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연평도 부사관



2015년 8월인 현재는 영화 "연평해전"이 주요 시사점으로 떠올랐음으로저와 대다수의 다른 학생은 영화 연평해전에 대해 서술해야했습니다.

질문은 이러했습니다.

" 요즘 영화 연평해전이 흥행을 하고있는데 이에대해 면접자의 생각과 느낌을 말해보시오"앞으로 1년이 지나건 2년이 지나건 분명 군사관련 주요 시사문제 또는 사회정치 관련내용이 새롭게 떠오를것이라 생각되고.주요 면접내용은 그에 대한 질문이 될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또 다른 질문은 "신체에서 자신이 가장 자신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어디인가?" 였습니다.

그리고 시대,상황 구분없이 물어보는 면접 질문은 당연히 " 지원동기와 자기소개 " 였습니다.

다른 면접조의 면접인원은 "북한에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는 질문을 받은 사람들도 있었구요.너무 인위적으로 준비해가시지 마시고진솔하게 생각나는대로 말씀하시면 될것 같습니다.

면접 분위기도 그렇게 긴장된 분위기는 아닙니다.

앞에계신 주임원사분께서도 편안히 대해주시고 자주 웃는 분위기였습니다.

농담도 주고받고요.중요한것은 자신감과 목소리, 자세인것 같습니다.

그리고 면접관님들이 분명 관심이 있으면 그 사람의 생활기록부나 자기소개서를 들춰보는것이 바로앞에서 보입니다.

후에 지원하실 분들도 자신있고 진솔하게 자신을 표현했으면 좋겠습니다.

또 한가지, 인성검사 라는 것이 있는데.면접관의 말대로 정말 진솔하게 표시하는것이 포인트입니다.

너무 긍정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려 하다보면 재검나옵니다.

/ 개인적인 평점 : 5점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제(24일) 롯데시네마 프리미엄칠곡에서 관람하고 온 <연평해전> 이야기를 해볼께요.     무려 7년에 걸친 긴 제작 기간(참고로, 제작 준비 과정까지 모두 포함해서 7년이 걸린 것이지 순수 촬영 기간은 2014년 7월 28일부터 2015년 1월 20일까지로 약 6개월 동안이었습니다.

) 끝에 한국 영화 최초의 3D 전쟁 영화로 완성된 <연평해전>은 당초 지난 10일에 개봉할 예정이었지만 메르스 확산으로 인한 흥행 실패에 대한 우려 때문에 24일로 개봉을 연기한 작품인데요. 다들 잘 아시다시피 <연평해전>은 CJ에서 기업은행으로 그리고 또다시 NEW로 투자사가 연이어 바뀐 것 외에도 소재의 특성상 제작 기간 내내 온갖 악성 루머에 시달리는 등 개봉하기 전부터 이런저런 부침을 많이 겪기도 했었죠.     자, 그럼 과연 전 화제의 영화 <연평해전>을 어떻게 관람하고 왔는지, 언제나 그렇듯 제가 직접 보고 느낀 그대로 지금부터 솔직하게 말씀드려보도록 할게요. ^^ ※ <연평해전>이 예민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만큼 리뷰를 작성하는 것도 굉장히 조심스럽긴 한데요. 제 리뷰가 읽으시는 분의 시각에 따라서 다소 불편한 부분이 있으실 수도 있겠지만, 일체의 사심 없이 어디까지나 영화 그 자체로서만 리뷰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을 고려하셔서 부디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기를 부탁드릴게요

