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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덱스 레스터



베네치아 금화 100두카토(ducato)의 값어치가 있는 그림을 구매자측이 25두카토 정도만 지불하겠다고 해서 소송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논쟁 끝에 그림 값은 대략 50두카토로 결정된다.

다 빈치는 자기가 원하는 가격의 절반 밖에 받지 못한 셈이다.

메인 그림 보러가기  그림값을 둘러싼 다 빈치의 법정 소송 논쟁의 대상이 된 [동굴 속의 성모]라는 작품은 현재는 두 개의 쌍둥이 버전으로 전해내려 오고 있다.

루브르에 소장된 것이 먼저 제작된 것이고, 영국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이 후대 다시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첫 작품이 당시 밀라노를 지배하던 프랑스 왕에게 넘어가게 되자 이를 거의 똑같이 다시 제작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어찌되었던 다 빈치의 [동굴 속의 성모]는 명작들이 즐비한 루브르와 내셔널 갤러리에서도 ‘명작 중의 명작’으로 추앙받고 있다.

완성되었을 당시 화가는 100두카토를 원했고, 주문자는 25두카토만 지불하려 했던 이 그림의 현재 가치는 얼마나 될까? 프랑스 정부나 영국 정부가 망하기 전까지 이 작품이 미술시장에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이 작품의 시장가격을 추정한다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이 두 작품 중 어느 것이라도 미술시장에 나온다면 그 가격은 역대 최고가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다 빈치 [동굴 속의 성모] 1508런던 내셔널 갤러리 버전은 루브르 미술관 버전과 거의 유사하지만 오른쪽 천사의 동작과 의복 처리 부분에 약간에 변화가 있다.

다 빈치 [동굴 속의 성모] 오른쪽 천사 부분   현재 세계 미술경매 시장에서 최고 거래가격은 자코메티의 청동 조각상 [걷는 사람 1 L’Homme Qui Marche I]으로 올해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6500만 파운드(약 1197억원)에 팔렸다.

2004년에는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 [파이프를 든 소년]이 쟈코메티 작품과 거의 비슷한 가격에서 거래된 적이 있었다.

다 빈치의 유화 작품은 대략 10

20점 정도로 알려져 있고 이 중 실제로 미술시장에서 거래된 것은 [지네브라 데 벤치 Ginevra de’Benci]의 초상화인데 1967년 500만 달러에 미국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에 팔려 나갔다.

이 가격도 물론 당시에는 사상 최고 경매가였다.

  당시 경매에서 이 작품을 아깝게 놓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토마스 호빙(Thomas Hoving) 관장은 훗날 이 패배를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안타까운 순간으로 기억하며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나는 지금도 가끔씩 새벽 3시에 번쩍 일어나 ‘그 그림을 손에 넣었어야 했어!’하며 소리치고 있다.

” “내가 늙어 양로원에서 들어가면 나는 ‘레오나르도’를 중얼거릴 거고 사람들은 ‘참 안됐어, 저 양반은 자기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인줄 아는 가봐’라고 수근 거릴 것이다.

”  작년에 작고한 토마스 호빙 관장의 이런 회고담은 서구 상류층 세계에서 차지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높은 지위를 잘 보여 준다.

언제든 레오나르도의 이름표를 단 작품이 경매시장에 나온다면 엄청난 가격을 지불하고 그것을 구매할 사람들이 줄을 섰다는 것이다.

  다 빈치의 작업노트 [코덱스 레스터 Codex Leicester]3천만 불에 거래된 다 빈치의 작업 노트실제로 1994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업노트 한 권이 3천만 불이라는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었다.

코덱스 레스터(Codex Leicester)로 알려진 이 작업노트는 18장 종이를 반으로 접은 후 앞뒤에 쓴 72페이지 분량의 메모에 불과했지만, 우리 돈으로 36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거래되었다.

  이 르네상스 시대의 공책 구매자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 회장으로 밝혀지면서 또 한 번 뉴스거리가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빌 게이츠 회장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업노트를 구매한 것을 현대의 천재가 과거의 천재에게 보낸 멋진 찬사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최근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여인의 초상화 드로잉이 한 점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만약 진짜라면 그 값어치는 1억5000만 달러 이상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종이에 그린 드로잉 작품이 이 정도 가격이라면 높이 2미터, 폭 1.2미터의 대규모 패널 작품인 [동굴 속의 성모]의 값어치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동굴 속의 성모]를 그리고 희망했던 가격은 100두카토였다.

당시 최고 기술자의 연봉이 대략 50두카토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 가격도 그리 낮은 가격은 아니었다.

대략적인 추정이지만 지금으로 치면 1억원 정도를 요구한 것인데, 이 정도 가격은 당시에도 아무나 살 수 있는 만만한 가격은 결코 아니었다.

  최종적으로 그림의 주문자인 밀라노 산 프란체스코 성당에 소속된 무염시태 평신도회(confraternity of Immaculate Conception)는 가격을 깎고 또 깎아 화가가 원하는 가격의 절반인 오천만 원 정도에서 그림을 소유하게 된다.

이 단체는 아주 헐값에 다 빈치의 그림을 구매한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값싸게 구매한 그림을 훗날 런던에서 온 미술 딜러에게 또다시 헐값에 팔아넘겼다는 점이 아쉬울 다름이다  다 빈치 [지네브라 데 벤치의 초상화], c. 1476, 워싱턴 DC, 내셔널 갤러리[모나리자]보다 먼저 그려졌으나 비교적 보관이 잘 되어있어 머릿결 등 세부처리에서도 화가의 터치를 느낄 수 있다.

다 빈치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여인 드로잉   르네상스 시대에 그림값은 어떻게 책정되었을까? 다 빈치가 자신의 그림값으로 요구한 100두카토라는 액수는 당시 거래되던 그림 값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평균가격에 가깝다.

르네상스 시대 그림값은 대략 재료비와 인건비의 합으로 결정되었다.

지금과는 달리 그림 가격에서 재료비의 비중이 상당히 높았다.

재료비의 상당 부분은 목공비용과 물감값이 차지했다.

특히 금박이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금박처리 비용이 상당히 높았다.

당시 화가들은 물감색 하나하나를 개별적으로 구매하면서 때론 이것을 다시 정제해서 써야 했다.

예를 들어 깊은 파란색을 내는 울트라마린(ultramarine) 안료는 금값보다 더 비쌌고 다루기도 힘들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목공작업이 당시 총제작비의 30% 정도가 쓰였고, 물감값과 금박 작업에서도 거의 30% 정도의 비용이 평균적으로 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당시 어느 정도 수준있는 작가가 그림 작품의 대략적인 그림 가격이 100두카토라고 가정한다면 이중 30두카토는 목공일에 쓰였고, 또다시 30두카토 정도는 물감과 금박 구매에 쓰였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최종적으로 화가에게 돌아가는 몫은 대략 40두카토 정도였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화가 보티첼리는 1485년 산 스피리토 성당의 제대화를 그리는데 그림값으로 총 75피오리노(fiorino, 피렌체 금화)를 받게 되는데 이중 40피오리노는 재료비였고, 35피오리노는 보티첼리 자신의 노력에 댓가로 받게 된다.

계약서에 따르면 흥미롭게도 재료비 중 2피오리노는 울트라마린 안료로 쓰라고 정해져 있고, 보티첼리의 노동에 대해서는 ‘그의 붓값’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르네상스 초기에는 화가들이 일한 날짜나 그림 그린 면적 단위로 임금이 지불되었지만 ‘붓값’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화가의 노동 시간보다는 화가의 능력을 기준으로 임금을 지불하려는 인상을 주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 약재상의 모습을 담은 15세기 필사본. 당시 화가들은 물감의 원재료를 약재상에게서 구입해야 했다.

울트라마린을 비롯한 몇몇 안료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수입되었고 가격도 매우 비쌌다.

보티첼리 [성모자와 성인들] 1485제작 당시에는 대략 7천만 원 정도(금화 75피오리노)였으나 오늘날에는 경매가로 최소 300억 원 이상 거래될 것으로 추정된다.

   보티첼리가 받은 금화 35피오리노 정도의 금액은 숙련된 노동자의 일 년치 연봉에 가까운 큰 돈이지만 이 액수도 화가 한 명에게 온전히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화가는 공방을 운영하면서 조수들도 서너 명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화가들이 한 번에 한 작품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서너 작품을 동시에 그려나갔기 때문에 연 수입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당시 공방 운영의 메커니즘을 고려할 때 르네상스 시기의 화가들은 부지런히 일한다 해도 그리 큰 돈을 벌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화가와 구매자들간에 치열한 수싸움 화가들이 상대해야 할 당시 미술 구매자들이 결코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다 빈치같이 이미 당대에도 명성을 얻었던 화가의 작품도 절반 가까이 깎아버린 밀라노 평신도 단체의 구두쇠같은 거래가 비일비재했다.

사실 메디치 가문과 일부 귀족이나 교황들이 보여주었다고 알려진 자애로운 ‘미술 후원인’이라는 이미지는 상당 부분 훗날 미화된 것으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상업문화에 기반해 성장한 르네상스 상류층들은 그림값 흥정에서도 상당히 능숙했다.

피렌체 인근 프라토(Prato)에서 성장해 전 유럽에서 돈을 벌어들인 프란체스코 디 마르코 다티니(Francesco di Marco Datini)라는 상인은 그림 거래를 통해서도 적지 않은 돈을 벌어들였는데 그는 자기 부하 직원에게 팔릴만한 그림을 사놓으라고 주문하면서도 가격이 높으면 절대 사지 말라고 조언한다.

1387년 편지에서 그는 화가들이 돈이 궁해지면 그림값이 다시 떨어질 터이니 그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라고 말한다.

당시에도 화가가 아니라 돈을 쥐고 있는 쪽이 구매 흐름을 좌우했던 것이다.

르네상스 작품들이 오늘날에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거래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이 시대를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반가운 마음 보다는 도리어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된다.

사실 르네상스 시대에 1억 원 정도로 거래되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이 오늘날 수천억 원을 호가한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가 그만큼 미술을 사랑한다는 징표로 받아 들여지지는 않는다.

몇몇 르네상스 작가들이 주거니 받거니 미술품 경매가 기록을 갱신해 나가고 있지만, 다른 한 편에선 수많은 재능 있는 작가들이 망각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레오나르도를 지나치게 쫓아 다니다가 정작 우리 속에 존재하는 레오나르도를 찾는데 소홀한 것은 아닌가 염려해 본다.

