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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소년



요즘 독특한 구성과 명품 연들의 탄탄한 연기력으로 시그널이라는 드라마를 너무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모티브가 된 우리나라 장기 미제 사건인 이형호 유괴 살인 사건과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무전기를 통한 시공간을 넘어 과거와 현재의 형사들이 오래된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의 드라마매회를 볼 적마다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그 몰입감이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는데요실제 사건은 몇 십 년이 지나도록 전혀 범인의 윤곽을 알 수가 없어 과연 범인은 누굴까 하는 궁금증이 증폭하는데이 드라마는 가상이지만 그런 궁금증에 대한 답을 준다는 건데요 영화 살인의 추억 포스터를 보면 과연 범인이 누굴까?미치도록 잡고 싶다는 문구가 나오듯이 나쁜 짓을 한 사람은 꼭 벌을 받아야 한다는 우리네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이 드라마는 속 시원하게 범인을 잡아 주면서 대리 만족을 시켜 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시청을 하면 할수록 우리나라 3대 영구 미제 사건 중 2건을 모티브로 했기 때문에 마지막 하나인 대구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도 모티브로 해서 그 동안 잡고 싶었던 범인을 드라마에서라도 잡아주지 않을까 기대를 하는데요건국 이래 최고의 미스터리 영구 미제 사건인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이형호 유괴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범인을 잡은 것처럼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도 꼭 모티브로 해서 가상으로라도 범인을 잡아 줬으면 싶습니다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살인의 추억과 이형호 유괴 살인 사건의 그놈 목소리처럼 대구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도 영화 아이들 로 다뤄졌는데요  지금부터 그 얘기를 잠깐 하도록 하며 사진은 영화의 스틸 컷으로 대신하겠습니다이 사건은 1991년 대구에 살던 5명의 초등생이 성서 와룡산으로 개구리를 잡으러 갔다 실종 되었다고 해서 대구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으로 언론을 통해 알려졌지만 정확한 사건 명칭은 성서 초등학생 실종 사건으로 11년 뒤인 2002년 집 부근인 야산에서 유골로 발견된 영구 미제 사건입니다경찰은 단일 실종 사건으로는 최대 규모의 연인원 50만 명을 투입해서 행방을 찾았으며 잇따른 제보 또한 모두 허위로 드러났습니다전 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각종 사회단체와 기업체에서 전단지와 상품에 실종 어린이 얼굴을 인쇄 실종자 찾기운동에 동참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으며 유골로 발견되기 전까지 외계인 납치설,북한 공작원 유괴설 등 갖가지 소문만 무성한 사건이었습니다그러던 중 2002년 고등학교 신축 공사장 뒤쪽 와룡산 중턱에서 도토리를 줍던 한 시민의 의해서 유골로 발견되었고 유골 감정 결과 소년들은 타살로 결론 내려져 전국이 충격에 휩싸인 사건이기도 한데요 제가 시그널 드라마를 보면서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이 생각나는 이유는 실종 당시인 1991년에도 그 동네 근처에서 살아서 충격적이었지만 까맣게 잊고 살다가 11년 뒤인 와룡산이라는 야산에서 유골로 발견되었던 당시에도 그 동네에서 살아서인지 더더욱 충격으로 와 닿기에 드라마를 보는 내내 그 생각이 나서 이렇게 몇 자 적어 봅니다계속 개구리 잡고 싶다해서  갔는데개구리는 없어서놀기만 했다^^첫번째 사진 스스로에게 감탄 중정식 사건명은 대구 성서초등학생 살인 암매장 사건입니다.

20대 후반 30대 이상 이신 분들은 한 번쯤은들어보셨을 유명한 미제 사건으로2011년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1991년 3월 26일?선거일이라 휴일이었던 그날은?여섯 명의 아이들?(우철원,조호연,김영규,박한인,김종식,김태룡)??은 동네 집 앞에서 놀고 ?있었는데요 시끄럽다는 어른들을 말에?도롱뇽 알을 주우러 와룡상에 갔다고 합니다.

?여기서 김태룡은 아침을 먹고 가기로 하고집으로 갔고 나머지 5명의 아이들이먼저 와룡산으로 출발하고 그 뒤로5명의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목격자인 김태룡은 와룡산 입구에서?다른 아이들을 발견했지만?엄마가 멀리 나가 놀지 말라는 말에?다시 집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5명의 소년들이 와룡산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들은 몇 명 있었는데요??조호연의 형과 같은 반 친구들..?같은 반 친구인 임승훈은??같이 도롱뇽 알을 잡으러 와룡산에?올라갔는데 산 위쪽에서 ?10초 간격으로 비명을 두 번 들었다고 합니다?오후 6시를 넘겨도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자 경찰에 신고를 했고?경찰과 부모들은 아이들을 새벽까지?찾았으나 아이들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2002년 9월 26일?와룡산 기슭에서 도토리를 줍던 주민이?사람의 뼈로 보이는 물체를 확인하고?등산용 지팡이로 주변 땅을 파헤치자?어린이용 신발을 확인 경찰에 신고를 합니다.

발견 위치는 개구리 소년들의 집으로부터3.5Km 가량 떨어진 곳이며 와룡산4부 능선에 위치한 곳으로평소 사람의 통행이 거의 없는 한적한 비 등산로였습니다.

현장은 구덩이가 파인 흔적이 없었고유골 위를 마치 표식이라도 하는 것처럼20Kg 가량의 바윗돌 하나가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현장에 도착한 부모들은 처음에는?아닌 것 같다고 말을 하다가?조호연 군의 치아 보철 흔적이 발견이 되면서?개구리 소년들의 유골인 것이 확실시됩니다.

???경찰은 실종 아이들의 집에서 3.5Km 떨어짐 점과유골이 서로 엉킨 채 껴안은 모습으로드러난 점을 들어 산속에서 길을 잃어비를 피하고자 구른 웅덩이에 쪼그리고앉아 온종일 굶은 상태에서 급격히떨어지는 산속 기온에 의한 저체온증자연사한 것 같다고 발표를 합니다.

?그러나 부모들은 당시 와룡산은 밤이라도불빛을 보고 내려올 수 있고동네 아이들이 와룡산에서 길을헤맨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반박을 했습니다.

?유골 발굴 48일째 되는 날경북대학교 의과 대한 법의학교실에서소년들의 유골 5구 가운데 3구 이상의 두개골에서 사망 당시 생긴 것으로추정되는 인위적 손상 흔적을 발견개구리 소년들이 타살됐음을 발표합니다.

?2006년 범인은 잡지 못하고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됩니다.

??앞으로 이런 끔찍한 사건들은그만 일어났으면 합니다.

http://blog.naver.com/wwwjjy3/220617224638?????? ???????? ??? ????? ????? ?????? ??? ???? ??? ?? ?????? ??...blog.naver.comhttp://blog.naver.com/wwwjjy3/220617291646?????? ?????? ? ??? ?????????? ? ?? ????????? ?????.?? ? ??? ???? ?? ?? ???...blog.naver.com?close();") -->    < 사진출처 - 네이버 > - 장르 : 드라마, 가족, 사회물(경향), 미스터리- 제작년도 : 1992년- 제작사 : 길영화사- 제작국 : 대한민국- 감독 : 조금환- 각본 : 송재범- 출연 : 장덕수, 변성현, 김현수, 김선우, 이요한, 김민정, 이재은, 박지훈, 최희정,           강태기 등등..- 상영시간 : 97분- 개봉일 : 1992년 11월28일  1991년 3월 26일 실제로 발생한 대구 성서국민학교 어린이 다섯 명의 실종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이들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고 사회의 무관심을 경고하기 위해 제작된 영화.1992년 좋은 영화로 선정되었다.

실종된 개구리 소년 부모들과 30만 명에 이르는 실종 가족들에게 바친다는 조금환 감독의 의지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바람 한 점에도 마음 졸이며 자식들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부모들의 이야기를 통해 실종으로 인한 인간적 고뇌를 그렸다.

내가 이 사건을 알게된 것은 1991년 오후에 MBC에서 방송하던 한 프로그램 (MC : 임백천, 김연주)에서 대구 성서국민학교 5명의 어린이들이 대구 와룡산에서 개구리를 잡으로 간뒤 한달동안 연락이 없다는 보도를 접하게 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지금처럼 GPS나 초동 수사가 잘 이루어졌더라면 이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수도 있었고, 사건후에는 범인을 조기에 잡을수도 있었다.

