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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중구청



이 중구청이 예전의 인천시청이었다.

뒤로는 자유공원 우측으로는 차이나 타운과 하인천 앞쪽으로는 인천항 그리고 좌측으로는 신포동이 있었던 최고의 자리가 아니였나 싶다.

하지만 이 중구청 일대가 개항후 인천 금융업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우리는 예전의 건물등을 통해 어럼풋이나마 알수 있었다.

사적 문화재로 남아있는 그 시대의 건물들을 보며 인천 금융의 역사를 잠시 알아보고자 한다.

    구 인천 일본18은핸지점 -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 50호소재 - 인천시 중구 중앙동 2가 24-1일본이 한국 금융계를 일본 식민화 하려는 목적으로 세운 구 인천일본18은행지점은 1890년에 준공되어 그 해 10월에개점하였으나 은행으로서의 업무가 언제까지나 계속되었는지 기록이 없는 상태이며.1954년에는 한국흥업은행지점으로 사용되었다.

축조양식은 단층으로 고전적 장식의 절충주의 양식으로 벽체는 조석 위에 모탈마감으로 기둥부위와 기단부의는 돌로 마감되었다.

출입구의 석주양식은 아주 정교하게 시공되어 있으며 지붕은 목조 트러스 위에 일식기와로 모임비중 형태를 하고 있으며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구 인천일본제일은행지점 -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 7호 소재 - 인천시 중구 중앙동 1가 9일본 제일은행 인천지점은 처음에 부산지점의 출장소로 출발하여 1889년 인천지점으로 승격되었고, 1909년 한국은행이 창립되면서 한국은행 인천지점으로 바뀌었다.

1922년 조선은행으로 바뀜에 따라 조선은행 지점이 됐다.

1899년에 64평의 석조 단층으로 지은 이 건물은 모래,자갈,석회를 제외한 벽돌,석재,시멘트,못재등 일체의 건축자재를 일본에서 들여왔고 바깥벽은 화강암을 다음고 쌓고 처마부근에는 둥근 구멍이 뚫린 난간을 설치하였다.

후기 르네상스 건축 양식을 본떠서 단순화시켰다.

     구 일본58은행 인천지점 -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 19호 소재 - 인천시 중구 중앙동 2가 19-1일본 오사카에 본점을 둔 일본 제 58은행이 설치한 인천지점으로 1892년에 개점하였다.

1946년에 조흥은행이 인천지점으로 사용하였으나 1958년 이후 신사옥을 지어 옮겨가면서 적십자사 경기도지사로 사용하다가 현재는 인천 중구 요식업조합에서 사용하고 있다.

지상 2층 건물로서 1층은 돌기단으로 되어 있고, 2층 발코니와 아래 방을 지붕창이라고 부르는 도머창이 있다.

지붕은 2중으로 경사를 이루고 있는 맨사드지붕을 조합하여 전제적으로 프랑스식 르네상스 양식이다.

     개항후 일본의 조계였던 이곳은 일본식 건물의 모습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내가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낸 집도 일본식집이였다.

지금은 하나 둘씩 철거되고 새집이 들어서고 있지만... 인천 중구청 앞은 아직도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모신문사의 건물로 쓰이고 있는 일본식 건물과 중구청 앞의 전경 그리고 신포동으로 가는 길목의 사진...그리고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계단 길목 사진과 나의 어린시절 그장소의 사진을 올려본다^^  인천지역의 금융업은 일제에 의해 태동했가. 1883년 강제개항되던 해 일본 제일은행 인천출장소를 설립하면서 부터이다.

국내 최초의 서구식 금융기관으로 꼽히는 일본 제일은행은 1878년 부산에 들어선후 1880년에 원산, 1883년 인천에 출장소를설치한다.

초창기 일본계 은행의 주거래 대상은 일본인이었지만 1990년부터 한국인과도 거래를 하면서 전국 금융지관으로자리를 잡아간다.

1897년 서구자본에 의해 홍콩은행과 상해은행 대리점도 들어왔으나 거래는 인천에서 활동하는 서구상인이나 청국상인들에게 국한됐다.

