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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국왕 서거



 라마(Rama) 9세라고도 한다.

전 국왕 아난다 마히돌(Ananda Mahidol, 라마 8세)의 동생으로, 1946년 6월 아난다 마히돌이 사망하자 그 뒤를 이어 새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타이의 현 왕실은 차크리왕조(Chakri Dynasty)로 1782년 라마 1세가 창시하였다.

세계 최장기 집권 국가원수이자 타이 역사상 최장기 재위 군주이다.

    그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타이에서 근대의학과 공중보건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히돌 아둔야뎃(Mahidol Adunyadet) 왕자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스위스에서 중등교육을 받았으며 로잔대학교(University of Lausanne)에서 과학을 공부하였다.

    1946년 6월 친형인 아난다 마히돌 국왕이 침실에서 머리를 저격당해 사망하자 그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즉위 후 삼촌을 섭정으로 임명하고 자신은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스위스로 돌아가 통치자로서 자질을 갖추고자 대학 과정으로 정치 ·법률학을 전공하였다.

    1950년 4월 프랑스 주재 타이 대사의 딸인 시리키트 키티야카라(Sirikit Kitiyakara) 공주와 결혼하여 1남 3녀를 두었다.

같은 해 5월 방콕의 왕궁에서 공식적인 즉위식을 가졌다.

국왕은 입법·행정·사법권을 행사하고 군 통수권을 가진다.

1932년 전제군주제가 폐지되고 헌법을 공포하여 입헌군주제가 발족되었으나, 타이에서 국왕은 단순한 입헌군주국의 상징적인 국왕과는 달리 타이 정치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국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신망을 받고 있다.

    입헌군주제 수립 이후 모두 18차례의 쿠데타가 발생할 만큼 정치가 격동을 거듭해왔는데, 최근에는 2006년 9월, 15년 만에 발생한 군부 쿠데타로 1997년도 헌법을 폐지하고 10월 과도헌법을 공포하였다.

타이에서 발생하는 쿠데타는 국왕의 승인 여부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데, 국왕은 이번 쿠데타를 승인하였다.

    푸미폰 국왕이 집권한 나이가 19세였는데,  나이가 너무 어려서 정치에 관여할 수가 없었고 정치적인 영향력이나 힘이 없었다.

    국가는 총리가 다스리는 공화정을 채택하고 있었다.

  또한 당시에 다른 나라의 왕실들은 모두 뒤집히거나 권력을 상실하여 유명무실해지는 격동의 세월이기도 하였다.

   왕은 삼촌에게 섭정을 맡기고 스위스로 유학을 떠났는데,  그곳에서 스키를 타다가 큰 사고를 당하게 된다.

그때 왕을 간호하기 위해 고국에서 파견된 간호사의 지극 정성에 감동한 왕은 사랑이 싹트게 되어 결혼을 하게 되고 그녀가 지금의 태국 왕비이다.

   왕은 여러 첩을 두는 관례를 무시하고 지금까지도 오직 왕비 하나만 두고 있다.

  이것은 태국 왕조에서 푸미폰 국왕 한사람만 그렇게 했다고 하니, 여성편력에서도 깨끗한 사람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왕은 불교 신자인데,  유학을 마치고 고국에 돌아와서는 불교적 가르침으로 가난한 사람들과 일생을 함께 살고자 노력하였다.

  왕은 카메라와 지도를 가지고 이때부터 고행길을 걷게 된다.

 일년에 무려 200일 이상을 산간 오지를 찾아 다니며 고산족 마을 사람들이나 가난한 시골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그들의 고민과 고충을 듣게 된다.

  수많은 소수 민족의 지도자들과 만나고 소수민족의 마을을 방문하였다.

   당시에 태국은 권력 암투로 인해서 푸미폰 국왕 집권기간내에 17번의 쿠테타가 일어날 정도로 혼란기였고 정치가 안정되지 못하고 정치 권력 싸움이 만연할 때였다.

  그래서 하루라도 바람잘 날이 없었지만 왕은 정치싸움에는 휘말리지 않고 오로지 정치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이 할 일만을 찾고 생활해 나갔다.