르네상스 미술의 작품가는 무한정 오르고 있다고 하지만, 나날이 스타 위주로 편중되고 있는 오늘날의 국내외 미술시장에서 정작 르네상스의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신은 실종된 지 오래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나 뿐만은 아닐 것이리라. 관련링크 : 르네상스 명작 더 보기   

 

르네상스 화폐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는 금, 은, 동으로 만든 동전들이 사용되었는데 은화와 동화는 지역에서 사용된 반면 금화는 국가 간의 국제무역이나 기타 중요한 거래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당시 이탈리아의 여러 국가 중 금화를 제조한 국가는 피렌체와 베네치아, 제노바 세 국가뿐이었는데 모두 국제 무역에 가담한 국가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피렌체의 금화단위는 피오리노(fiorino; 영어 florin)였고, 베네치아의 금화 단위는 두카토(ducato; 영어 ducat), 제노바는의 금화단위는 제노비노(genovino)였다.

대체로 세 국가의 금화는 모두 3.5g정도였지만 순도가 달랐기 때문에 1대 1로 거래되지 않았다.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금화는 순금에 가까웠지만 피렌체의 경우 18K(순금 75%)로 알려져 있다.

피렌체와 제노바는 1252년부터 금화를 주조하기 시작하였고 베네치아의 금화 두카토는 1284년에 처음 만들어진다.

금화가 등장하는 13세기 후반을 유럽에서 국제무역의 발전이 가속화되는 시기로 볼 수 있다.

   글 양정무 /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졸업, 런던대 유니버시티 컬리지 박사. 미술을 좋아하고 역사를 좋아하기 때문에 두 영역이 결합된 미술사 공부를 천직으로 생각한다.

르네상스 미술을 시작으로 서양의 시각문화를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하는 글을 구상하고 있다.

도대체 그 노트가 무엇이길래 빌 게이츠의 마음을 이다지도 흔들었던 것일까요?‘코덱스 해머(Codex Hammer)’라 불리는 이 노트는 다름 아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필사본 작업 노트 ‘코덱스 레스터(Codex Leicester)’ 중 한 권입니다.

빌 게이츠는 평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열렬한 팬으로도 유명한데요. 아날로그 시대를 종식하고 디지털 시대를 열어젖힌 그가 낡은 노트를 구매한 것이 단순히 팬심 때문이었을까요? 과연?     물론 아니죠. 빌 게이츠는 16세기의 낡은 자필 노트에 담겨 있는 다빈치의 생각, 그리고 생각의 틀을 산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빈치는 한 권의 노트에 다양한 관심사를 순서 없이 기록했어요. 자신이 몰두한 개념을 간단한 스케치로 표현하고 주변에 자신의 생각을 적으며 아이디어를 발전시켰죠. 그의 노트를 보면, 이미 알고 있던 개념과 새로 알게 된 개념을 연관시켜 결합하는 과정이 특히 잘 드러나 있다고 합니다.

노트광이었던 빌 게이츠는 컴퓨터가 아니라 종이에 직접 필기하는 것이 아이디어를 붙잡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랬기 때문에 다빈치의 필사본 노트에 큰 가치를 부여한 것이고요. 경매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다양한 평가를 내놓기도 했지요."현대의 천재가 과거의 천재에게 보낸 멋진 헌사" "20세기 신문물의 기원을 연 천재가 르네상스 시대를 빛낸 천재의 노트를 통해 영감을 얻으려는 것"[코덱스 레스터의 일부] Leicester Codex on display in New York in 1996, by Richard Drew/AP
잘 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노트광이다
다빈치와 같은 역사 속 천재, 위인은 차치하고 소위 잘 나간다는 사람들 그리고 크리에이티브하다는 소리 좀 듣는 사람들의 습관을 딱 하루만 매의 눈으로 살펴보세요. 그중 대다수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노트를 쓰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그들은 기억력이 엄청 좋을텐데 왜 굳이 기록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하루에 평균적으로 접하는 단어는 10만 개 이상이라고 해요. 잠잘 때를 제외하면 시간당 6,000여 개의 단어를 접하는 셈이죠. 엄청난 정보의 쓰나미에서 뇌는 제한된 기억을 더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무수한 아이디어들을 그냥 흘려보냅니다.

창조적인 사람의 뇌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죠. 그래서 그들은 부유하는 아이디어를 붙잡기 위한 도구로 노트를 사용합니다.

노트하는 과정을 거치면 아이디어가 구체화되어 생각이 창조적인 결과물로 이어지기 때문인데요. 손으로 직접 쓰면 그 효과가 배가 된다고 해요.
노트 쓰는 법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있었던가?
기록의 효용에 대해서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많이 들었는데, 어째서 우리는 초,중,고교 시절을 통틀어 노트 쓰는 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을까요?<다빈치 노트>는 그 의문에서 시작되었어요. 노트가 창조적 도구라면, 창의성을 가장 효율적으로 높여줄 수 있는 노트를 만들자는 생각이었죠. 다빈치, 뉴턴, 아인슈타인은 물론이고 창조성 대가라 불릴 만한 사람들의 노트를 오랜 시간 분석하고 연구해 비로소 ‘다빈치 노트’라는 새로운 노트를 개발했답니다! 생각을 정리해 더 큰 아이디어를 생산할 수 있는, 씽큐베이터를 말이죠. 이쯤 되니, 이렇게 무게 잡고 소개하는 <다빈치 노트>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시죠? "그래서, 다빈치 노트가 뭔데? 책이야 노트야? 어떻게 쓰라는 거지?"     하하하.<다빈치 노트>는 노트법을 소개하는 책과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고급' 양장 노트로 구성된 세트 상품이랍니다.

그래도 잘 모르시겠다고요? 그래서 준비했어요. 앞으로 5회에 걸쳐 <다빈치 노트>의 구체적인 내용, 노트 활용법, 예시 등을 자세히 다룰 예정이랍니다

5회 글을 다 읽으면 워밍업은 된 셈이니, 배운 것을 토대로 실제로 노트법을 활용해 보면 어떨까요?어디에 쓰냐고요?그래서 또 준비했습니다.

  6개의 포스트를 다 읽고 댓글을 꼬박꼬박 남겨주신 분들 중 5분을 추첨해 <다빈치 노트>를 선물로 드립니다!!! 5개의 포스트 글은 다음 주부터 차례대로 올릴 예정이니(저 할 수 있겠죠?) 많은 관심과 애정으로 지켜봐 주세요

!혹시라도 너무 궁금해 못참겠다 싶은 분들은 아래 동영상 보시면서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럼, 모두들 즐거운 저녁되세요. 저도 오늘은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______________^     창조적인 생각을 낳는 새로운 노트법, 다빈치 노트눈 깜박할 새에 사라져버리는 아이디어가 창조적인 산물로 완성될 수 있게 붙잡아 놓는 도구, 바로 노트! 셰익스피어, 다빈치, 뉴턴, 아인슈타인 등 역사적 천재들과 창조성 분야의 전문가들이 남긴 노트를 분석해 개발한 '다빈치 노트' 이 책과 노트는 당신의 아이디어를 붙잡고 결과물을 ...www.youtube.com      다빈치 노트저자 최지은 출판 한스미디어 발매 2016.02.23.상세보기출처-http://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3674830&memberNo=7094632[? ???? #1] ? ???? 340?? ??? ??? ?? by ??????? ???? ? 36??? ??? 340?? ???????1994?, ? ???? 36??? ??...m.post.naver.com  ..인지세(印紙稅)와 인세(印稅)는 말 그대로 종이 한 장 차이(종이 紙)다.

  출판계를 비롯하여 문화산업 분야에서 널리 쓰이는 인세(印稅, royalty)란 계약에 의하여 저작물을 발행하여 판매하는 사람이나 단체가 판권 소유자인 저작권자나 작곡가에게 저작물 또는 음반이 팔리는 수량에 따라 일정한 비율로 치르는 돈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왜 '저작권 사용료'라고 해야 할 것을 인세라고 부르는 것일까. 종래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는 도서에 저자의 검인(檢印)을 붙임으로써 출판을 승낙하고 발행부수를 확인하는 관행이 있었다.

즉 서적의 맨 뒷면(판권 표시면)에 부착된 증지(證紙)에 의하여 출판의 허락과 발행부수를 확인하는 것이 관례였다.

검인 또는 증지가 수입인지와 모양이 유사한 점과 수입인지에 의하여 들어오는 수입을 인지세(印紙稅)라 하는 데서, 검인(도장을 찍는 것)에 의하여 들어오는 수입이라는 점에서 인세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이러한 검인첩부제도는 1901년 독일에서 출판권법에서 출판권설정제도와 함께 검인제도를 인정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일본이 이를 도입하여 저작권법에 규정한 것을 우리나라가 그대로 모방한 것이었다.

 인지는 1990년대 초부터 없어지기 시작해 <저자와의 협의로 인지를 생략합니다>라는 문구로 대체되었고, 요즘엔 그런 설명조차 없는 책이 많다.

 2013년 하나뿐인 밀리언셀러였던 『정글만리』(전3권)에는 저자가 종이책에 남긴 아날로그적인 흔적이 남아 있다.

책마다 인지(印紙)를 표상하는 저자의 도장이 찍혀 있다.

 책에 인지를 붙이는 저자는 조정래 이외에 이외수, 정호승, 곽재구, 류시화 등 손으로 꼽을 만큼이다.

     [ 비용과 시간 문제로 생략돼 온 인지의 흔적들. 정호승, 이외수, 류시화, 조정래(사진 왼쪽부터). <출처 : , 2014.03.27> ] 저자가 받는 인세는 소득세법상 기타소득으로 분류되어 소득세를 납부한다.

우스운 얘기지만 뇌물도 세법상 '기타소득'에 해당된다.

따라서 수뢰 혐의로 처벌받게 되면 범죄행위에 대한 제재인 추징금과는 별도로 뇌물에 대한 소득세가 붙는다.

다만 뇌물로 받은 금액을 원 소유자에게 돌려주면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 소득세법 제21조(기타소득) ① 기타소득은 이자소득·배당소득·사업소득·근로소득·연금소득·퇴직소득 및 양도소득 외의 소득으로서 다음 각 호에서 규정하는 것으로 한다.

 5. 저작자 또는 실연자(實演者)·음반제작자·방송사업자 외의 자가 저작권 또는 저작인접권의 양도 또는 사용의 대가로 받는 금품15. 문예·학술·미술·음악 또는 사진에 속하는 창작품(「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른 정기간행물에 게재하는 삽화 및 만화와 우리나라의 창작품 또는 고전을 외국어로 번역하거나 국역하는 것을 포함한다)에 대한 원작자로서 받는 소득으로서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것 가. 원고료나. 저작권사용료인 인세(印稅)다.

미술·음악 또는 사진에 속하는 창작품에 대하여 받는 대가 23. 뇌물24. 알선수재 및 배임수재에 의하여 받는 금품  대박 인세 vs. 쪽박 인세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의 재산은 28억 3,358만여 원으로 전년보다 2억 7,400만 원 가량 늘어났다.

박 대통령은 재산증가 사유를 '인세 등 예금액 증가'라고 신고했다.

