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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사진가의 서재 08 _ 사진가 이한구 ?5.3

5.15? 우리 땅과 해외의 고산들을 종으로 오르고 횡으로 걸으면서, 그 노정 속에서 자신의 사진세계를 구축해왔다.

소소하고 소외된 것들에 긴 시선을 두고 ‘이 땅의 숨은 예인들’ ‘애달픈 우리 농촌’을 비롯해 20년 가까이 서울 ‘청계천’ 변두리이자 중심으로서 삶의 풍경들을 찍고 있다.

<소소풍경> <군용> 등의 개인전을 가졌다.

 작가와의 만남 5월 15 일 일요일 오후 4시 ?사진가 이한구의 서가에서 옮겨온 책들을 중심으로 사담(寫談)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십여 명 안팎의 작은 모음으로 준비하니, 함께 하실 분들은 아래 배너를 통해 신청해주세요.작가와의 만남을 신청하신 분들은 '사진가의 서재'  전시를 무료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일찍 오셔서 전시된 20여점의 작품들과 사진가 이한구의 책들도 함께 보세요.?     ? 사진가 이한구의 서재는 인왕산의 칠부능선 즈음에 있다.

산을 바라기 하면서 오르는 가파른 길의 제일 끝집이니, 우리 땅과 해외의 고산들을 종으로 오르고 횡으로 걸으면서 그 노정 속에서 사진세계를 구축해 온 사진가의 거처로 어울리는 지점이다.

? 서재방 남면과 서면의 벽을 이루고 있는 책장들에는 저마다 크기며 높이가 다른 책들이 정확히 선반 전면부의 5cm 뒤에 가지런히 병렬해 꽂혀있다.

스무 살 무렵 군대에 있을 때 찍은 사진을 무던히도 묵혀두었다가 20년 만에 첫 전시 <군용>으로 선보인 것이나, 청년 시절이던 80년대부터 찍기 시작한 청계천의 기록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는 성실한 근기와 체계가 거기에서 읽힌다.

박영석원정대의 일원으로 히말라야의 고산들을 오르내리는 데에도 필요했던 가지런함일 것이다.

? 뿌리깊은나무에서 발행한 <한국의 발견> 11권 전집이 낡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책장 상단에 묵직하게 자리해 있고, <검은 고독, 흰 고독><8000미터 위와 아래><산경표를 위하여><태백산맥은 없다> 등 각종 산 관련 서적들이 많은 것도 눈에 띈다.

또한 <연암집>을 비롯하여 <목민심서> <북학의> <양화소록>에 이르기까지의 옛 고전들도, 산 관련 책들이 차지하고 있는 체적에 밀리지 않는다.

언뜻 분야가 제각각인 듯 하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모두가 오래된 것, 잊혀진 것, 소소하거나 고독한 것, 그리하여 그리운 것들에 관한 책이다.

그가 사진의 화법으로 말하고 남기고자 하는 것들이 또한 일치하니, 그가 ‘읽는’ 세계가 곧 그가 ‘낳는’ 세계임을 이한구 스스로는 ‘산방(山房)’이라고 부르는 그의 서재에서 본다.

   사진가 이한구의 책   정광식 <아이거 북벽>20대에 산에 대한 열정을 안겨준 책이다.

한국인 등반가가 아이거 북벽을 등반하고 쓴 드문 책이기 때문이다.

산에 미친 선배들의 솔직 담백한 등반은 웃음과, 열정사이를 오간다.

그렇게 아이거 등반을 꿈꾸게 한 책인데, 여전히 꿈으로 진행형이다.

 밑줄202P동상과 굶주림의 고통 속에서 하강하면서 나는 북벽을 저주했고 나의 생의 전부라고 항상 자신 있게 이야기하던 클라이밍이라는 것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다시는 클라이밍은 안 하리라고 이를 악문 지 하루가 채 가시기도 전에...우리의 다음 원정은 어디로 할까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원했다.

한스 카멀란드 <그러나 정상이 끝은 아니다>남티롤 출신의 촌뜨기 둘. 한스 카멀란드는 등반계에 있어서는 살아있는 전설인 라인홀트 매스너와 8천 미터 고봉을 함께한 자일 파트너다.

이들의 세계는 너무도 어마어마해서, 나로서는 간접체험의 세계로밖에 만나지 못한다.

등반기를 남긴 저자에게 감사했던 책이다.

 밑줄24P연이은 성공에는 아무런 피드백도 없고 전환도 없다.

오로지 승리만 맛보았다면 지혜와 판단력은 더 이상 성공하지 못하고 발육 부진에 빠지게 된다.

..사람들은 항상 내게 정상에 올랐을 때의 감정을 묻는다.

그것은 희열도 만족도 아니다.

계속 올라가야 하는 고통에서 해방 되었다는 느낌이 전부다.

성취는 산 아래로 내려 왔을 때에야 비로소 이루어진다.

피터 매티슨 <神의 山으로 떠난 여행>전 세계의 야생지대를 여행하면서 내면의 향기가 깊게 어우러진 글을 남긴 피터 매티슨이 히말라야 설산으로 눈표범을 찾아 나선 과정을 쓴 책이다.

사진가인 나는, 사진으로 그의 글을 대신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기도 했다.

 밑줄317P존경하는 마음으로 다가갔을 때에도 산은 그 ‘영속성’으로 나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그 어마어마하고 엄연한 바위의 느낌은 내 스스로에 대해 느끼는 덧 없음을 더 심하게 만들어버렸다.

아마 덧없음에 대한 이런 두려움 때문에 현대인들은 그토록 생생한 경험을 조금이나마 맛보려고 애쓰는지도 모른다.

릭 리지웨이 <아버지의 산>고산으로의 입산은 신비한 왕국으로 들어가는 거라고 여기고 있다.

그 왕국은 동료들의 우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불교에 심취한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가이자 등반가 조나단 라이트와 이본 취나드(파타고니아설립자), 릭 리지웨이는, 함께 왕국을 나들던 친구다.

등반 도중 사망한 조나단을 산에 묻고 돌아 온 두 친구가, 조나단에게 남겨진 어린 딸 ‘아시아’를 돌본다.

성장한 아시아를 데리고 조나단이 있는 산으로 가는 과정이 <아버지의 산>이다.

인연의 실타래를 다시금 소중히 여기게 한 책이다.

 ?밑줄353P나는 매일매일을 내 생애의 유일한 날처럼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 조나단은 이렇게 썼다.

“많은 날들을 낭비했고 분명 앞으로도 더 많은 날을 낭비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현실을 경험하고 받아들임으로써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두려워 하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라인홀트 매스너 <검은 고독 흰 고독>고산 등반의 전설 같은 이름, 라인홀트 매스너의 낭가파르밧 등반기이다.

매스너는 루팔벽을 초등 하고 하산 도중 동생 귄터를 잃는다.

동생을 잃은 상처를 품고 8년 후 그 산을 홀로 다시 오르고 난 후 쓴 등반기가 ‘검은고독 흰고독’이다.

단독등반을 경험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그가 검고 희다고 한 고독이 늘 궁금했고, 어느 대목들에서는 소름이 돋을 정도의 저릿함이 함께했다.

 밑줄165p...고독이 정녕 이토록 달라질 수 있단 말인가 지난날 그렇게도 슬프던 이별이 이제는 눈부신 자유를 뜻한다는 걸 알았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체험한 흰 고독이었다.

이제 고독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닌 나의 힘이다.

  로버트 팔콘 스콧 <남극일기>남극에 대한 호기심이 한창일 때 이 책을 만났다.

최근의 남극대륙 횡단이나 탐사에 비하면 장비나 정보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뒤떨어져 있던 시대였고 전 대원이 사망하는 실패로 끝났지만 조직과 기록의 탄탄함, 헌신과 희생정신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후지와라 신야 <인도방랑>, <티벳트방랑>‘방랑’이라는 단어에 꽂혀 집어들었다.

지독한 방랑이 펼쳐졌다.

후지와라 신야의 신들린 듯 한 방랑기. 그 글과 자유로운 사진에 꽂혔다.

 밑줄 <인도방랑>23p(인도에서) 청년은(나는) 뭔가에 지고 있는 듯 했다.

청년은 태양에 지고 있었다.

또 그는 대지에 지고 있었다.

청년은 사람들에게 지고, 열에 지고 있었다.

청년은 소에 지고, 양에게 지고, 개와 벌레에게 지고 있었다.

청년은 오물에 지고, 꽃에 지고 있었다.

청년은 걸식에 지고, 여자에게 지고, 신에게 지고 있었다.

청년은 냄새에 지고, 소리에 지고, 그리고 시간에 지고 있었다.

밑줄<티베트방랑>155P불문에 들거나 스님이 되거나 하는 것이, 하나의 불꽃을 버리고 육신에 다른 불꽃을 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걸 보고 싶었다.

그곳(티베트)에서, 다른 형식의 불꽃으로 빛나고 있는 한 인간을.... 제임스 로드 <작업실의 자코메티> 자기가 원하는 혹은 마음에 흡족 할 때까지. 끝임 없이 혹은 지겹도록 지우고 수정하는 자코메티. 그러나 시작은 있어도 결코 끝은 없다는.  밑줄145P사람에게는 정말로 시작하기만 한다면, 시작이라는 것을 해낼 수 만 있다면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작만 제대로 된다면 끝은 그 안에 들어 있는 법이니까요. ?쟝 모르/ 존 버거 <세상 끝의 풍경>자기 안에 개 한 마리와 소년 한 명이 들어있는 쟝 모르. 그리고 그의 50만장이 넘는 사진. 그와 함께 세상 끝의 풍경을 찾아나서는 글쟁이 존 버거와의 우정이 부러웠다.

아름다운 책이다.

 ?밑줄19P쟝은 어디서나 이국의 땅을 거닐었던 것! 혹은 쟝은 늘 이방인이었던 것! ... 그런데 쟝이 편안함을 느끼는 곳, 스스로 주인이자 손님이기도 한 곳이 바로 ‘세상끝’이라는 게 패러독스라면 패러독스다.

또 바로 그 ‘세상끝’에서 나는 쟝의 우정을 받아 누렸음이다.

국립춘천박물관 <우리 땅, 우리의 진경>우리 산하를 떠도는 일이 많았다.

이 땅을 그린 옛 그림에 대한 여러 책들을 섭렵하면서 이 땅의 서정성에 더 눈을 뜨게 됐다.

이 책은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우리 땅, 우리의 진경’ 특별전(2002)때의 도록인데 자동차 한편에 두고 떠돌아다니면서 보기에 좋았다.

돌아다니다가 그림 속 풍경이 나온 지역을 지날 때면 부러 들려 안색을 살피고 현재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다.

개벽천지도 있거니와 온전한 곳도 더러 있다.

부감법이 꽤 있어서 곤혹을 치르기도한다.

  연암 박지원<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마이너의 수장’ 연암을 좋아한다.

심오한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현실의 세계’ 와 ‘민중의 삶’을 귀히 여겼던 그는 유머와 역설, 세련된 자유분방함으로 자칫 딱딱하게 굳어지기 쉬운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해준다.

밑줄 326

327P돌아가신 누님 이름은 박 아무개고 본관은 반남이다.

손아래 동생인 나는 다음과 같이 묘지를 쓴다.

....슬프다! 누님이 시집가는 날 새벽단장을 하던 일이 어제와 같구나. 그때 내 나이 겨우 여덟이었다.

드러누워 뒹굴며 응석을 부리다가 새신랑을 흉내 내어 말을 더듬더듬 점잖케 하였더니 누님은 부끄러운 나머지 그만 빗을 내 이마에 떨어뜨렸다.

내가 골이 나서 울며불며 분에다 먹칠을 하고 침을 거울에 발랐는데, 누님은 옥으로 된 오리와 금으로 된 벌을 꺼내 내게 주며 울지 말라고 달래었다.

지금부터 스물여덟 해 전의 일이다.

...? 박명욱 <너무

너무

>‘봄은 늙지도 않아...’라고 한숨처럼 얕게 뱉은 형의 탄식에서, 지난 서학동사진관에서의 개인전 <애인은 늙지도 않아> 제목을 얻었다.

문화평론가 박명욱 형. 많이 느끼는 형 곁에서, 느낌을 전해들을 수 있는 일을 행이라 여긴다.

그가 98년에 낸 이 책의 제목은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이 세상에 오다>로, 마이너 예술가들 17명의 삶과 작업에 대한 박명욱의 ‘느낌’을 글로 얻어들을 수 있어서 귀하다.

서정춘 시집 <죽편(竹篇)>    아, 나의 농사는 참혹하구나흑!흑! 시집 첫 장에 나오는 시인의 말이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이 들 때면 펼치는 시집이다.

시인 스스로는 ‘참혹한 농사’라고 했으나, 그의 농사에서 위로를 얻곤 한다.

竹篇 1- 여행여기서부터, - 멀다칸칸마다 밤이 깊은푸른 기차를 타고대꽃이 피는 마을까지백년이 걸린다   잠잘 때도 카메라를 머리맡에 두고 자던 스무살 무렵이었다.

최전방에 가서 사진을 찍는다 생각하면, 자원한 종군처럼 입대가 설레었다.

1989년, 바람대로 최전방에 배치되었다.

찍고 싶은 것을 찾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엔 크고 극적인 것들을 찍게 되리라 여겼는데. 수첩에 그것을 ‘빨간 풍선’이라고 적었다.

” (이한구, 『군용』 작업노트)  스무 살 그때. 모두가 스무 살이던 속에서, 그렇게 찍고 싶었던 ‘빨간 풍선’은 무엇이었을까. 터질 것처럼 불안하게 부푼. 더럽고 찬란한. 혹은 수상한 통과의례. 이런 몇 개의 단어들로 그것들을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사진은 그때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2010년 첫 개인전 <소소풍경>으로, ’그의 사진 속에는 시적 화자(詩的 話者)가 있다’는 평을 듣는 이한구의 사진은.   이십 여 년 만에 책으로(군용_ 눈빛출판사. 2012), 사진전으로 보게 되는 사진가 이한구의 <군용(軍用_military use)>. 스무 살 무렵에 간 군대에서 군인인 그가 군대를 찍은 사진들이다.

  “바람대로 최전방에 배치되었지만, 카메라는 손에 쉬이 쥐어지지 않았다.

상병이 될 때까지 눈으로 찍었고, 그때부터 찍고 싶은 것이 생기면 한쪽 눈을 깜빡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 촬영한 필름들은 비닐봉지와 자루에 담아 땅 속에 묻었다.

비가 오면 잠이 오지 않았다.

휴가 때마다 혼자만의 특급 수송 작전을 펼쳐서 집까지 공수했다”. (이한구, 『군용』 작업노트)  그때 그 땅 속에 묻혔던 필름들이, 1989년 11월에서부터 1992년 3월 사이 찍은 사진들이, 20여 년이 지난 2012년이 되어서야 봉인이 풀린다.

“기존의 군대 사진과는 차별화된 독특한 지점”에 이한구의 군대 사진이 있다고, “스무 살에 이미 작가(作家)”였다고,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는 말한다.

시인 이원은 그 사진들에 대해 “폭로할 수 없는 것을 폭로하지 않는 방식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사진가로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온 이한구는 자신의 사진들을 개봉하는 것을 서두르지 않는다.

92년부터 지금까지 찍어오고 있는 ‘청계천’. 93년부터 찍어 온 ‘산’ 사진들이 아직도 미공개의 지점에 있다.

<군용>은 그들의 출정 전에 세상에 먼저 나아가는 ‘사진가 이한구의 처음’인 셈이다.

 ?  이한구_<군용>#2_digital inkjet print  이한구_<군용>#3_digital inkjet print 이한구_<군용>#4_digital inkjet print 이한구_<군용>#5_ digital inkjet print 이한구_<군용>#6_digital inkjet print ?이한구_<군용>#7_digital inkjet print  이한구_<군용>#8_digital inkjet print  ?■작가 노트                                                                             ??  최전방에 가고 싶었다.

 어차피 가야하는 군대라면. 최전방에 가서 사진을 찍고 싶었다.

잠잘 때도 카메라를 머리맡에 두고 자던 스무 살 무렵이었다.

최전방에 가서 사진을 찍는다 생각하면, 자원한 종군처럼 입대가 설레었다.

  1989년, 원하던 대로 최전방 15사단 부대에 입대했다.

찍고 싶은 것을 찾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엔 크고 극적인 것들을 찍게 되리라 여겼는데. 수첩에 그것을 ‘빨간 풍선’이라고 적었다.

암호가 일상화된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카메라는 손에 쉬이 쥐어지지 않았다.

초조하고 불안했다.

눈으로 찍었다.

찍고 싶은 장면 앞에서 한쪽 눈을 껌벅이는 버릇이 그때 붙었다.

밤이면 침상에 누워 천정에 눈을 감고 현상했다.

  상병이 되어서야 카메라를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러나 자유로운 촬영은 불가능했다.

방독면케이스에 카메라를 넣고 야전훈련을 나갔다가, 부대장으로부터 가스실에 맨얼굴로 들어가는 처벌을 받기도 했다.

  촬영한 필름들은 비닐봉지와 자루에 담아 땅 속에 묻었다.

비가 오면, 잠이 오지 않았다.

휴가 때마다 혼자만의 특급수송작전을 펼쳐서 집까지 공수했다.

현상을 마치면 휴가가 끝나있었다.

  스무 살 그때. 모두가 스무 살이던 속에서, 그렇게 찍고 싶었던 빨간 풍선은 무엇이었을까. 터질 것처럼 불안하게 부푼. 더럽고 찬란한. 혹은 수상한 통과의례. 이런 몇 개의 단어들로 그것을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사진들이 미처 말로 표현치 못하는 그것들을 대신 보여 주기 바란다.

  이십 여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나는 기억한다.

나의 사진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 작가 소개??                                                               ???이한구 李翰九 Lee, Han Koo ▶ 이력1968년 서울생1993년 신구전문대사진학과 졸업1993-1997년 월간 <사람과 산> 사진부 팀장1993-1998년 사진집단 <사실> 1997-현재 한국산악사진가회2000-2002년 미국 LA 소재 아시아 아트 전문갤러리 운영2002-2005년 (주)이산미디어 월간 <이마운틴> 사진편집위원2002-2006년 출판프로젝트그룹 <樹流山房·수류산방> 사진 담당2009-현재 photo studio 류가헌, 사진위주 Gallery 류가헌 운영   ▶ 전시1988년 <청산도> 출판문화회관1989년 <섬진강을 따라서> 출판문화회관1993년 <사진집단 -사실-전> 후지포토 갤러리1999년 <한국산악사진> 세종문화회관2000년 <한국산악사진> 세종문화회관2002년 한·일 문화교류의 해 기념 <한·일 산악사진전> 주한 일본대사관 문화원2002년 예술의 전당 <세계환경전> 프로젝트 공동기획2004년 <다큐멘터리 18년만의 외출> 그룹전, 예총화랑2009년 <소소풍경Ⅰ> 개인전, 류가헌  ?   ??  ?  이한구의 <군용>을 보고  폭로할 수 없는 것을폭로하지 않는 방식으로   글 / 이원 시인  ?    던져지는 순간이 존재한다.

