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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



우리가 잘 살자고 남을 괴롭히지 말아줘.그냥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해줘.더 이상 이런 노래 유효하지 않기를 ....Blowin' In The Wind-Bo..-밥 딜런, 1965년 포크 음악의 거인이었으나 자신에 대한 신뢰를 거부하고 뉴포트에서 전자기타로 연주함으로서 자신의 팬들을 배반하고 야유를 받았던 밥 딜런. 그러나 장르를 바꾸면서도 자신의 음악에 대한 지속적인 모험과 변화를 모색했던 팝 음악의 거인. 밥 딜런은 음악뿐만 아니라 성격도 변화가 심하고, 매스컴과의 인터뷰에는 불친절하고, 사생활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면서 사회 운동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하는 등 종횡무진 하는 삶을 보여줘 왔다.

그의 음악에는 공통점을 찾아내기에는 힘든 요소와 스타일들이 너무나 많다.

   <밥 딜런 평전>(실천문학사, 김백리 역)을 읽었다.

읽는 내내 그의 삶을 300페이지 정도의 책에 담아내기에는 페이지가 모자란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적으로 조금은 평이하고, 읽다가 만 느낌이다.

읽는 내내 이 책의 두 배 정도 분량이 되면 밥 딜런의 삶이 조금은 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혹은 나이가 들어감에 다라 지속적으로 변모하는 그의 삶은 영화 <아임 낫 데어>에서 밥 딜런이라는 이름을 찾아 헤매는 것과도 유사하다.

밥 딜런이라는 인물을 한 마디로 정의 내리기란 힘들다.

그것은 꾸준히 자신의 모습을 바꾸었고, 음악적 장르에 대한 탐색 또한 지속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전조차도 때로는 파편화되고, 헤매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밥 딜런이라는 한 개인을 이루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책이다.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 in the Wind)은 밥 딜런의 가장 유명한 노래 중 하나다.

 사람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봐야진정한 삶을 깨닫게 될까?백비둘기는 얼마나 많은 바다 위를 날아야백사장에 편히 쉴 수 있을까?전쟁의 포화가 얼마나 많이 휩쓸고 나서야영원한 평화가 찾아오게 될까?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어.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얼마나 긴 세월이 흘러야산이 씻겨서 바다로 내려갈까?사람은 참된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언제까지 고개를 돌리고외면할 수 있을까?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어.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얼마나 많이 올려다보아야진짜 하늘을 볼 수 있을까?얼마나 많은 귀들이 있어야타인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어야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을 깨달을 수 있을까?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어.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60년대의 불안감, 모호함. 흑인 민권운동과 베트남전의 갈등 사이에서 밥 딜런은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통해서 모호한 대답을 남겼다.

시대의 변화를 기다리는 초조한 심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지만 답은 잡힐 듯 말 듯 모호하기만 하다.

답은 있는 것 같지만, 실체는 보이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런 모호함은 대중들을 강력하게 매혹시켰다.

     밥 딜런의 정신적인 아버지는 우디 거스리이다.

(우리나라에도 한 장의 LP가 발매된 적이 있었다.

영화 <바운드 포 글로리>가 우디 거스리의 삶을 다룬 영화다.

)  딜런이 거스리에게 받은 영향은 단순히 이미지나 악센트뿐만이 아니다.

딜런은 거스리에게서 독창적인 유머와 격정적인 면모, 개인주의자인 동시에 민중주의자로서의 방랑벽, 대중문화 산업의 관습에 대한 대안, 그리고 정직하며 현실참여적인 포크 싱어의 전범을 찾아냈다.

거스리는 딜런에게 ‘진정한 딜런’에 가장 근접한 정체성을 부여했고, 이는 사회가 규정한 딜런의 이미지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p52) 젊은 딜런은 뉴저지의 국립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거스리를 찾아가기도 했다.

딜런은 그렇게 자신의 영웅을 직접 만났고, “우디에게 바치는 노래”(Song to Woody)를 작곡하기도 했다.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DC에서는 반(反) 인종차별 운동 시위가 벌어진다.

마틴 루터 킹이 감동적인 연설을 행했고, 존 바에즈가 노래를 불렀다.

밥 딜런도 “배가 들어오면”(When the Ship Comes in)과 “그는 단지 하수인이었을 뿐”(Only a Pawn in Their Game)을 연이어 불렀다.

딜런은 인종차별주의를 계급에 기초해서 분석했고, 백인의 특권에 기반을 둔 미국의 정책을 비판하고 풍자했다.

워싱턴 행진을 통해서 법률적 평등에 대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요구는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언론은 워싱턴 행진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지만 포크 가수들이 한 일에 대해서는 폄하했다.

그러나 밥 딜런은 사회참여적인 자신의 입장을 확고하게 보여주었으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끌어냈다.

   워싱턴 행진 직전에도 밥 딜런은 애틀랜타의 그린우드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했다.

딜런은 자기가 아홉 살이 될 때까지 유색인종을 만난 일이 없으며, 도와준 일이 너무 없다고 사과하기도 했다.

그는 경찰과 KKK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단지 하수인이었을 뿐”을 불렀다.

초기 밥 딜런은 이처럼 인종차별주의에 반대하면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명했다.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굳어진 밥 딜런의 이미지, 즉 저항의 상징으로서 밥 딜런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1965년 7월 뉴포트 포크 페스티발에서 딜런은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평소의 낡은 청바지와 작업복 셔츠 차림과 달리 물방울 무늬의 짙은 셔츠에 끝이 뾰족한 가죽 부츠를 신은 딜런은 전자기타를 들고 무대에 올라왔다.

폴 버터필드 블루스 밴드와 함께 노래를 불렀지만, 그의 파격적인 변신에 대중들의 어안은 벙벙했고 온갖 야유와 욕설이 뒤섞여서 튀어 나왔다.

그를 믿었던 ‘신도’들은 배신을 당한 것이다.

많은 이들이 질색을 표했지만, 딜런은 이 시기를 통해서 전통적인 포크음악에서 벗어나 록큰롤을 수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자신을 추종하는 많은 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편하게 인정받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완전히 새로운 예술을 찾아 나선 모험적인 시도였다.

그리고 밥 딜런의 이런 시도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밥 딜런 평전>은 2000년대에 쓰여졌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60년대 밥 딜런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부분적으로는 밥 딜런을 설명하기 위해-그의 변화무쌍한 삶을 글로 써낸다는 게 너무나 힘든 일이므로-우디 거스리, 커티스 메이필드, 브루스 스프링스틴 같은 다른 뮤지션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다.

<밥 딜런 평전>을 읽다 보면 왜 <아임 낫 데어>가 그런 형식으로 밥 딜런을 찾아 헤매는지 공감이 간다.

  나이가 든 밥 딜런은 작년에 국내에서 내한공연도 펼쳤다.

책을 읽고 있으면, 밥 딜런의 60년대 앨범들이 다시 떠올라 듣고 싶어진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멜로디들. 바람만이 아는 대답, 구르는 돌처럼, 미스터 탬버린맨........    밥 딜런 평전작가마이크 마퀴스출판실천문학사발매2008.07.01리뷰보기   ?  그 말은 진실이었다.

정말 나 자신을 누구와 비교해 본 적이 없었다.

(p. 15)    나는 한계를 초월할 수 있었다.

내가 찾는 것은 돈이나 사랑이 아니었다.