이는 박 대통령의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 등이 국내외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른 효과를 본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박 대통령은 "《구름빵》이란 콘텐츠가 애니메이션과 뮤지컬로 큰 성공을 거뒀는데도 작가가 얻은 수입은 2000만원도 되지 않는다"며 "이래서야 한국에서 『해리 포터』를 쓴 영국 작가 조앤 롤링이 나오길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질책했다.

 그러나 작가 조앤 롤링 역시 『해리포터』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인세로 불과 2000파운드, 우리 돈으로 360만원을 받았다.

 《구름빵》은 작가 백희나의 데뷔작으로 2004년 출판된 어린이용 그림책이다.

구름 반죽으로 만든 빵을 먹은 고양이들이 하늘로 떠올라 아침을 거르고 출근한 아빠 고양이에게 빵을 가져다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세 계약은 작가마다 다르지만, 대략 책값의 10%를 인세로 주는 종이책 출판과는 달리 전자책 출판은 최소 30%에서 절반, 많게는 70%의 인세를 작가가 가져가기도 한다.

무명작가였던 백희나의 경우에는 저작권을 헐값에 양도하였기 때문에 나중에 작품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 혜택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매절(買切)은 한번에 끊어서 원고 집필에 대한 대가를 사는 것이다.

흔히 원고료(原稿料)라고 한다.

매절과 인세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원고에 대한 저작권이 어디 있는가이다.

매절로 계약했다면 일반적으로 저작권은 출판사에 있다.

  [ 출처 : 구름빵 ]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단행본으로는 1859년에 간행된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와 생 텍쥐페리의 『어린왕자』이다.

무려 2억권이 넘게 팔렸다.

하지만 시리즈물 중에서는 총 4억부를 넘어선 해리포터시리즈이다.

 영예의 주인공은 가난하고 배고팠던 아동문학가이자 이혼녀 조앤 롤링이다.

 워너브러더스가 제작한 일곱 편의 해리포터 영화는 무려 50억달러 이상 흥행수입을 올렸다.

해리 포터가 영화, 게임, 음악, 뮤지컬, 광고 등으로 확산돼 1997년부터 2006년까지 올린 매출액은 308조원으로 추산된다.

조앤 롤링은 해리 포터의 인세와 영화판권으로만 1조원을 넘게 벌었다.

 영국 작가 E.L. 제임스는 '엄마용 포르노'라 불리는 3부작 성인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Fifty Shades of Grey)』를 통해 1년 만에 인세와 영화저작권으로 무려 9천 500만달러를 벌었다.

 한편 유명작가나 유명인사들의 경우에는 책을 집필하기 전에 미리 계약금이 지급되거나 서적을 번역해 펴내면서 저자에게 미리 계약금을 지불하게 되는데, 이를 선인세(先印稅)라고 부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선인세는 1990년대 중반만 해도 1천만 원대였지만, 2009년 발간된 『1Q84』는 10억 원대로 올랐으며, 최근 신작 장편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국내 판권을 차지한 민음사는 선인세로 16억+@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빈치 코드』의 댄 브라운은 『로스트 심벌』로 11억 원을, 조앤 롤링은 성인소설 『캐주얼 베이컨시』로 10억 원 이상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세계에서 선인세(先印稅)로 가장 돈을 많이 번 정치인은 '클린턴 대통령 부부'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2004년 자서전 『마이 라이프』를 쓰는 대가로 선인세 1,500만달러(약 152억원)를 받았다.

부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최근 출판한 두 번째 자서전 『어려운 선택들』로 1,400만달러(약 142억원)를 받았다.

'세계의 경제 대통령'이라 불렸던 앨런 그린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진부하고 고루한 회고록 『격동의 시대』는 선인세 850만달러(약 86억원)를 기록했다.

어쨌든 호사가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퇴임 뒤 회고록을 쓰면 판권료가 2,000만달러(약 202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조정래 vs. 이문열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단행본은 이문열의 평역 『삼국지』이다.

지금까지 누적 판매량은 2천만부를 돌파했다.

이어서 조정래의 대표작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정글만리』의 총 판매량은 1,500만부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코덱스 레스터] 매력을 알아보자


태백산맥은 여순사건 직후부터 한국전쟁 시기까지 전남 벌교 일대의 빨치산 활동을 소재로 한국 현대사의 이데올로기 문제를 정면으로 조명한 대하소설이다.

한국의 문학작품이 200쇄를 넘긴 것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이어 『태백산맥』이 두번째이다.

'쇄(刷)'란 한 번 인쇄한 책이 서점에서 다 팔려 인쇄기를 다시 돌려 새로 찍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통상적으로 소설의 경우 한 쇄에 3,000

10,000부 가량을 찍는다.

 조정래의 장편소설 『정글만리』도 2014년 3월 100쇄를 돌파했다.

 『정글만리』 1권의 100쇄 돌파는 조정래 작품 중 『태백산맥』 100쇄(1997년)와 200쇄(2009년), 『아리랑』  100쇄(2007년)에 이은 네 번째이다.

100쇄를 넘은 작품으로는 <아리랑>을 비롯, 최인훈의 『광장』,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안도현의 『연어』, 故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과 『낮은 데로 임하소서』 등이 있다.

    이밖에 박경리의 『토지』, 황석영의 『장길산』,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김홍신의 『인간시장』, 중국 작가 김용의 『소설 영웅문』, 정비석의 『소설 손자병법』, 이우혁의 『퇴마록』, 김진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 등이 베스트셀러 목록을 차지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책     [ 《카드놀이하는 사람들(The Card Players)》 폴 세잔(Paul C�zanne), 1893년. <출처 : vanityfair.com>  이 작품은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소작농들이 카드게임을 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작품에서 세잔은 진지하게 카드놀이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잘 포착했다.

화면 속의 남자들은 마치 인생의 가장 중요한 행사라도 치르는 듯한 모습이다.

긴장감을 넘어 비장함까지 느껴진다.

결과를 앞에 두고 있는 사람의 결연한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그림이다.

두 명의 대결 구도 구성이 주축인 이 작품은 짧은 순간 결정을 내려야 하는 긴장의 표현 방식으로 쓸데없는 배경을 최대한 배제했다.

폴 세잔이 남긴 <카드놀이 하는 사람> 시리즈 5점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정물화(Human Still Life)'로 설명된다.

]    2012년 2월 베니티 페어(Vanity Fair) 잡지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을 공개했다.

바로 폴 세잔의 1893년 작품 《카드놀이하는 사람들》이었다.

무려 작품가격은 2억 5,000만 달러(약 2,825억원)에 달했다.

 루브르 박물관의 대표작 《모나리자》는 잠정 가격이 얼마나 될까. 매일경제 주필 김세형은 저서 『모나리자 가격은 얼마인가?』에서 루브르 박물관을 찾은 관광객 중 모나리자를 보러온 관객 수, 박물관 성인 입장료, 5%의 수익률과 금리, 관람객 증감률 등을 적용해 추정가가 40조원이라고 가늠한 적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실제로 다빈치의 작품은 워낙 희소한데다가, 거래가 많지 않으므로 가격을 추정하기가 만만치 않다.

다만, 희대의 에피소드를 낳았던 《아름다운 왕녀(La Bella Principessa)》라는 작품이 다빈치의 지문이 찍힌 희귀작이라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잠정가격이 1,700억원대를 호가하고 있다.

  [ 《아름다운 왕녀(The Beautiful Princess)》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5세기말. <출처 : wikipedia> 1998년 크리스티 경매 당시 '19세기 독일학파'라는 카탈로그 속에 포함됐던 이 작품은 1만 9,000달러에 뉴욕의 미술품 거래상인 케이트 갠즈에게 판매됐으며, 그는 2007년 동일한 가격에 미술 애호가인 피터 실버맨에게 다시 팔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탄소연대 측정과 적외선 분석 결과 1440

1650년에 제작된 것으로 확인되었고, 그림 상단에 찍힌 희미한 지문자국이 로마 바티칸 성당의 '성 예로니모'에 찍힌 다빈치의 것과 '매우 유사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책은 무엇일까? 역시나 팔방미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다.

바로 다빈치의 작업 노트인 ‘레스터 사본(Codex Leicester)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화가이자 발명가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작성한 72쪽 분량의 이 메모 노트는 1994년 3,080만달러(약 387억원)의 가격에 빌 게이츠 회장에게 팔렸다.

빌 게이츠의 열정 덕분에 '코덱스 해머'는 역사상 가장 비싸게 팔린 고서적이란 기록을 쓰게 됐다.

 ?? [ 《레스터 사본(Page of the Codex Leicester)》. <출처 : wikipedia>  수세기 동안 레스터가(家)의 소유였으나, 미국인 기업가 아먼드 해머(Armand Hammer)가 사들인 이후로 <코덱스 해머(Codex Hammer)>라고 알려졌다.

아먼드 해머(Armand Hammer)가 1980년에 520만 달러를 주고 구입하여 <해머 사본>으로 이름을 고쳤다가 빌 게이츠가 다시 《레스터 사본(Codex Leicester)》라는 원래 이름으로 되돌려놓았다.

실제로 레스터 사본에는 달이나 물, 화석 등 각종 자연물을 관찰하며 다빈치가 떠올린 아이디어나 천문학에 대한 메모가 적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예술적인 스케치부터 과학적인 창조물에 대한 아이디어까지 다양한 구상이 적혀 있어, ‘다빈치식 통섭’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노트라 할 수 있다.

]  이 밖에 미국 최초의 인쇄서적 <베이 시편집(The Bay Psalm Book)>이 2013년 11월에 미국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420만달러(약 150억원)에 낙찰되었다.

<베이 시편집>은 1640년 영국의 식민지 시절 미국에서 1700권이 제작됐는데, 현재 미국 땅에서 최초로 인쇄된 책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깊다.

이 책은 칼라일그룹 공동 창업자 데이비드 루벤스타인에게 낙찰되었다.

 그는 지난 2007년에도 영국 마그나 카르타(대헌장) 필사본을 무려 2,130만 달러에 구매하여 일반에게 공개한 바 있는 인물이다.

 [ 《베이 시편집(The Bay Psalm Book)》 1640년. <출처 : most-expensive.com> ]     ▣ 참고문헌 및 자료 1) 『미술 시장의 법칙』, 이호숙 지음, 마로니에북스, 2013년2) 조앤 K. 롤링, 박중서 출판기획자, 네이버캐스트 3) 크리스티의 대형 실수…다빈치 그림 '엉터리 감정', 김동욱 , 매일경제, 2010-05-07 4) 누구인지? 비용·시간 문제로 생략돼 온 印紙, 박돈규 , , 2014-03-275) 베스트셀러와 인세, 이영재 논설위원, 경인일보, 2013-08-166) 박희숙의 명화읽기 | 일확천금의 꿈 '도박', 박희숙 화가, 이코노믹리뷰, 2006-09-07     베네치아 금화 100두카토(ducato)의 값어치가 있는 그림을 구매자측이 25두카토 정도만 지불하겠다고 해서 소송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논쟁 끝에 그림 값은 대략 50두카토로 결정된다.

