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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평화상



이 유서깊은 목포의 상징 삼학도에 2013년 6월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부지 15,600㎡, 연면적 4,677㎡ 2층 규모의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은 김대중 대통령의 생애를 통해 민주주의?인권?평화의 의미와 가치를 전하며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까지의 모습을 객관적 사실과 사료에 의거 전시하고 있다.

또한 체험적 역사교육의 장으로서 시민들이 '민주주의?인권?평화, 화해와 용서'로 대표되는 김대중 정신을 공유한다.

?기념관 관람료는 무료이며 월요일은 휴장한다.

김대중노벨평화상 기념관 ?1층은 로비, 영상실, 카페, 수장고,기념품샵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 중앙벽면에 있으며 김대중 대통령께서 사용했던 승용차와 일생에 대한 영상을 관람 할 수 있다.

??2층은 로비(▲)와 4개의 전시실로 이루어 졌다.

? 노벨평화상 상장(▲)과 기념메달?(▼)? 제1전시실은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 당시" "국내·외 축하 분위기"를 그래픽으로 소개하고제2전시실은 노벨상의 가치와 동아시아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한 김대중 대통령의 업적과 수상 사유,제3전시실은 ?김대중 대통령의 하의도 출생에서부터 정치 입문과정까지를 관련 사료와 그래픽으로 소개한다.

? ?이런 기념촬영도 가능하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제15대 대통령이었으며 2000년에는 한반도와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신장, 햇볕정책을 통한 남북 화해·협력관계 발전 그리고 세계 평화를 위해 헌신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애는  민주주의·인권·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삶이었다.

5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불의에 항거하며 '행동하는 양심'의 삶을 실천했다.

또한 자신을 탄압하고 모함했던 이들과 화해하고 용서하는 용기 있는 자의 면모를 보였다.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홈페이지에서>?<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삼학도에서 만나는 행동하는 양심 김대중 정신/목포여행>이 포스트는 목포시 초청으로 목포의 문화 관광 먹거리를 알리기 위하여 진행한 팸투어 참여 후기입니다.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운영시간_ 09:00

 18:00   휴관일_ 1월 1일,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정부에서 지정하는 공휴일인 경우는 다음날)               목포시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여 정하는 날    관람요금_ 무료   위치_ 전라남도 목포시 삼학로92번길 68(산정동)   전화_ 061-245-5660   홈페이지_  www.kdjnpmemorial.or.kr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은 목포 삼학도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이곳에 건립하게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유년시절부터 정계에 입문하기까지 활동한 곳이 목포이며 그의 철학과 신념은 목포에서 활동하며 태동되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은 4개의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1층부터 둘러보겠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 후 사용한 승용차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에는 이희호 여사가 3년 8개월간 사용한 후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에 기증하였습니다.

 ? 기념품샵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도서와 여러가지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구요. ?전시실이 있는 2층으로 가보겠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의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의 방명록인 '평화의 울림' 키오스크에 김대중 대통령께 전하는 마음의 편지를 써보세요. 전송된 메시지는 전방에 있는 큰 스크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 1 전시실은 2000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개최된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시상 모습을 재현하고, 당시 해외 언론 보도 내용을 그래픽과 영상으로 소개하고 있는데요.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의 모습을 밀랍인형을 제작한 포토존...  제 2 전시실은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사유를 알아보고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 그의 업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인권신장을 향한 40여년에 걸친 노력과 6·15 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 내며 한반도 긴장완화 등 국제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12월 10일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노벨상의 탄생 과정과 역대 수상자들의 에피소드, 선정과정에 대해서도 알 수 있으며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단체에 대한 소개도 볼 수 있습니다.

 ? 제 3 전시실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출생에서 부터 정치 입문과정,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겪은 고난과 역경의 시간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외딴섬, 하의도 소작농의 아들이 탁월한 언변을 소유한 야당 정치인이 되기까지..  ?옥중에서도 자기발전을 위한 독서를 하는 모습을 밀랍인형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흉부동상과 함께 김대중 대통령을 추모하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는데요. 벽면에는 생전에 김대중 대통령이 남긴 어록을 통해 그의 철학과 정신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제 4 전시실은 대통령에 당선되어 5년간의 임기동안 그가 남긴 정치적 유산을 살펴보고 대한민국 민주주의 기틀을 마련한 과정을 영상과 이미지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입었던 옷을 비롯해서 구두, 양말, 넥타이, 벨트, 향수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대통령이 되어보는 체험공간도 마련되어 있는데요. 미래의 대통령을 꿈꾸며 집무실을 체험하고 체험사진을 촬영해서 이메일로 발송 할 수 있습니다.

? ?한국인 최초 노벨평화상 수상자 김대중 대통령의 정신을 공유할 수 있는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목포에 간다면 꼭 둘러보고 보세요.      상기 팸투어는 목포시에서 초청하여 목포시 문화 관광 먹거리를 알리기 위하여 진행하는 팸투어입니다 총 96회의 전체 수상자 수 : 129  2015년 현재까지, 개인은 103명, 단체는 26개가 수상. 단, 국제적십자위원회가 3번 수상 (1917년,1944년,1963년), UNHCR이 2번 수상 (1954년,1981년), 따라서 실제 단체의 개수는 23개.수상자가 1명(개)인 경우 vs 여러 명(개)인 경우 수상자의 평균 연령: 61세  

대륙별 분포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대륙별 분포. 역대 수상자 전체를 보면 서유럽과 북미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21세기 들어서면서부터는 아시아,아프리카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남성중심성과 더불어 백인/서구중심성은 노벨평화상 비판에 빠지지 않던 단골 메뉴다.

1901-2015년 사이 전체 수상자 중 서유럽과 북미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의 약 65%에 달한다.

가장 많은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도 미국(21명), 프랑스(9명), 영국(7명) 순이다.

특히 초기 50년간 북미와 서유럽이 아닌 곳에서 수상자가 배출된 경우는 단 한 번뿐이었다(1936년 아르헨티나의 C. 라마스). 아프리카인이 최초로 선정된 것은 1960년, 아시아인은 1974년에 와서다.

