 앤이 아프자마자 2)를 기각하고 앤이 독살당하는 것으로 1)의 설이 우세해졌다는 것이다.

.!! 4월에 한다면서요!! 카리스마 넘치는 리차드 3세가 되지않을까싶습니다.

밑에는 새 티저영상입니다.

이젠 궁금해집니다.

셜록이 먼저나올지 아님 할로우 크라운이 먼저 나올지. 마틴님 그라함 노튼쇼 나가서 아마도 크리스마스 쯔음에 방여하지않을까 그렇게 이야기 했다면서요. 그럼 내년 1월까지는 안기다려도 되는겁니까 ㅠ_ㅠ https://youtu.be/W0kO-pVsc3E동영상The Hollow Crown: Trailer - BBC TwoProgramme website: http://bbc.in/1raHbMV A world class cast tell Shakespeare's bloody history of the English Thronewww.youtube.comIan McKellen: 2nd in a series of short videos I’m doing, asking friends what they think of the new Heuristic App for iPad “The Tempest.” Perhaps you can identify these splendid actors. Sorry for the portrait mode.이안 맥켈런: 두번째 숏비디오 촬영하고 있는데요, 친구들에게 새로운 휴리스틱 아이패드 앱인 "템페스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묻고있어요. 아마도 이 훌륭한 배우가 누군지 알아보겠죠. 포트레잇 모드(인물사진 모드)여서 미안해요. 베네딕트: 다음에 제가 작업할때 쓸거에요. 엄청 좋으네요. 이안: 훌륭해요, 고마워요. 베네딕트: 알겠습니다.

 네? 이안: 맞아요, 고마워요. 셰익스피어 앱이라고 합니다 ㅋㅋㅋ 영상은 이안 맥켈런님 페이스북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셰익스피어 400주년 행사를 기념해서 나온 앱이라고 하네요. 아 베니님 엄청 귀여워요!!! ㅋㅋㅋㅋㅋ 요즘 얼굴이 자주 보여서 좋습니다 +_+ https://www.facebook.com/ianmckellen/ 뛰어난 행정능력을 인정받아지지자들의 협조를 받으며 즉위했지만조카를 잔인하게 숙청했다는 면에서 신뢰를 잃고 보즈워스 전투에서아군의 ☆배신☆으로 전사했다고 하네요..뛰어난 행정가이자 군인이었지만 ☆도덕성의 결함☆으로지지세력을 잃으면 오래 못간다는것을잘 보여준 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 얘는 항상 사회성의 결함,사교성의 결함,성격파탄자,소시오패스,은둔형 외톨이,도덕성의 결함 이런 애들만 맡지???)하지만 이건 사극이 아니라 셰익스피어의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거니까좀 다를 수도 있겠죠?왕쟈님도 아니고 왕이래요 왕☆THE KING☆ (하지만 도덕성의 결함이 있지)왕관 너무 좋아하는 우리 애들.Honey, you should see me in a crown필터 좀 다르게 한거랑 확대한거와...진짜 이쁘다.

..저런 왕이라면 진짜 좋아할 수 있어요ㅠㅠ(도덕성의 결함이라도)리처드 3세의 초상왼쪽이 만약에 그 보즈워스 전투라면리처드 3세는 저기서 전사하는 건가요예고편 보니까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던데요.그래도 잼있겠다.

방영일이..5월 7일 한국시각으로 새벽 5시랬죠?저 그때 어떻게 일어나요..토요일이라 다행이지 일요일이었어봐학교가서 하루종일 졸지.하지만 토욜이니 5시에 일어나 우리리처드 3세를 보고 다시 잠들겠습니다.

.!! 4월에 한다면서요!! 카리스마 넘치는 리차드 3세가 되지않을까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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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이안: 맞아요, 고마워요. 셰익스피어 앱이라고 합니다 ㅋㅋㅋ 영상은 이안 맥켈런님 페이스북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셰익스피어 400주년 행사를 기념해서 나온 앱이라고 하네요. 아 베니님 엄청 귀여워요!!! ㅋㅋㅋㅋㅋ 요즘 얼굴이 자주 보여서 좋습니다 +_+ https://www.facebook.com/ianmckellen/ 뛰어난 행정능력을 인정받아지지자들의 협조를 받으며 즉위했지만조카를 잔인하게 숙청했다는 면에서 신뢰를 잃고 보즈워스 전투에서아군의 ☆배신☆으로 전사했다고 하네요..뛰어난 행정가이자 군인이었지만 ☆도덕성의 결함☆으로지지세력을 잃으면 오래 못간다는것을잘 보여준 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 얘는 항상 사회성의 결함,사교성의 결함,성격파탄자,소시오패스,은둔형 외톨이,도덕성의 결함 이런 애들만 맡지???)하지만 이건 사극이 아니라 셰익스피어의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거니까좀 다를 수도 있겠죠?왕쟈님도 아니고 왕이래요 왕☆THE KING☆ (하지만 도덕성의 결함이 있지)왕관 너무 좋아하는 우리 애들.Honey, you should see me in a crown필터 좀 다르게 한거랑 확대한거와...진짜 이쁘다.

