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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킨



R 톨킨  세계의 문학사적인 명작에 관해서 언급할 때, 환상문학인 '반지의 제왕' 그리고 '나니아 연대기가 포함된다.

인류학적인 사실이 들어가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은 문학으로 분류된다.

특히 J.R.R톨킨은 전공인 언어학을 살려 '엘프어'라는 새로운 문자체게,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냈었다.

참고로 반지의 제왕의 저자인 존 로널드 루엘 톨킨(J.R.R 톨킨)과 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C.S 루이스)는 절친한 관계였다.

  존 로널드 루엘 톨킨(John Ronald Reuel Tolkien CBE)*이름 끝의 CBE는 대영제국훈장 수여자를 뜻함.영국의 작가. 1925년

1945년까지는 옥스퍼드 고대 영어 교수로 재직1945년에서 1959년 사이에는 영어영문학 교수로 재직.성인이 된 후 죽기까지 소설을 썼으며 이로 인해 그는 인생 후반부에 명성을 얻었다.

대표작품으로는 <베오울프>, <가웨인경과 녹기사>, 그리고 <반지의 제왕 삼부작>과 <호빗>이 있다.

 어린 톨킨(좌)과 그의 동생(우) 톨킨의 조상은 독일의 작센 왕국 섹소니아어를 사용했다.

 그 이후 그들은 18세기 영국으로 거주하였다.

이후 정통영어를 쓰는 영국인으로 거듭났다.

톨킨의 이름은 Tollkiehn 의 영국식 이름으로 툴 킨, 즉 모순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1892년 남 아프리카의 남쪽 오렌지 프리 주의 블룸폰테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은행 지점장이었는데 블룸폰테인 지사에 승진 발령이 나면서 영국을 떠나게 되었다2살 아래의 동생을 두고 있다.

톨킨이 3살이 되던 해, 부친이 류머티즘 열로 사망하게 된다.

가장을 잃은 톨킨 가족은 생활을 걱정하게 되고 그의 모친은톨킨을 외할아버지에게 보낸다.

그후 우스터셔 마을로 이주하게 되었는데이 시골 마을이 후에 톨킨의 작품에 큰 영감을 주었다.

그의 어머니 메이블 서필드는 두 아들을 직접 가르쳤다.

톨킨은 풍경과 나무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그의 최대 관심사는 언어였다.

모친은 아주 어린 나이때부터 라틴어의 기본을 가르쳐 주었는데4살이 되던해에 글을 읽기 시작했고 곧 자연스럽게 글을 썼다.

어린 톨킨은 "보물섬"이나 "피리 부는 사나이"를 싫어했으나"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심난해 하면서도 즐겼다고 한다.

 1911년 때의 톨킨 그의 어머니 메이블은 1900년 로먼 카톨릭에 입교하게 된다.

그의 집안은 침례교 가계였기 때문에 재정적 지원이 끊어지게 되었다.

4년 후 메이블이 당뇨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톨킨은 12살이었다.

톨킨은 모친이 순교했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고 카톨릭 신앙에 영향을 받았다.

어머니 메이블은 죽기전에 두 아들의 후견인으로 버밍햄 오라타리의 프란시스 제이버어 모간 신부를 지목했다.

톨킨은 버밍행 Edabaston 지역에서 살게 되었다.

그는 페로트 폴리와 빅토리아 풍 건물인 지역 급수소 근처에 살았는데이 것들은 그가 반지의 제왕에서 다크 타워를 상상 해내는데 영향을 주었다.

1911년 톨킨은 옥스퍼드 엑스터 칼리지에 입학해 고전을 공부하지만 전공을 바꾸어영어언어학을 공부하고 1915년 졸업한다.

 젊은 시절의 돌킨 16세때 톨킨은 자신보다 3살 연상의 에디스 메리 브렛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에디스는 개신교였는데 후견인인 모건 신부는 신실한 톨킨이 개신교 여인과 사귄다는것에 놀랐고 또한 학업을 방해하는 문제거리로 인식했다.

모건 신부는 21살이 되기 전까지 그들의 만남을 금지했고 돌킨은 그에 따랐다.

21세가 되던 생일 아침 톨킨은 에디스에게 자신의 사랑을 다시 받아 주고 결혼해달라고 편지를 썼다.

 자신을 잊은 줄만 알았던 톨킨의 편지를 받은 에디스는 다른 남자와 이미 약혼 한 상태였지만결국 톨킨을 선택하게 된다.

1916년 3월 22일 둘은 워익에 소재한 세인트 마리 이마 큘레이트 성당에서 결혼을 하게 된다.

 톨킨의 부인  Edith Bratt  세계 1차 대전 발발시 톨킨은 영국 육군에 지원해 소위로 임관한다.

그는 통신장교로 프랑스에 투입되었다.

솜무 전투 중에 벌어진 Thipval 능선 전투에서 참호열이란 병에 의해 정신을 잃게 되고 1916년 11월. 후방으로 후송된다.

1차 세계대전 당시 그는 오랜 시간 함께해왔던 친구들 역시 잃게 되는 슬픔을 겪었다.

병으로 쇠약해진 톨킨은 병원과 수비대를 오가며 남은 전쟁기간을 보낸다.

병 요양을 위해 스태퍼드셔 그레이트 헤이우드의 시골집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당시 The Book of Lost Tales를 쓰게 된다.

1917년 부터 1918년까지 병이 재발하였지만 건강은 호전되어 국내에서 복무를 하고중위로 진급 되었다.

