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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 조선 전기의 신분사회애초에 성씨는 임금이 관료에게 하사한 것으로조선 초기에는 성을 가진 사람들은 왕족과 일부 권문세가 등에 국한되어 그 수는 매우 적었다.

물론 고려시대 때 쓰던 성씨를 계속 쓰던 이들도 있었지만당시 조선은 고려왕조를 멸조시키는 과정에서고려 왕족의 성씨인 왕(王)씨 일족을 비롯하여고려시대 득세했던 권문세족들을 대거 숙청했기 때문에이전 시기 득세했던 귀족들의 성씨가 상당수 사멸하게 된다.

 고려 왕족이 쓰던 왕(王)씨도 마찬가지였다.

획을 더 추가해서 왕씨를 옥(玉)씨, 전(全)씨로 고치는 경우도 있었지만아예 성을 쓰지 않았던 경우가 더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조선 초기 성씨를 가진 이들은 매우 적었다.

심지어 15세기 초 태종 때는, 조정 대신들 중에서도 성이 없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15세기 후반 성종 당시 문서에 기록된 이름들을 보면자질금, 말동, 합이, 자근, 철근 등의 이름이 나오는데 모두 한자 이름이었지만 성이 없었다.

심지어 불과 100년 전인 1912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당시 우리나라를 방문한 선교사 엘리제 셰핑 여사는 전라도 지역을 순회하면서 이런 글을 남겼다.

 엘리제 셰핑"이번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500명 중 이름이 있었던 사람은 단지 10명 뿐이었다.

" 엘리제 셰핑"여인들은 돼지 할머니, 큰 년, 작은 년 등으로 불리고 있었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씨를 쓰지 않았던 것은 조선시대만의 특징은 아니었으니우리나라는 이전 시대에도 그러했었다.

 참고로 고구려는 해,을,예,손,목,우,주,마,찬,동,연,을지 등 성씨가 총 10여종에 불과했고백제는 여,사,연,협,해,진,국,목 등의 8개 성씨가 주류를 이뤘다.

여기서 성씨가 적다라는 것은 그만큼 성씨를 가진 이들이 적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신라는 이,최,정,손,배,설이 가장 대세였고 김씨, 박씨의 왕족의 성씨가 있었지만김씨는 6세기 중엽 진흥왕 이후로나 쓰이기 시작했던 성씨였다.

 진흥왕▲ 우리나라의 김씨는 진흥왕 이후부터 시작된다.

사실 박혁거세, 김알지로 알고 있는 이름도 수 백년 뒤 후손들이 성씨를 붙여준 것이지처음에는 성씨 없이 그냥 혁거세, 알지 등으로 불렸었다.

 그러다가 통일신라가 되면서 고구려, 백제의 성씨는 대부분 사멸하게 되고또 고려시대가 되면서, 대부분 중국의 성씨를 모방하여 새 성씨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 고려의 귀족들그런가 하면 고려시대에는 실제로 많은 중국인들이 귀화를 하여 성씨를 받기도 했다.

고려 전기에는 귀화 중국인들은 성씨가 있는데토착 고려 귀족들은 성씨가 없는 상황도 연출된다.

당시 고려 귀족 중에는 성씨가 없는 이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려시대의 성씨는 지배계층만의 특권이었고, 또 귀화 지식인에게 내리는 포상의 성격이 강했다.

▲ 고려시대 사성정책때문에 평민들에게는 성씨는 언감생심이었다.

다만 호적대장에는 평민들의 이름 앞에 고을 이름이 붙어다녔는데,가령 서산의 개똥이, 충주의 돌쇠, 상주의 막봉이 이런 식으로 적혀 있었다.

물론 이런 지역명은 거주 이전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족쇄와도 같은 것이었으니성씨와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 가짜 성씨는 이렇게 늘어났다16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조선의 전체 인구 중 성씨를 가진 이들은 10% 남짓한 수준이었다.

10% 미만이라는 수치는, 당시 왕족과 관리들, 족보를 가진 양반들의 수를 모두 합한 것이다.

 ▲ 조선 전기의 신분사회왕이 하사를 했든 어떻든 우선 관직이 있는 사람들은 성을 붙였지만그 숫자는 기본적으로 미미했다.

17세기 초 병자호란 직후 왕이 내린 유공자 전지를 봐도 장군의 이름이 '막둥이'로 되어 있는 등성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17세 이후로 갑자기 성씨를 가진 이들이 증가하기 시작한다.

 이유는? 바로 공명첩 때문이다.

여기서 공명첩이란 돈을 내고 벼슬을 사는 것으로서광해군 때 재정확보를 위해 공공연히 공명첩을 뿌렸던 터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광해군은 조선을 보다 평등사회로 만든 군주인 셈) ▲ 조선시대 공명첩때문에 돈만 내면 천민도 양반이 되고벼슬자리까지 얻게 되던 시기였다.

 물론 고려시대부터 이런 매관매직은 있어왔지만본격적인 시기는 광해군 때 들어서였다.

 당시 상황이 이러했으니, 당연히 논 팔고 살림 팔아서 성을 얻는 자가 늘어났다.

이때 국가는 3년마다 호적을 정리했는데 그 때마다 성을 가진 인구들이 부쩍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성을 취득한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해서17세기 후반에는 20%가 성씨를 가졌고19세기 초에는 50%를 넘고19세기 후반에는 70%를 넘게 된다.

즉 19세기 후반에는 전체 인구의 70%가 양반이 되는 것이었다.

 ▲ 조선시대 시기별 양반의 수, 비중그러다가 전 국민이 성씨를 가지게 된 것은1909년 일제가 실시한 '민적법'에 의해서였다.

당시 순사들은 각 집을 돌면서 원하는 대로 성씨 신청을 받았다.

이때 성이 없는 사람들은 모두 가짜 성을 만들었다.

가끔 한자의 획을 잘못 써서 희귀한 성씨가 나오는 해프닝도 있었다.

● 왜 하필 '김씨', '이씨'만 택했는가?우리나라는 통일신라시대부터 토성(土姓)이라는게 있었다.

'토성'이라고 함은 각 지역의 유지들의 고유한 성씨를 말한다.

가령 고려시대 인구가 5천 명이던 전주에는토성으로 이, 최, 정, 손, 배, 설씨가 있었다.

그리고 이런 토성의 흔적은 조선시대에도 이어져서1454년 세종실록 지리지에 울산 언양현을 보면박, 김, 이, 목, 전, 오, 윤, 문, 임 등의 9개의 토성이 나와 있다.

여기에 타 지역에서 들어온 외래 성씨로 황, 허, 정씨가 나중에 유입된다.

아무튼 역사적 기록을 봐도 딱히 우리나라에 김, 이씨가 유달리 많았던 적은 없었고그런 근거도 부족하다.

혹시 김씨, 이씨들만 유독 번식력이 왕성했던 것일까?라고 생각하면 넌센스다.

 김씨, 이씨가 많아진 진짜 원인은, 그만큼 가짜 성씨로 인기가 높았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김씨였고그 다음이 이, 박, 최, 정씨의 순이었던 것이다.

최근 통계자료를 보면 이렇다.

 (조선 후기 성씨의 인기 순이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 대한민국 사람들 중 21%정도가 김씨인데, 총 1000만명이다.

이씨는 약 680만명 정도로 15%정도다.

이 두 성씨를 합하면 전 인구의 36%가 김씨나 이씨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걸 보고 왜 가짜라고 말하는 것일까?이유는 간단하다.

 원래 성이 없던 사람이 성을 새로 가지려면 새로운 성을 만들어야 한다.

 이게 전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식이다.

그런데 우니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이미 있는 다른 사람의 성씨 속에 은근슬쩍 들어가버린 것이다.

그러니 가짜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대부분 김씨와 이씨를 선택했을까?그것은 당시 성을 신고하던 시기와 무관하지 않다.

일단 조선은 전주 이씨가 세운 나라였다.

 그리고 구한말에는 세도가 안동 김씨의 힘이 상당했다.

이왕 선택하는 성씨인데, 가급적이면 괜찮은 걸 택하고 싶은건 사람들의 본능 아니겠는가!그래도 너무 뻔히 보이는 짓이라고 생각해서몰락한 왕가의 성씨를 택하는 사람들도 많았으니,그래서 인기였던 성씨가옛 가야왕의 성씨였던 김해 김씨와 신라왕의 성씨였던 밀양 박씨, 경주 김씨였다.

현재 우리나라의 본관 순위를 보면김해 김씨가 410만명으로 1위,밀양 박씨가 300만명으로 2위,경주 김씨가 170만명으로 4위인데이런 이유와도 무관하지 않다.

> [참고] 우리나라 본관 순위 └ 접기● 한 마을이 통채로, 노비들이 통채로 같은 성씨가 되기도우리나라 시골에 보면 유독 '집성촌'들이 많은데,여기에는 이런 비밀이 있다.

가령 낙향한 가난한 양반이 한 집 있으면 그 고을의 성씨가 없던 부락민들이 돈이나 양식을 주면서 부탁하여 같은 성씨로 입문을 하곤 했다.

심지어 마을의 의견을 모아 부락 전체가 통째로 같은 성씨가 된 경우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노비들이 통채로 주인의 성을 따르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기본적으로 노비는 상전을 부모와 같이 취급해야 했기 때문에노비들이 면천을 하면서 주인의 성을 따르는 경우가 많았던 것.때문에 갑오개혁으로 신분제를 폐지할 당시,▲ 갑오개혁안동 김씨의 한 권문세가의 노비 300여명은일사불란하게 주인과 같은 성씨가 되기도 했다.

또 성씨가 많아진 데에는당시 족보를 변조하던 전문 사기꾼이특정 족보를 입수해서 판본으로 만들어서 대량 찍어냈던 탓도 있었다.

이런 판본이 있으면 사기 족보는 대단히 만들기 쉬었다.

이름 하나만 추가시키면 됐기 때문이다.

 ● 폐쇄적인 우리나라의 성씨꼴랑 성씨 두개가 전 국민의 30%가 넘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우리나라 밖에 없다.

(라고 생각했지만, 베트남은 Nguyen씨만 40%다.

)중국도 가장 많은 이씨, 왕씨, 장씨를 모두 합쳐봐야 20% 정도다.

사실 일본도 성씨 없이 살기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였다.

1868년 메이지 유신 후에 전국적으로 성씨를 만들게 하여 생겨나게 됐으니당시는 이런 식으로 성씨를 만들어 붙였다.

 산속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야마나카(山中),소나무가 많은 고장에 살던 사람들은 마츠시타(松下),들판 가운데 살던 사람들은 다나카(田中),대밭이 있는 지역은 다케다(竹田) 이런 식이었다.

그래서 일본의 성씨는 현재 1만 여개가 넘는다.

반면에 중국의 성씨는 현재 약 2만 3천개에 달한다.

 미국 역시 성씨는 수만 가지다.

미국인들의 성씨는 대부분 성경이나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 등에서 따온게 특징인데,흔히 직업을 나타내는 성씨가 많다.

가령 '베이커'는 제빵사, '스미스'는 대장장이, '부시' 나무꾼,'파머' 농사꾼, '피셔' 어부, '코핀' 장의사 등등대략 이런 식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성씨를 모두 합해봐야 현재 총 286개에 불과하다.

그마저 1960년대까지 258개였는데외국인 귀화로 좀 늘어난게 그 정도다.

이 모두가 우리 조상들은 성씨를 얻으면서,새롭게 성씨를 짓기보다는, 기존의 성씨로 들어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그래야만 했던 것일까? 여기에는 바로 조선이라는 뿌리 깊은 '신분제 사회'라는 특수성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성씨를 쓰려는 자체가 차별받는 상민, 천민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인데, 새로운 성씨를 쓰면 곧 천한 출신이라는 증표가 되고 만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그대로 성이 없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여기에 창씨 자체를 허락하지 않았던 조선이라는 사회의 폐쇄성과 권위도 크게 한 몫을 하고 있다.

● 우리나라의 족보는 대부분이 가짜이런 엉터리 성씨와 함께, 조선의 폐쇄적 잔재를 입증하는 또 하나의 실체로 '족보'가 있다.

 요즘 집집마다 족보가 있고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왕가의 후손이요, 명문가의 잔손들일텐데..그러나 이중에 진짜 족보는 10%도 안되는게 현실이다.

족보에 나와 있는 조상들 중에 5,6대 이상이 자신의 실제 선조일 가능성은 10%도 안 된다는 뜻이다.

 남의 족보를 빌려다가 위는 베끼고 아랫부분은 현재의 자기 가족들을 집어넣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방 직후까지 이런 가짜 족보를 만들어 주고 한 재산 모았던 브로커들이 많았는데이런 것은 원본 족보와 대조해 보면 금방 밝혀지지만 실제로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하도 가짜가 난립하다보니, 어느게 진짜인지도 나중에는 분간이 어려워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제대로 된 족보는, 15세기 후반이나 되어야 최초로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드믈다.

 (안동권씨의 성화보)▲ 안동권씨의 성화보당시까지 족보를 가진 가문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실제로 양반이면서 족보가 없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

그런데 조선 후기 들어오면서부터 양반들의 허례허식이 강해져족보를 양반의 필수품 쯤으로 여기게 되면서조직적으로 족보 위변조를 하는 풍토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영조 때 기록을 보면 이렇다.

  신하"전하 어떤 역관 하나가 사사로이 활자를 주조한 다음.." 신하 "족보를 찍어내어 양민들한테 팔고 있으니 큰일입니다.

"당시 상민이나 천민이 족보를 갖게 되면 무슨 혜택이 있다고 저랬을꼬?혜택이 있었다.

가장 큰 것은 군역의 면제였다.

당시는 양반들이나 유생들은 군역에서 제외됐다.

그런데 당시 관례로 족보를 지참하고 있으면 양반으로 인정을 했던 것이고이런 이유로 족보가 있으면 군역이 면제될 수 있었다.

▲ 일반 백성들은 군역을 면제 받는 조건으로 면포를 내야했다.

물론 이들이 군역 면제만을 노리고 위조된 족보를 산 것은 아니었으니,천대 받는 신분을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1차적인 목적이었다.

그런데 이런 위변조가 계속되면서 나라에서도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18세기 말부터는 아예 양반들이 스스로돈을 받고 자기 족보에 올려주는 현상까지 나타나게 된다.

그 결과 오늘날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다 족보를 가진 양반가의 후예를 자처하고 있음이다.

한번 생각해보자.17세기 당시 조선의 전체 인구 중 60%가 노비였는데 ☞ 참고현재 어느 누가 자신의 조상을 노비라고 말할 수 있을지..● 소소한 얘기① 이름 앞에 성이 오는 나라 : 동아시아, 헝가리, 인도② 이름 뒤에 성이 오는 나라 : 헝가리를 제외한 서양 모두, 터키 (터키는 원래 성이 없었지만 근대 들어 생김)③ 성이 없는 나라 : 아랍 (때문에 이름에는 아버지 이름, 할아버지 이름, 부족출신, 고향이름 등이 붙는다)궁예, 왕건, 견훤도 사실 성이 없던 인물이었다.

견훤의 아버지 이름은 아자개였다.

④ 결혼을 하면 여자의 성이 남편 성을 따르는 나라 : 대부분 국가, 일본⑥ 결혼을 해도 여자의 성이 남아있는 나라 : 한국, 중국고려시대에는 왕가의 여인들은 결혼전 어머니의 성을 따르기도⑥ 부모와 자식들의 성이 다른 나라 : 아이슬란드아버지 성씨에 아들에게는 -sson(쏜)을 붙이고, 딸에게는 -dottir(도띠르)를 붙인다.

⑦ 서양에서 전치사가 붙는 성씨는 대개 귀족의 성씨다.

프랑스 de(드), 독일 von(폰), 네덜란드 van(반), 스페인 de(데) ⑧ 이런 성은 누군가의 '아들'이라는 뜻 -son, -sson으로 끝나거나, O' 혹은 Mc(Mac)으로 시작하는 경우예를 들어 Handerson, McGuire, O'brien⑨ 우리나라에서 동성동본 금지는 왜 할까? 우리나라는 해방 후 법을 만들면서 동성동본 혼인을 법으로 막고 있다.

본래 동성동본 금혼은 성씨가 많지 않았던 1669년 현종 당시 송시열이 주장하여 만든 것이다.

당시로서는 아마 당연한 규제였을 것이다.

그런데 성씨가 이미 엉망이 된 마당에 동성동본 타령을 하는 것은 웃기지 않는가?이보다 '근친혼 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이 훨씬 타당할 듯 싶은데..> 더 보기 └ 접기 오늘은 대한민국에서 가장많은 성씨 순위가 나와 있는통계를 알려 드리려고 합니다.

 김,이,박,최씨가 대한민국인구에반정도를 차지하네요.^^저는 서씨로 14위에 있네요. 제 성도 이렇게 많은 줄 이제야알았네요.^^ 심심풀이로 볼만한통계인것 같아 올려 보았습니다.

통계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성은정말 귀한 성씨를 가진 신 분들입니다.

^^ 2015년 9월 통계로 일본인의 성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건 사토, 스즈키, 타카하시 순이다.

1위 佐藤(さとう) 사토-2위 鈴木(すずき) 스즈키3위 高橋(たかはし) 타카하시4위 田中(たなか) 타나까5위 伊藤(いとう) 이토-6위 渡?(わたなべ) 와타나베7위 山本(やまもと) 야마모토8위 中村(なかむら) 나까무라9위 小林(こばやし) 코바야시10위 加藤(かとう) 카토-실제로 지금껏 받은 명함을 보면 위에 이름들이 꽤 있다.

;비지니스 매너로서 일본사람들은 처음에 만나서 항상 명함을 교환하는데 이때 명함에 새겨진 상대방의 한자 이름이 어려워서 난처한 경우가 있다.

일본사람들의 성은 무려 약 30만개나 되므로 읽기 어려운 한자가 꽤 있다.

보통 명함에 상대방이 읽을 수 있도록 후리가나로 작게 표시하지만 없는 경우, 상대방에게 읽는 법을 물어봐도 된다.

이건 실례가 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잘못읽는 게 실례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회사에서 한 중국인이 일본인 이름을 잘못부르자, 와타시노 나마에와 스! 즈! 키! 데스!! (내 이름은 스! 즈! 키! 입니다!!)라는 메일이 한통 왔다고 들은 적이 있다.

이렇듯 잘못부르면 기분이 상할 수 있으니 모를 땐 물어보고 제대로 불러주는 게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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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뚱뚱이의 도쿄일상과 일본어공간blog.naver.com/uriban00 그래서 인도인들은 상대방의 풀네임을 들으면 이사람이 어느지역에서 온 어느계급사람이다 를 대충 알수 있다.

성은 이름 뒤에 쓴다.

브라만,크새트리아,바이샤 계급이 쓰는 성씨가 다르고 또 지역별로도 각 주와 종족을 특징하는 성씨들이 많다는게 주목할 만하다.

내가 아는한도에서 써넣음.??????. pandey. 브라만, 북인도에 분포하며 힌디어를 쓴다.

힌디어로 학자를 뜻하는 단어인 Pandit 에서 유래된 성????. Rawat .라즈푸트 크샤트리야 계급, 주로 델리 위쪽 지역 uttarkhand,himachal pradesh 에 분포 ,힌디어 사용 .?????? Mishra. 브라만. 북인도 중에 Uttarpradesh, bihar 주에 많이 분포함?????. Sharma. 브라만. 북인도 전체에 퍼져있음, 가끔 펀자비나 벵갈리 사람들이 사용하기도 함,???? Yadav .(카스트 부정확) 이 야다브 성씨는 다른 어떤 성들보다 강하게 up 와 bihar 를 대표하는데 사실 미스라,띠와리 같은 성도 있지만 유독 이 야다브가 이 두 주를 대표하는 이유는 그 근원이 우타르프라데시의 마투라 지역,크리슈나의 후손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현재 유피,비하르 이 두지역의 집권당수들도 모두 yadav 계층들이다.

ahir,yaduvanshi 같은 성과는 동본? 관계에 있으며 소를 키우는 일이 본업이었다.

?????? Rathore. 북인도. 주로 라자스탄 지역. 라즈푸트 크샤트리야 계급의 대표 성씨라고 할수있다.

힌디어 사용.????. Rana .북인도 델리 위지역 haryana,uttarkhand 등. 힌디어 사용?????. Thakur . 북인도 , 크샤트리야 계급. 이 성씨는 지주(zamindar) 를 뜻하며 마을에서 상당히 높은 사람들이 쓰는 성씨(요즘엔 누구나 다 쓴다고...) 그래서 인도 영화나 프로그램을 보면 심심찮게 thakursahab (주인님,지주님) 이라는 단어가 들린다.

???? .Singh 싱.  전인도..인도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사람들도 오해하는데 성에 싱 이 들어갔다고 무조건 펀자비일 거라는 생각..... 물론 말도 안되는 얘기고 일단 내 친구들만 봐도 라자스탄,웃타르프라데시 같은 곳에서 온 사람들중에도 싱 이라는 성이 엄청나게 많고 지역,성별,언어 관계없이 인도 전역서 나타나는 아주아주 흔한 성이다.

.??? .kaur. 여자,펀자브 지역 시크교도들이 쓰는 성이다.

?????. 전인도,남자..  인도 전역, 말그대로 북인도부터 남인도 까지 포함한 전역에서 쓰는 성.. 주로 원래 성을 쓰고 싶지 않을때 이 꾸마르 를 써버린다.

???????.Paliwal 북인도. 브라만계층, 힌디어사용 .????????. Mukherji. 벵갈리. 벵갈지역을 특징하는 성씨 ..마라티 성씨. 마라티, 마하라슈트라 주에서 쓰이는 성씨는 특징이 유독 성씨뒤에 ,kar, E  라는 발음이 엄청 많이 들어가는데 ooo kar, ooo E 라는 게 보이면 거의 마라티라고 생각하자Nile.RajeTendulkar.masodkarSableMuraleRaneHarinamePatil . 유피 비하르의 야다브처럼 마라티를 대표하는 성씨.Shekadkar .SheteDayamaBhosle ...예의가 아닌거 같아서 '당황한 기색'을 내지 않으려 무지 노력했습니다.

=_= 망절씨 처럼 특이한 성씨 얼마나 알고계세요?우선 우리나라 성씨의 가장 많은 순으로 보면...다들 아시겠지만... 김씨 / 이씨 / 박씨 연상되시죠? 맞습니다요

ㅋ1위   김씨2위   이씨3위   박씨4위   최씨5위   정씨6위   강씨7위   조씨8위   윤씨9위   장씨10위  임씨11위  오씨12위  한씨13위  신씨14위  서씨15위  권씨16위  황씨17위  안씨18위  송씨19위  류씨20위  홍씨.....개인적으로 특이한 성씨들은...낭씨, 궉씨, 즙씨, 소봉씨, 증씨, 어금씨 .... 많네요 ^^;2012년도에는 KBS에서 희귀한 성 '망절씨'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다큐를 만들기도 했었나 보네요

 어느 기사를 보니까 우리나라에 등록된 성씨만 약 4,700여개 되고,단 한명만 쓰는 성씨가 무려 3,000여개가 된다고 합니다.

성씨 시조가 3,000명이나 있다는 소리네요 -0- `개인이 선택하고 태어날 수는 없지만, 어렸을 적에 다른 성씨에 대한 로망(?)을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요

저만 그런가? ㅋ성하고 이름하고의 매칭 때문에 아이들에게 놀림받았던적 있으세요? ㅎ저희라도 이름이 이상하다고 성씨가 이상하다고 이상하게 보거나 놀리지 않는 배려하는 사회가 되길 바래봅니다^^  한국의 성씨는 대부분 한 음절로 이루어져 있으나, 두 음절로 된 경우(複姓)도 있다.

한국에서는 성씨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고, 김(金)씨, 이(李)씨, 박(朴)씨인 사람이 전체 인구의 약 45%를 차지해 특정 성씨가 차지하는 인구 비중이 매우 높다.

대한민국에서 다섯 명 중 한 명은 김 씨이다.

(KNSO, 2000)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그 외 

목차

1 성과 씨의 차이2 '이름'의 어원3 한국의 성씨 3.1 도입3.2 정착3.3 확대3.4 현황4 한국의 이름 4.1 고대인의 이름4.2 원 간섭기의 몽골식 이름4.3 일제 강점기의 일본식 이름5 현대 한국인 성명의 여러 특징 5.1 음절의 수5.2 돌림자(항렬)5.3 고유어 이름5.4 이름의 성별 구분5.5 종교의 영향5.6 귀화 한국인의 성명5.7 재외 한국인의 성명6 이름과 문화 6.1 성명에 관한 법률 6.1.1 성(姓)6.1.2 이름6.2 성(姓)과 양성평등7 본명 이외의 호칭 7.1 호칭 예절8 이름의 로마자 표기9 남북의 차이10 중국, 베트남, 일본 이름과의 비교11 대한민국의 인구 10대 성씨 11.1 대한민국의 인구 10대 본관12 동음이성 목록13 시대별 가장 흔한 이름 10선(選) 13.1 여성13.2 남성14 같이 보기15 주석16 바깥 고리 

성과 씨의 차이[편집]

성(姓)은 출생의 혈통을 나타내는 집단의 호칭이다.

한자의 뜻을 풀어놓은 중국 최초의 자전인 《설문해자》에 따르면, "姓은 人之所生也"로 혈통을 나타내는 표지로 쓰였다.

