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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우즈베키스탄



이란과의 지긋지긋한 악연이 이어졌다.

한국이 역대 전적에서도, 최근 10년 간의 전적에서도 밀리고 있는 상대다.

대신 우즈베키스탄, 중국, 카타르 같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상대가 들어왔다.

우려했던 중동 집중화도 피했다.

한국의 월드컵 9회 연속 본선 진출을 이끌어야 하는 슈틸리케 감독은 “A조 전력이 비슷하지만 본선을 나가는 데 어떤 상대든 상관 없이 돌파해야 한다”라며 신중한 평가를 남겼다.

이어서는 “이제는 테헤란에서 좋은 성적을 가지고 올 때가 된 것 같다”라는 말로 조 1위를 차지하기 위해 이란 원정 징크스를 깨겠다는 강한 의욕을 보였다.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조추첨 결과 포트/조A조B조포트1이란호주포트2한국일본포트3우즈벡사우디포트4중국UAE포트5카타르이라크포트6시리아태국:: 조추첨 분석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에서 좋은 조 편성은 아이러니한 표현이다.

하지만 A조 배정은 부정적 요소보다는 긍정적 요소가 많다.

한국은 포트5의 난적 이라크, 지난 아시안컵에서 성장세를 보여 준 UAE, 항상 부담스러운 사우디 아라비아와 호주를 피했다.

2015 AFC 아시안컵을 기준으로 4강에 든 팀 중 A조에는 한국만이, B조에는 호주, UAE, 이라크가 몰렸다.

포트6의 시리아의 경우는 불안한 자국 정세로 인해 홈 경기를 치를 수 없어서 한국이 누릴 수 있는 이점도 있다.

물론 이란, 우즈베키스탄을 또 만난 것은 부담스럽다.

이란과는 3회 연속으로, 우즈베키스탄, 카타르와는 2회 연속 최종예선에서 격돌한다.

서로를 잘 아는 상대인 만큼 한국이 극복하는 힘이 강해야 한다.

아시아 최종예선이 홈앤드어웨이 방식으로 치러진 1998 프랑스 월드컵 예선 이후 한국은 조 1위와 2위를 오가며 본선에 올랐다.

프랑스 월드컵부터 남아공 월드컵까지는 순조로웠지만 지난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자칫 조 3위로 플레이오프까지 갈 뻔 했다.

<1998 프랑스 월드컵 최종예선>B조(한국, 일본, UAE,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1위, 6승 1무 1패<2006 독일 월드컵 최종예선>1조(사우디 아라비아, 한국, 우즈베키스탄, 쿠웨이트) 2위, 3승 1무 2패<2010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B조(한국, 북한, 사우디 아라비아, 이란, UAE) 1위, 4승 4무<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A조(이란, 한국, 우즈베키스탄, 카타르, 레바논) 2위, 4승 2무 2패:: 상대국 분석<이란(포트1), 또 만났네요 제길> FIFA랭킹: 42위감독: 카를로스 케이로스(포르투갈)주요 선수: 구차네자드(FW, 찰튼), 아즈문(FW, 로스토프), 쇼자에이(MF, 알 가라파), 데자가(MF, 알 아라비), 호세이니(DF, 나프트 테헤란)역대 전적: 9승 7무 12패 (최근 10년 간 1승 4무 5패, 월드컵 예선 1승 4무 2패)브라질 월드컵 성적: 본선 조별리그 탈락(최종 예선 A조 1위)개요: 이란과는 악연이다.

최종예선에서 3회 연속 격돌하게 됐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예선에서 한국은 테헤란 원정에서 무승부를 거두며 이란의 본선 진출 실패에 결정타를 날렸다.

하지만 2014 브라질 월드컵 예선에서는 원정과 홈에서 잇달아 0-1로 패하며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아직 테헤란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한 A대표팀의 흑역사(올림픽 대표팀은 승리한 바 있음)를 이번에는 반드시 지울 필요가 있다.

아시아 축구의 왕좌를 건 싸움이다.

이란의 2차 예선 과정: D조에 속한 이란은 6승 2무 무패로 가뿐하게 통과했다.

원정에서 오만, 투르크메니스탄과 1-1 비겼지만 홈에서 15골 1실점의 완벽한 경기력으로 전승을 거뒀다.

떠오르는 간판 공격수 아즈문이 오만과의 홈 경기에서의 멀티골을 포함 중요한 순간 5골을 넣으며 확실히 스타덤에 올랐다.

역대 최고의 이란전: 1994 미국 월드컵 최종예선 3-0 완승. 도하에서 열린 맞대결에서 한국은 하석주, 박정배, 고정운의 연속골로 3-0 완승을 거뒀다.

한국이 이란과 치른 7번의 월드컵 예선에서 거둔 처음이자 마지막 승리. 지난 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테헤란에서 주장 박지성의 헤딩골로 만든 무승부도 기억할 만한 경기다.

역대 최악의 이란전: 1996년 아시안컵에서 당한 2-6 역전패는 한국 축구사에서 가장 지우고 싶은 경기 중 하나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치른 홈 경기도 마찬가지. 현재도 이란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케이로스 감독의 주먹감자로 대표되는 패배다.

일정: 원정 경기 2016/10/11, 홈 경기 2017/08/31<우즈베키스탄(포트3), 또 만났네요 반가워요>FIFA랭킹: 66위감독: 삼벨 바바얀(우즈베키스탄)주요 선수: 세르기에프(FW, 팍타코르), 아메도프(MF, 크라스노다르), 라시도프(MF, 엘 자이시), 제파로프(MF, 로코모티프 타쉬켄트)역대 전적: 9승 3무 1패 (최근 10년 간 6승 2무, 월드컵 예선 4승 2무)브라질 월드컵 성적: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탈락(A조 3위)개요: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우즈벡과의 인연은 이란보다 더 질기다.

우즈벡이 소련으로부터 독립해 아시아 예선에 참가한 1998 프랑스 월드컵 최종예선부터, 2006 독일 월드컵, 2014 브라질 월드컵까지 세 차례나 격돌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은 한 차례도 패하지 않았다.

최근 10년 간 6승 2무, 월드컵 예선에서도 4승 2무로 한국의 절대 우세다.

역대 전적으로 모두 따져도 첫 대결인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의 패배 이후 12경기 연속 무패다.

지난 아시안컵에서도 8강에서 한국이 승리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지난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우즈벡은 턱 밑까지 한국을 추격했다.

골득실 차로 겨우 우즈벡을 밀어낸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즈벡의 2차 예선 과정: H조에 속했던 우즈벡은 북한과의 첫 경기에서 2-4로 패했다.

그 충격은 커서 자국 최고의 축구 영웅으로 꼽히는 미르자랄 카시모프 감독을 해임할 정도였다.

그 뒤를 이어 A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을 겸임하는 삼벨 바바얀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우려와 달리 우즈벡은 금세 안정을 찾았고 이후 7경기에서 전승을 거두며 북한을 따돌리고 H조 1위를 차지했다.

아메도프, 라시도프, 세르기에프 등이 건재하고 제파로프, 게인리히 등 베테랑들도 2차 예선 중반 이후 힘을 보탰다.

우즈벡이 자랑하는 황금세대가 이번 최종예선에서 마지막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역대 최고의 우즈벡전: 1997년 타쉬켄트에서 열린 프랑스 월드컵 최종예선 원정 경기에서 한국은 최용수(2골), 유상철, 고정운, 김도훈의 소나기 골로 5-1 완승을 거뒀다.

지난해 아시안컵 8강전에서 손흥민의 연장전 멀티골로 거둔 2-0 승리도 강하게 각인 돼 있다.

역대 최악의 우즈벡전: 역대 전적의 출발점이었던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준결승에서 한국은 우즈벡의 기습적인 중거리 슛에 실점한 뒤 수비에 막혀 0-1로 패했다.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홈 경기임에도 상대 자책골로 1-0 진땀승을 거둔 것도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다.

?일정: 홈 경기 2016/11/15, 원정 경기 2017/09/05<중국(포트4), 공한증은 현재진행형?>FIFA랭킹: 81위감독: 가오 홍보(중국)주요 선수: 가오 린(FW, 광저우 헝다), 우 레이(MF, 상하이 상강), 황보 웬(MF, 광저우 헝다), 장 린펑(DF, 광저우 헝다)역대 전적: 17승 12무 1패 (최근 10년 간 2승 1무 1패, 월드컵 예선 1승)브라질 월드컵 성적: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탈락개요: ‘공한증’. 이 단어로 정리되는 한중 축구 관계는 전적으로 보나, 성과로 보나 한쪽에 일방적으로 치우쳐져 있다.

그러나 최근 그 흐름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클럽 축구를 중심으로 막대한 자금을 앞세운 중국이 AFC 챔피언스리그를 통해 서서히 한국에 대한 자신감을 쌓아 올리고 있다.

중국 A대표팀은 지난 2010년 동아시안컵에서 한국에 3-0 승리를 거두며 역대 전적에서 첫 승을 올리기도 했다.

당시 중국을 이끈 가오 홍보 감독이 현재도 지휘봉을 잡고 있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예선 이후 27년 만에 최종예선에서 대결을 펼치는 양국이다.

