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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건국



..blog.naver.com 공민왕이 살해된 후 권문세족에 의해 우왕(고려 제32대 왕, 재위 1374

1388)이 추대됩니다.

 우왕은 친원 반명정책을 실시합니다.

 명나라는 철령 이북의 땅은 원래 원나라의 것이니 요동에 포함시켜 명나라에서 다스리겠다며 돌려줄 것을 고려에게 요구합니다.

 ?고려는 명나라에게 철령위를 돌려줄 것이냐 요동을 정벌할 것이냐를 놓고 둘로 갈라지게 됩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최영과 이성계입니다.

최영은 요동을 정벌하자고 했고 이성계는 불가하다며 명과 싸우면 안된다는 4불가론을 들었습니다.

결국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회군(1388)하고 요동정벌을 주장한 최영을 제거하고 정권을 잡게 됩니다.

  ??? ??? ???28???? ??? ???28? ??? ?? ??? ??? ??(1388), ?? ??, ??? ??(1391), ??? ...blog.naver.com이후 고려의 개혁을 놓고 신진사대부가 정몽주, 길재, 이색을 대표로 하는 온건파와 정도전, 조준, 권근을 대표로 하는 급진파(혁명파)로 분열을 하는데 급진파가 이성계의 신흥무인세력과 손을 잡고 개혁을 합니다.

 훗날 태종(조선 제3대 왕, 1367

1422, 재위 1400

1418)이 되는 이방원은 정몽주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자 정몽주를 찾아가 회유하지만 굽히지 않았던 정몽주는 제거당합니다.

정권을 잡은 급진파는 전제개혁을 실시(1391)하고 조선을 건국합니다(1392). 그리고 2년 후 한양으로 천도합니다.

전제개혁은 신진사대부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고 농민들의 경작권을 보장해줌으로써 민심을 수용할 수 있었고 국가의 재정을 확보하여 새로운 왕조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 ???? ??? ?????? ???? ??? ??? ??? ??? ?? ???? ??? ?? ??? ?? ??? ????? ...blog.naver.com  13일 김천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 27회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 결선 6강에서 고려대가 건국대의 거센 추격을 뿌리친 채 73-64로 승리를 거두었다.

고려대는 대학 탑클래스 빅맨 최부경을 잘 막으면서 지난 4월 대학농구리그에서의 패배를 설욕했다.

  고려대는 조찬형(체교 08)-박재현(체교 10)-정대한(체교 07)-정희재(체교 09)-노승준(체교 08), 건국대는 한호빈(건대 10)-이원대(건?대 09)-이도안(건?대 10)-성재준(건대 09)-최부경(건대 08)의 라인업으로 경기를 시작했다.

 고려대의 세 기둥. 왼쪽부터 노승준(체교 08), 정희재(체교 10), 이승현(체교 11).  성재준의 레이업으로 시작된 1쿼터는 대학농구리그 4-5위의 대결답게 호각이었다.

건국대는 최부경의 포스트 업에서 나오는 패스로 이원대 성재준이 득점을 올렸다.

이에 맞선 고려대는 노승준과 정희재의 중거리로 점수를 쌓아 19-15, 4점차로 앞선 채 1쿼터를 끝냈다.

  점수차가 벌어진 것은 2쿼터였다.

2쿼터에서 건국대 공격의 시작인 최부경을 노승준과 이승현이 효과적으로 잘 압박하면서 건국대를 틀어막았고, 정희재가 6점을 몰아치면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건국대는 최부경에서 이어지는 찬스에서 야투를 성공시키지 못하면서 점수차를 좁히지 못했다.

결국 고려대가 점수차를 유지하며 40-27로 앞선 채 전반전이 종료됐다.

 건국대 황준삼 감독(左)과 고려대 이민형 감독(右). 3쿼터에서도 고려대가 전반과 같은 좋은 모습을 보였다.

3쿼터 중반 고려대는 50-30, 20점차까지 앞서나가면서 4강진출을 눈 앞에 두었다.

하지만 건국대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이진혁(건대 10)의 삼점포를 시작으로 추격을 시작한 건국대는 특유의 강력한 수비로 점수 차를 좁혀나갔다.

결국 고려대는 쉽게 승리를 결정짓지 못한 채 57-47로 3쿼터를 마감했다.

 왼쪽부터 성재준(건대 10), 이도안(건대 10), 한호빈(건대 10), 이원대(건대 09), 최부경(건대 08)  건국대의 거센 추격은 4쿼터에서도 이어졌다.

이원대가 시작과 함께 3점포 두 개를 연이어 터뜨리면서 점수 차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고려대는 건국대의 강력한 수비 앞에 잦은 실책을 범하면서 분위기를 쉽게 가져가지 못했다.

양 팀의 치열한 격전 속에서 승부가 갈린 것은 4쿼터 중반 건국대의 인텐셔널 파울 때문이었다.

건국대의 공을 스틸해서 속공을 전개하던 정대한에게 최부경이 인텐셔널 파울을 범했고, 정대한이 자유투 2개에 이어 3점슛까지 터뜨리면서 사실상 승리를 확정지었다.

건국대는 주장 최부경이 골밑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며 추격을 시도했지만 고려대는 10점차의 리드를 잘 지키며 73-64로 4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최종 스코어 73-64로 건국대를 물리치고 4강에 안착하는 고려대. 고려대-건국대 경기를 관전하는 경희대 최부영 감독(左). 고려대는 내일 오후 3시 40분 김천실내체육관에서 강호 중앙대와 결승행 티켓을 걸고 대결을 펼친다.

지난 6월 대학농구리그에서 72-80으로 패배했던 중앙대에게 설욕의 기회를 얻게 됐다.

   한양대의 에이스 차바위(左)가 분전했지만 팀의 패배를 막을 수는 없었다.

 한편 앞서 열린 또다른 결선 6강에서 연세대는 한양대를 맞아 84-73으로 승리했다.

연세대는 차바위가 23점으로 분전한 한양대를 높이와 속공으로 압도하며 비교적 쉽게 승리를 가져갔다.

전준범(연대 10)은 3점슛 3개를 포함해 18점을 올리면서 활약했다.

연세대는 경희대와 결승행 길목에서 만난다.

   앞서 열린 연세대와 한양대의 6강 경기 장면.   주요선수 기록  고려대정대한 18득점 5리바운드 2스틸 (3점슛 3개)정희재 18득점 9리바운드김지후 10득점 노승준 12득점 4리바운드이승현  6득점 10리바운드  건국대최부경 18득점 7리바운드이원대 17득점 8리바운드 3스틸 (3점슛 4개)성재준 11득점    오늘의 MVP : 정대한(체교 07)  Q. 7. 10 경희대전에서 크게 진 후 감독님과 면담을 가진 걸로 알고 있다.

어떤 이야기를 했고, 어떤 점을 개선하자고 했는지.  A. 경희대전 팀이 너무 어수선했고, 정신적인 측면에서 어이없이 무너졌다.

그래서 감독님과 선수들이 게임 후 미팅을 가지고 정신적인 측면을 재무장했다.

그래서 경희대전에 크게 진 것이 오히려 약이 됐고, 오늘 경기에서 좋은 결과로 나타났다.

  Q. 게임 전날 건국대전을 대비해서 미팅을 오랫동안 했다.

미팅하며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했는지.  A. 우선 경희대전에서 안 됐던 내용을 코칭스태프에서 지적했고, 선수들끼리도 안 됐던 점을 보완해서 나가자고 했다.

오늘 경기에서 썼던 수비 전술도 경희대전과 똑같았다.

매치업 존디펜스를 섰는데 다만 경희대전보다 조직적으로 움직여서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엇다.

그리고 건대 공격 중심인 최부경을 센터들이 번갈아 막으면서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센터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Q. 올해 주장을 맡아 책임감이 클 것 같다.

부담스럽지는 않은지.  A. 작년에 고려대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래서 주장을 맡으면서 각오가 남다르다.

올해 고려대가 잘할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는 역할을 하려고 한다.

   김천=김회훈 손동환 / 사진 이해성 《대한민국 건국 60년의 재인식》은 2008년 3월부터 6월까지 매주 한 차레 '건국 60년 기념 강의'를 했던 내용을 엮은 것으로 건국 60년을 관통하는 다양한 문제를 소개한다.

해방에서 건국으로 이어지는 3년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한민국을 세운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이 이룬 업적은 무엇인지 알려준다.

또한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되는 과정과 원칙, 이승만 정부 이래 세계적인 경제성장은 어떤식으로 이루어졌으며, 국제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은 어떻게 진화했는지 등을 살펴본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저자소개강경근(姜京根) 숭실대학교 법학과 교수김광석(金光石) 주식회사 참존 대표이사 회장, 성신여자대학교 석좌교수김세중(金世中) 연세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김영호(金暎浩) 성신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김일영(金一榮)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노재봉(盧在鳳) 성신여자대학교 객원교수, 전 국무총리, 전 서울디지털대학교 총장안병직(安秉直) 뉴라이트재단 이사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알렉산더 버시바우(ALEXANDER VERSHBOW) 주한 미국대사유영익(柳永益)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석좌교수이영훈(李榮薰)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이인호(李仁浩) KAIST 김보정 석좌교수, 전 주러시아대사, 전 주핀란드대사 전상인(全相仁)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인터넷 교보문고 제공]목차1강 대한민국 건국의 세계사적 의의노재봉 2강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적 과정김일영 3강 건국사관과 분단사관김영호 4강 이승만 박사와 대한민국의 건국유영익 5강 대한민국 건국헌법의 제정과 내용강경근 6강 대한민국 건국의 경제사적 의의안병직 7강 해방 공간과 보통사람의 일상생활전상인 8강 대한민국의 건국과 압축민주화김세중 9강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이영훈 10강 대한민국과 기업인의 역할김광석 11강 한미관계의 형성과 발전버시바우 12강 대한민국의 세계적 위상과 역할이인호[예스24 제공]출판사 서평대한민국 건국을 아십니까?올해는 대한민국이 건국된 지 60년이 되는 해이다.

사람으로 치자면, 이제 우리나라도 환갑을 맞은 셈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언제, 어떻게 건국되었느냐는 물음에 자신 있게 대답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믿기지 않으면, 당장 주위에 있는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라. 열에 아홉은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그럴 만도 하다.

우리말 사전에도 광복절은 있어도, 건국절은 없다.

심지어 대부분 학교에서도 건국의 역사는 등한시하기 일쑤다.

왜 우리는 건국을 기억하지 못할까? ‘8월 15일은 광복절’이라고 뇌리에 너무도 깊이 새겨졌기 때문일까? 우리 민족은 1945년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 그로부터 정확하게 3년이 흐른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정부가 출범했다.

하지만, 광복에서 건국에 이르는 이 기간에 나라가 몸살을 앓고, 수많은 선열이 상처를 받으며 천신만고 끝에 국가가 섰지만, 그 고통스러웠던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왜 이런 기억의 공백이 생겼을까? 마치 지우개로 지워버린 것처럼, 대한민국 국민에게서 건국의 기억은 사라졌다.

심지어 온 국민이 집단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이 책은, 그런 의문과 의심에서 출발했다.

국가 원로와 학자들이 들려주는 건국 이야기대한민국의 건국은 우리 민족사에서 전대미문의 혁명적 사건이었다.

그것은 이전 왕조 국가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근대화된 정치체제나 제도적 기반이 성립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한국인이 스스로 사회적 능력을 배양하여 자기 운명을 주도적으로 결정하고, 주권적 주체로서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근대적 개념의 국민으로 새롭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해방 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출발한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원동력도 바로 그런 한국인 개개인의 존재론적 변화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궁금한 점이 많다.

해방에서 건국으로 이어지는 3년간 한반도에서는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2차 대전의 종전 이후 남한과 북한을 점령한 소련과 미국은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을까? 대한민국을 세운 건국의 아버지들은 어떤 사람이었으며 그들이 이룬 업적은 무엇일까? 대한민국 헌법은 어떻게 제정되었으며, 가장 근간이 된 원칙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승만 정부 이래 여러 차례 정권이 교체되면서 전 세계가 놀라는 경제발전은 어떻게 이룩한 것일까? 권위주...(하략)[예스24 제공]책속으로그리고 한반도를 점령하되 어떻게 나누어서 점령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제기되는데요, 알다시피 38선을 기준으로 분할점령하는데, 그게 과연 언제 결정되었느냐는 것이지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도 학자들 사이에 약간의 이견이 있어요. 확정된 것은 아닌데, 가장 최근의 연구결과를 보면 대략 포츠담Potsdam 회담에서 결정된 것으로 보여요. 전에는 미국과 소련이 얄타 회담에서 그런 밀약을 했다는 설이 유력했죠. 그런데 얄타회담 기록을 아무리 뒤져봐도 소련이 참전한 대가로 미국이 소련에 한반도의 반을 잘라준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아요. 결국, 독일이 전쟁에서 패한 다음에 열린 포츠담 회담에서 한반도 분할 문제가 결정되었다고 보는 게 옳은 거죠. (45쪽, '2.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적 과정_김일영' 중에서) [알라딘 제공](원래 전쟁 이야기가 좀 재미있죠

 ^^!)중학교 2학년 교과서에는 삼국 통일과 발해의 건국에 대해 어떤 내용이 나오는지 살펴보세요.  ^.^    [출처 : 중학교 2학년 역사교과서 (출판사 : 비상교육 86

87쪽)]  나당 동맹 체결  7세기 중반 백제 의자왕은 신라를 자주 공격하여 신라의 여러 성을 빼앗았다.

이에 신라의 김춘추는 고구려로 가서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연개소문은 이를 거절하였다.

그러자 김춘추는 당으로 건너가 나당 동맹을 제의하였다.

  마침 고구려 정복에 실패한 당 태종은 신라의 도움을 받아 고구려를 다시 공략하고자 제의를 받아들였다.

이에 나당 동맹이 성사되어 당은 신라에 군사를 내어 주기로 하였다.

대신 신라는 대동강 이북의 고구려 땅을 당에 양보하고, 당의 문물과 제도를 수용하기로 하였다.

  고구려와 백제는 신라와 당의 동맹에 맞서 협력하였다.