*2002년 6월 29일, 참수리 357호에게 일어난 비극에 대한 이야기 줄거리 대한민국이 온통 붉게 물들었던 2002년 여름. 온 국민이 월드컵에 열광하고 있던 그 때, 바다에서 북한군과 용감하게 싸우다 장렬히 산화한 참수리 357호 승무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실화 전쟁 드라마.?★ <연평해전> 예고편 ★??     한차례의 개봉 연기 끝에 묘하게도 6.25 65주년을 하루 앞둔 시점에 개봉하게 된 <연평해전>은 개봉 첫 날인 어제(24일) 2015년에 전체 국내 개봉작들 중 5위에 해당하는 15만3,404명의 오프닝 데이 스코어를 기록하며 국내 박스오피스에 데뷔했는데요. ■ 2015년 국내 오프닝 데이 스코어 TOP5※ 위 표에 사용된 데이터는 IMDB, 박스오피스모조, 로튼토마토, 한국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을 참고한 것입니다.

※ 이해를 돕기 위해 로튼토마토 지수의 경우, Certified Fresh 등급은 오렌지색, Fresh 등급은 빨간색, Rotten 등급은 초록색으로 하이라이트 처리하였습니다.

(참고로, Certified Fresh > Fresh > Rotten 순으로 높은 등급입니다.

)※ 개봉일은 국내 기준이며, 각 데이터는 6월 24일까지 집계된 것입니다.

     다들 잘 아시다시피 <연평해전>은 투자사가 계속해서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는 동안 제작 초기 기획 의도와는 다르게 제작비 80억원짜리 영화로 덩치를 키우게 된 까닭에(참고로, 일부 언론에서는 제작 초반 CJ 등이 투자한 20억원까지 포함하면 <연평해전>의 총 제작비는 100억원이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죠.), 솔직히 전 <연평해전>을 관람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연평해전>이 손익분기점(240만 추정) 돌파를 위해 한국 영화 특유의 신파적 서사로만 일관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었는데요. 하지만 실제로 극장에서 확인한 <연평해전>은 저의 그러한 우려와는 달리 신파적인 색채는 거의 가미하지 않은 담백한 내러티브를 지닌 영화더라구요. 다만, 너무 담백했던 나머지 감동과 교훈, 그리고 영화적 재미에 이르기까지 그 무엇 하나 효과적으로 표현해내지 못하고 있기는 했었지만 말이에요. ^^;;자극적인 신파 대신 진정성을 선택한 <연평해전>     사실 실제 사건이 벌어진지 13년 밖에 되지 않은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 인물들의 실명까지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연평해전>인 만큼, 이를 영화화함에 있어서 <연평해전> 제작진도 굉장히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을 텐데요. 유가족분들과 생존자분들이 모두 지켜보고 계신 만큼 고인(故人)들의 사연을 영화적 재미를 위해 적극적으로 각색하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또 우리 군과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제작된 만큼 제2차 연평해전 당시에 불거졌던 정부와 군 수뇌부에 관한 여러 논란들을 직접적으로 거론하기 힘들었을 것이니까 말이죠.     그래서인지 <연평해전>은 영화적 재미나 누군가를 향한 날 선 비난보다는, 진정성을 듬뿍 담은 담백한 서사를 통해 참수리 357호 승무원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었는데요. 특히, 여느 실화 전쟁영화들이 보여줘 왔던 어쭙잖은 영웅주의 대신, 쉼 없이 쏟아지는 총알과 폭탄 세례 속에서 두려움에 떠는 참수리 357호 승무원들의 모습을 서울광장에 모인 붉은 악마들의 모습과 교차해 보여줌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자연스레 그들의 숭고한 희생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는 부분은 <연평해전>의 백미였죠. (물론, 보시는 분에 따라서는 제가 말씀드린 교차편집이 관객의 감정을 갈취하기 위한 작위적 연출로 받아들여지실 수도 있겠지만요. ^^;;) 실제로 제가 관람한 상영관에서는 <연평해전>이 보여주고 있었던 130분 동안의 진실된 추모사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시는 여성 관객분들이 꽤 많으셨구요.진정성을 취한 대신에 상업성을 잃고 만 <연평해전>     솔직히 <연평해전>은 박동혁(이현우) 상병의 청각 장애 어머니에 대한 사랑에서부터 윤영하(김무열) 대위의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 신혼의 단꿈에 푹 빠져 있는 한상국(진구) 하사와 이제 막 돌이 된 어린 딸 시은이를 둔 조천형(김지훈) 하사 등 작정하고 달려들어 각색하면 얼마든지 자극적이고 신파적인 스토리를 러닝 타임 내내 꾹꾹 눌러 담아낼 수 있는 작품이었는데요. 하지만 김학순 감독님께서는 상업적 목적을 위해 고인(故人)들의 사연을 이용하기보다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까맣게 잊고 살았던 그들이 살아생전에 어떤 사람이었고 또 얼마나 용감하게 북한군과 맞서 싸웠는지를 담담하게 그려내는 진정성을 선택하심으로써, 일찌감치 상업성은 포기하셨더라구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연평해전>과 마찬가지로 비극적인 실제 전투를 소재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정성과 작품성 그리고 상업성까지 두루 만족시킨 바 있는 피터 버그 감독의 <론 서바이버>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아메리칸 스나이퍼> 같은 작품들이 자꾸 떠올라서 그런지, 영화적 각색 없이 제2차 연평해전을 단순 기술하는데 그치고 있었던 <연평해전>의 서사가 굉장히 아쉽게 느껴졌었는데요. (참고로, <론 서바이버>와 <아메리칸 스나이퍼> 두 작품 모두 실제 사건이 벌어진지 채 10년도 되지 않아 영화화 되었습니다.

