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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친서



고려는 다시 자주국가로 나아가야 함" 원래 변발을 하고 호복을 입고몽골말을 썼던 공민왕이었지만,곧 이런 명령도 내리게 된다.

  공민왕 "나라꼴이 이게 뭐야?앞으로 변발하고 호복입은 넘들은 싹 다 잡아들여!"그리고 병신정변(1356년)으로 부원배들의 우두머리 격인기황후의 오빠 기철마저제거하기에 이른다.

또 그 여세를 몰아쌍성총관부를 수복했다.

 거칠 것 없는 공민왕에게두려움이란 없었다.

 공민왕 "기황후 나오라고 해. 같은 고려인끼리 이럴 수 있어?"당시 기황후는 원나라 태자의 생모로서황제 순제의 존재가 미비한 가운데 실질적으로 원나라를 통치하고 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런 기황후도 두렵지 않았던 공민왕이었다.

 그랬는데, 호사다마라고 했던가!갑작스러운 홍건적의 침입으로 공민왕의 좋은 시절은 그렇게 끝이 나고 만다.

● 홍건적의 침입과 공민왕의 폐위당시 홍건적 도적들의 침입이 얼마나 드샜던지공민왕은 개경을 버리고 피난을 가야 할 정도로 다급했다.

상황이 그러했으니 공민왕도 어쩔 수 없었다.

 공민왕 "개혁도 좋고, 자주국가도 좋지만그보다 일단 살고 봐야겠어." 신하 "전하, 어쩔 수 없사옵니다.

다시 원나라와 손을 잡아 홍건적 무리들을 몰아내셔야.." 공민왕 "쳇, 어쩔 수 없구나."그래서 공민왕은 다시 원나라에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는데.. 고려사신 "그때는 뭔가 오해가 좀 있었습니다.

" 기황후 "아니, 기어오를 때는 언제고아쉬우니깐 찾아오냐?" 고려사신 "다 같은 고려 핏줄 아닙니까? 좋은 게 좋은거라고.. 우리가 남도 아니고"하지만 기황후는 그런 잔꾀에 넘어가지 않았다.

 기황후"내 오빠가 공민왕 그 넘 때문에 죽었는데오히려 원수를 갚아도 시원치 않다.

 썩 꺼지거라!"화를 풀러 갔다가, 오히려 화만 돋운 격이 되었다.

이참에 아예 공민왕을 고려에서 몰아내려고 작정을 한다.

 신하 "공민왕은 구제불능이옵니다.

 이참에 고려왕을 확 갈아치우시죠." 기황후"누가 좋은가?" 신하"충선왕의 셋째 아들 덕흥군이 제격인줄 압니다.

" 기황후"그런가! 그럼 오늘부로 덕흥군 네가 고려왕이다.

" 덕흥군 "어익후, 망극하옵니다.

"● 공민왕의 사신단과 고려 임시정부그것은 일방적인 결정이었으니소식을 접한 공민왕은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공민왕 "아놔, 이를 어쩐담. 얼른 가서 기황후 좀 달래드려라."때문에 공민왕은 재빨리 사신단을 보내게 되는데1364년 봄의 일이었다.

  "여기 사신단에는 문익점도 있었음."하지만 기황후의 마음은 이미 요단강을 건넜고 기황후"공민왕은 이미 법적으로 폐위된 왕이다.

그러니 너희들의 새 임금은 덕흥군이다.

"급기야 대도(북경)에서 덕흥군을 왕으로 하는임시정부를 만들기까지 했다.

 ▲ 원나라 대도그러자 대도에 있던 고려 세력들은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고려인 1 "어쩜 좋단 말이가! 공민왕을 선택할까, 덕흥군을 선택할까?" 고려인 2 "공민왕이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원나라가 실드 쳐주는 덕흥군한테는 안되지 않겠음?"이런 갈등 속에는 원나라로 파견된 고려 사신들도 포함되어 있었으니비록 공민왕의 친서를 전하기 위해 원나라로 왔지만임시정부가 차려진 마당에누구 편에 설 것인지는 반드시 정해야만 했다.

