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천주교 대구대교구



1988년 영남대학교를 졸업한 뒤 1988년부터 1993년까지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이후 1993년부터 1996년까지 교황청립 사도들의 모후(Regina Apostolorum) 대학을 거쳐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1998년 전례학 석사, 2002년 전례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대구대교구 봉덕 본당 보좌신부를 거쳐 2002년부터 2009년까지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를 지냈으며, 주교회의 2009년 추계 정기총회에서 주교회의 사무처에 소속된 전례서 편찬 담당 신부로 임명된 후 주교회의에 상주해 왔다.

2009년부터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도 맡고 있다.

  보좌 주교(Auxiliary Bishop)는 교구의 전반적 통치에 교구장 주교를 보필하지만, 계승권을 지닌 부교구장 주교(Coadjutor Bishop)와는 달리 교구장좌 계승권은 없다(교회법 제403조 제1항).  장신호 주교의 임명으로 2016년 5월 31일 현재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회원은 40명(추기경 2명, 대주교 5명, 주교 32명, 자치수도원구장 서리 1명)이 되었다.

현직 주교가 25명(추기경 1명, 대주교 2명, 주교 22명), 은퇴 주교는 14명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16개 지역교회(3 대교구, 13 교구)로 되어 있는데, 서울, 대구, 광주는 대교구이며 대주교가 교구장을 맡는다.

북한 지역에는 평양교구, 함흥교구, 덕원 자치 수도원구가 있다.

평양교구장은 서울대교구장이, 함흥교구장은 춘천교구장이 교구장 서리를 맡고 있으며, 덕원 자치 수도원구장 서리는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장 박현동 아빠스가 맡고 있다.

(* 주교회의 회원은 주교 외에 박현동 아빠스가 포함된다.

)  대구대교구(교구장 조환길 대주교)는 1911년 4월 8일 조선대목구에서 분리하여 대구대목구로 설립되었다.

초대 교구장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플로리안 드망즈(Bishop Florian Demange, M.E.P., D.D.) 주교(한국명 안세화)였다.

1962년 우리나라 교계제도 설립으로 대구대교구로 승격되었으며 서정길 대주교가 7대 교구장으로 착좌하였다.

이후 이문희 대주교, 최영수 대주교를 거쳐 2010년 12월부터 조환길 대주교가 제10대 교구장을 맡고 있다.

  대구대교구는 대구광역시, 경북 경산시, 경주시, 구미시, 김천시, 영천시, 포항시, 고령군, 군위군, 성주군, 울릉군, 청도군, 칠곡군을 관할로 한다.

대리구 5개로 나눠 운영하며 160개의 성당, 79개 공소에 492명의 성직자가 491,921명의 신자들을 사목하고 있다.

교구 내 복음화율은 10.9%이다(2015년 12월 31일 한국 천주교회 통계). 주교좌 계산동 성당과 함께 교구 설정 100주년을 맞아 새로 지은 범어 대성당이 주교좌이다.

  오랜 교구 역사와 함께 지역 내에 유치원 29곳, 초등학교 1곳, 중고등학교 18곳, 대학교 1곳을 운영하며, 139개의 사회 복지 기관, 종합병원 6곳 등 의료 활동과 다양한 문화 사업을 펼치고 있다.

특히 1927년 설립된 가톨릭신문사는 90여 년 이라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97년 제1차 교구 시노드, 2011년 제2차 교구 시노드를 개최하였으며 2011년 교구 설립 100주년 기념 경축대회를 거행한 바 있다.

100주년 기념 성당인 주교좌 범어 대성당을 2013년부터 짓기 시작하여 2016년 5월 22일 봉헌식을 가졌다.

  ※ 용어 설명- 교구: 가톨릭교회를 지역적으로 구분하는 행정 구역. 교구장 주교(主敎, bishop)가 통치하며, 하위 단위인 지구 또는 대리구, 본당(지역의 개별 성당)들을 관할한다.

- 주교: 천주교 교구 사목을 책임지는 고위성직자. 신부들 중에서 교황이 임명하며, 대주교, 주교, 부교구장 주교, 보좌주교 등으로 구별된다.

교황은 세계 주교단의 단장이다.

