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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대교 사고



정체가 심해서 앞에 사고가 났나 ? 란 생각을 했는데.. 역시 사고가.. -_-;;무려 4대나 추돌을 한 모양입니다

그 안엔 페라리 458 이탈리아까지 포함이 되어 있더라고요..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페라리 458 이탈리아

 어제 저녁 영동대교 정체는 영동대교 위에서 벌어진 교통사고로 인해.. 페라리 458 이탈리아를 도로에서 만나면 참 반가운데.. 이번엔 안타까운 사고 소식이네요.. -_-;;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 안전운전 하세요



     사고원인은 서울 전역에 가랑비가 내리고 있는 가운데 아침 출근과 등교길을 서두르는 학생과 직장인 등 승객을 태운 버스와 승용차들이 빗길을 조심스럽게 달리던 중 성수대교의 10번 째와 11번 째의 교각 사이 120미터 중 중앙 48미터의 현수트러스(Truss) 가 갑자기 푹 꺼지면서 한강으로 내려앉았고 다리 위에 주행 중이던 차량 6대가 함께 추락하여 많은 사상자를 내었다.

 성수대교는 한남대교와 더불어 가장 사고위험이 큰 교량으로 알려져 왔으나, 관계당국이 이를 무시하고 보수?보강을(1992.12

1993.12: 기초부위 일부 부식, 1993년 하반기: 교각상태 하부 세 곳 정도 불량) 제때에 실시하지 않았으며, 성수대교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은 유효 단면적의 감소와 응력집중을 유발하게 한 용접시공의 결함과 제작오차 검사 미흡, 피로균열의 진전을 예방하지 못한 점검 및 유지관리 미비, 그리고 피로균열을 가속화시켜 규정이상 중량차량 통행 규제 소홀인 것으로 판단되었다.

  성수대교는 1977년 4월 9일 착공하여 1979년 10월 15일 2년6개월 만에 준공된 폭 19.4m, 길이 1,160.8m의 4차선 교량이다.

동아건설이 116억원의 공사비에 시공하였으며 기능 위주로 설계된 종래의 교량들과 달리 미관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처음으로 거버 트러스(Gerber Truss)공법에 의해 건설되었다.

성수대교는 개통 초에 반포대교, 잠실대교, 영동대교, 한남대교 등과 더불어 영동 신도시 개발로 형성된 강남?북간 도심과 부도심 간을 잇는 주요 교통 축으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상계아파트단지와 분당신도시의 개발과 함께 성수대교를 이용하는 차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붕괴 당시에는 강북 측으로 60,000대, 강북 측에서 강남 측으로 45,000대 등 하루에 105,000대의 교통량을 처리해 오고 있었다.

  사고 후 현장 상황은 교량 붕괴 부분에서 달리 던 봉고차 1대와 승용차 2대가 현수트러스와 함께 한강으로 떨어진 상태였고, 붕괴 경계지점에 있던 승용차 2대는 부재와 같이 떨어지다가 한강 물 속으로 빠져버린 상태였으며, 남단에서 북단으로 달리던 한성운수 16번 버스가 붕괴 경계 지점에 걸쳐 있다가 뒤집힌 채 떨어지면서 물 속에 미리 떨어져 있던 상판과 강하게 충돌하며 차체가 완전히 찌그러져 이 버스로 등교하던 학생과 직장인 등 수많은 사망자와 부상자로 처참한 상태였다.

 붕괴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는 총 49명이었으며 이중 사망 32명(남 17, 여 15), 부상 17명 이었다.

재산피해는 차량 6대 추락(버스 1, 봉고 1, 승용차 4)하였으며, 일반버스: 16번(한성 운수) 서울대공원 ? 번동운행, 봉고: 서울 지방경찰청 소속 차량, 승용차: 세피아, 프라이드, 엘란트라, 르망 등이 추락하였다.

성수대교는 교량 상판을 떠받치는 트러스(철강구조물)의 연결 이음새 용접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10mm 이상이 돼야 하는 용접두께가 8mm 밖에 되지 않았으며 강재 볼트 연결핀 등도 부실했던 것으로 검찰 조사결과 밝혀졌다.

관계 당국의 형식적인 안전점검, 관리소홀도 부실 시공된 다리의 붕괴를 앞당겼다.

관리 당국은 근본적인 보수 없이 녹슨 부분을 페인트로 칠하는 방법으로 위험을 숨겼다.

또한 성수대교를 이용하는 차량대수가 급격히 늘어난 것도 붕괴사고의 한 원인이었다.

 사고대책으로는 안전관리 측면에서 시설물의 관리자가 임의로 정한 기술이나 지침에 따라 관리하던 것을 1995년 4월 5일「시설물 안전관리 특별법」제정으로 안전관리 체계를 법제화 하였다.

부실 설계 및 감리자에 대해 5년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이하의 벌금으로 부실설계 및 감리자에 대한 제재 강화 및 신설하였으며, 1995.6 시설물 안전 및 유지관리 업무지침서를 발간하였다.

1995년 4월 26일부터 현대건설이 총 공사비 780억원을 들여 복구공사에 착수하였고 사고발생 2년 8개월 만인 1997년 7월 3일 차량 통행이 재개되었다.

이후, 다시 총 공사비 1,300억원을 들여 1998년 12월부터 8차선으로 확장 공사를 시작, 2004년 9월 17일 개통되었다.

확장된 성수대교는 트러스가 붕괴되어도 한강에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낙교방지턱이 설치되었으며 교량등급도 2등교에서 1등교로 상향조정되었다.

 참고자료:삼성화재해상보험주식회사《위험관리 제100호 특집》삼성방재연구소, 2006중앙119구조대《재난유형별 사고사례집》중앙119구조대, 1998글/김태환(용인대 경호학과 교수) moneyweek.co.kr/news/mwView.php? no=2016012615268027355&outlink=1한강 유람선 침몰, 이랜드 "침몰은 아니다"… 승객 6명 등 11명 안전하게 구조'유람선 침몰'오늘(26일) 오후 한강 영동대교 부근을 지나던 유람선이 프로펠러 고장으로 승객이 옮겨타는 소동이 빚어졌다.

