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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핫코너



피어슨과의 재계약이 불발된 이유 역시 수비, 특히 3루 수비 능력에 대한 의심 때문이었으며 퀸란의 영입으로 마침내 주인을 되찾은 듯 하였으나 그마저도 여러 요인으로 다시 무주공산이 되고 말았다.

믿었던 대형 신인 김민우의 스위치타자 전향 실패와 그로 인한 부진 때문에 7년 동안이나 이런 현상이 지속되었다.

그리고 2003년 마침내 유니콘스의 핫코너를 책임질 선수가 등장하니 바로 박재홍과 트레이드되어 이적해 온 정성훈 그 주인공이다.

   (정성훈의 3루 수비 실력은 그의 똘끼와 더불어 인정받고 있다.

 2003년 올스타전에서 친정팀 KIA의 헬멧을 쓰고 등장한 정성훈)   1999년 1억 5천만원이라는 거액의 계약금을 받으며 입단한 정성훈은 사실 초기에는 유격수 포지션을 소화하면서 이종범의 뒤를 이을 선수로 타이거즈 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체력부담이 심한 유격수는 그로 하여 공격력을 맘껏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족쇄와 같았고 결국 홍세완이 다시 주전 유격수를 꿰차면서 정성훈은 3루수로 보직을 옮겼다.

첫해 0.292의 타율로 신인으로는 준수한 성적을 올린 그는 이듬해 2년차 징크스를 겪었지만 2002년에는 생애 첫 3할 타율을 기록하는 등 타이거즈를 이끌 재목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야구인생 정점, 혹은 그 정점의 시작에서 타의로 둥지를 옮기게 되는 선수들이 상당히 많다.

정성훈 역시 그런 경우였다.

2003년 끊임없이 3루수 보강을 노리던 유니콘스는 박재홍을 고향인 광주로 보내는 대신 정성훈과 현금을 받아왔다.

당시 정성훈은 이현곤과의 주전경쟁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였고 포스트시즌에서의 부진, 거포를 갈구하던 KIA의 입장이 맞물린 결과였다.

이로써 유니콘스는 구단 트레이드 역사에 또 하나의 성공사례를 남기게 된다.

이 트레이드의 결과로 KIA는 유망한 3루수를 잃었고 원하던 거포도 갖지 못하게 된다.

 * 3루가 핫코너로 불리는 이유 : 3루의 경우 우타자가 몸쪽 공을 잡아당겨 친 빠른 타구 및 번트 상황에서의 예측 불가능한 타구로 인하여 안정적인 포구 능력과 민첩성, 1루까지의 정확하고 빠른 송구가 요구되기 때문에 핫코너로 불리며 키스톤 뿐만 아니라 3루 수비가 강해야 상대의 안타 및 진루를 막아낼 수 있다.

   (2005년 올스타전에서 스피드킹에 등극한 정성훈)   하지만 이적은 그가 겪을 파란만장한 야구 인생의 서막일 뿐이었다.

2003년 현대의 주전 3루수로 출전하게 되지만 손목 부상으로 91경기에 출장하는데 그쳤다.

그해 그의 타율이 0.343에 이르렀던걸 생각하면 매우 아쉬운 결과다.

그 부상의 여파로 이듬해 타율은 급격히 떨어졌지만 정작 더 큰 문제는 외적인 곳에서 터졌다.

2004년 9월을 휩쓴 대규모 병역비리 파동으로 상당수의 선수들이 구속되기에 이르렀고 정성훈도 이에 연루되어 잔여경기 출장 금지 결정을 받았다.

이로 인하여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현대의 라인업 중 3루수 자리에 브룸바가 이름을 올리게 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다행히 죽으란 법은 없어서 기소유예에 그친 정성훈은 2006년 WBC에 출전, 병역 면제 특혜를 받게 된다.

   (정성훈의 호수비, 출처-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dbdmsruf)   2005년부터는 거의 전경기에 출전하면서 확실한 3루수로 자리매김하였지만 이미 현대의 운명은 서산에 지는 해와 같아 과거의 영광은 그와는 관계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결국 2007년을 끝으로 유니콘스는 해체되고 우리 히어로즈가 그를 대신하여 8번째 구단으로 프로야구에 참가한다.

현대의 선수들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선수들 연봉이 깎였지만 FA를 눈앞에둔 정성훈은 오히려 연봉이 오르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독이 되었다.

연봉을 올려준만큼 프런트오 코칭스태프들은 그에게 큰 기대를 걸었으나 이내 그의 성적이 신통찮다고 느꼈는지 프런트와 선수 사이의 불화설이 오갔고 2군으로 강등되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태업성 플레이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결국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2008년 시즌이 끝나고 그는 LG로 FA이적을 하였다.

   (정성훈은 LG의 FA영입 성공사례로 꼽힌다.

)   LG는 그동안 여러 대형 FA영입 선수의 성적 하락으로 입쥐효과라는 오명을 뒤집어 써야했다.

이는 DTD와 더불러 LG를 조롱하는 단어가 되었으나 그 입쥐효과에서 벗어난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정성훈이다.

정성훈의 FA이적은 뜻하지 않은 연쇄효과를 가져왔다.

LG가 그를 영입한 것이 결과적으로 수년간 3루수 부재에 허덕이던 친정팀 KIA에 김상현이라는 거포 3루수를 안겨다 준 것이다.

LG의 3루수였던 김상현은 정성훈의 이적으로 입지가 좁아졌고 2009년 4월 KIA로 트레이드 되었는데 그해 최희섭과 함께 CK포를 합작하여 타이거즈의 10번째 우승이라는 숙원을 이루고야 만다.

    (정성훈 연관 검색어에 함께 자리한 똘끼)   똘끼, 정성병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성훈. 허나 확실한 것은 그가 인정받을 만한 야구 실력을 갖추고 있기에 그의 괴이한 행동들도 다 용인되고 오히려 즐거운 볼거리로 인식되는 것이 아닐까.  (정성훈의 통산 성적 ⓒ 아이스탯) . 내 머리속에서 좋은 선수들이란 저 지표에 충족하는 선수들이었다.

.. 그러다 야구를 조금 알게 되자 타자들에게는 출루율이란 개념이 투수들에게는 삼진이란 요소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 그런데 모굴이란 게임이 있다.

.. 여기에서 투수력이 강한 팀을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히 좋은 투수만으로는 불가능 하단걸 깨닫게 되었다.

.. 참 야구란 알면 알수록 묘한 종목이구나 싶으면서도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 요소 이외에도 그 이면의 수많은 중요 요소들이 있다는걸 깨닫게 하는데 , 말이 샜지만 투수력이 좋은팀 즉 팀 방어율을 향상 시키기 위해서 중요한건 바로.... 두말 할것 없이 수비수들의 능력이다.

..  야구는 공격과 수비로 나누어 진다.

.. 투수들이 제 아무리 다들 선동렬이어도 모든 타자를 삼진으로 처리 할 수는 없다.

.. 필드로 향하는 타구를 처리하는 수비수들의 능력이 그팀의 실점정도와 연관 되는건 너무나도 당연하다.

