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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



naver.com/shmeg8/220709554105옥중화 배경이 명종 이환이네요

육룡이 나르샤가 끝나고 나니, 그만큼 임팩트가 있는 사극은 없는거 같아요 몇몇 퓨전사극들이 등장하긴 했...blog.naver.com 어떻게 보면 문정왕후는 현재의 한국의 강남 엄마 같은존재였던 거 같아요 ,, 중종의 왕후로 입궁한지 17년만에 그당시 나이로는 아주 노산이 37세에 후에 명종이 되는 경원대군을 낳게됩니다,,중종에게는 이미 후에 인종이 되는 세자가 장성하여있었기 때문에 사실 경원대군이 왕위를 잇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지만문정왕후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세자였던 인종에게 갖은 권모술수로 괴롭힙니다,,심지어 동궁전에 불을 질러서 죽일려고 까지 한것입니다,,하지만,,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종이 보위에 올랐지만,,자신을 죽이려고 하던 문정왕후를 오히려 어머니로서극진히 대하는 인종의 효심을 이용하여 더욱더 악랄한 수를 써서자신의 아들을 보위에 올리고자 합니다,,문정왕후가 이러한 인종을 독살하였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한 사실처럼 여겨지는 것도 바로 이때문입니다,,동방의 요순임금으로 칭송되며,, 효를 다하였던,,인종은 겨우 9개월만에 죽게 되고,,문정왕후는 자신의 아들을 드디어,,왕위에 올리고 거기다가,,어린 명종을 대신하여 권력을 틀어지게 되죠,,명종은 20살이 되어서 수렴청정을 걷고,,자신이 통치를 시작한 후에도 이러한 극성 어머니에 의해서제대로된 왕의 정치를 펼쳐보지도 못하였고,,오히려 자신의 삼촌이 저지르는 엄청난 부정과 부패를 보면서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는 처지에 놓이는 비운의 왕이었습니다,,,옥중화 명종이환이 서서이 나타나는 걸로 봐서는 이제 서서히 문정왕후가 죽고 난 후에 윤원형과 정난정의 최후가 그려질 것으로 생각이 드네요 윤원형과 정난정의 악행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어머니인 문정왕후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명종은 문정왕후가 죽고 난 후에 비로서모든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 노력하였습니다.

물론 문정왕후의 사후에 윤원형과 정난정도 최후를 맞이하게 되죠,,옥중화 명종이환이 아마도,, 이러한 흐름에서 옥녀와 모종의 관계로 엮길거 같은 느낌이네요 ㅎㅎㅎ 그런데 윤원형과 정난정의 죽음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이 있더라구요 ,,사실 문정왕후가 죽고 난후에도 명종은 외숙인,,윤원형과 정난정을 바로 죽이지 않았죠,,근데 아주 웃기게도,, 윤원형의 애첩인 정난정은자신이 지은 죄가 많아서인지 ,,, 문정왕후가 죽고 난 후에 불안해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한 금부도사가 자신이 거주하던 별장근처로 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사실은 이 금부도사는 평양으로 가는 길에 말을 갈아타기 위해서 온 것이었는데 정난정은 자신을 잡으러 오는 걸로 착각하여서 스스로 목숨을 끓어버렸다고 하네요,, 어이없죠 ㅋㅋ그리고 이 정난정이 죽고 난 후에 자신이 사랑하던 정난정이 죽은거에 대하여 슬퍼하며식음을 전폐하다가,, 5일만에 죽었다고 하네요 ㅎㅎ아마도,,죄짓고는 못하는 것이 인간인가 보네요 ㅎㅎㅎㅎ 앞으로 옥중화 명종이환이 어떤 활약을 펼칠지는 모르지만,,어째튼,,이제 하나 남은 사극이라,,열심히 볼 예정입니다,,, naver.com/shmeg8/220709554105옥중화 배경이 명종 이환이네요