중국의 2차 예선 과정: C조의 중국은 남아공 월드컵에 이어 다시 한번 최종예선에도 오르지 못하고 탈락하는 상황을 맞을 뻔 했다.

홈과 원정에서 홍콩과 비기고, 카타르 원정에서 패하며 조 3위로 추락했다.

프랑스 출신의 알랭 페랭 감독을 경질한 중국축구협회는 가오 홍보 감독 대행에게 기적을 빌었다.

가오 홍보 감독은 마지막 2경기에서 승리를 거뒀고, 홍콩이 카타르에 패하며 중국은 극적으로 조 2위에 올랐다.

당초 승점이 부족해 최종 예선에 진출하지 못할 상황이었지만 북한이 필리핀에게 극적으로 패한 덕에 중국은 천신만고 끝에 마지막 티켓을 거머쥘 수 있었다.

역대 최고의 중국전: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차범근의 결승골로 중국을 꺾은 뒤 한국은 무려 32년 간 중국전 무패를 자랑했다.

기억되는 중국전 승리는 무수히 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해 중국 우한에서 열린 동아시안컵에서 기세 등등한 슈퍼리그의 간판 스타를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젊은 한국 대표팀이 2-0으로 완벽히 제압한 바 있다.

슈틸리케 감독 체제 하에서도 공한증은 현재 진행형이다.

역대 최악의 중국전: 유일한 패배는 2010년 동아시안컵이 열린 도쿄에서 벌어졌다.

남아공 월드컵을 준비하던 허정무호는 중국의 빠른 공격에 수비가 무너졌고 유 하이, 가오 린, 덩 줘샹의 연속 골에 참패를 기록했다.

한국 축구사 최초의 중국전 패배로 허정무 감독은 대위기를 맞았지만 이어진 한일전에서의 승리로 만회할 수 있었다.

그때 한국의 수비를 흔드는 빠른 공격 전술을 만든 이가 현재의 가오 홍보 감독이다.

일정: 홈 경기 2016/09/01, 원정 경기 2017/03/23<카타르(포트5), 멀지만 가깝게 느껴지는 상대>FIFA랭킹: 83위감독: 호세 다니엘 카레노(우루과이)주요 선수: 소리아(FW, 알 라이안), 문타리(FW, 레크위야), 알 하이도스(MF, 알 사드), 모하메드 무사(DF, 레크위야)역대 전적: 4승 2무 1패 (최근 10년 간 2승 1무, 월드컵 예선 2승 1무) 브라질 월드컵 성적: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탈락(A조 4위)개요: 중동 팀이지만 한국에겐 익숙한 팀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프로 감독으로서 세 차례나 카타르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현재 대표팀 멤버 중 남태희, 한국영, 고명진 등이 카타르에서 활약 중이다.

중동 팀 중 전력과 선수 면면을 파악하기 가장 유리하다.

지난 브라질 월드컵에서 만나 홈과 원정에서 모두 승리하며 한국이 본선 진출의 제물로 삼은 바 있다.

하지만 카타르가 최근 대대적인 투자로 젊은 선수들을 발굴하며 결실을 보고 있는 점, 2022년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 전에 본선 진출을 위한 열망이 강하다는 점을 가벼이 여기면 안 된다.

카타르의 2차 예선 과정: 중국과 함께 C조에 속했던 카타르는 완벽한 행보로 조 1위를 차지했다.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중국에게 0-2로 패했지만 이미 1위를 확정 지었던 상황이라 의미가 없는 경기였다.

아시안컵에서 부진한 성적을 내자 대회 종료 후 우루과이 출신의 카레노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카레노 감독은 칼판 이브라힘, 비랄 모하메드, 카셈 부르한 등 간판 선수들을 과감히 제외한 채 세대 교체를 단행했고 그 선택이 2차 예선에서 빛을 발휘했다.

특히 세바스티안 소리아(우루과이), 루이스 주니오르, 호드리고 타바타(이상 브라질) 등 비판을 받아 온 귀화 선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역대 최고의 카타르전: 2012년 도하에서 열린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 1차전에서 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원정임에도 불구하고 4-1 완승을 거뒀다.

초반 카타르의 공격에 당황했지만 전열을 정비하고 이근호(2골), 곽태휘, 김신욱이 다양한 루트로 골문을 공략하며 큰 점수 차를 냈다.

역대 최악의 카타르전: 1984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안컵 본선에서 한국을 역대 카타르전 유일한 패배를 기록했다.

0-1로 끝난 그 경기는 판정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각종 국제대회에서 중동세가 힘을 내던 시기다.

일정: 홈 경기 2016/10/06, 원정 경기 2017/06/13?<시리아(포트6), 무조건 2승을 거둬야 하는 상대> FIFA랭킹: 110위감독: 공석주요 선수: 크리빈(FW, 알 다프라), 알 후사인(MF, 알 아헤드) 발후스(GK, 무적)역대 전적: 3승 2무 1패 (최근 10년 간 2승 2무, 월드컵 예선 없음)브라질 월드컵 성적: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탈락개요: 시리아는 한국이 큰 대회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상대다.

브라질 월드컵 예선 당시 아시아 지역 2차 예선에서 타지키스탄에게 0-6으로 완패하며 탈락했던 시리아로서는 최종 예선 진출 자체가 기적적인 일이다.

이슬람국가(IS)와의 내전으로 인해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정세에도 축구가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시리아에게 패한 것은 1984년 아시안컵 본선 딱 한 차례다.

중동이라고는 하지만 이란처럼 강한 피지컬을 지닌 시리아는 종종 파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한국으로선 그런 파란에 휩쓸리지 않고 차분히 2승을 거둔다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

시리아의 2차 예선 과정: 일본과 함께 E조에 속한 시리아는 6승 2패로 조 2위를 차지하며 최종 예선에 진출했다.

일본에게 2경기 모두 패했지만 싱가포르, 아프가니스탄, 캄보디아를 상대로 확실히 승리하며 승점을 챙겼다.

 일본에게 0-3, 0-5로 대패했고 사실상 2위 결정전이었던 싱가포르와의 맞대결은 모두 1골 차의 힘든 승부였다.

시리아가 이번 최종예선 진출팀 중 가장 약체임을 알 수 있는 부분. 어려운 국내 정세로 인해 홈 경기를 모두 중립 지역인 오만에서 치렀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 한국의 시리아 원정은 오는 9월인데 그때까지 IS 사태가 진정될 가능성이 낮아 한국 역시 중립 지역에서 원정 경기를 치를 가능성이 높다.

역대 최고의 시리아전: 상대 전적에서 앞서지만 시원한 승리는 적다.

첫번째 대결이었던 1978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메르데카컵에서 박성화의 2골로 2-0 승리를 거둔 것 외에는 모두 1골 차 승리였다.

역대 최악의 시리아전: 1984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안컵 본선에서 0-1로 패했다.

그 대회에 한국은 동기부여 자체가 떨어졌고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일정: 원정 경기 2016/09/06, 홈 경기 2017/03/28:: 최상&최악의 시나리오한국으로선 A조 1위를 차지해 9회 연속 본선 진출의 성과를 내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다.

그걸 위해선 이란 원정에서 징크스를 끊고, 상대 전적에서 우위에 있는 나머지 팀들을 상대로 자신 있게 성과를 거둬야 하는 조건이 필요하다.

A조 2위도 본선 직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만에 하나 예상치 못한 단기적 결과가 나와도 1년에 걸친 최종예선을 영리하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

A조 3위가 되면 B조 3위와 아시아 지역 플레이오프인 4라운드를 치러야 한다.

거기서 승리하면 북중미 4위와의 대륙간 플레이오프로 본선 진출을 가린다.

유럽이나 남미 팀과 플레이오프를 피하지만 지난 브라질 월드컵 당시 북중미 4위가 멕시코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현실화 되어선 안 될 시나리오다.

A조 3위 아래의 성적은 말할 것도 없다.

 사마르칸트를 빠져 나올 때 지도에 나와있는 것과 실제 길이 약간 달라 두 번쯤 U턴을 해서 방향을 잡아야 했으나 크게 문제는 없었다.

사마르칸트를 나와서는 도로의 노면상태도 아주 좋았다.

사실 히바 이후부터는 도시를 연결하는 길은 꽤 좋은 편이고, 비포장 도로 같은 건 없다.

 환전을 했기 때문에, 주유를 한 번 할 필요가 있었다.

주행가능거리를 봤을 때 타쉬켄트까지 30km 정도가 모자랄 정도의 연료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샤흐리삽스를 갔다오지 않았다면 다시 주유를 하지 않아도 카자흐스탄으로 나갈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급유가 필요했다.

연료계의 지침이 두 개 남은 시점을 지나면서 주유소가 나오면 세워 봤는데, 어느 것이 디젤인지 확실하지 않은 주유소가 있어 몇 번 그냥 지나쳤다.

마침내 한 주유소에 들어갔고, 카운터에 가서 디젤을 주유하겠다고 하니 계산기로 리터당 가격을 찍어 주는데 여기는 부하라 보다 훨씬 싸서 리터당 2250솜 정도였다.

