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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 위치



이로 인하여 북방을 지배하던 우리민족의 기백이 사라진 것이다.

이후에도 만주 땅을 차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분열과 갈등으로 일본의 침략을 물리치지 못한 결과 만주 땅을 잃고 한반도마저 남북으로 분단된 상태다.

분단으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조상의 활동무대였던 간도는 중국의 동북공정정책으로 중국의 역사 속으로 빨려들고 있다.

역사가들이 잠들고 있는 사이에 지리학자들이 그나마 간도의 역사를 지키고 있다.

1. 간도의 위치와 범위*자료인용: ‘고등학교 한국지리’ 교학도서, 2011검정, 34쪽.   <외국인이 그린 조선 지도>*자료인용: ‘고등학교 한국지리’ 교학도서, 2011검정, 34쪽.<간도의 범위>*자료인용: ‘고등학교 한국지리’ 교학도서, 2011검정, 34쪽.2. 간도를 둔 영토 분쟁과 간도 협약 *자료인용: ‘고등학교 한국지리’ 교학도서, 2011검정, 34-5쪽.       <백두산 정계비> *자료인용: ‘고등학교 한국지리’ 교학도서, 2011검정, 35쪽 上 右.<엮은이 ‘천하의 중심 대한민국’ 저자 임판길>.. 제가 예전에 블로그를 했을 때 많이 다뤘었죠... 근데 간도에 관련된 내용들이 요즘 많이 나오다 보니 다시 한번 포스트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 글 쓸 때 카테고리를 어디에다 설정해야할지 정말로 고민했느데요... 그래도 한국, 일본, 중국. 이 세 나라의 '역사적인' 면과 관련이 깊은 만큼 결국 '동양사 이야기'에 넣게되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오늘은 9월 4일 간도의 날입죠... 그래서 써봅니다.

 먼저 간도는 조선과 청, 지금의 대한민국과 중국의, 아직도 분쟁 중인 '영토분쟁지역'입니다.

뭐, 몇주전에 간도를 청에게 뺏긴지 100년이 되는 날이다 뭐다 해서 한참 소동이 일었는데요. 간도가 중국에 넘어간지 100년이 지나서 이제는 국제 소송조차 걸 수 없다? 이거는 사실무근입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 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학원 선생님도 이렇게 알고 계세요. 그렇지만 그것은 잘못 생각하신 겁니다.

국제법에 간도와 같은 경우에 100년이 지나면 소송조차 할 수 없다.

이런 조항은 없고요. 오늘 인터넷으로 뉴스보니까 정부도 '간도협약 100년 시효설 근거 없어'라는 제목으로 떴던데요.... 반기문 UN사무총장님께서도 간도협약은 원천무효다라고 말슴하셨고요. 이렇게 정부와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반기문 사무총장께서도 원천무효라고 못박아 놨으니... 이제는 해결해야할 문제를 찾아봅시다.

 간도의 역사 간도의 역사는 먼저 한반도의 등장한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 부터 시작합니다.

고조선의 뿌리는 한반도 내륙이지만 북쪽으로 점점 뻗어나갔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간도 땅까지도 가게되었고요. 그러나 결국 영토가 점점 넓어지고, 나라도 점점 강성해지면서 한무제에 의해 고조선은 멸망하고 맙니다.

그 후 간도를 포함한 북쪽의 영토는 한나라의 영토가 되었고 한나라는 그 곳에 한사군을 설치합니다.

그러나 한사군의 위치는 역사학자들마다 다 달라서 정확한 위치는 잘 모릅니다.

그후 북방은 부여에 의해 전승되고 부여 이후에는 고구려에 의해서 지켜져 왔습니다.

그러나 신라와 당의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고구려는 무너지게 되고, 발해가 나오고 나서 발해까지 멸망하면서 이후 북방의 역사는 사라집니다.

그러나 조선이라는 나라가 서서히 무너져 가면서 살기힘든 농민들은 조선을 떠나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납니다.

이때 찾은 곳이 간도입니다.

[간도 위치] 대체 무엇때문에.


 근데 간도는 워낙 거친 곳이라서 개척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의지와 불굴의 한국인!! 그래서 결국 간도는 조선의 땅이 됩니다.

그 때 청이 간도의 영유권을 주장하자 조선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간도관리사를 파견해 간도의 주민들을 보호합니다.

이렇게 관리를 얄심히 했는데도 불구, 일본에게 나라를 뺏기고, 간도는 청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1909년 간도협약에 의해서이죠. 이 협약은 일본과 청끼리 맺은 조약으로 간도의 주인인 조선은 쏙 빼놓고 협상한 참으로 이상한 조약입니다.

일본은 만주에 철도를 놓기위해 청에게 간도를 넘겼다고 하죠. 간도를 이렇게 허망하게 뺏긴 이유는 1905년 조선의 관리와 일본이 맺은 을사조약(을사늑약)에 의해서 외교권이 박탈되기 때문이죠. 외교권이 박탈당했기 때문에 간도는 청에게 넘어갑니다.