. 이 당연한 걸 깨닫는데 자그마치 15년이 걸렸다 ㅎㅎ   이번 월드 시리즈를 보면서 느낀건 수비의 중요성이었다.

. 5경기동안 8개의 실책을 범한 디트로이트는 자멸하고 말았다.

. 비단 월드 시리즈 뿐만 아니라 리그 순위 상위권에 있는 팀들의 실책수는 최소 순위 상위권에 위치 해 있다는걸 쉽게 파악 할 수 있다.

.. 홈런왕 타율왕 다승왕이 없어도 우승을 할 순 있지만 실책이 많아서는 절대 우승 할 수 없다.

..  외야의 수비란 비교적 에러가 적을 수 밖에 없는 포지션이지만 내야 수비는 실책의 가능성이 항시 존재하는 공간이다.

. 그중에서도 핫 코너라 불리는 3루의 수비는 그 빈도수가 가장많다.

.. 일단 1루에서 멀기때문에 송구 에러가 빈번하고, 우타자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야구판에서 가장 총알 같은 당겨치는 타구들이 집중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 잘 던지던 투수들도 에러 하나가 시발점이 되어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한 야구경기에서 튼튼한 3루 수비는 그팀의 전체 경쟁률을 좌우 하는 요소라고 해도 절대 무리가 아니다.

. 그 3루에 삼성은 10년이 넘게 프로야구판 전체의 주인으로 군림하던 김한수 선수가 있었다.

..  *김한수 선수를 알게되다*   1994년 삼성은 전년도 준우승팀으로서 시즌을 맞이하나 결과는 실망 그 자체였다.

.. 위안을 삼을 수 있는것은 전년도 혜성처럼 나타난 신인투수 박충식이 2년 연속 14승을 올렸다는 것인데..(그때의 위안은 영원한 아쉬움이 된다.

.. 박충식이 망가진건 한국시리즈 3차전 15이닝 181구의 투구 문제가 아니라 94년도 200이닝 이상 투구가 문제였다.

. 여튼 94년의 14승은 질적으로 93년의 14승을 압도하는 것이었다.

.) 그때 박충식 선수의 선발 경기를 보고 있는데 상대 이종범 선수의 수비를 칭찬하는 해설자의 이야기가 나오다가 경기전 박충식 선수와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 해주었는데, '종범이도 수비를 잘하지만 우리팀의 한수의 수비가 정말 최고입니다, 김한수 선수가 3루에 있어서 투구할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릅니다' 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 물론 해설자는 그 해 기록적인 타격페이스를 보이던 이종범 선수와 삼성의 에이스 오브 에이스 박충식 선수에 대해서 이야기 하다가 잠깐 언급했던 부분이지만 나에게는 김한수라는 선수의 존재감에 대해서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

...   앞에도 비교적 자세히(;;;) 수비의 중요성을 설명했지만 투수는 몸쪽 승부공을 던질때 언제나 조심스럽게 된다.

. 잘못 걸리면 제대로 당겨쳐 홈런이 될 수도 있지만, 그보다도 3루 쪽으로 당겨치는 강습 타구들이 많이 생길 수 있는데 이게 2루타나 실책 혹은 내야 안타로 연결될 가능 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우투수 우타자의 경우다.

. 박충식선수의 경우는 잠수함 투수로 좌타자의 경우 쉽게 구질 파악과 또 쉽사리 밀어칠 수 있다는 단점도 있었다.

...) 하지만 박충식 선수의 경우 승부처다 싶을때 언제난 김한수 선수를 믿고 몸쪽 승부공을 던질 수 있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   *뉴 제너레이션 *   지금의 상섬은 타팀의 FA들을 대거 영입하여 돈성이라는 별로 내키지 않는 별명을 얻게 되었지만, 삼성만큼 지역야구와 밀접하게 연계하여 팜시스템을 운영했던 구단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 기아 난 서울팀들은 지역 야구에 관심을 쏟지 않아도 유수의 명문고에서 슈퍼 루키들이 끈이없이 공급되지만, 삼성은 다르다.

. 비록 한화나 에스케이 현대에 비해서는 사정이 좋다고 하나 경북지역 사실상 대구에 편중된 아마야구 자원으로 팜을 운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 하지만 삼성은 97년 지속적인 팜시스템 투자에 대한 결실을 맺은 해이다.

..   내 멋대로 뉴 제너레이션이라고 평했지만 사실상 삼성 타선의 대 변혁기가 97년이었다고 생각한다.

.. 기존의 슈퍼스타들 이만수 류중일 강기웅 김성래 등의 자리를 삼성의 팜에서 자라난 선수들이 대신 차지했던 해이기 때문이다.

..   1루수 이승엽 2루수 정경배 유격수 김태균 3루수 김한수 외야수 강동우 신동주 최익성 지명타자 양준혁 (포수가 여전히 취약 했는데 이는 나중에 진갑용 선수가 들어오면서 해결됨) 의 다이너마이트 타선이 완성되었던 것이다.

.. 특히나 이들을 두고 팜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지역출신 이승엽 선수를 내놓더라도 최익성 신동주 같은 선수들은 연습생 출신으로 지금은 중단되고 없는 프로그램이지만 지역야구와 연계된 삼성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키워진 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   여튼 이야기가 또 새버린거 같은데 ;;;; 김한수 선수는 비록 서울 출신이지만 여튼 97년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일원으로서 3년만에 삼성의 포스트 시즌에 공헌하게 된다.

. 그리고 이해 첫 3할타를 치기도 한다.

.. 주전자리를 꿰찼음은 당연한 결과....   *3루 천하 평정*   98년을 끝으로 삼성의 뉴 제너레이션은 해체된다.

.. 최익성 선수와 노장진 선수의 트레이드, 그리고 양신과 임창용의 트레이드로 .... 하지만 삼성의 타선이 약화된건 아니었다.

.. 99년 이승엽 선수의 대폭발과 용병타자 스미스의 활약 그리고 바로 김한수 크레이지모드 발동때문이었다.

.. 이해 초반 4할타율 가능성으로 인해 시즌 초반 김한수 선수에 대한 기사가 스포츠 신문을 자주 장식하게 된다.

... 이병규 선수와의 최다안타 경쟁등으로 초반을 뜨겁게 달구 었지만 최종성적은 3할 4푼(4위) 169안타로 마감한다.

.. 하지만 3루수의 3할은 타 포지션의 3할과는 질적으로 다른 성적이다.

. 수비의 부담이 가장 큰 3루수로서 수비에서의 집중력을 타석에까지 이어간다는 여간 힘든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포수도 마찬가지)  그런데 더욱 놀라운것은 김한수 선수가 앞으로도 나올수 있을런지 모를, 3루수비로서는 전후 후무한 무실책 시즌을 보냈다는 것이다.