자세한 사건 내용은 보면, 1991년 3월26일 실종 당시 9

13세이던 5명의 소년들이 인근 와룡산으로 개구리를 잡으러 나간 뒤 실종되었다.

[개구리 소년] 근본적 원인은 ?


 1991년 사건 당시 경찰은 그동안 연인원 약 50만 명을 동원, 이들의 행방을 찾았으나, 잘못된 제보와 소문만 무성할 뿐 지금까지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하였으며, 1993년에는 실종 어린이 부모들이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하였다.

사건 발생 후 5년이 지난 1996년에는 수사본부장이 대구경찰청 청장에서 달서경찰서장으로 바뀌고 각 경찰서에서 차출된 수사요원들도 복귀하였다.

1993년에는 실종 어린이 부모들이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하였다.

사건 발생 후 5년이 지난 1996년에는 수사본부장이 대구경찰청 청장에서 달서경찰서장으로 바뀌고 각 경찰서에서 차출된 수사요원들도 복귀하였다.

이 사건은 전국민적인 관심사로 등장하면서 어린이는 물론 우체부 등 온 국민이 개구리 소년 찾기 운동에 참여했으며, 1992년에는 이를 소재로 한 영화 "돌아오라 개구리 소년"이 제작되었다.

한때는 어떤 사람이 개구리 소년 박찬인군의 아버지인 박건서씨를 범인이라고 지목을 하면서 그 집을 경찰이 샅샅이 수색을 하였으나 시신을 찾지 못하여 그 의혹을 제기 했던 사람은 결국 무고죄로 법의 심판을 받게 된다.

사건이 발생한후 11년이 지난 2002년 9월26일 제보자 정모씨의 제보로 대구시 달서구 용산동 성산고등학교 신축 공사장에서 유골이 발견되었으나, 범인은 끝내 잡지는 못한다.

제보자였던 정모씨 (당시 40세) 신병을 확보하여 경찰에서 조사를 하였는데, 당시 문화일보 와의 만남에 따르면, "개구리 소년들은 6공 정권 당시 강경대 김기설 사건등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정권 차원에서 살해한 것" 이라고 주장한뒤 "범인들에 대해 들은 얘기를 진술하겠다"며 경찰에 자진출두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은 범인은 알아내지 못한 것이다.

제보자의 말에 따라 유골을 찾기 시작했으며, 2002년 9월26일 성산고등학교 신축공사장 뒤쪽의 와룡산 중턱에서 유골 4구와 신발 5켤레가 발견되었다.

[개구리 소년] 분석을 해보면



유골을 감정한 경북대학교 법의학팀은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을 타살로 결론 내렸으며, 2004년 3월 26일 경북대학교 병원 영안실에서 합동 장례식을 치렀다.

2006년 3월25일자로 이 사건의 공소시효가 끝남에 따라서 이 사건은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 줄거리 >종식, 영규, 찬인, 철원, 호연이는 대구 성서국민학교에 다니는 단짝들이자 집안끼리도 친하게 지내는 이웃사촌간이다.

어느날 와룡산으로 개구리를 잡으로 갔던 다섯 어린이가 함께 실종되고, 부모들은 백방으로 아이들의 흔적을 수소문 하지만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한다.

직장도 포기한 채, 오직 아이를 찾아나선 부모들은 어려움이 커질수록 더욱 굳게 뭉치지만 가슴의 응어리는 풀길이 없다.

    < 오프닝 >   요즘 독특한 구성과 명품 연들의 탄탄한 연기력으로 시그널이라는 드라마를 너무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모티브가 된 우리나라 장기 미제 사건인 이형호 유괴 살인 사건과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무전기를 통한 시공간을 넘어 과거와 현재의 형사들이 오래된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의 드라마매회를 볼 적마다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그 몰입감이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는데요실제 사건은 몇 십 년이 지나도록 전혀 범인의 윤곽을 알 수가 없어 과연 범인은 누굴까 하는 궁금증이 증폭하는데이 드라마는 가상이지만 그런 궁금증에 대한 답을 준다는 건데요 영화 살인의 추억 포스터를 보면 과연 범인이 누굴까?미치도록 잡고 싶다는 문구가 나오듯이 나쁜 짓을 한 사람은 꼭 벌을 받아야 한다는 우리네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이 드라마는 속 시원하게 범인을 잡아 주면서 대리 만족을 시켜 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시청을 하면 할수록 우리나라 3대 영구 미제 사건 중 2건을 모티브로 했기 때문에 마지막 하나인 대구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도 모티브로 해서 그 동안 잡고 싶었던 범인을 드라마에서라도 잡아주지 않을까 기대를 하는데요건국 이래 최고의 미스터리 영구 미제 사건인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이형호 유괴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범인을 잡은 것처럼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도 꼭 모티브로 해서 가상으로라도 범인을 잡아 줬으면 싶습니다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살인의 추억과 이형호 유괴 살인 사건의 그놈 목소리처럼 대구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도 영화 아이들 로 다뤄졌는데요  지금부터 그 얘기를 잠깐 하도록 하며 사진은 영화의 스틸 컷으로 대신하겠습니다이 사건은 1991년 대구에 살던 5명의 초등생이 성서 와룡산으로 개구리를 잡으러 갔다 실종 되었다고 해서 대구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으로 언론을 통해 알려졌지만 정확한 사건 명칭은 성서 초등학생 실종 사건으로 11년 뒤인 2002년 집 부근인 야산에서 유골로 발견된 영구 미제 사건입니다경찰은 단일 실종 사건으로는 최대 규모의 연인원 50만 명을 투입해서 행방을 찾았으며 잇따른 제보 또한 모두 허위로 드러났습니다전 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각종 사회단체와 기업체에서 전단지와 상품에 실종 어린이 얼굴을 인쇄 실종자 찾기운동에 동참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으며 유골로 발견되기 전까지 외계인 납치설,북한 공작원 유괴설 등 갖가지 소문만 무성한 사건이었습니다그러던 중 2002년 고등학교 신축 공사장 뒤쪽 와룡산 중턱에서 도토리를 줍던 한 시민의 의해서 유골로 발견되었고 유골 감정 결과 소년들은 타살로 결론 내려져 전국이 충격에 휩싸인 사건이기도 한데요 제가 시그널 드라마를 보면서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이 생각나는 이유는 실종 당시인 1991년에도 그 동네 근처에서 살아서 충격적이었지만 까맣게 잊고 살다가 11년 뒤인 와룡산이라는 야산에서 유골로 발견되었던 당시에도 그 동네에서 살아서인지 더더욱 충격으로 와 닿기에 드라마를 보는 내내 그 생각이 나서 이렇게 몇 자 적어 봅니다 하지만 10년 넘게 찾고자 했던 아이들은 결국 11년째인 2002년에 가장 원치 않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대통령의 특별지시, 순수 경찰동원병력 연 31만 8천여 명, 1천여 만장에 다다르는 전단배부, 각 기업체와기관들의 개구리 소년 찾기 운동, 전국방방곡곡의 수색, 헬기, 군병력, 예비군, 잠수부, 저수지 물빼기....    아이들은, 결국 와룡산에서 발견되고 맙니다.