또한 고구려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강국과 동맹을 모색하였고, 백제는 왜와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였다.

- 의자왕은 어떤 인물이었나요?  의자왕은 사치와 향락에 빠져 백제를 멸망으로 내몬 왕으로 종종 기억됩니다.

그러나 의자왕은 무왕의 맏아들로 태어나 효심과 형제애가 지극하였다고 해요. 이에 '해동증자'라고 불렸으며, 즉위 초기에는 민심을 살피는 정치를 펴서 나라를 편안하게 하였습니다.

의자왕은 영토 확장에도 많은 힘을 쏟았어요. 7세기 중반 신라를 공격하여 대야성 및 40여 성을 빼앗아 신라에 큰 타격을 주었으며, 신라가 당으로 가는 길을 차단하기 위해 고구려와 연합하여 당항성을 공격하였지요. 한편, 의자왕이 귀족 세력을 압박하는 정책을 펼치자 귀족들은 반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의자왕은 강화된 왕권을 바탕으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전쟁을 계속하여 군사를 자주 동원하였습니다.

이에 의자왕은 민심을 잃고, 백제는 흔들리기 시작하였답니다.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     신라와 당의 연합군은 먼저 백제를 공격하였다.

이 무렵 백제는 지배 세력이 분열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당 연합군의 공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였다.

  백제는 기벌포에서 소정방이 이끈 당군에 패하였고, 계백의 결사대마저 황산벌에서 김유신이 이끈 신라군에 패배하였다.

결국 나당 연합군이 사비성을 함락하자, 웅진성으로 피신하였던 의자왕은 항복하였다(660).  백제가 멸망한 이후 나당 연합군은 고구려를 공격하였다.

고구려는 연개소문을 중심으로 이를 물리쳤으나, 계속된 전쟁으로 국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게다가 연개소문이 죽자, 세 아들이 후계자 계승을 둘러싸고 권력 다툼을 벌였다.

  나당 연합군은 이를 틈타 고구려의 성들을 차례로 무너뜨리고 평양성을 함락하였다(668). 백제, 고구려 유민의 부흥 운동   백제 멸망 후 흑치상지, 복신과 도침 등은 임존성과 주류성을 근거로 왜에 있던 왕자 (부여)풍을 추대하여 부흥 운동을 전재하였다.

그러나 지도층이 분열하고, 백제를 도우러 왔던 왜군이 나당 연합군에 패하면서 부흥 운동은 실패하였다.

  고구려 멸망 후 고연무는 압록강 북쪽 지역에서 당군과 싸웠으며, 검모잠은 왕족인 안승을 추대하여 고구려 부흥 운동을 전재하였다.

그러나 안승이 검모잠을 죽이고 신라에 항복함으로써 부흥 운동은 실패하였다.

      [출처 : 중학교 2학년 역사교과서 (출판사 : 비상교육 84쪽)]            나당 전쟁과 신라의 삼국 통일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 이후 당은 신라와의 약속을 깨고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는 야심을 드러냈다.

백제와 고구려의 옛 땅에 웅진도독부와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신라의 금성에도 계림도독부를 두었다.

  이에 신라는 당에 정면으로 맞섰다.

신라는 고구려 부흥 운동을 지원하여 보덕국을 세우게 하고 고구려 유민을 포섭하는 한편, 사비성에 주둔하고 있던 당군을 몰아냈다.

이어 매소성 싸움(675)에서 당군을 크게 격파하고 기벌포 싸움(676)에서도 대승을 거두자, 당은 군사를 철수하였다.

이로써 신라는 대동강 이남 지역에서 당의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고 삼국 통일을 이룩하였다(676). 삼국 통일의 의의   신라의 삼국 통일은 그 과정에서 당의 세력을 끌어들이고, 대동강 이북의 고구려 땅 대부분을 잃었다는 점에서 한계성을 띠고 있다.

  그러나 신라는 고구려, 백제의 유민과 힘을 합쳐 당을 몰아내어 자주적인 통일을 달성하였다.

이로써 우리 민족 최초의 통일을 이루었고, 민족 형성의 계식를 마련하였다.

또한 삼국의 문물이 융합하여 새로운 민족 문화가 발전하는 기반이 형성되었다.

 - 도독부와 도호부 : 도독부는 당의 지방 통치 기관이고, 도호부는 당이 변방 지역에 설치한 최고 군사 기관이다.

- 보덕국 : 신라가 안승을 왕으로 임명하여 세운 나라로, 삼국 통일 이후 신라의 지방 행정 구역에 편입되었다.

- 매소성 싸움(민족 기록화, 전쟁 기념관)신라가 당의 20만 대군을 물리치고 말 3만여 필과 병기를 빼앗은 전투로, 나당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

 여전히 중국과 신라, 고구려, 백제가 함께 등장해서 좀 복잡해요.  ^^! 아래 내용은 암기하려 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읽어 보세요. (정보글을 프린트 하는 방법은 아래 게시글을 참고하세요. S맘님

감사합니다

^^)http://cafe.naver.com/hgsproject/19110  [5학년 2학기]  1. 우리 역사의 시작과 발전(4) 삼국 통일과 발해의 건국  58

59쪽⇒ 대조영! 발해를 건국하다!1. 대조영! 발해를 건국하다!   신라와 당 연합군의 공격을 받은 백제와 고구려는 결국 멸망했죠.백제와 고구려 백성들은 나라가 없어진 거예요. 이처럼 나라를 잃은 백성을 '유민'이라고 불러요.* 유민  ⇒  잃을 유(遺) + 백성 민(民)  /  (나라를) 잃은 백성나라를 잃은 고구려 유민 중에 일부는 당으로 끌려갔고요.고구려 땅에 남은 유민들은 신라와 힘을 합쳐 당을 몰아내고, 삼국을 통일한 신라 백성으로 살게 되었어요.그럼 당에 끌려간 고구려 유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림 출처 : 역사랑 문화랑 전집 중 '이현세 만화 한국사'>당으로 끌려간 고구려 유민들 중 일부는 '영주'라는 곳에서 거란족, 말갈족과 함께 살게 되었어요.거란족과 말갈족은 이렇게 생긴 분들이에요. 겉모습이 큰 차이가 나는 건 아니죠? ^^!우리나라랑 일본, 중국 사람들도 큰 차이가 나는 건 아니잖아요.모두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민족이고요.거란족과 말갈족도 여러 민족 중 하나예요.그리고 고구려 유민처럼 중국 땅에 살았지만 외국 사람 취급을 받은 거죠. 이런 식으로요

 <그림 출처 : 역사랑 문화랑 전집 중 '이현세 만화 한국사'>나라 없는 설움은 고구려 유민이나 거란족이나 말갈족이나 모두 똑같았어요.참다 못한 거란족이 먼저 나섰어요.[거란족] "더 이상 당의 횡포를 참을 수 없소! 거란의 군사를 모아 반란을 일으킬테니 도와 주시오."[고구려 유민] "좋습니다.

우리 고구려 유민들도 오늘을 기다려 왔습니다.

"[말갈족] "우리 말갈족도 기꺼이 있는 힘을 다해 돕겠소!"그리고 696년 거란족과 고구려 유민들 그리고 말갈족은 힘을 합쳐 반란을 일으켰어요.이때 고구려 유민을 이끈 지도자는 걸걸중상과 그의 아들 대조영이었어요. <그림 출처 : 역사랑 문화랑 전집 중 '이현세 만화 한국사'>거란족과 고구려 유민, 말갈족이 힘을 합친 반란군은 영주성을 공격해 함락했어요.물론 이 소식을 들은 당은 군대를 보내 반란군을 무찌르려 했죠.거란족과 당의 군대는 1년 동안 싸우고 또 싸웠어요.그런데... 거란족이 점점 밀리기 시작했어요.이 상황을 지켜보던 고구려 유민들은 당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동쪽(당의 반대쪽)으로 이동하기로 했어요.말갈족도 고구려 유민들과 함께 길을 떠났고요. <그림 출처 : 역사랑 문화랑 전집 중 '이현세 만화 한국사'>그리고 그 뒤를... 당의 군대가 쫓아왔어요.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족을 이끌던 대조영은 천문령이라는 고개에서 당의 군대와 전투를 벌이기로 했어요.계속 도망치기만 하면 먹을 것도 떨어질 것이고, 군사들의 사기도 떨어질테니까요.전투에서 승리하면 새로운 나라를 세울 수 있겠지만...만약 패한다면, 영주성에서 살 때보다 더 심한 고통을 받게 되겠죠...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전투인데 당나라군의 수가 더 많았어요.그래서 전투 장소를 천문령으로 정했답니다.

'천문령'은 '하늘의 문 같은 고개'라는 뜻으로 보이네요.* 천문령  ⇒  하늘 천(天) + 문 문(門) + 고개 령(嶺)왜 '하늘의 문'이라고 불렀을까요? 하늘의 문이라면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은 아닐 텐데...천문령은 길이 좁고 주변이 험한 고개길이였어요. 보통 험한 게 아니라 아주 많이 험했나 봐요. (올라가기도 힘들었겠는데요... ^^!)그래서 고개길 주변 곳곳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공격하기 좋은 장소였어요.[대조영] "먼저 우리 군사들 중 일부는 지는 척하면서 당나라군을 깊은 산골로 유인하고, 나머지 군사들은 미리 숲 속에 숨어 있다가 당나라군을 습격하는 겁니다!"<그림 출처 : 역사랑 문화랑 전집 중 '이현세 만화 한국사'>꾀임에 빠진 당나라군은 천문령으로 밀려 들어왔고요. 곧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어요.천문령 주변 곳곳에 숨어 있던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족 병사들은 당나라군을 향해 화살을 퍼부었어요.천문령 전투는 누구의 승리로 끝났을까요?당연히 대조영이 이끈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족이 승리했답니다.

  ^.^ <그림 출처 : 역사랑 문화랑 전집 중 '이현세 만화 한국사'>천문령 전투에서 당나라군은 수만 명에 이르렀던 군사 대부분을 잃고 후퇴했어요.대조영이 이끄는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족은 동쪽으로 이동하여 동모산에 이르렀고요.그리고는 동모산에서 '발해' 라는 나라를 건국했답니다.

때는 698년이었어요.  ^.^아래 지도에서 '영주'를 찾아보세요.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족이 힘든 생활을 했던 곳이고요.'천문령'을 찾아보세요. 당나라군을 기습 공격해서 크게 승리한 곳이에요.그리고 '동모산'을 찾아보세요.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족을 이끈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한 곳이랍니다.

  ^.^<지도 출처 : 2015년에 도입된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교과서>동모산에서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은 이렇게 말했어요."우리 고구려가 멸망한 지 30년이 지났습니다.

당이 고구려의 옛 땅을 지배하고, 유민들을 강제로 이주시켰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이곳 동모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당의 추격을 물리치고, 나라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나를 따르는 말갈족도 함께하여 새로운 땅을 개척하였습니다.

앞으로 당과 신라에 대항하여 고구려의 옛 영토를 되찾도록 노력합시다.

"<텍스트 출처 : 2015년에 도입된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교과서>                                           <동모산>그런데 왜 나라 이름을 발해라고 했을까요?* 발해  ⇒  바다 이름 발(渤) + 바다 해(海)'발해' 라는 이름에는 '바다'가 두 번이나 들어가 있어요. (바다 이름 발, 바다 해)이유가 있죠

발해를 건국한 동모산 근처에 바다처럼 넓은 거대한 호수가 있었거든요.얼마나 넓었으면 '바다'를 두 번이나 썼을까요?  ^.^2. 발해는 우리나라? 말갈족 나라?고구려의 유민이었던 대조영이 세운 나라 '발해'는 고구려인보다 말갈족 사람이 훨씬 더 많았어요.그러면... 고구려를 이은 나라가 아니라 말갈족 나라가 아닐까요?  (음...  애매하네...@.@)그런데 '발해'는 고구려를 이은 나라라고 합니다.

그래서 옛날에 있었던 여러 우리나라 중에서 한 나라라고 하고요.왜 그럴까요?  ^^첫 번째 이유!발해는 소수의 고구려인들이 다수의 말갈족을 지배하는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세운 사람도 고구려 사람이었던 대조영이었고요.나라를 다스리는 높은 위치의 사람들도 대부분 고구려 사람들이었거든요.그래서 발해는 '고구려를 이은 우리나라' 라고 하고요.두 번째 이유!고구려와 발해의 유물과 유적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기와 지붕에서 '수막새'라고 불리는 것이 있어요. 아래 사진에서 고구려의 수막새와 발해의 수막새 모양을 보세요.많이 비슷하죠. 발해가 고구려의 문화를 이어받았기 때문이에요.  ^^ <사진 출처 : 2015년에 도입된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교과서>그리고 위 사진에서 온돌 구조를 보면 고구려와 발해가 비슷하답니다.

발해가 고구려의 생활 모습을 이어받았다는 증거예요.  ^^아! 온돌은 뭐냐면요

아래 그림처럼 아궁이에서 불을 피우면 뜨거워진 공기가 방바닥 밑으로 지나가면서 방 안을 따뜻하게 하는 거예요. <그림 출처 : ZUM 학습백과>옛날부터 우리나라는 온돌 문화였고요. 지금도 온돌 문화랍니다.

지금은 아래 사진처럼 집을 지을 때 방바닥 안에 물이 흐르는 가느다란 관을 깔아요.그리고 보일러를 틀면 뜨거운 물이 관을 따라 흐르면서 방바닥이 따뜻해 진답니다.

^^ 증거는 또 있어요.  ^^일본에 처음 간 발해의 사신이 이렇게 말했어요."발해는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고 부여의 풍습을 지녔다.

" 라고요.그리고 일본에 보낸 국서(나라에서 보낸 서류)에서도 발해왕을 고려(고구려)의 국왕으로 표현했어요.발해인들이 스스로 발해가 고구려를 이어받은 나라임을 밝힌 거예요.  ^.^이처럼 여러 유물과 유적 그리고 기록으로 볼 때 발해는 고구려를 이어받은 나라임을 알 수 있답니다.

그래서! 신라와 발해가 함께 있던 시대를!'통일 신라 시대' 라고 하지 않고 '남북국 시대' 라고 한답니다.