한때 일부에서는 유람선 침몰로도 알려졌으나 한강 유람선을 운영하...www.moneyweek.co.kr 동호대교와 영동대교 사이 유람선이 사고가 났다.

2016년 1월 26일 오후 2시 30분잠실 선착장에서 여의도 방향으로 가던 유람선이 사고가 난 것당시 유람선에 승무원 5명과 승객 6명이 탑승 중이었으며총 11명은 모두 구조된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기관실 쪽에서 물이 스며 들었다는 관계자의 증언을 확보 가고사고 원인을 파악 중이라고 하며유람선은 잠실의 선착장으로 끌어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랜드 측에서는 영동대교를 지나던 유람선은프로펠러 고장으로 인해 승객이 옮겨 타는 일이 벌어진 것뿐이라고 한다.

침몰이 아니라 얼음을 치면서 배가 정지하게 된 것이라고 하며사고 선박은 안전한 곳으로 옮겨지고 있다고 한다.

영동대교 유람선 사고 났다.

다행이다.

사람이 다치지 않아서...-곰잔디 이야기, 3미터 추락사고 트럭과 추돌사고 * 안전도 비교 링크http://blog.naver.com/porm/140209816075? ??? ?? ?? ????? ??? VS QM3 VS ?????? ??? ?? ??? ??????.? ??? ??? ??? ?? ????? ?? ????.. ???? ?? ?????? ??? ??...blog.naver.comhttp://cafe.naver.com/clubtrax/3142242015? 12? 12? ?? 02:...???? ??? ???? ??cafe.naver.com?요기다.

분위기 좋지


바로 주문후 대기핫쏘스

오랜만에 스프 후추 콜라보깍두기와 국물새우까스나는야 리얼 OG스타일의 왕돈까스6500냥

진짜 엄청크다.

다못먹구나옴.배터져 죽을뻔 ㅎ몇달동안은 돈가스 생각안날듯.지도보기50m� NAVER Corp.??? /OpenStreetMap
?? ???
?� NAVER Corp. /OpenStreetMap성수돈까스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2가 263-5상세보기지도보기하두 배불러서식도 세척하러영동대교 북단새로생긴매드포커피점 아아 시전

먹을만하네 진하니.안경 첨써본다.

뺏어서 써봄안이상하나?틴트 안경 사고싶은 요즘이다.

그럼 20000사고원인은 서울 전역에 가랑비가 내리고 있는 가운데 아침 출근과 등교길을 서두르는 학생과 직장인 등 승객을 태운 버스와 승용차들이 빗길을 조심스럽게 달리던 중 성수대교의 10번 째와 11번 째의 교각 사이 120미터 중 중앙 48미터의 현수트러스(Truss) 가 갑자기 푹 꺼지면서 한강으로 내려앉았고 다리 위에 주행 중이던 차량 6대가 함께 추락하여 많은 사상자를 내었다.

 성수대교는 한남대교와 더불어 가장 사고위험이 큰 교량으로 알려져 왔으나, 관계당국이 이를 무시하고 보수?보강을(1992.12

1993.12: 기초부위 일부 부식, 1993년 하반기: 교각상태 하부 세 곳 정도 불량) 제때에 실시하지 않았으며, 성수대교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은 유효 단면적의 감소와 응력집중을 유발하게 한 용접시공의 결함과 제작오차 검사 미흡, 피로균열의 진전을 예방하지 못한 점검 및 유지관리 미비, 그리고 피로균열을 가속화시켜 규정이상 중량차량 통행 규제 소홀인 것으로 판단되었다.

  성수대교는 1977년 4월 9일 착공하여 1979년 10월 15일 2년6개월 만에 준공된 폭 19.4m, 길이 1,160.8m의 4차선 교량이다.

동아건설이 116억원의 공사비에 시공하였으며 기능 위주로 설계된 종래의 교량들과 달리 미관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처음으로 거버 트러스(Gerber Truss)공법에 의해 건설되었다.

성수대교는 개통 초에 반포대교, 잠실대교, 영동대교, 한남대교 등과 더불어 영동 신도시 개발로 형성된 강남?북간 도심과 부도심 간을 잇는 주요 교통 축으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상계아파트단지와 분당신도시의 개발과 함께 성수대교를 이용하는 차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붕괴 당시에는 강북 측으로 60,000대, 강북 측에서 강남 측으로 45,000대 등 하루에 105,000대의 교통량을 처리해 오고 있었다.

  사고 후 현장 상황은 교량 붕괴 부분에서 달리 던 봉고차 1대와 승용차 2대가 현수트러스와 함께 한강으로 떨어진 상태였고, 붕괴 경계지점에 있던 승용차 2대는 부재와 같이 떨어지다가 한강 물 속으로 빠져버린 상태였으며, 남단에서 북단으로 달리던 한성운수 16번 버스가 붕괴 경계 지점에 걸쳐 있다가 뒤집힌 채 떨어지면서 물 속에 미리 떨어져 있던 상판과 강하게 충돌하며 차체가 완전히 찌그러져 이 버스로 등교하던 학생과 직장인 등 수많은 사망자와 부상자로 처참한 상태였다.

 붕괴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는 총 49명이었으며 이중 사망 32명(남 17, 여 15), 부상 17명 이었다.

재산피해는 차량 6대 추락(버스 1, 봉고 1, 승용차 4)하였으며, 일반버스: 16번(한성 운수) 서울대공원 ? 번동운행, 봉고: 서울 지방경찰청 소속 차량, 승용차: 세피아, 프라이드, 엘란트라, 르망 등이 추락하였다.

성수대교는 교량 상판을 떠받치는 트러스(철강구조물)의 연결 이음새 용접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10mm 이상이 돼야 하는 용접두께가 8mm 밖에 되지 않았으며 강재 볼트 연결핀 등도 부실했던 것으로 검찰 조사결과 밝혀졌다.

관계 당국의 형식적인 안전점검, 관리소홀도 부실 시공된 다리의 붕괴를 앞당겼다.

관리 당국은 근본적인 보수 없이 녹슨 부분을 페인트로 칠하는 방법으로 위험을 숨겼다.

