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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선 tv토론 중계



 과거 대선 때는 여의도광장에 100만 인파를 서로 모아 세 과시를 하는 등 동원정치에 매달렸던 데 비해 1997년 대선부터 도입된 TV 토론회로 인해 후보들은 이제 말로 하는 안방정치에 더 많은 시간을 쏟게 됐다.

이때부터 대선에 나선 후보들은 TV 토론을 통해 정책을 알리고, 자신의 장점을 부각시키며 상대의 단점을 공격했다.

 말 한마디로 판세를 뒤집는 이미지 정치 시대가 열린 것이다.

 ? TV 토론의 역사는 TV 보급 시기와 연관이 깊다.

 1960년 케네디 vs. 닉슨의 TV 토론은 TV 정치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이벤트였다.

 당시 민주당의 젊은 피 케네디와 노련미를 앞세웠던 공화당의 닉슨이 맞붙어 불꽃 튀는 경쟁을 벌였지만, 결과는 잘생긴 외모와 자신만만한 제스처, 그리고 뛰어난 언변으로 시청자를 매료시켰던 케네디의 승리로 돌아갔다.

 이처럼 TV 토론은 유권자의 지지율뿐만 아니라 여론과 민심마저도 흔들리게 한다.

 따라서 미국 대선 주자들은 TV 토론을 어느 선거 운동보다 우선순위로 생각하며 TV 토론을 준비하고, 이를 통해 반전을 기대하며 승부수를 던지기도 한다.

 ? ?  ?[그림 1] 1960년 케네디와 닉슨의 TV 토론회 ? ? ? ? 대한민국에서 대통령 선거 토론과 관련해 본격적으로 TV를 활용했던 시기는 ?방송연설이  ?도입된 1992년 대선이었다.

 중견들의 모임인 관훈클럽에서 김영삼(민자당),  김대중(민주당), 정주영(국민당) 후보를 차례로 불러 토론회를 열었으며,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이 이를 녹화로 중계방송했다.

이때는 단순히 대선후보가 나와서 TV로 자신의 정책을 발표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대선주자들에 대한 첫 TV 토론이어서 유권자들의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그러나 토론회라고 부르기는 했지만, 엄밀하게 보면 2명 이상의 후보자들끼리 하는 토론이 아니라 개별 후보에 대한 초청 대담이었다.

1995년 선거법에 TV대담 · 토론규정을 ?명문화해 그해 지방선거부터 실질적인 TV 토론회가 이뤄졌다.

 ? ?  [그림 2] 1992년 제14대 대선 후보 정주영, 김대중, 김영삼 (왼쪽부터) ? ? ? ? 이후 대선부터는 본격적으로 TV 토론이 시작됐다.

유권자들이 대선 후보의 진면목을 비교적 잘 파악할 수 있는 기회는 대담(후보 1인 참석)이나 토론(후보 2인 이상)이다.

민생 탐방이나  이익단체 방문, 대학 강연 등의 대선 행보는 일방적인 홍보에 그치는 반면에 대담이나 토론은 후보들의 능력이나 자질 등을 점검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후보들이 답변하고  상호 토론하는 모습을 보면서 유권자들은 후보의 정책과 철학, 비전 등을 비교 검증할 수 있다.

 따라서 유권자들이 후보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TV 토론이다.

 이 때문에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은 TV 토론에서 승기(勝機)를 잡기 위해 모든 노력을 집중해  왔으며, TV 토론을 중요한 선거전략 중 하나로 여겨 왔다.

 ? 그렇다면 역대 TV 토론이 대선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시대별로 살펴보자. ? ? ? ? ● 1997년 제15대 대선 후보 TV 토론회  TV 토론은 1997년 15대 대통령 선거가 효시다.

 15대 대선 당시 TV 토론 수혜자는 김대중(DJ) 국민회의 후보였다.

 오랫동안 과격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던 김대중 후보가 김종필 당시 자민련 총재와의  ?후보 단일화 TV 토론과 대선 TV 토론을 통해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며 준비된 대통령의 모습을 각인시켰다.

또한 반DJ정서를 누그러뜨리는 데도 성공했다.

당시 최대 이슈였던 IMF 위기와 관련하여 “김영삼 정부에서 감사원장, 총리, 당대표를 지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경제파탄의 주범”이라고 몰아세우는 데도 성공해 대선 승리에 디딤돌이 됐다.

