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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과 군수



그리고 그들은 시간이 흐른뒤에 시골의 이장과 성공한 젊은 정치인인 군수로 다시 만나게 된다.

영화를 보기전 나는 학교폭력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이둘의 이야기는 잔인한 관계라기 보다는 어린시절 친했던 친구들의 성장한 후의 다른 사회적 지위와 그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그려내고 있었다.

영화의 중반부에서 조춘삼이 자신의 열등감과 좌절감때문에 방폐장을 유치하여 지역경제를 살리려는 노대규의 노력을 무산시키기 위해 극렬하게 반대시위를 주도하는 대결구도로 갈등을 고조화 시킨다.

이러한 대결 가운데, 어린시절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서로의 갈등을 해소하고 화해를 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게 된다.

 인간에게는 자존감이라는 감정이 있다.

그래서 남들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빛내고 싶고, 잘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무너졌을 때 인간은 걷잡을수 없이 나락을 추락하게 된다.

특별히 자신과 동등하다고 여겼던 친구들의 성공앞에서 자존감은 상처를 입게 된다.

자존감이 심해져서 교만으로 이어져 관계를 파괴하기에 경계해야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은 행복한 삶을 영위해가는 과정에서 어느정도의 자존감은 필요하지 않나 한다.

 영화에서 나는 조춘삼의 삶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의 과거보다는 현재의 그의 아픔에 공감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를 잃고 어려운 가정형편상 대학을 가지 못하고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37살의 노총각 그는 영화에서 자신의 아무것도 없는 존재감에 절망했다.

특히 잘 나가는 정치인으로 돌아온 친구 노대규의 앞에서 그러한 자괴감은 더해갔다.

그가 자신의 잘 나가던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괴리감 때문 이라기보다는, 현실의 처지가 너무 비참하게 느껴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춘삼의 구원에 대해서는 특별한 메시지가 없다.

그의 삶이 현재의 젊은사람들, 아니 소시민 전부의 고민이지 않을까 한다.

그다지 경제적으로 성공하지 못하고 부모와 가족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작은 소시민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이 현재의 삶에서 느끼는 좌절감. 이러한 삶에서 쉽사리 해결책을 제시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조춘삼의 삶에서 희망을 조금은 발견하게 된다.

30후반의 노총각인 그에게 젊고 아름다운 면사무소의 처녀가 다가오고, 그들이 사랑의 감정을 느끼면서 희망의 싹을 튀우고 있다.

이것이 영화가 아니라, 소설로써 조금더 긴 시간을 가지고 다루어져 완성되었되고, 조춘삼의 심리에 대해서 조금더 진지하게 다루어졌다면 그의 구원과 현실의 수많은 작고 평범한 사람들에게 제시할 만한 감동을 담은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부유하고 사회적인 성공은 없으나, 일할수 있는 직장이 있고, 가정안에서 느끼는 안정감. 더불어 오랜 친구로부터 느끼는 우정이 있다면 세상이 많이 힘들지라도 그것을 견뎌낼만한 힘이 나고 삶에서 작은 행복을 누리면서 살수 있지 않을까 한다.

    모두가 코미디영화였고, <이장과 군수> 역시 코미디이다.

코미디가 한국영화의 주류 장르 중 하나로 자리잡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장규성이 그 흐름을 ‘타고’ 있는 감독 중 하나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동시에 그가 그 흐름 안에서 자신만의 물살을 ‘만들어’내고 있는 감독 중 하나라는 것 또한 분명하다.

<이장과 군수>는 ‘선생 2부작’을 통해 드러난 그만의 독특한 ‘휴먼코미디’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 작품이지만, 동시에 어떤 변화의 모색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 그 ‘같음’과 ‘다름’을 아우르며 장규성의 영화 세계에 대해 말할 수 있고, 또 말해야 하는 시점이 된 듯하다.

