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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07

1989.06 TSV 바이엘 04 레버쿠젠 (독일)1979.07

1983.07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독일)1978.12

1979.06 SV 다름슈타트 98 (독일)1976.10

1979.05 공군 축구단1976

1976.10 서울신탁은행 축구단- 수상 내역(개인)-2011 제1회 한국패션 100년 어워즈 스포츠부문2010 아시아축구연맹 황금공로상1999 월드사커지 20세기 축구에 영향을 미친 100인1999 월드사커지 잊을수 없는 100대스타1994 세계축구역사통계연맹 20세기 아시아 최고의 선수1986 서독 아벤트포스트지 올해의 분데스리가 최고의 선수1980 서독 빌트지 페어플레이어1970 MBC 고교축구대회 최우수선수1970 대통령 금배 고교축구대회 득점왕1972  선정 올해의 신인상1979 키커지 단 올해의 외국인 선수 1위- 수상 내역(팀) -1.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UEFA컵 : 1979-80DFB-포칼 : 1980-812.바이어 04 레버쿠젠UEFA컵 : 1987-883. 대한민국 국가대표 팀메르데카컵 우승 1972, 1975, 1977, 19781972년 AFC 아시안컵 준우승1978년 아시안 게임 축구 금메달  세상의 대부분의 것들은 노력을 통해 성취가 가능하다.

하지만 노력 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분야가 종종 존재한다.

특히나 신체 능력을 이용하는 스포츠의 경우, 노력 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 타고난 선천적 재능 ' 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특히나 신체적인 부분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스포츠의 경우 인종에 따라 신체적 능력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신체 조건을 타고난 인종이 있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가장 신체적 능력이 우수하다고 인정되는 것은 흑인이다.

그 다음이 백인이고, 황인의 경우 스포츠와 관련된 신체 조건이 가장 열악한 편이다.

물론 모든 스포츠가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축구의 경우에는 대개 흑인이나 백인이 황인에 비해 우수한 신체 조건을 가진다.

비슷한 노력과 재력, 축구 인프라가 있다는 가정 하에, 순수 신체 능력으로는 황인이 백인이나 흑인보다 축구를 잘하기 어렵다.

그것이 타고난 재능이라는 것이다.

스피드와 체격 조건, 몸의 유연함이나 탄력, 가속과 감속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유연하면서 탄탄한 근육 등이 골고루 갖춰져아 하고, 화려한 드리블을 이용하여 상대를 제끼는 움직임도, 몸의 유연함과 단단한 골격을 필요로 한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흑인이 가장 우수한 편이고, 백인이 그 다음이다.

다만 축구가 가장 활성화된 유럽의 축구 인프라가 가장 우수한데, 유럽 인구의 대부분이 백인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세계 최고의 선수나 한 시대를 휩쓴 선수들의 대부분은 백인이다.

예외가 있다면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지역의 흑인이나 혼혈인들 중에서 월드 클래스가 나오기도 한다.

어찌됐건 축구 인프라나 타고난 선천적 신체 능력이 가장 열악한 편인 동양인이, 클럽 축구의 성지라 불리우는 아시아에서 월드 클래스 수준으로 성장하긴 굉장히 어려운 것이다.

더군다나 오늘날처럼 한국,중국,일본 등 비교적 경제력이 갖춰진 나라의 팬 층을 위해서, 일명 ' 유니폼 시장 ' 의 가능하여 동양인을 기용하는 경우의 수도 거의 없었던 몇십년 전 과거라면, 더욱 동양인을 영입할 명문 구단들의 수가 적었을 것이다.

이 시대에 동양인을 영입했다면, 마케팅적 부분보다는 그 선수의 실력을 인정했다는 증거가 된다.

  앞서 말했듯이 인프라, 재력, 선천적 신체 능력 등이 서양인들에 비해 현격히 부족한 동양에서, 유럽 무대에서 맹활약한 동양인 선수가 있다면 어떨까. 이것은 굉장히 놀라운 일이고, 역사에 남을 일이다.

그런데 약 30년 전, 그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그것도 당시로선 경제가 그다지 발달하지도 않았던 대한민국에서 그러한 선수가 나타났다.

현 시점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인구는 고작 5천만 남짓. 30년 전에는 좀 더 적었을 것이다.

지금보다 경제도, 축구를 위한 인프라도 발달되지 못했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인지도도 현격히 떨어졌던 그 시절. 놀랍게도 이 시절에 유럽인들을 놀라게 한, 유럽 무대를 휩쓸었던 한 공격수가 있었다.

이 선수는 동양인임에도 불구하고 서양 선수들과의 볼 경합에서 밀리지 않는 피지컬, 훌륭한 슈팅력, 빠른 스피드 등을 골고루 갖추고 있는, 역대 아시아 최고의 축구 선수라 불리울만한 인물이다.

이제는 전설로 회자되는, 대한민국과 아시아를 빛낸, 역대 최고의 아시아 선수. 이번 포스팅의 주인공은, 독일의 분데스리가에서 맹활약한, ' 갈색 폭격기 ' 차범근이다.

차범근은 독일에서 최고의 활약을 했고, 당시의 활약으로 인해, 그는 차붐이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붐이란 대포 같은게 꽝하고 폭발하는 소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엄청난 슈팅력과 많은 골을 터뜨린 차범근에 대한 경의를 담은 표현이다.

  차범근은 경기도 화성시에서, 보리밥에 넣을 참기름을 살 돈조차 부족했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런 그가 어릴 적부터 축구 재능이 눈에 띄었고, 축구부가 있는 경신중,고등학교를 걸쳐 고려대학교에 입학했다.

오늘날에 비해 대학 진학률이 현격히 떨어졌던 시대라서 비교적 입시 경쟁은 적었을지 모르지만, 가난한 집안의 학생을 뽑았다는 것은, 그만큼 재능을 어렸을 때부터 인정받았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대학 재학 중 최연소로 국가 대표에 발탁되기도 했다.

이후 1976년 서울 신탁은행에 입단하고, 1979년까지 공군 축구단에서 활약한다.

오늘날로 치면 상무로 군복무를 마친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는 1972년부터 1978년까지, 국가대표 소속으로 118경기에 나서 55골을 넣었다.

20대 초중반에 국가대표로 선출되어 미친듯한 활약을 했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중도에 군복무까지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활약은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운 수준이다.

이 때에는 각 종 해외 클럽들을 초청하여 친선 경기를 종종 했다고 하는데, 차범근은 박스컵에서 만난 프랑크푸르트를 상대로 좋은 활약을 펼쳤다.

당시 축구협회 국제 부장이었던 박동희와 프랑크푸르트가 타진하여 차범근의 분데스리가로의 이적을 위해 노력했고, 결국 78년에 다름슈타트로 전격 이적하게 된다.

하지만 타군과 복무 기간을 같게 해준다는 조건으로 공군 축구단에 입단했다가 복무 단축이 무산되면서, 만기 제대를 위해 공군 축구단으로 복귀했고, 1979년에 만기 제대 후 다시 분데스리가로 돌아가게 된다.

 제대 후 분데스리가의 프랑크푸르트에 입단한 시기는 1979년. 이 때부터 차범근의 분데스리가 생활이 시작된다.

그리고는 첫 시즌부터 눈부신 활약을 펼친다.

그는 리그 12골, UEFA컵 11경기 3골을 넣으며 첫 시즌에 46경기 15골을 넣었고, 이 때의 활약으로 UEFA 컵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이후 80/81 시즌에는 리그에서는 부상으로 인해 다소 부진했으나, DFB 포칼에서 6경기 6골을 넣으며 팀의 우승을 견인한다.

분데스리가에 진출한 처음 2시즌에, UEFA컵과 DFB 포칼 우승을 한 번씩 맛본 셈이다.

게다가 프랑크푸르트 시절 상대 선수 중 겔스도프라는 선수의 과격한 태클로 인해 요추가 골절되며 축구 인생의 위기가 오기도 하지만, 차범근은 겔스도프를 용서하고 성공적인 재활을 이뤄냈다.

 이후에도 82/83 시즌까지 리그에서 꾸준히 두자릿 수 득점대를 기록하며 활약하지만, 프랑크푸르트의 재정 악화로 인해, 고연봉자였던 차범근은 같은 리그에 있는 레버쿠젠으로 전격 이적하게 된다.

  차범근이 이적하기 전의 레버쿠젠은, 리그에서 10위권 밖에 있는 중하위권 팀으로, 명문 팀이라 보기엔 힘든 클럽이었다.

그런 레버쿠젠에 입단한 차범근은 초창기부터 활약했고, 85/86 시즌에 38경기 19골을 기록하며 팀의 리그 6위를 견인했고, 이로 인해 레버쿠젠은 UEFA 컵 진출에 성공하게 된다.

차범근 합류 이전에 10위권 밖에 있던 클럽을 리그 6위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이어진 87/88 시즌에, 결국 차범근은 레버쿠젠의 UEFA컵 우승을 견인했고, 이는 차범근의 개인 통산 2번째 UEFA컵 우승이다.

참고로 차범근을 포함하여, 서로 다른 두 개의 팀에서 1번 씩 UEFA컵 우승에 성공한 선수는 역사상 9명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후 차범근은 1989년까지 분데스리가에서 뛰었고, 은퇴할 때까지 분데스리가 통산 308경기에서 98골을 기록한다.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아니 아시아 축구 역사상 이 정도의 출장 경기 수와 득점 기록을 갖춘 공격수는 전무하다.

심지어 패널티 킥 골이 전혀 없는 순수 필드 골이었고, 독일에서 10년 이상 활약하면서 차범근이 받은 옐로 카드는 겨우 1장이라고 한다.

최전방에서 상대 수비수와의 경합이 잦은 포지션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기술적이면서 지능적인 플레이를 했다는 것이다.

물론 패널티킥의 경우, 차범근 본인이 키커로 나서는 것을 꺼려했기에 시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독일의 저명한 축구 언론 중 하나인 키커에서, 79/80 시즌에서 83/84 시즌까지 매겼던 공격수 평점을 보면, 매 시즌마다 꾸준히 3

7위 안에 들었고, 5시즌 평균 평점은 무려 루메니게에 이은 2위이다.

루메니게는 80년대 분데스리가를 평정했던 공격수로, 발롱도르 2회 수상과 월드컵 준우승 2회, 유로 대회 우승 1회를 차지했던, 바이에른 뮌헨 역대 BEST 11과 명예의 전당에도 등록되어있는 최고의 공격수이다.

그런 선수에 이어 분데스리가 5년 평균 공격수 평점이 2위라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이에 더해 분데스리가 주간 BEST 11에도 무려 40차례나 선정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차범근이 세운 308경기 98골은, 그가 은퇴한 시점에서는 분데스리가의 역대 외국인 공격수 가운데 최다 골이었다고 하며 현 시점에는 역대 6위의 기록이다.

현재에도 차범근은, 역대 분데스리가를 거쳐간 외국인 공격수(비 독일 선수) 랭킹 10위 안에 포함되어 있다.

 2010년 골 닷컴 인터내셔널이 선정한 '분데스리가 용병 TOP10'에서는 3위에 선정되었다.

 또한 레버쿠젠과 프랑크푸르트의 레전드로서, 현재에도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나 레버쿠젠 등지를 방문하면, 오랜 팬들이 그를 알아본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아니 아시아 전체에서 유럽의 클럽을 거쳐간 선수로서, 이 정도의 위상을 가진 것은 차범근이 유일할 것이다.

