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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 독도는 단 몇 개의 바윗덩어리가 아니라 우리 겨래의 영예의 닺이다.

이를 잃고서야 어찌 독립을 지킬 수 있는가. 일본이 독도 탈취를 꾀하는 것은 한국에 대한 재침략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보낸 외교 문서(1954. 10. 28)*독도가 '우리 겨례의 영예의 닺'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독도는 울릉도에 딸린 섬이다대한 제국,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선포하다일본의 조선전도에 그려진 울릉도(죽도)와 독도(송도)<한·일 양국 문서에 나타난 독도>확대하여 보기*출처 : ‘고등학교 한국사’ 지학사, 2013 교육부 검정, 268

269쪽.*저작권법 제35조3(저작물의 공정한 이용) 근거 저작물을 인용하다.

*옮긴이 : 학생들의 지식수준을 향상시키는 ‘공부방: 역사 사회 지리’ 임판길 이 봄, 지금 독도는 어떻게 봄을 맞고 있을까요?  독도는 모두 들어보셨겠죠? 일본의 지속적인 도발로 모두가 한번쯤은 들어봤으리라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독도가 왜 우리나라의 영토인지는 알고 계신가요? 외교부는 전 세계에 독도가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임을 널리 알리려 다양한 노력들을 하고 있는데요, 이번 기사에서는 주로 그 활동들에 대하여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독도가 우리 영토인 근거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종실록, 지리지, 동국문헌비고 등 우리나라의 역사서에서만 뿐만 아니라 일본의 역사서에서도 독도는 우리 영토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특히, 광복 후 1946년 연합국최고사령관각서 (SCAPIN) 제677호, 1033호에서는 제 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독도는 일본 영토가 아닌, 우리나라의 영토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는, 일본은 한국의 울릉도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독도라고 명확히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 강화조약은 한국의 3천개가 넘는 섬들을 모두 포함한 것이므로 독도는 한국 땅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분명히 억측입니다.

 <독도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 (출처: 외교부 독도)>  이제 정부의 독도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알아보겠습니다.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입니다.

’가 독도 영유권 분쟁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입니다.

 뉴스를 통해서 많이 들어보셨을 텐데, 그 중 우리나라는 독도에 대해 어떻게 영토 주권을 행사하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령' 바위 (출처: 외교부 독도)> 현재 우리나라는 독도에 대해 입법, 행정, 사법적으로 확고한 영토주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경찰, 해군과 공군이 독도를 경비, 수호하고 있고, 독도에 우체국 등 사회 기반 시설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주민들 50명(독도경비대 포함) 가량이 거주하고 있고, 독도 관련 다양한 법령들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독도를 알리고, 지키기 위해 어떤 일들을 하고 있을까요?  정부는 독도 담당 사이트를 따로 운영하고 있으며, 이 사이트는 한국어, 영어, 아랍어, 중국어, 독일어, 불어 등 총 12개의 언어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또한, 독도의 역사, 자연 환경, 독도 관련 법령 등을 쉽게 설명하는 독도 동영상인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영토, 독도' 또한 12개 국어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독도 사이트 주소 : http://dokdo.mofa.go.kr/kor/index.jsp 이 뿐만 아니라, 독도 로고를 생생한 캘리그래피를 이용하여 제작하여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알리고 있습니다.

     <독도 캘리그래피 (출처: 외교부 독도)> 또한, 정부의 기본입장, 독도가 우리 영토인 지리적, 역사적 근거, 독도에 관한 일문일답 등을 담은 팸플릿을 제작하여 PDF 파일로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서비스도 동영상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언어로 제공되어 전 세계에 독도를 알리는데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정부는 일본의 영토 분쟁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하고 있는데요, 외교부 독도 사이트에는 '정부 발표문'이라는 카테고리에 이러한 영토 분쟁에 대한 우리나라의 발표문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가장 최근 발표한 발표문으로, 정부와 외교부는 일본 시네마현의 '다케시마의 날'에 중앙고위급 인사들이 참석한 것에 대한 재발방지 요구를 하는 등 단호하지만, 효과적인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독도 생태계 (출처: 외교부 독도)> 이제 앞서 언급했던, 독도에서 시행되고 있는 법령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독도는 문화재보호법 제 25조에 따라 천연기념물이자 '독도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있습니다.

또한, 독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독도의 지속가능한 이용에 관한 법률 제 1조에 따라 독도 주변 생태계 보전, 수산 자원 이용, 해양 과학 연구 등을 균형 있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독도 생태계 (출처: 외교부 독도)> 그렇다면, 천연기념물이라는 독도의 자연 생태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볼까요? 무엇보다도 독도는 철새의 이동경로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섬 생물지리학 (island biogeography)적으로 중요합니다.

60종이 넘는 식물, 130종이 넘는 곤충, 160종이 넘는 조류 그리고 엄청나게 다양한 해양 생물들이 독도에 서식합니다.

이렇기에, 독도는 단순히 우리 영토가 아닌, 우리가 보존하고 지켜야 하는 영토입니다.

      지금까지 독도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본 독도. 과연 모파랑 여러분은 독도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계셨나요? 이 기사가 독도가 왜 우리나라의 영토인지, 우리가 과연 어떻게 독도를 지켜낼 수 있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금까지 Friends of MOFA 8기 권순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신라의 이사부 장군이 우산국을 정벌하면서 그 부속 섬인 독도가 ‘우산도’로 처음 불리게 된 것이죠. ▲ 신라 이사부 장군의 초상화 (출처:에듀넷) 이후 조선 시대에 이르러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뜻의 ‘삼봉도’로 불리게 되었고, 1794년에 이르러서는 가지라는 뜻의 물개과 동물 강치가 살고 있는 뜻의 ‘가지도’로 명명되기도 했습니다.

