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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우리의 길을 묻습니다



최후의 성만찬과 세족식, 그리고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그 밤, 세 제자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12제자가 앉아있었는데 모두 침묵하던 밤이었습니다.

죽음을 예감한 밤, 베드로도 야고보도 요한도 침묵합니다.

남자분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날밤 여자분들도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날 밤 식사를 준비한 제자들의 어머니들이 계셨겠죠. 참고로 여인들도 예수님과 제자들을 수발하기 위해 늘 곁에 같이 있었습니다.

[눅8:1]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눅8: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눅8:3]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여자분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두 아들을 따라 삼년동안 제자들과 예수님을 수발들었다고 보입니다.

그런데 그밤에는 제자들 뿐만 아니라 여인들도, 모든 사람들도 침묵합니다.

죽음이 예고된 밤, 혼란스러운 밤, 무엇인가를 말하기가 두려운 밤!! 무서웠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위기 속에서 세 사람의 제자가 입을 열어 질문했습니다.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 세 제자의 이름을? 그 세 제자의 이름은 도마, 빌립, 유다(다대오)였습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 먼저 예수님께서는 침묵을 깨시고 입을 열어 오히려 그들을 위로하십니다.

?[요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가장 먼저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근심! 근심!평생에 웬 근심이 그리 많았을까요? 클났다,클났어....! 무너질까봐, 잃을까봐, 뺏길까봐, 마음이 떠날까봐, 사랑을 잃을까봐, 쫓겨날까봐, 해약될까봐, 병들까봐, 죽을까봐...... 걱정하고 염려하고 근심하고.... ?그러나, 영원한 나라가 있고 아버지의 품이 있고, 그곳으로 우리는 결국 가게 되는 것! 우리 모두가 가는 길!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주저하지 않으시고 선언하신 주님께서 이어 말씀하십니다.

[14: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 1. 도마의 반문> 요한복음 14장에 나타난 세 제자의 질문 중 첫번째 [요14: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예수님께서 기껏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고 말씀하시는데, 도마는 정면으로 퉁명스럽게 반박합니다.

아니요! 모르겠는데요? 그 길을 모르겠습니다! ?도마의 반발 어린 대답 아니, 질문입니다.

아니 대답을 빙자한 분노요 슬픔이요 받아들이지 못함이요 그리고 질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 도대체 그 길이 무엇입니까? 저희는, 아니 나는 모르겠습니다.

이런 죽음의 길, 수난의 길이 과연 구원의 길이요, 영생의 길이라는 말씀입니까?그런데 예수님께서 중요한 선언을 하십니다.

길을 묻느냐? 길? 내.가. 곧. 길.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2천년 기독교의 역사의 토대가 되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14:7]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예수님께서는 스스로를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스스로를 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스스로를 생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선언하십니다!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선언하십니다.

믿든지 안 믿든지 그것은 인간의 몫!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나의 몫! 여기에 '인간'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선언하신 거룩한 '하나님 되심'- 그 속성을 선포하심과 우리의 응답의 결단이 놓여 있습니다.

?? !그 길을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던 도마는 평생 이 질문과 대답을 안고 살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진정 길이시고 하나님과 동일하십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도마는 아주 중요한 고백을 바칩니다.

[요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구원의 길뿐만 아니라 인생의 길도 늘 질문의 대상입니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길, 맞는 것인지, 내가 가고 있는 이 방향 맞는 것인지, 도마처럼 우리도 물을 지 모릅니다.

아니, 도마가 우리에게 물을지 모릅니다.

당신, 제대로 가고 있습니까?우리 안에 있는 믿음, 내 안에 있는 믿음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다만 한가지 믿음 안에서 가고 있는지, 거기에 확신이 있다면 때로는 흔들려도 정확히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길이 구원, 사랑, 은혜, 영생 천국의 길, 맞습니다!이 길을 가는 우리에게 '진리'의 확신과 '생명'의 약동함이 있기 바랍니다.

진정 그러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질문은 빌립에게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이 밤 도마에 이어 두번째로 빌립이 질문합니다.

