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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관음도



채색. 419.5*254.2cm  <수월관음도>는 아름답고 세련된 고려불화 가운데 가장 우아하고 기품 있는 불화로 단연 첫손가락에 꼽힙니다.

동양미술의 종주국을 자처한 중국사람들마저 <수월관음도>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수월관음도>의 `관음`은 관음보살의 줄임말입니다.

관음보살은 위로는 진리를 찾고 아래로 중생의 구제를 몸소 실천한 자비의 화신입니다.

불교경전에 따르면 관음보살은 남 인도에 있는 보타락가산에 살았다고 해요. 온갖 호화로운 보배로 꾸며진 보타락가산에는 수많은 불교의 성자들이 살고 있었으며 그들은 울창한 숲과 청명한 공기, 꽃과 과일이 지천으로 넘쳐나는 낙원에서 안락한 생활을 누렸습니다.

관음보살은 맑은 물이 솟아나는 연못 옆의 보석 바위에 앉아 중생을 위해 자비를 베풀었다고 해요. 지금 보는 장면은 관음보살이 선재동자를 첫 대면하는 장면입니다.

선재동자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의 길을 걸었던 한 소년의 이름입니다.

소년은 구름 형태의 바위절벽에 앉은 관음보살을 우러르며 두 손을 모은 채 간절하게 불법과 자비를 구하고 있어요. 투명한 베일을 걸치고 진귀한 보물로 화려하게 치장한 관음의 자태는 천상의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우아한 얼굴에 당당한 가슴, 둥글고 부드러운 어깨는 매력과 자비가 융화된 관음의 특징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어요. 한없이 성스러운 관음의 얼굴은 여자와 남자의 성별조차 구별하기 힘들게 합니다.

이처럼 남자와 여자를 하나로 결합시킨 것은 인간적인 결함이 없는 완벽함을 추구하며 우주의 무한한 창조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입니다.

관음이 저토록 온화한 표정을 짓는 것은 인간적인 감정을 초월한 해탈의 경지에 도달했기 때문이지요. 고려사람들은 인간의 저지른 죄를 품에 끌어안은 채 한없이 자비를 베푸는 관음보살을 가장 좋아했어요. 사람들은 견디기 힘든 고통을 당할 때마다  평화롭고 신비한 관음을 우러르며 마음의 위안을 얻었습니다.

 <수월관음도>는 눈부신 화려함이나 뛰어난 장식성, 우아한 세련미로 고려불화의 명성을 세계로 전파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어요. <수월관음도>는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는 최상의 미를 눈으로 직접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먼 옛날 관음의 고귀한 아름다움을 열정적으로 표현했던 화가는 이렇게 생각한 것은 아닐까요? 그림을 그리는 일은 곧 신앙심을 증명하는 것이이라고!   .................이명옥의 미술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것들 중에서       티뱃불교 만트라를 소재로 만든 뉴에이지 찬트입니다.

'바즈라 구루 만트라, '붓담 샤라남'                                                                                         그 중에서도 수월관음도는 약 40여 점으로 전체 고려불화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수월관음도는 『화엄경(華嚴經)』「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 선재동자가 보살의 가르침대로 행하기 위해 53선지식을 찾아가서 보살도(菩薩道)를 배우는 내용을 근거로 제작되었다.

그 중 선재동자가 28번째로 찾아간 선지식이 보타락가산의 관세음보살이다.

보타락가산(補陀洛迦山)은 인도 남쪽 바다 가운데 있는데 관세음보살은 이 곳에 머물면서 중생을 제도한다고 전해진다.

‘수월관음’이라는 뜻은 달이 높이 떠올라서 휘영청 밝은 가운데 관음보살이 물가의 벼랑 위에 앉아서 선재동자에게 법을 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일본 경신사(鏡神社)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고려 1310년, 견본채색, 430cm×254cm        이번 수월관음도는 육색표현에 금니를 바림하여고려불화의 신비로움을 구현하였습니다.

 금니는  빛을 받았을 때 고급스러운 금빛이 발광하여피부표현에  신비로운 효과를 보여줍니다.