자료 :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조환길 대주교와 장신호 주교   종교를 떠나 지역민 누구든 지친 마음을 달래고 편히 쉬었다 가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천주교 대구대교구 조환길(타대오) 대주교는 범어대성당이 갖는 의미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대구 수성구 범어천로 일대 2만7천769㎡(약 8천400평)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로 지어진 범어대성당(주임 장병배 신부)이 최근 완공됐다.

2013년 3월31일 기공식과 함께 첫 삽을 뜬 이래 약 3년만이다.

조 대주교는 “범어대성당은 2천500석 규모의 대성당과 소성당인 프란치스코 성당(500석)을 비롯해 공연장 드망즈홀, 미술전시장 드망즈 갤러리와 100주년 기념관, 기타 친교와 휴식공간 등 부대시설을 갖췄다”며 “지역 내 열린 공간으로서 신자들 뿐 아니라 지역민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할 계획이다”고 전했다.

범어대성당은 교황청으로부터 계산성당과 함께 대구대교구 공동 주교좌 성당으로 인정받았다.

조 대주교는 “주교좌는 교구장이 앉는 의자를 말하는 것으로 교구장 대주교의 재치권과 사목권, 그리고 교도권을 상징한다.

범어대성당은 교구 주교좌 성당의 역할을 해 온 주교좌 계산성당과 함께 공동 주교좌 성당으로, 주교좌로서의 품위와 역할을 다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조환길 대주교의 미사 주례는 주교좌 계산성당에서 이뤄지고, 범어대성당에서는 사제 성화의 날 미사 등 교구 큰 행사시 대주교가 미사 주례를 맡게 된다.

이 외 미사 주례는 범어대성당 주임 장병배 신부가 맡는다.

주교좌 범어대성당 건립은 교구 100년사 편찬과 제2차 교구 시노드 개최와 함께 대구대교구 100주년 3대 기념사업으로 추진됐다.

조 대주교는 “대구대교구는 1911년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설립됐다.

100여년전 영남지역 최초의 서양식 고딕 성당인 주교좌 계산성당이 지어진 이후 지역 내 가톨릭 신자들이 증가하고, 교구 100주년을 기념하는 성당을 짓자는 뜻이 모아져 범어대성당을 건립하게 됐다”며 “계산성당이 신자들과 독지가들의 기부로 건립된 것과 같이 교구 100주년을 기념해 교구 사제단과 교구민들의 기도와 정성으로 건축했다”고 전했다.

총 길이가 100m에 달하는 대성당 내부와 100m에 달하는 성당광장 등 성당 곳곳에는 교구 100주년을 상징하고 기념하는 뜻이 새겨졌다.

대성당 내부는 아치 형태의 장중한 로마네스크 양식에 현대적 감각을 접목시켰다.

스테인드글라스와 청동 부조물, 제대 등 성미술 작품(조광호 신부 인천교구 조형미술연구소장)이 설치됐다.

조 대주교는 “지역민들이 범어대성당을 통해 가톨릭에 대해 알고, 성당에서 위로를 받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전반적으로 어렵다고 하는데 지금껏 꿋꿋이 지내온 시민들에게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모두가 어렵더라도 열심히, 기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천주교 대구대교구는 오는 5월22일 조환길 대주교 주례로 ‘교구 100주년 기념 주교좌 범어대성당 봉헌식’을 갖는다.

이날 행사에는 주한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와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주교단, 교구 사제단, 수도자, 평신도가 참석한다.

또 자매교구 오스트리아와 중국, 일본에서 파견된 축하사절단과 권영진 대구시장과 김관용 경북도지사, 우동기 교육감, 이진훈 수성구청장과 윤순영 중구청장 등이 자리할 예정이다.

김지혜 hellowis@idaegu.com출처: 대구일보 범어대성당 내부(가톨릭 신문 제공) 1988년 영남대학교를 졸업한 뒤 1988년부터 1993년까지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이후 1993년부터 1996년까지 교황청립 사도들의 모후(Regina Apostolorum) 대학을 거쳐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1998년 전례학 석사, 2002년 전례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대구대교구 봉덕 본당 보좌신부를 거쳐 2002년부터 2009년까지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를 지냈으며, 주교회의 2009년 추계 정기총회에서 주교회의 사무처에 소속된 전례서 편찬 담당 신부로 임명된 후 주교회의에 상주해 왔다.