)?※ <론 서바이버>? 리뷰 : http://blog.naver.com/c106507/80209047919※ <아메리칸 스나이퍼>? 리뷰 : http://blog.naver.com/c106507/220242410763     그렇기 때문에 <연평해전>을 관람하실 분들은 <연평해전>에게 상업영화적인 재미를 기대하시기보다는, <연평해전>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참수리 357호 승무원들의 숭고한 희생을 지켜보고 또 기억하는데 의의를 두시는게 좋지 않을까 싶네요. (데뷔 13년차임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은(^^;;) 연기력을 보여주고 계셨던 이완씨라든지, 2002년이 배경인데도 불구하고 스크린 속에 버젓이 등장하는 최신 모델의 자동차들과 같은 옥에 티는 우리 그냥 눈 감아 주기로 하자구요. ^^;; 아, 그리고 <연평해전>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굉장히 궁금한 점이 한가지 있었는데요. 통상적으로 장교와 부사관은 상호 존칭을 쓰는데, 영화 속에서는 윤영하 대위가 머리가 희끗한 갑판장을 비롯해 모든 부사관들에게 반말로 말하더라구요. 제가 육군 출신이라 잘 몰라서 그러는데 해군에서는 원래 그렇게 하는 건가요? 해군 출신분들

좀 알려주세요!! ㅎㅎ)     상업성을 포기한 대신 진정성을 선택한 까닭에 결과적으로는 매주 수요일 '정신교육의 날'에 정훈과에서 틀어주던 호국보훈영화의 골리앗 버전으로 귀결되고 만 <연평해전> 리뷰는 이쯤에서 마치기로 하고, 오늘(25일) 저녁 관람 예정인 또 한 편의 문제적 화제작 <소수의견> 리뷰로 조만간 다시 찾아뵙도록 할게요. 모두들 즐거운 하루 되셔요

*연평해전감독김학순출연김무열, 진구, 이현우, 이완, 이청아, 천민희개봉2015 대한민국평점리뷰보기?이제 남단의 등대공원을 지나 바로 옆의 조기역사관 방향으로 가는 중이다.

  조기역사관 바로 옆에는 가래칠기 해변의 절경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배경으로 북한 땅을 깔고 펼쳐져 있는 연평도 서해안의 '가래칠기해변'.  연평도에 오는 사람은 누구나 들르는 경치 좋은 포인트이다.

