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쿠릴열도



 아이누 민족(Ainu, 일본어: アイヌ民族)은 오늘날의 일본 일본의 홋카이도[北海道], 사할린 및 쿠릴 열도, 혼슈의 도호쿠 지방에 정착해 살던 소수민족이다.

(약 10만명 정도) ‘아이누’란 단어가 일본 내에서 차별적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는 생각에서 스스로를 ‘우타리’(‘친척’, ‘동포’라는 뜻)라고 부르는 아이누 사람들도 있다.

 몽골인 계통의 사람들과는 외형상 닮지 않았다.

이들은 한때 북아시아로 광범위하게 번져나갔던 초기 코카소이드의 후예들로 추정된다.

여러 방언들을 갖고 있던 원래의 아이누어(語)는 이제 일본어에 의해 거의 사라져버렸다.

 아이누 부족장과 아내. 아이누인들은 이전에는 일본 전역에 걸쳐 살았으나 일본인들에 의해 수세기에 걸쳐 점차 북부로 밀려나게 되었다.

일본인들과의 통혼(通婚)과 문화적인 동화로 순수한 아이누인들은 실제로 거의 소멸되어버렸다.

현재 홋카이도의 약 2만 4,000명 정도가 아이누인이라고 여겨지고 있으나 이들 중 순수혈통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드물며, 특히 언어나 종교를 고수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들 대부분은 이제 신체적으로 일본인들과 별 차이가 없다.

전통적인 아이누인들은 눈이 동그랗고 키가 작으며 살갗은 갈색이고 몽골인들에 비해서 몸과 얼굴에 털이 많다.

남자들은 턱수염을 기르며 여자들은 콧수염과 유사한 문신을 입언저리에 새겼다.

 아이누족은 섬에 자생하는 식물 줄기로 아름다운 직물의류를 만들어 입었다.

  흔히 기하학적인 무늬를 새겨넣은 나무껍질로 만든 옷이나 가죽으로 만든 늘어지는 옷을 입고 다녔다.

그들은 사냥을 하고 물고기를 잡거나 덫을 놓아 짐승을 잡는 생활을 하다가 일본인들이 홋카이도로 이주해오면서 한곳에 정착해서 농사를 짓게 되었다.

 현재 그들 중의 다수는 건설업에 종사하거나 날품팔이로 생활하고 있다.

아이누인들의 전통 종교는 영적인 존재가 그 고장의 자연에 깃들여 있다는 신념이었다.

아이누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으로는 신에게 곰을 바치는 제사를 들 수 있다.

 아이누족이 해마다 거행하는 ‘신에게 곰을 바치는 제사 의식’아이누들은 스스로를 곰의 힘과 독수리의 영혼을 지녔다고 믿었다.

 이들 아이누 부족은 오키나와와 함께 일본의 근대화 이후 대동아정책의 일환으로 일본에 강제 편입되었다.

현재는 일본화되어 그들도 대부분 일본어를 쓰지만, 러시아쪽은 아이누문화가 보존되어 아이누어가 쓰이고 일부 러시아화된 아이누족은 러시아어를 쓴다.

종교로는 샤머니즘이 대다수이고, 러시아쪽은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한 약간의 아이누족이 있다.

 http://blog.empas.com/inter999/9603012            러-일 분쟁의 결과물 -  ‘시모다 조약' 아이누족의 거주지 ? 양분하여 갖기로  도호쿠 아이누의 고향, 도호쿠 정경 國勢에 따라 임자 바뀐 비운의 섬   쿠릴열도의 일부인 4개 섬은 하보마이 시코탄 구나시리 에토로후 등이다.

홋카이도에서 구나시리가 가장 가깝고 에토로후가 제일 멀다.

총 면적은 5036km²로 오키나와의 약 4배. 러시아 사할린주가 관할하며 인구는 1만9000여명이다.

  이 곳의 분쟁은 제정 러시아가 19세기 초 사할린과 쿠릴 열도까지 남하했을 때 촉발됐다.

결국 제정 러시아와 일본은 1855년 시모다 조약을 맺고 4개 섬은 일본령으로, 나머지 쿠릴열도는 러시아령으로, 사할린은 양국이 공유하기로 했다.

 러일전쟁 당시 해전장면을 그린 일본의 기록화.   이 약속은 얼마 가지 않아 깨졌다.

제정 러시아는 1875년 군사력을 동원해 사할린을 모두 차지하는 대신 쿠릴열도를 일본에 내줬다.

일본은 1905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자 다시 북위 50도 이남의 남부 사할린을 빼앗았다.

    냉전시대에 키운 불신과 반발의 덫   소련은 2차대전에 참전하면 사할린과 쿠릴열도의 영유권을 인정하겠다는 미국과 영국의 제의를 받고 종전 직전 사할린과 쿠릴열도 전역을 점령했다.

하지만 1951년 샌프란시스코 회담은 이 지역을 소련 영토라고 추인하지 않았다.

거기엔 공산주의 확산을 봉쇄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깔려 있었다.

  1956년 하토야마 이치로 일본 외상이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소련은 평화조약 체결을 조건으로 시코탄과 하보마이 2개 섬을 양도할 의사를 내비친 적이 있다.

이번에도 미국이 제동을 걸었다.