한국에서 성은 부계 혈통의 표지로 쓰여 아버지의 성을 따르고 평생 바뀌는 일이 없었다.

이에 대해, 씨(氏)란 동일 혈통의 사람들이 각지에 분산될 때에 각 지역에 분산된 일파를 표시하기 위한 표지였다.

즉, 씨는 핏줄이 아니라 땅과 연계되어 있는 개념으로, 한국의 본(本)과 유사하다.

한국의 성(姓)은 본(本)을 필수요소로 하여 각 성마다 한 개 이상의 본관(本貫)이 있고, 성이 같더라도 본이 다르면 동족(同族)으로 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은 성과 이름을 성명(姓名)이라고 하는 데 비해, 일본은 씨명(시메이, 氏名)이라고 하는데 일본의 씨(氏)는 지명에서 따온 경우가 많다.

다만, 일본은 1870년까지 무사(武士) 아래 계급에는 성씨를 가질 수 없게 하다가, 메이지 시대인 1875년에 '성씨 의무령'에 따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씨를 갖게 되면서 출신지의 지명이나 지형적 특징을 씨로 정한 것이 많아 한국이나 중국과는 그 역사적 의미가 사뭇 다르다.

'이름'의 어원[편집]

이름이란 단어는 "이르다"라는 동사의 명사형으로서 중세 국어에서는 “일홈” 또는 “일훔” 등으로 표기되었다.

더 오래전에는 니르다, 니름 등의 발음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좁게는 성 뒤에 붙은 개인명(個人名: personal name)만을 말하며, 넓게는 성(姓)을 포함하여 사람이나 사물을 부르거나 가리키는 모든 명칭을 이름이라고 한다.

한국의 성씨[편집]

도입[편집]

한국에서 성씨가 사용되기 시작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한자(漢字) 등 중국 문물이 수입되었던 시기에 그와 함께 도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씨족 사회와 그 집단을 통치하는 지배자 계급이 발생함으로써, 성씨는 다른 씨족이나 피지배 계급과 구별하기 위한 목적, 즉 정치적 신분을 나타내는 표지로 쓰이게 되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고구려의 시조 주몽은 국호 고구려에서 따와 성을 고(高)씨로 하였으며, 주몽은 휘하의 충신에게 극(克)씨, 중실(仲室)씨, 소실(小室)씨 등을 사성(賜姓)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백제는 시조인 온조왕이 부여에서 남하하였다고 하여 부여(夫餘)씨를 칭하였다.

신라에서는 박(朴)·석(昔)·김(金)의 세 성이 설화와 함께 전해져 내려오며, 유리왕 6년에 6부 촌장에게 각각 이(李)·최(崔)·정(鄭)·손(孫)·배(裵)·설(薛) 등의 성을 하사했다고 한다.

[2] 그러나, 그러한 성이 당대에 실제로 쓰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며, 중국 사서에 처음으로 나타나는 성씨를 가진 한국 사람은 김진흥(金進興), 곧 신라 진흥왕이며, 565년 《북제서》의 기록에 등장하였다.

[3] 남북국시대 신라에서는 왕족을 제외하고는 중국 유학생(예. 최치원)이나 무역인(예. 장보고) 등 외국에서의 활동이 빈번한 계층이 먼저 성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착[편집]

삼국 시대를 통틀어 이름은 대부분 고유어를 한자로 취음한 표기로, 오늘날의 3음절 성명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고, 남북국 시대까지는 극소수의 특정 계층을 제외하고는 성(姓)이 없었다.

심지어, 귀족집안이었던 고려 태조 왕건도 처음에는 왕씨가 아니었으며 성이 없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작제건", 아버지가 "용건", 그 아들(고려태조)이 "왕건"으로서 "건"이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보아, 서양의 귀족들이 아들 이름을 아버지. 할아버지와 똑같이 하면서 "2세", "3세" 등의 호칭을 붙이는 것과 유사한, 또는 부칭이나 성씨의 개념과 비슷한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 추측되기도 한다.

아무튼 고려 초에도 한동안 성의 사용은 최상층 계급에 국한되었으며, 귀족 계급이라도 성을 갖지 않는 인물이 많았다.

[3] 참고로 왕건은 "임금 왕 세울 건"의 한자와는 상관 없는 당시의 순우리말, 중세 한국어, 즉 고려어의 어떤 뜻을 지닌 단어일 가능성이 있으며, 그 말을 한자로 각각 왕을 임금 왕으로 표기하여 성, 건을 세울 건으로 표기하여 이름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한국의 왕씨는 중국의 왕씨와는 한자는 같지만 관련이 전혀 없는 토착성씨다.

그러나, 신라 지증왕의 국호·왕호의 한자어 개정, 법흥왕의 연호·시호 사용, 경덕왕의 두 음절 지명 개정, 문무 관직명 개정 등 일련의 한화(漢化) 조치로 점차 중국식 이름이 보급되었고, 고려 태조가 후삼국의 통일 후 사성(賜姓)을 통해 귀족들이나 지방 유력자들에게 성씨를 갖게 하는 정책을 취하면서 한국에 성명(姓名) 제도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4] 그 결과, '성이 없는 사람은 과거에 합격할 자격이 없다'는 봉미 제도(封彌制度)가 시행된 고려 문종 때에는 이미 성씨 제도가 귀족 계급의 정치적 신분과 혈통을 나타내는 표지로 자리잡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확대[편집]

조선시대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우리나라 성씨의 본격적인 보급 시기를 고려 초로 잡고 있다.

지배계층이 성씨를 가졌기 때문에 조선 전기만 해도 전 인구의 90%가 성씨가 없었다.

천민계층까지 성씨가 보급된 시기는 조선 후기로 1894년 갑오경장으로 성씨의 대중화가 촉진됐고, 일제 강점기인 1910년 민적법의 시행과 함께 누구나 성과 본을 갖게 됐다.

[5] 16세기 조선에서 성씨가 없는 무성층(無姓層) 비율은 전체 인구의 약 40%를 차지하였다.

조선 중기에는 천민층을 제외한 양인들에게 성씨가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왜란과 호란 이후 족보매매, 족보위조, 공명첩 등을 통해 일부 천민의 양민화가 이루어지는 등의 사회변화로 무성층의 비율은 줄어들었다.

민적법이 시행된 1909년에는 성씨가 없는 인구가 20%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씨를 가진 양반 중에서도 일부는 반역, 모반에 연루되면 노비로 강등되는 경우도 있었고, 첩의 자식은 서얼이라는 신분으로 차별받았다.

조선 후기의 장적, 호구 단자, 수원성 축조시의 임금 노동자 기록, 소송 문건 등을 분석해 보면 일반 평민은 물론이고, 일부 노비도 김씨, 이씨 등 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를 발견할 수 있다.

다만, 이들이 쓴 성이 본관까지 갖춘 명실상부한 성관(姓貫)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화성성역의궤>에 백성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는데 조선 후기에도 대부분의 백성들은 성씨나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기록된 백성들의 이름들은 신체적인 특징을 바탕으로 기록하고 있다.

즉 키가 큰 사람들의 이름은 박큰노미(朴大老味), 최큰노미, 키가 작은 사람들은 김자근노미(金者斤老味), 임자근노미, 김작은복(金者斤福), 망아지처럼 잘 달리는 사람은 최망아지, 강아지처럼 생겼다고 김삽사리, 눈이 튀어나온 사람은 이부엉이, 지팽이처럼 말랐다고 신지팽(申之彭), 혹이 튀어 나왔다고 이혹불(李或不), 뚱뚱하고 느림보처럼 생겼다고 박뭉투리, 다리 길이가 작은 사람에게는 조조자근노미(趙足者斤老味), 착하다고 지어진 박선노미(朴善老味)·김순노미(金順老味), 일을 잘해 기특한 사람에게는 박기특·김기특이라고 천민들의 성과 이름을 짓고 기록하였다.

백성의 성씨와 이름을 알 수 없어 대충 나이로 이름 지은 기록도 있다.

나이가 한 오십쯤 된 것 같다고 김쉰동이(金五十同), 이름은 모르고 대충 태어난 달만 알아 지은 박시월쇠(朴十月金) 등이 있다.

김팔월쇠(八月金), 장막쇠, 정복쇠, 윤좀쇠 등 하층민의 성과 이름에는 '김(金)'이나 '쇠'자가 들어가는 기록이 많다.

쇠가 곧 금(金)을 뜻하는 것이기에 돈을 많이 벌어 행복하게 살라는 의미이다.

[6] 조선 후기 성씨가 없던 양민이나 천민에게도 성씨가 보급되어 기존의 성씨를 차용하면서 일부 성씨와 본관에 인구가 집중되게 된다.

1909년 민적법(民籍法)이 시행되면서 모든 사람이 성과 본을 가지도록 법제화가 되면서 국민 모두가 성씨를 취득하게 되었다.

성씨가 없던 노비의 경우 자기 주인의 성과 본관을 따르기도 하였고, 천민들은 명문 집안의 성씨를 사칭하여 본인이 원하는 성을 호적에 등록하였다.

현황[편집]

성이름본관파홍(洪)길동(吉童)남양(南陽)주부공파(主簿公派)대한민국에서는 현재 약 250개의 성씨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들 성씨는 모두 한자(漢字)로 표기할 수 있다.

그 중에는 한글로 표기했을 경우에는 정(鄭, 丁)처럼 동음이성인 것도 꽤 있다.

각각의 성씨는 본관을 갖는데, 본관은 그 시조가 자리잡은 고향을 나타낸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성본은 김해 김씨이다.

각각의 성씨는 대부분 그 성씨 및 본관의 유래에 관한 설화를 갖고 있다.

한국에서는 김, 이, 박, 최, 정 등 인구가 많은 토착 성씨를 제외하면, 고려 때 창성하거나 중국에서 유래한 성씨가 많다.

모화사상(慕華思想)의 영향으로 일부 가문에서 시조를 중국인으로 사칭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문헌이 실전되어 선계를 고증할 수 없는 경우에는 1세조를 실질적인 시조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서양식 이름에 보이는 가운데 이름(Middle Name)이나 부칭(父稱) 등은 없다.

한국의 이름[편집]

고대인의 이름[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한국의 고대 인명입니다.

삼국시대의 고구려, 백제, 신라는 계층에 관계없이 전반적으로 고유어 이름을 썼다.

당시의 이름은 대부분 여러 음절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한자로 차자 표기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발음법은 알기 어렵다.

그러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지배 계급에서 중국식 성명을 채용함으로써 지배 계급에서 고유어 이름은 점차 사라졌다.

반면, 조선 시대에 들어서도 평민 이하의 일반 백성 사이에서는 오랫동안 고유어 이름이 계속 사용되는 경향을 보여 계층에 따른 차등을 보였다.

이름성신분출신국가의미기타주몽(朱蒙),추모(鄒牟),도모(都慕)고(高)군주고구려부여어로 “활을 잘쏘는 사람”이란 뜻연개소문(淵蓋蘇文)연(淵)대막리지고구려중국 측 기록에는 천개소문(泉蓋蘇文),[7] 일본서기에는 이리 카스미(伊梨 柯須彌)로 기록되어 있다.

아란불(阿蘭弗)국상(國相)동부여사마(斯摩),사마(斯麻)부여(扶餘)군주백제“섬에서 태어났다”는 뜻[8]《일본서기》에 기록복신(福信)귀실(鬼室)부흥군지도자백제혁거세(赫居世),불거내(弗拒內)박(朴)군주신라“밝은 아이”란 뜻거칠부(居柒夫),황종(荒宗)김(金)재상신라거친 사람, 거친 남자란 뜻이진아시(伊珍阿?)김(金)군주가야(대가야)고을라(高乙那)고(高)군주탐라낙개제(諾皆諸)낙(諾)대수령두막루낙개제, 낙개몽, 낙사계 등

원 간섭기의 몽골식 이름[편집]

원나라의 고려 내정 간섭기에는 고려 국왕이 몽골식 이름과 고려식 이름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29대 충목왕(몽골어: 八思麻朶兒只), 30대 충정왕(몽골어: 迷思監朶兒只), 31대 공민왕(몽골어: 伯顔帖木兒 파이엔티무르) 등으로 한자 표기된 몽골식 이름을 가졌다.

일제 강점기의 일본식 이름[편집]

창씨개명 문서를 참고하십시오.일제 강점기에는 1940년부터 '창씨개명(創氏改名)'이라고 불린 일본식 성명 강요(日本式姓名强要)가 있었다.

창씨(創氏)란 '씨를 새로 만든다'는 뜻인데, 이는 조선식 성명(姓名)과 일본식 씨명(氏名)의 개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부계 혈통을 표시하는 성(姓)이 없고, 가계를 표시하는 씨(氏)만 있다.

일본식 씨명은 일가족이 모두 가장과 동일한 씨(氏)가 된다.

예를 들어, 남편이 김(金)을 씨로 쓸 경우 원래 이(李)씨였던 아내는 남편과 같은 김(金)씨가 되어야 했다.

이것은 성이 바뀌지 않고[9] 동성끼리 혼인하지 않으며[10], 이성(異姓)의 아이를 입양하는 관습이 없는[11] 조선의 전통과 배치되는 것이었다.

[12]창씨개명 당시 이를 홍보하는 일본 관리들은 호적상 조선식 성명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옛 조선 호적의 본관을 '성명 및 본관'으로 표기하여 참고 정도로 하고 일본식 씨명만을 공식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사실상 조선식 성명을 폐기하고자 하였다.

이를 거부할 경우에는 각종 불이익(입학 및 진학 거부, 취직 불편화, 관청의 용무 금지 등)이 뒤따랐다.

창씨한 사람 중에는 원래 성의 의미를 살리고자 궁리한 경우가 많았는데, 유형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원래 성의 글자가 포함된 일본 씨명을 찾거나 일본풍으로 만드는 방법 김(金)씨는 金本 가네모토[*], 金子 가네코[*], 金山 가네야마[*]장(張)씨는 張本 하리모토[*], 張山 하리야마[*]본관을 씨명으로 하는 방법 光山 미쓰야마[*](광산 김씨)시조의 설화를 토대로 하는 방법 新井 아라이[*](경주 김씨), ?本 구니모토[*]일본의 씨명과 같아 그대로 쓰는 경우 林 하야시[*](임), 南 미나미[*](남), 柳 야나기[*](류), 吳 구레[*](오)그 외에 일제에 대한 소극적인 저항의 의미로 다음과 같이 씨성을 만들기도 했다.

일본인들이 숭배하는 천황가나 쇼군가 등 명문가문의 씨성을 쓰겠다고 제출 ?川 도쿠가와[*], 豊臣 도요토미[*], 若松仁[13]조선총독의 이름을 비꼬아 자신이 형이라는 의미로 조롱하여 지음 南太? 미나미 타로[*][14]성을 가는 놈은 개자식이란 의미에서 犬子[15]해방 후 조선 성명 복구령에 따라 한국인들은 원래의 성과 이름을 되찾았다.

다만, 재일 한국인 가운데에는 통명(通名)이라고 불리는 일본식 씨명을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장노년층 여성 중에서는 일제 강점기의 영향으로 일본식 성명의 영향을 받은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 "-자(-子)"로 끝나는 이름이다.

자(子)로 끝나는 이름이 많은 것은 과거의 남아 선호 사상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16] 대한민국에서 일본식 성명은 주요 개명 사유 가운데 하나이다.

남자의 경우는 여자보다 드물지만, 마지막 음절이 "-랑(-郞)" 등인 일본식 성명의 영향이 발견된다.

현대 한국인 성명의 여러 특징[편집]

음절의 수[편집]

현대 한국인의 성명은 한 음절의 성과 두 음절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세 음절의 성명이 가장 흔하며, 그 다음으로 한 음절(외자)의 이름을 가진 두 음절 성명이 많다.

두 음절의 성으로 이루어진 복성의 경우에는 외자 이름인 경우가 적지 않다.

[17] 세 음절 이상의 이름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이러한 3음절 내지 2음절 선호의 경향은 한자어 이름뿐 아니라, 고유어 이름(한글 이름)이나 외래어 계열 이름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며, 각종 문서에서 이름을 표기하는 란에도 3

5음절을 넘어가는 경우가 드물다.

이름은 한자의 의미를 따서 짓는 경우가 많으며, 이름에 사용하는 한자의 범위는 인명용 한자라 하여 법률로 정해져 있다.

한국어에서 한자(漢字)는 1자1음의 음독(音讀)이 원칙이므로, 일본과 같이 훈독이나 임의적인 읽기는 허용되지 않는다.

돌림자(항렬)[편집]

남성의 이름에는 전통적으로 항렬(行列)이라고 부르는 동족 간의 서열을 나타내는 돌림자[18]를 사용했다.

[19] 반면에 이름에 돌림자를 가지고 있는 여성이나 여성을 위해 따로 돌림자를 정한 집안은 상당히 드물다.

서양이나 일본의 경우에는 부자간에 같은 이름이나 글자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으나, 유교 전통의 대한민국이나 중국에서는 피휘(避諱)라 하여 이를 기피하였다.

오늘날에는 항렬에 크게 거리끼지 않고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으나, 보수적인 가정에서는 아직도 항렬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고유어 이름[편집]

해방 이후 민족의식의 확산으로 고유어 이름을 부활하려는 움직임이 벌어졌다.

이는 1966년부터 1987년까지 계속된 서울대학교의 “고운이름 자랑하기 대회”로 본격화되어 “한글 이름”이라고 통칭되는 한국어의 고유 어휘를 사용한 이름이 작명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유형별로는 구체적인 명사에서 온 것(가람, 이슬, 하늘, 구슬 등), 추상명사에서 온 것(슬기, 한빛, 보라, 나라 등), 형용사에서 온 것(푸름, 힘찬, 빛나, 한결, 고운 등) 등이 있다.

또한, 한글 이름에 한자로 뜻을 부여해서 중의적인 이름을 짓기도 한다.

예를 들어, 김나라의 경우 낱말자체는 고유어 이름이면서 娜羅(아리따울 나+펼 라)와 같이 좋은 뜻의 한자를 찾아 씀으로서 이중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

이름의 성별 구분[편집]

일반적으로 여성의 이름은 남성의 이름보다 그 수가 훨씬 한정되어 있는데, 이는 의미나 어감에서 여성스러움을 나타내는 한자나 한글의 음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성 이름의 특징을 살펴보면, 한자를 사용하는 경우, 아름다움이나 맑음 등 여성적 미덕과 관련된 한자(美, 姸, 淑 따위)가 많이 사용된다.

또한, 여성이름에는 대부분 모음으로 끝나거나, 'ㄴ' 등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받침이 들어간 음절이 사용되는데, 이러한 발음들은 남성 이름에도 사용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구분이 엄밀한 것은 아니다.

종교의 영향[편집]

한국인 중에는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꽤 많기 때문에 이와 연관된 서양식 성명을 갖는 경우도 있다.

개신교의 경우, 성서의 인물(요셉, 요한, 한나 등. 예) 주요한)에서 따오거나, 로마 가톨릭, 동방정교회, 성공회에서는 성서나 교회역사에서의 성인들의 이름(베드로, 바우로(바울), 마가, 마태 등)을 본따서 이름을 짓기도 한다.

최근 들어서는 이름에 하나님과 예수님을 상징하는 '하-'나 '예-'를 접두어로 붙여 예찬(예讚, 예수 찬양), 하은(하恩 : 하나님의 은혜) 등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도 있다.

귀화 한국인의 성명[편집]

한국에서 외국인의 귀화는 역사상 계속 이어져 왔는데, 중국계·몽골계·여진계·위구르계·아랍계·베트남계·일본계 등이 있었다.

일본인 김충선을 시조로 하는 우록 김씨나 베트남의 왕자 이용상을 시조로 하는 화산 이씨 등이 유명하며, 《조선왕조실록》에는 여진인의 귀화 기록이 적지 않게 보인다.

다만,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계의 경우는 근대 이전에 족보 편찬시 권위를 높이기 위한 의도에서 끌어온 경우도 적지 않아 족보에 중국계라고 나와 있다고 해서 그대로 믿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국내 거주 외국인의 증가와 국제 결혼 등으로 한국으로 귀화한 사람들에 의해 새로운 성과 본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2000년 통계청의 인구 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 내 귀화 성씨의 수는 총 442개로 토착 성씨 수의 1.5배에 달하며, 귀화 성씨와 토착 성씨를 합하면 성씨의 수는 692개이다.

[20] 이들은 대부분 한국인과의 혼인으로 귀화한 경우이며, 국가별로 보면 필리핀계가 145개로 가장 많고, 일본계, 중국계 순이다.

필리핀계(145개): 골라낙촌치타, 궐랑로즈, 글로리아 알퀘아포스 등 일본계(139개): 고전(古田), 길강(吉岡), 길성(吉省), 망절(網切) 등 중국계(83개): 노(蘆), 무(武), 악(岳), 왕(汪), 장(藏), 초(焦) 등기타(75개): 누구엔티수안( 베트남계), 남캉캉마( 타이계), 투비악달( 방글라데시계)유명 귀화인 중에는 귀화 당시 한국식으로 등록한 호적상의 성명을 쓰기도 하지만, 귀화 전의 이름을 같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21] 개화기의 기독교 선교사들 중에는 귀화 여부에 상관없이 한국식 성명을 쓰기도 하였다.

[22]2000년대 이후에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이주자들이 한국에서 새터전을 잡게 되면서 한국사람에게 낯선 고유 이름에 갈음하여 통용되는 한국식 이름으로 바꾸는 경우가 늘고 있는 추세이다.

아직 이 사안에 대하여 자세한 연구가 이루어진 바는 없으나, 대부분 기존에 있는 외자 성을 채용하거나, 기존 외자 성에 자신의 국명이나 출신지의 음절을 따서 맞추거나 하는 식으로 성을 짓고 있다.

[23]

재외 한국인의 성명[편집]

조선족은 대한민국이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같이 한국식 성명을 쓴다.

다만, 한국과 중국에서 선호하는 글자나 발음 등의 차이로 인해 한국식 성명을 중국어 이름으로 쓰기 어색한 것을 피하기 위해 애초에 중국식으로 작명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재일 한국인은 본명 외에도 일본식 이름인 통명(通名)을 사용하는 경우가 흔하며, 일본으로 귀화하는 경우에는 일본식 씨명으로 바꾸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재미 한국인은 대부분 한국의 성(姓)에 영어식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다.

고려인도 성은 한국의 것을 쓰고, 이름은 러시아식으로 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4] 고려인의 경우, 조선족이나 재일한국인과 달리 한자문화권에 생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본래의 성씨가 호적 등록 과정에서 변형된 경우가 많다.

[25]

이름과 문화[편집]

성명에 관한 법률[편집]

성(姓)[편집]

자의 성과 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자녀는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것이 원칙이며, 귀화인이 아닌 이상 임의로 새로운 성을 만들 수 없다.

(창성불허)[26] 또한, 여성이 결혼해도 성이 바뀌지 않는다.

외국인이 대한민국에 귀화할 경우에는 성과 본관을 새로 만들어 신고하여야 한다.

다만, 대한민국에서는 2005년에 개정된 민법에 따라 2008년 1월 1일부터는 부모가 혼인신고 시에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고,(민법 제781조제1항 단서) 입양, 부모의 이혼이나 재혼의 경우에는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 자녀가 어머니, 양부 또는 계부의 성으로 성을 변경할 수 있다.

(민법 제781조제6항)대한민국에서는 1997년 이전에는 동성동본 간의 혼인이 법률상 금지되었으며, 이성동본의 경우도 일부 본관끼리는 혼인하지 않는 관례가 있었다.

동성동본 금혼 규정은 1997년의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과 2005년의 민법 개정에 의해 법적으로는 폐지되었으나, 동성동본 사이의 결혼을 터부시하는 경향은 여전히 일부 남아 있다.

柳(류, 유)와 羅(라, 나)와 같은 몇몇 성[27]은 성의 한글표기에 관한 두음법칙 적용 여부에 대해서 사회적 논란이 있다.

(예. 서애 류성룡) 대한민국에서는 주민등록상 성의 한글표기는 개인의 선택에 따라 둘 중 하나를 자유롭게 써왔고 호적에는 성을 한자로만 기재하여 오다가, 2000년대 초에 대한민국 대법원에서 호적을 전산화하면서 이들 성의 한글표기에 대해 획일적으로 두음법칙을 적용함으로써 '류'(柳)나 '라'(羅)로 성씨를 한글표기한 사람들의 반발을 불렀다.

[28] 이러한 반발이 지속되자 법원은 당사자가 정정허가신청을 할 경우에 호적상 성의 한글표기를 두음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고치는 것을 인정하였고, 결국 2009년에 국어심의회는 맞춤법 해설서에서 성씨의 두음법칙 적용에 관한 규정을 삭제하였다.

[29] 성의 한글표기를 정정한 사람의 98.5%는 류(柳)씨로 그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 다음으로는 라(羅)씨가 1%를 차지했다.

[30]

이름[편집]

이름에 사용하는 한자는 현재 대법원이 정한 한문교육용 기초한자, 인명용추가한자, 인명용한자허용자체 외에는 제한되어 있다.

[31] 이러한 제한은 1991년 이후 출생자에 대해 적용되며, 그 이전 출생자라도 개명시에는 인명용 한자 범위 내에서 새 이름을 정해야 한다.

또한, 이름에 사용하는 글자 수도 성(姓)을 제외한 다섯 글자까지만 등록할 수 있으며,[32][33] 부모가 특이한 이름을 짓기를 원해도 법원의 판단에 따라 거부되는 경우가 있다.