  ^.^* 남북국  ⇒  남쪽 남(南) + 북쪽 북(北) + 나라 국(國)  /  남쪽과 북쪽에 각각 나라가 있음남쪽에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있었고요. 북쪽에는 고구려를 이어받은 발해가 있었고요.3.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교과서 내용 이제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교과서 내용을 읽어볼까요?--------------------------------------------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 당은 고구려 땅을 직접 다스리고자 하였고, 당에 저항하는 고구려 유민들을 강제로 당의 이곳저곳에 옮겨 살게 하였다.

  이때 고구려 장수였던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나와서 동모산 기슭에 발해를 세웠다(발해 건국, 698년).  발해는 점차 고구려의 옛 땅을 대부분 차지하였고, 고구려의 기상과 문화를 이어받았다.

        여러 유적, 유물, 기록으로 볼 때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발해가 일본에 보낸 외교 문서  일본에 처음 간 발해의 사신은 "발해는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고 부여의 풍습을 지녔다.

"라고 말하였다.

또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도 발해왕을 고려(고구려)의 국왕으로 표현하였다.

발해인들이 스스로 발해가 고구려의 계승국임을 밝힌 것이다.

-------------------------------------------  철학자)가 집필한,  로마의 건국 신화 [아이네이드Aeneis]로부터,  로마 건국(753 BCE)이래, 어떻게 공화정이 되었고, 공화정의 붕괴와 더불어  제정帝政으로까지의  과정을  빌어 서술하고자 한다.

키케로는 로마의 건국 시조로 주인공인 트로이의 영웅, 아이네아스Aen??s가 트로이로부터 로마에 와,  건국했다고 하지만, 진위 여부는 의문이 있다.

 따라서 로물루스와 레믈루스로부터 그 기원을 찾기로 한다.

  트로이 전쟁은,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다가 고고학 발굴로 인해, 실제 기원 전 13세기  역사임이 밝혀진 그리스 역사. 이 글은 기본적으로 김상근 교수의 르네상스 인문학 산책을 기초하였음을 언급하는 바입니다.

 그림은  해당 국가(지방) 뮤지엄. 박물관과 [김상근의 르네상스 인문학 산책]에서 발췌하였음 로마의 역사를 크게 나누면,왕정시대:     기원 전 753

509년공화정 시대: 기원 전  509

27년제정시대:      기원 전 72년

기원 후 476년으로 나눌 수가 있다(아우구스투스 황제

서로마 멸망까지)이 세 시기를 따로 고찰되어야 한다.

이유는 각 시대마다 추구했던 정신이 다르기 때문이다.

왕정 뒤에 오는 로마 공화정 시대의 유산이, 현대가 채택하고 있는양원제兩院制이다(미국. 영국등)  로마는,  알프스 산맥으로 인해 고립되어 있는 반도에 위치해 있다.

 이 알프스 산맥이 없었더라면, 켈트족이나 게르만 족이 수시로 넘나 들었을 것이다.

(지도에서 보이는 알프스 산맥 밑에 푸른 평지, 베네토Veneto참고). 그리스인들이 기원전 8세기에 이 지역은,  이미 페니키아(Phoenicia)와 그리스(Greece)인들이 정착할 당시에는 이미 에트루리아(Etruria)족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리스인들이 나폴리(Naples-Neo Police 새 도시라는 의미)에 정착하게 되었다.

 누워있는 에트루리안 부부석상  Etruscan couple recline on the lid of their sarcophagus 800-500 B.C., terracotta, Caere tomb  에트루리아(Etruria)족은,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 전 1세기까지 이탈리아 반도 중부에 있는 도시 국가 군. 각 도시 국가들은 종교. 언어 면에서 공통점이 있었고, 통일 국가를 형성하지는 않았지만, 12 도시 연맹이라고 하는 느슨한 연합으로, 제사. 군사적으로 서로 협력하는 사이였다.

고대 그리스인과는 다른 독자의 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당시로서는 높은 건축 기술을 가지고 있어 그 기술은 도시 국가 로마의 건설에 활용되었다, 왕정 로마의 7왕 중 최후의 3인은 에트루리아系이다.

그리스의 헤로도토스도 언급했지만, 이들은 아시아 출신의 이탈리아 원주민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밝혀진 고고학적. 조사로는 인도. 유럽어 족이 아닌 민족이 거주한 흔적이 보인다.

 이들은 기원전 4세기 로마의 세력이 강해지자. 로마에 병합되어, 최종적으로는 시민권을 획득. 동화되었다.

 에트루리아人들은,  방어를 위해 고대 지대에 위치했었다.

오르비에트. 시에나 등 전부 산 정상에 거점을 두었다.

[강건국] 결국 이렇게


  또한 에트루리아人들은, 호전적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고린도(코린트)人들과  도자기와 장신구를 수입해 들였다.

그중에서도 에트루리아人들이 수입한 고린도 양식 부체로(Bucchero 검은 도자기)는 유명했다.

     그리스 연해 "향연"에서는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가 함께 참석하고 했으나, 이들은 부부가 함께 참석했다.

 부부로 보여지는 남녀의 누워있는 석상이 남아 있어, 남녀평등사상을 가진  드문 민족이었다.

   한편, 그리스와 함께 이탈리아로 진출한, 페니키아(Phoenicia-일명 Sea People)人은, 고대의 지중해 동안에 위치한 역사적 지역명. 시리아의 일각으로, 북으로는 현 시리아. 남으로는 팔레스티나의 카르멜산에 이르는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좁고 긴 지역. 현재의 레바논 지역에 해당. 이들은 지중해 무역을 장악하였고, 지중해의 카르타고를 비롯한 많은 식민지를 가졌으며, 알파벳의 기원이 되는 문자를 그리스에 전했다.

 Etruscan civilization. A map showing the extent of Etruria and the Etruscan civilization. The map includes the 12 cities of the Etruscan League and notable cities founded by the Etruscans. The dates on the map are an approximation based on the sources I had. If the article is updated   with more accurate dates let me know and I'll modify this map to suit.                                                                                     에트루리아族 영역 고대 지도. 진 녹색(750 BC)에서 연녹색 부분(750

500 BCE)으로 확장.    기원 전 8세기에 이탈리아 나폴리에 처음 도착한 이후에도 에트루리아人이 우위를 점하고, 세력을 확장 했으나, 기원 전 4세기부터는 로마가 강해졌다.

그리스와 에트루리아 문명이 결합하여 국가의 형태를 하나씩 갖추어 성장해 나간다.

 그리고,  키케로 (Marcus Tullius Cicero, BC 106

BC 43. 가 집필한,  로마의 건국 신화 [아이네이드Aeneis]를 통해,  로마가 국가로서의 위상과 형태를 을 갖춰 나간다.

  로물루스와 레무스 Romulus and Remus 1616 . Painting by 루벤스(Peter Paul Rubens), 카피톨리니 박물관 (Capitoline Museums)테베레 강의 신의 도움을 받아, 늑대 젖을 먹고 있다가, 양치기(우측 나무밑)가 발견하게 된다는 그림.  로물루스는[Romulus 기원 전 771?

717?] 는, 레무스(Remus)와 쌍둥이로,  형 레무스가 전설적 로마의 건립자. 전설은 여러가지 버전이 있으나,  가장 유명한 전설에 의하면, 고대 그리스의 트로이 전쟁의 한 영웅, 아이네아스(Aeneas)의  손자라는 설이다.

 아이네아스의 후손은 로마의 알바 롱가라는 지역에 정착해 살았는데,  아이네아스의 아들들 누미토르(Numitor)와 아물리우스 (Amulius)는, 씨족의 우두머리 자리를 놓고 다투게 된다.

형을 죽이고 동생인 아몰리우스가 권좌를 차지하는 과정에, 형의 아들들로부터 복수 당할 것이 두려워 테베레 강에 버려진다.

이를 늑대가 젖을 물려 생명을 유지하고 있던 중, 양치기(그림 오른 쪽)에게 발견되어 성장한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대비열전(?比列?)-테세우스와 로물루스-2로물루스편에서)   기원 전 753년부터 495년까지 이어졌던 왕정시대의 7왕 들이다.

로물루스는(Romulus 기원전 771?

717?), 로마 건국의 시조이다.

  7왕 중 최후의 3인은 에트루리아系이다.

    팔라티노 언덕의 유적지의 거주지....이는 기원 전 8세기 들어와 정착한 로물루스? 혹은 그 이전의 에트루리아 거주지?이제 국가 형태를 취하고 보니, 고대 국가에서는 인구가 그 나라의 힘을 대변했었다.

그런데 로마에는 여인들이 부족했다.

여인의 납치 Giambologna raptodasabina-by 잠볼로냐Giambologna, Loggia dei Lanzi, Florence. Italy  로물루스는,   사비니(Sabine)족에게 신부감들을 청하나. 거절당하자, 연회에서 사비니 여인들을 납치한다.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 The Intervention of the Sabine Women(1799), by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루브루 박묽관Louvre Museum 젖먹이 아이를 땅에 누이고 로마와 사비니의 싸움을 필사적으로 말리는 사비니의 여인들  딸들을 빼앗긴 라틴의 나라들. 사비니人들은, 로마를 비난했으나, 로물루스는 이를 일축했다.

로마의 만행에 격분한 라틴人과 사비니人들은 거병하여, 로마 최초의 대규모 전쟁이 촉발되었다.

 이때 로마인들에게 납치되어갔던 사비니 여인들이 남편과 아버지에게 호소를 한다.

" 누가 이기던 나는 중요한 사람을 잃어야 한다"라며 눈물로 이 전쟁을 말린다.

이리하여 전쟁이 일단락된다.

그러나,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에 의한 화해도 잠시, 사비니 왕 아크론(Acron)을 죽이고, 로마를 통치하게 된다.

    로마의 정신은 개방성을 꼽으며 제국을 형성해 나가는데 힘이 되었다고 한다.

(한마디: 그럼 사비니 여인들을 빼앗고, 그 아비들과의 약속을 깨고,  죽여, 자신의 것으로 취한 것은 어떻게 설명되나? 이도 역사의 승자의 찬미에 불과)^^)    그리고 로물루스의 군사 개혁을 한다.

로마를 3구역으로 나누고, 각 구역(트리부스)별로, 기사 100명과 보병 1,000명을 조달, 차례로 정복해 나갔다.

사진은 초기 로마 병사들의 복장(로마 역사 박물관)  로물루스 Romulus, Victor over Acron, hauls the rich booty to the temple of Jupiter, by 도미니크 엥겔스(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로물루스는 원로원과 같은 자문 회의의 지지를 받아 권력을 강화했다.

많은 전쟁도 기꺼이 수행했다.

그러나 그는 전리품 중에서 어떤 것도 사유화하지 않았고, 시민들에게 그 이익이 돌아가도록 했다" 키케로《국가론》2.9.15너무 길어져서 또 끊어야겠습니다.

 7강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대비 열전(?比列?)-테세우스와 로물루스-2로물루스편과 많은 부분이 겹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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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 없이 도용할 경우,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니 불펌이나 불법 도용하지 마십시오. 우리 나라의 역사잖아요. ^^한국사가 중요한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첫째, 우리나라 역사이니까요.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있죠.둘째, 한국사(역사) 학습을 제대로 하면 현명해 지니까요. (4차시 학부모교육 때 강조한 점이죠.)셋째, 문학과 비문학의 중간 영역이어서, 비문학 읽기 능력 훈련에 전략적으로 활용하면 좋아요.넷째, 영어와 버금가게 평생 따라다니는 시험 과목이니까요. (초등, 중등, 고등, 수능, 공무원, 공기업, 군대 등등등)중요한 만큼 열심히 해야 하죠. 근데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래서 능력이 되는 한 친절히 정리해 보았습니다.

  행공신 한국사교실 05강은 '삼국의 건국 이야기' 입니다.

삼국은 3개 나라를 말해요.  ⇒  셋 삼(三) + 나라 국(國)3개 나라는 고구려, 백제, 신라인데요.이 때는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에 가야랑 중국까지 얽혀 있어서 복잡하고 정신 없어요.그래서 차근차근 잘 정리해야 해요

   T.T먼저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이 언제 세워지고 멸망했는지 연표로 감을 잡아 볼께요

  (제가 직접 만든 연표에요

  ^.^)위 연표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을 찾아보세요.고조선은 기원전 2333년에 세워졌고, 기원전 108년에 멸망했어요.고조선이 멸망한 후 우리나라 땅에는 여러 나라가 세워졌는데요.이렇게 저렇게 멸망한 후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가 힘을 겨루웠답니다.

('가야'라는 나라도 있었는데요. 고구려, 백제, 신라에 비해 힘이 약했어요...)연표를 확대해서 볼까요

  ^.^ 세 나라 중에서는 신라가 가장 먼저 세워졌고요. 그 다음에 고구려, 마지막으로 백제가 세워졌죠. 그렇게 700년 정도 삼국이 힘을 겨루다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고 통일을 이뤘답니다.

그럼 세 나라가 어떻게 세워졌는지부터 차근차근 살펴 볼까요?  ^.^[5학년 2학기]  1. 우리 역사의 시작과 발전(3) 고구려, 백제, 신라의 건국과 발전(1) 1. 고조선 다음에는 어떤 나라?  ?  ?기원전 108년... 고조선이 멸망했어요...  중국(그 당시 중국에는 '한'이라는 나라가 있었어요

)의 침략을 받아 멸망했답니다.

.. T.T<그림 출처 : 역사랑 문화랑 전집 중 '이현세 만화 한국사'>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였던 고조선은 중국 한나라의 침략을 받아 멸망했지만!곧바로 다른 나라들이 생겼답니다!   (화이팅!!!)아! 그런데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가 바로 세워진 건 아니에요.   ^^!다른 여러 나라들이 먼저 생겼고요. 나중에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만 남게 되었어요.아래 지도는 가볍게 보세요.고조선이 있었고요.고조선의 멸망 후 여러 나라가 생겼다 사라졌고요.고구려, 백제, 신라의 힘이 세졌답니다.

  ^.^   초등학교 때에는 '고조선 다음으로 여러 나라들이 생기고 사라지면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만 남았다.