육룡이 나르샤가 끝나고 나니, 그만큼 임팩트가 있는 사극은 없는거 같아요 몇몇 퓨전사극들이 등장하긴 했...blog.naver.com 어떻게 보면 문정왕후는 현재의 한국의 강남 엄마 같은존재였던 거 같아요 ,, 중종의 왕후로 입궁한지 17년만에 그당시 나이로는 아주 노산이 37세에 후에 명종이 되는 경원대군을 낳게됩니다,,중종에게는 이미 후에 인종이 되는 세자가 장성하여있었기 때문에 사실 경원대군이 왕위를 잇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지만문정왕후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세자였던 인종에게 갖은 권모술수로 괴롭힙니다,,심지어 동궁전에 불을 질러서 죽일려고 까지 한것입니다,,하지만,,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종이 보위에 올랐지만,,자신을 죽이려고 하던 문정왕후를 오히려 어머니로서극진히 대하는 인종의 효심을 이용하여 더욱더 악랄한 수를 써서자신의 아들을 보위에 올리고자 합니다,,문정왕후가 이러한 인종을 독살하였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한 사실처럼 여겨지는 것도 바로 이때문입니다,,동방의 요순임금으로 칭송되며,, 효를 다하였던,,인종은 겨우 9개월만에 죽게 되고,,문정왕후는 자신의 아들을 드디어,,왕위에 올리고 거기다가,,어린 명종을 대신하여 권력을 틀어지게 되죠,,명종은 20살이 되어서 수렴청정을 걷고,,자신이 통치를 시작한 후에도 이러한 극성 어머니에 의해서제대로된 왕의 정치를 펼쳐보지도 못하였고,,오히려 자신의 삼촌이 저지르는 엄청난 부정과 부패를 보면서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는 처지에 놓이는 비운의 왕이었습니다,,,옥중화 명종이환이 서서이 나타나는 걸로 봐서는 이제 서서히 문정왕후가 죽고 난 후에 윤원형과 정난정의 최후가 그려질 것으로 생각이 드네요 윤원형과 정난정의 악행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어머니인 문정왕후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명종은 문정왕후가 죽고 난 후에 비로서모든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 노력하였습니다.

물론 문정왕후의 사후에 윤원형과 정난정도 최후를 맞이하게 되죠,,옥중화 명종이환이 아마도,, 이러한 흐름에서 옥녀와 모종의 관계로 엮길거 같은 느낌이네요 ㅎㅎㅎ 그런데 윤원형과 정난정의 죽음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이 있더라구요 ,,사실 문정왕후가 죽고 난후에도 명종은 외숙인,,윤원형과 정난정을 바로 죽이지 않았죠,,근데 아주 웃기게도,, 윤원형의 애첩인 정난정은자신이 지은 죄가 많아서인지 ,,, 문정왕후가 죽고 난 후에 불안해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한 금부도사가 자신이 거주하던 별장근처로 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사실은 이 금부도사는 평양으로 가는 길에 말을 갈아타기 위해서 온 것이었는데 정난정은 자신을 잡으러 오는 걸로 착각하여서 스스로 목숨을 끓어버렸다고 하네요,, 어이없죠 ㅋㅋ그리고 이 정난정이 죽고 난 후에 자신이 사랑하던 정난정이 죽은거에 대하여 슬퍼하며식음을 전폐하다가,, 5일만에 죽었다고 하네요 ㅎㅎ아마도,,죄짓고는 못하는 것이 인간인가 보네요 ㅎㅎㅎㅎ 앞으로 옥중화 명종이환이 어떤 활약을 펼칠지는 모르지만,,어째튼,,이제 하나 남은 사극이라,,열심히 볼 예정입니다,,, naver.com/shmeg8/220709554105옥중화 배경이 명종 이환이네요

