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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은


   정경(Canon)이란 헬라어 카논(     )을 번역한 말로서 원래는 '곧은 막대기' 또는 '지팡이'라는 뜻인데, 척도를 재는 '자'라는 말로 사용되다가 점차 '기준' 또는 '규칙' 등 행위나 기술의 규범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고, 나중에 4세기경에 이르러 성경에 적용되면서 '정경'이라는 말로 된 것이다.

   어원에서 살펴보듯이 기독교에서 정경이라고 할 때는 성경이 기독교의 교리와 신앙의 기준이며 규범이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기독교인의 모든 문제를 처리하는데 기준이 되며, 기독교 신앙의 이름으로 주장되는 사상이나 실천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규범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성경은 수천년의 역사 속에서 영감을 받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되어 신적 권위를 가지고 신앙의 근거로서 위치하여왔다.

 정경의 결정기준  정경은 어떤 기준에 의해 결정되었는가? 여러 가지 견해가 있으나, 오래된 연대 혹은 종교적인 가치로 정경이 결정되었다는 견해는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오래된 책들 중에는 '여호와의 전쟁기(민 21:14)'나 '야살의 책(수 10:13)' 등 모세의 율법서보다 오래된 책들이 있지만, 이런 책들이 정경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정경이란 반드시 오래된 연대와 관련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또 정경에 포함되지 않은 많은 외경과 위경 중에는 에녹서(유 1:14) 등 성경에도 인용될 정도로 종교적 가치가 있었지만 정경에서 제외된 것들이 있다.

따라서 종교적 가치로 정경을 결정한 것도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정경은 누가 어떤 근거로 결정하였으며, 또 그렇게 확정된 정경에는 하나님의 뜻이 완전하게 드러났다고 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만일 정경으로 확정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판단으로 결정되었다면 오류의 잠재성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정경의 결정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야만 하는데, 정경을 하나님께서 결정하셨다는 근거를 찾아볼 수 있겠는가?   정경성을 하나님께서 결정하셨다는 증거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나타난다.

주님은 히브리어 구약 39권(히브리 성경으로는 24권)이 모두 권위가 있고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셨다.

구약을 인용하고 언급하실 때마다 율법과 선지서 그리고 시편을 포함한 성문서까지 모두 주님에 대해서 증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셨으며, 이는 구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신앙의 규범인 정경성을 가진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구약이 주님께서 증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주님께서 결정하신 정경이라면 신약은 구약의 성취로서 주님의 말씀인 바 더욱더 정경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주님의 말씀과 뜻을 제자들이 기록한 신약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정경을 결정하신 것을 하나님의 사람들이 인정하고 수납한 것이 바로 정경화 과정이었다고 이해하면 된다.

다시 말하면 정경 그 자체는 주님께서 결정하셨으므로 하나님의 결정이었다면,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정경을 착오없이 사람들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간섭을 받았다는 것이다.

또 달리 표현하면 하나님께서 정경을 결정하신 것을 교회가 발견하고 보존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경을 하나님께서 결정하셨어도 그것을 인정하고 발표하여 확정짓는 작업은 인간 편에서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를 정경화(Canonization)라고 하며 여기에도 오류가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정경이라고 믿을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들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경으로 인정할 수 있는 기준으로 제시되는 것들로는 다음의 것들을 들 수 있다.

   첫째는 신구약을 막론하고 신적 권위가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이는 선지서들이 인정받은 방법으로서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와 같이 성경의 말씀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내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는가 라는 것이다.

많은 외경과 위경들은 신적인 권위가 없으므로 기각되었는데, 간혹 그것들도 권위를 주장하는 표현들이 없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도가 아닌 인간 기록자의 얄팍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에 당연히 정경에서 제외되었다.

    다음은 어떤 책이 선지자적이며 사도적인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40명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1,500년간 기록된 성경들이 저마다의 독특한 주제와 특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를 하나로 관통하는 놀라운 통일성과 구속사적 계시의 흐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바로 선지자나 사도에 의해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하나님의 사람들은 성경을 기록하면서 자신들의 선지자 혹은 사도 됨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고 한결같이 드러내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어떤 책들은 선지자와 사도의 이름을 도용하였지만, 문체나 역사적 진실성에서 거짓임이 드러났기 때문에 정경에서 제외된 것들도 있다.

   다음으로는 기록된 내용이 역사적 신뢰성과 도적적 적합성을 가졌는지의 여부이다.

사실이 아닌 허구를 기록하거나 진실을 왜곡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면 그것들은 진리가 아니며, 당연히 하나님께서 정경으로 결정하신 책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교적 가르침이 있거나 증거들이 참되지 못한 책들은 정경에서 제외되었는데, 특이하게 유다서 같은 경우는 위경을 인용했어도 거짓된 내용을 말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한 때 의심받다가 나중에 정경으로 확정되었다.

     또 정경성의 중요한 단서는 말씀에 능력이 있는가 라는 것이었다.

교부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기(히 4:12과 벧전 1:23) 때문에 사람을 교화시키고 복음화시키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으며, 따라서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없는 말씀은 아무리 그럴듯하고 기교가 많아도 정경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성경은 사람의 지혜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드러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살아있는 책이므로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책들이 정경이 된 것은 외형적인 표현보다는 그 메시지에서 나오는 힘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구약의 아가(雅歌)와 전도서는 각각 관능적인 표현과 회의적인 내용 때문에 정경성을 의심받았으나 영적인 메시지를 주고 있기 때문에 정경으로 확정되었다.

    그 다음은 책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는가가 중요한 관건이다.

기독교 초기부터 정경의 목록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목록이 만들어지다가 후에 몇 차례 교회 회의를 거치면서 정경의 목록은 서서히 결정된 것이다.

따라서 어떤 책이 기독교인들에게 얼마나 많이 읽히고 자주 인용되었는지는 정경의 목록을 확정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요한계시록이나 요한 3서 같은 것은 기독교 초기시대에 널리 읽히지 않았어도 교부들에 의해 빈번히 인용됨으로써 정경이 된 책들이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요소는 그리스도 중심적인가라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구약이 주님을 증거하고 있다고 하셨다.

따라서 구약은 메시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과 증거들이며, 신약은 오신 주님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므로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어떤 책에서 외형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없을지라도 메시지에서 주님을 증거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 중심적이라는 정경의 결정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정경 형성의 과정  이상에서 보다시피 정경을 결정하는 분명한 기준이 있었지만, 실제로 성경책 66권이 정경으로 확정되기까지는 역사적으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기독교 초기에는 현재 정경으로 삼고 있는 책들 중에서도 일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고, 그밖에도 외경과 위경들이 가세하여 도대체 어떤 책이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인지 분별해야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또한 성경책의 권수와 배열까지도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오랜 세월 많은 과정을 거쳐서 비로소 지금과 같은 모습의 정경의 틀이 갖춰진 것이다.

정경화는 하나님께서 영감하신 책들을 수집하여 확정하는 일을 가리키는데, 구약과 신약이 각각 어떤 과정을 통해 지금의 정경으로 확정되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구약)   구약 성경이 지금의 정경으로 확정된 것은 AD 90년 얌니야에서 있었던 랍비들의 회의에서였다.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히브리어 구약 성경은 3부 24권으로 되어있는데, 39권으로 되어있는 기독교의 구약과 권수와 배열은 서로 다르지만 내용은 동일하다.

권수와 배열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기독교의 구약이 대체로 내용 중심으로 편성된 70인경을 따르고 있는 반면, 유대인의 구약은 각 권의 책이 형성되고 모아진 역사와 시대에 따라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성경은 우선 율법(토라)과 예언서(네비임)와 성문서(케투빔)의 3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세 글자의 첫 머리 글자를 합쳐서 보통 타나크(   )라고 부르기도 한다.

율법은 소위 모세 5경으로서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5권으로 되어있으며, 이는 기독교의 구약의 구성과 같다.

   다음은 8권으로 된 예언서로서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과 한 묶음의 소선지서가 들어있다.

특이한 것은 보통 역사서로 분류하는 대부분의 책들이 여기에 포함된다는 사실이다.

즉, 여호수아를 비롯하여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가 예언서에 들어있는데, 그 까닭은 예언의 개념을 율법의 해석과 그 적용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율법을 삶 속에서 적용하던 시대의 기록이 포함된 것이다.

또 예언서 중에서 소선지서는 12권을 하나로 묶어서 1권으로 취급하는 것이 특이하다.

   마지막으로 11권의 성문서가 있는데, 케투빔이라는 말은 그밖에 기록된 문서들이라는 뜻으로 이것들은 가장 나중에 정경으로 확정된 것들이다.

여기에는 보통 시가서로 분류되는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및 아가가 포함되며, 역사서 중에서 역대기(상하)를 비롯해서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1권으로 포함되며, 에스더 역시 성문서로 분류되었다.

그밖에 예언서 중에 다니엘서가 성문서에 포함되며, 룻기와 애가가 더해져서 11권이 된 것이다.

     히브리어 구약 성경의 형성과정을 보면 처음부터 모든 책이 정경으로 인정된 것은 아니며, 24권의 책으로 확정되기까지 많은 논쟁을 거쳐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

그 중에는 처음부터 모든 사람들에게 의심 없이 정경으로 받아들여진 것들도 있었고, 몇몇 교부들에게 논란거리가 되었던 것도 있었으며, 일부 사람들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보편적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은 외경으로 불리는 것들과 모든 사람들에게 기각된 위경이 있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정경으로 받아들여지고 나서 한 번도 의심되지 않은 것들을 호몰로구메나(Homologoumena)라고 하는데, 히브리어 성경으로는 19권이며 개신교 구약으로는 34권의 책이다.

즉 5권의 논란이 있었던 책을 제외한 오늘날 구약으로 삼고 있는 대부분의 책이 호몰로구메나였다.

