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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



조각만으로 개인전을 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철판과 바위의 조합으로 된 작품은 양자가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주변공간과 호흡하는 것이 특징. 쇠와 돌 두 가지로 최소화한 소재는 시각적인 알파벳이 되어 관객한테 말을 걸고, 작품이 놓인 큐브공간은 작품과 밀고 당기면서 그 긴장감은 관객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그는 일찌기 일본의 중심으로 나아간 그는, 탈서구적인 모노하를 창시하면서 일본인들을 통탄케 했으며, 프랑스로 나아가 모노하를 상대화하면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우주론적으로 끌어올렸다.

점, 선, 바람, 조응에서 최근의 대화에 이르기까지 그의 회화는 호흡하는 인간의 존재와 관계를 반영해왔다.

국내서는 주로 회화가 유통되면서 화가로 알려졌지만 애초 그는 조각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해외에서는 조각으로 더 조명을 받았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조각가로서의 이우환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기회다.

그는 유리, 철판, 노끈, 목재, 솜, 돌, 전구 등 잡다한 소재를 쓰다가 1970년대 후반 철과 돌로 수렴했다.

그는 그것만으로도 삼라만상 모든 얘기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6일 전시장에서 작품설치를 마치고 작품사진을 갈무리하던 그를 만나 그의 작품세계를 들어보았다.

일본미술의 양식성을 대변한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자신은 민족주의자도, 사대주의자도 아닌 ‘잡탕’ 이우환이라고 말했다.

한국 국적을 버린 탈주자라느니 하는 소문에 대해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지어내어 비난하는 곳은 한국뿐이라며 분개했다.

  -얼마만의 국내전인가? 2003년 리움에서 열린 ‘만남을 찾아서’ 이후 6년만이다.

중간에 잠간씩 들르긴 했지만 볼 일만 끝내고 바로 출국해 한국관객과의 만남은 오랜만이다.

2003년 당시 회고전은 하고 싶지 않다는데 굳이 소장한 옛작품과 함께 전시해 결과적으로 회고전이 됐다.

나는 너무 생생하고 모자라고 정리할 나이가 안 됐다.

여든 살쯤이면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러려면 건강을 잘 살펴야겠다.

 대결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다니는 것이 곧 건강이다.

나는 소립자처럼 끊임없이 돌아다니고 그것이 곧 운동이다.

  (그는 말머리를 휘어잡고 막바로 자신의 작품철학 이야기로 들어갔다.

)    나는 열심히 일하되 덜 생산하고 덜 쓰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저생산, 저소비는 한 국가한테는 망하게 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인류에는 보탬이 된다.

나의 싸움은 싸우지 않고 서로 인정하고 어울려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이번 전시는 어떻게 준비했나 반년전부터 여러번 왕래했다.

전시할 공간을 여러 번 보고, 돌 파는 집과 철판집, 철공소를 자주 다녔다.

옛날이라면 강가 또는 철공장에 갔겠지만, 지금은 돌집에서 돌을 고르고 철판집에서 맞추고 오리는 작업을 한다.

나는 남한테 부탁해 작업을 하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그의 말은 또 한 차례 도약한다.

) 나는 일종의 전시대 문화의 잔재다.

요즘 젊은이들은 나처럼 몸으로 뛰거나 시간을 축적해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

그들은 문화가 아닌 문명을 문제 삼아 빠른 길을 택하고 컴퓨터에서 정보를 수집해 활용한다.

내가 소재로 하는 돌은 최소한 60만년 이상 된 것으로 인류생성 이전부터 존재해온 것이며, 철판은 그 안에서 쇠 성분을 뽑아내 구상화한 것인데 이것은 시간성이 없는 것이다.

즉 돌은 자연 또는 우주를, 철은 인공 또는 산업사회를 상징한다.

나는 그러한 ‘사이’를 만들어주는 역할이다.

대상을 만드는 게 아니라 공간을 만들고 만들수 없는 것 또는 안 만들어진 것과의 만남을 주선한다.

말하자면 나는 엉거주춤하다.

내 글에는 창조라는 단어가 없다.

만든다는 말도 아껴써야 한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애초 출발이 조각인 것으로 아는데. 맞다.

나는 조각으로 시작했다.

모노파의 시작이 그렇고 유럽에서 조각으로 더 유명했다.

회화와 조각 작품을 함께 전시하면 평자들이 조각에 더 주목했다.

요즘은 고르게 주목 받지만. 한국에서는 주로 회화만 다뤘다.

서울에서 조각작품을 판 적이 없다.

간혹 보이는 것은 기증한 것이고,  사 앞의 것은 돈과 무관하게 설치됐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한국사람들은 나의 작품을 그냥 철판과 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것은 맞다.

그것들은 강과 철공소에서 잠간 차용돼 불려온 것이다.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미술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조각, 즉 인위적인 변화로써 만든 것을 조각이라고 보는 성향이 강한 탓이다.

나를 모르는 관객이 전시장에 들어와 돌이 조용하고 철판이 쓰러질 듯하니 참 희한한 장소에 왔다, 왠지 정숙해야 한다는 느낌을 받거나, 불안한 느낌을 받거나 막 샤워를 한 느낌을 받으면 성공이다.

나도 잘 모르지만 그런 느낌이 중요하다.

내 작품은 관계를 만드는 것으로 엉거주춤하다.

한국은 그런 관계에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작가세계와 연결해서 생각해야 한다.

  (이때 그가 주문한 에스프레소 커피가 나왔다) 나는 에스프레소를 오래동안 즐겨 마셔왔다.

유럽인들이 좋아한다.

이 커피는 고압·고온에서 커피콩의 모든 성분을 뽑아낸 것이다.

말하자면 여러 맛이 섞인 잡탕이다.

일본인들이 마시는 차와는 전혀 다르다.

일본인들은 찻잎에 일정하게 더운 물을 살금살금 부어 필요한 성분만 뽑아내 맛이 순수하다.

일본식 발상이다.

나는 잡탕을 마시는 사람이다.

한국은 원래 잡탕민족이었는데 한반도로 주거가 국한되면서 단일화했다.

나는 외부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요즘 우리나라도 여러 민족이 들어오가 나가고 하면서 다문화 국가가 되고 있지 않은가.   -작가의 작품은 상대화로 요약되는 것 같다.

    그렇다.

일본으로 가면서 한국이 상대화 되었고, 유럽에 가면서 동양이 상대화 되었다.

나의 조각작품도 놓이는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

즉 장소를 옮기면 다른 작품이 된다.

외국인 작가의 작품들은 어디를 가나 함의가 일치하는데 내것은 장소에 따라 특수성, 개별성을 띤다.

물질을 개념을 나타내는 도구로 삼은 유럽인들이 내 작품을 보고 희한하다고 하는 이유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오랜 관습과 습관 탓에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한다.

나무를 본다고 할 때 저기 서있는 나무가 내 눈에 비친 나무와 일치하는가 하면 그게 아니다.

오랜 습관이 쌓여 의식이 되고 그런 식으로 생각하며 보는 것이다.

나의 작업을 개념으로 포착되지 않는 것을 잡아내는 것이다.

    -조각과 회화가 구분이 없어 보인다.

 회화는 반물질, 개념성이 강하다.

캔버스와 벽을 마주보며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고독한 작업이다.

그래서 조각에 비해 나 자신이 더 나타날 수 있다.

내 그림과 이우환 이름은 일치한다.

하지만 조각은 작품을 보고나서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나는 작품이 스스로 말을 하게 한다.

즉 ‘나는 곧 돌’이라는 컨셉트다.

회화나 조각 모두 덜 그리고 조금 처리하여 터치 안 한 곳과 연결한 점에서 일치한다.

   -초기조각과 지금의 작품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큰 변화가 없다.

기왕에 인간이 만들어놓은 규정을 박살내자는 모노파는 물질을 차용해 말로써 안되는 부분을 표현한 것이다.

새로운 코드를 만들자는 것이다.

처음에는 뒤죽박죽이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정리가 되고 온순화 되었으며 소재도 철, 솜, 나무, 전구 등에서 철과 돌로 정리됐다.

두 가지만으로도 살짝 휘고 떼어내는 등 작은 트릭을 가하면 우주와 삼라만상을 다 얘기할 수 있더라.   -조각 회화 모두 퍼포먼스의 결과물 같다.

 맞다.

전부 그렇다.

오늘 날 인기는 없지만 작품은 퍼포먼스의 결과처럼 보여야 한다고 믿는다.

요즘 젊은 작가들은 몸으로 하는 것을 피곤해한다.

버추얼 리얼리티와 정보만 있으면 되고 남을 시켜 작업을 해도도 무방하다.

그래서 리얼리티가 없다.

그들은 내 작품을 보면 피곤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편하다는 사람도 있다.

작품의 윤리성은 신체성과 통한다.

작품의 긴장은 신체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나의 작품에서 신체성은 살짝 세우거나 휘거나 하는데서 드러나는데 간단하지만 중요한 것이다.

좋은 작품은 신체성과 함께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요즘 개념미술이 유행이지만 그 가운데 조셉 코스스, 온 가와라처럼 좋은 작가도 있다.

그들의 작업은 철저하고 엄격한 것이 신체성과 관련돼 있다.

내 작품도 일부에서 개념미술에 포함시키지만 리얼리티가 강한 측면이 있어 어정쩡하다.

    -일본어로 쓰고 생각한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1956년 20대에 한국을 떠나 현재 73살이니 50여년을 해외에 머물렀다.

일본에 가장 오래 머물러 일본물이 안들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가운데 프랑스에도 30년 머물러 유럽물도 들었다.

나는 잡탕이다.

순수하지 못하다.

민족주의자도 아니고 사대주의자도 아니다.

나는 그냥 이우환일 뿐이다.

일본식으로 생각하느냐고? 나는 일본말이 쓰기에 훨씬 쉽다.

하지만 언어는 문제가 안된다.

교육이 문제인데, 일본이나 한국이나 근대화의 뿌리는 유럽이고 유럽을 잡탕이다.

잡탕인 나를 두고 일본식이라고 욕한다면 개 새끼다.

   -그동안 오해로 마음고생이 심한 것 같다.

  국적이 일본이라니, 탈주자라느니 별 소리를 다 들었다.

심지어 얻어맞기도 했다.

나는 한국국적이다.

바꿀 의도가 없다.

바꾼다 달라질 것도 없다.

내가 일본이나 프랑스 국적을 얻는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아이들도 한테는 편하면 바꾸라고 했다.

그래도 안 바꾸더라. 한국 들은 이럴 거다 하고 추측해 작문기사를 쓰더라. 작품을 두고도 ‘왜’를 말하지 않고 비난하더라. 심지어 돌과 철판뿐이더라는 평을 하더라. 그런 것을 읽을 생각이 없는데 부쳐주어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결혼했나, 애가 몇이냐, 경매값이 얼마나 등 들의 질문이 똑같다.

그런 것 왜 묻는가. 작품이 전시회, 아트페어, 옥션 등 3개 축으로 움직이는 것을 사실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작가는 옥션을 싫어한다.

    -장소성이 중요한 당신의 조각에서 작가의 몫은 어디까지인가.  나는 설치된 작품 사진을 찍어 사인을 한 뒤 작품과 함께 넘겨주는 것으로 끝이다.

옮겨간 장소에까지 따라가 설치하지 않는다.

구입한 다음에는 그 사람의 감각에 달렸다.

  그것도 작품의 일부다.

그리고 내 작품은 딱히 꼭 그래야 한다는 것도 없다.

조금씩 변형이 가능해 다른 이의 개입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 덜고 빼고 절제하는 작품인가 유교의 영향이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그것이 대결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단순한 것은 강력한 무기다.

점, 선 시리즈에서 붓을 내려 그을 때 1분50초에서 2분 숨 안 쉬고 한다.

나는 괜찮은데 오히려 구경꾼들이 숨막혀 하면서 ‘그만하라’도 외친다.

그것도 일종의 무기다.

따로 명상이나 단전호흡 등을 하지는 않는다.

굳이 그런 것을 안해도 몸이 훈련돼 있어 가능하다.

   -작품에 동양적이라고들 한다.

   불쾌하다.

그것은 이류비평가나 하는 말이다.

동양적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지 불명확하다.

멍청하다? 자연스럽다? 유럽인들이 동양적이라고 말할 때는 뭔지 모르지만 늬네들끼지 잘 해 보라는 빈정거림이다.

그런 말을 듣고 좋아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스스로 동양적이라고 하는 작가조차 있더라. 나를 아는 사람은 결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불쾌해 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회화가 점, 선, 바람, 조응, 대화으로 바뀌었는데 이것은 수렴인가 단순한 변화인가. 변화이자 수렴이다.

나도 헷갈린다.

결과일 뿐이다.

나작업을 하다가 어느 순간 떨려서 규칙적이고 균질한 점, 선 긋기가 안되더라. 머리는 되는데 몸이 반란을 일으키더라. 병원에도 가고 했다.

어느 날 바들바들 손떨림이 재밌어 아예 점, 선을 흩어버리자고 한게 바람이다.

지금은 점, 선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

물론 생각도 바뀌었고.   -작품의 변화는 곧 몸의 변화인가. 그렇다.

내 작품은 나의 의식이고 나의 몸이기 때문이다.

--------------미술거장 이우환씨에게 헌정되는 국내 첫 전용 전시관 ‘이우환 공간’이 다음달 10일 문을 연다.

새 전시장에서 신작을 작업중인 이우환 작가.부산에 국내 첫 전용 전시관유럽과 일본에서 활동중인 미술거장 이우환(79)씨가 처음으로 고국에 작품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에게 헌정된 국내 유일의 상설전시관 ‘이우환 공간’(이우환 스페이스)이 다음달 10일 부산에서 문을 연다.

부산시는 2011년부터 추진해온 전용 미술관 성격의 ‘이우환 갤러리’ 프로젝트를 최근 마무리하고 4월10일 국내외 미술계 인사를 초청해 개관식을 연다고 밝혔다.

 지난해 3월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해 1년여 만에 실체를 드러낸 ‘이우환 공간’은 부산 해운대 시립미술관 경내에 자리잡고 있다.

지하 1층과 지상 1, 2층에 연면적 420여평 규모로 지어진 유리벽+콘크리트 건물로 단순 직육면체 모양의 미니멀한 외관이 특징이다.

설계와 전시 컨셉트 일체를 작가가 직접 도맡았을 뿐 아니라 건축형태 자체가 작가가 추구해온 점·선의 미학적 개념을 반영하는 또하나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개관 전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우환씨의 개인미술관은 2010년 일본 나오시마에 건축거장 안도 다다오의 설계로 지어진 이우환 미술관이 유일하다.

새로 들어선 이우환 공간은 작가의 간청으로 정식 미술관 명칭을 사용하진 않지만, 사실상 미술관과 다를 바 없다.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작업해온 평면, 설치, 조각 등 작품 20여점이 설치돼, 컬렉션의 내용이나 규모 면에서 나오시마 미술관에 뒤지지 않는다.

애초 이우환 갤러리란 명칭을 쓰려 했으나 상업화랑을 연상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 작가의 요청에 따라 ‘공간’으로 바꿨다는 게 시립미술관쪽 설명이다.

 부산시립미술관 ‘별관’ 운영작가의 ‘미니멀 미학’ 외관에20여점 상설…1년 두차례 기획전 대구 이우환 미술관 건립 파행에국내 첫 이우환 전시관은 부산 몫미술관, 전담 학예사·TF도 운영 이우환 공간은 현재 작품들의 설치를 거의 마무리한 상태다.

전시공간은 1, 2층으로 나뉜다.

2층은 60년대 일본에서 전위운동 모노하를 주창할 당시 초기 회화부터 큰 점의 울림을 담은 근작 ‘다이얼로그(대화)’까지 평면 그림 10여점을 선보인다.

특히 바닥면과 벽면에 작가가 최근 심혈을 기울여 작업한 벽화들이 설치돼 눈길을 끈다.

설치와 회화 사이의 경계에 놓인 작품들이다.

1층 전시장은 돌과 철판이 마주보거나 깨진 유리판 위에 돌덩이가 올라앉은 설치작품 ‘관계항’ 연작들과 철조각들이 배치되며, 야외에도 겹쳐진 철판 모퉁이에 돌덩이들을 놓은 설치조각 ‘디스커션(회의)’이 나올 예정이다.

미술관 쪽은 “2층 회화 전시 공간의 일부를 활용해 1년 중 2차례는 기획전시를 하기로 작가와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부산 해운대 시립미술관 옆에 자리한 이우환 공간의 새 건물 모습.시쪽은 이우환 공간을 시립미술관 별관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국제적 지명도가 있는 미술계 인사를 명예관장으로 임명하고 전담 학예사와 이우환 작품세계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티에프팀을 운영하겠다는 구상도 짜놓았다.

 이우환 공간은 건립 과정에서 곡절이 많았다.

작가가 부산에서 중학교를 다녔던 연고를 내세워 시쪽이 이우환 작가에게 미술관 건립의사를 타진했다.

이 작가는 국내 전시관 설립에 애초 부정적이었지만, 허남식 전 시장의 간청으로 갤러리 프로젝트를 추인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2012년에는 대구시가 이 작가와 세계적 거장들의 작품을 함께 전시하는 ‘이우환과 친구들’ 미술관을 추진하면서 거장을 놓고 두 도시가 경쟁하는 구도가 형성됐으나 지난해 막대한 건립비용과 작품 기증을 둘러싼 이견으로 대구시가 사업을 접으면서, 국내 최초의 이우환 전시관은 부산시 몫이 됐다.

시립미술관의 김연준 학예사는 “이우환 공간 개관은 존재감이 없었던 지역미술관의 전시콘텐츠를 한국 미술의 대표 브랜드로 특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사건”이라며 “작가의 명성과 위상에 걸맞는 전시 컨텐츠의 개발과 지속적인 작가연구가 과제”라고 했다.

 노형석  nuge@hani.co.kr 회화건, 설치 작품이건 이우환의 작품은 그 자체로 가장 아름답고 깊이 있는 철학이다.

그런데 그 고요한 느낌의 작품 속에는 수십 년간 고뇌한 작가의 치열함이 아우성친다.

국내에서 여는 6년 만의 개인전. 국제갤러리에서 만난 그는 사적으로나, 작품적으로나 할 말이 많아 보였다.

모델처럼 포즈 취하길 극도로 싫어하는 거장은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야 하고 언론도 이를 존중해줘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우환은 백남준과 ‘동급’으로 거론할 수 있는 유일한 작가다.

뉴욕, 파리, 런던, 도쿄 등 세계 4대 미술 시장에서 통하는 것도, 각각 비디오 아트와 ‘모노하もの派’의 창시자로 세계 미술사에 의미 있는 한 획을 그은 것도 그 둘이 유일하다.

작품가에서는 이우환이 오히려 앞선다.

노老 작가는 “옥션에서 돌려가며 내 작품을 사고파는 사람들을 혐오한다”고 말하지만 어쨌거나 이우환의 마스터 피스는 거의 매년 최고가를 갱신하며 약 20억 원까지 치솟았다.

그의 작품이 한국은 물론 세계 시장에서도 활발히 소비되는 이유는 그 누구도 함부로 공격할 수 없는 단단한 철학 덕분이다.

언뜻 그저 점 하나, 선 하나 그려놓은 것 같지만 그 안에는 미처 함께 그리지 못한 수많은 부재不在의 언어가 존재한다.