선택이 존재하지 않는 곳. 그것은 출생과 같다.

태어남에 선택이란 없었듯이. 태어남이란 그냥 무조건 던져지는 것이듯이. 우리는 그와 같은 폭력적 순간에 나타난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살아야 한다.

   선택이 존재하지 않는 시간은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격렬하지 않다.

비탄에 젖게 하지도 않는다.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던져졌다는 것은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현실이라고 부른다.

   현실은 대단히 완만하다.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이 사실을 알고 어떤 사람은 이 사실을 모른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자의 시선은 완만하다.

완만할 수 없는 곳에서 완만한 시선, 어쩌면 태어난 순간을 잊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존재하지 않으면서 존재하는 세계    말이 사라지는 세계. 침묵이라는 거대한 말이 존재하는 세계. 침묵. 그 거대한 말은 많은 것을 삼킨다.

삼킬 수 없는 것까지도. 울부짖는 것들까지도.  군대. 지도에 없는 곳. 지도에 나타나지 않는 곳. 존재하지 않으면서 분명하게 존재하는 곳에서는 밝힐 수 없는 사건들이 존재한다.

영문도 모르고 한계를 넘게 하는 강제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모두 같기 때문에 질문할 수 없는 곳. 계급과 서열과 복종이 존재하는 곳. 네 발이 될 수도 있는 곳. 발가벗겨 내몰릴 수도 있는 곳. 침묵 속에 묻혀야 하는 곳. 가까스로 배운 ‘인간-되기’에서 다시 한 순간에 ‘동물-되기’로 되돌아가기도 하는 곳.    군대. 숫자 속의 세계. 이름을 달고 존재하면서 이름으로 존재하지 않는 세계. 줄을 맞춰 서는 세계. 동시에 같은 행동을 하는 세계. 똑같은 것을 입고 똑같은 것을 먹고 똑같은 시간에 자면서 이유를 물으면 안 되는 행군을 배우는 세계. 성년이 되면서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남자들은 그곳에 갑자기 던져진다.

연하고 비린 남자 냄새가 나기 시작할 때. 민간인에서 군인으로 던져지는 순간.   ?  왼쪽 발이 동시에 들렸을 때      처음 배우는 것은 줄 맞추어 서는 것. 왼발을 한 보 앞으로 동시에 내미는 것. 이유 없이 아니 이유라는 말을 지우면서 걷는 그것을 행군이라고 부르는 것. 같은 감촉의 흰 장갑을 끼고 총이라는 긴 것을 들고 얼떨결에 행군을 시작할 때 손과 철모, 장갑과 총은 침묵한다.

이들의 왼쪽 발이 동시에 들렸을 때 새집을 매단 나무들도 왼쪽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바람은 그들이 걷는 방향과는 무관한 오른쪽에서 들이닥쳤다는 사실. 군복을 입은 이들은 생의 낯선 방향으로 걷기 시작한다.

낯선 곳으로의 자세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이상한 풍경. 이것은 군복의 방향.       ?  군화 또는 입      모여 있는 군화들은 같은 모양. 사실은 다른 모양. 군화의 속에 각자의 필체로 이름을 적어 넣었다.

군화들은 존재의 발에 따라 다르게 늘어나 있다.

발을 넣고 끈을 조이면 다시 같은 모양이 된다.

이름을 보고 자신의 군화를 알아차린다.

이름을 믿을 수 있는가. 필체를 믿을 수 있는가. 군화를 신고 계속 걸으면 시간이 입처럼 벌어져간다.

점점 말을 잃어가는 입 대신에 벌어지는 군화들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기록된다.

  ?  급소 부위 강?약 상관없이   “구타자는 살인자”라는 표어가 있는 곳. 급소 부위가 어딘지를 그려놓은 곳. 구타가 행해지고 있다는 확인. 남자는 벗은 몸에 군번줄을 걸고 있다.

알아볼 수 없는 지경의 형체를 갖게 되었을 때 식별하기 위해 걸고 있는 가볍고 얇은 목숨 줄. 단련의 목적을 모르고 단련된 몸은 군번줄보다 무력하다.

‘신체 급소 부위 강?약 상관없이 치명상’이라는 글자 옆, 그러나 군번줄을 목에 걸고 있을 때 허리에 올린 손에서는 이미 금기가 사라지고 있다.

       군인 앞의 최전방 철책을 잠그고 있는 것은 “융통성과 인정은 이적 행위다”라는 구호. 철책의 아이러니는 철문이 아니라는 것.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너머를 보아야 하기 때문에. 융통성과 인정과 이적 행위는 같은 무게로 구멍 숭숭 뚫린 곳에 걸려 있다.

  ?  같은 부대 동기들    판초를 쓰고 나란히 카메라를 응시하는 두 남자(이때는 군인의 모습이 아니다). 얼굴만 간신히 내놓았을 때 남자라고 하기에도 어린 모습이 나타난다.

군복도 짧게 자른 머리도 감추고 얼굴만 간신히 내놓았을 때 그들은 같은 비밀을 공유한 “같은 부대 동기들”이 된다.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을 나눠 가진 그래서 서로가 나눠지지 않는 이상한 공동체가 된다.

“우린 아직 이병이니까. 별로 그렇게 죄진 게 없어. 우리가 일병이 되면 죄가 조금 다양해질까? 우리가 상병이 되면…고백할 게 많아지겠지? 앞으로 들어올 후임들한테, 무슨 죄를 지을지 계획하면서. 우리는 정신없이 웃고 까분다.

”(김승일, 「같은 부대 동기들」) 한밤의 보초를 서는 것도 구타도 공포도 그들의 안의 얼굴까지 가져가지는 못하는 것이다.

       딱딱하고 긴 단 하나의 침상에 누워 잘 때 서로를 마주보며 잠들고 있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둘은 알고 있을까. 마주보고 잠든 사이에는 아슬아슬하게 동성애가 스쳐가지도, 서열이 들어있지도 않다.

구부러지는 팔을 가진 두 존재가 웅크리고 잠들어 있다.

그들을 찍은 카메라에는 연민이 없다.

그렇다고 희망이 들어 있지도 않다.

다만 그들은 마주 보고 잠들어 있다.

딱딱하고 긴 같은 길이와 같은 단단함을 가진 바닥에서 잠든 이들만이 있다.

     끝내 일어나지 않겠다     군복을 입고 군화까지 신고 팔을 가슴에 갖다 대고 반듯하게 잠들어 있는 한사람 옆에 또 같은 포즈로 누운 한 사람. 또 곁에 같은 포즈로 누운 한 사람. 그들은 뻣뻣하다.

나무라고 한다면 뻗기를 멈추지 않겠다는 미루나무이며 의지로 본다면 곧 걸어 나오고야 말겠다는 자세이며 끝내 일어나지 않겠다는 저항으로도 보인다.

곧 불려나갈 수도 있어 막간을 놓치지 않고 쪽잠에 빠졌다고 치자. 그러나 기하학적 구도 속의 이들은 벗어나고 있다.

이곳으로부터.     ?한꺼번에 삼키고 표시도 내지 않을 것 같은   웃통을 벗고 배를 뒤집어 하늘로 향한 채 네 발이 되어 기어가는 몸들. 북극 동물들 같다.

저 기이한 자세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저곳은 산 속, 구덩이처럼 푹 파인 곳일 텐데, 해변이 있을 것 같다.

군데군데 큰 돌들도 있을 것 같다.

돌아가면 절벽도 있을 곳 같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 파도가 치고 있을 것도 같다.

시퍼런 물은 한꺼번에 수십 마리의 동물을 삼키고 표시도 내지 않을 것 같다.

   네 발을 가진 몸의 그림자들은 땅에서 오그라들어 있다.

거꾸로 늘어뜨린 목은 세상에 투항의 표시. 항복의 표시. 말이 틈입되지 않은 그들의 몸은 와글거린다.

네 발로 몸을 공중에 띄우고 걸어가는, 동물 되기를 익힌 몸들에게 전투는 더 이상 전투가 아니다.

  ?   ‘다만ㅡ있음’의 사진   이한구의 군대 사진들은(『군용(軍用_military use)』이라는 제목으로 사진전문 갤러리 류가헌에서 가을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 이한구가 현실을 찍은 첫 번째 기록들이다.

스물둘에 간 군대에서 군인인 이한구가 군대를 찍은 것들이다.

“어차피 가야하는 군대라면 최전방에 가서 사진을 찍고 싶었다”는 그의 바람대로 최전방에 배치된 그는 상병이 되어서 카메라를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머리맡에 사진기를 놓고 잘 정도로 사진을 좋아한 이 청년은 눈으로 찍는 습관을 갖게 되었고 그때부터 찍고 싶은 것이 생기면 한쪽 눈을 깜빡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촬영한 필름들은 비닐봉지와 자루에 담아 땅 속에 묻었다.

비가 오면 잠이 오지 않았다.

휴가 때마다 혼자만의 특급 수송 작전을 펼쳐서 집까지 공수했다”. (이한구, 『군용』 작업노트)    1989년 11월에서부터 1992년 3월 사이 찍은 이 사진들을 이한구는 20여년이 지난 2012년이 되어서야 봉인을 푼다.

사진가로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온 그는 자신의 기록들을 개봉하는 것을 서두르지 않는다.

스무살이 스무살을 찍는 방식. 군인이 군인을 찍는 방식의 카메라는 이방인의 것이 아니며 관찰자의 것도 아니며 기어이 그곳에 함께 했다는 소속된 의식의 것도 아니다.

증인의 시선도 경험자의 시선도 외면하는 시선도 감추는 시선도 아니다.

에피소드도 아니고 불거진 어느 순간을 찍지도 않는 이것을 이한구의 방식이라고 해야 옳다.

   스무 살 무렵 군인이기도 했던 그가 찍은 사진들이 이토록 담담할 수 있다는 것. 종군의 심정으로 갔던 이한구가 그곳에서 알게 된 것은 내던져진 그곳이 다름 아닌 삶이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다면 스무 살의 이한구가 찍은 사진이 이토록 담담할 수는 없다.

더욱이 뜨겁디뜨거운 청춘의 손이 아니던가. 이십대 초반의 그가 찍은 사진에는 감춘 것이 없다.

생략된 것이 없다.

프레임이 완강하지 않고 공간에 포커스를 집중하지도 않는다.

‘다만 ㅡ있음’의 사진. 통제나 균형을 맞추지 않은 사진. 정서와 형식, 의미를 배제하는 사진. 아니 배제한 것이 아니라 현실을 먼저 기록하는 사진. 현실을 기록할 때 사진은 허구를 허용하지 않는다.

  ?  현실은 기록되어야 마땅하다    이한구는 현실을 현실로 기록하는 기이한 지점을 보여주는 사진가다.

그는 현실을 현실로 살면서 사진을 찍는 그러니까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찍는 방식을 택한다.

그는 92년부터 지금까지 청계천을 찍어오고 있다.

박영석 대장 팀과 짧지 않은 시간을 같이 하기도 한 그가 산 사진을 찍어온 것은 93년부터다.

이한구의 사진은 가파른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찍어도 드라마가 생기지 않는다.

푸르디푸른 하늘이 거기 있고 가파른 절벽이 거기 있다.

그 안에는 분명 다큐멘터리의 시각이 없지 않을 것이나 우선하지 않는다.

에베레스트나 청계천, 군대 사진은 이한구가 찍은 어느 숲이나 나무들, 그것과 다르지 않다.

나무나 숲과 등가이다.

숲이나 나무와 다르지 않게 현실을 기록하는 것. 이한구 사진이 위치하는 자리다.

   현실은 과정도 결과도 동기도 원인도 아니다.

현실은 ‘다만 펼쳐져 있음’의 그 어디이다.

사진이 현실을 현실로 나타나게 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기교나 예술성이 앞서 보이면 안 되기 때문이다.

최민식의 사진이 다큐멘터리가 되지 않는 것은 그의 프레임이 잡은 예술성 때문이다.

그가 잡은 것은 가난이 아니라 구도였다고 할 수 있다(최민식 사진의 크기가 클 때보다 작을 때 완결성이 더 강한 것은 구도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한구는 최민식과는 반대의 지점에서 작업한다고 할 수 있다.

예술성이 먼저 나타나지 않게 현실을 먼저 붙잡는 방식. 그러나 가난도 비극도 억압도 등가의 현실이어서 우위를 갖지 않는 카메라로 현실을 붙잡는 방식. 현실은 기록될 수 있는가. 사진은 현실을 어떤 방식으로 기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가능하다면, 현실은 기록되어야 마땅하다는 대답을 이한구의 사진이 갖고 있다.

갑자기 찾아오므로 매 순간 완결되는 것이 현실이므로. 우리가 “사랑하기에 가장 완벽한 장소”가 현실이듯이, 죽기에 가장 완벽한 장소 또한 현실이므로.   ?  함께 커튼 뒤에 있는 카메라   이한구의 사진은 20여년 이상 공동 작업을 해온 장 모르, 존 버거와 닮아 있다.

시골 의사나 이민 노동자들을 장 모르는 찍고 그 사진을 존 버거는 글로 쓴다.

사진과 글 모두 담담하고 세세하다.

그 섬세한 기록에 아무런 정서도 경사도 틈입시키지 않는 곳에 놀라움이 있다.

그들의 작업은 삶을 사진으로 글로 보여준다.

삶이라는 사진을 기록한다.

삶을 삶으로 기록한다.

   “풍경은 기만적일 수 있다.

종종 풍경은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펼쳐지는 무대라기보다는 하나의 커튼처럼 보인다.

그 뒤에서 사람들의 투쟁, 성취 그리고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는 그런 커튼…그 주민들과 함께 커튼 뒤에 있는 이에게, 풍경은 더 이상 지리적인 대상에 그치지 않고 전기(傳記)적이고 개인적인 그 무엇이 된다”(존 버거?장 모르, 『행운아』)는 그 자리, 현실을 현실로 찍는, 아니 현실을 현실로 나타나게 하는 곳. 뜨겁지도 차갑지도 어둡지도 환하지도 않은, 아니 뜨겁기도 차갑기도 어둡기도 환하기도 한, 사람이 소리 없이 파묻히기도 하는 거기에 이한구의 카메라가 있다.

  ?  다시, ‘제조년월일 1986년 7월 일. 군용’    모포 위에서 양쪽 발목에 고무링을 감고 있는 발목을 찍은 사진에는 폭로도 없다.

고발도 없다.

증거도 없다.

다만 현실이 있다.

행군을 처음 배울 때 나무의 방향과 그들의 방향은 각각 다르다는 것. 모여 웃통을 벗고 네 발이 되어 길 때는 스스로가 징그럽다는 것. 서로는 알지 못하며 그러나 마주 보며 잠이 드는 순간도 있다는 것. 이 순간을 둘은 평생 알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자신의 글씨체로 자신의 이름을 쓴 신발만이 자신의 것이 된다는 것. 다른 신발에 자신의 이름을 쓴다면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제 손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라는 것. 나란히 판초를 입고 섰던 그 시간에 군복도 어쩌지 못하는 융통성과 인정의 얼굴이 나타나 있었다는 것. 판초를 입은 둘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 카메라의 앵글은 그 안의 얼굴을 보았다는 것. 그것이 바로 그곳이 금지한 융통성과 인정이었다는 것. 융통성과 인정은 아무 이름도 붙일 수 없는 표정으로 나타난다는 것. 카메라의 렌즈는 이름 붙일 수 없는 그 안의 얼굴을 보았다는 것.     폭로할 수 없는 것을 폭로하지 않는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 이한구의 『군용』 사진은 그것을 말한다.

아니, 폭로할 수 없는 것을 폭로하지 않는 방식으로, 현실을 기록하는 것, 그것이 이한구 사진의 윤리다.

------------------------------------------------------------------------- 이원 시인. 1992년 『세계의 문학』으로 데뷔. 시집으로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 등이 있다.

현대시학 작품상, 현대시 작품상을 수상했다.

? 3

5. 15사진위주 류가헌 ?<사진가의 서재>는, 한 사진가의 정신과 정서가 형성되기까지 책이 관여한 부분을 살핌으로써 사진과 인문학의 만남을 도모한 기획전입니다.

사진가의 서고에서 그이가 중히 여기는 책과 담론화 할 책 일부를 옮겨서 나누어보고, 그 책을 중심으로 ‘작가와의 만남’ 등을 이어갑니다.

 ??사진가 이한구의 서재는 인왕산의 칠부능선 즈음에 있다.

산을 바라기 하면서 오르는 가파른 길의 제일 끝집이니, 우리 땅과 해외의 고산들을 종으로 오르고 횡으로 걸으면서 그 노정 속에서 사진세계를 구축해 온 사진가의 거처로 어울리는 지점이다.

서재방 남면과 서면의 벽을 이루고 있는 책장들에는 저마다 크기며 높이가 다른 책들이 정확히 선반 전면부의 5cm 뒤에 가지런히 병렬해 꽂혀있다.

스무 살 무렵 군대에 있을 때 찍은 사진을 무던히도 묵혀두었다가 20년 만에 첫 전시 <군용>으로 선보인 것이나, 청년 시절이던 80년대부터 찍기 시작한 청계천의 기록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는 성실한 근기와 체계가 거기에서 읽힌다.

박영석원정대의 일원으로 히말라야의 고산들을 오르내리는 데에도 필요했던 가지런함일 것이다.

뿌리깊은나무에서 발행한 <한국의 발견> 11권 전집이 낡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책장 상단에 묵직하게 자리해 있고, <검은 고독, 흰 고독><8000미터 위와 아래><산경표를 위하여><태백산맥은 없다> 등 각종 산 관련 서적들이 많은 것도 눈에 띈다.

또한 <연암집>을 비롯하여 <목민심서> <북학의> <양화소록>에 이르기까지의 옛 고전들도, 산 관련 책들이 차지하고 있는 체적에 밀리지 않는다.

언뜻 분야가 제각각인 듯 하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모두가 오래된 것, 잊혀진 것, 소소하거나 고독한 것, 그리하여 그리운 것들에 관한 책이다.

