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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유 위건


그는 오른쪽 공격수로 뛰었는데, 스코필드를 본 사람들은 이렇게 회상하곤 했다.

"그는 왼쪽 수비수를 매우 비참하게 만들었다"비록 우승 트로피는 없었어도 당대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가 바로 알프 스코필드였다.

빌리 메레디스기간 : 1906-1921기록 : 335경기 36골수상 : ?우승 : 1부리그 2회, FA컵 1회, 채리티 쉴드 2회라이언 긱스와 더불어 웨일즈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1명이다.

1874년에 출생하여 16살이 되던 해인 1890년 처크 시티에서 데뷔전을 치룬다.

그 이후 노르위치를 거쳐 1894년도에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한 그는 최초의 슈퍼스타라는 별명 답게 맹활약을 펼쳤고, 1906년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다.

그 후 메레디스는 2번의 잉글랜드 리그 우승과 더불어 1번의 FA컵, 2번의 커뮤니티 쉴드우승을 가져갔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사상 최초의 전성기를 이끈다.

사실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첫번째 레전드이자 첫번째 슈퍼스타격인 선수가 빌리 메레디스였다.

조 스펜스기간 : 1919

1933기록 : 481경기 158골수상 : ?우승 : 없음191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스펜스는 당시 나이 21세였다.

21세의 스펜스는 1919년 8월 30일 열린 잉글랜드 1부리그에서 데뷔전을 치루었다.

그 후 스펜스는 첫 시즌에만 무려 32경기에 출장해 14골을 넣었고, 자신의 축구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보낸다.

그는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에게 Mr. Soccer로 불렸다.

그 이후 33년도에 맨유를 떠나 브래드 포드 시티를 거쳐 체스터 필드에서 은퇴한 그는 후에 맷 버스비 감독의 러브콜을 받고, 스카우트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복귀한다.

일각에서는 조 스펜서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7번에 상징성을 불어 넣은 첫번째 선수로 보고 있다.

지미 델라니기간 : 1946-1950기록 : 164경기 25골수상 : 없음우승 : 없음일각에서는 스펜서를 7번의 시작점으로 보고 있는 반면, 일부에서는 이 지미 델라니를 7번에 상징성을 불어 넣은 선수로 보고 있다.

1933년 셀틱에서 데뷔한 멜라니는 46년까지 뛰면서 143경기에 출장해 68골을 넣었다.

그 이후 46년 4.000 파운드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고, 그는 1948년 FA컵 결승전에 출장해 맹활약하며 2번째 FA컵 우승트로피를 팬들에게 안겨주었다.

조니 베리기간 : 1951-1958기록 : 247경기 37골수상 : ?우승 : 1부리그 3회, 채리티 쉴드 3회1946년 버밍엄 시티에서 데뷔했고, 이후 5년 뒤인 1951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다.

맷 버스비 감독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중요한 선수 중 1명이였던 베리는 맨유에서 3번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1958년 뮌헨 비행기 참사가 일어났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으나, 두개골 골절, 턱 골절, 팔꿈치 골절, 골반 빛 다리 골절 등 너무 큰 부상을 당했고, 그 사고 이후 후유증으로 58년도에 은퇴를 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사상 가장 아쉬운 선수 중 하나가 바로 조니 베리였다.

바비 찰튼기간 : 1956-1973기록 : 758경기 249골수상 : FWA 올해의 선수 1회, 발롱도르 1회, FWA 공로상, PFA 공로상, 풋볼 레전드 100인, 잉글랜드 명예의 전당우승 : 1부리그 3회, FA컵 1회, 채리티 쉴드 4회, 유로피언컵 1회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대 최고의 선수맷 버스비의 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선수이다.

뮌헨 참사 시절 살아남아 빌 폴크스와 함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재건에 성공했고, 66년도엔 잉글랜드를 월드컵에서 우승시켰다.

그리고 그 공으로 66년 유럽 최우수 선수상인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조니 자일스기간 : 1957-1963기록 : 93경기 10골수상 : 없음우승 : FA컵 1회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자랑하는 유스 시스템의 대표적인 선수 중 1명인 그는 57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데뷔했고, 62-63 시즌 FA컵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다.

그리고 이후 조니 자일스는 리즈 유나이티드로 건너가 리즈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가 되었다.