  2002년 9월 26일, 유골 발견  · 2002년 9월 26일 오전 11시 30분경, 대구 성산고등학교 신축공사장 뒤편 와룡산 기슭에서 도토리를 줍던  달서구 용산동 주민 오우근씨(당시 60세, 최초 발견자)와 최환태씨(당시 55세, 오우근씨와 유골을 보고는  경찰에 신고)는 사람의 뼈로 보이는 물체를 확인하고자 등산용 지팡이로 주변 땅을 파헤치자  어린이용 신발을 보게 되었고, 자신이 처음에 본 뼈가 사람의 유골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경찰에 신고 · 당시 물체를 확인하려고 등산용 지팡이로 휘적이던 오우근씨는 청색 트레이닝복이 나오는 것을 발견하게 됨  · 발견된 정확한 위치는 성산고등학교 신축공사장 뒤편에서 500m 정도 떨어진 와룡산 중턱으로  개구리 소년들의 집으로부터 3.5km 가량 떨어진 곳이며 와룡산 4부 능선에 위치한 곳으로  평소 사람들의 통행이 거의 없는 한적한 곳, 즉 비 등산로였음  · 신고를 받은 경찰은 20여 분만에 현장에 출동하였고, 당시 출동했던 경찰관은  '현장에 와보니 뼈 일부분이 낙엽과 흙더미 사이에 약간 드러나 있었으며 30cm가량  파 들어가니 유골이 서로 엉킨 채 서로 껴안은 모습으로 드러났다'고 진술 ·  현장은 구덩이가 파인 흔적이 없었고 유골 위를 마치 표식이라도 하는 양  20kg가량의 조그마한 바윗돌 하나가 유골의 바로 위에 뉘어져 있었다고 함  · 이윽고 흙더미 속에서 완전한 모습의 유골 3구와 나머지 조각된 2구의 유골,  그리고 어린이 신발 3켤레와 외짝 신발 한 짝씩 두 개의 신발이 발견되며 실종 당시  5명이었던 개구리 소년의 유골일 가능성이 매우 큰 것으로 최초 판단됨 · 연락을 받고 현장에 달려왔던 부모들은 처음엔 아닌 것 같다고 말을 하다 실종 당시 박찬인군이 입고 나간  '상인'이라고 마크된 체육복(상인은 찬인군이 성서초등학교 전에 다녔던 학교이름), 유골 1구 가운데  조호연군이 했던 치아 보철 흔적이 발견되면서 사실상 유골이 개구리 소년들의 것임이 확실시 됨  (초기 가족들에게도 흙 묻은 의류와 신발들만을 보여주어 판독이 쉽지 않았으나, 점점  부모들 눈에 익은 유품들이 나오면서 부모들도 자신의 아이들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됨)    · 최종적으로 이날 총 4구가량의 유골(나머지 1구의 유골은 완전히 찾지 못하며 두개골 4개를 발견),  신발(운동화 4, 비닐 구두1), 해진 겨울 내의, 탈색된 청색 체육복 등 의류 10여 점이 발견됨    · 경찰은 유골 발굴 현장이 실종 아이들의 집에서 3.5km 떨어진 점과 유골이 서로 엉킨 채 껴안은 모습으로  드러난 점을 들어 당시 평소 사람들의 통행이 거의 없던 비 등산로에서 길을 헤메다 실종 당시 내리던 비를  피하고자 유골이 발견된 능선의 구릉 웅덩이에서 쪼그리고 앉아 온종일 굶은 상태에서 급격히 떨어지는  3월의 산속 기온으로 인해 저체온증으로 자연사한 것 같다고 현장의 들에게 발표 · 아이들 실종 당시의 기상상태는 최저기온 영상 3.3도로 오후 6시 20분경부터  자정까지 약하게 비(강우량 5.7mm)가 내리고 바람이 다소 많이 불었음 · 이에 현장에 있던 부모들이 당시 와룡산에서 밤이라도 불빛을 보고 내려올 수 있는데다가  동네 아이들이 와룡산에서 길을 헤맨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분통을 터뜨림 · 실지로 한밤중이라도 와룡산에서는 아이들끼리 불빛을 따라 내려올 수 있는 것이 확인됨 ·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을 바탕으로 최근 개봉된 영화 '아이들'에서 실제 실종 아이인 우철원군의  친형인 연극과 뮤지컬에서 활동 중인 배우 출신 우영택씨가 로 분해 뼈있는 대사를 남김  "경찰은 저체온증이라는데, 자연사 맞습니까?" · 한편, 경찰은 자세한 결과는 다음날 오전부터 펼쳐질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관계자들의 감식을 통해 나올 것이며  정밀감식을 거친 뒤 신원을 확인하고 타살 여부도 수사할 방침이라는 추가적인 언급을 하지만, 이후 와룡산 해발이  300m에 불과하지만, 면적이 279만여 평으로 광활한 데다 개구리 소년들이 자주 놀러 가던 불미골 일대에 대한  수색에 치중해 정작 발견지점인 산 반대편에 대해서는 수색을 소홀히 했다고 해명하며 더욱 많은 비난을 받음 · 추가로 달서경찰서 김용판 경찰서장은 발견된 두개골 등에서  외상의 흔적이 없어 타살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말하여 후에 빈축을 삼  대대적인 수색작업에도 불구, 왜 지금에야 발견되었나  · 동네 야산이라고 부르기엔 비교적 광활한 와룡산(해발 300m에 불과하지만 270만여 평의 면적) · 비록 산세가 완만한 편에 와룡산 일대에 한 평 규모에 한 사람씩 맡는 일명 평떼기 수색으로 샅샅이  수색을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당시 수색에 나섰던 군경과 공무원 등 수만명의 인력들은  와룡산 입구에 다다르는 몇 안 되는 길마저 모두 비좁은 비포장길이 대부분인지라 접근이 쉽지 않았고  수색작업 역시 당시 아이들이 자주 놀던 불미골  일대와 사람들이 주로 다니던 등산로를 중심으로 진행되었기 때문 · 이후 94년에 성서, 이곡, 신당동 등 산 주변 10만 9천여 제곱미터가 택지로 개발되면서  96년부터 아파트 17개 단지 1만 5천여 가구가 들어서는 등 10만명가량의 인구가 유입됨 · 이에 따라 점차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남에 따라 와룡산에 등산로가 생기고 99년 4월엔 도시 자연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인근 주민의 방문이 잦아지자, 본래 아이들 실종 당시 민가와 2-3km 떨어진 외딴곳이  주민이 도토리 등을 줍는 일이 잦아진데다 집중호우와 태풍으로 토사가 깎인 자리에서 유골이 발견된 것 · 한편, 당시 1회에 출동 가능한 경찰 최대 인력이 400명 남짓이었으며, 와룡산의 넓은 면적에 경찰을 포함한  500-600명가량의 인력이 투입돼 효과적으로 수색을 펼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유골 발견 현장이 산봉우리  너머에 있는 외진 곳이라 수색의 집중도가 떨어졌고 수색이 이루어졌더라도 당시 산밑에서 위쪽으로 훑어  올라가며 서로 간 간격이 너무 넓어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과거 개구리 소년 사건 담당 수사관들이 해명 · 또, 당시 와룡산 수색 도중에 개구리 소년을 봤다는 제보가 전국 곳곳에서 잇따르는 바람에 초기 단계에서 수색이  집중력 있게 진행되지 못한 측면도 있었다는 말과 함께 유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치 못하겠다고 착잡해함 <한밤중 임시 수사본부가 마련된 대구 용산파출소에서 경찰관계자들이 비공개 회의를 진행>  9월 27일, 유골 발굴 2일째  · 오전 10시 30분경, 대구경찰청 감식반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두개골 복원  전문팀 및 경북대 법의학교실 관계자 등과 공동으로 유골 발굴작업을 개시 · 이날 발굴작업 현장에 유가족 10여 명을 포함해 경찰과 주민, 취재진 등 200명 명이 몰림 · 이날 작업에서 전날 미발굴된 나머지 1구를 발견하는 데 주력하기 위해 기존에 유골이 발견된 지점을 중심으로  1평 미만을 감시국으로 설정해 마치 문화재 발굴작업을 벌이듯 솔과 특수장비를 이용해 돌 하나하나까지  검사하던 끝에, 1시간여 뒤 개구리 소년의 것으로 보이는 유골 조각 3-4개와 흰색 운동화 한 짝을 추가로 발견   · 이어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뼛조각 5-6개와 또 다른 흰색 운동화 한 짝을 추가로 발견하나  이들 뼛조각이 기존에 발굴된 아이들 유골의 일부인지 확인하지 못했고, 발견된 운동화 두 짝 모두  오른발용 신발인데다 둘 중 하나에만 양말 조각이 발견돼 동일인의 것은 아닌 것으로 추정  · 한편, 유골현장을 둘러본 김종식군의 삼촌 김재규씨(당시 42세)가 '유골이 발견된 지점에서 납작한 돌이  몇 개 발견돼 시신을 덮은 것으로 추정된다'라는 주장과 다른 유족의 '지금까지 두개골 4개가 발견됐었는데  추가로 김영규군의 상의 트레이닝복 안에서 완전한 두개골 1개가 나왔으며, 동사라면 두개골이 트레이닝복  안에 들어갈 수 있느냐'라는 주장, 그리고 또 다른 유족들의 '옷 소매가 끈으로 묶인 흔적이 있다', '두개골 중  1개는 일부 파손돼 타살 가능성이 있다'라고 타살 가능성을 제기하자 최초 공식발표에서 사고사 가능성이 크다는  발표와 이날 오전 회견에서 '산에서는 탈진과 기상 상태 등 상식적으로 예견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으며,  끈이나 흉기 등 타살로 추정할 수 있는 도구가 발견되지 않자 아이들이 조난과 탈진에 의한 사고로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발표한 경찰과 첨예한 대립을 이루게 됨 <언론과 경찰이 자연사로 몰아가고 있다며 항의하는 김영규군의 아버지 김현도씨>· 낮 12시 30분경, 발굴작업 중 개구리 소년 아이들의 유품 및 유골과 10-20cm  떨어진 거리에서 소총 총알로 추정되는 길이 1cm에 지름 6-7mm 크기의  탄두 1개와 길이 4.5cm, 지름 7-8mm 크기의 탄피가 붙은 총알 1개를 발견    · 당시 발굴현장을 지켜보고 있던 유족들은 실종 당시에 사고현장  부근에서 어린이들의 비명이 들렸다는 제보가 있었다고 주장 · 이에 따라 경찰은 발굴현장 인근에 군부대 사격장이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오발로 탄두가 날아왔거나  아이들이 총알을 주워 소지했을 가능성, 그리고 소총으로 무장한 사람에 의해 집단 총살당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둠 <박찬인군의 어머니 김임자씨가 탄두, 탄피가 발견됐음에도 경찰이 여전히 자연사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항의> · 경찰은 발견된 실탄 2발을 감식해 군용 여부를 가릴 방침을 세웠으며 육군 모 부대의 하성용 공보관은 유골발견  현장이 군부대 영내는 아니었다면서 경찰의 공식 요청이 있으면 현장 확인을 통해 정확한 사실을 밝히겠다고 밝힘 · 감식반 관계자들의 1차 확인 결과 탄두가 국내에서 사용 중인 소총의 탄두가  아닌 것으로 잠정 추정됨에 따라 대공 용의점에 대해서도 조사할 방침을 세움 · 한편, 현장에서 발견된 유골들이 개구리 소년들인지를 확실히 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유전자연구실은  유골에서 미트콘드리아 DNA를 추출해 실종 아이들 가족들의 혈액형에서 추출한 유전자와 비교하기로 함  9월 28일, 유골 발굴 3일째 · 대구경찰청은 조선호 차장을 수사본부장으로 해 수사인력을 기존 16명에서 43명으로 늘리고, 유골발견 현장  부근인 성서파출소에 