일본이 소련의 제의를 수용하면 오키나와를 병합하겠다고 위협한 것이다.

1960년 미-일 신안보조약과 1978년 중-일 평화우호조약 체결은 소련의 반발을 더욱 키웠다.

소련은 1978년 “4개 섬은 소련영토이므로 일본에 인도할 수 없다”는 강경한 성명을 발표했다.

    경제협력을 위한 미끼로 활용   1985년 고르바초프가 집권하면서 소련은 일본의 경제지원을 얻기 위해 “영토문제는 해결돼야 한다”는 유연한 입장으로 선회했다.

일본도 대화에 나서 1991년 고르바초프의 일본 방문으로 이어졌다.

  고르바초프, Mikhail Gorbachov. 이후 옐친은 일본의 대규모 경제지원을 조건으로 4개 섬의 단계적 반환이라는 파격적인 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푸틴도 2001년 러-일 정상회담에서 시코탄과 하보마이 2개 섬의 우선 인도를 시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쟁의 파고는 쉬 잠잠해질 것 같지 않다.

세계 3대 어장의 하나인 4개 섬 주변엔 막대한 해저광물과 석유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이들 섬과 사할린주 주민들은 “분리독립 불사”까지 외치며 반환을 극력 반대하고 있다.

 http://www.donga.com/fbin/output?f=jis&n=200409160456    북방 영토의 분쟁은 ‘도둑놈의 장물 싸움’  아이누족이 빼앗긴 땅,  ‘홋카이도’ 설경.       ‘긍정적 오리엔탈리즘’이라 할까? 일본에 대해서는 별다른 전문적 정보를 갖지 못했던 다수의 옛 소련 사람들은, 일본인들을 대단히 친절한 ‘예의의 민족’으로 상상해왔다.

나도 그러한 환상을 공유해왔는데, 1991년 한국에서 공부하게 되어 일본인을 평생 처음으로 대면하게 됐을 때에 적지 않게 놀랐다.

나와 한국어를 같이 공부하게 된 한 일본 남학생이, 인사를 나눈 직후에 소련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갑자기 나에게 양손을 내밀어 “북방 영토를 돌려달라”는 말을 몇 번이나 연발했다.

  일개 개인인 나와 국가 간의 영토 분쟁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되물었지만 그는 별로 ‘친절’하지도 않은 태도로 계속 같은 말을 했다.

그 당시 소련 일반인들의 대다수는 그 분쟁의 존재 자체를 몰랐는데, 일본 ‘국민’의 집단 무의식에 ‘국민적 의무로서 실지 회복’이 얼마나 강하게 각인돼 있었는지를 그때 처음으로 실감했다.

  일본공산당 강령도 ‘국민화'   서로 이해관계가 엇갈릴 수밖에 없는 다양한 계급·계층의 구성원들을 획일적인 ‘국민’으로 통합하는 데 ‘영토 문제’ 이상의 묘책이 없다.

특히 분쟁 대상이 된 영토의 영유권이 충분히 주장을 할 만한 근거가 있는데다 역사적인 피해 기억들과 겹치게 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한국 입장에서 본 독도 문제처럼 일본 입장에서 본 ‘북방 영토’ 문제도 그렇다.

1855년 최초의 러-일 통상 조약(이른바 시모다 조약)에 따라서 쿠릴 열도 남쪽 네 개의 섬이 일본의 영토로 확정된 이래 1945년까지 이 섬들에 대해서 러시아가 어떤 영유권 주장도 한 적이 없는 것도 분명하고, 1945년 패전 때에 홋카이도의 북부까지 점령하려다 미국의 반대에 부딪친 소련이 이 네 개의 섬을 군사력으로 무단 점령해 1만7천 명 정도의 일본 주민들을 꽤나 가혹하게 쫓아낸 것도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소련측 영토, 사할린 (Sakhalin) 섬.   상당한 국제법적인 근거에다 이와 같은 상처의 기억까지 가미되기에 일본에서 북방 영토 문제는 한국 내에서 독도 문제가 갖는 ‘국민화(化)’의 효과를 가진다.

역사적으로 소련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는 일본공산당의 강령에서까지도 북방 네 개의 섬은 물론 쿠릴 열도 전체를 돌려받아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는 것을 보면 북방 영토 문제가 일본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물론 ‘소련의 괴뢰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게 돼 있었던 공산당으로서는 ‘국민적 의무’에 대한 과잉 충성을 보이는 것은 불가피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공산당 계열이 아닌 진보적 지식인 사이에서도 북방 영토 문제에서는 ‘국민’의 논리를 초월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매우 드물다.

러시아 안의 일부 일본 관련 전문가들도 원칙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북방 4도’에 대한 일본의 영토적 주장에 이 정도의 근거가 갖추어 있다면 과연 이 주장을 둘러싼 ‘총국민적 단결’에 무엇이 문제가 있느냐고 반문할 이들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국가와 주요 보수 매체에 의해서 정형화돼 표현되는 이 영유권 주장의 초점은, 상당수가 기층 민중인 쿠릴 열도 남부의 일본 실향민의 비극에 맞추어져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가해자 러시아’와 ‘피해자 일본’ 간의 관계에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1945년에 북방 영토를 무단 점령한 악당 일색으로 그려지는 반면에, 일본은 ‘선의의 피해자’로 묘사돼 있다.