   왕이 젊은 시절 전국의 가난한 시골 마을들을 둘러 보면서 가난한 시골민들이 생활을 하기 어려워 아편을 재배해서 팔고 가난에서 벋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왕은 함께 눈물을 흘렸고,  이들이 살아나갈 수 있는 길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로얄 프로젝트'이다.

[태국 국왕 서거] 그것을 알려줍니다.


   왕은 고산족 마을에서 아편을 베어내고 그 자리에 커피를 심게 하였다.

  농민들에게 커피를 재배하도록 선도하였다.

  또한 마을 저수지에 정수장치를 하여서 물고기를 키우는 양식업을 하게 하였다.

   현재 우리가 많이 타고 다니는 타이항공은 올해 영국의 한 평가기관에서 써비스 평가부분 1위를 하였는데, 이 타이항공의 커피가 바로 고산족 마을에서 왕이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재배한 커피이다.

  이러한 로얄 프로젝트가 1000개인가 2000개인가를 왕은 평생을 거쳐서 수행하였다.

   태국에는 수많은 소수 민족이 모두 평화를 유지하며 살고 있다.

  독립 투쟁을 하지도 않고 일반 타이족과 소수민족은 잘 어울려서 살아가는 편이다.

 이렇게 된 원인이 바로 왕이 이들의 불만을 듣고 서로 중재를 하였기 때문이며,  이들의 구심점이 현 국왕이기 때문이다.

   태국왕은 심한 가뭄이 들어서 농민들이 굶주리고 고생을 할때면 직접 그 지역을 방문해서 함께 먹지 않고 마시지 않으면서 고통을 함께 했다.

  함께 밭을 일구며 비가 오기를 기원했고, 결국 왕은 이런 가뭄을 영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인공강우를 연구하게 된다.

  그 연구 업적이 대단하여 지금은 세계의 학계에서 세계적인 인공강우 권위자로 평가 받기도 한다.

 한마디로 세계적인 과학자인셈이다.

    우리는 어떤가?  최근에 수해 때문에 모든 시골 지역이 물난리에 고통을 당할 때 골프를 치거나 유흥을 즐긴 정치 지도자들도 있었고.... 그러면서 말로는 국민을 위한다고 한다.

   태국은 왕의 집권기간중에 17차례의 정치 쿠테타를 격게 되는데,  정치 격변기속에서 학생운동가들과 시민운동가들이 정치 권력에 대항해서 시위를 하면 정부는 시위군중을 향해 발포를 하게 되는데,  이때 도망치는 학생들을 위해서 푸미폰 왕은 자신의 왕궁의 문을 개방해서 이들이 자신의 집으로 들어와서 무사하게 생명을 건질수 있게 한다.

[태국 국왕 서거] 노하우를 알려주마



  마치 김수한 추기경이 명동성당을 개방하듯이...아무리 정부군이나 정부의 경찰이라도 왕궁을 향해서 발포를 하거나 체포를 못하기 때문에 이들은 무사할 수 있었다.

   이 문을 열어준 사건 때문에 왕의 의중이 시민들의 뜻과 일치한다고 시위대는 판단하였고 결국에는 독재정권이 무너뜨린다.

   왕은 가난한 사람들과 한 평생을 함께 하였다.

왕이 왕궁에 초대하여 연회를 베푸는 사람들 가운데는 서민들이 대부분이다.

  정계나 재계 그리고 아주 유명한 권력자들과과 늘 거리를 두어 왔다.

   쓰나미가 태국을 덥쳤을 때 한국인 탤런트 정모씨가 -그는 유디티 출신으로 살아 움직이는 119라 불리는 사람이다-  태국을 여행하다가 쓰나미가 일어나서 많은 사람들이 물에 빠져서 허우적 거릴 때 많은 사람들을 구조했다.

  그 뒤로도 귀국을 하지 않고 한 일주일간을 봉사활동을 했다.

왕은 이 소식을 듣고 감동해서 자신의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 자원봉사를 한 한국인 탤런트 정모씨를 나중에 왕의 연회에 초대하는데,  이 파티에 초대된 사람들 중에 한국인은 정모씨 부부가 유일했고  각국의 여러 사람들이 모인 중요한 모임이였다.

   이런 점만 보아도 왕은 권력을 쥔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것이 아니라 늘 소외되는 백성들을 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였고 그들과 함께 하기를 좋아한 사람이다.