[34]대한민국에서 성(姓)을 변경하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반면, 개명에 관해서는 법원이 그 사유를 폭넓게 인정하므로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다.

개명을 하려면 합당한 사유가 있어야 하며, 타당한 사유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법원은 개명을 허가하지 않는다.

주요 개명 사유는 이름으로 인해 놀림감이 되는 경우, 범죄자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람과 이름이 같은 경우, 남자가 여자 같거나 여자가 남자 같은 이름인 경우, 일본식 이름일 경우, 이름이 나쁜 뜻일 경우, 영화나 드라마의 희화화된 등장인물(예. 영구)과 이름이 같은 경우, 가까운 친척 중에 동명이인이 있는 경우 등이다.

성(姓)과 양성평등[편집]

부모 중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전통적 성명 체제와 가족법 개정 이전의 호주제 등에 대한 비판으로 여성주의자들과 진보성향의 일부 지식인, 동성애자들을 중심으로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이 1990년대 후반부터 전개되었다.

페미니스트 고은광순, 영화감독 이송희일, 영화제작자 김조광수 등이 일례이다.

이와 같은 부모의 성 함께 쓰기는 다른 문화권(스페인, 포르투갈 등)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한국의 성제도는 성(姓) 외에도 본(本)을 필수요소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는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으며, 이러한 운동이 일반대중에게 미친 영향도 미미하다.

한편,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부성주의와 관련하여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는 '부성주의 자체는 위헌이라고 할 수 없으나, 예외를 두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시하였다.

즉, 헌법재판소는 출생 직후의 자(子)에게 성을 부여할 당시 부(父)가 이미 사망하였거나 부모가 이혼하여 모가 단독으로 친권을 행사하고 양육할 것이 예상되는 경우, 혼인외의 출생자를 부가 인지하였으나 여전히 모가 단독으로 양육하는 경우, 입양이나 재혼 등의 경우 성의 변경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개인의 인격권을 침해한다고 판시했다.

[35] 이에 따라 개정된 민법(민법 제781조제6항)에서는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 성을 변경하도록 하고 있는데, 헌법재판소에서 예시해 열거하고 있는 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추가로 다른 요건을 요구하거나 성의 변경을 불허하는 경우에는 위헌적 제도 운영으로 평가될 소지가 있다.

본명 이외의 호칭[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호 (이름)입니다.

정식 이름 외에 이름을 대용하여 부르는 여러 호칭이 있다.

한(漢) 문화의 영향으로 호(號)나 자(字)같은 이름들도 있으나, 호의 경우는 문인이나 정치인 등 유명인이 멋을 살려 짓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일반적이지 않으며, 자는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또 아명(兒名)이라 하여 정식 이름을 짓기 전에 집안에서 부모나 형제끼리 부르는 이름도 있다.

아명아명 또는 아호라고 하며, 주로 어릴 때 집안에서 부모가 자식에게 사용하는 친근한 이름이다.

옛날에는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역설적으로 천한 뜻의 이름으로 아명을 지었다.

간혹 아명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 정식 이름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택호택호란 성명 대신에 그 사람의 출신지 이름에 댁을 얹어 부르는 호칭을 말한다.

주로 결혼한 여성의 시집오기 전 친정의 지명에 붙여 본명 대신에 부르는 통명으로 사용하였다.

예) 안성댁(安城宅), 용인댁(龍仁宅), 이천댁(利川宅) 등지명 외에 남편의 직업이나 직함(사장→사장댁, 김선생님→김선생님댁) 등에 붙이기도 한다.

당호당호란 성명 대신에 그 사람이 머무는 집이나 거처의 이름으로써 인명을 대신하여 부르는 호칭이다.

종교적 이름종교에 따라 부여되는 특수한 이름들이 있다.

불교의 경우 일반인이 교의에 귀의하여 불자가 되고자 하면, 속세의 부모 내지는 보호자에 해당하는 은사(스님)로부터 새 이름을 받게 된다.

이를 법명(法名)이라고 한다.

법명을 받은 자가 수행을 거쳐 정식승려가 된 후에 여러 학업 및 수도를 통해 법납이 쌓이게 되면, 법명 외에 법호(法號)를 추가로 부여받는다.

가톨릭 신자의 경우에는 세례를 받을 때에 세례명을 받으며, 이 세례명은 대부분 가톨릭 성인(聖人)의 이름을 쓴다.

계급명군인 계급명이란 군대에서 이름을 생략하고 군인의 성에 그 사람의 계급명을 붙여 부르는 호칭을 말한다.

주로 군대에서 계급이 높은 사람이 하위 계급의 군인에게 '박 병장', '김 대위', '고 하사'와 같이 본명에서 이름을 생략해 부르는 군인의 통명으로 사용하였다.

아명, 택호, 당호와는 달리 계급이 올라가면 계급명만 바꿔 부르는 방식의 호칭이다.

이러한 호칭은 군인뿐만 아니라 경찰, 소방관 등 계급이 있는 공무원들에게서도 찾아 볼 수 있다.

호칭 예절[편집]

한국인은 상대나 자신의 성씨를 묻고 답할 때, 일반적으로 "김"과 같이 단독으로 말하지 않고 "김씨"와 같이 씨(氏)를 붙여 답한다.

[36] 또한, 타인에게 부모나 선생님의 성명을 말할 경우에는 “홍, 길자, 동자입니다”와 같이 이름의 성을 제외한 각 글자 뒤에 자를 붙여서 말하는 것이 예의이다.

이는 부모의 성명을 직접 언급하는 것을 결례로 보는 피휘의 일종이다.

상대를 호칭할 때 성(姓)만 호칭하는 일은 없으며 반드시 뒤에 경칭을 붙이는데, 경칭의 종류와 성명의 조합에 따라서 각각의 호칭이 주는 어감이 다르므로 구별해서 써야 한다.

한국에서는 윗 사람과 직접 대화할 때는 보통 윗사람의 직함 등으로 부르며, 직접 성명을 사용하여 부르는 일은 매우 드물다.

모르는 이의 이름을 알고자 직접 물어볼 때의 정중한 표현으로 "성함"이란 말을 쓴다.

이름의 로마자 표기[편집]

대한민국에서 한국어를 로마자로 표기하는 공식적인 방법은 문화관광부가 2000년에 제정한 로마자 표기법 고시가 있으나, 인명의 경우 그 적용이 엄격하지 않아 하나의 이름에 다양한 표기가 쓰인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종래의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은 최근에야 겨우 고교 교육 과정 부록에 수록되는 정도이기 때문에, 보통은 이름의 로마자 표기를 개인이 임의로 정하는 경우가 많고 관례적으로는 영어 철자법에 준한 것이 많다.

문씨가 'moon', 선씨가 'sun'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박씨는 'Park, Pak, Bak', 이씨는 'Lee, Yi, Rhee', 최씨는 'Choi, Choe, Choy' 등 다양한 표기가 보이며,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외국인들이 동일한 성의 다른 로마자 표기를 별개의 성으로 오인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이씨는 보통 영어권의 성(姓)인 'Lee'를 쓰는 경우가 많지만, 이순신, 리승만은 기존 관례에 따라 각각 'Yi Sunsin', 'Syngman Rhee'로 표기이다.

성과 이름의 순서는 과거에는 유럽식으로 이름을 먼저, 성을 나중에 표기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한국식으로 성을 이름보다 먼저 쓰는 경우도 많다.

영어 이름 중에서 자신의 이름과 비슷한 발음을 차용해 와서 쓰는 경우도 있다.

예) 선희는 써니(Sunny), 재희는 제이(Jay), 철수는 찰스(Charles), 태호는 테오(Teo) 등.5대 성씨의 로마자 표기법 비교한글한자국어의 로마자 표기법매큔-라이샤워 표기법많이 사용되는 표기기타 표기김金GimKimKimGimm이(리)李I(남) / Ri(북)I(남) / Ri(북)LeeYi, Rhee, Ree, Reeh, Rey, Rhie박朴BakPakParkPak, Bark, Pack최崔ChoeCh'oeChoiChoy, Chey정鄭, 丁, 程JeongCh?ngJeong, Jung, ChungCheong, Joung, Chong, Choung

남북의 차이[편집]

분단 이후 문화적으로 남북이 단절되면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명 습관에는 약간의 차이가 발생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작명(作名)이 시대별로 어느 정도 유행을 타고 변해 온 것과 달리, 북쪽의 작명은 기본적으로 전통 이름을 고수해 온 편이다.

대한민국에서 상당히 많은 비율로 존재하는 고유어 이름 등은 북쪽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전통에 따라 형제임을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돌림자로 이름을 짓고, 딸의 경우 정(正)자나, 순(純)자를 넣어 바르고 정직하게 살라는 의미를 담아 이름을 짓는 사례가 아직 존속되고 있다.

한편, 1970년대부터 김정일은 유일사상체계를 세우기 위해 개명운동을 지시해 김일성, 김정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물론 김정숙(김정일 생모), 김형직-강반석(김일성 부모) 등 그 일가의 이름과 같은 주민들을 개명하도록 했다.

[37] 심지어, 미국을 떠올리게 된다고 '미(美)'도 이름에 사용하지 못하다가 1990년대 이후 쓸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1990년대부터는 특히 평양산원에서 태어난 세 쌍둥이 이상의 쌍둥이에게는 김정일 우상화나 정권의 구호를 반영해 이름을 짓는 사례가 많다.

[38]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한자의 한글표기에 관한 두음법칙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이(李)씨를 리씨로, 류(柳)씨와 유(劉)씨를 류씨로, 나(羅)씨를 라씨로, 임(林)씨를 림씨로 부른다.

중국, 베트남, 일본 이름과의 비교[편집]

한국 성명 체계는 한자 표기의 성과 두 음절 이름 등 중국 및 베트남과 외형상 유사점이 많다.

그러나, 각각의 문화에 따라 별도로 진화해 왔기 때문에 세부적으로는 차이점이 엄존한다.

한국과 달리, 현대 베트남에서는 한자를 전혀 쓰지 않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한자 표기로 인한 국적 혼동의 우려는 없다.

한국 인명과 중국 인명은 한자로 표기했을 때는 국적을 잘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으나,[39] 선호하는 글자, 음절이나 성씨의 빈도 등으로 차이를 알 수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우선 박(朴)씨는 중국인에게는 거의 없는 성씨로서, 박(朴)씨인 사람은 한국인 또는 한국계라고 무방하다.

조(중국어 정체: 曹, 한자: 曺)씨나 배(중국어 정체: 裴, 한자: 裵)씨 등은 글자로 구분된다.

중국에서는 이름이나 애칭으로 링링(玲玲)이나 추이추이(翠翠)같이 같은 글자를 겹친 이름[40]을 종종 볼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이름을 쓰는 경우가 거의 없다.

10위권 성씨를 보면 한국-중국 간에는 이(李), 조(趙), 장(張)의 세 성이, 중국-베트남 간에는 진(陳), 황(黃)의 두 성이 겹친다.

한국과 베트남은 10위권 내에서 겹치는 성이 없다.

한국金 (김)-李 (이)-朴 (박)-崔 (최)-鄭 (정)-姜 (강)-趙 (조)-尹 (윤)-張 (장)-林 (임)중국王 (왕)-李 (이)-張 (장)-劉 (유)-陳 (진)-楊 (양)-黃 (황)-趙 (조)-吳 (오)-周 (주)베트남阮 (완)-陳 (진)-黎 (려)-黃 (황)-范 (범)-潘 (반)-武 (무)-鄧 (등)-裴 (배)-杜 (두)일본의 성씨는 한자 두 글자나 세 글자로 이루어진 복성이 주류이므로, 한국, 중국, 베트남 등 다른 한자문화권 국가의 성(姓)과 구별이 된다.

다만, 일본의 외자성(보통은 훈독하므로 한음절이 아닌 다음절로 발음) 중에는 한·중·베트남과 겹치는 성이 몇몇 있고,[41] 한자의 사용에 따라서는 흡사한 이름이 되는 경우도 간혹 있다.

[42]

대한민국의 인구 10대 성씨[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인구순 성씨 목록입니다.

다음은 2000년 통계청 인구 조사 결과이다.

순위성씨가구수인구수1김(金)3,102,5379,925,9492이(李)2,113,0076,794,6373박(朴)1,215,9183,895,1214최(崔)676,7732,169,7045정(鄭)626,2652,010,1176강(姜)325,2881,044,3867조(趙)306,022984,9138윤(尹)294,708948,6009장(張)287,195919,33910임(林)237,145762,767

대한민국의 인구 10대 본관[편집]

순위본관가구수인구수1김해 김씨(金海金氏)1,295,0804,124,9342밀양 박씨(密陽朴氏)946,3073,031,4783전주 이씨(全州李氏)808,5112,609,8904경주 김씨(慶州金氏)542,0181,736,7985경주 이씨(慶州李氏)446,5981,424,8666경주 최씨(慶州崔氏)304,722976,8207진주 강씨(晉州姜氏)300,724966,7108광산 김씨(光山金氏)258,936837,0089파평 윤씨(坡平尹氏)221,477713,94710청주 한씨(淸州韓氏)199,642642,992

동음이성 목록[편집]

이 목록은 한글로 표기 시에 동음이 되는 서로 다른 성들의 목록이다.

강(姜), 강(康), 강(强), 강(剛)견(堅), 견(甄)경(慶), 경(景)공(孔), 공(公)구(具), 구(丘), 구(邱)국(鞠), 국(國), 국(菊)기(奇), 기(箕)라/나(羅), 나(奈)로/노(盧), 로/노(魯), 로/노(路)뢰/뇌(雷), 뢰/뇌(賴)단(段), 단(單), 단(端)도(都), 도(道), 도(陶)돈(敦), 돈(頓)마(馬), 마(麻)문(文), 문(門)반(潘), 반(班)방(方), 방(房), 방(龐), 방(邦), 방(旁)범(范), 범(凡)변(邊), 변(卞)봉(奉), 봉(鳳)빈(彬), 빈(賓)사(史), 사(舍), 사(謝)서(徐), 서(西)석(石), 석(昔), 석(碩)선(宣), 선(先)설(薛), 설(?)성(星), 성(成)소(蘇), 소(邵)송(宋), 송(松)수(水), 수(洙)순(舜), 순(淳), 순(順), 순(荀)신(申), 신(辛), 신(愼)량/양(梁), 양(楊), 량/양(樑), 양(襄)림/임(林), 임(任)려/여(呂), 여(余)류/유(柳), 류/유(劉), 유(兪), 유(庾)리/이(李), 이(伊), 이(異)전(田), 전(全), 전(錢)정(鄭), 정(丁), 정(程)조(趙), 조(曺)주(朱), 주(周)하(河), 하(夏)한(韓), 한(漢) 등

시대별 가장 흔한 이름 10선(選)[편집]

대법원 자료. 이 해에 태어난 신생아들의 이름 가운데 가장 흔한 것 10선(選)이다.

여성[편집]

순위1998년[43]1999년[44]2000년[44]2002년[44]2004년[43]2006년[44]2008년[44]2009년[44]2011년[43]2012년[44]2014년[45]1지은유진은지미경미영지영지혜유진서연서은진서2정연영혜정희미은은정은진지은민지민서은주혜민3수영정혜영주경희은주미영수진수빈서현지민서현4수희정희영주지혜은영현정혜진지원수빈서현지우5경미수영서현진희현주은주은지지현유진서윤서희6현주영은주희미영은경은영지영지은민지예은지민7은주정연정희영미지영현주아름현지서영하은수빈8수현세영주연정희미경선영지현은지지원지우하은9혜정정희주희정은현정지연지유예진수민수빈예은10혜미수빈주연지현연서혜진보람예지예원윤서희진

남성[편집]

순위1945년[43]1948년[44]1958년[44]1968년[44]1975년[43]1978년[44]1988년[44]1998년[44]2005년[43]2008년[44]2009년[45]1영수영수영수성호정훈정호지훈동현민준민준민준2영호영호영철영수성호성훈성민지훈현우지훈지후3영식영식영호영준성훈상훈현우성민동현현우지훈4정웅영철영식영철성진성준정훈현우준혁준서준서5영길정수성수정호정훈지훈동현준호민재우진현우6영일종수성호영진상훈성환준영민석도현건우예준7정수정식상철병철성민정호민수민환지훈예준건우8정남정호종수진호영진준호준석준혁준영현준현준9광수영환경수성수상현성민상현준영현준도현민재10중수광수상호재호준호민수진우승현승민동현우진

같이 보기[편집]

한국의 성씨 목록대한민국의 인구순 성씨 목록한국의 외래 귀화 성씨한국의 사라진 성씨한국의 복성중국인의 성명베트남의 성씨일본인의 성명

주석[편집]

↑ 토착 성씨의 수만을 말하며, 귀화 성씨의 수를 합하면 700여 개에 이른다.

《한국인의 성씨와 족보》 도서출판 온북스(2004)↑ 《한국의 성씨와 족보》, 서울대학교 출판부, 이수건.↑ 가 나 박은봉 (2007년 11월 24일).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초판 1쇄, 서울: 책과함께, 21

23쪽쪽. ISBN 978-89-91221-31-4↑ 한국의 성씨와 이름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족보박물관 개관…‘족보 문화’의 메카 대전을 가다, 《해럴드경제》, 2010년 5월 26일↑ 화성성역의궤에 나타난 조선시대 백성들 이름 신체·성격·특징따라…쉬운대로 그대로 불러, 《경기일보》, 2006년 6월 13일↑ 이는 당 태종의 휘가 연(淵)인 까닭이다.

《삼국사기》에도 같은 이유로 천개소문으로 기록되어 있다.

연(淵)과 천(泉)은 발음상 차이가 큰 반면 의미상으로는 서로 통하기 때문에, 연(淵)은 훈독 표기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일본서기》의 표기인 이리 카스미에서 연(淵)에 대응하는 독음이 이리(伊梨)인 것에서도 유추된다.

↑ 잃어버린 고대 한국어 ‘백제어’를 찾아서↑ 성불변(姓不?)↑ 동성불혼(同姓不婚)↑ 이성불양(異姓不養)↑ 創氏改名の意味するもの 창씨개명이 의미하는 것↑ 仁은 쇼와 천황(히로히토)의 이름에 들어가는 글자로 일반인들은 쓰지 않았음)↑ 8대 총독 미나미 지로(南次?)의 이름 지로는 차남에게 붙는 이름인데, 타로(太?)는 장남에게 붙는 이름이다.

↑ 權五惇,1982,朝鮮日報,1987,11.13↑ 金文昌. 고유어식 사람이름에 대하여. 《새국어생활》 1권 (1호). “자(子)는 본래 고대중국에서 학식이 높은 사람에게 붙는 극존칭의 표현이었다.

다만, 이는 여성의 일본식 이름과는 별 관련이 없다.

예) 宋子(송시열)”↑ 예) 황보관, 남궁도, 남궁억↑ 항렬자라고도 부르는데, 보통 항렬자는 오행(五行)에 따라 목(木) - 화(火) - 토(土) - 금(金)-수(水)의 획을 가진 글자로 짓고, 예시오 鐘-永-相-炳-東-銀-泳-株-炯-城-鈴-水-榮...의 순서로 이어가지만, 십이지(十二支) 순서에 따르는 방법, 숫자에 따르는 방법 등도 있다.

↑ 예) 경(慶)자 돌림인 경우, 준경(俊慶), 선경(先慶), 유경(有慶), 희경(熙慶) 식↑ (2004) 《한국인의 성씨와 족보》. 도서출판 온북스↑ 예) 인요한, 하일, 이참, 신의손, 서혜나(이다 도시) 등↑ 예) 배설(裵說; 에르네스트 토마스 베델 Ernest Thomas Bethell), 석호필(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원두우(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원한경(元漢慶; 호러스 호튼 언더우드 Horace Horton Underwood) 등↑ 태국 태, 몽골 김…새 성씨 봇물↑ 예) 빅토르 초이(Виктор Робертович Цой)↑ 재외동포신문 고려인, 무너지는 성씨, 혈통↑ 한국어 운동가 밝한샘이 한자(漢字) 성씨 대신 순우리말 성씨를 창성하기 위해 성변경신청을 법원에 낸 일이 있으나, 사회적으로 정착된 것을 바꿀 수 없다는 이유로 기각된 바 있다.

↑ 그 외에 李(리, 이), 呂(려, 여), 林(림, 임), 梁(량, 양), 盧(로, 노) 등이 있다.

이(伊)씨, 유(兪,庾)씨, 임(任)씨의 성은 원음이 '이', '유', '임'이다.

[성씨] 사실은.


↑ 호적전산화, 확대보다는 개선이 중요↑ 국어심의회, '성씨도 두음법칙을 따라야 한다'는 규정 삭제↑ 유씨→류씨 등 姓 한글표기 바꾼 사람 2년간 5만5천여명 , 2009.9.6↑ 개정호적법 시행에 따른 인명용 한자↑ 출생 신고 때 아기 이름 성(姓) 빼고 최대 5자까지 가족관계등록예규 제109호에 따르면, '박(朴)하늘햇님별님달님보다사랑스러우리'나 '황(黃)금독수리온세상을놀라게하다' 등을 자녀의 이름으로 출생신고할 경우에는 담당공무원은 이를 수리하지 못한다.

다만, 아버지가 외국인이거나 외국인이 귀화하여 종전에 사용하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이름의 글자수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 복성(황보, 제갈, 선우, 남궁 등)인 경우에는 성명은 최대 일곱 글자까지 가능하다.

↑ 예) 방귀녀, 방귀남, 이인간, 배태랑, 배신, 이천원, 이만원, 남성, 여성, 강아지, 고양이 등↑ 헌법재판소 2005. 12. 22, 2003 헌가5.6(병합)↑ 일부는 가(家·哥)를 붙이기도 한다↑ "누가 함부로 장군님 이름과 같이 쓰나?" DailyNK, 2005↑ 북한 다둥이, 우상화 이름짓기 아세요? DailyNK, 2005↑ 한국산 '이부영'과 중국산 '이부영'의 기연 오마이뉴스, 2004.9.1↑ 예:곽방방(郭芳芳), 장쥐안쥐안(張娟娟)↑ 예) 林(하야시), 南(미나미), ?(구레), 松(마쓰), 西(니시) 등↑ 예) ? 智英(오지영, 구레 도모후사), 西 和秀(서화수, 니시 가즈히데), 林 秀貞(임수정, 하야시 히데사다)↑ 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aaaaa라는 이름을 가진 주석에 제공한 텍스트가 없습니다↑ 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bbbbb라는 이름을 가진 주석에 제공한 텍스트가 없습니다↑ 가 나 남자 → '민준' 여자 → '서연' 가장 많아 법률신문 2010.1.20

바깥 고리[편집]

뿌리를 찾아서[숨기기] v ? d ? e ? h사람 이름유형이름 · 성씨 · 혼인성씨 · 부계명 · 모계명 · 성씨를 뺀 이름 · 가운데 이름 · 피휘 · 호 · 자 · 아명 · 태명 · 가명 · 예명 · 필명 · 별명 · 세례명 · 법명 · 아이디관습과 문화사성 · 항렬 · 영명축일 · 개명 · 고인휘명 · 양성쓰기아시아한국 이름(한국의 고대 인명, 한국의 사라진 성씨) · 중국 이름 · 만주 이름 · 티베트 이름 · 타이완 원주민 이름 · 몽골 이름 · 베트남 이름 · 일본 이름(아마미 제도의 성씨) · 아이누 이름 · 오키나와 이름 · 인도 이름 · 파키스탄 이름 · 네팔 이름 · 미얀마 이름 · 태국 이름 · 캄보디아 이름 · 라오스 이름 · 말레이 이름 · 인도네시아 이름 · 필리핀 이름 · 페르시아 이름 · 아프가니스탄 이름 · 아랍 이름 · 유대 이름 · 터키 이름유럽그리스 이름 · 네덜란드 이름 · 독일 이름 · 러시아 이름 · 루마니아 이름 · 바스크 이름 · 북유럽 이름 · 불가리아 이름 · 세르비아 이름 · 스코틀랜드 이름 · 스페인 이름 · 슬로바키아 이름 · 슬로베니아 이름 · 아이슬란드 이름 · 아일랜드 이름 · 알바니아 이름 · 영어권의 이름 · 웨일스 이름 · 이탈리아 이름(고대 로마 이름) · 체코 이름 · 크로아티아 이름 · 포르투갈 이름 · 프랑스 이름 · 폴란드 이름 · 핀란드 이름 · 헝가리 이름아프리카아칸 이름 · 에티오피아 이름 · 요루바 이름 · 이그보 이름아메리카아메리카 토착민 이름 · 아프리카계 미국인 이름오세아니아피지 이름 · 하와이 이름??????(이하 출처 할망블로그)???지난 번, 분자인류학논단 카페의 공동운영자이신 꼬꼬닥님이 올려주신, 카페에 실린 통계청 지도로 나온 성씨별 자료를 보고 너무 재미있어서 본관/성씨의 지역별 분포를 주욱 찾아보다가 다음과 같이 그래프로 정리해 보았다.

결과 대비 노력이 너무 많이 들어 이걸 왜 했을까...하는 후회도 들었지만, 제가 원래부터 성씨, 본관 및 이들의 출신(?- 결과적으로 하플로그룹이겠다)에 대한 관심이 많았었기 때문에, 이런 미쳐 보이는 짓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면 되겠고, 약간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서 방대하고 조악하지만, 어여삐 보아주길 바란다^^. 총 60개 본관별 성씨를 정리해 보았다.