 러시아 해군이 주둔하는 쿠릴열도 북방섬.   그런데 1980년대 말까지 거의 1만 명 가까운 소련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었던 그 네 개의 섬에 있는 조상의 묘에 성묘하러 가지도 못했던 실향민들은 피해자일는지 몰라도, 보수 집단이 통치해온 전후의 일본 국가를 ‘피해자’로 보기는 힘들 것이다.

한국전쟁이 종료된 뒤에 대일 관계를 우호적으로 전환해보려 했던 소련은, 1955

56년의 협상에서 네 개의 섬 중에서 두 개, 즉 일본 본토에 가장 가까운 하보마이(齒舞) 제도와 그 바로 위의 시코탄(色丹島)을 반환해주겠다는 제안까지 내놓았다.

      스즈키의 부패 스캔들은 우연일까  일본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일단 평화조약을 맺은 뒤 나머지 두 섬을 나중에 우호관계를 전개해가면서 어떻게든 돌려받을 것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었는데, 이 문제에 미국이 갑자기 개입해 일본이 섬 두 개만 반환받아 쿠릴 영토 전체에 대한 소련의 원칙적인 영토권을 인정하는 조건으로 평화조약을 맺을 경우 오키나와를 영구히 돌려주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냉전에서 ‘주니어 파트너’로서의 일본을 필요로 했던 미국은, 소-일 관계에서 영토 문제라는 ‘불씨’를 남겨두려 했던 것이다.

결국 일본을 지배해온 보수적인 관료 엘리트는, 미국에 대한 맹종을 선택해 ‘대소 우호관계 전개 속에서의 영토 문제 해결’ 방안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말았다.

 러시아의 ‘사할린 자원개발 프로젝트’  냉전 시절은 그렇다 치고, 러시아 쪽의 ‘하보마이-시코탄 우선 반환’ 제안을 암묵적으로 지지해 러시아 지일파 외교관·전문가 그룹과 매우 가까웠던 국회의원 스즈키 무네오(鈴木宗男)가 2002년 갑자기 부패 스캔들의 희생자가 되고, 그의 책사 노릇을 맡아온 외무성의 러시아통 사토 마사루(佐藤優)가 배임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 것은 과연 우연일 뿐인가? 미국과 일본의 친미극우파의 입장에서는 러시아와의 화해보다 미해결의 ‘영토 문제’ 강조를 통한 민족주의적 긴장 유지가 훨씬 유리한 것이었다.

실향민들은 이 정치적 게임에서 상징물로 이용됐을 뿐이다.

[쿠릴열도] 세상에. 왜..


일본 통치자들은 쿠릴 열도 실향민들의 피해에 대한 집단적 기억을 이용해 아시아 침략 시절 일본에 의한 가해의 기억을 일본인의 머릿속에서 계획적으로 희석시키는 측면도 충분히 감지된다.

   아이누, 차별받는 소수 집단 이 분쟁에서 러-일 양쪽에서 무시돼온 또 하나의 측면이 있다.

17세기 말

18세기 초에 쿠릴 열도를 러-일 양국의 상인·군인들이 침탈하기 이전에 이 땅은 아이누족의 삶의 터전이었다.

 1903년에 촬영한 아이누 가족의 사진.   ‘쿠릴’이라는 지명 자체가 아이누어 ‘쿨’(사람)에서 나왔다.

아이누를 불평등 무역·징세를 통해 착취하는 데서는, 러시아인과 일본인 사이에 별 차별성이 없었다.

일본인 대다수가 모르는 사실이지만 에도시대 홋카이도 지방 정권인 마즈마에한(松前藩)에 대한 마지막 대규모 아이누 항쟁은 1789년 북방 4도 중 하나인 구나시리(國後)에서 터졌다.

  만약 쿠릴 열도 역사 속에서 진정한 피해자를 찾자면 그것이 바로 러-일 양국의 식민주의적 침탈 속에서 쿠릴에서의 삶의 기반을 잃고 홋카이도에서는 차별받는 소수 집단으로만 남아 있는 아이누들이다.

 고기잡이와 사냥은 아이누들의 중요한 생계수단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러-일 양국의 북방 영토 분쟁은 결국 힘이 센 도둑 사이의 장물 분배에 대한 실랑이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북방 영토에 아이누족의 자치지구를 만들어 유엔이나 러-일 양국의 공동 감독·보호하에 두어달라는 1992년부터의 홋카이도 아이누 단체들의 탄원서들은 러시아에서도 일본에서도 주목을 받은 적이 없었다.

아니누 권익 침해의 사실을 인정한다면 양쪽에서 ‘고유 영토’ 주장을 할 여지가 더 이상 남지 않기 때문이다.

  북방 4도의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땅에서, 아이누·일본·러시아 민중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 것인가? 러시아와 일본 양쪽에서 영토 문제를 ‘국민적 단결’의 도구로 삼아 피착취 계급을 ‘애국적으로’ 우민화하는 자본주의 국가가 남아 있는 한 화해·평화·공존으로의 길은 멀고도 험할 것이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   http://h21.hani.co.kr/section-021109000/2006/11/021109000200611100634077.html   이 가운데 이투루프·쿠나시르·시코탄·하보마이 등 남쪽 4개 섬이 러·일의 영유권 분쟁 지역이다.

