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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최태민



박근혜 밀실정치, 밀실인사, 자금관리 실세는 정윤회”"   ● 현재 상공회의소 소장인 '장자크구로아(EU 코리아 이사장)'는 북한에 7년 거주, 김정일의 첩보라인. 박근혜는 EU코리아 이사이며 현재 박근혜와 밀접한 관계. ● 박근혜, 정윤회(최태민 딸의 남편), 장자크구로아, 수행비서 총 4명이 김정일 전용기 편으로 평양 도착.  ● 박근혜와 김정일이 4시간 30분간 독대. 만찬에서 박근혜는 마약이 섞인 '백두산삼독주'를 마심, 3박4일 동안 김정일을 만났고. 김정일과 동침(잠자리)함. (미국 CIA 정보라고 함)  ● 박근혜는 평양 방문 시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은 500억을 들고 감. (미국 CIA 정보 /조 웅 목사가 외환관리법위반으로 고발)  ● 박근혜는 김일성의 묘소에 참배 ( 고려연방제를 창설 하겠다고 선서 / 조 웅 목사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  ● 박근혜는 최태민과 15년을 동거를 했고, 그의 아이를 두 번 지움. [조 웅 목사는 검사에게 박근혜 생식기 조사(임신 여부)를 하자고 했지만 검사가 거절.]  ● 박근혜는 최태민 사망 후 정윤회(최태민 딸의 남편)와 불륜관계를 가지며 16년을 동거. [현재 정윤회는 최태민이 박근혜에게 준 재산관리를 하며 인수위원 안에서 모든 키를 쥐고있다.

]  ● 박근혜 뒤에는 정윤회가 있다.

돈. 인사 등등.. 박근혜는 허수아비다.

실질적인 실세는 정윤회라고 함. 정윤회와의 불륜관계는 최태민 본처의 첫째 아들 최재석이 폭로한 것이고 함.  ● 박정희 집안 전체가 마약을 하고있다.

현재도 박근혜는 정윤회와 마약을 할 것이다.

박지만 뿐만아니라 집안 전체가 마약을 한다.

(마약 제공자는 '장자크구로아')  ● 박근혜 뒤에는 북한첩보라인인 장자크구로아가 있음.  ● 정윤회는 현재 박근혜의 통치자금을 관리하고 모든 인사권을 가지고 밀실정치를 한다.

현재 인수위 및 공직 임명자들도 모두 정윤회의 작품이며, 모조리 허수아비 일 뿐이다.

  ● 증거는 책과 수백장의 고발장이다.

책(제목: 황태성 박정희 김종필 커넥션) 은 조 웅 목사가 직접 씀. 겨우10000부 발행만 허가를 받았고 현재는 품절.  ● " 박근혜의 집권을 필히 막아야 한다.

목숨걸고 하는 말이다.

아직까지도 신변의 위협을 받는다.

박근혜는 도덕성, 이념에도 문제가 있고 절대 대통령이 되서는 안되는 인물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기에 답답하고 원통해서 말한다.

박근혜가 안보 안보 하는것은 다 쑈이다.

북한첩보라인(장자크구로아)과 이미 깊숙히 연관되어있다.

또 이 사실을 아는 분은 이항(?) 목사님 및 고발장 쓴 거 본 사람들이다 " -조 웅 목사-  ● 조 웅 목사는 불륜 및. 국가보안법위반. 외환관리법위반 사건으로 대검찰정에 박근혜 고발을 수백번 하셨지만 흐지부지 되다가 묻혔다고 함. 01 12:59 목록 크게   이름 7개, 부인 6명, 승려 목사 ‘최태민 미스터리’1976년 박정희 대통령(왼쪽)이 대한구국선교단 야간진료센터를 방문, 최태민 총재(오른쪽)와 얘기를 나누는 장면. 가운데는 박근혜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  2012 대선주자 탐구|박근혜③ 박근혜와 최태민지난 40년 가량 박근혜(60)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는 최태민(1912

1994)과의 관계에 대한 의혹이 자주 따라붙었다.

   1974년 어머니 육영수가 총탄에 쓰러진 뒤 ‘퍼스트레이디’ 구실을 하던 박근혜는 ‘새마음봉사단’을 대외활동의 중심으로 삼았다.

최태민과 함께 운영했던 단체다.

사이비종교 ‘교주’였다는 설도 있어 최태민의 전력이 불분명하던 터에, 아버지 박정희도 20대의 딸이 그에게 현혹됐다고 생각해 불만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80년대 후반 전두환 정권이 끝나고 대외 활동을 재개한 박근혜는 최태민과 함께 새마음봉사단의 후신인 근화봉사단을 꾸린다.