 ? ?  [그림 3] 15대 야권 대통령후보 단일화 합의 서명식을 하는 김대중과 김종필 ? ? ? ? 15대 대선 때는 토론회도 풍성했다.

 ?이회창(한나라당), 김대중(새정치국민회의), 이인제(국민신당) 후보가  ?세차례의 법정토론회뿐 아니라 언론사와 시민단체 등에서 주관하는 각종 대담 (1인 대상)과  ?토론 (2인 이상 대상)에 앞다퉈 참석했다.

토론회가 너무 많다고 아우성이 나올 정도였다.

 ?선관위 집계를 보면, 방송사가 주최해서 중계한 토론회만도 30회가 넘었다.

 ?또 신문사들도 세 후보를 초청해서 합동토론회를 열었으며, 이를 지상파TV로 중계하기도 했다.

? 한강 백사장, 효창운동장, 장충단공원, 여의도광장 등을 돌며 세를 과시하며 벌이던 대통령 후보 연설에서 벗어나 브라운관에 후보가 등장하자 웃지 못할 일들도 생겨났다.

 1997년 15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열린 첫 토론회를 보면 그렇다.

이회창(한나라당),  김대중(새정치국민회의), 이인제(국민신당) 등 토론회에 참여한 대선 후보 모두 사회자가  제한하는 발언 시간 1분30초를 맞추지 못해 진땀을 뺐다.

김대중 후보는 당시 세 번째 대권  도전이었음에도 첫 토론회에서는 물을 마시며 어색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 ?   [그림 4] 1997년 한국 첫 대선 TV 토론회에 참석한 이회창, 김대중, 이인제 후보 ? ? ? ? ● 2002년 제16대 대선 후보 TV 토론회  TV 토론이 본격적인 선거의 중심으로 떠오른 건 2002년 대선이었다.

특히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 간의 후보 단일화 TV 토론은 큰 관심을 모았다.

 ?2002년 11월 22일,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는 오후 7시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회관에서  ?두 시간 동안 정치, 통일외교안보, 경제, 사회문화, 단일화 등 5개 분야를 두고 열띤 토론을  진행했다.

단 한 차례 열린 두 후보의 단일화 TV 토론 방송은 30% 안팎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 토론에서 노 후보는 자극적인 단어를 쓰며 공세적 태도를 취하던  이전 TV 토론과는 달리 말을 아끼며 무겁고 점잖은 태도를 보였던 점이 큰 형님 이미지로  안정감을 보이며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 ?  [그림 5] 후보 단일화 TV 토론회에서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가 토론을 벌이고 있다.

 ? ? ? ? 16대 대선에서도 TV 토론은 대선정국을 뜨겁게 달궜다.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병역비리 공방과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장인 부역 논란을 비롯해 뜨거운 쟁점이 많았다.

 청문회 스타 출신으로 공격적인 토론을 이끈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두 번째 대권으로 풍부한 경험을 쌓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사이의 활발한 설전이 가능했지만, 16대 대선 재도전에 나선 이회창 후보는 15대 때의 학습 결과였는지 다자 토론을 철저하게 기피했다.

 SBS에서 그해 9월 이회창, 노무현, 정몽준 세 후보를 대상으로 일대일 양자토론을 제안했지만, 이 후보의 거부로 무산됐다.

[미 대선 tv토론 중계]


이 때문에 1인 초청 대담은 많았지만, 합동토론은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하는 법정토론회 3차례에 그쳤다.

 ? ?  [그림 6] 제16대 대통령후보 초청 TV 합동토론회에 참석한 이회창, 노무현, 권영길 후보 ? ? ? ? ● 2007년 제17대 대선 후보 TV 토론회  2007년 17대 대선 때는 토론 횟수가 더 줄었다.

방송사와 언론단체, 시민단체가 주관이 된 초청 대담과 토론이 16대에 비해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대세론이 높아지자, 대선 후보들 사이의 경쟁이 큰 관심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BBK 사건 의혹에 시달리던 이 후보가 TV 토론회에서 다른 후보들의 공세를  ?차단하려고 토론회 자체를 기피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초반부터 야당 후보들보다  ?멀찌감치 앞선 이 후보는 3자 토론은 말할 것도 없고 1인 초청 토론도 가능하면 참석을 꺼렸다.

 ?다자 토론은 3차례의 법정토론회가 전부였다.