..저런 왕이라면 진짜 좋아할 수 있어요ㅠㅠ(도덕성의 결함이라도)리처드 3세의 초상왼쪽이 만약에 그 보즈워스 전투라면리처드 3세는 저기서 전사하는 건가요예고편 보니까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던데요.그래도 잼있겠다.

방영일이..5월 7일 한국시각으로 새벽 5시랬죠?저 그때 어떻게 일어나요..토요일이라 다행이지 일요일이었어봐학교가서 하루종일 졸지.하지만 토욜이니 5시에 일어나 우리리처드 3세를 보고 다시 잠들겠습니다.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장미전쟁"이라는 것을 배웠다면 너무 쉽게 이해가 되는 작품이에요

그럼 <리차드 3세>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고 어떤 역사적인 배경이 있었는지를 알아볼게요

이 작품에 등장하는 "리차드 3세"는 실존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극을 셰익스피어 사극이라고도 불린다.

영국의 대표적인 폭군"리차드 3세" 영국의 국왕이자 가장 추악한 폭군으로 알려진 "리차드 3세"는 요크 왕가의 '에드워드 4세'의 막내 동생이지만 조카를 죽이고 자신이 왕에 오르면서 요크 왕가의 마지막 왕이지만, 영국의 가장 사악한 군주로 알려져 있다.

  1455

1485년까지 플랜태저넷 왕가에 뿌리를 두고 있는 요크셔 왕가와 랭커스터 왕가는 왕위 계승을 두고 장미전쟁(요크 왕가는 흰 장미를,  랭커스터 왕가는 붉은 장미를 표식으로 삼았다)을 치루고 있었다.

당시 "리차드 3세"의 형이었던 '에드워드 4세'가 랭커스터 왕가였던 '헨리 6세'를 폐위시키고 왕위에 올랐다.

1483년 '에드워드 4세'가 사망하자 어린 조카 '에드워드 5세'가 왕위에 오르자 그는 자신의 조카의 어머니(형수)였던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자신의 형인 '에드워드 4세' 결혼이 무효라고 주장하며 결국 조카를 런던 탑에 가두어 죽게 만들고 왕위에 올랐지만, 1483

1485년 장미전쟁(영국 왕위계승 전쟁)에서 패하면서 2년 간 짧은 영국을 통치하였다.

  왕위 찬탈 2년만에 "리차드 3세"는 1485년 웨일즈 보즈워스 전투에서 헨리 튜더(헨리 7세)에게 패하면서 사망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요크 왕가는 몰락하고 만다.

(영국 역사상 왕이 전쟁에서 사망한 마지막 왕으로 기록되어 있다.

) "리차드 3세"의 뒤를 이어 랭커스터 왕가의 '헨리 7세'가 튜더 왕조를 열었다.

  역사학자들은 "리차드 3세"가 죽으면서중세시대가 막을 내렸다"라고 한다.

셰익스피어는 "리차드 3세"를 사악한 왕의 이미지를 극대화 시킨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역사적으로는 폭군이 아니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 아무튼 셰익스피어의 작품 <리차드 3세>는 영국 역사상 가장 사악한 폭군으로 작품은 이야기 하고 있다.

 "리차드 3세"와 유사한우리나라 조선의 왕은 누구? 절대 악인이라 칭하는 "리차드 3세"(1452년에 태어남)와 동시대에 한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바로 조선의 7대 임금 "세조"(1417년 태어남)는 어린 조카 단종을 폐위시키고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보내 17세의 어린 나이에 사망케 하고 1455년부터 1468년까지 왕위에 있었다.

영화 '관상'에서도 배우 이정재가 연기한 역할이 세조 모습인데 이 영화에서도 "세조"는 폭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 본격적으로 2017 한예종 지정작품 셰익피어 作 <리차드 3세> 작품을 알아보자.  이 작품의 쓰여진 시기는 <헨리 6세> 3부작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이 극의 줄거리는 <헨리 6세 3부>를 이어받고 있는데,(위에서 언급한 장미전쟁이 계속되고 있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헨리 6세 3부>는 1591년에 공연되었다.

그리고 1592년 6월 런던에 역병이 유행하여 모든 극장이 일시적으로 폐쇄되었다.