 이에 자국을 받은 한국인이 설립한 조선은행이 문을 열기도 했지만 취약한 자본기반으로 얼마안가 문은 닫게된다.

인천 개항장에 거래가 늘어나자 1890년 10월 제십은행이 1892년엔 인천전환국에서 주조하는 신화폐와 구화폐의 교환목적으로 제오십팔은행의 지점도 문을 열었다.

 한일합방으로 서울을 중심으로 움직임에 따라 각은행 지점들은 본부를 서울로 옮겨갔다.

이에 따라 인천의 은행들은 그 기능을 축소하면서 기본적인 금융업을 보는 곳으로 머물고 만다.

 이렇든 인천의 금융기관은 일제의 한국통치 정책에 따른 수탈로 시작해 금융제도의 개편과 맞물리면서 변화를 거듭했다.

실례로 1907년에 개설됐던 한성공동창고 인천출장소는 한성공동창고(주)가 (주)조선상업은행에 합병됨으로써 조선상업은행 인천지점으로 바뀌었다, 또 구 한국은행 인천지점은 조선총독부의 통합방침에 따라 조선은행 인천지점으로 정비됐고, 1918년 설립한 조선식산은행도 1919년에 인천에 지점을 개설했다.

 한국에 본점을 둔 3개 은행지점과 일본에 본점을 둔 제십팔은행과 안전은행등 두 지점이 금융업무를 분담했으며 얼마안가 금융계 통치정비에 따라 폐쇄되었고. 저축은행 인천지점이 1933년 11월에 개로 들어섰다.

이에 따라 인천 금융업무는 조선은행 인천지점,식삭은행 인천지점,상업은행 인천지점,저축은행 인천지점등 4개은행지점 시대로 접어든다.

 ( 인천이야기 발췌)        ?일본영사관에서 인천부 청사로 40년, 쇠락한 청사의 신축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절충주의 건축물의 장식을 일체 배제한 중구청은 간소화된 1930년대 근대주의 건축양상을 띄고 있습니다.

청사 본관의 양옆으로는 본관 2층과 연결된 동별관, 서별관이 들어서 있습니다.

 건립 이후 지금까지 관공서로만 사용돼 외관은 비교적 잘 보존돼 있는 반면, 지속적인 증축과 대대적인 새 단장으로 내부 원형은 찾기 힘들어졌지만, 개항장의 중심에서 중구청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그리고 근대를 거치며 인천 행정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중구청이 예전의 인천시청이었다.

뒤로는 자유공원 우측으로는 차이나 타운과 하인천 앞쪽으로는 인천항 그리고 좌측으로는 신포동이 있었던 최고의 자리가 아니였나 싶다.

하지만 이 중구청 일대가 개항후 인천 금융업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우리는 예전의 건물등을 통해 어럼풋이나마 알수 있었다.

사적 문화재로 남아있는 그 시대의 건물들을 보며 인천 금융의 역사를 잠시 알아보고자 한다.

    구 인천 일본18은핸지점 -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 50호소재 - 인천시 중구 중앙동 2가 24-1일본이 한국 금융계를 일본 식민화 하려는 목적으로 세운 구 인천일본18은행지점은 1890년에 준공되어 그 해 10월에개점하였으나 은행으로서의 업무가 언제까지나 계속되었는지 기록이 없는 상태이며.1954년에는 한국흥업은행지점으로 사용되었다.

축조양식은 단층으로 고전적 장식의 절충주의 양식으로 벽체는 조석 위에 모탈마감으로 기둥부위와 기단부의는 돌로 마감되었다.

출입구의 석주양식은 아주 정교하게 시공되어 있으며 지붕은 목조 트러스 위에 일식기와로 모임비중 형태를 하고 있으며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구 인천일본제일은행지점 -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 7호 소재 - 인천시 중구 중앙동 1가 9일본 제일은행 인천지점은 처음에 부산지점의 출장소로 출발하여 1889년 인천지점으로 승격되었고, 1909년 한국은행이 창립되면서 한국은행 인천지점으로 바뀌었다.