????< 2. 빌립의 반문> 요한복음 14장에 나타난 세 제자의 질문 중 두 번째 ?[요14: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빌립은 왜 이런 질문을 합니까? 직전 7절의 말씀을 다시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14: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예수님은 이 말씀으로 삼위일체적 하나님으로서의 자신을 확인하고 분명하게 드러내십니다.

지금 예수님 자신을 보는 사람, 아는 사람은 곧 하나님을 알고, 보고 목격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지금 앞에 앉아 계시는 예수님은 내 자신이 곧 삼위일체로서의 하나님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예수님의 선언이시니 이제 그것을 믿고 믿지 않는 것은 제자들의 책임이었습니다.

'이제부터는!'이라고 강조하십니다! 그동안은 속으로 의심하며 믿지 않았거나 못했더라도, 이제는!! 이 선언을 듣는 순간 '이제부터는!' 확실한 태도를 취하고 결단을 내려야한다는 요구이십니다.

이 마지막 밤이 지나가기 전!! 반드시 알고 믿고 고백해야 할 사실! 그리고 오늘도 요한복음을 읽는 사람들이 결단해야 할 장면이기도 합니다.

나를 보는 너희는 지금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보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마치 빌립은 예수님의 말씀을 못 들었다는 듯이, 아니면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인지 다시 질문합니다.

?[요14: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기 어렵다는 간접적인 표현이었을까요? 지금 보고 있다고 하시는데 다시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설명하십니다.

다시 빌립에게 '내가 하나님과 하나'라고 설명하십니다! ?[요14: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요14:10] 나는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요14: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지금 우리에게는 당연한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되심'이! 그때는, 그들에게는, 예수님과 함께 3년을 지내면서 인간적인 모든 면모를 보았던 제자들에게는, 차라리 더 어려웠는지도 모릅니다.

  처음부터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고 배운 현대 신앙인들의 고백이 더 쉬울수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지금 벗겨내야 할 생각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의 속내, 속신앙은...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빌립의 질문에 대한 대답에 상당히 많은 분량을 말씀하십니다.

어쩌면 빌립의 질문 속에 담긴 모든 인간들의 영적 질문, 신 존재의 확신에 대한 갈망, 존재의 공허감, 영적 진공상태에서 다시 부르짖는 질문 "하나님 아버지는 도대체 어디 계십니까?" 를 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게다가 빌립은 지금 두렵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라지셔서 보이지 않는다는 예고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신존재의 확신에 대한 갈망으로 붙잡고 보고 싶은 열망으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주님, 말씀하십니다.

빌립아, 어디를 둘러보느냐? 지금! 너와 함께 계시는데! 믿음의 눈을 열어라! 네 마음 속에 계시지 않느냐? ??예수님은 나아가 하나님 체험의 가장 구체적인 통로를 말씀하십니다.

[같이 우리의 길을 묻습니다] 의 매력 포인트


기도!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기도를 통한 '영적 체험'으로 확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기도!마음과 감정이 흔들릴 때 두려울 때 기도를 통해 이길수 있고 생명있는 신앙을 지킬 수 있음을 가르치십니다.

기도를 통해 기적이 일어나는 것도 가르치십니다! ?기도를 통해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도 가르치십니다!  [요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요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요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14: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요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너도 살았고 나도 살아있는 것이다! 내가 살아있으니 너도 살아있는 것이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며 그리고 기도를 통한 영적 체험으로 우리는 늘 살아있습니다.

?죽은 신앙, 생명을 잃어버린 신앙, 감동이 사라진 교회생활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뜨거운 눈물, 절실한 부르짖음이 생명의 증거입니다! 영적확신을 가지고 흔들리지 말고 흔들릴 때 기도하며 살아있어서 새 꿈을 설계하고 새 출발을 결단하고 새로운 삶을 꿈꾸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라고 주님께서 부탁하셨습니다.

  ?< 3. 유다-다대오의 질문> 요한복음 14장에 나타난 세 제자의 질문 중 세번째 ▶ [요14:22] 가룟인 아닌 유다(다대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요14: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조금 엉뚱해 보이는 세번째 질문을 하는 제자 유다는 일명 다대오, 가룟이 아닌 다른 유다입니다.

그는 짧지만 가장 중요한, 인간의 욕망과 사는 이유와 그 이름을 지키는 것을 묻습니다.