<여백의 예술>, <시간의 여울>, <멈춰 서서> 같은 저서를 읽으면 미처 화폭에 표현하지 않은 사상과 철학이 희미하게나마 보이는데(그의 글은 때로 암호 같아서 행간의 의미를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 언어는 한결같이 ‘여백의 미술’을 이야기하고 있다.

무려 40년 동안 이 한 가지 화두를 파헤치고 또 파헤치는 작업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지난 10월 9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선보인 돌과 철판을 주요 소재로 삼은 설치미술 역시 1960년도부터 천착해온 작업이다.

예술이란 결국 누가 더 단단하고 매혹적인 철학을 갖고 있느냐의 싸움인데 그 점에서 이우환은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공력을 보유한 것이다.

더구나 그 철학은 아름답다.

일본에서 40년 넘게 살아서 그런지 일본 고유의 단시형短詩形 하이쿠의 향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작품 속에 내재한 철학을 작가에게 직접 설명 듣기란 쉽지 않다.

이우환의 말을 빌리자면 한국 들은 “작품이 얼마에 팔렸는지에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미술가는 모델이 아닌데 이렇게 서봐라, 저기에 앉아봐라 주문이 많으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했다가 도일해 대학을 나오고 활동도 하는 나를 한국은 도망자 취급하기” 때문이다.

세계적 작가는 <럭셔리>와의 사진 촬영에서도 “나는 포즈 잡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버럭’ 했다.

하지만 인터뷰에서는 많은 말을 토해냈다.

여자 친구 얘기가 나올 때는 아이 같은 미소도 스쳤다.

‘까칠한 예술가’란 세간의 평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이우환의 작품은 그 자체로 한편의 미학적 철학이다.

설치 작업 역시 극도로 단순하고 함축적이어서 신비롭다.

그런데 심오한 철학을 모르고서는 작품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 겁이 난다.

철학을 알아야 작품이 보일 것 같아 적잖이 부담되는 것이다.

내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철학적 지식이 필요하다는 말은 말짱 거짓말이다.

길 가는 아낙네, 초등학생 어린이도 내 작품을 알 수 있다.

반대로 지식인이나 미술 전문가는 이해 못할 수도 있다.

그전에는 내 작품을 이해했으나 직접 보면 헷갈릴 수도 있다.

나 자신조차 허우적거리기 일쑤인데 어떻게 모든 사람이 이해하겠나. 내 작품은 현장에 직접 와서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품이 놓인 공간 역시 작품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공간 속에서 무언가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주변 공기가 울리는 막연한 진동 같은 것이 느껴진다면 그걸로 된 거다.

주변 여백과 소통하는 것이 내가 천착하는 ‘여백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눈으로는 쉬우나 머리로는 어려운 작품이다.

“돌 하나 철판 하나를 갖다 놓고 작품이라 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가? 돌과 철판을 이리저리 놓아보는 작업을 수없이 반복한다.

작년에 뉴욕에서 전시회를 할 때는 컴퓨터를 통해 수차례 보고 이메일로 컨펌한 것을 현장에서 바꾸기도 했다.

막상 현장에 가보니 괜찮겠다 싶었던 돌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거다.

롱아일랜드 등지를 돌아다닌 끝에 다른 돌로 대체했다.

그럴 때는 애초에 진열한 돌에게 미안하다.

자기가 선택됐다고 생각하며 기분 좋게 앉아 있는데 방을 빼라고 하니 얼마나 언짢겠는가. 돌 하나, 철판 하나만 있으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셈이니 누구라도 모작을 할 수 있겠다.

누군가 비슷한 작품을 만들면 어쩌나?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참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이건 내 작품이 아닙니다”라고 할 수밖에. (왼쪽) Relatum - Dialogue, 2009(오른쪽) Relatum - Triangle, 2009 예술에서 승부는 누가 독특하고 강력한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가에서 갈린다.

때문에 많은 작가가 자신만의 철학을 세우려고 노력하는데 작가에게 철학의 효용은 뭘까? 작가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심오함이 없으면 오늘 이걸 하고 내일 저걸 하며 흔들린다.

반짝 하고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철학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는데 아이디어는 철학과 동의어가 아니다.

근대화를 거치며 빨리빨리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나라 전체의 습관이 되었다.

여기에 휩쓸려서는 자신만의 철학을 갖추기 힘들다.

지난 수백 년간 축적하고 발전시킨 문화에서 나온 것이 철학이기 때문이다.

미술 하는 이에게 철학은 더욱 필요하다.

전쟁터에 나가 수천, 수만 명의 경쟁자와 싸우려면 개념이 확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귀신이 잡아가도 모른다.

서울대학 입학 당시에는 미술대학에 진학했다가 도쿄의 일본대학에 편입할 때는 문학부 철학과에 들어갔다.

전공을 철학으로 바꾼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미학이나 사회 사상사를 튼튼하게 알아놓아야 나중에 무엇이든 제대로 할 수 있는 토대가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철학은 생각이나 몽상만으로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탐닉했다는 표현을 쓸 만큼 책을 많이 읽은 것으로 아는데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열심히 책을 읽었나? 더불어 꼭 읽을 만한 명작 몇 권을 추천해주면 좋겠다.

고등학생 때, 친구와 도서반을 만들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세계문학전집, 세계 고전 등을 거의 다 읽었다.

일본에 가서는 일본어를 배운다고 그 책을 모두 다시 읽었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못 읽은 책이 있다는 걸 견디지 못했다.

가장 권하는 책은 성경이다.

기독교가 내 종교는 아니지만 얻을 것이 많다.

너무 이데올로기적이고 정리가 잘된 신약보다는 신화적 측면이 강해 상상력을 동원해 읽을 수 있는 구약이 더 좋다.

<노자>나 <장자>, <논어> 등도 읽어야 한다.

하이데거의 <예술 작품의 기원>, 플라톤의 <향연> 등은 여러 모로 도움이 되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멜빌의 <모비 딕> 등은 반드시 읽어야 할 최고 작품이다.

우리나라 작가로는 서정주가 단연 으뜸이다.

“왜 친일親日을 했습니까?”라는 언론의 질문에 “나는 천체의 운행을 따랐을 뿐이다”라는 재미있고도 희한한 답변을 한 그는 우리 시대 최고의 시인이었다.

 작품 이야기를 해보자. 돌과 철판을 이용하는 작업이 40년째다.

제아무리 사랑하는 여자도 3년이면 싫증이 나는데 이 투박한 오브제가 뭐 그리 예뻐 헤어나지 못하는가? 진리를 찾는 과정에는 뭔가 꼬투리가 보일락말락하는 시점이 반드시 있다.

그러면 또 그 옆을 파지 않을 수 없다.

미술계가 넓은 것 같으면서도 좁아 살아남기 위해서는 진지한 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갈팡질팡해서는 안 된다.

어떤 작업을 하고 있다는 걸 지속적으로 보이고, 제시하다 보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존재성을 드러낼 수 있다.

왜 하필 돌이고 철판인가? 돌과 철판을 통해 인간과 자연, 산업사회와 대화를 꾀하고자 함이다.

돌은 자연 그 자체다.

지구보다 오래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과 마주한다는 건 몇백, 몇천만 년 전의 우주적 파편과 만나는 일이다.

반면 철은 산업사회의 부산물이다.

인간이 만든 존재란 말이다.

전혀 성질이 다른 것 같지만 2개의 오브제는 사실 형제나 부자父子 같은 관계이기도 하다.

돌에서 철분을 추출해 만든 것이 철판이기 때문이다.

이제 작품을 다시 한번 봐라. 한 공간에서 돌과 철판이 서로 마주 보고(대결하고), 나란히 서고(화합하고), 어울리며(그의 작품 중엔 돌 위에 기다란 철판을 올린 것도 있다.

마치 돌 위에 노곤한 심신을 누이는 것처럼) 관계를 맺는데 침묵하는 것 같기도 하고, 반성하는 것 같기도 하며, 대화하는 것 같기도 하다.

돌과 철판 3개를 원 모양으로 하나씩 교차하며 놓은 작품이 있는데 이는 돌과 철판이 한데 모여 회의를 하는 것처럼 왠지 모를 팽팽함이 느껴진다.

돌과 철판의 침묵에 귀 기울여보면 오늘날 사회도 보이고, 자연으로 가는 길도 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돌과 철판이 있다.

어떤 모양과 질감의 것이 좋은 돌이고 좋은 철판인가? 굉장히 뉴트럴Neutral하고 모호한 것을 좋아한다.

너무 잘생기거나 개성이 강하면 공간 속에 어울리지 못한다.

그런데 좋은 돌과 철판 찾기가 어디 쉽나? 뉴욕 공사판, 토스카나, 알프스, 설악산, 일본의 수많은 산, 제철 공장 등 안 다녀본 곳이 없다.

1971년에는 파리에서 전시회를 하는데 일주일간 몇백 킬로미터를 달려 이곳저곳을 뒤져도 쓸 만한 돌을 찾지 못했다.

당장 내일이 전시 오픈인데 어떡하나, 허탈한 마음에 전시장 공원을 거닐고 있는데 눈앞에 꼭 내가 찾던 돌이 있는 것 아닌가?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돌을 옮겨다가 설치하고 다음 날 어슬렁어슬렁 전시회장에 갔는데 경찰이 찾아와 “저 돌을 당장 돌려놓지 않으면 교도소에 넣겠다”며 화를 냈다.

거의 울 지경이 되어 사정을 설명하고 파리에 나와 있던 한 일간지 특파원과 예술총감독이 “전시회가 끝나는 대로 꼭 갖다 놓겠다”고 겨우 설득한 끝에 간신히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나중에 보니 돌이 있던 곳은 일본 정원이었다.

개 눈에는 개똥밖에 안 보인다고 자주 봐왔던 돌만 좋아 보였던 거다.

선입견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돌 같은 경우 전문 매매업자에게 부탁하는 경우도 많다.

그들이 좋은 돌을 잘 구해주던가? 태반이 내 말을 못 알아듣는다.

형태도 없고 동그스름한 돌을 찾는다고 사진을 보여주며 말해도 자꾸 희한한 얼굴을 한 돌을 가져와 “참 잘생긴 놈”이라고 들이대는데 내 얼굴에는 죄다 괴물처럼만 보이더라. 제발 못생긴 돌 좀 구해달라고 몇 번이나 말해야 한다.

 서양화가 윤석남 씨와 대담에서 작가의 작품에는 사회적 분위기가 담겨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이번 전시 작품과 연결하면 어떤 분위기,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 것인가? 자기비판을 통해 사회에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예술가의 몫이라 생각한다.

대량생산과 소비는 현재 전 인류의 문제다.

중국 같은 나라는 한 해에 7

8%씩 성장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촉발된 환경오염이나 공해 같은 문제는 어찌할 것인가. 경제 전문가들이 들으면 욕지거리를 할 소리지만 나는 우리나라의 성장률도 차라리 마이너스로 갔으면 한다.

그래야 영속 가능한 인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리처드 세라나 리처드 롱 역시 작품에 돌과 철판을 많이 사용한다.

그들의 작품과 이우환의 작품은 무엇이 다른가? 둘의 작품은 어디에 오브제를 갖다 놔도 작품의 컨셉트가 보인다.

작품의 느낌이 장소에 따라 확 달라지지가 않는다.

하지만 내 작품은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느낌과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공사판에 나뒹구는 돌, 철판과 여기 갤러리에 놓인 돌, 철판의 느낌은 전혀 다르지 않은가. 돌과 철판을 주요 소재로 쓰지만 공간 자체가 내겐 더 중요하다.

캔버스에 그린 그림이나 오브제가 주변 공간을 무대 삼아 울려 퍼지는 것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캔버스를 포함한 어떤 오브제도 컨셉트의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들 나름대로의 신체성身體性을 최대한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붓도, 물감도, 캔버스도 제각기 자기 모습이 있는데 이를 일방적으로 강제 동원해서는 안 된다.

물론 나 역시 오브제를 가져와 작품에 활용하지만 가능한 한 돌과 철판의 신체를 훼손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회화나 조각 역시 뭔가를 창조하고 생산한다는 발상을 가능하면 덜 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이우환이 창시한 모노하의 핵심인가? 그렇다.

1960년대 후반 히피 운동이 퍼지면서 미술도 기존의 틀을 깨자는 운동이 일었다.

석탄을 화랑 공간에 갖다 놓고 작품이라고 하는가 하면 갤러리에 말을 끌고 와 매놓기도 했다.

캔버스를 자기 영토라고 생각해 사상과 물감을 쏟아내는 것을 그만두고 캔버스가 뭔지, 붓이 뭔지 다시 생각하자, 캔버스와 붓의 역할을 일방적으로 규정하지 말고 그들과 대화를 하자는 움직임도 동시에 일었다.

이러한 흐름은 일본에까지 전해졌는데 나무, 돌, 철판, 종이 등의 소재에 거의 손을 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직접 제시한 이 같은 사조를 통칭해 ‘모노하’라고 불렀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림도 못 그리면서 그냥 물건만 갖다 놓는 놈들’이란 비꼼과 무시, 멸시가 담겨 있었다.

모노하, 즉 물파物派(‘모노もの’란 일본어로 물체나 물건을 뜻한다)라는 이름도 그래서 생긴 것이다.

내가 모노하의 창시자라는 건 맞지 않다.

다만 역할을 했다면 미술의 순수성에 관한 글을 많이 썼을 뿐이다.

 물건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이와 반대로 세상에는 오브제를 찢고, 자르고, 변형해 컨셉트를 표현하는 이도 많다.

데미언 허스트 같은 이는 아예 소나 상어의 피부를 절단, 내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작품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현대미술은 ‘아름다움’이란 단어로 규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쇼킹한 볼거리 역시 시각예술의 하나로서 제 기능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같은 작업이 내 취향은 아니라는 거다.

무라카미 다카시, 요시토모 나라 같은 젊은 친구들과 40년 가까이 대학에서 어울렸기 때문에 그들의 작업 세계, 아이디어에도 관심이 많은데 컴퓨터 같은 하이테크놀로지를 많이 사용하는 요즘의 트렌드는 나와 맞지 않는다.

조작을 하더라도 내겐 오브제 자체의 신체성이 중요한 것이다.

최대한 날 것 자체에 가까운 오브제를 씀으로써 긴장감과 리얼리티가 생기는데 요즘의 작업물은 너무 개념적이거나 가볍다.

 어린 시절 서당에서 소학을 공부하며 ‘금강산도’로 유명한 한국화가 황견용에게 시, 서, 화를 배웠다.

그 솜씨를 한번쯤 현란한 붓 터치와 색채감으로 세상에 뽐내고 싶진 않았는가? 그러면 물건만 갖다 놓는 작가들이라고 폄하되지도 않았을 텐데…. 단 한번도 뽐내고 싶다는 발상 자체를 한 적이 없다.

이는 사물도 죽이고 나도 죽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순간순간 뽐을 내는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하여 나는 ‘뻐기는’ 사람을 안 좋아한다.

특히 확고한 철학 없이 어설프게 작품으로 뻐기는 사람을 보면 비틀어서 박살을 내놓고 싶다.

 (위) From Point, 1978방금 든 생각인데, 글로 박살을 내도 잘할 듯싶다.

<멈춰 서서> 같은 에세이집은 전문 작가의 것이라고 해도 될 만큼 훌륭하다.

단편 ‘뱀’, ‘아크로폴리스와 돌멩이’ 같은 작품은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실렸다.

일본에 가지 않고 한국에 있었다면 문학가가 되었을 거다.

고등학교 때 <>에서 주최한 문학상에 동시가 가작으로 당선되었고 <동아일보>에서는 소설이 후보작으로 뽑히기도 했다.

비평가가 내 작품 세계를 인정 안 해주고 답답하니까 계속 글을 썼고 그 과정을 통해 글 실력이 조금씩 늘었다.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나 자서전을 보면 오랫동안 작가가 되어 그림을 그리는 일에 확신을 갖지 못했던 듯하다.

무슨 연유인가? 경상남도 함안군 산골짜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할아버지는 유교적 봉건사회의 가장 마지막 세대를 사신 분으로 내게는 ‘꼭 멀리 가서 살아라, 넓은 세상을 봐라’ 라고 말씀하시면서도 본인은 평생을 농민으로 한곳에서 살았다.

집안 어른들은 (그림에 관심을 보이는 내게) ‘절대 그림은 그리지 말아라, 그림 그리기는 애와 여자나 하는 짓’이라고 얘기했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지금도 내부에는 ‘내가 그림을 그려서는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있다.

 “나는 평생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도망자라 했고, 일본에서는 침략자라 했다”고 습관처럼 말한다.

이만큼 큰 성공을 거둔 지금까지도 양국의 냉랭한 시선에는 변함이 없는가? 그렇다.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일본은 밀어내는 것을 포기했지만 한국에서는 아직도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단일 민족, 순수 민족에 관한 믿음이 강해 이방인에게는 “바깥 냄새가 난다”는 둥의 이유를 들어 밀어낸다.

웃기는 얘기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소비하는 물품의 태반이 외국 교역을 통해 얻은 것 아니냐. 그건 수입품일 뿐이라고 말할지 모르나 이런 것이 다 은연중에 우리의 몸과 정신을 형성한다.

 글도 잘 쓰고, 작품도 널리 인정받으니 여자 친구도 많겠다.

어떤 여성상을 좋아하는지? 아내가 만날 놀리는 부분인데 주변에 여자 친구가 항상 있긴 했다.

지금도 많은 여자 친구가 있는데 모두와 잘 지낸다.

그런데 좋아하는 스타일을 말하기는 참 어렵다.

여자 친구마다 좋은 부분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나이 먹고 철없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조심스러운데 한번은 여성상 문제로 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

30여 년 전 한 좌담회에서 좋아하는 여성상을 말한 모양인데 그 자리에 있었던 편집자가 그 후 우연히 데이트를 하던 나를 보고는 ‘선생님이 일전에 말씀하신 여성상하고는 많이 다른데요’ 하는 것이 아닌가. 참, 뭐라고 대꾸를 하기가 어려웠다.

 많은 여자들이 쇼핑에 열광한다.

쇼핑 좋아하는 여자는 왠지 못마땅하게 생각할 것 같은데…. 아니다.

나 역시 쇼핑도 잘하고 맛있는 것도 잘 먹는다.

특히 음식에는 욕심이 많은 편이라 해외에 가면 조엘 로부숑이나 알랭 뒤카스 같은 스타 셰프의 음식, 최고급 와인 등을 꼭 챙기려고 노력한다.

럭셔리하고 멋있는 삶을 살려면 습관적으로 ‘하이 퀄리티’를 추구해야 한다.

적게 소비하고 조금만 갖되 갖고 있는 것들은 최고로 좋은 것이어야 한다.

몇몇 여자들을 보면 이것저것 손에 잡히는 대로 쇼핑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던데 어쩌려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음식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지금 한국에서는 한식의 세계화 바람이 거세다.

소문난 미식가로서 한마디를 보탠다면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가? 한식당이 안 되는 이유는 제대로 된 셰프가 없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한국에서 제일 잘한다는 식당을 찾아다닌 적이 있다.

“당신의 레서피는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는데 단 한 명도 그 말을 이해해지 못했다.

요리법은 책에 있다는 둥, 엄마의 손맛을 내려 노력했다는 둥, 시골 밥상이라는 둥 엉뚱한 얘기만 하는 거다.

셰프의 독창성이 없는 음식은 음식이지 요리가 아니다.

한식이 세계적인 것이 되려면 무엇보다 셰프를 키워야 한다.

자기만의 육개장, 자기만의 김치를 만드는 요리사가 많아져야 한다.