   다음으로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고 약간의 논란이 있다가 나중에 정경에 포함된 책들이 있는데, 이를 안틸레고메나(Antilegomena)라고 한다.

이들은 한때 몇몇 랍비들과 후대의 교부들에게 논란거리가 되었던 아가, 전도서, 에스더, 에스겔, 잠언의 5권의 책을 가리킨다.

샴마이 학파는 아가(雅歌)의 관능적인 표현 때문에 정경성을 의심하였으나, 랍비 아키바에 의해 정경으로 채택되었다.

후대에 교부들에 의해서도 아가에 나타난 결혼의 거룩성과 신비를 통해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을 상징을 이해함으로써 정경성이 지지되었다.

   전도서는 랍비 아키바마저도 약간 의심스럽다고 했을 정도로 아가보다도 정경성이 더 의심되었는데 그 까닭은 회의적인 내용 때문이다.

그러나 전도서의 모든 내용은 회의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결론으로 인도하는 훌륭한 교훈을 주고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본분(전 12:13)이라는 말씀은 곧 가장 성경적인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에스더서는 글 중에 하나님의 이름이 전혀 나타나지 않음으로써 정경성을 의심받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는 역사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는데다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느끼고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있도록 믿음의 동기를 부여케 하는 책임에 틀림없기 때문에 정경으로 확정될 수밖에 없었다.

    에스겔은 샴마이 학파에 의해 모세오경에서 가르친 율법의 내용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이유로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들은 심지어 에스겔의 어떤 부분들이 영지주의적인 가르침을 포함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정말로 토라와 모순되는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지는 못했으며, 그러한 오해를 한 것은 어디까지나 지나친 문자주의적인 해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일부 오해가 있었음에도 에스겔은 정경으로 인정된 것이다.

   잠언은 논리적으로 모순되어 보이는 표현들이 있기 때문에 정경성을 의심받았던 책이다.

예를 들어 잠 26:4-5은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네가 그와 같을까 하노라.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그에게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고 동일한 내용에 대해 서로 다르게 말하고 있다.

이처럼 같은 내용을 가지고 어디서는 권하는가 하면 다른 곳에서는 금하는 것이 있어서 이러한 논리적 모순이 논박의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이는 문맥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소치였으며, 현대 해석에서 'Case by case'라는 원리에 따르면 사실 아무 잘못도 아닌 것이다.

    다음은 안틸레고메나와는 정반대로, 일부 사람들에 의해 받아들여졌으나 더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정경에서 제외된 것들인 외경(Apocrypha)이 있다.

이 말은 헬라어 '감추다'라는 뜻에서 파생되어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에스드라 2서를 제외한 대부분의 외경은 신구약 공백기인 BC 4-2세기에 만들어졌는데, 사해사본에도 포함되어 있고 70인경에는 39권의 책과 분리되어 수록되어 있었다.

   구약 외경은 전체 15권으로서, 2권의 지혜서(솔로몬의 지혜서, 벤 시락의 지혜서)와 2권의 소설류(토빗트, 유디트), 그리고 3권의 역사서(에스드라 1서, 마카비 1서, 마카비 2서)와 1권의 선지서(바룩), 그리고 3권의 전설류(에스더 속편, 수산나, 벨과 용)와 그밖에 기도서나 잡서로 분류되는 4권의 책(므낫세의 기도, 아사랴의 기도, 예레미야의 편지, 에스드라 2서)이 있다.

   외경은 날조된 듯한 역사와 비도덕적인 내용, 그리고 출처불명의 전설과 환상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서 성경보다 훨씬 저급한 것으로 여겨지면서도 항상 성경 주위를 맴돌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 왔고, 초대 교회 교부들 중에서 외경을 인용하는 예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교부들 중에서 이레니우스 같은 이는 외경을 정경처럼 취급하지 말아야 할 것을 주장하였고, 제롬은 자신의 벌게이트 라틴역에서 가장 확실하게 외경을 정경과 분리해야 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거스틴 같은 교부는 외경을 정경과 같이 취급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으며, 이는 중세 카톨릭 교회가 외경을 정경으로 삼는데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다.

   카톨릭 교회는 1546년 트렌트 종교회의에서 에스드라 1,2서와 므낫세의 기도의 3권을 제외한 12권의 외경을 포함하여 자신들의 정경을 삼았다.

개신교에서는 종교개혁 초기부터 당연히 외경을 제외하였으나, 처음에는 성도의 경건한 삶과 신앙에 유익을 주는 책으로 인정하여 읽는 것을 권장하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모든 자들이 한결같이 거부한 책들이 위경(Pseudepigrapha)이다.

이는 헬라어로 '거짓된 책'이라는 뜻이다.

위경은 외경과 마찬가지로 신구약 중간기에 씌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며, 그 내용은 완전 허구로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간혹 성경에 그 일부가 인용된 일이 있고, 당시에 히브리인들에게는 문학작품으로서 가치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본다.

   위경은 외경보다 숫자가 많은데 보통 18권 정도를 언급한다.

4권의 전설적인 것(희년서, 아리스테아스의 편지, 아담과 하와, 이사야 순교)과 7권의 묵시적인 책(에녹 1, 2서, 열두 족장의 이야기, 시빌의 신탁, 모세의 승천기, 바룩 2, 3서)이 있으며, 4권의 교훈적인 것(마카비 3, 4서, 피르케 아봇, 아히카르 이야기)과 2권의 시적인 것(솔로몬의 시편, 시편 151편)과 1권의 역사적인 책(사독의 전쟁)이 있다.

개신교는 위경은 아예 책으로 취급도 하지 않지만, 카톨릭에서는 위경들을 외경이라는 이름으로 성경에 포함시키고 있다.

 (신약)  신약의 경우 영감되어진 책을 수집하여 확정하게 된 과정에는 초기 기독교부터 발흥하였던 이단에 의한 강한 자극이 촉진제가 되었다.

많은 이단적인 가르침을 근절시킬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는 것이었데, 그런 와중에 이단이었던 마르키온이 제일 먼저 정경의 목록을 만들었다는 것은 아이러니칼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는 물론 기독교의 정경 목록과는 달랐지만 이러한 자들의 무분별한 주장 때문에 혼란이 가중되었고, 이에 따라 성도들이 이단에게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경은 시급하게 결정될 필요가 있었다.

이단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일 뿐 아니라 이방 선교에 힘을 더하기 위해 기독교의 성경이 정경으로 확정되는 일이 필요하였고 또한 박해에 대항하여 성경을 보존하기 위해서도 정경화 작업은 시급했다.

    신약은 393년 북아프리카 히포와 397년의 카르타고의 두 번에 걸친 공의회에서 현재와 같은 27권의 신약 성경이 정경으로 공인되었다.

신약 성경의 정경화 과정에서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구약에서와 마찬가지로 네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호몰로구메나(Homologoumena)는 20권이었다.

여기에는 4권의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비롯해서 바울 사도의 13편의 편지들과 베드로전서 및 요한 일서가 포함되었는데, 현재의 신약 27권 중에서 7권을 제외한 20권의 책에 대해서는 마르키온 같은 이단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부터 정경성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부에 의해 의심받았던 책인 안틸레고메나(Antilegomena)는 7권이었는데, 그 책들은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 2, 3서, 유다서와 요한계시록이었다.

히브리서는 저자를 알 수 없다는 것과 일부 이단이 그 내용을 왜곡하여 많이 의존하고 또 인용하였기 때문에 정경으로 수납되는데 시일이 걸렸다.

   야고보서는 기록자인 야고보의 저작의 진실성과 함께 그 내용에 있어서 믿음에 의한 칭의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듯한 행위를 강조하는 믿음이 문제가 되어 정경성이 의심되었으나, 제롬과 어거스틴 유세비우스 등의 교부들이 정경성을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심지어 종교개혁가인 마르틴 루터까지도 야고보서가 가르치는 진정한 믿음의 의미를 오해하고 자신의 이신칭의 교리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여겨서 '지푸라기 성경'이라고 혹평하기도 하였지만, 야고보서는 바울 사도의 서신들과 믿음에 관하여 상호보완적인 가르침을 주는 확실한 정경으로 인정되는데 문제가 없었다.

    베드로후서는 정경이 되기까지 가장 의문이 많았는데, 심지어 칼빈까지도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한 정도였다.

정경성을 의심한 까닭은 베드로전서와 문체가 다르고 일부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인데, 그 진실성에 대하여 끊임없이 연구한 결과 언어학적으로 또 교회적 관점에서 베드로 사도의 특징을 잘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베드로전서와 유사한 점이 많이 발견됨으로써 지금은 더 이상 정경임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요한 2, 3서는 내용에 있어서 너무나 개인적인 성격을 띄고 있고, 또 매우 제한적으로 유포되어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편지였기 때문에 정경성이 의심되었다.

또 저자인 요한이 자신을 사도가 아니라 장로라고 한 것도 편지의 권위를 의심받게 한 요인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도들도 자신을 장로라고 말한 적이 있는 점과 요한 1서와의 문체나 사상이 유사한 점 등으로 말미암아 정경으로 채택되었다.

   유다서는 에녹서의 인용(14절)과 모세의 승천기에 대한 인용(9절) 때문에 논란이 많았던 책이다.

이러한 위경을 인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정경으로 의심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 사람은 터툴리안이다.

그는 바울 사도도 필요한 경우 이방인들의 말을 인용한 것(행 17:28, 고전 15:33, 딛 1:12)을 제시하면서, 위경을 인용하였다고 잘못은 아니며 오히려 성경에 인용된 것이라면 그 부분만큼은 진리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요한계시록은 천년왕국 교리를 비롯해서 많은 묵시적 표현들에 대한 논쟁으로 쉽게 정경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특히 이단들이 자신들의 천년왕국 교리를 지지하기 위해 많이 인용하였기 때문에 더욱더 정경화 작업이 늦어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많은 교부와 주교들이 이에 반대하는 소리가 높았으나, 특정 교리를 강조하는 것과 관련된 논박이 잠잠해지면서 사도적 권위가 입증되고 결국 영감받은 책으로 확정되었다.