조선 DB러·일 양국은 1855년 시모다(下田) 조약 이후 쿠릴열도 영유권을 둘러싸고 수차례 협약을 맺었다.

러·일전쟁과 2차 대전 이후 '전리품(戰利品)'으로 간주됐다.

러·일전쟁 직후인 1905년 포츠머스 강화조약 때는 승전국 일본이 영유권을 넘겨받았다.

1945년 2월 얄타회담 때는 미·영·소 연합국 3국이 "쿠릴열도를 소련에 양도한다"고 합의했다.

러·일 양국은 자국이 유리한 협상을 맺었던 시점을 기준으로 내세운다.

러시아와 일본의 속내는 다르다.

일본은 이투루프·쿠나시르·시코탄·하보마이 등 쿠릴열도 남쪽 4개 섬 반환을 요구하는 반면, 러시아는 시코탄과 하보마이 2개 섬은 돌려줄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최태강 한림대 러시아연구소 소장은 "러시아가 쿠릴열도의 경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실효 지배를 강화하려는 '굳히기 전략'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정부는 올해 쿠나시르(일본 이름 구나시리·國後)섬의 부두·도로·주택 같은 인프라 공사와 학교·병원·휴양시설을 짓는 섬 개발 공사를 본격 시작했다.

북한 근로자 30여명도 이 공사 현장에서 '외화 벌이'를 하고 있다.

또 다른 북한 근로자는 "1년 반 정도 일하고 중간에 한 번 고향 갑네다.

사할린에도 (북한 근로자가) 300명 정도 있습네다"라고 했다.

"대개 3년 일정인데 체류 연장도 가능하다"고 했다.

jobsN 블로그팀jobarajob@naver.com잡아라잡영토분쟁 격화할 듯(모스크바 AFP=연합뉴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24일 일본과 영토분쟁을 빚고 있는 지역인 쿠릴 열도가 자국 영토라고 재차 강조하고 나섰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이날 송년 TV 인터뷰에서 "모든 남쿠릴 열도는 러시아 영토"라며 "우리는 그곳에서 모든 적절한 의사결정을 내리고 섬들을 재건하며 현지 주민들이 인간답게 살도록 하는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가 쿠릴 열도와 관련된 여러 역사적 사실들을 검토할 용의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움직임이 쿠릴 열도가 러시아의 영토라는 점을 포기한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들(일본)은 러시아와 쿠릴 열도에 대한 인식을 재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쿠릴 열도를 둘러싼 영토분쟁에서 입장을 바꿔야 할 것은 일본이라고 지적했다.

<그래픽> 러시아-일본 영토 분쟁 지역(서울=연합뉴스) 김토일 = 러시아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1일 아침 일본과 영토분쟁을 겪는 쿠릴열도(일본의 '북방영토')를 전격 방문했다.

kmtoil@yna.co.kr @yonhap_graphics(트위터)?  이어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쿠릴 열도에 러시아와 일본의 자유경제지대를 창설할 방안을 제시하며 자신은 이같은 구상을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에게도 제안했다고 밝혔다.

[쿠릴열도] 는 진정 무엇인가.



   이와 관련, 러시아의 '글로벌 어페어스' 에디터인 표도르 루카노프는 러시아가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 시절에도 비슷한 제안을 내놓았다며 쿠릴 열도의 공동개발은 이 섬들에 대한 러시아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을 뜻할 수 있기 때문에 일본의 동의를 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쿠릴 열도는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지난달 방문한데 이어 이달 초엔 이고리 슈발로프 제1부총리도 방문하면서 러시아와 일본간 영토분쟁이 가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금과 은이 풍부하고 주변 수역에 해양생물도 많은 것으로 알려진 쿠릴 열도에는 약 1만9천명이 거주하고 있다.

  ljglory@yna.co.kr-러시아와의 쿠릴 열도 분쟁. 아시아에서 나름 강국이라는 3국을 상대로 끊임없는 영토분쟁을 일으키는 일본. 한국의 독도는 일본이 뺏은후 다시 되찾았지만 중국은 전쟁으로 뺏긴 조어도를 아직도 일본에게서 돌려 받지못했다.

 한국 독도 일본 주장--> 독도는  한국이 실효지배 중이지만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는 일본땅이다->국제재판소 가자. 러시아 쿠릴열도 일본 주장 --> 러시아가 실효지배 중이지만 쿠릴열도는 일본땅이다->국제재판소 가자.중국 다오위다오 일본 주장--> 조어도는 일본이 실효지배중이니 일본땅이다->국제재판소에 우리가 왜 가? 이렇듯 일본의 주장은  자기들이 실효지배 하고 있는 조어도도 일본땅 /실효 지배 안하는 독도,쿠릴열도도 일본땅이다.

 일본은 19세기 말 영유권을 주장하는 나라가 없을 때 자신이 영유권을 주장하면 그 땅을 소유할 수 있다라는 국제법에 따라 중국 조어도 영유권을 선포.......현재에 이르고 있다.