부하라의 식당에서 환전 해 줬던 청년에게 물어 봤을 때도 리터당 3700솜 이었고, 차를 몰고 다니며 주유소에 붙어 있는 가격표도 3700이라는 숫자를 보았고(생각보다 비싸서 놀랐었다!!), 실제 주유를 했을 때도 3700이었는데, 여기는 왜 이리 싼 건지 이해가 잘 안됐다.

환전해서 돈을 많이 쓰려고 했는데 주유를 하고 나니 126,000솜으로 주유가 됐다.

예상보다 많이 싼 것이다.

기름이 질이 안좋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차는 별 이상없이 달렸다.

우즈베키스탄에 들어온 이래 오르막 내리막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차는 아주 잘 달린다.

마치 우즈베키스탄의 기름이 좋아서 그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다고 엔진 경고등이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경고등은 꺼졌다 켜졌다 하고 있다.

다만 평탄한 지형 탓에 이전 처럼 극심한 출력저하를 경험할 기회가 별로 없을 뿐이다.

아홉 시가 조금 지나 출발. 기온은 영상 23도 정도.타쉬켄트로 가는 중우즈베키스탄에는 자동차의 연료로 메탄을 많이 쓴다.

사마르칸트에서 타쉬켄트까지에는 검문소가 최소 예닐곱 개는 되었었는데, 실제로 차를 세우고 검문을 한 곳은 두 곳 정도 밖에 없었다.

점점 도시에 가까와 지니 그런 것도 좀 간소하게 되는 것 같다.

검문을 할 때도 여권을 보면서 "투어리스트?"하고 묻고는 차의 서류를 더 본다던가 하는 경우도 없었다.

다만 한 군데에서 운전석 뒷 문을 한 번 열어 안쪽을 들여다 보았던 경우는 있었다.

그 경우에는 다른 차량들은 트렁크를 열어 보여 주고 있었는데, 내 경우는 트렁크를 열지는 않았다.

점심 먹기:
한 시가 넘어 점심을 먹기 위해 길 가에 있던 휴게소 같은 식당에 들어갔다.

여기 이전에 한 곳을 들어갔으나 메뉴도 없고 의사소통도 잘 안되어 그냥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여기는 사진이 있는 메뉴가 있고, 청년이 적극적으로 의사소통을 시도하여 주문을 할 수 있었다.

여기는 영어보다도 "아진(1), 드바(2), 흘렙(빵)" 같은 러시아 말을 조금이라도 아는 것이 훨씬 의사소통에 도움이 되는 곳이었다.

청년이 나에게 "넝?" 이라하기에 처음에 못알아 듣다가 "흘렙(빵)?"이라고 해 주니 엄지손가락을 척 치켜드는 것이 아닌가...점심을 먹고 시동을 거니 엔진 경고등이 다시 꺼졌다.

저녁 먹기: 한국관 (GPS: 41.301915, 69.265029)
숙소에 와서 쉬다가 저녁 먹으러 나갈 궁리를 했다.

사마르칸트에 있을 때 숙소에서 타쉬켄트에 가면 한국식당을 많이 찾을 수 있을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인터넷에 열심히 검색을 해 보았는데 위치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내가 찾은 블로그에는 위치 정보가 전혀 안나와 있었던 것이다.

검색에 검색을 거듭하다 TripAdvisor에서 겨우 "한국관"이란 한식당의 정보를 찾았고, 다행히 우리 숙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숙소에서 가는 길에 "김삿갓"이란 한식당도 있었는데(GPS: 41.297694, 69.258071), 여기는 채 5분도 안되는 곳이었다.

일단 한국관을 가보자 하여 TripAdvisor 에서 찾은 정보대로 계속 걸어가 보니 그 위치에 한국관이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MapsMe에 "Korean"이란 식당이 근처에 표시되어 있어 그 곳을 가 보니 거기가 "한국관"이었다.

한국관의 종업원은 한국말을 전혀 못했고, 한국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진 못했다.

그러나, ?쩜敭載�, 김치찌개 등 내가 찾던 음식 들은 예상대로 있었다.

한국 식당 답게 주문하지 않은 기본반찬들이 수북이 나왔고, 당연히 김치도 있었다.

나는 ?쩜敭載낯� 주문하고, 김밥은 자장면을 주문했다.

?쩜敭載낫� 좀 더 "Spicy" 한 것과 "Medium"이 있었는데, 공연히 Spicy 하다는 말에 기가 눌려 Medium을 시켰더니 좀 심심한 맛이 났다.

한국인에게는 Spicy 한 것이 나았던 것 같다.

하지만 오랫만에 ?쩜敭載냄� 김치를 먹고 있으니 한동안 짠 라그몬에 빵을 찍어 먹던 것에 비하면 훨




씬 나았다.

물론 밥값은 평상시 먹던 것의 두 배가 나왔다.

오늘의 숙소: Art Hotel @ Tashkent수도에 와서 그런지 숙박비도 약간 올랐지만, 방의 수준도 꽤 좋아졌다.

이 방은 2박에 도시세까지 합하여 78USD인 방인데, 방에 싱글침대가 세 개 있는 방이다.

에어컨도 조용하였고, 흠잡을 곳이 없는 곳이었다.

Wifi도 우즈베키스탄에 들어온 이래 가장 안정적이면서도 빠르게 연결이 되는 곳이다.

주차는 호텔의 담벼락에 붙여 주차하는 방식인데, 호텔의 주변이 번화한 곳이 아니라 주차도 크게 문제가 없는 곳이다.

[이란 우즈베키스탄] 그것을 알려줍니다.


문제풀이 김밥군사마르칸트에서 타쉬켄트까지 300km 가량 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들이 겪은 아픔은 ‘홀로코스트’ 어쩌구해서 전 세계에서 그들이 겪었던 아픔을 공감하지만, 대한민국은 유대인에 비해서는 턱없이 별 볼일 없는(돈 없는) 존재이기에 ‘까레이스키’들이 겪은 고난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내가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해 처음으로 만난 사람은 자신을 ‘고려인(까레이스키)’이라 했다.

고려인이라 말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를 우즈베키스탄에 여행 온 한국의 젊은이라 생각했을거다.

??<타슈겐트 공항에서 만난 고려인 대학생 - 현재 부산대학교에서 공부 중인데 방학을 맞이해 누크스에 있는 집으로 가는 중이라했다>그런데 왜 ‘고려인’일까?고려인(高麗人) 또는 고려사람(러시아어: Корё сарам)은 옛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후의 독립 국가 연합 전체에 거주하는 한민족을 이르는 말이다.

한반도 일대를 지배했던 옛 나라인 고려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원래 고려인은 중국, 일본 등 나라의 동포들과 같이 조선인이라고 했지만 자신들을 고려인이라고 공식적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서울올림픽을 전후하여, 1988년 6월 전소고려인협회가 결성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1993년 5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소련 조선인 대표자 회의에서 정식으로 소련 조선인의 명칭을 ‘고려인’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소련의 정세가 급변하면서 한국과 소련이 외교관계를 맺고, 소련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그 명칭을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사용하는 ‘조선’이란 말 대신, ‘조선인’도 ‘한국인’도 아닌 ‘고려인’이라는 기발한 명칭을 만들어 낸 것이다.

??예전에 ‘소련’이란 나라가 있었다.

(지금은 러시아라 한다) 지금 젊은이들에게는 참 생소한 이름이지만, 70, 80년대까지 중고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반공도덕 시간에 정말 귀가 아프도록 들은 이름이다.

중앙아시아에 까레이스키가 살게 된 것은 구소련시대의 강제 이주정책 때문이었다.

 까레이스키들이 살았던 곳은 블라디보스톡을 중심으로 하는 러시아의 극동지역이었다.

19세기 후반부터 함경도 등지의 주민들이 두만강을 넘어 연해주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이곳에는 많은 조선인들이 거주하게 된다.

지금이야 국경이 있고, 여권이 있어야 국경을 넘을 수 있지만, 당시 이 지역은 지도상으로는 러시아 땅이지만, 그야말로 無主空山이었다.

이곳에 이주한 조선인들은 땅을 일구고, 터전을 잡는다.

이 후 더 많은 조선인들이 ‘땅’을 찾아 이주하게 되면서, 1869년에는 조선인이 연해주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1897년 러시아 제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러시아 전체에서 조선말을 하는 사람들이 26,005명(남자 16,225, 여자 9,780)이었고, 1902년에는 32,000명을 넘었다.

1910년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고 또 많은 지식인들이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 중국, 소련으로 이주하게 된다.

그리고 조선인들이 많이 사는 간도, 연해주 지역은 많은 독립운동의 거점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어찌 ‘독립운동’하는 사람들만 있었겠는가? 그중에는 사기군, 협잡군, 왜놈 앞잡이 등등 별별 종류의 인간들이 다 있었다.

  1930년대 스탈린이 통치하던 시절, 소련의 연해주 지역에 살던 조선인들은 ‘일본의 스파이’라는 의심을 받는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에 패한 소련은 일본에 적대적이었다.

일본인과 생긴 것도 비슷한 것들이, 일본과 가까운 곳에 우글거리며 사는 꼴을 보기 싫었다.

소련은 이들을 이곳에서 ‘옮겨버려야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처럼 교육을 받은 시대에도 ‘중앙아시아’가 어딘지 감이 안 잡히는 사람들이 많은데, 하물며 당시에야 어땠을까? 강제로 기차에 실려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체 끌려와 던져진 곳이 중앙아시아였다.