굳은 의지를 가지고 있었고, 비현실적이고 몽상적이긴 하지만 날음대로의 길을 정해놓고 있었다.

(p. 16)   사실 나는 모든 사람을 위해 연주하고 싶었다.

방 안에서 앉아서 자신만을 위해 연주할 수는 없다.

항상  사람들을 위해 연주하는 것이 필요했다.

나는 대중들 앞에서 연주했고 인생 전체가 연주하는 삶이 되어가고 있었다.

(p. 23)   현대는 사회적으로 타당성이나 무게가 없었고 나는 거기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지금 관심을 갖는 주제는 타이타닉호의 침몰, 갤베스턴의 홍수, 존 헨리의 운전용 강철, 존 하디가 웨스트버지니아 라인에서  한 남자를 사살한 것 등이엇다.

이것들이 내가 깊이 생각하고 관심을 갖는 뉴스였다.

(p. 28)   나는 환상적인 빛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일이 잘못될 수도 있는 것일까?  그럴 것 같지는 안았다.

속았다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거짓 희망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나는 먼 길을 왔고 가야 할 먼 길을 출발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운명이 그 자신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운명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느꼈다.

(p. 30)   나는 아마 조지 존스를 제외하고는 컨트리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p. 42)   나에게 노래는 가벼운 오락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노래는 나의 개인교사였고 현실의 변화된 의식으로 가는 안내자였고, 해방된 공화국이었다.

(p. 43)   어느 경우가 됐든, 나는 안티 대중문화와는 거리가 있었고, 대중을 선동하려는 야망도 없었다 주류 문화를 대단히 시시하고 큰 속임수라고 생각했을뿐이었다.

그것은 마치 창밖에 펼쳐진 얼음 바다 위를 어색한 신발을 신고 걷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었다.

나는 우리가 어떤 역사시대에 속하는지 몰랐고 시대의  진실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것을 고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진실을 말한다면 아주 잘하는 일이고 좋은 일이다.

진실이 아닌 것을 말한대도 그것 역시 잘하는 일이고 좋은 일이다.

포크송은 내게 그것을 가르쳤다.

어느 시대든 항상 새벽이 시작되었고, 나는 몇 국가의 국민과 역사에 대해서, 그리고 역사가 언제나 같은 패턴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고대의 어떤 시기에 사회가 성장하고 발전하고  번영했다.

그리고 모범적으로 성숙한 지점에 도달한 후, 노력하지 않는 게으른 시대가 뒤를 이었고 퇴폐가 모든 것을 붕괴시켰다.

나는 미국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 몰랐다 확인하려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거칠고 투박한 리듬이 미국을 흔들고 있었다.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든 완전히 틀린 생각일 수도 있었다.

(p. 43

44)   "세상에는 네가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단다.

그냥 내버려 둬라. 제풀에 지쳐서 떨어지게 말이야." (밥 딜런의 할머니, p. 52)   미래는 무엇일까? 미래는 단단한 벽이고, 약속된 장래도 없고, 위협적이지도 않다는 것, 모두 허튼소리였다.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인생은 하찮은 것이 아니라는 보장도 없었다.

(p. 59)   나는 상황과 아이디어를 압축시키는 법을 배워야 했다.

도서관의 책을 모두 볼 수 없는 것처럼, 테이블  위에 널려 있는 것을 모두 볼 수 없었다.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노래의 한 단락이나 한 행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p. 72)   몇 년 위에 휘틀로는 주택 파손 및 무단침입 절도죄로 체포되었는데 자신이 예술가이고 그 행동은 공연  예술이었다고 변명했다.

믿을 수 없게도 그녀에 대한 고소가 취하되었다.

(p. 77)   나는 정신적인 사고방식을 바꿔야 하고..... 전에는 인정하지 않던 가능성을 믿어야 하며, 나의 창조성이  매우 편협하고 조종이 가능한 정도라는 것과..... 상황이 너무 익숙해서 내가 방향을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p.81

82)   나는 마이크가 알지 못하는, 나 자신의 포크송을 작곡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획기적인 생각이었다.

그??까지 몇 군데에서 연주를 했고, 내가 갈 길을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어두운 방의 문을 열면서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어디에 놓여 있는지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안에 들어갈 때까지 알지 못한다.

(p. 82)   그런데 얼마 후 우연히 딜런 토머스의 시를 보았다.

딜런과 앨런 비슷하게 들렸다.

로버트 딜런. 로버트  앨런. 쉽게 결정할 수가 업엇다.

D가 더 강하게 다가왔지만 로버트 딜런은 로버트 앨런만큼 멋있게 보이거나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항상 나를 로버트나 보비라고 불렀지만 보비 딜런은 너무 겁이 많은 것처럼 들렸고, 게다가 벌써 보비 다린, 보비 보비, 보비 리델, 보비 닐리 등 보비라는 이름이 너무 많았다.

밥  딜런이라면 밥 앨런보다 낫게 보이고 좋게 들리는 것 같았다.

트윈 시티에서 처음 이름이 물어왔을 때,  거의 본능적으로 자연스럽게 '밥 딜런'이라고 간단히 말했다.

(p. 89

90)   미국울새가 우는 것을 본 적이 없지만 상상할 수 있었고 그 상상은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p. 107)   성가대의 소년대원과 비트족을 절충한 것 같고..... 그는 말하려는 것을 제외하고는 작곡의 모든 규칙을  깨뜨렸다.

쉘턴이 알든 모르든 그것은 행크의 규칙이었다.

나는 그 규칙을 깨뜨리려는 뜻은 없었다.

내가 표현하려고 했던 것은 그 범주를 넘는 것이었다.

(p. 108)   도시 전체가 내 앞에서 흔들리고 있었고, 나는 모든 것에 대해 선명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미래는 걱정할 게 없었다.

그것은 아주 가까이 있었다.

(p. 116)   그는 나에게 꿈을 좇기 위해 어떤 희생을 했느냐고 물었다.

사물의 가치는 가격에 의해 평가될 수 없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 치른 대가에 의해 평가될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어떤 것을 얻기 위해 신념이나 가족을 희생했다면, 그 가치는 너무 높아서 절대로 닳아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p. 124

125)   케네디 형제, 킹 목사, 말콤 X..... 등이 총격으로 쓰러지는 끔찍한 사건도, 지도자가 총을 맞고 쓰러진 것이라고보다는 오히려 상처받은 가족을 남겨둔 아버지가 쓰러진 것으로 보였다.

나는 자유와 독립의 나라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므로 항상 평등과 자유의 가치와 이상을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그런 이상을  가지고 우리 아이들을 양육하기로 결심했다.

(p. 127)   몇 년 전 위버스의 멤버인 로니 길버트는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나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 여기 그가 있습니다.

.... 그를 가지세요, 여러분은 그를 잘 압니다.

그는 여러분의 것입니다.

" 나는 그  소개하는 말에 들어 있는 불길한 조짐을 느끼지 못햇다 엘비스도 그런 식의 소개는 받은 적이 없었다 '그를 가져라, 여러분의 것'이라니! 무슨 미친 소리인가! 나라는 사람은 그??나 지금이나 누구에게 속해 본  일이 없다.

내게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을 지키고 먹여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는데 잘난 체하는 인간들이 언론에서 나를 대변자라느니 심지어 시대의 양심이라느니 하면서 사람들을 속이고 있었다.

웃기는 일이었다.

내가 한 일이라곤 새로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고 강하게 표현하는 노래를 부른 것뿐이었다.