 그렇게 갈팡질팡 망설이는 가운데기황후와 남편 순제는 사신단들을 대상으로회유도 해보고 협박도 가하면서, 열심히 설득했다.

 기황후"대세를 따라야지. 공민왕이 얼마나 간다고." 고려인 "고향 땅 처자식들이 눈에 밟혀서.." 순제"국가의 운명이 개인 사생활보다 중요하단 말인가!"사신들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당시의 기록에서 잘 나와 있다.

공민왕에 줄을 섰던홍순, 이자송, 김유, 황대두는 고려로 돌아갔다.

반면에 덕흥군에 줄을 섰던김첨수, 유인우, 강육연, 황순, 안복종, 문익점, 기숙윤 등은 대도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즉 목화씨로 알려진 문익점은당시 고려의 입장에서 보면 배신자였다.

 문익점 "에헴!"● 덕흥군의 원나라 vs 고려군이렇게 노선이 정해지고 나니이제는 기황후는 덕흥군을 앞세워서공민왕을 칠 준비를 하게 한다.

 하지만 당시 원나라의 사정은 몹시도 궁박했다.

홍건적과 싸우느라 빼낼 병력도 시원치 않았기 때문에요동병사 1만 명을 겨우 긁어모아서압록강을 건너 고려로 쳐들어가게 됐으니 말이다.

 이때 덕흥군과 맞선 고려 장수들은최영과 이성계였다.

 최영 "어? 이게 누구신가! 원나라 오랑캐 앞잡이 아니신가?" 덕흥군"네 이놈. 너희들의 새로운 임금이시다.

어서 말에서 내려서 인사를 하지 못할까!" 이성계"어디서 개가 짖나?"이렇게 붙었는데, 덕흥군의 군대는 탈탈 털렸다.

더 이상 예전의 몽골군이 아니었던 것. 공민왕 "뭐야? 완전 X밥이었네.그동안 괜히 쫄았잖아."공민왕은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이었고이후로 원나라는 슬며시 꼬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공민왕으로서는 천만다행이었지만공민왕 대신에 덕흥군을 선택한 고려인들과 고려사신들은 악몽의 시작이었다.

[고려 친서] 할말이 없네요.


 고려인1"아놔, 우리 이제 어쩌나." 고려인 2"어쩌긴. 다시 돌아가서 싹싹 빌어야지." 고려인 3"원나라 넘들의 강압에 못이겨 그랬다면 정상참작해주겠지." 고려인 2"어차피 원나라도 오늘 내일하고 있었어. 계속 여기 있을 수도 없고.."그리하여 결국 사신단들은 다시 고려로 돌아갔는데..고려를 출발한지 어언 1년 반만의 일이었다.

● 목화씨를 가지고 돌아온 문익점이때 문익점은 돌아가는 길에 목화씨를 들고 간다.

 문익점"낙향해서 이거라도 농사 짓고 살아봐야지."당초 문익점의 취지는이랬던 것이다.

당시 목화는 원나라 정부가 적극 장려한 까닭에중국의 강북지역까지 널리 심어지고 있던 농산물이었다.

 그래서 추위에 강한 강북산 목화도 등장하게 되는데,다만 강남의 귤도 회수를 넘으면 탱자가 된다고강남산 목화는 다년생이었지만,강북산 목화는 1년생으로 그 차이는 있었다.

문익점이 고려로 가지고 들어왔던 것은 강북산 목화였다.

 ▲ 강북산 목화의 성장 과정그런데 당시 원나라가 목화의 밀반출을 금지 품목으로 막았냐고?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당시 동아시아에서 목화가 도입되지 않았던 국가는 고려와 일본밖에 없었다.

원래 목화는 4천 년 전 인도에서 재배되기 시작해서2천 년 전 동남아에서도 재배되고오히려 중국은 늦은 시기인 12

13세기에나 들어온 것이었다.

 그러니 원나라가 무슨 이유로목화의 반출을 금한단 말인가! 게다가 당시 원나라는 군사용으로 전용될 수 있는 지도, 화약 외에는 딱히 반출을 금했던 물품도 없었다.