어떤 놈이 만든 ‘정책’인지 참 신기하고도 잔인하다.

뭐 스탈린이 직접 ‘저기다 보내!’라고 했겠는가. 아마도, 모스크바의 관리 놈들이 책상위에 지도를 펼쳐 놓고 대충 점찍은 곳 이었을 거다.

보드카에 잔뜩 취한 상태로...당시 자료를 보면,▣ 명령번호 1428-326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공화국 인민위원회 및 중앙위원회는 아래와 같이 명한다.

일본의 간첩행위가 극동지방에 침투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한다.

 * 연해주 극동국경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한인들을 카자흐스탄과 아랄해, 발하쉬 호수 및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으로 이주 시킨다.

* 지체 없이 추방을 시작하여 1938년 1월1일까지 추방작업을 종결한다.

* 한인들이 재산, 농기구 및 가축을 갖고 이주하는 것을 허락한다.

* 이주자들이 남기고 가는 동산, 부동산 및 파종된 종자에 대해서 보상이 이루어질 것이다.

* 추방 시 발생하는 무질서를 방지하기 위하여 조치를 취해야 한다.

* 카자흐스탄 공화국,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인민위원회는 한인들의 거주 지역과 주거지를 결정하고 이주자들이 경제적 적응을 할 수 있도록 협조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한다.

* 국가 철도는 한인들을 극동지역에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옮기는데 있어 적시에 기차 편을 제공한다.

* 이주 경로, 출발하는 이주자 수, 도착하는 이주자 수, 그리고 해외로 이주하는 이주자 수를  10일마다 전보로 보고해야 한다.

* 한인들이 이주해가는 지역 경비를 강화하기 위하여 국경수비대를 3000명으로 증원한다.

* 인민위원회는 한인들이 비운 곳에 국경 수비대가 주둔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

강제 이주는 지식인의 사전 처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주 전 한인 지식인 2,500여명이 총살형에 처해졌다.

그리고 1937년 9월 21일 부터 조선인 강제 이주 정책이 시행 된다.

이 시기는 1년 농사를 마무리하고 추수할 시기였으니, 들판에 익은 곡식을 고스란히 두고 떠나야하는 아픔까지 있었다.

移住 통보 이후 여행이 중지된 상황에서, 거의 맨몸으로 이들은 정든 땅을 떠나야 했다.

이주자들은 당시 짐을 챙기는데 24시간이 주어졌다고 한다.

일주일 전에 사실을 안 사람들도 묘안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식탁, 의자 등 가구를 팔려 해도 이미 아무도 사려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와중에서도 곡식의 씨앗은 잊지 않았다고 하니 한인들의 농사에 대한 집념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화물열차와 가축 운반차를 개조한 차량에 짐짝처럼 실린 이들은 매서운 시베리아의 삭풍 속을 한 달여 간 달려 중앙아시아에 도착했다.

 먹을 것을 전혀 공급하지 않아 기차가 석탄이나 물을 보충하기 위해 역에 서면, 간이 상점에 뛰어가 빵 등  먹을 것은 무엇이나 닥치는 대로 사다 먹으면서 여행을 했다.

열차에는 화장실이 없었으며 역 구내에 열차를 세우면 모두가 내려 역도 아닌 허허벌판에서 볼일을 봤다.

 마른 음식을 계속 먹으며 고통을 겪다가 열차가 섰을 때 나뭇가지를 주워 불을 지피고 국물이라도 끓이려고 하면 열차가 떠나곤 하여 제대로 끓여 먹지도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자연히 노인과 어린이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여행 중에 아이들 사이에 홍역이 발생하여 유아 사망률이 60%를 상회하였다.

여행 중에 가족이 여러 열차로 흩어져 이산가족도 다수 발생하였다.

 그렇게 이들이 처음 도착한 곳은 지금 카자흐스탄의 우슈토베라는 곳이었다.

그리고 곧이어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의 여러 지역으로 분산된다.

한인들의 정착지는 수용 시설이라곤 전혀 없는 허허벌판에 한 새로운 정착지였다.

겨울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다.

사람들은 토굴이나 창고, 마구간 등을 개조하여 겨울을 났다고 한다.

 강제 이주 이후 한인들의 거주 이전은 제한되었다.

일정한 거주 구역이 명시된 신분증을 소지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적어도 1953년까지 약 16년 간 집단적으로 수용소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민족 교육이 금지되었음은 물론 국가 기관 취업과 취학에도 제한이 있었다.

사회 정치적 진출도 사실상 봉쇄되어 있었다.

이 모든 제한은 1953년 스탈린 사망 이후 비로소 완화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한인은 벼농사를 시작하여 우즈베키스탄은 주요 쌀농사 지역으로 변화하였다.

한인은 목화 등 다른 작물에서도 뛰어난 실적을 올리면서 빠르게 정착해 갔다.

전후 한인은 중앙아시아 개발에 앞장서 특유의 개척 정신과 영농법으로 수많은 모범 콜호즈를 탄생시켰다.

??1993년 소련이 붕괴되고 중앙아시아의 국가들은

스탄’이란 이름으로 독립한다.

2002년에 당시 인구 조사에서는 148,556명의 고려인이 러시아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또 우즈베키스탄에 198,000명, 카자흐스탄에 105,000명, 키르기즈스탄에 19,000명, 우크라이나 12,000명, 타지키스탄 6,000명, 투르크메니스탄 3,000명, 기타 지역에도 5,000명 등이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문화는 이전의 수도였던 알마티(Almaty)를 중심으로 하는데, 이곳에서는 한국어 신문(고려 신문)과 한국어 극장이 운영되고 있단다.

??구 소련 붕괴 이후 일부 고려인들은 무국적자가 되었다.

구 소련 시절 연방이었던 나라들이 러시아 국적을 인정하지 않아 국적을 다시 신청해야 하는데, 이를 몰랐거나, 서류를 분실하거나, 거주자로 등록하지 않았거나,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등으로 신청하지 못한 것이다.

이들은 교육을 비롯한 기본적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러한 불이익은 그 자손들에게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구 소련 지역에는 현재 전체 고려인의 10%에 해당하는 약 5만의 무국적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최근 한국 대사관의 신분 증명이 있다면 자국 내 무국적 고려인의 국적 회복을 지원해 줄 수 있음을 언급하였다.

[이란 우즈베키스탄] 진실 또는 거짓..



러시아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은 다시 연해주 지역으로 이주하기도 했다.

러시아에서 차별 받으며 살기보다는 조상들의 땅으로 돌아가 새로운 기회를 찾자는 흐름이다.

또 1만 명의 우즈베키스탄 고려인들이 대한민국으로 귀화하기도 했다고 한다.

?‘

스탄’ 국가들이 독립 한 시기에 다행히도 당시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비약하던 시기인지라, 고려인들의 위상도 올라간다.

한국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노동집약적 공장들이 중앙아시아로 移轉을하기도 하고, 국내의 부족한 산업 인력을 이들로 대처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음은 까레이스키가 아닌, 현지인들도 한국에서 일할 기회를 얻는다.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임금이나 물가가 다르기에, 그렇게 한국에서 몇 년 일하며 번 돈은 이들에게 ‘꿈’과 같은 액수다.

우즈베키스탄의 거리를 걷다보면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한국에서 ‘일했다’라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한국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그 모든 걸 감수할 만큼, ‘돈’이 되는 일 인건 분명하다.

그렇게 ‘돈’을 벌어서 집도 사고, 결혼도 하고, 차도 사고 했단다.

또 다들 ‘다시 한국에 가고 싶다’고 한다.

..??내가 사는 곳 창원에는 ‘쉐보레 자동차’ 공장이 있다.

예전에는 대우자동차였다.

이곳에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근로자들이 많다.

공장 근처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이들의 모습을 자주 봤었는데, 우즈베키스탄에 오니 거리에서 보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코리안 드림’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우즈베키스탄에서 현재 진행형인건 분명하다.

??<히바에서 만난 카이랏 - 한국에서 일해서 큰 돈을 벌었다고 했다>우즈베키스탄인들 중 한국 음식 중에 ‘국시’가 맛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도데체 국시가 뭘까?’ 참 궁금했는데, 드디어 타슈겐트 바자르 한켠의 식당에서 국시를 발견했다.

한 그릇 시켜서 먹어보니, 냉면 맛이었다.

까레이스키들이 우즈베키스탄에 살면서 전파한 음식으로 우즈벡에서는 상당히 대중적인 음식이다.

우리나라의 짜장면 처럼.??<우즈베키스탄에서 먹은 ‘국시’>이상의 글은 wikipedia, (사)고려인돕기 운동본부에서 그 내용을 참고한 것임 첫 승을 올린 이란은 전날 말레이시아를 5-1로 대파한 중국에 이어 조 2위에 자리했다.

전반엔 이란이 맥을 추지 못했다.

알리 카리미, 바히드 하셰미안 등 해외파가 주축을 이룬 이란은 전반 16분 우즈베키스탄 진영에서 길게 넘어온 볼을 노련한 수비수 라흐만 레자에이가 골키퍼 하산 루드바리안에게 헤딩으로 백패스한다는 게 그만 골키퍼 키를 넘겨 어이없이 실점했다.