 -다오위다오는 중국이 전쟁 중 일본에 뺏긴 섬(정확히 대만섬)-쿠릴열도는 러시아가 돌려주지 않고 있는....(원래 일본이 본토인들 쫓아내고 차지했었던 땅임)  결론은 3국 다 일본이 예전에 뺏었거나 현재도 뺏을려고 하고 있는 영토들임.  [지도는 인터넷 카페에서 퍼옴]  에다노 일본 관방장관 "다오위다오(센카쿠)는 우리가 실효지배하고 있다.

고로 일본 땅이다" 일본이 실효 지배하면 일본땅,타국이 실효 지배해도 일본땅??? 한국도 독도 실효지배하고 있는데.....  ♬ 일본 관방장관 에다노 유키오의 횡설수설....일본이 하면 로맨스 타국이 하면 불륜? └ 접기       마투아섬은 쿠릴 열도 중부의 화산섬으로서 일본군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 섬에 길이 1,200m, 폭 80m의 활주로 2개를 건설하고 군 비행장으로 이용했던 곳입니다.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이번 비행장 공사가 공군기지 건설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는 상황입니다.

세르게이 수로비킨 러시아 극동군관구 사령관의 이번 공사 시작에 앞서 지난달 27일 극동 지역 군사 인프라 강화를 위해 사할린과 쿠릴 열도에 "전례 없는 조치"를 취할 것이란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바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 일본 지지통신도 이날 러시아의 비행장 보수공사 소식을 전하면서 "이투룹과 쿠나시르에 주둔 중인 러시아군의 군용 공항으로 운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투룹과 쿠나시르는 시코탄, 하보마이와 함께 일본 정부가 러시아로부터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 남쿠릴 열도의 4개 섬(북방영토)에 속합니다.

일본은 쿠릴 4개 섬이 1855년 제정 러시아와 체결한 러일통상조약에 따라 자국 영토가 됐다는 이유로 그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뒤 합법적으로 이들 섬을 귀속했다며 이 같은 논쟁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그러나 러·일 양국은 지난 달 6일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비공식' 정상회담에 이어 이달 중 도쿄에서 평화조약 체결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고위급 실무회담을 개최할 예정이어서 쿠릴 열도 문제 또한 협상 테이블에 오르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베 총리는 앞서 푸틴 대통령과의 '비공식' 회담 당시 "새로운 발상에 근거한 접근으로 (쿠릴 4개 섬) 협상을 추진키로 합의했다"고 말했었습니다.

때문에 일각에선 러시아의 이번 비행장 보수공사 등의 조치가 추후 일본과의 쿠릴 섬 관련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뒤에 미국이 있다고는 하지만 대체 일본은 무슨 자신감으로...러시아가 일본을 압박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네요...러시아, 쿠릴 열도 옛 일본군 비행장 보수공사 착수출처 : 뉴스1 | 네이버 뉴스 http://naver.me/GFEIrMnF-러시아와의 쿠릴 열도 분쟁. 아시아에서 나름 강국이라는 3국을 상대로 끊임없는 영토분쟁을 일으키는 일본. 한국의 독도는 일본이 뺏은후 다시 되찾았지만 중국은 전쟁으로 뺏긴 조어도를 아직도 일본에게서 돌려 받지못했다.

 한국 독도 일본 주장--> 독도는  한국이 실효지배 중이지만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는 일본땅이다->국제재판소 가자. 러시아 쿠릴열도 일본 주장 --> 러시아가 실효지배 중이지만 쿠릴열도는 일본땅이다->국제재판소 가자.중국 다오위다오 일본 주장--> 조어도는 일본이 실효지배중이니 일본땅이다->국제재판소에 우리가 왜 가? 이렇듯 일본의 주장은  자기들이 실효지배 하고 있는 조어도도 일본땅 /실효 지배 안하는 독도,쿠릴열도도 일본땅이다.

 일본은 19세기 말 영유권을 주장하는 나라가 없을 때 자신이 영유권을 주장하면 그 땅을 소유할 수 있다라는 국제법에 따라 중국 조어도 영유권을 선포.......현재에 이르고 있다.

 -다오위다오는 중국이 전쟁 중 일본에 뺏긴 섬(정확히 대만섬)-쿠릴열도는 러시아가 돌려주지 않고 있는....(원래 일본이 본토인들 쫓아내고 차지했었던 땅임)  결론은 3국 다 일본이 예전에 뺏었거나 현재도 뺏을려고 하고 있는 영토들임.  [지도는 인터넷 카페에서 퍼옴]  에다노 일본 관방장관 "다오위다오(센카쿠)는 우리가 실효지배하고 있다.

고로 일본 땅이다" 일본이 실효 지배하면 일본땅,타국이 실효 지배해도 일본땅??? 한국도 독도 실효지배하고 있는데.....  ♬ 일본 관방장관 에다노 유키오의 횡설수설....일본이 하면 로맨스 타국이 하면 불륜? └ 접기       ?쿠릴 열도는 러시아의 캄차카 반도와 일본의 홋카이도 사이 1300㎞에 걸쳐 늘어선 50여 개의 섬 및 바위섬들로 이뤄졌다.

?일본은 쿠릴 열도 최남단 2개 섬과 열도 동쪽 홋카이도 북쪽 2개 섬을 북방 영토로 부르며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4개 섬은 모두 러시아에 속해 있다.

?이 다툼으로 러시아와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을 공식적으로 끝내는 평화협정을 맺지 못하고 있다.