그가 사진의 화법으로 말하고 남기고자 하는 것들이 또한 일치하니, 그가 ‘읽는’ 세계가 곧 그가 ‘낳는’ 세계임을 이한구 스스로는 ‘산방(山房)’이라고 부르는 그의 서재에서 본다.

??이한구의 책국립춘천박물관 우리땅 우리의 진경라이홀트 매스너 검은 고독 흰 고독릭 리지웨이 아버지의 산박명욱 너무너무서정춘 죽편연암 박지원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장모르 존버거 세상 끝의 풍경정광식 아이거 북벽제임스 로드 작업실의 자코메티피터 매티슨 신의 산으로 떠난 여행한스 카멀란드 그러나 정상이 끝은 아니다후지와라 신야 인도방랑 티벳트 방랑이한구  Lee, Hankoo우리 땅과 해외의 고산들을 종으로 오르고 횡으로 걸으면서, 그 노정 속에서 자신의 사진세계를 구축해왔다.

소소하고 소외된 것들에 긴 시선을 두고 ‘이 땅의 숨은 예인들’ ‘애달픈 우리 농촌’을 비롯해 20년 가까이 서울 ‘청계천’ 변두리이자 중심으로서 삶의 풍경들을 찍고 있다.

<소소풍경> <군용> 등의 개인전을 가졌다.

  4시연락처 010-3683-2730블로그: http://blog.naver.com/jungmiso77완산구 서학로 16-17,서서학동) 입구?서학동사진관 도착전시관람 - 박미경, 이문재?1전시장?고등학생??2전시장??오픈음식??작가만남 준비중?이제 시작해요사학동 사진관 김지연 관장님과 이한구 작가이한구 작가인사? . 강연?많은 작업을 보여주고 설명했어요많은 분들이오셨어요열강중입니다.

소리없이 강하게전라도 닷컴에서 오셨어요슬라이드 쑈이승훈씨가 수고를 함질문하고

답하고

 마무리 인사 !!!맛난 오픈음식 먹으며 담소하기기념사진 - 서울손님 + 광주손님이승훈, 김지연관장, 박미경, 이한구작가애인은 늙지도 않아 현수막저녁먹하러 왔어요오랜만에 어부바서울까지 가려면 먹어야해요주문하고??나르고맛나게 잘먹었어요다음에 또

 꼭 올께요반가웠어요^^?전시도 정말좋고 사람들도 반갑고 참 행복했어요? !이틀 남았습니다.

支藏干은 初氣생입니다.

?대운과 세운.         (庚)                   (巳) 77.7675.74.73        72.7170 69.68 辛 庚 己 戊 丁         丙 乙 甲 癸 壬 丑 子 亥 戌 酉         申 未 午 巳 辰 ? 위 이한구 의원의 四柱형식은 內格입니다.

태어난 時는 살아온 프로필을 보고 적절한 時를 선택했습니다.

? 2012壬辰년은 身旺사주가 되어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어 4년 동안은 힘겨웠지만 그런 데로 살아 왔습니다.

? 하지만 2016丙申년부터는 四柱의 균형(均衡)이 급격히 약하게 기울어져丙申년 丙 상관(傷官)이 四柱 年지장간 庚 正官을 극(克)을 했으니 20대 국회출마를 스스로 포기한 것으로 봅니다.

? 그러나 만약 이렇게 약한 사주 환경에서 국가의 중요한 일을 맡아 추진을 한다면 주인공은 잘못된 상황 판단으로 크나큰 어려움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봅니다.

? 중요한 것은 運이 기울어져 가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판단력이 흐려져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이 運이요, 천기(天氣)의 흐름인 것입니다.

? 또한 주인공은 2020 庚子년 21총선에도 출마가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사실상 정계는 마무리를 해야 할 나이가 아닌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6년 3월 10일 현재 공천위에 장을 맡고 있으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그러나 만약 인터넷에 나와 있는 생년월일이 다르다면, 전혀 다른 운명이 될 것입니다.

? 다음은 김무성 의원 순입니다.

마지막에는 대통령 사주도 올리겠습니다.

상상 속의 포연(砲煙)도 보인다.

아뿔싸, 4·13총선의 격전지로 대구가 떠오르다니 이한구발(發) 불공정 공천 후폭풍이 새누리당의 뿌리 대구를 덮쳤다.

어제 오후 5시경. 무소속 주호영 후보(수성을)가 강행군에 지쳐 보인다.

표정은 밝다.

이인선 후보에게 더블스코어 차로 우위를 지킨 여론조사에 고무된 듯하다.

바로 옆 수성갑 선거구로 옮겼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는 “31년 만에 야당 후보를 뽑아 달라”고 호소한다.

지친 기색인 김부겸도 표정이 환하다.

모든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 김문수 후보를 7∼20%포인트 앞선다.

김문수는 아침 일찍 사죄의 100배(拜)로 유세를 시작했다.

막장 공천 수혜자가 역설적으로 유승민(동을)이라면 김문수는 최대 피해자일 수 있다.

주호영의 당선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일 안 하는 3선이냐, 일 잘하는 인선이냐’(이인선 후보)라는 공격에도 ‘일 잘하는 3선이냐, 일 배우는 초선이냐’로 가볍게 따돌린다.

유승민의 낙승을 예상하는 사람도 많다.

한 선거 전문가는 “새누리당이 동구청장을 지낸 이재만을 공천했더라면 초박빙의 승부가 됐을 것”이라며 혀를 찼다.

반면 김부겸은 막판까지 가봐야 한다.

TK(대구경북) 정치판을 꿰뚫고 있는 지인은 51 대 49의 눈 터지는 승부라 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야당 표가 10% 숨어 있으면 대구엔 여당 표가 이 정도 있다는 것이다.

대구 유권자 중엔 여당을 욕하다가도 막상 투표장에선 약해지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번은 다를 것 같다.

김문수 후보가 고교 후배(경북고)가 공 들인 곳에 온 것은 정치적 오판일 수 있다.

“이한구가 망쳐놓은 수성갑에 안면몰수하고 내려온 것은 염치없는 일이다.

”(경북대 K 교수)    야당 성향으로 무소속 출마한 홍의락 후보(북을)도 승기를 잡았다.

정종섭 후보(동갑)는 경북고 동기동창인 류성걸 후보, 추경호 후보(달성)는 구성재 후보와 경합 중이다.

진박(진짜 친박) 정종섭은 선거 현수막에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넣고 한 표를 읍소한다.

그러나 유권자들의 반응은 예전 같지 않다.

 앞서 무소속 조해진 후보(밀양-창녕-함안-의령)는 밀양 수산시장 앞 유세에서 간절하게 한 표를 호소했다.

5일장의 한 상인은 “이건 아니지예”라며 여당의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 공천’을 비판했다.

지금 대구에서는 남진의 ‘가슴 아프게’를 패러디한 “공천과 공천 사이에 이한구가 없었더라면 쓰라린 탈당 무소속만은 없었을 것”이라는 노래가 유행하고 있다.

  대구는 과연 불타고 있는가. 바람은 불고 있는가. 대구의 불길이 PK(부산경남)의 김해, 양산, 부산 북-강서·사상·사하로 이어지는 ‘낙동강 벨트’ 너머로 번질 건가. 총선의 막판 변수인 북풍(김정은의 도발)이나 박풍(대통령의 호소)은 없을 건가. 20년 전 제15대 총선은 지금처럼 야권 분열로 여당이 수도권 총 96석 중 54석(56%)을 획득해 대승을 거두었다.

반면 야권 연대가 이뤄진 2012년 총선에선 야당이 수도권 전체 112석 중 65석(58%)을 석권했다.

대선을 앞둔 결정적 총선(Critical election), 이 정치 드라마의 여야 승부는 내가 예측한 대로 160 대 140의 구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듯하다.

대구에서도 태풍은 아니지만, 바람이 거칠게 불고 있다.

바람을 잘 타면 일약 대권주자의 반열에 오를 김부겸 유승민의 선거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김무성 “저희를 용서해달라” 20대 총선 코앞에 납작 엎드린 새누리이한구 공관장 공천끝나고 해외 도망가 여행즐기고 원유철 원내대표, 서청원 최고위원 등은 친박들끼리 박타령하고 이제와서 잘못했으니 용서해 달라고 건방진 놈들 아닌가? 꼭 선거때는 머리 조아리고 선거 끝나면 국민들 업신여기고 갑질 하는놈들 아니던가.이런꼴 보기 싫어서 과반수 아래로 표를 주어 정신차리게 해야하는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원유철 원내대표 등이 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선거대책회의에 앞서 `죄송합니다`,  `잘 하겠습니다` 피켓을 들고 인사하고 있다.

 김경빈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원유철 원내대표 등이 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선거대책회의에 공개발언이 끝난 뒤 서로 화합하겠다며 비빔밥을 먹고 있다.

김경빈   대구에선 시민들 우습게보고 진박타령 하던놈들 모두 낙선 시키야하는데 최경환 , 조원진 2 넘은 비박계 가슴에 대못을 싸움질 하던놈들 아닌가? 표로 심판을

  친박 마케팅 한놈들 낙선 시키고 무소속에 몰표를 주어 대구시민의 자존심을 살리자 !대구의 친박 냄새풍기며 무소속 우습게 아는넘들 이번에 표로 심판을 해주어야지

특히 이한구 그놈은 공천을  개떡같이 해놓고 해외로 티어 여행을 즐기고 있고한솥밥 먹던사람들 문제가 없다면 경선을 붙였으면 대구가 이렇게 추락하지 않았을텐데 그리고 친박이니 비박이니 박타령, 존령 타령 없었을테고

죽일놈들

지난 판별에 누락된 것을 확인하고 관련 글을 발췌하여 추가한다.

 與, 오늘부터 '공천 피바람'…이한구 "과감한 결정"발췌 아시아경제 최종수정 2016.03.14 12:58 기사 2016.03.14 10:41   [아시아경제 지연진 ]새누리당에서 14일부터 '공천 피바람'이 몰아칠 전망이다.

당 공천관리위원회(위원장 이한구)의 4ㆍ13총선후보 공천 작업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공천의 칼날은 논란의 중심에 선 현역의원 지역구로 향하고 있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 금음체질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이제까지 우리당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개혁공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면서 "오늘과 내일은 중요한 결정을 과감하게 내려야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개혁공천의 척도로 꼽히는 현역물갈이가 미진한 만큼 향후 공천결과는 대대적인 현역 공천배제를 단행하겠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국회의원 품위를 떨어뜨린 자 ▲당 정체성에 적합하지 않은 행동 ▲영남권 등 당 텃밭의 중진의원 등을 현역 컷오프의 기준으로 제시했다.

 이한구 금음체질공관위는 전날까지 전국의 253개 지역구 가운데 205개 지역구에 대한 공천결과를 발표했다.

나머지 48개 지역구에 대한 심사 결과는 이번 주에 나온다.

문제는 아직 공천 뚜껑이 열리지 않는 지역구 대부분이 현역 컷오프의 가능성이 점쳐진 곳 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이번 총선 공천에서 배제된 지역구 현역은 김태환(경북 구미갑)ㆍ박대동(울산 북구)ㆍ강길부(울산 울주군)ㆍ길정우(서울 양천갑)ㆍ이이재(강원 동해ㆍ삼척)ㆍ박성호(경남 창원 의창) 등 6명이다.

지역구에 신청한 비례대표 김정록(서울 강서갑), 윤명희(경기 이천) 의원 등 2명도 경선 컷오프에 포함됐다.

새누리당 소속 의원 159명 가운데 5%만 공천에서 배제된 셈이다.

김태환 목양체질 / 박대동 목양 / 강길부 목양 / 길정우 목양체질 / 이이재 목양 / 박성호 목양   김문수토양체질수정 / 유승민 금양체질 / 주호영 금양 / 서상기 (토양체질) / 권은희 목양       경주김씨 김문수토양을수정목음체질 2016-6-14이 때문에 이번주 대대적인 현역 물갈이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특히 대구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대구 수성갑)를 제외한 전 지역의 공천이 보류된 만큼 물갈이 폭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된다.

 대구는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로 낙인찍힌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측근들이 대거 포진한 지역이다.

그동안 유승민계는 이른바 '진박(진짜 친박근혜)' 후보들과 맞붙는 경선 진출도 어려울 수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또 유승민계로 분류되는 조해진 의원의 지역구(밀양시 의령군ㆍ함안군ㆍ창녕군)와 이종훈 의원(경기 성남분당갑) 공천 발표가 유보됐다.

이미 유 전 의원의 측근인 이이재 의원(동해ㆍ삼척)은 경선에서 배제됐다.

유 전 원내대표 시절 대변인을 지낸 민현주 의원은 인천 연수을 경선에 진출했지만,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과 경쟁이 만만치 않다.

 당내 또 다른 '배신의 정치'로 꼽히는 진영 의원(서울 용산구)도 여전히 경선 여부가 불투명하다.

[이한구] 사실은.


진 의원은 현 정권 초대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정부의 기초연금 인상에 반대하며 사표를 던지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멀어졌다.

 이 밖에도 비박계 맏형격인 이재오 의원(서울 은평을), 김무성 대표의 측근인 김성태(강서을)ㆍ김학용(경기 안성) 등에 대한 공천심사 결과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인천도 '문제의 지역구'가 다소 포함됐다.

최근 '김무성 죽이기' 막말의 주인공인 윤상현 의원(인천 남을)과 국회 선진화법 입법의 주역인 황우여 의원(인천 연수갑)이 공천배제 가능성이 점쳐진다.

 지연진 새누리당, 주호영·서상기 컷오프…6차 공천결과 발표발췌 더팩트 : 2016.03.14 20:29[더팩트ㅣ이철영 ] 새누리당은 14일 친박계 3선 서상기(대구 북구을) 의원과 비박계 3선 주호영(대구 수성을) 의원과 비박계 권은희(대구 북구갑) 홍지만(대구 달서갑) 의원, 부산 사하갑에 공천을 신청한 비례대표 김장실 의원 등이 20대 총선 공천에서 컷오프됐다.

 판별 추가 2016-3-24이재오 의원 금양체질 / 진영 의원 목음체질 / 김성태 의원 목양체질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계 중진인 유승민 의원이 23일 탈당을 선언하고 4·13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 동구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이 2016-3-24일 재야 운동권에서 보수정당에 몸을 담은 지 20년만에 탈당/ 23일 밤 11시 새누리당 서울시당에 탈당 신고서를 공식 제출새누리당 비박계 중진 진영 의원(3선·서울 용산)이 2016-3-17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탈당 회견   상상 속의 포연(砲煙)도 보인다.

아뿔싸, 4·13총선의 격전지로 대구가 떠오르다니 이한구발(發) 불공정 공천 후폭풍이 새누리당의 뿌리 대구를 덮쳤다.

어제 오후 5시경. 무소속 주호영 후보(수성을)가 강행군에 지쳐 보인다.

표정은 밝다.

이인선 후보에게 더블스코어 차로 우위를 지킨 여론조사에 고무된 듯하다.

바로 옆 수성갑 선거구로 옮겼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는 “31년 만에 야당 후보를 뽑아 달라”고 호소한다.

지친 기색인 김부겸도 표정이 환하다.

모든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 김문수 후보를 7∼20%포인트 앞선다.

김문수는 아침 일찍 사죄의 100배(拜)로 유세를 시작했다.

막장 공천 수혜자가 역설적으로 유승민(동을)이라면 김문수는 최대 피해자일 수 있다.

주호영의 당선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일 안 하는 3선이냐, 일 잘하는 인선이냐’(이인선 후보)라는 공격에도 ‘일 잘하는 3선이냐, 일 배우는 초선이냐’로 가볍게 따돌린다.

유승민의 낙승을 예상하는 사람도 많다.

한 선거 전문가는 “새누리당이 동구청장을 지낸 이재만을 공천했더라면 초박빙의 승부가 됐을 것”이라며 혀를 찼다.

반면 김부겸은 막판까지 가봐야 한다.

TK(대구경북) 정치판을 꿰뚫고 있는 지인은 51 대 49의 눈 터지는 승부라 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야당 표가 10% 숨어 있으면 대구엔 여당 표가 이 정도 있다는 것이다.

대구 유권자 중엔 여당을 욕하다가도 막상 투표장에선 약해지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번은 다를 것 같다.

김문수 후보가 고교 후배(경북고)가 공 들인 곳에 온 것은 정치적 오판일 수 있다.

“이한구가 망쳐놓은 수성갑에 안면몰수하고 내려온 것은 염치없는 일이다.

”(경북대 K 교수)    야당 성향으로 무소속 출마한 홍의락 후보(북을)도 승기를 잡았다.

정종섭 후보(동갑)는 경북고 동기동창인 류성걸 후보, 추경호 후보(달성)는 구성재 후보와 경합 중이다.

진박(진짜 친박) 정종섭은 선거 현수막에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넣고 한 표를 읍소한다.

그러나 유권자들의 반응은 예전 같지 않다.

 앞서 무소속 조해진 후보(밀양-창녕-함안-의령)는 밀양 수산시장 앞 유세에서 간절하게 한 표를 호소했다.

5일장의 한 상인은 “이건 아니지예”라며 여당의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 공천’을 비판했다.

지금 대구에서는 남진의 ‘가슴 아프게’를 패러디한 “공천과 공천 사이에 이한구가 없었더라면 쓰라린 탈당 무소속만은 없었을 것”이라는 노래가 유행하고 있다.

  대구는 과연 불타고 있는가. 바람은 불고 있는가. 대구의 불길이 PK(부산경남)의 김해, 양산, 부산 북-강서·사상·사하로 이어지는 ‘낙동강 벨트’ 너머로 번질 건가. 총선의 막판 변수인 북풍(김정은의 도발)이나 박풍(대통령의 호소)은 없을 건가. 20년 전 제15대 총선은 지금처럼 야권 분열로 여당이 수도권 총 96석 중 54석(56%)을 획득해 대승을 거두었다.

반면 야권 연대가 이뤄진 2012년 총선에선 야당이 수도권 전체 112석 중 65석(58%)을 석권했다.

대선을 앞둔 결정적 총선(Critical election), 이 정치 드라마의 여야 승부는 내가 예측한 대로 160 대 140의 구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듯하다.

대구에서도 태풍은 아니지만, 바람이 거칠게 불고 있다.