우즈베키스탄은 4분 뒤 세르베르 제파로프의 프리킥을 티무르 카파제가 헤딩으로 맞췄지만 골 포스트를 살짝 빗겨갔다.

전반 이렇다할 기회를 잡지 못한 이란은 후반 조커 공격수 카제미안을 투입해 승부수를 띄웠다.

후반 10분 이란의 동점골이 터졌다.

왼쪽에서 코너킥이 올라오자 공격에 가담한 수비수 호세이니가 돌고래 점프로 솟구쳐 방아찧기 헤딩으로 네트를 갈랐다.

우즈베키스탄은 후반 20분 카파제가 골키퍼와 1대1로 맞서는 기회를 잡았지만 결정력이 없었다.

이란은 후반 26분 자바드 네쿠남의 스루패스를 교체 멤버 카제미안이 문전에서 낚아채 골키퍼가 나오는 것을 보고 침착하게 골망을 흔들어 결승골을 뽑아냈다.

oakchul@yna.co.kr    가장 먼저 추첨이 실시된 2번 시드에서는 이란과 일본이 각각 A, B조에 편성되었고, 이어 우즈베키스탄, 카타르, 레바논이 차례로 A조에, 이라크, 요르단, 오만이 일본과 같은 B조에 묶였습니다.

 남은 2개자리 가운데 A조 맨 윗자리는 한국의 몫이었습니다.

 뒤이어 발표된 호주는 일본 등과 함께 B조에서 최종예선을 펼치게 되었구요. 최종예선 10개팀 가운데 무려 6개의 중동국가가 포진된 이번 조 추첨에서 한국은 이란, 카타르, 레바논 원정을 치러야 하게 되었습니다.

 비행거리만 5만 키로가 넘고, 비행시간만 65시간이 될 것으로 보여, 실력보다는 중동 장거리 원정이 변수가 될 전망입니다.

 특히 이란은 최강희 대표팀 감독이 만나지 않길 바랐던 껄끄러운 상대로, 최 감독은 “이란 원정은 고지대 경기인데다가 시차도 상당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라며 차라리 일본과 맞붙길 희망한 바 있다.

  이로써 조 추첨이 끝난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은 오는 6월 3일 첫 경기를 시작으로 1년간의 대장정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아시아 지역에 배정된 티켓은 4.5장으로, 각조 1

2위가 2장씩 나눠갖는 가운데 각 조 3위 팀은 플레이오프로 승자를 가린 후, 다시 남미예선 5위팀과 대륙별 플레이오프를 벌여 승리해야만 본선행 티켓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힘든 중동원정을 견뎌내고 8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꼭 오르길 바랍니다.

^^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 조편성 결과] A조 - 한국 이란 우즈베키스탄 카타르 레바논 B조 - 호주 일본 이라크 요르단 오만   가장 먼저 추첨이 실시된 2번 시드에서는 이란과 일본이 각각 A, B조에 편성되었고, 이어 우즈베키스탄, 카타르, 레바논이 차례로 A조에, 이라크, 요르단, 오만이 일본과 같은 B조에 묶였습니다.

 남은 2개자리 가운데 A조 맨 윗자리는 한국의 몫이었습니다.

 뒤이어 발표된 호주는 일본 등과 함께 B조에서 최종예선을 펼치게 되었구요. 최종예선 10개팀 가운데 무려 6개의 중동국가가 포진된 이번 조 추첨에서 한국은 이란, 카타르, 레바논 원정을 치러야 하게 되었습니다.

 비행거리만 5만 키로가 넘고, 비행시간만 65시간이 될 것으로 보여, 실력보다는 중동 장거리 원정이 변수가 될 전망입니다.

 특히 이란은 최강희 대표팀 감독이 만나지 않길 바랐던 껄끄러운 상대로, 최 감독은 “이란 원정은 고지대 경기인데다가 시차도 상당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라며 차라리 일본과 맞붙길 희망한 바 있다.

  이로써 조 추첨이 끝난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은 오는 6월 3일 첫 경기를 시작으로 1년간의 대장정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아시아 지역에 배정된 티켓은 4.5장으로, 각조 1

2위가 2장씩 나눠갖는 가운데 각 조 3위 팀은 플레이오프로 승자를 가린 후, 다시 남미예선 5위팀과 대륙별 플레이오프를 벌여 승리해야만 본선행 티켓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힘든 중동원정을 견뎌내고 8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꼭 오르길 바랍니다.

^^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 조편성 결과] A조 - 한국 이란 우즈베키스탄 카타르 레바논 B조 - 호주 일본 이라크 요르단 오만사마르칸트를 빠져 나올 때 지도에 나와있는 것과 실제 길이 약간 달라 두 번쯤 U턴을 해서 방향을 잡아야 했으나 크게 문제는 없었다.

사마르칸트를 나와서는 도로의 노면상태도 아주 좋았다.

사실 히바 이후부터는 도시를 연결하는 길은 꽤 좋은 편이고, 비포장 도로 같은 건 없다.

 환전을 했기 때문에, 주유를 한 번 할 필요가 있었다.

주행가능거리를 봤을 때 타쉬켄트까지 30km 정도가 모자랄 정도의 연료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샤흐리삽스를 갔다오지 않았다면 다시 주유를 하지 않아도 카자흐스탄으로 나갈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급유가 필요했다.

연료계의 지침이 두 개 남은 시점을 지나면서 주유소가 나오면 세워 봤는데, 어느 것이 디젤인지 확실하지 않은 주유소가 있어 몇 번 그냥 지나쳤다.

마침내 한 주유소에 들어갔고, 카운터에 가서 디젤을 주유하겠다고 하니 계산기로 리터당 가격을 찍어 주는데 여기는 부하라 보다 훨씬 싸서 리터당 2250솜 정도였다.

부하라의 식당에서 환전 해 줬던 청년에게 물어 봤을 때도 리터당 3700솜 이었고, 차를 몰고 다니며 주유소에 붙어 있는 가격표도 3700이라는 숫자를 보았고(생각보다 비싸서 놀랐었다!!), 실제 주유를 했을 때도 3700이었는데, 여기는 왜 이리 싼 건지 이해가 잘 안됐다.

환전해서 돈을 많이 쓰려고 했는데 주유를 하고 나니 126,000솜으로 주유가 됐다.

예상보다 많이 싼 것이다.

기름이 질이 안좋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차는 별 이상없이 달렸다.

우즈베키스탄에 들어온 이래 오르막 내리막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차는 아주 잘 달린다.

마치 우즈베키스탄의 기름이 좋아서 그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다고 엔진 경고등이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경고등은 꺼졌다 켜졌다 하고 있다.

다만 평탄한 지형 탓에 이전 처럼 극심한 출력저하를 경험할 기회가 별로 없을 뿐이다.

아홉 시가 조금 지나 출발. 기온은 영상 23도 정도.타쉬켄트로 가는 중우즈베키스탄에는 자동차의 연료로 메탄을 많이 쓴다.

사마르칸트에서 타쉬켄트까지에는 검문소가 최소 예닐곱 개는 되었었는데, 실제로 차를 세우고 검문을 한 곳은 두 곳 정도 밖에 없었다.

점점 도시에 가까와 지니 그런 것도 좀 간소하게 되는 것 같다.

검문을 할 때도 여권을 보면서 "투어리스트?"하고 묻고는 차의 서류를 더 본다던가 하는 경우도 없었다.

다만 한 군데에서 운전석 뒷 문을 한 번 열어 안쪽을 들여다 보았던 경우는 있었다.

그 경우에는 다른 차량들은 트렁크를 열어 보여 주고 있었는데, 내 경우는 트렁크를 열지는 않았다.

점심 먹기:
한 시가 넘어 점심을 먹기 위해 길 가에 있던 휴게소 같은 식당에 들어갔다.

여기 이전에 한 곳을 들어갔으나 메뉴도 없고 의사소통도 잘 안되어 그냥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여기는 사진이 있는 메뉴가 있고, 청년이 적극적으로 의사소통을 시도하여 주문을 할 수 있었다.

여기는 영어보다도 "아진(1), 드바(2), 흘렙(빵)" 같은 러시아 말을 조금이라도 아는 것이 훨씬 의사소통에 도움이 되는 곳이었다.

청년이 나에게 "넝?" 이라하기에 처음에 못알아 듣다가 "흘렙(빵)?"이라고 해 주니 엄지손가락을 척 치켜드는 것이 아닌가...점심을 먹고 시동을 거니 엔진 경고등이 다시 꺼졌다.

저녁 먹기: 한국관 (GPS: 41.301915, 69.265029)
숙소에 와서 쉬다가 저녁 먹으러 나갈 궁리를 했다.

사마르칸트에 있을 때 숙소에서 타쉬켄트에 가면 한국식당을 많이 찾을 수 있을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인터넷에 열심히 검색을 해 보았는데 위치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내가 찾은 블로그에는 위치 정보가 전혀 안나와 있었던 것이다.

검색에 검색을 거듭하다 TripAdvisor에서 겨우 "한국관"이란 한식당의 정보를 찾았고, 다행히 우리 숙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숙소에서 가는 길에 "김삿갓"이란 한식당도 있었는데(GPS: 41.297694, 69.258071), 여기는 채 5분도 안되는 곳이었다.

