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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파업



 수구언론들은 늘 "국민을 볼모로 파업을 한다"라고 떠들며 대다수의 사람들도 동의를 합니다.

하지만 그 내면을 제대로 짚는다면 당시의 민영화논리는 오히려 국민을 상대로 철도를 몇개의대기업에 팔아넘기고 독점을 무기로 이용객에게 심각한 해악을 끼칠수 있는 민영화나 다름없었습니다.

 잠시동안의 불편함을 참을수 없는 국민성과 파업을 경제활동의 가장큰 해악으로만 생각하는논리에 감염되어 이성적판단마져 찾기 어려운 여론이라는 공격속에서도 어쨌건간에 파업은그럭저럭 성공을 거뒀습니다.

 재밌는것은 당시엔 학생이였다가 후에 취업한 후배들을 통해서도 언론에 의해 극단적으로왜곡된 보도가 얼마나 커다란 사회발전의 걸림돌인지 피부로느낄 수 있습니다.

 늘 그래왔듯이 경기가 좋지 않으면 "경기가 않좋은데 파업이 왠말이냐"이고 경기가 좋으면"경기가 살고 있는데 파업이 왠말이냐"이며 하물며 가뭄속에서 일어난 파업에는 "가뭄중에파업이 왠말이냐"라는 희한한 논리를 들이대는 수구언론은 정작 사회적 약자의 권익보호에는아무런 관심도 없는대서 그 수구성이 더욱더 드러납니다.

 지난 날의 파업을 통해서 얻은것이 있다면 극단을 배제하는 방법을 찾고자 하는 중도파의노력은 늘 힘을 발휘할수 없다는것 입니다.

안타깝지만 다음달 3일날 철도노조는 파업을예고하고 있다는 겁니다.

생존권을 위하여 싸워야 하는 노동자와 그 생존권마저도 배부른자의소리라며 욕지거리하는 언론과 사용자 그리고 여론과도 싸워야합니다.

 "모두 잘라버려서 신규인력을 채용해야한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만 한가지 고언을 하자면그런 수준의 사회인식수준으로는 평생 취업예비군 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아니 노예신세를 벗어날수 없습니다.

파업은 노동자의 최후의 보루입니다.

왜 그들이 그런 극단의자해수단을 꺼내들었는지를 이해못하는 수준이라면 취업해봐야 별다른 삶의 의미를 찾을수없을뿐더러 취업할만한 수준도 되지 않습니다.

 간단히 지난 날의 파업사진을 올립니다.

힘들었지만 그로인해 힘들었을 철도이용객들에게도많은 미안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연대가 더욱더 절실해 지는 싯점입니다.

파업마지막날.파업날이 2월25일이 말해주듯, 너무나 추운 겨울날의 파업은 추위로인한 고통을 심하게 안겨주었습니다.

되는대로 걸치고 입고해서 취위를 막고자 했는데 수건은 베게도 되며 잘때 얼굴을덮으면 얼굴이 따뜻해집니다.

머리띠는 그런 수건을 묶는데도 활용하지만 온갖 잡동사니를엮는데 더없이 소중한 물건입니다.

 첫날부터 끝까지 팀웍을 발휘한 조원들. 파업이 끝났다는 소식에 얼마나 좋아했는지모릅니다.

대충이라도 합의를 했으면 하는 바램이였지만 번번히 결렬소식이 들릴때마다 견딜수없이 괴로와 했었습니다.

설마하니 이틀이 넘을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추위에 대한 대비책은거의 없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위에처럼 여기저기 주워온 옻들로 중무장을 하면서 견뎌내었습니다.

마지막날 기념사진파업 전야제. 이날만해도 파업을 할것이라는 생각을 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새벽에끝내 교섭이 결렬되고 파업이 선포되면서 분위기는 급속히 냉각되어 갔습니다.

기관사들은 두차례의 독자적인 파업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비교적 여유만만한 모습이였습니다만타분야는 거의 참석율이 없다시피한 그들만의 파업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가지 분명한것은 기관사와 검수원들만 참석한 파업은 참가율이 40%를 밑도는 파업임에도열차운행율은 거의 제로에 가까왔었고 그것은 역으로 철도에서 나머지 60%는, 극단적으론없어도 운행에 별다는 지장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식의 참가율과 그리고 운행율은 결국 구조조정의 큰 활용자료로 활용되었으며 지금의철도구조조정은 이후로도 참여율이 아주 저조했던 분야에 집중되고 말았습니다저 의기양양한 눈빛. 하지만 파업첫날 아침과 점심을 보내고 저녁 공연이 있던 저 시간엔 추위와의 본격적인 싸움이였습니다.

