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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현



고교시절인 1981년 1학년일때 이미 초고교급 선수로 이름을 알렸으며, 팀을 대통령기에서 우승시켰다.

1982년 북일고와 맡붙은 청룡기에서는 당시 또다른 초에이스급 선수였던 안성수와 결승전에서 1:1로 12회 완투+ 다음날 다시 연장전을 계속하는 강행군을 하는 무지막지한 혹사를 당하면서도 결국 팀을 우승시켰다.

   ?그러나 이런 무지막지한 혹사 때문에 안성수는 완전히 야구인생이 맛이 가서 평범한 선수로 전락했다가 소리없이 사라졌고, 조계현도 어깨가 맛이 가서 파이어볼러에서 평범한 구속의 투수로 전락했다.

혹사와 관련하여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당시 한일고교야구 정기교류전이 있었는데 3차전 내내 혼자 마운드를 책임지다 시피하여 2승 1패를 거뒀다.

당시 감독이었던 경북고 구수갑 감독이 라이벌팀 에이스를 일부러 굴렸다는 얘기가 있었을 정도. 혹사로 인해 연세대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타자로 전향도 고려했다고. 그러나 연세대학교 재학 후반부에 조계현은 팔색조 변화구라고 불리는 다양한 구질을 연마하여 변화구+컨트롤 위주의 기교파 투수가 되었고 이것 덕분에 그는 전성기 못지않은 투수 시절을 보내게 된다.

 조계현은 해태 타이거즈시절 선배 선동렬과 한 해 최다 완봉승 경쟁을 벌일 정도로 뛰어났습니다.

그리고 선동렬 외에는몇 안 되는 평균 자책점 1점대를 기록했던 투수이기도 했습니다 야구에서 만일이라는 말이 없지만 만약에 고교시절에 혹사를 당하지 않았다면은 아마 선동렬의 자리가 위태위태 했을것이다   현역시절실업야구 농협 야구단에 1년간 몸을 담고 나서, 이듬해인 1989년에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했다.

 1988 서울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실업 팀에 입단한 듯 하지만 정확히는 이때까지만해도 실업야구가 죽어가는 시기이니 어떻게보면은 프로의 전향은 당연한거 같습니다선동열, 이강철과 함께 해태 타이거즈 마운드의 3인방 중 한 축이었으며, 통산 320경기에 등판해, 126승 92패 17세이브에 평균자책점 3.17을 기록했다.

전성기에는 유난히 LG 트윈스에 강해서, 1993년

1995년에 LG를 상대로 12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특히 1993년 LG 김태원과의 맞대결은 1980년대 선동열 대 최동원 못지 않은 명승부였고, 엘지 해태의 3연전 모두 잠실야구장이 매진되기도 했다.

조계현의 LG전 연승은 1995년 이상훈과의 선발 맞대결에서 이상훈의 1-0 완봉승으로 간신히 마감됐다.

개인적인 추억을 상기해보면은 어렸을때 해태와의 경기를 할때 선발투수가 조계현이라면은 아버님은 티비를 보지 않으셨습니다 ㅋㅋ 어차피 봐야 지는 경기야 못이겨 못이겨 하시면서 다른 프로그램을 보거나 또는 밖에 나가셨던 기억이 납니다 ㅋㅋ 그만큼 조계현선수는 엘지트윈스의 가장 큰 미움의 주인공이기도 했습니다 ㅋㅋ선동열이 마무리로 전업한 이후, 1990년대 초반 해태 타이거즈의 제1선발은 조계현 몫이었다.

그리하여 1993년 17승, 1994년 18승(LG 이상훈과 공동 1위)을 거두며 2년 연속 다승 1위를 하였다.

고교시절이나 프로 입단 초기엔 투 스트라이크 이후 유인구를 던지지 않고 곧바로 타자와 정면 승부를 했을정도로 공격적인 스타일이었으며, 이전 타석에서 홈런을 맞은 구질을 같은 타자에게 결정구로 사용할 만큼 파이팅이 넘치는 투수였다.