  현실을 반영하는 유쾌하고 편안한 화법   ‘착한 영화’ 그리고 ‘웃음과 감동이 공존하는 휴먼드라마’, 이것들은 장규성 코미디의 브랜드 이미지이자 수사이다.

분명 그의 영화는 ‘착한’ 영화이고, 그의 영화에는 ‘웃음과 감동이 공존’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말들은 그만이 지니고 있는 색깔을 드러내기에 충분하지 않다.

자칫 그것은 공허한 홍보 문구가 되거나, 기껏해야 절반의 진실만을 담고 있는 비평적 수사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의 대부분의 코미디영화들이 ‘착한 영화’이고(심지어 ‘조폭영화’조차) ‘웃음과 감동이 공존’하는 영화들이기 때문이다.

전반부에서 갈등과 대결 구도를 통해 웃기고 후반부에는 갈등의 해소와 화해를 통해 감동을 준다는 설정은, 대부분의 한국 코미디영화들이 충실히 따르고 있는(최소한 따르고자 애쓰는) 흥행공식이자 대중영화가 의지하고 있는 공통의 서사전략이다.

  장규성의 영화들은 이러한 흥행공식과 서사전략을 충실히 그리고 성공적으로 따르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영화가 굳이 ‘착한 영화’라고 불리는 데에는 다른 이유들이 있다.

첫째로 그가 선택한 영화적 소재를 들 수 있다.

그의 영화에는, ‘폭력’과 ‘성’(性)이 등장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장규성의 코미디는 한국 코미디영화의 대표적인 두 하위 장르라 할 수 있는 ‘조폭코미디’나 ‘섹스코미디’가 아니다.

‘사랑 싸움’을 소재로 하고 있는 <여선생 vs 여제자>도 전형적인 ‘로맨틱코미디’와는 거리가 멀다.

이 당연한 사실의 확인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장규성 영화 세계의 출발점이 ‘영화 또는 장르’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점을 방증하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말처럼 ‘한국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가 장규성 영화의 출발점이다.

한국영화 ‘패러디’로 자신의 영화 경력을 시작했음에도, 그의 이후 영화들에는 영화나 장르에 대한 매혹 또는 자기 반영적인 스타일의 과시나 실험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이것은 동년배 영화광 영화감독들과 그를 구별하는 특징이면서, 다시 한번 그의 영화가 ‘착한 영화’라고 불리게 되는 요인이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에서 출발해서, ‘한명의 관객이라도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유쾌하고 편안한 화법으로 코미디영화를 선택하고 만든다(이런 의미에서 그를 ‘충무로 리얼리즘’ 계보에 속하는 감독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장규성 영화의 독특한 색깔은, ‘웃음과 감동이 공존’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웃음에서 감동으로의 전환의 자연스러움 또는 그 미묘함에 있다.

그 미묘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는, <선생 김봉두>에서 선생 봉두와 제자 소석이 함께 ‘물수제비’를 만드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봉두가 ‘여전히’ 자신의 계획에 집착하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이미’ 포기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것은 아무리 형편이 어렵더라도 전학의 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부추김(또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면서, 소석의 첫 번째 물수제비(낯선 선생님에 대한 수줍은 마음의 표시)에 대한 뒤늦은 그러나 진심어린 응답이기도 하다.

봉두는 서울의 레저 사업자에게 거액의 ‘봉투’를 받은 뒤, 그 돈으로 제자들 각각을 위한 선물을 사주는데, 그것은 자신의 계획을 위한 투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이미 흔들리고 있는 그의 마음의 징표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소소하고 미묘한 서사적 배치들의 누적이, 나중에 올 결정적인 ‘전환’을 자연스럽게 만들어간다.

장규성은 웃음에서 감동으로의 극적 ‘반전’을 이루어내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친절하면서도 세밀한 서사적 배치를 통해 웃음과 감동을 ‘공존’시키려고 노력한다.

[이장과 군수] 는 진정 무엇인가.