2009년부터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도 맡고 있다.

[천주교 대구대교구] 얼마나 더..


  보좌 주교(Auxiliary Bishop)는 교구의 전반적 통치에 교구장 주교를 보필하지만, 계승권을 지닌 부교구장 주교(Coadjutor Bishop)와는 달리 교구장좌 계승권은 없다(교회법 제403조 제1항).  장신호 주교의 임명으로 2016년 5월 31일 현재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회원은 40명(추기경 2명, 대주교 5명, 주교 32명, 자치수도원구장 서리 1명)이 되었다.

현직 주교가 25명(추기경 1명, 대주교 2명, 주교 22명), 은퇴 주교는 14명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16개 지역교회(3 대교구, 13 교구)로 되어 있는데, 서울, 대구, 광주는 대교구이며 대주교가 교구장을 맡는다.

북한 지역에는 평양교구, 함흥교구, 덕원 자치 수도원구가 있다.

평양교구장은 서울대교구장이, 함흥교구장은 춘천교구장이 교구장 서리를 맡고 있으며, 덕원 자치 수도원구장 서리는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장 박현동 아빠스가 맡고 있다.

(* 주교회의 회원은 주교 외에 박현동 아빠스가 포함된다.

)  대구대교구(교구장 조환길 대주교)는 1911년 4월 8일 조선대목구에서 분리하여 대구대목구로 설립되었다.

초대 교구장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플로리안 드망즈(Bishop Florian Demange, M.E.P., D.D.) 주교(한국명 안세화)였다.

1962년 우리나라 교계제도 설립으로 대구대교구로 승격되었으며 서정길 대주교가 7대 교구장으로 착좌하였다.

이후 이문희 대주교, 최영수 대주교를 거쳐 2010년 12월부터 조환길 대주교가 제10대 교구장을 맡고 있다.

  대구대교구는 대구광역시, 경북 경산시, 경주시, 구미시, 김천시, 영천시, 포항시, 고령군, 군위군, 성주군, 울릉군, 청도군, 칠곡군을 관할로 한다.

대리구 5개로 나눠 운영하며 160개의 성당, 79개 공소에 492명의 성직자가 491,921명의 신자들을 사목하고 있다.

교구 내 복음화율은 10.9%이다(2015년 12월 31일 한국 천주교회 통계). 주교좌 계산동 성당과 함께 교구 설정 100주년을 맞아 새로 지은 범어 대성당이 주교좌이다.

  오랜 교구 역사와 함께 지역 내에 유치원 29곳, 초등학교 1곳, 중고등학교 18곳, 대학교 1곳을 운영하며, 139개의 사회 복지 기관, 종합병원 6곳 등 의료 활동과 다양한 문화 사업을 펼치고 있다.

특히 1927년 설립된 가톨릭신문사는 90여 년 이라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97년 제1차 교구 시노드, 2011년 제2차 교구 시노드를 개최하였으며 2011년 교구 설립 100주년 기념 경축대회를 거행한 바 있다.

100주년 기념 성당인 주교좌 범어 대성당을 2013년부터 짓기 시작하여 2016년 5월 22일 봉헌식을 가졌다.

  ※ 용어 설명- 교구: 가톨릭교회를 지역적으로 구분하는 행정 구역. 교구장 주교(主敎, bishop)가 통치하며, 하위 단위인 지구 또는 대리구, 본당(지역의 개별 성당)들을 관할한다.

- 주교: 천주교 교구 사목을 책임지는 고위성직자. 신부들 중에서 교황이 임명하며, 대주교, 주교, 부교구장 주교, 보좌주교 등으로 구별된다.

교황은 세계 주교단의 단장이다.

자료 :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조환길 대주교와 장신호 주교   종교를 떠나 지역민 누구든 지친 마음을 달래고 편히 쉬었다 가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천주교 대구대교구 조환길(타대오) 대주교는 범어대성당이 갖는 의미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대구 수성구 범어천로 일대 2만7천769㎡(약 8천400평)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로 지어진 범어대성당(주임 장병배 신부)이 최근 완공됐다.

2013년 3월31일 기공식과 함께 첫 삽을 뜬 이래 약 3년만이다.