일단 한국관을 가보자 하여 TripAdvisor 에서 찾은 정보대로 계속 걸어가 보니 그 위치에 한국관이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MapsMe에 "Korean"이란 식당이 근처에 표시되어 있어 그 곳을 가 보니 거기가 "한국관"이었다.

한국관의 종업원은 한국말을 전혀 못했고, 한국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진 못했다.

그러나, ?쩜敭載�, 김치찌개 등 내가 찾던 음식 들은 예상대로 있었다.

한국 식당 답게 주문하지 않은 기본반찬들이 수북이 나왔고, 당연히 김치도 있었다.

나는 ?쩜敭載낯� 주문하고, 김밥은 자장면을 주문했다.

?쩜敭載낫� 좀 더 "Spicy" 한 것과 "Medium"이 있었는데, 공연히 Spicy 하다는 말에 기가 눌려 Medium을 시켰더니 좀 심심한 맛이 났다.

한국인에게는 Spicy 한 것이 나았던 것 같다.

하지만 오랫만에 ?쩜敭載냄� 김치를 먹고 있으니 한동안 짠 라그몬에 빵을 찍어 먹던 것에 비하면 훨




씬 나았다.

물론 밥값은 평상시 먹던 것의 두 배가 나왔다.

오늘의 숙소: Art Hotel @ Tashkent수도에 와서 그런지 숙박비도 약간 올랐지만, 방의 수준도 꽤 좋아졌다.

이 방은 2박에 도시세까지 합하여 78USD인 방인데, 방에 싱글침대가 세 개 있는 방이다.

에어컨도 조용하였고, 흠잡을 곳이 없는 곳이었다.

Wifi도 우즈베키스탄에 들어온 이래 가장 안정적이면서도 빠르게 연결이 되는 곳이다.

주차는 호텔의 담벼락에 붙여 주차하는 방식인데, 호텔의 주변이 번화한 곳이 아니라 주차도 크게 문제가 없는 곳이다.

문제풀이 김밥군사마르칸트에서 타쉬켄트까지 300km 가량 우즈벡에 있던 11월 말에도 블로그 진도는 고작해야 9월 중순에 중국 투르판, 우루무치 등을 루주와 함께 다니던 이야기를 썼었으니까 별로 생생한 기록은 아니었다고 하겠다.

) 이란에서도 시간이 될 때마다 포스팅을 올릴까 했는데 이게 왠걸, 이란은 인터넷은 잘 되는데 이상하게 네이버 블로그는 차단이 되는 것이었다.

네이버 자체가 액세스가 안 된다면 모르겠으나 다른 서비스들은 되면서 블로그만 사용할 수 엇으니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고 하겠다.

 해서 결국 이란에 있는 동안은 포스팅을 한 개도 올리지 못했고 게으름이 몸에 뱀에 따라 이후 여행지에서도 귀차나서 포스팅을 가뭄에 콩나듯 올리게 되었다.

헤헷.   둘째 날 아침. 아직 하루 더 맛샤드(원래대로라면 '마슈하드'가 더 맞을텐데 '맛샤드' '맛샤드'하면 뭔가 찰진 느낌이 나니까 앞으로 나 편한대로 부르기로 한다.

)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이란의 수도인 테헤란으로 그냥 넘어갈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이란에 온지 하루 밖에 안 지났으니까 아직까진 길거리만 나가도 신기하고 좋을 때이긴 하지만 이란 공부를 안 해온 터라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르겠고 어딜 가도 외국인은 나밖에 없고.. 좀 그렇다.

테헤란으로 가면 관광객들도 많고 할텐데. 배가 고팠으므로 어딜 갈지 고민하기 보단 일단 요기를 하기로 한다.

주 먹거리인 라면들이 아직 남아 있긴 했지만 (이건 지난 4일간 투르크메니스탄에서 현지인들 집에 머물게 됨에 따라 라면을 하나도 소진을 안 한 덕분이라 할 수 있다.

) 아직 여행은 한 달도 넘게 남았으므로 최대한 라면을 아끼고 현지 음식으로 배를 채워야 한다.

  해서 찾아간 숙소 주변의 햄버거 집. 어제 밤부터 느낀 건데 이 놈의 나라에는 샌드위치나 햄버거 집들만 보이고 다른 식당들은 거의 눈에 안 띄는 것 같다.

 내가 페르시어를 읽을 줄 몰라서 못보고 지나친 곳들도 있겠지만 대표적인 반미 국가에서 이렇게 매우 양키스러운 식당들이 널려 있다니 약간 의외다.

난 이 나라 사람들은 다들 전통 교리에 맞는 음식만 먹을 줄 알았지 ㅎ 어쨌건 눈에도 잘 띄고 만만한 것이 이런 곳이라 일단 들어온 것인데 젠장, 메뉴판이 그림도 없이 페르시어로만 써 있어서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심지어 가격도 페르시어로 써있어! ㅜㅠ  대충 가게에 있는 사진이나 뭐 그런 걸 보고 간신히 시킨 샌드위치와 콜라. 가격은 60000토만. 한 2달러 정도 되겠다.

어차피 가격을 알아보지 못하니까 바가지를 씌우는 게 아닐까 꽤 조마조마했었지. 이후로도 별다른 로컬 음식점은 잘 찾질 못해서 이란에 머무는 동안 대부분의 음식은 이렇게 햄버거 아니면 샌드위치로 떼우게 되었는데 패스트푸드를 별로 안 좋아하는 나에게는 별로 이상적인 환경은 아니었다.

 밥을 먹고 나오자 이제 마땅히 갈 데가 없다.

숙소에서 가져온 지도에 보면 가볼 만한 곳으로 몇 군데가 더 추천되어 있긴 했지만 하나 하나 찾아가는 것도 더럽게 귀찮고 또 뭐 별로 가고 싶어 보이는 곳도 없고 해서 어제 밤에 갔던 그 대단했던 곳, 그 모스크와 광장들이 있던 판타스틱한 장소를 다시 가기로 했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낮에 보는 거니까 조금 다를테고 설사 별 다를게 없어도 그렇게 멋진 곳은 한 번쯤 더 봐둘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동 중에 길에서 Exchange라고 써져 있는 곳을 발견했다.

안 그래도 어제 국경에서 환전한 돈은 얼마되지 않아서 새로 환전을 할 필요가 있었는데 잘 됐다.

 간밤에도 왔다 갔다 했던 길인데 그 때는 아마 어두워서 발견을 못했던 듯 싶다.

 이 환전소는 조낸 멋진 호텔 건물 입구에 있었는데 호텔과 붙어있는 만큼 환율을 약간 낮게 쳐주지 않을까 싶었지만 또 그런만큼 최소한 바가지는 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안으로 들어가 봤다.

  1달러에 2880리얄. 어제 국경에서 환전했을 때 1달러를 2850에 바꿔줬으니까 별 차이가 안 난다.

그래도 여기 일하는 누나들 두 명이 무진장 미인이고 또 되게 친절해서 기분이 좋아진 나는 여기서 환전을 했다.

조금 더 찾아보면 더 좋은 환전소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란의 골목 풍경.  그리고 어제 왔던 곳. 어제 저녁 보다는 좀 한산한 편이다.

별 걱정 없이 어제와 통과했던 게이트를 통해 짐 검사를 받고 입장을 하려는데 내 가방에 카메라가 있는 것을 본 검사관이 카메라는 들고 갈 수 없으니 짐 맡기는 곳에 맡기고 맨몸으로 다시 오라고 한다.

 뭐야 카메라는 못 들고 가는 거였어? 어쩐지.. 절대 사진 찍어도 될 분위기가 아니긴 하더만.. 그럼 어제는 왜 카메라가 있었는데 무사히 통과를 할 수 있었을까 생각을 해보니, 어제는 첫째로 사람들이 많아서 짐 검사하는 사람들이 정신이 너무 바빠서 좀 대충대충 하는 감이 있었고, 둘째로는 어제는 내가 가방을 안 갖고 오고 지갑과 여권, 카메라를 입고 있던 점퍼의 주머니 여기저기에 나눠 넣어 놓았었는데 몇 번 내 몸을 뒤지던 검사관이 사람들이 많은데 옷에 주머니까지 많자 그냥 통과 시켜줬던 것이 머리에 떠오른다.

 덕분에 난 카메라를 들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일테고.. 이렇게 생각해보니 어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건 정말 운이 좋았던 것이란 생각이 든다.

게다가 저녁 시간에! 저녁이 훨씬 이쁜데!  한데 짐을 맡기며 확인을 하니 여기는 단순한 모스크나 광장이 아니라 광장 옆에 각종 박물관이나 메드라사 등도 딸려 있는 것 같다.

 말하자면 무슨 종교 컴플렉스 같은 곳이었다고 하겠다.

어제는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인파를 따라서 입장을 했을 뿐인데.  5000리얄을 주고 박물관 입장권을 샀다.

1700

1800원 정도 하는 가격이다.

중앙 박물관이란다.

 카메라가 없으니까 내부 사진은 찍을 수 없었고 나처럼 머리가 나쁜 놈이 1년 반이나 지난 이 때의 기억을 자세히 하고 있을리는 없으니까 쓸 얘기는 없다.