동생 근령(58)과 대립했던 1990년 육영재단 분란의 배경에도, 최태민과 그의 딸 최순실(56)의 전횡 논란이 있었다.

   1998년 국회의원이 된 뒤에는, 최태민의 사위(최순실의 남편) 정윤회(57)가 비서실장이란 호칭을 달고 등장한다.

2004년 박근혜가 당 대표가 되면서 정윤회는 종적을 감췄지만, 2007년 경선 때도, 지금도 그가 박근혜의 비선 조직을 이끌며 핵심 측근으로 활약중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유신말기 새마음봉사단 함께 운영교계에선 “사이비” 구설수“부인 6명·이름 7개”박 “의혹 제기됐지만 실체 없었다”  ■ ‘6명의 부인, 7개의 이름’ 최태민은 흔히 목사로 불린다.

1975년 4월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합총회로부터 목사 안수를 받은 뒤부터 생긴 호칭이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와 전두환의 합동수사본부를 거치며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수사자료’를 보면, 그는 불교 승려가 된 적도 있었고 천주교 세례를 받기도 했다.

‘태민’이란 이름도 각종 가명을 포함해 7번째 이름이다.

   1912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최태민은 1942

45년 황해도경의 순사였다.

해방 뒤 남쪽에 둥지를 튼 그는 이름을 상훈으로 바꾸고 강원도, 대전, 인천에서 경찰로 일했다.

이후 최태민은 군으로 자리를 옮겨, 육군과 해병대에서 ‘비공식 문관’으로 일했다.

   최태민은 1951년 군을 떠나며 이름을 봉수로 바꾸고, 대한비누공업협회 이사장, 대한행정신문사 부사장 등을 지냈다.

전쟁이 끝난 뒤 1954년엔 김아무개씨와 결혼했다가, 김씨가 그를 여자 문제로 고소하자 부산 금화사로 도피했다.

곧장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됐고, 이름을 퇴운으로 바꿨다.

1년여 뒤 김씨와의 문제가 잠잠해지자 산에서 내려와 부산에서 전 부인 임아무개씨와 다시 결합했다.

‘수사 자료’는 임씨가 5번째, 김씨는 6번째 부인이라고 표기했으나, 1

4번째 부인은 등장하지 않는다.

(<월간조선>(2007년 7월호)은 별도의 자료를 인용해 최태민이 6명의 부인으로부터 모두 3남6녀를 두었다며 가계도를 제시한 바 있다.

)   임씨와 결합한 뒤 경남 양산에서 개운중학교를 설립해 교장에 취임한 최태민은 2년 만에 교장을 그만두고, 이후 몇가지 직책을 지냈다.

1965년엔 천일창고라는 회사의 회장으로 있다가 유가증권 위조혐의로 서울지검이 그를 입건하자 도피했다.

도피중이던 1969년엔 공해남이란 가명으로 등장해 서울 중림동 성당에서 영세를 받기도 했다.

   70년대 들어 최태민은 서울과 대전 일대에서 난치병을 치료한다는 등 사이비 종교 행각을 벌였다.

불교, 기독교, 천도교를 종합했다는 교리를 내세웠고, 방민이란 가명을 쓰면서 ‘원자경’, ‘칙사’ 또는 ‘태자마마’라는 호칭을 자처했다.

  ■ 박근혜와의 만남 최태민이 박근혜를 처음 만난 것이 이 무렵이다.

최태민은 1974년 육영수 사망 직후 박근혜에게 편지를 보냈다.

<김형욱 회고록>은 편지 내용을 이렇게 전한다.

   “어머니는 돌아가신 게 아니라 너의 시대를 열어 주기 위해 길을 비켜 주었다는 것, 네가 왜 모르느냐. 너를 한국, 나아가 아시아의 지도자로 키우기 위해 자리만 옮겼을 뿐이다.

어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나를 통하면 항상 들을 수 있다.

육 여사가 꿈에 나타나 ‘내 딸이 우매해 아무 것도 모르고 슬퍼만 한다’면서 ‘이런 뜻을 전해달라’고 했다.

”   이른바 ‘현몽(죽은 이가 꿈에 나타남)’이다.

최태민은 이를 부인했다.

그는 <가정조선>(1990년 10월호) 인터뷰에서 “‘현몽’ 등의 말이 대학 교육을 받은 박(근혜) 이사장에게 먹혀들 것 같아요?”라며 “‘현몽’이나 정식으로 접견 신청 내용 따위는 쓰지 않았다.

‘위로 말씀을 전하며 기회 있으면 한번 만나주시길 바랍니다’는 말로 끝맺었다”고 말했다.

박근혜도 현몽설을 부인했다.

어쨌건 박근혜는 1975년 3월6일 최태민을 청와대로 불러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최태민은 외부 활동을 적극 권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근혜를 만난 뒤, 최태민은 목사 안수를 받는다.