1900년에 대한제국이 ‘칙령 41호’로 독도를 돌섬의 한자 표기인 ‘석도’라는 이름으로 부르다가, 1906년에 이르러 ‘독도’라는 명칭으로 바뀌었어요.  ▲ 독도 지명의 변천 과정 (출처:에듀넷)■ 독도의 일대기 독도가 문헌에 처음 등장하게 된 것은 삼국사기입니다.

신라 지증왕 13년(512년)에 이사부가 울릉도를 중심으로 한 우산국을 정벌하면서 독도가 우산도라 불리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 한 눈에 보는 독도의 역사 (출처:에듀넷)신라에 복속된 우산국은 918년 고려 건국 이후 고려의 지배를 받았어요. 고려 조정에서는 울릉도에 주민을 이주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풍랑으로 인한 사망자가 많이 생 중앙 정부에서 정기적으로 관리를 파견하여 섬을 관리하곤 했어요.조선시대에는 울릉도뿐만 아니라 우산도인 독도에 대해서도 조사한 기록이 남아있으며 특히 세종실록지리지(1454년)와 신증동국여지승람(1531년)에 울릉도와 우산도에 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 세종실록지리지 (출처:외교부)                                        ▲ 신증동국여지승람 (출처:외교부) 대한제국 시기에 울릉도에는 개척민이 늘어났고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일본인도 많이 들어오게 되었어요. 이에 대한제국 정부는 조사단을 파견하고 1900년에 독도를 울릉도가 관할하도록 하는 칙령 제41호를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1905년 러일 전쟁 중 일본은 러시아측 함대의 동향을 살피기 좋은 울릉도와 독도의 군사적, 전략적 가치를 인식하고 망루를 설치했어요. 그 이후 독도를 편입할 기회를 살피고 있다가 ‘독도가 무주지(주인 없는 땅)’이라고 주장하며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로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로 명명하여 시마네현에 편입하기에 이르렀어요. 이 과정에서 일본은 대한제국에 어떠한 협의나 사전 통고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한 후 오늘날까지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1906년 독도가 일본에 불법 편입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대한제국은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해서 일본에 항의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하자 독도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과 함께 반환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에서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의해 침탈되었던 독도와 한반도에 식민지 영토권을 주장하는 것임과 우리나라의 완전한 독립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독도는 신라시대 이후 지금까지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독도를 소유해왔으며 앞으로도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중요한 자산입니다.

  ■ 독도를 지킨 역사 속 인물들독도하면 신라의 이사부 장군처럼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조선시대 사람 안용복입니다.

안용복은 조선 후기(1693년) 어부로 울릉도에서 고기잡이 하던 중 이 곳을 침입한 일본 어민을 꾸짖다가 일본으로 잡혀가게 되었어요. 안용복은 일본에서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일본 관리들 앞에서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강조하며 일본인들의 출어를 금지하여 줄 것을 요구하였고 ‘울릉도는 지리적으로 조선과 더 가깝기 때문에 일본의 영토가 아니다’라는 일본측의 문서를 받고 돌아오게 되죠.그러나 1696년에도 다시 울릉도와 독도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일본 어부들이 활개를 치자 일본 오키섬으로 쳐들어가 그 곳 섬의 주인으로부터 다시는 울릉도와 독도에 침범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내는 성과를 거두었답니다.

안용복은 일본으로부터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영토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해둔 큰 역할을 한 분으로 현재는 그 뜻을 기리고자 안용복 장군으로 추대되고 있습니다.

1945년, 일제로부터 갓 해방된 우리나라는 독도를 안전하게 지키고 보전하는 일에 신경 쓸 형편이 못 되었습니다.

패전국인 일본은 무장순시선 등을 이용해 계속해서 독도를 침범해 왔으며 심지어 독도에 일본 영토 푯말을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울릉도 주민들은 일본인의 불법 침범에 불안함을 느끼고 어업활동에도 막대한 지장을 입고 있었습니다.

이에 1953년 울릉도에 거주하던 홍순칠은 울릉도에 살고 있던 6·25참전 용사 30명과 함께 독도를 수비하는 독도의용수비대를 창설하였습니다.

처음 의용수비대는 자비로 식량과 무기를 구입할 정도로 형편이 열악하였지만 독도를 지키고자하는 투철한 애국심으로 극복해 나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이 독도를 지키고부터 우리 어민들은 안심하고 어로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까지 독도가 우리의 영토로 될 수 있었던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홍순칠 대장(출처: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     ▲ 용맹한 독도의용수비대원들(출처: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 [자료출처: 에듀넷]   이 봄, 지금 독도는 어떻게 봄을 맞고 있을까요?  독도는 모두 들어보셨겠죠? 일본의 지속적인 도발로 모두가 한번쯤은 들어봤으리라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독도가 왜 우리나라의 영토인지는 알고 계신가요? 외교부는 전 세계에 독도가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임을 널리 알리려 다양한 노력들을 하고 있는데요, 이번 기사에서는 주로 그 활동들에 대하여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독도가 우리 영토인 근거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종실록, 지리지, 동국문헌비고 등 우리나라의 역사서에서만 뿐만 아니라 일본의 역사서에서도 독도는 우리 영토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특히, 광복 후 1946년 연합국최고사령관각서 (SCAPIN) 제677호, 1033호에서는 제 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독도는 일본 영토가 아닌, 우리나라의 영토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는, 일본은 한국의 울릉도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독도라고 명확히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 강화조약은 한국의 3천개가 넘는 섬들을 모두 포함한 것이므로 독도는 한국 땅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분명히 억측입니다.