조지 베스트기간 : 1963-1974기록 : 474경기 181골수상 : 발롱도르 1위 1회, 발롱도르 3위 1회, FWA 올해의 선수 1회, 1부리그 득점왕 1회, PFA 공로상, 골든 풋, FWA 공로상 外우승 : 1부리그 2회, 채리티 쉴드 2회, 유로피언컵 1회무너진 맨유를 빌 폴크스, 바비 찰튼 등과 함께 재건해냈고, 68년도엔 유로피언 컵에서 9경기에 출장해 3골을 넣었다.

또한 그 시즌에만 53경기에 출장해 32골을 넣은 베스트는 유럽 최우수 선수상인 발롱도르에 선정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7번 역사를 대표하는 5명의 선수 중 1명윌리 모건기간 : 1968-1975기록 : 236경기 25골수상 : 없음우승 : 2부리그 1회1968

1975 (236경기 25골)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암흑기 시절 맨유 팬들의 희망이였다.

1968년 번리에서 맨유로 이적한 모건은 74-75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2부리그에서 승격할 당시 맹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75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스티븐 코펠에 밀려 팀을 떠나게 되었다.

스티브 코펠기간 : 1975-1983기록 : 322경기 53골수상 : PFA 올해의 팀 2회우승 : FA컵 2회, 채리티 쉴드 2회75년 윌리 모건을 다른 팀으로 이적시키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등장한 코펠은 1983년 맨유를 떠날 때까지 2번의 FA컵 우승트로피를 가져간다.

특히나 1977년 FA컵 결승전은 코펠과 맨유에게 매우 의미있는 결승전이였다.

당시 리버풀은 잉글랜드 최초로 트레블을 노리고 있었고, FA컵 결승전에서 맨유를 상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리버풀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1-2로 패배했고, 결국 트레블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하지 못한다.

그리고 199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잉글랜드 최초의 트레블 타이틀을 획득한다.

브라이언 롭슨기간 : 1981-1994기록 : 461경기 99골수상 : PFA 올해의 팀 6회우승 : 1부리그 2회, FA컵 3회, 리그컵 1회, 채리티 쉴드 3회, UEFA컵 위너스컵 1회, UEFA 슈퍼컵 1회영국 축구 역사상 가장 완벽했던 미드필더라고 불린다.

매우 정확한 패스와 뛰어난 슈팅력과 좋은 활동량을 가졌었다.

브라이언 롭슨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대 최장기간 주장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많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은 맨유 역사상 최고의 주장으로 브라이언 롭슨을 꼽는다.

그리고 그 유명한 로이킨 마저도 이렇게 말하며 롭슨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냈다.

"내가 맨유에 입단했을 때 그는 이미 노장이였습니다.

그라운드 내에서 그와 같이 뛸 수 있어서 매우 영광이였습니다"맨체스터 유나이티드 7번의 역사를 대표하는 5명의 선수 중 1명이다에릭 칸토나기간 : 1992-1997기록 : 205경기 93골수상 : 발롱도르 3위 1회, PFA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 1회, PFA 올해의 팀 1회, 온즈도르 1회, FWA 올해의 선수 1회 外우승 : 프리미어 리그 4회, FA컵 2회, 채리티 쉴드 3회영국인이 사랑한 유일한 프랑스이라고 불리는 칸토나는 1992년 리즈를 떠나 맨유로 이적했다.

그리고 칸토나는 입단과 동시에 90년대 맨유를 상징하는 슈퍼스타가 되었다.

롭슨, 베스트와 마찬가지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대표하는 7번 5명 중 1명이다데이비드 베컴기간 : 1994-2003기록 : 394경기 85골수상 : FIFA 올해의 선수 2위 2회, 발롱도르 2위 1회, PFA 올해의 영플레이어, UEFA 클럽 올해의 선수, FWA 공로상 外우승 : 프리미어 리그 6회, FA컵 2회, 커뮤니티 쉴드 2회, UEFA 챔피언스리그 1회, 인터컨티넨탈컵 1회90년대와 00년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핵심이였고, 99년 트레블의 주역이였다.

94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데뷔한 베컴은 잘생긴 외모와 실력 덕분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맨유 위건] 하지만 현실은


라이언 긱스-로이 킨-폴 스콜스와 함께 당대 최강의 중원의 일원이였던 베컴은 매우 정확한 킥을 주 무기로 뛰어난 활동량과 좋은 수비력으로 맨유의 전성기를 열었다.