지난 번 꼬꼬닥님이 언급해 주셨던 우리나라의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본관별 성씨를 포함하며, 역사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성씨, 외부에서 유입된 것으로 생각되는 성씨 등을 모아 봤다.

물론, 필자 및 필자와 관련된 본관/성씨도 포함되어 있다.

^^ 한 포스팅에 너무 많은 자료가 들어가면 읽기에 곤란할 것으로 생각되어, 10개씩 총 6회에 나누어 포스팅하겠다 (순서는 무작위다). 모든 성씨의 완쪽의 그림은 그 성씨의 지역별 퍼센트를 나타낸 그래프이며, 오른쪽 그림은 그 지역의 인구로 보정하여 나타낸 (즉, 인구 10만명 당 몇 명이냐로 나타냈다), 상대적 지역 분포에 대한 그래프가 되겠다.

모든 자료는 2000년 기준이다.

통계청 인구자료과 www.surname.info의 성씨별 자료를 참조하여 분석하였다.

   1) 그럼, 첫 번째 성씨로,,,필자의 성씨인 풍산 류가(豊山 柳家)부터 언급하겠다.

   풍산 류가는 경북 안동시 풍산읍을 본관으로 삼고 있으며, 2000년 기준으로 총 인구수가 13,341명이다.

보다시피 지역별 퍼센트로는 서울(24%), 경북(20%), 경기(17%), 대구(14%)가 전체의 3/4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지역별 인구로 보정한 결과는, 경북이 인구 10만명당 96.8명, 대구가 77.6명으로 가장 많아, 역시 본관에 따른 막강한 지역 편중을 보여준다.

기타 지역은 이 두 지역에 비하면 많이 인구수가 적다.

참고로, 필자는 O2b*(M176)이 부계하플로로 나온 바 있다.

풍산 류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http://blog.daum.net/halment/23 및 http://blog.daum.net/halment/26 필자의 블로그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주요 인물로는 임진왜란 영웅 류성룡이 가장 유명하며, 현재 인물로는 탤런트 류시원이 있다.

   2) 기계 유씨(杞溪 兪氏)   기계 유씨는 바로 필자의 외가이다.

경북 포항시 기계면을 주 본관으로 하고 있으며, 부계하플로는 분자인류학논단카페의 "기계 유씨(杞溪 兪氏)의 연원과 하플로그룹 추정"이라는 지난 번 포스팅에서 O2b/O2b1, M117 등으로 예상했었는데, 아직 12좌위밖에 나오지 않아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나, 예상대로 O2b*(M176)로 나왔다.

이 기계 유씨는 지역별 퍼센트에서는 수도권에 집중 분포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합이 53%). 하지만, 인구 보정 결과를 보면, 거의 지역별로 편차를 보이지 않는다.

물론, 충남 (10만명당 451명), 대전(356명), 경기(300명)에 조금 많은 경향을 보여주고 있긴 하다.

기계 유씨의 총 인구는 2000년 113,430명이며, 경기도, 충남, 경북이 집성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세한 내용은 http://cafe.daum.net/molanthro/I4r5/11, http://cafe.daum.net/molanthro/I4rp/154 및 http://cafe.daum.net/molanthro/I4rp/159를 참조하기 바란다.

주요 인물로는 사육신인 유응부, 개화파 유길준, 현재 인물로는 문화재청장 유홍준이 있다.

   3) 문화 류씨(文化 柳氏)   문화 류씨는 류씨 중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한 대종이며, 고려조 개국공신 류차달을 그 시조로 하고 있고, 총 인구수는 2000년 284.083명이다.

본관은 현재 이북 지역인 황해도 신천군 문화면에 자리잡고 있다.

역시 수도권에 50%가 분포하며, 인구 보정 자료로도 전국적으로 대체로 비슷한 분포를 보이고 있지만, 충북(10만명당 1,024명), 대전(925명), 충남(825명), 인천(707명)... 등으로 기호지방에 좀 더 많은 분포를 보이고 있다.

 필자의 집안인 풍산 류가와의 상관 관계에 대해선 필자의 블로그 http://blog.daum.net/halment/26를 참조하면 되겠다.

필자는 분자인류학논단카페의 곳곳의 글을 통해 이 문화 류씨의 부계하플로 분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늘 이야기하고 있는데, O3계통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물론, 어떻게 답이 나올런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역사적 인물로는 사육신의 한 사람인 류성원과 실학자 류형원 등이 있으며, 현재 인물로는 야구 선수 류현진 등이 있다.

초재님이 분자인류학논단 카페에 올려 주신 "미국에서 측정한 한국인과 조선인 몇 분의 Y와 mt-DNA하플로"에서, 본관이 나오지 않은 류씨 한 분이 O3a3b1 즉, O3a2b1(M188, 실제론 M7)으로 나왔는데, 류씨 상당수가 문화 류씨이므로, 문화 류씨의 주류하플로가 이것일 가능성도 있겠다.

물론, 다른 본관이 나올 수도 있다고 본다.

http://cafe.daum.net/molanthro/I4rp/152를 참조하기 바란다.

   4) 연안 차씨(延安 車氏)      연안 차씨는 역시 이북 지역인 황해도 연백군 연안을 본관으로 하고 있는 성씨이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161,325명이다.

이 차씨의 분포 역시 수도권에 46%가 몰려 있고, 인구 보정 자료에선 전체적으로 대략 비슷하긴 하나, 울산(10만명당 548명), 경남(473명), 인천(417명), 부산(403명) 등이 조금 많아 보인다.

이 연안 차씨는 문화 류씨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자세한 내용은 http://blog.daum.net/halment/6를 참조하면 되겠다.

차씨 유명인은 탤런트 차인표, 차승원 등이 있다.

연안 차씨의 하플로로는 희귀 성씨 자료에서 O2b가 2/3, 기타가 1/3 나온 바 있다.

과연 이들도 O2b가 주류일까?    5) 김해 김씨(金海 金氏)       김해 김씨는 다들 잘 알다시피, 금관국 김수로왕을 시조로 삼고 있으며, 우리나라 본관 중 가장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성씨이다(2000년 현재 4,124,934명). 중시조로는 아주 유명한 김유신 장군이며, 유명한 학자 김일손, 장군 김경서, 화가 김홍도도 김해 김씨이다.

인구 자료에서 보다시피, 많은 인구답게 전국적으로 고루 퍼져 있다.

그 중에서도, 전남(10만명 중 13,450명), 제주(11,962명), 경남(11,751명), 부산(11,113명), 광주(10,995명), 울산(10,314명)...등의 남부 지방에 좀 더 많은 분포를 보이는 듯 하다.

분자인류학논단카페의 꼬꼬닥님 자료와 유사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현재 김수로왕의 하플로로는 C3가 유력하게 거론되지만, O2b1일 가능성도 배제는 못 할 것 같다.

그리고, 워낙 대성이니 조선 시대 후기 이후 수많은 남부 지역 백성들이 김해 김씨로 나섰을 가능성이 무척 높아 보인다.

그래서 이렇게 분포가 균등해졌나...생각도 되는 바이다.

어쨋든, 이들의 주류는 O2b1이 아닌가, 그리고 중심부 김해김씨는 C3일수도 있지 않을까.. 아직 확실한 것은 없어 보인다.

      6) 밀양 박씨(密陽 朴氏)       밀양 박씨 역시 너무나도 유명한 성씨이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후손으로 여기고 있지만, 한참 후인 신라 54대 경명왕의 아들 박언침을 시조로 삼고 있다.

이 밀양 박씨에서 모든 다른 본관의 박씨들이 분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 밀양 박씨는 김해 김씨 다음으로 많은 인구를 자랑한다(2000년 기준 3,031,478명). 밀양 박씨는 조선시대 문과급제자 261명, 상신 1명, 대제학 2명, 청백리 2명을 배출하였으며, 조선 전기 음악가 박연, 후기 실학자 박제가 등이 밀양 박씨이다.

이 밀양 박씨 역시, 김해 김씨와 유사하게, 전체적으로 비슷하나 남부에 좀 더 많은 경향을 보인다.

인구 보정 결과로는 전남(10만명당 8,048명), 경남(8,005명), 부산(7,730명), 울산(7,573명)이 좀 더 많았다.

이 밀양 박씨의 하플로는 다양하게 나와 예측하기 어렵다고 추측된다.

하지만, 박씨의 하플로그룹 자료가 이미 있고, 대다수의 박씨는 밀양 박씨이므로, O2b, O2b1이 대세이며 C3도 다수 분포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7) 전주 이씨(全州 李氏)       전주 이씨는 조선 왕족의 후손으로서, 비교적 600년 이래에 수를 급격히 불린 기적의(?) 성씨이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2,609,890명이다.

아마 조선 왕족으로서의 프리미엄이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조선 후기에 들면서 다른 대성들과 마찬가지로 무임승차한 백성들이 많지 않았나 생각이 되고, 다양한 혈통이 존재하리라 예측되지만, 이들의 주력 하플로로는 O3a2c1(M134)가 예상되고 있다.

시조는 경주 이씨의 후예라는 이한이며, 이성계는 이한의 21세손으로 되어 있지만, 이성계의 고조부인 이안사 이전의 역사는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전혀 믿을만하지 않다.

또한, O2b 주력으로 예측되는 경주 이씨와는 하플로 구성만 해도 다르리라 추측되는 바이다.

항간에 이성계 여진족론 or 몽고족론 등이 있으나, 확인할 길은 별로 없고, 이들에서 발생한 북방형 M134인지, 아니면 토착 M134인지는 지속적인 하플로그룹 연구를 통해 밝혀야 할 일일 것 같다.

아무래도, 본관 별 인구구성에서는 본관을 따라 가는 일이 많은 것 같다.

전주 이씨는 대체로 수도권에서도 높은 비율을 보이지만(인천 10만명당 6,948명, 경기 6,932명, 서울 6,466명), 연고지인 전북(10만명당 8,045명), 충남(7,414명)에서 좀 더 많은 비율을 보인다.

대표적 인물로는 헤이그 밀사인 이위종, 이준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조선시대 최고의 청백리 정승인 이원익을 들 수 있겠다.

      8) 제주 고씨 (濟州 高氏)       물론 고씨에 제주 고씨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주 고씨가 그 중 제일 대종이고, 또한 지난 번 "역사의 터닝포인트를 제공하는 성씨의 하플로그룹"에서 언급했듯 제주도의 토착 성씨로 추정되기 때문에 대단히 관심이 가는 성씨이다.

물론 지역별로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긴 하지만, 인구 보정 자료를 보면, 제주도에 엄청난 제주 고씨의 비율을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10만명 당 7,830명). 제주도에서는 타지역의 김씨, 박씨 못지 않은 대성이라고 보면 되겠다.

^^  이 밖의 다른 지역은 대동소이하다.

제주 고씨의 자세한 자료는 http://blog.daum.net/halment/34를 참조하면 되겠다.

제주 고씨의 인구는 2000년 현재 325,950명이며, 역사적 인물로는 임진왜란 때의 고경명을 들 수 있겠다.

주력 부계하플로는 O2b/P201/N 중에서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검사를 할 예정인 제주 고씨분이 있어 그 결과가 참으로 궁금하다.

^^       9) 제주 양씨(濟州 梁氏)     제주 양씨는 역시 삼성혈과 관련된 제주도 토착 성씨이다.

인구는 2000년 현재 133,355명이며, 자세한 연혁은 http://blog.daum.net/halment/34을 참조하면 되겠다.

이 제주 양씨 역시, 제주도에 엄청난 비율을 보여주고 있다(10만명 당 4,165명). 그리고 특이할 만한 것은 광주(1,186명), 전남(909명)도 많은 분포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제주 양씨 역시 어떤 하플로그룹을 보일 것인가 귀추가 주목된다.

대표적 인물로는 개화기 언론인 양기탁이 있다.

    10) 제주 부씨(濟州 夫氏)       제주 부씨는 그 희귀한 인구 수로 인해 지난 번 "역사의 터닝포인트를 제공할 수 있는 본관/성씨별 하플로 추정"에서 가장 주목받을 수 있는 하플로로 필자가 지목한 바 있다.

조사 결과론, 역시나 엄청난 제주도 편향을 보여주었다(보정결과로 10만명당 971명, 그냥 퍼센트로도 53%차지). 인구수는 2000년 현재 9,440명이다.

자세한 연혁은 http://blog.daum.net/halment/34을 참조하면 되겠다.

참고로, 이 제주 부씨의 추정 하플로는 O2b*라고 생각된다(희귀성씨 하플로 검사 결과).????? 총 60개 본관별 성씨 중, 지난 시간엔 풍산 류씨, 기계 유씨, 문화 류씨, 연안 차씨, 김해 김씨, 밀양 박씨, 전주 이씨, 제주 고씨, 제주 양씨, 제주 부씨(http://blog.daum.net/halment/41)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번엔 그 2번째 시간이다.

 모든 성씨의 왼쪽의 그림은 그 성씨의 지역별 퍼센트를 나타낸 그래프이며, 오른쪽 그림은 그 지역의 인구로 보정하여 나타낸 (즉, 인구 10만명 당 몇 명이냐로 나타냈다), 상대적 지역 분포에 대한 그래프가 되겠다.

모든 자료는 2000년 기준이다.

통계청 인구자료과 www.surname.info의 성씨별 자료를 참조하여 분석하였다.

      11) 경주 석씨(慶州 昔氏)     경주 석씨(월성 석씨)는 잘 아시다시피 신라 4대 석탈해왕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 1세조는 그의 23대손 석재흥으로 삼고 있다.

경주 석씨의 2000년 현재 인구수는 7,996명이다.

주요한 인물은 확인하기가 어렵다.

ㅡㅡ;; 자세한 연혁은 지난번 "터닝포인트를 제공할 수 있는 본관/성씨별 하플로"에서 이미 언급한 바가 있으니, http://blog.daum.net/halment/34를 참조하기 바란다.

 물론, 워낙에 인구가 희박하기 때문에 분포를 논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긴 하며, 경주 석씨는 본관이 경주인 점을 고려할 시 경북(10만명당 37.3명)에 많은 분포를 보인다는 것은 당연해 보이지만, 의외로 충남(42.4명)에 가장 많은 분포를 보이며, 강원(36.4명)도 적지 않게 분포하고 있다.

왜 경주 석씨는 충남이나 강원에 많은 분포를 보이는 것일까? 김씨 세력에 밀린 결과로 봐야 할까? 아니면 다른 변수가 있을까? 한국 희귀성씨 하플로 논문에서 경주 석씨는 "기타"로 나온 바 있어, O2b 계통은 아닐 것으로 생각되며,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C3 또는 JST002611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길고 짧은 건 대어 봐야 알 것이다.

      12) 김해 허씨(金海 許氏)     김해 허씨는 가락국 수로왕비 허황옥으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알려진 성씨이며, 실제 시조는 허황옥의 35세손인 허염으로 삼고 있다.

김해 허씨의 2000년 현재 인구수는 121,031명으로 경주 석씨에 비해선 엄청나게 많아 보인다.

주요 인물로는 한말 독립운동가 허위 등을 들 수 있겠으며, 이건 미처 몰랐는데, 동의보감의 허준이나 영의정을 지낸 허목은 양천 허씨(陽川 許氏)였다.

. 인구도 양천 허씨가 13만명으로 조금 더 많다,, 자세한 연혁은 지난번 "터닝포인트를 제공할 수 있는 본관/성씨별 하플로"에서 이미 언급한 바가 있으니, http://blog.daum.net/halment/34 참조 바란다.

 김해 허씨는 역시 본관과 가장 가까운 경남(10만명당 677명), 부산(574명), 대구(493명), 울산(450명) 등 남부 영남권에 집중 분포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희귀성씨 자료에서, 김해 허씨도 불과 2명이라 예단은 어렵지만, 한명은 O2b, 한명은 기타가 나왔었다.

. 과연 이들이 김수로왕의 둘째 아들이 맞는 건지 알아보는 일도 재미있겠다.

      13) 해주 오씨(海州 吳氏)     이번엔 해주 오씨 차례이다.

잘 알다시피 시조인 오인유는 고려 성종대에 송나라로부터 온 대학사로 검교군기감을 역임하고 황해도 해주에 정착해 살아 후손들이 해주를 본관으로 하고 있으며, 또 따른 문헌에 따르면 도시조 오첨의 24세손인 오현보를 시조로 하는 이야기도 있다.

자세한 내역은 분자인류학논단카페의 꼬꼬닥님이 올리신 글의 댓글을 참조하면 되겠다(http://cafe.daum.net/molanthro/I4mk/15). 해주 오씨의 2000년 현재 인구수는 422,735명이다.

대표적 인물로는 병자호란 때의 삼학사 중 한명인 오달제, 독립운동가인 오세창, 무장항일운동을 벌인 오동진, '폐허'의 동인으로 호가 공초인 괴짜 시인 오상순 등을 들 수 있다.

해주 오씨는 이북 지역인 해주를 본관으로 하고 있는 관계로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전국적으로 비교적 균등한 분포를 보인다.

물론 북한 지역까지 조사한다면 북한 지역에 그 비율은 더 높을 것으로 생각된다.

꼬꼬닥님만 해도 조상분들이 평북 박천에 집성촌을 이루고 사셨을 정도이니까. 남한 지역 중에서도, 충남(10만명당 1114명), 인천(1060명), 전북(1040명), 대전(1016명), 경기(1004명) 등으로 비교적 기호 지역에 조금 더 많은 경향을 보이는 것 같다.

꼬꼬닥님의 하플로로는 O3a2(P201)이 나왔다.

      14) 군위 오씨(軍威 吳氏)     이번엔 군위 오씨이다.

군위 오씨의 시조인 오숙귀는 도시조 오첨의 24세손 오현좌(동복 오씨의 시조)의 둘째 아들로 고려 대에 벼슬을 하였고, 후손들이 군위에 대대로 살면서 동복 오씨로부터 분관하였다 한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22,408명이다.

이 군위 오씨는 분자인류학논단카페의 유덕님 말씀대로, 그 본관과는 달리 탐라가 그 세거지인 것 같다.

자세한 연력은 http://cafe.daum.net/molanthro/I4rp/127의 유덕님 글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이 군위 오씨의 인구 분포를 보면 그저 놀랍다.

정말 유덕님 말씀대로, 퍼센트 비율로도 전체 군위 오씨의 75%가 제주도에 살고 있으며, 인구 보정한 결과를 보더라도, 제주도 10만명 당 3,260명이나 차지하여, 타 지방을 압도하고 있다.

유덕님의 하플로로는 O2b1(47z)가 나왔다.

      15) 동복 오씨(同福 吳氏)     동복 오씨는 도시조 오첨의 24세손 오현좌의 맏아들인 오녕을 시조로 하여, 고려 고종 때 거란을 토벌한 공으로 동복군에 봉해져 후손들이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고 되어 있으며, 이전 군위 오씨 편에서도 언급했지만, 둘째 아들 오숙귀가 군위 오씨로 분관했다는 문헌도 있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55,517명이다.

분포도를 보면, 단순 퍼센트로도 호남지방에 36%가 산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인구 보정 결과를 보면, 전남에 10만명당 469명, 광주에 465명, 전북에 223명으로, 타 지역을 압도하고 있다.

역시 본관과 주 분포 지역이 일치하는 한 예가 되겠다.

주요 인물로 선조 때의 문장과 글씨에 뛰어난 오억령과 현대 화가이자 시인인 오지호가 있다.

      16) 경주 김씨(慶州 金氏)     경주 김씨는 신라 왕실의 삼성(박, 석, 김) 중의 하나로 김알지를 시조로 하고 있다.

김알지의 7세손인 미추이사금이 비로소 왕위에 오르고, 마지막왕인 경순왕까지 38명이 왕에 올라 명실공히 신라의 최대 주주로서(?) 활약하게 된다.

서기 935년 경순왕이 고려 왕건에게 항복하자 그의 아들 중 셋째 김명종과 넷째 김은열이 영분공파, 은열공파로 분파하며 경주 김씨의 기원이 되었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1,736,798명이다.

대표적 인물로는 고종 때의 총리대신이었던 김홍집, 서예가 김정희, 몽골군과 싸운 명장 김경손,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을 들 수 있다.

워낙 유명한 대성인지라 전국적으로 비교적 균등한 분포를 보이고 있지만 (전남, 광주 제외), 가장 많은 분포를 보이는 지역은 충북(10만명당 5,850명), 충남(4,974명), 울산(4,838명), 제주(4,644명), 대전(4,586명), 경북(4,378명), 강원(4,249명)으로 충청권에 의외로 많은 분포를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경주 김씨의 주류 하플로로는 O2b를 꼽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아직 대표적으로 경주 김씨 상당수가 어떻다라는 구체적인 결과도 없고, 김씨의 하플로그룹 분포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알려져는 있지만 김씨 안에도 본관이 워낙 다양하여, 속단하기는 이를 듯 하다.

      17) 경주 이씨(慶州 李氏)     경주 이씨는 전주 이씨와 더불어 이씨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다.

역시 경주를 본관으로 삼고 있고,, 시조는 신라 육촌 중 알천 양산촌장 이알평(표암공)으로 전하고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서기 32년 신라 유리이사금 9년에 유리이사금이 다른 다섯 촌장들과 마찬가지로 사성(賜姓)하여 양산촌을 급량부로 개칭하고 그에게 이씨의 성을 내려주었다고 한다.

이후 알평의 36세손으로 진골 출신인 이거명을 중시조로 하고, 시조의 발상지인 경주를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내려왔다고 한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1,424,866명이나 된다.

주요 인물로는 조선조 명신인 이항복,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이었던 이시영, 대한민국 17대 대통령인 이명박 등을 들 수 있다.

이 경주 이씨 역시 대성인만큼 전국적으로 고른 분포를 보이나, 특히 경북(10만명당 5,085명), 울산(5,074명), 대구(4,420명), 충북(4,041명), 부산(3,827명), 경남(3,180명) 등으로 영남 지역에 다소 높은 분포율을 보인다.

역시 본관과 밀접한 관계를 보이고 있다.

다만, 이 경주 이씨의 사성을 받은 시점은 신라 유리이사금 때가 아닌 훨씬 이후이며, 정당성과 집안의 위대함을 과시하기 위해 창성 시기를 신라 유리이사금 시절로 소급시킨 게 아닌가 하고 생각된다.

이는 다른 경주계 성씨들도 마찬가지리라 본다.

하플로 분석에 관하여, 경주 이씨도 경주 김씨와 마찬가지로 역시 대성인데다가, 이씨의 하플로그룹 분포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알려져는 있지만 이씨 안에도 본관이 워낙 다양하여, 주류 하플로를 정확히 예단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예상으로는 O2b계열로 추정하고 있는 듯 하다.

      18) 경주 정씨(慶州 鄭氏)     경주 정씨는 신라 초기의 6촌 가운데 취산 진지촌장(본피부)의 지백호를 시조로 하고 있다.

그는 다른 5촌장과 더불어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고 제 3대 유리이사금 때 정씨로 사성받았다 한다.

그 후 그의 42세손 정진후가 고려조에 문과에 급제하고 수많은 벼슬을 거치며 월성군(현 경주)에 봉해진 이후 후손들이 그를 득관중조로 하고, 본관을 경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이렇게 경주 정씨는 본피부의 정통 후손으로 모든 다른 정씨들의 '큰집'으로 오랜 옛날부터 우리나라 동남부에 자리잡은 선주민의 후예로 여기고 있으나, 이 시점에서 항상 나오는 '문헌의 실전', '득관중조' 등의 이야기와 함께 엄청난 세월의 공백이 있게 된다.

따라서, 시조를 과거로 소급시키는 등으로 후대에 미화되고 조작된 역사가 아닌지 항상 의문이 들게 된다.

이는 다른 경주계 성씨들도 마찬가지라 본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303.443명이며 대표적 인물로는 임진왜란 때의 부산진 첨절제사 정발 등을 들 수 있다.

인구별 자료를 보면, 분자인류학논단카페의 꼬꼬닥님 자료와 유사하게, 전남(10만명당 1,777명), 광주(1,065명), 전북(753명), 경기(719명), 인천(712명), 서울(704명)으로 호남 및 수도권에 집중되는 양상을 보인다.

오히려 본관 지역인 영남권은(부산,경남 지역이 약간 있는 편이지만) 분포율이 아주 떨어지는 소견을 보인다.

경주를 본관으로 삼았던 사람들이 후에 호남 지역으로 진출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호남 사람들이 후에 창성 시에 경주 정씨라는 유명한 성씨를 많이 차용했기에 그런 것일까? 어쨋든 본피부 이야기는 낭설일 가능성이 많을 것 같다.

이전 분자인류학논단카페의 초재님 자료에서 정씨는 (N수가 부족하긴 하지만) C3가 비교적 높은 분포를 보였다.

호남 지역에도 C3가 많이 분포하니 그럴 듯 해 보이지만, 영남 지역에 경주 정씨가 부족한 것은 설명이 안 되는 것 같다.

물론, 동래 정씨라든가 연일 정씨라든가 영남 지역에 많이 분포하는 본관들이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후대에 남부 지방으로 이주한 이들이(C3) 지역별로 본관을 나누어 분포했다.

.뭐 이렇게 볼 수도 있을 듯 하다.

자세한 건 뚜껑을 열어봐야 할 것이다.