<월간중앙>(1993년 11월호)은 “(목사 직을) ‘돈 주고 샀다’는 것이 교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나 이 사실이 확인된 적은 없다.

분명한 한가지는, 목사 안수는 받았지만 신학대학이나 교단이 인정하는 신학교에서 신학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는 점”이라고 전했다.

‘태민’이라는 ‘마지막 이름’을 얻은 것도 이 즈음이다.

   최태민 목사는 ‘대한구국선교단’을 발족하고 스스로 총재에 취임한다.

5월 임진강에서 연 ‘구국기도회’에는 2000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박근혜도 참석했다.

최태민의 즉석 제안으로 박근혜는 명예총재로 추대됐다.

이후 박근혜는 구국선교단 행사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고, 1976년 구국선교단은 ‘구국봉사단’으로, 2년 뒤인 1978년엔 다시 ‘새마음봉사단’으로 이름을 바꾼다.

바로 박근혜의 퍼스트레이디 경력의 핵심인 새마음운동의 본산이다.

   최태민에 대한 ‘수사자료’엔 “형식상 모든 업무는 박근혜가 관장하였으나 실질적으로 비공식 고문격인 최태민이 전권을 위임받아 행정부, 정계, 경제계, 언론계 등 각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 봉사단 관계자는 “한마디로 미니 청와대였다”고도 했다.

최태민 주위에선 각종 이권 개입과 횡령, 사기 및 융자 알선 등 권력형 비리, 그리고 온갖 여성과의 스캔들 의혹이 들끓었다.

   소문은 박정희 전 대통령 귀에도 들어갔다.

민정비서실과 중앙정보부 보고를 잇따라 받은 박정희는 1977년 9월 직접 최태민을 심문했다.

이른바 ‘친국’(임금이 직접 죄인을 심문함)이다.

대통령 서재에서 진행한 친국엔 중정의 김재규 부장과 백광현 국장이 동석했다.

박근혜도 참석해 “그런 일 없다”며 최태민을 옹호했다는 설도 있다.

박정희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검찰에 넘긴 뒤 검찰 판단에 따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최태민은 새마음봉사단의 명예총재(총재는 박근혜)를 맡는 등 10·26 때까지 박근혜의 옆을 지켰다.

  ‘박정희 친국’ 뒤에도 살아남아전두환 시절도 육영재단 등 활동박 “어머니 돌아가신뒤 힘들었을 때바로설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분”  ■ 10·26(1979년)뒤 합수부 조사받고도 박근혜 곁에 10·26 뒤 김재규는 항소이유보충서에서 최태민을 언급한다.

“본인이 결행한 10·26 혁명의 동기 가운데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 한 가지는, 총재 최태민, 명예총재 박근혜양으로 되어 있는 구국여성봉사단 문제이며, 본인은 최 목사의 부정행위를 상세히 조사해 박대통령에게 보고했지만 박대통령은 근혜양을 그 단체에서 손을 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양을 총재로 최태민 목사를 명예총재로 올려놓았다.

” 1976년 박근혜(오른쪽)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가 최태민 목사와 함께 구국단체결연 단합대회에 참석한 장면. 최태민은 합수부가 진행하는 수사를 받는다.

전두환의 지시로 수사를 맡았던 당시 보안사 대공처장 이학봉은 <신동아>(2007년 6월호) 인터뷰에서 “(최태민을) 강원도로 보내 활동하지 못하도록 했다.

조용하게 자숙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강원도에 그리 오래 두지는 않았다.

구체적 비리 혐의는 기억나는 것이 없고, 그가 기업체로부터 돈을 뜯어낸 것으로 확인된 게 얼마나 되는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박근혜의 연루 의혹은 없었다.

”고 말했다.

새마음봉사단은 1980년 11월 강제해산 당한다.

   박근혜는 육영재단과 영남대 등을 통해 사회활동을 이어간다.

최태민도 다시 등장한다.

박근혜는 1983년 1월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3년 뒤 1986년부터 육영재단의 어린이회관에선 최태민의 전횡이 입길에 올랐다.

<여성중앙> 1987년 10월호를 보면, 최태민에게 우선 보고를 해야 이사장(박근혜) 결재를 받을 수 있었으며, 최태민의 5번째 딸 최순실도 회관 운영에 개입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무렵 재단 잡지사 들의 파업과 직원들의 농성도, 모두 ‘외부 세력’이라고 표현된 최태민·최순실 부녀의 간섭이 원인이 됐다.

분란은 1990년 11월15일 박근혜가 동생 근령에게 이사장직을 넘길 때까지 계속됐다.

