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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동 멧돼지



도솔암까지는 약초꾼들이 다니던 조그만 오솔길의 흔적이라도 있었지만 도솔암을 지나 정상으로 향해보니, 어느새 오솔길마저 끊어졌습니다.

위에는 산짐승이 다니던 흔적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릎까지 눈이 쌓여있으니 작은 흔적들이 보일 리 없었습니다.

모든 발자취 위에 소복이 쌓인 눈만이 새로운 발자국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길이 없는 곳에선 길 아닌 곳이 없소.” 수년전 이 일대 산에서 한 겨울 영하 20

30도의 추위 속에서 생식을 하며 수행을 한 바 있던 성묵 스님이 선승답게 한마디를 했습니다.

그런 마음이 바로 도(道·길)를 열지 않겠습니까.  무릎까지 쑥쑥…진돗개 해탈이는 아랑곳 없이 이름값 산사람에겐 산사람 특유의 감각이 있습니다.

속인은 숲길로 들어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할 수 밖에 없는 숲에서도 홍제사 주지 범종 스님과 홍제사의 진돗개 해탈이는 나는 듯 능선을 탔습니다.

두 살인 해탈이는 천방지축인 다른 개들과는 행동거지가 사뭇 달랐습니다.

그래서 범종 스님은 해탈이도 전생에 수행승이었을지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초연한 듯한 해탈이도 자신이 독차지한 사랑을 뺏길 위기에 처하면 태도가 달라졌답니다.

지난해 홍제사에 누군가 해탈이 말고 다른 강아지를 한 마리 데려다놓았다고 합니다.

맹인견으로 활용되곤 하는 리트리버종이었답니다.

해탈이에게만 집중되던 홍제사 식구들의 시선이 새 강아지에게로 쏠렸다지요. 고독해진 해탈이는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불안해 보였답니다.

그러더니 홍제사 식구들이 한눈을 판 사이 강아지를 먼 동네까지 데리고 가선 떼어놓고 와버려 홍제사 식구들을 놀라게 했답니다.

  깊은 산중에서 사람들이 자기를 주시하는 게 신이 나는지 해탈이는 이리저리 뛰어다녀 지뢰탐지기마냥 위험지대를 간파하게 해주었습니다.

해탈이와 범종 스님의 노력에도 해발 1천 미터가 훌쩍 넘는 이 산을 넘어서기 전에 해가 서산에 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일행은 정상을 넘어서면서부터 가끔은 미끄럼을 타고 내려갔습니다.

이제 엉덩이가 쓸려 내려가는 곳이 길이었습니다.

 길은 멀고 날은 저물고, 겹질린 다리 덧날까 그저 발밑만  저는 이번 산행에 가기 전에 한쪽 다리를 겹질렸습니다.

그렇지만 모처럼 잡은 일정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도솔암과 백련암은 앞서 가본 분의 안내가 없이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곳이어서 선승인 성묵 스님과 홍제사 범종 스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날을 또 잡을 수 있으리란 기약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취재는 아무 댓가 없이 마음을 내준 그분들의 무주상 보시의 큰 마음이 없었으면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산에서 귀신같은 그분들이 앞서 이끄는데도 눈쌓인 태백산에서 길 없는 길을 나아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홍제동 멧돼지] 와오.


저는 깊은 산에서 한번 겹질린 다리를 또 한번 겹질리면 오도가도 못하고 다른 분들에게 큰 신세를 질 수 밖에 없었기에 가장 앞서서 발밑만 보고 나아갔습니다.

카메라를 든 후배들을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한 채 저만치 앞서 간 것이지요. 그랬는데 뒤에서 따르며 영상을 찍던 은지희 피디는 뒤에서 너무 힘들어 훌쩍훌쩍 울었던 모양입니다.

스님들은 연약한 여자를 놔두고 선배가 혼자만 가버렸다고 타박을 하더군요.  외로운 달밤엔 스님도 뜰에 나가 멧돼지들과 함께 “꽥


” 그런 진통 끝에 길 아닌 길 저편에서 아스라히 구름인 듯 안개인 듯 연기가 피어오른게 보였습니다.

인적을 말해주는 굴뚝이었습니다.

 태백산에서 피어난 한 떨기 꽃인가. 바로 백련암이었습니다.

하얀 눈 속에서 그 이름이 더욱 더 희게 느껴졌습니다.

연지 위에 앉은 꽃처럼 도연 스님이 이미 어둠이 스미기 시작한 방에 홀로 앉아 있었습니다.

한겨울 해질녘에 느닷 없이 외딴 암자에 사람들이 찾아온데 대한 당혹감 속에서도 한줄기 정감은 감출 길이 없어 보였습니다.

이 기약할 수 없는 고독의 심연에서 인간을 만난 기쁨이겠지요. 도연 스님이 백양산 운문암에서 수행하고 있을 때였다고 합니다.




의욕만 앞선 정진으로 인해 몸엔 병까지 얻고, 마음의 고독이 더욱 깊어갔습니다.

그는 깊은 달밤에 평소 존경하던 노승에게 달려 갔습니다.