      19) 경주 최씨(慶州 崔氏)     경주 최씨는 또 하나의 유명한 경주 본관 성씨이다.

시조 최치원은 돌산 고허촌장 소벌도리의 24세손이며 신라 말기의 대문장가이다.

최치원은 869년 신라 경문왕 9년에 12살에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하여 17세에 급제하였고 신라로 돌아왔으나 뜻을 크게 펼치지 못하고 전국을 유랑하다 해인사에 은거하며 63세에 생을 마쳤다 한다.

한시문집으로 '계원필경'등의 명저를 남겼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976,820명이다.

대표적 인물로는 고려 성종 대 문하시중을 역임한 최승로,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 동학 2대 교주 최시형, 한말의 유학자이자 의병장이었던 최익현 등을 들 수 있다.

이 경주 최씨는 고려조에 득세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퇴조를 보여 문과급제자 42명만을 냈을 뿐, 상신, 대제학을 배출하지는 못했다 한다.

인구별 분포를 보면, 역시 경주 이씨와 유사하게, 울산(10만명당 3,589명), 경북(3,258명), 대구(3,122명), 부산(2.841명), 경남(2,530명) 등 영남권에 높은 분포를 보인다.

경주 최씨 역시, 고허촌장 소벌도리 이야기는 믿기가 어려울 듯 보이며 최치원부터는 비교적 신뢰할 만한 이야기인 것으로 보인다.

최씨가 O2b가 많이 보이긴 하지만, O3a1c(JST002611)이 다소 많이 보이는 점에서 착안해, 이 경주 최씨 본류는 4세기경 서북쪽에서 유입된 JST002611이 아닌가..하고 추측(최치원 하플로?)되기도 한다.

나머지는 후대에 최씨에 진입한 O2b들로 보면 될까?       20) 안동 권씨(安東 權氏)     이번 포스팅의 마지막, 안동 권씨이다.

시조는 권행으로, 사실은 신라 왕실의 후예로 '본성'이 '김씨'라 하며, 고창군(古昌郡)에서 견훤의 토벌에 적극 가담하여 후백제의 멸망과 태조 왕건의 우세에 큰 기여를 함으로써 고려 왕건에게 권씨 성을 하사받은 것으로 전한다.

이후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함에 후손들이 안동을 본관으로 하였다 한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629,291명에 이르며, 대표적 인물로는 조선초 예문관 대제학이자 조선 창업의 일등공신인 권근, 우찬성 권제, 좌의정을 지낸 권람, 행주대첩의 영웅 권율 등을 들 수 있다.

인구별 분포를 보면, 지난번 분자인류학논단카페의 꼬꼬닥님 자료와 유사하게, 경북(10만명당 3,183명), 대구(2,353명), 울산(1,827명), 강원(1,684명), 충북(1,579명) 등으로 경북 안동을 중심으로 한 근처 지역에 높은 분포율을 보이고 있다.

역시 본관과 그 분포가 잘 들어맞는 성씨라 할 수 있겠다.

안동 권씨의 부계하플로는 구체적, 조직적으로 조사된 바는 없으나 꼬꼬닥님의 친구 분 중에 O1a1(P203)이 나온 바 있다.

2010년 김욱 교수 자료를 보면, P203은 1.8%의 분포율을 보였고, 지역적으로는 제주도(5.8%), 경상도(2.3%)가 가장 높았는데, 안동 권씨의 제주도 분포가 아주 드문 것을 본다면 (10만명당 343명), 제주도의 P203은 안동 권씨는 아닌 듯 하고, 경상도에서 나온 P203이 안동 권씨 sample이 아닌가.. 추정된다.

자세한 것은 많은 자료의 축적이 있어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총 60개 본관별 성씨 중, 지난 시간엔 경주 석씨, 김해 허씨, 해주 오씨, 군위 오씨, 동복 오씨, 경주 김씨, 경주 이씨, 경주 정씨, 경주 최씨, 안동 권씨(http://blog.daum.net/halment/42)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번엔 그 3번째 시간이다.

 모든 성씨의 왼쪽의 그림은 그 성씨의 지역별 퍼센트를 나타낸 그래프이며, 오른쪽 그림은 그 지역의 인구로 보정하여 나타낸 (즉, 인구 10만명 당 몇 명이냐로 나타냈다), 상대적 지역 분포에 대한 그래프가 되겠다.

모든 자료는 2000년 기준이다.

통계청 인구자료과 www.surname.info의 성씨별 자료를 참조하여 분석하였다.

[성씨] 매력을 알아보자



      21) 순흥 안씨(順興 安氏)     순흥 안씨는 안씨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본관으로,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을 그 본향으로 삼고 있으며, 고려 신종 때 보승별장을 지낸 안자미를 시조로 삼고 있다.

시조의 세 아들, 첫째 아들 안영유를 1파, 둘째 아들 안영린을 2파, 셋째 아들 안영화를 3파로 나누고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다.

분자인류학논단 카페의 아이다님이 쓰신 http://cafe.daum.net/molanthro/I4rp/125에 안씨에 대한 자세한 연혁이 나와 있으니, 참조하기 바란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468,827명이다.

 대표적 인물로는 고려말 최초의 주자학자인 안향, 독립운동가 안창호, 안중근 의사, 작곡가 안익태 등이 있다.

인구별 분포를 보면, 충북(10만명 당 1,583명), 강원(1,494명), 경북(1,181명), 경기(1,150명), 인천(1,134명) 등의 순서로 되어 있는데, 역시 본관과 가까운 영주 순흥을 중심에서 가까운 지역에 많은 분포를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전 성씨에 따른 한국인집단의 Y 염색체 DNA 다형의 내용을 보면, 안씨는 O2b가 18.8%, O2b1이 37.5%는, 기타가 43.8%로 나왔다.

딱히 각 본관별로 나온 자료가 없으므로, 본관별로 어떻다.

.하는 말씀을 드리기는 곤란할 듯 보인다.

순전히 필자의 추측이지만, 순흥 안씨 본류는 O2b1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참고로, 아이다님은 광주(廣州) 안씨이다.

      22) 평산 신씨(平山 申氏)     평산 신씨는 여러 모로 흥미 있는 본관이다.

북한 지역인 황해도 평산을 근거지로 하고 있고, 잘 알다시피 고려초의 명장 신숭겸을 시조로 하고 있다.

신숭겸은 원 이름이 삼능산(三能山)으로 전라도 곡성 사람이다.

그는 궁예가 세운 태봉의 기장으로 있다가 폭정이 날로 심해지자 동료인 복지겸, 배현경, 홍유 등과 함께 궁예를 축출하고 왕건을 고려 태조로 옹립한 개국원훈대장군으로 '고려사'에 고려 개국 4공신의 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루는 왕건이 장군들과 평주(평산)에 사냥을 가는 도중에 왕건이 말한 대로 그가 셋째 기러기 왼쪽 날개를 정확하게 맞추어 떨어뜨리자 왕건이 탄복하고 근처 땅 300결을 하사하고 본관을 평산으로 삼았다 한다.

그는 927년(태조 10년) 대구 공산 전투에서 견훤에게 포위되어 전세가 위급하자 태조를 피신케 하고 대신 전사하였으며, 태조가 그를 추모하여 공신으로 추봉하고 시호를 장절이라고 했다 한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496,874명이며 신씨(申氏)의 다수를 이루고 있다.

대표적 인물로는 한성부 판윤을 지낸 신립, 대통령 후보였던 해공 신익희 선생, 국무총리를 지낸 신현확씨 등을 들 수 있으며, 가수 신중현과 신대철도 이 집안이라 한다.

분자인류학논단카페의 꼬꼬닥님 지인인 평산 신씨분의 말씀에 따르면, 신숭겸 이전 세계는 본디 북만주 일대에 살던 무장집단인데 백제에 용병(?)으로 계약하여 한반도로 넘어왔으며, 족보에 보면 무장들이 많아 어떤 파는 통째로 사라진 곳도 많고 살육을 많이 하여 업을 많이 지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다.

인구별 분포를 보면, 지역별로 정말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는데, 다소 중북부에 밀집한 양상을 보인다(제주도와 전남, 경남이 다소 적다). 지역별로는 충남(10만명당 1.379명), 인천(1,243명), 경기(1,194명), 서울(1,162명), 대전(1,147명), 경북(1,124명), 대구(1,121명) 등의 분포 순을 보인다.

성씨에 따른 한국인집단의 Y 염색체 DNA 다형의 내용을 보면, O2b가 44%, O2b1이 30%가 나왔는데, 분자인류학논단카페의 레전드님 말씀대로 O2b*주류가 아닐까 생각이 되지만, 평산 신씨로 O3a2c1a(M117)이 나온 미국의 신연균 교수라는 분이 있어, 속단하기는 어려울 듯 하다.

즉, 평산 신씨가 O2b가 주력이었는데 후에 M117이 들어온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샘플이 많아져야 할 듯 싶다.

      23) 고령 신씨(高靈 申氏)     고령 신씨는 경상북도 고령을 본거지로 하고 있는 성씨로 분자인류학논단카페 회원 중엔 레전드님과 마사노부님이 있다.

시조 신성용은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고 검교군기감을 역임하였으며, 그의 선조는 신라의 선비로 대대로 고령에 살면서 호장을 지내왔으므로 후손들이 고령을 본관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8세손 신숙주가 익재좌리공신으로 고령부원군에 봉해졌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116,966명이다.

대표적 인물로는 아까 이야기한 신숙주가 있으며, 화가 신윤복과 단재 신채호 등을 배출했다.

인구별 자료를 보면, 충북(10만명당 714명), 전남(690명), 광주(460명) 순을 보이고 오히려 본관 쪽인 경상북도를 비롯한 영남은 인구 비율이 낮은 결과를 보여주었다.

찾아보니, 집성촌이 전남 고흥군, 전남 여수, 경북 고령으로 되어 있다.

레전드님 말씀으론 고령 신씨는 크게 2갈래로 나뉜다 하며, 산업화 전까지 고령/대구 세거지에 거주하던 부류와 몽골 칩입당시에 전남 여수/고흥 지역으로 피신하여 자리잡은 부류이다.

이것으로 보아, 현재 분포지역이 설명이 되는 듯 하다.

다만, 경북에 비중이 낮은 까닭은 아마 경북의 고령에만 집중되다 보니 경북 전체로는 그 비율이 떨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레전드님의 부계하플로 검사 결과로 O2b1(47z)이 나왔고, 성씨에 따른 한국인집단의 Y 염색체 DNA 다형의 내용을 보면, 신씨에서 O2b가 44%, O2b1이 30%가 나왔다는 점을 고려하여 고령 신씨의 주력 하플로는 O2b1이 아닐까...추정된다.

그리고, 아마 고령 신씨의 선대는 신라의 호족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 지역에 지속적인 분포를 고려할 시 대가야의 일원이 아니었겠나...생각된다.

레전드님의 하플로가 일명 텐노 모달로 나왔었는데, 이러한 사실을 비추어 봐도 대가야-고대 일본간의 교류, 이동 등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텐노 모달이 아니라 대가야 모달 또는 고천원 모달로 부르는 편이 더 맞다고 본다.

^^       24) 이천 서씨(利川 徐氏)     분자인류학논단카페의 서하님이 바로 이천 서씨이다.

이천 서씨는 서신일을 중시조로 하고 있다.

서신일은 신라 52대왕인 효공왕 때 나라의 운이 다함을 알고 이천 효양산에 복성당을 짓고 은거하며 자칭 처사라 하고 후진 양성에 여생을 바쳤다 하며, 후손들이 은거지인 이천을 본관으로 하였다 한다.

일설에 고조선 준왕의 후손이라는 설도 있고, 예족의 추장 여수기의 후손이라는 설도 있다.

자세한 연혁은 서하님이 포스팅한 분자인류학논단카페의 http://cafe.daum.net/molanthro/I4rp/45을 참조하기 바란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172,072명이다.

대표적 인물로는 고려 광종 대 서필과 성종 대의 명신 서희가 있다.

인구별 분포를 보면, 전남(10만명당 1,109명), 광주(1,098명), 전북(505명) 등 호남에 집중되어 분포되는 양상을 보인다.

그다음이 수도권이며 영남 지방은 아주 낮은 분포를 보인다.

서하님의 부계하플로로는 O2b*(M176)이 나왔다.

서하님은 O2b*인점, 일설에 예족의 추장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예족의 후손이지 않을까... 추측한 바 있는데, 필자 개인적으로도 그런 추정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25) 달성 서씨(達城 徐氏)     달성 서씨는 필자 개인적으로는 외조모님의 성씨이기 때문에 애착을 갖고 있는 성씨 중 하나이다.

^^ 시조 서진은 고려에서 봉익대부, 판도판서를 지내며 나라에 공을 세워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졌다 한다.

'달성서씨세보'에 따르면 그는 신라 말기에 아간대부를 지낸 서신일의 후손으로 이천 서씨에서 분적되었으며, 서진의 아들 서기준과 손자 서영에 이르기까지 3대가 달성군을 봉작받았고, 후손들이 달성에 세거하면서 본관을 달성으로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2000년 현재 인구구는 429.353명이다.

대표적 인물로는 한말 서화가인 서병오와 독립운동가인 서상일을 들 수 있으며, 조선시대에 상신 9명, 대제학 6명, 왕비 1명을 배출한 바 있다.

인구별 분포를 보면, 순수 퍼센트로도 영남 지역에 41%가 분포하고 있으며, 인구 보정 자료를 봐도 대구(10만명당 1,631명), 울산(1,393명), 경남(1,389명), 경북(1,275명), 부산(1,273명) 등 영남 지역에 집중 분포를 보여, 대종인 이천 서씨와는 완전히 다른 분포를 보이고 있다.

아직 달성 서씨의 주력 하플로가 조사된 바는 없는데, 달성 서씨도 O2b*가 주력이라면 동일 씨족이 다른 분파로 정착한 한 예가 될 수 있지 않나 분자인류학논단카페의 꼬꼬닥님이 추측하신 바가 있다.

만일 서로 다른 하플로그룹 결과가 나온다면 분적 이야기는 낭설이 될 것이다.

      26) 청주 한씨(淸州 韓氏)     청주 한씨는 족보 상에서 굉장히 긴 역사를 자랑하는 성씨이다.

시조 한란은 고려 태조가 견훤을 정벌하려고 그의 집앞을 지날 때 칼을 차고 나가 종군하여 삼한통일의 공을 세우고 삼중대광 문하태위가 되고 개국벽상공신에 서훈되었는데, '한씨세보'에 따르면 한란은 (箕子)의 후손이라고 하였으며 한씨는 의 31세손 준왕이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남쪽으로 내려와 금마(현 익산)에 마한을 세우고 스스로 한왕이라 하고 위만에게 억류된 왕자 및 친족이 성을 한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준왕 이전에 한씨로 하였다고 한다.

마한 말기의 원왕에게 세 형제가 있었는데 마한이 망하자 우평은 고구려에서 태원 선우씨(太原 鮮于氏), 우성은 백제에서 행주 기씨(幸州 奇氏), 우량은 신라에서 청주 한씨가 되었다고 한다.

시조 한란은 우량의 31세손인 한지원에게 한만, 한간, 한란, 한영 네 형제가 있었는데 그 중 셋째 아들이라고 한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642,992명이다.

대표적 인물은 수양대군의 심복으로 계유정난을 일으킨 한명회, 역시 정난공신인 한확,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자 시인이자 승려인 한용운 등이 있다.

  인구별 분포를 보면, 비교적 전국적 분포를 보이나, 인구 보정 결과를 보면, 제주(10만명당 1,890명), 충남(1,797명), 인천(1,777명), 경기(1,648명), 대전(1,576명), 서울(1,548명), 전북(1,528명), 충북(1,492명) 등으로 수도권과 충청 지역에 많이 분포하는 양상을 보인다.

물론 제주도에 집중 분포하는 것은 잘 모르겠다.

. 이 청주 한씨가 마한 지역을 대표하는 성씨로 여겨지는 만큼, 위의 분포는 상당히 잘 맞아떨어지는 듯 하다.

그러나, 워낙 의 후손 이야기 및 선우씨, 기씨 등과 분적한 이야기 등은 신빙성이 높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아마 후대에 윤색된 이야기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성씨에 따른 한국인집단의 Y 염색체 DNA 다형에서, 한씨는 불과 30명에 불과했으나, DE-YAP이 6.7%, O2b가 16.7%, O2b1이 30%, 기타가 46.7% 나왔다.

세부적인 본관 별로 조사된 것이 없으므로 정확한 파악은 어렵겠지만, 청주 한씨의 본류가 기호 지방인 점을 고려하면 O3계열 (M117, M134등)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고, 마한 지역의 주축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O2b1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겠다.

물론,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알 것이다.

      27) 행주 기씨(幸州 奇氏)     행주 기씨는 위에서 알아본 청주 한씨와 상당히 많은 부분을 연혁에서 공유하고 있는 성씨이다.

 보았듯이, 조선의 마지막 왕인 애왕(41대 준왕을 의미)이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금마군에 마한을 세웠으며 마한 말기의 원왕의 삼형제 중 둘째인 우성이 백제에서 행주 기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이 기우성은 의 49세손으로 백제 온조왕 때 시중으로 입사했다 하며, 그후 세계가 실전되어 고려 인종 때 문하평장사를 역임한 후손 기순우를 1세조로 하고 행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21,536명이다.

대표적 인물로는 고려 시대 원나라 황비의 오빠로 위세가 대단했던 기철, 조선조의 대학자인 기대승 등이 있다.

인구별 조사에선, 광주(10만명당 241.5명), 전남(78.8명) 등 광주, 전남에 집중되는 분포를 보이고 있다.

역시 본관과 동떨어진 지역의 집중분포를 나타내고 있는데, 필자는 바로 이 세계실전이라는 말에 주목한다.

대부분의 성씨에서 나타나는 화려한 시조 + 세계실전 + 중시조의 등장... 뭐 이런 시나리오인데,, 이런 경우 대부분 화려한 시조의 이야기는 허구라고 본다.

그 이전의 세계가 실전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때부터 그 집안이 시작된 것이다.

. 그래서, 이 집안 역시 고려 인종 때 광주, 전남 즉, 마한을 근거로 발생한 집안이 과거에 마한 및 그 이전의 조선까지 이야기를 윤색한 것이 아닐까...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한국 희귀성씨 자료에서 행주 기씨는 단 한명이 조사되었는데 O2b가 아니었고, 행주 기씨가 아닌 성주 기씨도 한 명 있었지만 이 분도 O2b가 아닌 것으로 나왔다.

그렇다면, O3계열이나 C3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축구선수 기성용도 행주 기씨인 것으로 보이는데, 순전히 필자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C3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28) 광산 김씨(光山 金氏)     광산 김씨는 조선 시대에 총 265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였으며, 정승이 5명, 대제학이 7명, 청백리가 4명, 왕비가 1명이 나와 조선 시대에 발군의 활약을 한 명문이다.

시조 김흥광은 신라 45대 신무왕의 셋째 아들로, 신라가 장차 국난이 있을 것을 미리 알고 경주를 떠나 광산현 서일동(현 담양군 평장동)에 터를 잡았고 그의 후손들이 선조의 세거지인 광산(광주)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왔다.

그의 후손들이 누대에 걸쳐 평장사(平章事, 정2품 벼슬)가 계속 8명이 배출되자 속인들이 그곳을 평장동이라 불렀다 한다.

2000년 현재 총인구수는 837,008명에 달한다.

대표적 인물로는 예학의 태두로 여겨지는 학자 사계 김장생, 가인으로 청구영언을 지은 김천택, 구운몽, 사씨남정기의 저자 김만중,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덕령 등이 있다.

인구별 분포를 보면, 광주(10만명당 5,166명), 제주(4,211명), 전남(3,476명), 전북(2,722명), 대전(2,319명) 등의 순서로 나타나며, 역시 본관과 밀접한 상관 관계를 보이고 있다.

 분자인류학논단카페에도 광산 김씨 분이 계신데, 아마 부계하플로가 C3가 나온 것으로 기억된다.

물론, 아직 많은 sample이 모인 것이 아니므로, 확대 해석은 금물이겠으나, C3가 주력 하플로가 아닐까 추측되는 바이다.

      29) 안동 김씨(安東 金氏)     안동 김씨는 잘 알다시피 역사적으로 볼 때 고려 말기에서 조선 중기까지 명성을 떨쳤던 대표적인 명문 중 하나이다.

시조 김숙승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은열의 둘째 아들로 고려 때 공부시랑, 평장사를 지냈다.

중시조(1세) 김방경은 경순왕의 9세손으로 고려 원종 때의 명장으로 삼별초와 왜구를 섬멸하여 정란정국공신으로 벼슬이 시중, 삼중대광첨의중찬, 판전리사사, 도원수에 이르고 상락군에 봉해졌다.

이 안동 김씨는 선평계(宣平系)의 안동 김씨와 혼동을 피하기 위해, 신안동, 구안동으로 구분하는데, 바로 위에 언급한 성씨는 구안동 김씨가 되겠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425.264명이다.

대표적 인물로는 세조 때 우의정을 지낸 김질, 임진왜란 때의 무신 김시민, 인조 때 역모죄로 처형된 김자점, 그리고 말이 필요없는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 백범 김구가 있다.

반면, 신안동 김씨는 신라말 경애왕 때 고창군(안동의 고호)의 성주로 견훤의 토벌에 앞장서 개국 공신이 된 김선평의 후손으로 본관을 안동으로 하였으며, 조선 중기에 도정을 지낸 김극효를 중시조(1세)로 하고 있으며, 인구수는 2000년 현재 47,702명이며 대표적 인물로는 우의정 김상용, 좌의정 김상헌을 배출하여 세도가문으로서의 기층을 다지게 되고, 신안동 김씨를 다른 말로 장동(壯洞) 김씨라고 불리게 되며, 이후 김조순의 딸이 순조비가 되면서 이들의 자손들이 정승, 판서를 독차지하게 되었다.

이 밖에, 김삿갓으로 유명한 김병연, 구한말 개혁가 김옥균, 독립운동가이자 장군 김좌진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서는 구안동 김씨의 자료만을 제시하였다.

인구별 자료를 보면, 충북(10만명당 1,732명), 경북(1,533명), 대구(1,314명), 강원(1,079명) 등으로 안동 권씨와 유사한 안동 주변 지역에 집중 분포를 보인다.

안동 김씨 역시 다른 본관 김씨들과 마찬가지로 부계하플로그룹이 조사된 적은 없다.

      30) 진주 강씨(晋州 姜氏)     진주 강씨는 역시 많은 인구를 보유한 대성으로, 시조 강이식은 고구려 도원수를 지냈으며, 597년 고구려 영양왕 8년에 수나라 문제가 군사 30만을 이끌고 침략하자 정병 5만으로 임유관의 대전에서 단번에 격퇴하고, 603년 수나라 양제가 200만 대군으로 침략할 때 요동성, 살수 등의 전쟁에서 수나라 군사들을 격파하는 데 공을 많이 세웠다.

그의 후손인 강진이 진양후(진주)에 봉해지며 본관을 진주로 하게 되었다.

이후 여러 분파로 나뉘었는데, 강민첨 장군을 파조로 하는 은열공파, 귀주대첩의 영웅 강감찬 장군을 파조로 하는 인헌공파 등이 있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966,710명에 달한다.

대표적 인물로, 세종 때 집현전직제학 등으로 일하며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한 강희안, 세조 때 영의정 강맹경, 정묘호란의 주역 강홍립, 시서화로 유명한 강세황, 일본인 총독에게 수류탄을 던진 강우규 의사 등이 있다.

인구별 분포를 보면, 제주(10만명당 5,242명), 경남(3,518명), 부산(2,687명), 전남(2,453명), 전북(2,409명), 광주(2,146명), 대전(2,132명), 울산(2,019명) 등으로 제주도와 경남, 전남등 남해안 지역에 집중 분포하는 양상을 보인다.

역시 본관과 유사한 분포를 보인다.

..해석이 가능하겠다.

분자인류학논단카페의 회원이신 단군님의 본관이 바로 진주 강씨인데,, 부계하플로 검사 결과 C*가 나왔다.

상당히 드문 결과로 여겨지는데, 성씨에 따른 한국인집단의 Y 염색체 DNA 다형에 조사된 30명의 강씨 샘플에서는, O2b*가 23.3%, 기타가 76.6%가 나왔다.

역시 주류는 O2b가 아닐 것으로 생각되며, 아마 C계열(C3가 많겠죠?)로 생각된다.

지난번 단군님도 진주 강씨가 워낙 인구도 많고 분파도 많은데, 각 분파별로 거의 서로 다른 3개의 성씨가 결합되었고, 각 분파별로 서로 다른 결과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듯이, 서로 다른 계통의 복합(예) C*, C3...)일 가능성이 많다.

아무래도 주류는 C3가 아닐까...추측되는 바이다.

강호동의 경우도 아마 진주 강씨일텐데, 그 체격과 생김새 등을 고려할 때 아무래도 몽골에서 보이는 북방계...즉 C3가 아닐까 상상이 된다 (물론 생김새만으로 판단은 비과학이겠지만,,^^).           총 60개 본관별 성씨 중, 순흥 안씨, 평산 신씨, 고령 신씨, 이천 서씨, 달성 서씨, 청주 한씨, 행주 기씨. 광산 김씨, 안동 김씨, 진주 강씨(http://blog.daum.net/halment/43)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번엔 그 4번째 시간이다.