나는 내가 대변하게 되어 있다는 세대와 공통적인  것이 별로 없고 잘 알지도 못했다.

불과 10년 전에 고향을 떠났고 누구에게도 큰 소리로 내 의견을 외친  일이 없었다.

앞날의 내 운명은 삶이 인도하는 대로 가게 되어 있었고, 무슨 문명을 대표하는 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솔직히 이런 상황이었다.

나는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보다는 목동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명성과 부가 관력으로 바뀐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영과과 명예와 행복을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따금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자신이 상처받기 쉬운 상태로, 보호해야 할 가족과 함께 우드스톡에서 꼼짝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언론에는 내가 엉뚱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었다.

거짓말이 얼마나 심한지 놀라웠다.

세상은 로마 제국으로 쳐들어갈 대군을 인도하기 위해 늘 희생양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미국은 로마 제국으 아니고 누군가 그것을 자청하고 나서야만 했다.

나는 실제로 눈물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어슴푸레한 안개를  응시하며 지적인 몽롱함 속에 떠도는 노래를 작곡하는 포크 뮤지션 이상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엉뚱한 일들이 일어나서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나는 기적을 일으키는 설교자가 아니었다.

[밥 딜런] 는 진정 무엇인가.


이 상황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것이었다.

(p. 127

128)   분명 내 가사는 전에 없는 진한 감동을 주었지만, 내 노래가 단지 가사만이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위대한 로큰롤 기타리스트 듀앤 에디가 내 곡을 기악곡으로 녹음한 것은 어떻게 된 일인가? (p. 132)   대담하고 혁신적이고 모험적인 일을 시작하려는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출발점에 서게 된 것이다.

 (p. 170)   어느 날 아내가 낀 금속제 선글라스에 조그맣게 비춰진 내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모든 것이 얼마나 작아졌는지를 생각했다.

(p. 178)   워홀 시대의 한 비평가가 그의 작품에서 1온스의 희망이나 사랑이라도 찾아낼 수 있으면 백만 달러를 주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p. 188)   그(다니엘 라노아)는 히트 음반들은 그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히트한  것이 없어요." (p. 191)   이 곡(당신이 내 사랑이기 때문에, I Walk the Line)은 내가 항상 톱으로 생각하는 곡이고, 가장 신비스럽고, 혁명적이고 취약점을 공격하는 곡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p. 232)   "로버트, 인생에는 무슨 일이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라. 원하는 것을 모두 갖지 못했어도, 원하지 않는 일이 생기지 않은 것에 감사해라." (밥 딜런의 어머니, p. 242)   우디 거스리를 제외하고 자신이 노래하기를 원하는 곡을 썼던 사람은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p. 244)   존 헤먼드에게 나를 리드 뮤직으로 데리고 가야겠다고 확신을 주었던 것은 뛰어난 노래가 아니라, 나의  정체성과 운명의 출발점을 지적해 주었던 위대한 인물 우디 거스리에게 존경을 표하는 가사와 멜로디였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와 함께 노래를 썼고 그의 옛 노래로부터 멜로디를 가져왔는데, 그것이 내가 쓰게 될 천여 곡의 첫번째 곡이 될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의 인생은 오래전 미니애폴리스에서 전축으로 우디의 곡을 처음 들은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그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마치 백만  톤의 폭탄이 떨어진 것 같았다.

(p. 245)   노래를 차례로 들으면서 현기증이 나는 것을 느꼈다.

숨이 막히고 땅이 갈리지는 것 같았다.

전에도 거스리의 곡을 들엇지만 주로 여기저기 한 곡씩 다른 가수들과 함께 노래한 것들이지 실제로 이렇게 세상이 산산조각나는 식으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거스리는 사람의 마음을 장악하는 힘이  있었다.

그는 너무 시적이고 멋있고 리드미컬했다.

긴장감이 넘치는 목소리는 단검과도 같았다.

내가 전에 들었던 다른 가수들의 곡과 달랐고 그 자신의 곡들과도 같지 않앗다.

모든 것을 술술 말하는 틀에 받힌 매너리즘은 충격이었다.

축음시 자체가 나를 들어서 방바닥에 던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발성법도  주의해서 들었다.

누구도 생각지 못한 완벽한 스타일로 노래하고 있었다.

필요할 때마다 단어의 마지막  철자에 목소리를 높였는데 활력을 불어넣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의 레퍼토리는 범주를 넘은 것이었다.

 그의 노래에는 인류의 무한한 흐름이 들어 있었다.

평범한 곡은 한 곡도 없었다.

우디 거스리는 그의 길에 있는 모든 것을 조각조각 찢었다.

내게는 신의 출현과 같았다.

마치 이제 막 항구에 들어와 무거운 닻을 내린 것 같았다.

(p. 260

261)   내 목소리와 기타가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게 해줄 것이라고 느꼈다.

(p. 275)   <자유롭게 살다가 죽게 해주오(Let Me Die in My Footstep)>를 작곡했다.

로이 어�?프의 옛 발라드에 기초해서 이 곡을 만들었다.

이 곡은 냉전 시대의 산물인 방사능 낙진 지하대피소가 유행하는 바람에 영감을 받은 곡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곡을 내놓는 것을 급진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에게는 전혀 급진적이 아니었다.

(p. 288)    바람만이 아는 대답작가밥 딜런출판문학세계사발매2010.03.29리뷰보기     우리가 잘 살자고 남을 괴롭히지 말아줘.그냥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해줘.더 이상 이런 노래 유효하지 않기를 ....Blowin' In The Wind-Bo..-밥 딜런, 1965년 포크 음악의 거인이었으나 자신에 대한 신뢰를 거부하고 뉴포트에서 전자기타로 연주함으로서 자신의 팬들을 배반하고 야유를 받았던 밥 딜런. 그러나 장르를 바꾸면서도 자신의 음악에 대한 지속적인 모험과 변화를 모색했던 팝 음악의 거인. 밥 딜런은 음악뿐만 아니라 성격도 변화가 심하고, 매스컴과의 인터뷰에는 불친절하고, 사생활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면서 사회 운동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하는 등 종횡무진 하는 삶을 보여줘 왔다.

그의 음악에는 공통점을 찾아내기에는 힘든 요소와 스타일들이 너무나 많다.

   <밥 딜런 평전>(실천문학사, 김백리 역)을 읽었다.

읽는 내내 그의 삶을 300페이지 정도의 책에 담아내기에는 페이지가 모자란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적으로 조금은 평이하고, 읽다가 만 느낌이다.

읽는 내내 이 책의 두 배 정도 분량이 되면 밥 딜런의 삶이 조금은 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혹은 나이가 들어감에 다라 지속적으로 변모하는 그의 삶은 영화 <아임 낫 데어>에서 밥 딜런이라는 이름을 찾아 헤매는 것과도 유사하다.

밥 딜런이라는 인물을 한 마디로 정의 내리기란 힘들다.

그것은 꾸준히 자신의 모습을 바꾸었고, 음악적 장르에 대한 탐색 또한 지속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전조차도 때로는 파편화되고, 헤매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밥 딜런이라는 한 개인을 이루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책이다.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 in the Wind)은 밥 딜런의 가장 유명한 노래 중 하나다.