때문에 목화 씨를 붓두껍에 숨겨오는 희대의 뻘짓은 굳이 연출하지 않아도 됐다.

어쨌든 고려로 들어온 문익점은너무도 당연하게 파직을 당한다.

 그리고 고향으로 낙향한 문익점은 장인 정천익과 함께 목화 재배를 시작해수차례 실패를 거듭한 끝에3년만에 목화 재배에 성공하게 되고다시 10년 뒤에는 목화를 한반도 남쪽 일대에 널리 퍼뜨리게 된다.

 목화가 당시 빠르게 퍼질 수 있었던 까닭은 대략 3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① 농사 짓기가 편해서 1년생 목화였기 때문에 오히려 농사에는 좋았다.

한번 농사지으면 몇 년간 꼼짝도 할 수 없는 다년생 뽕나무나 모시풀과는 달리목화는 잠시 윤작을 위해 쉬어가는 땅에서임시로 짓기에 제격이었다.

 때문에 의심이 많은 농부들이라도목화는 한 번쯤은 테스트할만한 작물이었다.




 "정말루 요걸 심으면 허연 솜뭉치가 나온다는겨?""아, 그렇데도!어디 속고만 살았나." "그럼 줘붜드라고.뭐 속는 셈 치고 한번 혀 볼랑게."② 사시사철 입을 수 있는 무명명주는 누에에서 나오는 것이라생산량이 농작물에 비해 많지 못했고때문에 비단은늘 비쌀 수 밖에 없었다.

반면에 삼베나 모시는 바람이 송송 불어서여름에나 시원하지겨울에 입기에는 너무도 혹독했다.

 반면에 무명은 그딴 거 없었다.

생산량도 엄청났지만가볍게 만들어서 여름용으로 입기에도 좋았고겨울엔 솜을 넣은 누비옷으로 만들어서 방한성을 극대화 할 수도 있었다.

  ▲ 목화로 만든 누비 솜옷고로 면직물이야 말로1년 365일 입을 수 있는 옷감이었다.

③ 엄청난 생산력전과정 수작업으로 실을 뽑아야 하는 삼베, 모시 등과 달리무명은 물레를 사용할 수 있어서생산 속도가 대략 5배 이상이나 높았다.

 ▲ 좌측 : 삼베실 뽑기, 우측 : 무명실 뽑기덕분에 무명은 순식간에 한반도의 최고 옷감으로 자리매김 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15세기가 되면 마포(베 옷감)을 제치고 가장 중요한 화폐대용으로 사용되기에 이른다.

● 목화씨의 매직 : 문익점의 정계복귀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목화를 전래한 문익점의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오르고 있었고결국 그런 인기를 바탕으로우왕 1년(1375년)에 그는 다시 정계에 컴백할 수 있었다.

 이인임 "전하, 문익점 소식 들었는지요?" 우왕"내가 좀 무식해서.." 이인임"암튼, 그가 가져온 목화씨 때문에.."  이인임"지금 온 고려 땅의 백성들이따뜻한 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우왕"어?" 이인임"문익점을 다시 천거하셔서 그 공을 치하해야할 줄로 아옵니다.

" 우왕"네, 그러세요."결국 얼떨결에 덕흥군 쪽에 줄을 섰다가 막장 인생이 된지 10년만에목화씨가 문익점의 인생을 뒤집어 놓은 것이다.

 ● 목화씨의 매직 : 희대의 행운아 문익점그런데 목화씨의 마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우왕을 거쳐 창왕, 공양왕까지 고려 말의 그 험난한 정치 상황에서도 문익점은 나름 잘 버텼다.

 그에게는 늘 '목화씨 문익점'이라는 수식어가 붙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익점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고려 조정에서 또 한번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덕흥군 때와 상황은 비슷했다.

 "급진파 정도전에 붙을 것인지온건파 정몽주에 붙을 것인지, 어서 선택해!"그러자 많은 사대부들이 각자 줄을 찾아 갔다.

 그런데 문익점은 정몽주에 줄을 섰다.

