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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 계보



명종과 같이 쫓겨난 강종은또다시 신종과 마찬가지로 최충헌에게 옹립되어 왕위에 올랐어요 제23대는 고종인데요고종의 시기에는 몽고의 침입이 있어서 강화도로 천도하였는데요결국 몽고의 침입에 굴복하고 말았어요몽고를 불교의 힘으로 격퇴하기 위해서 팔만대장경을 조판하였는데요그 팔만대장경을 비롯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인쇄하였어요  제 24대는 원종인데요원종은 강화도로 천도되었던 개경을 환도 했어요이때 무인정권이 종말되었으며 1차일본정벌에 나섰어요몽고에게 침입을 받은뒤 즉위한 원종은임연의난이라던가 삼벌초의난 등으로 화평한 날이 없었어요 제 25대왕은 충렬왕인데요충렬왕은 2차 일본정벌에 나섰지만 원나라에 굴복하여 원의 제국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이는등여러가지 원나라의 간섭을 받았어요  제 26대왕은충선왕이에요몽고 황실의 딸과 결혼하여 왕위에 올랐지만 즉위 7개월만에충렬와잉 다시 복위 하였으며 이후 10년간 원나라에 머물다가 다시 즉위해서 원나라에서 국정을 보았어요 제27대왕은 충숙왕인데요정사에 싫증을 느끼고 아들인 충혜왕에게 양위 하였는데요충혜왕의 행실이 좋지 않자 2년만에 복위 했어요 제28대왕은 충혜왕인데요행실이 좋지 않아 정사를 혼란에 빠뜨렸어요충혜왕은 원나라로 귀양을 가던 중 병사했어요 제29대왕은 충목왕이에요충목왕은 원나라에 볼모로 있다가 8세때 원나라로 인해 즉위 했는데요어머니인 덕녕공주가 섭정했어요충목왕은 천재지변에 의한 재난 발생시 구제도금이나 구급도감과 유사한임시구빈기관인 진제도감을 설치했어요 제30대왕은 충정왕이에요12세때 즉위한 충정왕은 외가친척으로 인해 정치가 문란해지고 왜구의 침입이 잦아져서3년만에 폐위되었어요 제31대왕은 공민왕이에요원나라 배척운동을 벌여서 친원파인 기씨일족을 제거빼잇간 영토를 수복하면서 국위를 떨쳤는데요말년에는 왕비인 노국공주가 죽자 정사를 그르쳐서 최만생과 홍륜에게 시해당했어요 제32대왕은 우왕인데요공민왕의 아들인 우왕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의해서 폐위되었어요 제33대왕은 창왕이에요.창왕은 이성계가 우왕을 내쫓은 뒤 창왕을 내세웠는데요강화도로 다시 쫓겨났고 10세의 나이에 시해되엇어요 마지막 고려의 왕은 공양왕 이에요이성계일파에 의해서 즉위 했는데요실권을 빼앗겼고 정몽주가 살해당한 뒤 폐위 당하고고려는 멸망하였어요      (궁녀는 역사에 매우 취약했답니다.

ㅡ,.ㅡ) 그래서 오늘은 고려 왕 계보 쉽게 외우는 방법과 친근한 드라마들을 통해 고려왕들의 성격을 알아보는 시간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쨔쟌


 조선왕조계보를 열심히 외운(태정태세 문단세... 어쩌구 저쩌구...)여러분께 닥친 또 하나의 시련! 바로 고려왕조계보 외우기! 아마 너무 어려워서 궁녀처럼 외울 생각도 안 해보신 분들도 많을 텐데요

우리 궁것질 멘토가 외우기 아주아주

좋은 방법을 발명해내 주셨답니다! 일단 고려시대의 왕 순서는1 태조--2 혜종--3 정종(定宗)--4 광종--5 경종--6 성종--7 목종-8 현종--9 덕종-10 정종(靖宗)--11 문종--12 순종--13 선종--14 헌종--15 숙종--16 예종--17 인종--18 의종--19 명종--20 신종--21 희종--22 강종--23 고종--24 원종--25 충렬왕--26 충선왕--27 충숙왕--28 충혜왕--29 충목왕--30 충정왕--31 공민왕--32 우왕?33 창왕--34 공양왕 위와 같은데요.무턱대고 외우려면 내 머리 혹은 나를 이렇게 낳아주신 부모님 탓을 하게 되겠죠?  애꿎은 부모님 원망하지 말고 저희가 알려드리는 방법을 써보세요

바로 노래로 외우기!자자

! 요즘 유행하는 노래에 맞춰 보았습니다.

 좀 오글오글 거려도 확실히 효과있습니다! 역사꽝인 궁녀도 슬슬 외워지는 걸 보면요!영상 나갑니다

  어떤가요? 오그라드신다구요? 그래도 몇 번 들어보시면 확실히 효과가 느껴지실 겁니다! 아참! 영상에 나오는 문서 파일로도 첨부해드릴게요

참고해서 보시면 더 잘 외워지실 거랍니다.

^^   : 스마트폰으로 보실 때에는 그림을 클릭하세요^^  자! 외우려니 머리가 좀 아프시죠? 그래서 이제는 저희에게 친숙한 드라마들을 통해 각 고려왕들의 성격에 대해 한 번 알아볼까요.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극 드라마들은 대부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했고, 고려시대나 그 이전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은 많지 않았었는데요. 최근에는 비교적 다양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이 많이 나오고 있죠.그동안 고려시대를 다룬 드라마가 적었던 이유는 조선시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료들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고려시대에 대한 평가가 절하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는데요.왜 평가가 절하되었는가! 그 이유인 즉슨, 고려왕조를 전복시킨 조선인의 눈으로 고려시대를 기록한 사료들이 많았기 때문이랍니다.

아무래도 자신들이 전복시킨 고려왕조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힘들었을테니까요. 자. 잡설 그만하고 진짜 들어갑니다.

 첫번째 드라마입니다!그 이름도 유명한 태조왕건!!!!  최수종 아저씨께서 태조왕건역을, 김영철 아저씨께서 궁예 역을 아주 멋지게 소화하셨던 드라마였죠.당시 금색 눈가리개를 착용하고 미륵불을 자처했던 궁예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었답니다.

  두 분의 카리스마가 불꽃튀죠? 하지만 궁녀는 궁예에 한 표

!그러고 보니 같은 궁씨네요 ㅋㅋ 도움이 될까 싶어 두 인물의 성격도 퍼와봤어요. (물론 극중 성격이기 때문에 허구의 내용이 있을 수 있다는 걸 감안하고 보셔야 합니다.

^^) 태조 왕건 (877 - 943)대대로 해상무역에 종사해 온 호족 출신으로 왕륭과 한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외유내강형의 인물로, 조심스럽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참을성을 갖추었고 스스로 굽힐 줄 아는 겸손을 겸비한 수재이지만 최고의 자리에 오르려 하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 도선의 가르침을 받았고 후에 왕륭이 궁예의 휘하에 들어가면서 송악의 성주가 되어 발어참성을 쌓았다.

후백제와의 전투에서 전과가 높아 궁예의 신임을 받았고, 그의 밑에서 성주와 해군대장군, 시중 등을 거쳤다.

정치적 처처신에 있어서도 주도면밀하고 부하를 잘 거느렸다.

한 번 신뢰한 사람은 의심하지 않고 전부를 맡기는 호인으로 뛰어난 장점을 위해 작은 잘못을 눈감아주는 줄 정도로 큰 포용력을 지녔다.