수사본부를 차리는 등 수사본부 확대 개편을 통해 본격적인 사인규명 작업에 착수키로 결정   9월 29일, 유골 발굴 4일째 · 경찰과 법의학팀이 유골 발굴현장의 반경 20m 이내에서 박격포 탄피  1개를 포함해 여러 종류의 실탄과 탄두, 탄피 등 80여 점을 발견 · 유족들은 유골 1구의 두부에 구멍이 뚫려 있어 군부대 사격장과 아이들의 죽음 간에 연관성이 있다고 주장 · 이에 군부대 사격장의 오발 가능성이 제기되자 해당 군부대 관계자가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된 지점이 과녁을  중심으로 우측으로 45도가량 빗나가 있는데다 당시 누군가가 과녁을 빗맞혔다고 하더라도 유골 발견 지점과의  해발 100-200m가량의 능선이 가로막고 있어 탄환이 능선 뒤편까지 날아가지는 못했을 것'이라며 오발 가능성을 일축  · 한편, 유족들이 당시 군부대 사격장에 울타리가 없어 많은 민간인들이 고물상 등에 팔기 위해  탄두와 탄피를 주우러 사격장을 찾았다는 주민의 증언이 있었다고 주장함에 따라 경찰 관계자는  이때까지 발견된 탄환과 탄피 등이 소총용인지, 국산인지, 군용인지 등의 여부를 규명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정밀감정을 의뢰했으며 앞으로 군 당국과 공동으로 탄두가 유골발견  지점까지 날아올 수 있는 지 여부 등에 대해 수사를 벌이겠다고 말함· 또, 경찰은 이때까지의 상황들을 종합해 타살의혹에 중점을 두고 수사를 하기로 하며 독극물 등  다른 사인이 있는지에 대해 국립과학연구소 검사 등과 병행하기로 하는 한편 체육복 상의와  바지가 묶여 있던 것과 관련해 아동심리 전문가나 매듭 관련 전문가 등에게 자문을 구하기로 함  9월 30일, 유골 발굴 5일째 · 수사본부는 오전부터 유골 발굴 현장 주변에서 금속 탐지기를 이용해 탄두 수색을  벌이는 한편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상의 등 나머지 유품 발굴 작업을 진행 · 결국 이날 빵 봉지 1개와 흰색 비닐 1개를 발견했으며, 70여 발의 탄두를 발견해 이때까지 총 90여 발의 탄두를  발견했고 모두 군부대에서 사용하는 7가지 종류의 탄환인 것으로 잠정 확인하며 현장 발굴을 사실상 마무리 · 한편, 유골의 감식에 참여한 경북대 법의학팀은 '법의 곤충학 검사(발굴된 유골들이 처음부터 현재의  위치에 있었는지, 제삼의 장소에서 숨진 뒤 일정 시간이 지난 후 누군가에 의해 옮겨졌는지를 가리는)'와  발굴된 뒤섞여 있던 뼛조각들을 하나씩 퍼즐을 꿰맞추듯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구립과학수사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유전자 검사를 실시하는 동시에 발굴된 유골 중 치아 보철이 발견됨에 따라 개구리 소년들의  치과기록 검토와 유족들과의 면담 실시, 그리고 유골들 가운데 1구의 두개골에서 발견된 지름 2-3cm 크기의  구멍 2개와 길이 4cm가량의 함몰 부위에 대한 정확한 원인 규명을 위해 방사선 촬영 등 다양한 기술들을 동원 · 이때까진 두개골 2개의 구멍에 대해 총상 흔적으로 보지 않고 함몰 부위도  시신이 오랜 기간 외부에 노출됨에 따라 자연 파손된 것으로 최초 추정 · 수사본부는 현장 부근에서 조사작업을 벌이던 중 유골 발굴 현장에서 위쪽으로 5m 떨어진 지점에서 분묘 이장 흔적을 발견하며  이 분묘가 개구리 소년들의 사인과 연관성이 있는지를 밝히기 위해 분묘 이장 시기와 분묘 소유자 등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는  한편 현장에서 발견된 탄두 66점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을 의뢰, 군부대에 사격장 운영기록과 사격일지 제출 요청 · 58년부터 94년 말까지 유골 발굴 현장에서 남서쪽으로 250m 떨어진 곳에 사격장을 설치, 사용했었던 육군 제50사단의  관계자는 당시 부대 사격장의 위치와 탄두의 종류 등 수사에 단서가 될 수 있는 정보를 경찰에 거의 제공하지 않음과  동시에 탄두 발견 직후 부대 관계자가 경찰의 현장방문 계획을 취소하며 결국 경찰이 영천까지 가서 현장에서 발견된  탄두의 종류를 확인하는 등 군의 비협조적인 자세로 수사가 지연됐다고 지적 · 이러한 지적에 육군 제50사단 관계자는 개구리 소년들이 실종된 날은 공휴일이라 사격훈련이 없었다는 설명과 함께  당시 부대 근무자 등을 상대로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으며 조사가 끝나면 공식적으로 발표하겠다고 밝힘 · 추가로 50사단은 탄약 전문가들이 유골 발굴 현장을 중심으로 반경 100m 이내에서 발견된 각종 총기류(M16, M1,  LMG360)의 탄두 145발을 육안 검사한 결과 부식 정도가 매우 심해 20-30년 전에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 · 이에 따라 군은 더욱 명확한 탄두 사용시기를 확인하기 위해 경찰과 협조하여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검사를 의뢰키로 함 · 군은 발견된 탄두의 출처와 관련해 지난 81년 이전 사격장 안전, 방호시설의 미설치로 탄두가 광범위한  지역에 흩어졌을 가능성과 81년 이전 유골 발굴 현장 주변에 간이 사격장이 있었을 가능성, 그리고 94년까지  사격장 외곽에 울타리가 없어 어린이들이 탄두와 탄피 등을 습득했을 가능성을 제시 · 한편, 김영규군의 아버지 김현도씨(당시 56세)는 사인규명 과정과 장례 등에  대비해 유족 등으로 구성된 유가족대책위원회를 조직할 예정이라고 밝힘 · 이에 따라 지난 91년 사건 발생 당시 조직됐던 유가족대책위원회는 지난해 49세로 세상을 떠난 김종식군의  아버지 고 김철규씨가 위원장을 맡았으며, 이번에는 김현도씨가 위원장을 맡아 대책위를 꾸려나가기로 계획  10월 1일, 유골 발굴 6일째 · 개구리 소년의 사인을 둘러싼 의혹이 커지자 인터넷을 통해 네티즌들이 갖가지 추리를 하는가 하면,  여러 가지 음모론을 포함해 대구 시내 미용실에서 간첩이 체포된 적이 있었다며 간첩 살해설까지 등장 · 경찰은 타살의혹을 밝히기 위해 유골과 함께 발견된 의류 등에 대한 정밀검사를 실시하는  한편 당시 목격자나 제보자에 대한 재조사를 실시하는가 하면 인터넷 등을 통해 하루 수건씩  제보되는 사항에 대해서도 면밀하게 검토하기로 결정 · 이날 경찰은 유골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위해 유족을 상대로 채혈작업을 벌이고 유류품에 대한  독극물검사도 실시함과 동시에 이때까지 발견되지 않은 조호연군의 외투와 일부 유골을  찾기 위해 대규모 인력을 동원해 다음날부터 와룡산에 대한 조밀한 수색작업을 벌이기로 결정 · 한편, 육군 제50사단은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과 관련해 총기살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이날 대구경찰청에서 회견을 가짐(상세한 내용은 3부에서)  10월 2일, 유골 발굴 7일째 · 군부대와 공조해 유골발굴 현장 부근에 간이사격장이 있었는지와 미군들이 아이들  실종 당일에 야간사격을 했는지 등 총기에 의한 사망 가능성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수사 · 개구리 소년 타살의혹을 조사하던 수사본부는 신고된 29건의 제보들에 대해  그 내용의 신빙성 여부에 관계없이 다각적으로 심층 수사를 벌임 · 이 때문에 수사가 지연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수사 장기화에 따른 미제 조짐을 보인다는 지적이 나옴 · 한편,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의 신드롬으로 인터넷상에서 네티즌들의 각종 추론으로 인해 포털 사이트들이  관련 기사를 한데 모아 토론 참여를 유도하는가 하면 대구 초등학생들의 휴대전화 구입율 상승과 셔틀버스가  아닌 자가용을 이한 등하교, 그리고 학교에 자녀 등교 여부를 확인하는 전화가 빗발치게 됨  10월 4일, 유골 발굴 9일째 · 육군 제50사단이 군인의 개구리 소년 총기 살해설을 최초 제보한 전직 구두닦인 달서구 주민  한모씨(당시 43세)를 명예훼손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이날 오전 검찰에 고소 · 50사단은 고소장에서 한씨가 유포한 허위사실이 언론에 보도됨으로써 군 전체의 명예와  사기가 실추됐고, 허위제보로 사단이 관련자 조사를 위해 다수의 인원을 동원하는 등  정상적인 부대임무 수행에 심대한 지장을 초래했다고 밝힘 · 이보다 앞선 오전 9시 30분경엔 한씨가 수사본부가 차려진 대구 달서경찰서 성서파출소에  찾아가 경찰이 제보자인 자신의 신원을 노출시킨데 대해 격렬하게 항의 · 한씨는 익명을 전제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신고했을 뿐인데 경찰이 나이와 직업,  성씨 등 신원을 노출시켜 하루아침에 거짓말쟁이가 됐다고 분통을 터뜨림 · 한편, 한씨는 유골발견 후 시행된 경찰의 수사에서 거짓말 양성반응이 나와 신고보상금 등을 노리고  제보했거나 단순 장난으로 보면서도 그가 강력하게 주장하여 총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었음 · 이날 수사본부는 90년 12월과 2011년 11월에 각각 촬영된 와룡산의 항공사진을 비교, 검토한 결과  아이들의 유해가 발견된 지점에서 250여m 떨어진 곳에 민가 3-4채, 600여m 떨어진 곳에 구마고속도로가  각각 있는 것을 확인하며 최초 발표를 뒤집는 아이들이 길을 잃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발표 · 유골 5구의 복원작업과 신원확인도 사실상 끝낸 경북대 법의학팀이 유골에 대한 클리닝작업  (유골에 붙은 흙과 이물질을 붓으로 제거하는 것)과 함께 독극물검사, 혈흔 및 토양검사,  탄두와 탄피에 대한 정밀조사와 같이 정밀분석작업에 들어갔으며 유골에서 일반적으로  오랫동안 보존되는 치아와 머리카락 등이 상당수 발견되지 않아 타살 의혹이 크다고 보도한  언론에 대해 매장된 상태라면 치아 등이 보존되겠지만 시신 위에 흙이 20-30cm 덮인 상태에서  빗물 등에 떠내려갔을 수도 있다며 여론이 타살로 몰아가는 것에 대해 경계 · 법의학팀 관계자는 유골검사와 각종 화학적 검사를 실시해 성과가 미흡하면 여러 번 되풀이해야만  정확한 결과를 알 수 있으므로 검사를 마치는데 빨라야 4주 정도는 걸릴 것이라고 밝힘  10월 6일, 유골 발굴 11일째 · 대구경찰청은 이날 개구리 소년들의 최종 목격자들을 통해 최종 목격  시간을 추적하며 당시 아이들의 행적을 재구성하는데 수사력을 모음  10월 7일, 유골 발굴 12일째 · 수사본부가 개구리 소년 유골 발견지점에서 지름 1.5cm, 길이 5cm가량의 숯 조각 2개가 지난달 말  유골 발굴과정에서 발견된 것에 이어 이날 오후 와룡산 수색과정에서 불을 지핀 흔적을 발견 · 불을 지핀 흔적은 유골 발견현장에서 산 정상 방향으로 1m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나무를 