1922년 조선은행으로 바뀜에 따라 조선은행 지점이 됐다.

1899년에 64평의 석조 단층으로 지은 이 건물은 모래,자갈,석회를 제외한 벽돌,석재,시멘트,못재등 일체의 건축자재를 일본에서 들여왔고 바깥벽은 화강암을 다음고 쌓고 처마부근에는 둥근 구멍이 뚫린 난간을 설치하였다.

후기 르네상스 건축 양식을 본떠서 단순화시켰다.

[인천 중구청] 근본적 원인은 ?


     구 일본58은행 인천지점 -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 19호 소재 - 인천시 중구 중앙동 2가 19-1일본 오사카에 본점을 둔 일본 제 58은행이 설치한 인천지점으로 1892년에 개점하였다.

1946년에 조흥은행이 인천지점으로 사용하였으나 1958년 이후 신사옥을 지어 옮겨가면서 적십자사 경기도지사로 사용하다가 현재는 인천 중구 요식업조합에서 사용하고 있다.

지상 2층 건물로서 1층은 돌기단으로 되어 있고, 2층 발코니와 아래 방을 지붕창이라고 부르는 도머창이 있다.

지붕은 2중으로 경사를 이루고 있는 맨사드지붕을 조합하여 전제적으로 프랑스식 르네상스 양식이다.

     개항후 일본의 조계였던 이곳은 일본식 건물의 모습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내가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낸 집도 일본식집이였다.

지금은 하나 둘씩 철거되고 새집이 들어서고 있지만... 인천 중구청 앞은 아직도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모신문사의 건물로 쓰이고 있는 일본식 건물과 중구청 앞의 전경 그리고 신포동으로 가는 길목의 사진...그리고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계단 길목 사진과 나의 어린시절 그장소의 사진을 올려본다^^  인천지역의 금융업은 일제에 의해 태동했가. 1883년 강제개항되던 해 일본 제일은행 인천출장소를 설립하면서 부터이다.

국내 최초의 서구식 금융기관으로 꼽히는 일본 제일은행은 1878년 부산에 들어선후 1880년에 원산, 1883년 인천에 출장소를설치한다.

초창기 일본계 은행의 주거래 대상은 일본인이었지만 1990년부터 한국인과도 거래를 하면서 전국 금융지관으로자리를 잡아간다.

1897년 서구자본에 의해 홍콩은행과 상해은행 대리점도 들어왔으나 거래는 인천에서 활동하는 서구상인이나 청국상인들에게 국한됐다.

 이에 자국을 받은 한국인이 설립한 조선은행이 문을 열기도 했지만 취약한 자본기반으로 얼마안가 문은 닫게된다.

인천 개항장에 거래가 늘어나자 1890년 10월 제십은행이 1892년엔 인천전환국에서 주조하는 신화폐와 구화폐의 교환목적으로 제오십팔은행의 지점도 문을 열었다.

 한일합방으로 서울을 중심으로 움직임에 따라 각은행 지점들은 본부를 서울로 옮겨갔다.

이에 따라 인천의 은행들은 그 기능을 축소하면서 기본적인 금융업을 보는 곳으로 머물고 만다.

 이렇든 인천의 금융기관은 일제의 한국통치 정책에 따른 수탈로 시작해 금융제도의 개편과 맞물리면서 변화를 거듭했다.

실례로 1907년에 개설됐던 한성공동창고 인천출장소는 한성공동창고(주)가 (주)조선상업은행에 합병됨으로써 조선상업은행 인천지점으로 바뀌었다, 또 구 한국은행 인천지점은 조선총독부의 통합방침에 따라 조선은행 인천지점으로 정비됐고, 1918년 설립한 조선식산은행도 1919년에 인천에 지점을 개설했다.

 한국에 본점을 둔 3개 은행지점과 일본에 본점을 둔 제십팔은행과 안전은행등 두 지점이 금융업무를 분담했으며 얼마안가 금융계 통치정비에 따라 폐쇄되었고. 저축은행 인천지점이 1933년 11월에 개로 들어섰다.