봉두의 촌지 밝히기가 그의 아버지 병원비 때문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제시된다.

  웃음과 감동의 공존 또는 동시성, 이것은 인간은 누구나 완전히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는 그의 넉넉한 인간관을 드러내고 있는 듯 보인다.

병에 걸린 늙은 아버지를 끝까지 돌보고자 애쓰는 김봉두와 촌지만 밝히는 불량교사 김봉두는 다른 인간이 아니다.

첫 수업에 대한 설렘 속에서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외우고 있는 여미옥과 남몰래 서울 진출을 위해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여미옥은 다른 인간이 아니다.

여미옥은, 애들에게 “니들이 애들이니!”라고 야단치고, “너 학원도 안 다니니?”라고 물어보는 일상에서 히스테릭한 노처녀 여선생이 되어가고 있다.

장규성 영화에는 ‘웃음과 감동의 공존’만이 아니라 ‘감동과 웃음의 공존’이 있다.

<여선생 vs 여제자>에서, 여미옥이 학교를 그만둔 뒤 다른 반 아이들이 ‘담임도 없는 주제’라고 반 아이들을 놀릴 때, 가장 분노하는 것은 고미남이다.

‘아비없는’ 고미남의 상처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여미옥 역시 아버지없이 자란 아픔이 있음을 이미 알고 있는 우리는 이후에 펼쳐지는 아이들(특히 고미남)과 여미옥의 연대와 화해에 강한 정서적 공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이 <스승의 노래>를 <어머니 마음>과 구별하지 못할 때, 그것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바로잡아 주는 것 역시 고미남이다.

이럴 때 장규성은 개과천선이라기보다는 그것의 현실적인 불가능성을, 화해라기보다는 그것의 근본적인 불가능성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선생 김봉두와 여미옥의 근본적인 개과천선은 불가능하다.

김봉두가 레저 사업자에게서 받은 돈을 되돌려주고 폐교 반대를 위해 나서는 것도 아니며, 여미옥이 ‘새로운 남자(또는 지위)’를 얻으려는 욕망을 버린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의 넉넉한 인간관은 아주 현실적인 인간관이기도 하다.

  장규성식 정치적 저항의 방식   역설적이게도, 장규성 영화의 훈훈한 온기는, 현실에 대한 낭만적인 낙관에서라기보다는 매우 현실적인 비관에서 비롯되고 있다.

장규성의 영화 바탕에는 현실 또는 현실의 변화가능성에 대한 뿌리 깊은 비관이 자리잡고 있다.

장규성의 영화는, 외면상의 ‘해피엔딩’에도 불구하고 승리의 영화라기보다는 패배의 영화에 가깝다.

<선생 김봉두>가 불량교사 김봉두의 외견상의 개과천선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의 정치적인 ‘패배’를 보여주는 영화이듯이, <이장과 군수> 역시 우정 회복의 영화이면서 정치적인 ‘패배’의 영화이다.

마음의 고향이자 제2의 탄생을 위한 자궁인 산골 분교의 ‘폐교’는 막을 수 없는 현실이고, 우정의 회복은 정치적 패배를 그 대가로 치를 때 가능해진다.

도시화는 막을 수 없는 흐름이고, 변화를 가로막는 강고한 기득권의 힘은 쉽게 넘어설 수 없다.

그는 영화라는 허구적 장치를 통해서나마 쉽게 승리를 ‘상상’해보는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는 어쩔 수 없는 이 현실적 패배를 받아들이지만, 동시에 그 패배를 강요하는 현실을 냉정하게 응시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 냉정한 응시는 웃음과 감동이라는 틀 안에 왜상적(歪像的) 형상처럼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면 <선생 김봉두>에서 드러났던 산골 사람들과 산골 분교 아이들의 그 믿을 수 없을 만큼 과도한 ‘순박성’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선생 김봉두>를 처음 보았을 때, 그것은 낭만적이고 퇴행적인 ‘산골 오리엔탈리즘’에 불과한 것으로 보였고, 그래서 불편했다.