다 빈치는 자기가 원하는 가격의 절반 밖에 받지 못한 셈이다.

메인 그림 보러가기  그림값을 둘러싼 다 빈치의 법정 소송 논쟁의 대상이 된 [동굴 속의 성모]라는 작품은 현재는 두 개의 쌍둥이 버전으로 전해내려 오고 있다.

루브르에 소장된 것이 먼저 제작된 것이고, 영국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이 후대 다시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첫 작품이 당시 밀라노를 지배하던 프랑스 왕에게 넘어가게 되자 이를 거의 똑같이 다시 제작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어찌되었던 다 빈치의 [동굴 속의 성모]는 명작들이 즐비한 루브르와 내셔널 갤러리에서도 ‘명작 중의 명작’으로 추앙받고 있다.

완성되었을 당시 화가는 100두카토를 원했고, 주문자는 25두카토만 지불하려 했던 이 그림의 현재 가치는 얼마나 될까? 프랑스 정부나 영국 정부가 망하기 전까지 이 작품이 미술시장에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이 작품의 시장가격을 추정한다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이 두 작품 중 어느 것이라도 미술시장에 나온다면 그 가격은 역대 최고가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다 빈치 [동굴 속의 성모] 1508런던 내셔널 갤러리 버전은 루브르 미술관 버전과 거의 유사하지만 오른쪽 천사의 동작과 의복 처리 부분에 약간에 변화가 있다.

다 빈치 [동굴 속의 성모] 오른쪽 천사 부분   현재 세계 미술경매 시장에서 최고 거래가격은 자코메티의 청동 조각상 [걷는 사람 1 L’Homme Qui Marche I]으로 올해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6500만 파운드(약 1197억원)에 팔렸다.

2004년에는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 [파이프를 든 소년]이 쟈코메티 작품과 거의 비슷한 가격에서 거래된 적이 있었다.

다 빈치의 유화 작품은 대략 10

20점 정도로 알려져 있고 이 중 실제로 미술시장에서 거래된 것은 [지네브라 데 벤치 Ginevra de’Benci]의 초상화인데 1967년 500만 달러에 미국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에 팔려 나갔다.

이 가격도 물론 당시에는 사상 최고 경매가였다.

  당시 경매에서 이 작품을 아깝게 놓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토마스 호빙(Thomas Hoving) 관장은 훗날 이 패배를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안타까운 순간으로 기억하며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나는 지금도 가끔씩 새벽 3시에 번쩍 일어나 ‘그 그림을 손에 넣었어야 했어!’하며 소리치고 있다.

” “내가 늙어 양로원에서 들어가면 나는 ‘레오나르도’를 중얼거릴 거고 사람들은 ‘참 안됐어, 저 양반은 자기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인줄 아는 가봐’라고 수근 거릴 것이다.

”  작년에 작고한 토마스 호빙 관장의 이런 회고담은 서구 상류층 세계에서 차지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높은 지위를 잘 보여 준다.

언제든 레오나르도의 이름표를 단 작품이 경매시장에 나온다면 엄청난 가격을 지불하고 그것을 구매할 사람들이 줄을 섰다는 것이다.

  다 빈치의 작업노트 [코덱스 레스터 Codex Leicester]3천만 불에 거래된 다 빈치의 작업 노트실제로 1994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업노트 한 권이 3천만 불이라는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었다.

코덱스 레스터(Codex Leicester)로 알려진 이 작업노트는 18장 종이를 반으로 접은 후 앞뒤에 쓴 72페이지 분량의 메모에 불과했지만, 우리 돈으로 36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거래되었다.

  이 르네상스 시대의 공책 구매자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 회장으로 밝혀지면서 또 한 번 뉴스거리가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빌 게이츠 회장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업노트를 구매한 것을 현대의 천재가 과거의 천재에게 보낸 멋진 찬사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최근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여인의 초상화 드로잉이 한 점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만약 진짜라면 그 값어치는 1억5000만 달러 이상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종이에 그린 드로잉 작품이 이 정도 가격이라면 높이 2미터, 폭 1.2미터의 대규모 패널 작품인 [동굴 속의 성모]의 값어치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동굴 속의 성모]를 그리고 희망했던 가격은 100두카토였다.

당시 최고 기술자의 연봉이 대략 50두카토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 가격도 그리 낮은 가격은 아니었다.

[코덱스 레스터] 한번 파해쳐 봅시다.



대략적인 추정이지만 지금으로 치면 1억원 정도를 요구한 것인데, 이 정도 가격은 당시에도 아무나 살 수 있는 만만한 가격은 결코 아니었다.

  최종적으로 그림의 주문자인 밀라노 산 프란체스코 성당에 소속된 무염시태 평신도회(confraternity of Immaculate Conception)는 가격을 깎고 또 깎아 화가가 원하는 가격의 절반인 오천만 원 정도에서 그림을 소유하게 된다.

이 단체는 아주 헐값에 다 빈치의 그림을 구매한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값싸게 구매한 그림을 훗날 런던에서 온 미술 딜러에게 또다시 헐값에 팔아넘겼다는 점이 아쉬울 다름이다  다 빈치 [지네브라 데 벤치의 초상화], c. 1476, 워싱턴 DC, 내셔널 갤러리[모나리자]보다 먼저 그려졌으나 비교적 보관이 잘 되어있어 머릿결 등 세부처리에서도 화가의 터치를 느낄 수 있다.

다 빈치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여인 드로잉   르네상스 시대에 그림값은 어떻게 책정되었을까? 다 빈치가 자신의 그림값으로 요구한 100두카토라는 액수는 당시 거래되던 그림 값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평균가격에 가깝다.

르네상스 시대 그림값은 대략 재료비와 인건비의 합으로 결정되었다.

지금과는 달리 그림 가격에서 재료비의 비중이 상당히 높았다.

재료비의 상당 부분은 목공비용과 물감값이 차지했다.

특히 금박이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금박처리 비용이 상당히 높았다.

당시 화가들은 물감색 하나하나를 개별적으로 구매하면서 때론 이것을 다시 정제해서 써야 했다.

예를 들어 깊은 파란색을 내는 울트라마린(ultramarine) 안료는 금값보다 더 비쌌고 다루기도 힘들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목공작업이 당시 총제작비의 30% 정도가 쓰였고, 물감값과 금박 작업에서도 거의 30% 정도의 비용이 평균적으로 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당시 어느 정도 수준있는 작가가 그림 작품의 대략적인 그림 가격이 100두카토라고 가정한다면 이중 30두카토는 목공일에 쓰였고, 또다시 30두카토 정도는 물감과 금박 구매에 쓰였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최종적으로 화가에게 돌아가는 몫은 대략 40두카토 정도였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화가 보티첼리는 1485년 산 스피리토 성당의 제대화를 그리는데 그림값으로 총 75피오리노(fiorino, 피렌체 금화)를 받게 되는데 이중 40피오리노는 재료비였고, 35피오리노는 보티첼리 자신의 노력에 댓가로 받게 된다.

계약서에 따르면 흥미롭게도 재료비 중 2피오리노는 울트라마린 안료로 쓰라고 정해져 있고, 보티첼리의 노동에 대해서는 ‘그의 붓값’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르네상스 초기에는 화가들이 일한 날짜나 그림 그린 면적 단위로 임금이 지불되었지만 ‘붓값’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화가의 노동 시간보다는 화가의 능력을 기준으로 임금을 지불하려는 인상을 주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 약재상의 모습을 담은 15세기 필사본. 당시 화가들은 물감의 원재료를 약재상에게서 구입해야 했다.

울트라마린을 비롯한 몇몇 안료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수입되었고 가격도 매우 비쌌다.

보티첼리 [성모자와 성인들] 1485제작 당시에는 대략 7천만 원 정도(금화 75피오리노)였으나 오늘날에는 경매가로 최소 300억 원 이상 거래될 것으로 추정된다.

   보티첼리가 받은 금화 35피오리노 정도의 금액은 숙련된 노동자의 일 년치 연봉에 가까운 큰 돈이지만 이 액수도 화가 한 명에게 온전히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화가는 공방을 운영하면서 조수들도 서너 명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화가들이 한 번에 한 작품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서너 작품을 동시에 그려나갔기 때문에 연 수입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당시 공방 운영의 메커니즘을 고려할 때 르네상스 시기의 화가들은 부지런히 일한다 해도 그리 큰 돈을 벌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화가와 구매자들간에 치열한 수싸움 화가들이 상대해야 할 당시 미술 구매자들이 결코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다 빈치같이 이미 당대에도 명성을 얻었던 화가의 작품도 절반 가까이 깎아버린 밀라노 평신도 단체의 구두쇠같은 거래가 비일비재했다.

사실 메디치 가문과 일부 귀족이나 교황들이 보여주었다고 알려진 자애로운 ‘미술 후원인’이라는 이미지는 상당 부분 훗날 미화된 것으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상업문화에 기반해 성장한 르네상스 상류층들은 그림값 흥정에서도 상당히 능숙했다.

피렌체 인근 프라토(Prato)에서 성장해 전 유럽에서 돈을 벌어들인 프란체스코 디 마르코 다티니(Francesco di Marco Datini)라는 상인은 그림 거래를 통해서도 적지 않은 돈을 벌어들였는데 그는 자기 부하 직원에게 팔릴만한 그림을 사놓으라고 주문하면서도 가격이 높으면 절대 사지 말라고 조언한다.

1387년 편지에서 그는 화가들이 돈이 궁해지면 그림값이 다시 떨어질 터이니 그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라고 말한다.

당시에도 화가가 아니라 돈을 쥐고 있는 쪽이 구매 흐름을 좌우했던 것이다.

르네상스 작품들이 오늘날에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거래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이 시대를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반가운 마음 보다는 도리어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된다.

사실 르네상스 시대에 1억 원 정도로 거래되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이 오늘날 수천억 원을 호가한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가 그만큼 미술을 사랑한다는 징표로 받아 들여지지는 않는다.

몇몇 르네상스 작가들이 주거니 받거니 미술품 경매가 기록을 갱신해 나가고 있지만, 다른 한 편에선 수많은 재능 있는 작가들이 망각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레오나르도를 지나치게 쫓아 다니다가 정작 우리 속에 존재하는 레오나르도를 찾는데 소홀한 것은 아닌가 염려해 본다.

르네상스 미술의 작품가는 무한정 오르고 있다고 하지만, 나날이 스타 위주로 편중되고 있는 오늘날의 국내외 미술시장에서 정작 르네상스의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신은 실종된 지 오래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나 뿐만은 아닐 것이리라. 관련링크 : 르네상스 명작 더 보기   

 

르네상스 화폐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는 금, 은, 동으로 만든 동전들이 사용되었는데 은화와 동화는 지역에서 사용된 반면 금화는 국가 간의 국제무역이나 기타 중요한 거래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당시 이탈리아의 여러 국가 중 금화를 제조한 국가는 피렌체와 베네치아, 제노바 세 국가뿐이었는데 모두 국제 무역에 가담한 국가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피렌체의 금화단위는 피오리노(fiorino; 영어 florin)였고, 베네치아의 금화 단위는 두카토(ducato; 영어 ducat), 제노바는의 금화단위는 제노비노(genovino)였다.