이러한 상황은 1970년대 인권의 시기에 이르러 남성중심성과 더불어 개선되기 시작한다.

특히 2000년대(2001-2015)에 와서는 아시아인과 아프리카인의 수상 비율이 73%, 미국과 유럽은 26.6%로 완전히 역전되었다.

‘최초의’ 수상자들

 

진기한 기록들

 

여성 수상자

1901년부터 2015년까지 총 103명의 수상자 중 여성수상자는 16명으로 전체의 15.5%에 불과하다.

특히 처음 75년간 여성수상자는 단 3명으로, 그마저 모두 유럽과 미국 출신이었다.

(이는 노벨위원회 구성과도 관련된다.

약 50년간 노벨위원회는 단 1명의 여성위원도 갖지 못했다.

현재는 총 5명 중 3명이 여성이다.

) 하지만 1970년대 인권의 시기를 거쳐 상황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00년대(2001-2015)만 따졌을 때 여성 비율은 40% (총 15명 중 6명)로 과거에 비해 현저히 높아졌다.

 

가장 논란이 많았던 상

파리 평화협상 중 레득토(오른쪽)와 키신저(왼쪽) 1973년 미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와 북베트남의 리더 레 득 토의 수상 결정은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노벨평화상의 역사 중에서도 가장 논란이 많았던 경우로 꼽힌다.

두 사람은 같은 해 파리에서 이루어진 베트남 평화협정을 성사시킨 공로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두 전쟁 당사자 간의 다분히 정치적인 협상에 노벨평화상이 수여된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경악했다.

사람들은 nobel 평화상이 아니라, 전쟁상 또는 ‘ig-noble’ 평화상이라고 조롱했다.

뿐만 아니라 레 득 토는 아직 베트남에 평화가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상을 거부했다.

그 결과 그는 수상자로 지명된 최초의 아시아인이자, 최초의 공산주의자인 동시에 이를 거부한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사람이라는 영예(?)를 얻는다.

키신저는 수상을 허락했지만 시상식에 나타나지 않았고, 1975년 북베트남의 승리 이후 노벨평화상을 반납하고자 했으나, 거부당했다.

이 사건으로 노벨위원회 위원 2명이 위원직을 사임했다.

받았어야 했으나 받지 못한 사람들: 간디와 톨스토이

이미지 목록  인도의 간디(왼쪽)과 러시아의 톨스토이(오른쪽)은, 의외로 노벨평화상 수상자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평화인물들이다.

ⓒ Unknown / http://lj.rossia.org/users/john_petrov/849786.html 당연히 노벨평화상을 받았을 거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인도의 간디와 러시아의 톨스토이다.

간디는 무려 5번이나 후보명단에 이름을 올리고도 끝내 받지 못했다.

(1937-39, 1947-48년) 노벨평화상은 물론, 노벨문학상의 강력한 후보이기도 했던 톨스토이는 평화상도, 문학상도 받지 못했다.

특히 ‘평화와 비폭력의 아이콘’인 간디가 노벨평화상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 상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두고두고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사실 수상이 유력시됐던 1948년에도 간디가 상을 받지 못한 것은 발표 몇 달 전 그가 암살당했기 때문이다.

당시 노벨위원회는 “살아 있는 사람 중에 적합한 후보자가 없다”며 수상자 없음을 선언했다.

하지만 1961년 스웨덴 출신이자 노벨재단 이사장 아들이었던 D. 함마르셸드에게는 사후수상이 허락된 바 있다.

또 위원회가 사후수상 불가를 정식으로 공식화한 것도 간디 사후 거의 30년이 지난 1974년이었다.

이를 감안하면 간디의 수상실패를 그의 갑작스런 죽음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당시 노벨위원회는 간디 지지자와 반대자로 나뉘었다.

후자는 비폭력 원칙에도 불구하고 간디의 행동이 결과적으로 더 큰 폭력과 유혈을 야기했다는 점 (특히 인도-파키스탄 분리 독립과 관련해), 그가 지나친 인도 민족주의자라는 점 등을 근거로 간디의 수상을 반대했다고 한다.

사실 여부보다 더 문제적인 것은, 노벨위원들의 그런 견해가 노르웨이와 영국 간의 전통적인 우호관계, 당시의 백인우월주의나 서구중심주의와 결코 무관할 수 없다는 점이다.

[노벨평화상] 알아보자


간디의 사례는 ‘노벨평화상의 가장 큰 실수’, 또는 ‘노벨평화상의 수치’로 불린다.

이런 사람들도 노벨평화상 후보에?

히틀러, 스탈린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히틀러는 1939년 스웨덴 국회의원에 의해, 스탈린은 2차대전을 종식시킨 공로로 1945년과 1948년 두 차례나 후보에 올랐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한국의 전두환도 추천된 바 있다.

그 외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하지 못한 유명인으로는 윈스턴 처칠(대신 처칠은 2차대전 회고록으로 헤밍웨이를 제치고 1953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독일의 콘라드 아데나워, 아르헨티나의 후안 & 에바 페론, 세계 평화학의 아버지 요한 갈퉁 등이 있다.