따라서 이 극의 제작 연대를 1591년에서 1592년 6월 사이일 것으로 추정한다.

  이 극의 직접적인 자료는 홀린세드의 "영국일기(英國日記)"와 홀의 "사기(史記)"이며, 부분적으로는 토머스 모어의 소설 <리차드 3세>도 참조했으리라 생각된다.

 실존인물인 "리차드 3세"는 1483년에 즉위하여 1485년 보즈워드에서 전사함으로, 그의 재위기간은 2년밖에 안된다.

 그리고 에드워드 4세가 복위한 1471년부터 시작하여 15년간에 이르는 사실을 담고 있지만,  이 극은 그것을 2,3주일의 사건으로 압축되어 표현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 극은 비극적 색체가 짙은 셰익스피어 사극(史劇)이다.

<리차드 3세>가 인과응보를 받는 운명은 그리스 비극과 패턴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인과응보의 여신 [네메시스]에게 복수당하는 것은 "리차드 왕" 한 사람뿐이 아니라 '클레런스', '헤이스팅즈', '버킹엄' 그리고 '에드워드 4세'까지도 모두 그 대상이다.

'마가렛'은 배후에서 저주의 의식을 주관하는 [네메시스] 역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형식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악마론의 형식과도 일치한다.

자기만은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차례차례 함정에 빠지고, 끝으로 남의 운명 뿐 아니라 자신의 운명까지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리차드" 그 자신도 파멸하고 만다.

이렇게 극 전체에 운명의 존재가 일관하고 있다.

 리차드는 불구자인데다 잔인한 권모술수에 뛰어난 철저한 악역이다.

그뿐 아니라, 그는 자신의 악을 의식하여 그것을 감추려 들지 않고 오히려 공개적이며, 수단으로 위선의 탈을 쓰는 수가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자기가 위선을 가장하고 있음을 자타에게 감추려고 하지 않고 도리어 공개해 버리거나, 또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상대방의 둔감함을 조소하기도 한다.

그는 적어도 자신은 그 위선을 분명히 의식하지 않고서는 배겨내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는 또한 쉴새 없이 연기를 한다.

겸손한 성자를 가장하여 위선을 연기할 뿐아니라, 극 초반의 독백이며 앤에게 구애하는 장면, 그는 줄곧 연기를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중세극이나 로마극에서의 악역을 조상으로 하는 리차드 왕은 악을 위한 악을 마음껏 발휘하여 희열을 느끼고 끝내는 절망 속에 파멸하지만, 내적갈등은 전혀 검험하지 않는다.

이 점이 후기의 대비극의 주인공들과 다른 점이다.

리차드의 운명은 권력의 절정이 곧 추락이고, 이래서 <헨리 6세 제1부>부터 회전하기 시작한 운명의 거대한 수레바퀴는 한 바퀴 빙 돌아가서 다시 원점에 도달한 셈이다.

등장인물 분석을 통해 <리차드 3세> 이해하기!
*리차드 3세 역사적 인물(1452

1485)이며, 그가 죽기전 1483

1485년까지 영국을 통치하였다.

요크 가문의 마지막 왕인 그는 장미전쟁때 요크 가문을 위하여 싸워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는 당시 13살이었던 조카 에드워드 5세의 섭정이 되었는데, 자신의 조카가 적법한 왕위계승자가 아니라고 선언하였다.

리차드는 어린 조카와 그 동생인 요크 공작 리차드를 함께 런던 탑에 감금하고, 후에 그들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절대군주로서 훌륭한 통치력을 발휘했음에도 불구하고, 리차드 3세는 젊은 왕자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 때문에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1485년 랑가스터 가문 쪽으로 왕권을 주장한 리치먼드 백작인 헨리 튜더가 군대를 일으켜 리차드의 군대를 물리치고 보스워스 필드에서 그를 죽였다.

대중들의 상상 속에서 리차드 3세는 같은 이름의 셰익스피어의 극에 등장하는 괴물같은 꼽추로 남아 있지만, 이는 역사가인 라파엘홀린셰드의 <연대기>에 그의 등이 굽었다는 언급에서 기인한 것이고, 사실상 그가 꼽추였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더욱이 그가 정말 런던 탑에서 살해된 조카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지도 알려진 바 없다.

아마도 진정한 사실에 대해서 알 수 없었던 셰익스피어는 엘리자베스 1세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리차드의 사악함을 과장한 것으로 여겨진다.