피부의  하이라이트에 부분적으로 표현하여실제보다 더욱 입체적인 도상을 보실있는데사진으로는 입체감이 표현되지않아 아쉽네요. 수월관음도의 백미는 보살이 입고 있는 투명한 사라(베일)인데요.이번에 공진당(일본) 연백을 사용하여 표현해보았습니다.

(역시 일제가 좋긴해요 ㅎㅎㅎ) 치마표현 부분도 정병과 염주 부분도 표구를 마친 후 화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네요.이 그림은 법륜사 주지스님인 현암스님 소장 작품입니다.

   ?고려불화는 전 세계적으로 160여 점이 남아 있다.

 특히 달빛 아래 바위 위에 반가좌(半跏坐)로 앉은 관음보살이 진리를 찾는 공양자에게 불법을 일깨우는 모습을 그린 "수월관음도"는 전 세계 약 40여 점만이 남아있다.

?현존하는 고려불화 160여 점 중 10여 점만이 한국에, 나머지 대부분은 일본에 130여 점, 미국과 유럽에 20여 점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 히젠 나고야 성 박물관에 전시된 높이 4m가 넘는 大作 "수월관음도" 모조품  (세로 419cm 가로 254.2cm) 그동안 보유하고 있던 전 세계 소장기관 및 소장자들이 고려불화의 보유 사실을 정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었으나 최근 미술작품을 공개하면서 아름다운 고려불화가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

2014년 10월 일본 개인 소장자가 소유한 수월관음도가 도쿄 미쓰이 기념 미술관 '히가시야마 보물의 미'전에 출품되면서 세상에 공개되었고, 2015년 1월 6일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프리어 새클러 갤러리에서 보관 중이던 수월관음도는 온라인 작품 공개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 일본 개인 소장자 소유 고려불화 "수월관음도" (세로 160.2cm 가로 86cm) <사진출처: SBS>▼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프리어 새클러 갤러리에서 온라인 공개한 고려불화 "수월관음도" <사진출처: 프리어 새클러 갤러리>? 이처럼 고려불화가 우리 것인데도 대부분 외국에서 보유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깝다.

 고려 말 왜구 침입 및 임진왜란 등으로 많이 약탈되었고 일제강점기 및 6.25사변 등 역사적 혼란기에도 고려불화를 쉽게 가지고 나갈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 가라쓰 가가미신사의 고려불화 "수월관음도" 제작 및 반출 1310년, 고려 충선왕 2년에 궁중의 여러 화원들이 이 수월관음도를 공동 제작하기 위하여 거대한 한 폭(세로 419cm 가로 254.2cm)의 비단을 사용하였다.

 고려불화 중 가장 큰 대작(大作)인 동시에 왕실 발원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이 수월관음도는 숙비(叔妃) 김 씨의 발원에 의해 내반종사(內班從事)의 직책을 가진 궁중화가 김우문 등이 그렸다.

?1391년 이 불화는 료사토시라는 일본의 중이 백방으로 노력해 구입하여 가가미신사에 기증하였다고 한다.

그러면 81년 동안만 고려에서 보관하다가 일본으로 넘어왔다고 하는데 백방으로 노력해서 구입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때는 왜구들이 날뛰던 시기로 고려 개경까지 침략하기도 하였다.

아마 왜구들로부터 노략물을 구입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 ?★ 가라쓰 가가미신사의 고려불화 "수월관음도" 관람일본 큐슈 가라츠시에 있는 높이 280m의 가가미산은 무지개 송림과 가라쓰성이 한눈에 들어오는 환상적인 전망을 보여 주는 곳이다.

이 산에 가가미신사가 있는데 유명한 고려 불화 "수월관음도"를 보유하고 있다.

????▼ 대한 해협 오른쪽으로 가라츠 시내가 보이고 그 위 해안가를 따라 무지개 송림이 있다.

???보관상의 이유로 현재 사가 현립박물관에 위탁 보관 중으로 1년에 40일 정도만 공개한다고 한다.

히젠 나고야 성 박물관에는 모조품이 전시되어 있다.

최근 가라츠올레길에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가고 있는데 히젠 나고야 성 박물관은 가라츠올레 스타트 지점 근처에 있다.

나고야 성터 천수각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있는 박물관에 꼭 들러서 세계적인 우리 선조의 미술품 고려불화 "수월관음도"를 감상하기를 적극 추천한다.