노벨평화상 역대 수상자 (1901-2015)

  참고문헌 · www.nobelprize.org· www,nobelpeaceprize.org· ?. Stenersen, I. Libæk, A. Sveen, 『The Nobel Peace Prize : One Hundred Years for Peace』 (Oslo: Cappelen, 2001) · G. Lundestad, <The Nobel Peace Prize 1901-2000>, Nobelprize.org. Nobel Media AB 2014. Web. 21 Aug 2015. · C. Toffolo, R. Vandenbroucke, R. P. Alford, N. J. Young, <Nobel Peace Prize> in J. Nigel ed.,「The Oxford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Peace」, vol. 1, USA: Oxford University Press, 2010. · B. L. Mitchell-Green, <Peace Prizes> in L. Kurts ed.,「Encyclopedia of Violence, Peace & Conflict」Oxford: Elsevier, 2008 이미지출처 · J.로트블랫, ⓒ The Norwegian Nobel Institute· 랠프 번치, wikimedia ⓒ U.S. Information Agency.· 사토 에이사쿠, wikimedia ⓒNijs, Jac. de / Anefo· UNHCR, wikimedia ⓒUNHCRflag.svg: *UN_refugee.jpg: UNHCR / UNHCRflag.svg: *UN_refugee.jpg: UNHCR / uploaded by: Montgomery (talk) 16:26, 14 July 2011 (UTC)· 아웅 산 수 치, wikimedia ⓒClaude TRUONG-NGOC· 류사오보, flickr ⓒBlatant World· 베티 윌리암스, wikimedia ⓒhttp://www.centersofcompassion.org· 메이리드 코리건, wikimedia ⓒMairead_Corrigan_Gaza.jpg: Free Gaza movement / derivative work: Materialscientist· 마더 테레사, wikimedia ⓒEvert Odekerken· 리고베르타 멘추, wikimedia ⓒSurizar, cropped by Jen· 조디 윌리엄스, wikimedia ⓒJustin Hoch photographing for Hudson Union Society· 시린 에바디, wikimedia ⓒPersianDutchNetwork· 왕가리 마타이, wikimedia ⓒFredrick Onyango· 레이마 그보위 wikimedia ⓒJon Styer/Eastern Mennonite University· 타와쿨 카르만, wikimedia ⓒHarrywad· 말랄라 우사프자이, wikimedia ⓒRussell Watkins/Department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세계평화인물열전' 시리즈 보기 (2/7)

노벨평화상 노벨평화상: 기록과 역대수상자 베르타 폰 주트너 제인 애덤스 카를 폰 오시에츠키 사베드라 라마스 퀘이커 이문영 |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HK교수서울대 노어노문학과에서 석사를, 모스크바국립대학에서 대화주의 사상가 M. 바흐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러시아 및 탈사회주의권 문화연구, 탈경계 연구, 평화인문학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해오고 있다.

최근 저서로는 『평화인문학이란 무엇인가』 (공저, 아카넷, 2013), 『재난과 평화: 폐허를 딛고 평화를 묻다』(공저, 아카넷, 2015), 『 동아시아-동북아-신동북아』 (공저, 도서출판네오, 2015),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21세기 폭력의 패러다임과 폭력/비폭력의 경계"(『평화학연구』 16권 1호, 2015), “형제국가들의 역사전쟁: 우크라이나 사태와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의 기원” (『역사비평』 112, 2015), 등이 있다.

 이 유서깊은 목포의 상징 삼학도에 2013년 6월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부지 15,600㎡, 연면적 4,677㎡ 2층 규모의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은 김대중 대통령의 생애를 통해 민주주의?인권?평화의 의미와 가치를 전하며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까지의 모습을 객관적 사실과 사료에 의거 전시하고 있다.

또한 체험적 역사교육의 장으로서 시민들이 '민주주의?인권?평화, 화해와 용서'로 대표되는 김대중 정신을 공유한다.

?기념관 관람료는 무료이며 월요일은 휴장한다.

김대중노벨평화상 기념관 ?1층은 로비, 영상실, 카페, 수장고,기념품샵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 중앙벽면에 있으며 김대중 대통령께서 사용했던 승용차와 일생에 대한 영상을 관람 할 수 있다.

??2층은 로비(▲)와 4개의 전시실로 이루어 졌다.

? 노벨평화상 상장(▲)과 기념메달?(▼)? 제1전시실은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 당시" "국내·외 축하 분위기"를 그래픽으로 소개하고제2전시실은 노벨상의 가치와 동아시아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한 김대중 대통령의 업적과 수상 사유,제3전시실은 ?김대중 대통령의 하의도 출생에서부터 정치 입문과정까지를 관련 사료와 그래픽으로 소개한다.

? ?이런 기념촬영도 가능하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제15대 대통령이었으며 2000년에는 한반도와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신장, 햇볕정책을 통한 남북 화해·협력관계 발전 그리고 세계 평화를 위해 헌신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애는  민주주의·인권·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삶이었다.

5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불의에 항거하며 '행동하는 양심'의 삶을 실천했다.

또한 자신을 탄압하고 모함했던 이들과 화해하고 용서하는 용기 있는 자의 면모를 보였다.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홈페이지에서>?<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삼학도에서 만나는 행동하는 양심 김대중 정신/목포여행>이 포스트는 목포시 초청으로 목포의 문화 관광 먹거리를 알리기 위하여 진행한 팸투어 참여 후기입니다.

총 96회의 전체 수상자 수 : 129  2015년 현재까지, 개인은 103명, 단체는 26개가 수상. 단, 국제적십자위원회가 3번 수상 (1917년,1944년,1963년), UNHCR이 2번 수상 (1954년,1981년), 따라서 실제 단체의 개수는 23개.수상자가 1명(개)인 경우 vs 여러 명(개)인 경우 수상자의 평균 연령: 61세  

대륙별 분포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대륙별 분포. 역대 수상자 전체를 보면 서유럽과 북미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21세기 들어서면서부터는 아시아,아프리카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남성중심성과 더불어 백인/서구중심성은 노벨평화상 비판에 빠지지 않던 단골 메뉴다.

1901-2015년 사이 전체 수상자 중 서유럽과 북미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의 약 65%에 달한다.

가장 많은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도 미국(21명), 프랑스(9명), 영국(7명) 순이다.

특히 초기 50년간 북미와 서유럽이 아닌 곳에서 수상자가 배출된 경우는 단 한 번뿐이었다(1936년 아르헨티나의 C. 라마스). 아프리카인이 최초로 선정된 것은 1960년, 아시아인은 1974년에 와서다.

이러한 상황은 1970년대 인권의 시기에 이르러 남성중심성과 더불어 개선되기 시작한다.