드러나는 모든 면이 넉넉함을 가지고 있어, 대인으로서의 풍모 또한 넉넉하다.

궁예로부터 역모의 의심을 받기도 하나 슬기롭게 위기를 넘겼으며, 유금필, 신숭겸 등 결의형제들과 마군장군들의 추대로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의 왕으로 등극한다.

그 후 후백제 견훤과의 오랜 전쟁을 거쳐쳐, 아들들에 의해 축출된 견훤을 받아들이고, 신라와 유대관계를 유지해 경순왕에게서 나라를 넘겨받는다.

그리고 견훤의 장남인 신검을 일선군에서 격파하여 마침내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루어낸다.

견제와 균형을 위해 강력한 호족들의 딸들과 정략적 혼인을 해 정권의 안정을 이루지만 이 때문에 사후에 피비린내 나는 왕위 쟁탈 싸움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궁예 (870 - 918)신라 경문왕과 후비 사이에 태어난 서자로, 태어나자마자 왕위 계승 싸움에 휘말려 죽음의 위기에 처했으나 구사일생으로 한 쪽 눈을 잃고 살아나 유모의 손에 키워진다.

어린 시절 세달사로 출가, 미륵사상에 심취해 어지러운 세상을 구할 뜻을 품는다.

동료 승려 종간과 의기투합하여 죽주 반란군 견훤과 북원의 양길에게 의탁했다가 명주에 입성하여 자신의 독립적인 세력을 키웠다.

이후 스스로 미륵을 자처하며 송악과 철원 일대를 점령하여 나라를 세운 뒤 세력을 넓혀나갔갔다.

모든 일을 자기중심적, 자기본위로 생각하지만 누구든 재능과 실력이 있는 자는 파격적으로 우대하는 호방한 성품이다.

부하들과 동거동락하여 그들의 마음을 얻는 탁월한 지도자였지만 원칙에 항상 충실하여 원칙적 잘못을 저질렀거나 아용가치가 없으면 비정하게 버렸다.

그러나 사람을 잘 다루었고 스스로 군율을 지키고 모범을 보일 정도로 자신에게 엄격했다.

카리스마가 있는 혁명적인 지도자이지만 또한 비정하고 냉정한 리더쉽의 소유자였다.

전제왕권을 추구하다가 많은은 사람들을 희생시켰으며 무모한 대륙 진출의 꿈을 추진하다가 결국 자신의 부인과 자식까지 죽이는 참혹한 일을 저지르고 왕건에 의해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고 만다.

자신의 충복이던 왕건에게 배신당하고 끝내는 자신이 다스렸던 백성들에 의해 죽음을 맞이 하는 비극적인 영웅이다.

출처 : KBS 홈페이지 벌써 10년 가까이 된 드라마네요.이렇게까지 오래된 드라마인 줄 궁녀는 몰랐다는! 흑 세월이 참 빠른 거 같아요!   두 번째로 소개해드릴 드라마는 제국의 아침이라는 드라마입니다.

  억!사실 궁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드라마예요;;; 어쨌든 이 드라마에서는 고려 4대왕 광종이 등장했었네요.등장인물 설명을 한 번 볼까요? 자. 잘 기억나지 않으니 여기까지만 하고 패쓰! 아하하- ^^;;   세 번째 드라마는 엄청난 대하사극이었던 천추태후!즐겨보진 않았어도 주인공을 맡았던 채시라님이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까지의 역할까지 소화하는 걸 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네요. 아마 연말에 연기 대상도 받으셨던 것도 같고요

 엄청난 대하사극이었던만큼 등장했던 왕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천추태후였다는 거

ㅎㅎ참고로 천추태후는 5대왕 경종의 부인이자, 6대왕 성종의 누이이자, 7대왕 목종의 모후였다고 합니다.

 등장인물 소개를 한 번 볼까요

  드라마 보셨던 분들은 기억이 좀 나시나요?  마지막으로 소개해드릴 작품은 신돈!신돈은 타이틀롤인 신돈이 주인공이긴 했지만 고려 31대왕인 공민왕도 함께 등장했던 드라마였습니다.

지금은 코믹연기, 바보연기 등으로 주가를 올리신 정보석님께서 왕 역할을 하셨었네요. ^^ 등장인물 소개입니다.

  헉헉-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고려시대 드라마가 별로 없는 게 아니었네요

ㅎㅎㅎㅎㅎ사실 위에 소개시켜 드린 작품들 외에 무인시대라는 드라마도 있는데, 이 드라마에는 정말 많은 고려왕들이 나왔더라구요! 안 그래도 장장의 포스팅이라서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마쳐볼까 합니다.

스크롤 내리느라 고생이 많으셨죠? ^^ 그래도 여러분이 고려 왕 계보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기를 바라면서궁녀는 또 새로운 소식으로 찾아오겠습니다! 화이팅 ^^ 수시 적성검사 전형이 궁금하신가요? 수시 적성검사 파해쳐 보기 Go

조선시대 왕 계보 외우기, 참 쉽죠잉? 지구과학 문제풀이, 이해가 될 때까지 답변해 드립니다.