이름을 드러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자기를 자꾸 나타내어 알려야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죽음이라니 웬 말입니까? 예수님은 그리고 저 다대오라는 사람은 도대체 누가 기억해주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는,사람이 사람의 인정을 받고 사람의 사랑을 받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지켜 하나님께 사랑받음이, 하나님께 인정받음이 , 하나님께 기억됨이 가장 중요함을 말씀하십니다.

 이 땅에 태어나서 언젠가는 없어질 나라는 존재, 그래서 누구에겐가 끝까지 기억되고 싶은 본능, 끝없이 따라다니는 자기 존재 확인의  이름 욕망!  그러나 내 이름, 1-2백 년 지나면, 아니 1-20년이 지나면, 아니 장례식 3-4일이 끝나면 즉시 잊혀지는 이름....  우리의  이름, 누가 기억하긴 하는 것일까요? 그러나 사랑이 있으면, 그리고 사랑했으면 결코 헛되지 않다고 주님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억해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생애가 되도록 힘쓰라고 말씀하십니다!! ???▶ 그날 밤 무서운 수난을 겪은 그 후 ......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특히 그 세사람은? ??▶ 길을 묻던 도마는 그 당시 힌두교의 중심국이었던 인도로 가서 복음을 전한 것으로 도마 행전(Acts of Thomas)에 기록되어 있고 나중에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특히 도마는 인도의 허황후가 김수로왕과 결혼하기 위하여 신라로 왔을 당시 한국에 동행했다고 알려져있고 경북 영주시 평은면 왕유동에는 히브리어로 쓰여진 암석이 있는 데 그것을 도마바위라고 부릅니다.

진실로 도마는 요한복음11장에 나타난 그의 고백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를 실천한 생애를 살았습니다.

도마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길을 아느냐고? ▶ 하나님을 보여달라던 빌립은 터키 히에라볼리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는데 그곳에는 지금도 빌립의 순교를 기념하는 ‘순교자 빌립의 기념교회’가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가인 유세비우스는 그의 ‘교회사’에서 빌립이 지금의  히라폴리스에서 기적과 기사를 행하며 복음을 전하다가 AD 54년 순교했다고 전합니다.

그는 죽음에 앞서 자신의 시신을 예수님처럼 세마포로 싸지 말고 파피루스로 싸라고 유언했다는데 주님과 동일한 취급을 받을 수 없다는 겸손함이었습니다.

그는 늘 그가 만나고 싶었던 하나님을 만나며 살아갔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살아있는 신앙으로 지금도 존재합니다! ▶ 다대오는 이 예수님의 사랑을 세상에 나타내는 자가 되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다대오는 시리아, 아라비아, 페르샤에서 복음을 전했고 아르메니아는 A.D 301년에 나라가 기독교화될만큼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고합니다.

 그는 시리아에서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대오는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은 알려지지 않아도 예수님의 이름은 널리 알린 진실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다대오는 "이름은 없었으나 이름 값을 한 제자, 이름 없이 빛도없이 주님을 섬긴 제자, 유명하지 않았으나 필요했던 제자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 사랑받는 생애를 살았습니다!  이 밤의 대화는 흥분과 두려움 가운데 무슨 말을 제자들이 하는 지 혼란과 헝클어짐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 흥분된 제자들의 질문과 예수님의 대답을 끝까지 관통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사랑! 사랑! 하나님의 사랑!혼란할 때 사랑을 붙잡기 바랍니다!사랑을 붙잡아야 떠내려가지 않습니다! 시간에 떠밀려 흐려지지 않습니다![요14: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사순절 기도를 바치면서 강단에 엎드려 십자가를 바라보면 십자가가 저에게 묻습니다.

지금 진실하게 살고 있느냐고, 정말 그것이 신앙적인 것이냐고! 예수님은 진실 한가지를 물으십니다.

그리고 바로 내 자신은 알고 있습니다! 왜? 그랬는지? 십자가는 우리의 진실을 묻습니다.

왜 그랬는지 묻습니다! 세월과의 싸움 속에서 남은 진실을 돌아봅니다.

?고난주간! 피할 수 없는 진실 앞에 선 영혼 깊은 곳의 순정한 고백이 있어야할 것 ?같습?니다.

