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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소녀 희진



많은 생각이 드는 영화였다.

‘시’란 뭘까. 그리고 ‘삶’이란. 죄를 지은 인간은 벌을 받는다.

그렇다면 죄를 지은 인간에게 상처를 받은 사람은? 피해자를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영화 <시> 속에선 인간의 삶과 죄, 그리고 구원에 대한 서사가 전개된다.

세상을 아름다운 눈으로 바라보며 소녀 같은 감성을 지닌 주인공 양미자 할머니는 시를 쓰고 싶어 한다.

그리고 시를 쓰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동급생을 성폭행했지만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손자 종욱의 이야기가 드러나면서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미자의 시인 <아네스의 노래>로 함축된다.

성폭행 피해자인 희진의 자살과 미자의 자살이 결부되면서 말이다.

두 인물의 동일성을 받아들이면서 찾아가는 한 노년의 삶과 인생, 그리고 인간은 정말로 시를 통해 속죄하고 구원받을 수 있는가.#1. 희진의 죽음 그리고 미자의 죽음. ‘시’란 정말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중첩된 이미지를 지니고 있지만 중심인물은 조금 다르다.

프롤로그에서는 희진의 시체가 강으로 떠내려 오는 것을 통해 그녀의 죽음을 인지할 수 있다.

영화의 막바지에서는 화면에서 미자는 사라지지만 <아네스의 노래>를 암송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누군가의 시선을 통해 화면이 전환되어가고 미자의 목소리는 곧 희진의 목소리로 바뀐다.

화면은 다리 위의 여학생에게로 옮겨간다.

그녀는 희진이다.

여기서 누군가의 시선은 미자이며, 미자의 죽음의 행로를 관객이 함께하게 된다.

그리고 미자는 희진으로 바뀐다.

결국, 미자와 희진의 합일을 보여주는 것을 통해 미자가 자살했음을 알 수 있다.

극 중에서 미자는 희진의 죽음이 손자 종욱과 관련이 있음을 알아채지만 이를 부인한다.

그리곤 시를 쓰기 위해 시상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희진의 죽음을 외면한 자신의 죄에 대해 미자는 그녀의 시인 <아네스의 노래>로 속죄한다.

삶과 죽음, 속죄와 구원이 ‘시’를 통해 나타났다.

그런데 시가 정말 구원의 매개체가 될 수 있을까? 극 중에서 김 시인은 우리 사회를 ‘시가 죽어가는 시대’라고 말한다.

다 죽어가는 시가 구원의 매개체라니, 아이러니다.

#2. 김 시인의 시 강좌. ‘시’란 무엇인가?? 영화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를 소재로 한 영화이며, 주인공인 미자는 영화 속에서 내내 시를 쓰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다.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미자는 문화원에서 시 강좌를 수강하게 된다.

시에 대해 알아가지만 시상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미자는 사과를 바라보고, 바람과 햇살을 느껴보고, 살구를 먹어보는 등 일상에서 시상을 찾기 시작하며 수첩에 자신의 생각을 적는다.

심지어 죄인들의 아버지들과 피해자의 어머니를 만나는 과정에서도 시상을 찾으려 애쓴다.


미자는 종욱이 성폭행사건의 범인이라는 것을 알지만 외면한다.

여기서 인물의 구조와 성격이 맞물리는 지점을 찾을 수 있었다.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미자의 성격에 맞춰 영화는 발생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음에도 아름다움이 나타난다.

공범자들의 아버지들이 모여 사건을 덮는 회의를 하는 가운데 미자는 밖으로 나가 꽃을 바라보며 시상을 찾는다.

시를 쓰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짐에 따라 시낭송회에도 나가게 되는 것 또한 미자의 성격 발현으로 볼 수 있다.

#3. 희진의 자취를 찾아가는 미자. 소녀와 노년의 공감을 통한 자기인식???미자는 성당, 학교, 강가, 희진의 집을 통해 희진의 자취를 찾아다닌다.

비로소 미자는 희진을 인식하기 시작하며 종욱을 닦달하기까지 한다.