   전역이후 그는 옥스포드 영어 사전의 편천작업에 관여했다.

1920년 리즈대학에서 영어 언어학 조교로 출강하다가 1924년 교수로 승진,1925년 다시 옥스포드로 돌아와 교수직을 맡았다.

그는 세계적인 명문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는 교육자였다.

그는 자신의 허구적인 이야기들이 인기를 얻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의 이야기는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환상적인 이야기들을 지어내 들려주기 좋아했다.

그러한 이야기들이 모여 출간 된 것이 <호빗>이였다.

호빗의 인가는 어른 독자들 까지 매료되었다.

결국 출판사는 톨킨에게 후속작을 내달라고 요청을 했다.

이를 계기로 돌킨은 잉클링스와 C.S.루이스의 도움을 받아거의 10년의 걸친 집필을 하게된다.

<반지의 제왕>이다.

반지의 제왕은 1960년대에 굉장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여전히 스테디 셀러로 남아있다.

이것 역시 사실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였으나, 집필이 계속 될 수록 어둡고 진지해져서어른들에게도 충분한 어필을 하게 되었다.

그의 사후에는 반지의 제왕의 앞 이야기 격인 <실마릴리온>이 묶여벼서 출판되었다.

 <반지의 제왕>은 많은 대중적 인기를 누렸으며 많은 평론가들에게 지지를 얻었고, 후대의 판타지 문학 작가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톨키니안(tolkienian)이나 톨키니스크(Tolkienesque) 같은 단어들이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될 정도의 영향력이었다.

  톨킨이 솜므 전투에서 얻은 병으로 휴양 중에 일이다.

만개한 독미나리 숲을 거닐면서 에디스는 톨킨을 위해 춤을 추었다.

톨킨을 위로하는 그녀의 애교섞인 행동에 영감을 얻은 돌킨은 등장인물에 그 모습을 투영한다.

 북 오브 로스트 테일(The Book of Lost Takes)의 베렌(Beren)과 루시엔(Luthien)의 설정이 그것이다.

톨킨의 묘비 이름 위에는 베렌이, 에디스의 묘비위에는 루시엔이 새겨져있다.

이는 아내 에디스가 먼저 사망하자 루시엔이라는 이름을 새겨넣었고그 역시 죽을 때 배렌이라는 이름을 새겨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옥스포드 울버코트 공동묘지에 위치한 톨킨 부부의 묘 The Book of Lost Tales 앵글로 섹슨의 서사시, 베오울프의 혁신적인 해석으로 큰 논란이 되었던 톨킨의 문학 비평서  노년의 톨킨      아이들을 위한 조금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전설이 되다반지의 제왕 - J.R.R 톨킨영국에 대한 자세한 정보More....Classic&Dynamic Britain영국관광청     번역지침을 비롯한 고급 지식이 많았는데, 서버를 카이스트 것을 썼기 때문에 주인장 아라빌님이 02년쯤 카이스트를 떠나면서(졸업이 맞을 거다) 없어졌다.

요꿰띠에라는 게시판도 있는데 로오리엔의 반지의 제왕 연구소 게시판 중 하나도 이 이름을 썼다.

 http://archive.org/web/web.php 에 들어가서 주소를 하면 된다.

200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남은 오래된 톨킨 카페에 팬사이트 주소들이 있어서 돌려보고 그 중 상태가 괜찮은 것만 올려본다.

  갈라드리엔의 nu`meno`re: 연구소 주소 http://galad.perne.net/ ::: 반지의 제왕 작가 - J.R.R. Tolkien이 머무는 곳 :: Tolkiens.com : 씨앗을 뿌리는 사람 ::: http://www.tolkiens.com/톨킨 낟세멘 주소 http://quagga.kaist.ac.kr/aravir/index.html 대문 글씨가 흐릿해서 딴 걸 찍었다.

갈라드리엔 제 1연구소의 고유명사 표기방안 이게 아마 알비와 달비라는 낱말의 시작. http://cafe.daum.net/Tolkien/K9B/2351  2002년에 관리자는 서언님이었다.

2007년 1월 25일에 바뀜.저기 가면 로오리엔 연구소에서 자주 보인 미리내님하고 카방클님도 보임.  예전에 씨앗을 뿌리는 사람 출판사가 만든 톨킨 관련 출판 소식 전달용 공간.옆의 톨킨 미공개 작품은 궁금한 마음에 샀더니 작가 소개가 톨킨으로 바뀐 로버트 크리크론의 가출녀 번역본이었더라는 내용이다.

실마릴리온 일정이 2004년 3월에서 7월로 지연되었다는 글, 한정판과 영화 반지의 제왕 1 설정집 출간이 취소되었다는 글을 볼 수 있다.

일본에는 영화 설정집 1, 2, 3 번역본이 모두 나왔는데 현재는 절판된 상태이고원판도 몇년 전에 절판되었다.

그래도 중고 시장 보면 제법 많이 판매한 듯함. http://tolkien.egloos.com/4067562007년 마지막 날 톨킨 출판 소식 이글루에는 50주년 기념 합본수제 장정 한정판이 기획되었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http://www.seedbook.com/bbs/bbs/board.php?bo_table=qa&wr_id=446&sca=&sfl=wr_content&stx=50%C1%D6%B3%E22008년 12월 18일 최고관리자의 글.영화 설정집때처럼 판매량 문제로 불발된 듯하다.