육룡이 나르샤가 끝나고 나니, 그만큼 임팩트가 있는 사극은 없는거 같아요 몇몇 퓨전사극들이 등장하긴 했...blog.naver.com 어떻게 보면 문정왕후는 현재의 한국의 강남 엄마 같은존재였던 거 같아요 ,, 중종의 왕후로 입궁한지 17년만에 그당시 나이로는 아주 노산이 37세에 후에 명종이 되는 경원대군을 낳게됩니다,,중종에게는 이미 후에 인종이 되는 세자가 장성하여있었기 때문에 사실 경원대군이 왕위를 잇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지만문정왕후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세자였던 인종에게 갖은 권모술수로 괴롭힙니다,,심지어 동궁전에 불을 질러서 죽일려고 까지 한것입니다,,하지만,,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종이 보위에 올랐지만,,자신을 죽이려고 하던 문정왕후를 오히려 어머니로서극진히 대하는 인종의 효심을 이용하여 더욱더 악랄한 수를 써서자신의 아들을 보위에 올리고자 합니다,,문정왕후가 이러한 인종을 독살하였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한 사실처럼 여겨지는 것도 바로 이때문입니다,,동방의 요순임금으로 칭송되며,, 효를 다하였던,,인종은 겨우 9개월만에 죽게 되고,,문정왕후는 자신의 아들을 드디어,,왕위에 올리고 거기다가,,어린 명종을 대신하여 권력을 틀어지게 되죠,,명종은 20살이 되어서 수렴청정을 걷고,,자신이 통치를 시작한 후에도 이러한 극성 어머니에 의해서제대로된 왕의 정치를 펼쳐보지도 못하였고,,오히려 자신의 삼촌이 저지르는 엄청난 부정과 부패를 보면서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는 처지에 놓이는 비운의 왕이었습니다,,,옥중화 명종이환이 서서이 나타나는 걸로 봐서는 이제 서서히 문정왕후가 죽고 난 후에 윤원형과 정난정의 최후가 그려질 것으로 생각이 드네요 윤원형과 정난정의 악행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어머니인 문정왕후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명종은 문정왕후가 죽고 난 후에 비로서모든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 노력하였습니다.

물론 문정왕후의 사후에 윤원형과 정난정도 최후를 맞이하게 되죠,,옥중화 명종이환이 아마도,, 이러한 흐름에서 옥녀와 모종의 관계로 엮길거 같은 느낌이네요 ㅎㅎㅎ 그런데 윤원형과 정난정의 죽음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이 있더라구요 ,,사실 문정왕후가 죽고 난후에도 명종은 외숙인,,윤원형과 정난정을 바로 죽이지 않았죠,,근데 아주 웃기게도,, 윤원형의 애첩인 정난정은자신이 지은 죄가 많아서인지 ,,, 문정왕후가 죽고 난 후에 불안해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한 금부도사가 자신이 거주하던 별장근처로 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사실은 이 금부도사는 평양으로 가는 길에 말을 갈아타기 위해서 온 것이었는데 정난정은 자신을 잡으러 오는 걸로 착각하여서 스스로 목숨을 끓어버렸다고 하네요,, 어이없죠 ㅋㅋ그리고 이 정난정이 죽고 난 후에 자신이 사랑하던 정난정이 죽은거에 대하여 슬퍼하며식음을 전폐하다가,, 5일만에 죽었다고 하네요 ㅎㅎ아마도,,죄짓고는 못하는 것이 인간인가 보네요 ㅎㅎㅎㅎ 앞으로 옥중화 명종이환이 어떤 활약을 펼칠지는 모르지만,,어째튼,,이제 하나 남은 사극이라,,열심히 볼 예정입니다,,,  대윤과 소윤그리고 문정왕후가 경원대군(명종)을 낳자 윤원형이 세자 책봉을 거론하면서 당시 세자였던 인종의 외척인 윤임과 대립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같은 파평 윤 씨였지만, 세력이 분리되어 윤원형 일파를 <소윤>, 윤임 일파를 <대윤>이라 하였습니다.