물러나는 박근혜는 “내가 누구에게 조종받는다는 것은 내 인격에 대한 모독”이라며 최태민의 전횡 의혹을 일축했다.

   최태민은 이후 서울 역삼동 자택에 칩거한 것으로 전해지며, 1994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1994년 노환으로 세상 떴으나5번째 딸의 남편 정윤회씨박 ‘미래연합’ 창당때 비서실장최태민, 사후에도 여전히 ‘그림자’  ■ 대이은 ‘충성’ 최태민 사후에도 그의 그림자는 박근혜 곁에 남았다.

최순실의 남편 정윤회가 박근혜의 정계 입문 때부터 등장했다.

그는 ‘비서실장’으로 불렸다.

2002년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을 때도 자리를 지켰다.

박근혜가 한나라당 대표가 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곁을 떠난 것으로 알려진 2004년 6월

2006년 5월에는 국회 입법보조원으로 등록했다.

박근혜의 정치 입문 초기에 정윤회와 여러 차례 직접 만났던 한 전직 는 “최순실은 박근혜가 장충동에 살던 시절부터 말동무로 지낸온 것으로 들었다”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박근혜 의원실의 보좌진을 구성한 것도 정윤회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박근혜는 2007년 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정윤회의 등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1998년 보궐선거에서) 대구 달성구에 국회의원으로 처음 나왔을 때다.

개인적으로 캠프를 차려 선거를 치르려니 전혀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상대 후보가 안기부 기조실장으로 실세의 기세가 등등했고 위협적인 상대였다.

…그런 상황에서 정윤회씨가 돕겠다 해서 순수하게 도운 것이다.

그게 인연이 돼 국회의원 됐을 때 입법보조원으로…, 이후 당 대표 때 그만뒀다.

”   2007년 7월 이명박 캠프에선 ‘박근혜의 국회 보좌진이 최태민과 친인척 관계다’, ‘박근혜 캠프의 홍윤식 전문가네트워크 위원장과 정윤회가 밀접한 관계다’ 등의 의혹을 제기했다.

전자에 대해선 해당 보좌진이 즉각 부인했고, 후자에 대해선 홍윤식이 최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지금까지 정윤회를 만나본 적도 없고 얼굴도 모른다”고 말했다.

   박근혜는 최태민에 대해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힘들었을 때 흔들리지 않고 바로설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분”이라고 말한다.

각종 의혹에 대해선 “의혹은 많이 제기됐지만 실체가 없었다.

한가지라도 사실이었다면 내가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겠나”라며 일축한다.

   그러나 박근혜가 다시 대통령에 도전하는 오늘도 정윤회의 이름은 여의도를 떠돈다.

친박 내부에선 친박끼리 “내가 모르는 보고서가 올라간다”며, 정윤회 라인을 의심한다.

반대파는 박근혜나 친박의 결정이 이상하다 싶어서 또 정윤회 라인을 의심한다.

<한겨레>는 각종 의혹에 대한 해명을 듣고자 6월부터 다양한 경로로 정윤회와의 접촉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2007년 경선 시기부터 많은 들이 그를 만나고자 했지만 성공한 바 없다.

김외현 oscar@hani.co.kr   ■ 최태민 수사 자료? 1980년 전두환 지시로 수사…2007년 한나라 경선서 흘러나와최태민 1990년 유일한 인터뷰 “이름 7개씩이나? 터무니 없다”  최태민최태민(사진)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육영재단 분규 때다.

당시 기사를 보면, 최태민의 나이가 69살, 71살, 78살로 들쭉날쭉이다.

그때까지도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는 방증이다.

<월간중앙>(1993년 11월호)은 ‘박근혜-최태민, 20년 커넥션’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재규가 항소이유보충서에서 10·26 사태의 한 동기로 최태민·박근혜씨의 관계를 거론하고, 그의 비행을 알고 있는 몇몇 사람이 ‘정리’를 권유하자 전두환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은 이학봉 수사국장에게 특별조사를 지시했다.

지금까지 그의 신상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대부분 당시 수사 결과에 근거한 것”이라며 최태민의 전력과 박근혜와의 관계를 다뤘다.

이 ‘수사자료’는 공개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가, 2007년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물위로 떠오른다.

<신동아>는 2007년 6월 “중앙정보부가 작성해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최태민 관련 수사보고서인 ‘최태민 관련 자료’를 최근 입수했다”며 그 내용을 상세히 전했다.

같은달 27일에는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경선 후보였던 이해찬의 누리집 게시판에 ‘안기부’라는 이용자가 신동아 자료와 같은 제목의 피디에프(PDF) 파일을 올려놓았다.

 최태민의 유일한 인터뷰인 <가정조선> 1990년 10월호에서, 그는 수사자료에 대해 “1977년에 작성된 수사기록이다.