하지만 그 이후 드러낸 그의 영화 세계 안에서 영화를 다시 되돌아보면서, 그 ‘과도함’이 어쩌면 그만의 정치적 저항의 방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장과 군수] 궁금증 해소



과도한 복종은 그 ‘과도함’ 때문에 저항의 몸짓이 되기도 한다(메저키즘적인 저항 전략). 사실 산골 아이들은 봉두의 진의를 끝까지 오해함으로써 그리고 과도하게(떠든 사람 이름을 적으라는 봉두의 명령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반장 아이) 복종함으로써 봉두를 무력화한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모습을 냉정하게 바라보며 논평하는 소사 춘식(성지루)이 있다(“니들 변했다야… 사람이 그러면 안 돼”). <선생 김봉두>에서 소사 춘식은 다소 징후적이고 문제적인 인물이다.

그는 봉두를 처음으로 맞이하는(처음부터 대결하는) 인물이자 김봉두가 ‘金封套’임을 감지하는 인물이지만, 그와 정면 대결을 펼치는 것도 그를 받아들이는 것도 아닌 채로, 그 서사 공간을 배회한다.

소사 춘식의 시선과 위치는 현실과 영화를 바라보는 감독 장규성의 그것이자 이 영화의 숨어 있는 왜상처럼 보인다.

장규성의 영화 속 인물들은 대개 상대의 시선을 마주한 채로는 진심을 말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그들은 반드시 뒤늦게 도착하게 되어 있는 ‘편지’를 통해서만 진심을 이야기한다.

장규성 감독의 영화는 그 ‘편지’를 많이 닮았다.

  한국영화에 대한 본격 패러디로 영화를 시작한 그가, <이장과 군수>를 통해 한국 정치 현실을 본격 패러디하고 있다.

‘판’이 너무 커진 탓인지 앞선 영화들에서 보여주었던 웃음과 감동의 밀도가 많이 묽어진 느낌이다.

앞으로 그의 영화 세계가 넓어진 폭만큼이나 깊어지기를 기대해본다.

  글 : 변성찬 | 2007-04-12 그리고 그들은 시간이 흐른뒤에 시골의 이장과 성공한 젊은 정치인인 군수로 다시 만나게 된다.

영화를 보기전 나는 학교폭력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이둘의 이야기는 잔인한 관계라기 보다는 어린시절 친했던 친구들의 성장한 후의 다른 사회적 지위와 그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그려내고 있었다.

영화의 중반부에서 조춘삼이 자신의 열등감과 좌절감때문에 방폐장을 유치하여 지역경제를 살리려는 노대규의 노력을 무산시키기 위해 극렬하게 반대시위를 주도하는 대결구도로 갈등을 고조화 시킨다.

이러한 대결 가운데, 어린시절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서로의 갈등을 해소하고 화해를 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게 된다.

 인간에게는 자존감이라는 감정이 있다.

그래서 남들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빛내고 싶고, 잘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무너졌을 때 인간은 걷잡을수 없이 나락을 추락하게 된다.

특별히 자신과 동등하다고 여겼던 친구들의 성공앞에서 자존감은 상처를 입게 된다.

자존감이 심해져서 교만으로 이어져 관계를 파괴하기에 경계해야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은 행복한 삶을 영위해가는 과정에서 어느정도의 자존감은 필요하지 않나 한다.

 영화에서 나는 조춘삼의 삶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의 과거보다는 현재의 그의 아픔에 공감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를 잃고 어려운 가정형편상 대학을 가지 못하고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37살의 노총각 그는 영화에서 자신의 아무것도 없는 존재감에 절망했다.

특히 잘 나가는 정치인으로 돌아온 친구 노대규의 앞에서 그러한 자괴감은 더해갔다.