  이따 내려가 볼 가래칠기 해변의 몽돌해안.  안내도마다 조금씩 달라서 헛갈리는데, 저기 어디쯤이 '빠삐용 절벽'이 아닌가 싶다.

문제는 물어보고 싶어도 물어볼 사람의 그림자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것.  황해도 옹진반도(강령반도) 방향의 육지.왼쪽 끄트머리가 등산곶이다.

  이제 전망대 바로 옆 조기역사관으로 간다.

  조기역사관의 상징조형물.자월도에서 본 비슷한 모양의 조형물이 생각난다.

  관리인 없이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는 연평도 조기역사관.  자그마한 전시관 내부를 둘러본다.

지금은 오지 않는 조기의 연간 이동경로도.  1960년대 이전까지 수백 척, 많으면 2000천 척의 배가 몰려들어 장관을 이뤘다는 유명한 연평 파시의 옛 사진이다.

  대연평도와 소연평도 주변 섬들의 입체 미니어쳐.현 위치는 연평도 오른쪽 끝 산 꼭대기에 해당한다.

  "연평도 개대가리까지 이팝이 올라간다.

""어부들이 밤새 술 먹고 떨어뜨린 돈을 개들이 물고 다닐 정도였다.

" 4

5월 연평 파시 때는 조기를 따라 어부가 몰려들고,그들을 따라 밥장사, 술장사, 그리고 여자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한창 때 이 작은 연평도에 100곳이 넘는 '색주가(色酒家)'가 있었고 거기에는 4

500명의 작부들이어부들의 돈을 노리고 호객들을 했다니 당시 모습을 상상하기가 힘들 지경이다.

하지만 그것도 한 때, 조기철이 끝나고 파송(파시가 끝남)이 되면 그들도 썰물처럼 섬을 빠져나갔음은 물론이다.

  조기를 잡던 옛날의 동력선과 무동력선들. 1960년대 이후 어선들이 대형화, 동력선화되면서 조기 어장을 싹쓸이하기 시작하게 되었고,그 결과 1960년대 동안 조기 어획량이 연간 1만 톤 정도를 유지하던 것이 1970년대 중반부터는 불과 100톤 이하로 곤두박질치게 되었고연평 파시는 과거를 추억하는 이들의 이야깃거리로 사라지고 말았다.

조기가 떠난 자리에 꽃게가 자리를 잡았으나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라고.  흠... 갠적으로 조기보다는 꽃게를 훨 좋아하긴 하지만...^^조기 어장이 다시 살아나 국산 조기값이 확 떨어질 날을 한 번 기대해 본다.

  조기역사관 위층 옥상의 관광전망대에서 바라본 남쪽 바다.

앞에 보이는 섬들은 소연평도와 구지도(求地島).  소연평도 마을 확대.(보정)  관광전망대에서 다시 한 번 바라보는 가래칠기 해변과 북녘 땅.저 바다는 1999년 6월 제1차 연평해전의 전적지이다.

  전망대에 이런 안내도도 붙여 놓았지만 실제 육안으로 알아볼 수 있는 곳은 별로 없다.

  북녘 등산곶 부근의 육지.(보정)  북한 황해남도 강령군.왼쪽 멀리 보이는 산들은 옹진군 땅이 아닌가 싶다.

  저 두 섬 이름은 지도를 봐도 어딘지 영 모르겠다.

아마도 북한 땅임은 확실하다.

  다시 등대공원 입구로 돌아왔다.

등산로 이정표를 보고 한 번 가 볼까 했는데...  관리가 안 되는 듯 반바지 차림으로 갈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연평도 부사관] 의 매력 포인트


  가래칠기 해변으로 직행하는 작은 산길을 따라간다.

  산길에서 되돌아본 조기역사관.  등산로 왼쪽으로 가래칠기 해변이 펼쳐진다.

