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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순



..?1948년 7월 28일(67세)잘 계시는지요?제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 국회의원을 하시고 계셨던 것인데 폴란드에서의 인연을 생각하며 꼭 한 번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에서 꼭 필요했던 그런 외교관(駐 폴란드 한국대사)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의 만남을 아름다운 인연으로 소중하게 간직하며 살고 있습니다.

대사시절에 문제가 되었던 로열티(Royalty) 과세 건은 제가 폴란드 대법원(Supreme court)까지 끌고 가서 승소를 해서 추징되었던 45억원을 전액 환급받았습니다.

돈을 떠나서 작은 동양인 한국인의 열정과 의지를 유럽인들에게 제대로 각인시켜 주고 싶었던 것이고 대법원의 재판결과는 현지언론에 대서특필이 되었습니다.

북한을 어떻게 하면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켜 우리 한민족이 공존번영할 것인가 만을 남의 삶의 과제나 숙제로 생각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개인의 모든 것은 버리고 세상의 밑바닥에서 사회경력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지도 어언 7년 이상이 지나고 있습니다.

매우 중요한 시기에 북한은 매번 엇박자를 놓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고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사에 비록 정답은 없지만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은 Many ways가 있는 것이고 정답은 상황논리로 얼마든지 만들어 갈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개방정책을 표방하고 시장경제를 도입했다고 해서 사회주의(공산주의)체제가 붕괴되고 국가들이 망했나요?자본주의와 공산주의(사회주의)의 경계가 사라진지는 이미 오래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한물간 이념이나 체제의 노예가 되어 지금까지도 저러고 있으니 참으로 딱하고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송민순 의원과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그리고 저 세사람이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담판을 짓기 위하여 세상의 지위와 명예와 돈을 다버리고 이 땅에 돌아올 결심을 최종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계획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거나 의지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성격만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그 일은 얼마든지 가능했을 수도 있었기에 딱 한 가지 삶의 가장 큰 회한으로 지금 남아 있습니다.

사모님께 이 노래를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송민순] 할말이 없네요.


회사행사에 대사관 직원들과 가족분들을 초청해 공식행사 후 뒷풀이로 회사의 게스트 하우스(Guest House)에서 제(음치)가 불렀던 노래이기도 합니다.

행사준비에 고생했다고 참석자들이 잊지 않고 마련해준 그런 배려의 자리였다고 기억합니다.

언젠가 총장 비서실로 전화를 넣고 한 번 찾아 뵈었으면 합니다.

학교의 위치는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Jae-Wook Lee,CFO of LG Electronics Mlawa Sp.zo.o.이후에 한 차례 더 폴란드에 법인장(CEO)으로 부임해서 유럽의 하늘 아래 영원히 남아 있을 대한민국 최대의 기업아성과 "한국인의 거리"를 만들고 돌아왔습니다.

 ..?1948년 7월 28일(67세)잘 계시는지요?제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 국회의원을 하시고 계셨던 것인데 폴란드에서의 인연을 생각하며 꼭 한 번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송민순] 짱입니다.



당시 대한민국에서 꼭 필요했던 그런 외교관(駐 폴란드 한국대사)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의 만남을 아름다운 인연으로 소중하게 간직하며 살고 있습니다.

대사시절에 문제가 되었던 로열티(Royalty) 과세 건은 제가 폴란드 대법원(Supreme court)까지 끌고 가서 승소를 해서 추징되었던 45억원을 전액 환급받았습니다.

돈을 떠나서 작은 동양인 한국인의 열정과 의지를 유럽인들에게 제대로 각인시켜 주고 싶었던 것이고 대법원의 재판결과는 현지언론에 대서특필이 되었습니다.

북한을 어떻게 하면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켜 우리 한민족이 공존번영할 것인가 만을 남의 삶의 과제나 숙제로 생각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개인의 모든 것은 버리고 세상의 밑바닥에서 사회경력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지도 어언 7년 이상이 지나고 있습니다.

매우 중요한 시기에 북한은 매번 엇박자를 놓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고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사에 비록 정답은 없지만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은 Many ways가 있는 것이고 정답은 상황논리로 얼마든지 만들어 갈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개방정책을 표방하고 시장경제를 도입했다고 해서 사회주의(공산주의)체제가 붕괴되고 국가들이 망했나요?자본주의와 공산주의(사회주의)의 경계가 사라진지는 이미 오래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한물간 이념이나 체제의 노예가 되어 지금까지도 저러고 있으니 참으로 딱하고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송민순 의원과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그리고 저 세사람이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담판을 짓기 위하여 세상의 지위와 명예와 돈을 다버리고 이 땅에 돌아올 결심을 최종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계획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거나 의지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성격만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그 일은 얼마든지 가능했을 수도 있었기에 딱 한 가지 삶의 가장 큰 회한으로 지금 남아 있습니다.

사모님께 이 노래를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회사행사에 대사관 직원들과 가족분들을 초청해 공식행사 후 뒷풀이로 회사의 게스트 하우스(Guest House)에서 제(음치)가 불렀던 노래이기도 합니다.

행사준비에 고생했다고 참석자들이 잊지 않고 마련해준 그런 배려의 자리였다고 기억합니다.

언젠가 총장 비서실로 전화를 넣고 한 번 찾아 뵈었으면 합니다.

학교의 위치는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Jae-Wook Lee,CFO of LG Electronics Mlawa Sp.zo.o.이후에 한 차례 더 폴란드에 법인장(CEO)으로 부임해서 유럽의 하늘 아래 영원히 남아 있을 대한민국 최대의 기업아성과 "한국인의 거리"를 만들고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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