근현대사 1920년대 무장 독립 전쟁, 한 방에 끝내기.유명한 시인별 특징! 이 정도는 알고 넘어가자.내 영어 시험의 태클 '영어듣기'!! 이렇게 하면 만점 받는다!! 명종과 같이 쫓겨난 강종은또다시 신종과 마찬가지로 최충헌에게 옹립되어 왕위에 올랐어요 제23대는 고종인데요고종의 시기에는 몽고의 침입이 있어서 강화도로 천도하였는데요결국 몽고의 침입에 굴복하고 말았어요몽고를 불교의 힘으로 격퇴하기 위해서 팔만대장경을 조판하였는데요그 팔만대장경을 비롯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인쇄하였어요  제 24대는 원종인데요원종은 강화도로 천도되었던 개경을 환도 했어요이때 무인정권이 종말되었으며 1차일본정벌에 나섰어요몽고에게 침입을 받은뒤 즉위한 원종은임연의난이라던가 삼벌초의난 등으로 화평한 날이 없었어요 제 25대왕은 충렬왕인데요충렬왕은 2차 일본정벌에 나섰지만 원나라에 굴복하여 원의 제국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이는등여러가지 원나라의 간섭을 받았어요  제 26대왕은충선왕이에요몽고 황실의 딸과 결혼하여 왕위에 올랐지만 즉위 7개월만에충렬와잉 다시 복위 하였으며 이후 10년간 원나라에 머물다가 다시 즉위해서 원나라에서 국정을 보았어요 제27대왕은 충숙왕인데요정사에 싫증을 느끼고 아들인 충혜왕에게 양위 하였는데요충혜왕의 행실이 좋지 않자 2년만에 복위 했어요 제28대왕은 충혜왕인데요행실이 좋지 않아 정사를 혼란에 빠뜨렸어요충혜왕은 원나라로 귀양을 가던 중 병사했어요 제29대왕은 충목왕이에요충목왕은 원나라에 볼모로 있다가 8세때 원나라로 인해 즉위 했는데요어머니인 덕녕공주가 섭정했어요충목왕은 천재지변에 의한 재난 발생시 구제도금이나 구급도감과 유사한임시구빈기관인 진제도감을 설치했어요 제30대왕은 충정왕이에요12세때 즉위한 충정왕은 외가친척으로 인해 정치가 문란해지고 왜구의 침입이 잦아져서3년만에 폐위되었어요 제31대왕은 공민왕이에요원나라 배척운동을 벌여서 친원파인 기씨일족을 제거빼잇간 영토를 수복하면서 국위를 떨쳤는데요말년에는 왕비인 노국공주가 죽자 정사를 그르쳐서 최만생과 홍륜에게 시해당했어요 제32대왕은 우왕인데요공민왕의 아들인 우왕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의해서 폐위되었어요 제33대왕은 창왕이에요.창왕은 이성계가 우왕을 내쫓은 뒤 창왕을 내세웠는데요강화도로 다시 쫓겨났고 10세의 나이에 시해되엇어요 마지막 고려의 왕은 공양왕 이에요이성계일파에 의해서 즉위 했는데요실권을 빼앗겼고 정몽주가 살해당한 뒤 폐위 당하고고려는 멸망하였어요      명종과 같이 쫓겨난 강종은또다시 신종과 마찬가지로 최충헌에게 옹립되어 왕위에 올랐어요 제23대는 고종인데요고종의 시기에는 몽고의 침입이 있어서 강화도로 천도하였는데요결국 몽고의 침입에 굴복하고 말았어요몽고를 불교의 힘으로 격퇴하기 위해서 팔만대장경을 조판하였는데요그 팔만대장경을 비롯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인쇄하였어요  제 24대는 원종인데요원종은 강화도로 천도되었던 개경을 환도 했어요이때 무인정권이 종말되었으며 1차일본정벌에 나섰어요몽고에게 침입을 받은뒤 즉위한 원종은임연의난이라던가 삼벌초의난 등으로 화평한 날이 없었어요 제 25대왕은 충렬왕인데요충렬왕은 2차 일본정벌에 나섰지만 원나라에 굴복하여 원의 제국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이는등여러가지 원나라의 간섭을 받았어요  제 26대왕은충선왕이에요몽고 황실의 딸과 결혼하여 왕위에 올랐지만 즉위 7개월만에충렬와잉 다시 복위 하였으며 이후 10년간 원나라에 머물다가 다시 즉위해서 원나라에서 국정을 보았어요 제27대왕은 충숙왕인데요정사에 싫증을 느끼고 아들인 충혜왕에게 양위 하였는데요충혜왕의 행실이 좋지 않자 2년만에 복위 했어요 제28대왕은 충혜왕인데요행실이 좋지 않아 정사를 혼란에 빠뜨렸어요충혜왕은 원나라로 귀양을 가던 중 병사했어요 제29대왕은 충목왕이에요충목왕은 원나라에 볼모로 있다가 8세때 원나라로 인해 즉위 했는데요어머니인 덕녕공주가 섭정했어요충목왕은 천재지변에 의한 재난 발생시 구제도금이나 구급도감과 유사한임시구빈기관인 진제도감을 설치했어요 제30대왕은 충정왕이에요12세때 즉위한 충정왕은 외가친척으로 인해 정치가 문란해지고 왜구의 침입이 잦아져서3년만에 폐위되었어요 제31대왕은 공민왕이에요원나라 배척운동을 벌여서 친원파인 기씨일족을 제거빼잇간 영토를 수복하면서 국위를 떨쳤는데요말년에는 왕비인 노국공주가 죽자 정사를 그르쳐서 최만생과 홍륜에게 시해당했어요 제32대왕은 우왕인데요공민왕의 아들인 우왕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의해서 폐위되었어요 제33대왕은 창왕이에요.창왕은 이성계가 우왕을 내쫓은 뒤 창왕을 내세웠는데요강화도로 다시 쫓겨났고 10세의 나이에 시해되엇어요 마지막 고려의 왕은 공양왕 이에요이성계일파에 의해서 즉위 했는데요실권을 빼앗겼고 정몽주가 살해당한 뒤 폐위 당하고고려는 멸망하였어요      명종과 같이 쫓겨난 강종은또다시 신종과 마찬가지로 최충헌에게 옹립되어 왕위에 올랐어요 제23대는 고종인데요고종의 시기에는 몽고의 침입이 있어서 강화도로 천도하였는데요결국 몽고의 침입에 굴복하고 말았어요몽고를 불교의 힘으로 격퇴하기 위해서 팔만대장경을 조판하였는데요그 팔만대장경을 비롯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인쇄하였어요  제 24대는 원종인데요원종은 강화도로 천도되었던 개경을 환도 했어요이때 무인정권이 종말되었으며 1차일본정벌에 나섰어요몽고에게 침입을 받은뒤 즉위한 원종은임연의난이라던가 삼벌초의난 등으로 화평한 날이 없었어요 제 25대왕은 충렬왕인데요충렬왕은 2차 일본정벌에 나섰지만 원나라에 굴복하여 원의 제국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이는등여러가지 원나라의 간섭을 받았어요  제 26대왕은충선왕이에요몽고 황실의 딸과 결혼하여 왕위에 올랐지만 즉위 7개월만에충렬와잉 다시 복위 하였으며 이후 10년간 원나라에 머물다가 다시 즉위해서 원나라에서 국정을 보았어요 제27대왕은 충숙왕인데요정사에 싫증을 느끼고 아들인 충혜왕에게 양위 하였는데요충혜왕의 행실이 좋지 않자 2년만에 복위 했어요 제28대왕은 충혜왕인데요행실이 좋지 않아 정사를 혼란에 빠뜨렸어요충혜왕은 원나라로 귀양을 가던 중 병사했어요 제29대왕은 충목왕이에요충목왕은 원나라에 볼모로 있다가 8세때 원나라로 인해 즉위 했는데요어머니인 덕녕공주가 섭정했어요충목왕은 천재지변에 의한 재난 발생시 구제도금이나 구급도감과 유사한임시구빈기관인 진제도감을 설치했어요 제30대왕은 충정왕이에요12세때 즉위한 충정왕은 외가친척으로 인해 정치가 문란해지고 왜구의 침입이 잦아져서3년만에 폐위되었어요 제31대왕은 공민왕이에요원나라 배척운동을 벌여서 친원파인 기씨일족을 제거빼잇간 영토를 수복하면서 국위를 떨쳤는데요말년에는 왕비인 노국공주가 죽자 정사를 그르쳐서 최만생과 홍륜에게 시해당했어요 제32대왕은 우왕인데요공민왕의 아들인 우왕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의해서 폐위되었어요 제33대왕은 창왕이에요.창왕은 이성계가 우왕을 내쫓은 뒤 창왕을 내세웠는데요강화도로 다시 쫓겨났고 10세의 나이에 시해되엇어요 마지막 고려의 왕은 공양왕 이에요이성계일파에 의해서 즉위 했는데요실권을 빼앗겼고 정몽주가 살해당한 뒤 폐위 당하고고려는 멸망하였어요       당시 태자 신분이었던 원종이 고종의 대리인 자격으로 몽골에 화의 사절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원종이 몽골에 들어가자마자 몽골의 제4대 카안인 몽케가 남송과의 전쟁 도중 그만 병으로 사망합니다.

 참으로 당황스러웠을 겁니다.

항복을 하러 갔는데 항복을 받아줄 몽골의 카안이 죽어버린 것이지요. 그 후 몽골은 후계자 문제로 몽케의 동생인 쿠빌라이와 아리크부카가 대립하게 됩니다.

원종은 여기서 아주 중요한 결단을 내립니다.