중심으로  지름 60-70cm 크기의 둥근 모양으로 지표에서 10cm가량 묻혀 있었고, 정밀 감식 및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의회를 통해 불을 지핀 시기와 숯의 성분 등을 분석하여 개구리 소년 피살의혹과 연관성을 밝히기로 함  10월 8일, 유골 발굴 13일째 · 대구지검 김영광 검사가 개구리 소년 두개골 5개 가운데 2개의 정수리 부근에서 이끼로 추정되는 물질이  발견됨에 따라 시신 일부가 외부에 노출된 채 상당기간이 흐른 것으로 보고 사망원인을 재검토하기로 결정  · 검찰은 두개골에서 발견된 이끼류가 외부에 노출된 뒤 다시 흙에 덮인 흔적이 없다는 법의학팀의 소견에 따라  아이들이 살해돼 매장된 뒤 자연조건에 의해 유골 일부가 외부에 노출된 점에 무게를 두고 사망원인을 재검토하기로 결정 · 김영광 검사는 유독 정수리 부근에 이끼류로 추정되는 흔적이 발견된 것은 자연사가 아니라 흙에 덮혀 있던 시신  일부가 빗물 등에 씻겨 노출된 것으로 이는 아이들이 살해된 뒤 매장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단서가 된다고 발표 · 이에 따라 검찰과 경찰은 두개골에서 발견된 이끼류의 정밀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사망원인과 장소 등 지금까지 수사를 재검토하기로 계획 · 한편, 수사본부는 유골 발견지점에서 정밀 추가발굴 작업을 벌인 결과 부위를 알 수 없는 7x5cm,  5.5x2cm, 3.5x2cm 크기의 뼛조각 3개와 탄두 18개를 추가로 발견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법의학팀에  감정을 의뢰함과 동시에 100여 명의 인력을 동원하여 와룡산 일대에 대한 수색을 계속하기로 계획 · 유골 발견 직후부터 모두 70건의 제보를 접수한 경찰은 이 중 52건은 신빙성이 떨어지거나  허위제보로 밝혀져 수사를 중단하고 나머지 18건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기로 함  10월 9일, 유골 발굴 14일째 · 유골 발견 2주째를 맞는 이날, 경찰은 이때까지 아이들의 사인과 관련한 뚜렷한 단서를 확보하지 못해 수사가 답보상태에  머물자 유골 발굴 때 부터 현장을 훼손해 사인을 밝혀줄 결정적인 단서를 놓쳤다는 비판과 함께 제보에만 의존한 채  이달 말쯤 발표될 법의학팀의 감정 결과에 따라 본격적인 수사 여부를 결정키로 한 것이 알려지며 비난을 받음 · 이에 대해 대구경찰청 유광희 청장은 타살 부분에 대한 수사기록이  전혀 없어 수사 진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 · 한편, 현장 훼손에 대한 비난에 대해 유골 발견 당시 초동 출동한 경찰관들은 현장 확인을 위해  삽으로 땅을 파야 하지 않느냐고 항변했지만, 수사와 감식 분야에 대한 지식이 조금만 있어도  현장을 그렇게까지 훼손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내부 비판까지 받게 됨 · 경찰은 이날 '와룡산에 도롱뇽 알을 팔러 갔다', '발굴지점 인근에서 낚시꾼 6-7명을 봤다' 등 다소 신빙성 있는  제보의 사실 여부를 중점 수사하는 한편 불미골, 세방골 등 현장 부근 마을 거주자에 대한 탐문수사도 병행 · 이때까지 조호연군의 외투 등 발견되지 않은 유품과 유골을 찾기 위해 대대적인 수색을 벌임 · 한편, 경찰은 이날 유골 발견지점에서 벌어진 추가발굴 작업에서 나온 무릎뼈로 추정되는 지름 1.5cm,  두께 1cm가량의 둥근 뼛조각 5개와 탄두 31개를 발견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경북대 법의학팀에 감정을 의뢰 · 법의학팀은 아이들의 두개골과 치아 등에서 이끼와 곰팡이를 발견, 그 종류와  생성조건, 생육 환경 등을 파악하기 위해 생물학자에게 검사를 의뢰하기로 함 · 법의학팀 곽정식 교수는 곰팡이는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도 발견되기 때문에 사인이나 시신 이동 여부 등을 규명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이끼도 마찬가지로 보이지만, 종류 등을 확인하기 위해 생물학자에게 검사를 의뢰키로 했다고 발표  10월 10일, 유골 발굴 15일째 · 경북대 법의학팀 단장 곽정식 교수가 발굴된 유골이 숨진 뒤 상당한 시간이 지났는데다 검사를 위한  시료의 양적 한계 등으로 인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유전자 검사로는 신원확인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발표  · 경찰은 아이들이 실종되기 전 유골 발굴 현장에서 1km가량 떨어진 저수지에서 손발이 묶인 70대 노인 등 2명의  익사체와 여자 1명의 변사체를 와룡산에 주둔했던 군부대의 사격장에서 근무했다고 밝힌 박모씨(당시 38세)가  각각 88년 하반기와 89년 봄에 발견된 것을 목격했다고 주장함에 따라 박씨의 신원 확인에 이어 당시 변사사건  기록과 현장을 촬영한 사진 등을 검토해 개구리 소년 사건과의 연관성을 찾기로 함 · 한편, 이날 경북대 법의학팀 채종민 교수는 발굴된 유골 5구를 최근 정형외과 전문의에게 검사를 의뢰한 결과  이 가운데 2구의 일부 뼈에서 골절 흔적을 발견해 골절 원인과 발생 시점 등을 조사하고 있다고 발표 · 채종민 교수는 골절 부위에 대해 1구는 늑골 부위가, 또 다른 1구는 팔 부위가 각각 골절됐다고 덧붙임  · 이어 법의학팀은 발굴된 유골 5구 가운데 비교적 완전한 형태로 발견된 두개골 내부에 대해서도  조만간 조사를 벌일 방침을 세움과 동시에 2개의 구멍과 함께 함몰 흔적이 발견된 두개골을  대상으로 이러한 흔적이 발생한 시기와 원인 등을 규명하는 데 총력을 기울임  10월 11일, 유골 발굴 16일째 · 경북대 법의학팀이 유골 5구 가운데 구멍 난 두개골 내부에 금속물질이 있는지를 조사키로 결정 · 이에 대해 법의학팀 채종민 교수는 총상에 대한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됨에 따라 이를  규명하기 위해 구멍 난 두개골 내부에 금속물질이 있는지를 조사하기로 했다고 밝힘 · 이를 위해 법의학팀은 지난 10일 신경외과팀, 방사선과학팀 등과 함께 구멍과 함몰 흔적이 발견된  두개골에 대한 개봉 수술에 착수해 두개골 내부 흙 제거 작업과 세척작업을 완료한 뒤 오는 14일까지  금속공학적 검사와 조직학적 검사, 전자현미경 검사도 함께 실시하기로 함 · 또, 유골이 발굴된 대구시 달서구 용산동 와룡산 현장 지형도 재조사함과 동시에 경북대 생물학팀의 도움을 받아  현미경을 이용해 두개골에 부착된 이끼류 및 곰팡이에 대한 검사도 재실시하는 한편 경찰과 함께 유골 발굴  현장 주변에 서식하는 동물의 종류를 조사하는 등 생태계 탐문조사도 벌일 방침을 세움 · 특히 법의학팀은 두개골에 난 구멍과 함몰 흔적의 발생 원인 등을 규명하기 위해 낫과 호미 등 연장을 이용하여  아이들의 두개골과 유사한 강도를 지닌 돼지 두개골로 손상 형태를 직접 재점검하는 실험을 하기로 결정  10월 13일, 유골 발굴 18일째 · 경찰은 내일 오후부터 유골발견 당시 현장과 발굴 과정을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시뮬레이션으로 재구성하기로 발표 · 이러한 재구성 작업을 통해 유골의 최초 발견 당시 모습과 위치, 현장 주변의 상황 등을 재구성해 수사에 참고할 계획 · 이를 위해 경찰은 유골의 최초 발견자와 신고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 및 최초 발굴작업에 참여한 경찰 감식반원 등의  진술과 발굴 현장을 촬영한 비디오테이프와 사진의 내용을 종합하여 그래픽 전문가에 의뢰해 당시 상황을 재연하기로 함 · 경북대 법의학팀은 개구리 소년들이 거주했던 집에서부터 와룡산 유골 발굴  현장까지 예상 이동 경로를 답사하는 한편 와룡산 일대에 대한 지형조사도 벌임  10월 14일, 유골 발굴 19일째 · 경북대 법의학팀이 구멍이 있는 두개골 내부에 대해 육안 검사 및  방사선 사진 촬영 조사를 실시한 결과 금속물질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 · 이에 법의학팀은 금속물질 함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추가로 금속공학적  검사와 조직학적 검사, 투과 및 주사전자현미경 검사를 반복 실시하기로 함 · 한편, 법의학팀은 유골 발굴 현장 주변에 대한 동물 생태계 탐문 조사를 벌인 결과 설치류와 다람쥐,  오소리, 토끼 등이 서식하는 것을 확인함과 함께 지형상 산돼지, 곰 등 큰 짐승은 살기가 어려운 것으로  판단하며 개구리 소년들 시신이 매장 당시부터 야생동물에 의한 피해를 당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  10월 15일, 유골 발굴 20일째 · 법의학팀은 야생동물에 의한 유골 손상 여부를 확실히 하기 위해 너구리나 개 등 큰 짐승 및 조류의 서식 상태 조사와,  개구리 소년들의 실종일로부터 약 4개월간의 강우량을 분석하는 한편 유골 발굴 지점 상류의 토사 유입량 등도 조사 · 한편, 법의학팀은 개구리 소년들의 유골이 발견된 지점은 토사의 퇴적이 가능한  곳이라는 전문가의 의견이 나와 아이들의 자연 매몰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함  10월 16일, 유골 발굴 21일째 · 경북대 임학과 홍성천 교수가 유골 발굴 현장을 찾아 주변 나무의 종류와 나이 등을 조사하며 실종  당시의 조림 상태를 추정해 마을이나 고속도로 불빛을 실제로 볼 수 있었는지를 파악하기로 함   10월 17일, 유골 발굴 22일째 · 개구리 소년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이번 주 안으로 유골 감식 결과가 통보돼 오고  다음 주 중 법의 곤충학, 퇴적학, 임학 등 관련 전문가들의 감식내용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어 이러한 결과와 함께  탐문 수사 등 그간의 수사를 토대로 유골 발견 1개월을 맞는 25일에 중간 수사상황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힘 · 경찰은 이와 함께 유골 발견 현장 부근의 '서촌' 마을에 살았거나 현재까지도  인근에 사는 주민들을 상대로 실종 사건 발생 당시 마을 인근의 정황을 탐문  10월 22일, 유골 발굴 27일째 · 경북대 법의학팀 채종민 교수가 법의학팀이 밝힌 일정에 따라 모든 검사 결과와 자료가 정리되면  국내 법의학자들의 회의를 거칠 것이라고 전제한 뒤, 그 때 가서도 의문이 생기면 외국 법의학자에게  자문을 의뢰할 수 있고 또 충분히 그렇게 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발표 · 채종민 교수는 이와 관련해 선진 외국기관에 감정을 의뢰하는 것은 엄청난 경비가 들기 때문에 사전에 충분한  기초자료를 정리한 뒤에야 가능할 것이며, 외국 전문가에 의뢰하는 일은 최후의 선택일 뿐이고 11년이 