 ? ? Christ in Gethsemane, by Michael D. O’Brien  ? 최후의 성만찬과 세족식, 그리고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같이 우리의 길을 묻습니다] 대단하네요.



.?그 밤, 세 제자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12제자가 앉아있었는데 모두 침묵하던 밤이었습니다.

죽음을 예감한 밤, 베드로도 야고보도 요한도 침묵합니다.

남자분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날밤 여자분들도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날 밤 식사를 준비한 제자들의 어머니들이 계셨겠죠. 참고로 여인들도 예수님과 제자들을 수발하기 위해 늘 곁에 같이 있었습니다.

[눅8:1]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눅8: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눅8:3]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여자분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두 아들을 따라 삼년동안 제자들과 예수님을 수발들었다고 보입니다.

그런데 그밤에는 제자들 뿐만 아니라 여인들도, 모든 사람들도 침묵합니다.

죽음이 예고된 밤, 혼란스러운 밤, 무엇인가를 말하기가 두려운 밤!! 무서웠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위기 속에서 세 사람의 제자가 입을 열어 질문했습니다.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 세 제자의 이름을? 그 세 제자의 이름은 도마, 빌립, 유다(다대오)였습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 먼저 예수님께서는 침묵을 깨시고 입을 열어 오히려 그들을 위로하십니다.

?[요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가장 먼저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근심! 근심!평생에 웬 근심이 그리 많았을까요? 클났다,클났어....! 무너질까봐, 잃을까봐, 뺏길까봐, 마음이 떠날까봐, 사랑을 잃을까봐, 쫓겨날까봐, 해약될까봐, 병들까봐, 죽을까봐...... 걱정하고 염려하고 근심하고.... ?그러나, 영원한 나라가 있고 아버지의 품이 있고, 그곳으로 우리는 결국 가게 되는 것! 우리 모두가 가는 길!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주저하지 않으시고 선언하신 주님께서 이어 말씀하십니다.

[14: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 1. 도마의 반문> 요한복음 14장에 나타난 세 제자의 질문 중 첫번째 [요14: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예수님께서 기껏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고 말씀하시는데, 도마는 정면으로 퉁명스럽게 반박합니다.

아니요! 모르겠는데요? 그 길을 모르겠습니다! ?도마의 반발 어린 대답 아니, 질문입니다.

아니 대답을 빙자한 분노요 슬픔이요 받아들이지 못함이요 그리고 질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 도대체 그 길이 무엇입니까? 저희는, 아니 나는 모르겠습니다.

이런 죽음의 길, 수난의 길이 과연 구원의 길이요, 영생의 길이라는 말씀입니까?그런데 예수님께서 중요한 선언을 하십니다.

길을 묻느냐? 길? 내.가. 곧. 길.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2천년 기독교의 역사의 토대가 되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14:7]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예수님께서는 스스로를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스스로를 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스스로를 생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선언하십니다!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선언하십니다.

믿든지 안 믿든지 그것은 인간의 몫!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나의 몫! 여기에 '인간'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선언하신 거룩한 '하나님 되심'- 그 속성을 선포하심과 우리의 응답의 결단이 놓여 있습니다.

?? !그 길을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던 도마는 평생 이 질문과 대답을 안고 살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진정 길이시고 하나님과 동일하십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도마는 아주 중요한 고백을 바칩니다.

[요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구원의 길뿐만 아니라 인생의 길도 늘 질문의 대상입니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길, 맞는 것인지, 내가 가고 있는 이 방향 맞는 것인지, 도마처럼 우리도 물을 지 모릅니다.

아니, 도마가 우리에게 물을지 모릅니다.

당신, 제대로 가고 있습니까?우리 안에 있는 믿음, 내 안에 있는 믿음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다만 한가지 믿음 안에서 가고 있는지, 거기에 확신이 있다면 때로는 흔들려도 정확히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길이 구원, 사랑, 은혜, 영생 천국의 길, 맞습니다!이 길을 가는 우리에게 '진리'의 확신과 '생명'의 약동함이 있기 바랍니다.

진정 그러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질문은 빌립에게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이 밤 도마에 이어 두번째로 빌립이 질문합니다.