대체로 세 국가의 금화는 모두 3.5g정도였지만 순도가 달랐기 때문에 1대 1로 거래되지 않았다.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금화는 순금에 가까웠지만 피렌체의 경우 18K(순금 75%)로 알려져 있다.

피렌체와 제노바는 1252년부터 금화를 주조하기 시작하였고 베네치아의 금화 두카토는 1284년에 처음 만들어진다.

금화가 등장하는 13세기 후반을 유럽에서 국제무역의 발전이 가속화되는 시기로 볼 수 있다.

   글 양정무 /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졸업, 런던대 유니버시티 컬리지 박사. 미술을 좋아하고 역사를 좋아하기 때문에 두 영역이 결합된 미술사 공부를 천직으로 생각한다.

르네상스 미술을 시작으로 서양의 시각문화를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하는 글을 구상하고 있다.

<출처 : WikipediA> ]미술계에서 셰익스피어를 꼽으라면 단연 천재 예술가이자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파블로 피카소가 후보에 오를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 리자》와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가장 비싼 그림으로 여긴다.

왜냐하면 이 두 그림은 기본적으로 거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국가가 소장한 그림도 개인이 소장한 그림처럼 거래될 수가 있다.

하지만 《게르니카》는 피카소의 유언에 따라 스페인 국민들에게 영원히 귀속되었고, 루브르 박물관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 《모나 리자》의 거래 역시 상상 속에서나 가능하다.

  ?[ 모나리자(Mona Lisa). 1503?06

1517년경, 77 × 53 cm. <출처 : Wikipedia> ] ??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5000장이 넘는 23권의 노트와 수많은 드로잉화를 남겼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호기심이 풍부했던 그의 천재성은 물리학, 역학, 광학, 천문학, 지리학, 해부학, 기계공학, 토목공학, 식물학, 지질학 등 방대한 학문 분야를 섭렵했기 때문에 후세에 전해지는 그림 작품은 아쉽게도 많지 않다.

희대의 에피소드를 낳았던 《아름다운 왕녀》라는 작품이 다빈치의 지문이 찍힌 희귀작이라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잠정가격이 1,700억원대를 호가하고 있다.

《말과 기수(Horse and Rider)》라는 손바닥 크기의 드로잉 한 점이 145억원 정도에 팔렸고, 72쪽 분량의 작업 노트인 『레스터 사본(Codex Leicester)』이 1994년 3,080만달러(약 387억원)의 가격에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에게 매각되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모나 리자》의 '상상할 수 없는 가격을 상상'할 수 있다.

 [ 《 아름다운 왕녀 (The Beautiful Princess) 또는 라 벨라 프린치페사 (La Bella Principessa, 아름다운 공주) 》    판넬에 색분필과 펜, 잉크 등, 15세기말. <출처 : WikipediA> ] ⊙ 1998년 크리스티 경매 당시 '19세기 독일학파'라는 카탈로그 속에 포함됐던 이 작품은 1만 9,000달러에 뉴욕의 미술품 거래상인 케이트 갠즈에게 판매됐으며, 그는 2007년 동일한 가격에 미술 애호가인 피터 실버맨에게 다시 팔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탄소연대 측정과 적외선 분석 결과 1440

1650년에 제작된 것으로 확인되었고, 그림 상단에 찍힌 희미한 지문자국이 로마 바티칸 성당의 '성 예로니모'에 찍힌 다빈치의 것과 '매우 유사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옥스퍼드대학 예술사 교수인 마틴 캠프는 인물화 속 주인공을 밀라노 공작 루도비코 스포르자(1452

1508년)의 딸인 비앙카 스포르자로 밝혀내면서 작품명도 《아름다운 왕녀》로 바뀌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공개적으로 비공개적으로 미술시장에 출품되었던 작품들입니다.

다빈치의 작품 가격을 상상해 보길 바랍니다.

[ 다빈치.  《 살바토르 문디 (Salvator Mundi) 》  Oil on walnut, 45.4 cm × 65.6 cm. <출처 : Bloomberg> ]⊙ $ 127,500,000  |  2013년, 구입자는 드미트리 리볼로프레프(러시아의 기업인이자 AS 모나코 FC 구단주).    2000? ? ?????? ? ???????? ???? ????? ???? ?? ???? ??? ???? ??. ? ????? ??(???)?? ??? ???? ???? ?...news.naver.com?? ?? ??? ????? ??? ? '??'?? ??? ??? ??? ?? ???(Yves Bouvier)? ?? ??? ??? ??? ??? ??? ???? ?? ????. ?? ??? ?? ...www.thebell.co.kr   [ 다빈치, 1481년경.  《 말과 기수 (Horse and Rider) 》    ?Silverpoint on prepared paper(염료를 칠한 종이에 은첨필화), 12 x 7.8 cm. <출처 : Christie's> ]⊙ � 8,143,750 ($ 11,474,544)  |  런던 크리스티 2001년 7월     ⊙ 2001년 7월 런던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다빈치의 손바닥만한 드로잉 한 점이 무려 814만 파운드(약 145억원)에 팔렸다.

《말과 기수》로 명명된 이 드로잉은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된 다 빈치의 미완성 대작 《동방박사 경배》를 위한 습작으로 제작된 것이다.

손바닥 크기의 드로잉 한 점이 145억원 정도에 팔릴 정도라면, 《모나리자》는 상상할 수 없는 가격이라고 추정하는 선에서 만족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 동방 박사의 경배(Adoration of the Magi). 1480-82년경, Oil and tempera on panel, 243 × 246 cm. <출처 : WikipediA> ] ⊙ 영어에 '감정가'란 단어를 최초로 도입한 미술 비평가 버나드 버렌슨(Bernhard Berenson)은 레오나르도의 《동방 방사의 경배》를 "진정으로 위대한 걸작으로 칭하면서 15세기에 만들이진 것 가운데 이보다 훌륭한 것은 없다"라고 덧붙였다.

   [ 동방 박사의 경배(Adoration of the Magi). 캔버스에 유채, 152 x 152 cm. <출처 : Angus Carroll> ]⊙ 캐나다 화가 다비드 장(David Jean, 1938년

)이 완성한 '동방 박사의 경배'.[ 《 레스터 사본 (Page of the Codex Leicester) 》. <출처 : WikipediA> ] ⊙ 수세기 동안 레스터가(家)의 소유였으나, 미국인 기업가 아먼드 해머(Armand Hammer)가 사들인 이후로 <코덱스 해머(Codex Hammer)>라고 알려졌다.

아먼드 해머(Armand Hammer)가 1980년에 520만 달러를 주고 구입하여 <해머 사본>으로 이름을 고쳤다가 빌 게이츠가 다시 《레스터 사본(Codex Leicester)》라는 원래 이름으로 되돌려놓았다.

실제로 레스터 사본에는 달이나 물, 화석 등 각종 자연물을 관찰하며 다빈치가 떠올린 아이디어나 천문학에 대한 메모가 적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예술적인 스케치부터 과학적인 창조물에 대한 아이디어까지 다양한 구상이 적혀 있어, '다빈치식 통섭'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노트라 할 수 있다.

다 빈치가 작성한 72쪽 분량의 이 메모 노트는 1994년 3,080만달러(약 387억원)의 가격에 빌 게이츠 회장에게 팔렸다.

빌 게이츠의 열정 덕분에 '코덱스 해머'는 역사상 가장 비싸게 팔린 고서적이란 기록을 쓰게 됐다.

     [ 다빈치, 1470년경.  《 Drapery Study Of A Kneeling Figure Facing Left 》  Workshop of Andrea del Verrocchio, traditionally attributed to Leonardo da Vinci?.Drawn with the brush in brown-grey wash, heightened with white, on linen prepared grey-green, laid down on paper, 288 by 181 mm.  <출처 : Sotheby's> ]⊙ GBP 1,762,500 ($ 3,020,573)  |  런던 소더비 2014년 7월    ⊙ 위의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스승이었던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아틀리에서 만들어진 작품으로서 다 빈치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그림이다.

 미술 시장에서 거래되었던 다 빈치의 후예들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오마주에 가까운 짝퉁 작품들인데도 불구하고가격은 착하지 못하군요. [ Follower of Leonardo Da Vinci, probably before 1750.   ?《 Portrait of a Woman, called "La Belle Ferronni�re" 》    ?캔버스에 유채, 55 by 43.5 cm.  <출처 : Sotheby's> ]⊙ $ 1,538,500  |  뉴욕 소더비 2010년 1월     [ Follower of Leonardo da Vinci, 16th Century.   ?《 'La Columbine' : Portrait of a woman as Flora, half-length, in a white, embroidered dress with a ruby brooch and a blue wrap, holding an aquilegia in her left hand, with jasmine and anemones on her lap, fern and kenilworth ivy climbing a wall beyond 》    ?판넬에 유채, 68 x 50.8 cm. <출처 : Christie's> ]⊙ � 937,250 ($ 1,468,671)  |  런던 크리스티 2012년 7월[ Circle of Leonardo da Vinci.  《 The Madonna and Child with the Infant Saint John the Baptist 》    ?Oil and gold on panel, 71.8 x 50.5 cm. <출처 : Christie's> ]⊙ $ 497,000  |  뉴욕 크리스티 2014년 1월 [ Circle of Leonardo da Vinci.  《 Caricature of the head of an old man 》    ?Pen and brown ink, 11 x 8 cm. <출처 : Christie's> ]⊙ $ 317,000  |  뉴욕 크리스티 2015년 1월[ After Leonardo Da Vinci.  《 The Fight for the Standard from the Battle of Anghiari 》    ?캔버스에 유채, 72.8 by 84 cm.  <출처 : Sotheby's> ]⊙ $ 257,000  |  뉴욕 소더비 2014년 1월[ After Leonardo da Vinci.  《 The Madonna of the Yarnwinder 》    ?패널에 유채, 62.2 x 48.6 cm. <출처 : Christie's> ]⊙ $ 152,500  |  뉴욕 크리스티 2009년 1월[ School of Leonardo da Vinci, 16th Century.  《 Portrait of a Lady 》    ?패널에 유채, 74.5 x 48 cm. <출처 : Dorotheum> ]⊙ $ 151,500  |  뉴욕 도로세움 2013년 4월[ After Leonardo da Vinci.  《 The Mona Lisa 》    ?캔버스에 유채, 85.7 x 63.8 cm. <출처 : Christie's> ]⊙ $ 122,500  |  뉴욕 크리스티 2009년 1월흥미로운 사실은 《모나 리자》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19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사정이 달랐다.