수사 결과 내가 기소된 뒤 기소중지되거나 불기소 등으로 처리됐던 게 아니라 아예 그냥 없었던 일로 처리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6번의 결혼, 7개의 이름’에 대해서도 그는, “이름이 7개씩이나 된다는 것은 터무니 없다”며, 해방 뒤 38선 이남으로 오면서 호적 정리가 되지 않아 이름과 결혼 기록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했다.

최태민 쪽은 1977년 9월 본인이 위출혈로 병원에 입원중일 때 사실상 병실에 감금된 상태에서 수사가 진행돼, 기록도 강압에 의해 작성됐다고 주장했다.

김외현   최근 트위터에서는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박근혜와 최태민 관련 미국 정부 측의 자료 공주의 남자 최태민. 박정희교의 광신도 조갑제가 월간 조선에 기고한 글을 보면...당시 박정희는 선우연 공보비서관에게▲최태민을 거세하고▲구국봉사단 관련단체를 모두 해체하고▲최씨가 향후 박근혜와 청와대 주변에 얼씬도 못하게 하라는 세가지 지시를 내리자박 대표는 낙담한 표정으로 눈물을 지었다고 한다  최태민 딸 순실씨, 강남에 시가 160억

200억대 부동산  최태민의 딸 최순실의 서울 강남구 신사동 건물 <한겨레> 자료사진2012 대선주자 탐구|박근혜③ 최태민 일가의 재산최태민은 1994년 5월1일 서울 강남의 영동세브란스병원에서 심근경색으로 숨을 거둔다.

이 소식은 같은해 7월이 돼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에 실린 두 문장짜리 부음 기사엔 “최씨는 최근까지 근혜씨의 생활비를 대주며 재산관리인 행세를 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는 대목이 있다.

최태민이 박근혜의 재산관리인이라면, 그가 생전에 굴렸던 자산은 박근혜의 재산인 셈이다.

그 사실 여부는 차차하더라도, 박근혜를 처음 만날 때까지만 해도 이렇다 할 재산이 없었던 최태민의 딸들이 지금은 자산가가 된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최태민의 딸들은 강남 일대에 수백억원대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

최태민의 5번째 딸로 육영재단 분란에 등장하는 최순실은 32살 때인 1988년 7월 2명과 공동명의로 신사동에 661㎡(200평) 규모의 땅을 사들였다.

1988년 12월과 1996년 7월에는 공동지분을 차례로 사들여 단독소유주가 됐다.

2003년 7월엔 이 땅에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의 건물(ㅁ빌딩)을 지어 지금까지 보유하고 있다.

주변 부동산중개업자들은 이 건물 시가가 160억

200억원대라고 말한다.

   남편 정윤회씨 운영했던 얀슨 입주직원들 “빌딩 관리가 주업무”엘리베이터 안서는 등 출입통제  ㅁ빌딩 5층엔 최순실의 남편이자 한때 박근혜의 비서실장이었던 정윤회가 대표이사인 ㈜얀슨이 입주해있다.

얀슨은 1994년 커피 및 커피기계의 수입·판매, 승마장업, 체육관련용품 수입·판매, 휴게실업 등의 업종을 신고했지만 2001년에 삭제했고, 곧이어 교육디지털콘텐츠 제작·유통·판매·컨설팅, 도서 출판 및 판매 등을 신고했다가 2003년 삭제했다.

같은 해 의류 및 가구의 수입·판매도 신고했으나 삭제했다.

2003년 말엔 국외 이주자 모집·알선, 이주신고 대행, 이주 상담 및 안내 등의 업종을 신고해 오늘에 이른다.

  1993년부터 얀슨의 감사로 등기돼, 현재 얀슨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문아무개(50)씨는 “이것저것 시도해봤지만 다 잘 안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정윤회는 이밖에 1994년

96년 기간엔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얀슨’이라는 제과점을, 1995년

99년 기간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풍운’이라는 일식당을 운영하기도 했다.

  얀슨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얀슨의 주업무는 ㅁ빌딩의 관리”라고 말했다.

이 건물에 입주한 업체 관계자들도 “입주 계약은 얀슨과 맺었다.

건물 관련 사항은 얀슨과 논의한다”고 했다.

한 입주자에게 정윤회의 사진을 보여주자, “얀슨 사장님이 맞다.

가끔 오신다”고 했다.

부동산중개업자에게 물어보니 4층의 경우 보증금 3000만원, 월세 250만원에 입주할 이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접근성이 좋은 1·2층이 임대료가 더 높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얀슨 사무실엔 책상이 4개 있었지만 만날 수 있는 직원은 3명이었다.

서무 담당자의 책상 위에는 건물주 최순실 앞으로 온 각종 요금납부통지서가 눈에 띄었다.