너무 춥다는 말보다는 실제론 정말 괴로왔던 순간들입니다.

은박지를 덮고 있는것이 얼핏보입니다.

기약없는 협상소식과 추위 그리고 잠자리의 불편함. 핸드폰의 문자메세지만이 외부와 통하는유일한 통로였습니다.

잠자리는 노숙으로 해결. 여기가 건물 안이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아쉽지만 건물밖입니다.

침낭하나로는 추위를 막을수 없어 가지고 있던 신문이나 옻가지등을 최대한 꾸겨넣어야 취위를막을수 있었고 저처럼 얼굴을 내미는것도 잠시뿐 조금있으면 모두 자그마한 침낭속으로 몸이모두 들어가는 신기한 경험을 합니다.

또한 잠은 가급적이면 옆으로 자야 상대적으로 차가운면적을 줄일수 있습니다.

 노숙의 아침. 어떻게 이사진을 찍었는지 지금도 신기합니다만 파업내내 새로산 디카를 이용해서사진을 찍을수 있었던것은 큰 행운이였습니다.

당시만해도 디카를 사용할수 있었던 사람들이철도에는 희박한데다 저는 행여나 장기간에 걸칠지 모르는 파업에 대비해서 충전기를 가지고있었고 메모리도 최대한 아끼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한동안 중요한 자료가 되어 활용되곤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사진에 찍히는 사람들이 늘고 있었습니다.

분명 첫날엔 없던 사람들이두째날과 세째날에는 사진에 찍히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그런사람들의 그런 기회주의적인 행태를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당시만해도 그런 사람들에 대한 분노는 매우 높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라도 참석을 거부한 사람들에겐 그에 따른응징이 가해져 한동안 직장내에서도위화감이 높았었습니다.

 반성을 해본다면 높은 참여율은 한편으론 무시무시한 왕따와 배제의 경험임을 고백하지않을수 없습니다.

파업참가로 인한 불이익보다는 파업불참에 따른 불이익이 오히려 더 컸다고도보여집니다.

정작 파업에 참가를 안한 사람들에겐 철도청에서 아무런 혜택을 주지 않은것도기회주의자들에겐 또다른 고통이였습니다.

 "국민을 볼모로한 파업"중엔 이런일도 있었습니다.

밤에는 공연을 주로 했고 낮체는 평생가져보지 못한 동료들과의 휴식이 있었습니다.

400명이 넘는 직장에서 100년역사이래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여 얼굴을 맞대한적이이번이 처음이였을 정도였습니다.

 하물며 같은 소속이 아닌 타소속으로 전출간 동료들이 모두 모이는 자리는 파업자리가 아니면 없다는 것 정도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괴롭고 힘든 날이였지만 그 와중엔 이렇게 평소 얼굴을 보기 힘들었던 동료들과의 장난도 있었습니다.

늘 과묵함과 공무원으로서의 품위만을 강요당하면서 살아온 지난날을 생각하면이런 표정을 볼수 있다는것이 파업으로 느끼는 아이러니 였습니다.

 수구언론들은 늘 "국민을 볼모로 파업을 한다"라고 떠들며 대다수의 사람들도 동의를 합니다.

[철도 파업] 매력을 알아보자


하지만 그 내면을 제대로 짚는다면 당시의 민영화논리는 오히려 국민을 상대로 철도를 몇개의대기업에 팔아넘기고 독점을 무기로 이용객에게 심각한 해악을 끼칠수 있는 민영화나 다름없었습니다.

 잠시동안의 불편함을 참을수 없는 국민성과 파업을 경제활동의 가장큰 해악으로만 생각하는논리에 감염되어 이성적판단마져 찾기 어려운 여론이라는 공격속에서도 어쨌건간에 파업은그럭저럭 성공을 거뒀습니다.

 재밌는것은 당시엔 학생이였다가 후에 취업한 후배들을 통해서도 언론에 의해 극단적으로왜곡된 보도가 얼마나 커다란 사회발전의 걸림돌인지 피부로느낄 수 있습니다.

 늘 그래왔듯이 경기가 좋지 않으면 "경기가 않좋은데 파업이 왠말이냐"이고 경기가 좋으면"경기가 살고 있는데 파업이 왠말이냐"이며 하물며 가뭄속에서 일어난 파업에는 "가뭄중에파업이 왠말이냐"라는 희한한 논리를 들이대는 수구언론은 정작 사회적 약자의 권익보호에는아무런 관심도 없는대서 그 수구성이 더욱더 드러납니다.