한정판과 관련된 글은 아니지만왜 끝나지 않은 이야기조차 출판이 안 되는지를 알 수 있는 글이다.

http://www.seedbook.com/bbs/bbs/board.php?bo_table=qa&wr_id=550&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BF%A9%C2%E3%B0%ED+%BD%CD%C0%BA  게시판에 들어가면 나오는 톨킨 게시판 이름이 요꿰띠에였다.

아라빌님 설명으로 꿰냐로 omentie가 둘이 하는 대화이고yoquetie가 셋 이상의 대화였을 거다.

로오리엔의 반지의 제왕 연구소 대화방 이름은 요멘띠에였다.

90년대 후반까지는 출판 시장은 작가와 계약한다는 개념이 없었고 먼저 번역해서 내는 사람이 임자였다.

그래서 속도를 중시해 찢어 번역을 했고 날림 번역도 나왔다.

(그런데 영웅문은 해적판 번역이 우수하더라는 말이 있다.

..) 그래서 국내에 나온 톨킨 책 한국어 번역본들도 문제가 많았다.

아라빌님은 원서를 갖고 있었으나 이러한 국내 번역 탓도 있었던 것 같다.

출판사 몇 군데로 국내 톨킨 책 출판 역사를 보면 호빗1979 김종철 엮음, 호비트.1988 동서문화사, 호비트 모험. 일본어판 중역. ACE88 아동문학전집을 이룬 책. ACE88에는 어스시(earthsea다 누리바다쯤으로 번역했을 수도 있었을 겉 같다) 연대기, 나니아 연대기도 실렸다.

1989 창작과 비평, 호비트의 모험. 2권 분권 만화영화 호빗 장면을 표지로 씀.1991 성바오로출판사, 꼬마 호비트의 모험. 기독교 출판산데 톨킨이 가톨릭 신자라서 낸 모양.1999 시공주니어, 호비트 2권 분권. 골룸을 꿀꺽이로 번역. 콜록이가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한다.

2002 B&B, 톨킨의 호빗. 만화책 구판. 신판은 09년 씨앗사에서 냄.여기까지 톨킨 번역지침은 무시되었고 원래 동화로 나왔음을 잘 나타내는 표지를 씀.2002 씨앗을 뿌리는 사람, 호빗. 톨킨 재단에서 출판권을 확보하여 번역. 양장판은 알란 리가 그린 보물방석에 앉은 스마우그가 표지. 보급판은 같은 작가가 그린 불 뿜는 스마우그가 표지다.

2007년에 개정판을 내면서 B5크기에서 B6으로 크기가 줄었고 존 하우 그림을 씀. 좀호빗이 으호빗으로 바뀜. 2010년에 개정판이 또 나왔는데 무엇이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이번에 영화가 나오자 영화 장면을 표지로 쓴 책을 냈다.

 반지의 제왕1988 동서문화사, 반지 이야기 제목부터 일본어판 중역 느낌 물씬. 3부 부제는 머나먼 길, 숲, 산, 강, 별, 땅을 썼다.

호빗과 한 책에 있어 뒤에 바로 나온다.

[톨킨] 한번 파해쳐 봅시다.


일판 중역이기 때문에 인물 이름이 제대로 번역 못 되었다.

02년 영화 덕분에 환상소설이 유행하자 완역 반지의 제왕이라는 이름으로 개정판을 내놓았는데 바뀐 것도 없었고 한국톨킨학회수상이라는 거짓을 섞어 광고했다.

간달프가 빌보한테 반지를 버리고 떠나라고 위협할 때 간달프의 참모습을 보여주지 정도로 번역되는 문장을 "그렇다면 간달프의 옷 벗은 모습을 보여주지!"로 번역했다.

1990 예문, 반지 전쟁. 3권 분권. lord를 어떻게 번역할까 고민하다가 다른 제목을 썼다고 한다.

영문과 대학원생 셋이 헌책방에서 원서를 발견하여 번역했다.

번역지침을 잘 따랐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문체가 자연스러우면서도 예스러워 분위기를 잘 살렸다는 평을 받았다.

Gandalf를 갠달프로 번역했는데, 갠달프라고 읽는 사람이 있으면 예문판 읽었나 보다 하면 된다.

98년에 개정판 나옴.1992 성바오로출판사, 마술반지. 마술피리가 생각나는 이름. 반지원정대 부분만 번역되었다.

1권 제목이 마술반지의 전우이고 2권 제목이 두 개의 탑으로 1, 2권을 1, 2부로 보는 실수를 하였다.

2001.03 황금가지, 반지의 제왕. 국내 최초로 톨킨 재단에서 출판권을 얻어 번역한 책. 한번씩은 봤을 알란 리가 그린 간달프 표지. 반지의 제왕이라는 제목이 이 때 처음 쓰였다.

당시 황금가지에서 제목을 정한다고 할 때 반지군주도 후보에 있었는데 군주가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제왕은 강해보이지만 약간 초딩삘이 난다.

가락지 주인, 가락지 임자로 하자는 개드립도 있었다.

번역지침을 따르려고 노력했으나 부족. 그다지를 그닥이라고 썼다.

2002.11 씨앗을 뿌리는 사람, 반지의 제왕. 황금가지가 다른 톨킨 책을 내지 않겠다고 하여 재단과 갈등을 빚고 출판권 포기, 새로 출판권을 확보한 출판사. 예문판 반지의 제왕을 번역한 사람들이 모여 냈다.