 문익점"이색 문하생들이 대거 정몽주에 붙었으니나도 그쪽 라인으로 붙어야지."결국 덕흥군에 이어 두 번째로 줄을 잘못 선 것이었다.

하지만 정몽주는 선죽교에서 참살을 당하고고려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이때 정몽주 라인에 섰던 수 많은 문신들이 칼을 맞고 몰살되었다.

그런데 문익점은? 이성계 "어이, 목화씨 문익점. 너 거기서 뭐해?얼른 이리 안 오고.."결국 목화 씨의 매직으로 문익점은 끝까지 살아남아 오히려 조선이 개국된 이후로도 공신 대접을 받으면 계속 유복한 삶을 살수 있게 된다.

그의 후손들도 문익점의 자손이라는 이유로 음서(쉽게 말해, 빽)로 관직을 얻게 되었다.

● 문익점에 대한 흔한 오해흔히 문익점의 목화씨 전래와 얽힌'붓두껍 스토리'가 유명하다.

워낙 유명해서인고에 회자되고 있다.

특히 문익점 얘기만 나오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

 "문익점? 뭐, 희대의 산업스파이라고 할 수 있지." "무슨 산업스파이. 당시 원나라가 목화씨 반출을 막은 적도 없는데." "문익점은 원나라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강남 땅에 귀양갔는데,거기서 목화씨를 가지고 왔다는데." "귀양 간 적 없다.

 물론 황제랑 마주친 적도 없고." "뭐야? 그럼 강남에 간 적도 없단 말이야?" "강남은 무슨! 그냥 북경에서 놀다가 귀국할 때 목화 씨 들고 온 건데.." "자세히 좀 말해봐." "문익점이 원나라에 갔을 때, 강남 쪽은 반원 세력인 홍건적과 한족이 차지하고 있었거든." "당시에 원나라가 통치할 수도 없는 지역인데 어떻게 강남으로 유배를 보내나?" "그래도 고려에 목화 씨를 처음 전파한 건 사실이잖아?" "그것도 구라야.당시 고려는 몽골제국의 땅 아니었냐?" "이미 몽골간섭기 시절에 고려 사람들은면화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었어." "처음 전파한 거 말하고 있는데..""그러니깐 처음 전파한 것도 문익점이 아니라는 말이야.""그보다 앞서 고려 문관 이색이 원나라 친구한테 목화씨 좀 달라고 요청했던 기록도 있고.." "이미 삼국시대부터 목화는 소량으로 재배되고 있었어." "근데 왜 중간에 끊겼는데?" "삼국시대의 품종은 남방계라서추운 한반도 기후에 잘 자라지 않았거든." "그럼 문익점의 목화는 뭐가 다른데?" "추운 기후에서도 잘 자라는 북방계 목화였어. 그러니 우리나라에 쉽게 보급되었지.""어쨌든 문익점이 목화를 크게 보급시켜서 백성의 삶의 질은 높아진 건 사실 아님?" "그건 인정."● 문익점의 신격화 : 그만큼 백성들에게 목화는 귀한 선물이었다.

조선 초 문신 권근이 임금께 간한다.

 권근 "전하 우리 백성들이 이렇게 잘 입고 잘 살 수 있는 건모두 다 문익점 덕분입니다.

" 권근 "문익점이 강남에서 목화씨를 가지고 오지 않았으면," 권근 "지금쯤 백성들은 겨울마다 추위에 떨면서 얼마나 고생을 하고 있었겠습니까?" 태종"음, 그건 나도 안다.

그래서?" 권근 "이렇게 훌륭한 일을 한 문익점의 아들이 요즘 궁색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하옵니다.

" 태종"헐, 그게 정말인가?" 권근 "이름이 문주용이라고 하는 자이온데, 벼슬 한자리 주셨으면 합니다.