황위 다툼에서 쿠빌라이가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원종은 아예 쿠빌라이가 주둔하고 있던 중국 남쪽의 악양 땅까지 6천리 길을 걸어서 쿠빌라이를 찾아갑니다.

자기를 지지하며 그 먼 길을 달려와 준 고려 왕자에게 쿠빌라이는 정말로 감동했던 것 같습니다.

 쿠빌라이는 원종을 한 나라의 국왕으로 대접하면서 자기 진영에 머물게 합니다.

또한 고려에 대해서만큼은 특별히 국호와 왕실을 유지할 수 있게 허락했고 고려의 풍습을 고치지 않아도 된다고 조칙을 내립니다.

 당시 몽골의 지배를 받았던 나라 중에 유일하게 받은 예외적 조치였지요.  사냥 중인 쿠빌라이칸 (출처 : 위키백과)바로 그 해에 고종이 사망하자 원종은 고려의 24대 왕에 즉위하였고, 쿠빌라이 역시 이듬해인 1260년 자신의 지지자들만을 모아 독자적으로 쿠릴타이를 열어 제5대 카안으로 즉위합니다.

그 후 4년에 걸쳐 아리크부카와 내전을 벌인 쿠빌라이는 수도를 지금의 베이징으로 옮겨 대도라 일컫고 마침내 1271년에 국호를 원(元)이라 정합니다.

쿠빌라이는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자기를 지지했던 고려 원종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고려의 왕실을 보전해준 것은 물론이고 아예 고려 왕실과 사돈을 맺습니다.

 바로 고려 원종의 아들과 자신의 딸을 혼인시키기로 한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고려 원종의 세자인 왕심과 쿠빌라이 카안의 딸 제국대장공주(몽골 이름은 쿠두루칼리미쉬)가 1274년 원나라 황궁에서 성대한 혼인식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당시 왕심은 이미 39세의 기혼남이었고 제국대장공주는 16세의 어린 처녀였습니다.

왕심은 결혼 직후 원종이 세상을 떠나자 고려로 돌아와 왕위에 올랐으니 그가 고려 제25대 왕인 충렬왕입니다.

[고려 왕 계보] 와오.


당시 세계 최강의 원나라 황제였던 쿠빌라이 카안의 사위이기도 하지요. 고려 왕실 계보 (출처 : 히스토피아 한국사)충렬왕은 쿠빌라이칸의 사위였으므로 원나라 내에서 정치적 위상이 대단히 높았습니다.

 원 황실이 연회를 열 경우 서열에 따라 자리에 앉게 되는데 당시 충렬왕의 서열은 7위였습니다.

 쿠빌라이의 아들이 12명이었으니까, 충렬왕의 지위는 일반 신하는 물론이거니와 쿠빌라이의 웬만한 아들들보다 더 높았던 것입니다.

 쿠빌라이가 죽고 원성종(테무르)이 황위에 오르자 충렬왕의 서열은 4위로 뛰어오릅니다.

 성종은 충렬왕의 왕비인 제국대장공주의 조카였으니 충렬왕은 원 성종의 고모부가 되는 것이지요.  흔히 교과서에서 원간섭기에 고려는 원나라의 부마국이 되었다고 설명하면서, 왕의 지위가 격하된 것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고려왕이 원 황제의 사위가 되었다는 것은 원나라 중심의 세계 질서 속에서 고려 원종의 적극적이고 과감한 외교적 노력의 성과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쿠빌라이칸의 외손자, 고려의 왕이 되다충렬왕과 제국대장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충선왕입니다.

고려왕 가운데 최초로 몽골인의 피가 섞인 왕입니다.

고려식 이름은 장(璋)이고 몽골식 이름은 이지리부카입니다.

징기스칸의 손자이자 원 세조인 쿠빌라이칸의 외손자가 되지요.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고 담력도 많아서 쿠빌라이칸이 특히 귀여워했다고 합니다.

원나라에서 교육받고 원나라에서 자랐습니다.

쿠빌라이칸 (원 세조)1290년에 원나라에 반란을 일으켰다 실패한 합단족 일파가 고려에 쳐들어온 일이 있었습니다.

 충렬왕은 이에 맞서 싸울 생각은 않고 무작정 강화도로 피신해버립니다.

그러자 원나라에 머물고 있던 충선왕이 쿠빌라이칸을 설득하여 군사 1만여 명을 얻어 고려에 쳐들어온 합단족을 격파합니다.

그 때 나이가 겨우 16살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충렬왕과 충선왕의 부자 관계는 극도로 나빠집니다.

원래부터 충선왕은 자신의 아버지인 충렬왕과 사이가 좋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충렬왕이 자신의 어머니인 제국대장공주를 멀리하고 여러 궁인들과 바람을 피며 방탕하게 지내는 모습에 대단히 화가 나 있었는데요, 결국 1297년에 자신의 어머니인 제국대장공주가 39살 젊은 나이에 병으로 죽자 어머니 문상차 잠시 고려에 귀국해서는 충렬왕의 총애를 받았던 궁인 무비를 참살하고 그 무리 40여 명을 유배보내는 대숙청을 단행하고 원나라로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그 충격 때문에 충렬왕은 고려왕에서 스스로 물러납니다.

원 황제는 충선왕을 새로운 고려왕으로 임명합니다.

고려에 다시 돌아와 왕위에 즉위한 충선왕은 곧바로 충렬왕의 측근들을 제거하고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합니다.

충렬왕의 측근들이라는게 주로 원나라를 배경으로 온갖 횡포와 부패를 일삼던 권문세족들이었는데요, 충선왕의 개혁은 바로 이 권문세족의 횡포와 폐단을 없애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젊은 충선왕에게도 한 가지 약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충선왕의 왕비였던 쿠빌라이칸의 손녀 계국대장공주(몽골명 부타시리)와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점이지요. 충렬왕이 제국대장공주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충선왕은 정작 자기 자신도 원나라 공주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게 충선왕의 개혁 과정에서 타격을 입은 권문세족에게 반격의 기회를 제공하지요. 결국 충선왕은 원나라 황제의 명령으로 재위 1년도 안 되어서 원나라로 불려가게 됩니다.

그 사이에 고려 왕은 물러났던 충렬왕에게 되돌아가지요.충렬왕과 권문세족의 압박에 고려왕위를 빼앗기고 최악의 위기에 빠졌던 충선왕에게 다시 반전의 기회가 찾아오는데요, 1307년 원나라 6대 칸인 성종(테무르)이 사망하자, 차기 황권을 둘러싸고 성종의 사촌인 안서왕 아난다와 성종의 조카인 아유르바르와다 사이에 내분이 생긴 것이지요. 충렬왕은 아난다를 지지했지만, 충선왕은 아유르바르와다를 지지했습니다.

이 황위 다툼에서 승리한 것은 결국 아유르바르와다인데요, 먼저 아유르바르와다의 형 카이샨이 황위에 올라 원나라 7대 무종이 되었고, 무종이 사망하자 1311년에는 아유르바르와다가 8대 인종으로 즉위합니다.

원 무종충선왕은 이 황권 다툼에서 아유르바르와다를 지지하면서 원 무종의 옹립에 공을 세웁니다.