특히 2000년대(2001-2015)에 와서는 아시아인과 아프리카인의 수상 비율이 73%, 미국과 유럽은 26.6%로 완전히 역전되었다.

‘최초의’ 수상자들

 

진기한 기록들

 

여성 수상자

1901년부터 2015년까지 총 103명의 수상자 중 여성수상자는 16명으로 전체의 15.5%에 불과하다.

특히 처음 75년간 여성수상자는 단 3명으로, 그마저 모두 유럽과 미국 출신이었다.

(이는 노벨위원회 구성과도 관련된다.

[노벨평화상] 와오.



약 50년간 노벨위원회는 단 1명의 여성위원도 갖지 못했다.

현재는 총 5명 중 3명이 여성이다.

) 하지만 1970년대 인권의 시기를 거쳐 상황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00년대(2001-2015)만 따졌을 때 여성 비율은 40% (총 15명 중 6명)로 과거에 비해 현저히 높아졌다.

 

가장 논란이 많았던 상

파리 평화협상 중 레득토(오른쪽)와 키신저(왼쪽) 1973년 미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와 북베트남의 리더 레 득 토의 수상 결정은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노벨평화상의 역사 중에서도 가장 논란이 많았던 경우로 꼽힌다.

두 사람은 같은 해 파리에서 이루어진 베트남 평화협정을 성사시킨 공로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두 전쟁 당사자 간의 다분히 정치적인 협상에 노벨평화상이 수여된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경악했다.

사람들은 nobel 평화상이 아니라, 전쟁상 또는 ‘ig-noble’ 평화상이라고 조롱했다.

뿐만 아니라 레 득 토는 아직 베트남에 평화가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상을 거부했다.

그 결과 그는 수상자로 지명된 최초의 아시아인이자, 최초의 공산주의자인 동시에 이를 거부한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사람이라는 영예(?)를 얻는다.

키신저는 수상을 허락했지만 시상식에 나타나지 않았고, 1975년 북베트남의 승리 이후 노벨평화상을 반납하고자 했으나, 거부당했다.

이 사건으로 노벨위원회 위원 2명이 위원직을 사임했다.

받았어야 했으나 받지 못한 사람들: 간디와 톨스토이

이미지 목록  인도의 간디(왼쪽)과 러시아의 톨스토이(오른쪽)은, 의외로 노벨평화상 수상자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평화인물들이다.

ⓒ Unknown / http://lj.rossia.org/users/john_petrov/849786.html 당연히 노벨평화상을 받았을 거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인도의 간디와 러시아의 톨스토이다.

간디는 무려 5번이나 후보명단에 이름을 올리고도 끝내 받지 못했다.

(1937-39, 1947-48년) 노벨평화상은 물론, 노벨문학상의 강력한 후보이기도 했던 톨스토이는 평화상도, 문학상도 받지 못했다.

특히 ‘평화와 비폭력의 아이콘’인 간디가 노벨평화상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 상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두고두고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사실 수상이 유력시됐던 1948년에도 간디가 상을 받지 못한 것은 발표 몇 달 전 그가 암살당했기 때문이다.

당시 노벨위원회는 “살아 있는 사람 중에 적합한 후보자가 없다”며 수상자 없음을 선언했다.

하지만 1961년 스웨덴 출신이자 노벨재단 이사장 아들이었던 D. 함마르셸드에게는 사후수상이 허락된 바 있다.

또 위원회가 사후수상 불가를 정식으로 공식화한 것도 간디 사후 거의 30년이 지난 1974년이었다.

이를 감안하면 간디의 수상실패를 그의 갑작스런 죽음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당시 노벨위원회는 간디 지지자와 반대자로 나뉘었다.

후자는 비폭력 원칙에도 불구하고 간디의 행동이 결과적으로 더 큰 폭력과 유혈을 야기했다는 점 (특히 인도-파키스탄 분리 독립과 관련해), 그가 지나친 인도 민족주의자라는 점 등을 근거로 간디의 수상을 반대했다고 한다.

사실 여부보다 더 문제적인 것은, 노벨위원들의 그런 견해가 노르웨이와 영국 간의 전통적인 우호관계, 당시의 백인우월주의나 서구중심주의와 결코 무관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간디의 사례는 ‘노벨평화상의 가장 큰 실수’, 또는 ‘노벨평화상의 수치’로 불린다.

이런 사람들도 노벨평화상 후보에?

히틀러, 스탈린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히틀러는 1939년 스웨덴 국회의원에 의해, 스탈린은 2차대전을 종식시킨 공로로 1945년과 1948년 두 차례나 후보에 올랐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한국의 전두환도 추천된 바 있다.

그 외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하지 못한 유명인으로는 윈스턴 처칠(대신 처칠은 2차대전 회고록으로 헤밍웨이를 제치고 1953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독일의 콘라드 아데나워, 아르헨티나의 후안 & 에바 페론, 세계 평화학의 아버지 요한 갈퉁 등이 있다.

노벨평화상 역대 수상자 (1901-2015)