?쇼이구 장관은 이에 앞서 이 열도에 미사일을 배치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었다.

?[뉴시스] 2016.3.25.영토분쟁 격화할 듯(모스크바 AFP=연합뉴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24일 일본과 영토분쟁을 빚고 있는 지역인 쿠릴 열도가 자국 영토라고 재차 강조하고 나섰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이날 송년 TV 인터뷰에서 "모든 남쿠릴 열도는 러시아 영토"라며 "우리는 그곳에서 모든 적절한 의사결정을 내리고 섬들을 재건하며 현지 주민들이 인간답게 살도록 하는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가 쿠릴 열도와 관련된 여러 역사적 사실들을 검토할 용의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움직임이 쿠릴 열도가 러시아의 영토라는 점을 포기한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들(일본)은 러시아와 쿠릴 열도에 대한 인식을 재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쿠릴 열도를 둘러싼 영토분쟁에서 입장을 바꿔야 할 것은 일본이라고 지적했다.

<그래픽> 러시아-일본 영토 분쟁 지역(서울=연합뉴스) 김토일 = 러시아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1일 아침 일본과 영토분쟁을 겪는 쿠릴열도(일본의 '북방영토')를 전격 방문했다.

kmtoil@yna.co.kr @yonhap_graphics(트위터)?  이어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쿠릴 열도에 러시아와 일본의 자유경제지대를 창설할 방안을 제시하며 자신은 이같은 구상을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에게도 제안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러시아의 '글로벌 어페어스' 에디터인 표도르 루카노프는 러시아가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 시절에도 비슷한 제안을 내놓았다며 쿠릴 열도의 공동개발은 이 섬들에 대한 러시아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을 뜻할 수 있기 때문에 일본의 동의를 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쿠릴 열도는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지난달 방문한데 이어 이달 초엔 이고리 슈발로프 제1부총리도 방문하면서 러시아와 일본간 영토분쟁이 가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금과 은이 풍부하고 주변 수역에 해양생물도 많은 것으로 알려진 쿠릴 열도에는 약 1만9천명이 거주하고 있다.

  ljglory@yna.co.kr 사할린 섬 연표1799년 일본 에도 바쿠후가 사할린 섬 남부의 일부를 통치.1821년 일본 마쓰마에 번이 일부를 점유.1853년 러시아 제국이 영유를 선언.1867년 러·일 양국의 "협동 관할지"로 선언.1875년 러·일 양국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사할린 섬을 러시아령, 우루프 섬 북쪽을 포함한 쿠릴 열도 18개의 섬을 일본령으로 삼고, 사할린 섬의 일본인 재산 배상, 일본의 어업권 승인 등을 결정)을 체결. 사할린 섬은 러시아 제국의 영토로 편입.1905년 러·일 전쟁의 승자 일본이 북위 50도 이남의 사할린 섬 남부 영유권을 인정받음. 일본은 이 지역에 '가라후토 민정서'를 설치.1907년 일본이 '가라후토 민정서'를 '가라후토 청'으로 개편. 1918년 일본군이 사할린 섬 북부 전역을 점령(1925년까지).1942년 일본 내무성(중앙 행정 기관)이 가라후토 청을 편입. 가라후토 청이 가이지(식민지)에서 나이지(일본 본토)의 일부로 편입.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중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해, 북위 50도 이남의 사할린 섬 전역을 점령.1946년 소련이 미나미가라후토의 영유권을 선언. 1947년 대일강화조약으로 일본이 북위 50도 이남의 사할린 섬 영유를 포기. 이로서 사할린은 소련의 영토로 완전히 편입되었으며 현재 러시아의 영토로 인정. 인구 구성주민들 대부분이 러시아인(78%)이고, 우크라이나인이 7.4%를 차지한다.

 최대 소수 민족은 한민족(6.5%)이다.

사할린 총인구의 6%를 점유하는 약 4만 3000명의 한국인이 살고 있으며, 귀환을 바라는 사람은 7,000여 명으로 추정된다.

원주민(0.4%)은 남부의 아이누, 북부의 길랴크(니브히)·오로크인·윌타족이며, 소수의 일본인도 거주한다.

벨라루스인, 몰도바인, 타타르족, 모르도바인, 소수의 야쿠트인도 거주한다.

 사할린 한민족19세기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간 조선인 중 일부가 러시아 영토인 사할린 섬 북부로 넘어간 경우가 있었다.

또한 러·일 전쟁 이후 일본이 사할린 섬 남부를 차지하여 가라후토 청이 형성된 이후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 중 일부가 가라후토로 건너간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1930년대 중반까지 이런 사람들은 소수였으며, 1930년대 말에서 1940년대 초까지 일제에 의해 사할린 섬으로 강제 징용되면서 본격적으로 한민족의 사할린 이동이 시작되었다.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전시 상황에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한국인들을 가라후토로 강제 징용해 이들을 탄광·군수공장 등에서 혹사시켰다.

1937년 중·일 전쟁에서 군수산업 부문의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1939년부터 모집의 형태로, 1942년부터는 관 알선 형식으로, 1944년부터는 강제징용으로 조선인들을 끌고 갔다.

이 가운데 징용이라는 강제동원이 이루어진 것도 이 때부터다.