조 대주교는 “범어대성당은 2천500석 규모의 대성당과 소성당인 프란치스코 성당(500석)을 비롯해 공연장 드망즈홀, 미술전시장 드망즈 갤러리와 100주년 기념관, 기타 친교와 휴식공간 등 부대시설을 갖췄다”며 “지역 내 열린 공간으로서 신자들 뿐 아니라 지역민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할 계획이다”고 전했다.

[천주교 대구대교구] 대박이네요.



범어대성당은 교황청으로부터 계산성당과 함께 대구대교구 공동 주교좌 성당으로 인정받았다.

조 대주교는 “주교좌는 교구장이 앉는 의자를 말하는 것으로 교구장 대주교의 재치권과 사목권, 그리고 교도권을 상징한다.

범어대성당은 교구 주교좌 성당의 역할을 해 온 주교좌 계산성당과 함께 공동 주교좌 성당으로, 주교좌로서의 품위와 역할을 다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조환길 대주교의 미사 주례는 주교좌 계산성당에서 이뤄지고, 범어대성당에서는 사제 성화의 날 미사 등 교구 큰 행사시 대주교가 미사 주례를 맡게 된다.

이 외 미사 주례는 범어대성당 주임 장병배 신부가 맡는다.

주교좌 범어대성당 건립은 교구 100년사 편찬과 제2차 교구 시노드 개최와 함께 대구대교구 100주년 3대 기념사업으로 추진됐다.

조 대주교는 “대구대교구는 1911년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설립됐다.

100여년전 영남지역 최초의 서양식 고딕 성당인 주교좌 계산성당이 지어진 이후 지역 내 가톨릭 신자들이 증가하고, 교구 100주년을 기념하는 성당을 짓자는 뜻이 모아져 범어대성당을 건립하게 됐다”며 “계산성당이 신자들과 독지가들의 기부로 건립된 것과 같이 교구 100주년을 기념해 교구 사제단과 교구민들의 기도와 정성으로 건축했다”고 전했다.

총 길이가 100m에 달하는 대성당 내부와 100m에 달하는 성당광장 등 성당 곳곳에는 교구 100주년을 상징하고 기념하는 뜻이 새겨졌다.

대성당 내부는 아치 형태의 장중한 로마네스크 양식에 현대적 감각을 접목시켰다.

스테인드글라스와 청동 부조물, 제대 등 성미술 작품(조광호 신부 인천교구 조형미술연구소장)이 설치됐다.

조 대주교는 “지역민들이 범어대성당을 통해 가톨릭에 대해 알고, 성당에서 위로를 받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전반적으로 어렵다고 하는데 지금껏 꿋꿋이 지내온 시민들에게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모두가 어렵더라도 열심히, 기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천주교 대구대교구는 오는 5월22일 조환길 대주교 주례로 ‘교구 100주년 기념 주교좌 범어대성당 봉헌식’을 갖는다.

이날 행사에는 주한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와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주교단, 교구 사제단, 수도자, 평신도가 참석한다.

또 자매교구 오스트리아와 중국, 일본에서 파견된 축하사절단과 권영진 대구시장과 김관용 경북도지사, 우동기 교육감, 이진훈 수성구청장과 윤순영 중구청장 등이 자리할 예정이다.

김지혜 hellowis@idaegu.com출처: 대구일보 범어대성당 내부(가톨릭 신문 제공)태백산맥의 보현산에서 서남쪽으로 팔공산, 가산, 유학산까지 이르는 팔공산괴는 칠곡, 대구, 경산, 영천, 군위의 5개 군에 걸쳐져 있으며, 그 장구한 산줄기의 배면을 동북에 돌리고 대구 분지에 전면을 두어 병풍과 같이 대구의 북쪽을 가리고 있다.

 팔공 산괴의 주봉에서 가산까지는 20km 정도로, 한티는 가산과 주봉인 팔공산 사이에 위치하며 가산에서 동쪽으로 7km 떨어진 깊은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가산산성(사적 216호)은 임진왜란 이후 대구를 지키는 외성으로 난이 일어날 때마다 인근 고을 주민들이 피난했던 내지의 요새였다.

한티 역시 천혜의 은둔지로서 박해를 피해 고향땅을 떠나온 교우들이 몸을 숨기고 교우촌을 이루었던 곳이다.