그동안 국내에 나온 판본은 첫머리와 부록이 일부 누락되어 있었는데 온전히 번역했다.

번역지침도 충실히 따른 편이라 실존하지 않는 세상 이야기를 듣는 느낌을 잘 살렸다.

영화 2편 개봉에 며칠 전에 책을 내놓았는데 시들했다.

보급판 표지는 영화 장면 표지이고 양장판 표지는 알란 리가 그린 그림이다.

황금가지판이 많이 팔렸는데, 톨킨 재단은 계약이 끝난 뒤 재고를 계약이 만료되고나서 1년 동안은 팔 수 있게 했고, 황가가 씨앗사보다 일주일 앞질러 재고를 반값에 서점에 내놓은 데다가 로오리엔 연구소 연회장 게시판에 올라온 글에 따르면 신문에 씨앗사가 판권을 빼앗아 간 것처럼 실었다고 한다.

07년에 개정판 나오면서 판형이 달라졌다.

 자세한 이야기: http://gkman1.tistory.com/68http://cafe.daum.net/thelordoftherings/9QcF/3910?docid=AJLW9QcF391020031216173227http://sabbath.egloos.com/219643 실마릴리온1997 다솜미디어, 실마릴리온. 별명 걸레릴리온. men을 멘족으로 번역. th를 ㅅ가 아닌 ㄷ로 읽어 루시엔을 루디엔, 싱골을 딩골, 레이시안 레이디안으로 번역했다.

예전에 실마릴리온 번역본이라고는 이것밖에 없었다.

th를 ㄷ로 읽으면 이 사람 다솜판 읽었구나 하면 된다.

절판되었는데 도서관 가면 있기도 하다.

 지금도 악명이 높아 걸레릴리온이나 다솜판 실마릴리온 오역으로 검색해보면 오역 부분이 잘 나온다.

표지에 라틴어가 적혀 있는데, 라틴어스러움을 피하려고 한 톨킨의 뜻을 모른 선택이다.

절벽 위에는 '섬뜻한 목소리로 울어대는 ??은 고기를 먹는 거대한 닭이 앉아 있었다.

'는 괴랄한 문장을 볼 수 있는데, 그림으로 그리면 재미있을 것 같다.

참고로 섬뜻과 썩은은 오타가 아니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판이 나오기 전에 이 판본을 살까 했다가 나중에 사기로 했다.

 잘한 선택이었다.

2004 씨앗을 뿌리는 사람, 실마릴리온. 톨킨 재단에서 출판권을 확보하여 번역. 양장판으로만 나옴. 테드 네이스미스가 그린 바다를 향해 실마릴을 던지는 마글로르. 마찬가지로 2007년에 개정판을 내면서 B5크기에서 B6으로 크기를 줄였으며 1권짜리에서 2권짜리로 바꿈. 존 하우 그림을 씀. 마찬가지로 2010년에 개정판 나온 적 있다.

 후린의 아이들2010 씨앗을 뿌리는 사람 문고판으로 12권 나오는 가운데땅 역사는 물론이고, 끝나지 않은 이야기도 번역할 예정은 없다고 한다.

톨킨 서간집도 안 나올 것 같다.

 쓰다보니까 길어졌는데 로오리엔의 반지의 제왕 연구소도 들어갈 수 있다.

http://fan.theonering.net/lotrlab/ 쪼개졌지만 html을 누르면 옛날 글을 볼 수 있다.

11년 4월인가 5월인가부터 접속할 수가 없었는데 주인장 말에 따르면 대문이 날아간데다가 악성코드를 먹었다고 한다.

  이 쪽으로 아는 분 있으면 도와주시길 바란다.

 .대학 경력과 작가 경력  톨킨이 전역하고 민간인으로 처음으로 맡았던 일은 옥스포드 영어 사전의 편찬 작업이였다고 합니다.

톨킨은 주로 독일 기원의 단어들의 역사와 어원을 W부터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1920년 톨킨은 리즈 대학에서 영어 언어학 조교로 대학에 출강하게 됩니다.

1924년 그는 교수로 승진하게 됩니다.

리즈 대학에서 그는 E.V. 고든과 "미들 잉글리쉬 단어 /A Middle English Vocabulary"와  "가웨인경과 녹색 /Sir Gawain and the Green Knight"  최종판을 작업하였다고 합니다.

[톨킨] 최고의 방법은?



동시에 톨킨은 "오르페오경 / Sir Orfeo"과 중세 두운 시 "펄 / Pearl"의 번역도 하였다고 합니다.

 1925년 톨킨은 옥스포드로 돌아와 "앵글로 섹슨 라우린슨 과 보스워쓰 /Rawlinson and Bosworth Professor of Anglo-Saxon"(1925-1945) 교수직을 맡게 됩니다.

   톨킨이 펨브룩에 있을때 반지의 제왕의 전초전이라고 할수 있는 호빗 2부작을 쓰게 됩니다.

2002년 이곳에는 블루 플레이크(주: 영국에서 역사적 이벤트나 유명한 인물과 연관된 장소에 붙이는 표시)가 붙었다고 합니다.

 1932년 그는 문언학 에세이 "노덴스 / Nodens"를 출판하였다고 합니다.

  1936년 그의 강의 "베오울프 : 몬스터와 비평 / Beowulf : the Monstars and the Critics"으로 만들어진 대학 교재는 베오울프 연구에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루이스 E. 니콜슨은 톨킨이 베오울프에 대해 저술한 아티클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 톨킨의 작업은 베오울프 비평의 전환점으로 널리 알려졌다.