' 정도로 알고 있으면 되고요.부여, 옥저, 동예, 마한, 진한, 변한 등에 대해서는 중학교 때 배운답니다.

 그런데 중학교 한국사를 대비한다면 '이현세 만화한국사'에 나오는 부여, 옥저, 삼한 부분을 읽어 두는 게 좋아요.<이현세 만화한국사>  1. 선사 시대와 고조선10장 왕을 내쫓아라!  (부여 이야기)11장 신부 구출 작전  (옥저 이야기)12장 축제를 함께 즐겨요  (삼한 이야기)아! 단군왕검 이야기 기억하나요?하늘 나라를 다스리는 환인에게 환웅이라는 아들이 있었고, 환웅과 웅녀가 결혼해서 단군왕검을 낳았죠.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웠고요.고조선을 세운 단군왕검의 할아버지는 하늘 나라를 다스리는 분이라는 이야기

  ^.^나라를 세운 왕에게는... 뭔가 특별한 이야기가 있으면 좋아요.고구려는 주몽이 세웠다고 했죠? 주몽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도 있답니다.

이런 이야기에요

  ^.^         2. 고구려의 건국 이야기 (주몽의 외할아버지는 물을 다스리는 신?) 고구려가 세워지기 전에 '부여'라는 나라가 있었어요.부여는 '금와왕'이 다스리고 있었고요.어느 날 부여의 금와왕은 한 여인을 만났어요.이 여인은 물을 다스리는 신 '하백'의 딸이었어요.  <그림 출처 : 역사랑 문화랑 전집 중 '이현세 만화 한국사'>부여의 금와왕은 유화를 궁에 데려갔어요.그런데 신기하게도 햇살이 유화의 몸을 계속 비추었어요.유화가 그늘로 가도 햇살이 따라와 유화의 몸을 비추었어요. 신기하죠? <그림 출처 : 역사랑 문화랑 전집 중 '이현세 만화 한국사'>거짓말 아니냐고요?음

 건국 이야기랍니다.

건국 이야기는 신기하고 멋있는 이야기에요

^^!이날 이후 유화는 아이를 배어 배가 점점 불러 왔어요. 그리고 얼마 뒤...  낳았어요...  낳았는데...  알을 낳았어요.  (허걱!)또 얼마 뒤 알에서 사내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어요.  (세상에나!)  알에서 태어난 사내아이는 활을 매우 잘 쏘았어요. 심지어는 어른들도 당해낼 수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사내아이의 이름을 '주몽'이라 지었어요.'주몽'은 부여에서 활 잘 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거든요. 그런데...활 잘 쏘는 주몽을 미워하여 죽이려 하는 자들이 있었어요.바로 금와왕의 아들들이었답니다.

(금와왕의 아들이라면... 부여의 왕자들이네요...)<그림 출처 : 역사랑 문화랑 전집 중 '이현세 만화 한국사'>이 사실을 알아챈 주몽의 어머니(유화)는 어느 날 밤 주몽을 불렀어요."주몽아, 사람들이 너의 재주를 샘내어 너를 해칠 생각만 하는구나. 그러니 다른 곳으로 떠나 네 뜻을 펼치거라."주몽은 어머니 유화 부인의 말에 따라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길을 떠났어요. 주몽과 그의 일행들이 호수에 도착했을 때 부여의 군사들이 뒤에서 쫓아오고 있었어요.길이 막힌 주몽이 "나의 어머니는 물의 신 하백의 딸이다.

오늘 도망하는데, 추격자들이 다가오니 어찌하면 좋은가?" 라고 소리치자 물고기와 거북이 다리를 만들어 건너게 해 주었어요. <그림 출처 : 역사랑 문화랑 전집 중 '이현세 만화 한국사'>이렇게 부여를 떠나 남쪽으로 내려온 주몽 일행은 졸본에 도착했어요.그리고 졸본에서 고구려를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답니다.

^.^     3. 고구려는 어디에 세웠나?  ?  ?'고구려' 라는 나라를 세운 사람은 주몽이에요.  (이 아이에요... ^^!)<그림 출처 : 역사랑 문화랑 전집 중 '이현세 만화 한국사'>주몽은 '졸본'이라는 곳에서 고구려를 세웠어요.아래 지도에서 '졸본'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세요.  ^.^ 위 사진을 보세요.산 위에 바위절벽이 성벽처럼 둘러져 있죠?낮은 쪽에만 성벽을 쌓아도 적의 침략을 막기에 아주 좋은 곳이에요.이 성의 이름은 '흘승골성'이에요. (흘승골성은 오녀산성이라 부르기도 해요.)이 성은 졸본에 있고요.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성이랍니다.

즉, 주몽은 졸본에 있는 흘승골성(오녀산성)에서 고구려를 건국했어요. (짜잔

 자랑스러운 나라 고구려가 등장했습니다

  ^.^)흘승골성(오녀산성)의 바위절벽 위쪽에는 평평한 땅이 축구장 30개 만큼이나 넓게 펼처져 있어서 평소에 사람들이 살기에도 아주 좋았어요.  (이런 축구장보다 30배나 넓은 거에요

  ^.^)  4. 백제의 건국 이야기 (주몽의 아들도 나라를 세우다!) 이번에는 '백제'를 세운 왕의 특별한 이야기를 볼까요?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은 '부여'라는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부여에서 결혼도 했고요. 아들도 낳았어요.주몽이 부여에서 낳은 아들의 이름은 '유리'에요. 주몽이 부여 왕자들을 피해 길을 떠날 때 아내와 아들 유리는 부여에 남겨 두어야 했어요.떠나기 전에 검을 두 조각으로 부러뜨린 후 한 조각은 아내에게 주었어요.나중에 유리가 크면 남겨 둔 검 조각을 가지고 자신을 찾으라고 한 거에요.그런 후 졸본으로 내려와 고구려를 건국했어요.고구려를 세운 주몽은 졸본에서 다른 여자와 결혼도 했어요.왕이 되었으니 나라를 물려줄 아들을 낳아야 했을 거에요.주몽은 졸본에서 고구려의 왕이 된 후 아들 둘을 낳았어요.큰아들의 이름은 '비류'였고요. 작은 아들의 이름은 '온조'였어요.당연히 비류와 온조는 고구려의 왕자들이었죠.그런데..."아버님, 저를 기억하십니까?"주몽이 고구려를 세우기 전 부여에서 낳았던 아들 유리가 주몽을 찾아 온 거에요. <그림 출처 : 역사랑 문화랑 전집 중 '이현세 만화 한국사'>"그래, 네가 가지고 온 검과 내가 간직하고 있는 부러진 검을 맞춰 보니 딱 맞는구나. 너는 내 아들 유리가 분명하다.

"주몽은 아들이 셋이었어요.부여에서 먼저 낳은 아들이 유리였죠. 유리가 첫째 아들인 셈이고요.고구려를 세운 후 낳은 비류가 둘째 아들, 온조는 셋째 아들이었어요.옛날에 왕들은 아들이 여럿인 경우 큰아들에게 왕의 자리를 물려 주었어요.고구려를 세운 주몽도 첫째 아들인 유리에게 왕의 자리를 물려 주겠다고 한 거에요.이 소식을 들은 셋째 아들 온조가 둘째 아들인 비류에게 말했어요."형님, 고구려에 계속 있다가는 뒷날 유리의 미움을 받게 될지 모르니 다른 곳으로 떠납시다.

.."둘째 아들인 비류도 온조와 같은 생각이었어요.비류와 온조는 따르는 백성들과 함께 남쪽으로 길을 떠났어요. 남쪽으로 내려온 비류와 온조는 어느 곳에 자리를 잡을 것인지 의논했었어요.그런데...형인 비류는 바닷가인 미추홀에 자리잡기를 원했지만, 동생은 온조는 하남위례성에 자리잡기를 원했어요.결국 두 형제는 각자 원하는 곳에 자리를 잡기로 했지요.비류는 일부 백성들과 함께 미추홀에 자리를 잡았어요. 그런데..."미추홀은 바닷가라서 습기가 많고 물이 짜구나. 물이 짜서 농작물이 잘 자라지 못하니 백성들이 편히 살 수가 없네...  내가 이걸 미처 몰랐구나..."비류는 너무나도 부끄럽고 후회스러워 그만 죽고 말았어요.  (불쌍해라...  T.T)비류가 죽자 그의 신하와 백성들은 다시 온조에게로 돌아갔어요. 한편 동생 온조는 위례성을 도읍으로 정하고 나라 이름을 '십제'로 정했어요.'도읍'은 한 나라의 수도를 말해요.* 도읍  ⇒  도시 도(都) + 고을 읍(邑)그리고 '십제'는 열 명의 도움을 받았다는 의미가 있을 건데요.온조가 나라를 세울 때 열 명의 신하들이 힘을 모았다고 해요.* 십제  ⇒  열 십(十) + 도움 제(濟)온조가 위례성을 도읍으로 정하고 '십제'라는 나라를 세워 다스리고 있는데, 형 비류가 죽은 거에요.비류의 신하와 백성들이 온조에게 돌아왔고요.온조는 돌아온 신하와 백성들을 기꺼이 돌봐 주었어요. 그리고 십명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함께 도운다는 의미에서 나라 이름도 '백제'로 고쳤답니다.

* 백제  ⇒  일백 백(百) + 도움 제(濟)백제를 건국한 온조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였습니다

^.^(비류와 온조가 헤깔리는데요. 온화한 온조가 백제의 왕이 되었다

  이러면 어때요?  ^^)     5. 백제는 어디에 세웠나?     ?백제에 대한 기록은 많지가 않아요. 그래서 백제가 시작된 곳이 어느 곳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해요.그런데 서울 송파구 풍납동에서 백제 시대에 만들어진 성의 흔적이 발견되었어요. 흙으로 만든 성이어서 토성이라고 부른답니다.

* 토성  ⇒  흙 토(土) + 성 성(城)바로 이거에요!  (한강 바로 옆이에요

  ^.^)  풍납동에서 발견되었고, 흙으로 만든 토성이어서 '풍납토성'이라 불러요.온조가 위례성에서 백제를 세웠다고 했죠.역사학자들은 풍납토성이 위례성의 일부일 거라고 추정하고 있답니다.

서울에 있는 풍납토성이 위례성의 일부라면! 백제는 (지금의) 서울에 세워진 거죠.아! 지금의 서울을 옛날에는 '한성'이라고 불렀어요.  한강이 있어서 한성이라고 부른 듯 하네요

  ^.^     제가 먼저 쓸 글은 바로 4강 결정전 격이었던 동국대와 건국대의 시합입니다.

두 팀은 10승 4패로 동일한 승률을 지니고 있었고 서로 다른 조에 편성되었기 때문에 이 시합으로 4강이 결정되는 경기였습니다.

특히 작년에 다크호스로 나타났던 두 팀의 첫 시합이자 마지막 시합이었던 이 경기는 서로의 스타일이 잘 나타나는 경기였습니다.

그럼 한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2015 대학농구리그 후반기 9월 17일에 있던 건국대와 동국대의 경기는 충주 건국대 체육관에서 열렸습니다.

당시 건국대는 바로 직전 경기에서 류영환과 김진유, 장문호의 활약으로 3월 중순부터 연승을 달려온 고려대에게 일격을 날리며 기세를 타고 있었습니다.

또한 신효섭이 부상으로 나오지 못하다가 이 경기에서 복귀를 하게 되면서 건국대는 온전한 라인업을 내세울 수 있었습니다.

반면, 동국대는 1학년 에이스 변준형이 부상으로 경기에 못나오는 상황이었지만 진통제를 맞으면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강건국] 사실은.



동국대의 입장에선 6강 플레이오프에 선착할 수 있는 경기였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건국대 선발 라인업: 이진욱(현 건국3)-김진유(현 건국4)-신효섭(프로 미지명)-장문호(현 건국4)-류영환(울산 모비스)동국대 선발 라인업: 변준형(현 동국2)-김광철(현 동국4)-이길수(실종..)-서민수(원주 동부)-이대헌(인천 전자랜드) -출처 오센. 건국대 이진욱-1Q: 경기 초반 류영환의 점퍼로 시작한 건국대는 3-2 지역방어를 통해 외곽이 약한 동국대를 공략했습니다.

특히 사령관 이진욱의 빠른 스피드를 통한 공격은 효과적이었습니다.

직전 경기에서 고려대를 제압한 건국대의 기세는 거셌고 동국대는 낮은 야투율로 인해 끌려가는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동국대의 쌍두마차인 서민수와 이대헌이 장문호와 류영환에게 막히면서 동국대는 답답한 경기를 펼쳤습니다.

동국대의 젊은 에이스 변준형은 부상 여파가 심한지 초반에는 부진했습니다.

이진욱에게 계속 돌파당하면서 무리한 파울을 했고 끝내 1쿼터에 2개의 파울을 해버렸습니다.

또 동국대의 엄청난 턴오버는 건국대에게 공짜 득점을 내주었습니다.

하지만 변준형은 멋진 돌파를 해내면서 이진욱에게 한 방 먹였습니다.

김광철의 존재감이 없어서 변준형의 부담감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출처 인스타 바스켓 걸. 동국대 이대헌-김승준과 정호상을 투입한 동국대는 외곽슛을 꺼내들었고 이대헌의 안정적인 골밑 득점으로 차츰 따라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주 득점원인 김진유가 팀의 살림꾼 역할을 도맡아 하면서 안정감을 찾은 건국대는 끝내 19:16으로 앞선 채 1쿼터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1Q 종료건국대학교 : 동국대학교19            162Q: 변준형과 김광철은 경기 초반부터 계속해서 외곽으로만 볼을 돌리면서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서민수가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고 이대헌은 외로워 보였습니다.

반면에 건국대는 빠른 트랜지션 게임과 류영환을 중심으로 한 세트 포지션 게임을 선보이면서 점수차를 늘려갔고 동국대는 엄청난 숫자의 실책을 저지르면서 자멸하였습니다.

건국대의 서민수 고립시키기 작전은 완벽했고 덕분에 동국대는 손이 묶인 채 공격을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건국대 특유의 지역방어는 고려대도 쩔쩔맸던 것으로 외곽슛이 없는 팀에게는 개미지옥과 다름없는 전술입니다.