또한 성수대교를 이용하는 차량대수가 급격히 늘어난 것도 붕괴사고의 한 원인이었다.

 사고대책으로는 안전관리 측면에서 시설물의 관리자가 임의로 정한 기술이나 지침에 따라 관리하던 것을 1995년 4월 5일「시설물 안전관리 특별법」제정으로 안전관리 체계를 법제화 하였다.

부실 설계 및 감리자에 대해 5년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이하의 벌금으로 부실설계 및 감리자에 대한 제재 강화 및 신설하였으며, 1995.6 시설물 안전 및 유지관리 업무지침서를 발간하였다.

1995년 4월 26일부터 현대건설이 총 공사비 780억원을 들여 복구공사에 착수하였고 사고발생 2년 8개월 만인 1997년 7월 3일 차량 통행이 재개되었다.

이후, 다시 총 공사비 1,300억원을 들여 1998년 12월부터 8차선으로 확장 공사를 시작, 2004년 9월 17일 개통되었다.

확장된 성수대교는 트러스가 붕괴되어도 한강에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낙교방지턱이 설치되었으며 교량등급도 2등교에서 1등교로 상향조정되었다.

 참고자료:삼성화재해상보험주식회사《위험관리 제100호 특집》삼성방재연구소, 2006중앙119구조대《재난유형별 사고사례집》중앙119구조대, 1998글/김태환(용인대 경호학과 교수)  성수대교는 영동대교와 동호대교 사이에 있으며 밋밋하기 짝이없던 한강 다리들 사이에 난데없이 나타난 이색적인 느낌의 다리로, 이 때부터 한강의 다리는 외관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올림픽대교, 청담대교, 방화대교, 신 행주대교, 구리암사대교 등. 참고로 (신)행주대교는 짓는 도중 붕괴되어 성수대교 붕괴사고의 전주곡이 되어버렸다.

지금의 행주대교는 시공법을 바꾸어 새로 지었다.

) 한강의 다리 대부분이 밋밋하다는 게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한강의 다리 중 모양이 딱 떠오르는 다리를 생각해 보자. 올림픽대교, 청담대교, 성수대교, 성산대교 같이 모양이 특이한 다리들이 떠오를 것이다.

 잠실대교나 영동대교같이 밋밋한 다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양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내가 출퇴근할때 지나는 다리 정도로만 기억할 뿐.(동호대교나 한강대교, 원효대교 등도 나름 모양이 특이하다 하겠지만 뚜껑 벗기면 시체.반포대교도 수영 잘하는 아랫집 이웃빨) 하여간 성수대교는 게르버 트러스 교 Gerber truss Bridge(그냥 트러스 교량이라고도 하며 보다 대중적인 표현으로는 궁형교로 불린다.

)라는 다소 특이한 구조의 다리이다.

이 공법으로 지어진 교량은 기본적으로는 상당히 견고한 것이 장점이지만 이음새가 잘못되면 무너지기 쉽다.

또한 안정 시공인 이음새 핀 등의 세부 요소들을 정기적으로 점검해 주어야 한다.

(이걸 잘 해주었다면 이 글이 쓰이지 않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이 글이 쓰이게 되었다.

)  ??처음에는 하늘색 다리였다.

?구 교량의 남단의 모습.     그런데 멀쩡하던 이 다리가 십여년 뒤 뚝 끊어져 버렸으니... ???? 붕괴 후 구조작업이 펼쳐지고 있는 모습.  한마디로  헐 로 요약된다.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38분. 다리의 북단 5번째와 6번째 교각 사이(10, 11번 교각 사이) 상판 48m 구간이 말 그대로 낙하해 버렸다.

이로 인해 통학중이던 학생들이 탄 버스와 출근중인 사람들이 탄 승용차가 그대로 추락, 32명이 사망, 17명이 부상을 입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문자 그대로 경간이 '똑' 부러져 버린 것이다.

 사실 인명피해의 규모만 놓고 보면 그리 큰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른 곳도 아니고 천만 명이 사는 대도시인 서울특별시 한가운데 있는 다리가 뜬금없이 무너져 내린 그 황당함 때문에 서울 시민은 물론이고 전국민들에게도 상당히 큰 충격을 주었다.

가장 자주 비교되는 사건은 역시 다음 해에 일어난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이며 성수대교와 함께 묶여서 지금도 국민들의 뇌리에 생생하게 박혀있는 대형 사고로 기억되어 있다.

 참고로 지금의 성수대교는 기존의 성수대교와는 아예 다른, 교각을 제외하면 전부 새로 만든 다리이다.

안전에 대해서는 여전히 말이 많지만 최소한 붕괴 대책 같은 것은 전보다 많이 마련되었으며 점검의 용이성도 올라갔다고 한다.

  그렇다면 성수대교는 왜 무너진 것일까?       1994년 10월 21일 금요일 오전 0시 20분경과 오전 2시 30분 경. 성수대교를 지나가던 운전자들은 1.3 x 2 m 크기의 철판이 성수대교 상판 이음새에 깔려있는 것을 목격한다.

[영동대교 사고] 대단하네요.


이는 상판 이음새 부분의 틈새가 심하게 벌어진 것을 덮기 위한 서울시의 땜질식 응급 조치였는데, 상판의 이음새 균열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커져서 사고 당일 새벽 6시경에는 교량을 통과하던 차량의 운전자들이 '이음새가 너무 벌어져서 차량 운행시 충격이 너무 크다'며 서울시 당국에 직접 전화로 신고를 하기도 했다.

 여기서 다리를 통제했으면 이 글이 작성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었지만 어처구니없게도 서울시의 안일한 대처가 화를 부르게 된다.

 안전불감증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고작 시민의 신고 전화' 때문에 다리를 통제했을리가 없었던 것이다.

 서울시는 빗발치는 전화에도 불구하고 교량진입 통제 등의 긴급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결국 7시 반 경,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교량 위에서 본 모습. 오전 8시가 다가올 무렵, 위에 적었던 대로 10, 11번 교각 사이의 상부 트러스 48m 가 그대로 자유낙하 하듯이 붕괴되어 버렸다.