그가 자신의 잘 나가던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괴리감 때문 이라기보다는, 현실의 처지가 너무 비참하게 느껴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춘삼의 구원에 대해서는 특별한 메시지가 없다.

그의 삶이 현재의 젊은사람들, 아니 소시민 전부의 고민이지 않을까 한다.

그다지 경제적으로 성공하지 못하고 부모와 가족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작은 소시민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이 현재의 삶에서 느끼는 좌절감. 이러한 삶에서 쉽사리 해결책을 제시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조춘삼의 삶에서 희망을 조금은 발견하게 된다.

30후반의 노총각인 그에게 젊고 아름다운 면사무소의 처녀가 다가오고, 그들이 사랑의 감정을 느끼면서 희망의 싹을 튀우고 있다.

이것이 영화가 아니라, 소설로써 조금더 긴 시간을 가지고 다루어져 완성되었되고, 조춘삼의 심리에 대해서 조금더 진지하게 다루어졌다면 그의 구원과 현실의 수많은 작고 평범한 사람들에게 제시할 만한 감동을 담은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부유하고 사회적인 성공은 없으나, 일할수 있는 직장이 있고, 가정안에서 느끼는 안정감. 더불어 오랜 친구로부터 느끼는 우정이 있다면 세상이 많이 힘들지라도 그것을 견뎌낼만한 힘이 나고 삶에서 작은 행복을 누리면서 살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그들은 시간이 흐른뒤에 시골의 이장과 성공한 젊은 정치인인 군수로 다시 만나게 된다.

영화를 보기전 나는 학교폭력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이둘의 이야기는 잔인한 관계라기 보다는 어린시절 친했던 친구들의 성장한 후의 다른 사회적 지위와 그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그려내고 있었다.

영화의 중반부에서 조춘삼이 자신의 열등감과 좌절감때문에 방폐장을 유치하여 지역경제를 살리려는 노대규의 노력을 무산시키기 위해 극렬하게 반대시위를 주도하는 대결구도로 갈등을 고조화 시킨다.

이러한 대결 가운데, 어린시절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서로의 갈등을 해소하고 화해를 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게 된다.

 인간에게는 자존감이라는 감정이 있다.

그래서 남들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빛내고 싶고, 잘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무너졌을 때 인간은 걷잡을수 없이 나락을 추락하게 된다.

특별히 자신과 동등하다고 여겼던 친구들의 성공앞에서 자존감은 상처를 입게 된다.

자존감이 심해져서 교만으로 이어져 관계를 파괴하기에 경계해야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은 행복한 삶을 영위해가는 과정에서 어느정도의 자존감은 필요하지 않나 한다.

 영화에서 나는 조춘삼의 삶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의 과거보다는 현재의 그의 아픔에 공감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를 잃고 어려운 가정형편상 대학을 가지 못하고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37살의 노총각 그는 영화에서 자신의 아무것도 없는 존재감에 절망했다.

특히 잘 나가는 정치인으로 돌아온 친구 노대규의 앞에서 그러한 자괴감은 더해갔다.

그가 자신의 잘 나가던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괴리감 때문 이라기보다는, 현실의 처지가 너무 비참하게 느껴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춘삼의 구원에 대해서는 특별한 메시지가 없다.

그의 삶이 현재의 젊은사람들, 아니 소시민 전부의 고민이지 않을까 한다.

그다지 경제적으로 성공하지 못하고 부모와 가족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작은 소시민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이 현재의 삶에서 느끼는 좌절감. 이러한 삶에서 쉽사리 해결책을 제시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조춘삼의 삶에서 희망을 조금은 발견하게 된다.

30후반의 노총각인 그에게 젊고 아름다운 면사무소의 처녀가 다가오고, 그들이 사랑의 감정을 느끼면서 희망의 싹을 튀우고 있다.