 ? ?  ?[그림 7] 대선 TV 토론보다 대담에 더 많이 출연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 ? ? ? 2007년 대선 후보 TV 토론의 경우 토론의 질적 측면에서는 거의 최악에 가까웠다는 혹평을 받았다.

2007년 12월 6일 열린 1차 합동 TV 토론회에 출연한 후보는 여섯 명이다.

 1997년, 2002년의 경우 당선 가능성이 높은 순서대로 3명의 후보들만 참여하다가 2007년 17대 선거부터 국회 의석 수 5석 이상 정당의 후보자나 직전 총선 득표율 3% 이상을 기록한 정당의 후보자, 또는 후보등록 마감 30일 전 여론조사에서 5% 이상 지지율을 기록한 후보자라면 모두 참석할 수 있도록 규정이 바뀌었다.

 ? ?이에 따라 17대 TV 토론에는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비롯해 ?무소속 이회창, 창조한국당 문국현, ?민주노동당 권영길, 민주당 이인제 후보 등 모두 여섯 명이 참석하여 무대를 꽉 채웠다.

저녁 8시부터 2시간 동안 이어진 토론에서 후보당 할당된 시간은 고작 20분. 깊이 있는 공방이 오가는 건 사실상 어려웠다.

공정성을 위해 후보자 간 발언시간이 기계적으로 통제됐다.

후보자 간 상호 토론이 있었지만 반박 1분, 재반박은 2분이고,  ?이마저 후보자들은 상대 후보 흠집 내기에 썼다.

토론이 아닌 일방적 공격에 가까웠다.

 ? ?무려 여섯 명의 후보가 나란히 앉아 정견발표를 가진 후 곧바로 인신공격에 가까운 말싸움을 ?벌이는 통에 정책 토론은 커녕 ?재미도 의미도 박진감도 실종됐다는 평가를 받은 TV 토론에 ?무용론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17대 TV 토론처럼 다수의 후보가 토론에 참여할 경우에는 ?시간 제약으로 생산적인 토론이  ??이뤄질 수 없고, 후보 각자의 발언을 하는 데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게다가 중립과  ??기회의 평등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쓴 나머지 심도있는 토론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  [그림 8] 제17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토론회 ? ? ? ? 특히 2007년 대통령 선거 TV 토론이 1997년 15대 대선 때부터 도입된 TV 토론 역사상 가장 실패작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시청률에서부터 나타난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에 따르면 2007년 1, 2차 두 차례의 TV 토론을 마친 후 <TV 토론을 보았다>는 답은 49.6%에 불과했다.

이는 세 차례 토론회에서 <보았다>는 답이 모두 70%를 넘긴 2002년 토론에 비하면 훨씬 낮은 수치다.

공식 시청률에서도  ?2007년 TV 토론은 21.7%를 기록해 1997년(53.2%)이나 2002년(34.2%)보다 훨씬 떨어졌다.




 ? TV 토론의 선전이 대선 승리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던 이전과도 다른 양상을 보였다.

 ?실제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는 TV 토론에선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에 비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시행한 2007년 1, 2차 TV 토론에  대한 후보별 평가를 보면 정동영 21.1%, 이명박 17.6%, 이회창 10.0%, 문국현 8.1%,  이인제 4.7% 순으로 <잘했다>는 답이 나왔다.

TV 토론만 놓고 보면 정동영 후보의 승리였지만 실제 투표결과 정 후보는 사상 최대 표차인 530여만표 차로 패배했다.

 역대 대선 최저 투표율(63%)를 보인 2007년 대선은 레이스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 우세가 한 번도 뒤바뀌지 않았고, TV 토론이 전혀 변수가 되질 못했다.

 ? ?  [그림 9] 17대 대선 TV 토론 결과 ? ? ? ? ● 2012년 제18대 대선 후보 TV 토론회  대통령 선거를 28일 남겨 놓은 2012년 11월 21일 밤 11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지상파 3사가 생중계하는 TV 토론에 출연해 ?단일화 협상에 대한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이날 TV 토론은 두 후보가 후보 등록 전 단일화를 합의한 가운데 유권자들이 후보의 능력과 자질을 검증하고 지지후보를 결정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한다는 측면에서 관심을 모았다.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이날 TV 토론에서 두 후보는 정치 · 경제 · 사회 · 통일안보외교 4개 분야에 대한 주도권 토론을 했다.