   다음은 일부에 의해 수용되었어도 정경이 되지는 못한 외경(Apocrypha)이 있다.

외경은 정경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꽤 넓은 지역에서 오랫동안 수용되고 유포된 책들로서 정경에는 못 미치나 나름대로는 가치가 있었다고 여겨지는 몇 권의 책들이다.

이는 일부 종파와 이단들이 오랫동안 자신들의 정경으로 사용하고 설교와 신앙의 근거로 삼기까지 하였다.

신약 외경은 대부분 사도를 계승한 속사도의 저작이 많으며 간혹 사도의 작품이라고 하는 것도 있지만, 친저성(親著性)이 극히 의심되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따라서 사실상 그 숫자는 매우 많지만 유명한 것들은 대개 다음 10여 편에 이르는데, 외경 중에 어떤 책은 외경이라고 말하기보다는 기독교 초기에 저술된 신앙 서적으로 보는 것이 좋은 책들도 있을 것이다.

   먼저, 위(僞)바나바 서신은 시내산 필사본에 들어있는데, 2세기경 어떤 사람이 바나바 사도의 이름으로 쓴 편지 형식의 교훈서이다.

히브리서를 닮았는데 더 풍유적이고 비유적이며, 알렉산드리아 학파인 클레멘트와 오리겐은 정경으로 간주하기도 하였다.

   다음, 클레멘트의 고린도서신은 알렉산드리아 필사본에 포함되어 있으며, 바울 사도의 고린도전서와 히브리서를 많이 본받은 내용으로 되어있는데, 이 역시 고린도를 비롯해 많은 지역에서 읽힌 것 같다.

한편 클레멘트의 제 2서신도 알렉산드리아 필사본에 들어있는데, 같이 많이 읽혔던 책으로 여겨진다.

   헤르마스의 목자(Shepherd)는 시내산 사본에 들어있는데 외경 가운데 가장 인기가 있었던 책으로 초기 교회에서 공적으로 읽혀졌는데, 신앙적이고 윤리적인 면에서 정경에 버금간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레니우스와 오리겐은 영감된 책으로 여기기까지 하였다.

   다음은 열두 사도의 디다케라는 것이 있는데, 초기 기독교 교회에서 매우 존중되었고 클레멘트나 아타나시우스 등의 교부들에 의해 정경으로 인용되기까지 하였으나 친저성의 의심으로 정경이 되지는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신약과 교부들의 문헌 사이를 잇는 교량 역할을 하는 중요한 책임에는 틀림없다.

   바울과 데글라 행전이라는 책은 베자사본의 목차에 들어있는데, 오리겐에 의해 자주 언급되었으며, 그 내용은 사도행전 14:1-7에서 바울 사도가 이오니아 전도시 만난 데글라라는 여인의 회심에 관한 이야기로서,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을 둔 것으로 여겨지지만 허구가 너무 많이 섞여서 그 가치를 잃고 있다.

   폴리캅은 요한 사도의 제자로서 빌립보서를 쓴 것이 전해진다.

그는 사도들에게 배운 교회의 전승을 가르친다고 하였으므로 그가 쓴 빌립보서는 사도들의 서신과 가장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사도들처럼 직접 영감을 받은 것은 아니므로 정경이 되지는 못하였다.

   이그나티우스 역시 요한 사도의 제자로서 로마 교회 등에 보내는 일곱 통의 편지를 썼는데, 그 내용은 신약 교훈들과 상당히 유사하여 가시적인 교회의 일치를 가르치고 있으며, 주교 중심의 교회 정치에 대한 강한 믿음을 표현하고 있어서 후세에 교회론을 정립하는데 큰 도움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마지막으로 위경(Pseudepigrapha)이 있는데 긍정적인 신학적 가치가 전혀 없으며, 역사적인 가치를 도무지 갖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한결같이 부인된 책들이다.

글자 그대로 가짜 성경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는 영지주의, 도케티즘(가현설주의), 금욕주의 등 각종 이단들이 자신들의 교리를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특별히 조작한 내용들이 많이 포함되어있다.

따라서 신앙에 유익을 주지는 못하고 다만 초기 교회 시대의 종교적인 문헌으로 평가될 뿐이다.

    신약 위경은 복음서 종류가 가장 많아서 약 20여 권 정도가 존재했는데, 도마복음, 베드로복음, 야고보복음, 니고데모복음을 비롯해서 요셉의 생애, 마리아 탄생기와 승천기, 예수님의 유년시절의 기록 등이 있다.

이들 대부분은 정경 복음서에 없는 내용들에 대하여 알기 원하는 대중들의 욕망을 채워주고자 기록한 것들로 여겨진다.

   다음은 사도들의 행전으로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죽었다는 전설을 담고있는 베드로행전을 비롯하여, 영지주의적 경향이 있는 요한행전과 역시 영지주의적이며 금욕주의적인 안드레행전이 있고, 인도로 갔던 도마가 수난을 당했다는 도마행전과 그밖에 맛디아행전, 빌립행전, 다대오행전과 바울행전 등이 있다.

   다음, 서신으로는 주님의 편지, 분실된 고린도서신, 세네카에게 보낸 바울의 서신과 라오디게아 서신이 있는데, 이중에서 라오디게아서는 골 4:16을 근거로 바울 사도가 보낸 편지처럼 위조하여 제롬이 자신의 벌게이트에서 바울의 이름을 빌려 처음으로 썼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위조 서신임에 틀림없는데도 6세기부터 15세기까지 많은 라틴어 성경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종교개혁시기까지 독일어 성경과 영어 성경 등에 나타날 정도로 널리 읽혔던 것 같다.

그것은 다른 위조물과 달리 내용상 전혀 해가 없이 신앙에 유익을 줄 만한 것들이 포함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묵시적인 것들로는 베드로묵시록, 바울묵시록, 도마묵시록, 스데반묵시록 등이 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베드로묵시록인데 이는 꽤 재미있는 내용으로 인기가 있어서 많이 읽히기는 했지만, 베드로 친저성을 믿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또 천국과 지옥을 묘사한 내용이 하도 기괴하여 한 때 교회는 그것을 읽는 것을 금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 중세 문학에 영향을 많이 끼쳤고, 특히 단테의 신곡은 여기서 많은 이미지를 착안했을 것이다.

   출처 :아르케아카데미(http://blog.daum.net/okhi6565/16918521)   정경(Canon)이란 헬라어 카논(     )을 번역한 말로서 원래는 '곧은 막대기' 또는 '지팡이'라는 뜻인데, 척도를 재는 '자'라는 말로 사용되다가 점차 '기준' 또는 '규칙' 등 행위나 기술의 규범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고, 나중에 4세기경에 이르러 성경에 적용되면서 '정경'이라는 말로 된 것이다.

[정경은] 선택의 여지가 ...


   어원에서 살펴보듯이 기독교에서 정경이라고 할 때는 성경이 기독교의 교리와 신앙의 기준이며 규범이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기독교인의 모든 문제를 처리하는데 기준이 되며, 기독교 신앙의 이름으로 주장되는 사상이나 실천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규범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성경은 수천년의 역사 속에서 영감을 받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되어 신적 권위를 가지고 신앙의 근거로서 위치하여왔다.

 정경의 결정기준  정경은 어떤 기준에 의해 결정되었는가? 여러 가지 견해가 있으나, 오래된 연대 혹은 종교적인 가치로 정경이 결정되었다는 견해는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오래된 책들 중에는 '여호와의 전쟁기(민 21:14)'나 '야살의 책(수 10:13)' 등 모세의 율법서보다 오래된 책들이 있지만, 이런 책들이 정경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정경이란 반드시 오래된 연대와 관련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또 정경에 포함되지 않은 많은 외경과 위경 중에는 에녹서(유 1:14) 등 성경에도 인용될 정도로 종교적 가치가 있었지만 정경에서 제외된 것들이 있다.

따라서 종교적 가치로 정경을 결정한 것도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정경은 누가 어떤 근거로 결정하였으며, 또 그렇게 확정된 정경에는 하나님의 뜻이 완전하게 드러났다고 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만일 정경으로 확정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판단으로 결정되었다면 오류의 잠재성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정경의 결정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야만 하는데, 정경을 하나님께서 결정하셨다는 근거를 찾아볼 수 있겠는가?   정경성을 하나님께서 결정하셨다는 증거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나타난다.

주님은 히브리어 구약 39권(히브리 성경으로는 24권)이 모두 권위가 있고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셨다.

구약을 인용하고 언급하실 때마다 율법과 선지서 그리고 시편을 포함한 성문서까지 모두 주님에 대해서 증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셨으며, 이는 구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신앙의 규범인 정경성을 가진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구약이 주님께서 증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주님께서 결정하신 정경이라면 신약은 구약의 성취로서 주님의 말씀인 바 더욱더 정경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주님의 말씀과 뜻을 제자들이 기록한 신약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정경을 결정하신 것을 하나님의 사람들이 인정하고 수납한 것이 바로 정경화 과정이었다고 이해하면 된다.

다시 말하면 정경 그 자체는 주님께서 결정하셨으므로 하나님의 결정이었다면,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정경을 착오없이 사람들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간섭을 받았다는 것이다.

또 달리 표현하면 하나님께서 정경을 결정하신 것을 교회가 발견하고 보존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경을 하나님께서 결정하셨어도 그것을 인정하고 발표하여 확정짓는 작업은 인간 편에서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를 정경화(Canonization)라고 하며 여기에도 오류가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정경이라고 믿을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들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경으로 인정할 수 있는 기준으로 제시되는 것들로는 다음의 것들을 들 수 있다.