 사람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봐야진정한 삶을 깨닫게 될까?백비둘기는 얼마나 많은 바다 위를 날아야백사장에 편히 쉴 수 있을까?전쟁의 포화가 얼마나 많이 휩쓸고 나서야영원한 평화가 찾아오게 될까?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어.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얼마나 긴 세월이 흘러야산이 씻겨서 바다로 내려갈까?사람은 참된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언제까지 고개를 돌리고외면할 수 있을까?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어.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얼마나 많이 올려다보아야진짜 하늘을 볼 수 있을까?얼마나 많은 귀들이 있어야타인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어야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을 깨달을 수 있을까?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어.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60년대의 불안감, 모호함. 흑인 민권운동과 베트남전의 갈등 사이에서 밥 딜런은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통해서 모호한 대답을 남겼다.

시대의 변화를 기다리는 초조한 심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지만 답은 잡힐 듯 말 듯 모호하기만 하다.

답은 있는 것 같지만, 실체는 보이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런 모호함은 대중들을 강력하게 매혹시켰다.

     밥 딜런의 정신적인 아버지는 우디 거스리이다.

(우리나라에도 한 장의 LP가 발매된 적이 있었다.

영화 <바운드 포 글로리>가 우디 거스리의 삶을 다룬 영화다.

)  딜런이 거스리에게 받은 영향은 단순히 이미지나 악센트뿐만이 아니다.

딜런은 거스리에게서 독창적인 유머와 격정적인 면모, 개인주의자인 동시에 민중주의자로서의 방랑벽, 대중문화 산업의 관습에 대한 대안, 그리고 정직하며 현실참여적인 포크 싱어의 전범을 찾아냈다.

거스리는 딜런에게 ‘진정한 딜런’에 가장 근접한 정체성을 부여했고, 이는 사회가 규정한 딜런의 이미지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p52) 젊은 딜런은 뉴저지의 국립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거스리를 찾아가기도 했다.

딜런은 그렇게 자신의 영웅을 직접 만났고, “우디에게 바치는 노래”(Song to Woody)를 작곡하기도 했다.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DC에서는 반(反) 인종차별 운동 시위가 벌어진다.

마틴 루터 킹이 감동적인 연설을 행했고, 존 바에즈가 노래를 불렀다.

밥 딜런도 “배가 들어오면”(When the Ship Comes in)과 “그는 단지 하수인이었을 뿐”(Only a Pawn in Their Game)을 연이어 불렀다.

딜런은 인종차별주의를 계급에 기초해서 분석했고, 백인의 특권에 기반을 둔 미국의 정책을 비판하고 풍자했다.

워싱턴 행진을 통해서 법률적 평등에 대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요구는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언론은 워싱턴 행진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지만 포크 가수들이 한 일에 대해서는 폄하했다.

그러나 밥 딜런은 사회참여적인 자신의 입장을 확고하게 보여주었으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끌어냈다.

   워싱턴 행진 직전에도 밥 딜런은 애틀랜타의 그린우드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했다.

딜런은 자기가 아홉 살이 될 때까지 유색인종을 만난 일이 없으며, 도와준 일이 너무 없다고 사과하기도 했다.

그는 경찰과 KKK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단지 하수인이었을 뿐”을 불렀다.

초기 밥 딜런은 이처럼 인종차별주의에 반대하면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명했다.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굳어진 밥 딜런의 이미지, 즉 저항의 상징으로서 밥 딜런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1965년 7월 뉴포트 포크 페스티발에서 딜런은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평소의 낡은 청바지와 작업복 셔츠 차림과 달리 물방울 무늬의 짙은 셔츠에 끝이 뾰족한 가죽 부츠를 신은 딜런은 전자기타를 들고 무대에 올라왔다.

[밥 딜런] 최고의 방법은?



폴 버터필드 블루스 밴드와 함께 노래를 불렀지만, 그의 파격적인 변신에 대중들의 어안은 벙벙했고 온갖 야유와 욕설이 뒤섞여서 튀어 나왔다.

그를 믿었던 ‘신도’들은 배신을 당한 것이다.

많은 이들이 질색을 표했지만, 딜런은 이 시기를 통해서 전통적인 포크음악에서 벗어나 록큰롤을 수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자신을 추종하는 많은 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편하게 인정받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완전히 새로운 예술을 찾아 나선 모험적인 시도였다.

그리고 밥 딜런의 이런 시도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밥 딜런 평전>은 2000년대에 쓰여졌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60년대 밥 딜런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부분적으로는 밥 딜런을 설명하기 위해-그의 변화무쌍한 삶을 글로 써낸다는 게 너무나 힘든 일이므로-우디 거스리, 커티스 메이필드, 브루스 스프링스틴 같은 다른 뮤지션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다.

<밥 딜런 평전>을 읽다 보면 왜 <아임 낫 데어>가 그런 형식으로 밥 딜런을 찾아 헤매는지 공감이 간다.

  나이가 든 밥 딜런은 작년에 국내에서 내한공연도 펼쳤다.

책을 읽고 있으면, 밥 딜런의 60년대 앨범들이 다시 떠올라 듣고 싶어진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멜로디들. 바람만이 아는 대답, 구르는 돌처럼, 미스터 탬버린맨........    밥 딜런 평전작가마이크 마퀴스출판실천문학사발매2008.07.01리뷰보기   ? 밥 말리를 음악은 "밥 딜런 같은 서정적인 가사의 힘, 존 레논 같은 카리스마, 스모키 로빈슨 같은 목소리"로 평가 받는다.

자메이카의 국민적 영웅이며 그의 앨범 레전드(1984년)는 2500만장이 팔리며 레게음악 처음 플래티넘을 수상했으며 엑소더스 앨범은 타임즈 선정 20세기 최고의 앨범,1994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등재,2001년 그래미상 평생공로상을 받으며 그의 업적과 노래에 높은 가치를 둔다.

밥 말리의 음악에는 블루마운틴 커피로 유명한 자메이카의 흑인 노예역사, 영국의 지배를 1962년까지 받은 아픔,혼열인으로써 고독감 등이 녹아 있다.

레게전설 밥 말리 타투

인생은 많은 도로표지판이 있는 큰 길이다.

도로 수레바퀴자국에 빠지더라도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라.미움,나쁜것,질투등에 빠지지 말고 그것에서 자유로워져라.현실에 비젼을 세우고 깨어나 살아가라.-밥 말리- 그 말은 진실이었다.

정말 나 자신을 누구와 비교해 본 적이 없었다.

(p. 15)    나는 한계를 초월할 수 있었다.

내가 찾는 것은 돈이나 사랑이 아니었다.

굳은 의지를 가지고 있었고, 비현실적이고 몽상적이긴 하지만 날음대로의 길을 정해놓고 있었다.

(p. 16)   사실 나는 모든 사람을 위해 연주하고 싶었다.

방 안에서 앉아서 자신만을 위해 연주할 수는 없다.

항상  사람들을 위해 연주하는 것이 필요했다.

나는 대중들 앞에서 연주했고 인생 전체가 연주하는 삶이 되어가고 있었다.

(p. 23)   현대는 사회적으로 타당성이나 무게가 없었고 나는 거기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지금 관심을 갖는 주제는 타이타닉호의 침몰, 갤베스턴의 홍수, 존 헨리의 운전용 강철, 존 하디가 웨스트버지니아 라인에서  한 남자를 사살한 것 등이엇다.

이것들이 내가 깊이 생각하고 관심을 갖는 뉴스였다.

(p. 28)   나는 환상적인 빛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일이 잘못될 수도 있는 것일까?  그럴 것 같지는 안았다.