..  그가 3루에 있다는 것이 마운드 위의 투수들에게 얼마나 큰 안정감을 줬을런지는 설명이 필요 없는 부분이고, 또 타팀의 타자들에게는 얼마나 큰 압박이 되었겠는가.. 여튼 김한수 선수는 99년 시즌을 끝으로 2년 연속 골든 그러브의 주인이 되었고, 명실 상부한 3루의 주인 핫코너의 지존이 되었다.

...   *팀과 함께 전성기를*   2000년 김한수 선수는 타격에서 2할 6푼 3리를 기록 2년연속으로 이어오던 3할타자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

. 타격은 부진했지만 여전히 수비만큼만 정상급이었다.

.. 하지만 이해 골든 글러브는 31개의 홈런을 것두 잠실에서 때린 김동주에 밀려 놓치게 된다.

..   그로 인해 프로데뷔후 첫 연봉 삭감이라는 수모를 당하기도 하지만 이 수모는 오래 가지 않는다.

.. 전년보다 1천만원 삭감된 1억원의 연봉을 받은 김한수 선수는 2001 시즌 3할 1푼 1리 의 타격으로 부활 하고 출루율도 커리어 하이인 99년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3할 6푼 6리를 마크(이후에도 이보다 좋은 출루율을 2번 기록하네요 ^^;)  삼성이 88년이후 13시즌만에 정규리그 1위를 결정짓는데 큰 역활을 하게된다.

..   이후의 김한수 선수의 성적은 삼성의 전성기와함께 성공가도를 달리게 되는데..  2할 9푼 이상의 타격과3할 5푼 이상의 출루율을 기록해주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발군의 수비능력을 가진 선수라는 꾸준함의 대명사로 불리게 된다.

...   이 기간동안 김한수 선수는 2000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멤버 2002아시안게임 금메달 멤버로서 국가에도 공헌을 하고 삼성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 두번의 준우승으로 팀에도 공헌, 그리고 01

04시즌 4년 연속 골든글러브 수상으로 개인적으로 최고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

..   *FA 그리고 1루수로의 전환*   2004시즌후 김재걸 선수는 FA자격을 얻게 된다.

.. 그러나 협상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는데 팀과의 우선협상 마지막날 극적으로 옵션포함 최대총액 28억원의 대박을 터트리면서 그간 팀에 기여한 공훈을 보상받게 된다.

..   그런데 삼성에 박진만 선수가 FA로 영입되면서 김한수 선수에게 삼성은 또다른 부탁을 하게 되니 1루수로서의 전환 요구였다.

.. 당시 삼성의 1루수비는 양준혁 선수가 맡고 있었는데 내야 수비수로서의 양준혁 선수는 많이 불안한 편이었다.

. 그리고 2번째로 박진만 선수의 영입으로 조동찬 선수의 자리가 붕떠버렸는데, 조동찬 선수의 재능을 살릴수 있는 방안도 필요했다.

. 김한수 선수도 만성간염으로 인한 피로로 인해(ㅜㅜ 저도 비형간염이라 그 피로 이해해요 ;ㅅ;) 3루 보다는 체력 소모가 덜한 포지션 이동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게 되고 35살의 나이로 1루수로 변신하게 된다.

....   적지 않은 나이에 포지션 이동이 부담스러웠을텐데도 100% 만족 스러운 활약으로 2005년 삼성에 3번째 우승이자 2번째 한국시리즈를 이끌고 올시즌 다소 부진하지만 삼성의 4번째 우승이자 3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어 낸다.

....   *화려하진 않지만 ...*   김한수 선수를 떠올릴때 절대 화려함이란 단어를 생각하진 않는다.

.. 하지만 단체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건 팀의 단합된 힘과 구성원의 유기적인 조직력이라 생각했을때, 김한수 선수의 꾸준함은 이승엽 선수나 양준혁 선수의 화려한 만큼이나 중요하고 또 빛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   김한수 선수가 또 빛나는 이유중 하나는 강인한 승부욕과 투혼이라고 할수 있는데, 김한수 선수는 역대 사(死)구 2위를 기록중인 선수이다.

. 공이 자기 몸쪽으로 날라오면 절대 피하지 않는다.

. 맞더라도 1루에 나가겠다는 강인한 의지인것이다.

. 야구 만화나 감동적 스포츠 스토리에 익숙한 분들은 그게 당연한 것처럼 느껴질테지만 한번이라도 경식 야구공에 맞아본 사람은 안다 그게 용기만으로 되는것이 아님을 ;;  "박종호에 이어 역대 死구가 가장 많은 선수인 김한수선수는 지난 롯데전에 머리에 공을 맞고 실려가도 팀을 위해 뛰겠다고 툴툴 털고 야구장에 나왔으며, 지난 현대전에서 발에 공을 맞고도 언제 그랬냐 식으로 2타석이나 더 나온 삼성의 완전소중 김한수선수. 7월 7일에는 턱에 타구를 맞아 15바늘이나 꿰메고도 다음날 출전을 자처했다니…" -<출처 소리없는 강자 김한수-Hcr333님 작성글> 그리고 몇바늘 꿰메본적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아픈지 그 고통을 안다.

...   강인한 승부욕과 남다른 투혼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을 김한수 선수는 해내고 있는 것이다.

...   *한국의 브룩스 로빈슨 김한수*   <*브룩스 로빈슨-로빈슨은 1955년에 데뷔, 23년간 볼티모어에서만 뛴 올스타 3루수.1960년부터 1975년까지 16년 연속 골드글러브를 차지, 투수 짐 캇과 함께 이 부문 기록을 갖고 있고,로빈슨은 통산 2848안타 1357타점에 타율 .267 마크했을 정도로 방망이도 뛰어났지만,역시 그의 최대무기는 전설의 골키퍼 야신을 연상케 하는 명수비였습니다.

>-김형준 님의 블로그에서

[야구 핫코너] 한번 파해쳐 봅시다.


  1994년부터 2006년까지 13시즌 1396게임 4953타수 1446안타 146홈런 756타점 141사(死)구  2할 9푼 2리의 통산타율의 김한수 선수를 보면서 부룩스 로빈슨을 생각했다.

.. 뛰어난 방망이와 수비실력의 김한수 선수 무엇보다도 꾸준했던 그의 선수 생활이 너무나도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다.

.. 그리고 이중 무엇보다도 진공청소기로 불렸던 무결점의 수비능력이..... 1984년 디트로이트 우승감독이자 양대리그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최초의 감독이었던 스파키 앤더슨은 1970년 신신내티의 감독으로서 볼티모어와 맞붙은 월드시리즈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이젠 그 녀석이 꿈속에서도 보이기 시작했어. 내가 종이 한 장을 떨어뜨리니까, 잽싸게 낚아채더니, 1루로 던져 아웃을 시키더라구"  삼성을 상대해야 했던 많은 감독들은 항상 김한수선수가 지키던 3루를 향해 한숨을 지었을 것이고 행여나 3루쪽으로 향하는 공을 보면서 품었던 일말의 기대는 역시나 하면서 언제나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 반대로 나를 포함한 삼성의 팬들은 이 뛰어난 3루수로 인해서 언제나 편안한 야구를 볼수가 있었다.