이에 따라 인천 금융업무는 조선은행 인천지점,식삭은행 인천지점,상업은행 인천지점,저축은행 인천지점등 4개은행지점 시대로 접어든다.

 ( 인천이야기 발췌)        ?일본영사관에서 인천부 청사로 40년, 쇠락한 청사의 신축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절충주의 건축물의 장식을 일체 배제한 중구청은 간소화된 1930년대 근대주의 건축양상을 띄고 있습니다.

청사 본관의 양옆으로는 본관 2층과 연결된 동별관, 서별관이 들어서 있습니다.

 건립 이후 지금까지 관공서로만 사용돼 외관은 비교적 잘 보존돼 있는 반면, 지속적인 증축과 대대적인 새 단장으로 내부 원형은 찾기 힘들어졌지만, 개항장의 중심에서 중구청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그리고 근대를 거치며 인천 행정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인천 중구청] 세상에. 왜..



  일본풍 목조건물에 청사앞 입구에 일본 마네키네코(복고양이)를 설치해 논란이 심한 곳이지요중국풍 건물도 한몫2009년의 풍경인천중구청앞 일본식 목조건물현장학습하는 학생들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0호1903년 준공된 일본제18은행 인천지점한국 금융계를 일본 식민지화 하려는 목적으로 세워진 은행으로1954년에는 한국흥업은행지점으로 사용되다가현재는 중구 개항장 일대의 근대건축물의 현황을 소개하는 인천근대건축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구> 일본제18은행인천지점인천개항박물관 기획전시실인천광역시유형문화재 제7호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 건물현재 인천개항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인천이 개항한 1883년에는 부산지점 인천출장소를 개설하고한국에서 생산되는 금괴와 사금을 매입하는 업무를 대행한 곳입니다후에 중앙은행, 한국은행인천지점, 조선은행 인천지점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구>일본제1은행 인천지점아트플렛폼으로 가는길인천 개항박물관구>58은행유형문화재 제19호 (구)58은행은일본 오사카에 본점을 둔 58은행의 인천지점이랍니다 1939년 신축된 이 건물은 광복 후 조흥은행 인천지점,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등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는데프렌치 르네상스 양식의 2층 건물로 톡특한 이국풍 건축양식이 눈에 띄는데 볼때마다 관리가 부실한듯 하더군요구>58은행중국조계지와 마주하고 잇는 이곳은 구>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건물입니다개항 이후 인천의 해운업을 독점했던 일본 운송회사의 사옥이었는데현재에는 특별한 용도없이 보존만 되고 있는 듯 합니다구> 일본우선 주식회사 인천지점사진을 클릭하면 큰사진으로 보실수 있습니다신포동 금강제화 앞 오거리에서 중구청방면으로직진하다보면 좌측에 자리잡고있는생선구이전문점 "선이네(구:오술해)"주말이른시간 덕분인지첫손님으로 들어가서늘 먹던대로 생선백반2인을 주문했다.

주방을바라보면 눈에띄는 문구."저희 업소는 손님이맛있게 드시는 모습이 행복입니다"내부구경을 하고있자니,밑반찬부터 셋팅이된다.

쑥갓나물,버섯볶음,열무김치,죽순볶음,오이백김치,애호박볶음,두부조림 등등그 중 내가좋아하는두부조림은 땟갈이 매우 곱다.

이 외 기본김치 두어가지와밥,국까지 차려지면 입에서는침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윽고 메인요리 등장.이 집 생선구이백반의 구이는그날그날 생선이 달라진다.

매일 아침싱싱한 생물을 직접보고 들여오시는사장님의  경영방침 때문일까?여튼 무엇을 먹어도 맛있으니,주는대로 먹기만하면된다.

이날은 삼치와 참민어, 조기.구이라기 보다는 튀김에 가깝게 나오지만겉은바삭, 속은 촉촉 아주좋은맛이다.

집밥먹는것처럼푸짐하고, 정갈한맛이 그리운날찾아가면 좋을곳 선이네였다.