속았다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거짓 희망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나는 먼 길을 왔고 가야 할 먼 길을 출발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운명이 그 자신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운명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느꼈다.

(p. 30)   나는 아마 조지 존스를 제외하고는 컨트리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p. 42)   나에게 노래는 가벼운 오락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노래는 나의 개인교사였고 현실의 변화된 의식으로 가는 안내자였고, 해방된 공화국이었다.

(p. 43)   어느 경우가 됐든, 나는 안티 대중문화와는 거리가 있었고, 대중을 선동하려는 야망도 없었다 주류 문화를 대단히 시시하고 큰 속임수라고 생각했을뿐이었다.

그것은 마치 창밖에 펼쳐진 얼음 바다 위를 어색한 신발을 신고 걷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었다.

나는 우리가 어떤 역사시대에 속하는지 몰랐고 시대의  진실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것을 고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진실을 말한다면 아주 잘하는 일이고 좋은 일이다.

진실이 아닌 것을 말한대도 그것 역시 잘하는 일이고 좋은 일이다.

포크송은 내게 그것을 가르쳤다.

어느 시대든 항상 새벽이 시작되었고, 나는 몇 국가의 국민과 역사에 대해서, 그리고 역사가 언제나 같은 패턴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고대의 어떤 시기에 사회가 성장하고 발전하고  번영했다.

그리고 모범적으로 성숙한 지점에 도달한 후, 노력하지 않는 게으른 시대가 뒤를 이었고 퇴폐가 모든 것을 붕괴시켰다.

나는 미국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 몰랐다 확인하려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거칠고 투박한 리듬이 미국을 흔들고 있었다.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든 완전히 틀린 생각일 수도 있었다.

(p. 43

44)   "세상에는 네가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단다.

그냥 내버려 둬라. 제풀에 지쳐서 떨어지게 말이야." (밥 딜런의 할머니, p. 52)   미래는 무엇일까? 미래는 단단한 벽이고, 약속된 장래도 없고, 위협적이지도 않다는 것, 모두 허튼소리였다.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인생은 하찮은 것이 아니라는 보장도 없었다.

(p. 59)   나는 상황과 아이디어를 압축시키는 법을 배워야 했다.

도서관의 책을 모두 볼 수 없는 것처럼, 테이블  위에 널려 있는 것을 모두 볼 수 없었다.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노래의 한 단락이나 한 행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p. 72)   몇 년 위에 휘틀로는 주택 파손 및 무단침입 절도죄로 체포되었는데 자신이 예술가이고 그 행동은 공연  예술이었다고 변명했다.

믿을 수 없게도 그녀에 대한 고소가 취하되었다.

(p. 77)   나는 정신적인 사고방식을 바꿔야 하고..... 전에는 인정하지 않던 가능성을 믿어야 하며, 나의 창조성이  매우 편협하고 조종이 가능한 정도라는 것과..... 상황이 너무 익숙해서 내가 방향을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p.81

82)   나는 마이크가 알지 못하는, 나 자신의 포크송을 작곡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획기적인 생각이었다.

그??까지 몇 군데에서 연주를 했고, 내가 갈 길을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어두운 방의 문을 열면서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어디에 놓여 있는지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안에 들어갈 때까지 알지 못한다.

(p. 82)   그런데 얼마 후 우연히 딜런 토머스의 시를 보았다.

딜런과 앨런 비슷하게 들렸다.

로버트 딜런. 로버트  앨런. 쉽게 결정할 수가 업엇다.

D가 더 강하게 다가왔지만 로버트 딜런은 로버트 앨런만큼 멋있게 보이거나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항상 나를 로버트나 보비라고 불렀지만 보비 딜런은 너무 겁이 많은 것처럼 들렸고, 게다가 벌써 보비 다린, 보비 보비, 보비 리델, 보비 닐리 등 보비라는 이름이 너무 많았다.

밥  딜런이라면 밥 앨런보다 낫게 보이고 좋게 들리는 것 같았다.

트윈 시티에서 처음 이름이 물어왔을 때,  거의 본능적으로 자연스럽게 '밥 딜런'이라고 간단히 말했다.

(p. 89

90)   미국울새가 우는 것을 본 적이 없지만 상상할 수 있었고 그 상상은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p. 107)   성가대의 소년대원과 비트족을 절충한 것 같고..... 그는 말하려는 것을 제외하고는 작곡의 모든 규칙을  깨뜨렸다.

쉘턴이 알든 모르든 그것은 행크의 규칙이었다.

나는 그 규칙을 깨뜨리려는 뜻은 없었다.

내가 표현하려고 했던 것은 그 범주를 넘는 것이었다.

(p. 108)   도시 전체가 내 앞에서 흔들리고 있었고, 나는 모든 것에 대해 선명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미래는 걱정할 게 없었다.

그것은 아주 가까이 있었다.

(p. 116)   그는 나에게 꿈을 좇기 위해 어떤 희생을 했느냐고 물었다.

사물의 가치는 가격에 의해 평가될 수 없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 치른 대가에 의해 평가될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어떤 것을 얻기 위해 신념이나 가족을 희생했다면, 그 가치는 너무 높아서 절대로 닳아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p. 124

125)   케네디 형제, 킹 목사, 말콤 X..... 등이 총격으로 쓰러지는 끔찍한 사건도, 지도자가 총을 맞고 쓰러진 것이라고보다는 오히려 상처받은 가족을 남겨둔 아버지가 쓰러진 것으로 보였다.

나는 자유와 독립의 나라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므로 항상 평등과 자유의 가치와 이상을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그런 이상을  가지고 우리 아이들을 양육하기로 결심했다.

(p. 127)   몇 년 전 위버스의 멤버인 로니 길버트는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나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 여기 그가 있습니다.

.... 그를 가지세요, 여러분은 그를 잘 압니다.

그는 여러분의 것입니다.

" 나는 그  소개하는 말에 들어 있는 불길한 조짐을 느끼지 못햇다 엘비스도 그런 식의 소개는 받은 적이 없었다 '그를 가져라, 여러분의 것'이라니! 무슨 미친 소리인가! 나라는 사람은 그??나 지금이나 누구에게 속해 본  일이 없다.

내게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을 지키고 먹여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는데 잘난 체하는 인간들이 언론에서 나를 대변자라느니 심지어 시대의 양심이라느니 하면서 사람들을 속이고 있었다.

웃기는 일이었다.

내가 한 일이라곤 새로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고 강하게 표현하는 노래를 부른 것뿐이었다.

나는 내가 대변하게 되어 있다는 세대와 공통적인  것이 별로 없고 잘 알지도 못했다.

불과 10년 전에 고향을 떠났고 누구에게도 큰 소리로 내 의견을 외친  일이 없었다.

앞날의 내 운명은 삶이 인도하는 대로 가게 되어 있었고, 무슨 문명을 대표하는 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솔직히 이런 상황이었다.

나는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보다는 목동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명성과 부가 관력으로 바뀐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영과과 명예와 행복을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따금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자신이 상처받기 쉬운 상태로, 보호해야 할 가족과 함께 우드스톡에서 꼼짝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언론에는 내가 엉뚱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었다.

거짓말이 얼마나 심한지 놀라웠다.

세상은 로마 제국으로 쳐들어갈 대군을 인도하기 위해 늘 희생양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미국은 로마 제국으 아니고 누군가 그것을 자청하고 나서야만 했다.