사실상 왕권을 주장할 권리가 미약했지만 보스워스 필드에서 리차드를 죽이고 왕이 된 헨리 튜더는 여왕의 직계 선조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엘리자베스 시대에는 리차드를 거의 악마와 같은 인물로 묘사하고 선전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반대로 헨리는 적어도 왕권에 대한 분명한 도덕적 권리를 가지고 있었던 영웅적인 구원자로 제시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글로스터 공작 리차드(후일은 리차드 3세)요크 공작 리차드의 4남으로 <헨리 6세 2부>의 2막 6장 이후에서 <리차드 3세>로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부여받은 직위이다.

이 작위는 불운한 글로스터 공작 험프리의 작위로 악운의 전조로 작용하기도 한다.

*앤 왕비 역사적 인물(1456

1485)이며, 리차드 3세의 부인으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1막2장에서 죽은 남편과 그의 아버지인 헨리 6세의 살해자인 리차드의 구애를 받자 앤은 처음에는 그를 저주하며 비난한다.

그러나 앤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의 남편을 죽였다는 리차드의 말에 반쯤 최면이 걸린 듯 결국 그러부터 반지를 받는다.

4막1장에서 다시 등장할 때, 그녀는 이미 리차드의 아내이며, 왕권을 장악한 리차드의 왕비로서 왕관을 쓰기 위해 소환된다.

그녀는 리차드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예언하는데, 나중에 리차드의 대사를 통해 관객은 그녀의 말대로 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앤은 <헨리 6세 3부>에서 위릭 공작이 자신의 맏딸과 왕자의 결혼에 동의할 때 처음 언급된다.

역사적인 인물로서의 앤은 워릭의 막내 딸이었고, 왕자와 약혼은 햐였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

어쨋든 그녀는 1474년에 리차드와 결혼하였다.

역사적으로 그녀는 헨리 6세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극 속에 등장하는 그녀와 리차드의 대화는 전적으로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나중에 리차드가 엘리자베스 왕비의 딸에게 구애하는 장면과 대조되는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이 장면을 고안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앤은 살해당했다는 역사적인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에드워드 4세역사적 인물(1442

1483)이며 <헨리 6세 2부>와 <헨리 6세 3부> 그리고 <리차드 3세> 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헨리 6세 2부에서의 아버지 '요크 공작 리처드'가 반역죄로 체포되자 에드워드는 동생 리차드와 함께 보석을 신청한다.

3부에서는 요크 공작이 사후에 왕위를 물려줄 테니 자신의 생전만큼은 왕위를 유지하게 해달라는 '헨리 6세'의 간청에 응하자, 에드워드와 리차드 두 형제는 아버지에게 왕위에 오를것을 재촉한다.

남편의 비굴함에 분노한 헨리 6세의 왕비 '마가렛'이 찬탈 세력에 대항하여 군대를 일으키자 에드워드 형제는 토우튼 전투에서 승리하게 되고 맏형 에드워드가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 후 에드워드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프랑스의 보나부인과 결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사로운 감정으로 남편의 장원 문제 때문에 탄원하러 온 미망인 '그레이 부인 엘리자베스 우드빌'에게 반해 그녀를 왕비로 맞게된다.

이렇듯 군주로서의 공적인 의무를 망각하고 번번이 사적인 감정에 탐닉하거나 신중하지 못한 태도를 보이는 모습은 <리차드 3세>에서도 반복된다.

이 작품에서 에드워드는 기력이 쇠한 늙고 무능한 왕으로 그려지고 있다.

동생 리차드는 왕권에 대한 야심으로 우선 둘째 형 클라랜스 공작을 제거할 음모를 꾸미게 되는데, 에드워드는 이를 간파하지 못한 채 클라렌스의 죽음을 방치한다.

극의 초반에 잠시 모습을 보이다가 2막 2장에서 승하 소식이 전해지면서 리차드의 야심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엘리자베스 왕비 엘리자베스 우드빌 그레이는 역사적 인물(1437

1492)로서 <리차드 3세>에서 그녀는 엘리자베스 왕비로 등장하여 죽은 남편의 동생인 리차드와 권력을 두고 싸우는 상대가 된다.

그녀는 리차드가 왕권의 찬탈을 위해 죽인것으로 알려진 런던 탑의 어린 왕자들의 어머니이다.

그년느 세 명의 왕족 여인들로 구성된 코러스의 일원이 되어 왕비 마가렛, 늙은 글로스터 공작부인과 함께 런던 탑 밖에서 자신들의 운명을 한탄하는 상징적인 장면에 등장한다.

후에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 자신의 딸 엘리자베스 공주와 결혼하고자 하는 리차드의 음모로부터 딸을 지켜야 하는 처지에 놓이지만 결국 리차드의 감언이설에 넘어가게 된다.