  유교의 전통이 강하였던 영남 지역에 천주교가 전래된 것은 신유박해(1801) 이후였다.

박해를 피해 서울,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지방의 신자들이 청송 노래산, 진보 머루산, 안동 우련밭, 영양 곧은정, 상주 등으로 피난하여 신자촌을 이루고 살았다.

잠시동안 외부와 격리된 이곳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중앙정부의 관여 없이 지방관에 의한 국지적인 박해인 을해박해(1815)때에 청송 노래산, 진보 머루산, 안동 우련밭, 영양 곧은정 등지의 많은 신자들이, 정해박해(1827)때에는 상주 지역의 많은 신자들이 체포되었고, 끝까지 배교(背敎)하지 않고 굶주림과 온갖 고문의 역경 중에도 옥사하지 않은 신자들은 대구감영으로 이송되어 수감되었다.

이때 대구 감영에 갇힌 신자들의 가족과 형제들이 그들과의 연락과 옥바라지를 위해 감옥과 비교적 가깝고 안전하다고 판단한 이곳 한티에 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 한티공소의 재건 1868년 박해의 칼날을 받은 한티 공소는 한줌의 재로 변한다.

박해의 먹구름이 지나간 뒤 마을에 살던 박만수 요셉은 살아남은 몇몇의 사람들을 모아 공소재건에 앞장선다.

먼저 순교자들이 살던 마을(순교자묘역 대형 십자가 뒤편)은 '하느님을 증거하다 돌아가신 분들의 피가 서린 거룩한 곳이므로 우리 같은 죄인이 밟을 수 없다'하여 바람맞이땅(현재의 초가집이 있는 곳)에 새로이 마을을 이룬다.

또한 당시 공소회장이던 조 가롤로의 아들 조영학 토마(당시 12세)에게 집을 지어주고 공소회장으로 추대하였다.

그 무렵 군위 칫솔에서 김재윤 플로리아노 가정과 김윤하 가정이 들어오고, 신나무골의 배순규 가정과 조규성 프란치스꼬 가정이 들어왔다.

1882-1883년 김보록 로베르또 신부가 경상도 지방을 순회 전교하면서 한티에서 성사를 집행하였다.

이때 신자수 39명, 고백성사자 20명, 영성체자 19명, 세례자 3명 혼배자 1쌍이었다.

1885년 대구 본당이 설정되어 김보록 신부가 신나무골에 정착하게 되니, 김보록 신부도 한티에 자주 왔고, 한티 신자들은 대축일이면 신나무골로 미사참례하러 갔다.

이후 한티 공소는 새로이 번창하여 1900년 초에는 공소 신자수가 80여명 이상으로 늘어났으나 종교의 자유와 더불어 전교를 위해, 또한 생활이 불편한 이곳을 떠나 살기 좋은 곳으로 이주함으로써 공소는 쇠퇴하게 되었다.

 ○ 공소재건의 의의첫째, 순교자의 시신을 묻어드리고 이주해 와서 살았다.

이는 순교자들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존경심에서 우러나온 행동이다.

남은 것이 없는 곳에 성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여들었다.

둘째, 바람맞이 땅에 동네를 형성하였다.

이것은 속죄의 마음과 순교자를 따라 순교하겠다는 의지이다.

노출이 가장 심한 곳에 마을을 이룬다는 것은 죽음을 언제나 맞을 준비된 마음이다.

셋째, 조 가롤로 회장의 어린 아들에게 집을 지어주고 공소회장으로 모셨다.

이것은 순교자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그들의 의지이며, 순교자들에 대한 예우였을 것이다.

 ■ 묻힌 순교자들  한티 순교성지에는 모두 37기의 묘가 있다.

순교자 묘의 대부분인 33기는 무명순교자의 묘지이다.

신원이 밝혀진 순교자의 묘는 다음의 4기이다.

  ○ 조 가롤로와 그 가족들 조 가롤로는 상주의 구두실이 고향으로 그의 집안은 1839년이래 정권을 장악했던 풍양 조씨로, 그들은 1839년(기해박해) 천주교 신자들을 탄압하는 박해를 일으켜 권력을 잡았으므로 문중이 얼마나 천주교인을 미워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조 가롤로가 천주교를 믿었으므로 그는 문중으로부터 심한 박해를 받았다.