 모든 성씨의 왼쪽의 그림은 그 성씨의 지역별 퍼센트를 나타낸 그래프이며, 오른쪽 그림은 그 지역의 인구로 보정하여 나타낸 (즉, 인구 10만명 당 몇 명이냐로 나타냈다), 상대적 지역 분포에 대한 그래프가 되겠다.

모든 자료는 2000년 기준이다.

통계청 인구자료과 www.surname.info의 성씨별 자료를 참조하여 분석하였다.

      31) 덕수 이씨(德水 李氏)     덕수 이씨의 시조는 고려 신호위중랑장 이돈수이다.

아들 이양준이 신종 대에 은청광록대부, 동지추밀원사 등에 추증된 바 있으며, 1241년 (고종 28년)에 남성시에 급제한 이소는 시조 이돈수의 손자로서 그의 맏아들 이윤온이 봉익대부, 밀직사, 판도판서, 상호군 등을 역임한 후 선충결절공신 벽상삼한삼중대광으로 덕수부원군에 추증되었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덕수로 하게 되었다.

덕수는 경기도 개풍군 (현 이북)에 소재하고 있다.

덕수 이씨는 조선에서 문과 급제자 105명, 상신 7명, 대제학 5명, 공신 4명, 청백리 2명을 배출한 명문이며, 중종-영조대에 이르는 약 300년간 전성기였다.

이들은 문인파계와 무인파계의 두 집안으로 갈라진 것이 특색이 되겠다.

 2000년 현재 총인구수는 50,486명이다.

대표적 인물로는, 선조 때의 대제학을 지낸 성리학의 양대 산맥인 율곡 이이,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충무공 이순신 등을 들 수 있다.

인구별 자료를 보면, 덕수 이씨는 충남(10만명당 223명), 대전(172명), 인천(167명), 충북(155명), 경기(151명), 서울(146명), 강원(133명) 등으로, 수도권 및 충청 지방에 집중되는 분포를 보인다.

순수 퍼센트로도, 수도권에 64%, 충청에 18%로 이 두 지역에 4/5가 넘는 비율을 보인다.

지역적으로 본다면, 전형적인 백제계로 생각된다.

FamilytreeDNA Korea Project의 한 덕수 이씨분의 부계하플로 결과는 O3a2c1a(M117)이 나왔다.

분자인류학논단카페의 초재님의 말씀으론, 중국에선 그와 같은 유형을 보기 어렵고, 우리나라에서도 주로 충청도, 서울지역, 일본 전역에 분포하는 것을 보아 백제인들의 혈통이라고 생각된다고 하였으며, 백제M117이라고 명명한 적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http://cafe.daum.net/molanthro/I4rp/15을 참조하면 되겠다.

물론, 저 분만이 덕수 이씨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므로, 여러 sample을 모아봐야 정확한 판단이 가능할 듯 하다.

      32) 청해 이씨(靑海 李氏)     청해 이씨는 시조가 조선 개국공신 이지란으로서, 필자가 예전 포스팅 "청해 이씨의 시조와 본관의 유래 및 하플로 추정은?"에서 어느 정도 언급한 바 있다.

자세한 연혁은 http://blog.daum.net/halment/7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들은 조선에서 문과 급제자 7명을 배출하였으며, 주요 인물로는 조선조에 병조판서로 추증된 이중로가 있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12,002명이다.

 평남 양덕군 양덕면, 쌍룡면과 함남 북청군 속후면, 북청면에 그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한다.

인구 분포 자료를 보면, 경기(10만명당 46.7명), 서울(39.3명), 강원(36.4명), 인천(32.4명), 충남(28.9명), 대전(23.1명), 충북(16.5명) 등의 분포로, 수도권 및 충청 지역에 집중되는 분포를 보여, 마치 덕수 이씨와도 비슷하나 좀더 북쪽에 밀집되는 경향을 보인다.

만일, 북한의 청해 이씨를 조사하면, 집성촌의 위치를 고려하여 많이 나올 것인가? 워낙 인구수도 적은 데다 아직까지 청해 이씨의 부계하플로에 대한 조사는 없다.

그러나, 퉁두란의 후손으로 여진족의 혈통을 이어 받은 것이 확실해 보이는 성씨이므로, 이들의 부계하플로를 추정해 본다면, C3a나 O2b*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33) 강릉 김씨(江陵 金氏)     이번에는 강릉 김씨이다.

시조 김주원은 신라 29대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5세손으로, 777년 혜공왕 13년 이찬으로 시중이 되었고, 785년 선덕왕 6년에 왕이 후손이 없이 죽자 군신회의 끝에 김주원이 왕으로 추대되었으나 알천(閼川) 북쪽에 살던 김주원이 갑자기 큰비가 내려 알천을 건너지 못하여 입궐을 못하게 되자 이는 하늘의 뜻이라 여겨 즉위를 포기하였다 한다.

따라서, 내물왕의 12세손이며 각간으로 김주원보다 직급이 아래였던 김경신(원성왕)이 먼저 입궐하여 왕에 즉위한 뒤, 비가 그친 다음 김주원이 대궐에 들어가자 원성왕은 그에게 즉위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사양하고 강릉에 내려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 한다.

그래서, 원성왕은 그에게 명주군왕(현 강릉)에 봉하였으며, 후손들이 강릉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165,963명이다.

대표적 인물로는 고려 예종 때 평장사를 지낸 김인존, 조선 세조때의 생육신이자 금오신화의 저자 김시습 등이 있다.

인구별 자료를 보면, 순수 강원도에만 22%의 강릉 김씨가 몰려 있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띄는 점이다.

인구 보정 자료에서도, 강원(10만명당 2,420명)으로, 타지역[충북(559명), 경기(429명), 인천(412명), 충남(407명), 서울(360명)]을 압도하고 있다.

역시 본관과 지역 분포의 상관 관계가 매우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시 강릉 김씨만의 부계하플로는 조사된 바는 없으나, 경주 김씨의 후예가 확실하다면, C3 or O2b*가 나올 것이다.

대부분의 집안이 그렇듯이, 경주 김씨의 후예를 내세운 쪽(실제로 아니지만)이라 하더라도, 강원도의 유난히 많은 O2b*를 고려한다면, O2b*가 나올 가능성이 좀 더 있지 않을까?       34) 전주 김씨(全州 金氏)     이번엔 전주 김씨이다.

시조 김태서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김은열의 8세손이다.

그는 1254년(고려 고종 41년) 몽골의 침입으로 식읍인 경주에서 분관하여 전주를 본관으로 하였다.

그는 추밀원부사, 상장군, 이부상서, 문하시랑, 평장사, 보문각, 대제학 등의 벼슬을 역임하였으며 완산군(현 전주)에 봉해졌기 때문에 후손들이 본관을 전주로 하였다 한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57,979명이다.

이 전주 김씨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바로...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삼부자를 들 수 있겠다.

이들 때문에 전주 김씨가 유명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집성촌도 전주 근처가 아닌, 함북 명천군, 평북 후창군, 평양시, 함남 흥남시, 평북 초산군 등에 위치하고 있다.

인구 분포 자료를 보면, 강원(10만명당 232명), 서울(184명), 경기(173명), 인천(165명) 등의 순서로 중북부에 집중되고, 오히려 본관 지역인 전북(90명), 전남(35명), 광주(27명) 등 호남 지역엔 아주 낮은 분포를 보여 본관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집안도 집성촌을 고려하여 북한 지역을 조사한다면, 오히려 더 많지 않겠나 추측되는데,, 따라서 이 전주 김씨가 신라 경순왕의 후손일 가능성은 떨어진다.

.고 생각된다.

한창 몽골 칩입기에 북한 지역에서 위와 같은 스토리로 창성한 뒤 "전주"가 본관이다.

.고 내세웠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아니면, 정말 전주를 기반으로 생긴 집안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북한 지역으로 이주했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사민정책 등)...고 볼 수도 있겠다.

북한 김일성 일가가 해온 짓을 본다면 용서받지 못할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한 나라를 수십년동안 지배해온 지배력을 생각한다면, 이들의 부계하플로가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35) 의성 김씨(義城 金氏)     이번엔 의성 김씨에 대해 알아보자. 시조 김석은 신라 경순왕의 다섯째 아들이며, 고려 태조 왕건의 외손자이기도 해 의성군(義城君)에 봉해졌기 때문에 후손들이 본관을 의성으로 하였다 한다.

8세손 김공우의 아들 대에서 크게 번창하여 세도가문의 기틀을 다졌는데 맏아들 김용비, 둘째 아들 김용필, 막내 아들 김용주 형제대에 이르러 파가 갈리고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253,309명이다.

대표적 인물로는 무관으로 고려 우왕때 홍건적을 격퇴한 데 큰 공을 세운 김광부, 대제학을 지낸 학자 김안국, 부제학을 지냈으며 임진왜란 전 조선통신사 부사를 역임했던 김성일, 독립운동가이자 유학자인 김창숙, 독립운동가인 김동삼 등이 있다.

인구별 자료를 보면, 단순 퍼센트로도, 영남 지방에 49%라는 높은 분포를 보여 본관과 인구분포간의 높은 상관관계를 알 수 있다.

인구 보정 자료를 보아도, 대구(10만명당 1,750명), 경북(1,481명), 울산(637명), 충북(558명), 부산(530명) 등으로 영남 지역에 집중 분포하고 있다.

의성 김씨 역시 영남 지방을 기반으로 위에 나온 김성일 등을 배출한 명문으로, 남인에 속했다.

따라서,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는 제 집안인 풍산 류가와 마찬가지로 세력이 약해졌는데.. 그래서 그런지 전국적으로 많이 못 뻗고 그대로 영남 지역에 남아있는게 아닌가^^ 추측된다.

의성 김씨 역시 다른 김씨 본관과 마찬가지로, 경주 김씨에서 분파되었는지는 다소 의문시된다.

따라서 김공우의 아들대부터의 역사부터 믿을만하지 않나...생각된다.

역시 의성 김씨만의 부계하플로에 대해선 조사된 바는 없다.

  Y search라고 부계하플로를 모아놓은 FamilytreeDNA와 연동이 되는 자료가 있는데, 의성 출신 김씨분의 부계하플로 결과로 O2b*가 나왔다.

물론 이분이 의성 김씨 분인지, 그냥 의성에 사는 김씨 분인지 확실치 않으므로 확대 해석은 금물이겠다.

      36) 경주 배씨(慶州 裵氏)     전에 신라 6부 촌장의 성씨였던, 경주 이씨, 경주 정씨, 경주 최씨에 대해 알아보았던 적이 있다.

이번엔 역시 신라 6부 촌장 중 한 성씨인 경주 배씨에 대해 알아보겠다.

경주 배씨의 기원은 박혁거세 탄생 신화에 나오는 신라 6부 촌장 중 한 사람인 금산 가리촌장 지타(只他)가 박혁거세를 신라 초대왕으로 추대하고 총재태사에 올랐다.

그 후 32년(유리이사금 9년)에 금산 가리촌을 한지부로 고치고 성을 배씨로 하사하였다.

후에 한지부가 경주로 이름이 바뀌어서 본관을 경주로 하였다 한다.

그러나, 그 후의 기록이 실전되어, 배현경을 중시조로 하고 있으나 배현경은 원래 성이 없이 이름이 백옥(白玉)이었으며 나중에 성을 배씨라고 했다고 한다.

중시조 배현경은 담력이 크고 용맹하며 지략이 뛰어나 궁예가 태봉을 세울 때 이를 도와 기장에 이르렀으나, 궁예의 폭정이 날로 심해지자 당시 동료 기장이었던 신숭겸, 복지겸, 홍유 등과 함께 궁예를 축출하기로 하고 왕건을 고려 태조로 옹립하고 개국 일등원훈에 서훈되었으며 '고려사'에 고려 개국 4공신의 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 배씨는 모두 지타의 후손이었으나 자손이 번성함에 따라 본관과 파가 나뉘어져 김해(분성), 성산, 달성, 흥해, 협계, 화순, 함흥 배씨 등이 있으며, 대동보를 부정하고 독립적으로 족보를 만든 파도 있다 한다.

그런데, 당연히 경주 배씨가 대종으로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했겠거니 생각했으나, 실은 2000년 현재, 성주 배씨(90.239명), 김해(분성) 배씨(71,268명), 달성 배씨(61,104명), 성산 배씨(36,164명), 흥해 배씨(29,210명) 다음으로 경주 배씨(22,069명)는 인구가 예상외로 적었다.

하지만, 족보 등을 봤을 때는 경주 배씨가 대종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대표적 인물로는, 이성계의 조선 개국 1등 공신으로 영의정을 지낸 배극렴, 임진왜란 시 경상우수사 등을 지낸 배흥립 등이 있다.

인구별 자료를 보면, 예상과는 달리 전국적으로 비교적 고른 분포를 보인다.

인구별 보정 자료를 보면, 인천(10만명당 70명), 경북(58명), 경기(57명), 서울(51명), 충남(45명), 전남(42명)... 등의 분포를 보인다.

물론, 경주가 있는 경북 지역에도 어느 정도 분포는 하지만, 타 경주를 기반으로 하는 성씨와 비교한다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따라서, 타 신라 6부 촌장의 후손 성씨와도 마찬가지지만, 이 경주 배씨 역시 기록의 실전이 중요한 포인트인것 같고, 배현경부터의 역사만을 봐야 할 것 같다.

따라서, 위와 같은 분포를 나타낸다.

..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배씨에 대한 부계하플로 자료는 아직까지 애석하지만, 알 수 없다.

      37) 수원 백씨(水原 白氏)     이번엔 수원 백씨이다.

시조 백우경은 중국 소주 사람으로 황제 헌원의 16세손인 을병의 후손이라 한다.

그는 780년(신라 선덕왕 1년)에 우리나라서 계림의 자옥산 아래에 정착하여 살면서 신라 때 좌복사공대사도에 이르렀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신라 54대 경명왕 때 중랑장을 지낸 백창직을 중시조로 하며 1세 조상으로 하고 있다.

본관의 유래는 중시조 백창직의 증손인 백명휘가 고려 때 대사마대장군으로 수원군에 봉해졌다는 설과 백창직의 9세손인 백천장이 중국에서 이부상서를 거쳐 우승상으로 수성백에 봉해졌고 고려때 수원백에 봉해져서 수원으로 하였다는 두 가지의 설이 있다.

다른 염포, 부여, 대흥 백씨도 모두 수원 백씨에서 분파된 성씨라 한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316,535명이다.

대표적 인물로는 안향의 문인이었으며 성리학을 전파하는 데 큰 공을 세운 백이정, 조선 중기의 명신 백인걸 등이 있다.

충남 부여군, 경북 예천군, 경남 거창군, 경남 고성군, 황해도 장연군, 평남 순천군 등에 그 집성촌이 위치하고 있다.

인구별 자료를 보면, 경주 배씨와 유사하게, 비?u적 전국적으로 균등한 분포를 보인다.

대구(10만명당 839명), 전북(807명), 경남(790명), 대전(719명), 광주(709명), 부산(705명)...의 순서를 보이나, 대체로 비슷한 분포를 보인다.

 역갤에 올라온 부계하플로라고 분자인류학논단카페의 꼬꼬닥님이 올려 주신 자료에 보면, 수원 백씨분의 부계하플로로 C3b(Z1338+)가 나왔다.

자세한 내용은 http://cafe.daum.net/molanthro/I4mk/79를 참조하면 되겠다.

물론 이분만이 수원 백씨를 대표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많은 sample이 모여야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오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족보에서 중국 헌원 어쩌고 저쩌고...이야기가 나온다면, 이것은 거의 사실이 아닌 것으로 생각해도 되겠다.

최근 조선시대에 발생한 일도 확실치 않을진대, 어찌 그 헌원시대 특히 바다 건너 중국 땅 이야기를 알 것인가? 수원 백씨도 백창직 시대 이후만이 믿을 만하다고 생각된다.

성씨에 따른 한국인집단의 Y 염색체 DNA 다형에 보면, 백씨 20명 중, O2b가 40%, O2b1이 5%, 기타가 55%가 나왔다.

물론, 본관에 따라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원 백씨만의 부계하플로의 추측은 어려우나, 수원 백씨가 백씨의 대종인 점, 기타가 55%로 많이 나온 점등을 고려할 때 이들의 주력하플로가 C3b일지도 모르겠다.

      38) 경주 설씨(慶州 薛氏)     역시 신라 6부 촌장 중 한 성씨였던 경주 설씨에 대해 알아보겠다.

시조 설거백은 당시 진한 땅이었던 지금의 경북 월성군 천북면 일대의 명호산 고야촌을 다스리던 촌장으로, 신라 유리이사금 9년 습비부로 개칭되면서 다른 다섯 촌장들과 함께 각각 사성 받은 것으로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한반도의 동남단에 자리잡고 뿌리를 내린 설씨는 근원이 같으면서도 본관을 달리하는 경주 설씨와 순창(淳昌) 설씨로 분적되어 계대되고 있다.

또 다른 문헌에서는, 설씨의 기원은 신라가 생기기 이전의 박혁거세 탄생 신화에 나오는 6촌장의 한 사람인 명활산 고야촌의 호진(虎珍)이 다섯 촌장과 함께 박혁거세를 신라 초대왕으로 추대하고 그후 32년 (신라 유리이사금 9년)에 6촌이 6부로 개칭을 하고, 명활산 고야촌을 습비부로 바꿔 부르고 성을 설씨로 하사했다 하며, 습비부가 경주에 속하므로 본관을 경주로 하고, 시조를 설지덕으로 하였다 하고, 36대손인 설자승이 고려 인종 때 예부시랑으로 순화(순창)백에 봉해지자 본관을 순창으로 바꾸었으나, 설귀창을 파조로 하는 개성파는 원래의 경주를 본관으로 하였다 한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순창 설씨가 27,926명, 경주 설씨가 6,060명으로 오히려 순창 설씨가 훨씬 더 많다.

대표적 인물로는 신라 이두문의 창시자 설총, 계유정난 때 공을 세운 설계조 등이 있다.

이 포스팅에서는 가문의 순수성(?)을 더 간직한 것으로 보이는 경주 설씨에 대해서만 언급하겠다.

인구별 자료를 보면, 경북(10만명당 29.8명), 울산(21.3명), 부산(16.8명), 대구(15.3명) 등으로, 영남 지역에 많은 분포를 보인다.

이 설씨의 부계하플로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조사된 바 없다.

순창 설씨와 경주 설씨가 서로 같은 하플로일지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일듯 하다.

      39) 경주 설씨(慶州 ? or 楔 or 卨氏)     이번엔 한자가 다른 경주 설씨에 대해 알아보겠는데, 굉장히 특이한 성씨이며, 경우에 따라서 위에 제시된 세 가지 한자로 된 성씨를 쓰고 있다.

시조 설손(楔遜)은 원래 회홀(回忽, 위구르) 사람으로 조상이 설련하(?輦河, 셀렝가)에 대대로 살아거 성을 설이라 했다 하며, 태전 설극직의 8대손이라고 한다.

설손은 원나라에 귀화하여 단주태수 벼슬을 지냈으며 학문이 깊고 문장이 뛰어난 시인이었다.

그가 상을 당하여 대령(大寧)에 가 있었는데, 1358년(고려 공민왕 7년)에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우리나라에 귀화하자 공민왕이 그를 대접하여 부원후에 봉했다.

그의 아들 설장수가 경주로 본관을 하사 받아 본관을 경주로 하였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3,298명에 불과하다.

대표적 인물로 설손의 손자로 세종 때 부제학을 지낸 설순이 있다.

이 성씨는 대표적인 귀화 성씨로서, 여러 문헌 및 정황을 고려할 시 덕수 장씨와 더불어 위구르에서의 귀화가 확실한 성씨로 보인다.

인구별 분포를 보면, 비록 인구수가 워낙 적어 정확한 판단은 어렵지만, 전북(10만명당 17.9명), 광주(17.6명), 전남(11.5명) 등으로 호남에 집중된 분포를 보인다.

역시 본관과는 동떨어진 분포를 보여주고 있는데, 설순의 후손들이 어느 시점에 집단적으로 호남 지방으로 이주했는 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의 부계하플로 역시 아쉽게도, 조사된 바는 없다.

이들이 위구르 출신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J, R, G 등의 서역 하플로가 나오지 않을까...상상을 해본다.

      40) 덕수 장씨(德水 張氏)     덕수 장씨 역시 경주 설씨(慶州 卨氏)와 마찬가지로, 회홀계 성씨로 꼽히는 성씨이다.

시조 장순룡(張舜龍)은 원나라 필도적 경의 아들로 '고려사' '덕수장씨족보' 등에 의하면 그는 본례 회홀계 사람으로 제국공주를 따라 고려에 귀화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참의참리에 이르렀던 것으로 나타나 있으며, 금자광록대부, 문하찬성사 등을 지내고 덕성부원군에 봉해진 후 덕수현을 식읍으로 하사받음으로써 후손들이 순룡을 1세조로 하고 덕수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다른 문헌에는, 시조 장백창(張伯昌, 일명 장순룡)은 아랍계(이슬람) 사람으로 원나라 세조 때 필도치라는 벼슬을 지냈는데, 1275년(고려 충렬왕 1년) 충렬왕비인 제국공주를 배행하여 고려에 왔다가 덕수현에 살면서 위 벼슬을 지내고 덕수부원군에 봉해졌으며 덕수현을 식읍으로 하사받아 후손들이 덕수를 본관으로 하였다고 하고 있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21,006명이며, 대표적 인물로는 조선 인조 때 우의정을 지낸 조선시대 한문학의 대가로 꼽히는 장유, 중종반정 때 정국공신 1등에 오른 장정 등이 있다.

인구별 분포를 보면, 충남(10만명당 102명), 인천(99명), 경기(73명), 서울(52명) 등으로 덕수 이씨의 경우와 비슷하게, 수도권과 충청 지역 분포를 보인다.

그렇다고 백제계 성씨는 아니겠지?^^ 일설에 미남 배우 장동건이 덕수 장씨라는 설이 있다.

물론 사실관계는 확인된 바는 없는 것 같다.

만일, 장동건이 이 덕수 장씨가 맞다면, 그 서구적 얼굴이 회홀계와 연관이 있다고 봐야겠다.

이들의 부계하플로 역시 조사된 바는 없지만, 조사한다면 J, R, G 중에 나오지 않을까...추측해 본다.

        총 60개 본관별 성씨 중, 덕수 이씨, 청해 이씨, 강릉 김씨, 전주 김씨, 의성 김씨, 경주 배씨, 수원 백씨, 경주 설씨, 경주 설씨, 덕수 장씨(http://blog.daum.net/halment/44)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번엔 그 5번째 시간이다.

 모든 성씨의 왼쪽의 그림은 그 성씨의 지역별 퍼센트를 나타낸 그래프이며, 오른쪽 그림은 그 지역의 인구로 보정하여 나타낸 (즉, 인구 10만명 당 몇 명이냐로 나타냈다), 상대적 지역 분포에 대한 그래프가 되겠다.

모든 자료는 2000년 기준이다.

통계청 인구자료과 www.surname.info의 성씨별 자료를 참조하여 분석하였다.

      41) 은진 송씨(恩津 宋氏)     은진 송씨는 조선조에서 상신 2명, 문형 1명, 호당 3명, 문과 급제자 74명을 배출한 명문으로, 그 시조는 송대원(宋大源)이다.

그는 여산(礪山) 송씨의 시조 송유익(宋惟翊)의 아우 송천익의 후손으로, 대대로 충남 논산시 은진에서 살아왔으나, 송천익 이후의 세계가 실전되어 고려 때 판원사를 지내고 은진군에 봉해진 송대원을 시조 및 1세조로 하고 본관을 은진이라 했다 한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208,816명이다.

대표적 인물로는, 서인이었으며 예학과 성리학에 밝았던 송준길, 좌의정을 지냈으며 기호학파였으며 예학자로 남인과의 예송논쟁으로 유명한 송시열 등이 있다.

참고로, 여산 송씨는 전북 익산시 여산을 본거지로 하고 있는 성씨로, 위에서 이야기했듯 시조는 송유익이며, 고려 때 진사로 은청광록대부 추밀원부사였으며, 중시조로 송유익의 4세손인 송례는 고려 원종 때 문하시중 판전리사사상장군으로 여양부원군(여산)에 봉해지자 후손들이 송례를 중시조 및 1세조로 하고, 여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한다.

대표적 인물로는 단종의 국구였으나 세조의 왕위찬탈 때 죽음을 당한 송현수, 임진왜란 때의 장수 송상현, 성리학의 대가였던 송익필 등이 있고, 2000년 현재 인구수는 232,753명으로, 은진 송씨보다 조금 더 많다.

은진 송씨의 지역별 인구 분포를 보면, 본거지인 논산과 가까운 대전(10만명당 1,747명)이 가장 많고, 충북(723명), 경남(630명), 부산(586명), 울산(562명), 충남(465명) 등의 순서를 보인다.

역시 본관과 유사한 분포 형태를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FamilytreeDNA의 Korea Project에서 은진 송씨 분의 자료가 있는데, O3a2(P201)이 나왔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http://cafe.daum.net/molanthro/I4rp/16를 참조하기 바란다.

      42) 청송 심씨(靑松 沈氏)     청송 심씨는 조선 시대에 고관대작에 무수한 사람들이 올라 명성을 크게 떨친 집안이 되겠다.