*클레런스 공작 조지 요크(에드먼드 4세 동생)역사 속의 실존 인물(1449

1478)이며, <리차드 3세>에서는 리차드의 바로 손위 형으로 등장하는데 라차드의 맏형 에드먼드 4세가 승하하게 되면 바로 다음 왕위를 잇게 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다.

따라서 왕권의 야망에 젖어 있는 리차드는 맏형이 승하하게 될 경우를 대비하여 'G'로 시작하는 이르을 가진 자가 왕의 후선을 살해할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려 조지라는 이름을 가진 형을 제거할 음모를 꾸민다.

음흉하기 짝이 없는 리차드는 자신의 속내를 감춘 채 이 소문으로 런던 탑에 투옥된 형 클라렌스를 찾아가 모두가 엘리자베스 왕비의 음모 때문이라 하며 왕에게 클라렌스의 구명 운동을 탄원을 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클라렌스는 익사하여 지옥에 끌려가 자신이 살해한 사람들의 유령을 만나는 악몽을 꾸게 된다.

꿈에서 개어난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불안감에 사로잡히지만 여전히 리차드의 약속을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리차드는 자객을 보내 형 클라렌스를 살해한다.

자객들이 그를 칼로 찔러 죽인 후 시체를 포도주통에 쳐박아버림으로써 리차드의 왕권 탈취의 장애물 중 한 사람이 사라지게 된다.

이 작품에서 클라렌스의 역은 상대적으로 미미하지만 리차드의 일련의 왕권 탈취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클라렌스가 꿈을 꾼 후 느끼는 정신적인 고통이나 불안감, 그리고 그가 살해당하는 끔찍한 장면 등은 관객에게 리차드의 악행을 보다 더 소름끼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클라렌스의 살해 장면은 실제 영국 역사의 내용과 다르다.

실제로 클라렌스는 여러 차례 에드워드 4세에 대한 음모에 가담했었고 리차드는 그를 위해 여러번 탄원하기도 했었다.

에드워드 4세는 마침내 클라렌스를 반란죄로 재판에 회부하게 되고 사형을 선고한다.

그러나 사형이 은밀히 진행되어 혹시 리차드가 암살하지 않았나 하는 소문이 그치질 않았다.

바로 이점을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작품에서 리차드의 사악함을 드러내는 장면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클라렌스는 <헨리 6세 3부>에도 등장하는데 여기에서는 클라렌스 공작이라는 칭호를 받기 전 조지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리치먼드 백작 역사적 인물(1457

1509)이며, <헨리 6세 3부>와 <리차드 3세>에 나오는 등장인물이다.

<헨리 6세 3부>에서 리치먼드는 어린 소년으로 등장하는데, 헨리 왕은 어린 헨리 리치먼드가 언젠가는 영국의 왕이 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리차드 3세>에서 리치먼드는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리차드의 대항할 반군을 이끌고 등장하여 자신의 군대에서 전투를 대비시킨다.

리차드와 반대편 평야에 진을 치고 있던 그는 리차드가 혼령들에게 시달림을 당하고 있는 바로 그 시간에 잠을 자고 있다.

보스워스 전투에서 그는 리차드와 단신으로 결투를 하여 그를 죽이게 되는데, 그의 승리는 영국을 리차드의 사악함에서 구출한 사건으로 여겨진다.

그는 스스로 왕이 된 것을 포고하고 튜더 가문에 의하여 영국에 평화의 시대가 온것을 알린다.

역사적으로 리치먼드 백작인 헨리 튜더는 헨리 7세가 되어 1485년부터 1509년까지 영국을 통치했다.

*버킹엄 공작 역사적 인물(1455

1483)이며, <리차드 3세>에서 리차드의 가장 중요한 지지자이지만 왕이 된 후에 리차드가 자신의 고마움을 잊고 약속을 지키지 않자 리차드를 배신했다가 곧 사로잡혀 처형당한다.

버킹엄은 리차드가 왕이 되기 전 그의 대변인 역할을 하며, 특히 런던 시장과 시민들을 설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의 과장되면서도 모호한 대화술은 교활한 정치가의 전형을 보여주며, 특히 헤이스팅스를 함정에 빠뜨리는 음모를 꾸미는 등의 여러 상황에서 라차드의 중요한 조언자 역할을 한다.

 하지만 4막2장에서 리차드가 왕이 된 후에 웨일즈의 왕자 형제를 죽이면서 더욱 권력에 집착하자, 버킹엄은 약간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에 화가 난 리차드는 버킹엄에게 약속했던 백작령을 거절하고, 버킹엄은 자신이 헤이스팅스가 겪었던 운명에 처할 위험 속에 있음을 감지한다.