싸움닭이라는 별명은 이런 에피소드로 얻은 것. 또다른 별명은 에이스격파 입니다 상대팀의 에이스를 상대로 간판깨기 처럼 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1996년의 활약을 마지막으로 이대진, 김상진 등 신예 에이스들이 나타나면서 그의 입지는 좁아지기 시작했고, 1997년 김응용 감독의 눈밖에 나서 시즌이 끝나고 이순철, 정회열과 함께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되었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1998 시즌과 1999 시즌을 보냈지만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 방출?怜� 김인식 감독의 부름을 받아 두산 베어스로 이적하였다.

두산 베어스에서는 예전만큼의 성적을 내지는 못했지만 팀의 정신적 지주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1년을 은퇴로 2002년부터 기아타이거즈에서 코치를 시작하면서 코치직을 지금도 하고 있다 통산기록  ( 실제로 열받으면 빈볼도 던 �...) 또한 조계현은 춤추는 싱커로 유명한데, 홈플레이트에서 파고드는 변화구의 무브먼트가  매우 심해서 팔색조 라는 별명도 얻었다.

전성기인 93년과 94년에는  각각 17승,18승으로 다승왕을 차지하기도 하였고, 95년에는 1.17의 방어율로 방어율 타이틀을 차지하였다.

해태의 5번의 우승멤버였고, 01년 두산의 수호신으로 역시 우승 멤버였다.

그런데 웃긴게, 선수 생활 을 해태-삼성-두산 으로 했는데, 코치생활 역시 기아-삼성-두산으로 하였다 ㅋ (며칠전 LG트윈스 수석코치가 되셧네요 ㅊㅋ 드립니다.

) 조계현은 세계 3대 마구중(너클볼, 자이로볼, 스크류볼) 2개의 마구를 던질 수 있었다.

(스크류볼과 너클볼) 또한 그의 주무기였던 싱커 역시 자이로성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거의 마구 마스터라고도 할 수 있다.

 잠시 그의 미친듯한 싱커를 보자. ↓        정말 ㅎㄷㄷ한 싱커 아닌가? ㅋ  위의 짤방 5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조계현의 싱커의 무브먼트는 장난이 아니다.

 MLB의 씽킹브라운이라고도 불리는 케빈 브라운의 싱커와도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오히려 싱커의 힘에서는 더 앞서는듯 하다.

 마구마구란 게임에서도 기본 싱커능력치가 94로 가장 높다 . (97년) 하지만 원래 군산상고에 있었을때는 최동원을 계승한 파이어볼러 였었 다고 한다.

그러나 고교 시절 무리하게 혹사를 당햇고, 그 후유증으로  변화구 위주인 팔색조가 되었다고 한다.

-----  동영상 하나 보시죠!(조계현 투구 동영상- (근데 두산시절이네요 ㅡㅡ)[출처; )  또한, 96년 선동열이 해태를 떠나갔을때도 이종범과 함께 해태를 지탱하였던 조계현은 정면승부를 즐겼다고 알려져 있다.

 2스트라이크 이후에는 많은 투수들이 변화구를 던지기 마련인데 오히려 조계현은 직구 한가운데 승부를 즐겼다고 한다.

 95년 프로야구 정규방어율 1위를 차지한적도 있다.

조계현의 전성기 시절 , 조계현을 상대하였던 여러타자들은 한결같이,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공이 엄청난 변화를 일으킨다.

마치 마구같다.

' 라는 말을 여러번 했다고 한다.

위 짤방들의  싱커말고도 직구,커터,싱커,스크류볼,너클볼,슈트,커브,슬라이더 등 여러가지 구질을 자유자재로 능숙하게 구사하였기 때문에 '팔색조'라는 별명이 붙었다.

 -- 불암콩콩 코믹스에서 닭으로 표현된 싸움닭 조계현 - (마구마구 불암콩콩 출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조계현의 인상이 참 인간적이다, 싶다.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내 마음속에 와닿는 몇 안되는 선수중 하나가 아닌가 하다.