직원들은 언론 접촉을 극도로 꺼렸고, 정윤회나 최순실에 대한 질문엔 “여기 안 나오신다.

직접 찾아가서 물어보라”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사무실도 평소엔 얀슨이 있는 5층에 엘리베이터가 서지 않고 계단 쪽 출입문도 잠가놓아 들어갈 수 없었다.

직원들이 드나들기 위해 열어둘 때만 출입이 가능했다.

정윤회·최순실 부부가 살았던 6층은 시종 접근이 불가능했다.

“이사 갔다”는 말도 있지만, 그 사실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최순실은 이보다 앞서 29살이던 1985년 9월 ㅁ빌딩 맞은편의 대지 357.8㎡(108평)를 임아무개씨와 공동매입해 지상 4층 건물을 지었고, 1987년 5월 공동지분을사들여 단독소유주가 됐다.

박근혜가 이사장으로 있던 육영재단 어린이회관에서 최태민-최순실 부녀의 재단 개입 논란으로 직원들의 반발이 한창이던 시기에 땅도 사고 건물도 지은 셈이다.

   이 건물 3층엔 최순실이 운영하던 ㅊ유치원이 있었다.

최순실이 유치원과 별도로 운영했다는 종합학원, 연구소 등도 이 건물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은 이 건물을 2008년 2월 ㄷ저축은행에 팔았다.

당시 이 건물은 50억원을 상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순실은 이밖에 1995년 정윤회와 공동으로 서울 역삼동의 대지 354.1㎡(107평)을 사들여 지하 1층 지상 3층의 다가구용 단독주택(19세대)을 지었다.

전형적인 ‘원룸촌’에 위치한 이 건물은 4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이들 부부가 배아무개씨에게 이 건물을 매각한 시점(2002년 1월)은, 정윤회가 자신이 대표로 있던 ㈜얀슨의 대표이사직을 최순실에게 넘긴 때와 일치한다.

다음달 박근혜는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한국미래연합이라는 정당을 창당해 일시적으로 독자노선을 걷는데, 정윤회는 이때 비서실장을 맡았다.

   <월간조선>(2007년 7월호)은 최순실이 27살 때인 1983년 서울 역삼동의 대지 149.1㎡(45평)을 산 적도 있다고 전했다.

잡지는 최태민의 여섯째 딸도 29살 때 남편 서아무개씨 등 3명과 함께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581㎡(176평)을 사들여 지분 4분의 1을 소유했다고 보도했다.

남편 서씨의 지분은 4분의 2였다.

이들 부부가 1991년 9월 이곳에 지은 지하 4층 지상 9층 규모의 건물은 당시 최소 150억원대였다고 했다.

이밖에 최태민의 넷째 딸도 남편과 공동명의로 서울 강남구 도곡동 빌라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들의 어머니 임아무개씨가 전 남편과 사이에 낳은 딸도 1988년 8월 남편과 공동명의로 서울 서초동에 아파트를 샀다가 2004년 12월 매각했다고 했다.

이들 형제와는 달리, 임씨가 아닌 다른 부인과 사이에서 낳은 자녀들은 “그다지 넉넉한 형편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박근혜 처음 만날 당시의 최태민전세 전전하는 등 형편 어려워수사자료엔 비리혐의만 44건 기록 최태민의 사위 정윤회씨. 파월 보상금 6500명전사자 유족에게 주지 않고 정윤회가 모두 스위스 계좌로 빼돌림.박정희는 월남전 파병장병 6,500명의 피맺힌 목숨값 60억불을 미국으로부터 받아챙겼고,박정희 사후 박근혜 3남매가 스위스 은행에 확인하러 다녀옴.방원철장군, 차국찬 목사, 조웅 목사 증언       최태민이 생전에 살았던 거주지와 그 자녀들의 거주지가 박근혜의 자택과 가까운 곳에 있는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박근혜의 삼성동 집에서 500m 떨어진 곳에 최태민이 살았고, 정윤회·최순실 부부가 소유했던 역삼동 건물도 멀지 않은 곳이었다.

박근혜는 <월간조선>의 서면 인터뷰에서 “집이 거기였다는 것도 처음 듣는 얘기지만, 성심껏 답변을 드리면서도 ‘왜 이렇게까지 나오는지’를 생각하니 여간 불유쾌한 게 아니다”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다른 형제들에 대해서는 알려진 내용이 거의 없고, 과거 최순실 쪽은 각종 부동산 매입 자금에 대해 “유치원 운영이 잘 돼서 강남에 부동산을 보유하게 됐다.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유치원의 성공적인 경영이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운영 개입 논란과 무관한지도 규명될 필요가 있다.