[수월관음도] 세상에나..


박물관 입장 무료▼ 히젠 나고야 성 박물관. 박물관 앞 건너편 위로 올라가면 나고야 성터가 나온다.

여기서 왜군은 임진왜란을 준비하였고 출정을 하였다.

?★ 히젠 나고야 성 박물관 가는 방법 : 후쿠오카 하카타역 버스 터미널 또는 톈진 버스 센터에서 가라츠행 고속 버스를 타고  가라츠버스센타 도착. 가라츠버스센타에서 요부코를 거쳐 히젠 나고야 성 박물관을 가는 버스를 타고 박물관 입구 하차 ??  다만, 여러 아름다운 수월관음도들이 현재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 미국 등지에 흩어져 있어 실제로 그 모습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적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국내에서도 수월관음도를 찾아볼 수 있는데요, 국내 문화재로 지정된 수월관음도는 총 10점으로 보물 7점과 시도유형문화재 3점이 있습니다.

일본 소재 수월관음도 왼쪽부터 대덕사, 천초사, 경신사 소장 ? 한국사전연구사 한국불교미술대전   지난 7월 초에 호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수월관음도가 새로 보물로 지정되기도 했는데요, 오늘은 호림박물관과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 있는 두 작품을 통해 고려시대 수월관음도의 도상적 특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수월관음도는 대승불교에서 위로는 진리를 찾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는 자비의 화신인 관음보살을 주인공으로 하는 그림입니다.

현존하는 작품들은 대부분 14세기의 고려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거의 비슷한 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법화경과 화엄경에서 관음보살에 대해 언급하고 있어 이 경전을 바탕으로 도상화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화엄경이 관음도 제작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으며 구체적인 경전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려시대에는 특히나 선재동자가 보타락가산을 방문하여 설법을 듣고 있는 도상이 유행했고 선재동자, 암굴, 염주, 공양자, 청죽 등은 다른 나라 수월관음도에서 잘 나타나지 않는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월관음도에 나타나는 관음보살은 일반적으로 치마를 입고 천의를 걸친 상태로 투명한 백의가 전신을 감싼 상태로 바위위에 앉아 있습니다.

보살의 입장에서 약간 오른쪽을 향해 앉아있으며 다리를 다른 다리 위에 얹은 편안한 자세를 취해 선지식을 찾기 위해 방문한 선재동자를 맞이하려는 모습입니다.

머리에는 화려한 보관을 쓰고 몸 부분에는 가슴걸이, 팔걸이 등 영락장식으로 장엄하게 꾸몄으며, 옷은 화려한 문양들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보살의 오른편으로는 바위가 기괴하게 뻗어 올라 그 위에 버드나무 가지가 꽂힌 정병을 두었으며, 보살의 뒤편에는 두 그루의 대나무가 있습니다.

왜 대나무가 있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으며 왼쪽 아래에는 관음보살을 바라보고 허리와 무릎을 약간 굽힌 합장한 자세의 선재동자가 있습니다.

이는 화엄경의 한 장면을 그린 것이라 볼 수 있고 관음보살과 선재동자의 크기가 확연히 차이나는 이유는 엄격한 계급의 차이를 드러내고자 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호림박물관 소장 수월관음도 ?한국사전연구사 한국불교미술대전 이 작품의 중요한 모티프를 이루는 청죽·바위·정병 등 경물의 표현과 배치 등은 고려 후기 수월관음도상의 전형을 보여주는데요, 존상의 형태와 구도 등에서도 고려 불화답게 빈틈없는 짜임새와 균형감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또한 붉은색과 백색, 금색 등 고급스러운 색들이 상호 조화를 이루며 요란하지 않은 세련된 아름다움을 표현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비록 박락되고 손상된 부위가 후대에 수리되었지만, 고려 후기 수준 높은 불교회화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작품으로 판단되어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소장 수월관음도 ? 한국사전연구사 한국불교미술대전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소장 수월관음도는 비록 조성연대와 작가가 명확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변·퇴색과 수리 및 덧그린 흔적이 엿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고려시대 14세기 관세음보살도들과 비교해 보면 그 구도와 인물의 형태가 거의 같고, 고려불화의 특징적인 화사한 색채와 세련되고 우아한 선을 구사한 인물 묘사 등 세부묘사에 있어서도 서로 유사한 점이 엿보여 예술성 높은 동일시기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또한 화면 구성이 충실하며 표현기법 역시 고려불화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 그리고 국내에는 제대로 된 고려시대 수월관음도가 2∼3점에 불과하다는 자료의 희소성 등으로 그 가치를 받아 보물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수월관음도] 최고의 방법은?