 이렇게 까다롭고 싫고 좋음이 확실한 이우환 작가가 추천하는 한국 작가는 누구일까? 김수자 같은 작가는 세계 무대 어디다 내놓아도 통할 작가다.

이동엽과 정상화 작가도 훌륭한데 특히 정상화 작가는 내가 아는 제일 좋은 작가, 제일 훌륭한 작가다.

한국에는 좋은 작가가 참 많다.

  이우환은 현대미술의 거장이자 ‘모노하’의 창시자인 그는 문필가이자 철학가이기도 하다.

하이데거나 니체의 사상, 현상학, 구조주의 등 수많은 학문을 섭렵한 데서 나오는 깊이는 그의 글과 그림, 설치 작업을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점에서’, ‘선에서’, ‘바람과 함께’, ‘관계항’ 등의 시리즈를 통해 꾸준히 ‘여백의 예술’을 선보이고 있으며 유네스코미술상(파리), 호암상(서울), 세계문화상(도쿄) 등 여러 미술상을 수상했다.

<여백의 예술>은 그가 직접 쓴 책으로 그의 예술관, 철학관을 엿보는 데 도움이 된다.

인터뷰에서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철학이었다.

“지금은 ‘말의 시대’다.

외국 작가들은 다 말을 잘하지 않더냐. 그런데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확실하고 깊이 있는 자기만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 /에디터 : 정성갑 / 사진 : 인물 사진 박우진 취재협조 국제갤러리(735-8449) 조각만으로 개인전을 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철판과 바위의 조합으로 된 작품은 양자가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주변공간과 호흡하는 것이 특징. 쇠와 돌 두 가지로 최소화한 소재는 시각적인 알파벳이 되어 관객한테 말을 걸고, 작품이 놓인 큐브공간은 작품과 밀고 당기면서 그 긴장감은 관객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그는 일찌기 일본의 중심으로 나아간 그는, 탈서구적인 모노하를 창시하면서 일본인들을 통탄케 했으며, 프랑스로 나아가 모노하를 상대화하면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우주론적으로 끌어올렸다.

점, 선, 바람, 조응에서 최근의 대화에 이르기까지 그의 회화는 호흡하는 인간의 존재와 관계를 반영해왔다.

국내서는 주로 회화가 유통되면서 화가로 알려졌지만 애초 그는 조각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해외에서는 조각으로 더 조명을 받았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조각가로서의 이우환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기회다.

그는 유리, 철판, 노끈, 목재, 솜, 돌, 전구 등 잡다한 소재를 쓰다가 1970년대 후반 철과 돌로 수렴했다.

그는 그것만으로도 삼라만상 모든 얘기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6일 전시장에서 작품설치를 마치고 작품사진을 갈무리하던 그를 만나 그의 작품세계를 들어보았다.

일본미술의 양식성을 대변한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자신은 민족주의자도, 사대주의자도 아닌 ‘잡탕’ 이우환이라고 말했다.

한국 국적을 버린 탈주자라느니 하는 소문에 대해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지어내어 비난하는 곳은 한국뿐이라며 분개했다.

  -얼마만의 국내전인가? 2003년 리움에서 열린 ‘만남을 찾아서’ 이후 6년만이다.

중간에 잠간씩 들르긴 했지만 볼 일만 끝내고 바로 출국해 한국관객과의 만남은 오랜만이다.

2003년 당시 회고전은 하고 싶지 않다는데 굳이 소장한 옛작품과 함께 전시해 결과적으로 회고전이 됐다.

나는 너무 생생하고 모자라고 정리할 나이가 안 됐다.

여든 살쯤이면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러려면 건강을 잘 살펴야겠다.

 대결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다니는 것이 곧 건강이다.

나는 소립자처럼 끊임없이 돌아다니고 그것이 곧 운동이다.

  (그는 말머리를 휘어잡고 막바로 자신의 작품철학 이야기로 들어갔다.

)    나는 열심히 일하되 덜 생산하고 덜 쓰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저생산, 저소비는 한 국가한테는 망하게 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인류에는 보탬이 된다.

나의 싸움은 싸우지 않고 서로 인정하고 어울려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이번 전시는 어떻게 준비했나 반년전부터 여러번 왕래했다.

전시할 공간을 여러 번 보고, 돌 파는 집과 철판집, 철공소를 자주 다녔다.

옛날이라면 강가 또는 철공장에 갔겠지만, 지금은 돌집에서 돌을 고르고 철판집에서 맞추고 오리는 작업을 한다.

나는 남한테 부탁해 작업을 하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그의 말은 또 한 차례 도약한다.

) 나는 일종의 전시대 문화의 잔재다.

요즘 젊은이들은 나처럼 몸으로 뛰거나 시간을 축적해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

그들은 문화가 아닌 문명을 문제 삼아 빠른 길을 택하고 컴퓨터에서 정보를 수집해 활용한다.

내가 소재로 하는 돌은 최소한 60만년 이상 된 것으로 인류생성 이전부터 존재해온 것이며, 철판은 그 안에서 쇠 성분을 뽑아내 구상화한 것인데 이것은 시간성이 없는 것이다.

즉 돌은 자연 또는 우주를, 철은 인공 또는 산업사회를 상징한다.

나는 그러한 ‘사이’를 만들어주는 역할이다.

대상을 만드는 게 아니라 공간을 만들고 만들수 없는 것 또는 안 만들어진 것과의 만남을 주선한다.

말하자면 나는 엉거주춤하다.

내 글에는 창조라는 단어가 없다.

만든다는 말도 아껴써야 한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애초 출발이 조각인 것으로 아는데. 맞다.

나는 조각으로 시작했다.

모노파의 시작이 그렇고 유럽에서 조각으로 더 유명했다.

회화와 조각 작품을 함께 전시하면 평자들이 조각에 더 주목했다.

요즘은 고르게 주목 받지만. 한국에서는 주로 회화만 다뤘다.

서울에서 조각작품을 판 적이 없다.

간혹 보이는 것은 기증한 것이고,  사 앞의 것은 돈과 무관하게 설치됐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한국사람들은 나의 작품을 그냥 철판과 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것은 맞다.

그것들은 강과 철공소에서 잠간 차용돼 불려온 것이다.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미술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조각, 즉 인위적인 변화로써 만든 것을 조각이라고 보는 성향이 강한 탓이다.

나를 모르는 관객이 전시장에 들어와 돌이 조용하고 철판이 쓰러질 듯하니 참 희한한 장소에 왔다, 왠지 정숙해야 한다는 느낌을 받거나, 불안한 느낌을 받거나 막 샤워를 한 느낌을 받으면 성공이다.

나도 잘 모르지만 그런 느낌이 중요하다.

내 작품은 관계를 만드는 것으로 엉거주춤하다.

한국은 그런 관계에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작가세계와 연결해서 생각해야 한다.

  (이때 그가 주문한 에스프레소 커피가 나왔다) 나는 에스프레소를 오래동안 즐겨 마셔왔다.

유럽인들이 좋아한다.

이 커피는 고압·고온에서 커피콩의 모든 성분을 뽑아낸 것이다.

말하자면 여러 맛이 섞인 잡탕이다.

[이우환] 결국 이렇게


일본인들이 마시는 차와는 전혀 다르다.

일본인들은 찻잎에 일정하게 더운 물을 살금살금 부어 필요한 성분만 뽑아내 맛이 순수하다.

일본식 발상이다.

나는 잡탕을 마시는 사람이다.

한국은 원래 잡탕민족이었는데 한반도로 주거가 국한되면서 단일화했다.

나는 외부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요즘 우리나라도 여러 민족이 들어오가 나가고 하면서 다문화 국가가 되고 있지 않은가.   -작가의 작품은 상대화로 요약되는 것 같다.

    그렇다.

일본으로 가면서 한국이 상대화 되었고, 유럽에 가면서 동양이 상대화 되었다.

나의 조각작품도 놓이는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

즉 장소를 옮기면 다른 작품이 된다.

외국인 작가의 작품들은 어디를 가나 함의가 일치하는데 내것은 장소에 따라 특수성, 개별성을 띤다.

물질을 개념을 나타내는 도구로 삼은 유럽인들이 내 작품을 보고 희한하다고 하는 이유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오랜 관습과 습관 탓에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한다.

나무를 본다고 할 때 저기 서있는 나무가 내 눈에 비친 나무와 일치하는가 하면 그게 아니다.

오랜 습관이 쌓여 의식이 되고 그런 식으로 생각하며 보는 것이다.

나의 작업을 개념으로 포착되지 않는 것을 잡아내는 것이다.

    -조각과 회화가 구분이 없어 보인다.

 회화는 반물질, 개념성이 강하다.

캔버스와 벽을 마주보며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고독한 작업이다.

그래서 조각에 비해 나 자신이 더 나타날 수 있다.

내 그림과 이우환 이름은 일치한다.

하지만 조각은 작품을 보고나서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나는 작품이 스스로 말을 하게 한다.

즉 ‘나는 곧 돌’이라는 컨셉트다.

회화나 조각 모두 덜 그리고 조금 처리하여 터치 안 한 곳과 연결한 점에서 일치한다.

   -초기조각과 지금의 작품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큰 변화가 없다.

기왕에 인간이 만들어놓은 규정을 박살내자는 모노파는 물질을 차용해 말로써 안되는 부분을 표현한 것이다.

새로운 코드를 만들자는 것이다.

처음에는 뒤죽박죽이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정리가 되고 온순화 되었으며 소재도 철, 솜, 나무, 전구 등에서 철과 돌로 정리됐다.

두 가지만으로도 살짝 휘고 떼어내는 등 작은 트릭을 가하면 우주와 삼라만상을 다 얘기할 수 있더라.   -조각 회화 모두 퍼포먼스의 결과물 같다.

 맞다.

전부 그렇다.

오늘 날 인기는 없지만 작품은 퍼포먼스의 결과처럼 보여야 한다고 믿는다.

요즘 젊은 작가들은 몸으로 하는 것을 피곤해한다.

버추얼 리얼리티와 정보만 있으면 되고 남을 시켜 작업을 해도도 무방하다.

그래서 리얼리티가 없다.

그들은 내 작품을 보면 피곤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편하다는 사람도 있다.

작품의 윤리성은 신체성과 통한다.

작품의 긴장은 신체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나의 작품에서 신체성은 살짝 세우거나 휘거나 하는데서 드러나는데 간단하지만 중요한 것이다.

좋은 작품은 신체성과 함께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요즘 개념미술이 유행이지만 그 가운데 조셉 코스스, 온 가와라처럼 좋은 작가도 있다.

그들의 작업은 철저하고 엄격한 것이 신체성과 관련돼 있다.

내 작품도 일부에서 개념미술에 포함시키지만 리얼리티가 강한 측면이 있어 어정쩡하다.

    -일본어로 쓰고 생각한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1956년 20대에 한국을 떠나 현재 73살이니 50여년을 해외에 머물렀다.

일본에 가장 오래 머물러 일본물이 안들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가운데 프랑스에도 30년 머물러 유럽물도 들었다.

나는 잡탕이다.

순수하지 못하다.

민족주의자도 아니고 사대주의자도 아니다.

나는 그냥 이우환일 뿐이다.

일본식으로 생각하느냐고? 나는 일본말이 쓰기에 훨씬 쉽다.

하지만 언어는 문제가 안된다.

교육이 문제인데, 일본이나 한국이나 근대화의 뿌리는 유럽이고 유럽을 잡탕이다.

잡탕인 나를 두고 일본식이라고 욕한다면 개 새끼다.

   -그동안 오해로 마음고생이 심한 것 같다.

  국적이 일본이라니, 탈주자라느니 별 소리를 다 들었다.

심지어 얻어맞기도 했다.

나는 한국국적이다.

바꿀 의도가 없다.

바꾼다 달라질 것도 없다.

내가 일본이나 프랑스 국적을 얻는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아이들도 한테는 편하면 바꾸라고 했다.

그래도 안 바꾸더라. 한국 들은 이럴 거다 하고 추측해 작문기사를 쓰더라. 작품을 두고도 ‘왜’를 말하지 않고 비난하더라. 심지어 돌과 철판뿐이더라는 평을 하더라. 그런 것을 읽을 생각이 없는데 부쳐주어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결혼했나, 애가 몇이냐, 경매값이 얼마나 등 들의 질문이 똑같다.

그런 것 왜 묻는가. 작품이 전시회, 아트페어, 옥션 등 3개 축으로 움직이는 것을 사실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작가는 옥션을 싫어한다.

    -장소성이 중요한 당신의 조각에서 작가의 몫은 어디까지인가.  나는 설치된 작품 사진을 찍어 사인을 한 뒤 작품과 함께 넘겨주는 것으로 끝이다.

옮겨간 장소에까지 따라가 설치하지 않는다.

구입한 다음에는 그 사람의 감각에 달렸다.

  그것도 작품의 일부다.

그리고 내 작품은 딱히 꼭 그래야 한다는 것도 없다.

조금씩 변형이 가능해 다른 이의 개입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 덜고 빼고 절제하는 작품인가 유교의 영향이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그것이 대결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단순한 것은 강력한 무기다.

점, 선 시리즈에서 붓을 내려 그을 때 1분50초에서 2분 숨 안 쉬고 한다.

나는 괜찮은데 오히려 구경꾼들이 숨막혀 하면서 ‘그만하라’도 외친다.

그것도 일종의 무기다.

따로 명상이나 단전호흡 등을 하지는 않는다.

굳이 그런 것을 안해도 몸이 훈련돼 있어 가능하다.

   -작품에 동양적이라고들 한다.

   불쾌하다.

그것은 이류비평가나 하는 말이다.

동양적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지 불명확하다.

멍청하다? 자연스럽다? 유럽인들이 동양적이라고 말할 때는 뭔지 모르지만 늬네들끼지 잘 해 보라는 빈정거림이다.

그런 말을 듣고 좋아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스스로 동양적이라고 하는 작가조차 있더라. 나를 아는 사람은 결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불쾌해 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회화가 점, 선, 바람, 조응, 대화으로 바뀌었는데 이것은 수렴인가 단순한 변화인가. 변화이자 수렴이다.

나도 헷갈린다.

결과일 뿐이다.

나작업을 하다가 어느 순간 떨려서 규칙적이고 균질한 점, 선 긋기가 안되더라. 머리는 되는데 몸이 반란을 일으키더라. 병원에도 가고 했다.

어느 날 바들바들 손떨림이 재밌어 아예 점, 선을 흩어버리자고 한게 바람이다.

지금은 점, 선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

물론 생각도 바뀌었고.   -작품의 변화는 곧 몸의 변화인가. 그렇다.

내 작품은 나의 의식이고 나의 몸이기 때문이다.

--------------미술거장 이우환씨에게 헌정되는 국내 첫 전용 전시관 ‘이우환 공간’이 다음달 10일 문을 연다.

새 전시장에서 신작을 작업중인 이우환 작가.부산에 국내 첫 전용 전시관유럽과 일본에서 활동중인 미술거장 이우환(79)씨가 처음으로 고국에 작품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에게 헌정된 국내 유일의 상설전시관 ‘이우환 공간’(이우환 스페이스)이 다음달 10일 부산에서 문을 연다.

부산시는 2011년부터 추진해온 전용 미술관 성격의 ‘이우환 갤러리’ 프로젝트를 최근 마무리하고 4월10일 국내외 미술계 인사를 초청해 개관식을 연다고 밝혔다.

 지난해 3월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해 1년여 만에 실체를 드러낸 ‘이우환 공간’은 부산 해운대 시립미술관 경내에 자리잡고 있다.

지하 1층과 지상 1, 2층에 연면적 420여평 규모로 지어진 유리벽+콘크리트 건물로 단순 직육면체 모양의 미니멀한 외관이 특징이다.

설계와 전시 컨셉트 일체를 작가가 직접 도맡았을 뿐 아니라 건축형태 자체가 작가가 추구해온 점·선의 미학적 개념을 반영하는 또하나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개관 전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우환씨의 개인미술관은 2010년 일본 나오시마에 건축거장 안도 다다오의 설계로 지어진 이우환 미술관이 유일하다.

새로 들어선 이우환 공간은 작가의 간청으로 정식 미술관 명칭을 사용하진 않지만, 사실상 미술관과 다를 바 없다.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작업해온 평면, 설치, 조각 등 작품 20여점이 설치돼, 컬렉션의 내용이나 규모 면에서 나오시마 미술관에 뒤지지 않는다.

애초 이우환 갤러리란 명칭을 쓰려 했으나 상업화랑을 연상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 작가의 요청에 따라 ‘공간’으로 바꿨다는 게 시립미술관쪽 설명이다.

 부산시립미술관 ‘별관’ 운영작가의 ‘미니멀 미학’ 외관에20여점 상설…1년 두차례 기획전 대구 이우환 미술관 건립 파행에국내 첫 이우환 전시관은 부산 몫미술관, 전담 학예사·TF도 운영 이우환 공간은 현재 작품들의 설치를 거의 마무리한 상태다.

전시공간은 1, 2층으로 나뉜다.

2층은 60년대 일본에서 전위운동 모노하를 주창할 당시 초기 회화부터 큰 점의 울림을 담은 근작 ‘다이얼로그(대화)’까지 평면 그림 10여점을 선보인다.

특히 바닥면과 벽면에 작가가 최근 심혈을 기울여 작업한 벽화들이 설치돼 눈길을 끈다.

설치와 회화 사이의 경계에 놓인 작품들이다.

1층 전시장은 돌과 철판이 마주보거나 깨진 유리판 위에 돌덩이가 올라앉은 설치작품 ‘관계항’ 연작들과 철조각들이 배치되며, 야외에도 겹쳐진 철판 모퉁이에 돌덩이들을 놓은 설치조각 ‘디스커션(회의)’이 나올 예정이다.

미술관 쪽은 “2층 회화 전시 공간의 일부를 활용해 1년 중 2차례는 기획전시를 하기로 작가와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부산 해운대 시립미술관 옆에 자리한 이우환 공간의 새 건물 모습.시쪽은 이우환 공간을 시립미술관 별관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국제적 지명도가 있는 미술계 인사를 명예관장으로 임명하고 전담 학예사와 이우환 작품세계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티에프팀을 운영하겠다는 구상도 짜놓았다.

 이우환 공간은 건립 과정에서 곡절이 많았다.

작가가 부산에서 중학교를 다녔던 연고를 내세워 시쪽이 이우환 작가에게 미술관 건립의사를 타진했다.

이 작가는 국내 전시관 설립에 애초 부정적이었지만, 허남식 전 시장의 간청으로 갤러리 프로젝트를 추인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2012년에는 대구시가 이 작가와 세계적 거장들의 작품을 함께 전시하는 ‘이우환과 친구들’ 미술관을 추진하면서 거장을 놓고 두 도시가 경쟁하는 구도가 형성됐으나 지난해 막대한 건립비용과 작품 기증을 둘러싼 이견으로 대구시가 사업을 접으면서, 국내 최초의 이우환 전시관은 부산시 몫이 됐다.

시립미술관의 김연준 학예사는 “이우환 공간 개관은 존재감이 없었던 지역미술관의 전시콘텐츠를 한국 미술의 대표 브랜드로 특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사건”이라며 “작가의 명성과 위상에 걸맞는 전시 컨텐츠의 개발과 지속적인 작가연구가 과제”라고 했다.

 노형석  nuge@hani.co.kr 회화건, 설치 작품이건 이우환의 작품은 그 자체로 가장 아름답고 깊이 있는 철학이다.

그런데 그 고요한 느낌의 작품 속에는 수십 년간 고뇌한 작가의 치열함이 아우성친다.