바람을 잘 타면 일약 대권주자의 반열에 오를 김부겸 유승민의 선거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김무성 “저희를 용서해달라” 20대 총선 코앞에 납작 엎드린 새누리이한구 공관장 공천끝나고 해외 도망가 여행즐기고 원유철 원내대표, 서청원 최고위원 등은 친박들끼리 박타령하고 이제와서 잘못했으니 용서해 달라고 건방진 놈들 아닌가? 꼭 선거때는 머리 조아리고 선거 끝나면 국민들 업신여기고 갑질 하는놈들 아니던가.이런꼴 보기 싫어서 과반수 아래로 표를 주어 정신차리게 해야하는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원유철 원내대표 등이 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선거대책회의에 앞서 `죄송합니다`,  `잘 하겠습니다` 피켓을 들고 인사하고 있다.

 김경빈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원유철 원내대표 등이 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선거대책회의에 공개발언이 끝난 뒤 서로 화합하겠다며 비빔밥을 먹고 있다.

김경빈   대구에선 시민들 우습게보고 진박타령 하던놈들 모두 낙선 시키야하는데 최경환 , 조원진 2 넘은 비박계 가슴에 대못을 싸움질 하던놈들 아닌가? 표로 심판을

  친박 마케팅 한놈들 낙선 시키고 무소속에 몰표를 주어 대구시민의 자존심을 살리자 !대구의 친박 냄새풍기며 무소속 우습게 아는넘들 이번에 표로 심판을 해주어야지

특히 이한구 그놈은 공천을  개떡같이 해놓고 해외로 티어 여행을 즐기고 있고한솥밥 먹던사람들 문제가 없다면 경선을 붙였으면 대구가 이렇게 추락하지 않았을텐데 그리고 친박이니 비박이니 박타령, 존령 타령 없었을테고

죽일놈들

사진가의 서재 08 _ 사진가 이한구 ?5.3

5.15? 우리 땅과 해외의 고산들을 종으로 오르고 횡으로 걸으면서, 그 노정 속에서 자신의 사진세계를 구축해왔다.

소소하고 소외된 것들에 긴 시선을 두고 ‘이 땅의 숨은 예인들’ ‘애달픈 우리 농촌’을 비롯해 20년 가까이 서울 ‘청계천’ 변두리이자 중심으로서 삶의 풍경들을 찍고 있다.

<소소풍경> <군용> 등의 개인전을 가졌다.

 작가와의 만남 5월 15 일 일요일 오후 4시 ?사진가 이한구의 서가에서 옮겨온 책들을 중심으로 사담(寫談)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십여 명 안팎의 작은 모음으로 준비하니, 함께 하실 분들은 아래 배너를 통해 신청해주세요.작가와의 만남을 신청하신 분들은 '사진가의 서재'  전시를 무료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일찍 오셔서 전시된 20여점의 작품들과 사진가 이한구의 책들도 함께 보세요.?     ? 사진가 이한구의 서재는 인왕산의 칠부능선 즈음에 있다.

산을 바라기 하면서 오르는 가파른 길의 제일 끝집이니, 우리 땅과 해외의 고산들을 종으로 오르고 횡으로 걸으면서 그 노정 속에서 사진세계를 구축해 온 사진가의 거처로 어울리는 지점이다.

? 서재방 남면과 서면의 벽을 이루고 있는 책장들에는 저마다 크기며 높이가 다른 책들이 정확히 선반 전면부의 5cm 뒤에 가지런히 병렬해 꽂혀있다.

스무 살 무렵 군대에 있을 때 찍은 사진을 무던히도 묵혀두었다가 20년 만에 첫 전시 <군용>으로 선보인 것이나, 청년 시절이던 80년대부터 찍기 시작한 청계천의 기록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는 성실한 근기와 체계가 거기에서 읽힌다.

박영석원정대의 일원으로 히말라야의 고산들을 오르내리는 데에도 필요했던 가지런함일 것이다.

? 뿌리깊은나무에서 발행한 <한국의 발견> 11권 전집이 낡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책장 상단에 묵직하게 자리해 있고, <검은 고독, 흰 고독><8000미터 위와 아래><산경표를 위하여><태백산맥은 없다> 등 각종 산 관련 서적들이 많은 것도 눈에 띈다.

또한 <연암집>을 비롯하여 <목민심서> <북학의> <양화소록>에 이르기까지의 옛 고전들도, 산 관련 책들이 차지하고 있는 체적에 밀리지 않는다.

언뜻 분야가 제각각인 듯 하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모두가 오래된 것, 잊혀진 것, 소소하거나 고독한 것, 그리하여 그리운 것들에 관한 책이다.

그가 사진의 화법으로 말하고 남기고자 하는 것들이 또한 일치하니, 그가 ‘읽는’ 세계가 곧 그가 ‘낳는’ 세계임을 이한구 스스로는 ‘산방(山房)’이라고 부르는 그의 서재에서 본다.

   사진가 이한구의 책   정광식 <아이거 북벽>20대에 산에 대한 열정을 안겨준 책이다.

한국인 등반가가 아이거 북벽을 등반하고 쓴 드문 책이기 때문이다.

산에 미친 선배들의 솔직 담백한 등반은 웃음과, 열정사이를 오간다.

그렇게 아이거 등반을 꿈꾸게 한 책인데, 여전히 꿈으로 진행형이다.

 밑줄202P동상과 굶주림의 고통 속에서 하강하면서 나는 북벽을 저주했고 나의 생의 전부라고 항상 자신 있게 이야기하던 클라이밍이라는 것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다시는 클라이밍은 안 하리라고 이를 악문 지 하루가 채 가시기도 전에...우리의 다음 원정은 어디로 할까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원했다.

한스 카멀란드 <그러나 정상이 끝은 아니다>남티롤 출신의 촌뜨기 둘. 한스 카멀란드는 등반계에 있어서는 살아있는 전설인 라인홀트 매스너와 8천 미터 고봉을 함께한 자일 파트너다.

이들의 세계는 너무도 어마어마해서, 나로서는 간접체험의 세계로밖에 만나지 못한다.

등반기를 남긴 저자에게 감사했던 책이다.

 밑줄24P연이은 성공에는 아무런 피드백도 없고 전환도 없다.

오로지 승리만 맛보았다면 지혜와 판단력은 더 이상 성공하지 못하고 발육 부진에 빠지게 된다.

..사람들은 항상 내게 정상에 올랐을 때의 감정을 묻는다.

그것은 희열도 만족도 아니다.

계속 올라가야 하는 고통에서 해방 되었다는 느낌이 전부다.

성취는 산 아래로 내려 왔을 때에야 비로소 이루어진다.

피터 매티슨 <神의 山으로 떠난 여행>전 세계의 야생지대를 여행하면서 내면의 향기가 깊게 어우러진 글을 남긴 피터 매티슨이 히말라야 설산으로 눈표범을 찾아 나선 과정을 쓴 책이다.

사진가인 나는, 사진으로 그의 글을 대신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기도 했다.

 밑줄317P존경하는 마음으로 다가갔을 때에도 산은 그 ‘영속성’으로 나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그 어마어마하고 엄연한 바위의 느낌은 내 스스로에 대해 느끼는 덧 없음을 더 심하게 만들어버렸다.

아마 덧없음에 대한 이런 두려움 때문에 현대인들은 그토록 생생한 경험을 조금이나마 맛보려고 애쓰는지도 모른다.

릭 리지웨이 <아버지의 산>고산으로의 입산은 신비한 왕국으로 들어가는 거라고 여기고 있다.

그 왕국은 동료들의 우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불교에 심취한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가이자 등반가 조나단 라이트와 이본 취나드(파타고니아설립자), 릭 리지웨이는, 함께 왕국을 나들던 친구다.

등반 도중 사망한 조나단을 산에 묻고 돌아 온 두 친구가, 조나단에게 남겨진 어린 딸 ‘아시아’를 돌본다.

성장한 아시아를 데리고 조나단이 있는 산으로 가는 과정이 <아버지의 산>이다.

인연의 실타래를 다시금 소중히 여기게 한 책이다.

 ?밑줄353P나는 매일매일을 내 생애의 유일한 날처럼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 조나단은 이렇게 썼다.

“많은 날들을 낭비했고 분명 앞으로도 더 많은 날을 낭비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현실을 경험하고 받아들임으로써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두려워 하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라인홀트 매스너 <검은 고독 흰 고독>고산 등반의 전설 같은 이름, 라인홀트 매스너의 낭가파르밧 등반기이다.

매스너는 루팔벽을 초등 하고 하산 도중 동생 귄터를 잃는다.

동생을 잃은 상처를 품고 8년 후 그 산을 홀로 다시 오르고 난 후 쓴 등반기가 ‘검은고독 흰고독’이다.

단독등반을 경험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그가 검고 희다고 한 고독이 늘 궁금했고, 어느 대목들에서는 소름이 돋을 정도의 저릿함이 함께했다.

 밑줄165p...고독이 정녕 이토록 달라질 수 있단 말인가 지난날 그렇게도 슬프던 이별이 이제는 눈부신 자유를 뜻한다는 걸 알았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체험한 흰 고독이었다.

이제 고독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닌 나의 힘이다.

  로버트 팔콘 스콧 <남극일기>남극에 대한 호기심이 한창일 때 이 책을 만났다.

최근의 남극대륙 횡단이나 탐사에 비하면 장비나 정보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뒤떨어져 있던 시대였고 전 대원이 사망하는 실패로 끝났지만 조직과 기록의 탄탄함, 헌신과 희생정신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후지와라 신야 <인도방랑>, <티벳트방랑>‘방랑’이라는 단어에 꽂혀 집어들었다.

지독한 방랑이 펼쳐졌다.

후지와라 신야의 신들린 듯 한 방랑기. 그 글과 자유로운 사진에 꽂혔다.

 밑줄 <인도방랑>23p(인도에서) 청년은(나는) 뭔가에 지고 있는 듯 했다.

청년은 태양에 지고 있었다.

또 그는 대지에 지고 있었다.

청년은 사람들에게 지고, 열에 지고 있었다.

청년은 소에 지고, 양에게 지고, 개와 벌레에게 지고 있었다.

청년은 오물에 지고, 꽃에 지고 있었다.

청년은 걸식에 지고, 여자에게 지고, 신에게 지고 있었다.

청년은 냄새에 지고, 소리에 지고, 그리고 시간에 지고 있었다.

밑줄<티베트방랑>155P불문에 들거나 스님이 되거나 하는 것이, 하나의 불꽃을 버리고 육신에 다른 불꽃을 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걸 보고 싶었다.

그곳(티베트)에서, 다른 형식의 불꽃으로 빛나고 있는 한 인간을.... 제임스 로드 <작업실의 자코메티> 자기가 원하는 혹은 마음에 흡족 할 때까지. 끝임 없이 혹은 지겹도록 지우고 수정하는 자코메티. 그러나 시작은 있어도 결코 끝은 없다는.  밑줄145P사람에게는 정말로 시작하기만 한다면, 시작이라는 것을 해낼 수 만 있다면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작만 제대로 된다면 끝은 그 안에 들어 있는 법이니까요. ?쟝 모르/ 존 버거 <세상 끝의 풍경>자기 안에 개 한 마리와 소년 한 명이 들어있는 쟝 모르. 그리고 그의 50만장이 넘는 사진. 그와 함께 세상 끝의 풍경을 찾아나서는 글쟁이 존 버거와의 우정이 부러웠다.

아름다운 책이다.

 ?밑줄19P쟝은 어디서나 이국의 땅을 거닐었던 것! 혹은 쟝은 늘 이방인이었던 것! ... 그런데 쟝이 편안함을 느끼는 곳, 스스로 주인이자 손님이기도 한 곳이 바로 ‘세상끝’이라는 게 패러독스라면 패러독스다.

또 바로 그 ‘세상끝’에서 나는 쟝의 우정을 받아 누렸음이다.

국립춘천박물관 <우리 땅, 우리의 진경>우리 산하를 떠도는 일이 많았다.

이 땅을 그린 옛 그림에 대한 여러 책들을 섭렵하면서 이 땅의 서정성에 더 눈을 뜨게 됐다.

이 책은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우리 땅, 우리의 진경’ 특별전(2002)때의 도록인데 자동차 한편에 두고 떠돌아다니면서 보기에 좋았다.

돌아다니다가 그림 속 풍경이 나온 지역을 지날 때면 부러 들려 안색을 살피고 현재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다.

개벽천지도 있거니와 온전한 곳도 더러 있다.

부감법이 꽤 있어서 곤혹을 치르기도한다.

  연암 박지원<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마이너의 수장’ 연암을 좋아한다.

심오한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현실의 세계’ 와 ‘민중의 삶’을 귀히 여겼던 그는 유머와 역설, 세련된 자유분방함으로 자칫 딱딱하게 굳어지기 쉬운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해준다.

밑줄 326

327P돌아가신 누님 이름은 박 아무개고 본관은 반남이다.

손아래 동생인 나는 다음과 같이 묘지를 쓴다.

....슬프다! 누님이 시집가는 날 새벽단장을 하던 일이 어제와 같구나. 그때 내 나이 겨우 여덟이었다.

드러누워 뒹굴며 응석을 부리다가 새신랑을 흉내 내어 말을 더듬더듬 점잖케 하였더니 누님은 부끄러운 나머지 그만 빗을 내 이마에 떨어뜨렸다.

내가 골이 나서 울며불며 분에다 먹칠을 하고 침을 거울에 발랐는데, 누님은 옥으로 된 오리와 금으로 된 벌을 꺼내 내게 주며 울지 말라고 달래었다.

지금부터 스물여덟 해 전의 일이다.

...? 박명욱 <너무

너무

>‘봄은 늙지도 않아...’라고 한숨처럼 얕게 뱉은 형의 탄식에서, 지난 서학동사진관에서의 개인전 <애인은 늙지도 않아> 제목을 얻었다.

문화평론가 박명욱 형. 많이 느끼는 형 곁에서, 느낌을 전해들을 수 있는 일을 행이라 여긴다.

그가 98년에 낸 이 책의 제목은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이 세상에 오다>로, 마이너 예술가들 17명의 삶과 작업에 대한 박명욱의 ‘느낌’을 글로 얻어들을 수 있어서 귀하다.

서정춘 시집 <죽편(竹篇)>    아, 나의 농사는 참혹하구나흑!흑! 시집 첫 장에 나오는 시인의 말이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이 들 때면 펼치는 시집이다.

시인 스스로는 ‘참혹한 농사’라고 했으나, 그의 농사에서 위로를 얻곤 한다.

竹篇 1- 여행여기서부터, - 멀다칸칸마다 밤이 깊은푸른 기차를 타고대꽃이 피는 마을까지백년이 걸린다   3

5. 15사진위주 류가헌 ?<사진가의 서재>는, 한 사진가의 정신과 정서가 형성되기까지 책이 관여한 부분을 살핌으로써 사진과 인문학의 만남을 도모한 기획전입니다.

사진가의 서고에서 그이가 중히 여기는 책과 담론화 할 책 일부를 옮겨서 나누어보고, 그 책을 중심으로 ‘작가와의 만남’ 등을 이어갑니다.

 ??사진가 이한구의 서재는 인왕산의 칠부능선 즈음에 있다.

산을 바라기 하면서 오르는 가파른 길의 제일 끝집이니, 우리 땅과 해외의 고산들을 종으로 오르고 횡으로 걸으면서 그 노정 속에서 사진세계를 구축해 온 사진가의 거처로 어울리는 지점이다.

서재방 남면과 서면의 벽을 이루고 있는 책장들에는 저마다 크기며 높이가 다른 책들이 정확히 선반 전면부의 5cm 뒤에 가지런히 병렬해 꽂혀있다.

스무 살 무렵 군대에 있을 때 찍은 사진을 무던히도 묵혀두었다가 20년 만에 첫 전시 <군용>으로 선보인 것이나, 청년 시절이던 80년대부터 찍기 시작한 청계천의 기록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는 성실한 근기와 체계가 거기에서 읽힌다.

박영석원정대의 일원으로 히말라야의 고산들을 오르내리는 데에도 필요했던 가지런함일 것이다.

뿌리깊은나무에서 발행한 <한국의 발견> 11권 전집이 낡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책장 상단에 묵직하게 자리해 있고, <검은 고독, 흰 고독><8000미터 위와 아래><산경표를 위하여><태백산맥은 없다> 등 각종 산 관련 서적들이 많은 것도 눈에 띈다.

또한 <연암집>을 비롯하여 <목민심서> <북학의> <양화소록>에 이르기까지의 옛 고전들도, 산 관련 책들이 차지하고 있는 체적에 밀리지 않는다.

언뜻 분야가 제각각인 듯 하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모두가 오래된 것, 잊혀진 것, 소소하거나 고독한 것, 그리하여 그리운 것들에 관한 책이다.

그가 사진의 화법으로 말하고 남기고자 하는 것들이 또한 일치하니, 그가 ‘읽는’ 세계가 곧 그가 ‘낳는’ 세계임을 이한구 스스로는 ‘산방(山房)’이라고 부르는 그의 서재에서 본다.

??이한구의 책국립춘천박물관 우리땅 우리의 진경라이홀트 매스너 검은 고독 흰 고독릭 리지웨이 아버지의 산박명욱 너무너무서정춘 죽편연암 박지원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장모르 존버거 세상 끝의 풍경정광식 아이거 북벽제임스 로드 작업실의 자코메티피터 매티슨 신의 산으로 떠난 여행한스 카멀란드 그러나 정상이 끝은 아니다후지와라 신야 인도방랑 티벳트 방랑이한구  Lee, Hankoo우리 땅과 해외의 고산들을 종으로 오르고 횡으로 걸으면서, 그 노정 속에서 자신의 사진세계를 구축해왔다.

소소하고 소외된 것들에 긴 시선을 두고 ‘이 땅의 숨은 예인들’ ‘애달픈 우리 농촌’을 비롯해 20년 가까이 서울 ‘청계천’ 변두리이자 중심으로서 삶의 풍경들을 찍고 있다.

<소소풍경> <군용> 등의 개인전을 가졌다.

  잠잘 때도 카메라를 머리맡에 두고 자던 스무살 무렵이었다.

최전방에 가서 사진을 찍는다 생각하면, 자원한 종군처럼 입대가 설레었다.

1989년, 바람대로 최전방에 배치되었다.

찍고 싶은 것을 찾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엔 크고 극적인 것들을 찍게 되리라 여겼는데. 수첩에 그것을 ‘빨간 풍선’이라고 적었다.