그나마 근접한게 맨유의 엠버서더인 박지성 정도일까.  워낙 분데스리가에서의 활약이 대단했던 덕분에 차범근의 국가대표로서의 위상이 다소 묻히고는 하는데, 차범근은 국가대표로서도 엄청난 활약을 한다.

그는 A매치 통산 132경기 59골을 넣으며 역대 최다 득점자에 랭크되어 있으며, 24세 139일에 센추리 클럽(국가대표 100경기 이상을 치른 것을 의미한다.

)에 가입하면서, 역대 최연소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가 된다.

다만 월드컵의 경우 1986년 대회 참여가 유일한데, 이것도 사실 엄청난 일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은 8번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고, 월드컵 통산 최고 성적이 4강이며, 원정 한정으로 16강이 최고의 기록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월드컵 본선 진출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16강 이상의 성적도 기대해 볼 만하다는 의견이 다수이다.

하지만 이 8번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의 첫 시작이 1986년 대회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대회 이전 대한민국이 월드컵에 출전했던 것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이 유일하다.

무려 32년 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고, 차범근, 허정무 등이 활약했던 8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다시 진출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8번 연속 진출의 시작점이 바로 차범근이었다.

게다가 오늘날에는 유럽에 진출한 선수들이 제법 많고, 박지성이 전성기였던 시절에만 해도 이영표,이청용,차두리,박주영,기성용 등 유럽 무대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이 전성기에 있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차범근이 활약했던 86년 대회에서는, 아인트호벤에서 뛰었던 허정무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K리그 출신이고, 차범근과 나머지 선수들의 클래스 차이가 너무도 컸다.

아무리 차범근이 뛰어나도, 축구는 11명이 하는 스포츠이기에, 차범근이 활약을 하기 위해선 나머지 선수들이 어느 정도 받쳐 줘야 한다.

오늘날로 생각해봐도, 레알 마드리드의 에이스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포르투갈에서의 활약을 보면, 클럽에 못미치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호날두는 포르투갈 역대 최다 득점자로서 제 몫을 해주고는 있으나, 레알 마드리드와 비교했을 때 동료들의 수준이 현격하게 차이나고, 이로 인해 클럽에서의 활약에 훨씬 못미친다.

그래도 주전들이 유럽 각지에서 활약하는 포르투갈 소속이기에 동료들의 수준이 최소한은 되었지만, 차범근이 활약했던 대한민국에서는 주전 대부분이 K리그 소속으로서 차범근과의 클래스 격차가 격심했다.

아시아에서야 K리그가 훌륭한 리그이지만, 유럽 무대에 비할 바는 아닌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차범근이 국가대표로서 활약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말레이시아의 경기에서 4-1로 지고 있는 것을 후반 막판에 해트트릭을 하면서 동점을 만들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대한민국 역대 최연소 센추리 클럽 가입과 역대 최다 득점 기록에, 월드컵 8연속 진출의 시작점을 장식했다는 것에서, 이미 차범근의 국가 대표로서의 활약을 더 이상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일부 어그로 꾼들의 행각으로 생각되지만, 차범근이 10년 이상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고도 리그 우승이 없다는 것 때문에 그의 클래스를 폄하하는 네티즌들이 가끔 있다.

이에 대해 반박을 하자면, 우선 차범근이 활약했던 레버쿠젠의 경우 차범근 합류 이전 리그 10위권 밖의 팀이었다.

쉽게 말해서 우승권을 논할 클럽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클럽을 6위 수준까지 끌어올렸고, UEFA 컵에 진출시켰다.

그것 만으로도 이미 클래스를 입증하는데, 심지어 이 UEFA 컵 우승을 견인했다.

또한 서로 다른 클럽에서 이 대회 우승을 경험했다.

역대 9명 밖에 없는 것을 해낸 선수이다.

리그는 한 시즌에 약 30경기 이상을 소화하는 장기 레이스이다.

이런 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해서는 탄탄한 주전 라인업과, 체력 안배 및 전술적 활용을 위한 교체 자원이 풍족해야 한다.

하지만 리그 중하위권을 맴돌던 레버쿠젠은 그 정도의 팀이 아니었다.

차범근 혼자 활약해서는 우승할 수 없다.

오히려 리그 중위권 팀의 공격수가, 5시즌 동안 공격수 평균 평점 2위에 랭크되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것이다.

1위인 루메니게는 분데스리가 최대 평문인 바이에른 뮌헨 소속으로서, 차범근보다 훨씬 뛰어난 동료들의 지원을 받은데다가, 발롱도르를 2회나 수상한 선수이다.

발롱도르 수상자 바로 다음의 평점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차범근의 클래스에 대해 폄하할 여지가 없다.

이는 UCL 우승까지 경험한 박지성조차도 받아보지 못한 기록이고, 분데스리가 우승 경험이 있는 일본의 카가와 신지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다.

쉽게 말해서 클럽 커리어는 박지성이나 카가와 신지 등이 더 뛰어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나, 선수 개인에 대한 평가는 차범근보다 뛰어난 아시아인이 축구 역사상 없다는 평이 옳다.

카가와 신지가 과연 은퇴 이후에 도르트문드 역대 BEST 11에 등재될 정도의 선수로 기억될까. 박지성이 맨유에서 7시즌간 활약했다고 하지만, 맨유 역대 BEST 11에 들어가거나, EPL 역대 10위권 안에 드는 미드필더였던가. 박지성과 카가와 신지는 각각 EPL,분데스리가에서 맹활약한 미드필더이지만, 차범근과 비교할 클래스는 아니라는 것이다.

  요컨대 차범근은, 현재보다 재정,인프라,동양 선수에 대한 인식 등이 형편없이 좋지 못했던 시기에, 신체 능력이 서양인이나 흑인 수준이 되지 못하는 동양의 작은 나라의 선수가, 당시 유럽 최고의 리그 가운데 하나였던 분데스리가에서, 중하위권 클럽 소속으로, 서로 다른 두 팀에서 UEFA 컵 우승을 경험했고, 역대 분데스리가 외국인 공격수 득점 6위에 랭크되어 있고, 당대 최고의 유럽 선수 중 하나였던 루메니게에 이어 5년간 평균 평점 2위에 랭크되었고, 심지어 군 복무까지 마친 후 20대 후반에서 30대 중후반까지 활약했던, 현재까지 그 어떠한 아시아 선수도 범접할 수 없으며 앞으로도 범접할 선수가 등장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독보적인 아시아 역대 최고의 선수였다고 볼 수 있겠다.

우리는 차범근의 리그 우승 기록이 없는 것을 트집잡을 것이 아니라, 아시아 역대 최고의 공격수가 대한민국 소속으로서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선수에서 은퇴한 차범근은 국가대표 감독, K리그 감독 등을 역임했고, 이후에는 축구 해설 위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가장 최근의 메이저 대회였던 2014년 브라질 월드컵도 해설했고, 아직도 주요 A매치 해설에 나서면서 활발한 해설 활동을 하는 중이다.

그리고 ' 차범근 축구 교실 ' 등을 운연하며 후진 양성에도 꾸준히 힘쓰며, 대한민국 축구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현재 KFA 선정 한국 축구 명예의 전당 7인 중 하나로 등재되어 있다.

 차범근에 대한 말말말여기가 차붐의 나라인가? 너무 와보고 싶었다.

그는 나의 우상이다.

- 미하엘 발락우리가 풀지 못했던 주요 문제는 차붐이었다.

차붐은 막을 수 없었다.

해결 불가능한 존재였다.

- 알렉스 퍼거슨내가 그런 공격수와 붙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다.

- 파올로 말디니내 자신은 어느 정도 성공한 공격수로 평가받지만, 차붐만큼은 아니다.

- 위르겐 클린스만전에 없던 공격수다.

골을 넣기도 하지만, 사이드에서도 활약하고, 때론 미드필더로 볼을 공급하기도 한다.

 분데스리가의 다른 축구선수들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축구를 했던 선수다.

- 프란츠 베켄바워나는 차붐을 낳은 그의 어머니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가 독일인이라면 어김없이 독일 대표팀에 넣고 싶다.

- 프란츠 베켄바워차붐은 70년대 후반과 80년대 독일 프로축구에서 최고로 손꼽히던 공격수였다.

 어린시절 2부에서 뛰던 나는 쳐다볼 수도 없는 대선배였다.

 - 루디 펠러차붐은 톱 플레이어를 넘어, 구단을 이끄는 선수였다.

- 라이너 칼문트차붐은 당시 독일에서 정말로 특출난 존재였다.

- 칼 하인츠 루메니게미안하다.

난 솔직히 한국에 대해선 차붐밖에 모른다.

- 요한 크루이프(한국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느냐는 의 질문에 대한 대답)방한의 궁극적인 목적은 양국의 발전과 우호 증진이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차붐부터 만나보고 싶다.

- 슈뢰더나는 차붐선수를 존경한다.

나는 어릴때 부터 차붐을 보고 자라났다.

나도 그 선수처럼 되고 싶다.

- 마이클 오언차붐이 세계 최고의 공격수 가운데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그는 나의 자만을 깨우쳐줬다.

- 로테어 마테우스차붐은 진정으로 축구를 할 줄 알고, 즐길 줄 안다.

- 펠레차붐은 나의 축구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영웅 가운데 하나이다.

- 루이스 피구분데스리가 베스트11까지 오를 수 있었지만 그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더 높은 한 단계, 즉 루메니게, 브라이트너 등이 서있던 경지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더욱이 처음 분데스리가에서 뛰던 정열과 패기였다면 충분히 오를 수 있었던 곳에 나는 적지 않은 사람들과의 오해와 갈등으로 혼란에 빠져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는 아쉬움이 지워지지 않는다.

- 차범근(선수 생활에 대한 아쉬움을 묻는 인터뷰에 대한 답변)    IFFHS는 레전드와 관련한 시상을 위해 1단계로 세계축구에 족적을 남긴 48명을 선정한 것이다.

이 중에는 차범근 위원이 이름을 올렸다.

차범근 위원은 현역시절 분데스리가에서 10년을 뛰며 외국인 선수 최다골 기록을 세운 전설적인 선수였다.

국가대표로도 A매치 135경기 58골로 한국선수 최다 A매치 골 기록을 세웠고, 한국선수 최초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다.

그러나 차범근 외에 다른 한국선수는 선정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브라질은 펠레, 지쿠, 가린샤, 호나우두 등 4명이 선정돼 최다 선정국이 됐다.

독일(프란츠 베켄바우어, 게르트 뮐러, 로타 마테우스), 네덜란드(요한 크루이프, 마르코 판 바스턴, 뤼트 굴리트)는 3명을 배출했다.

아시아에서는 차범근 외에도 하오하이둥, 순지하이(이상 중국), 나카타 히데토시(일본)가 이름을 올렸다.