사고 부분을 달리던 승합차 1대와 승용차 2대는 현수 트러스와 함께 한강으로 추락했고 붕괴 지점에 걸쳐 있던 승용차 두 대는 물 속으로 빠졌다.

한성운수 소속의 16번 서울 시내버스는 급히 멈추려 했지만 달려오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붕괴 부분에 차량이 걸쳐있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던 차체가 뒤집어지면서 추락했다.

 이 사고로 49명이 차량과 함께 추락했고 이중 32명이 사망했는데, 특히 버스의 경우에는 전복되어 추락하는 바람에 피해가 가장 심각했다.

버스는 바닥과 천장이 완전히 붙어버릴 정도로 심하게 눌려버렸고 밖으로 튕겨나온 학생들의 필통이나 도시락통 등이 끔찍한 사고 순간을 대변하듯이 보여주었다.

 출퇴근 시간의 버스는 사람들이 앉아서만 가는 게 아니라 서서 간다.

그것도 보통 만원버스이다.

사고 당시의 시간대가 출근시간이었던 까닭에 등교하던 학생들과 직장인, 교사 등이 순식간에 참변을 당하게 되었고 이 사고로 인한 희생자에는 8명의 무학여고 학생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때부터 무학여고는 지금까지도 추모일을 지정하여 학생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 즉 수많은 사람들이 서서 버스를 탄 상태에서 그 버스가 전복되며 떨어졌고 버스의 천장과 바닥이 납작하게 눌리듯이 찌부러졌으니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다.

구급대원 중 일부는 그 끔찍한 장면을 목격하고 공황장애에 걸리기도 했고 다수의 구조대원들이 사건 이후에도 끔찍한 정신적 후유증으로 고생했다.

 사고가 한강 한가운데였던 탓에 구조 작업도 쉽지 않아서 서울시 내의 거의 모든 구조대원들이 출동했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성수대교 붕괴 원인은 두 개로 분류된다.

 1. 교량 최초 시공사인 동아건설의 책임.유효 단면적의 감소와 응력 집중을 유발하게 한 용접시공의 결함과 제작 오차 검사 미흡. 즉, 기술 부족 및 용접 불량.  2. 교량 보수 및 관리 기관인 서울특별시의 책임.피로 균열의 진전을 예방하지 못한 점과 유지 관리 미비.급속도로 증가하는 차량 통행량에 대비하지 못함.피로 균열을 가속화시키는 규정 이상 중량차량의 통행 규제를 소홀히 함.사고 직전, 붕괴의 전조를 시민들이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안일한 대처를 함.   한 마디로, 짓는 것도 문제였지만 그걸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서울시도 문제였다는 것.  사고 당일 이영덕 국무총리가 김영삼 대통령에게 사직서를 제출하여 수리되었고, 오후 7시에 참사의 책임을 물어 이원종 서울특별시장이 경질되었다.

또한 서울특별시장으로 긴급 임명된 경북지사 우명규 지사가 실은 성수대교 건설당시 서울시 책임자였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열흘만에 자진 사퇴하였다.

 근데 사임한다고 희생자들이 돌아오는 건 아니다.

그리고 1년 뒤에는 대한민국 역사에 가장 큰 흑역사로 장식될 바로 그 백화점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사고 직후 서울시는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3개월 안에 성수대교의 붕괴 부분을 재시공하고 완벽히 보수하여 재개통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가 언론의 뭇매를 맞았다.

동아건설 역시 자신들은 성수대교 시공 후 5년간 하자보수를 성실히 해 왔으므로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발뺌을 했지만 역시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된다.

동아건설은 1500억원을 들여 전면 재건설하겠다고 했지만 다시 한번 언론에 영혼까지 털리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 바로 그 백화점이 무너지며 1980

1990년대에 지어진 건물들에 대한 공포와 회의적 시각이 확산되었다.

이로 인해 정부는 전국의 모든 건물들에 대한 안전 평가를 실시했고 그 결과는 가히 충격적.???대한민국의 모든 건물들 중전체 고층 건물의 1/7 은 개축이 필요한 상태이다.

전체 건물의 80% 는 크게 수리할 부분이 있다.

전체 건물의 오직 2% 만이 안전한 상태였다.

???결국 시민들의 정서를 감안해 다리를 완전히 부숴 없애고! 새로 짓는 것으로 결정이 내려졌으며 1995년 4월 26일부터 현대건설이 새로 건설하기 시작, 1997년 7월 3일에 완성되어 차량 통행이 재개되었다.

1998년 12월 31일부터는 4차선 교량을 8차선으로 확장하였으며 2004년 9월에 지금의 모습으로 최종 완공되었다.

?(이 재시공은 해외 감리업체인 High Point Tendel 사가 국내 최초로 해외 감리업체 자격으로 시공 감리에 참여하여서 한때는 국내에서 가장 안전한 다리라고 알려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요즘 언론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다.

자세한 것은 해당 기사를 검색해 보시길)???결정적인 붕괴 원인이 '과도한 하중으로 인한 교량 구조물의 피로도 누적' 이었던 만큼 이후 한강 교량에 통행하는 차량을 대상으로 과적차량 단속이 체계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요새는 그런거 하는거 잘 못본거 같다)?당연히 다른 한강 다리들 역시 안전성을 의심받았고 이 조사에서 당산철교(지하철 2호선의 서쪽 철교)가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판정을 받아 철거된 뒤 전면 재시공에 들어가게 된다.

때문에 당산역은 역이 일시적으로 두 개로 나뉘게 되어 2호선은 고리가 끊기게 되었다.

(당산역이 두단식 승강장이 되면서 시민들의 출퇴근에는 수많은 애로사항이 꽃피게 되었고 그 기간동안 당산역, 합정역, 홍대입구역을 잇는 무료 셔틀버스가 운행되기도 했다.

그리고 전설로 전해지는 2호선 전동차 오버런 탈선사고도 이 시기에 발생...)?이후 광진교와 한남대교, 양화대교도 전면 보수 및 재시공에 들어간다.