나는 실제로 눈물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어슴푸레한 안개를  응시하며 지적인 몽롱함 속에 떠도는 노래를 작곡하는 포크 뮤지션 이상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엉뚱한 일들이 일어나서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나는 기적을 일으키는 설교자가 아니었다.

이 상황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것이었다.

(p. 127

128)   분명 내 가사는 전에 없는 진한 감동을 주었지만, 내 노래가 단지 가사만이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위대한 로큰롤 기타리스트 듀앤 에디가 내 곡을 기악곡으로 녹음한 것은 어떻게 된 일인가? (p. 132)   대담하고 혁신적이고 모험적인 일을 시작하려는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출발점에 서게 된 것이다.

 (p. 170)   어느 날 아내가 낀 금속제 선글라스에 조그맣게 비춰진 내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모든 것이 얼마나 작아졌는지를 생각했다.

(p. 178)   워홀 시대의 한 비평가가 그의 작품에서 1온스의 희망이나 사랑이라도 찾아낼 수 있으면 백만 달러를 주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p. 188)   그(다니엘 라노아)는 히트 음반들은 그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히트한  것이 없어요." (p. 191)   이 곡(당신이 내 사랑이기 때문에, I Walk the Line)은 내가 항상 톱으로 생각하는 곡이고, 가장 신비스럽고, 혁명적이고 취약점을 공격하는 곡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p. 232)   "로버트, 인생에는 무슨 일이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라. 원하는 것을 모두 갖지 못했어도, 원하지 않는 일이 생기지 않은 것에 감사해라." (밥 딜런의 어머니, p. 242)   우디 거스리를 제외하고 자신이 노래하기를 원하는 곡을 썼던 사람은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p. 244)   존 헤먼드에게 나를 리드 뮤직으로 데리고 가야겠다고 확신을 주었던 것은 뛰어난 노래가 아니라, 나의  정체성과 운명의 출발점을 지적해 주었던 위대한 인물 우디 거스리에게 존경을 표하는 가사와 멜로디였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와 함께 노래를 썼고 그의 옛 노래로부터 멜로디를 가져왔는데, 그것이 내가 쓰게 될 천여 곡의 첫번째 곡이 될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의 인생은 오래전 미니애폴리스에서 전축으로 우디의 곡을 처음 들은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그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마치 백만  톤의 폭탄이 떨어진 것 같았다.

(p. 245)   노래를 차례로 들으면서 현기증이 나는 것을 느꼈다.

숨이 막히고 땅이 갈리지는 것 같았다.

전에도 거스리의 곡을 들엇지만 주로 여기저기 한 곡씩 다른 가수들과 함께 노래한 것들이지 실제로 이렇게 세상이 산산조각나는 식으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거스리는 사람의 마음을 장악하는 힘이  있었다.

그는 너무 시적이고 멋있고 리드미컬했다.

긴장감이 넘치는 목소리는 단검과도 같았다.

내가 전에 들었던 다른 가수들의 곡과 달랐고 그 자신의 곡들과도 같지 않앗다.

모든 것을 술술 말하는 틀에 받힌 매너리즘은 충격이었다.

축음시 자체가 나를 들어서 방바닥에 던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발성법도  주의해서 들었다.

누구도 생각지 못한 완벽한 스타일로 노래하고 있었다.

필요할 때마다 단어의 마지막  철자에 목소리를 높였는데 활력을 불어넣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의 레퍼토리는 범주를 넘은 것이었다.

 그의 노래에는 인류의 무한한 흐름이 들어 있었다.

평범한 곡은 한 곡도 없었다.

우디 거스리는 그의 길에 있는 모든 것을 조각조각 찢었다.

내게는 신의 출현과 같았다.

마치 이제 막 항구에 들어와 무거운 닻을 내린 것 같았다.

(p. 260

261)   내 목소리와 기타가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게 해줄 것이라고 느꼈다.

(p. 275)   <자유롭게 살다가 죽게 해주오(Let Me Die in My Footstep)>를 작곡했다.

로이 어�?프의 옛 발라드에 기초해서 이 곡을 만들었다.

이 곡은 냉전 시대의 산물인 방사능 낙진 지하대피소가 유행하는 바람에 영감을 받은 곡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곡을 내놓는 것을 급진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에게는 전혀 급진적이 아니었다.

(p. 288)    바람만이 아는 대답작가밥 딜런출판문학세계사발매2010.03.29리뷰보기     30. 13:34  http://blog.naver.com/cid8099/220495243514 전용뷰어 보기 ??노래하는 시인 밥 딜런!!?안녕하세요? 오래간만입니다.

이웃님들^^ Sky Guitar 입니다.

?다들 추석 연휴는 어찌 지내셨나요? 저도 나름 잘 지냈습니다.

ㅎㅎㅎ 긴 추석 연휴 만큼 저의 블로그도 정말 길게 쉬었네요. ㅎㅎㅎ ??긴 휴식 기간 다음에 제 블로그에서 올린 포스팅은 뮤지션 이야기 인데요.어제밤 11시 넘어서 MBC에서 비긴어게인을 해서 다시 보았습니다.

뭐 아시다시피 무한도전 멤버들이 더빙을 하여서 화제가 되었죠. ㅎㅎ그때 주인공 댄(마크 러팔로)과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의 대화 속에서한명의 뮤지션 이야기가 나와서 그 뮤지션에 대해서 소개 하고자 합니다.

??바로 포크음악 하면은 떠오르는 싱어송라이터 밥딜런 인데요. 오늘은 이 뮤지션에 삶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합니다.

그는 러시아계 유대인으로 1941년 미국 미네소타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때 부터 블루스와 모던 포크의 대사 우디 거스리, 엘비스 프레슬리의 광팬이었던 그는 1959년 미네소타 대학교에 입학해 근처에서밥딜런(본명 로버트 앨런 지머맨) 이라는 예명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 했습니다.

?1961년에 뉴욕으로 올라와 카페에서 반주를 하고 간간이 노래를 부르며살았는데요. 밥딜런은 이때 우디 거스리의 병실을 찾아가 그릴 간병하며초기 음악 세계를 만들어 나갔다고 하네요.그러다가 1962년 컬럼비아 레코드의 눈에 뜨어 첫 앨범인Bob Dylan을 발표 하였습니다.

발딜런이 본격적으로 재능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63년에 발표한"The Freewheelin Bod Dylan" 앨범 이였는데요.이 앨범에 "Blowin In The Wind", Don't Think Twice, It'sAll Right" 등의 명곡이 쏟아져 나오면서 시적이면서정치적인 깊이가 있는 가사와 모던 포크의 간결함을 수용한이 앨범은 곧 엄청난 반항을 일으켰습니다.

밥딜런은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큰 반항을 일으켜서수많은 사람들이 기가 되고자 했는데요. 하지만 그는 곧 너무 단조롭고심심한 포크와 폐쇄적인 포크 커뮤니티에 질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시기에 그는 비틀즈를 만나게 되었죠.?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뮤지션들은 곧 서로에게 빠져 들게 되었는데요.특히 비틀즈의 존 레논은 밥딜런의 심도있는 가사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밥딜런은 비틀즈의 로크롤이 가진 에너지와 환희에 매료 되었다고 하네요.그는 후배 밴드인 버즈의 "Mr Tambourine Man"과 자신의 앨범인"Bringing It All Back Home"을 통해 락을 시험하게되었는데요. 여기서 얻은 자신감으로 본격적으로 포크 락에 도전을 합니다.