이것이 영화가 아니라, 소설로써 조금더 긴 시간을 가지고 다루어져 완성되었되고, 조춘삼의 심리에 대해서 조금더 진지하게 다루어졌다면 그의 구원과 현실의 수많은 작고 평범한 사람들에게 제시할 만한 감동을 담은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부유하고 사회적인 성공은 없으나, 일할수 있는 직장이 있고, 가정안에서 느끼는 안정감. 더불어 오랜 친구로부터 느끼는 우정이 있다면 세상이 많이 힘들지라도 그것을 견뎌낼만한 힘이 나고 삶에서 작은 행복을 누리면서 살수 있지 않을까 한다.

   .. 장규성 감독은 <선생 김봉두>와 더불어 <여선생vs여제자>를 만든 감독이기도 하다.

이장이된 조춘삼(차승원) 의 어린시절 부반장이나 하던 노대규(유해진)가 군수가되는 이 작품은 그 참 웃긴 헤프닝도 많을뿐더러 그 당시 차승원이라함은 코미디배우아니었던가.그것때문에 많은 기대감을 본터라 이들의 싸움이라던지 긴박해야할 장면들에서는 장면들 자체로서의 긴장감은 크게 유발시키지않는다.

처음부터 무미건조하여부분부분 웃음을장면들을 주는것외에는 영화자체에서 우리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세지는 소박함만이 남았지 소극적이기까지 된 것같다.

야심차게 가득한 구성거리도 없고 그저 이렇게 감당하기 어려운 에피소드들을 열거하며 뻔한 결과물로 치닫고 있으니 말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앞이 내다보이는 결말과 상상이 되는 부분들에서는 어쩔수 없이 아쉽기까지 한다.

게다가 캐스팅도 반대일것만 같은 느낌에 생각과 편견을 버리게 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작품또한 소박하지만 기억에 남을 한국의 시골 풍경들을 선사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기도한다.

사실 TV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에서 케미를 돋보이는 (TV를안봐서 어떻게 케미를 돋구는지는 전혀모르지만.) "차승원"과 "유해진"의 작품이어서그런지 많은사람들이챙겨보긴 하는것 같았다.

기대하고 본다면 어느하나 빠짐없이 실망할 구석이 제법 도사리고 있지만 차승원과 유해진이 돋보였던 영화였을까.그러나 다른 작품들을 보듯 유해진씨의 매력을 이곳에서는 충분히 보여주지않았고, 결국에는 차승원의 개그 코메디 영화로 전락해버린것이 아닐까 싶어 아쉽기도 하다.

플러스 요인인지 마이너스 요인인지는 모르겠으나 엉성한 사회풍자에 대한 면도 진부하고 이 영화에 힘을 실어주기 어려웠던 부분이 아니었을까.다만 가볍게 즐기기에는 차승원표의 개그와 유머가 기다리고있으니 기대없이 보는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평화롭고 한적한 충청도 한 시골마을에서 단합대회를 열던날 이장이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산촌2리의 새로운 이장을 뽑게 됩니다.

이때 젊은사람을 이장으로 시키자는 최고 어른의 말에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산촌2리 대표 노총각 춘삼이 최연소 이장이됩니다.

그냥 시골에서 소소하게살며 치매걸린 아버지를 부양하던 시골 노총각 춘삼이는 이장이라는 직책이 부담스럽기만 하는데요

그런데 어느날 어린시절 부반장을하며자신의 꼬봉과 다름없던 노대규가 군수에 출마한다는 소식을 듣고 경쟁심과 시기심이 생깁니다.

결국에는대규는 군수가 되고

이들은 과거 반장과 부반장에서 지금 이장과 군수로 재회합니다.

그렇게 둘사이는 사사건건 시비가 오거나 딴지를 걸며 싸움아닌 싸움을하는데요

더얘기하면 스포일러가 되기때문에 더는 얘기하지 않겠지만 정말 계속 웃음을 참을수없는재미가 있습니다.

ㅎㅎ 무엇보다 반전매력이 넘치거든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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