" 또한 "톨킨은 시의 본질을 가장 잘 이해하였다"라고 호평하였다고 합니다.

 당시에 학자들은 베오울프가 현실감이 떨어지는 유치한 전투를 그리고 있다며 멸시하였다고 합니다.

톨킨은 베오울프의 작가는 기존의 논리에 구속받지 않고 인간의 운명을 그리려고 했으므로 몬스터는 이 서사시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주장하였다고 합니다.

   논문에 따르면 톨킨이 베오울프를 얼마나 값지게 여겼는지 알수 있다고 합니다.

"베오울프는 나에게 최고로 값진 자원이였다.

" 이 영향은 반지의 제왕에서 뚜?피構� 나타나고 있습니다.

  1945년 톨킨은 옥스퍼드 머튼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톨킨은 1959년 은퇴 할때까지 교직을 지키게 됩니다.

톨킨은 1948년 반지의 제왕을 탈고하게 됩니다.

소설의 밑그림을 그릴때 부터 무려 10년이 흐른 후였습니다.

  또한 톨킨은 1966년에 출판된 예루살렘 바이블의 번역을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가  족   톨킨 부부는 슬하에 장남 존 프란시스 리우엘 톨킨(1917년 11월 17일 - 2003년 2월 27일)와 마이클 힐라리 리우엘 톨킨(1920년 10월 22일 - 1984년 2월 27일), 크리스토퍼 존 리우엘 톨킨(1924년 11월 21일 - ) 그리고 막내딸 매리 리우엘 톨킨 (1929년 6월 18일 - ) 모두 4명의 자녀를 두게 됩니다.

 톨킨은 자녀들에게 매우 헌신적으로 사랑했던 걸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우 정     C.S.루이스와 톨킨은 옥스포드에서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말년에 서로 소원해지기는 했지만 루이스는 톨킨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료였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담소하는 것과 웃음 그리고 맥주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아! 좋은 친구입니다.

1927년 4월 톨킨은 고대 노르웨이어로 아이스랜드 신화를 읽는 모임인 콜바이터에 루이스를 포함 시켜줍니다.

톨킨과 휴 다이슨은 C.S. 루이스가 크리스챤(성공회) 신앙으로 돌아가는데 적잖은 역할을 하였는데, 이로 인해 후에 톨킨은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톨킨은 습관적으로 루이스에게 실마리온과 호빗 그리고 반지의 제왕의 소절을 크게 읽곤 하였다고 합니다.

루이스는 이들을 연계 시키는 것에 크게 환영하였다고 합니다.

 이둘은 개인적으로 루이스의 서재에서 소설과 자신들의 철학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옥스포드 대학 챨스 윌리엄스가 나타나자 톨킨과 루이스의 사이는 요원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루이스의 관심이 톨킨에서 부터 챨스에게로 옮겨갔기 때문이라고 전합니다.

한편 톨킨은 루이스가 반 카톨릭 주의자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루이스는 성공회로 돌아간 후 점차 개신교 옹호론자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하는데, 영국 교회에 깊은 원한이 있던 톨킨에게는 상당히 괴로운 일이였다고 합니다.

  톨킨과 루이스는 헤딩톤에서 더 친해질수 있는 계기가 있었지만, 루이스가 조이 데이비드맨과 결혼을 함으로 소홀하게 됩니다.

이혼에 초연한 이들 커플에 카톨릭 교도였던 톨킨은 상당히 반감을 가졌다고 합니다.

1950년대경 톨킨과 루이스의 잦은 만남이 끝이나자, 그의 사교 생활도 마지막을 맞게 됩니다.

루이스와 우정은 시간이 흐른 뒤에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1963년 11월 루이스의 부음을 접한 톨킨은 프리실리아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에 썼다고 합니다.

 "최근에 나는 내 나이 또래 사람들과 같이 느끼게 되었다 - 늙은 나무가 나뭇잎을 하나 둘 떨어지는 것처럼, 이 느낌은 마치 늙은 나무가 자신의 뿌리 근처에서 휘둘러지는 도끼를 보는 것과 같다.

"며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고 합니다.

은퇴 후의 생활     1959년 은퇴로 부터 죽음을 맞이하는 1973년 까지 톨킨은 꾸준히 증가하는 대중의 관심과 유명세를 타게 됩니다.

 그의 인세가 급격히 증가하자 톨킨은 조기 은퇴를 후회할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팬들의 관심이 과해지자 톨킨은 전화 번호부에서 그의 이름을 지우게 됩니다.

결국 톨킨 부부는 영국해협의 풀만(灣)에 면해 있는 한가한 본머스로 이주하였습니다.

 1972년 1월 일 톨킨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 부터 대영 제국 훈위의 상급 훈작사로 지명받고 1972년 3월 28일 버킹검 궁전에서 훈장을 받게 됩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살게 된 톨킨과 에디뜨   1971년 11월 29일 톨킨의 아내 에디뜨가 사망하자 톨킨은 묘비에 루시엔이라는 이름을 새겨 넣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21개월 후에 1973년 9월 2일 톨킨도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톨킨도 같은 묘지에 뭍히게 되고 묘비에는 베렌이라는 이름을 새겨넣어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죽음 마저도 이들을 갈라놓지 못한 것입니다.