▲ IFFHS 선정 세계축구 레전드 48인브라질 : 펠레, 지쿠, 가린샤, 호나우두독일 : 프란츠 베켄바우어, 게르트 뮐러, 로타 마테우스네덜란드 : 요한 크루이프, 마르코 판 바스턴, 뤼트 굴리트잉글랜드 : 보비 찰턴, 데이비드 베컴, 스탠리 매튜스아르헨티나 : 디에고 마라도나,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중국 : 하오하이둥, 순지하이동이집트 : 마흐무드 엘-카팁, 모하메드 아부트리카프랑스 : 미셸 플라티니, 지네딘 지단멕시코 : 안토니오 카르바할, 우고 산체스포르투갈 : 에우제비우, 루이스 피구이탈리아 : 디노 조프, 로베르토 바조알제리 : 라바 마제르카메룬 : 로저 밀러헝가리 : 페렌츠 푸스카스인도 : 바이충 부티아 이란 : 알리 다에이일본 : 나카타 히데토시대한민국 : 차범근쿠웨이트 : 자셈 야쿱 술탄 알-베사라라이베리아 : 조지 웨아뉴질랜드 : 윈튼 루퍼나이지리아 : 은완코 카누파라과이 : 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러시아 : 레프 야신사우디 아라비아 : 마제르 압둘라흐스페인 : 파코터키 : 하칸 쉬퀴르우크라이나 : 올레흐 블로힌우루과이 : 후안 스키아피노미국 : 랜던 도너번남아공 : 루카스 라데베웨일스 : 라이언 긱스기사제공 스포탈코리아스포탈코리아 2016.02.10 출처 : http://sports.news.naver.com/wfootball/news/read.nhn?oid=139&aid=0002050473
'응답하라 1988', 1988년 한국축구 4대 키워드
1988년을 관통하는 한국축구의 키워드는 '차붐'과 '서울올림픽', '심판파동' 그리고 '아시안컵'이다.

타임머신을 돌려 27년 전으로 돌아가본다.

대한축구협회가 펴낸 <한국축구 100년사>와 축구 전문 김덕기 대의 <프로축구 2920>을 참조했다.

◇차붐 전설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에서 뛰던 차범근은 그해 5월 유럽축구연맹(UEFA)컵 우승을 차지했다.

레버쿠젠은 에스파뇰(스페인)과 결승 1차전에서 0-3으로 져 패색이 짙었다.

홈 2차전에서 다득점 승리를 해야 우승할 수 있는 절박한 상황. 차붐의 발에서 기적이 완성됐다.

후반 12분과 28분 골을 넣어 2-0을 만든 레버쿠젠은 종료 9분 전 차범근의 짜릿한 헤딩골로 원점을 만들었다.

이어 승부차기에서 3-2로 이겨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 1988년 5월, 차범근이 UEFA 컵 우승을 차지한 뒤, 우승컵을 들고 환호 하고 있다.

]1980년 프랑크푸르크 소속으로 UEFA컵 정상에 올랐던 차붐은 서로 다른 팀에서 UEFA컵 우승을 경험한 9번째 선수로 기록됐다.

이에 앞서 차붐은 그해 1월 프랑스 축구전문지 몽디알이 선정한 88명의 월드스타에 뽑혔다.

마라도나(아르헨티나)와 플라티니(프랑스), 소크라테스·지코(이상 브라질), 레이카르트(네덜란드) 등 세계적인 선수들과 함께 동양인으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올림픽 실패서울올림픽은 한국축구에 큰 상처를 남겼다.

한국의 1차 목표는 8강이었다.

[ 1988년 서울올림픽, 소련과의 경기를 펼치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팀 ]당시 김우중 축구협회장은 유명 팀과의 평가전을 위해 거액을 쏟아붓는 등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8강에 오르면 선수들에게 승용차 한 대, 4강에 오르면 1000만원이라는 '억'소리 나는 포상금까지 약속했다.

국민적 열망이 컸지만 한국은 1, 2차전에서 소련, 미국과 득점없이 비긴 뒤 3차전에서 아르헨티나에 1-2로 져 쓸쓸히 예선탈락했다.

올림픽을 81일 남겨두고 박종환 감독이 갑자기 사퇴해 김정남 감독이 지휘봉을 이어잡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대회를 철저히 준비하지 못한 탓이었다.

◇심판 파동서울올림픽 부진으로 큰 충격에 빠진 한국축구는 분위기를 전환할 자극제가 필요했다.

축구협회는 11월에 아마와 프로팀이 총출동해 패권을 겨루는 전국축구선수권대회(현 FA컵)를 열었다.

총상금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1억원에 달했다.

[ ,사상 초유의 재경기, 분위기 전환을 위한 대회였지만 결과는 씁쓸했다.

]하지만 대우와 럭키금성의 결승전은 난장판이었다.

대우가 4-1로 이겼지만 주심의 미숙한 경기 운영으로 관중들이 그라운드에 난입하는 등 아수라장이 됐다.

축구협회의 결정으로 열흘 뒤 사상 초유의 재경기가 열렸다.

결국 럭키금성이 조민국의 결승골에 힘입어 2-1로 이겼지만 뒷맛이 찝찝한 우승이었다.

◇신데렐라 황선홍올해 슈틸리케팀의 황태자가 이정협이라면 1988년 이회택팀의 신데렐라는 황선홍이었다.

둘은 아시안컵을 통해 스타덤에 올랐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정협은 올초 호주 아시안컵 때 슈틸리케 감독이 깜짝 발탁해 무명 설움을 떨쳤다.

27년 전 황선홍이 똑같았다.

[ ,1988 이회택, 호의 신데렐라, (사진 중앙) 14번을 달고 있는 황선홍 선수 ]그해 12월 카타르 아시안컵을 앞두고 이회택 감독은 건국대의 황선홍을 뽑았다.

A매치 경력이 없고 축구 명문도 아닌 학교에 다니던 황선홍의 승선은 파격적이었다.

처음에는 뒷말이 무성했지만 황선홍은 A매치 데뷔전이었던 일본전에서 골을 터뜨리며 깊은 인상을 남겼고 당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성장했다.

한국은 그 대회 결승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승부차기 끝에 패해 준우승에 그쳤지만 이태호가 득점왕, 김주성이 MVP를 차지해 아시아 강호의 체면을 지켰다.

일간스포츠 2015.12.25출처 : http://sports.news.naver.com/wfootball/news/read.nhn?oid=241&aid=0002512254
전설의 유니폼넘버 11, 차범근?유럽을 정복한 최초의 아시아스타
◇전설이 된 유니폼 넘버, 11…①차범근, 유럽축구를 평정한 최초의 아시아 스타축구에서 11번은 10번과 더불어 공격을 책임지는 팀의 간판스타이다.

지금은 마음대로 번호를 달지만 과거에는 1번 골키퍼, 11번 최전방 공격수 등 위치에 따라 부여된 번호를 달아야 했다.

▲ 한국축구 최고 스타 11번 차범근팬들에게 역대 한국축구 선수 중 최고를 꼽으라면 답이 갈릴 수 있겠지만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차범근'이라는 답을 할 것이다.

차범근(1953년 5월 22일생)은 축구를 시작한 이래 거의 대부분을 11번을 달고 뛰었다.

차범근의 수식하는 대표적인 말은 그의 성을 본 따 독일 팬들이 부르는 차붐(Cha boom=폭탄이 터지는 소리), 갈색폭격기 등이 있다.

이런 말로 차범근 진가를 알기 힘들다면 다음 기록을 본다면 고개를 끄떡거릴 것이다.

플레이 스타일이 어떻다는 등은 그야말로 쓸데없는 소리일 뿐이다.

○국제 축구역사&통계연맹 선정 '20세기 아시아 최고선수' ○1972년 5월 7일 당시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만18세 11개월 15일) ○세계 최연소 센추리클럽 가입(24세 139일)○월드사커지 선정 20세기 100대 축구스타○키커지 선정 79

80, 85

86 분데스리가 베스트11, 85

86분데스리가 MVP  ○키커지 선정 1980년대 분데스리가 외국인선수 1위○81, 88 세계 올스타○201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선정 레전드 베스트11○골닷컴 선정 '역대 분데스리가 외국인 선수 랭킹 3위'○분데스리가 308경기 출전 98골○국가대표 135경기 출전 58골(역대 랭킹 1위)○A매치 최단시간 해트트릭=1976년 9월 11일 말레시아전 후반 38분

43분 3골▲ 기적의 5분 선보인 차범근차범근하면 가장 유명한 것이 1976년 9월 11일 말레시이시와의 대통령컵 국제축구대회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기대와 달리 후반 38분까지 말레이시아에게 1-4, 3골차로 끌려갔다.

누가봐도 한국이 질 것으로 봤다.

이를 보기좋게 깨뜨린 이가 차범근이다.

후반 38분 첫골을 터뜨린 뒤 43분까지 5분사이 해트트릭을 작성하며 4-4 무승부를 만들었다.

전에도 없었고 지금까지도 A매치에서 이러한 모습을 보인 선수는 없었다.

차범근이 왜 최고인가를 말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례이자 확실한 증거이다.

▲기록외 성실함과 깨끗함이 차범근의 가치 더 높여 차범근은 1970

1980년대 당시 세계축구 최고봉이라는 분데스리가에서 10시즌을 뛰면서 옐로카드를 단 1장밖에 받지 않았다.

자기만을 위해 결코 반칙을 하지 않았다.

차범근은 타고난 천재이지만 만들어진 선수이기도 하다.

[차범근] 누구나 한번쯤 이런 생각을.


축구 그리고 연습외에는 다른 것은 돌아보지 않았다.

훈련시간을 맞추기 위해 공항에서 픽업중이던 지인을 도중에 내려놓고 연습장으로 갈만큼 연습에, 그리고 자신에 철두철미했다.

세계일보 2016.02.07 출처 : http://sports.news.naver.com/wfootball/news/read.nhn?oid=022&aid=0003011952프랑스 축구전문지에서 세계 4대 축구인에 선정현재 누구나 축구에 관심이 있으면 알 수 있는 전설들과 함께(마라도나, 펠레, 베켄바우어, 차범근)?독일 최대 축구잡지 키커에 80년대 가장 위대한 선수로 선정됨?대표팀에서도 활약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1976년 박스컵(대통령 배)에서 말레이시아를 상대로4대1로 지고있다가 5분만에 3골을 넣는다.

????차범근??의 위상1.세계최고의 감독이자 독설가 무리뉴(첼시)의 공손한 태도2.벵거감독(아스날)과 차붐의 만남프랑크푸르트에 입단한 차범근은 그해 UEFA컵 우승을 이끌게 됩니다.

 당시 결승에서 만난 퍼거슨 감독(당시 에버딘 감독)이 차범근의 활약을 보고 "우린 차붐을 막을 수 없었다.

해결 불가능한 존재다.

라고 했었죠현재까지 레버쿠젠, 프랑크푸르트에서는 레전드 차붐을 알아보고그??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팬분들이 수 도없이 많다고 합니다.

 ? 차붐은 나의 축구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영웅이다.

?루이스피구차범근이 세계 최고의 공격수인 건 분명하다.

그는 나의 자만을 깨우쳐줬다.

마테우스내가 그런 공격수랑 붙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다.

말디니 여기가 차붐의 나라입니까? 너무 와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나의 우상입니다.

- 발락(2002 월드컵 당시)난 차붐을 낳은 어머니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그가 독일인이라면 어김없이 독일 대표팀에 넣고 싶다.

베켄바우어나는 차붐 선수를 존경한다.

어릴 때부터 차붐을 보고 자랐다.

나도 그 선수처럼 되고 싶다.