 <독도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 (출처: 외교부 독도)>  이제 정부의 독도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알아보겠습니다.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입니다.

’가 독도 영유권 분쟁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입니다.

 뉴스를 통해서 많이 들어보셨을 텐데, 그 중 우리나라는 독도에 대해 어떻게 영토 주권을 행사하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령' 바위 (출처: 외교부 독도)> 현재 우리나라는 독도에 대해 입법, 행정, 사법적으로 확고한 영토주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경찰, 해군과 공군이 독도를 경비, 수호하고 있고, 독도에 우체국 등 사회 기반 시설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주민들 50명(독도경비대 포함) 가량이 거주하고 있고, 독도 관련 다양한 법령들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독도를 알리고, 지키기 위해 어떤 일들을 하고 있을까요?  정부는 독도 담당 사이트를 따로 운영하고 있으며, 이 사이트는 한국어, 영어, 아랍어, 중국어, 독일어, 불어 등 총 12개의 언어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또한, 독도의 역사, 자연 환경, 독도 관련 법령 등을 쉽게 설명하는 독도 동영상인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영토, 독도' 또한 12개 국어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독도 사이트 주소 : http://dokdo.mofa.go.kr/kor/index.jsp 이 뿐만 아니라, 독도 로고를 생생한 캘리그래피를 이용하여 제작하여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알리고 있습니다.

     <독도 캘리그래피 (출처: 외교부 독도)> 또한, 정부의 기본입장, 독도가 우리 영토인 지리적, 역사적 근거, 독도에 관한 일문일답 등을 담은 팸플릿을 제작하여 PDF 파일로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독도] 완전 대박


이 서비스도 동영상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언어로 제공되어 전 세계에 독도를 알리는데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정부는 일본의 영토 분쟁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하고 있는데요, 외교부 독도 사이트에는 '정부 발표문'이라는 카테고리에 이러한 영토 분쟁에 대한 우리나라의 발표문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가장 최근 발표한 발표문으로, 정부와 외교부는 일본 시네마현의 '다케시마의 날'에 중앙고위급 인사들이 참석한 것에 대한 재발방지 요구를 하는 등 단호하지만, 효과적인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독도 생태계 (출처: 외교부 독도)> 이제 앞서 언급했던, 독도에서 시행되고 있는 법령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독도는 문화재보호법 제 25조에 따라 천연기념물이자 '독도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있습니다.

또한, 독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독도의 지속가능한 이용에 관한 법률 제 1조에 따라 독도 주변 생태계 보전, 수산 자원 이용, 해양 과학 연구 등을 균형 있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독도 생태계 (출처: 외교부 독도)> 그렇다면, 천연기념물이라는 독도의 자연 생태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볼까요? 무엇보다도 독도는 철새의 이동경로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섬 생물지리학 (island biogeography)적으로 중요합니다.

60종이 넘는 식물, 130종이 넘는 곤충, 160종이 넘는 조류 그리고 엄청나게 다양한 해양 생물들이 독도에 서식합니다.

이렇기에, 독도는 단순히 우리 영토가 아닌, 우리가 보존하고 지켜야 하는 영토입니다.

      지금까지 독도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본 독도. 과연 모파랑 여러분은 독도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계셨나요? 이 기사가 독도가 왜 우리나라의 영토인지, 우리가 과연 어떻게 독도를 지켜낼 수 있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금까지 Friends of MOFA 8기 권순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세 번의 울릉도 여행 끝에 처음으로 독도 땅을 밟아보게 되었는데요 쉽게 밟아 볼 수 없는 독도이기에 여행 중 그 어떤 멋진 풍경을 만나 보았던 것보다 큰 감동을 받아 볼 수 있었습니다.

울릉도 사동항에서 배를 타고 약 1시간 10분쯤 달리다 배 창밖을 보니 대한민국 국민의 자존심 독도가 보였습니다.

울렁대는 가슴 안고 찾은 울릉도에서 다시 울렁대는 가슴 안고 찾아야 하는 독도는 기후조건을 감안하여 찾아야 하는데요 비가 오거나 기후가 나쁘면 출항하지 못하며날씨가 좋아 배멀미를 감안하고 독도로 향한다고 해서 입도가 100% 되는 것이 아니고너울성 파도 등으로 입도율은 63% 정도에 그친답니다.

독도 접안부두의 기상악화로 입도를 하지 못하면 배를 타고 선회 관광만 가능하니 배멀미를 하는 분들이라면 3시간 이상을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하지요 이런 악 조건 속에서도 여행자들은 왜 독도를 찾을까요?답은 독도이기 때문입니다.

   울릉도 여행을 하는 분들이라면 대부분 독도까지 둘러보는 편인데요 입도에 성공하자 언제 배멀미를 했냐는 듯 한 기쁜 표정으로 독도 경비대의 경례를 받으며 배에서 내린 관광객들은 저마다 카메라, 휴대폰 등으로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독도의 동도에는 정상에 자리한 독도 경비대로 보급물자를 나르는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으며 정상까지 계단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케이블카가 고장 등으로 운행을 하지 못하면 경비대원들이보급물자를 들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한답니다.