광진교의 경우에는 다리가 너무 낡아서 안 그래도 재시공 이야기가 자주 나오던 다리였기에 철거 후 재시공했고, 한남대교도 이전부터 상판에 구멍이 뚫리는 등 문제가 많던 다리여서 하류 쪽에 새 교량을 건설한 뒤 기존 교량의 상판을 뜯어내고 재시공했다.

양화대교도 상판을 뜯은 뒤 재시공했다.

[영동대교 사고] 보면 볼수록..



??오늘날의 성수대교를 점검중인 모습???점검을 위한 통로.?????재시공 및 확장 공사가 모두 끝난 오늘날의 모습.?????이야깃거리??사고 차량 중 한 승합차에는 경찰의 날을 맞아 우수 중대로 선정되어 표창을 받기 위해 본대로 가던 의경들이 타고 있었는데, 이들은 사고 발생 후 헌신적으로 피해자들을 구조하여 박수를 받기도 했다.

??사고 발생 직후, 119나 112 는 늑장 대응을 했다고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 전화를 건 시민이 그야말로 뜬금없이 "다리 한가운데가 뚝 끊어졌다" 고 말해서 처음에는 장난전화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확실히 현실적으로 일어날 거라곤 아무도 생각 못할 일이긴 하다.

????예언???MBC 뉴스데스크에서는 사고가 나기 1년 전부터, 한강교량의 보수 및 관리가 매우 부실하여 붕괴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보도를 시리즈로 내 보낸 적이 있다.

물론 그 당시 집중적으로 보도 했던 부분은 교각 구조물 아랫부분의 침식 및 구조강성 약화 문제로서, 성수대교 붕괴 원인의 직접적인 부분과는 별로 관계가 없지만, 전반적으로 교량 보수가 시급하다는 진단 및 붕괴의 위험성도 강조했다.

?특히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서울시 당국에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했지만, 오히려 서울시의 안일한 대처와 반응을 보이기만 해, 고발성격으로 이들의 인터뷰를 뉴스에 보도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 당국은 이런 참사가 나기까지 교량의 위험성을 방치 하였고, 참사 이후 MBC에서는 이 보도를 다시 방송해 주면서, 결국 서울시 당국은 붕괴사고 책임에서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다.

?참고로 이 당시에 MBC 측이 보도한 시리즈는 2000년대에 들어서도 종종 ?비슷한 컨셉으로 다시 주목을 받곤 했는데, 요새도 똑같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어서 논란거리가 되곤 한다.

해당되는 다리는 동호대교와 성산대교. 다만 붕괴 수준의 심각한 문제는 아니며 교량 전체의 보조 부재에 광범위한 결함이 있거나 주요 부재에 경미한 결함이 있지만 시설물의 안전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라고 한다.

세부적으로 따져보면 이 두 교량 모두 안전성 평가에서는 A등급을 받았지만 상태평가에서 C등급을 받아서 C등급이라고 한다.

그 외 모든 한강 본류에 있는 교량은 전부 B등급 이상이라고 하며 (지금의)성수대교는 A등급 교량이다.

?다만 이것은 현재의 상태가 이렇다는 것이고, 관리를 꾸준히 해 주지 않는다면 같은 사고가 또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때문에 서울시에서는 최소한 1년에 2번의 정기 점검을 한다고 한다.

? ? ?????그런데 13년 뒤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비슷한 사고가 일어나게 되는데...??해당 사건은 2007년 미시시피 강 교량 붕괴 사건을 찾아보시길.?????????????2012년 일본에서는 부실 점검으로 인해 터널이 붕괴되는 사고도 발생하고...?????????이 사건의 판례가 법학계에서는 큰 논란거리가 되었는데, 어마어마한 부실공사 사건이었기에 (아직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기 전이니) 사고의 책임을 책임자들이 확실히 져야 했음에도 기존의 판례로는 책임자들에게 피해를 추궁하기 어려웠기에 대법원에서는 과실범의 공동정범이라는 개념을 동원하여 설계 및 시공 관련자를 몽땅 잡아 넣었다.

(참고로 과실범의 공동정범이라는 개념은 대한민국의 법적 통설에서는 원래 부정하던 개념이다)?> 해당 개념은 다음과 같다.

└ 접기?이 복잡한 말을 쉽게 바꾸어 말하자면, '책임자들 각각이 이 사고의 모든 원인은 아니지만, 각자의 행위가 더해져서 결과가 발생한 것이 명백하니 모두 유죄' 정도로 정리된다.

???이는 기존의 판결이나 다수설과는 시각차가 있더라도 실질적 법치주의를 위해선 그런 판결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고, 그런 이유로 판례의 결론을 지지하여 과실범의 공동정범을 인정하는 학자들도 있다.

?덧붙여, 판례를 비판하는 학자들도 판례가 당시의 구체적 타당에만 몰두하여 과실범의 공동정범을 인정할 때 좀 더 구체적이고도 명확한 법이론을 제시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것일 뿐이지 그렇게 판례의 결론이 나오게 된 당시 시대상황과 국민들의 법감정은 이해하고 있다.

?결국 ?사고 발생 7년 후 법원은 본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 동아건설의 부실시공 때문이라고 최종 확정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동아건설은 지금까지도 성수대교로 인한 피해 보상금을 계속 내고 있다.

??????붕괴 후?, 국민들의 정신적 피해도 피해였지만 가뜩이나 통행량이 많은 서울 지역 주요 교량이 끊기는 바람에 심각한 교통 체증이 우려되었었다.

하지만 시민들의 대중교통 이용 협조와 우회도로 통행량이 분산되어 별 문제점은 없었다.

 ???????? 성수대교 이전에도 와우아파트 붕괴(1970), 우암 상가아파트 붕괴(1993) 같은 대형 참사가 있었고?1994년은 부실 공사 추방 원년으로 지정되었다.

?? ?? ?하지만 성수대교 붕괴 참사를 통해서도 대한민국은 교훈을 얻지 못했다.