- 오웬당신에게 사인을 받고 싶었습니다.

이 자리는 제게 정말 큰 영광입니다.

올리버칸(2002월드컵 최고의 골키퍼)?붐은 진정으로 축구를 할 줄 알고 즐길 줄 안다.

?펠레??방한의 궁극적인 목적은 양국의 발전과 우호증진이어야 한다.

하지만 난 차붐부터 만나고 싶다.

슈뢰더 독일 총리 ??내 자신은 어느 정도 성공한 공격수로 평가받지만, 차붐정도는 아니다?클리스만   차범근 레전드 영상    차범근이분은 진짜 한국 전설 레전드였음.참고로 울 아버지도 다른 축구선수다 몰라도 차범근 선수를 아신다 함 ㅋㅋㅋ그만큼 레전드였음.분데스리가 개인통산 기록: 308경기 98골 기록당시 분데스리가 득점 7위 기록   차범근 독일 무대로 간 뒤 시련. 당시 차범근은 처음 독일로 왔을 때 다튬스타트에서 뛰어 1경기 2도움 으로 좋은 성적 거뒀으나망할 우리나라 병역 때매 다시 한국 감.이때 나도 좀 욕 많이 했음.프랑크푸르트 갔을 때도 동양인이라 차별대우받았다 함.  차범근의 활약   차범근에 이러한 활약덕분에 UEFA컵 우승 했음.분데스리가 득점왕 랭킹 7위에 오름.독일 FA컵때도 우승 공현당시 독일 대표팀이 차붐(차범근 별명)에게 귀화 추진했지만 본인 직접 거절!겔스도프에게 살인태클 당해서 끄앙!7위에 오를 당시 12골서독 FA컵 선수생명 위기 옴!위에 장면은 살인태클당할때 장면 찌근거  프랑크푸르트 시절:122경기 46골  차범근 당시 헐값으로 레버쿠젠 이적 오늘날에 레버쿠젠은 팀이 좋음. 하지만차범근 시대에는 달랐음 하위팀이었음  레버쿠젠 때 활약   ?레버쿠젠 갔을때도 좋은 활약 보임 ㅋㅋ 차범근 클라스 오짐 ㅋㅋㅋㅋ?당시 최하위 팀이었던 레버쿠젠을7위로 올림.ㅋㅋㅋ차범근 이때도 UEFA컵이 있었는데 이때에스파뇰한테 1차전 2;0으로 짐.2차전때 3:3으로 승부차기 우승함.ㅋㅋㅋ이때 감독이 차범근 끌어 안음.ㅋㅋㅋㅋ?   차범근은 페어플레이 많이 함.레버쿠젠 시절:185경기 52골이때 차범근 일화가 있었음패널티킥 하나도 안 찼다는 것.옛날에 차범근 이 축구했을때 패널티킥 실패함.그 충격으로 인해 패널티킥 하나도 안 찼다는 일화가 있음.저도 이해하겠음. 10년동안 독일에 있을 때 받은 카드 옐로우 카드 1개 밖에 없을 정도로페어플레이 뛰어났던 선수였음. 차범근 선수 은퇴후 감독함 1991

1994 현대 호랑이 감독1997

1998 대한민국 감독1998

1999:선전 핑안 감독2004

2010: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 이후는 그냥 축구 해설위원으로 생활하고 있음 차범근분데스리가 308경기 98골프랑스 잡지 키커지  4대인물 선정독일 대표팀 귀화추진 실패분데스리가 득점왕 랭킹 7위 당시 12골프랑크푸르트 UEFA컵 우승 레버쿠젠 7위로 급상승레버쿠젠 UEFA컵 우승많은 업적을 남김 대한민국과 프랑크푸르트 레버쿠젠의 레전드  차범근!!!!!!!!!  베켄바워[역대세계최고리베로이자수비수];만약 차범근이 독일국적의 선수라면 저는 독일성인국가대표팀에 발탁하는 동시에 best11입니다.

차범근의 조국인 대한민국이 존경스럽습니다.

에오제비오[포루투칼의 골잡이];차범근에 대해서는 어느누구보다 내가 더잘압니다.

?칼하인츠루메니게[독일의 골잡이];차범근은 역대독일프로축구분데스리가역사상 가장초독보적인선수입니다.

클린스만[독일의 골잡이];나는 이정도면 그럭저럭 거대한게 성공한선수이지만 차범근만큼은 아닙니다.

베아리죠티[86년당시이탈리아성인국가대표팀감독];?이번멕시코월드컵에서 경계대상0순위는 무조건마라도나고 1순위는 무조건차범근입니다.

브루스아레나[전미국성인국가대표팀감독]?;마라도나,펠레가 축구의 마이클조던이라면 차범근은 아시아에서온 축구의 마이클조던입니다.

발락[전독일성인국가대표선수];어린시절부터 저의 거대한우상은 차범근입니다.

올리버칸[독일의 골키퍼];여기가 차범근의 국가인 대한민국입니까?저는 차범근을 만난다면 싸인을 먼저받고 싶습니다.

조세무링유?[전첼시감독];나는 모두다 아시다시피 무명선수출신의 감독입니다.

차범근처럼 최고선수가 되지는 못한다고 해도 최하 그에 거의  버금가는 선수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퍼거슨[전맨u감독];?내가 에버딘구단감독시절에  차범근을 처음봤지만 차범근한테는  정말이지 비겁한전술자체도  절대로 통하지 않습니다.

2000년당시이집트올림픽국가대표팀감독;이번에 대한민국올림픽국가대표팀과 대결을 하지만 사실 저는 차범근의후예들인 대한민국올림픽국가대표팀과 경기를 한다는 것에 매우기뻤습니다.

차범근의조국이기때문이지요.레이캬릇[전네덜랜드성인국가대표팀감독];저는 차범근을 모든면에서 존중합니다.

뱅가다[전fc서울감독];차범근에 대해서 어느누구보다 내가더 잘압니다.

저는 차범근을 존중합니다.

거스히딩크[전대한민국성인국가대표팀감독];차범근은 요즘으로치면 당대세계최고축구황제,천재인 지단같은선수입니다.

루이스피구[인터밀란의; 에이스,리더];저를 낳아준 부모를 제외하고 가장존경하는 인물은 오직 차범근뿐입니다.

?귄터넨쳐[전독일성인국가대표선수이자축구역사학자];차범근은 어느때에 태어났어도 전세계어느프로그에 진출을 하던 어느구단에 진출을 하던간에  에이스,리더로 활약학할수 있는 초다재초다능한선수입니다.

내인생에 가장후회되는 일은 차범근과 같은 구단에서 선수생활을 못한것이 거대한후회입니다.

말디니[이탈리아의 리베로이자수비수];차범근한테 걸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정말다행입니다.

?마테우스[독일의 리베로이자수비수];저는 아직도 어립니다.

차범근은 최하 당대세계최고선수입니다.

마르코반바스텐[네덜랜드의 골잡이];저는 역대아시아선수중에서 차범근밖에 몰라요.뱅거[아스널감독];차범근이 지금태어났더라면 아스널구단에 입단했고 동시에 아스널의 에이스,리더로 거대하게 활약했습니다.

긱스[전맨u선수];차범근이 이번런던올림픽에 해설위원으로 ?참가한다는 말을 듣고 무지하게 기뻤어요.동시에 이렇게 기념촬영까지하게 되어서 초무한한 감동입니다.

마이클오웬[영국의 원더보이];저도 차범근같이 최고선수가되고싶어요.로저밀러[카메룬의 골잡이];저와 같은 흑인선수던 반대로 백인선수던간에 마라도나,펠레를 제외하고 봤을때 차범근처럼 지치않고 계속부지런하게 뛰는 선수는 단한명도없어요.밀리티누비치[감독으로만 월드컵축구대회5회연속참가한감독]?;차범근은 생긴것만 정통아시아인이지  ?사실상 신체조건,두뇌[iq],체력,폭발력,초순간적인폭발력,개인기술자체는 스케일이 거대하면서 아기한것이 유럽,남아메리카[남미]선수 즉정통서양인선수입니다.

?드로그바[코투디부아루의 골잡이];차범근은 저처럼 축구후진국가에서 태어난 선수이면서 마라도나,펠레와 함께 역대세계축구역사를 완전히뒤바꿔버린 선수입니다.

?전세계가 차범근을 이렇게 너무나도 한도끝도 없이 거대하게 경애하는 군요.차범근은 역대아시아최고불멸의 초무한대선수이면서 역대아시아가 오직딱한명낳은 불멸의 월드톱클래스선수입니다.

차범근은 거대한영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한도끝도 없이 거대한선수이자 동시에 차범근의 거대한능력은 너무나도 한도끝도 없이 거대합니다.

 ... 이분은 1980년대 우리나라가 전대미문축구의 불모 지였던 시절... 축구강국 독일 분데스리가 선수로서 최고의 활약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독일의 명문구단인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에서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해오셨습니다.

  1985년 4월 분데스리가 레버쿠젠 시절 차범근  윗 사진 허벅지를 보십시오.......... 30년이 지난 현재 과학도 많이 발달 했을 것이고 신체적으로도 더 우월해진 지금도 저런 허 벅지는 보지 못했습니다.

... 정말 대단합니다.

.! 차범근님은 1978년에 공군을 제대하고 험난한 유럽으로 떠나서 구단 테스트를 거치고 공격수로 뛰었답니다.

.  그 후 일년만인 1979년 독일에서 영향력있는 키커지 단의 올해의 외국인 선수 1위를 차지 할 만큼 좋은 실력을 선보였습니다.

 물론 차범근님은 그 전에 한국에서는 단연 독보적인 선수 였다고 합니다.

. 1971년 청소년 대표로 발탁되었으며 1년 후에는 최연소 성인 대 표팀에 뽑혀 1972년 5월 7일, 이라크와의 AFC 아시안컵 경기 때 데뷔전을 가졌습니다.

그후에는 10년이 흐른 1986년 멕시코의 경기에서 그 가 후배들이랑 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이미 차범근님은 한국에서 많은 극장영화? 를 만들어 놓습니다.

.. 바로....바로... 바로....   국내에서 치러진 대표팀 경기에서 차범근이라는 이름이 전설을 넘어 신화로 장식되는 유명한 경기가 있었으니....... 1976년 대통령배 국제 축구대회 말레이시아전이었습니다.

1-4로 뒤진 상황에서 차범근(고려대)님은 7분 동안 해트트릭을 기록하게 됩니다.

.   그후 또한 ... 그 무 렵 가히 축구로 치르는 대리 전쟁과도 같았던 일본과의 정기전에서 차범근이라는 이름은 동대문운동장에 울려퍼진 독립운동가와 같았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 당시에는 허정무, 조광래 김호곤 같은 선수들이 그 시절 차범근님과 함께 했답니다.

.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는 1980년 UEFA컵 우승에 큰 기여를 하였고... 이듬해에도 DFB-포칼 우승컵을 들었습니다.

바이어 레버쿠젠으로 이적해서는 1988년에 UEFA컵 챔프 자리에 올려 놓습니다.

....  독일의 축구계 전설이자 현 레버쿠젠 단장 루디 펠러는 말합니다.

........  닉네임 차붐.. 붐이란 말은 독일에서 폭발 할 때 나는소리를 표현하죠.... 차범근님의 독일 분데스리가에서의 기록들은 불멸이기도 하며, 어마무지합니다.