  참고문헌 · www.nobelprize.org· www,nobelpeaceprize.org· ?. Stenersen, I. Libæk, A. Sveen, 『The Nobel Peace Prize : One Hundred Years for Peace』 (Oslo: Cappelen, 2001) · G. Lundestad, <The Nobel Peace Prize 1901-2000>, Nobelprize.org. Nobel Media AB 2014. Web. 21 Aug 2015. · C. Toffolo, R. Vandenbroucke, R. P. Alford, N. J. Young, <Nobel Peace Prize> in J. Nigel ed.,「The Oxford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Peace」, vol. 1, USA: Oxford University Press, 2010. · B. L. Mitchell-Green, <Peace Prizes> in L. Kurts ed.,「Encyclopedia of Violence, Peace & Conflict」Oxford: Elsevier, 2008 이미지출처 · J.로트블랫, ⓒ The Norwegian Nobel Institute· 랠프 번치, wikimedia ⓒ U.S. Information Agency.· 사토 에이사쿠, wikimedia ⓒNijs, Jac. de / Anefo· UNHCR, wikimedia ⓒUNHCRflag.svg: *UN_refugee.jpg: UNHCR / UNHCRflag.svg: *UN_refugee.jpg: UNHCR / uploaded by: Montgomery (talk) 16:26, 14 July 2011 (UTC)· 아웅 산 수 치, wikimedia ⓒClaude TRUONG-NGOC· 류사오보, flickr ⓒBlatant World· 베티 윌리암스, wikimedia ⓒhttp://www.centersofcompassion.org· 메이리드 코리건, wikimedia ⓒMairead_Corrigan_Gaza.jpg: Free Gaza movement / derivative work: Materialscientist· 마더 테레사, wikimedia ⓒEvert Odekerken· 리고베르타 멘추, wikimedia ⓒSurizar, cropped by Jen· 조디 윌리엄스, wikimedia ⓒJustin Hoch photographing for Hudson Union Society· 시린 에바디, wikimedia ⓒPersianDutchNetwork· 왕가리 마타이, wikimedia ⓒFredrick Onyango· 레이마 그보위 wikimedia ⓒJon Styer/Eastern Mennonite University· 타와쿨 카르만, wikimedia ⓒHarrywad· 말랄라 우사프자이, wikimedia ⓒRussell Watkins/Department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세계평화인물열전' 시리즈 보기 (2/7)

노벨평화상 노벨평화상: 기록과 역대수상자 베르타 폰 주트너 제인 애덤스 카를 폰 오시에츠키 사베드라 라마스 퀘이커 이문영 |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HK교수서울대 노어노문학과에서 석사를, 모스크바국립대학에서 대화주의 사상가 M. 바흐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러시아 및 탈사회주의권 문화연구, 탈경계 연구, 평화인문학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해오고 있다.

최근 저서로는 『평화인문학이란 무엇인가』 (공저, 아카넷, 2013), 『재난과 평화: 폐허를 딛고 평화를 묻다』(공저, 아카넷, 2015), 『 동아시아-동북아-신동북아』 (공저, 도서출판네오, 2015),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21세기 폭력의 패러다임과 폭력/비폭력의 경계"(『평화학연구』 16권 1호, 2015), “형제국가들의 역사전쟁: 우크라이나 사태와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의 기원” (『역사비평』 112, 2015), 등이 있다.

  오늘의 포스팅.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목포역에서 택시비가 얼마나왔는지 사실 기억은 안나지만 얼마 안나왔어요.!지도보기50m� NAVER Corp.??? /OpenStreet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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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VER Corp. /OpenStreetMap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전라남도 목포시 산정동 1481상세보기지도보기지도 첨부해드릴게요. 위치는 전라남도 목포시 삼학로92번길 68                                 전라남도 목포시 산정동 1481광주언니는 목포역 앞의 목포 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이동했어요.택시비가 기억은 안나지만 5천원 안으로 기억해용.건물 외관여기가 바로 "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입니다.

건물 지은지가 얼마 안된 것처럼 깨끗한 외관과 내부디자인이 아주 첨단 + 신식이에요.그리고 무료관람이라는 사실!박물관이나 역사관을 좋아하는 광주언니에겐 안성맞춤이디요.전시관은 2층입니다.

건물 1층에는 카페테리아와 인포메이션 데스크가 있으며전시관은 2층입니다.

우측에 모니터 보이나요 ?그 모니터를 터치터치해서 글을 써서 전송을 누르시면 앞에 빔프로젝트 화면에 그 글이 뜹니다!(광주언니가 뭐라 쓴지는 비밀)전시실은 되게 넓고 깔끔하면서 정리가 잘 되어 있음.전시실은 깔끔하면서도 볼 것이 많았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것들의 거의 다 있는 전시관.단순히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기념에 국한되지 않으며,민주주의 실현에 이바지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활동과 일생을 기록하였더라구요.또한 전시뿐만 아니라 일생에서 큰 사건들은 재연을 통한 영상을 관람할 수 있게하여이해가 쏙쏙 되서 좋았어요.영상은  대체로 10분 안팎의 시간이지만 저는 사람도 없고 해서 바닥에 앉아서 봤어요.노벨상의 모습.그렇다고 너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야기에 치중된 전시관은 아니에요." 노벨상 " 에 대해서도 간단히 전시가 되어있어요.노벨상의 종류와 노벨 수상자들의 특이한 이력, 그리고 노벨에 대한 정보까지.저는 특이한 이력중에 부부가 노벨 수상자인 경우와퀴리 일가의 노벨상 수상이 가장 신기했어요. 한 가족들이 휩쓸었다는.그밖에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받은 노벨상, 노벨상 수상 당시의 영상,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영상 등 많은 볼거리가 있어서 짱 좋았어요.한번쯤 시간내서 구경해도 아주 좋을 것 같아요.민주주의에 감사하며.전시실 마지막은 대통령 집무실 체험!봉황, 무궁화, 태극기, 넓은 책상과 함께라면 나도 1분 대통령..전시실의 마지막 코스는 대통령 집무실 체험이에요.제 팔아래에 있는 모니터  보이나요?간단한 모니터 조작으로  아래의 사진을 메일로 받을수가 있어요.제 메일에 날라온 사진!자기가 원하는 문구와 사진을 선택,그리고 자기사진을 찍고 나서 모니터를 통해 메일로 전송을 하면이렇게 이쁘고 값진 사진이 날라와용.목포 평화광장 스타벅스 3층 테라스덧, 광주언니는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을 나와평화광장으로 직행했더여.잔액이 2만원 남은 스타벅스 카드도 있겠다, 스타벅스 테라스가 이쁘다고 해서요 .. (깨알 백팩 어깨끈의 마리몬드, 위안부 할머니 뱃지 자랑)광주언니가 좋아하는 자전거평화광장에는 5천원에 자전거 대여를 해주는 곳이 많아요.옆에 바다를 끼고 자전거를 자유롭게 타는 겁니다 히�R히�R자전거 뿐만 아니라 전동기, 인라인, 2인자전거 등도 대여해주더라구요.역시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않는다는 말처럼광주언니도 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탔습니당. 시원하게, 춥게,급마무리돌아올 때도 �o�o �S�S기차타러 갔으니 기차타고 돌아오는 광주언니. 관람시간 : 09:00

18:00휴관일 : 1월 1일 , 매주 월요일관람료 : 무료 삼학도의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전시동컨벤션동1층 로비김대중 대통령이 퇴임 후 사용한 자동차로 서거 후 이희호여사가 사용하다 기증  전시관은 2층에서...벽면에는 역대 수상자 이름과 김대중 수상자의 이름이 있다.