지금이야 이런 변화가 큰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요. 이때 당시에는 정말 그때 당시에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는 것이였는데요. 당시 포크 씬은 일렉 기타를드는 행위를 배신이라고 생각 했다고 하네요.그들은 일렉 기타를 드는 행위가 포크의 순수성을 파괴한다고 생각 했다고 하네요.밥딜런은 1965년 5월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일렉기타를 들고 나왔고요. 이날 락 역사에서 길이 남을 라이브 공연이 벌어졌는데요.Like a Rolling Stone 이때 영상을 보면 밥 딜런이 일렉기타를든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와중에도 관중들이 야유를 보내며쓰레기를 던져댔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 하지 않고8월 "Highway 61 Revisited"를 발표 하였습니다.

이 앨범은 여러모로 밥딜런의 대표작으로 꼽히는데요. 우선 포크 락을 본격적으로완성 시켰으며 가사 역시 하나의 예술의 경지로까지 올렸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1966년 발표한 Blonde On Blonde 앨범 역시 큰 찬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앨범 발표뒤에 오토바이 사고가 일어나 잠시 요양을 하게 되었는데요.이는 사실 매니저 앨버트 그로스먼과 짠 계획 있었다고 하네요.크게 다치지 않았던 밥딜런은 매니저와 신비주의 전략을 위하여일부러 크게 다쳤다고 발표를 해서 앨범 판매량이 급증 했다고 합니다.

밥딜런은 복귀 이후 밥딜런은 그?? 당시 히피 운동이 한참이였던1960년말을 "John Wesley Harding", "Nashville SkyLine","The Basement Tapes" 같은 앨범을 녹음하면서 어쿠스틱과컨트리에 집중 하는 인상을 보여 주었는데요.이렇게 대중의 평단의 기대와 어긋나는 행보에 미묘한 반응을 얻던 지만1975년 발표된 "Blood on the Tracks"으로 다시 찬사를 받았습니다.

밥딜런은 1970년대말 기독교에 심취해 1979년 "Slow Train Coming" 이라는가스펠 음반을 내서 그래미 상도 수상을 하기도 합니다.

그후 전도사로도 활동을 하기 시작하였는데요. 이때부터 예전보다는 덜한 대중들의 관심속에서 정규앨범 발표와 반전 운동으로 1980년대를 보냈습니다.

허나 발표한 앨범들이 전성기 보다는 못해서 그의 암흑기라고도 부르고 있습니다.

그를 노래하는 시인이라고 제가 불렀는데요. 그만큼 밥딜런의 가사 쓰는실력은 장난이 아니기로 유명하죠. 실랄하면서도 예리한 그의 발언들은히피 세대의 대변인으로 자리잡기도 했습니다.

그의 가사 쓰는 능력 ??문에 1990년대 이후 노벨문학상 후보로도여러 차례 올랐다고 하네요.당연히 이렇게 전설적인 싱어송 라이터 이다보니 부도 엄청 축적되었는데요.부동산을 여러게 소유한 부자이지만 행색은 거의 노숙자에 가깝죠. ㅎㅎ밥딜런을 잘 모르는 20대 젊은 경찰에게 노숙자 취급을 받아서사람들에게 충격을 선사 할 정도로 행색은 좀 거지 같기는 합니다.

ㅎㅎ  위에 영상은 그의 명곡인 Blowin'In The Wind"와 "Like a Rolling Stone" 이니명곡을 한번 감상 해 보세요. 오늘은 전설의 포크 뮤지션 중에 하나인 노래하는 시인 밥딜런에 대해서소개해 드렸습니다.

다음번에도 좋은 뮤지션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Coming Soon!! ??? ???? ?? ?? ? ??!!?????? ?? ? ??!!?????? ???????. ????^^ Sky Guitar ???.?...blog.naver.comhttp://blog.naver.com/cid8099?Redirect=Log&logNo=220495243514  ??노래하는 시인 밥 딜런!!?안녕하세요? 오래간만입니다.

이웃님들^^ Sky Guitar 입니다.

?다들 추석 연휴는 어찌 지내셨나요? 저도 나름 잘 지냈습니다.

ㅎㅎㅎ 긴 추석 연휴 만큼 저의 블로그도 정말 길게 쉬었네요. ㅎㅎㅎ ??긴 휴식 기간 다음에 제 블로그에서 올린 포스팅은 뮤지션 이야기 인데요.어제밤 11시 넘어서 MBC에서 비긴어게인을 해서 다시 보았습니다.

뭐 아시다시피 무한도전 멤버들이 더빙을 하여서 화제가 되었죠. ㅎㅎ그때 주인공 댄(마크 러팔로)과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의 대화 속에서한명의 뮤지션 이야기가 나와서 그 뮤지션에 대해서 소개 하고자 합니다.

??바로 포크음악 하면은 떠오르는 싱어송라이터 밥딜런 인데요. 오늘은 이 뮤지션에 삶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합니다.

그는 러시아계 유대인으로 1941년 미국 미네소타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때 부터 블루스와 모던 포크의 대사 우디 거스리, 엘비스 프레슬리의 광팬이었던 그는 1959년 미네소타 대학교에 입학해 근처에서밥딜런(본명 로버트 앨런 지머맨) 이라는 예명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 했습니다.

?1961년에 뉴욕으로 올라와 카페에서 반주를 하고 간간이 노래를 부르며살았는데요. 밥딜런은 이때 우디 거스리의 병실을 찾아가 그릴 간병하며초기 음악 세계를 만들어 나갔다고 하네요.그러다가 1962년 컬럼비아 레코드의 눈에 뜨어 첫 앨범인Bob Dylan을 발표 하였습니다.

발딜런이 본격적으로 재능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63년에 발표한"The Freewheelin Bod Dylan" 앨범 이였는데요.이 앨범에 "Blowin In The Wind", Don't Think Twice, It'sAll Right" 등의 명곡이 쏟아져 나오면서 시적이면서정치적인 깊이가 있는 가사와 모던 포크의 간결함을 수용한이 앨범은 곧 엄청난 반항을 일으켰습니다.

밥딜런은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큰 반항을 일으켜서수많은 사람들이 기가 되고자 했는데요. 하지만 그는 곧 너무 단조롭고심심한 포크와 폐쇄적인 포크 커뮤니티에 질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시기에 그는 비틀즈를 만나게 되었죠.?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뮤지션들은 곧 서로에게 빠져 들게 되었는데요.특히 비틀즈의 존 레논은 밥딜런의 심도있는 가사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밥딜런은 비틀즈의 로크롤이 가진 에너지와 환희에 매료 되었다고 하네요.그는 후배 밴드인 버즈의 "Mr Tambourine Man"과 자신의 앨범인"Bringing It All Back Home"을 통해 락을 시험하게되었는데요. 여기서 얻은 자신감으로 본격적으로 포크 락에 도전을 합니다.

지금이야 이런 변화가 큰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요. 이때 당시에는 정말 그때 당시에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는 것이였는데요. 당시 포크 씬은 일렉 기타를드는 행위를 배신이라고 생각 했다고 하네요.그들은 일렉 기타를 드는 행위가 포크의 순수성을 파괴한다고 생각 했다고 하네요.밥딜런은 1965년 5월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일렉기타를 들고 나왔고요. 이날 락 역사에서 길이 남을 라이브 공연이 벌어졌는데요.Like a Rolling Stone 이때 영상을 보면 밥 딜런이 일렉기타를든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와중에도 관중들이 야유를 보내며쓰레기를 던져댔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 하지 않고8월 "Highway 61 Revisited"를 발표 하였습니다.

