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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년


그럼 볼거리 다 보고 휴양림 들어가는 길에 잠시 들르기만 하면 되는곳이다.

그런데 이분은 누굴까 생소한 이름이다.

 의병대장 이셨군.의병하면 임진왜란이 떠 올려진다 맞는지 확인 들어가야겠다.

출입구 와 전경 안내도 실제 생가터를 예상했지만 넘 의리의리한 대궐을 지어놓아서 의병 이미지를 순간 벗어난느낌 잘 가꾸어져 있다 한자공부 부족이다 초상화가 모셔져있다 너무 정갈한 느낌 동상이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 안전 경사로 시설도 눈에 뛴다 전시실 갑신정변과 대한민국장을 추서--역사공부 대목이다 필체가 ......필체가..... 많은 서체가 전시중이다.

병풍을 휘감았음 직하기도 하고 상소문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관람을 마치고 다시 차로 대야산쪽으로 조금 가다 보면 진짜 생가터 생가터에도 주차장과 안내석  실제 생가터도 기와집이다.

조선후기 시대에도 기와집은 대감이고 초가집은 민초의 집이였을까?기와집만 보면 가풍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잘 보존하고 두고두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유산역사를 따라 여행하는 한권의 페이지를 채우는듯하다.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기에는 사진도 많고 이야깃거리도 많아서 힘이 들어 총 3편으로 만들어 문경 여행을 떠나보자.문경은 아마 우리 애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인가, 2003년 여름휴가를 쌍룡계곡으로 갔을 때 찾아갔던 곳이었다.

그때는 여행의 기록을 남기기보다는 그냥 돌아다니며 인물 사진을 찍기 바빴는데,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 버렸다.

그렇다고 문경을 1박 2일 동안 다 돌아 보 가는 어렵다.

제일 아쉬운 것은 봉암사를 보지 못했다는 일이다.

아뿔싸! 조계종 수도 사찰이라  일 년에 딱 한번 석가탄신일 날 개방한다 하니 5월 14일 다시 한번 문경을 방문하여 돌아보기로 한다.

선유동 계곡은 문경에도 있지만 괴산에 있는 선유동 계곡이 더 유명하다.

하지만 문경의 아기한 계곡은 용추까지 이어져 추운 겨울보다는 실록이 푸른 여름이나 만추의 가을이 더 진한 감동으로 이어지는데, 우연히 차를 돌려 봉암사로 왔다가 너무 좋은 곳을 알아서 꿩보다는 닭이라더니 행운에 감사를 드린다.

   대야산(951m) 아래의 계곡에 자리한 선유 구곡은 문경 팔경의 하나로 괴산의 선유 계곡보다는 깊고 아름다워 괴암 괴석 사이로 맑은 옥계수가 흐르는 계곡이다.

석천정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천천히 둘러보는데 마침 2015년 객주 장사의 신이 한참 촬영 중이었다.

운이 좋게 주연배우인 장혁하고도 반갑게 악수도 하고 아쉽게 스텝의 저지로 사진 촬영은 하지 못해지만 나의 목적은 장혁이 아니기에 선유동 계곡으로 내려간다.

 석천정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도암 이재를 기리기 위해 건립된 건물로 이재가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다.

현재의 건물은 1902년 지역의 유림이 이재 선생을 기리기 위해서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건립하였다.

제8곡 난생뢰정말 맑은 옥계수가 흐르는 선유구곡의 절경이다.

 제7곡 영귀암제6곡 탁청대제5곡 관란담더 내려가고 싶지만 시간이 없어 용추로 올라간다.

용추 계곡은 선유 계곡의 상류로 하트 모양의 폭포가 유명한 계곡이다.

 추운 겨울의 주말이라 인적이 없어서 그런지 너무나 조용한 계곡에 차를 세우니 바로 눈앞에 멋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무당 소라는 깊고 넓은 웅덩이에 이름이 있었다.

물을 긷던 새댁이 3m의 소에 빠져 죽자 그 후 그를 위해 굿을 하던 무당도 빠져 죽어 이름이 무당소라 하는 곳이다.

  역시나 선유보다는 상류인 이곳이 더 아기한 멋이 있다.

용소 바위는 두 마리의 용이 이곳에 머물다 하늘로 승천했는데, 올라가다 발톱 자국을 남겨 이름이 붙혀졌다.

용추 폭포 바로 아래의 이름 없는 작은 폭포는 무당소보다는 못하지만 또 하나의 절경이다.