충선왕이 무종과 인종 형제 편에 섰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 충선왕은 이 두 형제와는 어린 시절부터 같은 집에서 살며 절친하게 지냈던 사이였거든요. 결국 충렬왕과 충선왕 사이의 대립 구도는 원나라 무종과 인종의 즉위로 인해 충선왕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충선앙은 카이샨을 황제에 옹립한 공으로 고려 국왕보다 위계가 높은 심양왕의 작위를 받았으며, 이듬해인 1308년에 충렬왕이 죽자 고려왕의 지위도 되찾게 됩니다.

  고려에 오지 않는 고려왕충선왕은 심양왕과 고려왕을 동시에 맡았다 (출처 : KBS)심양왕이자 동시에 고려왕이 된 충선왕은 왕위에 즉위하게 위해 다시 10년만에 고려에 돌아옵니다.

그리고 곧바로 기강 확립, 조세의 공평, 인재 등용의 개방, 동성 결혼 금지, 귀족의 횡포 엄단 등 혁신적인 복위교서를 발표하면서 다시 한번 혁신 정치를 천명합니다.

그러나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도 않은 채 충선왕은 복위 두 달만에 원나라로 돌아갑니다.

[고려 왕 계보]



  충선왕은 그 뒤 재위기간 동안 한 번도 귀국하지 않고 원나라 수도인 대도에 머물면서 전지를 통해 국정을 수행합니다.

 물론 전지를 통해서도 충선왕은 일관되게 고려의 개혁을 추진하는데요, 예를 들면 소금전매 제도를 실시하여 국가 재정을 크게 확충하는 등의 성과도 올리이죠. 그러나 전지를 통해 원거리에서 통치하는 것은 엄연히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토지개혁은 귀족의 반대로 흐지부지되었고, 관제개혁 역시 뜻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충선왕은 왜 고려왕이면서도 고려에 머물기를 꺼려 했던 것일까요? 아마도 충선왕은 심양왕이든 고려왕이든 그 지위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원나라 내에서의 정치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원나라 내에서의 정치적 지위를 확보하지 않으면 고려의 개혁은 물론이거니와 왕권을 지키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그런데 만약 원나라 수도를 비우고 고려에 머물면 아무래도 원나라 내에서의 자신의 정치적 지위가 흔들릴 것을 우려했던 것 같습니다.

원나라 수도 대도의 CG 재현 모습 (출처 : 크리스탈 CG사)그러나 오히려 이것 때문에 충선왕은 정치적 라이벌들로부터 계속 시달림을 받게 됩니다.

고려든 심양이든 가지 않을 거라면 왕의 지위를 내놓으라는 압박에 시달리던 충선왕은 결국 고려왕위를 자신의 아들인 충숙왕에게 양위합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양위여서 실제로는 계속해서 전지를 내려 고려 국정에 개입하기는 했습니다.

곧이어 충선왕은 심양왕 자리도 자기가 총애하던 조카 왕고에게 물려줍니다.

충선왕, 만권당을 짓다아무리 반대파들의 견제를 받았다고 해도 고려왕에 이어서 심양왕 자리까지 모두 내려놓은 것은 다소 의외인데요, 게다가 원 인종이 모든 왕위를 내려놓은 충선왕에게 국정을 총괄하는 수상 자리를 제안하자 충선왕은 이마저도 마다합니다.

대신 충선왕은 자기 집에다 만권당을 세우고 요수, 염복, 원명선, 조맹부 등 원나라의 최고 학자들을 불러모아 학문을 연구하는 일에 매진합니다.

이 때 충선왕은 고려의 학자였던 이제현을 만권당으로 불러들여 원나라 학자들과 교류하게 하지요. 훗날 이제현이 고려에 귀국해서 키운 제자가 이색이고, 다시 이색이 키운 제자가 정몽주와 정도전 같은 고려말 신진사대부들이니까 말하자면 충선왕은 의도했건 안했건 고려말의 개혁적인 신진사대부들을 키운 원조가 되는 셈이기도 하지요. 이렇게 정치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학문 연구에 몰두하던 충선왕에게 다시 시련이 닥치게 되는데요, 친구이자 충선왕의 절대적인 지지자였던 원나라 인종이 죽자 고려 출신 환관 임빠이엔토쿠스의 모략으로 충선왕은 티베트에 3년간 유배됩니다.

 3년만에 태정제가 즉위하면서 유배에서 풀려나 원나라로 돌아왔지만 얼마 후 결국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합니다.

고려왕의 아들이면서 쿠빌라이칸의 손자. 고려왕이면서 심양왕이기도 하고, 동시에 원나라의 최고 실세이기도 했던 충선왕은 자신의 거의 대부분의 일생을 보낸 원나라 땅에서 정치적 굴곡을 겪은 끝에 그렇게 사망하고 맙니다.

명종과 같이 쫓겨난 강종은또다시 신종과 마찬가지로 최충헌에게 옹립되어 왕위에 올랐어요 제23대는 고종인데요고종의 시기에는 몽고의 침입이 있어서 강화도로 천도하였는데요결국 몽고의 침입에 굴복하고 말았어요몽고를 불교의 힘으로 격퇴하기 위해서 팔만대장경을 조판하였는데요그 팔만대장경을 비롯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인쇄하였어요  제 24대는 원종인데요원종은 강화도로 천도되었던 개경을 환도 했어요이때 무인정권이 종말되었으며 1차일본정벌에 나섰어요몽고에게 침입을 받은뒤 즉위한 원종은임연의난이라던가 삼벌초의난 등으로 화평한 날이 없었어요 제 25대왕은 충렬왕인데요충렬왕은 2차 일본정벌에 나섰지만 원나라에 굴복하여 원의 제국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이는등여러가지 원나라의 간섭을 받았어요  제 26대왕은충선왕이에요몽고 황실의 딸과 결혼하여 왕위에 올랐지만 즉위 7개월만에충렬와잉 다시 복위 하였으며 이후 10년간 원나라에 머물다가 다시 즉위해서 원나라에서 국정을 보았어요 제27대왕은 충숙왕인데요정사에 싫증을 느끼고 아들인 충혜왕에게 양위 하였는데요충혜왕의 행실이 좋지 않자 2년만에 복위 했어요 제28대왕은 충혜왕인데요행실이 좋지 않아 정사를 혼란에 빠뜨렸어요충혜왕은 원나라로 귀양을 가던 중 병사했어요 제29대왕은 충목왕이에요충목왕은 원나라에 볼모로 있다가 8세때 원나라로 인해 즉위 했는데요어머니인 덕녕공주가 섭정했어요충목왕은 천재지변에 의한 재난 발생시 구제도금이나 구급도감과 유사한임시구빈기관인 진제도감을 설치했어요 제30대왕은 충정왕이에요12세때 즉위한 충정왕은 외가친척으로 인해 정치가 문란해지고 왜구의 침입이 잦아져서3년만에 폐위되었어요 제31대왕은 공민왕이에요원나라 배척운동을 벌여서 친원파인 기씨일족을 제거빼잇간 영토를 수복하면서 국위를 떨쳤는데요말년에는 왕비인 노국공주가 죽자 정사를 그르쳐서 최만생과 홍륜에게 시해당했어요 제32대왕은 우왕인데요공민왕의 아들인 우왕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의해서 폐위되었어요 제33대왕은 창왕이에요.창왕은 이성계가 우왕을 내쫓은 뒤 창왕을 내세웠는데요강화도로 다시 쫓겨났고 10세의 나이에 시해되엇어요 마지막 고려의 왕은 공양왕 이에요이성계일파에 의해서 즉위 했는데요실권을 빼앗겼고 정몽주가 살해당한 뒤 폐위 당하고고려는 멸망하였어요       고려의 왕들은 평균 값.         27세 쯤에 왕에 올라.        13