칸토나, 롭슨, 베스트와 함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7번의 상징이다크리스티아누 호날두기간 : 2003-2009기록 : 292경기 118골수상 : 발롱도르 1회, UEFA 올해의 팀 4회, 브라보 어워드 1회, FIFA 올해의 선수상 1회, UEFA 클럽 올해의 선수 1회 外우승 : 프리미어 리그 3회, FA컵 1회, 리그컵 2회, 커뮤니티 쉴드 1회, UEFA 챔피언스리그 1회, FIFA 클럽 월드컵 1회2002-2003년 스포르팅에서 데뷔한 호나우도는 03년 퍼거슨의 러브콜을 받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이적 첫 해부터 40경기에 출장한 호나우도는 이듬해엔 완벽한 주전 자리를 꿰찼고, 07-08년도엔 49경기에 출장해 42골을 넣었다.

그리고 그 해 세계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발롱도르를 수상한다.

칸토나, 롭슨, 베스트, 베컴과 함께 맨체스터 유나티이드 7번을 상징하는 5명 중 1명이다마이클 오웬기간 : 2009-2012기록 : 52경기 17골수상 : 없음우승 : 프리미어 리그 1회, 리그컵 1회, 커뮤니티 쉴드 1회2009년 리버풀 팬들은 오웬에게 엄청난 배신감을 느낀다.

리버풀 유스 출신이던 오웬은 96년 리버풀 1군에서 데뷔한다.

이후 2001년 리버풀이 FA컵, 리그컵, UEFA컵, UEFA 슈퍼컵, 커뮤니티 쉴드를 따내는데 매우 큰 공헌을 한다.

그 활약으로 2001년 발롱도르를 수상했는데, 몇년 뒤 또 다른 도전을 위해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다.

그러나 그 곳에서 적응하지 못한 오웬은 마드리드를 거쳐 뉴캐슬에 입단, 2009년 맨유로 이적한다.

이상한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상징성이 있던 맨유의 7번을 라이벌 리버풀의 레전드에게 주었고, 오웬은 7번 계보의 일부가 된다.

그러나 오웬은 과거 명성에 맞지 않은 활약만을 펼쳤고, 12년 스토크 시티로 이적한다.

안토니오 발렌시아기간 : 2009-현재기록 : 227경기 21골수상 : PFA 베스트11 1회우승 : 프리미어 리그 2회, 리그컵 1회, 커뮤니티 쉴드 2회2009년 위건을 떠나 맨유에 입성했다.

그 후 이적 첫 해에 리그에서 5골 9도움을 기록한 발렌시아는 차기 맨유를 이끌어갈 선수로 성장했다.

12-13 시즌 맨유의 상징인 7번을 부여받게 되었으나, 허리 통증을 비롯한 부상 때문에 경기력이 급격히 하락하게 된다.

이후 13-14 시즌 결국 등번호 7번이 적힌 유니폼을 벗게 된다.

그리고 14-15 시즌 루이스 반 할 감독이 발렌시아를 부활시켰고, 풀백, 윙어, 윙백을 오가며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앙헬 디 마리아기간 : 2014-2015기록 : 32경기 4골수상 : 없음우승 : 없음2014년 프리미어 리그 역대 최고 이적료를 갱신했고, 그 이적료는 5970만 파운드였다.

우리 돈으로 대략 1000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맨유에 입단했다.

맨유의 팬들은 왼쪽 윙, 미드필더에서 잘 뛰는 디마리아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디마리아는 최악의 활약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후 PSG와의 이적 루머가 돌기 시작한다.

PSG와 이적 협상이 시작되자 갑자기 연락도 없고 트레이닝에 참가하지도 않았다.

결국 앙헬 디 마리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사상 최고 이적료 7번임과 동시에 최악의 7번이 되었다.