 용추계곡의 주인인 용추의 전경2단으로 이어지는 폭포는 두 마리의 용이 하늘로 승천할 때 용트림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 용트림이 하트를 만들어 이곳을 유명하게 만들었다.

 용추폭포는 바위를 깎은 자연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대한제국 의병장 운강 이강년은 1858년 (철종 9)에 이곳에서 태어나섰다.

1880년 무과에 급제하여 정충 장군 행용 양위 부사 부사관으로 계시다가 갑신정변을 계기로 고향으로 내려와 학문에 열중하셨다.

장군이 의병을 일으킨 것은 1896년으로 문경에서 거병하여 제천, 단양, 충주, 수안보에서 많은 전승을 거두며 이름을 떨쳤다.

1894년 호남에서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나자 갑오경장으로 개혁 운동을 일으키고자 첫 번째로 거병을 하셨다.

 이후 고종의 강제 퇴위와 더불어 군대가 해산당하자 다시 재기 항전하여 문경 갈평리, 영춘 백자리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영남, 충청, 호남에서 40여 차례의 전투에 참여를 하셨다.

하지만 1908년 제천 작성 전투에서 적의 총탄에 부상을 입어 일본군에 포로가되어 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이 되어, 그 후 3개월 후 교수형으로 아쉽게 순국하셨다.

 우리나라 이천만 민족이 장차 나와 같은 죽음을 당할것이니 이것이 제일 원통하다 라는 말을 마지막에 남기셨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생가는 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기다리다 지쳐 차를 기념관으로 돌린다.

생가지에서 500m만  내려가면 기념관이 자리한다.

기념관은 유물전시관, 사당, 관리사 등으로 이루어져, 장군의 의병 활동과 관련 자료, 교지 등을 전시하고 있다.

 유물전시관 전경장군의 위상을 느끼는 동상유물 전시관 의 내부 모습영춘 백자리 전투를 재현한 모형장군은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이 추서되었다.

장군의 아들인 승재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결사대를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하시다 돌아가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멀리 화양산(999m)과 암봉인 구왕봉(898m)에 봉암사는 자리하지만 들어가지 못하고 멀리서 사진만 찍고 돌아선다.

지금은 열차가 달리지 않아 폐쇄된 가은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지금은 건물만 남아 있으며 지금은 그 옆에 철로 자전거가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견훤 유적지는 후삼국 시대를 열은 견훤의 출생지로 설화가 전하는 곳이다.

상주를 거점으로 하는 지배세력인 아자개의 맏아들로 867년 태어나 성은 이씨이나 15세에 스스로 견 씨로 바꾸었는데 후백제의 시조로 무진주에서 889년 기병하여 후백제를 건립하였다.

유적지에는 숭위전과 금하 굴이라는 굴이 하나 있다.

[이강년] 란 무엇인가?


이 굴은 견훤이 탄생하게 된 설화가 다음과 같이 전한다.

마을의 부유한 집안의 처녀가 있었는데 밤마다 이목이 수련한 초립동이 나타나 처녀의 방으로 들어가 동침을 하고는 새벽이면 홀연히 사라졌다.

이리하여 수개월 동안 이루어진 사랑으로 처녀는 잉태를 하게 되고 이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니 부모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알지 못하는 총각을 찾지 위해서 옷자락에 바늘로 실을 꿰매어 놓고 기다리니 초립동은 새벽에 다시 사라지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실을 찾아 따라가니 금하굴이 나타나고 굴 속에는 커다란 지렁이가 실을 동여매고 있었으며 그 후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태어난 사람이 견훤이며 그날 금하 굴에서는 풍악이 울렸다고 전한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불길하여 굴을 메우고 말았는데 풍악 소리가 끈 긴 마을에는 흉년이 들고 불상사가 계속 생기어 다시 굴을 원상복구하였지만 다시는 풍악 소리는 들리지 않고 마을의 불행은 사라졌다.

그럼 아자재는 새아버지인가?  그런데 맏아들이면.....    굴의 내부는 아래로 나있으며 좁은 구멍이라 들어갈 수가 없다.

하지만 굉장히 궁금하다.

금하굴 옆에는 견훤과는 관계가 없는 순천 김 씨 의관인 하은 태영공이 선군에게 지어올린 효정인 금하정이 자리한다.

1919년 중건하고 1929년 다시 중건하여 금하정이라 하였다.