톨킨의 소설을 읽는 독자가 있는 이상 그들은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이 부부의 묘지는 옥스포드 울버코트 공동묘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Edith Mary TolkienL�thien1889?1971John RonaldReuel TolkienBeren1892?1973  3부로 이어집니다.

...   R. 톨킨? 이 책이 출간되기 전 벌써 10년 동안 톨킨은 자신이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인 “중간계”에 매달려 있었다.

그럼에도 호빗은 톨킨이 출간한 첫 번째 작품이며, 그로부터 10년이 지나서야 겨우 그 속편 격인 반지의 제왕이 나오게 된다.

줄거리와 등장인물들은 톨킨이 옥스퍼드에서 연구한 고대 앵글로색슨과 스칸디나비아 서사시의 영웅들 및 톨킨이 살았던 영국 시골의 중산층에서 따왔다.

호빗 The Hobbit: or, There and Back Again의 주인공 빌보 배긴스는 호빗이다.

호빗은 인간키의 약 절반만하고 털북숭이 발에 먹고 마시기를 좋아하는 종족이다.

마법사 간달프가 부추기는 바람에 빌보는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마을인 샤이어를 떠나 한 무리의 난쟁이들과 함께 그들이 용에게 빼앗겼다고 주장하는 보물을 되찾으러 나선다.

골룸을 만난 빌보는, 약자가 끼면 사라질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의 반지를 자신이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일련의 모험을 겪은 후 빌보와 간달프는 마을로 돌아오지만 그의 모험심이 호빗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마을 사람들은 그를 거부한다.

빌보는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줄도 모르는 내적 능력이 있어 변신을 할 수 있는, 다소 영웅답지 않은 영웅이다 어떤 비평가들은 이 작품에서 전시 영국의 영웅주의의 은유나 특정 국가의 유전적인 악독함을 읽어내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톨킨은 우의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단순히, 자신의 능력이 시험대에 오를 때까지 자신이 얼마나 유용한지 전혀 알지 못했던 작고 매력적인 인물의 영웅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호빗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 2007. 1. 15., 마로니에북스) 톨킨의 가운데 땅의 역사를 다룬 소설 중에서 제일 먼저 집필된 소설이다.

당초 톨킨은 호빗을 가운데 땅과 연관시키려고 하지 않았으나, 이후 후속편에 해당하는 반지의 제왕이 집필되면서 호빗의 내용은 제3시대의 가장 중요한 사건인 반지전쟁과 이어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서 호빗은 초판본과 이후 판본에 내용의 차이가 있다.

초판본에서 주인공인 빌보 배긴스는 골룸으로부터 절대 반지를 선물로 받지만, 이후 판본에서는 동굴을 헤매는 도중에 반지를 줍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                                                [출처; 위키백과] .출판더난출판사발매2016.03.25.평점리뷰보기 너무나도 익숙하고 친근한 간달프가 표지에,?�!!  반지의 제왕, 호빗, 실마릴리온의 환상적인 배경과 캐릭터가 총망라 된 컬러링북이 나왔어요!생생한 영화 일러스트에 나만의 색을 입히며 판타지 여행을 떠나볼 수 있답니다!특이한 점은 한명의 작가가 아니라 총 5명의 일러스트레이터가 참여했다는 점이예요


다섯명이 그려내는 각양각색의 매력을 느껴보세요       아르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위험천만한 땅을 여행하는 반지 원정대와 함께 해보는  톨킨의 세계 컬러링북!3가지 영화를 다 안보셨더라도 걱정마세요!하단 부분에 무슨영화의 무엇인지 모두 표기되어 있답니다^^실라릴리온알쿠알론데엘다르가운데땅 위로 빛나는 별들천의 동굴 메네그로스루시엔과 난타사리온앙그반드의 파괴벨레고스트소린과 그의 동료, 트롤안개산맥 사이어고분산리븐델레골라스(????????????????)와 아라고른다른 캐릭터야 그렇다치고 레골라스마저 이렇게 그려져 있다니..당황열매 100개..... 보로미르,오르크안두인 강날아다니는 야수, 로스로리엔의 엘프들(....)아,제가 아는 엘프들은 이런 느낌이 아니었던거 같은데....특히 얼굴이... ?그림이 좀 소년만화챔프 돋아요거친터치와 너무나도 사실적인 묘사..덕분에 몹시 못생겨보입니다ㅠㅠㅋㅋ못생긴 그림 캐릭터 때문에 적잖이 당황도 했어요ㅋㅋㅋ...자꾸 영화 속 배우들과 비교가 !(아아..레골라스 )   그렇지만 늘 귀엽고 예쁜그림에 식상해지신 분들과조금 더 스케일이 큰 컬러링을 원하는분께는 추천드리고 싶어요그저 그림들만 덩그러니 있는  것보단반지의 제왕 캐릭터들과 떠나는 새로운 세상을 컬러링으로 실컷 즐기면 상상력이 배가될것같아요.  사루만, 반오르크가운데 땅에 핀 꽃, 푸켈인드디어 프로도^^ㅋㅋ프로도도 넘나 아재스럽..발에 털도 넘나 사실적이어서 뭔가 진화중인 크로마뇽인스럽네요얼굴도 그렇고.,너무 육덕, 후덕스러워서 프로도 아닌줄 ... 실은 캐릭터에 기대가 컸는데, 닮은것은 차치하고 너무 못생겼어여..ㅠㅠㅋ크헝크헝풍경으로 기스 난 마음의 치유를ㅋㅋㅋㅋ발라의 나무들^0^ 채색해볼께요!나무 두 그루부터!재료는 고체물감을 썼습니다그냥 대충 슥슥 해도 태가 나서 생각보다 훨씬 재밌는 책이네요!오로지 물감으로만 초벌채색 잡았어요물감이 빠르고 좋긴한데 이 컬러링북에서는 자꾸 종이가 밀려서 때가 나오고 있어요..많은 물 사용은 무리네요^^;;이대로 끝내도 좋을 것 같을 만큼 저는 나름 만족ㅋㅋ색연필로 약간만 더 다듬고 완성입니다♡표지와 함께!인스타에 올리다가 상단이 너무 바짝 ㅋㅋㅋ잘렸네요^^; 에레보르, 큰까마귀 큰까마귀가 멋져보여서 두번째로 채색을 해봤어요고체물감으로 바탕하고색연필로 디테일 잡았답니다넓은하늘은 오일파스텔!스트레스 바이짜이찌엔