인종 재위 기간에는 대윤이 세력을 잡았지만, 재위 8개월 만에 승하하고 12살의 어린 나이에 명종이 즉위하면서 외척의 영향이 크게 강화되기 시작하였고, 문정 대비의 수렴청정과 소윤이 세력을 잡게 됩니다.

 윤원형의 반대세력 숙청명종이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왕실의 외척인 대윤과 소윤의 갈등으로 윤원형 일파가 윤임의 대윤 일파를 역모죄로 몰아 처형하거나 정계에서 쫓아내는 을사사화가 일어났습니다.

이후 문정 대비를 비난하는 양재역 벽서사건으로 윤임을 따르는 무리들을 탄압하였고 봉성군(중종의 후궁 희빈 홍 씨의 소생)도 귀양 보낸 뒤 사약을 내리는 등 명종 즉위 후 몇 년간 윤원형의 음모로 화를 입은 반대파가 100여 명에 달했습니다.

 이로써 명종의 외척인 윤원형이 권력을 휘두르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명종은 어머니 문정 대비와 외삼촌 윤원형의 행동이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제대로 말을 하지 못 했습니다.

결국 명종 초기에는 정치적 주도권이 문정왕후와 윤원형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이 끝나고 명종의 친정이 시작그러다가 명종 8년, 20세의 나이가 됨에 따라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이 끝나고 명종의 친정이 시작되었습니다.

한편 또 다른 외척인 명종의 비 조부 심연원은 명종 재위 기간에 윤원형의 정국 운영에 참여하면서 두루 높은 관직을 거쳤는데요. 그러나 윤원형의 견제를 받고 있었고, 이에 명종은 왕권 강화와 윤원형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독자세력이 필요했는데 심연원의 추천을 받아 이량을 택하였습니다.

 이량의 세력은 인사권을 장악하며 윤원형 세력과 권력구조의 균형을 꾀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윤원형 세력의 위치를 넘어서자 양자 균형을 통하여 왕권 강화를 원하던 명종에게는 부담이 되었고 결국 이량은 탄핵되었습니다.

왜구의 등장과 임꺽정이 나타남이러한 때 남쪽에서는 왜구들이 나타나 극성을 부렸고 양주의 백정 출신 임꺽정이 나타나 1559

1562년 사이에 황해도와 경기도 일대 등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 혼란스러웠고,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은 끝났지만 간섭도 계속되었습니다.

 문정왕후는 독실한 불교 신자로 백담사 승려 보우를 천거하여 승과 제도를 설치하는 등 불교의 교세를 확장시키기도 하였지만 유생들이 상소를 올리면서 제주도로 귀양갔다가 문정왕후가 승하한 후에 죽었습니다.

문정왕후의 승하 문정왕후는 명종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회초리까지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문정왕후가 1565년 승하하자 명종은 깊이 슬퍼하며 사흘 동안 밥 한 술도 뜨지 못하였습니다.

 국정쇄신을 위해 노력하지만... 그리고 국정쇄신을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때 관직에서 물러나  안동 도산서원에 있던 이황의 인품과 학문을 존중하여 곁에 두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러나 끝끝내 사양하여 이루어지지 못하였습니다.

도산서당 편액(국립대구 박물관 특별 전시))퇴계 이황이 도산 서당을 짓고 유생을 교육하며 학문을 닦던 곳으로, 선조 7년에 이황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서원으로 개편되었습니다.

 명종은 재위 22년 기간 중, 어머니 문정왕후가 돌아가신 후 윤원형을 유배시키고 제대로 뜻을 펼쳐 보려 하였으나 병이 깊어가던 명종은 안타깝게도 34세의 일기로 경복궁 양심당에서 승하하였습니다.

후사는 없으며 명종의 능은 강릉으로 노원구 공릉동에 있습니다.

  명종과 인순 왕후의 강릉  그만큼 사대부들에 대한 문정왕후의 증오가 심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명종도 2년도 채 못 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니, 그 뒤를 중종의 열 번째 아들인 덕흥군 이초의 삼자인 하성군 균이 왕위에 올라가게 되었다.