     태국에선 저녁 6시가 되면,  태국군인들과 경찰들이 왕의 초상앞에 도열하고 경례를 한다.

그리고 모든 여행객들이 일어나서 도열하는데 극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외국인들은 이 장면을 보고 처음에는 무척 신기하고 어리둥절해 한다.

   그런데 거의 모든 외국인들이 일어난다.

태국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렇게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외국인들에게까지도 국왕은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일어나지 않는다고 처벌하거나 잡아가지 않는다.

   또한 일본 왕과는 달리 자신이 사는 집인 왕궁을 항상 개방한다.

  우리가 태국에 여행을 가서 가보는 왕궁이 바로 태국왕의 집이다.

일본에서는 왕궁 근처에 얼씬도 못한다.

일년에 단 두번 정도 며칠을 개방을 할 뿐이다.

 태국 국왕은 자신이 다른곳으로 이사를 가도 자신의 궁궐을 개방을 해서 공개한다.

   얼마나 많은 외국인들이 왕궁을 방문하는지 아시는가?  그 수입을 왕이 가지는 것이 아닐진대도 자신의 집을 개방하기 위해서 이사를 하기란 쉬운 것이 아니다.

왕궁에 딸린 왕 전용 사원에는 온갖 귀중한 보물들이 다 있다.

왕이 여행을 하면 왕이 묶는 전용 숙소는 곳곳에 있다.

단지 식사를 주요 호텔들에서 하게 되는데 왕은 서민적인 식당들을 많이 방문해서 식사를 한다.

정말 허접하고 서민적인 식당인데 왕이 방문해서 식사한 사진이 걸려 있는 곳들을  태국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왕비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태국의 일반 국민들은 왕이 오래 살기를 바라고 있다.

 이제 80세가 되어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지만 왕이 죽는다면 격변의 시기가 있을 듯하고,  지금의 왕자가 왕권을 물려 받기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있어서 태국민들은 왕이 죽지 않고 오래 살기를 바랄 뿐이다.

   좋은 지도자인 푸미폰 왕을 가진 태국은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못해도 국민들의 만족도는 더 높다.

그런면에서 태국인들이 국왕에 대해서 가지는 존경 그리고 국왕이 국민들을 위해서 하는 일들을 보면 정말 부러울 뿐이다.

     왕도 신이 아니고 사람인지라 실수가 있고 잘못이 있을 수 있다.

  최근에 왕은 태국법으로 불경죄라는 왕에 대해서 비판을 하지 못하는 법때문에 과연 내가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며 법을 없애라고 역정을 낸적이 있다고 한다.

 태국 모든백성의 존경을 받는 왕은  나이루왕, 쏨?K프라짜오유후와,프라마하까?� 등의 명칭으로 불리운다.

12월5일을  아버지날로 제정하여 국왕뿐아니라  태국의 모든 아버지가  가장으로서 가족에게 노고와 위안을 받으며 함께하는 국경일이다.

 푸미폰왕은 1946년 친형인 라마8세 태국 왕이었던  마히돈왕이 서거함으로 뒤를이어 짝끄리왕조 9번째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고 스위스 로잔느대학에서 과학과 법률공부를 마친 1950년 대관식을 갖게 되었다.

푸미폰국왕은 현재까지 태국왕실의 권위를 높이며 쭐라롱콘대왕과 더불어 가장 위대한 국왕으로 국민들에게 칭송받는 왕이다.

                  태국 모든백성의 존경을 받는 왕은  나이루왕, 쏨?K프라짜오유후와,프라마하까?� 등의 명칭으로 불리운다.

12월5일을  아버지날로 제정하여 국왕뿐아니라  태국의 모든 아버지가  가장으로서 가족에게 노고와 위안을 받으며 함께하는 국경일이다.

 푸미폰왕은 1946년 친형인 라마8세 태국 왕이었던  마히돈왕이 서거함으로 뒤를이어 짝끄리왕조 9번째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고 스위스 로잔느대학에서 과학과 법률공부를 마친 1950년 대관식을 갖게 되었다.

푸미폰국왕은 현재까지 태국왕실의 권위를 높이며 쭐라롱콘대왕과 더불어 가장 위대한 국왕으로 국민들에게 칭송받는 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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