단편적인 기억의 조각만 조금 머리 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밖으로 나와서 길거리에 서면 간신히 이렇게 모스크의 외벽만 조금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를 어제, 오늘 계속 구경하면서도 이곳이 뭔가 종교적인 곳이라는 것만 짐작을 했지 정확히 어떤 곳인지는 여기를 떠날 때까지 알지 못했는데 며칠이 지난 뒤 인터넷을 하다가 이 장소를 뭐라고 부르는지, 왜 이리 사람이 많이 오던 곳인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

 복잡한 얘긴하기 싫지만 그래도 간단하게 적으면, 예언자 마호메트가 세상을 떠난 뒤 이슬람은 '시아파'와 '수니파'로 나눠졌는데 이중 이란은 시아파의 길을 가게 되었다.

그 중 시아파의 8대 이맘(이슬람에서 일컫는 '종교적 지도자')이 되었던 '레자'라는 마호메트의 후계자가 어찌어찌하다 반대파 사람들에게 암살을 당해서 죽게 되자 곧 시아파의 성인으로 추앙을 받게 되는데 여기가 바로 그 이맘 레자의 유체가 묻혀 있는 곳이라는 거다.

 이름은 '이맘 레자의 묘' 또는 '이맘 레자 성원' 아니면 '홀리 시티' 정도인데 이후로 이 마슈하드가 시아파의 최대 성지가 되었으며 그 중에 이맘 레자의 유체가 있는 이 성원은 시아파라면 꼭 한 번은 방문하는, 종교적으로 매우 의미가 있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어쩐지 어제 들어가기 전에 보니까 한 무리의 여자들이 모여서 입구 앞에서 뭔가 기도를 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다들 경건해 보이더라니.. 나는 그냥 여기가 모스크나 광장인줄로만 알았는데 되게 중요한 곳이었구나. 이란에 도착한 날 이란에서 가장 중요하고 의미있는 곳을 개구리 뒷다리 잡은 격으로 방문한 셈이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성원 깊숙한 곳 어딘가에 바로 이맘 레자의 묘가 모셔져 있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내가 이 성원의 이야기를 알 리가 없었으므로 구경할 생각은 못하고 그냥 넘어갔다는 점이다.

 나중에 다른 여행객들 말을 들으니 묘가 있는 방은 무슬림이 아니면 안 들여 보내주니까 무슬림이라고 뻥을 쳐야만 들어갈 수 있다고도 하고.. 거길 가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들 이맘 레자의 관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리고 대성통곡들을 한다고 하는데.. 좀 아쉽게 되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언제까지 이 도시에 머물지 마음의 결단을 못 냈었는데 이맘 레자의 묘를 보고 난 이후로 그냥 오늘 여기를 뜨기로 마음을 먹었다.

여기서는 더 할 것도 없고 이쁜 여자는 구경도 못하겠고. (뭐 있었을 순 있겠지. 다들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차도르를 하고 있어서 내가 못 알아 본 거겠지)  앞으로 이란을 여행하며 종종 사먹게 되는 오렌지 주스.  원래는 지도를 보면서 기차역까지 걸어가려고 했는데 한 20분 걷다보니 지쳐서 그냥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 타서 지도에 나와 있는 기차역 그림을 보여주니 택시비로 100,000리얄을 요구한다.

 3달러 조금 넘는 돈인데 한국돈으로 계산하면 그리 비싼 게 아니라 생각해서 ok하고 타고 가긴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이 거리를 10만 리얄을 준 것은 늘 그렇듯이 더 비싸게 돈을 낸 것이었다.

 여기도 택시 기사들이 외국인한테 바가지를 먹이다니 좀 씁쓸하군. 그간 이란에 대해 좋은 얘기들을 워낙 많이 들어서 그런지, 이란은 강력한 종교국가니까 사람들도 교리에 충실한 생활을 할 거라 기대를 해서 그런 것인지, 이후로도 이란 여행을 하면서 현지인들의 비양심적 행태를 볼 때마다 다소 실망을 하게 되는 것이다.

 뭐 이란은 치안도 한국보다 좋은 정도고, 교육 수준도 한국보다 뛰어나고 천하의 미국에 개기고(?) 있는 나라인만큼 국민들이 자부심도 높고 그렇다고 들었었거든. 아 그리고 여기는 대학생들이 핸드폰 문자로 좋아하는 시를 주고 받는다는 낭만적인 말도 들었었지. 하지만 (고작 20일 조금 안 되는 기간이지만) 실제로 여행하고 나서는 이러한 말들 중 맞는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특히 기본적으로 여기도 자본주의 논리가 지배하는 나라란 것을 깨닫고 좀 실망한 부분도 있었단 얘기다.

  말이 길었지만 어쨌든 찾아온 맛샤드 기차역. 여기서 오늘 밤 테헤란행 기차표를 살 생각이다.

 다음 날 아침에 테헤란에 도착하는 야간 기차이니 숙박료도 아낄 수 있을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무진장 많은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표를 사야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다가 간신히 찾은 티켓 관리소. 여기에 들어가니 그래도 영어가 좀 통하는 여성분이 계셔서 오늘 밤 여길 뜨는 기차표를 살 수 있었다.

 기차표값은 40,0000리얄. 즉 14불 정도이다.

여기서 테헤란까지 12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이고 야간 침대 기차란 점을 생각하면 꽤 싼 편이다.

중국만해도 이 정도면 한 300위안(6만원 정도)은 받았을 거다.

 한데 막상 기차표를 받고 보니,  우라질..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간 러시아나 중국 등에서 기차를 탈 때도 현지어를 몰라서 이게 ?o미 싶은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래도 최소한 걔네들은 아라비아 숫자라도 쓰지 얘네는 아예 아라비아어를 쓰지 않아서 몇호차 몇호실인지도 전혀 모르겠다.

 아 몰랑. 기차 탈 때 사람들 붙잡고 물어보면 누가 알려주겠지 뭐. 밤기차인데 아직 저녁이 되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으므로 숙소에서 들고온 마슈하드 지도를 펴놓고 어디 갈만한데가 없을까 살펴봤다.

근데 뭐 별로 가고 싶은 곳이 보이진 않는다.

하긴 어제 본, 그 머냐 '이맘 레자 성원'이 너무 쎄긴 했어.   잠시 고민 뒤 택시를 잡아타고 도시 북쪽에 있는 무슨 쇼핑센터니 무역 센터니 하는 곳들을 가기로 했다.

택시비는 8만리얄. 한국 돈으로 2500원 정도. 이것도 처음에는 더 달라고 하는 걸 깎은거지. 아.. 꿈의 나라 이란에 와서도 이렇게 택시 흥정하는 게 일상이 될 줄이야. 왼쪽에 Almas라고 하는 곳과 오른쪽 하단의 Vesal이라고 하는 곳 두 개다.

쇼핑을 하려는 것은 아니고 그냥 두 군데가 붙어있기 때문에 들러보기로 한 것이다.

한 군데 갈 택시비로 두 군데 가서 보면 조차나.  ??하지만 막상 방문해봤더니 두 군데 다 볼 게 정말 더럽게 없었다.

하나는 그냥 우리나라 이마트 같은 곳인데 도심 중심가와 떨어진 위치라 그런지 손님들이 열 손에 꼽을 정도였고 무역 센터라는 나머지 한 군데는 여길 구경하느니 그냥 길거리에 앉아서 지나가는 강아지 구경하는 게 나을 뻔했다고 하겠다.

  여전히 기차 시간은 많이 남았고 딱히 할 게 없으니까 무작정 지하철역으로 가서 맛샤드 전철 투어를 한 번 해보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아무 역이나 제일 가까운 역으로 가서 표를 끊고 반대 방향 끝까지 가보는 것이다.

가다가 내리고 싶은 데가 있으면 내려서 한 번 걷고.  처음 이용해본 이란의 지하철.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에 머물 때를 제외하고는 이번 여행 내내 지하철을 타본 적이 없는데 이란에 오니까 맛샤드가 수도도 아닌데 이렇게 지하철이 다니고 있다.

역시 이란의 인프라는 꽤 높은 수준이군. (하고 멍청한 여행자가 평가해 본다.

)  이란 지하철 내부. 깔끔한 것이 꽤 괜찮다.

(고 멍청한 여행자가 평가해 본다.

) 이렇게 전철 투어를 하며 시간을 좀 보내다 보니 슬슬 해가 떨어지고 기차를 타러 갈 때가 되어 간다.

저녁을 먹고 호텔에 가서 짐을 찾아서 기차역으로 가면 되겠다.

하루 종일 걷다보니 힘들다.

  해서 숙소 건너편에 있는 샌드위치집에 들어가서 끼니를 떼웠다.

아침에도 샌드위치 이번에도 샌드위치. 아니 저거 햄버건가? 어쨌건.  옆에 태블릿에 켜져 있는 것은 만화책 드래곤볼을 20년 전쯤에 게임화했던 '드래곤볼 Z2'다.

원작 내용대로 샤이어인의 침공 때 죽어버린 피콜로를 살리기 위해서 손오반과 Z전사들이 나메크성으로 가는 스토리로 시작하는데 무진장 재미있기도 하고 어렸을 때 즐겨했던 게임이라 이번에 한국에서 태블릿을 가져오면서 다운 받아 온 것이다.