???부실 공사 추방 원년이라던 1994년, 성수대교가 주저앉아 버렸고?성수대교 붕괴 이후에도 대형 참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그해 10월 충주호 유람선 화재 참사를 시작으로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참사,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초대형 대참사인 1995년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 참사, 대구 지하철 방화로 인한 참사,?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참사,?그리고 우리 가슴에 또 한번 씻을 수 없는 엄청난 상처를 남긴 세월호 침몰사고,판교 테크노밸리 환풍구 붕괴 사고????2014년까지 안전 불감증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없어지지 않고 있다.

2015년에는 달라질 수 있을까???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오는 안전 불감증 기사와 제2 롯데월드 관련된 사건 사고 기사들은 또 한번 대형 참사가 일어나는 거 아닌가 싶은 불길한 기분을 들게 만든다.

게다가 얼마 전에 또 다시 터져 나온 잠실 도로 침하 사건 때문에 불안함은 없어질 날이 없다.

   ??정신차려야 한다, 대한민국.    성수대교는 영동대교와 동호대교 사이에 있으며 밋밋하기 짝이없던 한강 다리들 사이에 난데없이 나타난 이색적인 느낌의 다리로, 이 때부터 한강의 다리는 외관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올림픽대교, 청담대교, 방화대교, 신 행주대교, 구리암사대교 등. 참고로 (신)행주대교는 짓는 도중 붕괴되어 성수대교 붕괴사고의 전주곡이 되어버렸다.

지금의 행주대교는 시공법을 바꾸어 새로 지었다.

) 한강의 다리 대부분이 밋밋하다는 게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한강의 다리 중 모양이 딱 떠오르는 다리를 생각해 보자. 올림픽대교, 청담대교, 성수대교, 성산대교 같이 모양이 특이한 다리들이 떠오를 것이다.

 잠실대교나 영동대교같이 밋밋한 다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양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내가 출퇴근할때 지나는 다리 정도로만 기억할 뿐.(동호대교나 한강대교, 원효대교 등도 나름 모양이 특이하다 하겠지만 뚜껑 벗기면 시체.반포대교도 수영 잘하는 아랫집 이웃빨) 하여간 성수대교는 게르버 트러스 교 Gerber truss Bridge(그냥 트러스 교량이라고도 하며 보다 대중적인 표현으로는 궁형교로 불린다.

)라는 다소 특이한 구조의 다리이다.

이 공법으로 지어진 교량은 기본적으로는 상당히 견고한 것이 장점이지만 이음새가 잘못되면 무너지기 쉽다.

또한 안정 시공인 이음새 핀 등의 세부 요소들을 정기적으로 점검해 주어야 한다.

(이걸 잘 해주었다면 이 글이 쓰이지 않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이 글이 쓰이게 되었다.

)  ??처음에는 하늘색 다리였다.

?구 교량의 남단의 모습.     그런데 멀쩡하던 이 다리가 십여년 뒤 뚝 끊어져 버렸으니... ???? 붕괴 후 구조작업이 펼쳐지고 있는 모습.  한마디로  헐 로 요약된다.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38분. 다리의 북단 5번째와 6번째 교각 사이(10, 11번 교각 사이) 상판 48m 구간이 말 그대로 낙하해 버렸다.

이로 인해 통학중이던 학생들이 탄 버스와 출근중인 사람들이 탄 승용차가 그대로 추락, 32명이 사망, 17명이 부상을 입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문자 그대로 경간이 '똑' 부러져 버린 것이다.

 사실 인명피해의 규모만 놓고 보면 그리 큰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른 곳도 아니고 천만 명이 사는 대도시인 서울특별시 한가운데 있는 다리가 뜬금없이 무너져 내린 그 황당함 때문에 서울 시민은 물론이고 전국민들에게도 상당히 큰 충격을 주었다.

가장 자주 비교되는 사건은 역시 다음 해에 일어난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이며 성수대교와 함께 묶여서 지금도 국민들의 뇌리에 생생하게 박혀있는 대형 사고로 기억되어 있다.

 참고로 지금의 성수대교는 기존의 성수대교와는 아예 다른, 교각을 제외하면 전부 새로 만든 다리이다.

안전에 대해서는 여전히 말이 많지만 최소한 붕괴 대책 같은 것은 전보다 많이 마련되었으며 점검의 용이성도 올라갔다고 한다.

  그렇다면 성수대교는 왜 무너진 것일까?       1994년 10월 21일 금요일 오전 0시 20분경과 오전 2시 30분 경. 성수대교를 지나가던 운전자들은 1.3 x 2 m 크기의 철판이 성수대교 상판 이음새에 깔려있는 것을 목격한다.

이는 상판 이음새 부분의 틈새가 심하게 벌어진 것을 덮기 위한 서울시의 땜질식 응급 조치였는데, 상판의 이음새 균열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커져서 사고 당일 새벽 6시경에는 교량을 통과하던 차량의 운전자들이 '이음새가 너무 벌어져서 차량 운행시 충격이 너무 크다'며 서울시 당국에 직접 전화로 신고를 하기도 했다.

 여기서 다리를 통제했으면 이 글이 작성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었지만 어처구니없게도 서울시의 안일한 대처가 화를 부르게 된다.

 안전불감증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고작 시민의 신고 전화' 때문에 다리를 통제했을리가 없었던 것이다.

 서울시는 빗발치는 전화에도 불구하고 교량진입 통제 등의 긴급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결국 7시 반 경,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교량 위에서 본 모습. 오전 8시가 다가올 무렵, 위에 적었던 대로 10, 11번 교각 사이의 상부 트러스 48m 가 그대로 자유낙하 하듯이 붕괴되어 버렸다.

사고 부분을 달리던 승합차 1대와 승용차 2대는 현수 트러스와 함께 한강으로 추락했고 붕괴 지점에 걸쳐 있던 승용차 두 대는 물 속으로 빠졌다.

한성운수 소속의 16번 서울 시내버스는 급히 멈추려 했지만 달려오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붕괴 부분에 차량이 걸쳐있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던 차체가 뒤집어지면서 추락했다.

 이 사고로 49명이 차량과 함께 추락했고 이중 32명이 사망했는데, 특히 버스의 경우에는 전복되어 추락하는 바람에 피해가 가장 심각했다.