당시 최순실은 어린이회관이 주최하는 대회에서 자신이 운영하는 유치원과 학원의 성적이 좋지 않으면 전화를 걸어 경위를 따질 만큼 신경을 썼다는 보도도 있다.

이 과정에서 부당 해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박근혜는 2007년 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최태민씨나 최순실씨가 결코 육영재단 일에 관여한 적이 없다”며 정면 부인했다.

  만약 최순실의 부동산 보유 규모가 유치원 경영 성과를 뛰어넘는 규모라면, 20

30대였던 최순실의 나이를 감안할 때 아버지 최태민으로부터 상당 규모의 자산을 물려받았을 거란 추측이 가능하다.

최태민은 박근혜를 만나는 시점까지 결코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다.

최태민에 대한 ‘수사자료’를 보면, 그는 1973년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의 한 건물 3층(16평)에 전세로 입주해 “불교·기독교·천도교를 복합해 창업한 영세계의 교리인 영혼합일법을 주장하는” ‘교주’ 행각을 벌였고, 이듬해에도 동대문구 제기동의 한 가정집에 전세로 들어가 같은 일을 했다.

1974년 8월엔 서대문구 북아현동의 한 건물 2층(36평)에 입주했지만, 박근혜와의 첫 만남(1975년 3월) 전까지 더이상의 기록은 없다.

 수사자료는 최태민이 박근혜를 앞세워 구국여성봉사단, 새마음봉사단 등을 통해 부당하게 치부에 나섰다고 밝히고 있다.

수사자료가 적시하는 최태민의 비리는, 횡령이 14건(2억2135만6000원), 사기가 1건(200만원), 변호사법 위반이 11건(9420만원, 토지 14만1330평), 권력형 비리 13건, 이권개입 2건, 융자간여 3건 등 모두 44건이다.

적힌 혐의는 아주 구체적이다.

봉사단 공금을 빼돌려 차명 계좌로 세탁한 뒤 승용차를 사는가 하면, 중앙정보부 복직, 공화당 국회의원 공천, 대령의 장성 진급 등을 빌미로 금품을 받기도 했고, 서울시 발주 공사를 수주하게 해준다며 돈을 뜯어내기도 했다는 것이다.

 박근혜와 최태민의 유족은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각 당사자를 심문한 뒤 검찰에 수사를 하라고 할 정도로 관심을 가졌던 사안인데, 혐의가 사실로 밝혀졌다면 진작에 처벌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후에 법적 처분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최태민은 결백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외현 oscar@hani.co.kr  최태민의 재산 축적 과정에 대한 의혹에서 항상 등장하는 인물은 박근혜 전 위원장이다.

'한겨레'가 언급한 최태민 수사자료는 최태민이 박근혜를 앞세워 구국여성봉사단, 새마음봉사단 등을 통해 부당하게 치부에 나섰다는 내용을 담았다.

수사자료에는 최태민이 횡령, 사기, 변호사법 위반, 권려형 비리, 이권개입, 융자간여 등 각종 비리혐의에 대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다.

   최태민 목사 일가 숨겨진 3천억대 부동산 발견<단독>‘박근혜 차명재산’ 의혹 새로운 국면…이명박 후보도 수사 요청 2012.12.16  18:57:40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검증의 ‘아킬레스건’으로 불리는 최태민 목사 일가의 수천억대 숨겨진 재산이 새롭게 발견돼, 2007년에 이어 ‘박근혜 차명재산’ 의혹이 다시 불거질 전망이다.

‘go발뉴스’가 최태민 목사의 5녀 순실씨 명의의 등기부등본과 토지대장을 확인한 결과, 최씨는 지난 2008년 경기도 하남시 신장동 254-1 일대 300평 규모의 대형 음식점 부지를 매입, 현재까지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지 부동산 관계자는 “미사리 카페촌 도로변 땅인 만큼 40

50억원대는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최태민 목사의 딸 순실씨의 등기부등본과 토지대장을 확인한 결과,최씨는 경기도 하남시 신장동 254-1 일대 300평 규모의 대형 음식점 부지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300평 규모의 대형 음식점 부지 전경. ⓒ go발뉴스    최순실씨는 지난 95년에는 강남구 역삼동 689-25 일대 2개 필지도 사들여 다세대 주택 19세대를 지어 2002년 모두 매각한 것으로 ‘go발뉴스’ 취재결과 새롭게 밝혀졌다.

 ▲ 최순실씨는 지난 95년에는 강남구 역삼동 689-25 일대2개 필지도 사들여 다세대 주택 19세대를 지어 2002년 모두 매각했다.

ⓒ go발뉴스 지금까지 최씨 명의의 부동산은 강원도 평창군 일대 토지 23만431㎡(6만9705평, 10필지)와 200억대를 호가하는 신사동 640-1 소재 7층 빌딩 등 2개 만이 알려져 있었다.