????< 2. 빌립의 반문> 요한복음 14장에 나타난 세 제자의 질문 중 두 번째 ?[요14: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빌립은 왜 이런 질문을 합니까? 직전 7절의 말씀을 다시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14: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예수님은 이 말씀으로 삼위일체적 하나님으로서의 자신을 확인하고 분명하게 드러내십니다.

지금 예수님 자신을 보는 사람, 아는 사람은 곧 하나님을 알고, 보고 목격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지금 앞에 앉아 계시는 예수님은 내 자신이 곧 삼위일체로서의 하나님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예수님의 선언이시니 이제 그것을 믿고 믿지 않는 것은 제자들의 책임이었습니다.

'이제부터는!'이라고 강조하십니다! 그동안은 속으로 의심하며 믿지 않았거나 못했더라도, 이제는!! 이 선언을 듣는 순간 '이제부터는!' 확실한 태도를 취하고 결단을 내려야한다는 요구이십니다.

이 마지막 밤이 지나가기 전!! 반드시 알고 믿고 고백해야 할 사실! 그리고 오늘도 요한복음을 읽는 사람들이 결단해야 할 장면이기도 합니다.

나를 보는 너희는 지금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보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마치 빌립은 예수님의 말씀을 못 들었다는 듯이, 아니면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인지 다시 질문합니다.

?[요14: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기 어렵다는 간접적인 표현이었을까요? 지금 보고 있다고 하시는데 다시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설명하십니다.

다시 빌립에게 '내가 하나님과 하나'라고 설명하십니다! ?[요14: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요14:10] 나는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요14: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지금 우리에게는 당연한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되심'이! 그때는, 그들에게는, 예수님과 함께 3년을 지내면서 인간적인 모든 면모를 보았던 제자들에게는, 차라리 더 어려웠는지도 모릅니다.

  처음부터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고 배운 현대 신앙인들의 고백이 더 쉬울수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지금 벗겨내야 할 생각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의 속내, 속신앙은...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빌립의 질문에 대한 대답에 상당히 많은 분량을 말씀하십니다.

어쩌면 빌립의 질문 속에 담긴 모든 인간들의 영적 질문, 신 존재의 확신에 대한 갈망, 존재의 공허감, 영적 진공상태에서 다시 부르짖는 질문 "하나님 아버지는 도대체 어디 계십니까?" 를 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게다가 빌립은 지금 두렵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라지셔서 보이지 않는다는 예고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신존재의 확신에 대한 갈망으로 붙잡고 보고 싶은 열망으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주님, 말씀하십니다.

빌립아, 어디를 둘러보느냐? 지금! 너와 함께 계시는데! 믿음의 눈을 열어라! 네 마음 속에 계시지 않느냐? ??예수님은 나아가 하나님 체험의 가장 구체적인 통로를 말씀하십니다.

기도!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기도를 통한 '영적 체험'으로 확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기도!마음과 감정이 흔들릴 때 두려울 때 기도를 통해 이길수 있고 생명있는 신앙을 지킬 수 있음을 가르치십니다.

기도를 통해 기적이 일어나는 것도 가르치십니다! ?기도를 통해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도 가르치십니다!  [요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요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요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14: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요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너도 살았고 나도 살아있는 것이다! 내가 살아있으니 너도 살아있는 것이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며 그리고 기도를 통한 영적 체험으로 우리는 늘 살아있습니다.

?죽은 신앙, 생명을 잃어버린 신앙, 감동이 사라진 교회생활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뜨거운 눈물, 절실한 부르짖음이 생명의 증거입니다! 영적확신을 가지고 흔들리지 말고 흔들릴 때 기도하며 살아있어서 새 꿈을 설계하고 새 출발을 결단하고 새로운 삶을 꿈꾸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라고 주님께서 부탁하셨습니다.

  ?< 3. 유다-다대오의 질문> 요한복음 14장에 나타난 세 제자의 질문 중 세번째 ▶ [요14:22] 가룟인 아닌 유다(다대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요14: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조금 엉뚱해 보이는 세번째 질문을 하는 제자 유다는 일명 다대오, 가룟이 아닌 다른 유다입니다.

그는 짧지만 가장 중요한, 인간의 욕망과 사는 이유와 그 이름을 지키는 것을 묻습니다.