버스는 바닥과 천장이 완전히 붙어버릴 정도로 심하게 눌려버렸고 밖으로 튕겨나온 학생들의 필통이나 도시락통 등이 끔찍한 사고 순간을 대변하듯이 보여주었다.

 출퇴근 시간의 버스는 사람들이 앉아서만 가는 게 아니라 서서 간다.

그것도 보통 만원버스이다.

사고 당시의 시간대가 출근시간이었던 까닭에 등교하던 학생들과 직장인, 교사 등이 순식간에 참변을 당하게 되었고 이 사고로 인한 희생자에는 8명의 무학여고 학생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때부터 무학여고는 지금까지도 추모일을 지정하여 학생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 즉 수많은 사람들이 서서 버스를 탄 상태에서 그 버스가 전복되며 떨어졌고 버스의 천장과 바닥이 납작하게 눌리듯이 찌부러졌으니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다.

구급대원 중 일부는 그 끔찍한 장면을 목격하고 공황장애에 걸리기도 했고 다수의 구조대원들이 사건 이후에도 끔찍한 정신적 후유증으로 고생했다.

 사고가 한강 한가운데였던 탓에 구조 작업도 쉽지 않아서 서울시 내의 거의 모든 구조대원들이 출동했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성수대교 붕괴 원인은 두 개로 분류된다.

 1. 교량 최초 시공사인 동아건설의 책임.유효 단면적의 감소와 응력 집중을 유발하게 한 용접시공의 결함과 제작 오차 검사 미흡. 즉, 기술 부족 및 용접 불량.  2. 교량 보수 및 관리 기관인 서울특별시의 책임.피로 균열의 진전을 예방하지 못한 점과 유지 관리 미비.급속도로 증가하는 차량 통행량에 대비하지 못함.피로 균열을 가속화시키는 규정 이상 중량차량의 통행 규제를 소홀히 함.사고 직전, 붕괴의 전조를 시민들이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안일한 대처를 함.   한 마디로, 짓는 것도 문제였지만 그걸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서울시도 문제였다는 것.  사고 당일 이영덕 국무총리가 김영삼 대통령에게 사직서를 제출하여 수리되었고, 오후 7시에 참사의 책임을 물어 이원종 서울특별시장이 경질되었다.

또한 서울특별시장으로 긴급 임명된 경북지사 우명규 지사가 실은 성수대교 건설당시 서울시 책임자였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열흘만에 자진 사퇴하였다.

 근데 사임한다고 희생자들이 돌아오는 건 아니다.

그리고 1년 뒤에는 대한민국 역사에 가장 큰 흑역사로 장식될 바로 그 백화점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사고 직후 서울시는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3개월 안에 성수대교의 붕괴 부분을 재시공하고 완벽히 보수하여 재개통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가 언론의 뭇매를 맞았다.

동아건설 역시 자신들은 성수대교 시공 후 5년간 하자보수를 성실히 해 왔으므로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발뺌을 했지만 역시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된다.

동아건설은 1500억원을 들여 전면 재건설하겠다고 했지만 다시 한번 언론에 영혼까지 털리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 바로 그 백화점이 무너지며 1980

1990년대에 지어진 건물들에 대한 공포와 회의적 시각이 확산되었다.

이로 인해 정부는 전국의 모든 건물들에 대한 안전 평가를 실시했고 그 결과는 가히 충격적.???대한민국의 모든 건물들 중전체 고층 건물의 1/7 은 개축이 필요한 상태이다.

전체 건물의 80% 는 크게 수리할 부분이 있다.

전체 건물의 오직 2% 만이 안전한 상태였다.

???결국 시민들의 정서를 감안해 다리를 완전히 부숴 없애고! 새로 짓는 것으로 결정이 내려졌으며 1995년 4월 26일부터 현대건설이 새로 건설하기 시작, 1997년 7월 3일에 완성되어 차량 통행이 재개되었다.

1998년 12월 31일부터는 4차선 교량을 8차선으로 확장하였으며 2004년 9월에 지금의 모습으로 최종 완공되었다.

?(이 재시공은 해외 감리업체인 High Point Tendel 사가 국내 최초로 해외 감리업체 자격으로 시공 감리에 참여하여서 한때는 국내에서 가장 안전한 다리라고 알려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요즘 언론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다.

자세한 것은 해당 기사를 검색해 보시길)???결정적인 붕괴 원인이 '과도한 하중으로 인한 교량 구조물의 피로도 누적' 이었던 만큼 이후 한강 교량에 통행하는 차량을 대상으로 과적차량 단속이 체계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요새는 그런거 하는거 잘 못본거 같다)?당연히 다른 한강 다리들 역시 안전성을 의심받았고 이 조사에서 당산철교(지하철 2호선의 서쪽 철교)가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판정을 받아 철거된 뒤 전면 재시공에 들어가게 된다.

때문에 당산역은 역이 일시적으로 두 개로 나뉘게 되어 2호선은 고리가 끊기게 되었다.

(당산역이 두단식 승강장이 되면서 시민들의 출퇴근에는 수많은 애로사항이 꽃피게 되었고 그 기간동안 당산역, 합정역, 홍대입구역을 잇는 무료 셔틀버스가 운행되기도 했다.

그리고 전설로 전해지는 2호선 전동차 오버런 탈선사고도 이 시기에 발생...)?이후 광진교와 한남대교, 양화대교도 전면 보수 및 재시공에 들어간다.

광진교의 경우에는 다리가 너무 낡아서 안 그래도 재시공 이야기가 자주 나오던 다리였기에 철거 후 재시공했고, 한남대교도 이전부터 상판에 구멍이 뚫리는 등 문제가 많던 다리여서 하류 쪽에 새 교량을 건설한 뒤 기존 교량의 상판을 뜯어내고 재시공했다.

양화대교도 상판을 뜯은 뒤 재시공했다.

??오늘날의 성수대교를 점검중인 모습???점검을 위한 통로.?????재시공 및 확장 공사가 모두 끝난 오늘날의 모습.?????이야깃거리??사고 차량 중 한 승합차에는 경찰의 날을 맞아 우수 중대로 선정되어 표창을 받기 위해 본대로 가던 의경들이 타고 있었는데, 이들은 사고 발생 후 헌신적으로 피해자들을 구조하여 박수를 받기도 했다.