   첫째는 신구약을 막론하고 신적 권위가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이는 선지서들이 인정받은 방법으로서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와 같이 성경의 말씀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내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는가 라는 것이다.

많은 외경과 위경들은 신적인 권위가 없으므로 기각되었는데, 간혹 그것들도 권위를 주장하는 표현들이 없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도가 아닌 인간 기록자의 얄팍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에 당연히 정경에서 제외되었다.

    다음은 어떤 책이 선지자적이며 사도적인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40명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1,500년간 기록된 성경들이 저마다의 독특한 주제와 특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를 하나로 관통하는 놀라운 통일성과 구속사적 계시의 흐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바로 선지자나 사도에 의해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하나님의 사람들은 성경을 기록하면서 자신들의 선지자 혹은 사도 됨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고 한결같이 드러내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어떤 책들은 선지자와 사도의 이름을 도용하였지만, 문체나 역사적 진실성에서 거짓임이 드러났기 때문에 정경에서 제외된 것들도 있다.

   다음으로는 기록된 내용이 역사적 신뢰성과 도적적 적합성을 가졌는지의 여부이다.

사실이 아닌 허구를 기록하거나 진실을 왜곡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면 그것들은 진리가 아니며, 당연히 하나님께서 정경으로 결정하신 책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교적 가르침이 있거나 증거들이 참되지 못한 책들은 정경에서 제외되었는데, 특이하게 유다서 같은 경우는 위경을 인용했어도 거짓된 내용을 말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한 때 의심받다가 나중에 정경으로 확정되었다.

     또 정경성의 중요한 단서는 말씀에 능력이 있는가 라는 것이었다.

교부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기(히 4:12과 벧전 1:23) 때문에 사람을 교화시키고 복음화시키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으며, 따라서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없는 말씀은 아무리 그럴듯하고 기교가 많아도 정경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성경은 사람의 지혜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드러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살아있는 책이므로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책들이 정경이 된 것은 외형적인 표현보다는 그 메시지에서 나오는 힘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구약의 아가(雅歌)와 전도서는 각각 관능적인 표현과 회의적인 내용 때문에 정경성을 의심받았으나 영적인 메시지를 주고 있기 때문에 정경으로 확정되었다.

    그 다음은 책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는가가 중요한 관건이다.

기독교 초기부터 정경의 목록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목록이 만들어지다가 후에 몇 차례 교회 회의를 거치면서 정경의 목록은 서서히 결정된 것이다.

따라서 어떤 책이 기독교인들에게 얼마나 많이 읽히고 자주 인용되었는지는 정경의 목록을 확정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요한계시록이나 요한 3서 같은 것은 기독교 초기시대에 널리 읽히지 않았어도 교부들에 의해 빈번히 인용됨으로써 정경이 된 책들이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요소는 그리스도 중심적인가라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구약이 주님을 증거하고 있다고 하셨다.

따라서 구약은 메시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과 증거들이며, 신약은 오신 주님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므로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어떤 책에서 외형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없을지라도 메시지에서 주님을 증거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 중심적이라는 정경의 결정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정경 형성의 과정  이상에서 보다시피 정경을 결정하는 분명한 기준이 있었지만, 실제로 성경책 66권이 정경으로 확정되기까지는 역사적으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기독교 초기에는 현재 정경으로 삼고 있는 책들 중에서도 일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고, 그밖에도 외경과 위경들이 가세하여 도대체 어떤 책이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인지 분별해야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또한 성경책의 권수와 배열까지도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오랜 세월 많은 과정을 거쳐서 비로소 지금과 같은 모습의 정경의 틀이 갖춰진 것이다.

정경화는 하나님께서 영감하신 책들을 수집하여 확정하는 일을 가리키는데, 구약과 신약이 각각 어떤 과정을 통해 지금의 정경으로 확정되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구약)   구약 성경이 지금의 정경으로 확정된 것은 AD 90년 얌니야에서 있었던 랍비들의 회의에서였다.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히브리어 구약 성경은 3부 24권으로 되어있는데, 39권으로 되어있는 기독교의 구약과 권수와 배열은 서로 다르지만 내용은 동일하다.

권수와 배열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기독교의 구약이 대체로 내용 중심으로 편성된 70인경을 따르고 있는 반면, 유대인의 구약은 각 권의 책이 형성되고 모아진 역사와 시대에 따라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성경은 우선 율법(토라)과 예언서(네비임)와 성문서(케투빔)의 3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세 글자의 첫 머리 글자를 합쳐서 보통 타나크(   )라고 부르기도 한다.

율법은 소위 모세 5경으로서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5권으로 되어있으며, 이는 기독교의 구약의 구성과 같다.

   다음은 8권으로 된 예언서로서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과 한 묶음의 소선지서가 들어있다.

특이한 것은 보통 역사서로 분류하는 대부분의 책들이 여기에 포함된다는 사실이다.

즉, 여호수아를 비롯하여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가 예언서에 들어있는데, 그 까닭은 예언의 개념을 율법의 해석과 그 적용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율법을 삶 속에서 적용하던 시대의 기록이 포함된 것이다.

또 예언서 중에서 소선지서는 12권을 하나로 묶어서 1권으로 취급하는 것이 특이하다.

   마지막으로 11권의 성문서가 있는데, 케투빔이라는 말은 그밖에 기록된 문서들이라는 뜻으로 이것들은 가장 나중에 정경으로 확정된 것들이다.

여기에는 보통 시가서로 분류되는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및 아가가 포함되며, 역사서 중에서 역대기(상하)를 비롯해서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1권으로 포함되며, 에스더 역시 성문서로 분류되었다.

그밖에 예언서 중에 다니엘서가 성문서에 포함되며, 룻기와 애가가 더해져서 11권이 된 것이다.

     히브리어 구약 성경의 형성과정을 보면 처음부터 모든 책이 정경으로 인정된 것은 아니며, 24권의 책으로 확정되기까지 많은 논쟁을 거쳐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

그 중에는 처음부터 모든 사람들에게 의심 없이 정경으로 받아들여진 것들도 있었고, 몇몇 교부들에게 논란거리가 되었던 것도 있었으며, 일부 사람들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보편적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은 외경으로 불리는 것들과 모든 사람들에게 기각된 위경이 있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정경으로 받아들여지고 나서 한 번도 의심되지 않은 것들을 호몰로구메나(Homologoumena)라고 하는데, 히브리어 성경으로는 19권이며 개신교 구약으로는 34권의 책이다.

즉 5권의 논란이 있었던 책을 제외한 오늘날 구약으로 삼고 있는 대부분의 책이 호몰로구메나였다.

   다음으로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고 약간의 논란이 있다가 나중에 정경에 포함된 책들이 있는데, 이를 안틸레고메나(Antilegomena)라고 한다.

이들은 한때 몇몇 랍비들과 후대의 교부들에게 논란거리가 되었던 아가, 전도서, 에스더, 에스겔, 잠언의 5권의 책을 가리킨다.

샴마이 학파는 아가(雅歌)의 관능적인 표현 때문에 정경성을 의심하였으나, 랍비 아키바에 의해 정경으로 채택되었다.

후대에 교부들에 의해서도 아가에 나타난 결혼의 거룩성과 신비를 통해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을 상징을 이해함으로써 정경성이 지지되었다.

   전도서는 랍비 아키바마저도 약간 의심스럽다고 했을 정도로 아가보다도 정경성이 더 의심되었는데 그 까닭은 회의적인 내용 때문이다.

그러나 전도서의 모든 내용은 회의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결론으로 인도하는 훌륭한 교훈을 주고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본분(전 12:13)이라는 말씀은 곧 가장 성경적인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에스더서는 글 중에 하나님의 이름이 전혀 나타나지 않음으로써 정경성을 의심받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는 역사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는데다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느끼고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있도록 믿음의 동기를 부여케 하는 책임에 틀림없기 때문에 정경으로 확정될 수밖에 없었다.

    에스겔은 샴마이 학파에 의해 모세오경에서 가르친 율법의 내용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이유로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들은 심지어 에스겔의 어떤 부분들이 영지주의적인 가르침을 포함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정말로 토라와 모순되는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지는 못했으며, 그러한 오해를 한 것은 어디까지나 지나친 문자주의적인 해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일부 오해가 있었음에도 에스겔은 정경으로 인정된 것이다.

[정경은] 알아보자

   잠언은 논리적으로 모순되어 보이는 표현들이 있기 때문에 정경성을 의심받았던 책이다.

예를 들어 잠 26:4-5은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네가 그와 같을까 하노라.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그에게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고 동일한 내용에 대해 서로 다르게 말하고 있다.

이처럼 같은 내용을 가지고 어디서는 권하는가 하면 다른 곳에서는 금하는 것이 있어서 이러한 논리적 모순이 논박의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이는 문맥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소치였으며, 현대 해석에서 'Case by case'라는 원리에 따르면 사실 아무 잘못도 아닌 것이다.

    다음은 안틸레고메나와는 정반대로, 일부 사람들에 의해 받아들여졌으나 더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정경에서 제외된 것들인 외경(Apocrypha)이 있다.

이 말은 헬라어 '감추다'라는 뜻에서 파생되어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에스드라 2서를 제외한 대부분의 외경은 신구약 공백기인 BC 4-2세기에 만들어졌는데, 사해사본에도 포함되어 있고 70인경에는 39권의 책과 분리되어 수록되어 있었다.

   구약 외경은 전체 15권으로서, 2권의 지혜서(솔로몬의 지혜서, 벤 시락의 지혜서)와 2권의 소설류(토빗트, 유디트), 그리고 3권의 역사서(에스드라 1서, 마카비 1서, 마카비 2서)와 1권의 선지서(바룩), 그리고 3권의 전설류(에스더 속편, 수산나, 벨과 용)와 그밖에 기도서나 잡서로 분류되는 4권의 책(므낫세의 기도, 아사랴의 기도, 예레미야의 편지, 에스드라 2서)이 있다.