” (이한구, 『군용』 작업노트)  스무 살 그때. 모두가 스무 살이던 속에서, 그렇게 찍고 싶었던 ‘빨간 풍선’은 무엇이었을까. 터질 것처럼 불안하게 부푼. 더럽고 찬란한. 혹은 수상한 통과의례. 이런 몇 개의 단어들로 그것들을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사진은 그때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2010년 첫 개인전 <소소풍경>으로, ’그의 사진 속에는 시적 화자(詩的 話者)가 있다’는 평을 듣는 이한구의 사진은.   이십 여 년 만에 책으로(군용_ 눈빛출판사. 2012), 사진전으로 보게 되는 사진가 이한구의 <군용(軍用_military use)>. 스무 살 무렵에 간 군대에서 군인인 그가 군대를 찍은 사진들이다.

  “바람대로 최전방에 배치되었지만, 카메라는 손에 쉬이 쥐어지지 않았다.

상병이 될 때까지 눈으로 찍었고, 그때부터 찍고 싶은 것이 생기면 한쪽 눈을 깜빡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 촬영한 필름들은 비닐봉지와 자루에 담아 땅 속에 묻었다.

[이한구] 는 진정 무엇인가.

비가 오면 잠이 오지 않았다.

휴가 때마다 혼자만의 특급 수송 작전을 펼쳐서 집까지 공수했다”. (이한구, 『군용』 작업노트)  그때 그 땅 속에 묻혔던 필름들이, 1989년 11월에서부터 1992년 3월 사이 찍은 사진들이, 20여 년이 지난 2012년이 되어서야 봉인이 풀린다.

“기존의 군대 사진과는 차별화된 독특한 지점”에 이한구의 군대 사진이 있다고, “스무 살에 이미 작가(作家)”였다고,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는 말한다.

시인 이원은 그 사진들에 대해 “폭로할 수 없는 것을 폭로하지 않는 방식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사진가로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온 이한구는 자신의 사진들을 개봉하는 것을 서두르지 않는다.

92년부터 지금까지 찍어오고 있는 ‘청계천’. 93년부터 찍어 온 ‘산’ 사진들이 아직도 미공개의 지점에 있다.

<군용>은 그들의 출정 전에 세상에 먼저 나아가는 ‘사진가 이한구의 처음’인 셈이다.

 ?  이한구_<군용>#2_digital inkjet print  이한구_<군용>#3_digital inkjet print 이한구_<군용>#4_digital inkjet print 이한구_<군용>#5_ digital inkjet print 이한구_<군용>#6_digital inkjet print ?이한구_<군용>#7_digital inkjet print  이한구_<군용>#8_digital inkjet print  ?■작가 노트                                                                             ??  최전방에 가고 싶었다.

 어차피 가야하는 군대라면. 최전방에 가서 사진을 찍고 싶었다.

잠잘 때도 카메라를 머리맡에 두고 자던 스무 살 무렵이었다.

최전방에 가서 사진을 찍는다 생각하면, 자원한 종군처럼 입대가 설레었다.

  1989년, 원하던 대로 최전방 15사단 부대에 입대했다.

찍고 싶은 것을 찾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엔 크고 극적인 것들을 찍게 되리라 여겼는데. 수첩에 그것을 ‘빨간 풍선’이라고 적었다.

암호가 일상화된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카메라는 손에 쉬이 쥐어지지 않았다.

초조하고 불안했다.

눈으로 찍었다.

찍고 싶은 장면 앞에서 한쪽 눈을 껌벅이는 버릇이 그때 붙었다.

밤이면 침상에 누워 천정에 눈을 감고 현상했다.

  상병이 되어서야 카메라를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러나 자유로운 촬영은 불가능했다.

방독면케이스에 카메라를 넣고 야전훈련을 나갔다가, 부대장으로부터 가스실에 맨얼굴로 들어가는 처벌을 받기도 했다.

  촬영한 필름들은 비닐봉지와 자루에 담아 땅 속에 묻었다.

비가 오면, 잠이 오지 않았다.

휴가 때마다 혼자만의 특급수송작전을 펼쳐서 집까지 공수했다.

현상을 마치면 휴가가 끝나있었다.

  스무 살 그때. 모두가 스무 살이던 속에서, 그렇게 찍고 싶었던 빨간 풍선은 무엇이었을까. 터질 것처럼 불안하게 부푼. 더럽고 찬란한. 혹은 수상한 통과의례. 이런 몇 개의 단어들로 그것을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사진들이 미처 말로 표현치 못하는 그것들을 대신 보여 주기 바란다.

  이십 여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나는 기억한다.

나의 사진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 작가 소개??                                                               ???이한구 李翰九 Lee, Han Koo ▶ 이력1968년 서울생1993년 신구전문대사진학과 졸업1993-1997년 월간 <사람과 산> 사진부 팀장1993-1998년 사진집단 <사실> 1997-현재 한국산악사진가회2000-2002년 미국 LA 소재 아시아 아트 전문갤러리 운영2002-2005년 (주)이산미디어 월간 <이마운틴> 사진편집위원2002-2006년 출판프로젝트그룹 <樹流山房·수류산방> 사진 담당2009-현재 photo studio 류가헌, 사진위주 Gallery 류가헌 운영   ▶ 전시1988년 <청산도> 출판문화회관1989년 <섬진강을 따라서> 출판문화회관1993년 <사진집단 -사실-전> 후지포토 갤러리1999년 <한국산악사진> 세종문화회관2000년 <한국산악사진> 세종문화회관2002년 한·일 문화교류의 해 기념 <한·일 산악사진전> 주한 일본대사관 문화원2002년 예술의 전당 <세계환경전> 프로젝트 공동기획2004년 <다큐멘터리 18년만의 외출> 그룹전, 예총화랑2009년 <소소풍경Ⅰ> 개인전, 류가헌  ?   ??  ?  이한구의 <군용>을 보고  폭로할 수 없는 것을폭로하지 않는 방식으로   글 / 이원 시인  ?    던져지는 순간이 존재한다.

선택이 존재하지 않는 곳. 그것은 출생과 같다.

태어남에 선택이란 없었듯이. 태어남이란 그냥 무조건 던져지는 것이듯이. 우리는 그와 같은 폭력적 순간에 나타난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살아야 한다.

   선택이 존재하지 않는 시간은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격렬하지 않다.

비탄에 젖게 하지도 않는다.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던져졌다는 것은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현실이라고 부른다.

   현실은 대단히 완만하다.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이 사실을 알고 어떤 사람은 이 사실을 모른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자의 시선은 완만하다.

완만할 수 없는 곳에서 완만한 시선, 어쩌면 태어난 순간을 잊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존재하지 않으면서 존재하는 세계    말이 사라지는 세계. 침묵이라는 거대한 말이 존재하는 세계. 침묵. 그 거대한 말은 많은 것을 삼킨다.

삼킬 수 없는 것까지도. 울부짖는 것들까지도.  군대. 지도에 없는 곳. 지도에 나타나지 않는 곳. 존재하지 않으면서 분명하게 존재하는 곳에서는 밝힐 수 없는 사건들이 존재한다.

영문도 모르고 한계를 넘게 하는 강제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모두 같기 때문에 질문할 수 없는 곳. 계급과 서열과 복종이 존재하는 곳. 네 발이 될 수도 있는 곳. 발가벗겨 내몰릴 수도 있는 곳. 침묵 속에 묻혀야 하는 곳. 가까스로 배운 ‘인간-되기’에서 다시 한 순간에 ‘동물-되기’로 되돌아가기도 하는 곳.    군대. 숫자 속의 세계. 이름을 달고 존재하면서 이름으로 존재하지 않는 세계. 줄을 맞춰 서는 세계. 동시에 같은 행동을 하는 세계. 똑같은 것을 입고 똑같은 것을 먹고 똑같은 시간에 자면서 이유를 물으면 안 되는 행군을 배우는 세계. 성년이 되면서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남자들은 그곳에 갑자기 던져진다.

연하고 비린 남자 냄새가 나기 시작할 때. 민간인에서 군인으로 던져지는 순간.   ?  왼쪽 발이 동시에 들렸을 때      처음 배우는 것은 줄 맞추어 서는 것. 왼발을 한 보 앞으로 동시에 내미는 것. 이유 없이 아니 이유라는 말을 지우면서 걷는 그것을 행군이라고 부르는 것. 같은 감촉의 흰 장갑을 끼고 총이라는 긴 것을 들고 얼떨결에 행군을 시작할 때 손과 철모, 장갑과 총은 침묵한다.

이들의 왼쪽 발이 동시에 들렸을 때 새집을 매단 나무들도 왼쪽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바람은 그들이 걷는 방향과는 무관한 오른쪽에서 들이닥쳤다는 사실. 군복을 입은 이들은 생의 낯선 방향으로 걷기 시작한다.

낯선 곳으로의 자세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이상한 풍경. 이것은 군복의 방향.       ?  군화 또는 입      모여 있는 군화들은 같은 모양. 사실은 다른 모양. 군화의 속에 각자의 필체로 이름을 적어 넣었다.

군화들은 존재의 발에 따라 다르게 늘어나 있다.

발을 넣고 끈을 조이면 다시 같은 모양이 된다.

이름을 보고 자신의 군화를 알아차린다.

이름을 믿을 수 있는가. 필체를 믿을 수 있는가. 군화를 신고 계속 걸으면 시간이 입처럼 벌어져간다.

점점 말을 잃어가는 입 대신에 벌어지는 군화들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기록된다.

  ?  급소 부위 강?약 상관없이   “구타자는 살인자”라는 표어가 있는 곳. 급소 부위가 어딘지를 그려놓은 곳. 구타가 행해지고 있다는 확인. 남자는 벗은 몸에 군번줄을 걸고 있다.

알아볼 수 없는 지경의 형체를 갖게 되었을 때 식별하기 위해 걸고 있는 가볍고 얇은 목숨 줄. 단련의 목적을 모르고 단련된 몸은 군번줄보다 무력하다.

‘신체 급소 부위 강?약 상관없이 치명상’이라는 글자 옆, 그러나 군번줄을 목에 걸고 있을 때 허리에 올린 손에서는 이미 금기가 사라지고 있다.

       군인 앞의 최전방 철책을 잠그고 있는 것은 “융통성과 인정은 이적 행위다”라는 구호. 철책의 아이러니는 철문이 아니라는 것.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너머를 보아야 하기 때문에. 융통성과 인정과 이적 행위는 같은 무게로 구멍 숭숭 뚫린 곳에 걸려 있다.

  ?  같은 부대 동기들    판초를 쓰고 나란히 카메라를 응시하는 두 남자(이때는 군인의 모습이 아니다). 얼굴만 간신히 내놓았을 때 남자라고 하기에도 어린 모습이 나타난다.

군복도 짧게 자른 머리도 감추고 얼굴만 간신히 내놓았을 때 그들은 같은 비밀을 공유한 “같은 부대 동기들”이 된다.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을 나눠 가진 그래서 서로가 나눠지지 않는 이상한 공동체가 된다.

“우린 아직 이병이니까. 별로 그렇게 죄진 게 없어. 우리가 일병이 되면 죄가 조금 다양해질까? 우리가 상병이 되면…고백할 게 많아지겠지? 앞으로 들어올 후임들한테, 무슨 죄를 지을지 계획하면서. 우리는 정신없이 웃고 까분다.

”(김승일, 「같은 부대 동기들」) 한밤의 보초를 서는 것도 구타도 공포도 그들의 안의 얼굴까지 가져가지는 못하는 것이다.

       딱딱하고 긴 단 하나의 침상에 누워 잘 때 서로를 마주보며 잠들고 있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둘은 알고 있을까. 마주보고 잠든 사이에는 아슬아슬하게 동성애가 스쳐가지도, 서열이 들어있지도 않다.

구부러지는 팔을 가진 두 존재가 웅크리고 잠들어 있다.

그들을 찍은 카메라에는 연민이 없다.

그렇다고 희망이 들어 있지도 않다.

다만 그들은 마주 보고 잠들어 있다.

딱딱하고 긴 같은 길이와 같은 단단함을 가진 바닥에서 잠든 이들만이 있다.

     끝내 일어나지 않겠다     군복을 입고 군화까지 신고 팔을 가슴에 갖다 대고 반듯하게 잠들어 있는 한사람 옆에 또 같은 포즈로 누운 한 사람. 또 곁에 같은 포즈로 누운 한 사람. 그들은 뻣뻣하다.

나무라고 한다면 뻗기를 멈추지 않겠다는 미루나무이며 의지로 본다면 곧 걸어 나오고야 말겠다는 자세이며 끝내 일어나지 않겠다는 저항으로도 보인다.

곧 불려나갈 수도 있어 막간을 놓치지 않고 쪽잠에 빠졌다고 치자. 그러나 기하학적 구도 속의 이들은 벗어나고 있다.

이곳으로부터.     ?한꺼번에 삼키고 표시도 내지 않을 것 같은   웃통을 벗고 배를 뒤집어 하늘로 향한 채 네 발이 되어 기어가는 몸들. 북극 동물들 같다.

저 기이한 자세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저곳은 산 속, 구덩이처럼 푹 파인 곳일 텐데, 해변이 있을 것 같다.

군데군데 큰 돌들도 있을 것 같다.

돌아가면 절벽도 있을 곳 같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 파도가 치고 있을 것도 같다.

시퍼런 물은 한꺼번에 수십 마리의 동물을 삼키고 표시도 내지 않을 것 같다.

   네 발을 가진 몸의 그림자들은 땅에서 오그라들어 있다.

거꾸로 늘어뜨린 목은 세상에 투항의 표시. 항복의 표시. 말이 틈입되지 않은 그들의 몸은 와글거린다.

네 발로 몸을 공중에 띄우고 걸어가는, 동물 되기를 익힌 몸들에게 전투는 더 이상 전투가 아니다.

  ?   ‘다만ㅡ있음’의 사진   이한구의 군대 사진들은(『군용(軍用_military use)』이라는 제목으로 사진전문 갤러리 류가헌에서 가을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 이한구가 현실을 찍은 첫 번째 기록들이다.

스물둘에 간 군대에서 군인인 이한구가 군대를 찍은 것들이다.

“어차피 가야하는 군대라면 최전방에 가서 사진을 찍고 싶었다”는 그의 바람대로 최전방에 배치된 그는 상병이 되어서 카메라를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머리맡에 사진기를 놓고 잘 정도로 사진을 좋아한 이 청년은 눈으로 찍는 습관을 갖게 되었고 그때부터 찍고 싶은 것이 생기면 한쪽 눈을 깜빡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촬영한 필름들은 비닐봉지와 자루에 담아 땅 속에 묻었다.

비가 오면 잠이 오지 않았다.

휴가 때마다 혼자만의 특급 수송 작전을 펼쳐서 집까지 공수했다”. (이한구, 『군용』 작업노트)    1989년 11월에서부터 1992년 3월 사이 찍은 이 사진들을 이한구는 20여년이 지난 2012년이 되어서야 봉인을 푼다.

사진가로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온 그는 자신의 기록들을 개봉하는 것을 서두르지 않는다.

스무살이 스무살을 찍는 방식. 군인이 군인을 찍는 방식의 카메라는 이방인의 것이 아니며 관찰자의 것도 아니며 기어이 그곳에 함께 했다는 소속된 의식의 것도 아니다.

증인의 시선도 경험자의 시선도 외면하는 시선도 감추는 시선도 아니다.

에피소드도 아니고 불거진 어느 순간을 찍지도 않는 이것을 이한구의 방식이라고 해야 옳다.

   스무 살 무렵 군인이기도 했던 그가 찍은 사진들이 이토록 담담할 수 있다는 것. 종군의 심정으로 갔던 이한구가 그곳에서 알게 된 것은 내던져진 그곳이 다름 아닌 삶이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다면 스무 살의 이한구가 찍은 사진이 이토록 담담할 수는 없다.

더욱이 뜨겁디뜨거운 청춘의 손이 아니던가. 이십대 초반의 그가 찍은 사진에는 감춘 것이 없다.

생략된 것이 없다.

프레임이 완강하지 않고 공간에 포커스를 집중하지도 않는다.

‘다만 ㅡ있음’의 사진. 통제나 균형을 맞추지 않은 사진. 정서와 형식, 의미를 배제하는 사진. 아니 배제한 것이 아니라 현실을 먼저 기록하는 사진. 현실을 기록할 때 사진은 허구를 허용하지 않는다.

  ?  현실은 기록되어야 마땅하다    이한구는 현실을 현실로 기록하는 기이한 지점을 보여주는 사진가다.

그는 현실을 현실로 살면서 사진을 찍는 그러니까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찍는 방식을 택한다.

그는 92년부터 지금까지 청계천을 찍어오고 있다.

박영석 대장 팀과 짧지 않은 시간을 같이 하기도 한 그가 산 사진을 찍어온 것은 93년부터다.

이한구의 사진은 가파른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찍어도 드라마가 생기지 않는다.

푸르디푸른 하늘이 거기 있고 가파른 절벽이 거기 있다.

그 안에는 분명 다큐멘터리의 시각이 없지 않을 것이나 우선하지 않는다.

에베레스트나 청계천, 군대 사진은 이한구가 찍은 어느 숲이나 나무들, 그것과 다르지 않다.

나무나 숲과 등가이다.

숲이나 나무와 다르지 않게 현실을 기록하는 것. 이한구 사진이 위치하는 자리다.

   현실은 과정도 결과도 동기도 원인도 아니다.

현실은 ‘다만 펼쳐져 있음’의 그 어디이다.

사진이 현실을 현실로 나타나게 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기교나 예술성이 앞서 보이면 안 되기 때문이다.

최민식의 사진이 다큐멘터리가 되지 않는 것은 그의 프레임이 잡은 예술성 때문이다.

그가 잡은 것은 가난이 아니라 구도였다고 할 수 있다(최민식 사진의 크기가 클 때보다 작을 때 완결성이 더 강한 것은 구도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한구는 최민식과는 반대의 지점에서 작업한다고 할 수 있다.

예술성이 먼저 나타나지 않게 현실을 먼저 붙잡는 방식. 그러나 가난도 비극도 억압도 등가의 현실이어서 우위를 갖지 않는 카메라로 현실을 붙잡는 방식. 현실은 기록될 수 있는가. 사진은 현실을 어떤 방식으로 기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가능하다면, 현실은 기록되어야 마땅하다는 대답을 이한구의 사진이 갖고 있다.

갑자기 찾아오므로 매 순간 완결되는 것이 현실이므로. 우리가 “사랑하기에 가장 완벽한 장소”가 현실이듯이, 죽기에 가장 완벽한 장소 또한 현실이므로.   ?  함께 커튼 뒤에 있는 카메라   이한구의 사진은 20여년 이상 공동 작업을 해온 장 모르, 존 버거와 닮아 있다.