... 당시 그의 리그 98골은 외국인 선수 최다 득점 기록이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네덜란드의 빌리 립펜스가 92골로 최고였으며, 차범근 이후에 는 10년 쯤 지난 후에야 1999년 스위스의 스테판 샤퓌자가 106골로 최고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확실히 축구에서는 골 많이 넣는 선수가 슈퍼스타가 되곤 하는데.. 리그 98 골이라는 기록에서 이미 그의 명성은 입증됩니다.

 이 엄청난 기록은 당시 동아시아 작은 나라에서 온 그에게 축구 팬들은엄청난 센세이션이었으며,  당시 세계 최극강이었던 독일 분데 스리가 리그에서 엄청난 기록을 만들었다는건 대선수의 명성을 한수 더 할 수 있겠죠............  이를 받고 이야기를 받고 더 해서 그는 두가지의 전설적인 기록이 더 있습니다.

................ 몸싸움에 치열한 독일 분데스리가리그 10시즌동안 그는 옐로우카드를 단 한장밖에 받지 않습니다.

.. .  주전 공격수 차범근이라면 상대 팀 누구라도 1차 방어 대상이 될텐데 말이죠... 축구라는 경기의 특성상 육체적인 접촉이 시종일관 벌어지 지 않을 수 없습니다.

.....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장의 경고!!!!!! 더욱이 98골!!!!!!!  이 기록은 차범근님의 플레이가 얼마나 깨끗하면 서도 날카로웠는가를 입증합니다.

........  두번째 전설은 ... 98골 모두가 필드플레이에서 나온 골이라는 겁니다.

................ 페널티킥은 아예 찰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 이건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답니다.

.... 그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까지 오랫동안 국가대 표로 활약했는데 역시 페널티킥 골이 없답니다.

... 그러나 그건 차범근님이 선수 시절 페널티킥 공포증을 겪었고 그 때문에 키커로 나서지  않았다네요........... 뭐 어쨌든.... 그냥 대박입니다.

...................... 지난 2013년 1월 .. 차범근님은 프랑크푸르트구단 역대 레전트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 이중 외국인 선수는 3명인데요... 가나의 예보아,나이지리아의 오코차 선수와 함께 이름을 올렸습니다.

. 당시 행사는 원래 200명 정도의 관중을 예상하고 프랑크푸르트 박물관에서 개최하려던 행사는 수많은 팬들의 호응으로 인해 급히 시내 극 장으로 자리를 옮겨 진행되었답니다.

.. 당시 행사를 한다는 인터넷 기사의 댓글들은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10년 동안 308경기에서 단 한 장의 옐로카드? 세계 최고의 페어플레이어라는 얘기잖아.”(tempestloor),“한국이 다른 많은 문제들로 축구에 신경을 쓰지 못했던 시절에 차범근이 태어났다는 점이 안타깝군. 만약 요즘이라면 메시나 호날두 같은 반열에 오르지 않았을까.”(IKAG4ever),“내게 차범근은 특별한 감동을 줬던 인물.”(Bruno_P)“내 유년기의 완벽한 영웅이 귀환하다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러 가야지. 직장에서 �i겨나는 한이 있더라도.”(Booking agent). 당시 차범근님 다큐 나온 SBS 에서 출처 한겁니다.

.. 프랑크푸르트 시내 지하철입니다.

그냥 입이 다물어지네요.....  다큐에서 지나가는 시민들은 차범근님을 보고는 마치 동경하는 아버지를 쳐다보는 어린 아이 마냥 신기해 하고 좋아합니다.

  브라질 월드컵 우승을 견인한 독일의 최고 명장  뢰브 감독.........  2006년에도 당시 독일 국가대표 감독직을 맡고 있었죠... 당시 차범근님도 축구 해설위원이 하고 계셨죠.... 해설 도중 내용입니다.

...... 캐스터 : 독일의 명장 뢰브가 화면에 잡히고 있습니다.

차범근 : 그렇습니다.

제가 선수시절에 함께 뛰었었는데요. 좋은 선수에서 좋은 지도자 되었군요.캐스터 : 뢰브는 어떠한 선수였나요?차범근 : 제 교체선수였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후에 잠시동안 정적이 흘렀다는..........................   이 밖에도 많은 일화들이 있죠.....   프랑스 축구 전문지 풋볼지에서 세계 4대 축구 선수 마로도나 펠레 바켄바우어 차붐....... 아르헨티나의 전설, 브라질의 전설, 독일의 전설 그리고 차붐입니다.

...........    2005년 5월 첼시 VS 수원삼성........ 당시 첼시 감독 무리뉴 손만 대면 리그 우승 시켜버리는 최강 감독................ 세계 최고 감독 몸값을 자랑하는.... 감독.............  무리뉴 감독이 고개를 숙이면서 예의를 갖추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독일 슈레더 국무총리가 한국 방한 했을 때..........    지금 독일을 지휘 하는 국무 총리 조차  ?었을 때 동경의 대상이였다.

................... 정말 대단한 차범근님의 일화들이죠...... 현재, 그리고 앞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축구선수들이 꼭 한번쯤 차붐을 기억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전설을 떠나서 지금은 차두리의 아버지이자, 대한민국 축구전문해설위원이지만..... 스포츠인이라면 우리 모두가 그의 개척정신과 근성을 모토로 삼아보아도 될 것 같습니다.

[차범근] 대단하네요.

. 이만 여기까지 차범근님 포스팅을 마치고 다음주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We are Sports navigator!!!!!!!!!!!!!!!!!!!!!!!!!!!!!!!!!!!!!!!!!!!!!!!!!!!!! 을지로 입구역에 위치한 멀티 스포츠 용품점 제비오 스포츠에는 축구용품이 없는게 없습니다.

. 특히 스포츠 모든 브랜드들이 다 있어서 축구화, 축구양말, 축구바지 어떤게 가장 좋은지 비교해보시고 사시면 좋습니다.

 많이 방문해 주세요 ^^  ... 이분은 1980년대 우리나라가 전대미문축구의 불모 지였던 시절... 축구강국 독일 분데스리가 선수로서 최고의 활약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독일의 명문구단인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에서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해오셨습니다.

  1985년 4월 분데스리가 레버쿠젠 시절 차범근  윗 사진 허벅지를 보십시오.......... 30년이 지난 현재 과학도 많이 발달 했을 것이고 신체적으로도 더 우월해진 지금도 저런 허 벅지는 보지 못했습니다.

... 정말 대단합니다.

.! 차범근님은 1978년에 공군을 제대하고 험난한 유럽으로 떠나서 구단 테스트를 거치고 공격수로 뛰었답니다.

.  그 후 일년만인 1979년 독일에서 영향력있는 키커지 단의 올해의 외국인 선수 1위를 차지 할 만큼 좋은 실력을 선보였습니다.

 물론 차범근님은 그 전에 한국에서는 단연 독보적인 선수 였다고 합니다.

. 1971년 청소년 대표로 발탁되었으며 1년 후에는 최연소 성인 대 표팀에 뽑혀 1972년 5월 7일, 이라크와의 AFC 아시안컵 경기 때 데뷔전을 가졌습니다.

그후에는 10년이 흐른 1986년 멕시코의 경기에서 그 가 후배들이랑 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이미 차범근님은 한국에서 많은 극장영화? 를 만들어 놓습니다.

.. 바로....바로... 바로....   국내에서 치러진 대표팀 경기에서 차범근이라는 이름이 전설을 넘어 신화로 장식되는 유명한 경기가 있었으니....... 1976년 대통령배 국제 축구대회 말레이시아전이었습니다.

1-4로 뒤진 상황에서 차범근(고려대)님은 7분 동안 해트트릭을 기록하게 됩니다.

.   그후 또한 ... 그 무 렵 가히 축구로 치르는 대리 전쟁과도 같았던 일본과의 정기전에서 차범근이라는 이름은 동대문운동장에 울려퍼진 독립운동가와 같았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 당시에는 허정무, 조광래 김호곤 같은 선수들이 그 시절 차범근님과 함께 했답니다.

.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는 1980년 UEFA컵 우승에 큰 기여를 하였고... 이듬해에도 DFB-포칼 우승컵을 들었습니다.

바이어 레버쿠젠으로 이적해서는 1988년에 UEFA컵 챔프 자리에 올려 놓습니다.

....  독일의 축구계 전설이자 현 레버쿠젠 단장 루디 펠러는 말합니다.

........  닉네임 차붐.. 붐이란 말은 독일에서 폭발 할 때 나는소리를 표현하죠.... 차범근님의 독일 분데스리가에서의 기록들은 불멸이기도 하며, 어마무지합니다.

... 당시 그의 리그 98골은 외국인 선수 최다 득점 기록이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네덜란드의 빌리 립펜스가 92골로 최고였으며, 차범근 이후에 는 10년 쯤 지난 후에야 1999년 스위스의 스테판 샤퓌자가 106골로 최고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확실히 축구에서는 골 많이 넣는 선수가 슈퍼스타가 되곤 하는데.. 리그 98 골이라는 기록에서 이미 그의 명성은 입증됩니다.

 이 엄청난 기록은 당시 동아시아 작은 나라에서 온 그에게 축구 팬들은엄청난 센세이션이었으며,  당시 세계 최극강이었던 독일 분데 스리가 리그에서 엄청난 기록을 만들었다는건 대선수의 명성을 한수 더 할 수 있겠죠............  이를 받고 이야기를 받고 더 해서 그는 두가지의 전설적인 기록이 더 있습니다.

................ 몸싸움에 치열한 독일 분데스리가리그 10시즌동안 그는 옐로우카드를 단 한장밖에 받지 않습니다.

.. .  주전 공격수 차범근이라면 상대 팀 누구라도 1차 방어 대상이 될텐데 말이죠... 축구라는 경기의 특성상 육체적인 접촉이 시종일관 벌어지 지 않을 수 없습니다.

.....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장의 경고!!!!!! 더욱이 98골!!!!!!!  이 기록은 차범근님의 플레이가 얼마나 깨끗하면 서도 날카로웠는가를 입증합니다.

........  두번째 전설은 ... 98골 모두가 필드플레이에서 나온 골이라는 겁니다.

................ 페널티킥은 아예 찰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 이건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답니다.

.... 그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까지 오랫동안 국가대 표로 활약했는데 역시 페널티킥 골이 없답니다.

... 그러나 그건 차범근님이 선수 시절 페널티킥 공포증을 겪었고 그 때문에 키커로 나서지  않았다네요........... 뭐 어쨌든.... 그냥 대박입니다.

...................... 지난 2013년 1월 .. 차범근님은 프랑크푸르트구단 역대 레전트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 이중 외국인 선수는 3명인데요... 가나의 예보아,나이지리아의 오코차 선수와 함께 이름을 올렸습니다.

. 당시 행사는 원래 200명 정도의 관중을 예상하고 프랑크푸르트 박물관에서 개최하려던 행사는 수많은 팬들의 호응으로 인해 급히 시내 극 장으로 자리를 옮겨 진행되었답니다.