 저 태블릿에 대해 말하자면 쓸 말이 많은데, 처음에는 저게 여행 중에 굉장한 효용 가치가 있을 줄 알고 한국에서 챙겨온 것인데 막상 여행을 시작하고 보니 저걸로 블로그 포스팅을 하는 건 꿈도 못 꿀일이고 여러모로 쓸 데가 없어서 이렇게 게임이나 하는 데 사용하게 되었다.

 이번 여행 준비하면서 가장 쓸 데 없이 가져온 아이템 목록 1순위다.

값이 비싸서 버리지도 못하겠고 젠장. 암튼 이렇게 초딩스럽게 게임을 하며 샌드위치를 먹고 계산을 하려는데 주방장에서 일하는 녀석들 이하 스태프들 3

4명이 모여서 날 보면서 킥킥대고 있다.

 짜식들이 기껏해야 나이가 20살 안팍인 것 같은데 아까 가게에 들어와서 주문할 때부터 날 무슨 원숭이 보듯이 한 걸 연장자로서 넓은 마음을 가지고 못 본척 했는데 이 녀석들, 내가 식사를 하는 내내 멀리 모여서 날 보면서 숙덕대고 있던 모양이다.

 왜 웃냐고 물어보니 그 중에 영어를 할 줄 아는 녀석이 하나 나서서 내 신발과 점퍼를 가리키며 '어디 에베레스트 산이라도 올라가느냐'고 묻는다.

 응? 내 복장이 어때서? 여행 초반만 하더라도 여름이어서 주로 샌달에 반팔을 입고 다니다가 중앙아시아에서 10월을 맞으면서 한국에서 챙겨온 세미 등산화와 아웃도어 패딩을 거의 유니폼처럼 항상 착용을 하고 다녔고 이 날도 물론 그렇게 입고 있었는데 그게 이 소년들에게는 좀 신기하게 보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난 연장자로서 마음이 넓으니까 한 번 피식 웃어주고는 깔끔하게 돈 계산을 하고 나왔다.

  숙소로 돌아와서도 시간이 남아서 리셉션에 있는 소파에 앉아서 책도 보고 리셉션리스트와 농담 따먹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사진에 보이는 녀석이 그 리셉션리스트 녀석인데 나에게 자꾸 prostitute들을 소개해 줄테니 기차 시간까지 시간을 보내라고 은근히 권했다.

 물론 난 이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거절을 하면서도 '너네 나라에 이런 거 불법인데 걸리면 너 큰일 나는거 아니냐'라고 물었는데 녀석은 절대 걸리지 않는다고 안심하라고 얘기를 했다.

아마도 호텔에서 그런 여자들을 소개시켜 주는 것이 알게 모르게 성행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란의 세속적인 면이 한 번 더 들어나는 순간이었다.

 어쨌건 그런 청을 거절하고 앉아서 책을 보고 있는데 어딘가에서 사람들이 뭐라뭐라 하는 소리가 들린다.

처음에는 나랑 상관 없는 일이라 생각해서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소리가 점점 커지고 모기가 귓전에서 앵앵거리는 것처럼 거슬리길래 고개를 들어서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니 2층 계단으로 올라가는 문 뒤에 숨은 남자 녀석들 두 명이 나에게 "헬로 헬로"를 연발하고 있는 것이었다.

 10대 중반 정도 된 걸로 보아 학생들인데 이란에서는 보기 쉽지 않은 잘생긴 외국인 청년을 발견하고는 수업 시간에 배운 영어를 던지며 내 반응을 보고 있던 것 같다.

 보던 책을 덮고 녀석들을 향해 큰 소리로 "안녕, 너희들 나한테 할 말 있니? 그럼 거기 숨어있지 말고 이리 나와서 얘기해주지 그러니?"라고 하자 말을 알아들은 건지 어쩐 건지 "No, No"하며 2층으로 우당탕 도망간다.

 뭐 여행하는 내내 현지인들로부터 원숭이 취급을 받아 오긴 했지만 이란은 더욱 특별히 사람들이 외국인을 신기하게 여기는 것 같다.

아무래도 외국인들이 다른 서방 국가들처럼 많지 않기 때문이겠지.  기차 시간이 다 되어서 리셉션리스트 녀석이 불러준 택시를 타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녀석은 끝까지 은근한 제안을 했는데 내가 계속 거절하자 가격이 200불에서 50불까지 내려갔었더랬다.

물론 난 그런 것 따위에는 전혀 관심도 없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기차역에 앉아서 잠시 대기를 하고 앉아 있는데 역시 사람들이 수도 없이 쳐다 보는 것이 느껴진다.

여자들은 그냥 지나가면서 흘낏 훔쳐보고 마는데 남자들, 특히 20대 초반까지의 어린 녀석들은 싱글싱글 웃으며 나를 계속 쳐다보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 상황이 펼쳐진 것이라 별로 달갑지가 않다.

 그냥 모른 척하고 앉아서 시간을 기다는데 뭐라뭐라 외치는 소리들이 들린다.

방금 전에 호텔에서 겪은 것처럼 말이다.

오늘은 종일 걷느라 좀 피곤해서 귀에 들리는 소리가 짜증난다고 생각하면서도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이 소음도 절대로 그치지를 않는다.

 결국 그 소리 때문에 나는 짜증 지수가 피곤 지수를 넘어갔고 곧바로 일어나서 소리가 나는 쪽을 무섭게 째려봤다.

 한 20살이나 먹었을까? 5미터쯤 떨어진 의자에 앉아 있었던 남자 녀석들 3명이 돌아가며 나를 향해 뭐라뭐라 부르던 중이었다.

아마 차례대로 나를 불러서 누구 말에 내가 반응하는지 두고 보려고 했던 것 같은데,  아무튼 내가 쳐다보는 순간에 나를 부르던 녀석과 눈이 딱 마주쳤고 녀석은 재빨리 고개를 돌려서 머리를 숙이고는 내가 눈을 부릅뜨고 봤던 한 3

4초 동안 고개를 들지 않았다.

녀석 옆의 나머지 두 녀석은 싱글대며 보고 있고. 그간 다른 나라에서는 내가 아무리 신기해도 그냥 쳐다보고 마는 정도였는데 (타지키스탄 제외. 이 나라도 사람 좀 짜증나게 하는 게 잇음) 이란은 무슨 동물원 사자한테 돌 던져서 어떻게 반응하나 쳐다보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샌드위치집, 숙소, 기차역까지 3연타로 현지인들의 지나친 관심을 받다보니 입에서 "x발 짜증나네"이라는 욕이 저로 나온다.

난 그렇게 성인군자가 아니니까. **나중에 이란 여행을 하면서 알게 된 건데 이 때 기차역에서 이들 병신 트리오가 나를 부르며 짜증나게 했던 말은 바로 "칭"이라는 단어였다.

영어로 표기하면 Qieng 정도 될까? 페르시어로 '중국'이라는 뜻인데 녀석들이 보기에 내가 중국인처럼 생겼으니까 계속 '칭' '칭'하고 불러본 것이라 하겠다.

 근데 부를 때 그냥 부르는게 아니라 뒷부분의 의성어를 길게 늘리며 '치이



잉' 하고 불러대는 것이 조롱조의 느낌이 나서 여행하는 내내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짜증 지수가 올라 갔었음을 고백한다.

  어쨌건 도착한 테헤란행 기차. 이번 여행은 대부분 버스로 이동을 했는데 기차를 타는 것은 초반에 중국의 란저우에서 시닝으로 이동했을 때 이후 처음이라 제법 설레는 느낌까지 난다.

시닝 이후 모든 중국 도시와 중앙아시아의 나라에서는 차량으로만 이동을 했다.

 여기서 테헤란은 거리가 좀 되므로 도착시간은 내일 아침 정도가 될 것이다.

밤에 도착하면 또 이동하는 내내 긴장을 탔을텐데 아침에 도착할 예정이라니 마음이 편하다.

기차표를 본다고 해서 내 자리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으므로 승객 중 한 명을 붙잡고 티켓을 보여줘서 내 자리를 찾아 왔다.

   기차 내부. 침대 기차니까 복도 옆에 이렇게 문이 달려 있다.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야간 기차의 백미인 4인실이 나오는 것이다.

  내부. 물과 음료수, 차, 간단한 먹을 거리가 비치되어 있고 잠시 뒤에는 승무원이 들어와서 먹을 걸 더 주고 갔다.

서비스가 꽤 괜찮은 편이다.

의자는 2개씩 서로 마주보게 되어서 4명이 앉아 갈 수 있는데 나중에 잘 때는 중간의 간이 탁자를 올리고 의자를 내리면 침대가 된다.

  이 세 분이 나와 함께 이 객실에서 밤을 보낼 분들이다.

모두 테헤란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왼쪽 두 분은 부부이고 오른쪽의 약간 젊은 누님은 혼자였다.

다들 나를 외국인이라고 친절히 맞아 주셨는데 다행히 저 누님이 영어를 썩 잘하셨다.

 누님이 중간에서 계속 통역을 해주어서 3분과 모두 대화를 하며 올 수 있었다.

부부 중 남편분은 학교 선생님인데 이번에 퇴직을 했다고 하고 누님은 예전에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오래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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