이로서 100년이 지났고 그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간도를 찾기 전에 해결해야 할 것들 1. 백두산 정계비의 해석 뭐 이 문제는 간도협약의 가장 쟁점이라 볼 수 있습니다.

백두산 정계비의 해석에서 한국과 일본은 토문강을 송화강의 한 지류로 보았고, 중국은 토문강을 두만강으로 인식해왔습니다.

아무리 봐도 토문강은 송화강의 지류가 맞으며 중국의 입장은 틀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간도 위치] 이유가 무엇일까요?



토문강이 두만강이면 일본과 청은 간도협약을 맺을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죠. 토문강이 두만강이면 당시 조선의 실질적 지존이었던 일본이 청에게 줄 땅은 무엇일까요? 말이 안되는 주장입니다.

 2. 간도협약의 효력 간도협약의 효력은 이미 무력화가 되었습니다.

일본이 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되면서 1942년 이전의 조약은 모두 무효로 한다는 중일간 평화조약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간도협약은 자연스레 무효가 되는 것이죠.  그러므로 간도협약의 국제적인 효력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나? 먼저 전국민적인 관심을 불러모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이 간도라는 곳이 엄연히 대한민국의 땅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이 시점에서, 정부차원으로 소송을 걸어봤자 뭐합니까? 정작 국민들은 관심이 없는데. 그래도 요즘 간도에 대한 인식이 증가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한 현실입니다.

그래서 정부적인 캠페인을 만들고, 간도 관련 공익광고를 제작해서 관심을 불러모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두번째로는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아야합니다.

현재 세계 어디의 지도에서도 간도는 한국 땅이 아니며 중국 땅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이는 세계는 간도를 모른다는 사실!! 그래서 재미교포 분들께서 열심히 광고도 해주시고 하시지만 많이 부족합니다.

 정부가 하루라도 빨리 국제적인 소송을 진행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전에 아까도 말했듯이 간도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끌어와야 합니다.

그래야만 소송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간도에 대해 관심 좀 가져주세요.   간도가 하루 빨리 우리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조선도 청을 의식하여 이 지역으로 넘어가는 자를 처벌하였다.

 그러나 산삼을 채취하거나 생필품을 구입하기 위해 두 나라 백성들이 경계를 넘는 일이 빈번하여 충돌이 자주 일어났다.

이를 막고자 청과 조선은 1712년 백두산정계비를 세워 양국의 경계를 정하였다.

이후에도 청과 조선의 백성들이 경계를 넘는 일은 계속되었다.

특히, 19세기 후반 계속된 자연재해와 삼정의 문란 등으로 인해 간도로 이주하는 조선인이 늘어났다.

이러한 가운데 청 정부가 중국인의 간도 이주와 개간을 목적으로 조선인의 간도 철수를 요청하자, 양국 사이에 영토 분쟁이 발생하였다.

이에 양국 대표들이 국경을 확정 지으려는 담판을 벌였으나, 백두산정계비의 해석을 둘러싸고 팽팽히 맞서 간도 귀속 문제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다.

? 을사조약 이후 사실상 대한 제국의 내정을 장악한 일본은 간도 룽징에 통감부 임시 간도 파출소를 설치하고 청의 간섭에 무력으로 대항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1909년 만도의 철도 부설권, 탄광 개발권 등을 얻는 조건으로 간도를 청의 영토로 인정한다는 '간도에 관한 청일협정(간도 협약)'을 청과 체결하였다.

이로써 간도의 영유권은 우리 민족의 의사와 무관하게 청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간도는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이었고, 이후 민족 독립운동의 기반이 되었다.

? 백두산정계비는 속종 때 청의 제안에 따라 세워진 비석으로, 백두산 정상의 남동쪽 4km 지점에 세워졌다.

비석에는 "청의 오라총관 목극등이 천자의 지시를 받들고 변경을 조사한 결과 서쪽은 압록강이고, 동쪽은 토문강이며 분수령 위에 비를 세워 기록한다.

"라고 쓰여 있다.

19세기 청과 조선 사이에 영토 분쟁이 일어나자, 청은 토문강을 두만강이라고 주장하였고, 조선은 토문강을 쑹화 강의 지류라고 주장하였다.

       최근 동북아시아 지역의 성장으로 동북아시아의 전략적 요충지, 중국, 러시아의 시베리아 지역, 몽골, 남북 교류의 중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간도의 지리적 중요성은 높아지는 것이다.

   간도 영유권 분쟁 과정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옛 고구려 영토 ⇒ 숙종(1712년)때 백두산 정계비를 통해 우리영토를 포함 ⇒ 조선, 청과의 영토분쟁 ⇒ 청일간의 간도협약(1909년)으로 청나라 영토로 인정 ⇒ 해방 후 우리 영토 주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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