   외경은 날조된 듯한 역사와 비도덕적인 내용, 그리고 출처불명의 전설과 환상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서 성경보다 훨씬 저급한 것으로 여겨지면서도 항상 성경 주위를 맴돌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 왔고, 초대 교회 교부들 중에서 외경을 인용하는 예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교부들 중에서 이레니우스 같은 이는 외경을 정경처럼 취급하지 말아야 할 것을 주장하였고, 제롬은 자신의 벌게이트 라틴역에서 가장 확실하게 외경을 정경과 분리해야 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거스틴 같은 교부는 외경을 정경과 같이 취급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으며, 이는 중세 카톨릭 교회가 외경을 정경으로 삼는데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다.

   카톨릭 교회는 1546년 트렌트 종교회의에서 에스드라 1,2서와 므낫세의 기도의 3권을 제외한 12권의 외경을 포함하여 자신들의 정경을 삼았다.

개신교에서는 종교개혁 초기부터 당연히 외경을 제외하였으나, 처음에는 성도의 경건한 삶과 신앙에 유익을 주는 책으로 인정하여 읽는 것을 권장하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모든 자들이 한결같이 거부한 책들이 위경(Pseudepigrapha)이다.

이는 헬라어로 '거짓된 책'이라는 뜻이다.

위경은 외경과 마찬가지로 신구약 중간기에 씌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며, 그 내용은 완전 허구로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간혹 성경에 그 일부가 인용된 일이 있고, 당시에 히브리인들에게는 문학작품으로서 가치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본다.

   위경은 외경보다 숫자가 많은데 보통 18권 정도를 언급한다.

4권의 전설적인 것(희년서, 아리스테아스의 편지, 아담과 하와, 이사야 순교)과 7권의 묵시적인 책(에녹 1, 2서, 열두 족장의 이야기, 시빌의 신탁, 모세의 승천기, 바룩 2, 3서)이 있으며, 4권의 교훈적인 것(마카비 3, 4서, 피르케 아봇, 아히카르 이야기)과 2권의 시적인 것(솔로몬의 시편, 시편 151편)과 1권의 역사적인 책(사독의 전쟁)이 있다.

개신교는 위경은 아예 책으로 취급도 하지 않지만, 카톨릭에서는 위경들을 외경이라는 이름으로 성경에 포함시키고 있다.

 (신약)  신약의 경우 영감되어진 책을 수집하여 확정하게 된 과정에는 초기 기독교부터 발흥하였던 이단에 의한 강한 자극이 촉진제가 되었다.

많은 이단적인 가르침을 근절시킬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는 것이었데, 그런 와중에 이단이었던 마르키온이 제일 먼저 정경의 목록을 만들었다는 것은 아이러니칼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는 물론 기독교의 정경 목록과는 달랐지만 이러한 자들의 무분별한 주장 때문에 혼란이 가중되었고, 이에 따라 성도들이 이단에게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경은 시급하게 결정될 필요가 있었다.

이단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일 뿐 아니라 이방 선교에 힘을 더하기 위해 기독교의 성경이 정경으로 확정되는 일이 필요하였고 또한 박해에 대항하여 성경을 보존하기 위해서도 정경화 작업은 시급했다.

    신약은 393년 북아프리카 히포와 397년의 카르타고의 두 번에 걸친 공의회에서 현재와 같은 27권의 신약 성경이 정경으로 공인되었다.

신약 성경의 정경화 과정에서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구약에서와 마찬가지로 네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호몰로구메나(Homologoumena)는 20권이었다.

여기에는 4권의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비롯해서 바울 사도의 13편의 편지들과 베드로전서 및 요한 일서가 포함되었는데, 현재의 신약 27권 중에서 7권을 제외한 20권의 책에 대해서는 마르키온 같은 이단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부터 정경성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부에 의해 의심받았던 책인 안틸레고메나(Antilegomena)는 7권이었는데, 그 책들은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 2, 3서, 유다서와 요한계시록이었다.

히브리서는 저자를 알 수 없다는 것과 일부 이단이 그 내용을 왜곡하여 많이 의존하고 또 인용하였기 때문에 정경으로 수납되는데 시일이 걸렸다.

   야고보서는 기록자인 야고보의 저작의 진실성과 함께 그 내용에 있어서 믿음에 의한 칭의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듯한 행위를 강조하는 믿음이 문제가 되어 정경성이 의심되었으나, 제롬과 어거스틴 유세비우스 등의 교부들이 정경성을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심지어 종교개혁가인 마르틴 루터까지도 야고보서가 가르치는 진정한 믿음의 의미를 오해하고 자신의 이신칭의 교리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여겨서 '지푸라기 성경'이라고 혹평하기도 하였지만, 야고보서는 바울 사도의 서신들과 믿음에 관하여 상호보완적인 가르침을 주는 확실한 정경으로 인정되는데 문제가 없었다.

    베드로후서는 정경이 되기까지 가장 의문이 많았는데, 심지어 칼빈까지도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한 정도였다.

정경성을 의심한 까닭은 베드로전서와 문체가 다르고 일부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인데, 그 진실성에 대하여 끊임없이 연구한 결과 언어학적으로 또 교회적 관점에서 베드로 사도의 특징을 잘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베드로전서와 유사한 점이 많이 발견됨으로써 지금은 더 이상 정경임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요한 2, 3서는 내용에 있어서 너무나 개인적인 성격을 띄고 있고, 또 매우 제한적으로 유포되어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편지였기 때문에 정경성이 의심되었다.

또 저자인 요한이 자신을 사도가 아니라 장로라고 한 것도 편지의 권위를 의심받게 한 요인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도들도 자신을 장로라고 말한 적이 있는 점과 요한 1서와의 문체나 사상이 유사한 점 등으로 말미암아 정경으로 채택되었다.

   유다서는 에녹서의 인용(14절)과 모세의 승천기에 대한 인용(9절) 때문에 논란이 많았던 책이다.

이러한 위경을 인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정경으로 의심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 사람은 터툴리안이다.

그는 바울 사도도 필요한 경우 이방인들의 말을 인용한 것(행 17:28, 고전 15:33, 딛 1:12)을 제시하면서, 위경을 인용하였다고 잘못은 아니며 오히려 성경에 인용된 것이라면 그 부분만큼은 진리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요한계시록은 천년왕국 교리를 비롯해서 많은 묵시적 표현들에 대한 논쟁으로 쉽게 정경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특히 이단들이 자신들의 천년왕국 교리를 지지하기 위해 많이 인용하였기 때문에 더욱더 정경화 작업이 늦어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많은 교부와 주교들이 이에 반대하는 소리가 높았으나, 특정 교리를 강조하는 것과 관련된 논박이 잠잠해지면서 사도적 권위가 입증되고 결국 영감받은 책으로 확정되었다.

   다음은 일부에 의해 수용되었어도 정경이 되지는 못한 외경(Apocrypha)이 있다.

외경은 정경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꽤 넓은 지역에서 오랫동안 수용되고 유포된 책들로서 정경에는 못 미치나 나름대로는 가치가 있었다고 여겨지는 몇 권의 책들이다.

이는 일부 종파와 이단들이 오랫동안 자신들의 정경으로 사용하고 설교와 신앙의 근거로 삼기까지 하였다.

신약 외경은 대부분 사도를 계승한 속사도의 저작이 많으며 간혹 사도의 작품이라고 하는 것도 있지만, 친저성(親著性)이 극히 의심되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따라서 사실상 그 숫자는 매우 많지만 유명한 것들은 대개 다음 10여 편에 이르는데, 외경 중에 어떤 책은 외경이라고 말하기보다는 기독교 초기에 저술된 신앙 서적으로 보는 것이 좋은 책들도 있을 것이다.

   먼저, 위(僞)바나바 서신은 시내산 필사본에 들어있는데, 2세기경 어떤 사람이 바나바 사도의 이름으로 쓴 편지 형식의 교훈서이다.

히브리서를 닮았는데 더 풍유적이고 비유적이며, 알렉산드리아 학파인 클레멘트와 오리겐은 정경으로 간주하기도 하였다.

   다음, 클레멘트의 고린도서신은 알렉산드리아 필사본에 포함되어 있으며, 바울 사도의 고린도전서와 히브리서를 많이 본받은 내용으로 되어있는데, 이 역시 고린도를 비롯해 많은 지역에서 읽힌 것 같다.

한편 클레멘트의 제 2서신도 알렉산드리아 필사본에 들어있는데, 같이 많이 읽혔던 책으로 여겨진다.

   헤르마스의 목자(Shepherd)는 시내산 사본에 들어있는데 외경 가운데 가장 인기가 있었던 책으로 초기 교회에서 공적으로 읽혀졌는데, 신앙적이고 윤리적인 면에서 정경에 버금간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레니우스와 오리겐은 영감된 책으로 여기기까지 하였다.

   다음은 열두 사도의 디다케라는 것이 있는데, 초기 기독교 교회에서 매우 존중되었고 클레멘트나 아타나시우스 등의 교부들에 의해 정경으로 인용되기까지 하였으나 친저성의 의심으로 정경이 되지는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신약과 교부들의 문헌 사이를 잇는 교량 역할을 하는 중요한 책임에는 틀림없다.

   바울과 데글라 행전이라는 책은 베자사본의 목차에 들어있는데, 오리겐에 의해 자주 언급되었으며, 그 내용은 사도행전 14:1-7에서 바울 사도가 이오니아 전도시 만난 데글라라는 여인의 회심에 관한 이야기로서,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을 둔 것으로 여겨지지만 허구가 너무 많이 섞여서 그 가치를 잃고 있다.

   폴리캅은 요한 사도의 제자로서 빌립보서를 쓴 것이 전해진다.