동국대는 3점슛을 꾸준히 넣어줄 선수가 단 한명도 없기 때문에 이러한 전술에 말려들었습니다.

여기에 득점본능을 감추고 있던 김진유가 몰아치면서 동국대는 정신을 못차렸습니다.

김진유는 멋진 패싱력과 확실한 득점력을 선보이면서 대학 최고의 공격형 가드가 누군인지를 증명하였습니다.

김진유와 신효섭의 백투백 3점슛이 터지면서 기세가 오른 건국대는 동국대의 계속된 턴오버를 이용해 손쉽게 득점했습니다.

부상여파로 인해, 이진욱과 변준형의 제대로 된 비교는 어렵겠지만 포인트 가드로서의 능력은 하나도 빠짐없이 이진욱의 완승이었습니다.

2Q 종료건국대학교 : 동국대학교40            293Q: 전반 내내 건국대의 수비를 공략하지 못했던 동국대는 3쿼터에도 여전했습니다.

변준형마저 부진한 상황에서 김광철이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면서 이대헌에게 큰 부담감이 가중되었습니다.

특히 변준형은 자유투마저 들어가지 않으면서 득점에서도 도움을 주지 못하였습니다.

장신 슈터 김승준의 슛마저 계속 실패하면서 점수차를 줄이지 못했던 동국대는 변준형의 돌파로 활로를 찾으려 하였습니다.

 -출처 점프볼. 동국대 변준형-3쿼터 중반부터 동국대의 수비가 타이트해지면서 건국대가 전반전 당시 동국대의 모습과 같아졌습니다.

또 변준형과 이대헌의 콤비 플레이가 나오면서 흐름을 되찾은 동국대는 장문호의 파울트러블로 인해, 골밑을 집중적으로 공략하였습니다.

하지만 교체되어 들어온 김재중이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쉽게 득점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흐름은 동국대의 것이었지만 득점을 못하면서 3쿼터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3Q 종료건국대학교 : 동국대학교55            444Q: 3쿼터에서 흐름을 되찾아 온 동국대는 이대헌의 연속 턴오버로 찬물을 끼얹듯 했습니다.

특히 슈터였던 김승준과의 플레이에서 2번 연속으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더 치명적이었습니다.

건국대 선수들은 좋은 모습을 계속해서 보인 반면에 동국대 선수들은 최악의 모습을 보이면서 이길 수 있는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에이스 김진유의 미친듯한 몰아치기로 이대헌과 서민수의 추격을 저지했고 류영환이 꾸준히 득점을 해주었습니다.

4쿼터 들어 건국대의 야투가 더욱 좋아지면서 사실상 점수차는 더 벌어졌고 주전 비주전을 가리지 않는 선수구성을 흥미로웠습니다.

1분 30초를 남기고 김진유의 화려한 아이솔레이션 공격은 오늘 경기의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경기 막판 변준형이 연속 3점슛을 넣었지만 이미 경기가 마무리되어 가는 상황에서 아무런 도움이 안되었습니다.

동국대의 마지막 쓸데없는 파울작전으로 시간이 좀 지체되었지만 경기는 76대68로 건국대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4Q 종료건국대학교 : 동국대학교76            68-주요 선수 기록-동국대변준형 21득점 6리바운드 1어시스트 1굿디펜스 3턴오버이대헌 26득점 15리바운드 1어시스트 1스틸 8턴오버서민수 12득점 9리바운드 4어시스트 3스틸건국대이진욱 14득점 3리바운드 2어시스트 3스틸 2굿디펜스류영환 16득점 5리바운드 1스틸 4굿디펜스 2블락장문호 14득점 5리바운드 1스틸 3굿디펜스 2블락김진유 22득점 7리바운드 4어시스트 2굿디펜스 6턴오버-대학농구연맹-?º 역사학과 수석졸업?º 현) 한국역사문화 연구회 학술회장º 17C 조선의 포수 훈련방식과 군율 2014(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 탑그레이드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강의 수강 대상.?º 한국사에 관심 있는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º 강좌 하나로 심화개념 및 문제풀이를 한번에 완성하고자 하는 분º 행정외무고시 등 국가고시 공무원 시험 준비생 및 입사 시험 취업 준비생?º 초/중등 임용고시 준비생  √ 탑그레이드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강의 주요내용.??제1강 역사의 이해제2강 선사시대제3강 고조선과 초기국가제4강 고구려제5강 백제제6강 신라 상대제7강 삼국통일제8강 발해제9강 통일신라(중대-하대)제10강 고대의 제도와 문화제11강 남북국의 제도와 문화제12강 고려의 건국과 통치체제 정비제13강 고려전기의 발전<문벌귀족 사회>제14강 무신정권과 원간섭기제15강 고려후기의 개혁과 경제생활제16강 중세(고려)의 사회화 문화제17강 조선의 건국과 발전제18강 사림의 들장과 붕당의 성립제19강 양란의 극복과 조선후기 정치변화제20강 조선의 사회와 경제제21강 조선의 문화와 사상제22강 대원군 시기의 정책제23강 개항기의 발전제24강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개혁제25강 대한제국과 독립협회제26강 국권침탈기제27강 근대문물과 근대문화의 형성제28강 일제의 식민지 지배 정책제29강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제30강 무장 독립 투쟁제31강 일제 강점기의 사회와 문화제32강 해방과 대한민국 정부수립제33장 한국전쟁과 시민혁명제34장 군사독재와 경제개발제35장 민주주의의 발전제36장 북한과 통일문제 <종강>  √ 탑그레이드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강의 교재.  ???더 자세한 내용을 보고 싶다면 밑에 탑그레이드를 클릭하세요.    대조영_천통동모산에서 건국(698) 진 -> 발해이원적 구조 1. 지배층: 고구려계(소수) 2. 피지배층: 말갈계(다수)무왕2대. 대무예_인안독자적 연호 사용북만주 일대 장악문왕3대. 대흠무_대흥천도(중경->상경->동경)주자감 설치(국립대학)성왕5대. 대화여다시 상경천도! - 유적 제일 많이 발견됨선왕10대. 대인수_건흥대조영 직계에서 대야발 직계로해동 성국!!행적 구역 개편 ? 5경 15부 62주대부분의 말갈족 복속멸망926거란 야율아보기에 의해.<발해의 통치구조>중앙?<사진출쳐=네이버지식백과>* 정당성은 최고 회의 기구.>> 발해의 통치제도는 당의 3성6부제를 모방했지만 독자적인 면이 있다.

- 운영(이원적 운영)과 명칭(유교적)은 독자적이다.

지방은 5경 15부 62주. ++촌(촌주)는 말갈족이 자치적으로 운영(사또 파견 NO!!)군사는 10위(중앙군)와 지방군(지방관이 지휘)으로 구성.그 외 주요부처 암기1대 7시 1원 1감 1국!! 《대한민국 건국 60년의 재인식》은 2008년 3월부터 6월까지 매주 한 차레 '건국 60년 기념 강의'를 했던 내용을 엮은 것으로 건국 60년을 관통하는 다양한 문제를 소개한다.

해방에서 건국으로 이어지는 3년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한민국을 세운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이 이룬 업적은 무엇인지 알려준다.

또한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되는 과정과 원칙, 이승만 정부 이래 세계적인 경제성장은 어떤식으로 이루어졌으며, 국제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은 어떻게 진화했는지 등을 살펴본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저자소개강경근(姜京根) 숭실대학교 법학과 교수김광석(金光石) 주식회사 참존 대표이사 회장, 성신여자대학교 석좌교수김세중(金世中) 연세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김영호(金暎浩) 성신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김일영(金一榮)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노재봉(盧在鳳) 성신여자대학교 객원교수, 전 국무총리, 전 서울디지털대학교 총장안병직(安秉直) 뉴라이트재단 이사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알렉산더 버시바우(ALEXANDER VERSHBOW) 주한 미국대사유영익(柳永益)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석좌교수이영훈(李榮薰)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이인호(李仁浩) KAIST 김보정 석좌교수, 전 주러시아대사, 전 주핀란드대사 전상인(全相仁)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인터넷 교보문고 제공]목차1강 대한민국 건국의 세계사적 의의노재봉 2강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적 과정김일영 3강 건국사관과 분단사관김영호 4강 이승만 박사와 대한민국의 건국유영익 5강 대한민국 건국헌법의 제정과 내용강경근 6강 대한민국 건국의 경제사적 의의안병직 7강 해방 공간과 보통사람의 일상생활전상인 8강 대한민국의 건국과 압축민주화김세중 9강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이영훈 10강 대한민국과 기업인의 역할김광석 11강 한미관계의 형성과 발전버시바우 12강 대한민국의 세계적 위상과 역할이인호[예스24 제공]출판사 서평대한민국 건국을 아십니까?올해는 대한민국이 건국된 지 60년이 되는 해이다.

사람으로 치자면, 이제 우리나라도 환갑을 맞은 셈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언제, 어떻게 건국되었느냐는 물음에 자신 있게 대답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믿기지 않으면, 당장 주위에 있는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라. 열에 아홉은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그럴 만도 하다.

우리말 사전에도 광복절은 있어도, 건국절은 없다.

심지어 대부분 학교에서도 건국의 역사는 등한시하기 일쑤다.

왜 우리는 건국을 기억하지 못할까? ‘8월 15일은 광복절’이라고 뇌리에 너무도 깊이 새겨졌기 때문일까? 우리 민족은 1945년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 그로부터 정확하게 3년이 흐른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정부가 출범했다.

하지만, 광복에서 건국에 이르는 이 기간에 나라가 몸살을 앓고, 수많은 선열이 상처를 받으며 천신만고 끝에 국가가 섰지만, 그 고통스러웠던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왜 이런 기억의 공백이 생겼을까? 마치 지우개로 지워버린 것처럼, 대한민국 국민에게서 건국의 기억은 사라졌다.

심지어 온 국민이 집단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이 책은, 그런 의문과 의심에서 출발했다.

국가 원로와 학자들이 들려주는 건국 이야기대한민국의 건국은 우리 민족사에서 전대미문의 혁명적 사건이었다.

그것은 이전 왕조 국가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근대화된 정치체제나 제도적 기반이 성립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한국인이 스스로 사회적 능력을 배양하여 자기 운명을 주도적으로 결정하고, 주권적 주체로서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근대적 개념의 국민으로 새롭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해방 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출발한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원동력도 바로 그런 한국인 개개인의 존재론적 변화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궁금한 점이 많다.

해방에서 건국으로 이어지는 3년간 한반도에서는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2차 대전의 종전 이후 남한과 북한을 점령한 소련과 미국은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을까? 대한민국을 세운 건국의 아버지들은 어떤 사람이었으며 그들이 이룬 업적은 무엇일까? 대한민국 헌법은 어떻게 제정되었으며, 가장 근간이 된 원칙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승만 정부 이래 여러 차례 정권이 교체되면서 전 세계가 놀라는 경제발전은 어떻게 이룩한 것일까? 권위주...(하략)[예스24 제공]책속으로그리고 한반도를 점령하되 어떻게 나누어서 점령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제기되는데요, 알다시피 38선을 기준으로 분할점령하는데, 그게 과연 언제 결정되었느냐는 것이지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도 학자들 사이에 약간의 이견이 있어요. 확정된 것은 아닌데, 가장 최근의 연구결과를 보면 대략 포츠담Potsdam 회담에서 결정된 것으로 보여요. 전에는 미국과 소련이 얄타 회담에서 그런 밀약을 했다는 설이 유력했죠. 그런데 얄타회담 기록을 아무리 뒤져봐도 소련이 참전한 대가로 미국이 소련에 한반도의 반을 잘라준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아요. 결국, 독일이 전쟁에서 패한 다음에 열린 포츠담 회담에서 한반도 분할 문제가 결정되었다고 보는 게 옳은 거죠. (45쪽, '2.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적 과정_김일영' 중에서) [알라딘 제공]?º 역사학과 수석졸업?º 현) 한국역사문화 연구회 학술회장º 17C 조선의 포수 훈련방식과 군율 2014(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 탑그레이드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강의 수강 대상.?º 한국사에 관심 있는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º 강좌 하나로 심화개념 및 문제풀이를 한번에 완성하고자 하는 분º 행정외무고시 등 국가고시 공무원 시험 준비생 및 입사 시험 취업 준비생?º 초/중등 임용고시 준비생  √ 탑그레이드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강의 주요내용.??제1강 역사의 이해제2강 선사시대제3강 고조선과 초기국가제4강 고구려제5강 백제제6강 신라 상대제7강 삼국통일제8강 발해제9강 통일신라(중대-하대)제10강 고대의 제도와 문화제11강 남북국의 제도와 문화제12강 고려의 건국과 통치체제 정비제13강 고려전기의 발전<문벌귀족 사회>제14강 무신정권과 원간섭기제15강 고려후기의 개혁과 경제생활제16강 중세(고려)의 사회화 문화제17강 조선의 건국과 발전제18강 사림의 들장과 붕당의 성립제19강 양란의 극복과 조선후기 정치변화제20강 조선의 사회와 경제제21강 조선의 문화와 사상제22강 대원군 시기의 정책제23강 개항기의 발전제24강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개혁제25강 대한제국과 독립협회제26강 국권침탈기제27강 근대문물과 근대문화의 형성제28강 일제의 식민지 지배 정책제29강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제30강 무장 독립 투쟁제31강 일제 강점기의 사회와 문화제32강 해방과 대한민국 정부수립제33장 한국전쟁과 시민혁명제34장 군사독재와 경제개발제35장 민주주의의 발전제36장 북한과 통일문제 <종강>  √ 탑그레이드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강의 교재.  ???더 자세한 내용을 보고 싶다면 밑에 탑그레이드를 클릭하세요.   22.  [제46회 전국추계대학축구연맹전] 150722 36강전건국대 VS 동국대     22일을 시작으로 “제46회 전국추계대학축구연맹전” 본선 토너먼트 경기가 시작됐다.

22일 펼쳐진 경기는 총 4경기로 추첨으로 32강 이전에 36강을 치르게 된 8팀의 매치였다.

그리고 오후 2시 30분, 강원 태백시 고원2구장에서 각각 3조 1위, 8조 2위로 본선에 진출한 건국대학교와 동국대학교의 36강 경기가 펼쳐졌다.