산중 암자에 홀로 지내면서도 평생 고독이라곤 모르는 것 처럼 여유롭고 환희로워 보이기만 한 노승에게로. “스님, 스님도 고독한 적이 있습니까” 멱살잡이하듯 달려들어 묻는 도연 스님에게 찰나의 틈새도 보이지 않은 노승의 즉답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도연당! 고독이 없다면 불성(佛性·부처의 성품)도 없다는 얘기 아닌가” 백련암을 찾아올 때처럼 미로를 헤매는 수고가 없이 어찌 한 떨기 연꽃을 볼 수 있으며, 불안이 없는 평안이 어디 있으며, 구속이 없이 자유가 어디 있으며, 고통이 없는 행복이 어디 있으며, 고독이 없는 만남의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도연 스님도 노승의 한마디에 고독을 삶의 당연지사로 받아들였습니다.

백련암 주위의 뭇생명들이 그를 이방인이 아닌 한 식구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산중의 고독을 즐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인 것일까요. 백련암 뒤엔 멧돼지 가족들이 달밤이면 내려와 모여서 노는 넓은 터가 있다고 합니다.

어느 외로운 달밤엔 도연 스님도 그 뜰에 나가서 멧돼지들과 함께 “꽥


”소리를 지르며 한바탕 놀았다고 했습니다.

 배고프면 민가까지 내려가 밭을 파헤치는 파렴치범으로 몰리는 멧돼지들이지만 외딴 암자 주위에선 수행승들이 먹을 약초뿌리는 남겨둔다는 게 수행승들의 믿음이 있습니다.

 사람과 동물간에도 은혜의 연은 돌고 돌아 태백산 도솔암에서 혜국 스님이 홀로 수행할 때였다고 합니다.

스님은 약초를 캐서 모아두었다가 양식이 떨어지면 영주장에 가서 약초를 팔아다가 양식을 사왔다고 합니다.

하루는 약초를 담은 바랑을 지고 산길을 내려가는데 새끼 멧돼지 한마리가 쇠줄로 된 덫에 걸려 발버둥치고 있더랍니다.

 덫에 걸린 뒷다리가 퉁퉁 부은 모습을 본 스님은 안타까워 쇠줄을 풀려고 했지만 덫은 더욱 조여지고, 아픈 멧돼지는 스님에게 덤벼들기까지 했습니다.

스님은 다시 도솔암으로 올라가 가마니 한장을 가지고 와선 새끼 멧돼지 위에 씌우고는 간신히 쇠줄을 풀었답니다.

그 새끼 멧돼지는 다리를 절룩 거리며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며칠 뒤 스님이 산길을 걷고 있을 때 갑자기 외길에서 멧돼지 무리들과 마주쳤습니다.

소만한 어미 멧돼지가 새끼 일고여덟 마리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멧돼지들은 뼈까지 다 먹어 치운다는 소리를 들었던 터라 살기를 포기한 스님은 이 몸을 아낌 없이 보시하겠다는 마음을 내고는 쓰고 있던 삿갓을 벗어 던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삿갓이 새끼 돼지 한마리에게 씌워졌고, 눈 앞이 보이지 않는 새끼가 산위로 도망치자 어미도 덩달아 그 새끼 뒤를 쫓아 가더라고 합니다.

삿갓이 씌워진 새끼 돼지가 절둑거려 자세히 보니, 어제 자기가 쇠줄을 풀어준 바로 그 새끼더라는 겁니다.

스님은 덫에서 풀려난 새끼가 자신을 살려 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과 동물간에도, 이렇듯 은혜의 인연이 돌고 돌다니 참으로 희유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새벽 3시 뭇생명 깨우는 도량석 걸렀더니 쥐들이 소리쳐 일어나 도연 스님도 밤이면 멧돼지를 벗하고, 낮엔 산새들을 벗한다고 했습니다.

그가 암자문을 열면 기다렸다는 듯이 20여 마리의 새들이 그에게로 달려와 놀자고 한다고 합니다.

 매일 새벽 3시면 일어나 목탁을 치며 백련암 주위 뭇생명들을 깨우는 도량석을 하던 스님이 몸이 불편해져 3일 동안 도량석을 거를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도량석을 하건 하지 않건 시비 삼을 사람 하나 없지만 백련암에 사람만이 대중은 아닌 모양입니다.

새벽 3시가 되자 천장에서 쥐가 천장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답니다.

그 소리는 좀체 그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흘 뒤 도연은 쥐의 소리가 그에게 도량석을 하도록 깨운 죽비로 여기고, 도량석을 위해 드디어 목탁을 들었답니다.

그리고 새벽마다 그를 깨운 쥐에게 말했다.

 “이제 몸을 바꿔 태어나거라.” 그 뒤 천장엔 쥐의 낌새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도연은 몸을 벗어버린 백련암의 한 대중을 위해 천도재를 지내주었다지요.  그 도연 스님과 함께 앉은 마루에서 어느새 어둠이 시야를 뒤덮었습니다.

쥐 죽은 듯은 고요에 잠긴 산승의 얼굴엔 다시 고독의 빛이 찾아들었습니다.

 고독의 깊어갈수록 불성의 새벽이 가까운 것인가. 출처 : 한겨레 신문 (조현 종교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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