  연평로 간선도로에서 가래칠기로 내려가는 도로가 나온다.

  약수터에서 목을 축인 후에 해변으로 나왔다.

  어느 노부부는 낚시를 하려는 듯 갯바위 쪽으로 걸어가고 있고왼쪽 위로는 조기역사관이 보인다.

  가래칠기 해변에서 올려다본 조기역사관 관광전망대.  빠삐용절벽이 저 뒤쪽으로 돌아가면 보인다는 건가?산길 쪽으로 접근하려면 어떻게 가는 거지?  왼쪽에 천막을 쳐 놓고 열심히 고기를 구워 먹는 청년들은 당연히 해병대 군인들이다.

천막에 부사관이라고 쓰여져 있었는데... 오늘 무슨 날인가 보다.

  다시 오르막을 올라 연평로 간선도로로 접어들어 계속해서 시계방향 일주를 재개한다.

  하늘의 구름무늬가 특이했던 날.  인적 없는 도로를 걷다 보니 가래칠기 해변보다 더 북쪽에 있는 연평도 서해안의 구리동해수욕장이 살짝 보인다.

  연평도의 유일한 해수욕장인 구리동해수욕장.  북녘 땅은 계속해서 이쪽을 넘보고 있다.

  사진 찍기 좋은 요소요소는 모두 군 진지의 차지였다.

   구리동해수욕장 뒤편의 시설물들.  그리고 반대편인 동쪽으로 보이는 당섬선착장.  재미들렸다.

.. 볼록거울 셀카...^^ 해군사관학교 출신의 장교이자 제2연평해전의 영웅, 故윤영하 소령의 생도시절 모습 또한 그들과 같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지난 2002년 6월, 한일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던 그때 서해 연평도 근해, NLL부근 해상에서 북한의 기습공격으로 시작된 ‘제2연평해전’. 그리고 참수리357호정의 정장으로서 온몸을 받쳐 해양수호에 힘쓴 故윤영하 소령을 비롯한 희생자들의 이야기가 영화<연평해전>으로 재해석되어 많은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전해 줄 것으로 예상된다.

그에 앞서 故윤영하 소령의 후배이자, 미래 대한민국해군을 지휘해 나갈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을 만나 ‘제2연평해전’에 관해 이야기 해보며 그들의 각오를 엿보고자 하였다.

경남 진해에 위치한 해군사관학교는 ‘메르스 사태’ 로 출입이 제한되어있었다.

생도들은 지옥 같은 4일간의 기말고사를 끝내고도 외출 외박이 제한되어 학교에서 주말을 보내며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로 90Km를 걷는 완전무장 행군을 앞두고 있었다.

휴식이 필요한 상황이었을텐데도 인터뷰 취지를 듣고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유독 앳된 얼굴의 1학년 이종현, 정용준 생도와 매사에 나라를 위해 항상 헌신하는 마음으로 임하겠다는 2학년 강영준 생도, 4학년 못지않은 포스가 느껴지는 3학년 위홍환 생도, 예비 장교다운 면모가 풍겨졌던 4학년 김준혁, 이창희 생도가 오늘의 주인공들이다.

사실 이들은 95년생부터 92년생까지의 나이로, 2002년에 일어난 ‘제2연평해전’ 당시 적게는 8살, 많게는 11살의 나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그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생도가 있었다.

4학년 김준혁생도는 “비록 자세한 상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2002월드컵당시 경기를 보던 중 뉴스속보 자막을 보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때는 상황의 심각성을 잘 알지 못했지만 입교 후에 자세한 내용들을 알게 되었고, 평소 많은 국민들이 제2연평해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는데 이번 영화 연평해전이 큰 역할을 해 줄 것 같다”고 기대를 보이기도 했다.