정규시간 안에 양 팀 모두 득점을 하지 못하면서 경기는 승부차기로 이어졌고, 건국대가 승부차기에서 골키퍼 안지현(1, GK)의 활약으로 추계연맹전의 전통 강호 동국대를 누르고 32강에 진출했다.

      전반전에는 양 팀 모두 결정적인 장면을 못만들어냈다.

중원에서 뺏고 뺏기는 볼싸움만 계속될 뿐 제대로 된 공격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동국대는 특유의 빠른 역습으로 공격을 전개시켜보려했으나 번번이 건국대 수비진들에게 막혔다.

그 과정에서 건국대 최정원(20, DF)의 수비가 돋보였다.

 후반 중반이 지나서야 건국대의 제대로 된 공격이 나오기 시작했다.

후반14분, 건국대 김운(7, FW)이 슈팅을 날려봤으나 골대 옆으로 빗겨갔다.

후반19분에도 건국대 김상근(5, DF)이 날카로운 슈팅을 때렸지만 동국대 골키퍼 정다훈(1, GK) 정면이었다.

 양 팀은 선수들을 교체하며 분위기를 바꿔보려하는 모습이었다.

후반27분, 왼쪽 코너킥 상황에서 동국대 안수민(8, MF)이 올린 볼을 남희철(18, FW)이 정확하게 헤딩했으나 건국대 골키퍼 안지현이 선방했다.

후반32분에는 건국대 한지원(8, MF)이 강력한 중거리 슈팅을 날렸지만 오른쪽 골포스트를 맞고 튕겨나왔다.

    후반전은 건국대가 조금 더 밀고 올라가는 모습이었지만 후반 막바지에 들어서는 동국대의 반격이 거세졌다.

후반34분, 패널티박스 중앙 프리킥 상황에서 동국대 이제승(14, DF)이 건국대 골문을 향해 정확한 슈팅을 차봤으나 골키퍼 안지현이 펀칭으로 걷어냈다.

결국 후반전까지 득점없이 경기가 0-0 스코어로 그대로 종료되면서 승부차기가 이어졌다.

    승부차기에서 건국대는 4번째 키커까지 모두 성공하고 골키퍼 안지현이 동국대의 첫 번째, 세 번째 키커 김학승(7, MF)과 안수민의 공을 막아내면서 PK스코어 4-1로 건국대가 동국대를 누르고 32강에 진출하게 됐다.

건국대는 내일 오후 2시 30분 강원관광대 구장에서 명지대와 32강 토너먼트 대결을 펼치게 된다.

    <승부차기표>      1  2  3  4  5  건국대  김재석(4, DF)  한지원  김상근  최정원  -    O  O O O    동국대  김학승  김동기(21, MF)  안수민  -  -   X   O  X       ? ? ??글·사진/ 김보미(KUSF 대학생 단 명예/ 단국대학교 정치외교학 ?   ⇒  셋 삼(三) + 나라 국(國)3개 나라는 고구려, 백제, 신라인데요. 이 때는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에 중국까지 얽혀 있어서 복잡하고 정신 없어요.그래서 차근차근 잘 정리해야 해요

   T.T먼저 삼국이 언제 세워지고 멸망했는지 연표로 감을 잡아 볼께요

  (제가 직접 만든 연표에요

  ^.^)  위 연표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을 찾아보세요.고조선은 기원전 2333년에 세워졌고, 기원전 108년에 멸망했어요. 고조선이 멸망한 후 우리나라 땅에는 잠깐 동안 여러 나라가 세워졌는데요.이렇게 저렇게 멸망한 후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가 힘을 겨루웠답니다.

('가야'라는 나라도 있었는데요... 고구려, 백제, 신라에 비해 힘이 약했어요...) 연표를 확대해서 볼까요

  ^.^   세 나라 중에서는 신라가 가장 먼저 세워졌고요. 그 다음에 고구려, 마지막으로 백제가 세워졌죠. 그렇게 700년 정도 세 나라가 힘을 겨루다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고 통일을 이뤘답니다.

 고구려와 백제는 친척 관계에요. 자세한 내용은 건국 이야기에 나오고요. 교과서에는 가야의 건국 이야기도 나온답니다

  ^.^ [역사랑 문화랑]  이현세 만화한국사   2권 삼국 시대(상)  (30

133쪽)- 2장  주몽, 고구려를 일으키다- 3장  형제가 세운 나라- 4장  출생의 비밀- 5장  구지봉의 노랫소리 '2장  주몽, 고구려를 일으키다' 에는 다음과 같은 교과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주몽 이야기(고구려)  하늘 신의 아들인 해모수와 물을 다스리는 신의 딸인 유화 사이에서 한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그는 알을 깨고 나왔는데, 어릴 때부터 활을 잘 쏘아 사람들은 그를 주몽이라고 불렀다.

  다른 왕자들이 주몽을 미워하여 죽이려고 하자, 주몽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와 졸본에 고구려를 세웠다.

-------------------------------------------------* 중학교 교과서 내용 *  부여의 금와왕은 이상히 여겨 유화를 방에 가두었다.

햇빛이 그녀를 비추었다.

유화가 피하여도 따라와 비추었다.

그로부터 태기가 있어 커다란 알 하나를 낳았다.

..... 알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일곱살이 되자 더욱 의젓해졌다.

스스로 활을 만들어 쏘았는데 백발백중이었다.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주몽이라고 하였다.

.....  길이 막힌 주몽이 "나는 천제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하백의 딸이다.

오늘 도망하는데, 추격자들이 다가오니 어찌하면 좋은가?"라고 소리치자 물고기와 거북이 다리를 만들어 건너게 해 주었다.

..... 왕이 졸본천에 이르렀다.

.....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고 하고 성을 고씨라고 하였다.

                   '3장  형제가 세운 나라' 에는 다음과 같은 교과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온조 이야기(백제)  주몽에게는 부여에서 낳은 아들 유리, 졸본에서 낳은 아들 비류와 온조가 있었다.

유리가 주몽을 찾아와 임금을 이을 자리에 오르자 비류와 온조는 고구려를 떠났다.

형인 비류는 미추홀에 자리를 잡았고, 동생인 온조는 위례성을 도읍으로 정하였다.

  비류가 자리 잡은 미추홀은 물이 짜서 농사짓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비류가 죽은 뒤 비류를 따르던 사람들은 온조에게 왔고, 온조는 백성이 많아지고 나라가 커지자 나라 이름을 십제에서 백제로 바꾸었다.

-------------------------------------------------              '4장  출생의 비밀' 에는 다음과 같은 교과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신라 박혁거세 이야기  여섯 마을로 이루어진 작은 나라가 있었다.

어느 날, 이 나라의 한 촌장이 나정이라는 우물가에서 울고 있는 흰말과 커다란 알을 발견하였다.

  얼마 후 알에서 남자아이가 나왔다.

촌장들은 세상을 밝게 한다는 뜻에서 이 아이에게 혁거세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사람들은 그를 하늘에서 내려온 아이라고 생각하여 사로국(신라의 옛 이름)의 첫 번째 왕으로 삼았다.

------------------------------------------------------------         '5장  구지봉의 노랫소리' 에는 다음과 같은 교과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여섯 왕 이야기(가야)  마을 사람들은 하늘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그러지 않으면 구워 먹겠다.

'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춰라. 그러면 너희는 하늘에서 내려온 대왕을 맞이하여 기뻐서 뛰게 될 것이다.

" 이에 사람들은 나무 막대기로 땅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그러자 하늘에서 붉은 보자기에 싸인 금빛 상자가 내려왔다.

상자에는 여섯 개의 황금색 알이 있었는데, 며칠 뒤 알에서 남자아이 여섯 명이 나왔다.

가장 먼저 태어난 아이가 김수로였다.

아이들은 자라서 여섯 가야국의 왕이 되었다.

------------------------------------------------             ?º 역사학과 수석졸업?º 현) 한국역사문화 연구회 학술회장º 17C 조선의 포수 훈련방식과 군율 2014(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 탑그레이드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강의 수강 대상.?º 한국사에 관심 있는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º 강좌 하나로 심화개념 및 문제풀이를 한번에 완성하고자 하는 분º 행정외무고시 등 국가고시 공무원 시험 준비생 및 입사 시험 취업 준비생?º 초/중등 임용고시 준비생  √ 탑그레이드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강의 주요내용.??제1강 역사의 이해제2강 선사시대제3강 고조선과 초기국가제4강 고구려제5강 백제제6강 신라 상대제7강 삼국통일제8강 발해제9강 통일신라(중대-하대)제10강 고대의 제도와 문화제11강 남북국의 제도와 문화제12강 고려의 건국과 통치체제 정비제13강 고려전기의 발전<문벌귀족 사회>제14강 무신정권과 원간섭기제15강 고려후기의 개혁과 경제생활제16강 중세(고려)의 사회화 문화제17강 조선의 건국과 발전제18강 사림의 들장과 붕당의 성립제19강 양란의 극복과 조선후기 정치변화제20강 조선의 사회와 경제제21강 조선의 문화와 사상제22강 대원군 시기의 정책제23강 개항기의 발전제24강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개혁제25강 대한제국과 독립협회제26강 국권침탈기제27강 근대문물과 근대문화의 형성제28강 일제의 식민지 지배 정책제29강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제30강 무장 독립 투쟁제31강 일제 강점기의 사회와 문화제32강 해방과 대한민국 정부수립제33장 한국전쟁과 시민혁명제34장 군사독재와 경제개발제35장 민주주의의 발전제36장 북한과 통일문제 <종강>  √ 탑그레이드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강의 교재.  ???더 자세한 내용을 보고 싶다면 밑에 탑그레이드를 클릭하세요.   여전히 중국과 신라, 고구려, 백제가 함께 등장해서 좀 복잡해요.  ^^! 아래 내용은 암기하려 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읽어 보세요. (정보글을 프린트 하는 방법은 아래 게시글을 참고하세요. S맘님

감사합니다

^^)http://cafe.naver.com/hgsproject/19110  [5학년 2학기]  1. 우리 역사의 시작과 발전(4) 삼국 통일과 발해의 건국  58

59쪽⇒ 대조영! 발해를 건국하다!1. 대조영! 발해를 건국하다!   신라와 당 연합군의 공격을 받은 백제와 고구려는 결국 멸망했죠.백제와 고구려 백성들은 나라가 없어진 거예요. 이처럼 나라를 잃은 백성을 '유민'이라고 불러요.* 유민  ⇒  잃을 유(遺) + 백성 민(民)  /  (나라를) 잃은 백성나라를 잃은 고구려 유민 중에 일부는 당으로 끌려갔고요.고구려 땅에 남은 유민들은 신라와 힘을 합쳐 당을 몰아내고, 삼국을 통일한 신라 백성으로 살게 되었어요.그럼 당에 끌려간 고구려 유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림 출처 : 역사랑 문화랑 전집 중 '이현세 만화 한국사'>당으로 끌려간 고구려 유민들 중 일부는 '영주'라는 곳에서 거란족, 말갈족과 함께 살게 되었어요.거란족과 말갈족은 이렇게 생긴 분들이에요. 겉모습이 큰 차이가 나는 건 아니죠? ^^!우리나라랑 일본, 중국 사람들도 큰 차이가 나는 건 아니잖아요.모두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민족이고요.거란족과 말갈족도 여러 민족 중 하나예요.그리고 고구려 유민처럼 중국 땅에 살았지만 외국 사람 취급을 받은 거죠. 이런 식으로요

 <그림 출처 : 역사랑 문화랑 전집 중 '이현세 만화 한국사'>나라 없는 설움은 고구려 유민이나 거란족이나 말갈족이나 모두 똑같았어요.참다 못한 거란족이 먼저 나섰어요.[거란족] "더 이상 당의 횡포를 참을 수 없소! 거란의 군사를 모아 반란을 일으킬테니 도와 주시오."[고구려 유민] "좋습니다.

우리 고구려 유민들도 오늘을 기다려 왔습니다.

"[말갈족] "우리 말갈족도 기꺼이 있는 힘을 다해 돕겠소!"그리고 696년 거란족과 고구려 유민들 그리고 말갈족은 힘을 합쳐 반란을 일으켰어요.이때 고구려 유민을 이끈 지도자는 걸걸중상과 그의 아들 대조영이었어요. <그림 출처 : 역사랑 문화랑 전집 중 '이현세 만화 한국사'>거란족과 고구려 유민, 말갈족이 힘을 합친 반란군은 영주성을 공격해 함락했어요.물론 이 소식을 들은 당은 군대를 보내 반란군을 무찌르려 했죠.거란족과 당의 군대는 1년 동안 싸우고 또 싸웠어요.그런데... 거란족이 점점 밀리기 시작했어요.이 상황을 지켜보던 고구려 유민들은 당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동쪽(당의 반대쪽)으로 이동하기로 했어요.말갈족도 고구려 유민들과 함께 길을 떠났고요. <그림 출처 : 역사랑 문화랑 전집 중 '이현세 만화 한국사'>그리고 그 뒤를... 당의 군대가 쫓아왔어요.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족을 이끌던 대조영은 천문령이라는 고개에서 당의 군대와 전투를 벌이기로 했어요.계속 도망치기만 하면 먹을 것도 떨어질 것이고, 군사들의 사기도 떨어질테니까요.전투에서 승리하면 새로운 나라를 세울 수 있겠지만...만약 패한다면, 영주성에서 살 때보다 더 심한 고통을 받게 되겠죠...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전투인데 당나라군의 수가 더 많았어요.그래서 전투 장소를 천문령으로 정했답니다.