관광객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20분인데요 정상으로는 오를 수 없으며 주로 선착장에서 경비대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거나 독도의 풍경을 감상하는데 시간을 보낸답니다.

  독도 입도가 힘든 만큼 입도를 하게 되면 전국 각지에서 독도를 찾은 관광객들이 독도 경비대에 전해줄 위문품들을 전달해 준답니다.

나라를 지키는 장병들이니 잘 먹어야겠지만 아무래도 독도에 있다 보니 먹거리가 부족한 독도 경비대입니다.

 독도를 가실 분들이라면 우리 아들 또는 오빠, 형, 동생이라 생각하고 독도 경비대에게 위문품 전달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경비대가 가장 반기는 것은 아무래도 울릉도에서는 구하기 힘들고 가격이 비싼 과일이라고 합니다.

독도의 전체 면적은 187,544㎡이며 동도와 서도로 나눠지는데  사진은 서도(88,740㎡)로 이곳에는 독도관리사무소 직원과 독도에 거주지를 두고 살고 계신 김성도, 김신열 부부가 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동쪽 땅끝 독도사람들이 몰려 줄을 서가며 사진을 찍는 독도의 포토존은 1997년 11월 7일 접안시설을 준공한 기념으로 만들어진  대민한국 동쪽 땅끝이라는 표지석입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글씨와 태극문양이 새겨진 표지석이 여행자의 시선에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인증해주는 인증서처럼 보였네요독도를 울릉도의 아우 섬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독도는 약 460만 년

250만 년 전 해저 화산 폭발로 용암이 굳어져 만들어진 화산섬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이는 180

1만 년 전 형성된 울릉도 보다 빠르니 사실 독도가 형인 셈입니다.

 지금은 동도(東島)와 서도(西島)가 서로 떨어져 있지만 원래는 하나의 섬이었다고 하는데요  긴 시간에 걸친 파도와 바람의 공격에 의해 깎이면서 2개의 큰섬과 주변으로 89개의 바위섬 으로 나눠지게 되었답니다.

  입도 후 20분이란 시간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빠르게 지나간답니다.

관광객들은 어렵게 찾은 독도이니 만큼 더 오래 보려고 빨리 내리고 늦게 타는 방법을 저마다 생각하고 있기에 혼잡하고 조금은 위험하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독도 강치비독도에는 한때 바다사자(강치)가 수만 마리 살았다고 하는데요 영화 대호에서처럼 조선의 산에 수 많았던 호랑이를 잡아들이는 특수부대를 만들어 호랑이를 사냥하여 멸종시킨 일본인들은 독도를 무인도라 주장하며 가죽 값이 비쌌던 강치를 지나치게 남획하게 되었고 이후 독도의 강치는 점차 수가 줄어들면서 1975년부터 완전히 멸종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사라져간 강치를 기념하고 우리나라 영토인 독도의 지킴이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독도에 강치비를 세우게 되었답니다.

[독도] 는 진정 무엇인가.

일본 대부분의 교과서에는 독도가 일본의 땅이며 한국이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다고 기술되어 있다고 합니다.

 독도는 삼국시대부터 울릉도에 부속 섬으로 인식되어 왔으며 조선 성종(成宗) 때에는 삼봉도(三峰島) 정조(正祖) 때에는 가지도(可支島)라 불렸으며 19세기 말 이후에 석도(石島)와 독도(獨島)라 칭하게 되었습니다.

독도와 가장 가까운 울릉도 주민들은 독섬(돌섬)이라 불리는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우리나라 땅임이 분명한데일본은 풍부한 에너지 자원과 수산자원 그리고 군사적 요충지인 독도가 탐이 나 자기네 땅이라 우기고 있답니다.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부르는 법....동도에는 한반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지형이 있는데요 생김새 마져도 우리나라 땅임을 입증하고 있는 독도입니다.

  뾰족 솟은 서도에 비해  동도는 평평한 지형을 이루고 있어 등대와, 경비대 초소, 헬기장 등의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데요 동도는 73,297㎡ 면적에 40여 명의 독도경비대와 2명의 독도등대 직원이 상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갈매기의 낙원이라도 되는 듯 독도에서는 수많은 갈매기를 볼 수 있는데요 독도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괭이갈매기 번식지이며 슴새, 딱새, 황조롱이, 매, 노랑지빠귀, 흑비둘기 등 30여 의 조류와 갯메꽃, 해국, 박주가리, 섬괴불나무, 질경이, 동백, 붉은가시딸기 등 50

60종의 식물이 자라는 다양한 동. 식물들의 서식지이기도 합니다.

▲ 천연기념물 제336호 독도동도와 서도의 거리는 151m이며 그 사이에는 마치 이들을 서로 연결해주는 징검다리처럼 조그마한 바위들이 솟아 있었습니다.

멀어져 가는 독도의 풍경과 독도 땅을 밟았다는 감동을 마음 한쪽에 아로새기며 독도를 떠나왔습니다.

 독도는 그 자원적 가치를 떠나 대한민국 국민의 자존심 같은 곳으로 보기만 해도 큰 감동을 받아 볼 수 있는 장소로울릉도 여행 시 입도를 하지 못하더라도 찾아 꼭 찾아 봐야 할 장소였습니다.