멤피스 데파이기간 : 2015-현재기록 : 3경기 2골수상 : 없음우승 : 없음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7번맨유위건맨유위건맨유위건맨유위건맨유위건맨유위건맨유위건맨유위건맨유위건맨유위건맨유위건맨유위건맨유위건맨유위건맨유위건맨유위건맨유위건맨유위건맨       맨유위건맨유위건맨유위건맨유위건맨유위건맨유위건맨유위건맨유위건맨유위건맨유위건맨유위건맨유위건맨유위건맨유위건맨유위건맨유위건맨유위건맨유위건맨                                                               그는 오른쪽 공격수로 뛰었는데, 스코필드를 본 사람들은 이렇게 회상하곤 했다.

[맨유 위건] 할말이 없네요.

"그는 왼쪽 수비수를 매우 비참하게 만들었다"비록 우승 트로피는 없었어도 당대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가 바로 알프 스코필드였다.

빌리 메레디스기간 : 1906-1921기록 : 335경기 36골수상 : ?우승 : 1부리그 2회, FA컵 1회, 채리티 쉴드 2회라이언 긱스와 더불어 웨일즈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1명이다.

1874년에 출생하여 16살이 되던 해인 1890년 처크 시티에서 데뷔전을 치룬다.

그 이후 노르위치를 거쳐 1894년도에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한 그는 최초의 슈퍼스타라는 별명 답게 맹활약을 펼쳤고, 1906년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다.

그 후 메레디스는 2번의 잉글랜드 리그 우승과 더불어 1번의 FA컵, 2번의 커뮤니티 쉴드우승을 가져갔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사상 최초의 전성기를 이끈다.

사실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첫번째 레전드이자 첫번째 슈퍼스타격인 선수가 빌리 메레디스였다.

조 스펜스기간 : 1919

1933기록 : 481경기 158골수상 : ?우승 : 없음191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스펜스는 당시 나이 21세였다.

21세의 스펜스는 1919년 8월 30일 열린 잉글랜드 1부리그에서 데뷔전을 치루었다.

그 후 스펜스는 첫 시즌에만 무려 32경기에 출장해 14골을 넣었고, 자신의 축구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보낸다.

그는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에게 Mr. Soccer로 불렸다.

그 이후 33년도에 맨유를 떠나 브래드 포드 시티를 거쳐 체스터 필드에서 은퇴한 그는 후에 맷 버스비 감독의 러브콜을 받고, 스카우트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복귀한다.

일각에서는 조 스펜서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7번에 상징성을 불어 넣은 첫번째 선수로 보고 있다.

지미 델라니기간 : 1946-1950기록 : 164경기 25골수상 : 없음우승 : 없음일각에서는 스펜서를 7번의 시작점으로 보고 있는 반면, 일부에서는 이 지미 델라니를 7번에 상징성을 불어 넣은 선수로 보고 있다.

1933년 셀틱에서 데뷔한 멜라니는 46년까지 뛰면서 143경기에 출장해 68골을 넣었다.

그 이후 46년 4.000 파운드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고, 그는 1948년 FA컵 결승전에 출장해 맹활약하며 2번째 FA컵 우승트로피를 팬들에게 안겨주었다.

조니 베리기간 : 1951-1958기록 : 247경기 37골수상 : ?우승 : 1부리그 3회, 채리티 쉴드 3회1946년 버밍엄 시티에서 데뷔했고, 이후 5년 뒤인 1951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다.

맷 버스비 감독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중요한 선수 중 1명이였던 베리는 맨유에서 3번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1958년 뮌헨 비행기 참사가 일어났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으나, 두개골 골절, 턱 골절, 팔꿈치 골절, 골반 빛 다리 골절 등 너무 큰 부상을 당했고, 그 사고 이후 후유증으로 58년도에 은퇴를 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사상 가장 아쉬운 선수 중 하나가 바로 조니 베리였다.

바비 찰튼기간 : 1956-1973기록 : 758경기 249골수상 : FWA 올해의 선수 1회, 발롱도르 1회, FWA 공로상, PFA 공로상, 풋볼 레전드 100인, 잉글랜드 명예의 전당우승 : 1부리그 3회, FA컵 1회, 채리티 쉴드 4회, 유로피언컵 1회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대 최고의 선수맷 버스비의 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선수이다.

뮌헨 참사 시절 살아남아 빌 폴크스와 함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재건에 성공했고, 66년도엔 잉글랜드를 월드컵에서 우승시켰다.

그리고 그 공으로 66년 유럽 최우수 선수상인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조니 자일스기간 : 1957-1963기록 : 93경기 10골수상 : 없음우승 : FA컵 1회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자랑하는 유스 시스템의 대표적인 선수 중 1명인 그는 57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데뷔했고, 62-63 시즌 FA컵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다.