시조 심홍부(沈洪孚)는 고려 때 문림랑 위위시승을 역임하였으며, 그의 증손 or 4세손인 심덕부(沈德符)가 고려 충숙왕 때 왜구의 침입을 평정하고 공민왕 때는 중흥 9공신의 한명으로 문하시중이 되어 청성(청송의 고호) 충의백에 봉해졌으며, 조선이 개국되자 청성군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청송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212,717명이다.

대표적 인물로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고려 때 문하시중(조선조로 치면 영의정)을 지낸 심덕부, 그의 아들이자 세종의 국구 및 영의정을 지냈으며, 태종에게 미움을 받아 사사된 심온, 심온의 아들이자 세조 때 영의정에 오른 심회 (이들 삼부자는 조선 최초의 3대가 모두 영의정에 오른 진기록을 세운다), 영의정을 역시 지낸 심연원, 심통원과 심열, 동인의 김효원과 갈라져 서인의 거두가 된 영의정 출신의 심의겸, 조선 중기의 화가 심사정 등 굉장히 많다.

전남 장성군, 강원도 인제군, 강원도 김화군, 경북 청송군 등에 집성촌이 있다.

지역별 인구분포를 보면, 강원(10만명당 720명), 울산(565명), 경남(525명), 경기(507명), 인천(491명), 광주(485명), 충북(480명) 등으로 대체로 전국적으로 균등한 분포를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씨의 부계하플로 자료는 아쉽게도, 아직 없다.

      43) 개성 왕씨(開城 王氏)     개성 왕씨는 고려의 왕족으로 한 때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조선의 개국과 함께 처절히 몰락해 간 비운의 성씨이기도 하다.

개성 왕씨는 누대에 걸쳐 송악지방에 세거한 호족의 집안으로 고려 때 원덕대왕에 추존된 왕국조(王國祖)를 시조로 하고 있다.

그의 증손인 태조 왕건(王建)은 후삼국을 평정하고 500년 고려 왕조를 열었지요. 이제부터 이들의 연원을 밝혀 보겠다.

중국 황제 헌원씨의 17세손 조명이 유누와 함께 우리나라에 와서 지금의 평양 일토산(一土山) 아래에 정착하였으며, 그 후 조명의 후손 수긍이 가 왕이 되었을 때 왕씨 성을 하사받았다 한다.

그 후 수긍의 57세손 왕염의 13세손 왕몽(王蒙)으로 이어져 왔는데 왕몽은 신라 건국초기에 시중을 지냈다 하며, 당시 비결에 '일토초가위왕(一土草家爲王)'이라 하였으므로, 그 화가 미칠까 두려워 왕몽은 일곱째 아들 왕림을 데리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10년간 수도하며 전(田), 신(申), 차(車)씨 등으로 세 번 변성하였으며, 차무일(車無一)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차무일의 셋째 아들 왕식시(王式時)의 후손이 바로 왕건이라 한다.

왕건은 송악 사람으로 20세인 901년 궁예가 후고구려를 세우고 왕이 되었을 때 궁예를 도와 913년 시중이 되었다.

그러나, 궁예가 폭정을 일삼자 당시 기장이었던 신숭겸, 복지겸, 홍유, 유금필, 배현경 등과 함께 궁예를 축출하고 고려를 개국한 뒤 삼국을 통일하고 번영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이성계(李成桂)가 위화도 회군으로 조선을 개국하면서 멸족을 당하게 되자 옥(玉), 금(琴), 마(馬), 전(田), 전(全), 김(金) 등으로 행세하며 숨어서 혈통을 유지하게 되었다 하며, 조선 정조 때 비로소 문헌 등을 조사하여 왕씨로 다시 성을 바꾸어 세보를 만들고 왕건이 수도로 정한 송도(개성)을 본관으로 하고 왕원(王垣)을 1세조로 하였다 한다.

.. 정말 대서사시이다.

필자가 지난번 '문화 류씨와 연안 차씨 동원설(http://blog.daum.net/halment/6)이라는 포스팅도 했고 '한국인 본관/성씨의 지역별 그래프 - (1) 풍산 류씨, 기계 유씨 등(http://blog.daum.net/halment/41)'에서도 언급했던 이야기지만, 왕씨-류씨-차씨가 서로 얽히는 그야말로 방대한 스케일의 작품이다.

필자가 누차 이야기 했듯이, 중국 황제 헌원씨 이야기는 후대의 조작이 틀림없다 (그 때의 역사가 기록되었을 리 만무하다!!). 그리고, 정말 전설적인 '일토초가위왕'이라든지, 성을 바꾼 이야기라든지... 몇 대손, 몇 대손 했지만, 계산해보면 시대상으로 전혀 맞지 않으며 57세손이라니... 지어낸 이야기임에 틀림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고려 왕조 개창시 그 합당한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거기에 타 성씨들도 편승했지 않나 싶고... 2000년 현재 인구수는 19,808명에 불과하다.

조선 시대 이후로 대표적 인물은 꼽기 어렵다.

인구 분포를 보면, 전북(74.9명), 경기(53.5명), 서울(52.3명), 인천(47.6명), 경남(47명), 부산(46.6명) 등으로 전북에 조금 많은 경향은 보이지만, 딱히 어디에 집중되고 있다.

..는 아닌 것 같다.

아마 조선 조에 탄압받은 흔적이거나, 조선 시대 말기에 혹시나 불순한 의도(?)로 개성 왕씨를 내세운 사람들이 많아 그런건 아닌지...공연히 의심해 본다.

FamilytreeDNA의 개성 왕씨분의 부계 하플로 결과론 O3계열인데, O3a1c(JST002611) 또는 O3a2(P201)로 추정된다.

자세한 내용은 http://cafe.daum.net/molanthro/I4mk/111의 댓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44) 파평 윤씨(坡平 尹氏)     파평 윤씨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서 수많은 왕비 및 신하들을 배출한 명문이다.

시조는 윤신달(尹莘達)이며, 태조 왕건을 도와 삼국을 통일하고 고려 건국에 공을 세운 개국공신으로 태자 교육에 관여하는 삼중대광태사에 봉해졌다.

그의 5세손인 윤관(尹瓘) 장군은 고려 문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1107년(고려 예종 3년) 별무반이라는 특수 부대를 만들 뒤 여진족 정벌에 나서 북진정책을 완수한 공으로 문하시중에 오르고 영평현(파평의 별호) 개국백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본관을 파평으로 하였다.

윤신달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경기도 파평(파주)에 있는 파평산 기슭에 용연이라는 연못이 있었는데, 어느날 이 용연에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내리면서 천둥, 벼락이 쳤다.

마을 사람들은 놀라서 향불을 피우고 기도를 올린지 사흘째, 윤온이라는 할머니가 연못 한 가운데 금궤짝이 떠 있는 것을 보고 건져보니 한 아이가 찬란한 금빛 광채 속에 누워 있었으며, 어깨 위에는 붉은 사마귀가 나 있고 양쪽 겨드랑이엔 81개의 잉어 비늘이 있었으며, 발에는 황홀한 빛을 내는 7개의 검은 점이 있었다 한다.

윤온 할머니는 이 아이를 거두어 길렀으며 할머니의 성을 따 윤씨라 하였다.

잉어에 대한 전설은 윤관의 일대기에도 또 나오는데, 윤관이 함흥 선덕진 광포에서 거란과의 전쟁 중에 거란군의 포위망을 뚫고 달아나 강가에 이르렀을 때 잉어떼의 도움으로 무사히 탈출하였으며, 적군이 뒤쫓아와 강가에 이르자 잉어떼는 어느새 없어져 버렸다 한다.

그래서, 파평 윤씨는 잉어의 자손이며 또한 선조에게 도움을 준 은혜에 보답한다는 뜻으로 잉어를 먹지 않는다 한다.

^^ 참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713,947명으로 대단히 많다.

대표적 인물로는 위에서 말한 윤관, 조선초 영의정에 오른 윤필상, 우의정에 오른 윤지완 ,항일 독립 투사인 윤봉길 등이 있다.

또한,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박근혜 당선인의 수석대변인 윤창중씨도 파평 윤씨다(윤봉길 의사와 36촌이라나...). 인구 분포를 보면, 대성 답게 호남에 약간 적은 분포를 보이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전국구 분포를 보인다.

대구(10만명당 1,777명), 충남(1,748명), 경북(1,747명), 충북(1,732명), 대전(1,711명), 울산(1,721명) 등의 순서를 보이고 있다.

성씨에 따른 한국인집단의 Y 염색체 DNA 다형을 보면, 윤씨 29명 중 대다수(96.6%)가 기타로 나왔고, 단 1명만이 O2b1(47z)가 나온 바 있다.

사견이지만, 아마 이들의 주류는 C3가 아닐까 상상해 본다.

      45) 해평 윤씨(海平 尹氏)     해평 윤씨는 조선 중기 이후 두각을 나타낸 집안으로서, 시조 윤군정(尹君正)은 고려 고종, 원종 때 금자광록대부, 수사공, 상서좌복야, 공부판사를 지냈는데, 고려 인종 때 문하시중을 지낸 윤신준의 후손으로 전한다.

시조의 아들 윤만비는 충렬왕 때 기사일등공신으로 부지밀직사사를 역임했으며, 시조의 손자 윤석이 고려 충숙왕 때 충근절의동덕찬화보정공신, 벽상삼중대광, 도첨의사, 우의정, 판전리사사로 해평부원군(경북 구미시 해평면)에 봉해져, 후손들이 해평을 본관으로 하였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그리 많지 않아, 26,341명이다.

대표적 인물로는, 조선 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 윤은보, 서인으로 선조 때 영의정에 오른 윤두수, 그의 아우로 좌찬성, 이조판서 등을 지내고 기호학파였던 윤근수, 순종왕비인 윤비, 한말 개화가인 윤치호, 국회부의장, 민주공화당 의장을 지낸 윤치영, 윤치호의 종질 및 윤치영의 조카이자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던 윤보선, 윤치영의 손자인 KBS 아나운서 윤인구 등이 있다.

인구별 자료에서, 충북(10만명당 152.6명), 경기(82.6명), 충남(80.6명), 서울(77.3명), 대전(73.7명) 등으로 본관의 세거지와는 다르게 수도권과 충청 지역에 집중 분포를 보인다.

해평 윤씨만의 부계하플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위에 보았던 윤씨 sample에서 O2b+O2b1+D2가 아닌 기타가 많았던 점, 그리고 이들의 분포지역으로 미루어 이들의 주요 하플로는 파평 윤씨와는 달리, O3a2c1a(M117)이 아닐까 자유롭게 상상해본다.

      46) 고성 이씨(固城 李氏)     고성 이씨는 대표적인 중국 귀화 성씨로 꼽혔던 성씨이다.

시조 이황(李璜)은 한나라 문제 때의 시중 이반의 24세손이라 하며, 이반의 후손 중 한 사람이 한 무제가 고조선을 침공했을 때 도호원수로 왔다가 전쟁이 끝난 뒤 귀국하지 않고 머물러 살았다고 전하나, 문헌이 실전되어 누구인지는 상고할 수 없다 한다.

시조 이황은 고려 덕종 때 문과에 급제, 밀직부사를 지내고 거란의 침입 당시 군공을 세우고 문종조에 호부상서에 올라 철령군에 봉해졌다.

그리고 그의 8세손 이우(李瑀)가 충숙왕 때 네 고을의 목사를 지내고 철성군에 봉해졌으므로 본관을 철성으로 했다가 이우의 손자 이인(李寅)이 문하평리를 지내고 고성군(경남 고성군)에 봉해져 고성으로 개관하였다.

2000년 현재 인구는 84,383명이다.

대표적 인물로는, 세종대 좌의정을 지낸 이원, 인조반정 후 난을 일으킨 것으로 유명한 이괄 등을 들 수 있다.

인구별 자료를 보면, 대구(10만명당 356명), 경남(341명), 부산(324명), 경북(284명), 제주(230명), 울산(210명), 대전(205명) 등의 순서로 역시 본관과 밀접한 분포를 보이고 있다.

호남 지역은 전체에서 3%밖에 차지하고 있지 않다.

이 고성 이씨는 중국 귀화 성씨로 손꼽혀 왔지만, 한나라 무제.. 등 지나치게 옛날 이야기로 보아,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그리고, 이후 문헌이 실전되었다.

..하는 점에서 결정적으로 이들이 토종 성씨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고려 덕종 때의 시조 이황 내지는 후손 이우, 이인때부터의 이야기가 이들의 역사로 봐야 할 듯 하다.

고성 이씨만의 부계하플로는 아쉽게도 조사된 바는 없다.

O2b\*\/O2b1 이 나온다면 재미있을까?^^ 또한, 고성 이씨에 대해 분자인류학논단카페에 쓰인 글이 하나 있으니, 참조해 보면 도움이 될라 생각한다(http://cafe.daum.net/molanthro/I4r5/3).       47) 성주 이씨(星州 李氏)     성주 이씨는 고려 말에 성세를 보였고, 조선 개국에 참여하여 개국공신 2명을 배출하고, 문과급제자 107명, 상신 1명을 배출한 명문이다.

시조는 신라 말의 명재상 이순유(李純由)로, 이순유는 후에 이극신(李克臣)으로 개명했는데, 신라에서 재상까지 올랐으나 신라가 망하자 고려에 벼슬하지 않고 절개를 지켰으며, 경산부(성주의 고호)에 세거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1세손 이장경(李長庚)의 아들 5형제 [이백년(李百年), 이천년(李千年), 이만년(李萬年), 이억년(李億年), 이조년(李兆年)]이 모두 문과에 급제, 현달함으로써 이때부터 자손이 번성, 많은 인물이 나왔는데 그 가운데서도 이조년의 후손이 가장 번창하였다 한다.

이장경을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면서 중흥조인 그가 농서군공에 추봉되었으므로 농서 이씨라고도 하였으나, 충렬왕 때에 개칭된 성주목(경북 성주군)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186,188명이다.

대표적 인물로는,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로 유명한 이조년, 홍건적과 왜구 격퇴에 큰 공을 세운 고려 말기의 이인임, 세종 대의 영의정 이직, 고려 말 성리학자였던 이숭인 등이 있다.

인구별 자료를 보면, 단순 퍼센트로도 영남지역이 47%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영남 성씨이며, 인구 보정 자료를 보면, 대구(10만명당 1,181명), 경남(653명), 경북(572명), 부산(551명), 대전(391명), 울산(359명), 충북(330명) 등의 분포를 보여, 역시 본관 인접 지역에서의 높은 분포율을 볼 수 있다.

이 성주 이씨 단독의 부계하플로에 대해선 아직 조사된 바가 없습니다.

추정컨대, 분포 지역과 매치해 본다면, O2b1이 유력하지 않나...생각한다.

      48) 연안 이씨(延安 李氏)     이 연안 이씨 역시 고성 이씨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귀화했다고 여겨지는 대표적 성씨이다.

시조는 당나라 고종 때의 장군이었던 이무(李茂)이다.

그는 660년(신라 태종무열왕 7년) 소정방이 신라의 동맹군으로 백제를 쳐들어왔을 때 중랑장으로 있다가 신라에 공을 세워 연안백(황해도 연백군 연안)에 봉해진 후 귀화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계대가 실전되어 상계는 상고할 수 없으며, 그의 후손에서 이습홍, 이현려, 이지를 각각 중시조로 하는 3파로 나뉘어진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145,440명이다.

대표적 인물로는, 치평요람의 저자 이석형, 인조반정 공신 이귀, 좌의정을 지낸 이정구, 영의정을 지낸 이시백 등이 있는데, 연안 이씨는 조선에서 문과 급제자 250명, 상신 8명, 대제학 7명, 청백리 6명을 배출한 명문 중에 명문으로 꼽힌다.

그 중 이현려의 자손인 판소부감사공파가 단연 뛰어나 상신 8명, 대제학 6명, 청백리 1명, 공신 10여명을 배출하였다.

인구별 조사를 보면, 전북(10만명당 529명), 대전(489명), 충북(437명), 인천(384명), 서울(370명), 경기(370명), 충남(367명) 등 수도권, 충청, 전북 등 기호 지방에 집중되는 분포를 보인다.

아무래도 이북 지역인 연안을 연고로 하고 있으므로, 그런 분포를 보이지 않나 생각이 되고, 북한 지역에도 상당히 많은 분포를 하고 있으리라 추측된다.

반면에, 같은 호남이라도 전남(133명), 광주(104명)은 낮은 분포를 보인다.

조선조 대표적 명문인 연안 이씨 단독의 부계하플로는 아직까지 조사된 바는 없다.

      49) 인동 장씨(仁同 張氏)     인동 장씨는 장씨 중 대종으로 손꼽히는 집안이다.

시조는 2명이 있는데, 한명은 장계(張桂)로, 장정필(張貞弼)의 14세손이며, 고려 말 금자광록대부 예문관대제학을 지내고 옥산군(경북 구미시 인동)에 봉해졌다.

장계가 인동현 발영전에 터를 잡은 이래, 7세에 이르기까지 후손들이 번영하여 200여년을 세거하였다 한다.

또 한명은 장금용(張金用)으로, 고려 초 삼중대광 신호위상장군을 지냈으며, 역시 장정필의 후손이라 한다.

후손들이 옥산에 세거하며 본관을 옥산으로 하였으며, 그 후 조선 말에 옥산이 인동으로 바뀌면서 본관을 인동으로 고쳤으나, 일부는 옥산을 본관으로 고집하기도 한다고 한다.

대표적인 집성촌은 인동 장씨의 '천년의 터전'이라고 할 수 있는 경북 구미시 인동동 일대인데, 시조 장금용이 이곳에 처음 터를 잡은 이래 38대를 내려오며, 한 때는 인근 칠곡, 선산 등지에 2000여호를 헤아릴 정도로 번창했으나, 1976년 구미공단의 개발로 구미시가 발족, 인동동으로 편입되면서 급속히 해체되고 말았다 한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591,315명에 이르며, 대표적 인물로는, 장계계에는 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 장순손이 있으며, 장금용계에는 조선 선조 대의 대표적 성리학자로 영의정에 추증된 장현광, 이괄의 난을 평정한 장만,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장붕익(이 집안은 난 평정의 달인들인가^^), 우국 언론인으로 '시일야방성대곡'으로 유명한 장지연 등이 있다.

인구별 분포를 보면, 전국적으로 균등한 분포를 보이는 가운데, 대구(10만명당 1,709명), 경북(1,680명), 전남(1,440명), 울산(1,403명), 부산(1,322명), 충북(1,307명) 등의 순서를 보인다.

구미 개발 이후 이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그런 걸까?^^ 물론, 농담이다.

성씨에 따른 한국인집단의 Y 염색체 DNA 다형에 보면, 24명의 장씨분들에 대한 조사가 있었는데, N1c가 4.2%, O2b*가 20.8%, O2b1이 4.2%, 기타가 70.8%가 나와, 대표적인 비(非)-O2b계 성씨로 보인다.

물론, 인동 장씨 단독의 부계하플로에 대한 조사는 없지만, 장씨의 절대 다수가 인동 장씨인 점을 고려하면, 이들은 대략 O3계열이지 않을까 (O3a1c[JST002611]?) 추정된다.

      50) 절강 장씨(浙江 張氏)     이번 회 마지막인 절강 장씨는 조금 특이한 성씨이다.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귀화 성씨로 볼 수 있는데,, 시조 장해빈(張海濱)은 중국 항주의 속현인 오강현 사람으로 정유재란 때 원군(援軍)의 장군 오유충의 휘하 장수로 와서 울산의 증성 싸움에서 유탄을 맞아 귀국하지 못하고 경북 군위에 정착하여 살았다고 한다.

그의 후손들이 군위에 세거해 오면서, 시조의 출생지인 절강을 본관으로 삼았다.

역사상 높은 벼슬을 지낸 사람은 없지만, 약 400년 동안 3000명의 자손을 번창시킴으로써 임진왜란 때 귀화한 성씨치고는 비교적 대성(大姓)으로 발전하였다 할 수 있겠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3,300명이다.

인구수가 너무 적어 정확한 분석은 어렵지만, 대구(10만명당 47.0명), 경북(23.0명), 울산(10.8명) 등 대구를 중심으로 집중 분포하고 있는 점을 볼 때, 역시 경북 군위에 세거했다는 것은 사실로 여겨진다.

절대 퍼센트로도 영남지역에 64%가 분포하고 있다.

이들의 부계하플로는 당연히 측정된 바는 없다.

이들이 중국 기원의 장씨라 하더라도, 장씨만 해도 다양한 하플로가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예측하기는 힘이 들 것이다.

중국인에서 가장 많은 O3a1c(JST002611)를 예측해 볼 수도 있고, 중국 절강성에서 넘어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의외로 O1이나 O2a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겠다.

          60개 본관별 성씨 중, 은진 송씨, 청송 심씨, 개성 왕씨, 파평 윤씨, 해평 윤씨, 고성 이씨, 성주 이씨, 연안 이씨, 인동 장씨, 절강 장씨(http://blog.daum.net/halment/45)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이번은 그 마지막 시간이 되겠다.

 모든 성씨의 왼쪽의 그림은 그 성씨의 지역별 퍼센트를 나타낸 그래프이며, 오른쪽 그림은 그 지역의 인구로 보정하여 나타낸 (즉, 인구 10만명 당 몇 명이냐로 나타냈다), 상대적 지역 분포에 대한 그래프가 되겠다.

모든 자료는 2000년 기준이다.

통계청 인구자료과 www.surname.info의 성씨별 자료를 참조하여 분석하였다.

      51) 동래 정씨(東萊 鄭氏)     동래 정씨는 정씨 중 가장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성씨이며, 조선 시대에 정승 17명, 대제학 2명, 문과 급제자 198명을 배출했는데 상신 17명은 왕손인 전주 이씨의 22명에 버금가는 숫자이다.

시조는 정회문(鄭繪文)으로, 신라의 전신인 사로의 6촌 중 취산 진지촌장 지백호(智伯虎)의 원손(遠孫) 정회문을 원조로 하고 있으나, 문헌이 실전되어 연대와 자세한 사적 및 전후세계를 상고할 수 없다 한다.

따라서, 고려 초 동래군 보윤호장을 지낸 정지원(鄭之遠)을 1세조로 하여 누대에 걸쳐 정착 세거해 온 거칠소부(현 부산 동래)가 동래로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이 동래 정씨는 왕족인 전주 이씨와 세도척족이었던 안동 김씨 다음으로 많은 정승을 배출하면서도 외척으로 세력을 얻지 않았다는 점이 특징이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442,363명이다.

대표적 인물로는, '정과정곡(鄭瓜亭曲)'으로 유명한 정서, 직제학공파 중엔 중종 대의 영의정을 지낸 정광필, 인조-효종 대의 영의정 정태화, 현종 대의 좌의정 정지화, 교서랑공파 중엔 세조 때 좌익공신이었던 정창손, 대호군파 중엔 선조 대의 모반사건으로 몰락에 이르게 한 장본인인 정여립 등이 있다.

인구별 자료를 보면, 대구(10만명당 1,827명), 부산(1,569명), 울산(1,493명), 전북(1,381명), 경북(1,303명), 제주(1,226명), 경남(1,205명) 등의 순서를 보여, 대체로 본관과 가까운 분포 비율을 보이고 있다.

눈에 띄이는 것은 전북에 다소 많은 분포를 보인다는 점인데, 의외로 호남지역에서 전북에만 많이 분포하지, 전남과 광주는 거의 분포하지 않는 양상을 보인다.

그 이유는 자세히 모르겠으나, 정여립이 전주 출신이라는 점이 힌트가 아닐까 한다.

 동래 정씨는 경주 정씨와 마찬가지로 오랜 역사를 내세우고 있으나, 타 집안과 마찬가지로 문헌의 실전, 전후세계 상고할 수 없음 따위의 이야기가 나오고, 결국은 고려초 동래에서 시작했다는 것이 아마 실제의 창성인 듯 하다.

 성씨에 따른 한국인집단의 Y 염색체 DNA 다형에서, 정씨는 27명이 조사되었는데, N1c가 7.4%, O2b*가 11.1%, O2b1이 7.4%, 기타가 74.1%가 나왔고, 초재님의 한국인 정씨 부계하플로 구성에서, 45명의 정씨 중 C3가 24%, O2b*가 17%, O2b1이 11%, O3a1c가 11%, O3a2c1이 9%, O3a2c1a가 16% 나왔다.

물론, 본관별로 조사된 것이 아니므로,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겠으나, C3에 눈길이 가는 것은 왜일까?       52) 화산 이씨(花山 李氏)     화산 이씨는 역사를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상당히 관심이 가는 성씨로, 바로 베트남으로부터 귀화한 성씨로 여겨진다.

시조 이용상(李龍祥)은 안남국왕 이천조의 아들로 고려 고종 때 망명하여 화산군(황해도 금천군 화산)에 봉해지고, 웅진의 화산을 식읍으로 하사 받아 정착 세거하였다 한다.

따라서, 그의 후손들이 화산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2000년 현재 인구는 1,775명에 불과하며, 황해도 신천군과 벽성군에 그 집성촌이 있다.

대표적 인물로 고려 때 대제학을 지낸 이용상의 아들 이간, 조선 때 한성부윤을 지낸 이맹운 등이 있다.

인구별 자료를 보면, 워낙 인구수가 적어 표본 수가 부족하긴 하나, 인천(10만명당 8.6명), 서울(4.8명), 경기(4.8명) 등 수도권에 조금 더 많은 분포를 보이지 않나 한다.