이름을 드러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자기를 자꾸 나타내어 알려야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죽음이라니 웬 말입니까? 예수님은 그리고 저 다대오라는 사람은 도대체 누가 기억해주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는,사람이 사람의 인정을 받고 사람의 사랑을 받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지켜 하나님께 사랑받음이, 하나님께 인정받음이 , 하나님께 기억됨이 가장 중요함을 말씀하십니다.

 이 땅에 태어나서 언젠가는 없어질 나라는 존재, 그래서 누구에겐가 끝까지 기억되고 싶은 본능, 끝없이 따라다니는 자기 존재 확인의  이름 욕망!  그러나 내 이름, 1-2백 년 지나면, 아니 1-20년이 지나면, 아니 장례식 3-4일이 끝나면 즉시 잊혀지는 이름....  우리의  이름, 누가 기억하긴 하는 것일까요? 그러나 사랑이 있으면, 그리고 사랑했으면 결코 헛되지 않다고 주님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억해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생애가 되도록 힘쓰라고 말씀하십니다!! ???▶ 그날 밤 무서운 수난을 겪은 그 후 ......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특히 그 세사람은? ??▶ 길을 묻던 도마는 그 당시 힌두교의 중심국이었던 인도로 가서 복음을 전한 것으로 도마 행전(Acts of Thomas)에 기록되어 있고 나중에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특히 도마는 인도의 허황후가 김수로왕과 결혼하기 위하여 신라로 왔을 당시 한국에 동행했다고 알려져있고 경북 영주시 평은면 왕유동에는 히브리어로 쓰여진 암석이 있는 데 그것을 도마바위라고 부릅니다.

진실로 도마는 요한복음11장에 나타난 그의 고백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를 실천한 생애를 살았습니다.

도마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길을 아느냐고? ▶ 하나님을 보여달라던 빌립은 터키 히에라볼리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는데 그곳에는 지금도 빌립의 순교를 기념하는 ‘순교자 빌립의 기념교회’가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가인 유세비우스는 그의 ‘교회사’에서 빌립이 지금의  히라폴리스에서 기적과 기사를 행하며 복음을 전하다가 AD 54년 순교했다고 전합니다.

그는 죽음에 앞서 자신의 시신을 예수님처럼 세마포로 싸지 말고 파피루스로 싸라고 유언했다는데 주님과 동일한 취급을 받을 수 없다는 겸손함이었습니다.

그는 늘 그가 만나고 싶었던 하나님을 만나며 살아갔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살아있는 신앙으로 지금도 존재합니다! ▶ 다대오는 이 예수님의 사랑을 세상에 나타내는 자가 되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다대오는 시리아, 아라비아, 페르샤에서 복음을 전했고 아르메니아는 A.D 301년에 나라가 기독교화될만큼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고합니다.

 그는 시리아에서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대오는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은 알려지지 않아도 예수님의 이름은 널리 알린 진실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다대오는 "이름은 없었으나 이름 값을 한 제자, 이름 없이 빛도없이 주님을 섬긴 제자, 유명하지 않았으나 필요했던 제자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 사랑받는 생애를 살았습니다!  이 밤의 대화는 흥분과 두려움 가운데 무슨 말을 제자들이 하는 지 혼란과 헝클어짐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 흥분된 제자들의 질문과 예수님의 대답을 끝까지 관통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사랑! 사랑! 하나님의 사랑!혼란할 때 사랑을 붙잡기 바랍니다!사랑을 붙잡아야 떠내려가지 않습니다! 시간에 떠밀려 흐려지지 않습니다![요14: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사순절 기도를 바치면서 강단에 엎드려 십자가를 바라보면 십자가가 저에게 묻습니다.

지금 진실하게 살고 있느냐고, 정말 그것이 신앙적인 것이냐고! 예수님은 진실 한가지를 물으십니다.

그리고 바로 내 자신은 알고 있습니다! 왜? 그랬는지? 십자가는 우리의 진실을 묻습니다.

왜 그랬는지 묻습니다! 세월과의 싸움 속에서 남은 진실을 돌아봅니다.

?고난주간! 피할 수 없는 진실 앞에 선 영혼 깊은 곳의 순정한 고백이 있어야할 것 ?같습?니다.

 ? ? Christ in Gethsemane, by Michael D. O’Bri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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