 지난 날의 파업을 통해서 얻은것이 있다면 극단을 배제하는 방법을 찾고자 하는 중도파의노력은 늘 힘을 발휘할수 없다는것 입니다.

안타깝지만 다음달 3일날 철도노조는 파업을예고하고 있다는 겁니다.

생존권을 위하여 싸워야 하는 노동자와 그 생존권마저도 배부른자의소리라며 욕지거리하는 언론과 사용자 그리고 여론과도 싸워야합니다.

 "모두 잘라버려서 신규인력을 채용해야한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만 한가지 고언을 하자면그런 수준의 사회인식수준으로는 평생 취업예비군 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아니 노예신세를 벗어날수 없습니다.

파업은 노동자의 최후의 보루입니다.

왜 그들이 그런 극단의자해수단을 꺼내들었는지를 이해못하는 수준이라면 취업해봐야 별다른 삶의 의미를 찾을수없을뿐더러 취업할만한 수준도 되지 않습니다.

 간단히 지난 날의 파업사진을 올립니다.

힘들었지만 그로인해 힘들었을 철도이용객들에게도많은 미안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연대가 더욱더 절실해 지는 싯점입니다.

파업마지막날.파업날이 2월25일이 말해주듯, 너무나 추운 겨울날의 파업은 추위로인한 고통을 심하게 안겨주었습니다.

되는대로 걸치고 입고해서 취위를 막고자 했는데 수건은 베게도 되며 잘때 얼굴을덮으면 얼굴이 따뜻해집니다.

머리띠는 그런 수건을 묶는데도 활용하지만 온갖 잡동사니를엮는데 더없이 소중한 물건입니다.

 첫날부터 끝까지 팀웍을 발휘한 조원들. 파업이 끝났다는 소식에 얼마나 좋아했는지모릅니다.

대충이라도 합의를 했으면 하는 바램이였지만 번번히 결렬소식이 들릴때마다 견딜수없이 괴로와 했었습니다.

설마하니 이틀이 넘을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추위에 대한 대비책은거의 없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위에처럼 여기저기 주워온 옻들로 중무장을 하면서 견뎌내었습니다.

마지막날 기념사진파업 전야제. 이날만해도 파업을 할것이라는 생각을 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새벽에끝내 교섭이 결렬되고 파업이 선포되면서 분위기는 급속히 냉각되어 갔습니다.

기관사들은 두차례의 독자적인 파업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비교적 여유만만한 모습이였습니다만타분야는 거의 참석율이 없다시피한 그들만의 파업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가지 분명한것은 기관사와 검수원들만 참석한 파업은 참가율이 40%를 밑도는 파업임에도열차운행율은 거의 제로에 가까왔었고 그것은 역으로 철도에서 나머지 60%는, 극단적으론없어도 운행에 별다는 지장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가 되고 말았습니다.

[철도 파업] 선택의 여지가 ...



 이런식의 참가율과 그리고 운행율은 결국 구조조정의 큰 활용자료로 활용되었으며 지금의철도구조조정은 이후로도 참여율이 아주 저조했던 분야에 집중되고 말았습니다저 의기양양한 눈빛. 하지만 파업첫날 아침과 점심을 보내고 저녁 공연이 있던 저 시간엔 추위와의 본격적인 싸움이였습니다.

너무 춥다는 말보다는 실제론 정말 괴로왔던 순간들입니다.

은박지를 덮고 있는것이 얼핏보입니다.

기약없는 협상소식과 추위 그리고 잠자리의 불편함. 핸드폰의 문자메세지만이 외부와 통하는유일한 통로였습니다.

잠자리는 노숙으로 해결. 여기가 건물 안이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아쉽지만 건물밖입니다.

침낭하나로는 추위를 막을수 없어 가지고 있던 신문이나 옻가지등을 최대한 꾸겨넣어야 취위를막을수 있었고 저처럼 얼굴을 내미는것도 잠시뿐 조금있으면 모두 자그마한 침낭속으로 몸이모두 들어가는 신기한 경험을 합니다.

또한 잠은 가급적이면 옆으로 자야 상대적으로 차가운면적을 줄일수 있습니다.

 노숙의 아침. 어떻게 이사진을 찍었는지 지금도 신기합니다만 파업내내 새로산 디카를 이용해서사진을 찍을수 있었던것은 큰 행운이였습니다.

당시만해도 디카를 사용할수 있었던 사람들이철도에는 희박한데다 저는 행여나 장기간에 걸칠지 모르는 파업에 대비해서 충전기를 가지고있었고 메모리도 최대한 아끼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한동안 중요한 자료가 되어 활용되곤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사진에 찍히는 사람들이 늘고 있었습니다.