14년 쯤 왕위에 있다가.        42

43세쯤 사망 했네요.조선왕조계보 보기.http://blog.naver.com/altheo/90095075294???? ??0 ???? ??? ??? ??. ??.. ??? ???. 27?? ?? ?. 23? ??? ?? ????. 19?...blog.naver.com 그래도 기본적으로 역사를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고려 왕 계보를 간단히 업적과 함께 볼건데요.1대 태조왕건부터 마지막왕인 공양왕까지가볍게 업적을 체크하면서 고려 왕 계보를 보도록 할게요! 1대 태조왕건부터 10세기경의 고려는 국가 체제 정비의 시기로왕건은 호족과의 융합에 초점을 두고 정말 많은 아내를 맞이했어요.하지만 동시에 호족을 통제하기 위한 기인제나 사심관제를 함께 시행했네요.고려 왕 계보 업적은 조선의 왕을 외우듯 태정태세문단세 스타일로태혜정광경성 목현덕정문순선헌 숙예인의명신 희강고원렬선 숙혜목정 공우창공이렇게 노래에 맞춰 부르면 금방 외워지기도 합니다.

광종때에 들어와서는 노비안검법이라던지 주현공부법과 같이호족세력들 견제하는 정책을 펼쳤는데요. 이때는 과거제도를 시행했다는 점이가장 중요하게 알아두어야할 업적입니다.

고려 왕 계보에서 중요한 왕 중 하나인 성종때에는유교정치이념이 확립되어 최승로의 시무28조를 수용했고,지방관을 파견하거나 국민들을 위한 창고인 흑창을 의창으로 명칭을 바꾸고상평창을 만들어 물가조절을 했다는 것을 알아두면 좋겠습니다.

11세기의 고려는 문벌귀족이 형성되는 시기로 전시과 제도가 성립되었는데요.음서제가 실시되어 금수저제도가 도입되었었네요.12세기는 인종때에 이자겸의 난이나 묘청의 난등문벌귀족사회의 모순으로 다양한 난이 발생했었습니다.

역사를 보다보면 사람이란 참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원의 부마국으로 속해있었음에도 충성을 다했던 충렬왕이나그래도 자주성을 가지고 국민들을 위해 반항을 하려고 했었던 충선왕을 보며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멋진 삶인가를 돌아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공민왕은 원명교체기에 기회를 타 반원 자주 정책을 펼쳤습니다.

친원파를 숙청하고 쌍성총관부를 공략하고 요동정벌도 했죠.이후에 고려 왕 계보의 마지막 왕. 고려의 마지막왕인공양왕이 있기 까지 우왕 창왕은 신돈의 아들이라는 이유로이성계에 의해 죽음을 맞이합니다.

사실 무엇인가 잘 설명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역사에 대해서 아주 잘 알지는 않기 때문에 조금 서툴기는 합니다만,위의 고려 왕 계보에서 업적을 살펴보시면서 참고하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요즘들어 세상에는 나쁜사람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내가 먼저 착하단 전제하에서 말이지만요.역사를 봐도 사람을 나쁘게 만드는 것은 상황일 뿐이지그 사람 스스로 나쁜 사람이었던 상황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좋게 좋게 살아야겠습니다.

이해력도 많이 높여주구요.준만큼 받으려고 하는 사람이기보다는받은만큼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뜬금 마무리!    명종과 같이 쫓겨난 강종은또다시 신종과 마찬가지로 최충헌에게 옹립되어 왕위에 올랐어요 제23대는 고종인데요고종의 시기에는 몽고의 침입이 있어서 강화도로 천도하였는데요결국 몽고의 침입에 굴복하고 말았어요몽고를 불교의 힘으로 격퇴하기 위해서 팔만대장경을 조판하였는데요그 팔만대장경을 비롯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인쇄하였어요  제 24대는 원종인데요원종은 강화도로 천도되었던 개경을 환도 했어요이때 무인정권이 종말되었으며 1차일본정벌에 나섰어요몽고에게 침입을 받은뒤 즉위한 원종은임연의난이라던가 삼벌초의난 등으로 화평한 날이 없었어요 제 25대왕은 충렬왕인데요충렬왕은 2차 일본정벌에 나섰지만 원나라에 굴복하여 원의 제국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이는등여러가지 원나라의 간섭을 받았어요  제 26대왕은충선왕이에요몽고 황실의 딸과 결혼하여 왕위에 올랐지만 즉위 7개월만에충렬와잉 다시 복위 하였으며 이후 10년간 원나라에 머물다가 다시 즉위해서 원나라에서 국정을 보았어요 제27대왕은 충숙왕인데요정사에 싫증을 느끼고 아들인 충혜왕에게 양위 하였는데요충혜왕의 행실이 좋지 않자 2년만에 복위 했어요 제28대왕은 충혜왕인데요행실이 좋지 않아 정사를 혼란에 빠뜨렸어요충혜왕은 원나라로 귀양을 가던 중 병사했어요 제29대왕은 충목왕이에요충목왕은 원나라에 볼모로 있다가 8세때 원나라로 인해 즉위 했는데요어머니인 덕녕공주가 섭정했어요충목왕은 천재지변에 의한 재난 발생시 구제도금이나 구급도감과 유사한임시구빈기관인 진제도감을 설치했어요 제30대왕은 충정왕이에요12세때 즉위한 충정왕은 외가친척으로 인해 정치가 문란해지고 왜구의 침입이 잦아져서3년만에 폐위되었어요 제31대왕은 공민왕이에요원나라 배척운동을 벌여서 친원파인 기씨일족을 제거빼잇간 영토를 수복하면서 국위를 떨쳤는데요말년에는 왕비인 노국공주가 죽자 정사를 그르쳐서 최만생과 홍륜에게 시해당했어요 제32대왕은 우왕인데요공민왕의 아들인 우왕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의해서 폐위되었어요 제33대왕은 창왕이에요.창왕은 이성계가 우왕을 내쫓은 뒤 창왕을 내세웠는데요강화도로 다시 쫓겨났고 10세의 나이에 시해되엇어요 마지막 고려의 왕은 공양왕 이에요이성계일파에 의해서 즉위 했는데요실권을 빼앗겼고 정몽주가 살해당한 뒤 폐위 당하고고려는 멸망하였어요      태조 왕건 다음은 누구지? 광종? 그러는데 에잉 아닌데? 하고 저도 덩달아 태혜정광 까지만 ?쉼資獵� 고려 왕 계보를 알아보기 위해서 역대왕조계보를 들춰 보았습니다.

마침 콩돌이가 보고있는 역사전집에 이 역대 왕조계보가 구성되어있어서 자주 확인하면서 보는데 드라마를 보면서 도움이 될줄이야 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역대 왕조계보에는 고조선을 비롯해서 고구려, 신라. 발해, 이번에 드라마에서 나오는 고려와 조선까지 우리나라 역대 왕들의 순서를 알수있거든요. 그중에서 475년의 고려 역사에 담겨있는 왕들 계보를 담아보았습니다.