지난  유골인 만큼 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졸속이 되지 않도록 철저히 조사해 추호의 의심도 없도록 할 것이라고 발표 · 한편, 유가족대책위원회를 구성한 유가족들이 이날 국회에서 열린 실종 미아에 관한 법 제정 공청회에 참석  10월 23일, 유골 발굴 28일째 · 수사본부는 경북대 법의학팀의 유골에 대한 X선 촬영, 정밀 감식,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유골과 옷가지를 비롯한  현장 부근에서 발견된 비닐봉지, 탄두, 드링크 병 등에 대한 정밀 감식 등을 통해서도 유골 발견 한달이 다 됐지만  아직 명확한 물증이 나오지 않아 답답하지만 사인 규명이 졸속이 되지 않도록 시간을 두고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발표 · 한편,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유골 위에 얹혀져 있었던 장방형 돌과 김영규군의  옷 매듭 등 막바지 감식에 나서나 별다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어짐   10월 25일, 유골 발굴 30일째 · 유골 발견 1개월을 맞는 이날, 결국 수사본부는 사인 규명에 필요한 결정적인 단서를 확보하지 못하고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 · 경찰은 앞으로 경북대 법의학팀 등 전문가의 감정 결과를 바탕으로 다각적으로 수사를 벌이고 특히 아이들의 일부  두개골에 나타난 구멍과 함몰 흔적, 김영규군의 옷에 매듭이 지어진 사유 등 타살 의혹에 대해 중점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힘  10월 30일, 유골 발굴 35일째 · 수사본부 관계자들이 이날 오후 대구 시내 한 음식점에서 개구리 소년 유족들과 간담회를 가짐 · 간담회에는 김용판 대구 달서경찰서장 등 수사본부 관계자 3명과 김영규군의 아버지 김현도씨 등 유족 7명이 참석했으며,  이 자리에서 수사본부 관계자들은 유골 발굴 및 이후 수사 과정과 관련해 경찰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해 온 유족들에게  유감의 뜻을 전하는 한편 그간의 수사상황과 함께 앞으로의 수가 계획 등을 설명 · 한편, 유족들은 간담회가 끝난 뒤 경북대 법의학팀 채종민 교수와도 면담을 가짐  11월 12일, 유골 발굴 48일째 ·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이 이날 오후 소년들의 사인에 대한 법의학 감정 중간  보고회에서 소년들의 유골 5구 가운데 3구 이상의 두개골에서 사망 당시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인위적 손상 흔적이 발견됐다면서 이는 아이들이 타살됐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발표 · 특히 아이들의 유골에 나타난 손상 흔적은 넘어지거나 추락하는 등의  사고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외상은 절대 아니라고 강조· 이어 우철원군, 김종식군, 김영규군의 두개골에 둔기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손상이 여러 군데 있었다며  우철원군과 김종식군의 두개골에 나타난 손상으로 미루어 두개강 내 출혈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 · 또, 아이들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았던 우철원군의 머리에는 외상 흔적이 무려 25군데나 나타났다면서 이 중에는 끝이  사각형 모양인 예리한 물건(드라이버나 못질할 때 사용되는 공구 등)에 의해 찍힌 흔적이 10여 군데 나타났다고 덧붙임   · 이에 따라 법의학교실 측은 드라이버 같은 예리한 흉기로 아이들의 머리를  마구 찌른 것은 정신이상자의 소행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밝힘 · 한편, 경찰은 개구리 소년들이 타살된 것으로 잠정 결론이 남에 따라 타살 경위에  초점을 맞춰 수사를 진행할 방침이며 문화일보 제보자와 유골 발견 현장 인근에  살았던 움막 거주자 등 정신 이상자들에 대한 수사를 집중적으로 벌이기로 결정 · 또한 동네 불량자와 거동이 수상했던 낚시꾼 등 둔기로 소년들을 살해했을  개연성이 있는 혐의자들에 대한 신원 파악 작업도 병행할 방침을 세움 · 이날 보고회에는 유족 10여 명이 참석했으며 김영규 군의 아버지 김현도씨는 중간 감정  결과는 너무나 당연한 내용이라며 경찰이 하루빨리 범인을 검거하기를 바란다고 밝힘   11월 14일, 유골 발굴 50일째 · 대구지방경찰은 6.4㎜ 공기총으로 아이들의 유골 강도와 비슷한 돼지 머리와 은행나무, 참나무, 물푸레나무  등에 발사한 결과 은행나무에 나타난 탄흔이 우철원군의  두개골에 난 상처와 육안상 유사한 것으로 확인 · 경찰은 이 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통상 공기총 산탄으로 사용되는 납탄 대신 구리와 철사를 1.2-2.3㎜로  절단해 이를 공기총에 25-30개씩 넣어 발사해 이 같은 결론을 얻었으나, 이 실험 결과를 경북대 법의학교실에  보내 정밀 감정을 하자 유골에 나타난 문형과 똑같은 것은 아니라는 회신을 받음에 따라 다른 종류의  공기총 및 산탄 등에 의한 실험을 계속할 방침을 세움 · 이와 함께 '+'자 드라이버와 호미, 조각칼 등 예리한 흉기로 사용될 수 있는 도구에 대한 실험도 병행할  계획을 세움과 함께 개구리 소년의 두개골에 나타난 1.4-2.0㎜ 크기의 직사각형 또는 'ㄷ'자 문형의 상처를  현미경으로 확대한 사진과 이 상처와 똑같은 문형을 남길 수 있는 범행도구를 제보한 사람에게  1천만원의 신고보상금을 지급한다는 내용 등을 실은 전단 5천장을 제작하여 배포 · 또한 당시 유골발견 현장 부근 저수지에서 목격된 거동이 수상한 낚시꾼 5-6명과 움막 거주자,  주변 불량배, 사냥꾼 등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하는 한편 92-96년도에 개구리 소년들이 다녔던  성서초등학교 졸업자와 당시 목격자를 상대로  탐문수사를 벌임 · 한편, 경찰은 범행도구와 관련해 철공소 망치, 목공용 끌 등 다양한 제보를 받음  11월 29일, 유골 발굴 65일째 · 유가족대표 김영규군의 아버지 김현도(58)씨가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아이들의 사인규명은 발표됐지만 도대체 누가  왜 우리 아이들을 죽였는지에 대해서는 관계기관의 수사가 진척이 없어 보인다며 하루빨리 우리 아이들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알고 싶은 마음에 한국법과학연구소에 네티즌 등의 도움을 받아 법 과학적 해석 및 자료조사를 공식의뢰했다고 밝힘 · 의뢰를 받은 한국법과학연구소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출신들이 출자해서 설립한 연구소로,  연구소 측은 이에 따라 향후 6개월가량 기간을 두고 경찰과 경북대 법의학팀 등으로부터 자료협조를 얻어 사건을 되짚어보는 한편 의혹이 남은 부분이 있다면 해당 부분에 대한 재감정 및 재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움 · 한국법과학연구소 신윤열 연구소장은 개구리 소년들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커다란 사회적 사건으로 부각돼  관계기관들이 사회적 관심에 따른 부담감으로 인해 원활한 수사진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사설기관인 우리 연구원들이 참여하면 수사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힘    12월 2일, 유골 발굴 68일째 ·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가 실종 11년 만에 유골로 발견된 대구 성서 초등학교  개구리 소년 5명을 위한 영가 천도재를 오는 8일 오전 11시 통일대전에서 개최하기로 결정 · 동화사는 다시는 이 땅에 이와 같은 불행한 일들이 재발하지 않도록 다짐하고 아울러 어린  영가들의 원혼을 천도하기 위해 행사를 하게 됐다"라며 불자들의 많은 동참을 요망한다고 밝힘 · 천도재에 앞서 이날 오전 9시 30분께 아이들이 희생된 것으로  보이는 유해발굴 현장에서 청혼의식을 진행하기로 결정 · 한편, 수사본부는 대구 달서 경찰서에서 자문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보상금 심의위원회를 열어 유골 최초 발견자인  오우근씨와 신고자인 최태환씨에 대해 각각 1천만원의 보상금 지급을 결정하며 이날 두 사람에게 보상금을 지급 · 수사본부 관계자는 실종 어린이들이 유골로나마 발견될 수 있게 해준 데 대한 감사의 뜻이라며  남은 보상금은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지급할 계획이라고 밝힘    2004년 3월 24일            2004년 3월 26일, 실종 13년    ??+++++++++++++++++++++++++++++++++++++++++++++++++++++++++++++++++++++++++++++++++++++++++++++++++++++++++++++++++++++++++++* 참조문헌: 연합뉴스 [이상한 옴니버스] 스물 아홉번째 화,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 아이들은 알고 있다 - 2부 끝...이게 정말 실화인지를 나중에서 알게된 사실이었는데요그때 듣고 얼마나 놀랬는지 다시한번 보게 되었어요. 알고나서 보게되니깐더욱더 슬프게 느껴지더라구요.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부터 어떻게든 사건을 해결하기위해 나선 박경식!도룡뇽을 잡으러 집을 나선 다섯명의 초등학생들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는데요.이번 사것을 파헤쳐 특종을 잡으려는 다큐멘터리 피디 강지승! 자신의 의견대로 개구리 소년의 범인을 주장하는 교수 황우혁..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을 포기하지 못하는 형사 박경식 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사건에 다가서는데...어서빨리 범인을 잡았으면 하네요.이제 공소시효도 완료될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요.. .그때마자 개구리소년실종사건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시곤 했어요...몇년전에 그것이알고싶다에서도 방영이 되엇던걸로 아는데...    1986년 3월 26일 대구그날은 선거날이있는날이라서 아이들이 학교에 가질 않았답니다.