..(내야 수비가 안정된 야구를 보는건 참으로 편한한데 나만 그런건 아니겠죠 ;;;;;)   수비란건 파인플레이가 터져야만 이목이 집중되고 박수가 터져나오는 야구란 게임에 있어서 음지의 영역이다.

. 하지만 수비는 엄연한 야구의 절반이고, 또한 멘탈스포츠로 불리는 야구에서 가장 크게 심리적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요소이다.

.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렵다는 3루 수비에, 그 분야 최고의 선수인 김한수 선수가 삼성에 있어서 얼마나 큰 다행인가...   김한수 선수의 프로 생활이 이제 끝나가고 있다는 아쉬움이 들지만 라이온스에 공헌했던 그리고 아직도 공헌하고 있는 김한수 선수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  훗날 명예의 전당이 생긴다면 김한수 선수는 당연히 그 멤버가 될 것이고 볼티모어 팬들이 브룩스 로빈슨을 영원히 기억하듯이 라이온스의 팬들도 김한수 선수를 그런 대선수로 기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생각해봐라 새로 지어진 대구의 야구장에 토론토의 스카이돔이나 애틀랜타의 터너필드의 팬스처럼 대구구장 팬스에 그러브를 끼고 다이빙 캐치하는 김한수 선수의 모습이 새겨지는 날을.. 피어슨과의 재계약이 불발된 이유 역시 수비, 특히 3루 수비 능력에 대한 의심 때문이었으며 퀸란의 영입으로 마침내 주인을 되찾은 듯 하였으나 그마저도 여러 요인으로 다시 무주공산이 되고 말았다.

믿었던 대형 신인 김민우의 스위치타자 전향 실패와 그로 인한 부진 때문에 7년 동안이나 이런 현상이 지속되었다.

그리고 2003년 마침내 유니콘스의 핫코너를 책임질 선수가 등장하니 바로 박재홍과 트레이드되어 이적해 온 정성훈 그 주인공이다.

   (정성훈의 3루 수비 실력은 그의 똘끼와 더불어 인정받고 있다.

 2003년 올스타전에서 친정팀 KIA의 헬멧을 쓰고 등장한 정성훈)   1999년 1억 5천만원이라는 거액의 계약금을 받으며 입단한 정성훈은 사실 초기에는 유격수 포지션을 소화하면서 이종범의 뒤를 이을 선수로 타이거즈 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체력부담이 심한 유격수는 그로 하여 공격력을 맘껏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족쇄와 같았고 결국 홍세완이 다시 주전 유격수를 꿰차면서 정성훈은 3루수로 보직을 옮겼다.

첫해 0.292의 타율로 신인으로는 준수한 성적을 올린 그는 이듬해 2년차 징크스를 겪었지만 2002년에는 생애 첫 3할 타율을 기록하는 등 타이거즈를 이끌 재목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야구인생 정점, 혹은 그 정점의 시작에서 타의로 둥지를 옮기게 되는 선수들이 상당히 많다.

정성훈 역시 그런 경우였다.

2003년 끊임없이 3루수 보강을 노리던 유니콘스는 박재홍을 고향인 광주로 보내는 대신 정성훈과 현금을 받아왔다.

당시 정성훈은 이현곤과의 주전경쟁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였고 포스트시즌에서의 부진, 거포를 갈구하던 KIA의 입장이 맞물린 결과였다.

이로써 유니콘스는 구단 트레이드 역사에 또 하나의 성공사례를 남기게 된다.

이 트레이드의 결과로 KIA는 유망한 3루수를 잃었고 원하던 거포도 갖지 못하게 된다.

 * 3루가 핫코너로 불리는 이유 : 3루의 경우 우타자가 몸쪽 공을 잡아당겨 친 빠른 타구 및 번트 상황에서의 예측 불가능한 타구로 인하여 안정적인 포구 능력과 민첩성, 1루까지의 정확하고 빠른 송구가 요구되기 때문에 핫코너로 불리며 키스톤 뿐만 아니라 3루 수비가 강해야 상대의 안타 및 진루를 막아낼 수 있다.

   (2005년 올스타전에서 스피드킹에 등극한 정성훈)   하지만 이적은 그가 겪을 파란만장한 야구 인생의 서막일 뿐이었다.

2003년 현대의 주전 3루수로 출전하게 되지만 손목 부상으로 91경기에 출장하는데 그쳤다.

그해 그의 타율이 0.343에 이르렀던걸 생각하면 매우 아쉬운 결과다.

그 부상의 여파로 이듬해 타율은 급격히 떨어졌지만 정작 더 큰 문제는 외적인 곳에서 터졌다.

2004년 9월을 휩쓴 대규모 병역비리 파동으로 상당수의 선수들이 구속되기에 이르렀고 정성훈도 이에 연루되어 잔여경기 출장 금지 결정을 받았다.

이로 인하여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현대의 라인업 중 3루수 자리에 브룸바가 이름을 올리게 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다행히 죽으란 법은 없어서 기소유예에 그친 정성훈은 2006년 WBC에 출전, 병역 면제 특혜를 받게 된다.

   (정성훈의 호수비, 출처-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dbdmsruf)   2005년부터는 거의 전경기에 출전하면서 확실한 3루수로 자리매김하였지만 이미 현대의 운명은 서산에 지는 해와 같아 과거의 영광은 그와는 관계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결국 2007년을 끝으로 유니콘스는 해체되고 우리 히어로즈가 그를 대신하여 8번째 구단으로 프로야구에 참가한다.

현대의 선수들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선수들 연봉이 깎였지만 FA를 눈앞에둔 정성훈은 오히려 연봉이 오르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독이 되었다.

연봉을 올려준만큼 프런트오 코칭스태프들은 그에게 큰 기대를 걸었으나 이내 그의 성적이 신통찮다고 느꼈는지 프런트와 선수 사이의 불화설이 오갔고 2군으로 강등되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태업성 플레이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결국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2008년 시즌이 끝나고 그는 LG로 FA이적을 하였다.

   (정성훈은 LG의 FA영입 성공사례로 꼽힌다.

)   LG는 그동안 여러 대형 FA영입 선수의 성적 하락으로 입쥐효과라는 오명을 뒤집어 써야했다.

이는 DTD와 더불러 LG를 조롱하는 단어가 되었으나 그 입쥐효과에서 벗어난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정성훈이다.

정성훈의 FA이적은 뜻하지 않은 연쇄효과를 가져왔다.

LG가 그를 영입한 것이 결과적으로 수년간 3루수 부재에 허덕이던 친정팀 KIA에 김상현이라는 거포 3루수를 안겨다 준 것이다.

LG의 3루수였던 김상현은 정성훈의 이적으로 입지가 좁아졌고 2009년 4월 KIA로 트레이드 되었는데 그해 최희섭과 함께 CK포를 합작하여 타이거즈의 10번째 우승이라는 숙원을 이루고야 만다.