1학년 이종현생도는 본교에 입학하기 이전에는 ‘제2연평해전’에 관해 잘 알지 못하였지만 생도가 된지 4개월이 된 현재 ‘제2연평해전’에 대해 공부하고 느낀 것이 많다며 “2002년에는 월드컵뿐만 아니라 제2연평해전이라는 우리에게 큰 슬픔이 있었다.

[연평도 부사관] 알아보자



많은 국민들이 연평해전에서 목숨을 잃은 분들을 꼭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고 말할 만큼 늠름한 사관생도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故윤영하 소령의 생도시절 역시 그 누구보다 돋보였다고 하는데, 4학년 김준혁생도는 “故윤영하 소령은 포탄이 빗발치는 가운데서도 물러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켜낸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책임감이 강하고 매사에 성실한 생도이셨다고 전해 들었다“며 ”후배로서 배워야할 점이 많으신 분“이라고 존경심을 내비추었다.

또한, 해군항공장교가 꿈이라는 3학년 위홍환생도는 故윤영하 소령의 희생이 자신에게 “대한민국해군장교로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주신 것 같다”고 말하며 만약 본인에게 같은 상황이 일어난다면 “열과 성을 다해 조국해양수호에 온 몸을 바칠 것”이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이처럼 故윤영하 소령은 대한민국해군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앞으로도 그의 희생이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영화<연평해전>이 많은 이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24일 개봉하였다.

영화가 상영된 후에는 대한민국해군에 대한 관심이 보다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국민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느냐는 질문에, 4학년 이창희생도는 “대한민국은 반도 국가이고, 따라서 반드시 해양국가여야만 한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국민들이 해군의 가치와 소중함을 더 공감하고 해군을 아껴주셨으면 좋겠다.

”는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온 국민이 한 뜻을 모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해군에게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주고, 그들의 가치를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4학년 김준혁생도는 “극한의 상황은 언제 어디에서 올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러한 극한의 상황에 마주하더라도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 해군 장교입니다.

차후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극한의 상황에 맞서 부하들의 목숨을 살리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스스로의 수련과 교육에 더욱 매진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조국수호를 위해 바다에 목숨 바친 전우들을 잊지 말고 그들의 조국수호정신을 계승해 나가야 할 것”이라며 예비 장교로서의 면모를 보였고, 그의 듬직한 모습에서 우리나라해군의 미래가 더욱 힘차게 느껴졌다.

직?간접적으로 만나본 ‘제2연평해전’의 영웅 故윤영하 소령과 그의 후예 ‘해군사관생도’. 그들은 멋지고 훌륭한 대한민국해군의 일원이며 우리 모두가 그들의 피와 땀을 더욱더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우리에게 큰 버팀목이 되어줄 그들이야말로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바다수호신’이 아닐까?   블루페이퍼3기 이다솜 <사진: 동부산대학교 해군부사관과 2학년 김범준 제공 / 편집 : 박영서>안녕하세요, 대한민국 해군을 아껴주시며 사랑해주시는 여러분! 앞으로 3기 단을 맡으며 여러분과 <만나보고 싶습니다>라는 주제로 만나게 될, 박영서 입니다.

먼저, 해군 사관생도편을 읽으셨을 텐데요, 저는 장교와 병 사이의 교류 역할을 하는 군에서는 빠질수없는 간부 <부사관>을 희망하는 대학생들을 만나보고 왔습니다.

그 주역은 동부산대학교 해군부사관과 학생들입니다.

그들에게 연평해전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또한, 해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지금 그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2015년 6월, 영화 ‘연평해전’이 개봉하였다.

또한 29일은 2002년 6월 29일로부터 13년이 지난, 제2연평해전 추모 주기이다.

당시 전사자는 총 6명이였으며, 참수리357호정은 침몰했다.

일반 시민들을 위해 함정 모형이 용산 전쟁기념관에 전시중이며, 해군 2함대 안보공원에는 실제 해상전투를 벌였었던 참수리357호정이 전시되어 있다.