이가 14번째 임금 선조였다.

하지만, 선조의 즉위는 그다지 순탄치 않았다.

일단 정통성의 문제가 있었다.

  그는 왕실의 종법에 따르면 왕에게 후사가 없는 경우 서열이 가장 높은 종친부터 왕위계승권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중종의 후궁인 창빈 안씨의 소생인 덕흥군의 아들이었고, 더구나 세 번째 아들이었다.

??그가 올라간 것은 단지 명종 비인 심씨의 을축년에 명종이 썼다는 전교인데, 그것이 명종이 쓴 것인지 아니면 조작된 것인지 판가름하기가 힘들다.

더구나 선조 비인 심씨는 선조 초에 권세를 누리던 심통원의 조카였다.

물론 나중에 사림에 의해 축출 당하지만, 명종 비인 심씨도 잠시나마 섭정하였다.

??따라서 생각하건데 선조의 즉위는 명종의 하교에 의해서만 볼 수 없다는 점이다.

더구나 설령 명종이 그런 하교를 내렸다고 해도 하성군이 왕위에 올라갈 명분이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정통성이 없는 선조였기에 적자를 고대했고, 적자를 왕위에 세우기 위해 무리하게 두 살배기인 영창대군을 왕위에 세우려다가 죽이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영창대군의 죽음은 광해군의 잘못보다 선조의 잘못이 더 큰 셈이다.

??후세 사가로부터 수난의 군주라는 이름이 붙여진 선조, 지금까지 훈구 정치가 끝나고, 바야흐로 사림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그만큼 사대부들에 대한 문정왕후의 증오가 심했음을 알 수 있다.

[명종] 누구의 잘못인가


??하지만, 명종도 2년도 채 못 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니, 그 뒤를 중종의 열 번째 아들인 덕흥군 이초의 삼자인 하성군 균이 왕위에 올라가게 되었다.

이가 14번째 임금 선조였다.

하지만, 선조의 즉위는 그다지 순탄치 않았다.

일단 정통성의 문제가 있었다.

  그는 왕실의 종법에 따르면 왕에게 후사가 없는 경우 서열이 가장 높은 종친부터 왕위계승권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중종의 후궁인 창빈 안씨의 소생인 덕흥군의 아들이었고, 더구나 세 번째 아들이었다.

??그가 올라간 것은 단지 명종 비인 심씨의 을축년에 명종이 썼다는 전교인데, 그것이 명종이 쓴 것인지 아니면 조작된 것인지 판가름하기가 힘들다.

더구나 선조 비인 심씨는 선조 초에 권세를 누리던 심통원의 조카였다.

물론 나중에 사림에 의해 축출 당하지만, 명종 비인 심씨도 잠시나마 섭정하였다.

??따라서 생각하건데 선조의 즉위는 명종의 하교에 의해서만 볼 수 없다는 점이다.

더구나 설령 명종이 그런 하교를 내렸다고 해도 하성군이 왕위에 올라갈 명분이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정통성이 없는 선조였기에 적자를 고대했고, 적자를 왕위에 세우기 위해 무리하게 두 살배기인 영창대군을 왕위에 세우려다가 죽이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영창대군의 죽음은 광해군의 잘못보다 선조의 잘못이 더 큰 셈이다.

??후세 사가로부터 수난의 군주라는 이름이 붙여진 선조, 지금까지 훈구 정치가 끝나고, 바야흐로 사림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그만큼 사대부들에 대한 문정왕후의 증오가 심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명종도 2년도 채 못 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니, 그 뒤를 중종의 열 번째 아들인 덕흥군 이초의 삼자인 하성군 균이 왕위에 올라가게 되었다.

이가 14번째 임금 선조였다.

하지만, 선조의 즉위는 그다지 순탄치 않았다.

일단 정통성의 문제가 있었다.