그는 사도들에게 배운 교회의 전승을 가르친다고 하였으므로 그가 쓴 빌립보서는 사도들의 서신과 가장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사도들처럼 직접 영감을 받은 것은 아니므로 정경이 되지는 못하였다.

   이그나티우스 역시 요한 사도의 제자로서 로마 교회 등에 보내는 일곱 통의 편지를 썼는데, 그 내용은 신약 교훈들과 상당히 유사하여 가시적인 교회의 일치를 가르치고 있으며, 주교 중심의 교회 정치에 대한 강한 믿음을 표현하고 있어서 후세에 교회론을 정립하는데 큰 도움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마지막으로 위경(Pseudepigrapha)이 있는데 긍정적인 신학적 가치가 전혀 없으며, 역사적인 가치를 도무지 갖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한결같이 부인된 책들이다.

글자 그대로 가짜 성경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는 영지주의, 도케티즘(가현설주의), 금욕주의 등 각종 이단들이 자신들의 교리를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특별히 조작한 내용들이 많이 포함되어있다.

따라서 신앙에 유익을 주지는 못하고 다만 초기 교회 시대의 종교적인 문헌으로 평가될 뿐이다.

    신약 위경은 복음서 종류가 가장 많아서 약 20여 권 정도가 존재했는데, 도마복음, 베드로복음, 야고보복음, 니고데모복음을 비롯해서 요셉의 생애, 마리아 탄생기와 승천기, 예수님의 유년시절의 기록 등이 있다.

이들 대부분은 정경 복음서에 없는 내용들에 대하여 알기 원하는 대중들의 욕망을 채워주고자 기록한 것들로 여겨진다.

   다음은 사도들의 행전으로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죽었다는 전설을 담고있는 베드로행전을 비롯하여, 영지주의적 경향이 있는 요한행전과 역시 영지주의적이며 금욕주의적인 안드레행전이 있고, 인도로 갔던 도마가 수난을 당했다는 도마행전과 그밖에 맛디아행전, 빌립행전, 다대오행전과 바울행전 등이 있다.

   다음, 서신으로는 주님의 편지, 분실된 고린도서신, 세네카에게 보낸 바울의 서신과 라오디게아 서신이 있는데, 이중에서 라오디게아서는 골 4:16을 근거로 바울 사도가 보낸 편지처럼 위조하여 제롬이 자신의 벌게이트에서 바울의 이름을 빌려 처음으로 썼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위조 서신임에 틀림없는데도 6세기부터 15세기까지 많은 라틴어 성경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종교개혁시기까지 독일어 성경과 영어 성경 등에 나타날 정도로 널리 읽혔던 것 같다.

그것은 다른 위조물과 달리 내용상 전혀 해가 없이 신앙에 유익을 줄 만한 것들이 포함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묵시적인 것들로는 베드로묵시록, 바울묵시록, 도마묵시록, 스데반묵시록 등이 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베드로묵시록인데 이는 꽤 재미있는 내용으로 인기가 있어서 많이 읽히기는 했지만, 베드로 친저성을 믿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또 천국과 지옥을 묘사한 내용이 하도 기괴하여 한 때 교회는 그것을 읽는 것을 금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 중세 문학에 영향을 많이 끼쳤고, 특히 단테의 신곡은 여기서 많은 이미지를 착안했을 것이다.

   출처 :아르케아카데미(http://blog.daum.net/okhi6565/16918521)   정경(Canon)이란 헬라어 카논(     )을 번역한 말로서 원래는 '곧은 막대기' 또는 '지팡이'라는 뜻인데, 척도를 재는 '자'라는 말로 사용되다가 점차 '기준' 또는 '규칙' 등 행위나 기술의 규범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고, 나중에 4세기경에 이르러 성경에 적용되면서 '정경'이라는 말로 된 것이다.

   어원에서 살펴보듯이 기독교에서 정경이라고 할 때는 성경이 기독교의 교리와 신앙의 기준이며 규범이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기독교인의 모든 문제를 처리하는데 기준이 되며, 기독교 신앙의 이름으로 주장되는 사상이나 실천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규범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성경은 수천년의 역사 속에서 영감을 받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되어 신적 권위를 가지고 신앙의 근거로서 위치하여왔다.

 정경의 결정기준  정경은 어떤 기준에 의해 결정되었는가? 여러 가지 견해가 있으나, 오래된 연대 혹은 종교적인 가치로 정경이 결정되었다는 견해는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오래된 책들 중에는 '여호와의 전쟁기(민 21:14)'나 '야살의 책(수 10:13)' 등 모세의 율법서보다 오래된 책들이 있지만, 이런 책들이 정경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정경이란 반드시 오래된 연대와 관련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또 정경에 포함되지 않은 많은 외경과 위경 중에는 에녹서(유 1:14) 등 성경에도 인용될 정도로 종교적 가치가 있었지만 정경에서 제외된 것들이 있다.

따라서 종교적 가치로 정경을 결정한 것도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정경은 누가 어떤 근거로 결정하였으며, 또 그렇게 확정된 정경에는 하나님의 뜻이 완전하게 드러났다고 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만일 정경으로 확정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판단으로 결정되었다면 오류의 잠재성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정경의 결정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야만 하는데, 정경을 하나님께서 결정하셨다는 근거를 찾아볼 수 있겠는가?   정경성을 하나님께서 결정하셨다는 증거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나타난다.

주님은 히브리어 구약 39권(히브리 성경으로는 24권)이 모두 권위가 있고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셨다.

구약을 인용하고 언급하실 때마다 율법과 선지서 그리고 시편을 포함한 성문서까지 모두 주님에 대해서 증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셨으며, 이는 구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신앙의 규범인 정경성을 가진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구약이 주님께서 증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주님께서 결정하신 정경이라면 신약은 구약의 성취로서 주님의 말씀인 바 더욱더 정경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주님의 말씀과 뜻을 제자들이 기록한 신약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정경을 결정하신 것을 하나님의 사람들이 인정하고 수납한 것이 바로 정경화 과정이었다고 이해하면 된다.

다시 말하면 정경 그 자체는 주님께서 결정하셨으므로 하나님의 결정이었다면,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정경을 착오없이 사람들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간섭을 받았다는 것이다.

또 달리 표현하면 하나님께서 정경을 결정하신 것을 교회가 발견하고 보존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경을 하나님께서 결정하셨어도 그것을 인정하고 발표하여 확정짓는 작업은 인간 편에서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를 정경화(Canonization)라고 하며 여기에도 오류가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정경이라고 믿을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들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경으로 인정할 수 있는 기준으로 제시되는 것들로는 다음의 것들을 들 수 있다.

   첫째는 신구약을 막론하고 신적 권위가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이는 선지서들이 인정받은 방법으로서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와 같이 성경의 말씀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내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는가 라는 것이다.

많은 외경과 위경들은 신적인 권위가 없으므로 기각되었는데, 간혹 그것들도 권위를 주장하는 표현들이 없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도가 아닌 인간 기록자의 얄팍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에 당연히 정경에서 제외되었다.

    다음은 어떤 책이 선지자적이며 사도적인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40명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1,500년간 기록된 성경들이 저마다의 독특한 주제와 특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를 하나로 관통하는 놀라운 통일성과 구속사적 계시의 흐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바로 선지자나 사도에 의해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하나님의 사람들은 성경을 기록하면서 자신들의 선지자 혹은 사도 됨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고 한결같이 드러내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어떤 책들은 선지자와 사도의 이름을 도용하였지만, 문체나 역사적 진실성에서 거짓임이 드러났기 때문에 정경에서 제외된 것들도 있다.

   다음으로는 기록된 내용이 역사적 신뢰성과 도적적 적합성을 가졌는지의 여부이다.

사실이 아닌 허구를 기록하거나 진실을 왜곡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면 그것들은 진리가 아니며, 당연히 하나님께서 정경으로 결정하신 책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교적 가르침이 있거나 증거들이 참되지 못한 책들은 정경에서 제외되었는데, 특이하게 유다서 같은 경우는 위경을 인용했어도 거짓된 내용을 말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한 때 의심받다가 나중에 정경으로 확정되었다.

     또 정경성의 중요한 단서는 말씀에 능력이 있는가 라는 것이었다.

교부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기(히 4:12과 벧전 1:23) 때문에 사람을 교화시키고 복음화시키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으며, 따라서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없는 말씀은 아무리 그럴듯하고 기교가 많아도 정경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성경은 사람의 지혜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드러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살아있는 책이므로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책들이 정경이 된 것은 외형적인 표현보다는 그 메시지에서 나오는 힘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구약의 아가(雅歌)와 전도서는 각각 관능적인 표현과 회의적인 내용 때문에 정경성을 의심받았으나 영적인 메시지를 주고 있기 때문에 정경으로 확정되었다.

    그 다음은 책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는가가 중요한 관건이다.

기독교 초기부터 정경의 목록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목록이 만들어지다가 후에 몇 차례 교회 회의를 거치면서 정경의 목록은 서서히 결정된 것이다.

따라서 어떤 책이 기독교인들에게 얼마나 많이 읽히고 자주 인용되었는지는 정경의 목록을 확정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요한계시록이나 요한 3서 같은 것은 기독교 초기시대에 널리 읽히지 않았어도 교부들에 의해 빈번히 인용됨으로써 정경이 된 책들이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요소는 그리스도 중심적인가라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구약이 주님을 증거하고 있다고 하셨다.

따라서 구약은 메시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과 증거들이며, 신약은 오신 주님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므로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어떤 책에서 외형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없을지라도 메시지에서 주님을 증거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 중심적이라는 정경의 결정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정경 형성의 과정  이상에서 보다시피 정경을 결정하는 분명한 기준이 있었지만, 실제로 성경책 66권이 정경으로 확정되기까지는 역사적으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기독교 초기에는 현재 정경으로 삼고 있는 책들 중에서도 일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고, 그밖에도 외경과 위경들이 가세하여 도대체 어떤 책이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인지 분별해야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또한 성경책의 권수와 배열까지도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오랜 세월 많은 과정을 거쳐서 비로소 지금과 같은 모습의 정경의 틀이 갖춰진 것이다.