마구마구 벅벅!!금세 뚝딱 해치워버릴수있고 손도 안아파서완전 선호하는 방식입니다^^페트롤+화장솜으로 문지르면 거칠던 표면이 단박에  맑고 투명한 수채화 느낌으로 변신합니다♡종이가 울지 않는 수채표현에는 이 방법이 왓따인것같아요ㅋㅋ따봉!!엄지척!!눈동자도 초롱초롱하게 다듬고뒤에 날아다니는 새들은 멀리있다치고 새카맣게 채워줬어요,완성♡ 동물은 자신이 없지만 톨킨의세계는 충분히 터치가 들어가 있어서 큰 공 없이도 금방 태가 나네요

선이 굵고 자체 명암이 많아서 수월하게 채색이 되고투자한 시간과 노력 대비 완성도가 높아보입니다! 삘받은 김에 간달프를 이어서 해보겠습니다표지를 장식한 만큼 친근하고 유명한 캐릭터라서 구미가 당기네요!좋아하는 영화 속 캐릭터를 컬러링 할 수 있다는건 참 재밌는 경험이네요다채롭고 풍부한 다른 컬러로 캐릭터를 변화시킬수있는 기회니까요^^ 역시 바탕은 고체물감이고요!만성피로님의 선물인 미니 파레트가 무척 유용하게 쓰임이 좋네요^^가볍고 세척도 편해서 자주쓰고 있답니다!덕분에 넘나 잘 쓰고 있어요^0^피로님, 다시금 감사드려요♡역시 물감이 속도가 갑이죠^^ 진도쭉쭉 색연필로 약간 디테일 잡았주고파스텔로 쓰려고 산 아이섀도우로 구름 살짝 칠해줬어요

��님의 노하우로 구름 따라 그려봤습니다^^간달프랑 어울릴것같아서용ㅋㅋ 이렇게 컬러링을 하는동안 생각보다 재밌어서 신나게했답니다 ㅋㅋ저의 지친 일상에 잠시쉽표,같은 컬러링은 다양한 책들을 만나면서 그 즐거움이 지속되는 것 같아요.이번에 만난 톨킨의세계 컬러링북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환상적인 매력이 가득 했답니다

         https://instagram.com/qq2qq2aa??(@qq2qq2aa) ? Instagram ?? ? ?????????www.instagram.com  http://blog.aladin.co.kr/764156151/8494798[?????]??? ?? ????blog.aladin.co.kr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어른들의 색칠공부와 더난출판사에서 책을 무상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대학 경력과 작가 경력  톨킨이 전역하고 민간인으로 처음으로 맡았던 일은 옥스포드 영어 사전의 편찬 작업이였다고 합니다.

톨킨은 주로 독일 기원의 단어들의 역사와 어원을 W부터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1920년 톨킨은 리즈 대학에서 영어 언어학 조교로 대학에 출강하게 됩니다.

1924년 그는 교수로 승진하게 됩니다.

리즈 대학에서 그는 E.V. 고든과 "미들 잉글리쉬 단어 /A Middle English Vocabulary"와  "가웨인경과 녹색 /Sir Gawain and the Green Knight"  최종판을 작업하였다고 합니다.

동시에 톨킨은 "오르페오경 / Sir Orfeo"과 중세 두운 시 "펄 / Pearl"의 번역도 하였다고 합니다.

 1925년 톨킨은 옥스포드로 돌아와 "앵글로 섹슨 라우린슨 과 보스워쓰 /Rawlinson and Bosworth Professor of Anglo-Saxon"(1925-1945) 교수직을 맡게 됩니다.

   톨킨이 펨브룩에 있을때 반지의 제왕의 전초전이라고 할수 있는 호빗 2부작을 쓰게 됩니다.

2002년 이곳에는 블루 플레이크(주: 영국에서 역사적 이벤트나 유명한 인물과 연관된 장소에 붙이는 표시)가 붙었다고 합니다.

 1932년 그는 문언학 에세이 "노덴스 / Nodens"를 출판하였다고 합니다.

  1936년 그의 강의 "베오울프 : 몬스터와 비평 / Beowulf : the Monstars and the Critics"으로 만들어진 대학 교재는 베오울프 연구에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루이스 E. 니콜슨은 톨킨이 베오울프에 대해 저술한 아티클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 톨킨의 작업은 베오울프 비평의 전환점으로 널리 알려졌다.

" 또한 "톨킨은 시의 본질을 가장 잘 이해하였다"라고 호평하였다고 합니다.