일단 태조 왕건은 드라마에서 조민기씨가 열연을 하고있는데요. 태조 왕건의 자녀의 수는 무려 34명이었고 아들만해도 25명이나 되었기 때문에 차기 왕권을 잡기 위한 황자들의 암투가 거세질수밖에 없었죠. 극중에서는 25명의 아들중 정윤을 비롯해서 3황자, 4황자, 8황자, 9황자, 10황자, 13황자, 14황자가 출연을 하게 되지요.일단 고려 태조왕건 다음의 왕으로는 혜종이 고려 2대왕으로 오르는데요. 극중에서 정윤으로 나오는 왕무가 오르게 되지요.그 다음으로는 왕요라고 불리우는 3황자가 고려 3대 왕인 정종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궁금했던 고려 4대왕인 광종은 바로 4황자인 왕소가 오르게 되는것입니다.

광종 다음에는 경종이 오르게 되고 경종의 아들인 송은(목종) 이때 겨우 2살의 나이였기 때문에 왕건의 아들인 왕욱의 둘째 아들인 성종이 보위를 잇게 되는것이지요. 그다음 목종이 오르게 되고 목종이 또다시 후사가 없자 왕욱의 아들인 헌종이 보위를 잇게 되는것이지요. 극중에서 나오는 왕욱의 여동생인 황보연화는 나중에 광종의 비가 되는 인물로 대목왕후가 됩니다.

고려는 이렇게 왕족들간의 혼인으로 나중에 여러가지 문제점들도 생겨나게 되었다는데요.역사저널 그날에서 보니까 고려시대를 다룬 내용이 있었는데 국사 시간에 배우지 못했던 새로운 고려에 대한 이야기도 볼수있어 기억에 남기도 하였네요.어쨌거나 태조-혜종-정종-광종-경종-성종-목종-현종-덕종-정종-문종-순종-선종-헌종-숙종-예종-인종-의종-명종-신종-희종-강종-고종-원종-충렬왕-충선왕-충숙왕-충혜왕-충목왕-충정왕-공민왕-우왕-창왕-공양와 으로 이어진 고려는 드디어 공양왕 1392년 멸망을 하게 되면서 역사속으로 저물게 되는 것이지요.고려는 918년에 건국되어 1392년에 이르기까지 475년동안 세계 여러나라와 교류를 하며 꼬레 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지금 우리나라를 코리아 라고 불리는 원조가 되었는데요. 채 500년을 채우기 전의 고려는 조선 건국을 이룩한 태조 이성계에 의해서 망국의 길을 걷게 되는것이지요.요즘 사극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 역사에 대해서 한층 궁금증도 늘어가고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데요.이렇게 고려 왕 계보도 알아보면서 드라마를 본다면 좀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당시 태자 신분이었던 원종이 고종의 대리인 자격으로 몽골에 화의 사절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원종이 몽골에 들어가자마자 몽골의 제4대 카안인 몽케가 남송과의 전쟁 도중 그만 병으로 사망합니다.

 참으로 당황스러웠을 겁니다.

항복을 하러 갔는데 항복을 받아줄 몽골의 카안이 죽어버린 것이지요. 그 후 몽골은 후계자 문제로 몽케의 동생인 쿠빌라이와 아리크부카가 대립하게 됩니다.

원종은 여기서 아주 중요한 결단을 내립니다.

황위 다툼에서 쿠빌라이가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원종은 아예 쿠빌라이가 주둔하고 있던 중국 남쪽의 악양 땅까지 6천리 길을 걸어서 쿠빌라이를 찾아갑니다.

자기를 지지하며 그 먼 길을 달려와 준 고려 왕자에게 쿠빌라이는 정말로 감동했던 것 같습니다.

 쿠빌라이는 원종을 한 나라의 국왕으로 대접하면서 자기 진영에 머물게 합니다.

또한 고려에 대해서만큼은 특별히 국호와 왕실을 유지할 수 있게 허락했고 고려의 풍습을 고치지 않아도 된다고 조칙을 내립니다.

 당시 몽골의 지배를 받았던 나라 중에 유일하게 받은 예외적 조치였지요.  사냥 중인 쿠빌라이칸 (출처 : 위키백과)바로 그 해에 고종이 사망하자 원종은 고려의 24대 왕에 즉위하였고, 쿠빌라이 역시 이듬해인 1260년 자신의 지지자들만을 모아 독자적으로 쿠릴타이를 열어 제5대 카안으로 즉위합니다.

그 후 4년에 걸쳐 아리크부카와 내전을 벌인 쿠빌라이는 수도를 지금의 베이징으로 옮겨 대도라 일컫고 마침내 1271년에 국호를 원(元)이라 정합니다.

쿠빌라이는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자기를 지지했던 고려 원종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고려의 왕실을 보전해준 것은 물론이고 아예 고려 왕실과 사돈을 맺습니다.

 바로 고려 원종의 아들과 자신의 딸을 혼인시키기로 한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고려 원종의 세자인 왕심과 쿠빌라이 카안의 딸 제국대장공주(몽골 이름은 쿠두루칼리미쉬)가 1274년 원나라 황궁에서 성대한 혼인식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당시 왕심은 이미 39세의 기혼남이었고 제국대장공주는 16세의 어린 처녀였습니다.

왕심은 결혼 직후 원종이 세상을 떠나자 고려로 돌아와 왕위에 올랐으니 그가 고려 제25대 왕인 충렬왕입니다.

당시 세계 최강의 원나라 황제였던 쿠빌라이 카안의 사위이기도 하지요. 고려 왕실 계보 (출처 : 히스토피아 한국사)충렬왕은 쿠빌라이칸의 사위였으므로 원나라 내에서 정치적 위상이 대단히 높았습니다.

 원 황실이 연회를 열 경우 서열에 따라 자리에 앉게 되는데 당시 충렬왕의 서열은 7위였습니다.

 쿠빌라이의 아들이 12명이었으니까, 충렬왕의 지위는 일반 신하는 물론이거니와 쿠빌라이의 웬만한 아들들보다 더 높았던 것입니다.

 쿠빌라이가 죽고 원성종(테무르)이 황위에 오르자 충렬왕의 서열은 4위로 뛰어오릅니다.

 성종은 충렬왕의 왕비인 제국대장공주의 조카였으니 충렬왕은 원 성종의 고모부가 되는 것이지요.  흔히 교과서에서 원간섭기에 고려는 원나라의 부마국이 되었다고 설명하면서, 왕의 지위가 격하된 것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고려왕이 원 황제의 사위가 되었다는 것은 원나라 중심의 세계 질서 속에서 고려 원종의 적극적이고 과감한 외교적 노력의 성과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쿠빌라이칸의 외손자, 고려의 왕이 되다충렬왕과 제국대장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충선왕입니다.

고려왕 가운데 최초로 몽골인의 피가 섞인 왕입니다.

고려식 이름은 장(璋)이고 몽골식 이름은 이지리부카입니다.

징기스칸의 손자이자 원 세조인 쿠빌라이칸의 외손자가 되지요.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고 담력도 많아서 쿠빌라이칸이 특히 귀여워했다고 합니다.

원나라에서 교육받고 원나라에서 자랐습니다.

쿠빌라이칸 (원 세조)1290년에 원나라에 반란을 일으켰다 실패한 합단족 일파가 고려에 쳐들어온 일이 있었습니다.

 충렬왕은 이에 맞서 싸울 생각은 않고 무작정 강화도로 피신해버립니다.

그러자 원나라에 머물고 있던 충선왕이 쿠빌라이칸을 설득하여 군사 1만여 명을 얻어 고려에 쳐들어온 합단족을 격파합니다.

그 때 나이가 겨우 16살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충렬왕과 충선왕의 부자 관계는 극도로 나빠집니다.