종래 《최후의 만찬》이나 《성모의 암굴》이 다 빈치의 대표 작품이었지만, 1911년 희대의 절도 사건으로 작품의 인지도가 크게 높아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 ; 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의 수도원 식당). 1495-1498년, 460 × 880 cm. <출처 : Wikipedia > ] ? [ 암굴 (또는 동굴 속)의 성모(The Virgin of the Rocks). 패널에 유채, 1483-1486년경, 199 × 122 cm. <출처 : WikipediA> ] ⊙ '대립의 긴장'은 다 빈치가 1483년 의뢰받은 작품 《암굴의 성모 마리아》의 주요 테마였다.

브램리는 "레오나르도는 한 가지 원칙을 가지고 이 작품을 구성했다.

바로 모순과 대립의 원칙이 그것이다.

어머니와 어린이들, 미소짓고 있는 천사로 이루어진 평화로운 그룹을 둘러싸고 있는 배경은 세상의 종말을 암시하는 듯 스산하다.

마른 바위 틈에서 식물이 한창 자라고 있다.

마치 원죄 없는 잉태가 십자가의 고통을 향한 길을 덮고 있다고 말하려는 것 같다.

기쁨의 원천이 되어야 할 것이 고난의 씨앗을 가져왔다"라고 하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스푸마토(Sfumato)라는 기법을 개발했다.

이 기법은 말 그대로 사람들에게 '안개처럼 사라지는' 느낌을 선사한다.

다빈치는 이 기법을 '뚜렷한 윤곽을 없애는' 방법이라고 정의했다.

위의 작품은 스푸마토 기법이 적용된 완벽한 사례로 평가된다.

     [ 암굴의 성모 (The Virgin of the Rocks). 패널에 유채, 1495-1508년경, 189.5 × 120 cm. <출처 : WikipediA> ] ⊙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1504년 밀라노 법정에서 소송을 벌인다.

이유는 바로 《암굴의 성모》 그림값 때문이었다.

베네치아 금화 100 두카토(ducato)의 값어치가 있는 그림을 구매자측에서 25 두카토 정도만 지불하겠다고 해서 소송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논쟁 끝에 그림값은 대략 50 두카토로 결정되었다.

1099년 설립된 유럽의 비밀 단체, 시온 수도회의 그랜드 마스터였다고 알려져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 그래서 그런지 다빈치의 작품들에는 팩션(Faction)의 전설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다빈치의 작품으로 간주되는 작품들입니다.

[ 그리스도의 세례(The Baptism of Christ). 베로키오 & 다 빈치, Oil and tempera on poplar panel, 1472-1475년경, 177 × 151 cm. <출처 : WikipediA> ] ⊙ 레오나르도가 직접 그렸다고 알려진 최초의 그림은 스승 베로키오가 그린 《그리스도의 세례》 중 좌측 하단에 위치한 천사와 풍경 일부이다.

조르지오 바사리는 『예술가들의 생애』에서, 베로키오가 레오나르도의 섬세하고 정교하며 신비로움을 지닌 솜씨를 보고는 '다시는 물감에 손대지 않겠노라'고 맹세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 수태고지 (Annunciation). 패널에 템페라와 유채, 1472-1475년경, 98 × 217 cm. <출처 : WikipediA> ] ⊙ 어슴프레한 배경과 세세한 식물 묘사, 반짝이는 곱슬머리는 거장 레오나르도의 초기 작품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 카네이션을 든 성모(The Madonna of the Carnation). 패널에 유채, 1473-1478년경, 62 × 47.5 cm. <출처 : WikipediA> ][ 지네브라 벤치의 초상(Portrait of Ginevra de' Benci). 목판에 유채, 1475-1478년경, 38.8 × 36.7 cm. <출처 : WikipediA> ] ⊙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초상화 가운데 가장 먼저 제작된 작품으로 피렌체의 귀족 출신 지네브라 데 벤치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그려졌다.

1967년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가 당시 최고가인 500만 달러에 구입하여 미국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다 빈치의 작품이 되었다.

반투명한 여인의 배경에 그려진 노간주나무가 여인의 이름을 연상시키지 않는가! 노간주나무는 이탈리아어로 '지네프로'이다.

   [ 지네브라 벤치의 초상의 뒷면(back side of portrait). 목판에 유채, 1475-1478년. <출처 : WikipediA> ] ⊙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

1519)는 약 15년의 간격을 두고 대표적인 여인의 반(半)흉상 초상화 세 점 이상을 그렸다.

《지네브라 벤치》, 《체칠리아 갈레라니》, 《모나리자》가 그것이다.

《지네브라 벤치》는 다 빈치의 유일한 양면 그림이다.

   [ 브누아의 성모(The Benois Madonna). 캔버스에 유채, 1478-80년경, 49.5 × 33 cm. <출처 : WikipediA> ]  [ 성 제롬(St. Jerome in the Wilderness). Tempera and oil on walnut panel, 1480년경, 103 × 75 cm. <출처 : WikipediA> ]  [ 성 제롬(St. Jerome in the Wilderness). 캔버스에 유채, 100 x 75 cm. <출처 : Angus Carroll> ]⊙ 캐나다 화가 다비드 장(David Jean, 1938년

)이 완성한 '성 제롬'. [ 리타의 성모 또는 젖먹이는 성모(Madonna Litta). Tempera on canvas, 1490년경, 42 × 33 cm. <출처 : WikipediA> ] [ 악사 또는 음악가의 초상(Portrait of a Musician). 판넬에 유채, 1490년경, 45 × 32 cm. <출처 : WikipediA> ]     [ 체칠리아 갈레라니의 초상 또는 흰 족제비를 안고 있는 여인(Cecilia Gallerani or Lady with an Ermine). 목판에 유채, 1483-1490년경, 54 × 39 cm. <출처 : WikipediA> ] ⊙ 이 작품은 인체의 역학 관계에 대한 레오나르도의 연구를 통해 발달한 소위 '어깨 초상화'의 전형이다.

다빈치의 전폭적인 후원자였던 로도비코 스포르차의 정부로 아름답고 교양 있던 체칠리아 갈레라니를 그린 것이다.

     [ 라 벨 페로니에르(La belle ferronni�re). 목재에 유채, 1497년경, 62 × 44 cm. <출처 : WikipediA> ] ⊙ 레오나르도는 밀라노 시대부터 초상화에 관련한 이론을 기록한 『회화의 책』에서 '눈은 영혼의 창이다'라고 말했다.

머리 장식을 한 아름다운 여인이란 뜻을 지닌 이 초상화는 회화의 시학적 실험에서 눈에서 광원(光源)을 찾고, 영혼을 신성(神性)의 그림자로 표현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

     [ 스포르차 성당의 천장 벽화. Tempera on plaster, 1496-98년, 267 × 267 m. <출처 : WikipediA> ] [ 성 안나와 성모자(The Virgin and Child with St Anne and St John the Baptist). Cartoon for a painting, drawing on paper, 1499-50년경, 141.5 x 104.6 cm. <출처 : WikipediA> ] [ 성 안나와 성모자. 캔버스에 유채, 152.4 x 101.6 cm. <출처 : Angus Carroll> ]⊙ 캐나다 화가 다비드 장(David Jean, 1938년

)이 완성한 '성 안나와 성모자'.[ '이사벨라 데스테'의 초상(Portrait of Isabella d'Este). Black and red chalk, yellow pastel chalk on paper, 1500년경, 63 x 46 cm. <출처 : WikipediA> ]?[ 성모와 실패(Madonna of the Yarnwinder ; The Lansdowne Madonna). 패널에 유채, 1501년경, 50.2 × 36.4 cm. <출처 : WikipediA> ]    [ 성모와 실패 (Madonna of the Yarnwinder ; The Buccleuch Madonna).    호두나무 패널에 유채, 1501년경, 48.9 × 36.8 cm. <출처 : WikipediA> ]    [ 성모와 성 안나 또는 아기 예수와 어린 양(The Virgin and Child with Saint Anne).   목재에 유채, 1508년경, 168 × 112 cm. <출처 : WikipediA> ]   [ 하녀의 초상(라 스카필라타) ; Head of a Woman(also known as La Scapigliata).   Earth, amber and white lead on wood panel, 1508년경, 24.7 × 21 cm. <출처 : WikipediA> ]   [ 세례자 요한(St. John the Baptist). Oil on walnut wood, 1513?1516년경, 69 × 57 cm. <출처 : WikipediA> ]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 중에서 애석하게도 소실된 작품들입니다.

[ 레다와 백조(Leda and the Swan). 패널에 유채, 1510?1515년경, 112 × 86 cm. <소장 : 보르게세 미술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레다와 백조'는 1692년에 자취를 감췄다.

로마 보르게세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은 오랫동안 그의 작품으로 여겨졌으나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한 붉은 데생을 베껴 그린 것이었다.

그런데 루브르의 붉은 데생 역시 진본이 아닌 모작이다.

[ 앙기아리 전투(The Battle of Anghiari). Black chalk, pen in brown ink, brush in brown and gray ink, gray wash, heightened in white and gray-blue, 1603년경, 45.3 × 63.6 cm. <출처 : WikipediA> ] 르네상스 시대의 최고 명작 중 하나라고 여겨지는 레오나르도의 초대형 벽화 앙기아리 전투(1504-1505)를 묘사한 루벤스의 작품 앙기아라 전투입니다.

[ 앙기아리 전투. 캔버스에 유채, 182.8 x 152.4 cm. <출처 : Angus Carroll> ]⊙ 캐나다 화가 다비드 장(David Jean, 1938년

)이 완성한 '앙기아리 전투'. 1440년 토스카나의 앙기아리 마을은 피렌체와 밀라노 간의 전쟁터였다.

치열한 전투를 통해 승리를 거둔 피렌체의 영광을 기념하기 위해 다 빈치가 베키오 궁전 회의실 벽에 그리던 이 그림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100년이나 지나서 루벤스가 남긴 스케치만이 그 그림의 내용을 짐작하게 할 뿐입니다.

미켈란젤로도, 다 빈치도 중간에 그만둔 이 대형 벽화작업은 회의실에 화재가 난 이후에 조르지오 바사리에 의해서 새로운 프레스코 벽화가 그려지며 1560년경 자취를 감추게 됐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 중에서 최근에 다빈치의 작품 진위 여부에 대해서 논란이 있거나아직까지 그의 작품 또는 공동 작품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그림들입니다.