.. 당시 행사를 한다는 인터넷 기사의 댓글들은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10년 동안 308경기에서 단 한 장의 옐로카드? 세계 최고의 페어플레이어라는 얘기잖아.”(tempestloor),“한국이 다른 많은 문제들로 축구에 신경을 쓰지 못했던 시절에 차범근이 태어났다는 점이 안타깝군. 만약 요즘이라면 메시나 호날두 같은 반열에 오르지 않았을까.”(IKAG4ever),“내게 차범근은 특별한 감동을 줬던 인물.”(Bruno_P)“내 유년기의 완벽한 영웅이 귀환하다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러 가야지. 직장에서 �i겨나는 한이 있더라도.”(Booking agent). 당시 차범근님 다큐 나온 SBS 에서 출처 한겁니다.

.. 프랑크푸르트 시내 지하철입니다.

그냥 입이 다물어지네요.....  다큐에서 지나가는 시민들은 차범근님을 보고는 마치 동경하는 아버지를 쳐다보는 어린 아이 마냥 신기해 하고 좋아합니다.

  브라질 월드컵 우승을 견인한 독일의 최고 명장  뢰브 감독.........  2006년에도 당시 독일 국가대표 감독직을 맡고 있었죠... 당시 차범근님도 축구 해설위원이 하고 계셨죠.... 해설 도중 내용입니다.

...... 캐스터 : 독일의 명장 뢰브가 화면에 잡히고 있습니다.

차범근 : 그렇습니다.

제가 선수시절에 함께 뛰었었는데요. 좋은 선수에서 좋은 지도자 되었군요.캐스터 : 뢰브는 어떠한 선수였나요?차범근 : 제 교체선수였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후에 잠시동안 정적이 흘렀다는..........................   이 밖에도 많은 일화들이 있죠.....   프랑스 축구 전문지 풋볼지에서 세계 4대 축구 선수 마로도나 펠레 바켄바우어 차붐....... 아르헨티나의 전설, 브라질의 전설, 독일의 전설 그리고 차붐입니다.

...........    2005년 5월 첼시 VS 수원삼성........ 당시 첼시 감독 무리뉴 손만 대면 리그 우승 시켜버리는 최강 감독................ 세계 최고 감독 몸값을 자랑하는.... 감독.............  무리뉴 감독이 고개를 숙이면서 예의를 갖추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독일 슈레더 국무총리가 한국 방한 했을 때..........    지금 독일을 지휘 하는 국무 총리 조차  ?었을 때 동경의 대상이였다.

................... 정말 대단한 차범근님의 일화들이죠...... 현재, 그리고 앞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축구선수들이 꼭 한번쯤 차붐을 기억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전설을 떠나서 지금은 차두리의 아버지이자, 대한민국 축구전문해설위원이지만..... 스포츠인이라면 우리 모두가 그의 개척정신과 근성을 모토로 삼아보아도 될 것 같습니다.

. 이만 여기까지 차범근님 포스팅을 마치고 다음주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We are Sports navigator!!!!!!!!!!!!!!!!!!!!!!!!!!!!!!!!!!!!!!!!!!!!!!!!!!!!! 을지로 입구역에 위치한 멀티 스포츠 용품점 제비오 스포츠에는 축구용품이 없는게 없습니다.

. 특히 스포츠 모든 브랜드들이 다 있어서 축구화, 축구양말, 축구바지 어떤게 가장 좋은지 비교해보시고 사시면 좋습니다.

 많이 방문해 주세요 ^^  베켄바워[역대세계최고리베로이자수비수];만약 차범근이 독일국적의 선수라면 저는 독일성인국가대표팀에 발탁하는 동시에 best11입니다.

차범근의 조국인 대한민국이 존경스럽습니다.

에오제비오[포루투칼의 골잡이];차범근에 대해서는 어느누구보다 내가 더잘압니다.

?칼하인츠루메니게[독일의 골잡이];차범근은 역대독일프로축구분데스리가역사상 가장초독보적인선수입니다.

클린스만[독일의 골잡이];나는 이정도면 그럭저럭 거대한게 성공한선수이지만 차범근만큼은 아닙니다.

베아리죠티[86년당시이탈리아성인국가대표팀감독];?이번멕시코월드컵에서 경계대상0순위는 무조건마라도나고 1순위는 무조건차범근입니다.

브루스아레나[전미국성인국가대표팀감독]?;마라도나,펠레가 축구의 마이클조던이라면 차범근은 아시아에서온 축구의 마이클조던입니다.

발락[전독일성인국가대표선수];어린시절부터 저의 거대한우상은 차범근입니다.

올리버칸[독일의 골키퍼];여기가 차범근의 국가인 대한민국입니까?저는 차범근을 만난다면 싸인을 먼저받고 싶습니다.

조세무링유?[전첼시감독];나는 모두다 아시다시피 무명선수출신의 감독입니다.

차범근처럼 최고선수가 되지는 못한다고 해도 최하 그에 거의  버금가는 선수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퍼거슨[전맨u감독];?내가 에버딘구단감독시절에  차범근을 처음봤지만 차범근한테는  정말이지 비겁한전술자체도  절대로 통하지 않습니다.

2000년당시이집트올림픽국가대표팀감독;이번에 대한민국올림픽국가대표팀과 대결을 하지만 사실 저는 차범근의후예들인 대한민국올림픽국가대표팀과 경기를 한다는 것에 매우기뻤습니다.

차범근의조국이기때문이지요.레이캬릇[전네덜랜드성인국가대표팀감독];저는 차범근을 모든면에서 존중합니다.

뱅가다[전fc서울감독];차범근에 대해서 어느누구보다 내가더 잘압니다.

저는 차범근을 존중합니다.

거스히딩크[전대한민국성인국가대표팀감독];차범근은 요즘으로치면 당대세계최고축구황제,천재인 지단같은선수입니다.

루이스피구[인터밀란의; 에이스,리더];저를 낳아준 부모를 제외하고 가장존경하는 인물은 오직 차범근뿐입니다.

?귄터넨쳐[전독일성인국가대표선수이자축구역사학자];차범근은 어느때에 태어났어도 전세계어느프로그에 진출을 하던 어느구단에 진출을 하던간에  에이스,리더로 활약학할수 있는 초다재초다능한선수입니다.

내인생에 가장후회되는 일은 차범근과 같은 구단에서 선수생활을 못한것이 거대한후회입니다.

말디니[이탈리아의 리베로이자수비수];차범근한테 걸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정말다행입니다.

?마테우스[독일의 리베로이자수비수];저는 아직도 어립니다.

차범근은 최하 당대세계최고선수입니다.

마르코반바스텐[네덜랜드의 골잡이];저는 역대아시아선수중에서 차범근밖에 몰라요.뱅거[아스널감독];차범근이 지금태어났더라면 아스널구단에 입단했고 동시에 아스널의 에이스,리더로 거대하게 활약했습니다.

긱스[전맨u선수];차범근이 이번런던올림픽에 해설위원으로 ?참가한다는 말을 듣고 무지하게 기뻤어요.동시에 이렇게 기념촬영까지하게 되어서 초무한한 감동입니다.

마이클오웬[영국의 원더보이];저도 차범근같이 최고선수가되고싶어요.로저밀러[카메룬의 골잡이];저와 같은 흑인선수던 반대로 백인선수던간에 마라도나,펠레를 제외하고 봤을때 차범근처럼 지치않고 계속부지런하게 뛰는 선수는 단한명도없어요.밀리티누비치[감독으로만 월드컵축구대회5회연속참가한감독]?;차범근은 생긴것만 정통아시아인이지  ?사실상 신체조건,두뇌[iq],체력,폭발력,초순간적인폭발력,개인기술자체는 스케일이 거대하면서 아기한것이 유럽,남아메리카[남미]선수 즉정통서양인선수입니다.

?드로그바[코투디부아루의 골잡이];차범근은 저처럼 축구후진국가에서 태어난 선수이면서 마라도나,펠레와 함께 역대세계축구역사를 완전히뒤바꿔버린 선수입니다.

?전세계가 차범근을 이렇게 너무나도 한도끝도 없이 거대하게 경애하는 군요.차범근은 역대아시아최고불멸의 초무한대선수이면서 역대아시아가 오직딱한명낳은 불멸의 월드톱클래스선수입니다.

차범근은 거대한영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한도끝도 없이 거대한선수이자 동시에 차범근의 거대한능력은 너무나도 한도끝도 없이 거대합니다.

 차범근님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을 하며 아시아인으로서는 역대 최다득점이되는 리그 98골을 기록하였습니다.

독일에서 활약당시 차붐이라는 애칭으로 불렸으며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 영국 ESPN,아시아축구연맹 등에서 20세기 아시아선수로 선정 되기도했으며 월드사커지에서는 잊을수 없는 100대 스타, 20세기 축구에영향을 미친 100인에도 선정될 정도로 월드스타였습니다.

전설의 차범근님은 사실 이루 말할수 없는 기록과 수상등 정말 레전드 중의 레전드였죠...국가대표 시절의 차범근 선수허벅지 근육 보세요 정말 말근육 입니다.

선수로는 정말 세계최고의 선수중 한명이었습니다.

은퇴후 지도자로서 프로팀과 국가대표 감독도 하였으나지도자로서의 평가는 뒤로 미루고 해설가로서는 대박이었죠? 해설도 잘하실줄 누가 알았겠습니까?암튼 전설의차붐 차범근 감독님 앞으로도 대한민국 축구를 위해봉사 많이해 주세요^^동영상????? ?? ????????. (????)www.youtube.com? 07

1989.06 TSV 바이엘 04 레버쿠젠 (독일)1979.07

1983.07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독일)1978.12

1979.06 SV 다름슈타트 98 (독일)1976.10

1979.05 공군 축구단1976

1976.10 서울신탁은행 축구단- 수상 내역(개인)-2011 제1회 한국패션 100년 어워즈 스포츠부문2010 아시아축구연맹 황금공로상1999 월드사커지 20세기 축구에 영향을 미친 100인1999 월드사커지 잊을수 없는 100대스타1994 세계축구역사통계연맹 20세기 아시아 최고의 선수1986 서독 아벤트포스트지 올해의 분데스리가 최고의 선수1980 서독 빌트지 페어플레이어1970 MBC 고교축구대회 최우수선수1970 대통령 금배 고교축구대회 득점왕1972  선정 올해의 신인상1979 키커지 단 올해의 외국인 선수 1위- 수상 내역(팀) -1.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UEFA컵 : 1979-80DFB-포칼 : 1980-812.바이어 04 레버쿠젠UEFA컵 : 1987-883. 대한민국 국가대표 팀메르데카컵 우승 1972, 1975, 1977, 19781972년 AFC 아시안컵 준우승1978년 아시안 게임 축구 금메달  세상의 대부분의 것들은 노력을 통해 성취가 가능하다.

하지만 노력 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분야가 종종 존재한다.

특히나 신체 능력을 이용하는 스포츠의 경우, 노력 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 타고난 선천적 재능 ' 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특히나 신체적인 부분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스포츠의 경우 인종에 따라 신체적 능력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신체 조건을 타고난 인종이 있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가장 신체적 능력이 우수하다고 인정되는 것은 흑인이다.

그 다음이 백인이고, 황인의 경우 스포츠와 관련된 신체 조건이 가장 열악한 편이다.

물론 모든 스포츠가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축구의 경우에는 대개 흑인이나 백인이 황인에 비해 우수한 신체 조건을 가진다.

비슷한 노력과 재력, 축구 인프라가 있다는 가정 하에, 순수 신체 능력으로는 황인이 백인이나 흑인보다 축구를 잘하기 어렵다.