 사할린에 있는 군수공장으로 해상 연료운반사업이 어렵게 되자 일본 본토 내의 석탄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사할린에 있는 조선인 노동자 1만여 명을 다시 본토로 끌고 갔다.

1944년 8

9월에 걸쳐 이중징용 된 3200여명의 조선인들의 생사는 아직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일본의 패망으로 끝나면서 가라후토는 소련에 반환되었다.

이에 따라 가라후토의 일본인들은 거의 대부분 일본으로 송환되었으나 일본 정부는 조선인들은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들을 방치했다.

대한민국은 국내 사정상 이들을 송환할 여력이 없었으며 냉전 시대로 들어가면서 소련과 대한민국의 관계가 점차 악화되면서 이들은 사할린에 발이 묶이게 되었고 대한민국과 소련, 일본 세 나라의 무관심으로 이들은 무국적자로 어려운 삶을 살았다.

북한에서 이들을 회유하기도 했으나 이들 대부분이 경상도·전라도 등 남부 지방 출신인 데다가 대한민국 쪽에 연고가 있었기 때문에 북한으로 가는 것을 거부했다.

 1960

1970년대를 거치면서 일부는 소련 국적을 취득하기도 했으나, 대한민국으로 귀환할 것을 요구하는 일부 1세대는 계속 무국적자로 남아 어려운 생활을 이어갔다.

1980년대 이후 소련과 대한민국의 관계가 개선되면서 이들의 고향 방문이 추진되어, 일부가 대한민국을 찾기도 했으며 또한 이들 중 일부는 대한민국에 정착을 희망하여 곳곳에 사할린 교포 정착촌이 조성되었다.

 사힐린 한인 학살그동안 일본의 사할린 한인들에 대한 학살은 가미시스카(레오니도보) 마을에서 일본인들이 한인 18명을 학살한 사건(미즈호 학살) 이외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최근 러시아의 한 간부가 조선인 학살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 출간되면서 일본의 사할린 한인 학살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쿠릴 열도쿠릴 열도는 러시아 극동 지방의 사할린 주에 있는 총 길이 약 1300km의 도서군이다.

캄차카 반도와 일본 홋카이도 사이, 오호츠크 해와 북태평양을 가르는 위치에 펼쳐져 있으며, 여러 화산섬을 포함한 크고 작은 약 56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본에서는 이 열도를 치시마 열도(千島列島)라고 부르며, 이 열도 최남단의 4개 도서군을 소위 북방 영토(北方領土)라고 하며,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쿠릴열도의 섬들(괄호 안은 일본어)북부슘슈 섬(슈무슈 섬)아틀라소프 섬(아라이도 섬)파라무시르 섬(파라무시루 섬 또는 호로무시로 섬)안치페로바 섬(시린키 섬)마칸루시 섬(마칸루 섬)오네코탄 섬(온네코탄 섬)하림코탄 섬(하리모코탄 섬 또는 하루모코탄 섬)예카르마 섬(에카루마 섬)치링코탄 섬(지린코탄 섬)시아시코탄 섬(샤스코탄 섬)라이코케 섬(라이코케 섬) 마투아 섬(마쓰와 섬)라스슈아 섬(라쇼와 섬 또는 라슈와 섬 또는 라스쓰아 섬)스레드네고 섬(스리데 암)우시시르 섬(우시시루 섬)케토이 섬(게토이 섬)시무시르 섬(시무시루 섬 또는 신시루 섬)브로우토나 섬(부로톤 섬)치르포이 섬(지리호이 섬 또는 지레루보이 섬)브라트 치르포이프 섬(지리호이미나미 섬)우루프 섬(우룻푸 섬) 남부(굵은 색글씨는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4개의 섬)이투루프 섬(에토로후 섬)쿠나시르 섬(구나시리 섬)시코탄 섬(시코탄 섬)하보마이 군도(하보마이 제도)폴론스코고 섬(다라쿠 섬)젤레니 섬(시보쓰 섬)유리 섬(유리 섬)아누치나 섬(아키유리 섬)하르카르 섬(하루카루 섬)탄필레바 섬(스이쇼 섬)시그날니 섬(가이가라 섬) 영토 분쟁처음 쿠릴 열도에는 아이누족을 비롯한 여러 부족이 살고 있었다.

18

19세기 러시아와 일본의 탐사가 시작되었다.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에서 일본은 사할린 섬을 포기하는 대신 쿠릴 열도를 가져가기로 러시아와 합의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인 1951년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일본은 시코탄 섬과 하보마이 군도는 쿠릴 열도에 포함되지 않으며 '홋카이도의 일부'라고 영유권을 주장했다.

당시 일본은 이투루프 섬과 쿠나시르 섬에 대해서는 회의 석상에서 두 차례에 걸쳐 '남 치시마(남 쿠릴 열도)'라고 부르며, 이들 2개 섬이 포기한 쿠릴 열도 안에 포함됨을 인정했다.

 1956년 일·소 공동 선언 당시 소련은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시코탄 섬과 하보마이 군도의 반환을 제의를 했지만 1960년 일본이 미국과 미·일 안보조약을 체결하자 거세게 반발하면서 시코탄 섬과 하보마이 군도의 반환 제의를 취소하고 반환하지 않았다.