국내에서 여는 6년 만의 개인전. 국제갤러리에서 만난 그는 사적으로나, 작품적으로나 할 말이 많아 보였다.

모델처럼 포즈 취하길 극도로 싫어하는 거장은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야 하고 언론도 이를 존중해줘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우환은 백남준과 ‘동급’으로 거론할 수 있는 유일한 작가다.

뉴욕, 파리, 런던, 도쿄 등 세계 4대 미술 시장에서 통하는 것도, 각각 비디오 아트와 ‘모노하もの派’의 창시자로 세계 미술사에 의미 있는 한 획을 그은 것도 그 둘이 유일하다.

작품가에서는 이우환이 오히려 앞선다.

노老 작가는 “옥션에서 돌려가며 내 작품을 사고파는 사람들을 혐오한다”고 말하지만 어쨌거나 이우환의 마스터 피스는 거의 매년 최고가를 갱신하며 약 20억 원까지 치솟았다.

그의 작품이 한국은 물론 세계 시장에서도 활발히 소비되는 이유는 그 누구도 함부로 공격할 수 없는 단단한 철학 덕분이다.

언뜻 그저 점 하나, 선 하나 그려놓은 것 같지만 그 안에는 미처 함께 그리지 못한 수많은 부재不在의 언어가 존재한다.

<여백의 예술>, <시간의 여울>, <멈춰 서서> 같은 저서를 읽으면 미처 화폭에 표현하지 않은 사상과 철학이 희미하게나마 보이는데(그의 글은 때로 암호 같아서 행간의 의미를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 언어는 한결같이 ‘여백의 미술’을 이야기하고 있다.

무려 40년 동안 이 한 가지 화두를 파헤치고 또 파헤치는 작업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지난 10월 9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선보인 돌과 철판을 주요 소재로 삼은 설치미술 역시 1960년도부터 천착해온 작업이다.

예술이란 결국 누가 더 단단하고 매혹적인 철학을 갖고 있느냐의 싸움인데 그 점에서 이우환은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공력을 보유한 것이다.

더구나 그 철학은 아름답다.

일본에서 40년 넘게 살아서 그런지 일본 고유의 단시형短詩形 하이쿠의 향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작품 속에 내재한 철학을 작가에게 직접 설명 듣기란 쉽지 않다.

이우환의 말을 빌리자면 한국 들은 “작품이 얼마에 팔렸는지에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미술가는 모델이 아닌데 이렇게 서봐라, 저기에 앉아봐라 주문이 많으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했다가 도일해 대학을 나오고 활동도 하는 나를 한국은 도망자 취급하기” 때문이다.

세계적 작가는 <럭셔리>와의 사진 촬영에서도 “나는 포즈 잡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버럭’ 했다.

하지만 인터뷰에서는 많은 말을 토해냈다.

여자 친구 얘기가 나올 때는 아이 같은 미소도 스쳤다.

‘까칠한 예술가’란 세간의 평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이우환의 작품은 그 자체로 한편의 미학적 철학이다.

설치 작업 역시 극도로 단순하고 함축적이어서 신비롭다.

그런데 심오한 철학을 모르고서는 작품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 겁이 난다.

철학을 알아야 작품이 보일 것 같아 적잖이 부담되는 것이다.

내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철학적 지식이 필요하다는 말은 말짱 거짓말이다.

길 가는 아낙네, 초등학생 어린이도 내 작품을 알 수 있다.

반대로 지식인이나 미술 전문가는 이해 못할 수도 있다.

그전에는 내 작품을 이해했으나 직접 보면 헷갈릴 수도 있다.

나 자신조차 허우적거리기 일쑤인데 어떻게 모든 사람이 이해하겠나. 내 작품은 현장에 직접 와서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품이 놓인 공간 역시 작품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공간 속에서 무언가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주변 공기가 울리는 막연한 진동 같은 것이 느껴진다면 그걸로 된 거다.

주변 여백과 소통하는 것이 내가 천착하는 ‘여백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눈으로는 쉬우나 머리로는 어려운 작품이다.

“돌 하나 철판 하나를 갖다 놓고 작품이라 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가? 돌과 철판을 이리저리 놓아보는 작업을 수없이 반복한다.

작년에 뉴욕에서 전시회를 할 때는 컴퓨터를 통해 수차례 보고 이메일로 컨펌한 것을 현장에서 바꾸기도 했다.

막상 현장에 가보니 괜찮겠다 싶었던 돌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거다.

롱아일랜드 등지를 돌아다닌 끝에 다른 돌로 대체했다.

그럴 때는 애초에 진열한 돌에게 미안하다.

자기가 선택됐다고 생각하며 기분 좋게 앉아 있는데 방을 빼라고 하니 얼마나 언짢겠는가. 돌 하나, 철판 하나만 있으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셈이니 누구라도 모작을 할 수 있겠다.

누군가 비슷한 작품을 만들면 어쩌나?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참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이건 내 작품이 아닙니다”라고 할 수밖에. (왼쪽) Relatum - Dialogue, 2009(오른쪽) Relatum - Triangle, 2009 예술에서 승부는 누가 독특하고 강력한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가에서 갈린다.

때문에 많은 작가가 자신만의 철학을 세우려고 노력하는데 작가에게 철학의 효용은 뭘까? 작가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심오함이 없으면 오늘 이걸 하고 내일 저걸 하며 흔들린다.

반짝 하고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철학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는데 아이디어는 철학과 동의어가 아니다.

근대화를 거치며 빨리빨리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나라 전체의 습관이 되었다.

여기에 휩쓸려서는 자신만의 철학을 갖추기 힘들다.

지난 수백 년간 축적하고 발전시킨 문화에서 나온 것이 철학이기 때문이다.

미술 하는 이에게 철학은 더욱 필요하다.

전쟁터에 나가 수천, 수만 명의 경쟁자와 싸우려면 개념이 확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귀신이 잡아가도 모른다.

서울대학 입학 당시에는 미술대학에 진학했다가 도쿄의 일본대학에 편입할 때는 문학부 철학과에 들어갔다.

전공을 철학으로 바꾼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미학이나 사회 사상사를 튼튼하게 알아놓아야 나중에 무엇이든 제대로 할 수 있는 토대가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철학은 생각이나 몽상만으로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탐닉했다는 표현을 쓸 만큼 책을 많이 읽은 것으로 아는데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열심히 책을 읽었나? 더불어 꼭 읽을 만한 명작 몇 권을 추천해주면 좋겠다.

고등학생 때, 친구와 도서반을 만들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세계문학전집, 세계 고전 등을 거의 다 읽었다.

일본에 가서는 일본어를 배운다고 그 책을 모두 다시 읽었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못 읽은 책이 있다는 걸 견디지 못했다.

가장 권하는 책은 성경이다.

기독교가 내 종교는 아니지만 얻을 것이 많다.

너무 이데올로기적이고 정리가 잘된 신약보다는 신화적 측면이 강해 상상력을 동원해 읽을 수 있는 구약이 더 좋다.

<노자>나 <장자>, <논어> 등도 읽어야 한다.

하이데거의 <예술 작품의 기원>, 플라톤의 <향연> 등은 여러 모로 도움이 되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멜빌의 <모비 딕> 등은 반드시 읽어야 할 최고 작품이다.

우리나라 작가로는 서정주가 단연 으뜸이다.

“왜 친일親日을 했습니까?”라는 언론의 질문에 “나는 천체의 운행을 따랐을 뿐이다”라는 재미있고도 희한한 답변을 한 그는 우리 시대 최고의 시인이었다.

 작품 이야기를 해보자. 돌과 철판을 이용하는 작업이 40년째다.

제아무리 사랑하는 여자도 3년이면 싫증이 나는데 이 투박한 오브제가 뭐 그리 예뻐 헤어나지 못하는가? 진리를 찾는 과정에는 뭔가 꼬투리가 보일락말락하는 시점이 반드시 있다.

그러면 또 그 옆을 파지 않을 수 없다.

미술계가 넓은 것 같으면서도 좁아 살아남기 위해서는 진지한 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갈팡질팡해서는 안 된다.

어떤 작업을 하고 있다는 걸 지속적으로 보이고, 제시하다 보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존재성을 드러낼 수 있다.

왜 하필 돌이고 철판인가? 돌과 철판을 통해 인간과 자연, 산업사회와 대화를 꾀하고자 함이다.

돌은 자연 그 자체다.

지구보다 오래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과 마주한다는 건 몇백, 몇천만 년 전의 우주적 파편과 만나는 일이다.

반면 철은 산업사회의 부산물이다.

인간이 만든 존재란 말이다.

전혀 성질이 다른 것 같지만 2개의 오브제는 사실 형제나 부자父子 같은 관계이기도 하다.

돌에서 철분을 추출해 만든 것이 철판이기 때문이다.

이제 작품을 다시 한번 봐라. 한 공간에서 돌과 철판이 서로 마주 보고(대결하고), 나란히 서고(화합하고), 어울리며(그의 작품 중엔 돌 위에 기다란 철판을 올린 것도 있다.

마치 돌 위에 노곤한 심신을 누이는 것처럼) 관계를 맺는데 침묵하는 것 같기도 하고, 반성하는 것 같기도 하며, 대화하는 것 같기도 하다.

돌과 철판 3개를 원 모양으로 하나씩 교차하며 놓은 작품이 있는데 이는 돌과 철판이 한데 모여 회의를 하는 것처럼 왠지 모를 팽팽함이 느껴진다.

돌과 철판의 침묵에 귀 기울여보면 오늘날 사회도 보이고, 자연으로 가는 길도 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돌과 철판이 있다.

어떤 모양과 질감의 것이 좋은 돌이고 좋은 철판인가? 굉장히 뉴트럴Neutral하고 모호한 것을 좋아한다.

너무 잘생기거나 개성이 강하면 공간 속에 어울리지 못한다.

그런데 좋은 돌과 철판 찾기가 어디 쉽나? 뉴욕 공사판, 토스카나, 알프스, 설악산, 일본의 수많은 산, 제철 공장 등 안 다녀본 곳이 없다.

1971년에는 파리에서 전시회를 하는데 일주일간 몇백 킬로미터를 달려 이곳저곳을 뒤져도 쓸 만한 돌을 찾지 못했다.

당장 내일이 전시 오픈인데 어떡하나, 허탈한 마음에 전시장 공원을 거닐고 있는데 눈앞에 꼭 내가 찾던 돌이 있는 것 아닌가?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돌을 옮겨다가 설치하고 다음 날 어슬렁어슬렁 전시회장에 갔는데 경찰이 찾아와 “저 돌을 당장 돌려놓지 않으면 교도소에 넣겠다”며 화를 냈다.

거의 울 지경이 되어 사정을 설명하고 파리에 나와 있던 한 일간지 특파원과 예술총감독이 “전시회가 끝나는 대로 꼭 갖다 놓겠다”고 겨우 설득한 끝에 간신히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나중에 보니 돌이 있던 곳은 일본 정원이었다.

개 눈에는 개똥밖에 안 보인다고 자주 봐왔던 돌만 좋아 보였던 거다.

선입견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이우환] 대단하네요.



 돌 같은 경우 전문 매매업자에게 부탁하는 경우도 많다.

그들이 좋은 돌을 잘 구해주던가? 태반이 내 말을 못 알아듣는다.

형태도 없고 동그스름한 돌을 찾는다고 사진을 보여주며 말해도 자꾸 희한한 얼굴을 한 돌을 가져와 “참 잘생긴 놈”이라고 들이대는데 내 얼굴에는 죄다 괴물처럼만 보이더라. 제발 못생긴 돌 좀 구해달라고 몇 번이나 말해야 한다.

 서양화가 윤석남 씨와 대담에서 작가의 작품에는 사회적 분위기가 담겨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이번 전시 작품과 연결하면 어떤 분위기,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 것인가? 자기비판을 통해 사회에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예술가의 몫이라 생각한다.

대량생산과 소비는 현재 전 인류의 문제다.

중국 같은 나라는 한 해에 7

8%씩 성장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촉발된 환경오염이나 공해 같은 문제는 어찌할 것인가. 경제 전문가들이 들으면 욕지거리를 할 소리지만 나는 우리나라의 성장률도 차라리 마이너스로 갔으면 한다.

그래야 영속 가능한 인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리처드 세라나 리처드 롱 역시 작품에 돌과 철판을 많이 사용한다.

그들의 작품과 이우환의 작품은 무엇이 다른가? 둘의 작품은 어디에 오브제를 갖다 놔도 작품의 컨셉트가 보인다.

작품의 느낌이 장소에 따라 확 달라지지가 않는다.

하지만 내 작품은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느낌과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공사판에 나뒹구는 돌, 철판과 여기 갤러리에 놓인 돌, 철판의 느낌은 전혀 다르지 않은가. 돌과 철판을 주요 소재로 쓰지만 공간 자체가 내겐 더 중요하다.

캔버스에 그린 그림이나 오브제가 주변 공간을 무대 삼아 울려 퍼지는 것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캔버스를 포함한 어떤 오브제도 컨셉트의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들 나름대로의 신체성身體性을 최대한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붓도, 물감도, 캔버스도 제각기 자기 모습이 있는데 이를 일방적으로 강제 동원해서는 안 된다.

물론 나 역시 오브제를 가져와 작품에 활용하지만 가능한 한 돌과 철판의 신체를 훼손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회화나 조각 역시 뭔가를 창조하고 생산한다는 발상을 가능하면 덜 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이우환이 창시한 모노하의 핵심인가? 그렇다.

1960년대 후반 히피 운동이 퍼지면서 미술도 기존의 틀을 깨자는 운동이 일었다.

석탄을 화랑 공간에 갖다 놓고 작품이라고 하는가 하면 갤러리에 말을 끌고 와 매놓기도 했다.

캔버스를 자기 영토라고 생각해 사상과 물감을 쏟아내는 것을 그만두고 캔버스가 뭔지, 붓이 뭔지 다시 생각하자, 캔버스와 붓의 역할을 일방적으로 규정하지 말고 그들과 대화를 하자는 움직임도 동시에 일었다.

이러한 흐름은 일본에까지 전해졌는데 나무, 돌, 철판, 종이 등의 소재에 거의 손을 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직접 제시한 이 같은 사조를 통칭해 ‘모노하’라고 불렀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림도 못 그리면서 그냥 물건만 갖다 놓는 놈들’이란 비꼼과 무시, 멸시가 담겨 있었다.

모노하, 즉 물파物派(‘모노もの’란 일본어로 물체나 물건을 뜻한다)라는 이름도 그래서 생긴 것이다.

내가 모노하의 창시자라는 건 맞지 않다.

다만 역할을 했다면 미술의 순수성에 관한 글을 많이 썼을 뿐이다.

 물건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이와 반대로 세상에는 오브제를 찢고, 자르고, 변형해 컨셉트를 표현하는 이도 많다.

데미언 허스트 같은 이는 아예 소나 상어의 피부를 절단, 내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작품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현대미술은 ‘아름다움’이란 단어로 규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쇼킹한 볼거리 역시 시각예술의 하나로서 제 기능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같은 작업이 내 취향은 아니라는 거다.

무라카미 다카시, 요시토모 나라 같은 젊은 친구들과 40년 가까이 대학에서 어울렸기 때문에 그들의 작업 세계, 아이디어에도 관심이 많은데 컴퓨터 같은 하이테크놀로지를 많이 사용하는 요즘의 트렌드는 나와 맞지 않는다.

조작을 하더라도 내겐 오브제 자체의 신체성이 중요한 것이다.

최대한 날 것 자체에 가까운 오브제를 씀으로써 긴장감과 리얼리티가 생기는데 요즘의 작업물은 너무 개념적이거나 가볍다.

 어린 시절 서당에서 소학을 공부하며 ‘금강산도’로 유명한 한국화가 황견용에게 시, 서, 화를 배웠다.

그 솜씨를 한번쯤 현란한 붓 터치와 색채감으로 세상에 뽐내고 싶진 않았는가? 그러면 물건만 갖다 놓는 작가들이라고 폄하되지도 않았을 텐데…. 단 한번도 뽐내고 싶다는 발상 자체를 한 적이 없다.

이는 사물도 죽이고 나도 죽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순간순간 뽐을 내는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하여 나는 ‘뻐기는’ 사람을 안 좋아한다.

특히 확고한 철학 없이 어설프게 작품으로 뻐기는 사람을 보면 비틀어서 박살을 내놓고 싶다.

 (위) From Point, 1978방금 든 생각인데, 글로 박살을 내도 잘할 듯싶다.

<멈춰 서서> 같은 에세이집은 전문 작가의 것이라고 해도 될 만큼 훌륭하다.

단편 ‘뱀’, ‘아크로폴리스와 돌멩이’ 같은 작품은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실렸다.

일본에 가지 않고 한국에 있었다면 문학가가 되었을 거다.

고등학교 때 <>에서 주최한 문학상에 동시가 가작으로 당선되었고 <동아일보>에서는 소설이 후보작으로 뽑히기도 했다.

비평가가 내 작품 세계를 인정 안 해주고 답답하니까 계속 글을 썼고 그 과정을 통해 글 실력이 조금씩 늘었다.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나 자서전을 보면 오랫동안 작가가 되어 그림을 그리는 일에 확신을 갖지 못했던 듯하다.

무슨 연유인가? 경상남도 함안군 산골짜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할아버지는 유교적 봉건사회의 가장 마지막 세대를 사신 분으로 내게는 ‘꼭 멀리 가서 살아라, 넓은 세상을 봐라’ 라고 말씀하시면서도 본인은 평생을 농민으로 한곳에서 살았다.

집안 어른들은 (그림에 관심을 보이는 내게) ‘절대 그림은 그리지 말아라, 그림 그리기는 애와 여자나 하는 짓’이라고 얘기했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지금도 내부에는 ‘내가 그림을 그려서는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있다.

 “나는 평생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도망자라 했고, 일본에서는 침략자라 했다”고 습관처럼 말한다.

이만큼 큰 성공을 거둔 지금까지도 양국의 냉랭한 시선에는 변함이 없는가? 그렇다.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일본은 밀어내는 것을 포기했지만 한국에서는 아직도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단일 민족, 순수 민족에 관한 믿음이 강해 이방인에게는 “바깥 냄새가 난다”는 둥의 이유를 들어 밀어낸다.

웃기는 얘기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소비하는 물품의 태반이 외국 교역을 통해 얻은 것 아니냐. 그건 수입품일 뿐이라고 말할지 모르나 이런 것이 다 은연중에 우리의 몸과 정신을 형성한다.

 글도 잘 쓰고, 작품도 널리 인정받으니 여자 친구도 많겠다.

어떤 여성상을 좋아하는지? 아내가 만날 놀리는 부분인데 주변에 여자 친구가 항상 있긴 했다.

지금도 많은 여자 친구가 있는데 모두와 잘 지낸다.

그런데 좋아하는 스타일을 말하기는 참 어렵다.

여자 친구마다 좋은 부분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나이 먹고 철없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조심스러운데 한번은 여성상 문제로 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

30여 년 전 한 좌담회에서 좋아하는 여성상을 말한 모양인데 그 자리에 있었던 편집자가 그 후 우연히 데이트를 하던 나를 보고는 ‘선생님이 일전에 말씀하신 여성상하고는 많이 다른데요’ 하는 것이 아닌가. 참, 뭐라고 대꾸를 하기가 어려웠다.

 많은 여자들이 쇼핑에 열광한다.

쇼핑 좋아하는 여자는 왠지 못마땅하게 생각할 것 같은데…. 아니다.