그는 반군을 일으키지만 곧 체포되고, 5막1장에서 사형되기 직전에 과거의 명세들과 예언들을 회상하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거의 희랍극의 코러스처럼 말한다.

 셰익스피어가 출전으로 삼은 역사적 자료들은 버킹엄이 반란을 일으킨 것에 대해 몇가지 가능한 동기를 제공했지만, 셰익스피어는 분명히 사실이 아닌 것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리차드가 그의 변절 이전에 버킹엄에게 백작령을 주었기 때문이다.

버킹엄의 반란에 대한 분명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는 리치먼드가 리차드를 무너뜨리기를 기대했을 수도 있고, 스스로 왕권에 대한 야심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는 리차드 2세의 막내형제인 글로스터 공작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2017 한예종 지정작품 <리차드 3세>의 장면별 작품 줄거리!
1막1장 - 글로스터 공작인 리차드가 등장하여 장미전쟁에서 요크가문이 승리하면서 모처럼 맞은 태평성대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피력한다.

그는 신체적 결함 때문에 연예나 유흥을 즐기지 못하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면서, 평화의 적이 되어 왕권을 찬탈하기 위한 음모를 획책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는 'G'로 시작되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왕권을 차지할 것이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려서 둘째 형인 클라렌스 공작 조지와 맏형이자 국왕이니 에드워드 4세 사이를 이간질한다.

리차드는 국왕의 명령에 의해서 런던 탑으로 끌려가던 클라렌스를 만나 그의 처지를 동정하는 척하면서, 그가 투옥되는 원인을 엘리자베스 왕비 일당의 공작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1막2장 - 리차드는 앤 부인이 시아버지인 헨리 6세의 상여를 따라가는 것을 목격하고 영구 행렬을 가로막는다.

앤은 리차드를 헨리 6세와 남편인 에드워드를 살해한 장본인으로 지목하면서 그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리차드는 그들을 죽인 이유가 아름다운 그녀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둘러대면서 그녀에게 구애한다.

그녀는 처음에 그의 이런 변명을 경멸하지만, 결국 반신반의하면서도 그에게 설득되고 만다.

1막3장 - 엘레자베스 왕비와 그레이, 도넷, 리버스가 국왕 에드워드의 병세를 걱정하면서, 그가 죽으면 그들을 미워하는 리차드가 에드워드 왕세자의 섭정 역을 맡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리차드가 등장하여 요크 가문에 대한 왕비 집안의 충성심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어서 죽은 헨리 6세의 부인인 마가렛 왕비가 유령처럼 나타나서 현재 권세를 누리고 있는 모든 자들에게 천벌이 내릴 것이라고 저주를 퍼붓는다.

그때까지 서로 다투던 리차드와 왕비 일당이 마가렛의 저주를 받자 합세하여 그녀를 질책한다.

1막4장 - 런던 탑에 갇힌 클라렌스가 간밤에 꾸었던 악몽을 이야기한다.

그는 배를 타고 가다가 글로스터에게 우연히 떠밀려 물에 빠져 죽는 꿈을 꾸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명부에 세계에서 그가 생전에 랑카스터 가를 배신했던 일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꿈을 꾸었다고 말한다.

다시 잠을 자던 그는 자객들의 난입 소리에 놀라서 깨어난다.

그는 자객들에게 암살의 부당성을 역설하지만 죽음을 면하지 못한다.

자객들 중 한 명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도망친다.

2막1장 - 국왕 에드워드는 반목을 일삼던 왕비 일당과 신하들을 화해시키면서 흡족해한다.

그러나 이때 리차드가 나타나서 클라렌스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자 평화의 분위기는 깨어지고 에드워드 왕은 다시 근심에 빠진다.

에드워드 왕은 클라렌스의 처형을 취소하는 명령을 내렸었다고 말하지만, 리차드는 처형 명령이 이미 살해된 뒤 취소 명령이 전달되었다고 대답한다.

2막2장 - 국왕의 모친인 요크 공작부인이 손자들과 이야기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그녀는 손자들에게 자신의 울적한 표정이 클라렌스의 죽음 때문이 아니라 에드워드 왕의 위독한 증세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때 엘리자베스 왕비가 나타나서 에드워드 왕이 서거했다고 전하면서 비탄에 빠진다.

리차드를 위시한 조정의 대신들은 에드워드 왕자를 러들로우에서 런던으로 호위해 올 준비를 한다.

2막3장 - 정국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을 다루고 있는 장면인데, 그들은 어린 왕자가 왕위를 계승하면 왕자의 외가 쪽과 친가 쪽 사이에 권력 투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2막4장 - 엘리자베스 왕비는 리버스와 그레이가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신변에 위협을 느끼면서 어린 아들인 요크와 함께 성소로 피신한다.