아무튼 조계현은 최고의 투수반열에 올려놓아도 절대 뒤지지 않을 투수임에는 타 팀팬들도 인정하 시는 부분일것이다.

항상 묵묵히 제 할일을 다했던 조계현. 저는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조계현] 하지만 현실은


 당신은 영원한 한국의 LEGEND 입니다!  --이제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짤방하나 보고가시죠.  --96 한국시리즈 해태 vs 현대 추억의 한국시리즈 中 조계현. - 네오님 블로그 출처.  --- '빠른공 보다는 내 혼을 담아 나만의 공을 던진다.

느린 변화구에도 혼을 담으면 그것보다 훌륭한 마구는 없다.

'  -조계현 -- 사진 (1) 해태 시절 조계현.  사진(2) 두산 투수코치 시절 조계현. -조이뉴스 24 출처.   -- 사진 (3) 해태시절 공을 뿌리는 조계현.  -끝-      고교시절인 1981년 1학년일때 이미 초고교급 선수로 이름을 알렸으며, 팀을 대통령기에서 우승시켰다.

1982년 북일고와 맡붙은 청룡기에서는 당시 또다른 초에이스급 선수였던 안성수와 결승전에서 1:1로 12회 완투+ 다음날 다시 연장전을 계속하는 강행군을 하는 무지막지한 혹사를 당하면서도 결국 팀을 우승시켰다.

   ?그러나 이런 무지막지한 혹사 때문에 안성수는 완전히 야구인생이 맛이 가서 평범한 선수로 전락했다가 소리없이 사라졌고, 조계현도 어깨가 맛이 가서 파이어볼러에서 평범한 구속의 투수로 전락했다.

혹사와 관련하여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당시 한일고교야구 정기교류전이 있었는데 3차전 내내 혼자 마운드를 책임지다 시피하여 2승 1패를 거뒀다.

당시 감독이었던 경북고 구수갑 감독이 라이벌팀 에이스를 일부러 굴렸다는 얘기가 있었을 정도. 혹사로 인해 연세대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타자로 전향도 고려했다고. 그러나 연세대학교 재학 후반부에 조계현은 팔색조 변화구라고 불리는 다양한 구질을 연마하여 변화구+컨트롤 위주의 기교파 투수가 되었고 이것 덕분에 그는 전성기 못지않은 투수 시절을 보내게 된다.

 조계현은 해태 타이거즈시절 선배 선동렬과 한 해 최다 완봉승 경쟁을 벌일 정도로 뛰어났습니다.

그리고 선동렬 외에는몇 안 되는 평균 자책점 1점대를 기록했던 투수이기도 했습니다 야구에서 만일이라는 말이 없지만 만약에 고교시절에 혹사를 당하지 않았다면은 아마 선동렬의 자리가 위태위태 했을것이다   현역시절실업야구 농협 야구단에 1년간 몸을 담고 나서, 이듬해인 1989년에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했다.

 1988 서울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실업 팀에 입단한 듯 하지만 정확히는 이때까지만해도 실업야구가 죽어가는 시기이니 어떻게보면은 프로의 전향은 당연한거 같습니다선동열, 이강철과 함께 해태 타이거즈 마운드의 3인방 중 한 축이었으며, 통산 320경기에 등판해, 126승 92패 17세이브에 평균자책점 3.17을 기록했다.

전성기에는 유난히 LG 트윈스에 강해서, 1993년

1995년에 LG를 상대로 12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특히 1993년 LG 김태원과의 맞대결은 1980년대 선동열 대 최동원 못지 않은 명승부였고, 엘지 해태의 3연전 모두 잠실야구장이 매진되기도 했다.

조계현의 LG전 연승은 1995년 이상훈과의 선발 맞대결에서 이상훈의 1-0 완봉승으로 간신히 마감됐다.