원래부터 충선왕은 자신의 아버지인 충렬왕과 사이가 좋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충렬왕이 자신의 어머니인 제국대장공주를 멀리하고 여러 궁인들과 바람을 피며 방탕하게 지내는 모습에 대단히 화가 나 있었는데요, 결국 1297년에 자신의 어머니인 제국대장공주가 39살 젊은 나이에 병으로 죽자 어머니 문상차 잠시 고려에 귀국해서는 충렬왕의 총애를 받았던 궁인 무비를 참살하고 그 무리 40여 명을 유배보내는 대숙청을 단행하고 원나라로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그 충격 때문에 충렬왕은 고려왕에서 스스로 물러납니다.

원 황제는 충선왕을 새로운 고려왕으로 임명합니다.

고려에 다시 돌아와 왕위에 즉위한 충선왕은 곧바로 충렬왕의 측근들을 제거하고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합니다.

충렬왕의 측근들이라는게 주로 원나라를 배경으로 온갖 횡포와 부패를 일삼던 권문세족들이었는데요, 충선왕의 개혁은 바로 이 권문세족의 횡포와 폐단을 없애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젊은 충선왕에게도 한 가지 약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충선왕의 왕비였던 쿠빌라이칸의 손녀 계국대장공주(몽골명 부타시리)와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점이지요. 충렬왕이 제국대장공주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충선왕은 정작 자기 자신도 원나라 공주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게 충선왕의 개혁 과정에서 타격을 입은 권문세족에게 반격의 기회를 제공하지요. 결국 충선왕은 원나라 황제의 명령으로 재위 1년도 안 되어서 원나라로 불려가게 됩니다.

그 사이에 고려 왕은 물러났던 충렬왕에게 되돌아가지요.충렬왕과 권문세족의 압박에 고려왕위를 빼앗기고 최악의 위기에 빠졌던 충선왕에게 다시 반전의 기회가 찾아오는데요, 1307년 원나라 6대 칸인 성종(테무르)이 사망하자, 차기 황권을 둘러싸고 성종의 사촌인 안서왕 아난다와 성종의 조카인 아유르바르와다 사이에 내분이 생긴 것이지요. 충렬왕은 아난다를 지지했지만, 충선왕은 아유르바르와다를 지지했습니다.

이 황위 다툼에서 승리한 것은 결국 아유르바르와다인데요, 먼저 아유르바르와다의 형 카이샨이 황위에 올라 원나라 7대 무종이 되었고, 무종이 사망하자 1311년에는 아유르바르와다가 8대 인종으로 즉위합니다.

원 무종충선왕은 이 황권 다툼에서 아유르바르와다를 지지하면서 원 무종의 옹립에 공을 세웁니다.

충선왕이 무종과 인종 형제 편에 섰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 충선왕은 이 두 형제와는 어린 시절부터 같은 집에서 살며 절친하게 지냈던 사이였거든요. 결국 충렬왕과 충선왕 사이의 대립 구도는 원나라 무종과 인종의 즉위로 인해 충선왕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충선앙은 카이샨을 황제에 옹립한 공으로 고려 국왕보다 위계가 높은 심양왕의 작위를 받았으며, 이듬해인 1308년에 충렬왕이 죽자 고려왕의 지위도 되찾게 됩니다.

  고려에 오지 않는 고려왕충선왕은 심양왕과 고려왕을 동시에 맡았다 (출처 : KBS)심양왕이자 동시에 고려왕이 된 충선왕은 왕위에 즉위하게 위해 다시 10년만에 고려에 돌아옵니다.

그리고 곧바로 기강 확립, 조세의 공평, 인재 등용의 개방, 동성 결혼 금지, 귀족의 횡포 엄단 등 혁신적인 복위교서를 발표하면서 다시 한번 혁신 정치를 천명합니다.

그러나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도 않은 채 충선왕은 복위 두 달만에 원나라로 돌아갑니다.

  충선왕은 그 뒤 재위기간 동안 한 번도 귀국하지 않고 원나라 수도인 대도에 머물면서 전지를 통해 국정을 수행합니다.

 물론 전지를 통해서도 충선왕은 일관되게 고려의 개혁을 추진하는데요, 예를 들면 소금전매 제도를 실시하여 국가 재정을 크게 확충하는 등의 성과도 올리이죠. 그러나 전지를 통해 원거리에서 통치하는 것은 엄연히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토지개혁은 귀족의 반대로 흐지부지되었고, 관제개혁 역시 뜻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충선왕은 왜 고려왕이면서도 고려에 머물기를 꺼려 했던 것일까요? 아마도 충선왕은 심양왕이든 고려왕이든 그 지위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원나라 내에서의 정치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원나라 내에서의 정치적 지위를 확보하지 않으면 고려의 개혁은 물론이거니와 왕권을 지키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그런데 만약 원나라 수도를 비우고 고려에 머물면 아무래도 원나라 내에서의 자신의 정치적 지위가 흔들릴 것을 우려했던 것 같습니다.

원나라 수도 대도의 CG 재현 모습 (출처 : 크리스탈 CG사)그러나 오히려 이것 때문에 충선왕은 정치적 라이벌들로부터 계속 시달림을 받게 됩니다.

고려든 심양이든 가지 않을 거라면 왕의 지위를 내놓으라는 압박에 시달리던 충선왕은 결국 고려왕위를 자신의 아들인 충숙왕에게 양위합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양위여서 실제로는 계속해서 전지를 내려 고려 국정에 개입하기는 했습니다.

곧이어 충선왕은 심양왕 자리도 자기가 총애하던 조카 왕고에게 물려줍니다.

충선왕, 만권당을 짓다아무리 반대파들의 견제를 받았다고 해도 고려왕에 이어서 심양왕 자리까지 모두 내려놓은 것은 다소 의외인데요, 게다가 원 인종이 모든 왕위를 내려놓은 충선왕에게 국정을 총괄하는 수상 자리를 제안하자 충선왕은 이마저도 마다합니다.

대신 충선왕은 자기 집에다 만권당을 세우고 요수, 염복, 원명선, 조맹부 등 원나라의 최고 학자들을 불러모아 학문을 연구하는 일에 매진합니다.

이 때 충선왕은 고려의 학자였던 이제현을 만권당으로 불러들여 원나라 학자들과 교류하게 하지요. 훗날 이제현이 고려에 귀국해서 키운 제자가 이색이고, 다시 이색이 키운 제자가 정몽주와 정도전 같은 고려말 신진사대부들이니까 말하자면 충선왕은 의도했건 안했건 고려말의 개혁적인 신진사대부들을 키운 원조가 되는 셈이기도 하지요. 이렇게 정치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학문 연구에 몰두하던 충선왕에게 다시 시련이 닥치게 되는데요, 친구이자 충선왕의 절대적인 지지자였던 원나라 인종이 죽자 고려 출신 환관 임빠이엔토쿠스의 모략으로 충선왕은 티베트에 3년간 유배됩니다.

 3년만에 태정제가 즉위하면서 유배에서 풀려나 원나라로 돌아왔지만 얼마 후 결국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합니다.

고려왕의 아들이면서 쿠빌라이칸의 손자. 고려왕이면서 심양왕이기도 하고, 동시에 원나라의 최고 실세이기도 했던 충선왕은 자신의 거의 대부분의 일생을 보낸 원나라 땅에서 정치적 굴곡을 겪은 끝에 그렇게 사망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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