그것이 타고난 재능이라는 것이다.

스피드와 체격 조건, 몸의 유연함이나 탄력, 가속과 감속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유연하면서 탄탄한 근육 등이 골고루 갖춰져아 하고, 화려한 드리블을 이용하여 상대를 제끼는 움직임도, 몸의 유연함과 단단한 골격을 필요로 한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흑인이 가장 우수한 편이고, 백인이 그 다음이다.

다만 축구가 가장 활성화된 유럽의 축구 인프라가 가장 우수한데, 유럽 인구의 대부분이 백인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세계 최고의 선수나 한 시대를 휩쓴 선수들의 대부분은 백인이다.

예외가 있다면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지역의 흑인이나 혼혈인들 중에서 월드 클래스가 나오기도 한다.

어찌됐건 축구 인프라나 타고난 선천적 신체 능력이 가장 열악한 편인 동양인이, 클럽 축구의 성지라 불리우는 아시아에서 월드 클래스 수준으로 성장하긴 굉장히 어려운 것이다.

더군다나 오늘날처럼 한국,중국,일본 등 비교적 경제력이 갖춰진 나라의 팬 층을 위해서, 일명 ' 유니폼 시장 ' 의 가능하여 동양인을 기용하는 경우의 수도 거의 없었던 몇십년 전 과거라면, 더욱 동양인을 영입할 명문 구단들의 수가 적었을 것이다.

이 시대에 동양인을 영입했다면, 마케팅적 부분보다는 그 선수의 실력을 인정했다는 증거가 된다.

  앞서 말했듯이 인프라, 재력, 선천적 신체 능력 등이 서양인들에 비해 현격히 부족한 동양에서, 유럽 무대에서 맹활약한 동양인 선수가 있다면 어떨까. 이것은 굉장히 놀라운 일이고, 역사에 남을 일이다.

그런데 약 30년 전, 그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그것도 당시로선 경제가 그다지 발달하지도 않았던 대한민국에서 그러한 선수가 나타났다.

현 시점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인구는 고작 5천만 남짓. 30년 전에는 좀 더 적었을 것이다.

지금보다 경제도, 축구를 위한 인프라도 발달되지 못했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인지도도 현격히 떨어졌던 그 시절. 놀랍게도 이 시절에 유럽인들을 놀라게 한, 유럽 무대를 휩쓸었던 한 공격수가 있었다.

이 선수는 동양인임에도 불구하고 서양 선수들과의 볼 경합에서 밀리지 않는 피지컬, 훌륭한 슈팅력, 빠른 스피드 등을 골고루 갖추고 있는, 역대 아시아 최고의 축구 선수라 불리울만한 인물이다.

이제는 전설로 회자되는, 대한민국과 아시아를 빛낸, 역대 최고의 아시아 선수. 이번 포스팅의 주인공은, 독일의 분데스리가에서 맹활약한, ' 갈색 폭격기 ' 차범근이다.

차범근은 독일에서 최고의 활약을 했고, 당시의 활약으로 인해, 그는 차붐이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붐이란 대포 같은게 꽝하고 폭발하는 소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엄청난 슈팅력과 많은 골을 터뜨린 차범근에 대한 경의를 담은 표현이다.

  차범근은 경기도 화성시에서, 보리밥에 넣을 참기름을 살 돈조차 부족했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런 그가 어릴 적부터 축구 재능이 눈에 띄었고, 축구부가 있는 경신중,고등학교를 걸쳐 고려대학교에 입학했다.

오늘날에 비해 대학 진학률이 현격히 떨어졌던 시대라서 비교적 입시 경쟁은 적었을지 모르지만, 가난한 집안의 학생을 뽑았다는 것은, 그만큼 재능을 어렸을 때부터 인정받았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대학 재학 중 최연소로 국가 대표에 발탁되기도 했다.

이후 1976년 서울 신탁은행에 입단하고, 1979년까지 공군 축구단에서 활약한다.

오늘날로 치면 상무로 군복무를 마친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는 1972년부터 1978년까지, 국가대표 소속으로 118경기에 나서 55골을 넣었다.

20대 초중반에 국가대표로 선출되어 미친듯한 활약을 했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중도에 군복무까지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활약은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운 수준이다.

이 때에는 각 종 해외 클럽들을 초청하여 친선 경기를 종종 했다고 하는데, 차범근은 박스컵에서 만난 프랑크푸르트를 상대로 좋은 활약을 펼쳤다.

당시 축구협회 국제 부장이었던 박동희와 프랑크푸르트가 타진하여 차범근의 분데스리가로의 이적을 위해 노력했고, 결국 78년에 다름슈타트로 전격 이적하게 된다.

하지만 타군과 복무 기간을 같게 해준다는 조건으로 공군 축구단에 입단했다가 복무 단축이 무산되면서, 만기 제대를 위해 공군 축구단으로 복귀했고, 1979년에 만기 제대 후 다시 분데스리가로 돌아가게 된다.

 제대 후 분데스리가의 프랑크푸르트에 입단한 시기는 1979년. 이 때부터 차범근의 분데스리가 생활이 시작된다.

그리고는 첫 시즌부터 눈부신 활약을 펼친다.

그는 리그 12골, UEFA컵 11경기 3골을 넣으며 첫 시즌에 46경기 15골을 넣었고, 이 때의 활약으로 UEFA 컵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이후 80/81 시즌에는 리그에서는 부상으로 인해 다소 부진했으나, DFB 포칼에서 6경기 6골을 넣으며 팀의 우승을 견인한다.

분데스리가에 진출한 처음 2시즌에, UEFA컵과 DFB 포칼 우승을 한 번씩 맛본 셈이다.

게다가 프랑크푸르트 시절 상대 선수 중 겔스도프라는 선수의 과격한 태클로 인해 요추가 골절되며 축구 인생의 위기가 오기도 하지만, 차범근은 겔스도프를 용서하고 성공적인 재활을 이뤄냈다.

 이후에도 82/83 시즌까지 리그에서 꾸준히 두자릿 수 득점대를 기록하며 활약하지만, 프랑크푸르트의 재정 악화로 인해, 고연봉자였던 차범근은 같은 리그에 있는 레버쿠젠으로 전격 이적하게 된다.

  차범근이 이적하기 전의 레버쿠젠은, 리그에서 10위권 밖에 있는 중하위권 팀으로, 명문 팀이라 보기엔 힘든 클럽이었다.

그런 레버쿠젠에 입단한 차범근은 초창기부터 활약했고, 85/86 시즌에 38경기 19골을 기록하며 팀의 리그 6위를 견인했고, 이로 인해 레버쿠젠은 UEFA 컵 진출에 성공하게 된다.

차범근 합류 이전에 10위권 밖에 있던 클럽을 리그 6위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이어진 87/88 시즌에, 결국 차범근은 레버쿠젠의 UEFA컵 우승을 견인했고, 이는 차범근의 개인 통산 2번째 UEFA컵 우승이다.

참고로 차범근을 포함하여, 서로 다른 두 개의 팀에서 1번 씩 UEFA컵 우승에 성공한 선수는 역사상 9명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후 차범근은 1989년까지 분데스리가에서 뛰었고, 은퇴할 때까지 분데스리가 통산 308경기에서 98골을 기록한다.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아니 아시아 축구 역사상 이 정도의 출장 경기 수와 득점 기록을 갖춘 공격수는 전무하다.

심지어 패널티 킥 골이 전혀 없는 순수 필드 골이었고, 독일에서 10년 이상 활약하면서 차범근이 받은 옐로 카드는 겨우 1장이라고 한다.

최전방에서 상대 수비수와의 경합이 잦은 포지션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기술적이면서 지능적인 플레이를 했다는 것이다.

물론 패널티킥의 경우, 차범근 본인이 키커로 나서는 것을 꺼려했기에 시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독일의 저명한 축구 언론 중 하나인 키커에서, 79/80 시즌에서 83/84 시즌까지 매겼던 공격수 평점을 보면, 매 시즌마다 꾸준히 3

7위 안에 들었고, 5시즌 평균 평점은 무려 루메니게에 이은 2위이다.

루메니게는 80년대 분데스리가를 평정했던 공격수로, 발롱도르 2회 수상과 월드컵 준우승 2회, 유로 대회 우승 1회를 차지했던, 바이에른 뮌헨 역대 BEST 11과 명예의 전당에도 등록되어있는 최고의 공격수이다.

그런 선수에 이어 분데스리가 5년 평균 공격수 평점이 2위라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이에 더해 분데스리가 주간 BEST 11에도 무려 40차례나 선정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차범근이 세운 308경기 98골은, 그가 은퇴한 시점에서는 분데스리가의 역대 외국인 공격수 가운데 최다 골이었다고 하며 현 시점에는 역대 6위의 기록이다.

현재에도 차범근은, 역대 분데스리가를 거쳐간 외국인 공격수(비 독일 선수) 랭킹 10위 안에 포함되어 있다.

 2010년 골 닷컴 인터내셔널이 선정한 '분데스리가 용병 TOP10'에서는 3위에 선정되었다.

 또한 레버쿠젠과 프랑크푸르트의 레전드로서, 현재에도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나 레버쿠젠 등지를 방문하면, 오랜 팬들이 그를 알아본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아니 아시아 전체에서 유럽의 클럽을 거쳐간 선수로서, 이 정도의 위상을 가진 것은 차범근이 유일할 것이다.

그나마 근접한게 맨유의 엠버서더인 박지성 정도일까.  워낙 분데스리가에서의 활약이 대단했던 덕분에 차범근의 국가대표로서의 위상이 다소 묻히고는 하는데, 차범근은 국가대표로서도 엄청난 활약을 한다.

그는 A매치 통산 132경기 59골을 넣으며 역대 최다 득점자에 랭크되어 있으며, 24세 139일에 센추리 클럽(국가대표 100경기 이상을 치른 것을 의미한다.

)에 가입하면서, 역대 최연소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가 된다.

다만 월드컵의 경우 1986년 대회 참여가 유일한데, 이것도 사실 엄청난 일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은 8번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고, 월드컵 통산 최고 성적이 4강이며, 원정 한정으로 16강이 최고의 기록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월드컵 본선 진출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16강 이상의 성적도 기대해 볼 만하다는 의견이 다수이다.

하지만 이 8번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의 첫 시작이 1986년 대회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대회 이전 대한민국이 월드컵에 출전했던 것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이 유일하다.

무려 32년 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고, 차범근, 허정무 등이 활약했던 8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다시 진출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8번 연속 진출의 시작점이 바로 차범근이었다.

게다가 오늘날에는 유럽에 진출한 선수들이 제법 많고, 박지성이 전성기였던 시절에만 해도 이영표,이청용,차두리,박주영,기성용 등 유럽 무대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이 전성기에 있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차범근이 활약했던 86년 대회에서는, 아인트호벤에서 뛰었던 허정무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K리그 출신이고, 차범근과 나머지 선수들의 클래스 차이가 너무도 컸다.

아무리 차범근이 뛰어나도, 축구는 11명이 하는 스포츠이기에, 차범근이 활약을 하기 위해선 나머지 선수들이 어느 정도 받쳐 줘야 한다.

