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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국영



서명선, 정민시 등과 함께 세손을 보호하는데 힘써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1776년 세손의 대리청정을 반대하면 정후겸,홍인한,김귀주 등을 탄핵하여 몰아내고 홍상간,윤양로 등을 처형했다.

 - 드라마 이산에서 홍국영 -  세손에게 마음이 통하는 벗이자 조정안팎의 정보를 얻는 통로이자 최고의 참모였고 믿음직한 경호실장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에 즉위 후 정조의 신임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정조즉위후 계속 도승지로 있으면서 훈련대장, 숙위대장을 겸하고, 선혜청 제조까지 겸임하여 재정 부문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었다.

모든 소와 의견은 그를 거쳐 왕에게 전달되었고, 구선복 등 무장들이 재빠르게 그에게 줄을 서면서 사실상 병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 영화 역린에서 홍국영- 그 힘으로 왕의 최신 숙청 사업을 뒷받침했다.

 또한 척신 제거라는 명분 아래 김종수 세력과 손잡았고, 재야 산림으로 명성 높은 송시열의 후손인 송덕상을 불러올렸다.

1778년 효의왕후에게 소생이 없자 누이동생을 원빈으로 삼게하여 정권을 굳게 다졌다.

  - 영화 역린에서 홍국영 - 그러나 원빈이 1년만에 죽자 은언군의 아들 이담을 죽은 원빈의 양자로 삼아 완풍군에 봉하고 세자로 책봉시키려다가 여의치 않자 모반죄로 몰아 제거하는 등 정권의 유지에 급급했다.

1780년 왕후 독살 기도에 연루되었다다 하여 탄핵을 받아 강릉으로 추방되었다.

이후 실의에 잠겨 지내다가 병사했다.

서명선, 정민시 등과 함께 세손을 보호하는데 힘써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1776년 세손의 대리청정을 반대하면 정후겸,홍인한,김귀주 등을 탄핵하여 몰아내고 홍상간,윤양로 등을 처형했다.

 - 드라마 이산에서 홍국영 -  세손에게 마음이 통하는 벗이자 조정안팎의 정보를 얻는 통로이자 최고의 참모였고 믿음직한 경호실장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에 즉위 후 정조의 신임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정조즉위후 계속 도승지로 있으면서 훈련대장, 숙위대장을 겸하고, 선혜청 제조까지 겸임하여 재정 부문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었다.

모든 소와 의견은 그를 거쳐 왕에게 전달되었고, 구선복 등 무장들이 재빠르게 그에게 줄을 서면서 사실상 병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 영화 역린에서 홍국영- 그 힘으로 왕의 최신 숙청 사업을 뒷받침했다.

 또한 척신 제거라는 명분 아래 김종수 세력과 손잡았고, 재야 산림으로 명성 높은 송시열의 후손인 송덕상을 불러올렸다.

1778년 효의왕후에게 소생이 없자 누이동생을 원빈으로 삼게하여 정권을 굳게 다졌다.

  - 영화 역린에서 홍국영 - 그러나 원빈이 1년만에 죽자 은언군의 아들 이담을 죽은 원빈의 양자로 삼아 완풍군에 봉하고 세자로 책봉시키려다가 여의치 않자 모반죄로 몰아 제거하는 등 정권의 유지에 급급했다.

1780년 왕후 독살 기도에 연루되었다다 하여 탄핵을 받아 강릉으로 추방되었다.

이후 실의에 잠겨 지내다가 병사했다.

서명선, 정민시 등과 함께 세손을 보호하는데 힘써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1776년 세손의 대리청정을 반대하면 정후겸,홍인한,김귀주 등을 탄핵하여 몰아내고 홍상간,윤양로 등을 처형했다.

 - 드라마 이산에서 홍국영 -  세손에게 마음이 통하는 벗이자 조정안팎의 정보를 얻는 통로이자 최고의 참모였고 믿음직한 경호실장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에 즉위 후 정조의 신임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정조즉위후 계속 도승지로 있으면서 훈련대장, 숙위대장을 겸하고, 선혜청 제조까지 겸임하여 재정 부문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었다.

모든 소와 의견은 그를 거쳐 왕에게 전달되었고, 구선복 등 무장들이 재빠르게 그에게 줄을 서면서 사실상 병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 영화 역린에서 홍국영- 그 힘으로 왕의 최신 숙청 사업을 뒷받침했다.

 또한 척신 제거라는 명분 아래 김종수 세력과 손잡았고, 재야 산림으로 명성 높은 송시열의 후손인 송덕상을 불러올렸다.

1778년 효의왕후에게 소생이 없자 누이동생을 원빈으로 삼게하여 정권을 굳게 다졌다.