시골 의사나 이민 노동자들을 장 모르는 찍고 그 사진을 존 버거는 글로 쓴다.

사진과 글 모두 담담하고 세세하다.

그 섬세한 기록에 아무런 정서도 경사도 틈입시키지 않는 곳에 놀라움이 있다.

그들의 작업은 삶을 사진으로 글로 보여준다.

삶이라는 사진을 기록한다.

삶을 삶으로 기록한다.

   “풍경은 기만적일 수 있다.

종종 풍경은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펼쳐지는 무대라기보다는 하나의 커튼처럼 보인다.

그 뒤에서 사람들의 투쟁, 성취 그리고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는 그런 커튼…그 주민들과 함께 커튼 뒤에 있는 이에게, 풍경은 더 이상 지리적인 대상에 그치지 않고 전기(傳記)적이고 개인적인 그 무엇이 된다”(존 버거?장 모르, 『행운아』)는 그 자리, 현실을 현실로 찍는, 아니 현실을 현실로 나타나게 하는 곳. 뜨겁지도 차갑지도 어둡지도 환하지도 않은, 아니 뜨겁기도 차갑기도 어둡기도 환하기도 한, 사람이 소리 없이 파묻히기도 하는 거기에 이한구의 카메라가 있다.

  ?  다시, ‘제조년월일 1986년 7월 일. 군용’    모포 위에서 양쪽 발목에 고무링을 감고 있는 발목을 찍은 사진에는 폭로도 없다.

고발도 없다.

증거도 없다.

다만 현실이 있다.

행군을 처음 배울 때 나무의 방향과 그들의 방향은 각각 다르다는 것. 모여 웃통을 벗고 네 발이 되어 길 때는 스스로가 징그럽다는 것. 서로는 알지 못하며 그러나 마주 보며 잠이 드는 순간도 있다는 것. 이 순간을 둘은 평생 알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자신의 글씨체로 자신의 이름을 쓴 신발만이 자신의 것이 된다는 것. 다른 신발에 자신의 이름을 쓴다면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제 손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라는 것. 나란히 판초를 입고 섰던 그 시간에 군복도 어쩌지 못하는 융통성과 인정의 얼굴이 나타나 있었다는 것. 판초를 입은 둘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 카메라의 앵글은 그 안의 얼굴을 보았다는 것. 그것이 바로 그곳이 금지한 융통성과 인정이었다는 것. 융통성과 인정은 아무 이름도 붙일 수 없는 표정으로 나타난다는 것. 카메라의 렌즈는 이름 붙일 수 없는 그 안의 얼굴을 보았다는 것.     폭로할 수 없는 것을 폭로하지 않는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 이한구의 『군용』 사진은 그것을 말한다.

아니, 폭로할 수 없는 것을 폭로하지 않는 방식으로, 현실을 기록하는 것, 그것이 이한구 사진의 윤리다.

------------------------------------------------------------------------- 이원 시인. 1992년 『세계의 문학』으로 데뷔. 시집으로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 등이 있다.

현대시학 작품상, 현대시 작품상을 수상했다.

?27 장소_서학동사진관 전북 전주시 완산구 서학로 16-17   이번 전시에서 이한구는 최근작 ‘무무(無舞)_마지막 예기와 꾼, 개비에 관한 기록’과 자신의 첫 시리즈 ‘소소(小小)풍경’을 함께 선보인다.

이는 각기 인물과 풍경이라는 상이한 소재를 다뤘기에 얼핏 함께 엮이기 어려워 보이지만, 좀더 파고들면 두 작업을 연결짓고 있는 작가 특유의 주관적 심상과 감정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사진가의 서재 08 _ 사진가 이한구 ?5.3

5.15? 우리 땅과 해외의 고산들을 종으로 오르고 횡으로 걸으면서, 그 노정 속에서 자신의 사진세계를 구축해왔다.

소소하고 소외된 것들에 긴 시선을 두고 ‘이 땅의 숨은 예인들’ ‘애달픈 우리 농촌’을 비롯해 20년 가까이 서울 ‘청계천’ 변두리이자 중심으로서 삶의 풍경들을 찍고 있다.

<소소풍경> <군용> 등의 개인전을 가졌다.

 작가와의 만남 5월 15 일 일요일 오후 4시 ?사진가 이한구의 서가에서 옮겨온 책들을 중심으로 사담(寫談)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십여 명 안팎의 작은 모음으로 준비하니, 함께 하실 분들은 아래 배너를 통해 신청해주세요.작가와의 만남을 신청하신 분들은 '사진가의 서재'  전시를 무료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일찍 오셔서 전시된 20여점의 작품들과 사진가 이한구의 책들도 함께 보세요.?     ? 사진가 이한구의 서재는 인왕산의 칠부능선 즈음에 있다.

산을 바라기 하면서 오르는 가파른 길의 제일 끝집이니, 우리 땅과 해외의 고산들을 종으로 오르고 횡으로 걸으면서 그 노정 속에서 사진세계를 구축해 온 사진가의 거처로 어울리는 지점이다.

? 서재방 남면과 서면의 벽을 이루고 있는 책장들에는 저마다 크기며 높이가 다른 책들이 정확히 선반 전면부의 5cm 뒤에 가지런히 병렬해 꽂혀있다.

스무 살 무렵 군대에 있을 때 찍은 사진을 무던히도 묵혀두었다가 20년 만에 첫 전시 <군용>으로 선보인 것이나, 청년 시절이던 80년대부터 찍기 시작한 청계천의 기록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는 성실한 근기와 체계가 거기에서 읽힌다.

박영석원정대의 일원으로 히말라야의 고산들을 오르내리는 데에도 필요했던 가지런함일 것이다.

? 뿌리깊은나무에서 발행한 <한국의 발견> 11권 전집이 낡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책장 상단에 묵직하게 자리해 있고, <검은 고독, 흰 고독><8000미터 위와 아래><산경표를 위하여><태백산맥은 없다> 등 각종 산 관련 서적들이 많은 것도 눈에 띈다.

또한 <연암집>을 비롯하여 <목민심서> <북학의> <양화소록>에 이르기까지의 옛 고전들도, 산 관련 책들이 차지하고 있는 체적에 밀리지 않는다.

언뜻 분야가 제각각인 듯 하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모두가 오래된 것, 잊혀진 것, 소소하거나 고독한 것, 그리하여 그리운 것들에 관한 책이다.

그가 사진의 화법으로 말하고 남기고자 하는 것들이 또한 일치하니, 그가 ‘읽는’ 세계가 곧 그가 ‘낳는’ 세계임을 이한구 스스로는 ‘산방(山房)’이라고 부르는 그의 서재에서 본다.

   사진가 이한구의 책   정광식 <아이거 북벽>20대에 산에 대한 열정을 안겨준 책이다.

한국인 등반가가 아이거 북벽을 등반하고 쓴 드문 책이기 때문이다.

산에 미친 선배들의 솔직 담백한 등반은 웃음과, 열정사이를 오간다.

그렇게 아이거 등반을 꿈꾸게 한 책인데, 여전히 꿈으로 진행형이다.

 밑줄202P동상과 굶주림의 고통 속에서 하강하면서 나는 북벽을 저주했고 나의 생의 전부라고 항상 자신 있게 이야기하던 클라이밍이라는 것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다시는 클라이밍은 안 하리라고 이를 악문 지 하루가 채 가시기도 전에...우리의 다음 원정은 어디로 할까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원했다.

한스 카멀란드 <그러나 정상이 끝은 아니다>남티롤 출신의 촌뜨기 둘. 한스 카멀란드는 등반계에 있어서는 살아있는 전설인 라인홀트 매스너와 8천 미터 고봉을 함께한 자일 파트너다.

이들의 세계는 너무도 어마어마해서, 나로서는 간접체험의 세계로밖에 만나지 못한다.

등반기를 남긴 저자에게 감사했던 책이다.

 밑줄24P연이은 성공에는 아무런 피드백도 없고 전환도 없다.

오로지 승리만 맛보았다면 지혜와 판단력은 더 이상 성공하지 못하고 발육 부진에 빠지게 된다.

..사람들은 항상 내게 정상에 올랐을 때의 감정을 묻는다.

그것은 희열도 만족도 아니다.

계속 올라가야 하는 고통에서 해방 되었다는 느낌이 전부다.

성취는 산 아래로 내려 왔을 때에야 비로소 이루어진다.

피터 매티슨 <神의 山으로 떠난 여행>전 세계의 야생지대를 여행하면서 내면의 향기가 깊게 어우러진 글을 남긴 피터 매티슨이 히말라야 설산으로 눈표범을 찾아 나선 과정을 쓴 책이다.

사진가인 나는, 사진으로 그의 글을 대신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기도 했다.

 밑줄317P존경하는 마음으로 다가갔을 때에도 산은 그 ‘영속성’으로 나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그 어마어마하고 엄연한 바위의 느낌은 내 스스로에 대해 느끼는 덧 없음을 더 심하게 만들어버렸다.

아마 덧없음에 대한 이런 두려움 때문에 현대인들은 그토록 생생한 경험을 조금이나마 맛보려고 애쓰는지도 모른다.

릭 리지웨이 <아버지의 산>고산으로의 입산은 신비한 왕국으로 들어가는 거라고 여기고 있다.

그 왕국은 동료들의 우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불교에 심취한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가이자 등반가 조나단 라이트와 이본 취나드(파타고니아설립자), 릭 리지웨이는, 함께 왕국을 나들던 친구다.

등반 도중 사망한 조나단을 산에 묻고 돌아 온 두 친구가, 조나단에게 남겨진 어린 딸 ‘아시아’를 돌본다.

성장한 아시아를 데리고 조나단이 있는 산으로 가는 과정이 <아버지의 산>이다.

인연의 실타래를 다시금 소중히 여기게 한 책이다.

 ?밑줄353P나는 매일매일을 내 생애의 유일한 날처럼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 조나단은 이렇게 썼다.

“많은 날들을 낭비했고 분명 앞으로도 더 많은 날을 낭비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현실을 경험하고 받아들임으로써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두려워 하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라인홀트 매스너 <검은 고독 흰 고독>고산 등반의 전설 같은 이름, 라인홀트 매스너의 낭가파르밧 등반기이다.

매스너는 루팔벽을 초등 하고 하산 도중 동생 귄터를 잃는다.

동생을 잃은 상처를 품고 8년 후 그 산을 홀로 다시 오르고 난 후 쓴 등반기가 ‘검은고독 흰고독’이다.

단독등반을 경험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그가 검고 희다고 한 고독이 늘 궁금했고, 어느 대목들에서는 소름이 돋을 정도의 저릿함이 함께했다.

 밑줄165p...고독이 정녕 이토록 달라질 수 있단 말인가 지난날 그렇게도 슬프던 이별이 이제는 눈부신 자유를 뜻한다는 걸 알았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체험한 흰 고독이었다.

이제 고독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닌 나의 힘이다.

  로버트 팔콘 스콧 <남극일기>남극에 대한 호기심이 한창일 때 이 책을 만났다.

최근의 남극대륙 횡단이나 탐사에 비하면 장비나 정보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뒤떨어져 있던 시대였고 전 대원이 사망하는 실패로 끝났지만 조직과 기록의 탄탄함, 헌신과 희생정신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후지와라 신야 <인도방랑>, <티벳트방랑>‘방랑’이라는 단어에 꽂혀 집어들었다.

지독한 방랑이 펼쳐졌다.

후지와라 신야의 신들린 듯 한 방랑기. 그 글과 자유로운 사진에 꽂혔다.

 밑줄 <인도방랑>23p(인도에서) 청년은(나는) 뭔가에 지고 있는 듯 했다.

청년은 태양에 지고 있었다.

또 그는 대지에 지고 있었다.

청년은 사람들에게 지고, 열에 지고 있었다.

청년은 소에 지고, 양에게 지고, 개와 벌레에게 지고 있었다.

청년은 오물에 지고, 꽃에 지고 있었다.

청년은 걸식에 지고, 여자에게 지고, 신에게 지고 있었다.

청년은 냄새에 지고, 소리에 지고, 그리고 시간에 지고 있었다.

밑줄<티베트방랑>155P불문에 들거나 스님이 되거나 하는 것이, 하나의 불꽃을 버리고 육신에 다른 불꽃을 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걸 보고 싶었다.

그곳(티베트)에서, 다른 형식의 불꽃으로 빛나고 있는 한 인간을.... 제임스 로드 <작업실의 자코메티> 자기가 원하는 혹은 마음에 흡족 할 때까지. 끝임 없이 혹은 지겹도록 지우고 수정하는 자코메티. 그러나 시작은 있어도 결코 끝은 없다는.  밑줄145P사람에게는 정말로 시작하기만 한다면, 시작이라는 것을 해낼 수 만 있다면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작만 제대로 된다면 끝은 그 안에 들어 있는 법이니까요. ?쟝 모르/ 존 버거 <세상 끝의 풍경>자기 안에 개 한 마리와 소년 한 명이 들어있는 쟝 모르. 그리고 그의 50만장이 넘는 사진. 그와 함께 세상 끝의 풍경을 찾아나서는 글쟁이 존 버거와의 우정이 부러웠다.

아름다운 책이다.

 ?밑줄19P쟝은 어디서나 이국의 땅을 거닐었던 것! 혹은 쟝은 늘 이방인이었던 것! ... 그런데 쟝이 편안함을 느끼는 곳, 스스로 주인이자 손님이기도 한 곳이 바로 ‘세상끝’이라는 게 패러독스라면 패러독스다.

또 바로 그 ‘세상끝’에서 나는 쟝의 우정을 받아 누렸음이다.

국립춘천박물관 <우리 땅, 우리의 진경>우리 산하를 떠도는 일이 많았다.

이 땅을 그린 옛 그림에 대한 여러 책들을 섭렵하면서 이 땅의 서정성에 더 눈을 뜨게 됐다.

이 책은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우리 땅, 우리의 진경’ 특별전(2002)때의 도록인데 자동차 한편에 두고 떠돌아다니면서 보기에 좋았다.

돌아다니다가 그림 속 풍경이 나온 지역을 지날 때면 부러 들려 안색을 살피고 현재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다.

개벽천지도 있거니와 온전한 곳도 더러 있다.

부감법이 꽤 있어서 곤혹을 치르기도한다.

  연암 박지원<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마이너의 수장’ 연암을 좋아한다.

심오한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현실의 세계’ 와 ‘민중의 삶’을 귀히 여겼던 그는 유머와 역설, 세련된 자유분방함으로 자칫 딱딱하게 굳어지기 쉬운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해준다.

밑줄 326

327P돌아가신 누님 이름은 박 아무개고 본관은 반남이다.

손아래 동생인 나는 다음과 같이 묘지를 쓴다.

....슬프다! 누님이 시집가는 날 새벽단장을 하던 일이 어제와 같구나. 그때 내 나이 겨우 여덟이었다.

드러누워 뒹굴며 응석을 부리다가 새신랑을 흉내 내어 말을 더듬더듬 점잖케 하였더니 누님은 부끄러운 나머지 그만 빗을 내 이마에 떨어뜨렸다.

내가 골이 나서 울며불며 분에다 먹칠을 하고 침을 거울에 발랐는데, 누님은 옥으로 된 오리와 금으로 된 벌을 꺼내 내게 주며 울지 말라고 달래었다.

지금부터 스물여덟 해 전의 일이다.

...? 박명욱 <너무

너무

>‘봄은 늙지도 않아...’라고 한숨처럼 얕게 뱉은 형의 탄식에서, 지난 서학동사진관에서의 개인전 <애인은 늙지도 않아> 제목을 얻었다.

문화평론가 박명욱 형. 많이 느끼는 형 곁에서, 느낌을 전해들을 수 있는 일을 행이라 여긴다.

그가 98년에 낸 이 책의 제목은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이 세상에 오다>로, 마이너 예술가들 17명의 삶과 작업에 대한 박명욱의 ‘느낌’을 글로 얻어들을 수 있어서 귀하다.

서정춘 시집 <죽편(竹篇)>    아, 나의 농사는 참혹하구나흑!흑! 시집 첫 장에 나오는 시인의 말이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이 들 때면 펼치는 시집이다.

시인 스스로는 ‘참혹한 농사’라고 했으나, 그의 농사에서 위로를 얻곤 한다.

竹篇 1- 여행여기서부터, - 멀다칸칸마다 밤이 깊은푸른 기차를 타고대꽃이 피는 마을까지백년이 걸린다   사진가의 서재 08 _ 사진가 이한구 ?5.3

5.15? 우리 땅과 해외의 고산들을 종으로 오르고 횡으로 걸으면서, 그 노정 속에서 자신의 사진세계를 구축해왔다.

소소하고 소외된 것들에 긴 시선을 두고 ‘이 땅의 숨은 예인들’ ‘애달픈 우리 농촌’을 비롯해 20년 가까이 서울 ‘청계천’ 변두리이자 중심으로서 삶의 풍경들을 찍고 있다.

<소소풍경> <군용> 등의 개인전을 가졌다.

 작가와의 만남 5월 15 일 일요일 오후 4시 ?사진가 이한구의 서가에서 옮겨온 책들을 중심으로 사담(寫談)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십여 명 안팎의 작은 모음으로 준비하니, 함께 하실 분들은 아래 배너를 통해 신청해주세요.작가와의 만남을 신청하신 분들은 '사진가의 서재'  전시를 무료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일찍 오셔서 전시된 20여점의 작품들과 사진가 이한구의 책들도 함께 보세요.?     ? 사진가 이한구의 서재는 인왕산의 칠부능선 즈음에 있다.

산을 바라기 하면서 오르는 가파른 길의 제일 끝집이니, 우리 땅과 해외의 고산들을 종으로 오르고 횡으로 걸으면서 그 노정 속에서 사진세계를 구축해 온 사진가의 거처로 어울리는 지점이다.

? 서재방 남면과 서면의 벽을 이루고 있는 책장들에는 저마다 크기며 높이가 다른 책들이 정확히 선반 전면부의 5cm 뒤에 가지런히 병렬해 꽂혀있다.

스무 살 무렵 군대에 있을 때 찍은 사진을 무던히도 묵혀두었다가 20년 만에 첫 전시 <군용>으로 선보인 것이나, 청년 시절이던 80년대부터 찍기 시작한 청계천의 기록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는 성실한 근기와 체계가 거기에서 읽힌다.

박영석원정대의 일원으로 히말라야의 고산들을 오르내리는 데에도 필요했던 가지런함일 것이다.