  그는 왕실의 종법에 따르면 왕에게 후사가 없는 경우 서열이 가장 높은 종친부터 왕위계승권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중종의 후궁인 창빈 안씨의 소생인 덕흥군의 아들이었고, 더구나 세 번째 아들이었다.

??그가 올라간 것은 단지 명종 비인 심씨의 을축년에 명종이 썼다는 전교인데, 그것이 명종이 쓴 것인지 아니면 조작된 것인지 판가름하기가 힘들다.

[명종] 노하우를 알려주마



더구나 선조 비인 심씨는 선조 초에 권세를 누리던 심통원의 조카였다.

물론 나중에 사림에 의해 축출 당하지만, 명종 비인 심씨도 잠시나마 섭정하였다.

??따라서 생각하건데 선조의 즉위는 명종의 하교에 의해서만 볼 수 없다는 점이다.

더구나 설령 명종이 그런 하교를 내렸다고 해도 하성군이 왕위에 올라갈 명분이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정통성이 없는 선조였기에 적자를 고대했고, 적자를 왕위에 세우기 위해 무리하게 두 살배기인 영창대군을 왕위에 세우려다가 죽이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영창대군의 죽음은 광해군의 잘못보다 선조의 잘못이 더 큰 셈이다.

??후세 사가로부터 수난의 군주라는 이름이 붙여진 선조, 지금까지 훈구 정치가 끝나고, 바야흐로 사림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대윤과 소윤그리고 문정왕후가 경원대군(명종)을 낳자 윤원형이 세자 책봉을 거론하면서 당시 세자였던 인종의 외척인 윤임과 대립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같은 파평 윤 씨였지만, 세력이 분리되어 윤원형 일파를 <소윤>, 윤임 일파를 <대윤>이라 하였습니다.

인종 재위 기간에는 대윤이 세력을 잡았지만, 재위 8개월 만에 승하하고 12살의 어린 나이에 명종이 즉위하면서 외척의 영향이 크게 강화되기 시작하였고, 문정 대비의 수렴청정과 소윤이 세력을 잡게 됩니다.

 윤원형의 반대세력 숙청명종이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왕실의 외척인 대윤과 소윤의 갈등으로 윤원형 일파가 윤임의 대윤 일파를 역모죄로 몰아 처형하거나 정계에서 쫓아내는 을사사화가 일어났습니다.

이후 문정 대비를 비난하는 양재역 벽서사건으로 윤임을 따르는 무리들을 탄압하였고 봉성군(중종의 후궁 희빈 홍 씨의 소생)도 귀양 보낸 뒤 사약을 내리는 등 명종 즉위 후 몇 년간 윤원형의 음모로 화를 입은 반대파가 100여 명에 달했습니다.

 이로써 명종의 외척인 윤원형이 권력을 휘두르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명종은 어머니 문정 대비와 외삼촌 윤원형의 행동이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제대로 말을 하지 못 했습니다.

결국 명종 초기에는 정치적 주도권이 문정왕후와 윤원형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이 끝나고 명종의 친정이 시작그러다가 명종 8년, 20세의 나이가 됨에 따라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이 끝나고 명종의 친정이 시작되었습니다.

한편 또 다른 외척인 명종의 비 조부 심연원은 명종 재위 기간에 윤원형의 정국 운영에 참여하면서 두루 높은 관직을 거쳤는데요. 그러나 윤원형의 견제를 받고 있었고, 이에 명종은 왕권 강화와 윤원형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독자세력이 필요했는데 심연원의 추천을 받아 이량을 택하였습니다.

 이량의 세력은 인사권을 장악하며 윤원형 세력과 권력구조의 균형을 꾀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윤원형 세력의 위치를 넘어서자 양자 균형을 통하여 왕권 강화를 원하던 명종에게는 부담이 되었고 결국 이량은 탄핵되었습니다.

왜구의 등장과 임꺽정이 나타남이러한 때 남쪽에서는 왜구들이 나타나 극성을 부렸고 양주의 백정 출신 임꺽정이 나타나 1559

1562년 사이에 황해도와 경기도 일대 등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 혼란스러웠고,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은 끝났지만 간섭도 계속되었습니다.