    (정성훈 연관 검색어에 함께 자리한 똘끼)   똘끼, 정성병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성훈. 허나 확실한 것은 그가 인정받을 만한 야구 실력을 갖추고 있기에 그의 괴이한 행동들도 다 용인되고 오히려 즐거운 볼거리로 인식되는 것이 아닐까.  (정성훈의 통산 성적 ⓒ 아이스탯)  군대에 있는 동안은 받을 수 없는 거액의 연봉을 2년간 받을 수 있고, 거대 계약이 가능한 FA를 2년 앞당길 수도 있죠. 그리고 2년간 자리를 비우면서 새로운 선수에게 자리를 빼앗길 가능성도 줄어듭니다.

 아예 아시안게임을 꿈도 못 꿀 수준이라면 2년간 상무나 경찰청에서 야구에 더 집중하면서 성장을 도모할 수 있지만, 아시안게임 대표팀 후부로 거론될 정도의 선수라면 퓨처스 리그나 군대에서 야구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요소는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테크닉이 아닌 피지컬이나 멘탈이 문제인 선수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죠. 아시안게임 대표팀은 어떻게 구성해도 이런저런 말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정 구단 선수가 많이 포함되면 공정성과 형평성을 운운할 것이고, 구단마다 고른 분배를 하면 대표팀 수준이 문제로 떠오를 것입니다.

어떤 선수를 발탁하더라도 왜 다른 어떤 선수는 발탁하지 않았느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죠. 이 모든 것들을 불식시킬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은 '원칙'대로 대표팀을 구성해 '우승'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입니다.

우승하더라도 이름값을 빼고 실력으로만 대표팀을 구성한다는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비난은 덜하겠지만, 감독과 KBO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것입니다.

반면에, 원칙을 지키더라도 우승을 하지 못한다면 모든 과정이 불필요해지겠죠. 물론, 최악의 상황은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서 우승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원칙'이란 것이 모호한 구석이 있습니다.

야구가 기록의 많은 것을 말해주는 스포츠이기는 해도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니까요. 특히, 한국은 수비의 기록화 및 수치화가 미진해 타격 및 주루 기록이 경쟁자보다 다소 떨어지더라도 수비가 뛰어나다는 명목하에 발탁한다면 일반 팬은 물론이고 언론마저 의구심을 나타낼 것입니다.

[야구 핫코너] 란 무엇인가?



 그리고 원칙이 모호한 이유는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경쟁자가 많다는 것이죠. 사실, 저는 투수를 제외한 거의 모든 포지션에서 대표팀이 정해졌거나 정해지고 있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투수와 포수를 제외하면 12명 정도가 선택될 것인데, 사견으로는 7

8명의 선수는 이미 정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예상이 쉽지 않은 포지션이 있습니다.

3루수입니다.

 지금의 페이스라면 박석민의 발탁이 확실하죠. 최정이 부진하다면 대안이 박석민밖에 없는 이유도 있지만, 박석민이 현재 절정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는 이유가 더 큽니다.

게다가, 작년부터 타격만큼 뛰어난 최정의 수비에 불안감이 노출되면서 최정이 작년 정도의 모습이었다고 해도 박석민에게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고질적인 손가락 부상이 염려되는 부분과 박석민이 반드시 대체 불가능한 선수가 아닌 점이 변수입니다.

박석민의 소속팀 감독이기도 한 대표팀의 류중일 감독이 포스트시즌을 앞둔 시기에 고질적인 부상을 안고 있는 박석민을 무리하게 발탁할지는 미지수입니다.

게다가, 시즌 후반인 9월에 아시안게임이 개최되기에 박석민의 부상부위에 대한 염려는 더욱 클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복귀 후에 최정이 자기 페이스를 찾는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최정을 발탁하면 되겠죠. 최정은 국내 최고의 3루수임은 분명한 사실이고, 이제 역대 3루수들과 함께 이름이 거론될 정도이니까요. 하지만 작년까지의 최정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이라면 최정 역시 대체가 불가능한 선수가 아닙니다.

 두 선수가 모두 불참했을 경우에 3루수 후보로 이름이 거론될 수 있는 선수는 넥센의 김민성과 롯데의 황재균, 두산의 이원석 정도입니다.

세 선수는 유격수도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한 자원입니다.

짧은 기간 동안 백업 역할 정도의 유격수라면 세 선수 중 누가 유격수 수비가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는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 선수를 비교했을 때, 김민성의 2013년이 황재균의 2013년보다 뛰어났다는 점은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며 많은 경기를 소화한 건 아닌 이원석이지만, 이원석도 2013년에는 황재균보다 뛰어났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원석의 시작이 두 선수보다 늦기는 했지만, 올해는 세 선수 중 누가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하지 못할 정도로 박빙입니다.

이 이야기는 고만고만하든 뜻도 되겠죠.  하지만 저는 황재균을 선택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첫 번째 이유는, 황재균이 두 선수보다 다리가 빠르다는 점입니다.

황재균은 김민성과 이원석과 비슷한 수준의 파워를 가졌지만, 스피드는 두 선수보다 확실히 뛰어나죠. 세 선수의 능력 중 유일하게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바로 황재균의 스피드입니다.

나머지는 누가 더 낫다고 평가하더라도 확연한 차이는 아닙니다.

 두 번째 이유는, 황재균이 두 선수보다 훨씬 더 꾸준했다는 점입니다.

황재균은 기대 이상으로 성장하지 못했고, 두 선수보다 부진했던 시즌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두 선수보다 뛰어나다고 평가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황재균은 2008년부터 지금까지 거의 매시즌 풀타임 주전 3루수를 소화하고 있습니다.

김민성은 주전으로는 이제 겨우 두 번째 풀시즌이며 이원석도 황재균처럼 꾸준히 풀타임 주전을 소화하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선수의 경력은 외부적 요인과 내부적 요인이 결합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황재균이 그토록 오랜 기간 풀타임 주전이었던 것은, 마땅한 대체자원이나 경쟁자가 없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겠지만, 그럼에도 황재균 본인에게 특별한 하자와 결격사유가 없었기 때문이겠죠. 만약 황재균이 부족한 선수였다면 아직 젊고 가능성 있는 다른 선수와 경쟁구도 정도는 만들어졌을 겁니다.

하지만 황재균은 단 한 번도 그런 경험이 없습니다.

 그리고 세 선수 중 가능성이 가장 떨어지는 선수는 이원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원석이 평균 이상의 수준을 갖춘 3루수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이원석이 과연 팀 내에서 확실하게 주전 자리를 차지했냐, 그것도 아닙니다.

확실한 주전이라면 단기적인 폼 하락으로 다른 선수와 출장기회를 나눠 가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두산은 이원석 대신 허경민을 기용하는 경우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원석이 대표팀 후보군에 이름이라도 거론되기 위해서는 팀의 핫코너를 확실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먼저입니다.

  종합하자면, 대표팀 3루수 주인공이 선택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1. 최정의 페이스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박석민을 선택할 것이다.

 2. 박석민의 부상 등이 염려된다면 최정의 페이스가 절정이 아니어도 최정이 선택될 수 있다.