간략히 설명해 보자면 NLL(북방한계선) 남쪽의 연평도 인근에서 대한민국 해군 함정과 북한 경비정 간에 발생한 해상 전투였다.

북한의 예고없는 기습 공격으로 대한민국 해군의 꽃들은 대한민국 바다와 국민을 지키며, 우리가 한일월드컵으로 기뻐할 때,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다.

연평해전이라는 영화가 나오기 전에 일반 시민들에게 물어봤다.

“연평해전에 대해서 영화 개봉전에 알고 계셨나요?” 라는 문답에 30% 정도만 “알고있다”라는 집계가 나왔다.

이 사건은 시간이 많이 흐른 사건이며, 천안함과 조금 다르게 이슈화가 되지 못했던 불행스러운 사건이었다.

마지막으로 전우의 곁으로 떠난 故박동혁 병장은 전우들을 살리지 못했다는 마음으로 전우의 곁으로 떠났다.

  6명의 전사자중 부사관이 4명을 차지할 만큼, 대한민국 바다를 지킬 후예 해군부사관이 될 주역인 그들에게 연평해전과 해군에 대해 인터뷰를 하였다.

해군을 사랑하는 만큼 그들의 인터뷰는 열정으로 가득 했었는데, 그럼 인터뷰 현장 속으로 떠나볼까!  1학년 곽초은 학생은 “나라를 지키다 돌아가신 분들을 정말 존경하고, 대한민국 국민들이 연평해전에 대해서 꼭 기억해줬으면 한다.

조천형 중사에 대해 기억이 남는다.

” 해군 부사관을 준비하는 학생임에 이번 영화 <연평해전>은 의미가 더욱 클 것이며, 희생자 6명중 4명이 부사관 직책 만큼 그의 앞으로 해군 부사관에 대한 포부 또한 들어보았다.

“바다를 지키는 해군 부사관이 됨으로써 자부심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전투적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하겠으며, 제2연평해전 사건으로 인해 희생된 대한민국의 해군 꽃들이 너무 안타깝고, 차가운 바다에서 숨을 거둔 그분들에게 우리 대한민국은 감사해야하며 가슴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2학년 신다은 학생은 “한일 월드컵의 열기로 가려져 있던 연평해전이 영화의 개봉으로 인해 세상에조금씩 시민들에게 기억되며, 널리 알려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조국을 위해 용감히 싸웠던 그분들의 희생정신이 잊혀지지 않고, 오래 기억되길 바랍니다.

또한, 故박동혁 병장이 기억에 남으며, 그는 몸에 수 많은 파편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우들을 살리려 애쓰다 가셨음에 전우애를 되돌아보게 해주셨던 분입니다.

인생에 가장 젊은 날을 국가에 바치고, 지금도 국민의 안전보호를 위해 애쓰시는 국군장병 여러분, 해군장병 여러분 자랑스럽습니다.

”라는 말을 끝마치며 해군의 장점을 말해주었다.

“해군은 해상으로 나가면 함정에 총 인원이 탑승하기 때문에 좁은 공간인 함정에서 총원들끼리 동고동락하며 유대감과 동질감을 느껴, 실제 전투상황이 발생한다면 서로에게 더욱 더 의지하는 전우애를 발휘할 것입니다.

” 여기서 잠깐, 해군은 출동이나 해상으로 나가는 훈련이 생기면 장기간 훈련이 많기 때문에 모든 의식주를 함내에서 해결하는데 그 덕분에 같은 함 사람끼리는 가족보다 더 가까이 있는 만큼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한다.

  2학년 이헌주 학생은 “북의 예상치 못한, 기습공격으로 인해 서해바다에서 전사한 용사들을 잊지 말아야 하며, 젊은 군인들이 나라를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는 일은 매우 안타깝고, 이번 연평해전 영화를 통해 그 계기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인상이 남는 인물은 故한상국 중사를 꼽으며. 대한민국 해군의 특수부대원을 지망함으로써 앞으로 일반직별 보다 특수 부대원으로써 해군에 더 큰 기여를 하며, 필요로 하는 대원, 연평해전 용사들과 같은 사명감으로 용감히 나라를 지키고 싶습니다.