할머니인 요크 공작부인도 동행한다.

3막1장 - 에드워드 왕자가 조정 대신들과 런던 시장의 환영을 받으면서 런던에 도착한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와 동생인 요크가 환영하러 나오지 않은 것을 알고 섭섭해 한다.

버킹엄이 추기경에게 성소로 가서 요크를 데리고 오라고 말한다.

에드워드와 요크는 당분간 런던 탑에 머물러 있으라는 리차드의 충고를 마지못해 받아들인다.

케이츠비는 리차드를 국왕으로 추대하는 일에 관한 헤이스팅즈의 견해를 알아보기 위해서 버킹엄과 헤어진다.

리차드는 버킹엄에게 왕위를 차지하도록 도와준 대가로 해리포드의 백작영지를 하사하겠다고 약속한다.

3막2장 - 스탠리 경의 사자가 헤이스팅즈에게 자신의 주인이 리차드에 관한 악몽을 꾸었다고 말을 전한다.

헤이스팅즈는 스탠리의 이런 우려를 묵살한다.

케이츠비가 헤이스팅즈에게 그의 정적이었던 리버스, 그레이, 그리고 보온이 폼프리트에서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그러나 헤이스팅즈는 리차드를 왕으로 추대하자는 케이츠비의 제안을 거절한다.

헤이스팅즈는 버킹엄과 함께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 런던 탑으로 간다.

3막3장 - 래트클리프가 리버스, 그레이, 그리고 보온을 처형장으로 호송해 간다.

3막4장 - 조정 대신들이 런던 탑에서 에드워드 왕자의 대관식을 논의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리차드가 회의장에 늦게 나타나서는 자신에게 저주를 내리기 위해서 엘리자베스 왕비와 더불어 굿을 한 쇼어 부인을 헤이스팅즈가 보호하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비난한다.

그는 케이츠비에게 헤이스팅즈를 처형하라고 명령한다.

3막5장 - 리차드와 버킹엄은 런던 시장을 불러서 헤이스팅즈의 대역죄와 그를 즉결 처분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리차드는 버킹엄에게 런던 시장을 따라 길드홀로 가서 죽은 에드워드 왕이 호색가였다는 소문과 왕자들이 적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라고 지시한다.

3막6장 - 필경사가 등장하여 헤이스팅즈의 처형이 있기 수 시간 전에 이미 그를 제거하기 위한 각본이 세워져 있었다고 말한다.

3막7장 - 시민들은 왕자들이 서자일 수도 있다는 버킹엄의 주장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한편, 리차드는 런던 시장과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명의 주교를 대동하고 독실한 종교인인 척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버킹엄이 그에게 왕위를 수락해달라고 여러 차례 간청하자, 그는 못이긴 척 왕위를 받아들인다.

4막1장 - 엘리자베스 왕비는 런던 탑에 있는 왕자를 만나는 것을 금지 당한다.

그년느 스탠리로부터 리차드의 대관식 소식을 듣고 절망한다.

그녀는 도셋에게 프랑스로 가서 리치먼드와 합세하라고 말한다.

글로스터의 아내인 앤 부인은 왕비가 되어 장차 겪을 불행을 예상한다.

4막2장 - 버킹엄은 에드워드 왕자를 암살해야겠다는 리차드의 말을 듣고, 이에 동의해야 할지 머뭇거리다가 그의 신임을 잃는다.

리차드는 제임스 티렐을 은밀히 불러서 런던 탑에 있는 두 왕자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내린다.

그는 스탠리로부터 도셋이 리치먼드와 합세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케이츠비에게 앤 왕비가 위독하다는 소문을 퍼뜨리라고 명령하면서, 자신의 왕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죽은 에드워드의 딸인 요크의 엘리자베스와의 결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두 왕자의 암살 계획에 찬성하기로 작정한 버킹엄이 나타나서 리차드가 이저에 약속했던 해리포드의 백작영지를 달라고 요구하지만, 리차드는 그의 요구를 못 들은 척 딴 전을 피우다가 결국 거절한다.

버킹엄은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웨일즈로 피신한다.

4막3장 - 티렐이 리차드에게 두 왕자를 암살했다는 보고를 한다.

리차드는 리치먼드가 요크의 엘리자베스와 결혼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자신이 먼저 그녀와의 혼인을 성사시켜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이때, 래트클리프가 나타나서 일리 주교가 리치먼드 편에 합세했으며, 버킹엄은 웨일즈의 지원을 업고 반란을 일으켰다고 보고한다.

4막4장 - 마가렛 왕비가 배후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엘리자베스 왕비와 요크 공작부인이 나타나서 그들에게 닥친 불행을 한탄한다.