개인적인 추억을 상기해보면은 어렸을때 해태와의 경기를 할때 선발투수가 조계현이라면은 아버님은 티비를 보지 않으셨습니다 ㅋㅋ 어차피 봐야 지는 경기야 못이겨 못이겨 하시면서 다른 프로그램을 보거나 또는 밖에 나가셨던 기억이 납니다 ㅋㅋ 그만큼 조계현선수는 엘지트윈스의 가장 큰 미움의 주인공이기도 했습니다 ㅋㅋ선동열이 마무리로 전업한 이후, 1990년대 초반 해태 타이거즈의 제1선발은 조계현 몫이었다.

그리하여 1993년 17승, 1994년 18승(LG 이상훈과 공동 1위)을 거두며 2년 연속 다승 1위를 하였다.

고교시절이나 프로 입단 초기엔 투 스트라이크 이후 유인구를 던지지 않고 곧바로 타자와 정면 승부를 했을정도로 공격적인 스타일이었으며, 이전 타석에서 홈런을 맞은 구질을 같은 타자에게 결정구로 사용할 만큼 파이팅이 넘치는 투수였다.

싸움닭이라는 별명은 이런 에피소드로 얻은 것. 또다른 별명은 에이스격파 입니다 상대팀의 에이스를 상대로 간판깨기 처럼 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1996년의 활약을 마지막으로 이대진, 김상진 등 신예 에이스들이 나타나면서 그의 입지는 좁아지기 시작했고, 1997년 김응용 감독의 눈밖에 나서 시즌이 끝나고 이순철, 정회열과 함께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되었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1998 시즌과 1999 시즌을 보냈지만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 방출?怜� 김인식 감독의 부름을 받아 두산 베어스로 이적하였다.

[조계현] 하지만 현실은



두산 베어스에서는 예전만큼의 성적을 내지는 못했지만 팀의 정신적 지주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1년을 은퇴로 2002년부터 기아타이거즈에서 코치를 시작하면서 코치직을 지금도 하고 있다 통산기록  ( 실제로 열받으면 빈볼도 던 �...) 또한 조계현은 춤추는 싱커로 유명한데, 홈플레이트에서 파고드는 변화구의 무브먼트가  매우 심해서 팔색조 라는 별명도 얻었다.

전성기인 93년과 94년에는  각각 17승,18승으로 다승왕을 차지하기도 하였고, 95년에는 1.17의 방어율로 방어율 타이틀을 차지하였다.

해태의 5번의 우승멤버였고, 01년 두산의 수호신으로 역시 우승 멤버였다.

그런데 웃긴게, 선수 생활 을 해태-삼성-두산 으로 했는데, 코치생활 역시 기아-삼성-두산으로 하였다 ㅋ (며칠전 LG트윈스 수석코치가 되셧네요 ㅊㅋ 드립니다.

) 조계현은 세계 3대 마구중(너클볼, 자이로볼, 스크류볼) 2개의 마구를 던질 수 있었다.

(스크류볼과 너클볼) 또한 그의 주무기였던 싱커 역시 자이로성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거의 마구 마스터라고도 할 수 있다.

 잠시 그의 미친듯한 싱커를 보자. ↓        정말 ㅎㄷㄷ한 싱커 아닌가? ㅋ  위의 짤방 5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조계현의 싱커의 무브먼트는 장난이 아니다.

 MLB의 씽킹브라운이라고도 불리는 케빈 브라운의 싱커와도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오히려 싱커의 힘에서는 더 앞서는듯 하다.

 마구마구란 게임에서도 기본 싱커능력치가 94로 가장 높다 . (97년) 하지만 원래 군산상고에 있었을때는 최동원을 계승한 파이어볼러 였었 다고 한다.

그러나 고교 시절 무리하게 혹사를 당햇고, 그 후유증으로  변화구 위주인 팔색조가 되었다고 한다.

-----  동영상 하나 보시죠!(조계현 투구 동영상- (근데 두산시절이네요 ㅡㅡ)[출처; )  또한, 96년 선동열이 해태를 떠나갔을때도 이종범과 함께 해태를 지탱하였던 조계현은 정면승부를 즐겼다고 알려져 있다.