 3. 만약 최정과 박석민 모두 발탁이 불가능한 상태라면 황재균과 김민성, 이원석의 경쟁이 될 것이다.

 4. 세 선수 중 가능성이 가장 떨어지는 선수는 이원석이다.

 5. 반면에 대표팀에 가장 필요한 유형은 황재균이다.

 6. 하지만 황재균이 확실한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니기에 지금부터 대표팀 확정 전까지 활약도에 의해 황재균과 김민성 중 선택할 것이다.

 7. 즉, 이원석은 네 선수 모두 불가능했을 때, 최후의 보루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선택지가 다양하므로 위의 다섯 선수 외 다른 선수가 선택될 가능성이 극히 낮습니다.

아니, 다섯 선수를 제외하면 선택지가 없다고 보는 것이 맞겠네요. 모창민과 이범호 등을 포함해도 말입니다.

 부디 최정이 페이스를 회복하고 박석민이 페이스를 유지하며 황재균과 김민성, 이원석 모두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서 류중일 감독과 김인식 위원장이 3루수를 뽑을 때 행복한 고민을 했으면 합니다.

한 포지션에 수준급 선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프로야구가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이니까요.. 내 머리속에서 좋은 선수들이란 저 지표에 충족하는 선수들이었다.

.. 그러다 야구를 조금 알게 되자 타자들에게는 출루율이란 개념이 투수들에게는 삼진이란 요소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 그런데 모굴이란 게임이 있다.

.. 여기에서 투수력이 강한 팀을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히 좋은 투수만으로는 불가능 하단걸 깨닫게 되었다.

.. 참 야구란 알면 알수록 묘한 종목이구나 싶으면서도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 요소 이외에도 그 이면의 수많은 중요 요소들이 있다는걸 깨닫게 하는데 , 말이 샜지만 투수력이 좋은팀 즉 팀 방어율을 향상 시키기 위해서 중요한건 바로.... 두말 할것 없이 수비수들의 능력이다.

..  야구는 공격과 수비로 나누어 진다.

.. 투수들이 제 아무리 다들 선동렬이어도 모든 타자를 삼진으로 처리 할 수는 없다.

.. 필드로 향하는 타구를 처리하는 수비수들의 능력이 그팀의 실점정도와 연관 되는건 너무나도 당연하다.

. 이 당연한 걸 깨닫는데 자그마치 15년이 걸렸다 ㅎㅎ   이번 월드 시리즈를 보면서 느낀건 수비의 중요성이었다.

. 5경기동안 8개의 실책을 범한 디트로이트는 자멸하고 말았다.

. 비단 월드 시리즈 뿐만 아니라 리그 순위 상위권에 있는 팀들의 실책수는 최소 순위 상위권에 위치 해 있다는걸 쉽게 파악 할 수 있다.

.. 홈런왕 타율왕 다승왕이 없어도 우승을 할 순 있지만 실책이 많아서는 절대 우승 할 수 없다.

..  외야의 수비란 비교적 에러가 적을 수 밖에 없는 포지션이지만 내야 수비는 실책의 가능성이 항시 존재하는 공간이다.

. 그중에서도 핫 코너라 불리는 3루의 수비는 그 빈도수가 가장많다.

.. 일단 1루에서 멀기때문에 송구 에러가 빈번하고, 우타자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야구판에서 가장 총알 같은 당겨치는 타구들이 집중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 잘 던지던 투수들도 에러 하나가 시발점이 되어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한 야구경기에서 튼튼한 3루 수비는 그팀의 전체 경쟁률을 좌우 하는 요소라고 해도 절대 무리가 아니다.

. 그 3루에 삼성은 10년이 넘게 프로야구판 전체의 주인으로 군림하던 김한수 선수가 있었다.

..  *김한수 선수를 알게되다*   1994년 삼성은 전년도 준우승팀으로서 시즌을 맞이하나 결과는 실망 그 자체였다.

.. 위안을 삼을 수 있는것은 전년도 혜성처럼 나타난 신인투수 박충식이 2년 연속 14승을 올렸다는 것인데..(그때의 위안은 영원한 아쉬움이 된다.

.. 박충식이 망가진건 한국시리즈 3차전 15이닝 181구의 투구 문제가 아니라 94년도 200이닝 이상 투구가 문제였다.

. 여튼 94년의 14승은 질적으로 93년의 14승을 압도하는 것이었다.

.) 그때 박충식 선수의 선발 경기를 보고 있는데 상대 이종범 선수의 수비를 칭찬하는 해설자의 이야기가 나오다가 경기전 박충식 선수와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 해주었는데, '종범이도 수비를 잘하지만 우리팀의 한수의 수비가 정말 최고입니다, 김한수 선수가 3루에 있어서 투구할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릅니다' 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 물론 해설자는 그 해 기록적인 타격페이스를 보이던 이종범 선수와 삼성의 에이스 오브 에이스 박충식 선수에 대해서 이야기 하다가 잠깐 언급했던 부분이지만 나에게는 김한수라는 선수의 존재감에 대해서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

...   앞에도 비교적 자세히(;;;) 수비의 중요성을 설명했지만 투수는 몸쪽 승부공을 던질때 언제나 조심스럽게 된다.

. 잘못 걸리면 제대로 당겨쳐 홈런이 될 수도 있지만, 그보다도 3루 쪽으로 당겨치는 강습 타구들이 많이 생길 수 있는데 이게 2루타나 실책 혹은 내야 안타로 연결될 가능 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우투수 우타자의 경우다.

. 박충식선수의 경우는 잠수함 투수로 좌타자의 경우 쉽게 구질 파악과 또 쉽사리 밀어칠 수 있다는 단점도 있었다.

...) 하지만 박충식 선수의 경우 승부처다 싶을때 언제난 김한수 선수를 믿고 몸쪽 승부공을 던질 수 있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   *뉴 제너레이션 *   지금의 상섬은 타팀의 FA들을 대거 영입하여 돈성이라는 별로 내키지 않는 별명을 얻게 되었지만, 삼성만큼 지역야구와 밀접하게 연계하여 팜시스템을 운영했던 구단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 기아 난 서울팀들은 지역 야구에 관심을 쏟지 않아도 유수의 명문고에서 슈퍼 루키들이 끈이없이 공급되지만, 삼성은 다르다.

. 비록 한화나 에스케이 현대에 비해서는 사정이 좋다고 하나 경북지역 사실상 대구에 편중된 아마야구 자원으로 팜을 운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 하지만 삼성은 97년 지속적인 팜시스템 투자에 대한 결실을 맺은 해이다.

..   내 멋대로 뉴 제너레이션이라고 평했지만 사실상 삼성 타선의 대 변혁기가 97년이었다고 생각한다.

.. 기존의 슈퍼스타들 이만수 류중일 강기웅 김성래 등의 자리를 삼성의 팜에서 자라난 선수들이 대신 차지했던 해이기 때문이다.

..   1루수 이승엽 2루수 정경배 유격수 김태균 3루수 김한수 외야수 강동우 신동주 최익성 지명타자 양준혁 (포수가 여전히 취약 했는데 이는 나중에 진갑용 선수가 들어오면서 해결됨) 의 다이너마이트 타선이 완성되었던 것이다.