오늘날로 생각해봐도, 레알 마드리드의 에이스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포르투갈에서의 활약을 보면, 클럽에 못미치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호날두는 포르투갈 역대 최다 득점자로서 제 몫을 해주고는 있으나, 레알 마드리드와 비교했을 때 동료들의 수준이 현격하게 차이나고, 이로 인해 클럽에서의 활약에 훨씬 못미친다.

그래도 주전들이 유럽 각지에서 활약하는 포르투갈 소속이기에 동료들의 수준이 최소한은 되었지만, 차범근이 활약했던 대한민국에서는 주전 대부분이 K리그 소속으로서 차범근과의 클래스 격차가 격심했다.

아시아에서야 K리그가 훌륭한 리그이지만, 유럽 무대에 비할 바는 아닌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차범근이 국가대표로서 활약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말레이시아의 경기에서 4-1로 지고 있는 것을 후반 막판에 해트트릭을 하면서 동점을 만들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대한민국 역대 최연소 센추리 클럽 가입과 역대 최다 득점 기록에, 월드컵 8연속 진출의 시작점을 장식했다는 것에서, 이미 차범근의 국가 대표로서의 활약을 더 이상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일부 어그로 꾼들의 행각으로 생각되지만, 차범근이 10년 이상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고도 리그 우승이 없다는 것 때문에 그의 클래스를 폄하하는 네티즌들이 가끔 있다.

이에 대해 반박을 하자면, 우선 차범근이 활약했던 레버쿠젠의 경우 차범근 합류 이전 리그 10위권 밖의 팀이었다.

쉽게 말해서 우승권을 논할 클럽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클럽을 6위 수준까지 끌어올렸고, UEFA 컵에 진출시켰다.

그것 만으로도 이미 클래스를 입증하는데, 심지어 이 UEFA 컵 우승을 견인했다.

또한 서로 다른 클럽에서 이 대회 우승을 경험했다.

역대 9명 밖에 없는 것을 해낸 선수이다.

리그는 한 시즌에 약 30경기 이상을 소화하는 장기 레이스이다.

이런 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해서는 탄탄한 주전 라인업과, 체력 안배 및 전술적 활용을 위한 교체 자원이 풍족해야 한다.

하지만 리그 중하위권을 맴돌던 레버쿠젠은 그 정도의 팀이 아니었다.

차범근 혼자 활약해서는 우승할 수 없다.

오히려 리그 중위권 팀의 공격수가, 5시즌 동안 공격수 평균 평점 2위에 랭크되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것이다.

1위인 루메니게는 분데스리가 최대 평문인 바이에른 뮌헨 소속으로서, 차범근보다 훨씬 뛰어난 동료들의 지원을 받은데다가, 발롱도르를 2회나 수상한 선수이다.

발롱도르 수상자 바로 다음의 평점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차범근의 클래스에 대해 폄하할 여지가 없다.

이는 UCL 우승까지 경험한 박지성조차도 받아보지 못한 기록이고, 분데스리가 우승 경험이 있는 일본의 카가와 신지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다.

쉽게 말해서 클럽 커리어는 박지성이나 카가와 신지 등이 더 뛰어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나, 선수 개인에 대한 평가는 차범근보다 뛰어난 아시아인이 축구 역사상 없다는 평이 옳다.

카가와 신지가 과연 은퇴 이후에 도르트문드 역대 BEST 11에 등재될 정도의 선수로 기억될까. 박지성이 맨유에서 7시즌간 활약했다고 하지만, 맨유 역대 BEST 11에 들어가거나, EPL 역대 10위권 안에 드는 미드필더였던가. 박지성과 카가와 신지는 각각 EPL,분데스리가에서 맹활약한 미드필더이지만, 차범근과 비교할 클래스는 아니라는 것이다.

  요컨대 차범근은, 현재보다 재정,인프라,동양 선수에 대한 인식 등이 형편없이 좋지 못했던 시기에, 신체 능력이 서양인이나 흑인 수준이 되지 못하는 동양의 작은 나라의 선수가, 당시 유럽 최고의 리그 가운데 하나였던 분데스리가에서, 중하위권 클럽 소속으로, 서로 다른 두 팀에서 UEFA 컵 우승을 경험했고, 역대 분데스리가 외국인 공격수 득점 6위에 랭크되어 있고, 당대 최고의 유럽 선수 중 하나였던 루메니게에 이어 5년간 평균 평점 2위에 랭크되었고, 심지어 군 복무까지 마친 후 20대 후반에서 30대 중후반까지 활약했던, 현재까지 그 어떠한 아시아 선수도 범접할 수 없으며 앞으로도 범접할 선수가 등장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독보적인 아시아 역대 최고의 선수였다고 볼 수 있겠다.

우리는 차범근의 리그 우승 기록이 없는 것을 트집잡을 것이 아니라, 아시아 역대 최고의 공격수가 대한민국 소속으로서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선수에서 은퇴한 차범근은 국가대표 감독, K리그 감독 등을 역임했고, 이후에는 축구 해설 위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가장 최근의 메이저 대회였던 2014년 브라질 월드컵도 해설했고, 아직도 주요 A매치 해설에 나서면서 활발한 해설 활동을 하는 중이다.

그리고 ' 차범근 축구 교실 ' 등을 운연하며 후진 양성에도 꾸준히 힘쓰며, 대한민국 축구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현재 KFA 선정 한국 축구 명예의 전당 7인 중 하나로 등재되어 있다.

 차범근에 대한 말말말여기가 차붐의 나라인가? 너무 와보고 싶었다.

그는 나의 우상이다.

- 미하엘 발락우리가 풀지 못했던 주요 문제는 차붐이었다.

차붐은 막을 수 없었다.

해결 불가능한 존재였다.

- 알렉스 퍼거슨내가 그런 공격수와 붙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다.

- 파올로 말디니내 자신은 어느 정도 성공한 공격수로 평가받지만, 차붐만큼은 아니다.

- 위르겐 클린스만전에 없던 공격수다.

골을 넣기도 하지만, 사이드에서도 활약하고, 때론 미드필더로 볼을 공급하기도 한다.

 분데스리가의 다른 축구선수들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축구를 했던 선수다.

- 프란츠 베켄바워나는 차붐을 낳은 그의 어머니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가 독일인이라면 어김없이 독일 대표팀에 넣고 싶다.

- 프란츠 베켄바워차붐은 70년대 후반과 80년대 독일 프로축구에서 최고로 손꼽히던 공격수였다.

 어린시절 2부에서 뛰던 나는 쳐다볼 수도 없는 대선배였다.

 - 루디 펠러차붐은 톱 플레이어를 넘어, 구단을 이끄는 선수였다.

- 라이너 칼문트차붐은 당시 독일에서 정말로 특출난 존재였다.

- 칼 하인츠 루메니게미안하다.

난 솔직히 한국에 대해선 차붐밖에 모른다.

- 요한 크루이프(한국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느냐는 의 질문에 대한 대답)방한의 궁극적인 목적은 양국의 발전과 우호 증진이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차붐부터 만나보고 싶다.

- 슈뢰더나는 차붐선수를 존경한다.

나는 어릴때 부터 차붐을 보고 자라났다.

나도 그 선수처럼 되고 싶다.

- 마이클 오언차붐이 세계 최고의 공격수 가운데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그는 나의 자만을 깨우쳐줬다.

- 로테어 마테우스차붐은 진정으로 축구를 할 줄 알고, 즐길 줄 안다.

- 펠레차붐은 나의 축구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영웅 가운데 하나이다.

- 루이스 피구분데스리가 베스트11까지 오를 수 있었지만 그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더 높은 한 단계, 즉 루메니게, 브라이트너 등이 서있던 경지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더욱이 처음 분데스리가에서 뛰던 정열과 패기였다면 충분히 오를 수 있었던 곳에 나는 적지 않은 사람들과의 오해와 갈등으로 혼란에 빠져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는 아쉬움이 지워지지 않는다.

- 차범근(선수 생활에 대한 아쉬움을 묻는 인터뷰에 대한 답변)   차범근님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을 하며 아시아인으로서는 역대 최다득점이되는 리그 98골을 기록하였습니다.

독일에서 활약당시 차붐이라는 애칭으로 불렸으며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 영국 ESPN,아시아축구연맹 등에서 20세기 아시아선수로 선정 되기도했으며 월드사커지에서는 잊을수 없는 100대 스타, 20세기 축구에영향을 미친 100인에도 선정될 정도로 월드스타였습니다.

전설의 차범근님은 사실 이루 말할수 없는 기록과 수상등 정말 레전드 중의 레전드였죠...국가대표 시절의 차범근 선수허벅지 근육 보세요 정말 말근육 입니다.

선수로는 정말 세계최고의 선수중 한명이었습니다.

은퇴후 지도자로서 프로팀과 국가대표 감독도 하였으나지도자로서의 평가는 뒤로 미루고 해설가로서는 대박이었죠? 해설도 잘하실줄 누가 알았겠습니까?암튼 전설의차붐 차범근 감독님 앞으로도 대한민국 축구를 위해봉사 많이해 주세요^^동영상????? ?? ????????. (????)www.youtube.com? 프랑스 축구전문지에서 세계 4대 축구인에 선정현재 누구나 축구에 관심이 있으면 알 수 있는 전설들과 함께(마라도나, 펠레, 베켄바우어, 차범근)?독일 최대 축구잡지 키커에 80년대 가장 위대한 선수로 선정됨?대표팀에서도 활약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1976년 박스컵(대통령 배)에서 말레이시아를 상대로4대1로 지고있다가 5분만에 3골을 넣는다.

????차범근??의 위상1.세계최고의 감독이자 독설가 무리뉴(첼시)의 공손한 태도2.벵거감독(아스날)과 차붐의 만남프랑크푸르트에 입단한 차범근은 그해 UEFA컵 우승을 이끌게 됩니다.

 당시 결승에서 만난 퍼거슨 감독(당시 에버딘 감독)이 차범근의 활약을 보고 "우린 차붐을 막을 수 없었다.

해결 불가능한 존재다.

라고 했었죠현재까지 레버쿠젠, 프랑크푸르트에서는 레전드 차붐을 알아보고그??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팬분들이 수 도없이 많다고 합니다.

 ? 차붐은 나의 축구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영웅이다.

?루이스피구차범근이 세계 최고의 공격수인 건 분명하다.

그는 나의 자만을 깨우쳐줬다.

마테우스내가 그런 공격수랑 붙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다.

말디니 여기가 차붐의 나라입니까? 너무 와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나의 우상입니다.

- 발락(2002 월드컵 당시)난 차붐을 낳은 어머니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그가 독일인이라면 어김없이 독일 대표팀에 넣고 싶다.

베켄바우어나는 차붐 선수를 존경한다.

어릴 때부터 차붐을 보고 자랐다.

나도 그 선수처럼 되고 싶다.

- 오웬당신에게 사인을 받고 싶었습니다.

이 자리는 제게 정말 큰 영광입니다.

올리버칸(2002월드컵 최고의 골키퍼)?붐은 진정으로 축구를 할 줄 알고 즐길 줄 안다.

?펠레??방한의 궁극적인 목적은 양국의 발전과 우호증진이어야 한다.

하지만 난 차붐부터 만나고 싶다.

슈뢰더 독일 총리 ??내 자신은 어느 정도 성공한 공격수로 평가받지만, 차붐정도는 아니다?클리스만   차범근 레전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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