  - 영화 역린에서 홍국영 - 그러나 원빈이 1년만에 죽자 은언군의 아들 이담을 죽은 원빈의 양자로 삼아 완풍군에 봉하고 세자로 책봉시키려다가 여의치 않자 모반죄로 몰아 제거하는 등 정권의 유지에 급급했다.

1780년 왕후 독살 기도에 연루되었다다 하여 탄핵을 받아 강릉으로 추방되었다.

이후 실의에 잠겨 지내다가 병사했다.

. 홍국영에 대한 조명은 무척 흥미로운 주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당시.. 쫄딱 망했다.

. ㅎㅎ조기 종영을 맞았던 셈... 등장인물 한번 보면 1. 홍국영 예전엔 김상경씨가 홍국영을 맡았었다.

[홍국영] 란 무엇인가?


. 이산에 나오는 박대수+성송연+홍국영 = 김상경의 홍국영 이었다.

치고 박고 날라차고 머리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시청률이 그 모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김상경씨 요새는 일개 사대부에서 임금(대왕세종)으로 승차하셨다.

^^;;; 2. 정조 당시 정조는 정재곤씨가 맡았는데.. 이 양반 마스크랑 연기도 괘안않구.. 예전에는 나름 청춘스타였는데내심 못 뜨는게 좀 안타깝다.

김상경씨가 승차한데 반해...정재곤씨는 임금에서 서얼로 강등되어 이산에 다시 나온다.

 왼쪽은 예전 "서동요"에서 나왔던 위덕왕의 아들로 일본과의 연결고리였던 아좌태자로 나왔던 때였다.

오른쪽은 박제가로 다시 "이산"에 등장한 사진이다.

 ----------------------------------------------홍국영에 대한 이야기 없이 포스트를 마치면.. 좀 심심할 것 같아.. 몇자 적어본다.

홍국영은 정조가 등극한 후 5년 뒤인 34살의 나이로 요절한다.

드라마와 같이.. 동생 원빈이 효의왕후(중전)에 의한 타살을 믿어효의왕후를 독살하려다가 발각되어 실각하였다.

일설에는 정조의 자진 퇴진에 동의하여 물러났다가 3사의 탄핵을 받았다고도 한다.

 가진자의 상실이 더 큰 아픔이라 했던가권력을 잃으면 쉽게 병이들게 죽은자가 역사적으로 꽤 많다.

우야둔둥 홍국영은 마지막에 대사헌까지 제수 받는등... 정조 즉위 초의 권신(權臣)임에는 틀림없다.

학자 중에는 오늘날의 세도정치의 원형을 홍국영에게서 찾기도 한다.

 -----------------------------------------------모든 사진은 imbc에서 발췌하였습니다.

. 홍국영에 대한 조명은 무척 흥미로운 주제임에 틀림없다.

[홍국영] 사실은.



하지만.. 당시.. 쫄딱 망했다.

. ㅎㅎ조기 종영을 맞았던 셈... 등장인물 한번 보면 1. 홍국영 예전엔 김상경씨가 홍국영을 맡았었다.

. 이산에 나오는 박대수+성송연+홍국영 = 김상경의 홍국영 이었다.

치고 박고 날라차고 머리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시청률이 그 모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김상경씨 요새는 일개 사대부에서 임금(대왕세종)으로 승차하셨다.

^^;;; 2. 정조 당시 정조는 정재곤씨가 맡았는데.. 이 양반 마스크랑 연기도 괘안않구.. 예전에는 나름 청춘스타였는데내심 못 뜨는게 좀 안타깝다.

김상경씨가 승차한데 반해...정재곤씨는 임금에서 서얼로 강등되어 이산에 다시 나온다.

 왼쪽은 예전 "서동요"에서 나왔던 위덕왕의 아들로 일본과의 연결고리였던 아좌태자로 나왔던 때였다.

오른쪽은 박제가로 다시 "이산"에 등장한 사진이다.

 ----------------------------------------------홍국영에 대한 이야기 없이 포스트를 마치면.. 좀 심심할 것 같아.. 몇자 적어본다.

홍국영은 정조가 등극한 후 5년 뒤인 34살의 나이로 요절한다.

드라마와 같이.. 동생 원빈이 효의왕후(중전)에 의한 타살을 믿어효의왕후를 독살하려다가 발각되어 실각하였다.

일설에는 정조의 자진 퇴진에 동의하여 물러났다가 3사의 탄핵을 받았다고도 한다.

 가진자의 상실이 더 큰 아픔이라 했던가권력을 잃으면 쉽게 병이들게 죽은자가 역사적으로 꽤 많다.

우야둔둥 홍국영은 마지막에 대사헌까지 제수 받는등... 정조 즉위 초의 권신(權臣)임에는 틀림없다.