 고려시대의 수월관음도는 당시에 유행한 대승불교가 추구한 보살도로 당시 신앙의 형태뿐만 아니라 고려시대의 삶의 모습을 추측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집니다.

현존하는 40여점의 작품들이 거의 도상적으로 유사한 형식을 지니지만 보살의 자세나, 바라보는 방향, 등장인물 등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도상의 대담한 변형이 나타나 고려의 문화적 우수성을 짐작할 수 있답니다.

앞서 소개해 드린 국내의 우수한 수월관음도를 통해 금빛으로 빛나는 보타락가산의 관음보살을 만나보는 건 어떨까요?<제8기 문화재청 대학생 단 허수진 (se1347@naver.com)> 근래 일본에 산재한 고려불화가 특별전을 통해 대대적으로 공개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종교화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바뀌어진 결과 오늘날까지 불화가 국보 9점, 보물 87점. 총 96점이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는 불화가 종교화의 차원을 넘어 예술품으로 인정을 받은 것으로써, 감상자가 감동을 받는 경지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 대표작을 꼽으라면 불교회화와 청자 등을 들 수 있다.

고려시대의 일반회화가 희귀하게 남아있는 상황에서 160여 점이나 되는 고려불화는 그 자체가 모두 국보급 예술품으로서 당시 중국불화보다 높은 수준으로 발전한 만큼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독보적인 미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고려불화의 백미는 수월관음도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예가 지난 달 경남 통도사 성보박물관의 특별전(4.30

6.7)에 출품된 수월관음도(도판9 일본 경신사鏡神社 소장)이다.

1310년(충선왕2)에 궁중의 여러 화원들이 이 수월관음도를 공동 제작하기 위해 거대한 한 폭(세로419cm 가로254.2cm)의 비단을 사용하였다.

고려불화 중 가장 큰 대작大作인 동시에 왕실발원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이 수월관음도는 숙비叔妃인 김씨의 발원에 의해 내반종사內班從事의 직책을 가진 궁중화가 김우문 등이 그렸으며, 서구방이 단독으로 조성한 1323년 작作 수월관음도(일본 경도京都 천옥박고관泉屋博古館 소장)에도 내반종사란 직급이 보인다.

따라서 이 두 수월관음도는 섬세한 필치의 명확한 형태묘사, 풍부한 금니의 사용, 아름다운 색채, 치밀한 문양 등에서  궁중화원의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충선왕의 총비寵妃였던 숙비는 언양군彦陽君 김문연金文衍의 여동생으로 과부였으나 1297년 충렬왕비인 원성왕후가 죽자 그해 8월 세자(충선왕)가 왕을 위로하기 위하여 왕에게 바쳤으며 1308년 충렬왕이 죽은 후 충선왕이 숙비로 삼았다.

이 수월관음도를 제작한 목적은 알 수 없으나 충렬왕 사후 1310년 특별주문에 의해 직조된 비단 크기라든가 여러 궁중화원이 동원된 점으로 미루어 충렬왕의 극락왕생을 빌며 충선왕과 숙비 자신의 복福을 기원 했던 그녀의 권세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14세기는 고려불화의 수준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로 여러 차례 원나라에도 불화를 보냈고 고려의 관음상 그림들이 매우 공교롭다고 칭찬까지 받을 정도였다.

이러한 조성배경에서 제작된 우학문화재단 소장 14세기 수월관음도를 살펴보고자 한다.

  14세기 수월관음도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란 글자의 뜻 그대로 달이 비친 바다 가운데 금강보석金剛寶石에 앉아있는 관음보살을 그린 그림이다.

수월관음은 살아서는 재난과 질병을 막아주고 죽어서는 극락정토로 인도해주는 관음보살의 하나로, 《화엄경》 입법계품에 의하면 관음보살은 남쪽 바닷가에 위치한 보타락가산에 거주하면서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공상적인 분위기로 묘사되는 보타락가산은 온갖 보배로 꾸며졌고 지극히 청정하며 맑은 물이 솟아나는 연못이 있다.