상세 정보  선유동 계곡 :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  ☏ 054) 550 - 6392                  용추 계곡 :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 ☏ 054) 550 - 8543                 운강 이강년 생가 :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                    의병대장 이강년 기념관 :  문경시 가은읍 대야로 1683  ☏ 054) 550 - 6415  입장권 및 주차는 무료                 가은역 :  문경시 가은읍 대야로 2441                 견훤 유적지 :  문경시 가은읍 갈전리 산 170 - 1지도보기200m� NAVER Corp.??? /OpenStreetMap
?? ???
?� NAVER Corp. /OpenStreetMap문경선유동계곡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상세보기지도보기? 운강 이강년 기념관은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에 자리한다.

의병대장 운강 이강년(1858

1908) 선생의 항일 투쟁의 숭고한 위업을 기념하기 위해총 사업비 37억 7900만 원을 들여 2002년에 설립됐다.

? 기념관은 전시관, 사당, 관리사 등으로 이뤄졌으며, 전시관 내부에는 의병활동 연보과 교지, 훈장 및 포장, 재산 전투 디오라마, 운강 의병부대 활동상 등이 전시돼 있다.

? 또한 <속오대작도>, <운강선생문집>, 운강 선생 무과급제 교지 등 유품을 비롯해 조총, 의병창, 화약통, 활, 화살과 화살통, 관복, 문서통 등을 볼 수 있으며. 사당에는 이강년 선생의 영정이 봉안돼 있다.

? 정문앞에 들어서면 전면에 잘 정비된 잔디밭과 길을 따라 운강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다.

? 기념관에 들어서면 운강 이강년선생의 연혁을 알려주는 안내글이 먼저 눈에 뛴다.

 ? 운강 이강년선생에 대해 상세히 알아 보자.선생은 1880년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나 1884년 갑신정변후 물러나 고향에 은거하였다.

 향리에서 은거하며 학문에만 열중하던 운강 선생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동학군에 투신하였다.

? 선생의 최초 거병은 1896년 문경에서 시작 되었으며제천,단양,수안보,봉화,원주등지를 누비며 많은 전승을 거두었다.

이후 고종의 강제 퇴위와 정미칠조약으로 군대가 해산 당하자 결연히 재기 항전하여문경 갈평리,영춘 백자리등에서 대승을 거두웠으며 충청,강원,경북 3도에서 약 40회 이상의전투를 치러 내었다.

? 선생은 13년간 오로지 애국과 구국의 신념으로 의병활동을 해 왔으나애석하게도 6월 4일 청풍 까치성 전투에서 장맛비로 인해 화승총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퇴로가 막혀 고전하던 끝에 복사뼈에 탄환을 맞아 적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 선생은 그 동안 온갖 고초를 무릅쓰고 생사를 같이하던 휘하 장병들의 시신을 돌아 보면서 마을사람들에게 “내가 잡힌 몸이 되었으니 별 수 없다.

[이강년] 근본적 원인은 ?

전사한 사람들을 잘 매장하여 주기 바란다”고 부탁하고 충주로 압송되었다.

? 군수가 음식을 대접하고자 하였으나 적의 음식이 어찌 목에 넘어가겠느냐고 물리쳤으며, 서울의 재판정에서도 ‘국가의 세금을 빼앗는 것이 의병인가’라는 재판장의 질문에 “임금의 마음을 받들어 국가의 어려운 일에 앞장서서 나라를 위하여 공금을 사용한 것이 역적이냐?  원수인 적의 세력에 의지하여 임금을 협박하여 적을 섬기면서 국가의 녹을 먹는 것이 역적이냐? 의병을 일으켜 왜놈들을 섬멸하고 5적, 7적을 죽여 국가에 보답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려 한 것이다”고 맹렬히 꾸짖었다 한다.

? 선생은 결국 교수형을 선고 받고 1908년 10월 13일 51세 일생을 마쳤다.

선생이 피체 당시 읊었다는 우국시를 읽으니 나도 모르게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울컥




? 선생은 그 혹독한 의병 할동중에도[운강문집]을 집필 하였고 그 제자와 의병시절의 부하들에 의하여 엮어진 [운강선생 창의일록]이 있다.

? 운강 이강년선생이 받은 훈장.왠지 선생의 활약과 애국애족 구국의 정신등에 비하면  훈장들이 무척이나 초라해 보인다.