 절묘하게 심심하지도 않은것이 핵심   소스를 뒤집어 쓰고도 바삭하다라고 오해하는 딱딱한 튀김을 좋아하는 분들에겐 이집 튀김 비츄포실한 튀김에 소스를 입히니 쫄깃해졌다.

  이집 튀김 맛있어

      지난번 방문때 사장님 내외가 무엇인가 열심히 비벼 드시기에 저희도 그거 먹게 해주세요! 했더니 그것은 '중국냉면' ㅋㅋ   메뉴판 그 어디에도 없고, 실내벽 어디에도 문구가 없다.

은근슬쩍 올라온 계절메뉴 중국냉면   중국냉면에 빠지면 안되는 소금에 절인 가죽나물 사모님이 매년 봄철에 가죽나물을 만들어두신다고.맑은 육수 우훔 맛있게 먹어주마   면 아래에 다진 마늘이 넉넉히 깔려있다.

사모님께서 위에서 아래로 골고루 섞으라 당부하시네.시키면 시키는대로 말 잘 듣는당

열심히 뒤적뒤적 저어요

짭짤한 가죽나물과 고소한 땅콩육수는 조화롭다는 생각이 절로

참 잘 어울리는구나! 엄니께서 이집 중국냉면 드시고선 콩국수에 절임 가죽나물 넣어드시겠다고 하셨다.

ㅎㅎ     살얼음이 없어 미적하다며 불평인 일행말은 뒷전 지나치게 차거나 뜨거운 음식을 요즘은 멀리하니 내겐 안성맞춤 양손 써가며 자

알 먹었다.

  살짝 기복이 있어 한동안 뜸했던 중화방을 요즘엔 자주 찾는다.

  다시 찾으니 맛있잖아!  (사장님이 웍을 잡으실때만

ㅎㅎ)밤 12시까지 영업한다.

    인천역 차이나타운에서 그리 멀지 않다.

천천히 걸어 10분정도

         ?일본영사관에서 인천부 청사로 40년, 쇠락한 청사의 신축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절충주의 건축물의 장식을 일체 배제한 중구청은 간소화된 1930년대 근대주의 건축양상을 띄고 있습니다.

청사 본관의 양옆으로는 본관 2층과 연결된 동별관, 서별관이 들어서 있습니다.

 건립 이후 지금까지 관공서로만 사용돼 외관은 비교적 잘 보존돼 있는 반면, 지속적인 증축과 대대적인 새 단장으로 내부 원형은 찾기 힘들어졌지만, 개항장의 중심에서 중구청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그리고 근대를 거치며 인천 행정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일단 차는 근처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했습니다.

공영주차장 위에서 바라본 풍경입니다.

인천 중구도 군산의 역사도시 작업에 큰 감흥을 받았는지, 대대적으로 주변을 정비하고 있습니다.

사실 인천 중구가 영종도를 포함하는 행정구역이라, 생각보다 돈이 도는 지역이라서, 구도심 재개발을 힘껏 밀어주는 모양세입니다.

여담으로 저기 보이는 대성불고기센터는 맛있는 불고기집이라고 해서 한번 가야하는데, 매번 순위에서 밀리네요.사거리 모퉁이를 돌아 위로 올라가면 학교가 보입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입니다.

 군산보다 인천이 자랑할만한 이점이 있다면, 인천은 제물포 조약으로 개항한 진짜 근대개항포구라는 점입니다.

부산, 원산, 인천인데, 거기에 한곳은 현재 갈 수 없는 곳이니 매리트가 있다고 봐야겠죠? 재단이 교회재단이라고 하시더군요. 여담으로 어머니가 나온 고등학교는 천주교 재단인데, 송도신도시로 이전했다고 하는군요. 서울강북 구도심 고등학교들이 강남으로 이전했던 과거처럼, 인천 구도심 중,고교들은 송도나 청라지역으로 몇몇이 이전했는데, 그 케이스에 포함이 된 것이죠. 저 밑에서부터 버스에서 내려서 걸어 올라왔다고 하시더군요. 어머니의 표현을 빌자면 교복으로 이 언덕이 까맣게 변했었다.