친척들이 집을 불살라 버렸고 정든 고향에서도 살지 못하고 쫓겨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와 그의 가족들은 3년 동안 충청도 황간과 상촌 등지를 전전하다가 마침내 칠곡 한티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는 움막을 짓고 그 속에서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며 숯을 굽기 시작하였다.

그 후 한티로 피난 오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주일이면 신자들과 함께 자기 집에서 열심히 기도하며 신앙 생활에 충실하던 그는 신자들을 지도하는 회장이 되었다.

이렇게 하여 한티 부락에 열심한 신자촌이 형성되었다.

 ○ 서태순 베드로서익순과 서태순 형제는 증조부 서광수 대(代)부터 하느님을 믿어온 신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충주 장원에서 살다가 박해를 피해 강원도를 거쳐 문경새재를 넘어 1857년 상주에 도착한 이들은 2년간 살다가 1859년 장조카 서상돈 아우구스티노가 살고 있는 대구로 왔다.

1866년 경상도에서 전교하던 리델 신부가 판공성사를 주기 위해 대구에 와서 박해에 관한 소식을 전하자 신자들은 흩어져 피난을 갔는데, 서태순은 문경 한실로, 그의 형 서익순 가족과 서상돈 가족은 한티로 피난을 갔다.

서태순과 부인 김데레사와 7세된 남자아이는 1866년 문경에서 잡혀 상주 진영으로 압송되었다.

조카 서상돈이 장사를 하기 위해 오가면서 서태순의 옥바라지를 해 주었는데, 한번은 서태순이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옥에서 여물을 먹고 있는 것을 보았고, 그 참혹한 광경에 이후 서상돈은 평생 쌀밥을 먹지 않았다 한다.

서태순 베드로가 1866년 12월 18일에 34세의 나이로 순교하자 그의 시신을 형 서익순이 한티에 안장하였다.

 (자료출처 : 한티순교성지 홈페이지) (한티순교성지 지도) (일반 지도) 2013.5.4 | 지도 크게 보기 �  NHN Corp.  (위성 지도) 2013.5.4 | 지도 크게 보기 �  NHN Corp.    (지도출처 : 네이버 일반지도, 위성지도)      ▲ ▼ 한티순교성지 들머리에 있는 표지판. ▲ ▼ 한티순교성지 들머리에 있는 표지석.  ▲ 순례자의 집 (성체조배실).좌측에 성지관리사무실이 있습니다.

 ▲ 한티순교성지 안내석. ▲ 순교자묘역 표지석.순교자묘역은 십자가의 길과 장엄하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이곳의 순교자 묘는 총 37기의 묘가 있습니다.

 ▲ ▼ 십자가의 길 초입에 있는 대형 십자가입니다.

 ▲ 바위 조형물. ▲ 십자가의 길 표지석. ▲ 여기서는 멋진 돌하나에도 시선이가 가던 길을 절로 멈추게 합니다.

 ▲ ▼ 한티순교성지 십자가의 길에 있는 십자가. ▲ ▼ 자연과 더불어 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 묘가 1기가 있고 여기서부터 십자가의 길이 시작됩니다.

 ▲ ▼ 십자가의 길에는 바위 틈 사이로 온갖 들꽃들이 도란도란 피어 있습니다.

  ▲ 한티공소회장 조영학 토마의 묘. ▲ ▼ 순교자 서태순 베드로의 묘. ▲ 십자가의 길에 핀 진달래. 피를 토하 듯 봄을 노래하던  붉은 진달래는 지고없고 다만 몇 개 만이 아쉬움 속에 남아 순교자들의 넋을 달래어 줍니다.

저 꽃들 마저 지고 나면 내년 봄에 다시 예수님이 부활하 듯 붉은 진달래도 다시 피어날 것 입니다.

 ▲ ▼ 십자가의 길 14처를 다 마치고 내려서니 처음에 왔던 그자리로 오게 됩니다.

   ▲ ▼ 한티순교성지 성모님. ▲ 한티순교성지에 있는 허름한 집 한 채에 무슨 사연이 있지 않나 싶어 담아봅니다.

 ▲ 순례자의 집 (성체조배실). ▲ ▼ 한티마을 (옛공소) 안내판. ▲ ▼ 한티순교성지에 복원한 초가집 (옛공소).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