'천문령'은 '하늘의 문 같은 고개'라는 뜻으로 보이네요.* 천문령  ⇒  하늘 천(天) + 문 문(門) + 고개 령(嶺)왜 '하늘의 문'이라고 불렀을까요? 하늘의 문이라면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은 아닐 텐데...천문령은 길이 좁고 주변이 험한 고개길이였어요. 보통 험한 게 아니라 아주 많이 험했나 봐요. (올라가기도 힘들었겠는데요... ^^!)그래서 고개길 주변 곳곳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공격하기 좋은 장소였어요.[대조영] "먼저 우리 군사들 중 일부는 지는 척하면서 당나라군을 깊은 산골로 유인하고, 나머지 군사들은 미리 숲 속에 숨어 있다가 당나라군을 습격하는 겁니다!"<그림 출처 : 역사랑 문화랑 전집 중 '이현세 만화 한국사'>꾀임에 빠진 당나라군은 천문령으로 밀려 들어왔고요. 곧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어요.천문령 주변 곳곳에 숨어 있던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족 병사들은 당나라군을 향해 화살을 퍼부었어요.천문령 전투는 누구의 승리로 끝났을까요?당연히 대조영이 이끈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족이 승리했답니다.

  ^.^ <그림 출처 : 역사랑 문화랑 전집 중 '이현세 만화 한국사'>천문령 전투에서 당나라군은 수만 명에 이르렀던 군사 대부분을 잃고 후퇴했어요.대조영이 이끄는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족은 동쪽으로 이동하여 동모산에 이르렀고요.그리고는 동모산에서 '발해' 라는 나라를 건국했답니다.

때는 698년이었어요.  ^.^아래 지도에서 '영주'를 찾아보세요.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족이 힘든 생활을 했던 곳이고요.'천문령'을 찾아보세요. 당나라군을 기습 공격해서 크게 승리한 곳이에요.그리고 '동모산'을 찾아보세요.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족을 이끈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한 곳이랍니다.

  ^.^<지도 출처 : 2015년에 도입된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교과서>동모산에서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은 이렇게 말했어요."우리 고구려가 멸망한 지 30년이 지났습니다.

당이 고구려의 옛 땅을 지배하고, 유민들을 강제로 이주시켰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이곳 동모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당의 추격을 물리치고, 나라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나를 따르는 말갈족도 함께하여 새로운 땅을 개척하였습니다.

앞으로 당과 신라에 대항하여 고구려의 옛 영토를 되찾도록 노력합시다.

"<텍스트 출처 : 2015년에 도입된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교과서>                                           <동모산>그런데 왜 나라 이름을 발해라고 했을까요?* 발해  ⇒  바다 이름 발(渤) + 바다 해(海)'발해' 라는 이름에는 '바다'가 두 번이나 들어가 있어요. (바다 이름 발, 바다 해)이유가 있죠

발해를 건국한 동모산 근처에 바다처럼 넓은 거대한 호수가 있었거든요.얼마나 넓었으면 '바다'를 두 번이나 썼을까요?  ^.^2. 발해는 우리나라? 말갈족 나라?고구려의 유민이었던 대조영이 세운 나라 '발해'는 고구려인보다 말갈족 사람이 훨씬 더 많았어요.그러면... 고구려를 이은 나라가 아니라 말갈족 나라가 아닐까요?  (음...  애매하네...@.@)그런데 '발해'는 고구려를 이은 나라라고 합니다.

그래서 옛날에 있었던 여러 우리나라 중에서 한 나라라고 하고요.왜 그럴까요?  ^^첫 번째 이유!발해는 소수의 고구려인들이 다수의 말갈족을 지배하는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세운 사람도 고구려 사람이었던 대조영이었고요.나라를 다스리는 높은 위치의 사람들도 대부분 고구려 사람들이었거든요.그래서 발해는 '고구려를 이은 우리나라' 라고 하고요.두 번째 이유!고구려와 발해의 유물과 유적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기와 지붕에서 '수막새'라고 불리는 것이 있어요. 아래 사진에서 고구려의 수막새와 발해의 수막새 모양을 보세요.많이 비슷하죠. 발해가 고구려의 문화를 이어받았기 때문이에요.  ^^ <사진 출처 : 2015년에 도입된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교과서>그리고 위 사진에서 온돌 구조를 보면 고구려와 발해가 비슷하답니다.

발해가 고구려의 생활 모습을 이어받았다는 증거예요.  ^^아! 온돌은 뭐냐면요

아래 그림처럼 아궁이에서 불을 피우면 뜨거워진 공기가 방바닥 밑으로 지나가면서 방 안을 따뜻하게 하는 거예요. <그림 출처 : ZUM 학습백과>옛날부터 우리나라는 온돌 문화였고요. 지금도 온돌 문화랍니다.

지금은 아래 사진처럼 집을 지을 때 방바닥 안에 물이 흐르는 가느다란 관을 깔아요.그리고 보일러를 틀면 뜨거운 물이 관을 따라 흐르면서 방바닥이 따뜻해 진답니다.

^^ 증거는 또 있어요.  ^^일본에 처음 간 발해의 사신이 이렇게 말했어요."발해는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고 부여의 풍습을 지녔다.

" 라고요.그리고 일본에 보낸 국서(나라에서 보낸 서류)에서도 발해왕을 고려(고구려)의 국왕으로 표현했어요.발해인들이 스스로 발해가 고구려를 이어받은 나라임을 밝힌 거예요.  ^.^이처럼 여러 유물과 유적 그리고 기록으로 볼 때 발해는 고구려를 이어받은 나라임을 알 수 있답니다.

그래서! 신라와 발해가 함께 있던 시대를!'통일 신라 시대' 라고 하지 않고 '남북국 시대' 라고 한답니다.

  ^.^* 남북국  ⇒  남쪽 남(南) + 북쪽 북(北) + 나라 국(國)  /  남쪽과 북쪽에 각각 나라가 있음남쪽에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있었고요. 북쪽에는 고구려를 이어받은 발해가 있었고요.3.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교과서 내용 이제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교과서 내용을 읽어볼까요?--------------------------------------------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 당은 고구려 땅을 직접 다스리고자 하였고, 당에 저항하는 고구려 유민들을 강제로 당의 이곳저곳에 옮겨 살게 하였다.

  이때 고구려 장수였던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나와서 동모산 기슭에 발해를 세웠다(발해 건국, 698년).  발해는 점차 고구려의 옛 땅을 대부분 차지하였고, 고구려의 기상과 문화를 이어받았다.

        여러 유적, 유물, 기록으로 볼 때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발해가 일본에 보낸 외교 문서  일본에 처음 간 발해의 사신은 "발해는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고 부여의 풍습을 지녔다.

"라고 말하였다.

또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도 발해왕을 고려(고구려)의 국왕으로 표현하였다.

발해인들이 스스로 발해가 고구려의 계승국임을 밝힌 것이다.

-------------------------------------------  카테리나(Catiline 110? ? 62 BCE)탄핵연설. 기원 전 63년 카테리나의 구데타 계획에 대해 키케로가 고발, 주모자인 카테리나에 대한 탄핵.   공화정共和政 로마는, 기원 전 509년의 왕정王政타도부터, 기원 전 27년 제정帝政의 개시까지  시기의 고대 로마를 가리킨다.

이 시기의 로마는, 이탈리아 중부의 도시국가에서, 지중해 세계 전역을 지배하는 거대 국가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제정 성립 이후뿐 아니라,  지중해에 이르는 영역국가에로 발전한 이후를 [로마제국]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Marcus Tullius Cicero, BC 106

BC 43) 공화정 로마의 정치가, 문필가. 철학자.키케로가 젊은 시절, 친우로부터 "무명의 키케로 가문에서 벗어나야한다"라고 어드마바이스하자, "나 자신의 손으로, 키케로 가문을  스키피아 가문Scipio 포에니 전쟁 당시 많은 인재를 배출한 유명한 명문 가문). 카툴루스 (Catullus)가문보다 더 유명한 가문으로 만들어 보이겠다" 고 했다고 한다.

 이 글은 기본적으로 김상근 교수의 르네상스 인문학 산책을 기초하였음을 언급하는 바입니다.

 그림은  해당 국가(지방) 뮤지엄. 박물관과 [김상근의 르네상스 인문학 산책]에서 발췌하였음  로마 건국(753 BCE)이래, 어떻게 공화정이 되었고, 공화정의 붕괴와 더불어  제정帝政으로까지의  과정을 그리고자 한다.

먼저,  로마 건국 신화를 들여다 보면, 로마는 그리스 문화에 대해 , 문화와 사상을 차용할 정도로 두터운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로마인들에게 있어 그리스는 "사상의 고향"같은 존재였다.

그리스의 사상이나 문화를 받아 들임으로서 로마 저변의 자양분을 형성한다.

 특히 정치 체제에 있어서도 제정시대. 특히 공화정에서는 그리스의 민주정民主政을 받아 들였다.

  로마는 이렇듯,   로마의 건국 신화에서 부터 그리스의 영향을 엿볼 수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일리야드. 그리고 비질리우스가 지은 아이네이드(로마의 건국 신화)  아이네이드는Aeneis , 로마의 건국 신화로,   그 내용을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일리야드』에서 빌어왔다.

트로이 전쟁은, 기원 전 13세기에 있은 일로,  주인공인 트로이의 영웅,  아이네아스 Aen??s가 트로이로부터 로마에 와, 건국했다고 하지만, 진위 여부는 의문이 있다.

 로물루스와 레믈루스는 기원 전 753년에 로마를 건국했다고 되어있다.

이는 과장된 것이나, 그리스의 전설(글 쓸 당시는) 을 차용함으로서 로마의 정체성을 확인했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아이네이드Aeneis (비질리우스(베르길리우스). 기원 전 70

19)가 지은, 트로이 전쟁 이후, 트로이의 영웅 아이네아스의 편력을 그린, 신과 인간의  대 서사시(총 12권) 라틴 문학의 최고 걸작이라고 일컫는다   『Aeneas' Flight from Troy 1598』  트로이 함락시 가족들과 함께 탈출하는 아이네아스 (페데리코 바로치Federico Barocci (1526  ? 1612) Galleria Borghese보르게세 미술관. 로마    아이네아스Aeneas는 트로이의 영웅이었고, 로마 사람들은 트로이의 유민이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트로이는 소아시아 이었는데, 그렇다면 로마는 동방 사람들인가...는 아니고, 그리스 정신을 가지고 왔다는 뜻이다.

상기 지도는 아이네아스가 로마에까지 가는 여정을 말한다.

 이 여정은 본시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의 여정인데, 이를 카피한 것이다.

한마디: 역사란  증거(유적. 유물)가 있어야 비로서 역사로 인정되는 것인데, 트로이 전쟁이 전설로 여겨지다가, 역사이었던 것이 밝혀졌 듯,  로마와 그리스는 로마 건국 전부터 많은 지리적 연관이 있었다.

신화가 아닌 역사로 인정받기까지 앞으로의 고증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도 우리 [단군 고조선]을 역사로 인정받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하겠다.

 그러나 그 대부분의 유적이 현 중국에 있으므로, 지리적, 중국의 "동북공정"에 가로막혀 힘든 여건 속에 있으나, 우리는 우리의 것을 찾아야하고, 그것이야말로 짓밟히고, 왜곡된  우리 나라의 자긍심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Venus Appearing to Aeneas and Achates 1606』  아이네아스와 아스카니우스 앞에 나타난 비너스Giacinto Gimignani (지아친토 지미냐니(1606?1681 이탈리아)   " 아이네아스는 무장한 두 팔로 아스카니우스를 안고는 투구 사이로 아들의 입술?L에 입 맞추며 이렇게 말했다.

"내 아들아! 너는 용기와 진정한 노고는 나에게서 배우고, 행운은 다른 사람에게서 배우도록 하여라"「아이네이드 제12권」이때 행운은 아이네아스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뜻한다.

 이렇게 몇 백명의 유민들을 데리고 온 아이네아스는 조그만 이탈리아 로마에서 시작해, 로마를 건국하게된다[로마의 신화에서]    여기서 잠시, 『제국帝國』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김상근 교수]혹자는 우리나라가 이렇게 힘든 것은 "우리가 제국화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우리도 로마처럼. 중국과 같이. 몽골같은 제국성을 획득해야할까. 꼭 획득해야 할 로망인가? 아니면 그  『제국성帝國性』이라는 것이 문제가 있는 것인가? 전장에서 언급되었던, 그리스의  플루타르코스는 『제국성帝國性은 옳지 않은 것이다』라고 했다.

그 제국성은 결국 파멸로 이끈다[헤로도토스. 투키티데스]라고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그것이 그리스와 로마의 차이점일 것이다.

아테나가 들고 있는 새는 부엉이이다.

로마의 새는 독수리이다.

부엉이는 지혜를 눈을 뜨고 낮과 밤의 일을 아테나에게 보고 한다.

이는 『성찰』이다.

반면, 독수리는 먹이를 찾는 새이다.

 "과연 우리에게 제국성은 필요한 것인가? " 필요하다면, 어디까지가능한가?"   한마디:  "우리가  제국화 해본 경험이 없어.운운은 참 씁쓸하다.

현 중국에서 발굴된 "홍산문화"의 유물들은 우리가 결코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인 기질을 가졌으며,  고조선이 실제 역사라는 것이 밝혀만 진다면,  고조선이 가졌던 영토와 문물등이 그 당시로서는 선진적이었고, 중국과 비교해 결코 뒤지지 않는 강대국이었음을 밝힐 수가 있는데, 일제 식민지 역사 왜곡에 물든 우리는, 당하고만 산 착한 민족이라고만 한다.

우리도 우리의 역사를 밝혀 우리의 기상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아우구스투스 [Augustus  Vatican Museums바티칸 미술관  아우구스투스 [Augustus,고대 로마의 초대 황제 BC 63

AD 14.] 카이사르의 재정적, 정치적 후계자)의  로마의 영토. 모습에 대한 철학은 무엇이었던 가를 집고 넘어가면,  "로마는 라인강과 다뉴브 강을 넘어가서는 안된다"고 했었다.

그러나, 후대의 로마는 이 말을 무시하고, 넘어가므로하여, 결국은 쇠망하게된다.

 로마가 쇠망한 원인에 대해 여러 설이 있다.

그 중에서 아우구스투스가 언급했던, [제국의 경계선]이 가장 설득력 있다.

  『Le Penseur 』생각하는 사람. 로뎅 Fran�ois Auguste Ren� Rodin (1840 ? 17)Le Penseur)파리 리옹 미술관  우리 인생도 그러하지아니한가..사람마다 타고 난 그릇이 있다고 한다.