 문정왕후는 독실한 불교 신자로 백담사 승려 보우를 천거하여 승과 제도를 설치하는 등 불교의 교세를 확장시키기도 하였지만 유생들이 상소를 올리면서 제주도로 귀양갔다가 문정왕후가 승하한 후에 죽었습니다.

문정왕후의 승하 문정왕후는 명종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회초리까지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문정왕후가 1565년 승하하자 명종은 깊이 슬퍼하며 사흘 동안 밥 한 술도 뜨지 못하였습니다.

 국정쇄신을 위해 노력하지만... 그리고 국정쇄신을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때 관직에서 물러나  안동 도산서원에 있던 이황의 인품과 학문을 존중하여 곁에 두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러나 끝끝내 사양하여 이루어지지 못하였습니다.

도산서당 편액(국립대구 박물관 특별 전시))퇴계 이황이 도산 서당을 짓고 유생을 교육하며 학문을 닦던 곳으로, 선조 7년에 이황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서원으로 개편되었습니다.

 명종은 재위 22년 기간 중, 어머니 문정왕후가 돌아가신 후 윤원형을 유배시키고 제대로 뜻을 펼쳐 보려 하였으나 병이 깊어가던 명종은 안타깝게도 34세의 일기로 경복궁 양심당에서 승하하였습니다.

후사는 없으며 명종의 능은 강릉으로 노원구 공릉동에 있습니다.

  명종과 인순 왕후의 강릉  하지만,,아쉽게도 명종이 주인공이지 않죠 ㅎ이번에도 명종보다는 다른 인물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죠사실 ,,대장금, 전우치전,그리고 정난정을 다룬 여인천하같은 드라마의 배경이 바로 명종 이환이었죠,,근데 왜 이렇게 왕이야기가 아닌,,다른 인물에만촛점을 맞추었을 까요?????알고보니,,옥중화의 배경이 된 명종 이환은 거의 허수아비 왕으로 불리워지는 거 있죠

왜 역사를 그를 허수아비 왕이라고 불렀을까요???명종은 중종의 두 번째 계비 문정와후 윤씨의 아들입니다.

문정왕후는 중종과의 사이에 자녀를 5명을 낳았는데 이중에 아들은 한명 뿐이었습니다.

그것도 문정왕후가 35살에 낳은 아들이었습니다.

문정왕후가 명종 이환을 낳았을 때에 중종의 첫번째 계비인 장경왕후의 아들이 이미20살이었습니다,,그가 바로 인종이었습니다.

근데,, 인종이 즉위한지 9개월만에 짧은 생을 마감하자,그당시 12살 밖에 되지 않았던 명종이 즉위하게 되고문정왕후가 어린 명종을 대신하여 8년동안 수렴청정을 하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문정왕후는 수렴청정을 하는 동안에 단순히 어린 명종을 보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마치 왕인것처럼 자신의 친동생인 윤원형을 앞세워서 을사사화, 양재역 벽서사건들을 일으켜서 자신들과 왕권을 놓고 치열하게 싸우던 장경왕후의 일파들을 모두 제거하고자신의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수렴청정이 끝난 뒤에도 명종을 직접적으로 조정하여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킬려고 노력을 하였고,명종 이환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반말을 하고 욕을 하면서 괴롭혔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그러한 폭압이 심해져서,,명종 이환의 종아리도 쳤다고 하네요

이로 인하여 명종은 그야말로 허수아비 왕으로서의삶을 살아가게 되었고,, 자신의 외삼촌인윤원형을 제거할려고 하였으나,,자신의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죽기전까지는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유교사회를 표방하던 조선시대였지만,,독실한 불교신자였던문정왕후로 인하여 승려인 보우가 병조판서에 오르는웃지못할 헤프닝도 벌어질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허수아비 임금으로서 자신의 정치를 펼치지 못하는 명종 이환시대였기에권력자인 문정왕후와 그 배경을 듣에 업은 윤원형과그의 애첩인 정난정에게 줄을 대기 위해서 부조리가 도를 넘을 정도였습니다.