? 뿌리깊은나무에서 발행한 <한국의 발견> 11권 전집이 낡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책장 상단에 묵직하게 자리해 있고, <검은 고독, 흰 고독><8000미터 위와 아래><산경표를 위하여><태백산맥은 없다> 등 각종 산 관련 서적들이 많은 것도 눈에 띈다.

또한 <연암집>을 비롯하여 <목민심서> <북학의> <양화소록>에 이르기까지의 옛 고전들도, 산 관련 책들이 차지하고 있는 체적에 밀리지 않는다.

언뜻 분야가 제각각인 듯 하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모두가 오래된 것, 잊혀진 것, 소소하거나 고독한 것, 그리하여 그리운 것들에 관한 책이다.

그가 사진의 화법으로 말하고 남기고자 하는 것들이 또한 일치하니, 그가 ‘읽는’ 세계가 곧 그가 ‘낳는’ 세계임을 이한구 스스로는 ‘산방(山房)’이라고 부르는 그의 서재에서 본다.

   사진가 이한구의 책   정광식 <아이거 북벽>20대에 산에 대한 열정을 안겨준 책이다.

한국인 등반가가 아이거 북벽을 등반하고 쓴 드문 책이기 때문이다.

산에 미친 선배들의 솔직 담백한 등반은 웃음과, 열정사이를 오간다.

그렇게 아이거 등반을 꿈꾸게 한 책인데, 여전히 꿈으로 진행형이다.

 밑줄202P동상과 굶주림의 고통 속에서 하강하면서 나는 북벽을 저주했고 나의 생의 전부라고 항상 자신 있게 이야기하던 클라이밍이라는 것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다시는 클라이밍은 안 하리라고 이를 악문 지 하루가 채 가시기도 전에...우리의 다음 원정은 어디로 할까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원했다.

한스 카멀란드 <그러나 정상이 끝은 아니다>남티롤 출신의 촌뜨기 둘. 한스 카멀란드는 등반계에 있어서는 살아있는 전설인 라인홀트 매스너와 8천 미터 고봉을 함께한 자일 파트너다.

이들의 세계는 너무도 어마어마해서, 나로서는 간접체험의 세계로밖에 만나지 못한다.

등반기를 남긴 저자에게 감사했던 책이다.

 밑줄24P연이은 성공에는 아무런 피드백도 없고 전환도 없다.

오로지 승리만 맛보았다면 지혜와 판단력은 더 이상 성공하지 못하고 발육 부진에 빠지게 된다.

..사람들은 항상 내게 정상에 올랐을 때의 감정을 묻는다.

그것은 희열도 만족도 아니다.

계속 올라가야 하는 고통에서 해방 되었다는 느낌이 전부다.

성취는 산 아래로 내려 왔을 때에야 비로소 이루어진다.

피터 매티슨 <神의 山으로 떠난 여행>전 세계의 야생지대를 여행하면서 내면의 향기가 깊게 어우러진 글을 남긴 피터 매티슨이 히말라야 설산으로 눈표범을 찾아 나선 과정을 쓴 책이다.

사진가인 나는, 사진으로 그의 글을 대신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기도 했다.

 밑줄317P존경하는 마음으로 다가갔을 때에도 산은 그 ‘영속성’으로 나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그 어마어마하고 엄연한 바위의 느낌은 내 스스로에 대해 느끼는 덧 없음을 더 심하게 만들어버렸다.

아마 덧없음에 대한 이런 두려움 때문에 현대인들은 그토록 생생한 경험을 조금이나마 맛보려고 애쓰는지도 모른다.

릭 리지웨이 <아버지의 산>고산으로의 입산은 신비한 왕국으로 들어가는 거라고 여기고 있다.

그 왕국은 동료들의 우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불교에 심취한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가이자 등반가 조나단 라이트와 이본 취나드(파타고니아설립자), 릭 리지웨이는, 함께 왕국을 나들던 친구다.

등반 도중 사망한 조나단을 산에 묻고 돌아 온 두 친구가, 조나단에게 남겨진 어린 딸 ‘아시아’를 돌본다.

성장한 아시아를 데리고 조나단이 있는 산으로 가는 과정이 <아버지의 산>이다.

인연의 실타래를 다시금 소중히 여기게 한 책이다.

 ?밑줄353P나는 매일매일을 내 생애의 유일한 날처럼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 조나단은 이렇게 썼다.

“많은 날들을 낭비했고 분명 앞으로도 더 많은 날을 낭비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현실을 경험하고 받아들임으로써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두려워 하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라인홀트 매스너 <검은 고독 흰 고독>고산 등반의 전설 같은 이름, 라인홀트 매스너의 낭가파르밧 등반기이다.

매스너는 루팔벽을 초등 하고 하산 도중 동생 귄터를 잃는다.

동생을 잃은 상처를 품고 8년 후 그 산을 홀로 다시 오르고 난 후 쓴 등반기가 ‘검은고독 흰고독’이다.

단독등반을 경험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그가 검고 희다고 한 고독이 늘 궁금했고, 어느 대목들에서는 소름이 돋을 정도의 저릿함이 함께했다.

 밑줄165p...고독이 정녕 이토록 달라질 수 있단 말인가 지난날 그렇게도 슬프던 이별이 이제는 눈부신 자유를 뜻한다는 걸 알았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체험한 흰 고독이었다.

이제 고독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닌 나의 힘이다.

  로버트 팔콘 스콧 <남극일기>남극에 대한 호기심이 한창일 때 이 책을 만났다.

최근의 남극대륙 횡단이나 탐사에 비하면 장비나 정보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뒤떨어져 있던 시대였고 전 대원이 사망하는 실패로 끝났지만 조직과 기록의 탄탄함, 헌신과 희생정신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후지와라 신야 <인도방랑>, <티벳트방랑>‘방랑’이라는 단어에 꽂혀 집어들었다.

지독한 방랑이 펼쳐졌다.

후지와라 신야의 신들린 듯 한 방랑기. 그 글과 자유로운 사진에 꽂혔다.

 밑줄 <인도방랑>23p(인도에서) 청년은(나는) 뭔가에 지고 있는 듯 했다.

청년은 태양에 지고 있었다.

또 그는 대지에 지고 있었다.

청년은 사람들에게 지고, 열에 지고 있었다.

청년은 소에 지고, 양에게 지고, 개와 벌레에게 지고 있었다.

청년은 오물에 지고, 꽃에 지고 있었다.

청년은 걸식에 지고, 여자에게 지고, 신에게 지고 있었다.

청년은 냄새에 지고, 소리에 지고, 그리고 시간에 지고 있었다.

밑줄<티베트방랑>155P불문에 들거나 스님이 되거나 하는 것이, 하나의 불꽃을 버리고 육신에 다른 불꽃을 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걸 보고 싶었다.

그곳(티베트)에서, 다른 형식의 불꽃으로 빛나고 있는 한 인간을.... 제임스 로드 <작업실의 자코메티> 자기가 원하는 혹은 마음에 흡족 할 때까지. 끝임 없이 혹은 지겹도록 지우고 수정하는 자코메티. 그러나 시작은 있어도 결코 끝은 없다는.  밑줄145P사람에게는 정말로 시작하기만 한다면, 시작이라는 것을 해낼 수 만 있다면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작만 제대로 된다면 끝은 그 안에 들어 있는 법이니까요. ?쟝 모르/ 존 버거 <세상 끝의 풍경>자기 안에 개 한 마리와 소년 한 명이 들어있는 쟝 모르. 그리고 그의 50만장이 넘는 사진. 그와 함께 세상 끝의 풍경을 찾아나서는 글쟁이 존 버거와의 우정이 부러웠다.

아름다운 책이다.

 ?밑줄19P쟝은 어디서나 이국의 땅을 거닐었던 것! 혹은 쟝은 늘 이방인이었던 것! ... 그런데 쟝이 편안함을 느끼는 곳, 스스로 주인이자 손님이기도 한 곳이 바로 ‘세상끝’이라는 게 패러독스라면 패러독스다.

또 바로 그 ‘세상끝’에서 나는 쟝의 우정을 받아 누렸음이다.

국립춘천박물관 <우리 땅, 우리의 진경>우리 산하를 떠도는 일이 많았다.

이 땅을 그린 옛 그림에 대한 여러 책들을 섭렵하면서 이 땅의 서정성에 더 눈을 뜨게 됐다.

이 책은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우리 땅, 우리의 진경’ 특별전(2002)때의 도록인데 자동차 한편에 두고 떠돌아다니면서 보기에 좋았다.

돌아다니다가 그림 속 풍경이 나온 지역을 지날 때면 부러 들려 안색을 살피고 현재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다.

개벽천지도 있거니와 온전한 곳도 더러 있다.

부감법이 꽤 있어서 곤혹을 치르기도한다.

  연암 박지원<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마이너의 수장’ 연암을 좋아한다.

심오한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현실의 세계’ 와 ‘민중의 삶’을 귀히 여겼던 그는 유머와 역설, 세련된 자유분방함으로 자칫 딱딱하게 굳어지기 쉬운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해준다.

밑줄 326

327P돌아가신 누님 이름은 박 아무개고 본관은 반남이다.

손아래 동생인 나는 다음과 같이 묘지를 쓴다.

....슬프다! 누님이 시집가는 날 새벽단장을 하던 일이 어제와 같구나. 그때 내 나이 겨우 여덟이었다.

드러누워 뒹굴며 응석을 부리다가 새신랑을 흉내 내어 말을 더듬더듬 점잖케 하였더니 누님은 부끄러운 나머지 그만 빗을 내 이마에 떨어뜨렸다.

내가 골이 나서 울며불며 분에다 먹칠을 하고 침을 거울에 발랐는데, 누님은 옥으로 된 오리와 금으로 된 벌을 꺼내 내게 주며 울지 말라고 달래었다.

지금부터 스물여덟 해 전의 일이다.

...? 박명욱 <너무

너무

>‘봄은 늙지도 않아...’라고 한숨처럼 얕게 뱉은 형의 탄식에서, 지난 서학동사진관에서의 개인전 <애인은 늙지도 않아> 제목을 얻었다.

문화평론가 박명욱 형. 많이 느끼는 형 곁에서, 느낌을 전해들을 수 있는 일을 행이라 여긴다.

그가 98년에 낸 이 책의 제목은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이 세상에 오다>로, 마이너 예술가들 17명의 삶과 작업에 대한 박명욱의 ‘느낌’을 글로 얻어들을 수 있어서 귀하다.

서정춘 시집 <죽편(竹篇)>    아, 나의 농사는 참혹하구나흑!흑! 시집 첫 장에 나오는 시인의 말이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이 들 때면 펼치는 시집이다.

시인 스스로는 ‘참혹한 농사’라고 했으나, 그의 농사에서 위로를 얻곤 한다.

竹篇 1- 여행여기서부터, - 멀다칸칸마다 밤이 깊은푸른 기차를 타고대꽃이 피는 마을까지백년이 걸린다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 불려나온 윤상현 의원.막말 파문에 대해 사과했지만, 김무성 대표는 자리를 피했다.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은 앞서 김무성 대표의 자택을 찾기도 했는데, 김무성 대표는 사과 수용 여부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친박계는 사태 수습에 나서며 출구 전략을 찾고 있고 비박계는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공세를 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지지자들은 새누리 당사 앞에서 윤상현 의원의 제명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새누리당 최고위원회는 클린공천위원회에 이번 파문의 조사를 맡겼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관련조사가 시작되면 윤상현 의원의 경선 지역 발표는 미뤄질  수 있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에 따라 공천 여부가 영향을 받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윤상현 의원의 막말이 공개된 바로 다음날, 새누리당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과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이 만났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은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고, 현기환 정무수석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출처 : JTBC 뉴스룸>이러 잠잘 때도 카메라를 머리맡에 두고 자던 스무살 무렵이었다.

최전방에 가서 사진을 찍는다 생각하면, 자원한 종군처럼 입대가 설레었다.

1989년, 바람대로 최전방에 배치되었다.

찍고 싶은 것을 찾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엔 크고 극적인 것들을 찍게 되리라 여겼는데. 수첩에 그것을 ‘빨간 풍선’이라고 적었다.

” (이한구, 『군용』 작업노트)  스무 살 그때. 모두가 스무 살이던 속에서, 그렇게 찍고 싶었던 ‘빨간 풍선’은 무엇이었을까. 터질 것처럼 불안하게 부푼. 더럽고 찬란한. 혹은 수상한 통과의례. 이런 몇 개의 단어들로 그것들을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사진은 그때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2010년 첫 개인전 <소소풍경>으로, ’그의 사진 속에는 시적 화자(詩的 話者)가 있다’는 평을 듣는 이한구의 사진은.   이십 여 년 만에 책으로(군용_ 눈빛출판사. 2012), 사진전으로 보게 되는 사진가 이한구의 <군용(軍用_military use)>. 스무 살 무렵에 간 군대에서 군인인 그가 군대를 찍은 사진들이다.

  “바람대로 최전방에 배치되었지만, 카메라는 손에 쉬이 쥐어지지 않았다.

상병이 될 때까지 눈으로 찍었고, 그때부터 찍고 싶은 것이 생기면 한쪽 눈을 깜빡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 촬영한 필름들은 비닐봉지와 자루에 담아 땅 속에 묻었다.

비가 오면 잠이 오지 않았다.

휴가 때마다 혼자만의 특급 수송 작전을 펼쳐서 집까지 공수했다”. (이한구, 『군용』 작업노트)  그때 그 땅 속에 묻혔던 필름들이, 1989년 11월에서부터 1992년 3월 사이 찍은 사진들이, 20여 년이 지난 2012년이 되어서야 봉인이 풀린다.

“기존의 군대 사진과는 차별화된 독특한 지점”에 이한구의 군대 사진이 있다고, “스무 살에 이미 작가(作家)”였다고,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는 말한다.

시인 이원은 그 사진들에 대해 “폭로할 수 없는 것을 폭로하지 않는 방식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사진가로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온 이한구는 자신의 사진들을 개봉하는 것을 서두르지 않는다.

92년부터 지금까지 찍어오고 있는 ‘청계천’. 93년부터 찍어 온 ‘산’ 사진들이 아직도 미공개의 지점에 있다.

<군용>은 그들의 출정 전에 세상에 먼저 나아가는 ‘사진가 이한구의 처음’인 셈이다.

 ?  이한구_<군용>#2_digital inkjet print  이한구_<군용>#3_digital inkjet print 이한구_<군용>#4_digital inkjet print 이한구_<군용>#5_ digital inkjet print 이한구_<군용>#6_digital inkjet print ?이한구_<군용>#7_digital inkjet print  이한구_<군용>#8_digital inkjet print  ?■작가 노트                                                                             ??  최전방에 가고 싶었다.

 어차피 가야하는 군대라면. 최전방에 가서 사진을 찍고 싶었다.

잠잘 때도 카메라를 머리맡에 두고 자던 스무 살 무렵이었다.

최전방에 가서 사진을 찍는다 생각하면, 자원한 종군처럼 입대가 설레었다.

  1989년, 원하던 대로 최전방 15사단 부대에 입대했다.

찍고 싶은 것을 찾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엔 크고 극적인 것들을 찍게 되리라 여겼는데. 수첩에 그것을 ‘빨간 풍선’이라고 적었다.

암호가 일상화된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카메라는 손에 쉬이 쥐어지지 않았다.

초조하고 불안했다.

눈으로 찍었다.

찍고 싶은 장면 앞에서 한쪽 눈을 껌벅이는 버릇이 그때 붙었다.

밤이면 침상에 누워 천정에 눈을 감고 현상했다.

  상병이 되어서야 카메라를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러나 자유로운 촬영은 불가능했다.

방독면케이스에 카메라를 넣고 야전훈련을 나갔다가, 부대장으로부터 가스실에 맨얼굴로 들어가는 처벌을 받기도 했다.

  촬영한 필름들은 비닐봉지와 자루에 담아 땅 속에 묻었다.

비가 오면, 잠이 오지 않았다.

휴가 때마다 혼자만의 특급수송작전을 펼쳐서 집까지 공수했다.

현상을 마치면 휴가가 끝나있었다.

  스무 살 그때. 모두가 스무 살이던 속에서, 그렇게 찍고 싶었던 빨간 풍선은 무엇이었을까. 터질 것처럼 불안하게 부푼. 더럽고 찬란한. 혹은 수상한 통과의례. 이런 몇 개의 단어들로 그것을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사진들이 미처 말로 표현치 못하는 그것들을 대신 보여 주기 바란다.

  이십 여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나는 기억한다.

나의 사진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 작가 소개??                                                               ???이한구 李翰九 Lee, Han Koo ▶ 이력1968년 서울생1993년 신구전문대사진학과 졸업1993-1997년 월간 <사람과 산> 사진부 팀장1993-1998년 사진집단 <사실> 1997-현재 한국산악사진가회2000-2002년 미국 LA 소재 아시아 아트 전문갤러리 운영2002-2005년 (주)이산미디어 월간 <이마운틴> 사진편집위원2002-2006년 출판프로젝트그룹 <樹流山房·수류산방> 사진 담당2009-현재 photo studio 류가헌, 사진위주 Gallery 류가헌 운영   ▶ 전시1988년 <청산도> 출판문화회관1989년 <섬진강을 따라서> 출판문화회관1993년 <사진집단 -사실-전> 후지포토 갤러리1999년 <한국산악사진> 세종문화회관2000년 <한국산악사진> 세종문화회관2002년 한·일 문화교류의 해 기념 <한·일 산악사진전> 주한 일본대사관 문화원2002년 예술의 전당 <세계환경전> 프로젝트 공동기획2004년 <다큐멘터리 18년만의 외출> 그룹전, 예총화랑2009년 <소소풍경Ⅰ> 개인전, 류가헌  ?   ??  ?  이한구의 <군용>을 보고  폭로할 수 없는 것을폭로하지 않는 방식으로   글 / 이원 시인  ?    던져지는 순간이 존재한다.

선택이 존재하지 않는 곳. 그것은 출생과 같다.

태어남에 선택이란 없었듯이. 태어남이란 그냥 무조건 던져지는 것이듯이. 우리는 그와 같은 폭력적 순간에 나타난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살아야 한다.

   선택이 존재하지 않는 시간은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격렬하지 않다.

비탄에 젖게 하지도 않는다.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던져졌다는 것은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현실이라고 부른다.

   현실은 대단히 완만하다.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이 사실을 알고 어떤 사람은 이 사실을 모른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자의 시선은 완만하다.

완만할 수 없는 곳에서 완만한 시선, 어쩌면 태어난 순간을 잊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존재하지 않으면서 존재하는 세계    말이 사라지는 세계. 침묵이라는 거대한 말이 존재하는 세계. 침묵. 그 거대한 말은 많은 것을 삼킨다.