.. 특히나 이들을 두고 팜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지역출신 이승엽 선수를 내놓더라도 최익성 신동주 같은 선수들은 연습생 출신으로 지금은 중단되고 없는 프로그램이지만 지역야구와 연계된 삼성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키워진 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   여튼 이야기가 또 새버린거 같은데 ;;;; 김한수 선수는 비록 서울 출신이지만 여튼 97년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일원으로서 3년만에 삼성의 포스트 시즌에 공헌하게 된다.

. 그리고 이해 첫 3할타를 치기도 한다.

.. 주전자리를 꿰찼음은 당연한 결과....   *3루 천하 평정*   98년을 끝으로 삼성의 뉴 제너레이션은 해체된다.

.. 최익성 선수와 노장진 선수의 트레이드, 그리고 양신과 임창용의 트레이드로 .... 하지만 삼성의 타선이 약화된건 아니었다.

.. 99년 이승엽 선수의 대폭발과 용병타자 스미스의 활약 그리고 바로 김한수 크레이지모드 발동때문이었다.

.. 이해 초반 4할타율 가능성으로 인해 시즌 초반 김한수 선수에 대한 기사가 스포츠 신문을 자주 장식하게 된다.

... 이병규 선수와의 최다안타 경쟁등으로 초반을 뜨겁게 달구 었지만 최종성적은 3할 4푼(4위) 169안타로 마감한다.

.. 하지만 3루수의 3할은 타 포지션의 3할과는 질적으로 다른 성적이다.

. 수비의 부담이 가장 큰 3루수로서 수비에서의 집중력을 타석에까지 이어간다는 여간 힘든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포수도 마찬가지)  그런데 더욱 놀라운것은 김한수 선수가 앞으로도 나올수 있을런지 모를, 3루수비로서는 전후 후무한 무실책 시즌을 보냈다는 것이다.

..  그가 3루에 있다는 것이 마운드 위의 투수들에게 얼마나 큰 안정감을 줬을런지는 설명이 필요 없는 부분이고, 또 타팀의 타자들에게는 얼마나 큰 압박이 되었겠는가.. 여튼 김한수 선수는 99년 시즌을 끝으로 2년 연속 골든 그러브의 주인이 되었고, 명실 상부한 3루의 주인 핫코너의 지존이 되었다.

...   *팀과 함께 전성기를*   2000년 김한수 선수는 타격에서 2할 6푼 3리를 기록 2년연속으로 이어오던 3할타자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

. 타격은 부진했지만 여전히 수비만큼만 정상급이었다.

.. 하지만 이해 골든 글러브는 31개의 홈런을 것두 잠실에서 때린 김동주에 밀려 놓치게 된다.

..   그로 인해 프로데뷔후 첫 연봉 삭감이라는 수모를 당하기도 하지만 이 수모는 오래 가지 않는다.

.. 전년보다 1천만원 삭감된 1억원의 연봉을 받은 김한수 선수는 2001 시즌 3할 1푼 1리 의 타격으로 부활 하고 출루율도 커리어 하이인 99년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3할 6푼 6리를 마크(이후에도 이보다 좋은 출루율을 2번 기록하네요 ^^;)  삼성이 88년이후 13시즌만에 정규리그 1위를 결정짓는데 큰 역활을 하게된다.

..   이후의 김한수 선수의 성적은 삼성의 전성기와함께 성공가도를 달리게 되는데..  2할 9푼 이상의 타격과3할 5푼 이상의 출루율을 기록해주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발군의 수비능력을 가진 선수라는 꾸준함의 대명사로 불리게 된다.

...   이 기간동안 김한수 선수는 2000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멤버 2002아시안게임 금메달 멤버로서 국가에도 공헌을 하고 삼성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 두번의 준우승으로 팀에도 공헌, 그리고 01

04시즌 4년 연속 골든글러브 수상으로 개인적으로 최고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

..   *FA 그리고 1루수로의 전환*   2004시즌후 김재걸 선수는 FA자격을 얻게 된다.

.. 그러나 협상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는데 팀과의 우선협상 마지막날 극적으로 옵션포함 최대총액 28억원의 대박을 터트리면서 그간 팀에 기여한 공훈을 보상받게 된다.

..   그런데 삼성에 박진만 선수가 FA로 영입되면서 김한수 선수에게 삼성은 또다른 부탁을 하게 되니 1루수로서의 전환 요구였다.

.. 당시 삼성의 1루수비는 양준혁 선수가 맡고 있었는데 내야 수비수로서의 양준혁 선수는 많이 불안한 편이었다.

. 그리고 2번째로 박진만 선수의 영입으로 조동찬 선수의 자리가 붕떠버렸는데, 조동찬 선수의 재능을 살릴수 있는 방안도 필요했다.

. 김한수 선수도 만성간염으로 인한 피로로 인해(ㅜㅜ 저도 비형간염이라 그 피로 이해해요 ;ㅅ;) 3루 보다는 체력 소모가 덜한 포지션 이동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게 되고 35살의 나이로 1루수로 변신하게 된다.

....   적지 않은 나이에 포지션 이동이 부담스러웠을텐데도 100% 만족 스러운 활약으로 2005년 삼성에 3번째 우승이자 2번째 한국시리즈를 이끌고 올시즌 다소 부진하지만 삼성의 4번째 우승이자 3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어 낸다.

....   *화려하진 않지만 ...*   김한수 선수를 떠올릴때 절대 화려함이란 단어를 생각하진 않는다.

.. 하지만 단체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건 팀의 단합된 힘과 구성원의 유기적인 조직력이라 생각했을때, 김한수 선수의 꾸준함은 이승엽 선수나 양준혁 선수의 화려한 만큼이나 중요하고 또 빛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   김한수 선수가 또 빛나는 이유중 하나는 강인한 승부욕과 투혼이라고 할수 있는데, 김한수 선수는 역대 사(死)구 2위를 기록중인 선수이다.

. 공이 자기 몸쪽으로 날라오면 절대 피하지 않는다.

. 맞더라도 1루에 나가겠다는 강인한 의지인것이다.

. 야구 만화나 감동적 스포츠 스토리에 익숙한 분들은 그게 당연한 것처럼 느껴질테지만 한번이라도 경식 야구공에 맞아본 사람은 안다 그게 용기만으로 되는것이 아님을 ;;  "박종호에 이어 역대 死구가 가장 많은 선수인 김한수선수는 지난 롯데전에 머리에 공을 맞고 실려가도 팀을 위해 뛰겠다고 툴툴 털고 야구장에 나왔으며, 지난 현대전에서 발에 공을 맞고도 언제 그랬냐 식으로 2타석이나 더 나온 삼성의 완전소중 김한수선수. 7월 7일에는 턱에 타구를 맞아 15바늘이나 꿰메고도 다음날 출전을 자처했다니…" -<출처 소리없는 강자 김한수-Hcr333님 작성글> 그리고 몇바늘 꿰메본적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아픈지 그 고통을 안다.