 당시에 학자들은 베오울프가 현실감이 떨어지는 유치한 전투를 그리고 있다며 멸시하였다고 합니다.

톨킨은 베오울프의 작가는 기존의 논리에 구속받지 않고 인간의 운명을 그리려고 했으므로 몬스터는 이 서사시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주장하였다고 합니다.

   논문에 따르면 톨킨이 베오울프를 얼마나 값지게 여겼는지 알수 있다고 합니다.

"베오울프는 나에게 최고로 값진 자원이였다.

" 이 영향은 반지의 제왕에서 뚜?피構� 나타나고 있습니다.

  1945년 톨킨은 옥스퍼드 머튼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톨킨은 1959년 은퇴 할때까지 교직을 지키게 됩니다.

톨킨은 1948년 반지의 제왕을 탈고하게 됩니다.

소설의 밑그림을 그릴때 부터 무려 10년이 흐른 후였습니다.

  또한 톨킨은 1966년에 출판된 예루살렘 바이블의 번역을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가  족   톨킨 부부는 슬하에 장남 존 프란시스 리우엘 톨킨(1917년 11월 17일 - 2003년 2월 27일)와 마이클 힐라리 리우엘 톨킨(1920년 10월 22일 - 1984년 2월 27일), 크리스토퍼 존 리우엘 톨킨(1924년 11월 21일 - ) 그리고 막내딸 매리 리우엘 톨킨 (1929년 6월 18일 - ) 모두 4명의 자녀를 두게 됩니다.

 톨킨은 자녀들에게 매우 헌신적으로 사랑했던 걸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우 정     C.S.루이스와 톨킨은 옥스포드에서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말년에 서로 소원해지기는 했지만 루이스는 톨킨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료였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담소하는 것과 웃음 그리고 맥주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아! 좋은 친구입니다.

1927년 4월 톨킨은 고대 노르웨이어로 아이스랜드 신화를 읽는 모임인 콜바이터에 루이스를 포함 시켜줍니다.

톨킨과 휴 다이슨은 C.S. 루이스가 크리스챤(성공회) 신앙으로 돌아가는데 적잖은 역할을 하였는데, 이로 인해 후에 톨킨은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톨킨은 습관적으로 루이스에게 실마리온과 호빗 그리고 반지의 제왕의 소절을 크게 읽곤 하였다고 합니다.

루이스는 이들을 연계 시키는 것에 크게 환영하였다고 합니다.

 이둘은 개인적으로 루이스의 서재에서 소설과 자신들의 철학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옥스포드 대학 챨스 윌리엄스가 나타나자 톨킨과 루이스의 사이는 요원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루이스의 관심이 톨킨에서 부터 챨스에게로 옮겨갔기 때문이라고 전합니다.

한편 톨킨은 루이스가 반 카톨릭 주의자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루이스는 성공회로 돌아간 후 점차 개신교 옹호론자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하는데, 영국 교회에 깊은 원한이 있던 톨킨에게는 상당히 괴로운 일이였다고 합니다.

  톨킨과 루이스는 헤딩톤에서 더 친해질수 있는 계기가 있었지만, 루이스가 조이 데이비드맨과 결혼을 함으로 소홀하게 됩니다.

이혼에 초연한 이들 커플에 카톨릭 교도였던 톨킨은 상당히 반감을 가졌다고 합니다.

1950년대경 톨킨과 루이스의 잦은 만남이 끝이나자, 그의 사교 생활도 마지막을 맞게 됩니다.

루이스와 우정은 시간이 흐른 뒤에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1963년 11월 루이스의 부음을 접한 톨킨은 프리실리아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에 썼다고 합니다.

 "최근에 나는 내 나이 또래 사람들과 같이 느끼게 되었다 - 늙은 나무가 나뭇잎을 하나 둘 떨어지는 것처럼, 이 느낌은 마치 늙은 나무가 자신의 뿌리 근처에서 휘둘러지는 도끼를 보는 것과 같다.

"며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고 합니다.

은퇴 후의 생활     1959년 은퇴로 부터 죽음을 맞이하는 1973년 까지 톨킨은 꾸준히 증가하는 대중의 관심과 유명세를 타게 됩니다.

 그의 인세가 급격히 증가하자 톨킨은 조기 은퇴를 후회할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팬들의 관심이 과해지자 톨킨은 전화 번호부에서 그의 이름을 지우게 됩니다.

결국 톨킨 부부는 영국해협의 풀만(灣)에 면해 있는 한가한 본머스로 이주하였습니다.

 1972년 1월 일 톨킨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 부터 대영 제국 훈위의 상급 훈작사로 지명받고 1972년 3월 28일 버킹검 궁전에서 훈장을 받게 됩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살게 된 톨킨과 에디뜨   1971년 11월 29일 톨킨의 아내 에디뜨가 사망하자 톨킨은 묘비에 루시엔이라는 이름을 새겨 넣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21개월 후에 1973년 9월 2일 톨킨도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톨킨도 같은 묘지에 뭍히게 되고 묘비에는 베렌이라는 이름을 새겨넣어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죽음 마저도 이들을 갈라놓지 못한 것입니다.

톨킨의 소설을 읽는 독자가 있는 이상 그들은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이 부부의 묘지는 옥스포드 울버코트 공동묘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Edith Mary TolkienL�thien1889?1971John RonaldReuel TolkienBeren1892?1973  3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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