[ Tobias and the Angel. Egg tempera on poplar wood, 1470-1475년경, 83.6 × 66 cm. <출처 : WikipediA> ]  [ Madonna and Child with a Pomegranate (Dreyfus Madonna). 패널에 유채, 1475-1480년경, 16.5 × 13.4 cm. <출처 : WikipediA> ]  [ 바커스 (Bacchus). 호두나무에 유채, 1511-1515년, 177 × 115 cm. <출처 : WikipediA> ] [ The Holy Infants Embracing. 나무에 유채, 1486년경. <출처 : WikipediA> ][ Mary Magdalene. 나무에 유채, 1515년경. <출처 : WikipediA> ][ Virgin of the Rocks Cheramy. Oil on wood panel, 1495-97년경, 154.5 × 122 cm. <출처 : WikipediA> ][ Christ Carrying the Cross. Oil on poplar, 1500년경. <출처 : WikipediA> ][ 말과 기수(Horse and Rider). Bronze, 1508년경, 12-inch. <출처 : WikipediA> ][ The Isleworth Mona Lisa. 캔버스에 유채, 1503-19년경, 84.5 x 64.5 cm. <출처 : WikipediA> ] <출처 : WikipediA> ]미술계에서 셰익스피어를 꼽으라면 단연 천재 예술가이자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파블로 피카소가 후보에 오를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 리자》와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가장 비싼 그림으로 여긴다.

왜냐하면 이 두 그림은 기본적으로 거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국가가 소장한 그림도 개인이 소장한 그림처럼 거래될 수가 있다.

하지만 《게르니카》는 피카소의 유언에 따라 스페인 국민들에게 영원히 귀속되었고, 루브르 박물관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 《모나 리자》의 거래 역시 상상 속에서나 가능하다.

  ?[ 모나리자(Mona Lisa). 1503?06

1517년경, 77 × 53 cm. <출처 : Wikipedia> ] ??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5000장이 넘는 23권의 노트와 수많은 드로잉화를 남겼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호기심이 풍부했던 그의 천재성은 물리학, 역학, 광학, 천문학, 지리학, 해부학, 기계공학, 토목공학, 식물학, 지질학 등 방대한 학문 분야를 섭렵했기 때문에 후세에 전해지는 그림 작품은 아쉽게도 많지 않다.

희대의 에피소드를 낳았던 《아름다운 왕녀》라는 작품이 다빈치의 지문이 찍힌 희귀작이라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잠정가격이 1,700억원대를 호가하고 있다.

《말과 기수(Horse and Rider)》라는 손바닥 크기의 드로잉 한 점이 145억원 정도에 팔렸고, 72쪽 분량의 작업 노트인 『레스터 사본(Codex Leicester)』이 1994년 3,080만달러(약 387억원)의 가격에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에게 매각되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모나 리자》의 '상상할 수 없는 가격을 상상'할 수 있다.

 [ 《 아름다운 왕녀 (The Beautiful Princess) 또는 라 벨라 프린치페사 (La Bella Principessa, 아름다운 공주) 》    판넬에 색분필과 펜, 잉크 등, 15세기말. <출처 : WikipediA> ] ⊙ 1998년 크리스티 경매 당시 '19세기 독일학파'라는 카탈로그 속에 포함됐던 이 작품은 1만 9,000달러에 뉴욕의 미술품 거래상인 케이트 갠즈에게 판매됐으며, 그는 2007년 동일한 가격에 미술 애호가인 피터 실버맨에게 다시 팔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탄소연대 측정과 적외선 분석 결과 1440

1650년에 제작된 것으로 확인되었고, 그림 상단에 찍힌 희미한 지문자국이 로마 바티칸 성당의 '성 예로니모'에 찍힌 다빈치의 것과 '매우 유사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옥스퍼드대학 예술사 교수인 마틴 캠프는 인물화 속 주인공을 밀라노 공작 루도비코 스포르자(1452

1508년)의 딸인 비앙카 스포르자로 밝혀내면서 작품명도 《아름다운 왕녀》로 바뀌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공개적으로 비공개적으로 미술시장에 출품되었던 작품들입니다.

다빈치의 작품 가격을 상상해 보길 바랍니다.

[ 다빈치.  《 살바토르 문디 (Salvator Mundi) 》  Oil on walnut, 45.4 cm × 65.6 cm. <출처 : Bloomberg> ]⊙ $ 127,500,000  |  2013년, 구입자는 드미트리 리볼로프레프(러시아의 기업인이자 AS 모나코 FC 구단주).    2000? ? ?????? ? ???????? ???? ????? ???? ?? ???? ??? ???? ??. ? ????? ??(???)?? ??? ???? ???? ?...news.naver.com?? ?? ??? ????? ??? ? '??'?? ??? ??? ??? ?? ???(Yves Bouvier)? ?? ??? ??? ??? ??? ??? ???? ?? ????. ?? ??? ?? ...www.thebell.co.kr   [ 다빈치, 1481년경.  《 말과 기수 (Horse and Rider) 》    ?Silverpoint on prepared paper(염료를 칠한 종이에 은첨필화), 12 x 7.8 cm. <출처 : Christie's> ]⊙ � 8,143,750 ($ 11,474,544)  |  런던 크리스티 2001년 7월     ⊙ 2001년 7월 런던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다빈치의 손바닥만한 드로잉 한 점이 무려 814만 파운드(약 145억원)에 팔렸다.

《말과 기수》로 명명된 이 드로잉은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된 다 빈치의 미완성 대작 《동방박사 경배》를 위한 습작으로 제작된 것이다.

손바닥 크기의 드로잉 한 점이 145억원 정도에 팔릴 정도라면, 《모나리자》는 상상할 수 없는 가격이라고 추정하는 선에서 만족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 동방 박사의 경배(Adoration of the Magi). 1480-82년경, Oil and tempera on panel, 243 × 246 cm. <출처 : WikipediA> ] ⊙ 영어에 '감정가'란 단어를 최초로 도입한 미술 비평가 버나드 버렌슨(Bernhard Berenson)은 레오나르도의 《동방 방사의 경배》를 "진정으로 위대한 걸작으로 칭하면서 15세기에 만들이진 것 가운데 이보다 훌륭한 것은 없다"라고 덧붙였다.

   [ 동방 박사의 경배(Adoration of the Magi). 캔버스에 유채, 152 x 152 cm. <출처 : Angus Carroll> ]⊙ 캐나다 화가 다비드 장(David Jean, 1938년

)이 완성한 '동방 박사의 경배'.[ 《 레스터 사본 (Page of the Codex Leicester) 》. <출처 : WikipediA> ] ⊙ 수세기 동안 레스터가(家)의 소유였으나, 미국인 기업가 아먼드 해머(Armand Hammer)가 사들인 이후로 <코덱스 해머(Codex Hammer)>라고 알려졌다.

아먼드 해머(Armand Hammer)가 1980년에 520만 달러를 주고 구입하여 <해머 사본>으로 이름을 고쳤다가 빌 게이츠가 다시 《레스터 사본(Codex Leicester)》라는 원래 이름으로 되돌려놓았다.

실제로 레스터 사본에는 달이나 물, 화석 등 각종 자연물을 관찰하며 다빈치가 떠올린 아이디어나 천문학에 대한 메모가 적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예술적인 스케치부터 과학적인 창조물에 대한 아이디어까지 다양한 구상이 적혀 있어, '다빈치식 통섭'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노트라 할 수 있다.

다 빈치가 작성한 72쪽 분량의 이 메모 노트는 1994년 3,080만달러(약 387억원)의 가격에 빌 게이츠 회장에게 팔렸다.

빌 게이츠의 열정 덕분에 '코덱스 해머'는 역사상 가장 비싸게 팔린 고서적이란 기록을 쓰게 됐다.

     [ 다빈치, 1470년경.  《 Drapery Study Of A Kneeling Figure Facing Left 》  Workshop of Andrea del Verrocchio, traditionally attributed to Leonardo da Vinci?.Drawn with the brush in brown-grey wash, heightened with white, on linen prepared grey-green, laid down on paper, 288 by 181 mm.  <출처 : Sotheby's> ]⊙ GBP 1,762,500 ($ 3,020,573)  |  런던 소더비 2014년 7월    ⊙ 위의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스승이었던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아틀리에서 만들어진 작품으로서 다 빈치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그림이다.

 미술 시장에서 거래되었던 다 빈치의 후예들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오마주에 가까운 짝퉁 작품들인데도 불구하고가격은 착하지 못하군요. [ Follower of Leonardo Da Vinci, probably before 1750.   ?《 Portrait of a Woman, called "La Belle Ferronni�re" 》    ?캔버스에 유채, 55 by 43.5 cm.  <출처 : Sotheby's> ]⊙ $ 1,538,500  |  뉴욕 소더비 2010년 1월     [ Follower of Leonardo da Vinci, 16th Century.   ?《 'La Columbine' : Portrait of a woman as Flora, half-length, in a white, embroidered dress with a ruby brooch and a blue wrap, holding an aquilegia in her left hand, with jasmine and anemones on her lap, fern and kenilworth ivy climbing a wall beyond 》    ?판넬에 유채, 68 x 50.8 cm. <출처 : Christie's> ]⊙ � 937,250 ($ 1,468,671)  |  런던 크리스티 2012년 7월[ Circle of Leonardo da Vinci.  《 The Madonna and Child with the Infant Saint John the Baptist 》    ?Oil and gold on panel, 71.8 x 50.5 cm. <출처 : Christie's> ]⊙ $ 497,000  |  뉴욕 크리스티 2014년 1월 [ Circle of Leonardo da Vinci.  《 Caricature of the head of an old man 》    ?Pen and brown ink, 11 x 8 cm. <출처 : Christie's> ]⊙ $ 317,000  |  뉴욕 크리스티 2015년 1월[ After Leonardo Da Vinci.  《 The Fight for the Standard from the Battle of Anghiari 》    ?캔버스에 유채, 72.8 by 84 cm.  <출처 : Sotheby's> ]⊙ $ 257,000  |  뉴욕 소더비 2014년 1월[ After Leonardo da Vinci.  《 The Madonna of the Yarnwinder 》    ?패널에 유채, 62.2 x 48.6 cm. <출처 : Christie's> ]⊙ $ 152,500  |  뉴욕 크리스티 2009년 1월[ School of Leonardo da Vinci, 16th Century.  《 Portrait of a Lady 》    ?패널에 유채, 74.5 x 48 cm. <출처 : Dorotheum> ]⊙ $ 151,500  |  뉴욕 도로세움 2013년 4월[ After Leonardo da Vinci.  《 The Mona Lisa 》    ?캔버스에 유채, 85.7 x 63.8 cm. <출처 : Christie's> ]⊙ $ 122,500  |  뉴욕 크리스티 2009년 1월흥미로운 사실은 《모나 리자》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19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사정이 달랐다.

종래 《최후의 만찬》이나 《성모의 암굴》이 다 빈치의 대표 작품이었지만, 1911년 희대의 절도 사건으로 작품의 인지도가 크게 높아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 ; 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의 수도원 식당). 1495-1498년, 460 × 880 cm. <출처 : Wikipedia > ] ? [ 암굴 (또는 동굴 속)의 성모(The Virgin of the Rocks). 패널에 유채, 1483-1486년경, 199 × 122 cm. <출처 : WikipediA> ] ⊙ '대립의 긴장'은 다 빈치가 1483년 의뢰받은 작품 《암굴의 성모 마리아》의 주요 테마였다.