??? 그렇게 운강 이강년선생의 기념관을 둘러 본후 바깥으로 나오니기념관 옆에는 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인 의충사가 보인다.

 ? ? 의충사로 들어서기 전 외문인 창의문.? 운강 이강년선생의 영정을 모신 의충사.? 당신의 후손이라는게 자랑스럽습니다.

독립운동가,의병들의 사우나 기념관 한번 방문하지도 않으면서 매국노,친일파 논하지 않겠읍니다.

?어느 지역을 다니더라도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을 찾아향이라도 꼭 하나 피우고 명복을 빌겠읍니다.

?다짐 해 본다.

? ??운강 이강년선생의 생가.아쉽게도 문이 굳게 잠겨져 있다.

선생의 생가는 기년관에서 약 500미터정도 떨어진 위치에 있다.

??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기에는 사진도 많고 이야깃거리도 많아서 힘이 들어 총 3편으로 만들어 문경 여행을 떠나보자.문경은 아마 우리 애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인가, 2003년 여름휴가를 쌍룡계곡으로 갔을 때 찾아갔던 곳이었다.

그때는 여행의 기록을 남기기보다는 그냥 돌아다니며 인물 사진을 찍기 바빴는데,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 버렸다.

그렇다고 문경을 1박 2일 동안 다 돌아 보 가는 어렵다.

제일 아쉬운 것은 봉암사를 보지 못했다는 일이다.

아뿔싸! 조계종 수도 사찰이라  일 년에 딱 한번 석가탄신일 날 개방한다 하니 5월 14일 다시 한번 문경을 방문하여 돌아보기로 한다.

선유동 계곡은 문경에도 있지만 괴산에 있는 선유동 계곡이 더 유명하다.

하지만 문경의 아기한 계곡은 용추까지 이어져 추운 겨울보다는 실록이 푸른 여름이나 만추의 가을이 더 진한 감동으로 이어지는데, 우연히 차를 돌려 봉암사로 왔다가 너무 좋은 곳을 알아서 꿩보다는 닭이라더니 행운에 감사를 드린다.

   대야산(951m) 아래의 계곡에 자리한 선유 구곡은 문경 팔경의 하나로 괴산의 선유 계곡보다는 깊고 아름다워 괴암 괴석 사이로 맑은 옥계수가 흐르는 계곡이다.

석천정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천천히 둘러보는데 마침 2015년 객주 장사의 신이 한참 촬영 중이었다.

운이 좋게 주연배우인 장혁하고도 반갑게 악수도 하고 아쉽게 스텝의 저지로 사진 촬영은 하지 못해지만 나의 목적은 장혁이 아니기에 선유동 계곡으로 내려간다.

 석천정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도암 이재를 기리기 위해 건립된 건물로 이재가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다.

현재의 건물은 1902년 지역의 유림이 이재 선생을 기리기 위해서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건립하였다.

제8곡 난생뢰정말 맑은 옥계수가 흐르는 선유구곡의 절경이다.

 제7곡 영귀암제6곡 탁청대제5곡 관란담더 내려가고 싶지만 시간이 없어 용추로 올라간다.

용추 계곡은 선유 계곡의 상류로 하트 모양의 폭포가 유명한 계곡이다.

 추운 겨울의 주말이라 인적이 없어서 그런지 너무나 조용한 계곡에 차를 세우니 바로 눈앞에 멋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무당 소라는 깊고 넓은 웅덩이에 이름이 있었다.

물을 긷던 새댁이 3m의 소에 빠져 죽자 그 후 그를 위해 굿을 하던 무당도 빠져 죽어 이름이 무당소라 하는 곳이다.

  역시나 선유보다는 상류인 이곳이 더 아기한 멋이 있다.

용소 바위는 두 마리의 용이 이곳에 머물다 하늘로 승천했는데, 올라가다 발톱 자국을 남겨 이름이 붙혀졌다.

용추 폭포 바로 아래의 이름 없는 작은 폭포는 무당소보다는 못하지만 또 하나의 절경이다.

 용추계곡의 주인인 용추의 전경2단으로 이어지는 폭포는 두 마리의 용이 하늘로 승천할 때 용트림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 용트림이 하트를 만들어 이곳을 유명하게 만들었다.

 용추폭포는 바위를 깎은 자연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대한제국 의병장 운강 이강년은 1858년 (철종 9)에 이곳에서 태어나섰다.