?김대중 부부 밀랍수상시 입었던 부부의 옷수상 영상수상한 노벨평화상 상장메달 앞 뒷면?수상 당시의 사진제2전시관 김대중과 노벨상...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의 에피소드노벨평화상 영광의 얼굴들심사과정 및 시상과정 등 노벨상 관련 이야기들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단체제3전시실 출생과 정치입문, 민주화를 위한 노력과 인고의 세월정치입문초등학교 당시의 부급장임명장과 학력우등상장대통령후보 포스터미국 방문 당시 환영 피켓, 좌우명 등 친필 서예, 기증한 장기판과 사용하던 머그컵과 묵주 등?6년간의 옥중생활조지미니 인권상 수상대통령 시절 5년간 국민의 정부 치적?대통령 시절 유품들제4전시실 대통령 김대중복도의 김대중 연표청와대 집무실 모형대통령시절 받은 선물과 감사장 학위서 등등 관람 후 2층 전시관 입구에서...? 오늘의 포스팅.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목포역에서 택시비가 얼마나왔는지 사실 기억은 안나지만 얼마 안나왔어요.!지도보기50m� NAVER Corp.??? /OpenStreet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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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VER Corp. /OpenStreetMap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전라남도 목포시 산정동 1481상세보기지도보기지도 첨부해드릴게요. 위치는 전라남도 목포시 삼학로92번길 68                                 전라남도 목포시 산정동 1481광주언니는 목포역 앞의 목포 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이동했어요.택시비가 기억은 안나지만 5천원 안으로 기억해용.건물 외관여기가 바로 "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입니다.

건물 지은지가 얼마 안된 것처럼 깨끗한 외관과 내부디자인이 아주 첨단 + 신식이에요.그리고 무료관람이라는 사실!박물관이나 역사관을 좋아하는 광주언니에겐 안성맞춤이디요.전시관은 2층입니다.

건물 1층에는 카페테리아와 인포메이션 데스크가 있으며전시관은 2층입니다.

우측에 모니터 보이나요 ?그 모니터를 터치터치해서 글을 써서 전송을 누르시면 앞에 빔프로젝트 화면에 그 글이 뜹니다!(광주언니가 뭐라 쓴지는 비밀)전시실은 되게 넓고 깔끔하면서 정리가 잘 되어 있음.전시실은 깔끔하면서도 볼 것이 많았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것들의 거의 다 있는 전시관.단순히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기념에 국한되지 않으며,민주주의 실현에 이바지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활동과 일생을 기록하였더라구요.또한 전시뿐만 아니라 일생에서 큰 사건들은 재연을 통한 영상을 관람할 수 있게하여이해가 쏙쏙 되서 좋았어요.영상은  대체로 10분 안팎의 시간이지만 저는 사람도 없고 해서 바닥에 앉아서 봤어요.노벨상의 모습.그렇다고 너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야기에 치중된 전시관은 아니에요." 노벨상 " 에 대해서도 간단히 전시가 되어있어요.노벨상의 종류와 노벨 수상자들의 특이한 이력, 그리고 노벨에 대한 정보까지.저는 특이한 이력중에 부부가 노벨 수상자인 경우와퀴리 일가의 노벨상 수상이 가장 신기했어요. 한 가족들이 휩쓸었다는.그밖에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받은 노벨상, 노벨상 수상 당시의 영상,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영상 등 많은 볼거리가 있어서 짱 좋았어요.한번쯤 시간내서 구경해도 아주 좋을 것 같아요.민주주의에 감사하며.전시실 마지막은 대통령 집무실 체험!봉황, 무궁화, 태극기, 넓은 책상과 함께라면 나도 1분 대통령..전시실의 마지막 코스는 대통령 집무실 체험이에요.제 팔아래에 있는 모니터  보이나요?간단한 모니터 조작으로  아래의 사진을 메일로 받을수가 있어요.제 메일에 날라온 사진!자기가 원하는 문구와 사진을 선택,그리고 자기사진을 찍고 나서 모니터를 통해 메일로 전송을 하면이렇게 이쁘고 값진 사진이 날라와용.목포 평화광장 스타벅스 3층 테라스덧, 광주언니는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을 나와평화광장으로 직행했더여.잔액이 2만원 남은 스타벅스 카드도 있겠다, 스타벅스 테라스가 이쁘다고 해서요 .. (깨알 백팩 어깨끈의 마리몬드, 위안부 할머니 뱃지 자랑)광주언니가 좋아하는 자전거평화광장에는 5천원에 자전거 대여를 해주는 곳이 많아요.옆에 바다를 끼고 자전거를 자유롭게 타는 겁니다 히�R히�R자전거 뿐만 아니라 전동기, 인라인, 2인자전거 등도 대여해주더라구요.역시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않는다는 말처럼광주언니도 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탔습니당. 시원하게, 춥게,급마무리돌아올 때도 �o�o �S�S기차타러 갔으니 기차타고 돌아오는 광주언니.go.kr답사일; 2016. 03. 11(금), 2016 봄, 전라남도 신안군 섬여행  이천십육년 봄, 아우들과 함께 했던 전라남도 신안군 섬여행 이튿날에 찾은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에서선생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삶과 국민의 정부 5년의 성과, 그리고 한국인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의 역사를 만나보았습니다.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은 민주주의·인권·평화를 지키기 위해 한 평생을 바친 한국인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인김대중 선생의 정신을 만나볼 수 있는 곳으로 2013년에 개관하여 인류 보편의 가치인 평화와 인권 신장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전경,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 삼학도 파도 깊이 숨어드는 때 / 부두의 새악시 아롱져진 옷자락 /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문일석 작사, 손목인 작곡, 이난영(李蘭影)이 노래한 '목포의 눈물'에 나오는 삼학도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사진; 한국관광공사>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은 민주주의, 인권, 평화를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친 한국인 최초 노벨평화상 수상자 김대중 정신을 공유할 수 있는 기념관이다.