나 역시 쇼핑도 잘하고 맛있는 것도 잘 먹는다.

특히 음식에는 욕심이 많은 편이라 해외에 가면 조엘 로부숑이나 알랭 뒤카스 같은 스타 셰프의 음식, 최고급 와인 등을 꼭 챙기려고 노력한다.

럭셔리하고 멋있는 삶을 살려면 습관적으로 ‘하이 퀄리티’를 추구해야 한다.

적게 소비하고 조금만 갖되 갖고 있는 것들은 최고로 좋은 것이어야 한다.

몇몇 여자들을 보면 이것저것 손에 잡히는 대로 쇼핑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던데 어쩌려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음식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지금 한국에서는 한식의 세계화 바람이 거세다.

소문난 미식가로서 한마디를 보탠다면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가? 한식당이 안 되는 이유는 제대로 된 셰프가 없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한국에서 제일 잘한다는 식당을 찾아다닌 적이 있다.

“당신의 레서피는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는데 단 한 명도 그 말을 이해해지 못했다.

요리법은 책에 있다는 둥, 엄마의 손맛을 내려 노력했다는 둥, 시골 밥상이라는 둥 엉뚱한 얘기만 하는 거다.

셰프의 독창성이 없는 음식은 음식이지 요리가 아니다.

한식이 세계적인 것이 되려면 무엇보다 셰프를 키워야 한다.

자기만의 육개장, 자기만의 김치를 만드는 요리사가 많아져야 한다.

 이렇게 까다롭고 싫고 좋음이 확실한 이우환 작가가 추천하는 한국 작가는 누구일까? 김수자 같은 작가는 세계 무대 어디다 내놓아도 통할 작가다.

이동엽과 정상화 작가도 훌륭한데 특히 정상화 작가는 내가 아는 제일 좋은 작가, 제일 훌륭한 작가다.

한국에는 좋은 작가가 참 많다.

  이우환은 현대미술의 거장이자 ‘모노하’의 창시자인 그는 문필가이자 철학가이기도 하다.

하이데거나 니체의 사상, 현상학, 구조주의 등 수많은 학문을 섭렵한 데서 나오는 깊이는 그의 글과 그림, 설치 작업을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점에서’, ‘선에서’, ‘바람과 함께’, ‘관계항’ 등의 시리즈를 통해 꾸준히 ‘여백의 예술’을 선보이고 있으며 유네스코미술상(파리), 호암상(서울), 세계문화상(도쿄) 등 여러 미술상을 수상했다.

<여백의 예술>은 그가 직접 쓴 책으로 그의 예술관, 철학관을 엿보는 데 도움이 된다.

인터뷰에서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철학이었다.

“지금은 ‘말의 시대’다.

외국 작가들은 다 말을 잘하지 않더냐. 그런데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확실하고 깊이 있는 자기만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 /에디터 : 정성갑 / 사진 : 인물 사진 박우진 취재협조 국제갤러리(735-8449)28평점리뷰보기 예전에 이 책의 저자이신 김미경 선생님의 강의도 들었었고, 또 개인적으로 이우환 작가의 작품에 대한 도슨팅도 준비하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김미경 선생님 특유의 시원시원함과 열정이 묻어나는 화법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 책은 이우환 작가와 모노하에 대한 이야기가 매우 자세히 전개되고 있다.

우선 시대적 배경에 대한 설명이 눈에 띈다.

1960년대 일본에서는 미술 전시회 입장객 수가 수백만 명이 넘었으며 1960년대의 고도 성장과 시민생활의 안정화 속에서 일본의 전위적인 예술활동이 펼쳐졌다는 것이다.

1956년에 일본으로 건너간 이우환 작가는 이러한 일본의 황금시대를 몸으로 직접 느끼고 있었다는 말이다.

특히 그 당시 일본에서 개최되었던 "트릭스 앤 비전-도둑맞은 눈" 전시회는 내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진실인지 눈속임인지를 파고들며 생각했던 작가들이 본다는 문제를 다루는 전시회였으며, 이를 통해 이 사회나 현실에 대해 본다는 모든 것을 다시 한번 의문시하면서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이며 작품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했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우환 작가도 처음에는 이를 모방했다고 설명한다.

 즉, 갈라진 철판과 유리를 포개놓고 돌로 눌러놓아서 마치 유리가 깨진 것처럼 시각적인 착각을 느끼게 하는 작품을 이 때 구상하게 된 것이라 한다.

또한 일본에서 박서보 작가가 이우환 작가를 만났다는 일화와 이우환 작가가 1960년대 이후 한국 미술계의 전개과정에서 변수이자 동인으로 그 역할을 수행했다는 설명도 하고 있다.

또한 모노하에 대한 다양한 설명들이 눈길을 끌었다.

작품을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기면 그 모습은 원래와 달라진다면서 임시, 임장성과 함께 새로운 명확한 표현의 스타일을 짜내는 대신 작품의 양식성을 애매하게 만드는 일을 모노하가 했으며, 작품 소재는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내거나 표현되기 위해서 구성되지 않고 보다 큰 세계로 해방되는 길을 열기 위해 사물이나 장소는 극히 최소한으로만 인간의 손길을 허락하며 인간과 사물이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떠나 등가가 된다는 주장을 했다는 것이다.

또한 모노하는 전적으로 우연성에 달려있지 않다면서 깊은 사색과 예비적인 에스키스 작업을 출발점으로 삼고 우연이나 자의성에 표현을 내맡기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또한 모노하는 날것에 가까운 사물로서의 자연물과 미가공에 가까운 공업용재 같은 인공물 사이에 때와 장소와 신체행위를 매개로 작가 자신도 끼어들면서 사물과의 새로운 거리를 가져보려고 했으며, 모노하의 최대의 공적 중 하나는 작품에다가 규정되지 않는 외부를 끌어안으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이라 설명한다.

이러한 모노하 작품들은 다시 제작되곤 했지만 그럴 때마다 장소나 상황이 바뀌는 만큼 동일한 반복은 불가능했으며, 현재가 과거를 불러일으키며 과거가 현재를 어느 정도 규정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여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게다가 재 제작될 때마다 시간이나 장소의 변화를 수반하면서 사이즈가 바뀌기도 하고 순서가 바뀌기도 하고 부분적으로 수정이 가해졌다고 한다.

물론 무 원칙하게 바뀌지는 않았다고 설명한다.

특히 모노하의 모노란 물질로서의 사물 자체를 가리키지 않는 때도 많다면서 조화를 이루며 우아하고 섬세한 정취의 세계를 이념화 한 것이라 말한다.

 이러한 모노하는 근대주의, 산업사회를 비판하면서 자기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창조자로서의 예술가를 우상화하는 서구 근대미술을 극복하자는 운동이었다고 설명한다.

또한 보통 사람들의 시각에 그냥 따라가는 것은 예술과 상관없다면서 보통 사람들의 시각을 확 트이게 넓혀서 열어주는 것이 바로 예술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기본적으로 모두 그림은 벽에 걸리는 거고, 조각은 받침대 위에 놓여서 얌전히 관객 앞에 숨죽이고 있어야 한다는 전통적인 미술개념을 떠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었다는 말이다.

특히 도대체 이런 것이 예술이냐 그림이냐 하고 성화를 낼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이런 짓을 하고 있는 사람들 자신들은 자기들 것이 예술이란 소리를 듣게 될 것 같아 오히려 두려워하는 형편이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모노하는 현대인간이 어떤 한계에 처해 있으며 그 한계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서구 근대 합리주의의 의식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 세계를 물 자체라고 부르며 그것이 대상화되자마자 자본주의 사회 속의 사물 세계가 인간 존재를 규정해 버리게 되는 문명 상황을 생각한 것이라 한다.

 또한 그 당시 서구 현대 미술계에서는 맹렬한 사물성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예술작품이 사물 그 자체라는 주장과 함께 관념의 예술은 가능한지에 대한 개념예술 논쟁이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즉, 작가의 아이디어 혹은 개념만으로도 결국 예술이 가능하다는 주장이었다는 말이다.

20세기 이전까지 사물과 똑같이 그려진 그림 속에서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생각이나 개념이 가장 중요했다고 한다.

1837년 사진술이 발명된 이후, 이제 사물과 똑같은 모습의 재현은 사진사에게 맡겨졌고, 20세기 미술은 사진과 똑같은 미술이 아닌 추상미술에서 돌파구를 찾았다는 것이다.

추상미술을 시작으로 모더니즘 담론이 1960년대 무렵 벼랑 끝에 서게 되는데 그 극한점 중에 하나가 개념미술이란 말이다.

이를테면 팝아트에서는 오브제가 등장하더라도 이게 깃발이고, 저건 햄버거라는 식으로 사물 이름을 부를 수 있었지만 미니멀아트에서는 작품을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할지도 모를 물건이 앞에 놓여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회화에 대한 논의에서 회화의 독자성에 대한 문제는 절정에 달했고, 2차원 평면성이 불가능한 것이라면 결론은 3차원으로 향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화가들이 조각의 영역으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조각이 아니었고, 물질 자체였으며 산물 자체였다는 말이다.

또한 그것이 놓인 공간과 그것을 보는 시점과 시간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었다는 것이다.

결국 세계는 나의 표상이라고 외치며 작가로서 군림해온 인간이 이제 돌은 돌이고 나무는 나무인 세계의 양상을 인식하고 의식의 표상작용으로부터 해방되어 심지어는 예술의 폐기마저 외쳐야 하는 입장에 까지 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장의 캔버스와 액자에 담겨 벽에 걸려 있는 풍경화는 물리적 존재로서는 확실히 물체 자체지만 그것이 보여주고 전달하려는 건 캔버스, 색, 물감의 두께, 액자 따위는 아닐 것이란 말이다.

거기에 풍경이라는 이념이 있다고는 해도 풍경 그 자체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는 사람은 거기서 그림 물감이 아닌 풍경을 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란 말이다.

오브제라고 부르는 것도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면서 거대한 햄버거는 자본재의 사회상의 물상화이며 상 그 자체로 이념을 실재적으로 응고화시킨 것이어서 자연으로 구성된 실제와는 걸맞지 않는 허상이라 설명하고 있다.

 이와 달리 사물은 그것이 대지든, 철판이든, 스펀지든, 기름이 섞인 유토든 작가에게는 소재가 되지만 보는 사람에게는 그 모든 것이 세계의 모습을 드러내는 양상 그 자체라 설명한다.

소재는 소재 자체에 그치지 않고 구조로 바뀌는 장소에서 두근거리는 만남을 불러일으키는 직접적인 접촉의 세계를 연다는 것이다.

어쨌든 일본에서는 모방성에 초점을 맞추어 이우환 작가를 비판했다는데, 당시는 아르테 포베라 작가들이 미니멀아트 작가들과 합류하고 프랑스의 쉬포르 쉬르파스는 자연과 문명 사이의 문제를 놓고 돌과 철판, 솜이나 흙으로 작업을 행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의미 없는 논쟁이라 일축하고 있다.

또한 이우환 작가는 1971년에 이미 관념미술, 개념미술은 죽었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글을 썼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개념이 예술의 근본이자 예술을 성립시킬 수 있다는 생각까지는 좋은데, 그것이 결국에는 보이는 물질로 전시장에 놓여진다는 것이 딜레마라는 주장이었다.

1971년 파리 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출품했던 "관계항"에 대한 설명도 인상적이다.

 철도 유리도 모두 자연으로부터 왔지만 인간의 손길을 거친 문명의 산물이고 돌도 자연물이지만 이우환이라는 인간에 의해 선택된 것이라 설명한다.

사물들이라는 세계의 항들이 관계를 맺고 있는 상황, 그 상황은 사물들끼리, 그리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생각에 따라 무한하고도 끝없는 변이를 일으킨다고 말한다.

이런 이우환 작가의 작품들은 한국의 젊은 작가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는데, 이들은 이미 1967년경부터 그림을 포기하고 입체 설치 작업과 해프닝을 시작했었으며, 1967년 겨울부터 1970년대 초엽 무렵까지 한국 현대미술의 현장에서도 그렇게 새로운 개념의 입체와 설치 작업에 대한 열기가 후끈했다고 한다.

특히 이우환 작가는 한국에 전시하러 온 김에 제1회 앙데팡당전에 출품한 한국 작가들을 혼자 직접 심사해 1973년 파리 비엔날레에 출품하도록 했는데, 이 때 선정된 작가가 바로 심문섭 작가와 이건용 작가라 한다.

심문섭, 이건용 작가의 경우 작품 설명에서 본인이 느낄 수 있는 리얼리티를 있는 그대로 제시한다는 것뿐이며 예를 들어 나무로 무엇을 만든다는 것은 이미 그 나무는 자연으로서의 속성을 떠나며 더욱 인간으로부터도 떠나는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또한 자연이나 인간이나 가장 먼저 모두가 세계의 일부라는 자각에서 자신의 작품을 시작한 셈이라 말하며 세계의 일부를 원형 그대로 가져다 놓는다는 것이 자신들의 작품 의도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이건용 작가와 심문섭 작가가 흙덩어리에 묻힌 나무 둥치나 찢은 종이와 돌로 파리 비엔날레라는 국제 무대에 갈 때, 박서보 작가는 아무것도 그리지 않았다고 하면서 덧칠과 연필 긋기만 계속한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것을 일본의 모노하 작가인 스카 키시오의 드로잉 작품들과 연계성으로 풀어가면서 이우환 작가가 모노의 문제에서 평면의 문제로 넘어가던 중에 박서보 작가도 1973년에 소위 묘법을 발표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우환 작가의 평면 작업에 대한 설명 역시 어릴 때 서당에서 끊임없이 붓으로 점을 찍고 선을 긋던 때를 상기해보라면서, 1960년대 후반에 일본의 첨단이라던 착시적 일루전 경향을 따라 해보기 직전까지 조심스럽게 혹은 휙휙 자유스럽게 점인지 선인지 모를 터치들을 가하거나 묵직한 선들을 죽죽 긋거나 한지를 손가락으로 이겨대면서 모노로서의 종이의 효과를 살펴보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이 책에서 모노하의 모노란 열림의 시각으로 본 세계에서, 그 상황과 관계 속에 있는 새로운 사물로서의 모노라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인간의 말로 불리는 순간 언어 속에서 사물은 사물화되고 기호화되며 있는 그대로의 세계와는 상관 없이 인간중심적으로 개념화되기 때문에 이렇게 인간중심적인 개념화의 세계에 폐쇄된 채 머물지 않고 세계를 향해 눈을 뜨며 상황 혹은 장 속에서 모든 것을 인식하는 길을 발견한 것이라 언급한다.

그래서 근대사상과 근대 구조의 부정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이우환 작가의 요점이라 설명한다.

이렇게 모노하는 서구 근대의 계몽주의가 일단락된 시점에서 나온 자각적인 문화현상이라면서 이미지의 우상화가 붕괴된 마당에 근대주의적인 조각이나 2차원, 3차원적 이미지로 작품을 만드는 건 이제 우스운 일이 된 것이라 말한다.

한마디로 그림은 벽에 거는 거고, 조각은 딱딱한 물체고, 구성은 황금분할로 되어야 하고 조화와 비례와 대칭이 맞아야 하고 변화가 있어야 하고 등등 고정관념적인 예술개념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각만으로 개인전을 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철판과 바위의 조합으로 된 작품은 양자가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주변공간과 호흡하는 것이 특징. 쇠와 돌 두 가지로 최소화한 소재는 시각적인 알파벳이 되어 관객한테 말을 걸고, 작품이 놓인 큐브공간은 작품과 밀고 당기면서 그 긴장감은 관객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그는 일찌기 일본의 중심으로 나아간 그는, 탈서구적인 모노하를 창시하면서 일본인들을 통탄케 했으며, 프랑스로 나아가 모노하를 상대화하면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우주론적으로 끌어올렸다.

점, 선, 바람, 조응에서 최근의 대화에 이르기까지 그의 회화는 호흡하는 인간의 존재와 관계를 반영해왔다.

국내서는 주로 회화가 유통되면서 화가로 알려졌지만 애초 그는 조각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해외에서는 조각으로 더 조명을 받았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조각가로서의 이우환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기회다.

그는 유리, 철판, 노끈, 목재, 솜, 돌, 전구 등 잡다한 소재를 쓰다가 1970년대 후반 철과 돌로 수렴했다.

그는 그것만으로도 삼라만상 모든 얘기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6일 전시장에서 작품설치를 마치고 작품사진을 갈무리하던 그를 만나 그의 작품세계를 들어보았다.

일본미술의 양식성을 대변한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자신은 민족주의자도, 사대주의자도 아닌 ‘잡탕’ 이우환이라고 말했다.

한국 국적을 버린 탈주자라느니 하는 소문에 대해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지어내어 비난하는 곳은 한국뿐이라며 분개했다.

  -얼마만의 국내전인가? 2003년 리움에서 열린 ‘만남을 찾아서’ 이후 6년만이다.

중간에 잠간씩 들르긴 했지만 볼 일만 끝내고 바로 출국해 한국관객과의 만남은 오랜만이다.

2003년 당시 회고전은 하고 싶지 않다는데 굳이 소장한 옛작품과 함께 전시해 결과적으로 회고전이 됐다.

나는 너무 생생하고 모자라고 정리할 나이가 안 됐다.

여든 살쯤이면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러려면 건강을 잘 살펴야겠다.

 대결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다니는 것이 곧 건강이다.

나는 소립자처럼 끊임없이 돌아다니고 그것이 곧 운동이다.

  (그는 말머리를 휘어잡고 막바로 자신의 작품철학 이야기로 들어갔다.

)    나는 열심히 일하되 덜 생산하고 덜 쓰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저생산, 저소비는 한 국가한테는 망하게 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인류에는 보탬이 된다.

나의 싸움은 싸우지 않고 서로 인정하고 어울려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이번 전시는 어떻게 준비했나 반년전부터 여러번 왕래했다.

전시할 공간을 여러 번 보고, 돌 파는 집과 철판집, 철공소를 자주 다녔다.

옛날이라면 강가 또는 철공장에 갔겠지만, 지금은 돌집에서 돌을 고르고 철판집에서 맞추고 오리는 작업을 한다.

나는 남한테 부탁해 작업을 하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그의 말은 또 한 차례 도약한다.

) 나는 일종의 전시대 문화의 잔재다.

요즘 젊은이들은 나처럼 몸으로 뛰거나 시간을 축적해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

그들은 문화가 아닌 문명을 문제 삼아 빠른 길을 택하고 컴퓨터에서 정보를 수집해 활용한다.

내가 소재로 하는 돌은 최소한 60만년 이상 된 것으로 인류생성 이전부터 존재해온 것이며, 철판은 그 안에서 쇠 성분을 뽑아내 구상화한 것인데 이것은 시간성이 없는 것이다.

즉 돌은 자연 또는 우주를, 철은 인공 또는 산업사회를 상징한다.

나는 그러한 ‘사이’를 만들어주는 역할이다.

대상을 만드는 게 아니라 공간을 만들고 만들수 없는 것 또는 안 만들어진 것과의 만남을 주선한다.

말하자면 나는 엉거주춤하다.

내 글에는 창조라는 단어가 없다.

만든다는 말도 아껴써야 한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애초 출발이 조각인 것으로 아는데. 맞다.

나는 조각으로 시작했다.

모노파의 시작이 그렇고 유럽에서 조각으로 더 유명했다.

회화와 조각 작품을 함께 전시하면 평자들이 조각에 더 주목했다.