브램리는 "레오나르도는 한 가지 원칙을 가지고 이 작품을 구성했다.

바로 모순과 대립의 원칙이 그것이다.

어머니와 어린이들, 미소짓고 있는 천사로 이루어진 평화로운 그룹을 둘러싸고 있는 배경은 세상의 종말을 암시하는 듯 스산하다.

마른 바위 틈에서 식물이 한창 자라고 있다.

마치 원죄 없는 잉태가 십자가의 고통을 향한 길을 덮고 있다고 말하려는 것 같다.

기쁨의 원천이 되어야 할 것이 고난의 씨앗을 가져왔다"라고 하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스푸마토(Sfumato)라는 기법을 개발했다.

이 기법은 말 그대로 사람들에게 '안개처럼 사라지는' 느낌을 선사한다.

다빈치는 이 기법을 '뚜렷한 윤곽을 없애는' 방법이라고 정의했다.

위의 작품은 스푸마토 기법이 적용된 완벽한 사례로 평가된다.

     [ 암굴의 성모 (The Virgin of the Rocks). 패널에 유채, 1495-1508년경, 189.5 × 120 cm. <출처 : WikipediA> ] ⊙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1504년 밀라노 법정에서 소송을 벌인다.

이유는 바로 《암굴의 성모》 그림값 때문이었다.

베네치아 금화 100 두카토(ducato)의 값어치가 있는 그림을 구매자측에서 25 두카토 정도만 지불하겠다고 해서 소송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논쟁 끝에 그림값은 대략 50 두카토로 결정되었다.

1099년 설립된 유럽의 비밀 단체, 시온 수도회의 그랜드 마스터였다고 알려져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 그래서 그런지 다빈치의 작품들에는 팩션(Faction)의 전설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다빈치의 작품으로 간주되는 작품들입니다.

[ 그리스도의 세례(The Baptism of Christ). 베로키오 & 다 빈치, Oil and tempera on poplar panel, 1472-1475년경, 177 × 151 cm. <출처 : WikipediA> ] ⊙ 레오나르도가 직접 그렸다고 알려진 최초의 그림은 스승 베로키오가 그린 《그리스도의 세례》 중 좌측 하단에 위치한 천사와 풍경 일부이다.

조르지오 바사리는 『예술가들의 생애』에서, 베로키오가 레오나르도의 섬세하고 정교하며 신비로움을 지닌 솜씨를 보고는 '다시는 물감에 손대지 않겠노라'고 맹세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 수태고지 (Annunciation). 패널에 템페라와 유채, 1472-1475년경, 98 × 217 cm. <출처 : WikipediA> ] ⊙ 어슴프레한 배경과 세세한 식물 묘사, 반짝이는 곱슬머리는 거장 레오나르도의 초기 작품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 카네이션을 든 성모(The Madonna of the Carnation). 패널에 유채, 1473-1478년경, 62 × 47.5 cm. <출처 : WikipediA> ][ 지네브라 벤치의 초상(Portrait of Ginevra de' Benci). 목판에 유채, 1475-1478년경, 38.8 × 36.7 cm. <출처 : WikipediA> ] ⊙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초상화 가운데 가장 먼저 제작된 작품으로 피렌체의 귀족 출신 지네브라 데 벤치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그려졌다.

1967년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가 당시 최고가인 500만 달러에 구입하여 미국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다 빈치의 작품이 되었다.

반투명한 여인의 배경에 그려진 노간주나무가 여인의 이름을 연상시키지 않는가! 노간주나무는 이탈리아어로 '지네프로'이다.

   [ 지네브라 벤치의 초상의 뒷면(back side of portrait). 목판에 유채, 1475-1478년. <출처 : WikipediA> ] ⊙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

1519)는 약 15년의 간격을 두고 대표적인 여인의 반(半)흉상 초상화 세 점 이상을 그렸다.

《지네브라 벤치》, 《체칠리아 갈레라니》, 《모나리자》가 그것이다.

《지네브라 벤치》는 다 빈치의 유일한 양면 그림이다.

   [ 브누아의 성모(The Benois Madonna). 캔버스에 유채, 1478-80년경, 49.5 × 33 cm. <출처 : WikipediA> ]  [ 성 제롬(St. Jerome in the Wilderness). Tempera and oil on walnut panel, 1480년경, 103 × 75 cm. <출처 : WikipediA> ]  [ 성 제롬(St. Jerome in the Wilderness). 캔버스에 유채, 100 x 75 cm. <출처 : Angus Carroll> ]⊙ 캐나다 화가 다비드 장(David Jean, 1938년

)이 완성한 '성 제롬'. [ 리타의 성모 또는 젖먹이는 성모(Madonna Litta). Tempera on canvas, 1490년경, 42 × 33 cm. <출처 : WikipediA> ] [ 악사 또는 음악가의 초상(Portrait of a Musician). 판넬에 유채, 1490년경, 45 × 32 cm. <출처 : WikipediA> ]     [ 체칠리아 갈레라니의 초상 또는 흰 족제비를 안고 있는 여인(Cecilia Gallerani or Lady with an Ermine). 목판에 유채, 1483-1490년경, 54 × 39 cm. <출처 : WikipediA> ] ⊙ 이 작품은 인체의 역학 관계에 대한 레오나르도의 연구를 통해 발달한 소위 '어깨 초상화'의 전형이다.

다빈치의 전폭적인 후원자였던 로도비코 스포르차의 정부로 아름답고 교양 있던 체칠리아 갈레라니를 그린 것이다.

     [ 라 벨 페로니에르(La belle ferronni�re). 목재에 유채, 1497년경, 62 × 44 cm. <출처 : WikipediA> ] ⊙ 레오나르도는 밀라노 시대부터 초상화에 관련한 이론을 기록한 『회화의 책』에서 '눈은 영혼의 창이다'라고 말했다.

머리 장식을 한 아름다운 여인이란 뜻을 지닌 이 초상화는 회화의 시학적 실험에서 눈에서 광원(光源)을 찾고, 영혼을 신성(神性)의 그림자로 표현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

     [ 스포르차 성당의 천장 벽화. Tempera on plaster, 1496-98년, 267 × 267 m. <출처 : WikipediA> ] [ 성 안나와 성모자(The Virgin and Child with St Anne and St John the Baptist). Cartoon for a painting, drawing on paper, 1499-50년경, 141.5 x 104.6 cm. <출처 : WikipediA> ] [ 성 안나와 성모자. 캔버스에 유채, 152.4 x 101.6 cm. <출처 : Angus Carroll> ]⊙ 캐나다 화가 다비드 장(David Jean, 1938년

)이 완성한 '성 안나와 성모자'.[ '이사벨라 데스테'의 초상(Portrait of Isabella d'Este). Black and red chalk, yellow pastel chalk on paper, 1500년경, 63 x 46 cm. <출처 : WikipediA> ]?[ 성모와 실패(Madonna of the Yarnwinder ; The Lansdowne Madonna). 패널에 유채, 1501년경, 50.2 × 36.4 cm. <출처 : WikipediA> ]    [ 성모와 실패 (Madonna of the Yarnwinder ; The Buccleuch Madonna).    호두나무 패널에 유채, 1501년경, 48.9 × 36.8 cm. <출처 : WikipediA> ]    [ 성모와 성 안나 또는 아기 예수와 어린 양(The Virgin and Child with Saint Anne).   목재에 유채, 1508년경, 168 × 112 cm. <출처 : WikipediA> ]   [ 하녀의 초상(라 스카필라타) ; Head of a Woman(also known as La Scapigliata).   Earth, amber and white lead on wood panel, 1508년경, 24.7 × 21 cm. <출처 : WikipediA> ]   [ 세례자 요한(St. John the Baptist). Oil on walnut wood, 1513?1516년경, 69 × 57 cm. <출처 : WikipediA> ]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 중에서 애석하게도 소실된 작품들입니다.

[ 레다와 백조(Leda and the Swan). 패널에 유채, 1510?1515년경, 112 × 86 cm. <소장 : 보르게세 미술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레다와 백조'는 1692년에 자취를 감췄다.

로마 보르게세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은 오랫동안 그의 작품으로 여겨졌으나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한 붉은 데생을 베껴 그린 것이었다.

그런데 루브르의 붉은 데생 역시 진본이 아닌 모작이다.

[ 앙기아리 전투(The Battle of Anghiari). Black chalk, pen in brown ink, brush in brown and gray ink, gray wash, heightened in white and gray-blue, 1603년경, 45.3 × 63.6 cm. <출처 : WikipediA> ] 르네상스 시대의 최고 명작 중 하나라고 여겨지는 레오나르도의 초대형 벽화 앙기아리 전투(1504-1505)를 묘사한 루벤스의 작품 앙기아라 전투입니다.

[ 앙기아리 전투. 캔버스에 유채, 182.8 x 152.4 cm. <출처 : Angus Carroll> ]⊙ 캐나다 화가 다비드 장(David Jean, 1938년

)이 완성한 '앙기아리 전투'. 1440년 토스카나의 앙기아리 마을은 피렌체와 밀라노 간의 전쟁터였다.

치열한 전투를 통해 승리를 거둔 피렌체의 영광을 기념하기 위해 다 빈치가 베키오 궁전 회의실 벽에 그리던 이 그림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100년이나 지나서 루벤스가 남긴 스케치만이 그 그림의 내용을 짐작하게 할 뿐입니다.

미켈란젤로도, 다 빈치도 중간에 그만둔 이 대형 벽화작업은 회의실에 화재가 난 이후에 조르지오 바사리에 의해서 새로운 프레스코 벽화가 그려지며 1560년경 자취를 감추게 됐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 중에서 최근에 다빈치의 작품 진위 여부에 대해서 논란이 있거나아직까지 그의 작품 또는 공동 작품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그림들입니다.

[ Tobias and the Angel. Egg tempera on poplar wood, 1470-1475년경, 83.6 × 66 cm. <출처 : WikipediA> ]  [ Madonna and Child with a Pomegranate (Dreyfus Madonna). 패널에 유채, 1475-1480년경, 16.5 × 13.4 cm. <출처 : WikipediA> ]  [ 바커스 (Bacchus). 호두나무에 유채, 1511-1515년, 177 × 115 cm. <출처 : WikipediA> ] [ The Holy Infants Embracing. 나무에 유채, 1486년경. <출처 : WikipediA> ][ Mary Magdalene. 나무에 유채, 1515년경. <출처 : WikipediA> ][ Virgin of the Rocks Cheramy. Oil on wood panel, 1495-97년경, 154.5 × 122 cm. <출처 : WikipediA> ][ Christ Carrying the Cross. Oil on poplar, 1500년경. <출처 : WikipediA> ][ 말과 기수(Horse and Rider). Bronze, 1508년경, 12-inch. <출처 : WikipediA> ][ The Isleworth Mona Lisa. 캔버스에 유채, 1503-19년경, 84.5 x 64.5 cm. <출처 : Wikiped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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