"인생을 살면서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알아야한다"  가령 내 밥그릇은 이만하고, 국그릇은 또 어떤 색의 어떤 크기이고, 반찬 그릇들 또한  또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이는 상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데, 결코 운명론적 접근이 아니다.

운명은 자신의 성정과 학습 등 여러 요인(자신의)에 의해  비롯된다.

  어떤 이는 밥 그릇이 돋보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의 간장 종지는  유난히 부각된다.

이를 알기는 참 어려우나,  자신의 그릇(성정)을 알고,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참된 아름다움)를 사랑하고, 이를 나눌 때,  참 삶이라 하겠다.

이것이 바로 인문학을 해야하는 이유의 하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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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 없이 도용할 경우,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니 불펌이나 불법 도용하지 마십시오. 우리 나라의 역사잖아요. ^^한국사가 중요한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첫째, 우리나라 역사이니까요.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있죠.둘째, 한국사(역사) 학습을 제대로 하면 현명해 지니까요. (4차시 학부모교육 때 강조한 점이죠.)셋째, 문학과 비문학의 중간 영역이어서, 비문학 읽기 능력 훈련에 전략적으로 활용하면 좋아요.넷째, 영어와 버금가게 평생 따라다니는 시험 과목이니까요. (초등, 중등, 고등, 수능, 공무원, 공기업, 군대 등등등)중요한 만큼 열심히 해야 하죠. 근데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래서 능력이 되는 한 친절히 정리해 보았습니다.

  행공신 한국사교실 05강은 '삼국의 건국 이야기' 입니다.

삼국은 3개 나라를 말해요.  ⇒  셋 삼(三) + 나라 국(國)3개 나라는 고구려, 백제, 신라인데요.이 때는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에 가야랑 중국까지 얽혀 있어서 복잡하고 정신 없어요.그래서 차근차근 잘 정리해야 해요

   T.T먼저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이 언제 세워지고 멸망했는지 연표로 감을 잡아 볼께요

  (제가 직접 만든 연표에요

  ^.^)위 연표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을 찾아보세요.고조선은 기원전 2333년에 세워졌고, 기원전 108년에 멸망했어요.고조선이 멸망한 후 우리나라 땅에는 여러 나라가 세워졌는데요.이렇게 저렇게 멸망한 후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가 힘을 겨루웠답니다.

('가야'라는 나라도 있었는데요. 고구려, 백제, 신라에 비해 힘이 약했어요...)연표를 확대해서 볼까요

  ^.^ 세 나라 중에서는 신라가 가장 먼저 세워졌고요. 그 다음에 고구려, 마지막으로 백제가 세워졌죠. 그렇게 700년 정도 삼국이 힘을 겨루다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고 통일을 이뤘답니다.

그럼 세 나라가 어떻게 세워졌는지부터 차근차근 살펴 볼까요?  ^.^[5학년 2학기]  1. 우리 역사의 시작과 발전(3) 고구려, 백제, 신라의 건국과 발전(1) 1. 고조선 다음에는 어떤 나라?  ?  ?기원전 108년... 고조선이 멸망했어요...  중국(그 당시 중국에는 '한'이라는 나라가 있었어요

)의 침략을 받아 멸망했답니다.

.. T.T<그림 출처 : 역사랑 문화랑 전집 중 '이현세 만화 한국사'>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였던 고조선은 중국 한나라의 침략을 받아 멸망했지만!곧바로 다른 나라들이 생겼답니다!   (화이팅!!!)아! 그런데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가 바로 세워진 건 아니에요.   ^^!다른 여러 나라들이 먼저 생겼고요. 나중에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만 남게 되었어요.아래 지도는 가볍게 보세요.고조선이 있었고요.고조선의 멸망 후 여러 나라가 생겼다 사라졌고요.고구려, 백제, 신라의 힘이 세졌답니다.

  ^.^   초등학교 때에는 '고조선 다음으로 여러 나라들이 생기고 사라지면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만 남았다.

' 정도로 알고 있으면 되고요.부여, 옥저, 동예, 마한, 진한, 변한 등에 대해서는 중학교 때 배운답니다.

 그런데 중학교 한국사를 대비한다면 '이현세 만화한국사'에 나오는 부여, 옥저, 삼한 부분을 읽어 두는 게 좋아요.<이현세 만화한국사>  1. 선사 시대와 고조선10장 왕을 내쫓아라!  (부여 이야기)11장 신부 구출 작전  (옥저 이야기)12장 축제를 함께 즐겨요  (삼한 이야기)아! 단군왕검 이야기 기억하나요?하늘 나라를 다스리는 환인에게 환웅이라는 아들이 있었고, 환웅과 웅녀가 결혼해서 단군왕검을 낳았죠.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웠고요.고조선을 세운 단군왕검의 할아버지는 하늘 나라를 다스리는 분이라는 이야기

  ^.^나라를 세운 왕에게는... 뭔가 특별한 이야기가 있으면 좋아요.고구려는 주몽이 세웠다고 했죠? 주몽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도 있답니다.

이런 이야기에요

  ^.^         2. 고구려의 건국 이야기 (주몽의 외할아버지는 물을 다스리는 신?) 고구려가 세워지기 전에 '부여'라는 나라가 있었어요.부여는 '금와왕'이 다스리고 있었고요.어느 날 부여의 금와왕은 한 여인을 만났어요.이 여인은 물을 다스리는 신 '하백'의 딸이었어요.  <그림 출처 : 역사랑 문화랑 전집 중 '이현세 만화 한국사'>부여의 금와왕은 유화를 궁에 데려갔어요.그런데 신기하게도 햇살이 유화의 몸을 계속 비추었어요.유화가 그늘로 가도 햇살이 따라와 유화의 몸을 비추었어요. 신기하죠? <그림 출처 : 역사랑 문화랑 전집 중 '이현세 만화 한국사'>거짓말 아니냐고요?음

 건국 이야기랍니다.

건국 이야기는 신기하고 멋있는 이야기에요

^^!이날 이후 유화는 아이를 배어 배가 점점 불러 왔어요. 그리고 얼마 뒤...  낳았어요...  낳았는데...  알을 낳았어요.  (허걱!)또 얼마 뒤 알에서 사내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어요.  (세상에나!)  알에서 태어난 사내아이는 활을 매우 잘 쏘았어요. 심지어는 어른들도 당해낼 수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사내아이의 이름을 '주몽'이라 지었어요.'주몽'은 부여에서 활 잘 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거든요. 그런데...활 잘 쏘는 주몽을 미워하여 죽이려 하는 자들이 있었어요.바로 금와왕의 아들들이었답니다.

(금와왕의 아들이라면... 부여의 왕자들이네요...)<그림 출처 : 역사랑 문화랑 전집 중 '이현세 만화 한국사'>이 사실을 알아챈 주몽의 어머니(유화)는 어느 날 밤 주몽을 불렀어요."주몽아, 사람들이 너의 재주를 샘내어 너를 해칠 생각만 하는구나. 그러니 다른 곳으로 떠나 네 뜻을 펼치거라."주몽은 어머니 유화 부인의 말에 따라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길을 떠났어요. 주몽과 그의 일행들이 호수에 도착했을 때 부여의 군사들이 뒤에서 쫓아오고 있었어요.길이 막힌 주몽이 "나의 어머니는 물의 신 하백의 딸이다.

오늘 도망하는데, 추격자들이 다가오니 어찌하면 좋은가?" 라고 소리치자 물고기와 거북이 다리를 만들어 건너게 해 주었어요. <그림 출처 : 역사랑 문화랑 전집 중 '이현세 만화 한국사'>이렇게 부여를 떠나 남쪽으로 내려온 주몽 일행은 졸본에 도착했어요.그리고 졸본에서 고구려를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답니다.

^.^     3. 고구려는 어디에 세웠나?  ?  ?'고구려' 라는 나라를 세운 사람은 주몽이에요.  (이 아이에요... ^^!)<그림 출처 : 역사랑 문화랑 전집 중 '이현세 만화 한국사'>주몽은 '졸본'이라는 곳에서 고구려를 세웠어요.아래 지도에서 '졸본'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세요.  ^.^ 위 사진을 보세요.산 위에 바위절벽이 성벽처럼 둘러져 있죠?낮은 쪽에만 성벽을 쌓아도 적의 침략을 막기에 아주 좋은 곳이에요.이 성의 이름은 '흘승골성'이에요. (흘승골성은 오녀산성이라 부르기도 해요.)이 성은 졸본에 있고요.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성이랍니다.

즉, 주몽은 졸본에 있는 흘승골성(오녀산성)에서 고구려를 건국했어요. (짜잔

 자랑스러운 나라 고구려가 등장했습니다

  ^.^)흘승골성(오녀산성)의 바위절벽 위쪽에는 평평한 땅이 축구장 30개 만큼이나 넓게 펼처져 있어서 평소에 사람들이 살기에도 아주 좋았어요.  (이런 축구장보다 30배나 넓은 거에요

  ^.^)  4. 백제의 건국 이야기 (주몽의 아들도 나라를 세우다!) 이번에는 '백제'를 세운 왕의 특별한 이야기를 볼까요?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은 '부여'라는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부여에서 결혼도 했고요. 아들도 낳았어요.주몽이 부여에서 낳은 아들의 이름은 '유리'에요. 주몽이 부여 왕자들을 피해 길을 떠날 때 아내와 아들 유리는 부여에 남겨 두어야 했어요.떠나기 전에 검을 두 조각으로 부러뜨린 후 한 조각은 아내에게 주었어요.나중에 유리가 크면 남겨 둔 검 조각을 가지고 자신을 찾으라고 한 거에요.그런 후 졸본으로 내려와 고구려를 건국했어요.고구려를 세운 주몽은 졸본에서 다른 여자와 결혼도 했어요.왕이 되었으니 나라를 물려줄 아들을 낳아야 했을 거에요.주몽은 졸본에서 고구려의 왕이 된 후 아들 둘을 낳았어요.큰아들의 이름은 '비류'였고요. 작은 아들의 이름은 '온조'였어요.당연히 비류와 온조는 고구려의 왕자들이었죠.그런데..."아버님, 저를 기억하십니까?"주몽이 고구려를 세우기 전 부여에서 낳았던 아들 유리가 주몽을 찾아 온 거에요. <그림 출처 : 역사랑 문화랑 전집 중 '이현세 만화 한국사'>"그래, 네가 가지고 온 검과 내가 간직하고 있는 부러진 검을 맞춰 보니 딱 맞는구나. 너는 내 아들 유리가 분명하다.

"주몽은 아들이 셋이었어요.부여에서 먼저 낳은 아들이 유리였죠. 유리가 첫째 아들인 셈이고요.고구려를 세운 후 낳은 비류가 둘째 아들, 온조는 셋째 아들이었어요.옛날에 왕들은 아들이 여럿인 경우 큰아들에게 왕의 자리를 물려 주었어요.고구려를 세운 주몽도 첫째 아들인 유리에게 왕의 자리를 물려 주겠다고 한 거에요.이 소식을 들은 셋째 아들 온조가 둘째 아들인 비류에게 말했어요."형님, 고구려에 계속 있다가는 뒷날 유리의 미움을 받게 될지 모르니 다른 곳으로 떠납시다.

.."둘째 아들인 비류도 온조와 같은 생각이었어요.비류와 온조는 따르는 백성들과 함께 남쪽으로 길을 떠났어요. 남쪽으로 내려온 비류와 온조는 어느 곳에 자리를 잡을 것인지 의논했었어요.그런데...형인 비류는 바닷가인 미추홀에 자리잡기를 원했지만, 동생은 온조는 하남위례성에 자리잡기를 원했어요.결국 두 형제는 각자 원하는 곳에 자리를 잡기로 했지요.비류는 일부 백성들과 함께 미추홀에 자리를 잡았어요. 그런데..."미추홀은 바닷가라서 습기가 많고 물이 짜구나. 물이 짜서 농작물이 잘 자라지 못하니 백성들이 편히 살 수가 없네...  내가 이걸 미처 몰랐구나..."비류는 너무나도 부끄럽고 후회스러워 그만 죽고 말았어요.  (불쌍해라...  T.T)비류가 죽자 그의 신하와 백성들은 다시 온조에게로 돌아갔어요. 한편 동생 온조는 위례성을 도읍으로 정하고 나라 이름을 '십제'로 정했어요.'도읍'은 한 나라의 수도를 말해요.* 도읍  ⇒  도시 도(都) + 고을 읍(邑)그리고 '십제'는 열 명의 도움을 받았다는 의미가 있을 건데요.온조가 나라를 세울 때 열 명의 신하들이 힘을 모았다고 해요.* 십제  ⇒  열 십(十) + 도움 제(濟)온조가 위례성을 도읍으로 정하고 '십제'라는 나라를 세워 다스리고 있는데, 형 비류가 죽은 거에요.비류의 신하와 백성들이 온조에게 돌아왔고요.온조는 돌아온 신하와 백성들을 기꺼이 돌봐 주었어요. 그리고 십명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함께 도운다는 의미에서 나라 이름도 '백제'로 고쳤답니다.

* 백제  ⇒  일백 백(百) + 도움 제(濟)백제를 건국한 온조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였습니다

^.^(비류와 온조가 헤깔리는데요. 온화한 온조가 백제의 왕이 되었다

  이러면 어때요?  ^^)     5. 백제는 어디에 세웠나?     ?백제에 대한 기록은 많지가 않아요. 그래서 백제가 시작된 곳이 어느 곳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해요.그런데 서울 송파구 풍납동에서 백제 시대에 만들어진 성의 흔적이 발견되었어요. 흙으로 만든 성이어서 토성이라고 부른답니다.

* 토성  ⇒  흙 토(土) + 성 성(城)바로 이거에요!  (한강 바로 옆이에요

  ^.^)  풍납동에서 발견되었고, 흙으로 만든 토성이어서 '풍납토성'이라 불러요.온조가 위례성에서 백제를 세웠다고 했죠.역사학자들은 풍납토성이 위례성의 일부일 거라고 추정하고 있답니다.

서울에 있는 풍납토성이 위례성의 일부라면! 백제는 (지금의) 서울에 세워진 거죠.아! 지금의 서울을 옛날에는 '한성'이라고 불렀어요.  한강이 있어서 한성이라고 부른 듯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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