” 라며 당찬 인터뷰를 해주었다.

끝으로, 이헌주 학생이 이번 군장학생 <잠수> 직별에 붙었다고 합니다.

무사히 면접까지 통과해서 대한민국 해군과 바다를 지켜주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동부산대학교에서 중대장을 맡고 있는 김범준 학생을 만나보았다.

“우리나라는 분단국가로 전투가 빈번히 발생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 되었습니다.

안타깝고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으며, 故박동혁 병장이 기억에 남습니다.

의무병인 직별에 맞게 부상자 전우를 치료하기 위해 총알이 빗발치는 무서운 순간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는 치료하였습니다.

그의 희생정신과 전우애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으며, 처음에는 막연하게 군인이 되고 싶었지 해군이 되는 것은 생각도 못했어요, 해군에 대한 공부를 하며, 우리나라 해군의 느끼게 되었고, 저 또한 해군의 일원이 되어 해군부사관을 통해 해군에 많은 기여를 하길 바래봅니다.

목숨 바쳐 싸워주신 군인분들 덕분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 라는 마지막 인상 깊은 한마디를 해주었다.

  끝으로, 이번 영화 <연평해전>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들은 잊지 않고 다시 그들을 기억해주길 바래본다.

그들이 얼마나 무서웠을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 순간에도 그들에게 사랑하는 이들이 있었고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피하지 않고 용감하게 싸우지 않았을까, 연평해전과 관련해 인터뷰에 참여해준 동부산대학교 해군부사관과 학생들에게 감사하며, 지금 이 시간에도 바다에서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 국가의 안보를 지키는 해군 장병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다.

대한민국 해군과, 영화 <연평해전> 많이 관람해 주시고 사랑해주시길 바랍니다!※ 위 글은 블루페이퍼 대학생 단 이다솜, 박영서님의 원고로 해군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15년 8월인 현재는 영화 "연평해전"이 주요 시사점으로 떠올랐음으로저와 대다수의 다른 학생은 영화 연평해전에 대해 서술해야했습니다.

질문은 이러했습니다.

" 요즘 영화 연평해전이 흥행을 하고있는데 이에대해 면접자의 생각과 느낌을 말해보시오"앞으로 1년이 지나건 2년이 지나건 분명 군사관련 주요 시사문제 또는 사회정치 관련내용이 새롭게 떠오를것이라 생각되고.주요 면접내용은 그에 대한 질문이 될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또 다른 질문은 "신체에서 자신이 가장 자신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어디인가?" 였습니다.

그리고 시대,상황 구분없이 물어보는 면접 질문은 당연히 " 지원동기와 자기소개 " 였습니다.

다른 면접조의 면접인원은 "북한에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는 질문을 받은 사람들도 있었구요.너무 인위적으로 준비해가시지 마시고진솔하게 생각나는대로 말씀하시면 될것 같습니다.

면접 분위기도 그렇게 긴장된 분위기는 아닙니다.

앞에계신 주임원사분께서도 편안히 대해주시고 자주 웃는 분위기였습니다.

농담도 주고받고요.중요한것은 자신감과 목소리, 자세인것 같습니다.

그리고 면접관님들이 분명 관심이 있으면 그 사람의 생활기록부나 자기소개서를 들춰보는것이 바로앞에서 보입니다.

후에 지원하실 분들도 자신있고 진솔하게 자신을 표현했으면 좋겠습니다.

또 한가지, 인성검사 라는 것이 있는데.면접관의 말대로 정말 진솔하게 표시하는것이 포인트입니다.

너무 긍정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려 하다보면 재검나옵니다.


공유하기 링크
TAG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