이 앨범은 여러모로 밥딜런의 대표작으로 꼽히는데요. 우선 포크 락을 본격적으로완성 시켰으며 가사 역시 하나의 예술의 경지로까지 올렸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1966년 발표한 Blonde On Blonde 앨범 역시 큰 찬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앨범 발표뒤에 오토바이 사고가 일어나 잠시 요양을 하게 되었는데요.이는 사실 매니저 앨버트 그로스먼과 짠 계획 있었다고 하네요.크게 다치지 않았던 밥딜런은 매니저와 신비주의 전략을 위하여일부러 크게 다쳤다고 발표를 해서 앨범 판매량이 급증 했다고 합니다.

밥딜런은 복귀 이후 밥딜런은 그?? 당시 히피 운동이 한참이였던1960년말을 "John Wesley Harding", "Nashville SkyLine","The Basement Tapes" 같은 앨범을 녹음하면서 어쿠스틱과컨트리에 집중 하는 인상을 보여 주었는데요.이렇게 대중의 평단의 기대와 어긋나는 행보에 미묘한 반응을 얻던 지만1975년 발표된 "Blood on the Tracks"으로 다시 찬사를 받았습니다.

밥딜런은 1970년대말 기독교에 심취해 1979년 "Slow Train Coming" 이라는가스펠 음반을 내서 그래미 상도 수상을 하기도 합니다.

그후 전도사로도 활동을 하기 시작하였는데요. 이때부터 예전보다는 덜한 대중들의 관심속에서 정규앨범 발표와 반전 운동으로 1980년대를 보냈습니다.

허나 발표한 앨범들이 전성기 보다는 못해서 그의 암흑기라고도 부르고 있습니다.

그를 노래하는 시인이라고 제가 불렀는데요. 그만큼 밥딜런의 가사 쓰는실력은 장난이 아니기로 유명하죠. 실랄하면서도 예리한 그의 발언들은히피 세대의 대변인으로 자리잡기도 했습니다.

그의 가사 쓰는 능력 ??문에 1990년대 이후 노벨문학상 후보로도여러 차례 올랐다고 하네요.당연히 이렇게 전설적인 싱어송 라이터 이다보니 부도 엄청 축적되었는데요.부동산을 여러게 소유한 부자이지만 행색은 거의 노숙자에 가깝죠. ㅎㅎ밥딜런을 잘 모르는 20대 젊은 경찰에게 노숙자 취급을 받아서사람들에게 충격을 선사 할 정도로 행색은 좀 거지 같기는 합니다.

ㅎㅎ  위에 영상은 그의 명곡인 Blowin'In The Wind"와 "Like a Rolling Stone" 이니명곡을 한번 감상 해 보세요. 오늘은 전설의 포크 뮤지션 중에 하나인 노래하는 시인 밥딜런에 대해서소개해 드렸습니다.

다음번에도 좋은 뮤지션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Coming Soon!!  .이전에도 몇번 소개했던적이 있지요.메밀 음식을 좋아하는지라... 메밀음식에 막걸리 한잔 하고싶을때 가장 먼저 생각 나는집입니다.

메밀음식 전문점은 아닙니다^^;메밀전병 참 맛있어요...막걸리가 좀 더 다양했음 좋겠는데...술집이라긴보단 밥집에 가까운곳이라...메밀전도 맛있습니다.

바로 위에 Bob Dylan&The Band...볼때마다 끌렸었는데... 항상 문이 닫혀있드라구요...잔치집 사장님께 언제 문여냐고 물어봐도...모르겠다고 하시고 ㅎㅎ 열때도 있고 안열때도 있다네요

배도 꺼뜨릴 겸 서촌일대를 산책해봅니다.

그리 멀지않은곳에 유명한 삼계탕집도 있고...근처 맥주집에서 가볍게 한잔 더하고... 집에가려 지하철역으로 가고있는데...밥딜런 가게 간판에 불이 켜져있네요!잠시 고민하다가 들어가보기로

역시나 예상대로... 음악 들으며 맥주 마시는 그런 컨셉의 가게...맥주는 냉장고에서 꺼내마시면 됩니다.

듣고싶은 음악을 신청할수도 있고...뭐 그냥 여기저기 한군데씩 있는 흔한 LP바 같죠...그런데... 사운드가 엄청납니다.

제가 그런쪽으로 조예가 깊지 못해 뭐라 자세히 설명은 못하겠지만... 뭔가 다릅니다.

어마무시하게 생긴 스피커도 대단해보이고...너무 맘에드는 가게였습니다.

 간만에 좋은음악 실컷 듣고... 단골하기로 했는데...문제는... 도대체 이집의 영업시간이 어떻게 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일부러 찾아갔는데...영업을 안해서 헛걸음 한적도 있고...전화번호도 없으니 영업을 하는지 안하는지 미리 물어볼수도 없고...허탕을 두번이나 치고... 오랫만에 다시 방문한 잔치집...가격도 참 저렴합니다.

골뱅이무침

메밀전 안먹을수 없죠

처음 먹어보는 감자전...담백하니 맛있습니다.

메밀가루가 들어간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그렇게 막걸리 한잔 하고... 2차로 위로 올라가 음악들으면서 맥주한잔 하는게 원래 계획이었는데...다른 블로그에서 월-토 20시-02시 까지가 영업시간이라 하길래....(부정기적으로 추가로 휴무할때도 있슴)시간 맞춰서 나왔는데...역시나 불은 꺼져있고...세번 연속 허탕이라니!그래서 근처 커피숍에서 커피한잔 하고...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가봤더니  간판에 불이!!!!!!!!정말 삼고초려만에 ㅎㅎ잔치집 옆의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됩니다.

들어가자 마자 정면에 보이는 대형 스피커...사이즈가 어마어마 합니다.

손님들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촬영.LP들과...CD들로 가득합니다.

맥주는 이런것들이...이런것도....가게이름에 맞게 지미 헨드릭스의 사진이 여기저기...다른분들 사진도 있구요...메뉴판이 있는건지...없는건지... 주시질 않아서;오징어 구이같은....간단한 안주는 주문이 되는것 같은데... 어떤 종류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사실 사장님이 장사에는 큰 관심이 없으신듯한 느낌입니다.

왠지 음악을 좋아하셔서 이런 가게를 하는듯한?그냥 알아서 냉장고에서 꺼내 마신 맥주...제가 좋아하는 맥주입니다

발란스 있는 홉향이 맘에 듭니다

신청곡도 열심히 적고...스컬핀도 맛있지요...벨기에서 마셔봤던... 체리 리큐르를 섞어 만든...맥주.벨기에에 이런 타입의 맥주들이 많죠.역시나 압도적인 과일향...도수가 꽤 높은데도(8%) 알콜향이 거의 나지 않습니다.

좋은음악 + 좋은맥주 = 파라다이스 (paradise) [파라다이스][명사] : 걱정이나 근심 없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곳.  음악과 맥주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맘에 쏙 드실겁니다.

단 혹시 헛걸음 하시더라도 절 원망하지는 마시길...뭐든 쉽게 얻을수있는건 매력이 떨어지잖습니까? 근처에 이런 가게도 있더군요...나중에 여기도 한번 가보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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