그리고 이후 조니 자일스는 리즈 유나이티드로 건너가 리즈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가 되었다.

조지 베스트기간 : 1963-1974기록 : 474경기 181골수상 : 발롱도르 1위 1회, 발롱도르 3위 1회, FWA 올해의 선수 1회, 1부리그 득점왕 1회, PFA 공로상, 골든 풋, FWA 공로상 外우승 : 1부리그 2회, 채리티 쉴드 2회, 유로피언컵 1회무너진 맨유를 빌 폴크스, 바비 찰튼 등과 함께 재건해냈고, 68년도엔 유로피언 컵에서 9경기에 출장해 3골을 넣었다.

또한 그 시즌에만 53경기에 출장해 32골을 넣은 베스트는 유럽 최우수 선수상인 발롱도르에 선정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7번 역사를 대표하는 5명의 선수 중 1명윌리 모건기간 : 1968-1975기록 : 236경기 25골수상 : 없음우승 : 2부리그 1회1968

1975 (236경기 25골)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암흑기 시절 맨유 팬들의 희망이였다.

1968년 번리에서 맨유로 이적한 모건은 74-75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2부리그에서 승격할 당시 맹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75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스티븐 코펠에 밀려 팀을 떠나게 되었다.

스티브 코펠기간 : 1975-1983기록 : 322경기 53골수상 : PFA 올해의 팀 2회우승 : FA컵 2회, 채리티 쉴드 2회75년 윌리 모건을 다른 팀으로 이적시키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등장한 코펠은 1983년 맨유를 떠날 때까지 2번의 FA컵 우승트로피를 가져간다.

특히나 1977년 FA컵 결승전은 코펠과 맨유에게 매우 의미있는 결승전이였다.

당시 리버풀은 잉글랜드 최초로 트레블을 노리고 있었고, FA컵 결승전에서 맨유를 상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리버풀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1-2로 패배했고, 결국 트레블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하지 못한다.

그리고 199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잉글랜드 최초의 트레블 타이틀을 획득한다.

브라이언 롭슨기간 : 1981-1994기록 : 461경기 99골수상 : PFA 올해의 팀 6회우승 : 1부리그 2회, FA컵 3회, 리그컵 1회, 채리티 쉴드 3회, UEFA컵 위너스컵 1회, UEFA 슈퍼컵 1회영국 축구 역사상 가장 완벽했던 미드필더라고 불린다.

매우 정확한 패스와 뛰어난 슈팅력과 좋은 활동량을 가졌었다.

브라이언 롭슨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대 최장기간 주장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많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은 맨유 역사상 최고의 주장으로 브라이언 롭슨을 꼽는다.

그리고 그 유명한 로이킨 마저도 이렇게 말하며 롭슨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냈다.

"내가 맨유에 입단했을 때 그는 이미 노장이였습니다.

그라운드 내에서 그와 같이 뛸 수 있어서 매우 영광이였습니다"맨체스터 유나이티드 7번의 역사를 대표하는 5명의 선수 중 1명이다에릭 칸토나기간 : 1992-1997기록 : 205경기 93골수상 : 발롱도르 3위 1회, PFA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 1회, PFA 올해의 팀 1회, 온즈도르 1회, FWA 올해의 선수 1회 外우승 : 프리미어 리그 4회, FA컵 2회, 채리티 쉴드 3회영국인이 사랑한 유일한 프랑스이라고 불리는 칸토나는 1992년 리즈를 떠나 맨유로 이적했다.

그리고 칸토나는 입단과 동시에 90년대 맨유를 상징하는 슈퍼스타가 되었다.

롭슨, 베스트와 마찬가지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대표하는 7번 5명 중 1명이다데이비드 베컴기간 : 1994-2003기록 : 394경기 85골수상 : FIFA 올해의 선수 2위 2회, 발롱도르 2위 1회, PFA 올해의 영플레이어, UEFA 클럽 올해의 선수, FWA 공로상 外우승 : 프리미어 리그 6회, FA컵 2회, 커뮤니티 쉴드 2회, UEFA 챔피언스리그 1회, 인터컨티넨탈컵 1회90년대와 00년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핵심이였고, 99년 트레블의 주역이였다.