라고 하시네요. 학교에서 바라본 주택지구입니다.

최근 드라마 가화만사성에 나오는 집들이 이쪽을 배경으로 한 것이라고 하네요. 사실 여기서 조금만 걸어넘어가면 차이나타운입니다.

다시 사거리로 내려왔습니다.

사거리에 팻말이 보입니다.

신포시장과 차이나타운의 중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팻말이 서 있는 이건물도 벽을 병뚜껑으로 붙인 건물인데, 티비 출연을 자주 한 집이라고 하는군요. 그 이야기를 들은김에 이번에는 중구청 방향으로 걸어올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이쪽도 지역의 투자에 힘입어 날로 달로 바뀌는 분위기입니다.

가다보니 맥아더 동상으로 유명한 자유공원 올라가는 길이 있고요. 조금더 가면 중구청 담벼락이 맞이해줍니다.

주로 개항과 관련된 이야기를 적어두고 있습니다.

최조의 자장면, 최초의 우체국, 최초의 축구경기 등 개항이 되면서 전래된 근대문명들의 이야기가 주로 그려져 있습니다.

최초의 기관차. 1899년에 처음 운행한 이 기관차 덕분에 서울-인천간 이동시간을 혁신적으로 줄였다고 하는군요. 그전에는 보행으로 12시간, 한강을 타고 9시간 걸렸던 이동시간을 1시간 반 가량으로 줄였다고 하니,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었겠다 싶습니다.

군산에 가도 군산 세관, 군산 은행 등을 보존하고 있는데, 인천도 그러한 것들이 당연히 있습니다.

역시 인천세관도 그려져 있네요.  물론 남아있지는 않습니다.

보행길을 타고 중구청을 지나가면 풍경이 확 바뀝니다.

중구청을 경계로 차이나 타운 방향은 이미 모든 개발이 완료되고 북적이는 관광지이고, 왼쪽은 뭔가 아직 옛 풍경이 혼재된 지역이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른쪽의 풍경입니다.

오늘은 이쪽 넘어 차이나타운까지 갈 생각은 없어서 여기서 멈췄습니다.

밥을 신포시장쪽으로 먹으러 갈 계획이었거든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언덕을 좋아하지 않습니다^^:;중구청입니다.

저 고양이 그려진 집도 최근에 상당히 핫한 집이라고 하는데, 시간되면 들러봐야겠습니다.

이쪽 지구는 전체적으로 일제시대때 만들어진 건물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보존지구라 골격을 유지한 리모델링은 전면적으로 하는 것까지 허용하지만, 신축은 불허하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가 과거 일제시대 스타일의 건물로 리모델링을 하고 있습니다.

잡화점, 도장집 등이 보이는군요. 여담으로 이쪽지역 건물대장을 띠어보면 난리도 아니라고 합니다.

1920,1930년도에 만들어진 건물이 즐비하다고 하네요. 이쪽은 잘만하면 서양처럼 꽤 오래 보존된 건물들을 보유한 지역이 될 것 같습니다.

추천 보행코스라고 나와있는데, 그냥 찍어보았습니다.

그냥 벽화마을-차이나타운-신포시장 중간에 자유공원 정도 보면 된다.

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작년말에 방문하고 반년만에 들른 것 같은데, 그 사이에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동네입니다.

신포시장 쪽도 그러하고 이쪽도 그러하고 관 주도의 인위적인듯 인위적이지 않은듯 한 개발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인프라를 깔아놓으면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는 스타일이랄까요? 운치있는 카페. 캐주얼한 식당. 가벼운 선술집 등 전형적으로 한 지역이 개발되고 있는 모양이 보여지는 곳입니다.

 조금더 시간이 흐르면 지금 느낌보다는 더 젊은친구들이 북적이는 모양이 될 것 같습니다.

군산을 보니, 변하는 건 순식간인 것 같더군요.지도보기50m� NAVER Corp.??? /OpenStreetMap
?? ???
?� NAVER Corp. /OpenStreetMap인천광역시 중구청인천광역시 중구 신포로27번길 80 중구청전화상세보기지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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