황해도에 그 집성촌이 있는 점, 우리나라에서도 수도권에 많이 분포하고 있는 점 등을 보아 황해도를 중심으로 한 북한 지역에는 좀 더 많이 분포하지 않나 생각이 된다.

성씨에 따른 한국인집단의 Y 염색체 DNA 다형에서, 화산 이씨 20명을 조사하였는데, 그들 중 O2b1이 65%, 기타가 35%가 나와 충격을 준 바 있다.

이들이 정말 베트남에서 왔다면 O2b1이 이만큼 많이 나올리가 없으니까.. 물론, 우리나라나 일본에서 발생한 O2b1이 베트남에서 정권을 잡은 뒤, 다시 우리나라에 금의환향했다.

..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지 않을까? 필자는 우리나라 황해도 화산을 본거지로 한 토종의 한 집안이 창성한 뒤 베트남에서 온 왕족의 후손으로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중국은 너무 많이 써먹었으니까...여러 집안에서).       53) 우록 김씨(友鹿 金氏)     우록 김씨 역시 상당히 흥미로운 성씨로, 일본으로부터 귀화한 성씨로 여겨진다.

시조 김충선(金忠善)은 본래 일본인으로 사야가(沙也可)라고 불리던 사람이다.

그가 임진왜란 때 일본군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선봉장으로 30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우리나라에 침공해 왔으나 조선의 문물과 인정, 풍속에 감탄하여 경상도 병마절도사 박진에게 귀순한 뒤 귀화하였다.

그가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과 1627년(인조 5년) 병자호란 때 전공을 세우자 권율과 한준겸이 왕에게 간청하여 정2품 자헌대부에 올랐으며 이름을 김충선으로 하사받아 김해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현재 그의 후손들은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에 많이 살고 있는데, 워낙 대성인 김해 김씨와의 혼동을 피해 우록 김씨라고도 불린다.

현재 인구수로 사성 김해 김씨가 199,544명, 우록 김씨로 나타낸 분들이 468명이다.

물론, 사성 김해 김씨 중 김충선의 후손이 있겠으나, 너무 많은 인구수를 볼 때 대부분은 대성인 김해 김씨처럼 후에 득성하신 분들의 후손이 아닐까 생각되어, 여기서는 우록 김씨만 대상으로 데이터를 제시하겠다.

인구별 자료를 보면, 역시 대구(10만명당 7.82명)에 절대적으로 많으며, 경북(1.91명), 부산(1.39명), 경남(1.21명) 등의 순서를 보인다.

퍼센트로만 봐도, 대구에 41%를 비롯하여 영남 지역에 무려 73%가 분포하고 있다.

성씨에 따른 한국인집단의 Y 염색체 DNA 다형에서, 우록 김씨는 모두 46명이 조사되었는데, O2b*가 10,9%, 기타가 89.1%가 나왔다.

아마 우록 김씨의 조상이 일본인 사야가가 맞다고 가정한다면, 대다수가 기타가 나왔다는 점은 이들의 주류가 O3계열이거나 C3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사야가가 일본 큐슈 출신이라 하므로, 큐슈 지역에 다소 높은 C3와도 맞아떨어지는 듯 하다.

O3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이들에 대해 다시 정밀하게 조사를 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       54) 창녕 조씨(昌寧 曺氏)     창녕 조씨는 타 조씨(趙氏)와는 한자가 다른'조'를 성으로 쓰고 있는 집안이다.

시조 조계룡(曺繼龍)은 신라 26대 진평왕의 사위였다 하며, '조씨세보'에는 그의 탄생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싣고 있다.

한림학사 이광옥의 딸 예향이 아기 때의 속병이 자라면서 더욱 고질이 되었는데, 하루는 스님이 와서 "창녕 화왕산 용지에 가서 빌어보라"하여 예향이 그 말대로 기도 드리러 목욕재개하고 못가에 이르자 갑자기 운무가 일어 대낮에도 캄캄하다가 이윽고 운무가 걷히며 병이 낫고 그로부터 태기가 있었다 한다.

그 후 예향의 꿈에 한 장부가 나타나 "나는 동해 신룡의 아들 옥결로 이 아이의 아비이다.

아이를 잘 기르면 크게는 공후가 될 것이요, 적어도 경상은 틀림없을 것이며, 자손이 만세에 번성할 것이다"고 하였다.

산월이 되어 과연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겨드랑이에 '曺'자 모양의 문채가 있어 이광옥이 이 사실을 임금에 알리니 임금이 불러 보고 신기하게 여겨 조씨 성을 내리고 이름을 계룡이라 지어 주었다 한다.

그러나 이후 세계가 실전되어 신라 말에 아간시중을 지내고 고려 태조 왕건의 딸 덕공공주와 결혼하여 부마가 된 조겸(曺謙)을 중시조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창녕 조씨는 전남 화순군, 진도군, 경남 산청군, 합천군, 경북 영천시 일원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고, 2000년 현재 인구수는 338,222명이다.

대표적 인물로는,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 격퇴에 큰 공을 세운 조민수, 조선 세조때 영의정이었던 조석문, 남명학파를 창시한 대학자 남명 조식, 민족주의운동을 전개하다 납북된 조만식 등이 있다.

인구별 자료를 보면, 비교적 전국적으로 균등한 분포를 보이고 있고, 그 중에서도 광주(10만명당 1,540명), 경남(1,069명), 전남(1,068명), 대구(914명), 부산(902명) 등의 남부 지방에 우세한 분포를 보인다.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지만, 대체로 본관과 유사한 분포를 보이고, 집성촌과 들어맞는다.

..고 생각하면 되겠다.

이 집안 역시 세계가 실전되었다고 이야기 하고 있으므로, 역시 조겸부터 이 집안의 역사로 보면 되겠다.

 창녕 조씨의 부계하플로 분석은 아쉽게도 이루어진 바가 없지만, 남부 지역에 높은 분포를 보이는 것으로 보아, O2b1이나 C3가 나오지 않을까 추측한다.

      55) 신안 주씨(新安 朱氏)     신안 주씨는 주씨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성씨로 역시 귀화한 것으로 여겨지는 성씨이다.

시조 주잠(朱潛)은 원래 송나라 신안현 사람으로 성리학을 대성한 남송의 대유학자 주문공 주희(朱熹)의 증손이라 한다.

그는 당시 북방의 몽골족이 세력을 떨치며 송나라를 자주 쳐들어 왔으나 무능한 조정 대신들은 뚜렷한 대책도 없이 화의에만 급급하자 아들 주여경을 데리고 고려에 들어와서 나주에 자리잡고 살았다 한다.

신안은 중국의 지명을 의미하며, 2000년 현재 인구수는 151,227명이다.

대표적 인물로는, 고려 충렬왕 당시 판도판서를 지낸 주열이 있다.

인구별 분포를 보면, 전남(10만명당 615명), 광주(419명), 부산(368명), 경남(365명), 울산(337명) 등의 분포를 보여, 남부 지역에 집중되는 분포를 보인다.

한국 희귀성씨 자료에서, 신안 주씨는 5명 중, 2명은 O2b, 3명은 미분석이 나왔다.

분자인류학논단의 회원 중 신안 주씨분이 있는데, C3가 나왔다.

아마, 신안 주씨도 2가지 계열이 있지 않나 싶다.

지역적 분포를 보아도, C3 또는 O2b1이지 않겠나 추측되는 바입니다.

C3는 주희의 자손으로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O2b로 나오신 분들은 도저히 주희의 자손은 아니겠지?       56) 해주 최씨(海州 崔氏)     이번엔 해주 최씨이다.

시조 최온(崔溫)은 널리 알려진 해동공자 최충(崔沖)의 아버지로 해주 대령군 수양산 밑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하며 그곳의 별칭이 고죽군이라 고죽 최씨라고도 한다.

시조 최온은 일찍이 해주 목민관으로 선정을 베풀어 이름을 떨쳤으며 문장으로도 명성이 높았고 뒤에 판사부사를 지냈다.

이러한 모든 것이 해주에서 이루어졌고 또 여러 대에 결쳐서 해주에서 살았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해주로 하여 대를 계승하고 있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181,840명이다.

대표적 인물로는, 위에서도 언급한 최온의 아들 최충이 있다.

최충은 고려 목종 때 문과에 장원으로 합격하였으며 문종 때 문하시중을 지내고 은퇴하여 개경에 최초의 사학인 구제학당을 열어 많은 영재를 배출하였다.

이 밖에도 집현전 학자이며 훈민정음 창제에 반대하였으며 청백리로 널리 알려진 최만리, 논개의 남편으로 진주에서 전사한 최경회 등이 있다.

탤런트 최불암도 이 성씨이다.

인구별 자료를 보면, 인천(10만명당 772명), 충남(718명), 광주(580명), 경기(505명), 서울(469명), 강원(445명) 순으로, 광주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분포를 보인다.

이북 지역을 조사만 할 수 있다면, 해주를 중심으로 한 이북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최씨의 하플로는 조사된 바가 있지만, 긱 본관별로 조사된 바는 없다.

해주 최씨는 분자인류학논단카페 회원 사이에선, 대표적인 북방형 부계하플로를 보이지 않을까 보고 있다.

아마 M134 또는 C3가 나오지 않을까... 필자는 경주 최씨는 O2b 및 JST002611위주, 전주 최씨는 분자인류학논단카페의 초재님 말씀대로 JST002611과 M134위주로 보고 있다.

      57) 장수 황씨(長水 黃氏)     장수 황씨는 그 유명한 황희 정승을 배출한 가문이다.

시조 황경(黃瓊)은 신라 경순왕의 부마로 벼슬은 시중을 지냈으며, 그 후 10세손인 황공유가 고려 명종 때 전중감으로 이의방의 난이 있은 후로 전북 장수로 낙향하였고, 15세손 황감평이 후학을 위한 덕망 있는 학자였다는 것 외에는 18세손 황석부(黃石富)까지는 고증할 자료가 없다 한다.

중시조 황석부는 황희의 증조부로 사후에 호조참의로 추증되었다.

따라서 후손들이 황석부를 1세조로 하고 있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146,575명이다.

인구수로는 창원(昌原) 황씨(252,814명)에 비해 적다.

대표적 인물로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정승의 지위에 24년간, 그 중 영의정에 18년간 있었던 황희, 황희의 아들로 우의정을 지낸 황치신, 역시 황희의 아들로 영의정에 오른 황수신, 선조 때 임진왜란전 일본 통신사 정사로 풍신수길의 침략을 우려한 황윤길 등이 있다.

인구별 자료를 보면, 전북(10만명당 588명), 광주(562명), 전남(540명), 대전(512명) 등으로 역시 본거지인 전북 장수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높은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성씨에 따른 한국인집단의 Y 염색체 DNA 다형에서, 황씨는 총 25명이 조사되었는데, N1c가 4%, O2b*가 12%, O2b1이 12%, 기타가 72%로 역시 다수의 황씨 부계하플로는 비(非)-O2b를 보이고 있다.

      58) 남양 홍씨(南陽 洪氏) - 당홍계(唐洪系)     남양 홍씨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 진다.

바로 당홍계와 토홍계(土洪系)인데, 당홍계의 시조인 홍천하(洪天河)는 고구려 27대 왕인 영류왕 때 당나라 8학사의 한 사람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유학과 문화를 혁신시켰다 하며, 신라 27대왕인 선덕여왕 때 유학의 발전에 공을 세워 당성백(경기도 화성시 남양)에 봉해졌고 태자태사가 되었으며 본관을 당성으로 하였으며, 당성 이후 남양으로 지명이 바뀌자 남양으로 본관을 하고 있다.

그리고 고려 개국공신이며 삼중대광태사인 홍은열(洪殷悅)을 중시조로 1세조로 하여 대를 잇고 있다.

홍은열은 원래 이름이 홍유(洪儒)였는데 고려 개국에 공을 세워 태조가 '은(殷)나라 부열(傅說, 은나라 고종 때의 명재상)과 같다'고 하여 이름을 은열로 하사했다고 한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379,708명이다.

대표적 인물로는, 숙종 때 예조판서를 지낸 홍처량, 영조 때 이조판서 홍계희, 현종 때 영의정을 지내고 청백리에 오른 홍명하 등을 들 수 있다.

반면, 토홍계는 홍선행(洪先幸)을 시조로 하며, 당성(남양)에 대대로 살아온 선비의 집안으로 고려 때 금오위 별장동정을 지냈으며 가문의 기틀을 잡아 가세를 크게 번창시켰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남양으로 하였다 한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30,662명에 불과하나, 조선 시대에 상신 2명, 문형 1명, 청백리 3명, 부마 1명, 공신 3명을 배출한 명문이며, 대표적 인물로는 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 홍언필,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홍언필의 아들 홍섬, 병자로한 때 주전파였으며 3학사의 한 명인 홍익한, 실학자인 홍대용, 작곡가 홍난파 등이 있다.

인구별 자료를 보면, 의외로 제주(10만명당 1,787명)이 가장 많고, 강원(1,383명), 경기(1,033명), 충북(980명), 인천(962명), 서울(910명) 등으로 주로 수도권 위주의 분포를 보인다.

역시 본관과 유사한 분포를 보인다고 할 수 있겠다.

성씨에 따른 한국인집단의 Y 염색체 DNA 다형에서, 홍씨는 총 27명이었는데, O2b는 18.5%, O2b1이 11.1%, 기타가 70.4%로, 황씨의 경우와 유사하게 홍씨도 비-O2b계열의 부계하플로를 보였다.

FamilytreeDNA의 Korea Project에 올라온 본관을 알 수 없는 홍씨분의 부계하플로 결과로는 O2b*가 나왔다.

순전히 사견이지만, 풍산 홍씨나 토홍계 남양 홍씨는 O2b or O2b1, 당홍계 남양 홍씨의 주류는 O3계열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자세한 결론은 많은 샘플이 모여야 가능하리라 본다.

여담이지만, 제주와 강원에 가장 많은 분포를 보인다.

..는 데에서 이들이 N, P201 or O2b*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생각도 된다.

^^ 이들의 역사 역시 홍은열부터 시작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59) 한양 조씨(漢陽 趙氏)     한양 조씨는 조씨 중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한 성씨이다.

시조인 조지수(趙之壽)는 고려조에서 조순대부 첨의중서사를 지냈다 한다.

그러나 모든 문헌이 실전되어 거의 선대와 벼슬하던 왕조 및 생존 연대는 상고할 수 없고, 묘소의 소재도 확실하지 않아 옛날 묘소가 있었다는 함남 영흥군 서면 은곡동에 제단을 모아 춘추로 향사해왔다.

그러다가 해방 이후 내왕이 막혀 그곳 소식조차 알 길이 없게 되었다 하며, 본관은 그 후손들이 문천군 용진에서 세거하다가 조선 개국 때 한성으로 옮겨 크게 번성하였고 명문거족의 기반을 닦았기 때문에 한양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307,746명이다.

대표적 인물로는 조선 개국공신 조인옥, 조온과 기묘사화 때 사사되었으며 개혁정치로 유명한 조선 중종 때 학자 조광조 등이 있다.

인구별 자료를 보면, 충남(10만명당 986명), 충북(956명), 경기(873명), 제주(851명), 인천(846명), 강원(837명), 광주(815명) 등으로 영남 지방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균등한 분포를 보인다.

성씨에 따른 한국인집단의 Y 염색체 DNA 다형에서, 조씨는 총 14명만 조사되었는데, O2b*가 57.1%로 가장 많았고, 기타도 42.9%를 차지했다.

아마, 본관에 따른 차이가 크다는 것을 시사하는 소견으로 보이는데, 한양 조씨 역시 문헌 실전, 상고할 수 없다는 등...이들의 역사는 조선초부터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고, 이들의 세거지로 추측해 본다면, 이들의 주축은 O3계열이 아닐까 생각된다.

      60) 밀양 손씨(密陽 孫氏)     어느덧 60번째 성씨가 되었다.

바로 밀양 손씨 이야기이다.

시조는 손순(孫順)으로, 득성조 구례마의 후손으로 신라 모량리 출신이며 효행이 뛰어나 신라 흥덕왕 때 원성군에 봉군되었고 그의 장손자 손익감이 나라에 공을 세워 응천군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밀양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왔다 한다.

그 후 손부가 이부상서를 지내고 청성부원군에 봉해졌고, 손수는 병부상서를 지낸 후 청도군에 봉군되어 가문을 중흥시켰다 한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274,665명이다.

충남 당진시, 경남 밀양시, 경북 영천시 등에 집성촌이 있다.

대표적 인물로는,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탄로나서 죽음을 당한 손서륜,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손병희, 독립운동가이자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을 지낸 손일민 등이 있다.

사실 신라 6촌장 출신의 각 성씨(경주 이씨, 경주 최씨, 경주 배씨, 경주 설씨, 경주 정씨, 경주 손씨)를 언급하기 위해 다른 성씨는 다 언급했고, 처음엔 경주 손씨를 언급하려 했는데 너무 내용이 간략하여 당황했다.

경주 손씨 역시 시조는 손순으로, 손순의 손자인 손익감, 손익담, 손익원 3형제 중 손익원이 월성군(경주)에 봉해지자 본관을 경주로 했다고만 되어 있으며, 이후의 기록은 실전이라 후손인 손경원을 1세조로 하여 대를 잇고 있다 한다.

그리고 2000년 현재 인구수도 78,450명으로 밀양 손씨에 비해 적어서, 결국은 고민 끝에 밀양 손씨를 중심으로 글을 썼다.

혹시 경주 손씨분들이 있다면, 양해하기 바란다.

인구별 자료를 보면, 경남(10만명당 923명), 부산(845명), 대전(706명), 대구(686명), 광주(647명), 전남(646명), 울산(613명) 등으로, 본관인 밀양을 중심으로 남부 지방에 주로 분포하는 양상을 보인다.

성씨에 따른 한국인집단의 Y 염색체 DNA 다형에서, 손씨는 총 16명이 조사되었는데, N1c가 6.3%, O2b*가 6.3%, O2b1이 25%, 기타가 62.5%로 나왔다.

이들이 6부촌장의 후예라고 본다면,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O2b계열로 봤는데 아닐 가능성이 높으니 말이다.

필자는 이들이 남부 지방에 집중 분포한다는 점에서 C3나 O2b1이 나오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물론, 자세한 내용은 많은 샘플이 나와야 할 것이다.

              ?  그래서 인도인들은 상대방의 풀네임을 들으면 이사람이 어느지역에서 온 어느계급사람이다 를 대충 알수 있다.

성은 이름 뒤에 쓴다.

브라만,크새트리아,바이샤 계급이 쓰는 성씨가 다르고 또 지역별로도 각 주와 종족을 특징하는 성씨들이 많다는게 주목할 만하다.

내가 아는한도에서 써넣음.??????. pandey. 브라만, 북인도에 분포하며 힌디어를 쓴다.

힌디어로 학자를 뜻하는 단어인 Pandit 에서 유래된 성????. Rawat .라즈푸트 크샤트리야 계급, 주로 델리 위쪽 지역 uttarkhand,himachal pradesh 에 분포 ,힌디어 사용 .?????? Mishra. 브라만. 북인도 중에 Uttarpradesh, bihar 주에 많이 분포함?????. Sharma. 브라만. 북인도 전체에 퍼져있음, 가끔 펀자비나 벵갈리 사람들이 사용하기도 함,???? Yadav .(카스트 부정확) 이 야다브 성씨는 다른 어떤 성들보다 강하게 up 와 bihar 를 대표하는데 사실 미스라,띠와리 같은 성도 있지만 유독 이 야다브가 이 두 주를 대표하는 이유는 그 근원이 우타르프라데시의 마투라 지역,크리슈나의 후손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현재 유피,비하르 이 두지역의 집권당수들도 모두 yadav 계층들이다.

ahir,yaduvanshi 같은 성과는 동본? 관계에 있으며 소를 키우는 일이 본업이었다.

?????? Rathore. 북인도. 주로 라자스탄 지역. 라즈푸트 크샤트리야 계급의 대표 성씨라고 할수있다.

힌디어 사용.????. Rana .북인도 델리 위지역 haryana,uttarkhand 등. 힌디어 사용?????. Thakur . 북인도 , 크샤트리야 계급. 이 성씨는 지주(zamindar) 를 뜻하며 마을에서 상당히 높은 사람들이 쓰는 성씨(요즘엔 누구나 다 쓴다고...) 그래서 인도 영화나 프로그램을 보면 심심찮게 thakursahab (주인님,지주님) 이라는 단어가 들린다.

???? .Singh 싱.  전인도..인도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사람들도 오해하는데 성에 싱 이 들어갔다고 무조건 펀자비일 거라는 생각..... 물론 말도 안되는 얘기고 일단 내 친구들만 봐도 라자스탄,웃타르프라데시 같은 곳에서 온 사람들중에도 싱 이라는 성이 엄청나게 많고 지역,성별,언어 관계없이 인도 전역서 나타나는 아주아주 흔한 성이다.

.??? .kaur. 여자,펀자브 지역 시크교도들이 쓰는 성이다.

?????. 전인도,남자..  인도 전역, 말그대로 북인도부터 남인도 까지 포함한 전역에서 쓰는 성.. 주로 원래 성을 쓰고 싶지 않을때 이 꾸마르 를 써버린다.

???????.Paliwal 북인도. 브라만계층, 힌디어사용 .????????. Mukherji. 벵갈리. 벵갈지역을 특징하는 성씨 ..마라티 성씨. 마라티, 마하라슈트라 주에서 쓰이는 성씨는 특징이 유독 성씨뒤에 ,kar, E  라는 발음이 엄청 많이 들어가는데 ooo kar, ooo E 라는 게 보이면 거의 마라티라고 생각하자Nile.RajeTendulkar.masodkarSableMuraleRaneHarinamePatil . 유피 비하르의 야다브처럼 마라티를 대표하는 성씨.Shekadkar .SheteDayamaBhosle .2015년 9월 통계로 일본인의 성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건 사토, 스즈키, 타카하시 순이다.

1위 佐藤(さとう) 사토-2위 鈴木(すずき) 스즈키3위 高橋(たかはし) 타카하시4위 田中(たなか) 타나까5위 伊藤(いとう) 이토-6위 渡?(わたなべ) 와타나베7위 山本(やまもと) 야마모토8위 中村(なかむら) 나까무라9위 小林(こばやし) 코바야시10위 加藤(かとう) 카토-실제로 지금껏 받은 명함을 보면 위에 이름들이 꽤 있다.

;비지니스 매너로서 일본사람들은 처음에 만나서 항상 명함을 교환하는데 이때 명함에 새겨진 상대방의 한자 이름이 어려워서 난처한 경우가 있다.

일본사람들의 성은 무려 약 30만개나 되므로 읽기 어려운 한자가 꽤 있다.

보통 명함에 상대방이 읽을 수 있도록 후리가나로 작게 표시하지만 없는 경우, 상대방에게 읽는 법을 물어봐도 된다.

이건 실례가 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잘못읽는 게 실례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회사에서 한 중국인이 일본인 이름을 잘못부르자, 와타시노 나마에와 스! 즈! 키! 데스!! (내 이름은 스! 즈! 키! 입니다!!)라는 메일이 한통 왔다고 들은 적이 있다.

이렇듯 잘못부르면 기분이 상할 수 있으니 모를 땐 물어보고 제대로 불러주는 게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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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뚱뚱이의 도쿄일상과 일본어공간blog.naver.com/uriban002015년 9월 통계로 일본인의 성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건 사토, 스즈키, 타카하시 순이다.

1위 佐藤(さとう) 사토-2위 鈴木(すずき) 스즈키3위 高橋(たかはし) 타카하시4위 田中(たなか) 타나까5위 伊藤(いとう) 이토-6위 渡?(わたなべ) 와타나베7위 山本(やまもと) 야마모토8위 中村(なかむら) 나까무라9위 小林(こばやし) 코바야시10위 加藤(かとう) 카토-실제로 지금껏 받은 명함을 보면 위에 이름들이 꽤 있다.

;비지니스 매너로서 일본사람들은 처음에 만나서 항상 명함을 교환하는데 이때 명함에 새겨진 상대방의 한자 이름이 어려워서 난처한 경우가 있다.

일본사람들의 성은 무려 약 30만개나 되므로 읽기 어려운 한자가 꽤 있다.

보통 명함에 상대방이 읽을 수 있도록 후리가나로 작게 표시하지만 없는 경우, 상대방에게 읽는 법을 물어봐도 된다.

이건 실례가 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잘못읽는 게 실례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회사에서 한 중국인이 일본인 이름을 잘못부르자, 와타시노 나마에와 스! 즈! 키! 데스!! (내 이름은 스! 즈! 키! 입니다!!)라는 메일이 한통 왔다고 들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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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니스 매너로서 일본사람들은 처음에 만나서 항상 명함을 교환하는데 이때 명함에 새겨진 상대방의 한자 이름이 어려워서 난처한 경우가 있다.

일본사람들의 성은 무려 약 30만개나 되므로 읽기 어려운 한자가 꽤 있다.

보통 명함에 상대방이 읽을 수 있도록 후리가나로 작게 표시하지만 없는 경우, 상대방에게 읽는 법을 물어봐도 된다.

이건 실례가 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잘못읽는 게 실례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회사에서 한 중국인이 일본인 이름을 잘못부르자, 와타시노 나마에와 스! 즈! 키! 데스!! (내 이름은 스! 즈! 키! 입니다!!)라는 메일이 한통 왔다고 들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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