세상은 아름다우며 시 또한 아름다워야 하고 자신도 아름답길 원하는 미자의 신념이 삶의 고통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범자들의 사건 축소와 손자의 죄악, 그리고 자신의 사건외면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슬픔과 고통과 부조리로 가득 차 있다.

아름다운 시를 쓰고 싶지만 미자의 현실은 아름답지 못하다.

결국 자신이 믿고 생각해왔던 삶과 다른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아픔과 고통을 받아들인 미자는 죄를 인정한다.

속죄 의식이 발현된 것이다.

또한 미자의 밝고 긍정적인 성격에 변화도 나타난다.

희진의 자취를 따라가며 학교에서, 강가에서 시상을 찾는다.

그리고 희진 모를 마주하며 살구에 대해 자신의 시상을 털어놓는다.

시상에 대한 절정에 다다른 것이다.

하지만 알츠하이머 때문에 자신이 왜 희진 모를 찾았는지 잊어버린 미자가 기억을 상기시키면서 영화도 장의 절정에 다다른다.

#4. 손자 종욱의 죄를 인지한 미자. 현실을 마주하고 죄를 인정하다, 속죄.??사랑하는 손자 종욱이 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종욱은 희진에 대한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미자는 식탁 위에 놓인 희진의 액자를 보아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자신의 손자를 바라보며 결심을 한 것 같다.

미자가 선택한 죽은 아이를 위한 속죄는 자신의 사랑하는 손자를 신고하는 것이었다.

종욱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몸을 깨끗이 하게 한 후 미자는 평소처럼 그와 배드민턴을 친다.

평범한 일상의 아름다움 속에서 아픔과 고통을 받아들인 미자는 종욱이 경찰에게 끌려가도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않는다.

자신의 일을 할 뿐이다.

다른 공범자들의 아버지들은 자신의 아들의 죄를 돈으로 덮어버리기에만 급급했다.

미자 또한 자신의 손자의 미래를 위해 죄를 저지르고 그 값을 받는다.

(강노인과 정사를 가진 것은 죄라고 말할 수 없지만 이후 오백만원을 받은 것은 성을 사고 판 행위로 죄로 볼 수 있다 치자.) 하지만 미자는 사랑하는 손자의 미래를 위해 그의 죄를 덮어버리려는 할머니로서의 역할을 벗어던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미자의 속죄이다.

#5. 시 <아네스의 노래>를 통한 삶의 인식. 구원 아네스는 희진의 세례명이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 시는 아네스인 희진의 구원을 위한 시이며, 미자와 희진의 나레이션을 통해 미자의 구원을 위한 시임도 알 수 있다.

성당에서 있었던 희진의 위령미사를 통한 구원의 행위는 미자의 시를 통해 비로소 구원받을 수 있었다.

영화의 초반에서부터 미자는 희진을 강하게 인지한다.

미자는 병원 장례식장에서 딸의 죽음에 분노하는 어머니의 행위를 하나의 가십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수퍼여자에게 종욱에게 사건을 말하며 그 진상을 알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미자는 스스로가 희진의 삶에 다가선다.

자신의 손자 종욱이 희진을 죽인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사건을 덮는 것에 동조하기도 했지만, 결국 손자의 죄를 인정하고 그가 속죄할 수 있는 길을 택한다.

이 과정에서 쓰인 시 <아네스의 노래>는 그렇기에 미자와 희진의 동일화로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속죄를 통해 자살한 미자는 구원받았다.

시 쓰기 강좌에서 유일하게 시를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시란 삶이라고 생각했다.

시에는 시인의 인생이 녹아있다.

영화 <시>에서도 미자가 쓴 <아네스의 노래>는 미자의 삶이었던 것이다.

어린나이에 죽은 소녀 희진과 늙었지만 소녀감성을 지닌 미자의 동일시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시를 쓰기 위해 시상을 찾아다니는 과정이 미자에게는 마냥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었다.

알츠하이머를 선고받고 점점 명사가 떠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시 쓰기란 일종의 도피처였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말들이 떠오르지 않기 전에 자신을 담은 시 한 편을 쓰는 것이 미자가 생각한 삶이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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