주도권 토론은 각 주제 별로 두 후보가 각각 7분 내에 상대방에게 원하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듣는 형식이다.

 ?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토론 시작과 함께 단일화 협상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문 후보가 안 후보 측의 경직된 협상 태도를 지적하며 절충을 요구하자 안 후보는 협상 과정에서 양측이 의견 접근을 이루지 못한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문 후보가 거듭 안 후보 협상팀이 재량권이 없어 협상이 답보 상태라고 지적하자 안 후보는 "사실이 아니다"고 맞받아치며 신경전을 벌였다.

 ? 안 후보는 정치 분야 주도권 토론을 진행하며 문 후보에게 "왜 문 후보가 단일화 후보가 되어야 하는지 말해달라"고 질문했다.

이에 문 후보는 "단일화의 목적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이기고 정권 교체를 해내 새로운 정치를 이루는 것이라고 한다면, 단일화는 누가 박 후보를 이길 수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다.

단일화의 기준은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으로부터 누가 더 지지를 받느냐에 있고, 단일화 방안도 마땅히 국민으로부터 판단을 받는 방법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안 후보는 "마지막, 투표를 할 때 박 후보와 격돌했을 때 누가 이길 것이냐가 중요하다고 본다"고 촌평했다.

 ? 토론이 끝날 무렵 사회자가 두 후보에게 상대 후보의 공약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달라고 주문하자 문 후보는 단일화 과정에 대한 불만을 털어 놓으며 안 후보를 공격했다.

 문 후보는 "안 후보의 단일화에 대한 의지와 진심을 믿지만 그것이 협상팀에는 잘 반영되지 않는 것 같다.

협상팀이 너무 승부에 집착하는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지적했다.

 반면 안 후보는 단일화 협상 과정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 두 후보는 토론 과정에서 발빠른 단일화 합의를 도출하자는데 의견을 모으고 22일 만나기로 뜻을 모았다.

문 후보는 "동반자 관계인데 맞짱 토론하는 거라 쑥쓰럽다"고 말하며 ?후보끼리 직접 만나자고 제안했고, 이에 안 후보는 "많은 분들이 답답해하니 만나서 좋은 방안이 도출됐으면 한다"고 답했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사회자는 "두 후보가 토론에서 뉴스를 생산하고 있다"고 말하며 "두 분 내일 만나기로 한 것 맞죠?"라고 거듭 확인했다.

 ? ?  [그림 10]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야권 단일화 토론회 ? ? ? ? 그런데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가 단일화 토론이 있고 이틀 뒤인, 23일 밤 8시 20분 ?대선 후보 사퇴를 선언했다.

안 후보는 서울 종로구 공평동 선거캠프에서 긴급 회견을 갖고 백의종군할 것을 선언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안 후보는 이제부터 야권의 단일후보는 문재인 후보라며 문재인 후보에게 성원을 보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 안 후보는 문재인 후보측과 단일화 방식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며 더 이상 단일화로 대립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고, 옳고 그름을 떠나 새정치에 어긋나며 국민에게 더 많은 상처를 드릴 뿐이라고 말했다.

안 후보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단일화를 이루겠다고 밝힌 바 있다며 새 정치를 펼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치인이 국민 앞에 드린 약속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 후보는 국민 여러분께서 불러주신 고마운 뜻을 결코 잊지 않겠다며 시대와 역사의 소명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안 후보는 회견 내내 눈시울을 붉혔고 회견장에서는 사퇴를 만류하는 고성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 ?    [그림 11] 안철수 무소속 대통령 후보가 23일 오후 후보 사퇴 표명 회견을 하고 있다.

 ? ?  ?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대선 후보직 사퇴를 전격 선언하면서 팽팽했던 대선 삼각구도는 일시에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전통적인 여야 양자구도로 재편됐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후보직을 전격 사퇴한 것과 관련하여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측은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문 후보 캠프 관계자들은 이날 영등포 당사에서 TV를 통해 생중계되는 안 후보의 긴급입장발표 회견을 지켜보던 중 안 후보가 사퇴를 선언하자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 당초 문 후보 측은 이날 안 후보의 입장발표 회견 예고가 있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단일화  협상 결렬에 따른 후보간 담판을 제안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23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의 후보직 사퇴에 대해  ?"안후보님과 안 후보님을 지지하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미안합니다"는 글을 남겼다.