아이들 6명이 집앞에서 놀다가...시끄럽다는 소리에...아이들은 도룡농알을 잡으로 와룡산으로 향하게 됩니다.

6명의 아이중 한아이인...김태룡은...아침을 먹고 나가지 않았다는 엄마의 말에..아침을먹고 같이 합세하기로했답니다,그렇게 6명의 아이중 1명을 제외한 5명의 아이들이 와룡산으로 향했고..그후로 5명의 아이들 모습은 볼수가 없었답니다.

    같은날 저녁...집에 돌아와야할 시간인데도..아이들이 들어오지 않차...부모들은 불안한 마음에..경찰에 신고를 하게되고...새벽3시까지 아이들(실종된 개구리소년) 찾았으나 결국 찾지못한채.....개구리소년실종후  여러가지의 소문이 나돌앗으며..아이들을 찾지못하자..이 사건...개구리소년실종사건은 영영 미제사건으로 남겨진채..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져갈때쯤...    2002년 9월 26일 와룡산으로 도토리를 주우러 갔던 등산객에 의해...그 개구리소년 5명의 아이들의 시신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당시 아이들 머리에는 총상을 입은 흔적들이 발견되었는데...  그당시 제보에 의하면...그날 와룡산주변에서 총성이 울렸고..아이들 비명소리가 들렸다는 얘기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직접적으로 본사람이 없기때문에..하나의 소문으로만 전해질뿐....   개구리소년실종사건을 일자별로 정리를 해보면...  ?  . 91년 3월 26일 - 개구리소년 실종. 91년 7월 5일 - 특별수사대 변성. 93년 1월 - 탄원서 제출(김영삼대통령시대). 97년 7월 - 개구리소년실종사건 전단지 베포. 2001년 10월 22일 - 개구리소년실종어린이 김종식군 아버지 간암으로 사망. 2002년 9월 26일 - 대구 와룡산에서 개구리소년 유골발견. 2002년 9월 27일 - 다시 수사시작. 2006년 3월 26일 - 공소시효 끝남        그후 개구리소년실종사건을 주제로한 "아이들"이란 영화가 제작이 되면서..다시한번...개구리소년실종사건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되죠...영화뿐만아니라 "그것이알고싶다"에서도 방송을 한적이 잇었고요....   아마도..그 개구리소년들이 살아잇엇다면..저보다 어린 친구들일꺼같네요..얼마나 무서웠을까요?1명도 아닌 5명을...어떤 나쁜x이 나쁜짓을 한것일까여?공소시효란건 왜 있는걸까요?나쁜짓을 한 나쁜x은 끝까지 잡아야 하는거아닌가여?저도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입장이지만..만약 제아이가 그런 끔찍한 일을 당했다면..아마도 제정신에 살기는 힘들꺼같습니다.