애국(愛國)하는 법 어렵지 않습니다.

일본이 자기네 땅이라 우기는 우리 땅 독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곧 애국입니다.

위치: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1-9Tel: (054)-790-6420지도보기50m� NAVER Corp.??? /OpenStreet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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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VER Corp. /OpenStreetMap독도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1-96전화상세보기지도보기 이 봄, 지금 독도는 어떻게 봄을 맞고 있을까요?  독도는 모두 들어보셨겠죠? 일본의 지속적인 도발로 모두가 한번쯤은 들어봤으리라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독도가 왜 우리나라의 영토인지는 알고 계신가요? 외교부는 전 세계에 독도가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임을 널리 알리려 다양한 노력들을 하고 있는데요, 이번 기사에서는 주로 그 활동들에 대하여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독도가 우리 영토인 근거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종실록, 지리지, 동국문헌비고 등 우리나라의 역사서에서만 뿐만 아니라 일본의 역사서에서도 독도는 우리 영토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특히, 광복 후 1946년 연합국최고사령관각서 (SCAPIN) 제677호, 1033호에서는 제 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독도는 일본 영토가 아닌, 우리나라의 영토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는, 일본은 한국의 울릉도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독도라고 명확히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 강화조약은 한국의 3천개가 넘는 섬들을 모두 포함한 것이므로 독도는 한국 땅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분명히 억측입니다.

 <독도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 (출처: 외교부 독도)>  이제 정부의 독도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알아보겠습니다.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입니다.

’가 독도 영유권 분쟁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입니다.

 뉴스를 통해서 많이 들어보셨을 텐데, 그 중 우리나라는 독도에 대해 어떻게 영토 주권을 행사하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령' 바위 (출처: 외교부 독도)> 현재 우리나라는 독도에 대해 입법, 행정, 사법적으로 확고한 영토주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경찰, 해군과 공군이 독도를 경비, 수호하고 있고, 독도에 우체국 등 사회 기반 시설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주민들 50명(독도경비대 포함) 가량이 거주하고 있고, 독도 관련 다양한 법령들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독도를 알리고, 지키기 위해 어떤 일들을 하고 있을까요?  정부는 독도 담당 사이트를 따로 운영하고 있으며, 이 사이트는 한국어, 영어, 아랍어, 중국어, 독일어, 불어 등 총 12개의 언어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또한, 독도의 역사, 자연 환경, 독도 관련 법령 등을 쉽게 설명하는 독도 동영상인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영토, 독도' 또한 12개 국어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독도 사이트 주소 : http://dokdo.mofa.go.kr/kor/index.jsp 이 뿐만 아니라, 독도 로고를 생생한 캘리그래피를 이용하여 제작하여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알리고 있습니다.

     <독도 캘리그래피 (출처: 외교부 독도)> 또한, 정부의 기본입장, 독도가 우리 영토인 지리적, 역사적 근거, 독도에 관한 일문일답 등을 담은 팸플릿을 제작하여 PDF 파일로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서비스도 동영상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언어로 제공되어 전 세계에 독도를 알리는데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정부는 일본의 영토 분쟁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하고 있는데요, 외교부 독도 사이트에는 '정부 발표문'이라는 카테고리에 이러한 영토 분쟁에 대한 우리나라의 발표문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가장 최근 발표한 발표문으로, 정부와 외교부는 일본 시네마현의 '다케시마의 날'에 중앙고위급 인사들이 참석한 것에 대한 재발방지 요구를 하는 등 단호하지만, 효과적인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독도 생태계 (출처: 외교부 독도)> 이제 앞서 언급했던, 독도에서 시행되고 있는 법령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독도는 문화재보호법 제 25조에 따라 천연기념물이자 '독도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있습니다.

또한, 독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독도의 지속가능한 이용에 관한 법률 제 1조에 따라 독도 주변 생태계 보전, 수산 자원 이용, 해양 과학 연구 등을 균형 있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독도 생태계 (출처: 외교부 독도)> 그렇다면, 천연기념물이라는 독도의 자연 생태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볼까요? 무엇보다도 독도는 철새의 이동경로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섬 생물지리학 (island biogeography)적으로 중요합니다.

60종이 넘는 식물, 130종이 넘는 곤충, 160종이 넘는 조류 그리고 엄청나게 다양한 해양 생물들이 독도에 서식합니다.

이렇기에, 독도는 단순히 우리 영토가 아닌, 우리가 보존하고 지켜야 하는 영토입니다.

      지금까지 독도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본 독도. 과연 모파랑 여러분은 독도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계셨나요? 이 기사가 독도가 왜 우리나라의 영토인지, 우리가 과연 어떻게 독도를 지켜낼 수 있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금까지 Friends of MOFA 8기 권순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신라의 이사부 장군이 우산국을 정벌하면서 그 부속 섬인 독도가 ‘우산도’로 처음 불리게 된 것이죠. ▲ 신라 이사부 장군의 초상화 (출처:에듀넷) 이후 조선 시대에 이르러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뜻의 ‘삼봉도’로 불리게 되었고, 1794년에 이르러서는 가지라는 뜻의 물개과 동물 강치가 살고 있는 뜻의 ‘가지도’로 명명되기도 했습니다.

1900년에 대한제국이 ‘칙령 41호’로 독도를 돌섬의 한자 표기인 ‘석도’라는 이름으로 부르다가, 1906년에 이르러 ‘독도’라는 명칭으로 바뀌었어요.  ▲ 독도 지명의 변천 과정 (출처:에듀넷)■ 독도의 일대기 독도가 문헌에 처음 등장하게 된 것은 삼국사기입니다.