??사고 발생 직후, 119나 112 는 늑장 대응을 했다고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 전화를 건 시민이 그야말로 뜬금없이 "다리 한가운데가 뚝 끊어졌다" 고 말해서 처음에는 장난전화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확실히 현실적으로 일어날 거라곤 아무도 생각 못할 일이긴 하다.

????예언???MBC 뉴스데스크에서는 사고가 나기 1년 전부터, 한강교량의 보수 및 관리가 매우 부실하여 붕괴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보도를 시리즈로 내 보낸 적이 있다.

물론 그 당시 집중적으로 보도 했던 부분은 교각 구조물 아랫부분의 침식 및 구조강성 약화 문제로서, 성수대교 붕괴 원인의 직접적인 부분과는 별로 관계가 없지만, 전반적으로 교량 보수가 시급하다는 진단 및 붕괴의 위험성도 강조했다.

?특히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서울시 당국에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했지만, 오히려 서울시의 안일한 대처와 반응을 보이기만 해, 고발성격으로 이들의 인터뷰를 뉴스에 보도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 당국은 이런 참사가 나기까지 교량의 위험성을 방치 하였고, 참사 이후 MBC에서는 이 보도를 다시 방송해 주면서, 결국 서울시 당국은 붕괴사고 책임에서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다.

?참고로 이 당시에 MBC 측이 보도한 시리즈는 2000년대에 들어서도 종종 ?비슷한 컨셉으로 다시 주목을 받곤 했는데, 요새도 똑같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어서 논란거리가 되곤 한다.

해당되는 다리는 동호대교와 성산대교. 다만 붕괴 수준의 심각한 문제는 아니며 교량 전체의 보조 부재에 광범위한 결함이 있거나 주요 부재에 경미한 결함이 있지만 시설물의 안전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라고 한다.

세부적으로 따져보면 이 두 교량 모두 안전성 평가에서는 A등급을 받았지만 상태평가에서 C등급을 받아서 C등급이라고 한다.

그 외 모든 한강 본류에 있는 교량은 전부 B등급 이상이라고 하며 (지금의)성수대교는 A등급 교량이다.

?다만 이것은 현재의 상태가 이렇다는 것이고, 관리를 꾸준히 해 주지 않는다면 같은 사고가 또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때문에 서울시에서는 최소한 1년에 2번의 정기 점검을 한다고 한다.

? ? ?????그런데 13년 뒤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비슷한 사고가 일어나게 되는데...??해당 사건은 2007년 미시시피 강 교량 붕괴 사건을 찾아보시길.?????????????2012년 일본에서는 부실 점검으로 인해 터널이 붕괴되는 사고도 발생하고...?????????이 사건의 판례가 법학계에서는 큰 논란거리가 되었는데, 어마어마한 부실공사 사건이었기에 (아직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기 전이니) 사고의 책임을 책임자들이 확실히 져야 했음에도 기존의 판례로는 책임자들에게 피해를 추궁하기 어려웠기에 대법원에서는 과실범의 공동정범이라는 개념을 동원하여 설계 및 시공 관련자를 몽땅 잡아 넣었다.

(참고로 과실범의 공동정범이라는 개념은 대한민국의 법적 통설에서는 원래 부정하던 개념이다)?> 해당 개념은 다음과 같다.

└ 접기?이 복잡한 말을 쉽게 바꾸어 말하자면, '책임자들 각각이 이 사고의 모든 원인은 아니지만, 각자의 행위가 더해져서 결과가 발생한 것이 명백하니 모두 유죄' 정도로 정리된다.

???이는 기존의 판결이나 다수설과는 시각차가 있더라도 실질적 법치주의를 위해선 그런 판결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고, 그런 이유로 판례의 결론을 지지하여 과실범의 공동정범을 인정하는 학자들도 있다.

?덧붙여, 판례를 비판하는 학자들도 판례가 당시의 구체적 타당에만 몰두하여 과실범의 공동정범을 인정할 때 좀 더 구체적이고도 명확한 법이론을 제시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것일 뿐이지 그렇게 판례의 결론이 나오게 된 당시 시대상황과 국민들의 법감정은 이해하고 있다.

?결국 ?사고 발생 7년 후 법원은 본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 동아건설의 부실시공 때문이라고 최종 확정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동아건설은 지금까지도 성수대교로 인한 피해 보상금을 계속 내고 있다.

??????붕괴 후?, 국민들의 정신적 피해도 피해였지만 가뜩이나 통행량이 많은 서울 지역 주요 교량이 끊기는 바람에 심각한 교통 체증이 우려되었었다.

하지만 시민들의 대중교통 이용 협조와 우회도로 통행량이 분산되어 별 문제점은 없었다.

 ???????? 성수대교 이전에도 와우아파트 붕괴(1970), 우암 상가아파트 붕괴(1993) 같은 대형 참사가 있었고?1994년은 부실 공사 추방 원년으로 지정되었다.

?? ?? ?하지만 성수대교 붕괴 참사를 통해서도 대한민국은 교훈을 얻지 못했다.

???부실 공사 추방 원년이라던 1994년, 성수대교가 주저앉아 버렸고?성수대교 붕괴 이후에도 대형 참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그해 10월 충주호 유람선 화재 참사를 시작으로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참사,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초대형 대참사인 1995년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 참사, 대구 지하철 방화로 인한 참사,?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참사,?그리고 우리 가슴에 또 한번 씻을 수 없는 엄청난 상처를 남긴 세월호 침몰사고,판교 테크노밸리 환풍구 붕괴 사고????2014년까지 안전 불감증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없어지지 않고 있다.

2015년에는 달라질 수 있을까???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오는 안전 불감증 기사와 제2 롯데월드 관련된 사건 사고 기사들은 또 한번 대형 참사가 일어나는 거 아닌가 싶은 불길한 기분을 들게 만든다.

게다가 얼마 전에 또 다시 터져 나온 잠실 도로 침하 사건 때문에 불안함은 없어질 날이 없다.

   ??정신차려야 한다,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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