 2스트라이크 이후에는 많은 투수들이 변화구를 던지기 마련인데 오히려 조계현은 직구 한가운데 승부를 즐겼다고 한다.

 95년 프로야구 정규방어율 1위를 차지한적도 있다.

조계현의 전성기 시절 , 조계현을 상대하였던 여러타자들은 한결같이,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공이 엄청난 변화를 일으킨다.

마치 마구같다.

' 라는 말을 여러번 했다고 한다.

위 짤방들의  싱커말고도 직구,커터,싱커,스크류볼,너클볼,슈트,커브,슬라이더 등 여러가지 구질을 자유자재로 능숙하게 구사하였기 때문에 '팔색조'라는 별명이 붙었다.

 -- 불암콩콩 코믹스에서 닭으로 표현된 싸움닭 조계현 - (마구마구 불암콩콩 출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조계현의 인상이 참 인간적이다, 싶다.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내 마음속에 와닿는 몇 안되는 선수중 하나가 아닌가 하다.

아무튼 조계현은 최고의 투수반열에 올려놓아도 절대 뒤지지 않을 투수임에는 타 팀팬들도 인정하 시는 부분일것이다.

항상 묵묵히 제 할일을 다했던 조계현. 저는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은 영원한 한국의 LEGEND 입니다!  --이제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짤방하나 보고가시죠.  --96 한국시리즈 해태 vs 현대 추억의 한국시리즈 中 조계현. - 네오님 블로그 출처.  --- '빠른공 보다는 내 혼을 담아 나만의 공을 던진다.

느린 변화구에도 혼을 담으면 그것보다 훌륭한 마구는 없다.

'  -조계현 -- 사진 (1) 해태 시절 조계현.  사진(2) 두산 투수코치 시절 조계현. -조이뉴스 24 출처.   -- 사진 (3) 해태시절 공을 뿌리는 조계현.  -끝-      ( 실제로 열받으면 빈볼도 던 �...) 또한 조계현은 춤추는 싱커로 유명한데, 홈플레이트에서 파고드는 변화구의 무브먼트가  매우 심해서 팔색조 라는 별명도 얻었다.

전성기인 93년과 94년에는  각각 17승,18승으로 다승왕을 차지하기도 하였고, 95년에는 1.17의 방어율로 방어율 타이틀을 차지하였다.

해태의 5번의 우승멤버였고, 01년 두산의 수호신으로 역시 우승 멤버였다.

그런데 웃긴게, 선수 생활 을 해태-삼성-두산 으로 했는데, 코치생활 역시 기아-삼성-두산으로 하였다 ㅋ (며칠전 LG트윈스 수석코치가 되셧네요 ㅊㅋ 드립니다.

) 조계현은 세계 3대 마구중(너클볼, 자이로볼, 스크류볼) 2개의 마구를 던질 수 있었다.

(스크류볼과 너클볼) 또한 그의 주무기였던 싱커 역시 자이로성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거의 마구 마스터라고도 할 수 있다.

 잠시 그의 미친듯한 싱커를 보자. ↓        정말 ㅎㄷㄷ한 싱커 아닌가? ㅋ  위의 짤방 5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조계현의 싱커의 무브먼트는 장난이 아니다.

 MLB의 씽킹브라운이라고도 불리는 케빈 브라운의 싱커와도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오히려 싱커의 힘에서는 더 앞서는듯 하다.

 마구마구란 게임에서도 기본 싱커능력치가 94로 가장 높다 . (97년) 하지만 원래 군산상고에 있었을때는 최동원을 계승한 파이어볼러 였었 다고 한다.

그러나 고교 시절 무리하게 혹사를 당햇고, 그 후유증으로  변화구 위주인 팔색조가 되었다고 한다.

-----  동영상 하나 보시죠!(조계현 투구 동영상- (근데 두산시절이네요 ㅡㅡ)[출처; )  또한, 96년 선동열이 해태를 떠나갔을때도 이종범과 함께 해태를 지탱하였던 조계현은 정면승부를 즐겼다고 알려져 있다.