신라 지증왕 13년(512년)에 이사부가 울릉도를 중심으로 한 우산국을 정벌하면서 독도가 우산도라 불리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 한 눈에 보는 독도의 역사 (출처:에듀넷)신라에 복속된 우산국은 918년 고려 건국 이후 고려의 지배를 받았어요. 고려 조정에서는 울릉도에 주민을 이주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풍랑으로 인한 사망자가 많이 생 중앙 정부에서 정기적으로 관리를 파견하여 섬을 관리하곤 했어요.조선시대에는 울릉도뿐만 아니라 우산도인 독도에 대해서도 조사한 기록이 남아있으며 특히 세종실록지리지(1454년)와 신증동국여지승람(1531년)에 울릉도와 우산도에 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 세종실록지리지 (출처:외교부)                                        ▲ 신증동국여지승람 (출처:외교부) 대한제국 시기에 울릉도에는 개척민이 늘어났고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일본인도 많이 들어오게 되었어요. 이에 대한제국 정부는 조사단을 파견하고 1900년에 독도를 울릉도가 관할하도록 하는 칙령 제41호를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1905년 러일 전쟁 중 일본은 러시아측 함대의 동향을 살피기 좋은 울릉도와 독도의 군사적, 전략적 가치를 인식하고 망루를 설치했어요. 그 이후 독도를 편입할 기회를 살피고 있다가 ‘독도가 무주지(주인 없는 땅)’이라고 주장하며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로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로 명명하여 시마네현에 편입하기에 이르렀어요. 이 과정에서 일본은 대한제국에 어떠한 협의나 사전 통고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한 후 오늘날까지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1906년 독도가 일본에 불법 편입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대한제국은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해서 일본에 항의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하자 독도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과 함께 반환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에서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의해 침탈되었던 독도와 한반도에 식민지 영토권을 주장하는 것임과 우리나라의 완전한 독립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독도는 신라시대 이후 지금까지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독도를 소유해왔으며 앞으로도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중요한 자산입니다.

  ■ 독도를 지킨 역사 속 인물들독도하면 신라의 이사부 장군처럼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조선시대 사람 안용복입니다.

안용복은 조선 후기(1693년) 어부로 울릉도에서 고기잡이 하던 중 이 곳을 침입한 일본 어민을 꾸짖다가 일본으로 잡혀가게 되었어요. 안용복은 일본에서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일본 관리들 앞에서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강조하며 일본인들의 출어를 금지하여 줄 것을 요구하였고 ‘울릉도는 지리적으로 조선과 더 가깝기 때문에 일본의 영토가 아니다’라는 일본측의 문서를 받고 돌아오게 되죠.그러나 1696년에도 다시 울릉도와 독도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일본 어부들이 활개를 치자 일본 오키섬으로 쳐들어가 그 곳 섬의 주인으로부터 다시는 울릉도와 독도에 침범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내는 성과를 거두었답니다.

안용복은 일본으로부터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영토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해둔 큰 역할을 한 분으로 현재는 그 뜻을 기리고자 안용복 장군으로 추대되고 있습니다.

1945년, 일제로부터 갓 해방된 우리나라는 독도를 안전하게 지키고 보전하는 일에 신경 쓸 형편이 못 되었습니다.

패전국인 일본은 무장순시선 등을 이용해 계속해서 독도를 침범해 왔으며 심지어 독도에 일본 영토 푯말을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울릉도 주민들은 일본인의 불법 침범에 불안함을 느끼고 어업활동에도 막대한 지장을 입고 있었습니다.

이에 1953년 울릉도에 거주하던 홍순칠은 울릉도에 살고 있던 6·25참전 용사 30명과 함께 독도를 수비하는 독도의용수비대를 창설하였습니다.

처음 의용수비대는 자비로 식량과 무기를 구입할 정도로 형편이 열악하였지만 독도를 지키고자하는 투철한 애국심으로 극복해 나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이 독도를 지키고부터 우리 어민들은 안심하고 어로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까지 독도가 우리의 영토로 될 수 있었던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홍순칠 대장(출처: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     ▲ 용맹한 독도의용수비대원들(출처: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 [자료출처: 에듀넷]  릭!! 신라의 이사부 장군이 우산국을 정벌하면서 그 부속 섬인 독도가 ‘우산도’로 처음 불리게 된 것이죠. ▲ 신라 이사부 장군의 초상화 (출처:에듀넷) 이후 조선 시대에 이르러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뜻의 ‘삼봉도’로 불리게 되었고, 1794년에 이르러서는 가지라는 뜻의 물개과 동물 강치가 살고 있는 뜻의 ‘가지도’로 명명되기도 했습니다.

1900년에 대한제국이 ‘칙령 41호’로 독도를 돌섬의 한자 표기인 ‘석도’라는 이름으로 부르다가, 1906년에 이르러 ‘독도’라는 명칭으로 바뀌었어요.  ▲ 독도 지명의 변천 과정 (출처:에듀넷)■ 독도의 일대기 독도가 문헌에 처음 등장하게 된 것은 삼국사기입니다.