1880년 무과에 급제하여 정충 장군 행용 양위 부사 부사관으로 계시다가 갑신정변을 계기로 고향으로 내려와 학문에 열중하셨다.

장군이 의병을 일으킨 것은 1896년으로 문경에서 거병하여 제천, 단양, 충주, 수안보에서 많은 전승을 거두며 이름을 떨쳤다.

1894년 호남에서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나자 갑오경장으로 개혁 운동을 일으키고자 첫 번째로 거병을 하셨다.

 이후 고종의 강제 퇴위와 더불어 군대가 해산당하자 다시 재기 항전하여 문경 갈평리, 영춘 백자리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영남, 충청, 호남에서 40여 차례의 전투에 참여를 하셨다.

하지만 1908년 제천 작성 전투에서 적의 총탄에 부상을 입어 일본군에 포로가되어 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이 되어, 그 후 3개월 후 교수형으로 아쉽게 순국하셨다.

 우리나라 이천만 민족이 장차 나와 같은 죽음을 당할것이니 이것이 제일 원통하다 라는 말을 마지막에 남기셨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생가는 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기다리다 지쳐 차를 기념관으로 돌린다.

생가지에서 500m만  내려가면 기념관이 자리한다.

기념관은 유물전시관, 사당, 관리사 등으로 이루어져, 장군의 의병 활동과 관련 자료, 교지 등을 전시하고 있다.

 유물전시관 전경장군의 위상을 느끼는 동상유물 전시관 의 내부 모습영춘 백자리 전투를 재현한 모형장군은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이 추서되었다.

장군의 아들인 승재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결사대를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하시다 돌아가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멀리 화양산(999m)과 암봉인 구왕봉(898m)에 봉암사는 자리하지만 들어가지 못하고 멀리서 사진만 찍고 돌아선다.

지금은 열차가 달리지 않아 폐쇄된 가은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지금은 건물만 남아 있으며 지금은 그 옆에 철로 자전거가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견훤 유적지는 후삼국 시대를 열은 견훤의 출생지로 설화가 전하는 곳이다.

상주를 거점으로 하는 지배세력인 아자개의 맏아들로 867년 태어나 성은 이씨이나 15세에 스스로 견 씨로 바꾸었는데 후백제의 시조로 무진주에서 889년 기병하여 후백제를 건립하였다.

유적지에는 숭위전과 금하 굴이라는 굴이 하나 있다.

이 굴은 견훤이 탄생하게 된 설화가 다음과 같이 전한다.

마을의 부유한 집안의 처녀가 있었는데 밤마다 이목이 수련한 초립동이 나타나 처녀의 방으로 들어가 동침을 하고는 새벽이면 홀연히 사라졌다.

이리하여 수개월 동안 이루어진 사랑으로 처녀는 잉태를 하게 되고 이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니 부모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알지 못하는 총각을 찾지 위해서 옷자락에 바늘로 실을 꿰매어 놓고 기다리니 초립동은 새벽에 다시 사라지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실을 찾아 따라가니 금하굴이 나타나고 굴 속에는 커다란 지렁이가 실을 동여매고 있었으며 그 후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태어난 사람이 견훤이며 그날 금하 굴에서는 풍악이 울렸다고 전한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불길하여 굴을 메우고 말았는데 풍악 소리가 끈 긴 마을에는 흉년이 들고 불상사가 계속 생기어 다시 굴을 원상복구하였지만 다시는 풍악 소리는 들리지 않고 마을의 불행은 사라졌다.

그럼 아자재는 새아버지인가?  그런데 맏아들이면.....    굴의 내부는 아래로 나있으며 좁은 구멍이라 들어갈 수가 없다.

하지만 굉장히 궁금하다.

금하굴 옆에는 견훤과는 관계가 없는 순천 김 씨 의관인 하은 태영공이 선군에게 지어올린 효정인 금하정이 자리한다.

1919년 중건하고 1929년 다시 중건하여 금하정이라 하였다.

상세 정보  선유동 계곡 :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  ☏ 054) 550 - 6392                  용추 계곡 :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 ☏ 054) 550 - 8543                 운강 이강년 생가 :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                    의병대장 이강년 기념관 :  문경시 가은읍 대야로 1683  ☏ 054) 550 - 6415  입장권 및 주차는 무료                 가은역 :  문경시 가은읍 대야로 2441                 견훤 유적지 :  문경시 가은읍 갈전리 산 170 - 1지도보기200m� NAVER Corp.??? /OpenStreet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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