고려시대 유행한 수월관음도는 이 보타락가산을 배경으로 선재동자의 방문을 받은 관음보살이 설법하는 장면을 도상화한 것이다.

 선재동자는 구도자로서 53선지식을 두루 찾아 뵙고 진리를 터득했다는 인물로, 53선지식 가운데 28번째가 관음보살이고 그 장면을 도상화 한 것이 바로 고려시대 수월관음도이다.

  일반적인 수월관음도는 오른쪽을 향한 측면관의 관음보살이 푸른 물로 둘러싸인 암굴 속에 오른발을 왼쪽 무릎에 올린 반가좌의 자세로 비스듬히 걸터앉아 있으며, 문수보살의 지시에 따른 선재동자의 방문을 받는 수월관음도가 대부분이다.

이외에도  버드나무가지를 꽂은 정병과 한 쌍의 청죽靑竹 등의 표현은 호화스럽고 정교한 고려시대 수월관음도의 한 특징이다.

  이와같은 일반형식의 수월관음도 외, 다양하게 변형된 수월관음도가 다수 전한다.

앞서와 같은 일반형식에 첨가된 장면은 용왕과 그 권속, 또는 제난구제상諸難救濟像과 같은 《법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변상 외  둥근 달, 혹은 상단에 둥근 달과 하단에 용왕 및 그 권속이 등장한 예이다.

우학문화재단 소장 수월관음도 이 수월관음도는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고려실(7월 개관)에 특별전시 중이다.

이 그림은 우학문화재단에서 구입할 당시 액자상태로, 1994년에서 1996년까지 보수작업(박지선, “이학李鶴 소장 고려불화 - 수월관음도의 보존수복에 관하여”, 『단호문화연구丹毫文化硏究』 창간호, 용인대학교 전통문화연구소, 1996, pp. 49-75 참조)을 통해, 처음에는 족자였던 것이 서양식 액자틀에 넣으면서 사방이 조금씩 잘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두광, 신광, 보관, 오른손 외에도 대나무, 왼손 팔목, 정병, 입술, 목선, 오른발, 가슴선 등을 부분적으로 덧칠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리 및 복원을 거쳐 원래의 모습을 거의 되찾은 바, 배채背彩기법을 사용한 색채가 매우 양호하다.

이 그림은 관음보살이 오른발을 왼쪽무릎에 올린 반가좌의 자세로 바위에 앉아 선재동자를 굽어보고 있는 전형적인 수월관음도의 일반형식을 따르고 있다.

 화려한 문양의 옷과 장신구를 착용한 관음보살이 걸터앉은 바위는 가장자리에서 금빛을 발하고 있어 몽상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이 바위아래 물가, 관음보살의 왼발을 받치고있는 작은 연화좌 옆으로, 봉오리진 연꽃, 산호와 진귀한 보석들이 가득 차 있다.

금선의 원형頭光과 신광身光에 둘러싸인 관음보살의 등 뒤로 대나무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있다.

관음보살의 시선이 머무는 오른쪽 구석, 대각선의 위치에 상반신을 굽히고 두 손 모아 공손하게 관음보살을 올려다보는 선재 동자 위, 화면의 중간쯤에 청자인 듯한 녹색 정병이 희미하게 보인다.

  관음보살은 보름달 같은 얼굴의 이마 중앙에는 백호가 선명하고 눈초리가 올라간 긴 눈은 반쯤 뜨고 있으며, 작고 도톰한 붉은 입술, 초생달 같은 눈썹 등은 고려시대 보살상의 얼굴 모습과 유사하다.

불상이 장식된 높은 보관 밑으로 머리카락이 양쪽 귀를 감싸고 어깨 위로 흘러내렸다.

오른손은 수정염주를 들었고, 왼쪽 팔은 돌출한 바위 위에 기대고 있다.

두 손과 팔뚝에는 팔찌를 끼고 화려한 목걸이를 했다.

가슴만 가린 상체는 투명한 베일로 드러나 보이며, 치마는 거북등껍질문양(귀갑문) 바탕에 타원형 연꽃무늬가 반복된 붉은 치마를 입었다.