삼킬 수 없는 것까지도. 울부짖는 것들까지도.  군대. 지도에 없는 곳. 지도에 나타나지 않는 곳. 존재하지 않으면서 분명하게 존재하는 곳에서는 밝힐 수 없는 사건들이 존재한다.

영문도 모르고 한계를 넘게 하는 강제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모두 같기 때문에 질문할 수 없는 곳. 계급과 서열과 복종이 존재하는 곳. 네 발이 될 수도 있는 곳. 발가벗겨 내몰릴 수도 있는 곳. 침묵 속에 묻혀야 하는 곳. 가까스로 배운 ‘인간-되기’에서 다시 한 순간에 ‘동물-되기’로 되돌아가기도 하는 곳.    군대. 숫자 속의 세계. 이름을 달고 존재하면서 이름으로 존재하지 않는 세계. 줄을 맞춰 서는 세계. 동시에 같은 행동을 하는 세계. 똑같은 것을 입고 똑같은 것을 먹고 똑같은 시간에 자면서 이유를 물으면 안 되는 행군을 배우는 세계. 성년이 되면서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남자들은 그곳에 갑자기 던져진다.

연하고 비린 남자 냄새가 나기 시작할 때. 민간인에서 군인으로 던져지는 순간.   ?  왼쪽 발이 동시에 들렸을 때      처음 배우는 것은 줄 맞추어 서는 것. 왼발을 한 보 앞으로 동시에 내미는 것. 이유 없이 아니 이유라는 말을 지우면서 걷는 그것을 행군이라고 부르는 것. 같은 감촉의 흰 장갑을 끼고 총이라는 긴 것을 들고 얼떨결에 행군을 시작할 때 손과 철모, 장갑과 총은 침묵한다.

이들의 왼쪽 발이 동시에 들렸을 때 새집을 매단 나무들도 왼쪽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바람은 그들이 걷는 방향과는 무관한 오른쪽에서 들이닥쳤다는 사실. 군복을 입은 이들은 생의 낯선 방향으로 걷기 시작한다.

낯선 곳으로의 자세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이상한 풍경. 이것은 군복의 방향.       ?  군화 또는 입      모여 있는 군화들은 같은 모양. 사실은 다른 모양. 군화의 속에 각자의 필체로 이름을 적어 넣었다.

군화들은 존재의 발에 따라 다르게 늘어나 있다.

발을 넣고 끈을 조이면 다시 같은 모양이 된다.

이름을 보고 자신의 군화를 알아차린다.

이름을 믿을 수 있는가. 필체를 믿을 수 있는가. 군화를 신고 계속 걸으면 시간이 입처럼 벌어져간다.

점점 말을 잃어가는 입 대신에 벌어지는 군화들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기록된다.

  ?  급소 부위 강?약 상관없이   “구타자는 살인자”라는 표어가 있는 곳. 급소 부위가 어딘지를 그려놓은 곳. 구타가 행해지고 있다는 확인. 남자는 벗은 몸에 군번줄을 걸고 있다.

알아볼 수 없는 지경의 형체를 갖게 되었을 때 식별하기 위해 걸고 있는 가볍고 얇은 목숨 줄. 단련의 목적을 모르고 단련된 몸은 군번줄보다 무력하다.

‘신체 급소 부위 강?약 상관없이 치명상’이라는 글자 옆, 그러나 군번줄을 목에 걸고 있을 때 허리에 올린 손에서는 이미 금기가 사라지고 있다.

       군인 앞의 최전방 철책을 잠그고 있는 것은 “융통성과 인정은 이적 행위다”라는 구호. 철책의 아이러니는 철문이 아니라는 것.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너머를 보아야 하기 때문에. 융통성과 인정과 이적 행위는 같은 무게로 구멍 숭숭 뚫린 곳에 걸려 있다.

  ?  같은 부대 동기들    판초를 쓰고 나란히 카메라를 응시하는 두 남자(이때는 군인의 모습이 아니다). 얼굴만 간신히 내놓았을 때 남자라고 하기에도 어린 모습이 나타난다.

군복도 짧게 자른 머리도 감추고 얼굴만 간신히 내놓았을 때 그들은 같은 비밀을 공유한 “같은 부대 동기들”이 된다.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을 나눠 가진 그래서 서로가 나눠지지 않는 이상한 공동체가 된다.

“우린 아직 이병이니까. 별로 그렇게 죄진 게 없어. 우리가 일병이 되면 죄가 조금 다양해질까? 우리가 상병이 되면…고백할 게 많아지겠지? 앞으로 들어올 후임들한테, 무슨 죄를 지을지 계획하면서. 우리는 정신없이 웃고 까분다.

”(김승일, 「같은 부대 동기들」) 한밤의 보초를 서는 것도 구타도 공포도 그들의 안의 얼굴까지 가져가지는 못하는 것이다.

       딱딱하고 긴 단 하나의 침상에 누워 잘 때 서로를 마주보며 잠들고 있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둘은 알고 있을까. 마주보고 잠든 사이에는 아슬아슬하게 동성애가 스쳐가지도, 서열이 들어있지도 않다.

구부러지는 팔을 가진 두 존재가 웅크리고 잠들어 있다.

그들을 찍은 카메라에는 연민이 없다.

그렇다고 희망이 들어 있지도 않다.

다만 그들은 마주 보고 잠들어 있다.

딱딱하고 긴 같은 길이와 같은 단단함을 가진 바닥에서 잠든 이들만이 있다.

     끝내 일어나지 않겠다     군복을 입고 군화까지 신고 팔을 가슴에 갖다 대고 반듯하게 잠들어 있는 한사람 옆에 또 같은 포즈로 누운 한 사람. 또 곁에 같은 포즈로 누운 한 사람. 그들은 뻣뻣하다.

나무라고 한다면 뻗기를 멈추지 않겠다는 미루나무이며 의지로 본다면 곧 걸어 나오고야 말겠다는 자세이며 끝내 일어나지 않겠다는 저항으로도 보인다.

곧 불려나갈 수도 있어 막간을 놓치지 않고 쪽잠에 빠졌다고 치자. 그러나 기하학적 구도 속의 이들은 벗어나고 있다.

이곳으로부터.     ?한꺼번에 삼키고 표시도 내지 않을 것 같은   웃통을 벗고 배를 뒤집어 하늘로 향한 채 네 발이 되어 기어가는 몸들. 북극 동물들 같다.

저 기이한 자세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저곳은 산 속, 구덩이처럼 푹 파인 곳일 텐데, 해변이 있을 것 같다.

군데군데 큰 돌들도 있을 것 같다.

돌아가면 절벽도 있을 곳 같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 파도가 치고 있을 것도 같다.

시퍼런 물은 한꺼번에 수십 마리의 동물을 삼키고 표시도 내지 않을 것 같다.

   네 발을 가진 몸의 그림자들은 땅에서 오그라들어 있다.

거꾸로 늘어뜨린 목은 세상에 투항의 표시. 항복의 표시. 말이 틈입되지 않은 그들의 몸은 와글거린다.

네 발로 몸을 공중에 띄우고 걸어가는, 동물 되기를 익힌 몸들에게 전투는 더 이상 전투가 아니다.

  ?   ‘다만ㅡ있음’의 사진   이한구의 군대 사진들은(『군용(軍用_military use)』이라는 제목으로 사진전문 갤러리 류가헌에서 가을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 이한구가 현실을 찍은 첫 번째 기록들이다.

스물둘에 간 군대에서 군인인 이한구가 군대를 찍은 것들이다.

“어차피 가야하는 군대라면 최전방에 가서 사진을 찍고 싶었다”는 그의 바람대로 최전방에 배치된 그는 상병이 되어서 카메라를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머리맡에 사진기를 놓고 잘 정도로 사진을 좋아한 이 청년은 눈으로 찍는 습관을 갖게 되었고 그때부터 찍고 싶은 것이 생기면 한쪽 눈을 깜빡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촬영한 필름들은 비닐봉지와 자루에 담아 땅 속에 묻었다.

비가 오면 잠이 오지 않았다.

휴가 때마다 혼자만의 특급 수송 작전을 펼쳐서 집까지 공수했다”. (이한구, 『군용』 작업노트)    1989년 11월에서부터 1992년 3월 사이 찍은 이 사진들을 이한구는 20여년이 지난 2012년이 되어서야 봉인을 푼다.

사진가로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온 그는 자신의 기록들을 개봉하는 것을 서두르지 않는다.

스무살이 스무살을 찍는 방식. 군인이 군인을 찍는 방식의 카메라는 이방인의 것이 아니며 관찰자의 것도 아니며 기어이 그곳에 함께 했다는 소속된 의식의 것도 아니다.

증인의 시선도 경험자의 시선도 외면하는 시선도 감추는 시선도 아니다.

에피소드도 아니고 불거진 어느 순간을 찍지도 않는 이것을 이한구의 방식이라고 해야 옳다.

   스무 살 무렵 군인이기도 했던 그가 찍은 사진들이 이토록 담담할 수 있다는 것. 종군의 심정으로 갔던 이한구가 그곳에서 알게 된 것은 내던져진 그곳이 다름 아닌 삶이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다면 스무 살의 이한구가 찍은 사진이 이토록 담담할 수는 없다.

더욱이 뜨겁디뜨거운 청춘의 손이 아니던가. 이십대 초반의 그가 찍은 사진에는 감춘 것이 없다.

생략된 것이 없다.

프레임이 완강하지 않고 공간에 포커스를 집중하지도 않는다.

‘다만 ㅡ있음’의 사진. 통제나 균형을 맞추지 않은 사진. 정서와 형식, 의미를 배제하는 사진. 아니 배제한 것이 아니라 현실을 먼저 기록하는 사진. 현실을 기록할 때 사진은 허구를 허용하지 않는다.

  ?  현실은 기록되어야 마땅하다    이한구는 현실을 현실로 기록하는 기이한 지점을 보여주는 사진가다.

그는 현실을 현실로 살면서 사진을 찍는 그러니까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찍는 방식을 택한다.

그는 92년부터 지금까지 청계천을 찍어오고 있다.

박영석 대장 팀과 짧지 않은 시간을 같이 하기도 한 그가 산 사진을 찍어온 것은 93년부터다.

이한구의 사진은 가파른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찍어도 드라마가 생기지 않는다.

푸르디푸른 하늘이 거기 있고 가파른 절벽이 거기 있다.

그 안에는 분명 다큐멘터리의 시각이 없지 않을 것이나 우선하지 않는다.

에베레스트나 청계천, 군대 사진은 이한구가 찍은 어느 숲이나 나무들, 그것과 다르지 않다.

나무나 숲과 등가이다.

숲이나 나무와 다르지 않게 현실을 기록하는 것. 이한구 사진이 위치하는 자리다.

   현실은 과정도 결과도 동기도 원인도 아니다.

현실은 ‘다만 펼쳐져 있음’의 그 어디이다.

사진이 현실을 현실로 나타나게 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기교나 예술성이 앞서 보이면 안 되기 때문이다.

최민식의 사진이 다큐멘터리가 되지 않는 것은 그의 프레임이 잡은 예술성 때문이다.

그가 잡은 것은 가난이 아니라 구도였다고 할 수 있다(최민식 사진의 크기가 클 때보다 작을 때 완결성이 더 강한 것은 구도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한구는 최민식과는 반대의 지점에서 작업한다고 할 수 있다.

예술성이 먼저 나타나지 않게 현실을 먼저 붙잡는 방식. 그러나 가난도 비극도 억압도 등가의 현실이어서 우위를 갖지 않는 카메라로 현실을 붙잡는 방식. 현실은 기록될 수 있는가. 사진은 현실을 어떤 방식으로 기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가능하다면, 현실은 기록되어야 마땅하다는 대답을 이한구의 사진이 갖고 있다.

갑자기 찾아오므로 매 순간 완결되는 것이 현실이므로. 우리가 “사랑하기에 가장 완벽한 장소”가 현실이듯이, 죽기에 가장 완벽한 장소 또한 현실이므로.   ?  함께 커튼 뒤에 있는 카메라   이한구의 사진은 20여년 이상 공동 작업을 해온 장 모르, 존 버거와 닮아 있다.

시골 의사나 이민 노동자들을 장 모르는 찍고 그 사진을 존 버거는 글로 쓴다.

사진과 글 모두 담담하고 세세하다.

그 섬세한 기록에 아무런 정서도 경사도 틈입시키지 않는 곳에 놀라움이 있다.

그들의 작업은 삶을 사진으로 글로 보여준다.

삶이라는 사진을 기록한다.

삶을 삶으로 기록한다.

   “풍경은 기만적일 수 있다.

종종 풍경은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펼쳐지는 무대라기보다는 하나의 커튼처럼 보인다.

그 뒤에서 사람들의 투쟁, 성취 그리고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는 그런 커튼…그 주민들과 함께 커튼 뒤에 있는 이에게, 풍경은 더 이상 지리적인 대상에 그치지 않고 전기(傳記)적이고 개인적인 그 무엇이 된다”(존 버거?장 모르, 『행운아』)는 그 자리, 현실을 현실로 찍는, 아니 현실을 현실로 나타나게 하는 곳. 뜨겁지도 차갑지도 어둡지도 환하지도 않은, 아니 뜨겁기도 차갑기도 어둡기도 환하기도 한, 사람이 소리 없이 파묻히기도 하는 거기에 이한구의 카메라가 있다.

  ?  다시, ‘제조년월일 1986년 7월 일. 군용’    모포 위에서 양쪽 발목에 고무링을 감고 있는 발목을 찍은 사진에는 폭로도 없다.

고발도 없다.

증거도 없다.

다만 현실이 있다.

행군을 처음 배울 때 나무의 방향과 그들의 방향은 각각 다르다는 것. 모여 웃통을 벗고 네 발이 되어 길 때는 스스로가 징그럽다는 것. 서로는 알지 못하며 그러나 마주 보며 잠이 드는 순간도 있다는 것. 이 순간을 둘은 평생 알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자신의 글씨체로 자신의 이름을 쓴 신발만이 자신의 것이 된다는 것. 다른 신발에 자신의 이름을 쓴다면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제 손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라는 것. 나란히 판초를 입고 섰던 그 시간에 군복도 어쩌지 못하는 융통성과 인정의 얼굴이 나타나 있었다는 것. 판초를 입은 둘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 카메라의 앵글은 그 안의 얼굴을 보았다는 것. 그것이 바로 그곳이 금지한 융통성과 인정이었다는 것. 융통성과 인정은 아무 이름도 붙일 수 없는 표정으로 나타난다는 것. 카메라의 렌즈는 이름 붙일 수 없는 그 안의 얼굴을 보았다는 것.     폭로할 수 없는 것을 폭로하지 않는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 이한구의 『군용』 사진은 그것을 말한다.

아니, 폭로할 수 없는 것을 폭로하지 않는 방식으로, 현실을 기록하는 것, 그것이 이한구 사진의 윤리다.

------------------------------------------------------------------------- 이원 시인. 1992년 『세계의 문학』으로 데뷔. 시집으로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 등이 있다.

현대시학 작품상, 현대시 작품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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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5사진위주 류가헌 ?<사진가의 서재>는, 한 사진가의 정신과 정서가 형성되기까지 책이 관여한 부분을 살핌으로써 사진과 인문학의 만남을 도모한 기획전입니다.

사진가의 서고에서 그이가 중히 여기는 책과 담론화 할 책 일부를 옮겨서 나누어보고, 그 책을 중심으로 ‘작가와의 만남’ 등을 이어갑니다.

 ??사진가 이한구의 서재는 인왕산의 칠부능선 즈음에 있다.

산을 바라기 하면서 오르는 가파른 길의 제일 끝집이니, 우리 땅과 해외의 고산들을 종으로 오르고 횡으로 걸으면서 그 노정 속에서 사진세계를 구축해 온 사진가의 거처로 어울리는 지점이다.

서재방 남면과 서면의 벽을 이루고 있는 책장들에는 저마다 크기며 높이가 다른 책들이 정확히 선반 전면부의 5cm 뒤에 가지런히 병렬해 꽂혀있다.

스무 살 무렵 군대에 있을 때 찍은 사진을 무던히도 묵혀두었다가 20년 만에 첫 전시 <군용>으로 선보인 것이나, 청년 시절이던 80년대부터 찍기 시작한 청계천의 기록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는 성실한 근기와 체계가 거기에서 읽힌다.

박영석원정대의 일원으로 히말라야의 고산들을 오르내리는 데에도 필요했던 가지런함일 것이다.

뿌리깊은나무에서 발행한 <한국의 발견> 11권 전집이 낡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책장 상단에 묵직하게 자리해 있고, <검은 고독, 흰 고독><8000미터 위와 아래><산경표를 위하여><태백산맥은 없다> 등 각종 산 관련 서적들이 많은 것도 눈에 띈다.

또한 <연암집>을 비롯하여 <목민심서> <북학의> <양화소록>에 이르기까지의 옛 고전들도, 산 관련 책들이 차지하고 있는 체적에 밀리지 않는다.

언뜻 분야가 제각각인 듯 하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모두가 오래된 것, 잊혀진 것, 소소하거나 고독한 것, 그리하여 그리운 것들에 관한 책이다.

그가 사진의 화법으로 말하고 남기고자 하는 것들이 또한 일치하니, 그가 ‘읽는’ 세계가 곧 그가 ‘낳는’ 세계임을 이한구 스스로는 ‘산방(山房)’이라고 부르는 그의 서재에서 본다.

??이한구의 책국립춘천박물관 우리땅 우리의 진경라이홀트 매스너 검은 고독 흰 고독릭 리지웨이 아버지의 산박명욱 너무너무서정춘 죽편연암 박지원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장모르 존버거 세상 끝의 풍경정광식 아이거 북벽제임스 로드 작업실의 자코메티피터 매티슨 신의 산으로 떠난 여행한스 카멀란드 그러나 정상이 끝은 아니다후지와라 신야 인도방랑 티벳트 방랑이한구  Lee, Hankoo우리 땅과 해외의 고산들을 종으로 오르고 횡으로 걸으면서, 그 노정 속에서 자신의 사진세계를 구축해왔다.

소소하고 소외된 것들에 긴 시선을 두고 ‘이 땅의 숨은 예인들’ ‘애달픈 우리 농촌’을 비롯해 20년 가까이 서울 ‘청계천’ 변두리이자 중심으로서 삶의 풍경들을 찍고 있다.

<소소풍경> <군용> 등의 개인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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