 요즘 보면 이런 범죄뿐만아니라..너무 끔찍한 범죄들이 많은거 같아요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되갈려고...이렇게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는지...휴....이글을 포스팅 하는 내내 가슴이 아파오네요....내아이가...내동생이....내친구가....만약 이런일을 겪었다면...마음이 어떨까여?  아마도...범인만이 그날에 무슨일이 잇었는지 알수있겟죠?1986년 3월 26일에..무슨일이 벌어졌는지...범인만이 알수있는거겟죠?!!!  계속 개구리 잡고 싶다해서  갔는데개구리는 없어서놀기만 했다^^첫번째 사진 스스로에게 감탄 중정식 사건명은 대구 성서초등학생 살인 암매장 사건입니다.

20대 후반 30대 이상 이신 분들은 한 번쯤은들어보셨을 유명한 미제 사건으로2011년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1991년 3월 26일?선거일이라 휴일이었던 그날은?여섯 명의 아이들?(우철원,조호연,김영규,박한인,김종식,김태룡)??은 동네 집 앞에서 놀고 ?있었는데요 시끄럽다는 어른들을 말에?도롱뇽 알을 주우러 와룡상에 갔다고 합니다.

?여기서 김태룡은 아침을 먹고 가기로 하고집으로 갔고 나머지 5명의 아이들이먼저 와룡산으로 출발하고 그 뒤로5명의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목격자인 김태룡은 와룡산 입구에서?다른 아이들을 발견했지만?엄마가 멀리 나가 놀지 말라는 말에?다시 집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5명의 소년들이 와룡산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들은 몇 명 있었는데요??조호연의 형과 같은 반 친구들..?같은 반 친구인 임승훈은??같이 도롱뇽 알을 잡으러 와룡산에?올라갔는데 산 위쪽에서 ?10초 간격으로 비명을 두 번 들었다고 합니다?오후 6시를 넘겨도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자 경찰에 신고를 했고?경찰과 부모들은 아이들을 새벽까지?찾았으나 아이들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2002년 9월 26일?와룡산 기슭에서 도토리를 줍던 주민이?사람의 뼈로 보이는 물체를 확인하고?등산용 지팡이로 주변 땅을 파헤치자?어린이용 신발을 확인 경찰에 신고를 합니다.

발견 위치는 개구리 소년들의 집으로부터3.5Km 가량 떨어진 곳이며 와룡산4부 능선에 위치한 곳으로평소 사람의 통행이 거의 없는 한적한 비 등산로였습니다.

현장은 구덩이가 파인 흔적이 없었고유골 위를 마치 표식이라도 하는 것처럼20Kg 가량의 바윗돌 하나가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현장에 도착한 부모들은 처음에는?아닌 것 같다고 말을 하다가?조호연 군의 치아 보철 흔적이 발견이 되면서?개구리 소년들의 유골인 것이 확실시됩니다.

???경찰은 실종 아이들의 집에서 3.5Km 떨어짐 점과유골이 서로 엉킨 채 껴안은 모습으로드러난 점을 들어 산속에서 길을 잃어비를 피하고자 구른 웅덩이에 쪼그리고앉아 온종일 굶은 상태에서 급격히떨어지는 산속 기온에 의한 저체온증자연사한 것 같다고 발표를 합니다.

?그러나 부모들은 당시 와룡산은 밤이라도불빛을 보고 내려올 수 있고동네 아이들이 와룡산에서 길을헤맨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반박을 했습니다.

?유골 발굴 48일째 되는 날경북대학교 의과 대한 법의학교실에서소년들의 유골 5구 가운데 3구 이상의 두개골에서 사망 당시 생긴 것으로추정되는 인위적 손상 흔적을 발견개구리 소년들이 타살됐음을 발표합니다.

?2006년 범인은 잡지 못하고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됩니다.

??앞으로 이런 끔찍한 사건들은그만 일어났으면 합니다.

http://blog.naver.com/wwwjjy3/220617224638?????? ???????? ??? ????? ????? ?????? ??? ???? ??? ?? ?????? ??...blog.naver.comhttp://blog.naver.com/wwwjjy3/220617291646?????? ?????? ? ??? ?????????? ? ?? ????????? ?????.?? ? ??? ???? ?? ?? ???...blo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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