요즘은 고르게 주목 받지만. 한국에서는 주로 회화만 다뤘다.

서울에서 조각작품을 판 적이 없다.

간혹 보이는 것은 기증한 것이고,  사 앞의 것은 돈과 무관하게 설치됐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한국사람들은 나의 작품을 그냥 철판과 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것은 맞다.

그것들은 강과 철공소에서 잠간 차용돼 불려온 것이다.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미술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조각, 즉 인위적인 변화로써 만든 것을 조각이라고 보는 성향이 강한 탓이다.

나를 모르는 관객이 전시장에 들어와 돌이 조용하고 철판이 쓰러질 듯하니 참 희한한 장소에 왔다, 왠지 정숙해야 한다는 느낌을 받거나, 불안한 느낌을 받거나 막 샤워를 한 느낌을 받으면 성공이다.

나도 잘 모르지만 그런 느낌이 중요하다.

내 작품은 관계를 만드는 것으로 엉거주춤하다.

한국은 그런 관계에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작가세계와 연결해서 생각해야 한다.

  (이때 그가 주문한 에스프레소 커피가 나왔다) 나는 에스프레소를 오래동안 즐겨 마셔왔다.

유럽인들이 좋아한다.

이 커피는 고압·고온에서 커피콩의 모든 성분을 뽑아낸 것이다.

말하자면 여러 맛이 섞인 잡탕이다.

일본인들이 마시는 차와는 전혀 다르다.

일본인들은 찻잎에 일정하게 더운 물을 살금살금 부어 필요한 성분만 뽑아내 맛이 순수하다.

일본식 발상이다.

나는 잡탕을 마시는 사람이다.

한국은 원래 잡탕민족이었는데 한반도로 주거가 국한되면서 단일화했다.

나는 외부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요즘 우리나라도 여러 민족이 들어오가 나가고 하면서 다문화 국가가 되고 있지 않은가.   -작가의 작품은 상대화로 요약되는 것 같다.

    그렇다.

일본으로 가면서 한국이 상대화 되었고, 유럽에 가면서 동양이 상대화 되었다.

나의 조각작품도 놓이는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

즉 장소를 옮기면 다른 작품이 된다.

외국인 작가의 작품들은 어디를 가나 함의가 일치하는데 내것은 장소에 따라 특수성, 개별성을 띤다.

물질을 개념을 나타내는 도구로 삼은 유럽인들이 내 작품을 보고 희한하다고 하는 이유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오랜 관습과 습관 탓에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한다.

나무를 본다고 할 때 저기 서있는 나무가 내 눈에 비친 나무와 일치하는가 하면 그게 아니다.

오랜 습관이 쌓여 의식이 되고 그런 식으로 생각하며 보는 것이다.

나의 작업을 개념으로 포착되지 않는 것을 잡아내는 것이다.

    -조각과 회화가 구분이 없어 보인다.

 회화는 반물질, 개념성이 강하다.

캔버스와 벽을 마주보며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고독한 작업이다.

그래서 조각에 비해 나 자신이 더 나타날 수 있다.

내 그림과 이우환 이름은 일치한다.

하지만 조각은 작품을 보고나서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나는 작품이 스스로 말을 하게 한다.

즉 ‘나는 곧 돌’이라는 컨셉트다.

회화나 조각 모두 덜 그리고 조금 처리하여 터치 안 한 곳과 연결한 점에서 일치한다.

   -초기조각과 지금의 작품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큰 변화가 없다.

기왕에 인간이 만들어놓은 규정을 박살내자는 모노파는 물질을 차용해 말로써 안되는 부분을 표현한 것이다.

새로운 코드를 만들자는 것이다.

처음에는 뒤죽박죽이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정리가 되고 온순화 되었으며 소재도 철, 솜, 나무, 전구 등에서 철과 돌로 정리됐다.

두 가지만으로도 살짝 휘고 떼어내는 등 작은 트릭을 가하면 우주와 삼라만상을 다 얘기할 수 있더라.   -조각 회화 모두 퍼포먼스의 결과물 같다.

 맞다.

전부 그렇다.

오늘 날 인기는 없지만 작품은 퍼포먼스의 결과처럼 보여야 한다고 믿는다.

요즘 젊은 작가들은 몸으로 하는 것을 피곤해한다.

버추얼 리얼리티와 정보만 있으면 되고 남을 시켜 작업을 해도도 무방하다.

그래서 리얼리티가 없다.

그들은 내 작품을 보면 피곤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편하다는 사람도 있다.

작품의 윤리성은 신체성과 통한다.

작품의 긴장은 신체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나의 작품에서 신체성은 살짝 세우거나 휘거나 하는데서 드러나는데 간단하지만 중요한 것이다.

좋은 작품은 신체성과 함께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요즘 개념미술이 유행이지만 그 가운데 조셉 코스스, 온 가와라처럼 좋은 작가도 있다.

그들의 작업은 철저하고 엄격한 것이 신체성과 관련돼 있다.

내 작품도 일부에서 개념미술에 포함시키지만 리얼리티가 강한 측면이 있어 어정쩡하다.

    -일본어로 쓰고 생각한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1956년 20대에 한국을 떠나 현재 73살이니 50여년을 해외에 머물렀다.

일본에 가장 오래 머물러 일본물이 안들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가운데 프랑스에도 30년 머물러 유럽물도 들었다.

나는 잡탕이다.

순수하지 못하다.

민족주의자도 아니고 사대주의자도 아니다.

나는 그냥 이우환일 뿐이다.

일본식으로 생각하느냐고? 나는 일본말이 쓰기에 훨씬 쉽다.

하지만 언어는 문제가 안된다.

교육이 문제인데, 일본이나 한국이나 근대화의 뿌리는 유럽이고 유럽을 잡탕이다.

잡탕인 나를 두고 일본식이라고 욕한다면 개 새끼다.

   -그동안 오해로 마음고생이 심한 것 같다.

  국적이 일본이라니, 탈주자라느니 별 소리를 다 들었다.

심지어 얻어맞기도 했다.

나는 한국국적이다.

바꿀 의도가 없다.

바꾼다 달라질 것도 없다.

내가 일본이나 프랑스 국적을 얻는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아이들도 한테는 편하면 바꾸라고 했다.

그래도 안 바꾸더라. 한국 들은 이럴 거다 하고 추측해 작문기사를 쓰더라. 작품을 두고도 ‘왜’를 말하지 않고 비난하더라. 심지어 돌과 철판뿐이더라는 평을 하더라. 그런 것을 읽을 생각이 없는데 부쳐주어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결혼했나, 애가 몇이냐, 경매값이 얼마나 등 들의 질문이 똑같다.

그런 것 왜 묻는가. 작품이 전시회, 아트페어, 옥션 등 3개 축으로 움직이는 것을 사실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작가는 옥션을 싫어한다.

    -장소성이 중요한 당신의 조각에서 작가의 몫은 어디까지인가.  나는 설치된 작품 사진을 찍어 사인을 한 뒤 작품과 함께 넘겨주는 것으로 끝이다.

옮겨간 장소에까지 따라가 설치하지 않는다.

구입한 다음에는 그 사람의 감각에 달렸다.

  그것도 작품의 일부다.

그리고 내 작품은 딱히 꼭 그래야 한다는 것도 없다.

조금씩 변형이 가능해 다른 이의 개입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 덜고 빼고 절제하는 작품인가 유교의 영향이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그것이 대결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단순한 것은 강력한 무기다.

점, 선 시리즈에서 붓을 내려 그을 때 1분50초에서 2분 숨 안 쉬고 한다.

나는 괜찮은데 오히려 구경꾼들이 숨막혀 하면서 ‘그만하라’도 외친다.

그것도 일종의 무기다.

따로 명상이나 단전호흡 등을 하지는 않는다.

굳이 그런 것을 안해도 몸이 훈련돼 있어 가능하다.

   -작품에 동양적이라고들 한다.

   불쾌하다.

그것은 이류비평가나 하는 말이다.

동양적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지 불명확하다.

멍청하다? 자연스럽다? 유럽인들이 동양적이라고 말할 때는 뭔지 모르지만 늬네들끼지 잘 해 보라는 빈정거림이다.

그런 말을 듣고 좋아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스스로 동양적이라고 하는 작가조차 있더라. 나를 아는 사람은 결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불쾌해 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회화가 점, 선, 바람, 조응, 대화으로 바뀌었는데 이것은 수렴인가 단순한 변화인가. 변화이자 수렴이다.

나도 헷갈린다.

결과일 뿐이다.

나작업을 하다가 어느 순간 떨려서 규칙적이고 균질한 점, 선 긋기가 안되더라. 머리는 되는데 몸이 반란을 일으키더라. 병원에도 가고 했다.

어느 날 바들바들 손떨림이 재밌어 아예 점, 선을 흩어버리자고 한게 바람이다.

지금은 점, 선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

물론 생각도 바뀌었고.   -작품의 변화는 곧 몸의 변화인가. 그렇다.

내 작품은 나의 의식이고 나의 몸이기 때문이다.

--------------미술거장 이우환씨에게 헌정되는 국내 첫 전용 전시관 ‘이우환 공간’이 다음달 10일 문을 연다.

새 전시장에서 신작을 작업중인 이우환 작가.부산에 국내 첫 전용 전시관유럽과 일본에서 활동중인 미술거장 이우환(79)씨가 처음으로 고국에 작품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에게 헌정된 국내 유일의 상설전시관 ‘이우환 공간’(이우환 스페이스)이 다음달 10일 부산에서 문을 연다.

부산시는 2011년부터 추진해온 전용 미술관 성격의 ‘이우환 갤러리’ 프로젝트를 최근 마무리하고 4월10일 국내외 미술계 인사를 초청해 개관식을 연다고 밝혔다.

 지난해 3월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해 1년여 만에 실체를 드러낸 ‘이우환 공간’은 부산 해운대 시립미술관 경내에 자리잡고 있다.

지하 1층과 지상 1, 2층에 연면적 420여평 규모로 지어진 유리벽+콘크리트 건물로 단순 직육면체 모양의 미니멀한 외관이 특징이다.

설계와 전시 컨셉트 일체를 작가가 직접 도맡았을 뿐 아니라 건축형태 자체가 작가가 추구해온 점·선의 미학적 개념을 반영하는 또하나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개관 전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우환씨의 개인미술관은 2010년 일본 나오시마에 건축거장 안도 다다오의 설계로 지어진 이우환 미술관이 유일하다.

새로 들어선 이우환 공간은 작가의 간청으로 정식 미술관 명칭을 사용하진 않지만, 사실상 미술관과 다를 바 없다.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작업해온 평면, 설치, 조각 등 작품 20여점이 설치돼, 컬렉션의 내용이나 규모 면에서 나오시마 미술관에 뒤지지 않는다.

애초 이우환 갤러리란 명칭을 쓰려 했으나 상업화랑을 연상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 작가의 요청에 따라 ‘공간’으로 바꿨다는 게 시립미술관쪽 설명이다.

 부산시립미술관 ‘별관’ 운영작가의 ‘미니멀 미학’ 외관에20여점 상설…1년 두차례 기획전 대구 이우환 미술관 건립 파행에국내 첫 이우환 전시관은 부산 몫미술관, 전담 학예사·TF도 운영 이우환 공간은 현재 작품들의 설치를 거의 마무리한 상태다.

전시공간은 1, 2층으로 나뉜다.

2층은 60년대 일본에서 전위운동 모노하를 주창할 당시 초기 회화부터 큰 점의 울림을 담은 근작 ‘다이얼로그(대화)’까지 평면 그림 10여점을 선보인다.

특히 바닥면과 벽면에 작가가 최근 심혈을 기울여 작업한 벽화들이 설치돼 눈길을 끈다.

설치와 회화 사이의 경계에 놓인 작품들이다.

1층 전시장은 돌과 철판이 마주보거나 깨진 유리판 위에 돌덩이가 올라앉은 설치작품 ‘관계항’ 연작들과 철조각들이 배치되며, 야외에도 겹쳐진 철판 모퉁이에 돌덩이들을 놓은 설치조각 ‘디스커션(회의)’이 나올 예정이다.

미술관 쪽은 “2층 회화 전시 공간의 일부를 활용해 1년 중 2차례는 기획전시를 하기로 작가와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부산 해운대 시립미술관 옆에 자리한 이우환 공간의 새 건물 모습.시쪽은 이우환 공간을 시립미술관 별관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국제적 지명도가 있는 미술계 인사를 명예관장으로 임명하고 전담 학예사와 이우환 작품세계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티에프팀을 운영하겠다는 구상도 짜놓았다.

 이우환 공간은 건립 과정에서 곡절이 많았다.

작가가 부산에서 중학교를 다녔던 연고를 내세워 시쪽이 이우환 작가에게 미술관 건립의사를 타진했다.

이 작가는 국내 전시관 설립에 애초 부정적이었지만, 허남식 전 시장의 간청으로 갤러리 프로젝트를 추인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2012년에는 대구시가 이 작가와 세계적 거장들의 작품을 함께 전시하는 ‘이우환과 친구들’ 미술관을 추진하면서 거장을 놓고 두 도시가 경쟁하는 구도가 형성됐으나 지난해 막대한 건립비용과 작품 기증을 둘러싼 이견으로 대구시가 사업을 접으면서, 국내 최초의 이우환 전시관은 부산시 몫이 됐다.

시립미술관의 김연준 학예사는 “이우환 공간 개관은 존재감이 없었던 지역미술관의 전시콘텐츠를 한국 미술의 대표 브랜드로 특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사건”이라며 “작가의 명성과 위상에 걸맞는 전시 컨텐츠의 개발과 지속적인 작가연구가 과제”라고 했다.

 노형석  nuge@hani.co.kr 회화건, 설치 작품이건 이우환의 작품은 그 자체로 가장 아름답고 깊이 있는 철학이다.

그런데 그 고요한 느낌의 작품 속에는 수십 년간 고뇌한 작가의 치열함이 아우성친다.

국내에서 여는 6년 만의 개인전. 국제갤러리에서 만난 그는 사적으로나, 작품적으로나 할 말이 많아 보였다.

모델처럼 포즈 취하길 극도로 싫어하는 거장은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야 하고 언론도 이를 존중해줘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우환은 백남준과 ‘동급’으로 거론할 수 있는 유일한 작가다.

뉴욕, 파리, 런던, 도쿄 등 세계 4대 미술 시장에서 통하는 것도, 각각 비디오 아트와 ‘모노하もの派’의 창시자로 세계 미술사에 의미 있는 한 획을 그은 것도 그 둘이 유일하다.

작품가에서는 이우환이 오히려 앞선다.

노老 작가는 “옥션에서 돌려가며 내 작품을 사고파는 사람들을 혐오한다”고 말하지만 어쨌거나 이우환의 마스터 피스는 거의 매년 최고가를 갱신하며 약 20억 원까지 치솟았다.

그의 작품이 한국은 물론 세계 시장에서도 활발히 소비되는 이유는 그 누구도 함부로 공격할 수 없는 단단한 철학 덕분이다.

언뜻 그저 점 하나, 선 하나 그려놓은 것 같지만 그 안에는 미처 함께 그리지 못한 수많은 부재不在의 언어가 존재한다.

<여백의 예술>, <시간의 여울>, <멈춰 서서> 같은 저서를 읽으면 미처 화폭에 표현하지 않은 사상과 철학이 희미하게나마 보이는데(그의 글은 때로 암호 같아서 행간의 의미를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 언어는 한결같이 ‘여백의 미술’을 이야기하고 있다.

무려 40년 동안 이 한 가지 화두를 파헤치고 또 파헤치는 작업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지난 10월 9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선보인 돌과 철판을 주요 소재로 삼은 설치미술 역시 1960년도부터 천착해온 작업이다.

예술이란 결국 누가 더 단단하고 매혹적인 철학을 갖고 있느냐의 싸움인데 그 점에서 이우환은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공력을 보유한 것이다.

더구나 그 철학은 아름답다.

일본에서 40년 넘게 살아서 그런지 일본 고유의 단시형短詩形 하이쿠의 향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작품 속에 내재한 철학을 작가에게 직접 설명 듣기란 쉽지 않다.

이우환의 말을 빌리자면 한국 들은 “작품이 얼마에 팔렸는지에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미술가는 모델이 아닌데 이렇게 서봐라, 저기에 앉아봐라 주문이 많으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했다가 도일해 대학을 나오고 활동도 하는 나를 한국은 도망자 취급하기” 때문이다.

세계적 작가는 <럭셔리>와의 사진 촬영에서도 “나는 포즈 잡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버럭’ 했다.

하지만 인터뷰에서는 많은 말을 토해냈다.

여자 친구 얘기가 나올 때는 아이 같은 미소도 스쳤다.

‘까칠한 예술가’란 세간의 평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이우환의 작품은 그 자체로 한편의 미학적 철학이다.

설치 작업 역시 극도로 단순하고 함축적이어서 신비롭다.

그런데 심오한 철학을 모르고서는 작품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 겁이 난다.

철학을 알아야 작품이 보일 것 같아 적잖이 부담되는 것이다.

내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철학적 지식이 필요하다는 말은 말짱 거짓말이다.

길 가는 아낙네, 초등학생 어린이도 내 작품을 알 수 있다.

반대로 지식인이나 미술 전문가는 이해 못할 수도 있다.

그전에는 내 작품을 이해했으나 직접 보면 헷갈릴 수도 있다.

나 자신조차 허우적거리기 일쑤인데 어떻게 모든 사람이 이해하겠나. 내 작품은 현장에 직접 와서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품이 놓인 공간 역시 작품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공간 속에서 무언가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주변 공기가 울리는 막연한 진동 같은 것이 느껴진다면 그걸로 된 거다.

주변 여백과 소통하는 것이 내가 천착하는 ‘여백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눈으로는 쉬우나 머리로는 어려운 작품이다.

“돌 하나 철판 하나를 갖다 놓고 작품이라 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가? 돌과 철판을 이리저리 놓아보는 작업을 수없이 반복한다.

작년에 뉴욕에서 전시회를 할 때는 컴퓨터를 통해 수차례 보고 이메일로 컨펌한 것을 현장에서 바꾸기도 했다.

막상 현장에 가보니 괜찮겠다 싶었던 돌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거다.

롱아일랜드 등지를 돌아다닌 끝에 다른 돌로 대체했다.

그럴 때는 애초에 진열한 돌에게 미안하다.

자기가 선택됐다고 생각하며 기분 좋게 앉아 있는데 방을 빼라고 하니 얼마나 언짢겠는가. 돌 하나, 철판 하나만 있으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셈이니 누구라도 모작을 할 수 있겠다.

누군가 비슷한 작품을 만들면 어쩌나?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참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이건 내 작품이 아닙니다”라고 할 수밖에. (왼쪽) Relatum - Dialogue, 2009(오른쪽) Relatum - Triangle, 2009 예술에서 승부는 누가 독특하고 강력한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가에서 갈린다.

때문에 많은 작가가 자신만의 철학을 세우려고 노력하는데 작가에게 철학의 효용은 뭘까? 작가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심오함이 없으면 오늘 이걸 하고 내일 저걸 하며 흔들린다.

반짝 하고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철학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는데 아이디어는 철학과 동의어가 아니다.

근대화를 거치며 빨리빨리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나라 전체의 습관이 되었다.

여기에 휩쓸려서는 자신만의 철학을 갖추기 힘들다.

지난 수백 년간 축적하고 발전시킨 문화에서 나온 것이 철학이기 때문이다.

미술 하는 이에게 철학은 더욱 필요하다.