94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데뷔한 베컴은 잘생긴 외모와 실력 덕분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라이언 긱스-로이 킨-폴 스콜스와 함께 당대 최강의 중원의 일원이였던 베컴은 매우 정확한 킥을 주 무기로 뛰어난 활동량과 좋은 수비력으로 맨유의 전성기를 열었다.

칸토나, 롭슨, 베스트와 함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7번의 상징이다크리스티아누 호날두기간 : 2003-2009기록 : 292경기 118골수상 : 발롱도르 1회, UEFA 올해의 팀 4회, 브라보 어워드 1회, FIFA 올해의 선수상 1회, UEFA 클럽 올해의 선수 1회 外우승 : 프리미어 리그 3회, FA컵 1회, 리그컵 2회, 커뮤니티 쉴드 1회, UEFA 챔피언스리그 1회, FIFA 클럽 월드컵 1회2002-2003년 스포르팅에서 데뷔한 호나우도는 03년 퍼거슨의 러브콜을 받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이적 첫 해부터 40경기에 출장한 호나우도는 이듬해엔 완벽한 주전 자리를 꿰찼고, 07-08년도엔 49경기에 출장해 42골을 넣었다.

그리고 그 해 세계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발롱도르를 수상한다.

칸토나, 롭슨, 베스트, 베컴과 함께 맨체스터 유나티이드 7번을 상징하는 5명 중 1명이다마이클 오웬기간 : 2009-2012기록 : 52경기 17골수상 : 없음우승 : 프리미어 리그 1회, 리그컵 1회, 커뮤니티 쉴드 1회2009년 리버풀 팬들은 오웬에게 엄청난 배신감을 느낀다.

리버풀 유스 출신이던 오웬은 96년 리버풀 1군에서 데뷔한다.

이후 2001년 리버풀이 FA컵, 리그컵, UEFA컵, UEFA 슈퍼컵, 커뮤니티 쉴드를 따내는데 매우 큰 공헌을 한다.

그 활약으로 2001년 발롱도르를 수상했는데, 몇년 뒤 또 다른 도전을 위해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다.

그러나 그 곳에서 적응하지 못한 오웬은 마드리드를 거쳐 뉴캐슬에 입단, 2009년 맨유로 이적한다.

이상한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상징성이 있던 맨유의 7번을 라이벌 리버풀의 레전드에게 주었고, 오웬은 7번 계보의 일부가 된다.

그러나 오웬은 과거 명성에 맞지 않은 활약만을 펼쳤고, 12년 스토크 시티로 이적한다.

안토니오 발렌시아기간 : 2009-현재기록 : 227경기 21골수상 : PFA 베스트11 1회우승 : 프리미어 리그 2회, 리그컵 1회, 커뮤니티 쉴드 2회2009년 위건을 떠나 맨유에 입성했다.

그 후 이적 첫 해에 리그에서 5골 9도움을 기록한 발렌시아는 차기 맨유를 이끌어갈 선수로 성장했다.

12-13 시즌 맨유의 상징인 7번을 부여받게 되었으나, 허리 통증을 비롯한 부상 때문에 경기력이 급격히 하락하게 된다.

이후 13-14 시즌 결국 등번호 7번이 적힌 유니폼을 벗게 된다.

그리고 14-15 시즌 루이스 반 할 감독이 발렌시아를 부활시켰고, 풀백, 윙어, 윙백을 오가며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앙헬 디 마리아기간 : 2014-2015기록 : 32경기 4골수상 : 없음우승 : 없음2014년 프리미어 리그 역대 최고 이적료를 갱신했고, 그 이적료는 5970만 파운드였다.

우리 돈으로 대략 1000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맨유에 입단했다.

맨유의 팬들은 왼쪽 윙, 미드필더에서 잘 뛰는 디마리아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디마리아는 최악의 활약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후 PSG와의 이적 루머가 돌기 시작한다.

PSG와 이적 협상이 시작되자 갑자기 연락도 없고 트레이닝에 참가하지도 않았다.

결국 앙헬 디 마리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사상 최고 이적료 7번임과 동시에 최악의 7번이 되었다.

멤피스 데파이기간 : 2015-현재기록 : 3경기 2골수상 : 없음우승 : 없음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7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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