치맛단에는 연꽃과 덩굴문양이 연속되었는데 팔목에 걸쳐 양쪽으로 길게 늘어진 옷자락도 덩굴 당초문양이 화사하다.

  붉은색, 녹색, 청색을 중심으로 흰색, 황색의 귀한 광물질 안료는 절제된 우아한 색으로 요즈음의 울긋불긋한 합성안료인 단청 색과는 구별된다.

석채는 선명도 높은 원색임에도 불구하고 화사하고 차분한 색조는 배채법背彩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화면 뒤에서 칠을 하여 안료가 앞면으로 배어나오게 하는 기법으로 신체나 복식 등에 주로 사용하고 있다.

즉, 뒤에서 백색안료를 칠한 후, 앞면에서 다시 붉은색이나 황토계 안료를 엷게 칠하여 부드러운 살색을 연출하거나 불의佛衣의 경우 뒤에서 붉은색을 칠한 후 앞면에 색을 칠하지 않고 그 효과를 그대로 살려 은은한 파스텔 톤의 색감을 연출하기도 한다.

  밑그림은 먹선으로 신체의 윤곽을 잡은 후, 그 위로 가는 붉은 선을 사용하였으며 이 주변을 붉은색으로 엷게 선염처리하여 입체감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옷주름선 역시 보다 짙은 색의 굵은 선으로 처리하여 효과적이다.

  고려시대 수월관음도의 큰 특징은 투명한 표현 기법이라고 하겠다.

그 첫째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길게 늘어진 베일인데, 신체가 드러나는 투명한 흰색에 금으로 보상화이 새겨져있다.

둘째, 수월水月의 의미처럼 달빛을 받아 환하게 나타난 관음보살은 어두운 바탕색과 달리 두·신광은 점차 엷은 갈색으로 구분하고, 신체는 더욱 밝게 묘사하여 달이 존재함을 상징하고 있다.

셋째, 오른손에 든 수정구슬 염주 안의 붉은 실이 투명하게 비쳐 보인다.

 이 수월관음도는 투명한 베일을 걸친 관음보살의 고귀한 자태가 어둠 속에서 마치 달처럼 아름답게 빛나며 현신하는 것 같은 신비한 효과를 주고 있는 데에서 표현기법상의 우수한 경지를 엿볼 수 있는 국보급 문화재라고 하겠다.

 출처 : 문화야놀자 http://playculture.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0/16/2009101600462.html?Dep0=chosunmain&Dep1=newsplus&Dep2=culture&Dep3=culture01  고려 12

13세기?, 144 x 62.5cm, 일본 센쇼지 소장.            해동치납 혜허 필 이라는 관서가 있어 이르게 고려불화로 인식되었고  일본 소재 고려불화 연구의 단초가 되었던 작품 중에 하나이다.

 현존 대체적인 고려불화와 양식적인 면과 감각 등에서 다소 차이가 있어 시대가 앞서는 고려불화로 추측한다.

 현존 고려불화 기년작은 13세기 후반에서 14세기에 몰려있는데  이 작품이 그보다 앞선 것으로 본다면 13세기 중엽에서 12세기까지 올려볼 수 있다.

 입상으로 몇 배 큰 광배 안에 있어서  화면에 비해서 관음보살이 크진 않으나 지극히 정묘하고 아름답다.

                               그 중에서도 수월관음도는 약 40여 점으로 전체 고려불화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수월관음도는 『화엄경(華嚴經)』「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 선재동자가 보살의 가르침대로 행하기 위해 53선지식을 찾아가서 보살도(菩薩道)를 배우는 내용을 근거로 제작되었다.

그 중 선재동자가 28번째로 찾아간 선지식이 보타락가산의 관세음보살이다.

보타락가산(補陀洛迦山)은 인도 남쪽 바다 가운데 있는데 관세음보살은 이 곳에 머물면서 중생을 제도한다고 전해진다.

‘수월관음’이라는 뜻은 달이 높이 떠올라서 휘영청 밝은 가운데 관음보살이 물가의 벼랑 위에 앉아서 선재동자에게 법을 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일본 경신사(鏡神社)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고려 1310년, 견본채색, 430cm×25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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