전쟁터에 나가 수천, 수만 명의 경쟁자와 싸우려면 개념이 확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귀신이 잡아가도 모른다.

서울대학 입학 당시에는 미술대학에 진학했다가 도쿄의 일본대학에 편입할 때는 문학부 철학과에 들어갔다.

전공을 철학으로 바꾼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미학이나 사회 사상사를 튼튼하게 알아놓아야 나중에 무엇이든 제대로 할 수 있는 토대가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철학은 생각이나 몽상만으로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탐닉했다는 표현을 쓸 만큼 책을 많이 읽은 것으로 아는데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열심히 책을 읽었나? 더불어 꼭 읽을 만한 명작 몇 권을 추천해주면 좋겠다.

고등학생 때, 친구와 도서반을 만들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세계문학전집, 세계 고전 등을 거의 다 읽었다.

일본에 가서는 일본어를 배운다고 그 책을 모두 다시 읽었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못 읽은 책이 있다는 걸 견디지 못했다.

가장 권하는 책은 성경이다.

기독교가 내 종교는 아니지만 얻을 것이 많다.

너무 이데올로기적이고 정리가 잘된 신약보다는 신화적 측면이 강해 상상력을 동원해 읽을 수 있는 구약이 더 좋다.

<노자>나 <장자>, <논어> 등도 읽어야 한다.

하이데거의 <예술 작품의 기원>, 플라톤의 <향연> 등은 여러 모로 도움이 되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멜빌의 <모비 딕> 등은 반드시 읽어야 할 최고 작품이다.

우리나라 작가로는 서정주가 단연 으뜸이다.

“왜 친일親日을 했습니까?”라는 언론의 질문에 “나는 천체의 운행을 따랐을 뿐이다”라는 재미있고도 희한한 답변을 한 그는 우리 시대 최고의 시인이었다.

 작품 이야기를 해보자. 돌과 철판을 이용하는 작업이 40년째다.

제아무리 사랑하는 여자도 3년이면 싫증이 나는데 이 투박한 오브제가 뭐 그리 예뻐 헤어나지 못하는가? 진리를 찾는 과정에는 뭔가 꼬투리가 보일락말락하는 시점이 반드시 있다.

그러면 또 그 옆을 파지 않을 수 없다.

미술계가 넓은 것 같으면서도 좁아 살아남기 위해서는 진지한 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갈팡질팡해서는 안 된다.

어떤 작업을 하고 있다는 걸 지속적으로 보이고, 제시하다 보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존재성을 드러낼 수 있다.

왜 하필 돌이고 철판인가? 돌과 철판을 통해 인간과 자연, 산업사회와 대화를 꾀하고자 함이다.

돌은 자연 그 자체다.

지구보다 오래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과 마주한다는 건 몇백, 몇천만 년 전의 우주적 파편과 만나는 일이다.

반면 철은 산업사회의 부산물이다.

인간이 만든 존재란 말이다.

전혀 성질이 다른 것 같지만 2개의 오브제는 사실 형제나 부자父子 같은 관계이기도 하다.

돌에서 철분을 추출해 만든 것이 철판이기 때문이다.

이제 작품을 다시 한번 봐라. 한 공간에서 돌과 철판이 서로 마주 보고(대결하고), 나란히 서고(화합하고), 어울리며(그의 작품 중엔 돌 위에 기다란 철판을 올린 것도 있다.

마치 돌 위에 노곤한 심신을 누이는 것처럼) 관계를 맺는데 침묵하는 것 같기도 하고, 반성하는 것 같기도 하며, 대화하는 것 같기도 하다.

돌과 철판 3개를 원 모양으로 하나씩 교차하며 놓은 작품이 있는데 이는 돌과 철판이 한데 모여 회의를 하는 것처럼 왠지 모를 팽팽함이 느껴진다.

돌과 철판의 침묵에 귀 기울여보면 오늘날 사회도 보이고, 자연으로 가는 길도 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돌과 철판이 있다.

어떤 모양과 질감의 것이 좋은 돌이고 좋은 철판인가? 굉장히 뉴트럴Neutral하고 모호한 것을 좋아한다.

너무 잘생기거나 개성이 강하면 공간 속에 어울리지 못한다.

그런데 좋은 돌과 철판 찾기가 어디 쉽나? 뉴욕 공사판, 토스카나, 알프스, 설악산, 일본의 수많은 산, 제철 공장 등 안 다녀본 곳이 없다.

1971년에는 파리에서 전시회를 하는데 일주일간 몇백 킬로미터를 달려 이곳저곳을 뒤져도 쓸 만한 돌을 찾지 못했다.

당장 내일이 전시 오픈인데 어떡하나, 허탈한 마음에 전시장 공원을 거닐고 있는데 눈앞에 꼭 내가 찾던 돌이 있는 것 아닌가?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돌을 옮겨다가 설치하고 다음 날 어슬렁어슬렁 전시회장에 갔는데 경찰이 찾아와 “저 돌을 당장 돌려놓지 않으면 교도소에 넣겠다”며 화를 냈다.

거의 울 지경이 되어 사정을 설명하고 파리에 나와 있던 한 일간지 특파원과 예술총감독이 “전시회가 끝나는 대로 꼭 갖다 놓겠다”고 겨우 설득한 끝에 간신히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나중에 보니 돌이 있던 곳은 일본 정원이었다.

개 눈에는 개똥밖에 안 보인다고 자주 봐왔던 돌만 좋아 보였던 거다.

선입견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돌 같은 경우 전문 매매업자에게 부탁하는 경우도 많다.

그들이 좋은 돌을 잘 구해주던가? 태반이 내 말을 못 알아듣는다.

형태도 없고 동그스름한 돌을 찾는다고 사진을 보여주며 말해도 자꾸 희한한 얼굴을 한 돌을 가져와 “참 잘생긴 놈”이라고 들이대는데 내 얼굴에는 죄다 괴물처럼만 보이더라. 제발 못생긴 돌 좀 구해달라고 몇 번이나 말해야 한다.

 서양화가 윤석남 씨와 대담에서 작가의 작품에는 사회적 분위기가 담겨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이번 전시 작품과 연결하면 어떤 분위기,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 것인가? 자기비판을 통해 사회에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예술가의 몫이라 생각한다.

대량생산과 소비는 현재 전 인류의 문제다.

중국 같은 나라는 한 해에 7

8%씩 성장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촉발된 환경오염이나 공해 같은 문제는 어찌할 것인가. 경제 전문가들이 들으면 욕지거리를 할 소리지만 나는 우리나라의 성장률도 차라리 마이너스로 갔으면 한다.

그래야 영속 가능한 인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리처드 세라나 리처드 롱 역시 작품에 돌과 철판을 많이 사용한다.

그들의 작품과 이우환의 작품은 무엇이 다른가? 둘의 작품은 어디에 오브제를 갖다 놔도 작품의 컨셉트가 보인다.

작품의 느낌이 장소에 따라 확 달라지지가 않는다.

하지만 내 작품은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느낌과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공사판에 나뒹구는 돌, 철판과 여기 갤러리에 놓인 돌, 철판의 느낌은 전혀 다르지 않은가. 돌과 철판을 주요 소재로 쓰지만 공간 자체가 내겐 더 중요하다.

캔버스에 그린 그림이나 오브제가 주변 공간을 무대 삼아 울려 퍼지는 것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캔버스를 포함한 어떤 오브제도 컨셉트의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들 나름대로의 신체성身體性을 최대한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붓도, 물감도, 캔버스도 제각기 자기 모습이 있는데 이를 일방적으로 강제 동원해서는 안 된다.

물론 나 역시 오브제를 가져와 작품에 활용하지만 가능한 한 돌과 철판의 신체를 훼손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회화나 조각 역시 뭔가를 창조하고 생산한다는 발상을 가능하면 덜 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이우환이 창시한 모노하의 핵심인가? 그렇다.

1960년대 후반 히피 운동이 퍼지면서 미술도 기존의 틀을 깨자는 운동이 일었다.

석탄을 화랑 공간에 갖다 놓고 작품이라고 하는가 하면 갤러리에 말을 끌고 와 매놓기도 했다.

캔버스를 자기 영토라고 생각해 사상과 물감을 쏟아내는 것을 그만두고 캔버스가 뭔지, 붓이 뭔지 다시 생각하자, 캔버스와 붓의 역할을 일방적으로 규정하지 말고 그들과 대화를 하자는 움직임도 동시에 일었다.

이러한 흐름은 일본에까지 전해졌는데 나무, 돌, 철판, 종이 등의 소재에 거의 손을 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직접 제시한 이 같은 사조를 통칭해 ‘모노하’라고 불렀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림도 못 그리면서 그냥 물건만 갖다 놓는 놈들’이란 비꼼과 무시, 멸시가 담겨 있었다.

모노하, 즉 물파物派(‘모노もの’란 일본어로 물체나 물건을 뜻한다)라는 이름도 그래서 생긴 것이다.

내가 모노하의 창시자라는 건 맞지 않다.

다만 역할을 했다면 미술의 순수성에 관한 글을 많이 썼을 뿐이다.

 물건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이와 반대로 세상에는 오브제를 찢고, 자르고, 변형해 컨셉트를 표현하는 이도 많다.

데미언 허스트 같은 이는 아예 소나 상어의 피부를 절단, 내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작품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현대미술은 ‘아름다움’이란 단어로 규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쇼킹한 볼거리 역시 시각예술의 하나로서 제 기능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같은 작업이 내 취향은 아니라는 거다.

무라카미 다카시, 요시토모 나라 같은 젊은 친구들과 40년 가까이 대학에서 어울렸기 때문에 그들의 작업 세계, 아이디어에도 관심이 많은데 컴퓨터 같은 하이테크놀로지를 많이 사용하는 요즘의 트렌드는 나와 맞지 않는다.

조작을 하더라도 내겐 오브제 자체의 신체성이 중요한 것이다.

최대한 날 것 자체에 가까운 오브제를 씀으로써 긴장감과 리얼리티가 생기는데 요즘의 작업물은 너무 개념적이거나 가볍다.

 어린 시절 서당에서 소학을 공부하며 ‘금강산도’로 유명한 한국화가 황견용에게 시, 서, 화를 배웠다.

그 솜씨를 한번쯤 현란한 붓 터치와 색채감으로 세상에 뽐내고 싶진 않았는가? 그러면 물건만 갖다 놓는 작가들이라고 폄하되지도 않았을 텐데…. 단 한번도 뽐내고 싶다는 발상 자체를 한 적이 없다.

이는 사물도 죽이고 나도 죽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순간순간 뽐을 내는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하여 나는 ‘뻐기는’ 사람을 안 좋아한다.

특히 확고한 철학 없이 어설프게 작품으로 뻐기는 사람을 보면 비틀어서 박살을 내놓고 싶다.

 (위) From Point, 1978방금 든 생각인데, 글로 박살을 내도 잘할 듯싶다.

<멈춰 서서> 같은 에세이집은 전문 작가의 것이라고 해도 될 만큼 훌륭하다.

단편 ‘뱀’, ‘아크로폴리스와 돌멩이’ 같은 작품은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실렸다.

일본에 가지 않고 한국에 있었다면 문학가가 되었을 거다.

고등학교 때 <>에서 주최한 문학상에 동시가 가작으로 당선되었고 <동아일보>에서는 소설이 후보작으로 뽑히기도 했다.

비평가가 내 작품 세계를 인정 안 해주고 답답하니까 계속 글을 썼고 그 과정을 통해 글 실력이 조금씩 늘었다.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나 자서전을 보면 오랫동안 작가가 되어 그림을 그리는 일에 확신을 갖지 못했던 듯하다.

무슨 연유인가? 경상남도 함안군 산골짜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할아버지는 유교적 봉건사회의 가장 마지막 세대를 사신 분으로 내게는 ‘꼭 멀리 가서 살아라, 넓은 세상을 봐라’ 라고 말씀하시면서도 본인은 평생을 농민으로 한곳에서 살았다.

집안 어른들은 (그림에 관심을 보이는 내게) ‘절대 그림은 그리지 말아라, 그림 그리기는 애와 여자나 하는 짓’이라고 얘기했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지금도 내부에는 ‘내가 그림을 그려서는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있다.

 “나는 평생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도망자라 했고, 일본에서는 침략자라 했다”고 습관처럼 말한다.

이만큼 큰 성공을 거둔 지금까지도 양국의 냉랭한 시선에는 변함이 없는가? 그렇다.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일본은 밀어내는 것을 포기했지만 한국에서는 아직도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단일 민족, 순수 민족에 관한 믿음이 강해 이방인에게는 “바깥 냄새가 난다”는 둥의 이유를 들어 밀어낸다.

웃기는 얘기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소비하는 물품의 태반이 외국 교역을 통해 얻은 것 아니냐. 그건 수입품일 뿐이라고 말할지 모르나 이런 것이 다 은연중에 우리의 몸과 정신을 형성한다.

 글도 잘 쓰고, 작품도 널리 인정받으니 여자 친구도 많겠다.

어떤 여성상을 좋아하는지? 아내가 만날 놀리는 부분인데 주변에 여자 친구가 항상 있긴 했다.

지금도 많은 여자 친구가 있는데 모두와 잘 지낸다.

그런데 좋아하는 스타일을 말하기는 참 어렵다.

여자 친구마다 좋은 부분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나이 먹고 철없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조심스러운데 한번은 여성상 문제로 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

30여 년 전 한 좌담회에서 좋아하는 여성상을 말한 모양인데 그 자리에 있었던 편집자가 그 후 우연히 데이트를 하던 나를 보고는 ‘선생님이 일전에 말씀하신 여성상하고는 많이 다른데요’ 하는 것이 아닌가. 참, 뭐라고 대꾸를 하기가 어려웠다.

 많은 여자들이 쇼핑에 열광한다.

쇼핑 좋아하는 여자는 왠지 못마땅하게 생각할 것 같은데…. 아니다.

나 역시 쇼핑도 잘하고 맛있는 것도 잘 먹는다.

특히 음식에는 욕심이 많은 편이라 해외에 가면 조엘 로부숑이나 알랭 뒤카스 같은 스타 셰프의 음식, 최고급 와인 등을 꼭 챙기려고 노력한다.

럭셔리하고 멋있는 삶을 살려면 습관적으로 ‘하이 퀄리티’를 추구해야 한다.

적게 소비하고 조금만 갖되 갖고 있는 것들은 최고로 좋은 것이어야 한다.

몇몇 여자들을 보면 이것저것 손에 잡히는 대로 쇼핑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던데 어쩌려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음식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지금 한국에서는 한식의 세계화 바람이 거세다.

소문난 미식가로서 한마디를 보탠다면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가? 한식당이 안 되는 이유는 제대로 된 셰프가 없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한국에서 제일 잘한다는 식당을 찾아다닌 적이 있다.

“당신의 레서피는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는데 단 한 명도 그 말을 이해해지 못했다.

요리법은 책에 있다는 둥, 엄마의 손맛을 내려 노력했다는 둥, 시골 밥상이라는 둥 엉뚱한 얘기만 하는 거다.

셰프의 독창성이 없는 음식은 음식이지 요리가 아니다.

한식이 세계적인 것이 되려면 무엇보다 셰프를 키워야 한다.

자기만의 육개장, 자기만의 김치를 만드는 요리사가 많아져야 한다.

 이렇게 까다롭고 싫고 좋음이 확실한 이우환 작가가 추천하는 한국 작가는 누구일까? 김수자 같은 작가는 세계 무대 어디다 내놓아도 통할 작가다.

이동엽과 정상화 작가도 훌륭한데 특히 정상화 작가는 내가 아는 제일 좋은 작가, 제일 훌륭한 작가다.

한국에는 좋은 작가가 참 많다.

  이우환은 현대미술의 거장이자 ‘모노하’의 창시자인 그는 문필가이자 철학가이기도 하다.

하이데거나 니체의 사상, 현상학, 구조주의 등 수많은 학문을 섭렵한 데서 나오는 깊이는 그의 글과 그림, 설치 작업을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점에서’, ‘선에서’, ‘바람과 함께’, ‘관계항’ 등의 시리즈를 통해 꾸준히 ‘여백의 예술’을 선보이고 있으며 유네스코미술상(파리), 호암상(서울), 세계문화상(도쿄) 등 여러 미술상을 수상했다.

<여백의 예술>은 그가 직접 쓴 책으로 그의 예술관, 철학관을 엿보는 데 도움이 된다.

인터뷰에서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철학이었다.

“지금은 ‘말의 시대’다.

외국 작가들은 다 말을 잘하지 않더냐. 그런데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확실하고 깊이 있는 자기만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 /에디터 : 정성갑 / 사진 : 인물 사진 박우진 취재협조 국제갤러리(735-8449) 또한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을 따른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다른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작품이 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마음 가는대로 바라보는 것만이 작품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된다.

때론 예쁜 도슨트의 해설보다, 유식한 말이 넘치는 해설집보다 나만의 이해가 더 와 닿을 때가 있다.

그림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심안(心眼)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울산문화예술회관 제1전시장에서 한국미술특별전이 4월24일부터 5월14일까지 열리고 있다.

언론의 요란한 공개에도 불구하고 4월 끝자락에는 사람이 없다.

울산사람들 마감하느라 죄다 바쁜가 보다.

   나는 단 하나의 작품이 몹시 궁금했다.

그 점. 점점점점점 거리고 있는 바로 그 점. 언론에서 대서특필 될 때마다 나는 그 점이 궁금했다.

많은 작품이 있었지만 이우환의 ‘점으로부터’ 앞에서 아주 오랫동안 서성거렸다.

전시장 도우미들이 내가 작품에 오래 서 있으니 집중 관찰하는 듯 했다.

?   그의 작품들은 세계미술시장에서 먼저 알아보았다.

요즘 한국의 단색화를 빼놓고는 현대미술을 논할 수가 없다고 한다.

모르긴 몰라도 이우환 화백의 ‘점으로부터’와 ‘선으로부터’ 시리즈는 100호당 10억원 안팎에서 거래된다고 한다.

블루칩이 되셨으니까 갈수록 그림 값은 뛸 것이다.

 그는 최근 몇 년간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과 프랑스 파리 베르사유궁에서 개인전을 열며 거장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거장에 따라붙는 위작 논란은 항상 예술가들의 발목을 잡는다.

어쩌면 그들의 발목에 채워지는 보이지 않는 수갑 같은 것일까.  여백이 가득한 종이위에 점들이 규칙 또는 불규칙한 모습으로, 진하다가 연하다가,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일정한 패턴. 정면에서 보다가 옆에서 보았더니 사선으로, 간격은 조금씩 다르지만 묘한 규칙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심적 도전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뭘까, 아니 왜, 그래서, 무엇을, 무구한 질문 끝에 이 작품은,,, 질문이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무심으로 보라는 게다.

그 단순하고 지극한 패턴을 초연함으로 받아들이라는 게다.

보아라 보아라 점을 보아라. 네 마음에 찍혀있는 점을 보아라. 점이 안이 있느냐. 밖에 있느냐. 너의 점은 이 세상에 어디쯤에 있느냐. 끊임없이 묻는다.

? ?P.S 이번 전시회는 ‘근대미술의 정착’ ‘현대미술의 확장’ ‘한국미술의 세계화’ 3가지 섹션으로 구성돼 있다.

박수근, 이중섭, 김흥수, 장욱진, 이우환, 변종하, 이응노, 김기창, 김환기, 김창열 등 대표작가 40인의 작품 50점을 볼 수 있다.

그림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봄나들이를 하시는 것도...           낯선 여자다.