" 태종"공신의 후손이 그리되면 안 되지.당장 시행토록 하라."이랬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고려사 열전, 문익점전, 태조실록 아무리 뒤져봐도문익점이 강남 가서 목화씨를 얻어 왔다는 내용은 없는데왜 '강남'이라는 말이 갑툭튀했단 말인가? 권근 "목화하면 원래 강남 아님? 난 그래서 당연히 강남에서 가져온 줄 알았지.."권근은 사실 이랬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권근의 이 한미디에이후로 점점 문익점 스토리에 살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권근에서 출발한 문익점 강남행은 15세기 말 야담이 유행한 시절에 가서는남효온에 의해서 '강남 유배설'로 미화된다.

문익점은 원나라 사신으로 들어가나라의 어려움을 한탄하다가강남 땅에서 3년간 유배 생활을 하게된다.

-남효온 목면화기 (15세기 후반)그러다가 문익점의 후손 문치창은 아예 신격화를 시켜버렸으니,그의 저서에는, 문익점은 대놓고 원나라 황제와 맞서는 인물로 묘사된다.

내용은 이렇다.

황제가 문익점을 불러서 달랜다.

 순제"고려왕은 패악무도하여 폐하려 하는데,그대는 어찌 그리 반대를 하는가?"하지만 단호하게 문익점은 맞선다.

 문익점"아무리 나쁜 군주라도 신하는 주군을 받든다고 들었습니다.

" 문익점"폐하께서는 저의 심정을 이해해 주소서!"이야기가 점점 안드로메다를 넘어선다.

거의 속국이나 다름없는 고려의 하급문관이황제와 독대를 나누는 것도 그렇지만 그런 하급문관에게 황제가 고려왕을 바꾸니, 마니이런 식의 대화를 나누고 있다니..아무튼 남효온과 문치창에 의해 문익점은 점점 더 신격화되어이후로 민간에서는이런 얘기가 오고 갔다.

 백성 1"시상에 그분 아니었어봐.지금 우리는 벌거벗고 다녔당게." 백성 2"마, 그건 오바다.

 그카면 목화 들어오기 전엔 우리 전부 다 빨가 벗고 다녔단 말이가?" 백성 1"아따, 말이 그렇다는 것이제." 철령 이북의 고려 영토를 원나라 영토였다는 이유로 반환하라는 이같은 요구가 이르자 명나라와의 실력 대결을 준비하게 된 것입니다.

 ??고려는 1369년 공민왕 부터 명나라와의 외교관계를 맺어왔었는데요. 우왕 때의 친원정책 이후로 명나라는 무리한 세공을 요구하고 고려 사신의 입국을 거절하는등 고압적인 태도를 빈번하게 보이곤 했습니다.

요동은 남만주 요하의 동쪽지방인데, 1360 70년대 초 고려는 이 지역의 원나라 세력을 몰아내서 이곳에 살고 있던 고려인들에게까지 통치 영역을 넓히기 위해 세 차례 출정해 일정한 성과를 거둔적이 있었습니다.

이성계는 우왕과 최영이 요동을 정벌하기로 결정하자 4가지 근거를 들며 반대했는데요.첫째 작은나라로서 큰 나라에 거역할 수 없다둘째 여름에 군사를 동원할 수 없다셋째 온나라 군사를 동원하여 멀리 정벌하면 왜적이 그 허술한 틈을 탈 것이다.

넷째 지금은 한창 장마철이라서 활은 아교가 풀어지고 많은 군사들이 역병을 앓을 것이다라는 이유로 반대를 하였습니다.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의 결과로 이러한 거사는 신구세력의 교체를 의미하는 동시에 신흥 무인세력과 신진사대부중에서 급진 개혁 세력이 조선 왕조를 다시 창건하는 기초가 확립되었습니다.

공민왕 후반부터 등장한 신진사대부들은 신흥 무인 세력과 동맹관계를 통해 확실한 세력범위를 설정할 수 있었지만 고려의 충직한 신료로 대표되는 최영은 권문세족과 신진사대부의 입장을 모두 수용하지 않았기에 발생한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신진사대부들은 기반을 공고히 한 이후에 과전법을 실시해서 후에 개국공신이 되는 신진사대부의 정치적 개혁으로 경제적인 기반을 공고히하고,1392년 공양왕에게 강제로 선위를 요구해서 조선이 개국하게 되는 사건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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