 ? ?  ?[그림 12]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트위터 ? ? ? ? ● 역대 대선 TV 토론  역대 대선 TV 토론에서 보듯이 선관위 주최의 TV 토론뿐만 아니라 각종 단체, 언론사 등이 주관하는 TV 토론이 많았다.

TV 토론이 처음 도입된 1997년 15대 대선 때는 TV 토론만 54회가 열렸고, 언론사, 단체 초청까지 포함하면 100여회가 넘었다.

2002년 16대 대선 때에도 TV 토론은 27회나 열렸다.

2002년 10월 한달 동안 KBS, MBC, SBS, YTN 등 4개 방송사의 초청 대담만 해도 모두 10건이 이뤄졌다.

 ? ?사흘에 한번꼴로 주요 후보들이 번갈아 TV에 나와 패널리스트들로부터 주요 정책과 현안 등에 대한 추궁을 받았다.

2002년 당시 대선에 출마한 노무현 대통령은 본래 토론을 좋아했지만,  ?너무 잦은 토론회 때문에 수행원들에게 불평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2007년 17대 대선부터 TV 토론이 줄기 시작했다.

 당시 TV 토론은 11회로 이전 두 번의 대선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었다.

 ? ?   [그림 13] 역대 대통령 선거 TV 토론회 ? ? ? ? 그렇다면 18대 대선에서는 어떨까? 현재 공식적으로 계획되어 있는 TV 토론은 3차례이며, 모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관하는 TV 토론이다.

 초청 대상 후보자 토론회에 참석할 대선 후보는 국회 5석 이상 정당 추천 후보, 직전 선거에서 3% 이상 득표한 정당 추천 후보, 최근 여론조사에서 평균 지지율이 5% 이상인 후보 등이다.

 오는 12월 4일 정치ㆍ외교ㆍ안보ㆍ통일 분야를 시작으로 10일 경제ㆍ복지ㆍ노동ㆍ환경 분야, 16일 사회ㆍ교육ㆍ과학ㆍ문화ㆍ여성 분야 토론회 순으로 이어진다.

 ? 초청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군소 후보들은 12월 5일 따로 모여 한 차례 토론회를 한다.

 중앙선관위 주재 토론회는 KBS와 MBC를 통해 동시 생중계된다.

이와 별도로 방송토론위는  대선을 앞두고 공직선거법 규정에 따라 ?오는 31일과 다음달 16일 공직선거 정책토론회를  개최한다.

 ?이 토론회에는 대선 후보가 아닌 각 정당 대표자가 참석한다.

 하지만 TV 토론은 아직 한 번도 열리지 않았고 향후 진행 여부도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 ?  [그림 14] 제18대 대선 후보 초청 TV 토론회 ? ? ? ? 대선 후보 TV 토론은 각 후보의 국정운영 철학과 비전, 자질, 정책을 직접 비교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예전과 같은 야외 합동연설이 없어진 지금, 대규모의 유권자에게 후보가 가장 많이 노출되는 기회 역시 TV 토론이다.

 그런 맥락에서 TV 토론이 대선국면에서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 그런데 20여일 정도 남겨 놓은 18대 대선에서는 후보를 한데 모아 후보 검증이나 정책대결을 벌일 수 있는 TV 토론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12월 4일과 10일, 16일 3차례에 걸쳐 진행될 대선 후보 초청 TV 토론회가 ? 후보들의 자질과 역량을 눈으로 확인할 유일한 기회다.

 ? 현대 정치는 이미지 정치다.

TV를 통해 비쳐지는 후보의 용모, 복장, 표정, 자세, 제스처, 목소리 등 이미지가 유권자의 인식과 태도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TV 토론은 대선 후보들의 선거전략 중 하나가 아니라 국민들의 권리 중 하나다.

 따라서 후보들은 유·불리를 계산하지 말고 TV 토론에 적극 참여해 국민의 권리와 요구를 충족시켜 줘야 한다.

 ? 얼마 전 끝난 미국 대선 과정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미트 롬니 후보가 보여준 열띤 TV 토론회 장면이 새삼 부러워지는 시기다.

 우리나라 대선 후보들에게서도 이와 같은 뜨거운 설전을 기대할 수 있을까? 18대 대선 후보 TV 토론이 과연 어떤 양상으로 진행될지,  ?그리고 누가 TV 토론의 승자가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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