저런 그림을 가까이 두고 볼 수 있다면 참 살만하겠다 싶다.

꿈이 너무 큰 게야.       한국미술특별展, 한국미술의 크로스 오버울산문화예술회관 제1전시장 4.23

5.14그러자 국립현대미술관과 화랑협회 등이 들고 일어나 천경자 화백의 진품이라고 우겼다.

이런 사실로 당시 67세였던 천경자 화백은 절필선언을 하기까지 했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세월이 지나 1999년 고서화 위작 및 사기판매사건으로 구속된 위조범 권 모 씨가 검찰 수사과정에서 “화랑을 하는 친구의 요청에 따라 소액을 받고 달력 그림 몇 개를 섞어서 ‘미인도’를 만들었다”고 말하면서 위작 시비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에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미인도’(29Ⅹ26㎝)는 진짜이며 현대미술관이 현재 소장하고 있다”면서 “한국화 위조범과 현대 미술관 중 어느 쪽을 믿느냐”고 반문했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후속 조치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한국과학기술원에 작품 감정을 의뢰했고 한국화랑협회에서는 진품이라는 감정을 내렸다.

천경자 화백은 창작자의 증언을 무시한 채 가짜를 진품이라 오도하는 화단 풍토에선 창작행위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다며 붓을 놓고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직도 사퇴하겠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천 화백은 ‘자기 그림도 몰라보는 정신 나간 작가’가 되어 엄청나게 정신적 고초를 겪었다.

  (경찰이 위작으로 확인한 K옥션 출품작 '점으로부터 No. 780217.')지난 6월 2일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경찰이 압수한 이우환(80) 화백의 작품 13점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주도로 정밀 감정한 결과 모두 위작(僞作)으로 판명’된다고 발표했다.

압수된 작품을 국내 미술관에 전시ㆍ보관된 이 화백의 ‘확실한 진품’ 6점과 비교한 결과 ‘진품과 다르다’는 국과수의 소견을 따른 것이다.

  그런데, 이우환 화백은 “사진으로만 봐도 내가 그렸음을 직감했어요. 도상이 동글동글한 느낌의 사각형인데, 그런 느낌 또한 붓터치에 따라 달라져요. 일률적으로 한 도상을 그대로 따서 그릴 수 없는 작품이에요.”, “산 작가를 따돌리고 누구한테 감정을 받는다는 건가요? 경찰을 고발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   참 이상한 나라의 경찰과 화랑협회다.

국과수는 이제 예술품 감정까지 하나?   물론 워낙 유명한 화가들이니 위조자들이 만든 가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화가가 내가 그린 그림이 아니라는데 맞다고 우기며, 그림은 그린 사람이 내가 그린 그림이 맞다고 하는데 아니라고 우기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1991년에는 67살의 세계적인 화가를 노망난 늙은이 꼴로 만들더니, 지금은 나이 80이지만 아직도 정정하게 전시회를 열고 있는 세계적인 화가를 또 한 번 노망난 늙은이로 만들려고 드는가? 도대체 이유가 무엇인가?  그 중 오늘은 이번 전시 작품들을 공부하면서 보았던이우환 작가의 다큐 영상을 캡쳐해서 올립니다.

작년, KBS에서 방영했던 <예술가의 초상> 3부작 중 첫번째가이우환 작가였습니다.

저도 그때는 보지를 못했고, 얼마 전에 보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우환작가의 '점' 작품을 보면서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또 어떻게 그리는지 궁금해 하는 것 같습니다.

다큐를 보면 이우환작가의 생각과 작업 모습이 자세히 소개가 되고 있어서중요  부분 캡쳐해서 소개합니다.

백마디 말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나을테니... 그에 대한 예술관과 철학에 대해서는 앞서 글에서많이 소개를 했으니 오늘은 영상 자료 위주로 올려 봅니다.

   작가의 작업실에 걸려있는 다양한 크기의 붓들일본에서 모노하(物派, School of Things)를 주도하던 당시의 이우환작가와 일본 작가들. 가장 왼쪽에 서 계시는 분이 이우환 작가철판과 돌과 유리로 이루어진 작품 '관계항' 전시 준비 장면.  바위를 살짝 들어 올려 유리를 깨고 있는 장면점, 선, 바람을 주제로 한 그의 회화 작품들.  점은 무한을, 선은 시간을 응축적으로 보여줍니다.

바람에 대해서는 나레이션이 참 의미심장 하더군요. "당신은 무엇에 흔들립니까. 바람처럼 자유로우십니까?"일본 가마쿠라에 있는 이우환 작가의 자택커다란 그릇 두개에 돌가루와 접착액을 부어서 섞습니다.

  그리고 흰색과 검정 물감을 적절히 붓에 발라 점을 그리더군요. 세개의 점('조응'시리즈)을 그리기 전 작가는 그리고자 하는 점의 크기와 같은 종이를 이리 저리 놓아보면서 구도를 잡습니다.

그리고 종이를 들어 내고 그 자리에 점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여러번의 붓질로 아주 정교하게, 그리고 온 기력을 다해서 그리시더군요.옆의 큰 그릇에 담긴 물감의 흔적을 보면 작가가 어떻게 붓에 물감을 묻혀서 그리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세개의 점을 그린 후 줄자로 정밀하게 간격을 재더군요.  점을 자유롭게 그냥 그리는 것이 아니라옛 선비들이 수신 하듯 반듯하고 정갈하게,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마음을 살피듯 그리시더군요. 아주 큰 캔버스에 점을 그릴 때는 위에서 보는 것 처럼 길다란 보조 의자를 캔버스 위에 놓고 그 위에서 그립니다.

돌가루를 섞어서 그리기 때문에 그의 점 작품은 입체적이기도 합니다.

일본 나오시마 섬에는 이우환 미술관이 있습니다.

  미술관은 일본의 유명한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하였습니다.

 이우환 미술관은 삼각형 형태라고 합니다.

삼각형 공간에 놓여진 그의 작품 '관계항'작품이 놓이는 장소적 특성과 상황에 따라 작품은 다양하게 변합니다.

  작가는 완결된 작품이 아닌 열린 작품을 추구합니다.

작가에게 작품이란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제시하는 것입니다.

  최소한의 작가의 개입으로 대자연과 인공과 관람자가 같이 동참하는, 시시각각 변하는 열린 예술이 그의 작품이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입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는 천,지,인의 합일이 보입니다.

미술관 내부에 전시된 작가의 작품들유리에 반사된 형태만 봐도 이 작품 앞쪽에 회화작품 '조응'이 전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이러한 상황은 이 장소와 이 상황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이와 같이 작가는 그의 작품들을 통해서 각각의 공간과 상황이 보여주는 열린 場으로서의 관계성의 예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열린 장으로서의 개념이 회화에서는 수많은 여백으로 나타나고요.2011.6.24부터 9.28까지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작가의 작품전시회가 열렸습니다.

 나선형 미술관 내부의 벽에 이우환작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의 설치작품들은 이 사진에서는 보이지가 않네요.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는 관람객들을 지켜보는 이우환작가.그도 지금 이 공간과 이 상황에서 그의 작품의 한 부분으로 참여하여 작품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 작가님...건강히 오래 오래 사셔서 더 많은 작품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 캡쳐한 장면이 저작권에 위배될 경우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저작권법 규정을 잘 모르니 참 난감하네요.           28평점리뷰보기 예전에 이 책의 저자이신 김미경 선생님의 강의도 들었었고, 또 개인적으로 이우환 작가의 작품에 대한 도슨팅도 준비하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김미경 선생님 특유의 시원시원함과 열정이 묻어나는 화법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 책은 이우환 작가와 모노하에 대한 이야기가 매우 자세히 전개되고 있다.

우선 시대적 배경에 대한 설명이 눈에 띈다.

1960년대 일본에서는 미술 전시회 입장객 수가 수백만 명이 넘었으며 1960년대의 고도 성장과 시민생활의 안정화 속에서 일본의 전위적인 예술활동이 펼쳐졌다는 것이다.

1956년에 일본으로 건너간 이우환 작가는 이러한 일본의 황금시대를 몸으로 직접 느끼고 있었다는 말이다.

특히 그 당시 일본에서 개최되었던 "트릭스 앤 비전-도둑맞은 눈" 전시회는 내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진실인지 눈속임인지를 파고들며 생각했던 작가들이 본다는 문제를 다루는 전시회였으며, 이를 통해 이 사회나 현실에 대해 본다는 모든 것을 다시 한번 의문시하면서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이며 작품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했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우환 작가도 처음에는 이를 모방했다고 설명한다.

 즉, 갈라진 철판과 유리를 포개놓고 돌로 눌러놓아서 마치 유리가 깨진 것처럼 시각적인 착각을 느끼게 하는 작품을 이 때 구상하게 된 것이라 한다.

또한 일본에서 박서보 작가가 이우환 작가를 만났다는 일화와 이우환 작가가 1960년대 이후 한국 미술계의 전개과정에서 변수이자 동인으로 그 역할을 수행했다는 설명도 하고 있다.

또한 모노하에 대한 다양한 설명들이 눈길을 끌었다.

작품을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기면 그 모습은 원래와 달라진다면서 임시, 임장성과 함께 새로운 명확한 표현의 스타일을 짜내는 대신 작품의 양식성을 애매하게 만드는 일을 모노하가 했으며, 작품 소재는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내거나 표현되기 위해서 구성되지 않고 보다 큰 세계로 해방되는 길을 열기 위해 사물이나 장소는 극히 최소한으로만 인간의 손길을 허락하며 인간과 사물이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떠나 등가가 된다는 주장을 했다는 것이다.

또한 모노하는 전적으로 우연성에 달려있지 않다면서 깊은 사색과 예비적인 에스키스 작업을 출발점으로 삼고 우연이나 자의성에 표현을 내맡기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또한 모노하는 날것에 가까운 사물로서의 자연물과 미가공에 가까운 공업용재 같은 인공물 사이에 때와 장소와 신체행위를 매개로 작가 자신도 끼어들면서 사물과의 새로운 거리를 가져보려고 했으며, 모노하의 최대의 공적 중 하나는 작품에다가 규정되지 않는 외부를 끌어안으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이라 설명한다.

이러한 모노하 작품들은 다시 제작되곤 했지만 그럴 때마다 장소나 상황이 바뀌는 만큼 동일한 반복은 불가능했으며, 현재가 과거를 불러일으키며 과거가 현재를 어느 정도 규정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여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게다가 재 제작될 때마다 시간이나 장소의 변화를 수반하면서 사이즈가 바뀌기도 하고 순서가 바뀌기도 하고 부분적으로 수정이 가해졌다고 한다.

물론 무 원칙하게 바뀌지는 않았다고 설명한다.

특히 모노하의 모노란 물질로서의 사물 자체를 가리키지 않는 때도 많다면서 조화를 이루며 우아하고 섬세한 정취의 세계를 이념화 한 것이라 말한다.

 이러한 모노하는 근대주의, 산업사회를 비판하면서 자기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창조자로서의 예술가를 우상화하는 서구 근대미술을 극복하자는 운동이었다고 설명한다.

또한 보통 사람들의 시각에 그냥 따라가는 것은 예술과 상관없다면서 보통 사람들의 시각을 확 트이게 넓혀서 열어주는 것이 바로 예술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기본적으로 모두 그림은 벽에 걸리는 거고, 조각은 받침대 위에 놓여서 얌전히 관객 앞에 숨죽이고 있어야 한다는 전통적인 미술개념을 떠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었다는 말이다.

특히 도대체 이런 것이 예술이냐 그림이냐 하고 성화를 낼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이런 짓을 하고 있는 사람들 자신들은 자기들 것이 예술이란 소리를 듣게 될 것 같아 오히려 두려워하는 형편이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모노하는 현대인간이 어떤 한계에 처해 있으며 그 한계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서구 근대 합리주의의 의식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 세계를 물 자체라고 부르며 그것이 대상화되자마자 자본주의 사회 속의 사물 세계가 인간 존재를 규정해 버리게 되는 문명 상황을 생각한 것이라 한다.

 또한 그 당시 서구 현대 미술계에서는 맹렬한 사물성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예술작품이 사물 그 자체라는 주장과 함께 관념의 예술은 가능한지에 대한 개념예술 논쟁이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즉, 작가의 아이디어 혹은 개념만으로도 결국 예술이 가능하다는 주장이었다는 말이다.

20세기 이전까지 사물과 똑같이 그려진 그림 속에서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생각이나 개념이 가장 중요했다고 한다.

1837년 사진술이 발명된 이후, 이제 사물과 똑같은 모습의 재현은 사진사에게 맡겨졌고, 20세기 미술은 사진과 똑같은 미술이 아닌 추상미술에서 돌파구를 찾았다는 것이다.

추상미술을 시작으로 모더니즘 담론이 1960년대 무렵 벼랑 끝에 서게 되는데 그 극한점 중에 하나가 개념미술이란 말이다.

이를테면 팝아트에서는 오브제가 등장하더라도 이게 깃발이고, 저건 햄버거라는 식으로 사물 이름을 부를 수 있었지만 미니멀아트에서는 작품을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할지도 모를 물건이 앞에 놓여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회화에 대한 논의에서 회화의 독자성에 대한 문제는 절정에 달했고, 2차원 평면성이 불가능한 것이라면 결론은 3차원으로 향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화가들이 조각의 영역으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조각이 아니었고, 물질 자체였으며 산물 자체였다는 말이다.

또한 그것이 놓인 공간과 그것을 보는 시점과 시간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었다는 것이다.

결국 세계는 나의 표상이라고 외치며 작가로서 군림해온 인간이 이제 돌은 돌이고 나무는 나무인 세계의 양상을 인식하고 의식의 표상작용으로부터 해방되어 심지어는 예술의 폐기마저 외쳐야 하는 입장에 까지 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장의 캔버스와 액자에 담겨 벽에 걸려 있는 풍경화는 물리적 존재로서는 확실히 물체 자체지만 그것이 보여주고 전달하려는 건 캔버스, 색, 물감의 두께, 액자 따위는 아닐 것이란 말이다.

거기에 풍경이라는 이념이 있다고는 해도 풍경 그 자체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는 사람은 거기서 그림 물감이 아닌 풍경을 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란 말이다.

오브제라고 부르는 것도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면서 거대한 햄버거는 자본재의 사회상의 물상화이며 상 그 자체로 이념을 실재적으로 응고화시킨 것이어서 자연으로 구성된 실제와는 걸맞지 않는 허상이라 설명하고 있다.

 이와 달리 사물은 그것이 대지든, 철판이든, 스펀지든, 기름이 섞인 유토든 작가에게는 소재가 되지만 보는 사람에게는 그 모든 것이 세계의 모습을 드러내는 양상 그 자체라 설명한다.

소재는 소재 자체에 그치지 않고 구조로 바뀌는 장소에서 두근거리는 만남을 불러일으키는 직접적인 접촉의 세계를 연다는 것이다.

어쨌든 일본에서는 모방성에 초점을 맞추어 이우환 작가를 비판했다는데, 당시는 아르테 포베라 작가들이 미니멀아트 작가들과 합류하고 프랑스의 쉬포르 쉬르파스는 자연과 문명 사이의 문제를 놓고 돌과 철판, 솜이나 흙으로 작업을 행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의미 없는 논쟁이라 일축하고 있다.

또한 이우환 작가는 1971년에 이미 관념미술, 개념미술은 죽었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글을 썼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개념이 예술의 근본이자 예술을 성립시킬 수 있다는 생각까지는 좋은데, 그것이 결국에는 보이는 물질로 전시장에 놓여진다는 것이 딜레마라는 주장이었다.

1971년 파리 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출품했던 "관계항"에 대한 설명도 인상적이다.

 철도 유리도 모두 자연으로부터 왔지만 인간의 손길을 거친 문명의 산물이고 돌도 자연물이지만 이우환이라는 인간에 의해 선택된 것이라 설명한다.

사물들이라는 세계의 항들이 관계를 맺고 있는 상황, 그 상황은 사물들끼리, 그리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생각에 따라 무한하고도 끝없는 변이를 일으킨다고 말한다.

이런 이우환 작가의 작품들은 한국의 젊은 작가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는데, 이들은 이미 1967년경부터 그림을 포기하고 입체 설치 작업과 해프닝을 시작했었으며, 1967년 겨울부터 1970년대 초엽 무렵까지 한국 현대미술의 현장에서도 그렇게 새로운 개념의 입체와 설치 작업에 대한 열기가 후끈했다고 한다.

특히 이우환 작가는 한국에 전시하러 온 김에 제1회 앙데팡당전에 출품한 한국 작가들을 혼자 직접 심사해 1973년 파리 비엔날레에 출품하도록 했는데, 이 때 선정된 작가가 바로 심문섭 작가와 이건용 작가라 한다.

심문섭, 이건용 작가의 경우 작품 설명에서 본인이 느낄 수 있는 리얼리티를 있는 그대로 제시한다는 것뿐이며 예를 들어 나무로 무엇을 만든다는 것은 이미 그 나무는 자연으로서의 속성을 떠나며 더욱 인간으로부터도 떠나는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또한 자연이나 인간이나 가장 먼저 모두가 세계의 일부라는 자각에서 자신의 작품을 시작한 셈이라 말하며 세계의 일부를 원형 그대로 가져다 놓는다는 것이 자신들의 작품 의도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이건용 작가와 심문섭 작가가 흙덩어리에 묻힌 나무 둥치나 찢은 종이와 돌로 파리 비엔날레라는 국제 무대에 갈 때, 박서보 작가는 아무것도 그리지 않았다고 하면서 덧칠과 연필 긋기만 계속한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것을 일본의 모노하 작가인 스카 키시오의 드로잉 작품들과 연계성으로 풀어가면서 이우환 작가가 모노의 문제에서 평면의 문제로 넘어가던 중에 박서보 작가도 1973년에 소위 묘법을 발표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우환 작가의 평면 작업에 대한 설명 역시 어릴 때 서당에서 끊임없이 붓으로 점을 찍고 선을 긋던 때를 상기해보라면서, 1960년대 후반에 일본의 첨단이라던 착시적 일루전 경향을 따라 해보기 직전까지 조심스럽게 혹은 휙휙 자유스럽게 점인지 선인지 모를 터치들을 가하거나 묵직한 선들을 죽죽 긋거나 한지를 손가락으로 이겨대면서 모노로서의 종이의 효과를 살펴보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이 책에서 모노하의 모노란 열림의 시각으로 본 세계에서, 그 상황과 관계 속에 있는 새로운 사물로서의 모노라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인간의 말로 불리는 순간 언어 속에서 사물은 사물화되고 기호화되며 있는 그대로의 세계와는 상관 없이 인간중심적으로 개념화되기 때문에 이렇게 인간중심적인 개념화의 세계에 폐쇄된 채 머물지 않고 세계를 향해 눈을 뜨며 상황 혹은 장 속에서 모든 것을 인식하는 길을 발견한 것이라 언급한다.

그래서 근대사상과 근대 구조의 부정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이우환 작가의 요점이라 설명한다.

이렇게 모노하는 서구 근대의 계몽주의가 일단락된 시점에서 나온 자각적인 문화현상이라면서 이미지의 우상화가 붕괴된 마당에 근대주의적인 조각이나 2차원, 3차원적 이미지로 작품을 만드는 건 이제 우스운 일이 된 것이라 말한다.

한마디로 그림은 벽에 거는 거고, 조각은 딱딱한 물체고, 구성은 황금분할로 되어야 하고 조화와 비례와 대칭이 맞아야 하고 변화가 있어야 하고 등등 고정관념적인 예술개념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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