신라 지증왕 13년(512년)에 이사부가 울릉도를 중심으로 한 우산국을 정벌하면서 독도가 우산도라 불리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 한 눈에 보는 독도의 역사 (출처:에듀넷)신라에 복속된 우산국은 918년 고려 건국 이후 고려의 지배를 받았어요. 고려 조정에서는 울릉도에 주민을 이주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풍랑으로 인한 사망자가 많이 생 중앙 정부에서 정기적으로 관리를 파견하여 섬을 관리하곤 했어요.조선시대에는 울릉도뿐만 아니라 우산도인 독도에 대해서도 조사한 기록이 남아있으며 특히 세종실록지리지(1454년)와 신증동국여지승람(1531년)에 울릉도와 우산도에 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 세종실록지리지 (출처:외교부)                                        ▲ 신증동국여지승람 (출처:외교부) 대한제국 시기에 울릉도에는 개척민이 늘어났고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일본인도 많이 들어오게 되었어요. 이에 대한제국 정부는 조사단을 파견하고 1900년에 독도를 울릉도가 관할하도록 하는 칙령 제41호를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1905년 러일 전쟁 중 일본은 러시아측 함대의 동향을 살피기 좋은 울릉도와 독도의 군사적, 전략적 가치를 인식하고 망루를 설치했어요. 그 이후 독도를 편입할 기회를 살피고 있다가 ‘독도가 무주지(주인 없는 땅)’이라고 주장하며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로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로 명명하여 시마네현에 편입하기에 이르렀어요. 이 과정에서 일본은 대한제국에 어떠한 협의나 사전 통고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한 후 오늘날까지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1906년 독도가 일본에 불법 편입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대한제국은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해서 일본에 항의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하자 독도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과 함께 반환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에서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의해 침탈되었던 독도와 한반도에 식민지 영토권을 주장하는 것임과 우리나라의 완전한 독립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독도는 신라시대 이후 지금까지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독도를 소유해왔으며 앞으로도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중요한 자산입니다.

  ■ 독도를 지킨 역사 속 인물들독도하면 신라의 이사부 장군처럼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조선시대 사람 안용복입니다.

안용복은 조선 후기(1693년) 어부로 울릉도에서 고기잡이 하던 중 이 곳을 침입한 일본 어민을 꾸짖다가 일본으로 잡혀가게 되었어요. 안용복은 일본에서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일본 관리들 앞에서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강조하며 일본인들의 출어를 금지하여 줄 것을 요구하였고 ‘울릉도는 지리적으로 조선과 더 가깝기 때문에 일본의 영토가 아니다’라는 일본측의 문서를 받고 돌아오게 되죠.그러나 1696년에도 다시 울릉도와 독도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일본 어부들이 활개를 치자 일본 오키섬으로 쳐들어가 그 곳 섬의 주인으로부터 다시는 울릉도와 독도에 침범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내는 성과를 거두었답니다.

안용복은 일본으로부터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영토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해둔 큰 역할을 한 분으로 현재는 그 뜻을 기리고자 안용복 장군으로 추대되고 있습니다.

1945년, 일제로부터 갓 해방된 우리나라는 독도를 안전하게 지키고 보전하는 일에 신경 쓸 형편이 못 되었습니다.

패전국인 일본은 무장순시선 등을 이용해 계속해서 독도를 침범해 왔으며 심지어 독도에 일본 영토 푯말을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울릉도 주민들은 일본인의 불법 침범에 불안함을 느끼고 어업활동에도 막대한 지장을 입고 있었습니다.

이에 1953년 울릉도에 거주하던 홍순칠은 울릉도에 살고 있던 6·25참전 용사 30명과 함께 독도를 수비하는 독도의용수비대를 창설하였습니다.

처음 의용수비대는 자비로 식량과 무기를 구입할 정도로 형편이 열악하였지만 독도를 지키고자하는 투철한 애국심으로 극복해 나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이 독도를 지키고부터 우리 어민들은 안심하고 어로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까지 독도가 우리의 영토로 될 수 있었던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홍순칠 대장(출처: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     ▲ 용맹한 독도의용수비대원들(출처: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 [자료출처: 에듀넷]   신라의 이사부 장군이 우산국을 정벌하면서 그 부속 섬인 독도가 ‘우산도’로 처음 불리게 된 것이죠. ▲ 신라 이사부 장군의 초상화 (출처:에듀넷) 이후 조선 시대에 이르러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뜻의 ‘삼봉도’로 불리게 되었고, 1794년에 이르러서는 가지라는 뜻의 물개과 동물 강치가 살고 있는 뜻의 ‘가지도’로 명명되기도 했습니다.

1900년에 대한제국이 ‘칙령 41호’로 독도를 돌섬의 한자 표기인 ‘석도’라는 이름으로 부르다가, 1906년에 이르러 ‘독도’라는 명칭으로 바뀌었어요.  ▲ 독도 지명의 변천 과정 (출처:에듀넷)■ 독도의 일대기 독도가 문헌에 처음 등장하게 된 것은 삼국사기입니다.