4개의 전시실로 이루어진 본 기념관은 국민의 정부 5년동안 국가발전을 위한 외교안보, 경제, 문화 등 각 분야별 국가발전전략과 이를 위한 시책들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노벨상의 탄생배경, 선정이유, 선출방법 등을 알아보고 다양한 분야의 수상자들의 에피소드를 전시하여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노벨상 수상의 꿈과 포부를 심어주고자 한다.

<출처;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사진; 한국관광공사>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제15대 대통령이었으며 2000년에는 한반도와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신장, 햇볕정책을 통한 남북한의 화해·협력관계 발전 그리고 세계 평화를 위해 헌신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애는 민주주의·인권·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삶이었습니다.

5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불의에 항거하며 한국 현대사 격동기의 중심에서 '행동하는 양심'의 삶을 실천했습니다.

또한 자신을 탄압하고 모함했던 이들과 화해하고 용서함으로서 진정으로 용기 있는 자의 면모를 보였습니다.

<출처; http://www.kdjnpmemorial.go.kr>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은 삼학도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 ?삼학도(三鶴島), <사진; 한국의 섬 - 목포시·무안군·영광군·해남군, 2015. 5. 25., 지리와 역사>  【삼학도】전라남도 목포시 영해동에 있었던 섬. 연륙(連陸) 및 간척공사(1968∼1973)의 완공으로 현재는 내륙과 이어져 영해동의 일부가 되었다.

무안동 남동쪽에 위치하며 면적은 1.12㎢이었고, 해안선 길이는 4.3㎞이었다.

 섬의 모습이 학처럼 보여 삼학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섬에는 무사와 그를 사랑했던 세 처녀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세 처녀가 그를 기다리다 학이 되었으나, 이를 알지 못한 무사가 쏜 화살을 맞아 모두 죽게 되었고, 학이 떨어진 자리에 세 개의 섬이 솟아나 삼학도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지질은 백악기의 산성화산암류로 이루어져 있다.

최고점은 높이 73m로 낮은 구릉성산지인 대삼학도·중삼학도·소삼학도로 구성되었으며 서로 연결되었다.

 현재 삼학도 자리에는 항만청·해양경찰대·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 등의 정부기관과 한국냉동·호남제분 등의 기업들이 있으며 1,50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삼학도의 끝 자락에는 목포외항이 건설되었으며, 삼학도에서부터 전남도청 일대까지는 1999년에 조성된 하당신시가지가 자리하고 있다.

본래 목포진의 시지(柴地)로서 목포진에 땔감나무를 제공하던 섬이었다.

유달산과 함께 목포를 대표하는 명승지였으나 지금은 옛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삼학동의 옛 모습과 현재, <사진; 한국의 섬 - 목포시·무안군·영광군·해남군, 2015. 5. 25., 지리와 역사>   ?  △ 유달산에서 조망한 삼학도, <사진; 한국의 섬 - 목포시·무안군·영광군·해남군, 2015. 5. 25., 지리와 역사>???????△ 학도청람(鶴島晴嵐), 목포8경 중 하나인 삼학도를 이르는 말입니다.

, <사진; 목포시청>???????△ 삼학도 풍경, <사진; 목포시청>????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뒷쪽 풍경,   ?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뒷쪽에서 조망한 입암산이 있는 풍경, ? ?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뒷면, ?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의 컨벤션동과 전시동,      기년관 1층 로비에 전시되어 있는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 후 사용한 승용차,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1층 로비와 노벨평화상 수상자 이름이 새겨진 2층 벽면,     △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의 4개 전시실 소개, <출처; http://www.kdjnpmemorial.go.kr> ? ?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2층 전시실 입구,    ?김대중 흉상,  【김대중(金大中, 1924

2009)】본관 김해. 호 후광(後廣).  출생지 전남 신안. 제15대 대통령을 지낸 한국의 정치가.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아태평화재단)을 조직하여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1999년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50인 중 공동 1위에 선정되었으며 2000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출처; 두산백과>    ??한국인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     ?한국인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    ?김대중 대통령이 수상한 노벨평화상 상장,    ?김대중 대통령이 수상한 노벨평화상 메달,    ? 김대중과 노벨상,?  ? 노벨상의 탄생,  【노벨상(Nobel Prize)】스웨덴의 화학자 알프레드 노벨의 유산을 기금으로 하여 1901년에 제정된 상으로, 해마다 물리학·화학·생리의학·경제학·문학·평화의 6개 부문에서 인류 문명의 발달에 공헌한 사람이나 단체를 선정하여 수여한다.

<출처; 두산백과>  【알프레드 노벨(Alfred Bernhard Nobel, 1833

1896)】스웨덴의 발명가, 화학자, 노벨상의 창설자. 고형 폭약을 완성하여 다이너마이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과학의 진보와 세계의 평화를 염원한 그의 유언에 따라 스웨덴 과학아카데미에 기부한 유산을 기금으로 1901년부터 노벨상 제도가 실시되었다.