분명 첫날엔 없던 사람들이두째날과 세째날에는 사진에 찍히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그런사람들의 그런 기회주의적인 행태를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당시만해도 그런 사람들에 대한 분노는 매우 높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라도 참석을 거부한 사람들에겐 그에 따른응징이 가해져 한동안 직장내에서도위화감이 높았었습니다.

 반성을 해본다면 높은 참여율은 한편으론 무시무시한 왕따와 배제의 경험임을 고백하지않을수 없습니다.

파업참가로 인한 불이익보다는 파업불참에 따른 불이익이 오히려 더 컸다고도보여집니다.

정작 파업에 참가를 안한 사람들에겐 철도청에서 아무런 혜택을 주지 않은것도기회주의자들에겐 또다른 고통이였습니다.

 "국민을 볼모로한 파업"중엔 이런일도 있었습니다.

밤에는 공연을 주로 했고 낮체는 평생가져보지 못한 동료들과의 휴식이 있었습니다.

400명이 넘는 직장에서 100년역사이래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여 얼굴을 맞대한적이이번이 처음이였을 정도였습니다.

 하물며 같은 소속이 아닌 타소속으로 전출간 동료들이 모두 모이는 자리는 파업자리가 아니면 없다는 것 정도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괴롭고 힘든 날이였지만 그 와중엔 이렇게 평소 얼굴을 보기 힘들었던 동료들과의 장난도 있었습니다.

늘 과묵함과 공무원으로서의 품위만을 강요당하면서 살아온 지난날을 생각하면이런 표정을 볼수 있다는것이 파업으로 느끼는 아이러니 였습니다.

 수구언론들은 늘 "국민을 볼모로 파업을 한다"라고 떠들며 대다수의 사람들도 동의를 합니다.

하지만 그 내면을 제대로 짚는다면 당시의 민영화논리는 오히려 국민을 상대로 철도를 몇개의대기업에 팔아넘기고 독점을 무기로 이용객에게 심각한 해악을 끼칠수 있는 민영화나 다름없었습니다.

 잠시동안의 불편함을 참을수 없는 국민성과 파업을 경제활동의 가장큰 해악으로만 생각하는논리에 감염되어 이성적판단마져 찾기 어려운 여론이라는 공격속에서도 어쨌건간에 파업은그럭저럭 성공을 거뒀습니다.

 재밌는것은 당시엔 학생이였다가 후에 취업한 후배들을 통해서도 언론에 의해 극단적으로왜곡된 보도가 얼마나 커다란 사회발전의 걸림돌인지 피부로느낄 수 있습니다.

 늘 그래왔듯이 경기가 좋지 않으면 "경기가 않좋은데 파업이 왠말이냐"이고 경기가 좋으면"경기가 살고 있는데 파업이 왠말이냐"이며 하물며 가뭄속에서 일어난 파업에는 "가뭄중에파업이 왠말이냐"라는 희한한 논리를 들이대는 수구언론은 정작 사회적 약자의 권익보호에는아무런 관심도 없는대서 그 수구성이 더욱더 드러납니다.

 지난 날의 파업을 통해서 얻은것이 있다면 극단을 배제하는 방법을 찾고자 하는 중도파의노력은 늘 힘을 발휘할수 없다는것 입니다.

안타깝지만 다음달 3일날 철도노조는 파업을예고하고 있다는 겁니다.

생존권을 위하여 싸워야 하는 노동자와 그 생존권마저도 배부른자의소리라며 욕지거리하는 언론과 사용자 그리고 여론과도 싸워야합니다.

 "모두 잘라버려서 신규인력을 채용해야한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만 한가지 고언을 하자면그런 수준의 사회인식수준으로는 평생 취업예비군 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아니 노예신세를 벗어날수 없습니다.

파업은 노동자의 최후의 보루입니다.

왜 그들이 그런 극단의자해수단을 꺼내들었는지를 이해못하는 수준이라면 취업해봐야 별다른 삶의 의미를 찾을수없을뿐더러 취업할만한 수준도 되지 않습니다.

 간단히 지난 날의 파업사진을 올립니다.

힘들었지만 그로인해 힘들었을 철도이용객들에게도많은 미안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연대가 더욱더 절실해 지는 싯점입니다.

파업마지막날.파업날이 2월25일이 말해주듯, 너무나 추운 겨울날의 파업은 추위로인한 고통을 심하게 안겨주었습니다.

되는대로 걸치고 입고해서 취위를 막고자 했는데 수건은 베게도 되며 잘때 얼굴을덮으면 얼굴이 따뜻해집니다.

머리띠는 그런 수건을 묶는데도 활용하지만 온갖 잡동사니를엮는데 더없이 소중한 물건입니다.