 2스트라이크 이후에는 많은 투수들이 변화구를 던지기 마련인데 오히려 조계현은 직구 한가운데 승부를 즐겼다고 한다.

 95년 프로야구 정규방어율 1위를 차지한적도 있다.

조계현의 전성기 시절 , 조계현을 상대하였던 여러타자들은 한결같이,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공이 엄청난 변화를 일으킨다.

마치 마구같다.

' 라는 말을 여러번 했다고 한다.

위 짤방들의  싱커말고도 직구,커터,싱커,스크류볼,너클볼,슈트,커브,슬라이더 등 여러가지 구질을 자유자재로 능숙하게 구사하였기 때문에 '팔색조'라는 별명이 붙었다.

 -- 불암콩콩 코믹스에서 닭으로 표현된 싸움닭 조계현 - (마구마구 불암콩콩 출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조계현의 인상이 참 인간적이다, 싶다.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내 마음속에 와닿는 몇 안되는 선수중 하나가 아닌가 하다.

아무튼 조계현은 최고의 투수반열에 올려놓아도 절대 뒤지지 않을 투수임에는 타 팀팬들도 인정하 시는 부분일것이다.

항상 묵묵히 제 할일을 다했던 조계현. 저는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은 영원한 한국의 LEGEND 입니다!  --이제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짤방하나 보고가시죠.  --96 한국시리즈 해태 vs 현대 추억의 한국시리즈 中 조계현. - 네오님 블로그 출처.  --- '빠른공 보다는 내 혼을 담아 나만의 공을 던진다.

느린 변화구에도 혼을 담으면 그것보다 훌륭한 마구는 없다.

'  -조계현 -- 사진 (1) 해태 시절 조계현.  사진(2) 두산 투수코치 시절 조계현. -조이뉴스 24 출처.   -- 사진 (3) 해태시절 공을 뿌리는 조계현.  -끝-      조계현 앞에서는 고의사구와 피해가기란 말이 없었다.

그 에게는 삼구삼진과 정면승부만 있을 뿐. 조계현은 강타자를 만나면 더 기세등등하게 스트라이크를 던져댔고,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는 유인구 보다는 곧장 결정구를 던지곤 했다.

이러한 그의 스타일에서 싸움닭이란 애칭이 생기지 않았나 생각된다.

  선수 경력 년 도 소 속 1989

1998 해태 타이거즈 1998

2000 삼성 라이온즈 2000

2001 두산 베어스  수상 경력 년 도 수 상 내 용 1993 다승 1위 1994 다승 1위 1995 평균자책점 1위  기타 년 도 내 용 1989, 1991, 1993, 1996, 1997 해태 KBO 우승 멤버 2001 두산 KBO 우승 멤버 KBO 통산 다승 7위 (2013년 기준) 평균 자책점 5위 (2013년 기준)  통산 성적시즌 소속 평균 자책 경기 승리 패전 세이브 피안타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1989 해태 2.84 31 7 9 4 153 73 97 64 55 1990 해태 3.28 30 14 13 0 144 81 130 73 65 1991 해태 3.25 21 9 9 0 100 54 75 50 47 1992 해태 2.94 37 10 6 12 123 59 98 64 51 1993 해태 2.15 28 17 6 1 141 58 118 54 47 1994 해태 2.61 27 18 5 0 171 68 135 69 61 1995 해태 1.71 19 9 6 0 97 43 59 28 24 1996 해태 2.07 27 16 7 0 145 52 116 51 44 1997 해태 3.71 25 8 9 0 111 36 71 64 47 1998 삼성 5.21 29 8 11 0 171 76 94 99 87 1999 삼성 11.51 12 0 3 0 36 15 16 27 26 2000 두산 3.74 16 7 3 0 81 31 53 40 37 2001 두산 5.28 18 3 5 0 99 38 38 53 51 통산 13시즌 3.17 320 126 92 17 1,572 684 1,100 736 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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