정경화는 하나님께서 영감하신 책들을 수집하여 확정하는 일을 가리키는데, 구약과 신약이 각각 어떤 과정을 통해 지금의 정경으로 확정되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구약)   구약 성경이 지금의 정경으로 확정된 것은 AD 90년 얌니야에서 있었던 랍비들의 회의에서였다.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히브리어 구약 성경은 3부 24권으로 되어있는데, 39권으로 되어있는 기독교의 구약과 권수와 배열은 서로 다르지만 내용은 동일하다.

권수와 배열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기독교의 구약이 대체로 내용 중심으로 편성된 70인경을 따르고 있는 반면, 유대인의 구약은 각 권의 책이 형성되고 모아진 역사와 시대에 따라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성경은 우선 율법(토라)과 예언서(네비임)와 성문서(케투빔)의 3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세 글자의 첫 머리 글자를 합쳐서 보통 타나크(   )라고 부르기도 한다.

율법은 소위 모세 5경으로서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5권으로 되어있으며, 이는 기독교의 구약의 구성과 같다.

   다음은 8권으로 된 예언서로서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과 한 묶음의 소선지서가 들어있다.

특이한 것은 보통 역사서로 분류하는 대부분의 책들이 여기에 포함된다는 사실이다.

즉, 여호수아를 비롯하여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가 예언서에 들어있는데, 그 까닭은 예언의 개념을 율법의 해석과 그 적용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율법을 삶 속에서 적용하던 시대의 기록이 포함된 것이다.

또 예언서 중에서 소선지서는 12권을 하나로 묶어서 1권으로 취급하는 것이 특이하다.

   마지막으로 11권의 성문서가 있는데, 케투빔이라는 말은 그밖에 기록된 문서들이라는 뜻으로 이것들은 가장 나중에 정경으로 확정된 것들이다.

여기에는 보통 시가서로 분류되는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및 아가가 포함되며, 역사서 중에서 역대기(상하)를 비롯해서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1권으로 포함되며, 에스더 역시 성문서로 분류되었다.

그밖에 예언서 중에 다니엘서가 성문서에 포함되며, 룻기와 애가가 더해져서 11권이 된 것이다.

     히브리어 구약 성경의 형성과정을 보면 처음부터 모든 책이 정경으로 인정된 것은 아니며, 24권의 책으로 확정되기까지 많은 논쟁을 거쳐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

그 중에는 처음부터 모든 사람들에게 의심 없이 정경으로 받아들여진 것들도 있었고, 몇몇 교부들에게 논란거리가 되었던 것도 있었으며, 일부 사람들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보편적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은 외경으로 불리는 것들과 모든 사람들에게 기각된 위경이 있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정경으로 받아들여지고 나서 한 번도 의심되지 않은 것들을 호몰로구메나(Homologoumena)라고 하는데, 히브리어 성경으로는 19권이며 개신교 구약으로는 34권의 책이다.

즉 5권의 논란이 있었던 책을 제외한 오늘날 구약으로 삼고 있는 대부분의 책이 호몰로구메나였다.

   다음으로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고 약간의 논란이 있다가 나중에 정경에 포함된 책들이 있는데, 이를 안틸레고메나(Antilegomena)라고 한다.

이들은 한때 몇몇 랍비들과 후대의 교부들에게 논란거리가 되었던 아가, 전도서, 에스더, 에스겔, 잠언의 5권의 책을 가리킨다.

샴마이 학파는 아가(雅歌)의 관능적인 표현 때문에 정경성을 의심하였으나, 랍비 아키바에 의해 정경으로 채택되었다.

후대에 교부들에 의해서도 아가에 나타난 결혼의 거룩성과 신비를 통해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을 상징을 이해함으로써 정경성이 지지되었다.

   전도서는 랍비 아키바마저도 약간 의심스럽다고 했을 정도로 아가보다도 정경성이 더 의심되었는데 그 까닭은 회의적인 내용 때문이다.

그러나 전도서의 모든 내용은 회의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결론으로 인도하는 훌륭한 교훈을 주고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본분(전 12:13)이라는 말씀은 곧 가장 성경적인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에스더서는 글 중에 하나님의 이름이 전혀 나타나지 않음으로써 정경성을 의심받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는 역사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는데다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느끼고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있도록 믿음의 동기를 부여케 하는 책임에 틀림없기 때문에 정경으로 확정될 수밖에 없었다.

    에스겔은 샴마이 학파에 의해 모세오경에서 가르친 율법의 내용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이유로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들은 심지어 에스겔의 어떤 부분들이 영지주의적인 가르침을 포함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정말로 토라와 모순되는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지는 못했으며, 그러한 오해를 한 것은 어디까지나 지나친 문자주의적인 해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일부 오해가 있었음에도 에스겔은 정경으로 인정된 것이다.

   잠언은 논리적으로 모순되어 보이는 표현들이 있기 때문에 정경성을 의심받았던 책이다.

예를 들어 잠 26:4-5은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네가 그와 같을까 하노라.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그에게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고 동일한 내용에 대해 서로 다르게 말하고 있다.

이처럼 같은 내용을 가지고 어디서는 권하는가 하면 다른 곳에서는 금하는 것이 있어서 이러한 논리적 모순이 논박의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이는 문맥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소치였으며, 현대 해석에서 'Case by case'라는 원리에 따르면 사실 아무 잘못도 아닌 것이다.

    다음은 안틸레고메나와는 정반대로, 일부 사람들에 의해 받아들여졌으나 더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정경에서 제외된 것들인 외경(Apocrypha)이 있다.

이 말은 헬라어 '감추다'라는 뜻에서 파생되어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에스드라 2서를 제외한 대부분의 외경은 신구약 공백기인 BC 4-2세기에 만들어졌는데, 사해사본에도 포함되어 있고 70인경에는 39권의 책과 분리되어 수록되어 있었다.

   구약 외경은 전체 15권으로서, 2권의 지혜서(솔로몬의 지혜서, 벤 시락의 지혜서)와 2권의 소설류(토빗트, 유디트), 그리고 3권의 역사서(에스드라 1서, 마카비 1서, 마카비 2서)와 1권의 선지서(바룩), 그리고 3권의 전설류(에스더 속편, 수산나, 벨과 용)와 그밖에 기도서나 잡서로 분류되는 4권의 책(므낫세의 기도, 아사랴의 기도, 예레미야의 편지, 에스드라 2서)이 있다.

   외경은 날조된 듯한 역사와 비도덕적인 내용, 그리고 출처불명의 전설과 환상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서 성경보다 훨씬 저급한 것으로 여겨지면서도 항상 성경 주위를 맴돌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 왔고, 초대 교회 교부들 중에서 외경을 인용하는 예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교부들 중에서 이레니우스 같은 이는 외경을 정경처럼 취급하지 말아야 할 것을 주장하였고, 제롬은 자신의 벌게이트 라틴역에서 가장 확실하게 외경을 정경과 분리해야 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거스틴 같은 교부는 외경을 정경과 같이 취급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으며, 이는 중세 카톨릭 교회가 외경을 정경으로 삼는데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다.

   카톨릭 교회는 1546년 트렌트 종교회의에서 에스드라 1,2서와 므낫세의 기도의 3권을 제외한 12권의 외경을 포함하여 자신들의 정경을 삼았다.

개신교에서는 종교개혁 초기부터 당연히 외경을 제외하였으나, 처음에는 성도의 경건한 삶과 신앙에 유익을 주는 책으로 인정하여 읽는 것을 권장하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모든 자들이 한결같이 거부한 책들이 위경(Pseudepigrapha)이다.

이는 헬라어로 '거짓된 책'이라는 뜻이다.

위경은 외경과 마찬가지로 신구약 중간기에 씌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며, 그 내용은 완전 허구로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간혹 성경에 그 일부가 인용된 일이 있고, 당시에 히브리인들에게는 문학작품으로서 가치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본다.

   위경은 외경보다 숫자가 많은데 보통 18권 정도를 언급한다.

4권의 전설적인 것(희년서, 아리스테아스의 편지, 아담과 하와, 이사야 순교)과 7권의 묵시적인 책(에녹 1, 2서, 열두 족장의 이야기, 시빌의 신탁, 모세의 승천기, 바룩 2, 3서)이 있으며, 4권의 교훈적인 것(마카비 3, 4서, 피르케 아봇, 아히카르 이야기)과 2권의 시적인 것(솔로몬의 시편, 시편 151편)과 1권의 역사적인 책(사독의 전쟁)이 있다.

개신교는 위경은 아예 책으로 취급도 하지 않지만, 카톨릭에서는 위경들을 외경이라는 이름으로 성경에 포함시키고 있다.

 (신약)  신약의 경우 영감되어진 책을 수집하여 확정하게 된 과정에는 초기 기독교부터 발흥하였던 이단에 의한 강한 자극이 촉진제가 되었다.

많은 이단적인 가르침을 근절시킬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는 것이었데, 그런 와중에 이단이었던 마르키온이 제일 먼저 정경의 목록을 만들었다는 것은 아이러니칼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는 물론 기독교의 정경 목록과는 달랐지만 이러한 자들의 무분별한 주장 때문에 혼란이 가중되었고, 이에 따라 성도들이 이단에게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경은 시급하게 결정될 필요가 있었다.

이단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일 뿐 아니라 이방 선교에 힘을 더하기 위해 기독교의 성경이 정경으로 확정되는 일이 필요하였고 또한 박해에 대항하여 성경을 보존하기 위해서도 정경화 작업은 시급했다.