<출처; 두산백과>?   노벨평화상 수상자들,    ?김대중의 정치 입문,  ?  6여 년간의 옥중생활,    ?1985년 구정에 작성한 가훈(家訓) ?   화해와 용서의 지도자 김대중,     대통령 당선과 참여정부 출범,   ? 남북정상회담과 햇볕정책, ?  김대중 선생의 영원한 동지 이희호 여사,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건립 이야기,     전시실을 나서며,     멀리 유달산이 보이는 풍경,?  ? 기념관 뒤에서 바라본 난영공원,  【이난영(李蘭影, 1916

1965)】본명 이옥례. 출생지 전남 목포. 한국의 대중가요 가수. 손목인(孫牧人) 작곡의 《불사조(不死鳥)》로 데뷔하여 《목포의 눈물(1935)》, 《울어라 문풍지》등의 히트곡을 발표했다.

광복 후, 남편 김해송(金海松)과 함께 KPK 악극단을 결성, 활약하기도 하였다.

<출처; 두산백과>?   기념관 정원에서 바라본 난영공원,  …… 참고로 가장 큰 대삼학도는 '목포의 눈물'의 주인공 고(故) 이난영(1916

1965)의 수목장이 있는 섬이다.

수목장이란 죽은 유해를 화장한 뒤 뼛가루를 나무뿌리에 묻는 자연 친화적인 장례방식이다.

49살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한 이난영은 경기 파주 용미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가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41년 만인 2006년 3월 25일 대삼학도 중턱에서 수목장으로 치러졌다.

그 나무는 배롱나무로 일명 백일홍 나무인데 '이난영 나무'로 명명되었다.

그리고 이곳에 '난영공원'이 개장되었다.

약 3,300m2 (약 1,000여 평) 부지에 조성된 이 공원에는 '목포의 눈물'과  '목포는 항구다'의 노래비가 있다.

<출처; 삼학도-복원이 아닌 또 다른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섬 (한국의 섬 - 목포시·무안군·영광군·해남군, 2015. 5. 25., 지리와 역사>     매제의 애마 안에서 담은 압해대교(押海大橋),신안군 4개 섬여행을 마치고 압해도에서 목포로 이동하면서 건넌 압해대교는 2008년에 완공되었으며,전라남도 목포와 압해도를 연결하는 총길이 3,563m의 닐센아치교 형태로 설계하여 조형미를 살렸습니다.

?  ? 김대중 평화노벨상 기념관으로 이동하면사 역시 매제의 애마 안에서 담은 목포대교(木浦大橋),전라남도 목포시의 북항(北港)과 고하도(高下島)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로 2012년 6월에 개통된 총 연장 4,129m의 사장교입니다.

  2013년에 개관한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은 '대한민국 항구 일번지' 목포의 떠오르는 관광코스입니다.

 -< 감사합니다 >-  .news.naver.com완전 개어이없다.

나 역시 메르켈 지지자이지만 이건 진짜 아닌데?이런 돌빡의 멍청한 아이디어를 내는 놈들은 필히 세계를 위해 아무것도 한게 없었던 임기 초기의 오바마한테최초 흑인 미대통령이란 이유로 노벨상을 몰아준 똑같은 또라이들이겠지..노벨상 그따위로 엉터리로 할거면 없애라.여태까진 메르켈 정말 잘 해왔다만 이 난민사태는 진짜 융통성 제로에 꽉꽉 막힌 대실패작이다.

뭐 모르지 뭐... 그놈의 잘난 노벨상 받고 총리직 때려치려는 거라면 몰라도.모르긴 몰라도 정치인들은 상 욕심 보단 권력욕이 더 클텐데?만약 상을 받아야 한다면 그건 외려 교황성하지 메르켈은 진짜 아니라고! 돌었나 이것들이...오늘 뉴스보니 독일국민 중 50% 이상이 난민사태에 두려움을 느낀다고 설문조사에 답했다고 한다.

38% 에서 비약적인 도움닫기를 했지. 당연한 결과임.난민사태에 대해 독일연방정부가 똑바로 일을 안 한다며 애초부터 강한 비판을 쏟아내었던 바이에른주 주장관인 제호퍼는 지지율이 무려 11%가 올랐다고... ㅋㅋㅋ메르켈의 지지율이 9% 꼬라박는 동안에 말이지.오랫동안 세들어 살던 입주자에게 난민숙소로 써야하니 나가라고 일방적 통보나 보내고,상가 등의 건물주에겐 그 소유주가 아무리 반대를 해도 강제로 압수해서 난민숙소로 만들수 있단 법이 함부르크에서 통과되었단다.

..이게 말이나 되나? 조만간 폭동이라도 일어나야 겨우 정신을 차릴래?남이야 어찌되건 무조건 우르르 몰려와서 국가적 민폐를 끼치는 저 난민들의 뻔뻔함은 글타쳐도정치하는 놈들이 자기나라 국민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일케 희생을 강요해도 되는 거냐?늬들 담 선거에서 국민에게 불꽃싸대기 단체로 쳐맞으려고 아주 걍 환장을 했구나?똑바로 안 하면 메르켈은 아마 담선거에서 총리직 100% 내놔야 할꺼다.

아직은 그래도 독일국민들이 어찌 해결하나 조금 더 기다려주자며 지켜보고 있지만빠른 시일내 근본적인 해결을 안 내어놓으면 메르켈은 끝장임.나역시 담에 둘 중 하나를 찍으라면 메르켈과 제호퍼중 난 후자를 택한다.

이대로는 더 이상 안된다고.그런 와중에 미친 푸틴색퀴는 군대 보내서 시리아 반군을 일부러 폭격하질 않나...경제제재로 여태 열라 욕본 거 유럽이랑 미국에 이렇게 되갚는다 이거지.더불어 이따구로 세계에 지 영향력 과시도 좀 하고.. 응?그런데도 울나라엔 스탈린과 별반 다를바도 없는 싸이코 독재자한테 우와

푸틴엉아 짱! 하는 댓글이나 다는 빡큐들이 드글거린다.

이런 꼴통들은 대체 뭐하는 또라이들이냐?저런 미친 정신병자놈이 한반도 정책에는 과연 관대할 거 같니? ㅋㅋㅋ 어이상실.아 진짜 짜증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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