...   강인한 승부욕과 남다른 투혼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을 김한수 선수는 해내고 있는 것이다.

...   *한국의 브룩스 로빈슨 김한수*   <*브룩스 로빈슨-로빈슨은 1955년에 데뷔, 23년간 볼티모어에서만 뛴 올스타 3루수.1960년부터 1975년까지 16년 연속 골드글러브를 차지, 투수 짐 캇과 함께 이 부문 기록을 갖고 있고,로빈슨은 통산 2848안타 1357타점에 타율 .267 마크했을 정도로 방망이도 뛰어났지만,역시 그의 최대무기는 전설의 골키퍼 야신을 연상케 하는 명수비였습니다.

>-김형준 님의 블로그에서

  1994년부터 2006년까지 13시즌 1396게임 4953타수 1446안타 146홈런 756타점 141사(死)구  2할 9푼 2리의 통산타율의 김한수 선수를 보면서 부룩스 로빈슨을 생각했다.

.. 뛰어난 방망이와 수비실력의 김한수 선수 무엇보다도 꾸준했던 그의 선수 생활이 너무나도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다.

.. 그리고 이중 무엇보다도 진공청소기로 불렸던 무결점의 수비능력이..... 1984년 디트로이트 우승감독이자 양대리그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최초의 감독이었던 스파키 앤더슨은 1970년 신신내티의 감독으로서 볼티모어와 맞붙은 월드시리즈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이젠 그 녀석이 꿈속에서도 보이기 시작했어. 내가 종이 한 장을 떨어뜨리니까, 잽싸게 낚아채더니, 1루로 던져 아웃을 시키더라구"  삼성을 상대해야 했던 많은 감독들은 항상 김한수선수가 지키던 3루를 향해 한숨을 지었을 것이고 행여나 3루쪽으로 향하는 공을 보면서 품었던 일말의 기대는 역시나 하면서 언제나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 반대로 나를 포함한 삼성의 팬들은 이 뛰어난 3루수로 인해서 언제나 편안한 야구를 볼수가 있었다.

..(내야 수비가 안정된 야구를 보는건 참으로 편한한데 나만 그런건 아니겠죠 ;;;;;)   수비란건 파인플레이가 터져야만 이목이 집중되고 박수가 터져나오는 야구란 게임에 있어서 음지의 영역이다.

. 하지만 수비는 엄연한 야구의 절반이고, 또한 멘탈스포츠로 불리는 야구에서 가장 크게 심리적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요소이다.

.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렵다는 3루 수비에, 그 분야 최고의 선수인 김한수 선수가 삼성에 있어서 얼마나 큰 다행인가...   김한수 선수의 프로 생활이 이제 끝나가고 있다는 아쉬움이 들지만 라이온스에 공헌했던 그리고 아직도 공헌하고 있는 김한수 선수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  훗날 명예의 전당이 생긴다면 김한수 선수는 당연히 그 멤버가 될 것이고 볼티모어 팬들이 브룩스 로빈슨을 영원히 기억하듯이 라이온스의 팬들도 김한수 선수를 그런 대선수로 기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생각해봐라 새로 지어진 대구의 야구장에 토론토의 스카이돔이나 애틀랜타의 터너필드의 팬스처럼 대구구장 팬스에 그러브를 끼고 다이빙 캐치하는 김한수 선수의 모습이 새겨지는 날을..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47&aid=0002116591&redirect=true??? ???, ??? ??? ??? ??, ??? ???[???????? ??] ? ???? ??? ? ??? ???? ?? ???. ? ????? ???? ???? ???? ??? ??? ???...sports.news.naver.com[사진=한화 이글스]   송광민이 화려하게 복귀하며 한화의 핫코너 주인은 다시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지난해 팔꿈치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빠졌던 송광민이 1년여 만인 지난달 23일 두산 전에 출전하며 복귀를 알렸다.

복귀 후 송광민은 맹타를 휘두르며 잠잠했던 3루 경쟁에 다시 불을 지폈다.

  한화는 2010년 이범호가 팀을 떠난 후 확실한 3루수를 찾지 못했다.

오선진, 이여상, 김회성등 여러 선수가 한화의 핫코너에 도전했지만 부진과 부상 그리고 군복무 등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하지 못했다.

2014 시즌 송광민이 103경기에 출전해 0.316의 타율을 기록하며 주전 3루수를 굳히는 듯 했으나 부상으로 오랜 시간 자리를 이탈했다.

지난해 송광민의 빈자리는 김회성과 신성현 그리고 주현상이 대신했다.

 하지만 세 선수 공수에서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때문에 올 시즌 한화는 3루를 볼 수 있는 외국인 선수영입을 유력하게 검토했었다.

결국 한화는 3루도 겸업 할 수 있는 로사리오를 영입했지만 시범경기에서 아쉬운 수비능력을 보이면서 일찌감치 3루 후보에서 제외됐었다.

  <2010년

15년까지 한화 3루수 통산 WAR>송광민 WAR 4.2오선진 WAR 0.87김회성 WAR 0.83이여상 WAR 0.11신성현 WAR-0.07주현상 WAR ?0.75  (이범호 이후 한화의 3루수들이 6년 동안 올린 승수는 5.19승에 불과했다.

)[사진=한화 이글스] 송광민이 복귀하기 전까지 올 시즌 한화의 3루는 신성현의 몫이었다.

신성현은 지난해보다 성장한 모습을 보이며 초반 활약을 이어나갔다.

시즌이 시작된 후 16경기 동안 0.347의 타율을 기록하며 지난해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송광민이 복귀하면서부터 상황은 변하기 시작했다.

신성현은 송광민이 복귀한 후 14경기에서 2안타에 그쳤다.

3할 중반까지 올랐던 타율은 5월 중순인 현재 2할 중반까지 떨어졌다.

 반면 부상에서 돌아온 송광민은 8번의 멀티히트와 3번의 3안타이상 경기를 기록 하며 팀 내 공격부문 상위권에 위치하고 있다.

부상으로 시즌이 늦게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활약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한화는 아직 웃을 수 없다.

송광민이 타격에서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수비력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송광민 뿐만 아니다.

3루수로 출전하고 있는 신성현과 송광민은 올 시즌 각각 5개와 3개의 실책을 기록했다.

특히 신성현은 30경기 이상 출전한 10개 팀 3루수 중 가장 낮은 수비율을 기록하고 있다.

리그 평균에도 못 미치는 수비력은 믿음직한 3루수를 찾았다고 하기엔 다소 부족한 면이 있다.

만약 수비력이 좋은 오선진과 주현상 그리고 부상에서 회복중인 김회성이 가세한다면 언제든지 3루 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

  이범호 이후 뚜렷한 3루수를 찾지 못했던 한화, 6년 동안 숱한 선수들이 3루를 거쳐 갔지만 확실한 3루 자원은 없었다.

어쩌면 올 시즌 무주공산이었던 한화 3루의 주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올 시즌 무주공산인 한화의 핫코너는 누가 차지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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