이후 일본은 쿠나시르 섬과 이투루프 섬까지도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의 주장일본은 4개 섬이 홋카이도에 부속된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1945년 소련에게 빼앗긴 이 섬들을 러시아가 돌려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1950년대에는 시코탄 섬과 하보마이 군도에 대해서만 쿠릴 열도에 포함되지 않는 '홋카이도의 일부'라고 영유권을 주장하다가, 1960년대 이후에는 쿠나시르 섬과 이투루프 섬에 대해서도 쿠릴 열도란 말 대신 '북방 영토'라 부르며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의 입장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일본은 쿠릴 열도 전체에 대한 일체의 권리를 이미 포기했고, 이투루프 섬과 쿠나시르 섬은 일본이 영유권을 포기한 쿠릴 열도에 포함된다.

얄타 회담에서 소련의 참전이나 전후의 쿠릴 열도 할양은 연합국이 사전에 승낙했다.

도쿄 재판 확정 판결에서는 "일·소 중립 조약은 성의 없이 체결된 조약이며 소련에 대한 일본의 침략 기도를 진행시키려는 수단으로 이용된 것이다.

"라고 밝히고 있다.

 관련사 연표일본은 제정 러시아보다 먼저 쿠나시르 섬과 이투루프 섬을 지배했으며, 러시아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이투루프 섬 이남 지역을 지배했다.

 1855년에도 바쿠후와 러시아 제국은 러·일 화친 조약을 맺어 당시 각자의 세력권 아래 있던 이투루프 섬과 우루프 섬의 사이를 국경선으로 정했다.

 1875년러시아와 일본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에서 사할린 섬 전체를 러시아의 영토로 하는 대신, 쿠릴 열도의 섬들은 일본이 지배하기로 정했다.

 1905년러·일 전쟁 후 포츠머스 강화조약으로 사할린 섬의 남부가 일본에 양도되었다.

 1943년태평양 전쟁 중 미·영·중이 카이로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1945년2월 얄타에서 소련이 대일 참전을 결의했다.

8월 8일 소련이 대일 참전을 시작했다.

8월 10일 일본이 포츠담 선언의 수락을 연합국에 전달했고, 9월 2일, 일본은 연합국에 대한 항복 문서에 조인했다.

포츠담 선언은 카이로 선언을 계승한 선언이었고 일본의 주권은 혼슈, 홋카이도, 규슈 및 시코쿠에만 미친다고 하여, 남사할린·쿠릴 열도는 제외된다고 규정했다.

소련은 8월 28일부터 9월 1일까지 쿠릴 열도 최남단의 2개 섬(이투루프 섬과 쿠나시르 섬)과 홋카이도 북동쪽의 2개 섬(시코탄 섬과 하보마이 군도)을 점령했다.

 1951년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일본은 시코탄 섬과 하보마이 군도는 쿠릴 열도에 포함되지 않으며 '홋카이도의 일부'라고 영유권을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일본은 이투루프 섬과 쿠나시르 섬에 대해서는 회의 석상에서 두 차례에 걸쳐 '남 치시마'라고 부르며, 이 2개 섬이 포기한 쿠릴 열도 안에 포함됨을 인정했다.

 1956년일·소 공동 선언으로 양국간 외교 관계가 회복되었다.

공동 선언 제9항에서 소련은 하보마이 군도와 시코탄 섬을 평화 조약 체결 후 일본에 반환하는 것에 동의했다.

 1960년기시 노부스케 내각이 미·일 안보 조약 개정을 실시하자 소련은 거세게 반발하며 하보마이 군도과 시코탄 섬의 반환 동의도 취소하고 반환하지 않았다.

이후 일본은 쿠나시르 섬과 이투루프 섬도 반환을 요구하는 것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1991년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가 이 지역에 대한 영토 문제를 계승했다.

 2001년 3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온건파인 모리 요시로 일본 총리는 양측이 만족할 만한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하고 양측간 협상이 진행되었다.

러시아는 하보마이 군도와 시코탄 섬을 일본에 반환한다는 입장이었고, 일본은 하보마이 군도와 시코탄 섬을 먼저 돌려받고 쿠나시르 섬과 이투루프 섬의 반환에 관하여는 추후 협상을 계속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극우파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총리가 된 이후 일본이 입장을 바꾸어 4개 섬을 한꺼번에 돌려달라고 요구하면서 협상이 결렬되었다.

협상실패 후 러시아는 입장을 바꾸어 하보마이 군도와 시코탄 섬의 반환 계획을 폐기했다.

 2007년 6월 3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부 장관이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외교장관으로는 처음으로 이 지역을 방문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는 방문 일정이 끝난 후 일본 정부에 남 쿠릴 열도 4개 섬 공동 개발을 제안했으나, 일본 정부는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이 섬들이 러시아의 영토라고 인정하는 것으로 비춰질까 염려해 이에 응하지 않았다.

 2008년5월 일본과 러시아 양국 정부가 쿠릴 열도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로 비자 면제 방문 프로그램에 합의했다.

러시아는 일본에 연고를 두고 있는 320명의 러시아인을 비롯 쿠릴 열도에 가족 묘나 친지가 있는 517명의 일본인 등 총 837명에 대해 29차례에 걸쳐 비자 없이 상호 방문을 허용하기로 했다.

11월 22일에 러시아와 일본 정상은 영토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공유하기 링크
TAG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