신라 지증왕 13년(512년)에 이사부가 울릉도를 중심으로 한 우산국을 정벌하면서 독도가 우산도라 불리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 한 눈에 보는 독도의 역사 (출처:에듀넷)신라에 복속된 우산국은 918년 고려 건국 이후 고려의 지배를 받았어요. 고려 조정에서는 울릉도에 주민을 이주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풍랑으로 인한 사망자가 많이 생 중앙 정부에서 정기적으로 관리를 파견하여 섬을 관리하곤 했어요.조선시대에는 울릉도뿐만 아니라 우산도인 독도에 대해서도 조사한 기록이 남아있으며 특히 세종실록지리지(1454년)와 신증동국여지승람(1531년)에 울릉도와 우산도에 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 세종실록지리지 (출처:외교부)                                        ▲ 신증동국여지승람 (출처:외교부) 대한제국 시기에 울릉도에는 개척민이 늘어났고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일본인도 많이 들어오게 되었어요. 이에 대한제국 정부는 조사단을 파견하고 1900년에 독도를 울릉도가 관할하도록 하는 칙령 제41호를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1905년 러일 전쟁 중 일본은 러시아측 함대의 동향을 살피기 좋은 울릉도와 독도의 군사적, 전략적 가치를 인식하고 망루를 설치했어요. 그 이후 독도를 편입할 기회를 살피고 있다가 ‘독도가 무주지(주인 없는 땅)’이라고 주장하며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로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로 명명하여 시마네현에 편입하기에 이르렀어요. 이 과정에서 일본은 대한제국에 어떠한 협의나 사전 통고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한 후 오늘날까지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1906년 독도가 일본에 불법 편입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대한제국은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해서 일본에 항의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하자 독도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과 함께 반환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에서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의해 침탈되었던 독도와 한반도에 식민지 영토권을 주장하는 것임과 우리나라의 완전한 독립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독도는 신라시대 이후 지금까지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독도를 소유해왔으며 앞으로도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중요한 자산입니다.

  ■ 독도를 지킨 역사 속 인물들독도하면 신라의 이사부 장군처럼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조선시대 사람 안용복입니다.

안용복은 조선 후기(1693년) 어부로 울릉도에서 고기잡이 하던 중 이 곳을 침입한 일본 어민을 꾸짖다가 일본으로 잡혀가게 되었어요. 안용복은 일본에서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일본 관리들 앞에서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강조하며 일본인들의 출어를 금지하여 줄 것을 요구하였고 ‘울릉도는 지리적으로 조선과 더 가깝기 때문에 일본의 영토가 아니다’라는 일본측의 문서를 받고 돌아오게 되죠.그러나 1696년에도 다시 울릉도와 독도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일본 어부들이 활개를 치자 일본 오키섬으로 쳐들어가 그 곳 섬의 주인으로부터 다시는 울릉도와 독도에 침범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내는 성과를 거두었답니다.

안용복은 일본으로부터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영토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해둔 큰 역할을 한 분으로 현재는 그 뜻을 기리고자 안용복 장군으로 추대되고 있습니다.

1945년, 일제로부터 갓 해방된 우리나라는 독도를 안전하게 지키고 보전하는 일에 신경 쓸 형편이 못 되었습니다.

패전국인 일본은 무장순시선 등을 이용해 계속해서 독도를 침범해 왔으며 심지어 독도에 일본 영토 푯말을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울릉도 주민들은 일본인의 불법 침범에 불안함을 느끼고 어업활동에도 막대한 지장을 입고 있었습니다.

이에 1953년 울릉도에 거주하던 홍순칠은 울릉도에 살고 있던 6·25참전 용사 30명과 함께 독도를 수비하는 독도의용수비대를 창설하였습니다.

처음 의용수비대는 자비로 식량과 무기를 구입할 정도로 형편이 열악하였지만 독도를 지키고자하는 투철한 애국심으로 극복해 나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이 독도를 지키고부터 우리 어민들은 안심하고 어로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까지 독도가 우리의 영토로 될 수 있었던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홍순칠 대장(출처: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     ▲ 용맹한 독도의용수비대원들(출처: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 [자료출처: 에듀넷]  ?아나운서 출신 김일중이 진행하는 여행 프로그램  EBS <숨은 한국 찾기> 자주 보는 신규 방송이다지난 3월 5일 첫 방송으로 남해 '독일마을'이 소개되었는데일부 촬영 함께 하면서 정이 들어서인 관심을 갖게 된다  ?이번 방송은 여름 특집으로 '울릉도'와 '독도'가 소개되는데 울릉도편은 지난 주에 방송 나갔었고 오늘은 독도가 소개 될 것이다 ?울릉도, 독도편 특별 게스트로 '독도는 우리땅'을 부른 가수이자울릉도, 독도 홍보대사이신 '정광태'님이 초대되어섬 구석구석 가이드가 되어 줄 것이다 개인적으로 친분 있는 분이어서 ?눈 크

게 뜨고 보리라

^^※ 방송일시 : 2016년 7월 23일 (토) 밤 10시 55분, EBS1????첫 ?방송 때의 남해 '독일마을'과 마을 아래 바닷가 '물건방조어부림(천연기념물 150호)' 4계절 사진은 막싸도라 제공,? ,,,,,,,,,,,,,독도!대한민국 국민들이면 반드시 가보길 권하는 여행지다난 기껏해야 2번 가봤을 뿐인데 독도홍보대사이신 정광태님은 33년 동안 무려 60번이나 다녀오셨다고,,앉으나 서나 오로지 독도! 독도! 노래를 부르시는 분이다댁에 가봤을 때도 집 안이 온통 독도 사진, 독도 그림들로 그득하다  아마도 독도 사랑 영원하지 싶다,, ㅎㅎ이제 다음주부터는 본격적인 휴가철이다여행 계획하시는 분들울릉도, 독도 꼭 권해드리고 싶다말로만 '독도는 우리땅'이 아닌아이들 데리고 독도 땅 밟아보면가슴 깊이에서 뿌듯함이 밀려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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