    신약은 393년 북아프리카 히포와 397년의 카르타고의 두 번에 걸친 공의회에서 현재와 같은 27권의 신약 성경이 정경으로 공인되었다.

신약 성경의 정경화 과정에서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구약에서와 마찬가지로 네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호몰로구메나(Homologoumena)는 20권이었다.

여기에는 4권의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비롯해서 바울 사도의 13편의 편지들과 베드로전서 및 요한 일서가 포함되었는데, 현재의 신약 27권 중에서 7권을 제외한 20권의 책에 대해서는 마르키온 같은 이단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부터 정경성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부에 의해 의심받았던 책인 안틸레고메나(Antilegomena)는 7권이었는데, 그 책들은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 2, 3서, 유다서와 요한계시록이었다.

히브리서는 저자를 알 수 없다는 것과 일부 이단이 그 내용을 왜곡하여 많이 의존하고 또 인용하였기 때문에 정경으로 수납되는데 시일이 걸렸다.

   야고보서는 기록자인 야고보의 저작의 진실성과 함께 그 내용에 있어서 믿음에 의한 칭의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듯한 행위를 강조하는 믿음이 문제가 되어 정경성이 의심되었으나, 제롬과 어거스틴 유세비우스 등의 교부들이 정경성을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심지어 종교개혁가인 마르틴 루터까지도 야고보서가 가르치는 진정한 믿음의 의미를 오해하고 자신의 이신칭의 교리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여겨서 '지푸라기 성경'이라고 혹평하기도 하였지만, 야고보서는 바울 사도의 서신들과 믿음에 관하여 상호보완적인 가르침을 주는 확실한 정경으로 인정되는데 문제가 없었다.

    베드로후서는 정경이 되기까지 가장 의문이 많았는데, 심지어 칼빈까지도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한 정도였다.

정경성을 의심한 까닭은 베드로전서와 문체가 다르고 일부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인데, 그 진실성에 대하여 끊임없이 연구한 결과 언어학적으로 또 교회적 관점에서 베드로 사도의 특징을 잘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베드로전서와 유사한 점이 많이 발견됨으로써 지금은 더 이상 정경임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요한 2, 3서는 내용에 있어서 너무나 개인적인 성격을 띄고 있고, 또 매우 제한적으로 유포되어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편지였기 때문에 정경성이 의심되었다.

또 저자인 요한이 자신을 사도가 아니라 장로라고 한 것도 편지의 권위를 의심받게 한 요인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도들도 자신을 장로라고 말한 적이 있는 점과 요한 1서와의 문체나 사상이 유사한 점 등으로 말미암아 정경으로 채택되었다.

   유다서는 에녹서의 인용(14절)과 모세의 승천기에 대한 인용(9절) 때문에 논란이 많았던 책이다.

이러한 위경을 인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정경으로 의심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 사람은 터툴리안이다.

그는 바울 사도도 필요한 경우 이방인들의 말을 인용한 것(행 17:28, 고전 15:33, 딛 1:12)을 제시하면서, 위경을 인용하였다고 잘못은 아니며 오히려 성경에 인용된 것이라면 그 부분만큼은 진리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요한계시록은 천년왕국 교리를 비롯해서 많은 묵시적 표현들에 대한 논쟁으로 쉽게 정경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특히 이단들이 자신들의 천년왕국 교리를 지지하기 위해 많이 인용하였기 때문에 더욱더 정경화 작업이 늦어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많은 교부와 주교들이 이에 반대하는 소리가 높았으나, 특정 교리를 강조하는 것과 관련된 논박이 잠잠해지면서 사도적 권위가 입증되고 결국 영감받은 책으로 확정되었다.

   다음은 일부에 의해 수용되었어도 정경이 되지는 못한 외경(Apocrypha)이 있다.

외경은 정경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꽤 넓은 지역에서 오랫동안 수용되고 유포된 책들로서 정경에는 못 미치나 나름대로는 가치가 있었다고 여겨지는 몇 권의 책들이다.

이는 일부 종파와 이단들이 오랫동안 자신들의 정경으로 사용하고 설교와 신앙의 근거로 삼기까지 하였다.

신약 외경은 대부분 사도를 계승한 속사도의 저작이 많으며 간혹 사도의 작품이라고 하는 것도 있지만, 친저성(親著性)이 극히 의심되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따라서 사실상 그 숫자는 매우 많지만 유명한 것들은 대개 다음 10여 편에 이르는데, 외경 중에 어떤 책은 외경이라고 말하기보다는 기독교 초기에 저술된 신앙 서적으로 보는 것이 좋은 책들도 있을 것이다.

   먼저, 위(僞)바나바 서신은 시내산 필사본에 들어있는데, 2세기경 어떤 사람이 바나바 사도의 이름으로 쓴 편지 형식의 교훈서이다.

히브리서를 닮았는데 더 풍유적이고 비유적이며, 알렉산드리아 학파인 클레멘트와 오리겐은 정경으로 간주하기도 하였다.

   다음, 클레멘트의 고린도서신은 알렉산드리아 필사본에 포함되어 있으며, 바울 사도의 고린도전서와 히브리서를 많이 본받은 내용으로 되어있는데, 이 역시 고린도를 비롯해 많은 지역에서 읽힌 것 같다.

한편 클레멘트의 제 2서신도 알렉산드리아 필사본에 들어있는데, 같이 많이 읽혔던 책으로 여겨진다.

   헤르마스의 목자(Shepherd)는 시내산 사본에 들어있는데 외경 가운데 가장 인기가 있었던 책으로 초기 교회에서 공적으로 읽혀졌는데, 신앙적이고 윤리적인 면에서 정경에 버금간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레니우스와 오리겐은 영감된 책으로 여기기까지 하였다.

   다음은 열두 사도의 디다케라는 것이 있는데, 초기 기독교 교회에서 매우 존중되었고 클레멘트나 아타나시우스 등의 교부들에 의해 정경으로 인용되기까지 하였으나 친저성의 의심으로 정경이 되지는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신약과 교부들의 문헌 사이를 잇는 교량 역할을 하는 중요한 책임에는 틀림없다.

   바울과 데글라 행전이라는 책은 베자사본의 목차에 들어있는데, 오리겐에 의해 자주 언급되었으며, 그 내용은 사도행전 14:1-7에서 바울 사도가 이오니아 전도시 만난 데글라라는 여인의 회심에 관한 이야기로서,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을 둔 것으로 여겨지지만 허구가 너무 많이 섞여서 그 가치를 잃고 있다.

   폴리캅은 요한 사도의 제자로서 빌립보서를 쓴 것이 전해진다.

그는 사도들에게 배운 교회의 전승을 가르친다고 하였으므로 그가 쓴 빌립보서는 사도들의 서신과 가장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사도들처럼 직접 영감을 받은 것은 아니므로 정경이 되지는 못하였다.

   이그나티우스 역시 요한 사도의 제자로서 로마 교회 등에 보내는 일곱 통의 편지를 썼는데, 그 내용은 신약 교훈들과 상당히 유사하여 가시적인 교회의 일치를 가르치고 있으며, 주교 중심의 교회 정치에 대한 강한 믿음을 표현하고 있어서 후세에 교회론을 정립하는데 큰 도움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마지막으로 위경(Pseudepigrapha)이 있는데 긍정적인 신학적 가치가 전혀 없으며, 역사적인 가치를 도무지 갖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한결같이 부인된 책들이다.

글자 그대로 가짜 성경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는 영지주의, 도케티즘(가현설주의), 금욕주의 등 각종 이단들이 자신들의 교리를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특별히 조작한 내용들이 많이 포함되어있다.

따라서 신앙에 유익을 주지는 못하고 다만 초기 교회 시대의 종교적인 문헌으로 평가될 뿐이다.

    신약 위경은 복음서 종류가 가장 많아서 약 20여 권 정도가 존재했는데, 도마복음, 베드로복음, 야고보복음, 니고데모복음을 비롯해서 요셉의 생애, 마리아 탄생기와 승천기, 예수님의 유년시절의 기록 등이 있다.

이들 대부분은 정경 복음서에 없는 내용들에 대하여 알기 원하는 대중들의 욕망을 채워주고자 기록한 것들로 여겨진다.

   다음은 사도들의 행전으로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죽었다는 전설을 담고있는 베드로행전을 비롯하여, 영지주의적 경향이 있는 요한행전과 역시 영지주의적이며 금욕주의적인 안드레행전이 있고, 인도로 갔던 도마가 수난을 당했다는 도마행전과 그밖에 맛디아행전, 빌립행전, 다대오행전과 바울행전 등이 있다.

   다음, 서신으로는 주님의 편지, 분실된 고린도서신, 세네카에게 보낸 바울의 서신과 라오디게아 서신이 있는데, 이중에서 라오디게아서는 골 4:16을 근거로 바울 사도가 보낸 편지처럼 위조하여 제롬이 자신의 벌게이트에서 바울의 이름을 빌려 처음으로 썼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위조 서신임에 틀림없는데도 6세기부터 15세기까지 많은 라틴어 성경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종교개혁시기까지 독일어 성경과 영어 성경 등에 나타날 정도로 널리 읽혔던 것 같다.

그것은 다른 위조물과 달리 내용상 전혀 해가 없이 신앙에 유익을 줄 만한 것들이 포함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묵시적인 것들로는 베드로묵시록, 바울묵시록, 도마묵시록, 스데반묵시록 등이 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베드로묵시록인데 이는 꽤 재미있는 내용으로 인기가 있어서 많이 읽히기는 했지만, 베드로 친저성을 믿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또 천국과 지옥을 묘사한 내용이 하도 기괴하여 한 때 교회는 그것을 읽는 것을 금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 중세 문학에 영향을 많이 끼쳤고, 특히 단테의 신곡은 여기서 많은 이미지를 착안했을 것이다.

   출처 :아르케아카데미(http://blog.daum.net/okhi6565/16918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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