마가렛 왕비가 전면에 나서면서 모든 불행의 원인을 리차드에게 돌린다.

요크 공작부인과 엘리자베스 왕비는 전장으로 떠나던 리차드를 만나 그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리차드는 엘리자베스 왕비에게 자신의 청혼을 받아들이도록 그녀의 딸을 설득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녀는 그의 위협과 감언이설에도 불구하고 요청을 거부하다가, 딸의 뜻을 서면으로 알려주겠다고 말한다.

한편, 리차드는 리치먼드가 이끄는 군대가 곧 상륙할 것이라는 보고를 받고, 스탠리의 충성심을 담보하기 위해 그의 아들을 볼모로 잡는다.

전령들이 반란군의 수효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윽고 케이츠비가 버킹엄을 생포했다는 소식과 리치먼드의 군대가 밀포드 헤이븐에 상륙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4막5장 - 스탠리는 리치먼드를 비밀리에 지원하겠다는 내용과 엘리자베스 왕비가 그녀의 딸과 리치먼드의 결혼에 동의했다는 내용이 담긴 것을 리치먼드에게 전한다.

5막1장 - 버킹엄이 처형장으로 끌려가면서, 자신의 운명적인 종말과 마가렛 왕비의 저주를 회상한다.

5막2장 - 리치먼드가 그의 군대를 이끌고 레스터로 진군한다.

5막3장 - 리차드의 군대가 보즈워스 평원에 군막을 설치하고 다음 날의 결전에 대비한다.

5막4장 - 리치먼드가 군막에서 스탠리에게 밀서를 보내고 다음날 전투 계획을 세운다.

5막5장 - 리차드 진영과 리치먼드 진영을 번갈아 보여주는 장면이다.

우선 리차드가 이런저런 지시를 한 후 물러나서 잠든다.

리치먼드 진영에 스탠리가 비밀리에 나타나서 다음 날 전투에서 은밀히 지원할 것을 약속한 후 돌아간다.

리치먼드는 기도를 올린 후 잠든다.

리차드는 악몽을 꾼다.

그가 죽인 에드워드, 헨리 6세, 클라렌스, 리버스, 그레이, 보온, 두 명의 왕자, 헤이스팅즈, 앤 왕비, 그리고 버킹엄의 유령들이 차례로 나타나서 그에게 저주를 내리고, 리치먼드에게는 승리를 기원해 준다.

리차드는 놀라서 식은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난다.

그는 절망한다.

리치먼드는 상쾌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난 간밤에 길몽을 꾸었다고 말한다.

그는 병사들의 결전 의지를 복돋우는 연설을 한다.

5막6장 - 리차드는 작전을 지시하고는 병사들에게 연설한다.

5막7장 - 전투장면이다.

리차드의 말이 죽는다.

그러나 리차드는 후퇴하지 않는다.

5막8장 - 리치먼드는 리차드와의 일대일 대결에서 그를 쓰러뜨린다.

스탠리가 리차드의 왕관을 벗겨 리치먼드에게 씌운다.

리치먼드는 적군의 병사들에게 사면령을 내린다.

그리고 엘리자베스와 결혼함으로써 요크 가문과 랑카스터 가문을 결합시키고 내란을 종식시키겠다고 선언한다.

한예종 지정작품 <리차드 3세> 전문가들의 평가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동시대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리차드는 인물의 성격을 창조해 내는 셰익스피어의 비범한 재능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로 자주 인용되기도 한다.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 리차드는 <오델로>의 이아고와 더불어 음흉한 사탄의 전형으로 간주되었다.

4막4장에서 '엘리자베스 왕비'와 '요크 공작'이 '마가렛 왕비'와 합세하여 '리차드'를 비난하는 대목은 여성 등장인물들이 개인적인 입장을 넘어서 가부장적 문화에 집단적으로 저항하는 것으로 볼수 있다.

또한 신체불구가 반사회적인 욕망에 대한 원인으로 작용하는 비정상인의 정신 병리적 현상을 예시하는 인물이 바로 '리차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리차드의 반사회적인 행위 동기는 또한 왜곡된 성적 욕망의 분출이라는 관점에서 다각도로 조명되어 왔고,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러가지 추론과 학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은 <리차드 3세>가 그만큼 영국 역사상 강한 임팩트를 주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극을 볼링브룩의 리차드 2세 왕위 찬탈로 비롯된 장미 전쟁의 최종편으로 간주하면서 리차드를 신이 영국에 내린 재앙의 대행자로 그리고 리치먼드를 랑카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을 결합한 튜더 왕조의 시조로 간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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