 첫날부터 끝까지 팀웍을 발휘한 조원들. 파업이 끝났다는 소식에 얼마나 좋아했는지모릅니다.

대충이라도 합의를 했으면 하는 바램이였지만 번번히 결렬소식이 들릴때마다 견딜수없이 괴로와 했었습니다.

설마하니 이틀이 넘을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추위에 대한 대비책은거의 없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위에처럼 여기저기 주워온 옻들로 중무장을 하면서 견뎌내었습니다.

마지막날 기념사진파업 전야제. 이날만해도 파업을 할것이라는 생각을 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새벽에끝내 교섭이 결렬되고 파업이 선포되면서 분위기는 급속히 냉각되어 갔습니다.

기관사들은 두차례의 독자적인 파업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비교적 여유만만한 모습이였습니다만타분야는 거의 참석율이 없다시피한 그들만의 파업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가지 분명한것은 기관사와 검수원들만 참석한 파업은 참가율이 40%를 밑도는 파업임에도열차운행율은 거의 제로에 가까왔었고 그것은 역으로 철도에서 나머지 60%는, 극단적으론없어도 운행에 별다는 지장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식의 참가율과 그리고 운행율은 결국 구조조정의 큰 활용자료로 활용되었으며 지금의철도구조조정은 이후로도 참여율이 아주 저조했던 분야에 집중되고 말았습니다저 의기양양한 눈빛. 하지만 파업첫날 아침과 점심을 보내고 저녁 공연이 있던 저 시간엔 추위와의 본격적인 싸움이였습니다.

너무 춥다는 말보다는 실제론 정말 괴로왔던 순간들입니다.

은박지를 덮고 있는것이 얼핏보입니다.

기약없는 협상소식과 추위 그리고 잠자리의 불편함. 핸드폰의 문자메세지만이 외부와 통하는유일한 통로였습니다.

잠자리는 노숙으로 해결. 여기가 건물 안이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아쉽지만 건물밖입니다.

침낭하나로는 추위를 막을수 없어 가지고 있던 신문이나 옻가지등을 최대한 꾸겨넣어야 취위를막을수 있었고 저처럼 얼굴을 내미는것도 잠시뿐 조금있으면 모두 자그마한 침낭속으로 몸이모두 들어가는 신기한 경험을 합니다.

또한 잠은 가급적이면 옆으로 자야 상대적으로 차가운면적을 줄일수 있습니다.

 노숙의 아침. 어떻게 이사진을 찍었는지 지금도 신기합니다만 파업내내 새로산 디카를 이용해서사진을 찍을수 있었던것은 큰 행운이였습니다.

당시만해도 디카를 사용할수 있었던 사람들이철도에는 희박한데다 저는 행여나 장기간에 걸칠지 모르는 파업에 대비해서 충전기를 가지고있었고 메모리도 최대한 아끼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한동안 중요한 자료가 되어 활용되곤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사진에 찍히는 사람들이 늘고 있었습니다.

분명 첫날엔 없던 사람들이두째날과 세째날에는 사진에 찍히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그런사람들의 그런 기회주의적인 행태를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당시만해도 그런 사람들에 대한 분노는 매우 높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라도 참석을 거부한 사람들에겐 그에 따른응징이 가해져 한동안 직장내에서도위화감이 높았었습니다.

 반성을 해본다면 높은 참여율은 한편으론 무시무시한 왕따와 배제의 경험임을 고백하지않을수 없습니다.

파업참가로 인한 불이익보다는 파업불참에 따른 불이익이 오히려 더 컸다고도보여집니다.

정작 파업에 참가를 안한 사람들에겐 철도청에서 아무런 혜택을 주지 않은것도기회주의자들에겐 또다른 고통이였습니다.

 "국민을 볼모로한 파업"중엔 이런일도 있었습니다.

밤에는 공연을 주로 했고 낮체는 평생가져보지 못한 동료들과의 휴식이 있었습니다.

400명이 넘는 직장에서 100년역사이래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여 얼굴을 맞대한적이이번이 처음이였을 정도였습니다.

 하물며 같은 소속이 아닌 타소속으로 전출간 동료들이 모두 모이는 자리는 파업자리가 아니면 없다는 것 정도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괴롭고 힘든 날이였지만 그 와중엔 이렇게 평소 얼굴을 보기 힘들었던 동료들과의 장난도 있었습니다.

늘 과묵함과 공무원으로서의 품위만을 강요당하면서 살아온 지난날을 생각하면이런 표정을 볼수 있다는것이 파업으로 느끼는 아이러니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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