또한 나라안의 정치는 윤원형의 정적들을 제거하기위하여 대신들을 마구 죽임으로서 모든 정치력과 외교력이 엉망이 되었고,, 안으로는 임꺽정의 난과 같은 도적들이 들끓고밖으로는 임진왜란의 전조가 되었던 을묘왜변 같은 변란이 일어 났지만,,속수무책으로 백성들만이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옥중화의 배역인 명종 이환 시대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백성들도 많았기에 이런 드라마도 나올 수가 있지 않나 쉽네요 아마도 옥중화 배경인 명종 이환에서는정치적인 것을 많이 다루지는 않을 거 같지만,그래도 이러한 배경을 알아두면 좋을거 같아요 그래도 결국에는 명종 이환은 자신의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죽고 난뒤에 윤원형과 정난정을 유배보내고,,승려이면서 병조판서를 지냇던 오우도 처벌함으로써 평화가 오는듯 하였으나,자신의 어머니로 부터 속을 너무 많이 썩어서 있지는 몰라도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고 난뒤 바로 2년뒤에 명종도 죽게 되고,후사를 이을 수가 없어서 직계가 아닌 중종의 서손인 하성군이 왕위를 물려받으니,,이분이 바로 선조임금이였습니다.

‘수렴’은 발을 친다, ‘청정은 정사를 듣는다’는 의미로 발을 치고 왕과 함께 정치를 한다는 의미입니다.

?명종의 비는 인순 왕후(1532

1575) 심씨로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 강릉에 명종과 함께 묻혀있습니다.

 명종과 인순왕후 사이에는 아들 순회세자(1551

1563)가 있어 명종 12년(1557) 세자로 책봉되었는데 13살에 요절하자 중종의 손자 선조(제14대 왕, 1552

1608, 재위 1567

1608)가 즉위합니다.

인순왕후는 16세에 선조가 즉위하자 잠시 수렴청정을 합니다.

????명종이 즉위한 해인 1545년 8월에는 파평 윤씨간 집안싸움이 있었습니다.

중종의 제1계비인 장경 왕후 윤씨의 오빠 윤임과 제2계비인 문정 왕후의 동생 윤원형이 같은 파평 윤씨였습니다.

 인종이 30세에 일찍 죽어 명종이 왕위에 오르고 문정 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면서 윤원형은 막강한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문정왕후와 윤원형(소윤)은 인종을 따르던 세력들을 제거하기 위해 인종의 외삼촌인 윤임 일파(대윤)을 역적으로 몰아 처형하거나 귀양 보냅니다.

 이를 을사사화라고 합니다.

  정순붕, 허자, 이기, 임백령 등과 공모하여 형조 판서 윤임, 좌의정 유관, 이조 판서 유인숙 등 인종을 후원하던 세력에게는 사약을 내리고, ?계림군과 이휘, 나숙, 나식 등은 사형을 당하거나 유배되었습니다.

을사사화로 윤임 일파인 대윤은 몰락하고, 윤원형 일파인 소윤의 권력은 커져갔고 벼슬을 팔아 재산을 늘리고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는 부정을 저지릅니다.

???명종 8년(1553)에 문정 왕후가 수렴청정을 거두고 명종이 친정을 시작합니다.

그 뒤로도 문정 왕후와 윤원형은 정치에 간섭하였습니다.

 문정왕후는 명종 20년(1565)에 승하합니다.

 명종은 윤원형과 첩 정난정을 황해도로 유배 보내고 문정왕후의 신임을 얻었던 승려 보우를 죽이고 불교를 탄압했습니다.

윤원형과 정난정은 독약을 먹고 자결합니다(1565). 명종은 문정 왕후가 승하한 2년 후인 1567년 34세에 승하하고 선조가 즉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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