학자 중에는 오늘날의 세도정치의 원형을 홍국영에게서 찾기도 한다.

 -----------------------------------------------모든 사진은 imbc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세손의 암살시도 사전 제거로 실력 발휘 한번 했고이제부터 정후겸의 카운터 파트너로써 본격 활동을 펼칠 것으로 예상되니 드라마는 더욱 흥미진진 해질듯하다.

 홍국영이 그저 야망과 명석함만을 가진 인물이라면 이렇게까지 흥분하지 않을 것이다.

드라마속 홍국영은 가장 모순적인 사람이다.

근엄과 진지의 표상이던 선비의 캐릭터에 유머와 위트를 추가했고, 기득권이면서도 강한 반골 기질을 갖고 있고, 그의 야망이 천박한 것으로 전락되는 걸 막아주는 소식과 원칙... 등이 그를 빛내주는 요소이다.

이런 양면성 때문에 난 홍국영에게 반했고, 그것과 비례해 드라마에 더 몰입하게 되었다.

 홍국영을 연기한 배우 한상진의 재발견 또한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다.

감독이 어떤 연유로 이 사람을 캐스팅했는지 모르겠으나'하얀거탑'에서 장준혁의 충견 이미지로 각인되었던 배우가 안경벗고 가끔 장난꾸러기 소년같은 미소를 지으며 야심찬 지략가로 등장했을 때 무척이나 참신하게 여겨졌다.

스토리 전개상 홍국영이라는 인물의 비중이 절대 적을 수 없는데아직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배우를 쓰다니 의외였다.

아 그런데 이 감독님, 역시 캐스팅의 귀재 답다.

이 배우가 연기하는 홍국영이 꽤 그럴 듯 하다.

   진지함이나 비상함 보다 솔직하면서도 군주 앞에서 저 할말 다하는 그런 건방짐이 매력인 홍국영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홍국영, 멋진 캐릭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정사를 보면, 홍국영이 우리편, 좋은 편으로 영원히 남지는 않았다.

애초에 야망으로 가득찬 인물이었으니 고결하고 멋진 마무리를 기대하진 않았지만..세도정치로 스타일 구기며 강퇴당할만큼 타락하지 않기를 바랬는데... 드라마속 '완소' 홍국영이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완소남'이 아니었나보다.

..(드라마가 얼마나 사실적으로 그렸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그 모습.. 참 좋은데.. 사람의 욕심이란게 왜 그렇게 끝간데 없는 것인지... 왜 멈출 줄을 모르는 것인지...   . 홍국영에 대한 조명은 무척 흥미로운 주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당시.. 쫄딱 망했다.

. ㅎㅎ조기 종영을 맞았던 셈... 등장인물 한번 보면 1. 홍국영 예전엔 김상경씨가 홍국영을 맡았었다.

. 이산에 나오는 박대수+성송연+홍국영 = 김상경의 홍국영 이었다.

치고 박고 날라차고 머리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시청률이 그 모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김상경씨 요새는 일개 사대부에서 임금(대왕세종)으로 승차하셨다.

^^;;; 2. 정조 당시 정조는 정재곤씨가 맡았는데.. 이 양반 마스크랑 연기도 괘안않구.. 예전에는 나름 청춘스타였는데내심 못 뜨는게 좀 안타깝다.

김상경씨가 승차한데 반해...정재곤씨는 임금에서 서얼로 강등되어 이산에 다시 나온다.

 왼쪽은 예전 "서동요"에서 나왔던 위덕왕의 아들로 일본과의 연결고리였던 아좌태자로 나왔던 때였다.

오른쪽은 박제가로 다시 "이산"에 등장한 사진이다.

 ----------------------------------------------홍국영에 대한 이야기 없이 포스트를 마치면.. 좀 심심할 것 같아.. 몇자 적어본다.

홍국영은 정조가 등극한 후 5년 뒤인 34살의 나이로 요절한다.

드라마와 같이.. 동생 원빈이 효의왕후(중전)에 의한 타살을 믿어효의왕후를 독살하려다가 발각되어 실각하였다.

일설에는 정조의 자진 퇴진에 동의하여 물러났다가 3사의 탄핵을 받았다고도 한다.

 가진자의 상실이 더 큰 아픔이라 했던가권력을 잃으면 쉽게 병이들게 죽은자가 역사적으로 꽤 많다.

우야둔둥 홍국영은 마지막에 대사헌까지 제수 받는등... 정조 즉위 초의 권신(權臣)임에는 틀림없다.

학자 중에는 오늘날의 세도정치의 원형을 홍국영에게서 찾기도 한다.

 -----------------------------------------------모든 사진은 imbc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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