취재팀이 최순실씨의 주소지인 신사동 640-1 소재 빌딩을 방문한 결과, 최순실씨 가족은 최근까지 6-7층을 가정집으로 이용해왔으며,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다.

     ▲ 최순실씨의 주소지인 신사동 640-1 소재 빌딩. 최순실씨 가족은최근까지 6-7층을 가정집으로 이용해 왔으며,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다.

ⓒ go발뉴스 ‘go발뉴스’ 현지 확인결과, 최순실씨는 인근 신사동 639-11 번지 소재 빌딩도 지난 85년부터 소유하고 있었으나, 지난 2008년 2월 동부상호저축은행 측에 매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들은 백억원대에서 거래가 이뤄졌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최순실씨는 인근 신사동 639-11 번지 소재 빌딩도 지난 85년부터 소유하고 있었으나,지난 2008년 2월 동부상호저축은행 측에 매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 다음 로드뷰  최순실씨는 박근혜 후보와 ‘구국봉사단’ 활동 등을 하며 오랜 협력관계를 유지해온 최태민 목사의 5녀로, 특히 남편인 정윤회씨의 경우 박근혜 후보의 보좌관과 비서실장을 지냈으며, 이른바 ‘강남팀’으로 알려진 박근혜 비선팀의 총책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최순실씨 외에도 그동안 언론의 주목을 받지 않았던 나머지 자매들 역시 부동산 큰 손으로 ‘go발뉴스’ 취재 결과 새롭게 확인됐다.

최태민씨의 6녀 최순천씨는 살고 있는 한남동 고급 아파트 외에, 강남 노른자위 땅에 1천억원대 빌딩을 소유하고 있었다.

최순천씨 가족이 소유하고 있는 빌딩은 청담4거리 119-3 일대 지상 9층 지하 4층 건물로 1층에 씨티은행이 입주해있다.

평당 2억원에 달하는 땅값과 빌딩 가격을 포함해 1천3백억원대 가치를 지닌 것으로 추산된다.

 ▲ 최순천씨 가족이 소유하고 있는 빌딩은 청담4거리 119-3 일대 지상 9층 지하 4층 건물로 1층에 씨티은행이 입주해 있다.

ⓒ go발뉴스   최순천씨 가족은 이밖에도 서초구 반포동 50-7 번지 일대 4층짜리 상가건물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최태민 목사의 6녀 최순천씨 가족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서초구 반포동 50-7 번지 일대 4층짜리 상가건물. ⓒ go발뉴스  이 상가 건물 역시 위치가 좋아 백억원대를 호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태민씨의 4녀 최순득씨 역시 도곡동 고급 빌라 외에도 삼성동 45-12 소재 7층 빌딩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층에 국민은행이 들어서 있는 이 건물은 땅값만 평당 1억원이 훌쩍 넘는 곳으로 역시 1천억원대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 최태민 목사의 4녀 최순득씨는 1층에 국민은행이 들어서 있는삼성동 45-12 소재 7층 빌딩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 go발뉴스   최태민 일가의 천문학적 재산증식과 관련해,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검증위원회는 “최태민이 1975년 박근혜를 처음 만날 당시 서울 불광동 쓰러져 가는 단칸방에 전화도 없이 살았다”고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명박 후보측은 당시 검증위원회의 조사결과를 근거로 ‘박근혜 후보의 차명재산’ 의혹을 제기하며, 검찰 수사를 요구하는 등 고강도 공세를 펼친 바 있다.

이에 대해, 최순실씨는 “당시 부모님은 서소문 근처 2층 양옥집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부동산은 내가 유치원을 운영해 모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번 ‘go발뉴스’ 취재결과, 최순실씨의 숨겨진 재산이 추가로 밝혀졌고, 2007년 당시 조명되지 않은 나머지 자매들 앞으로도 각각 천억원대 부동산이 있는 것으로 드러난 만큼, ‘박근혜 차명재산’ 의혹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ps.박근혜와 김종필은 남이 아니다.

인척이다.

헌데, 김영삼의 아들 김현철이가 박근혜 사생아 문제를 거론했지만, 김종필도 대놓고 포문을 열었다.

김종필은 선데이 저널 최근호에서 '최태민이 자식까지 있는 애가 뭔 정치를 한다는거냐?" 고 한 것이다.

  요즘은 더 구체적인 얘기가 나온다.

박 전 위원장이 낳은 자식이 올해 30살 (1983?)이며 일본에 살며..  박근혜는 그후 98년 4월에 치러진 대구 달서군 보궐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한다.

그런데 월간조선 과 가진 인터뷰에서 밝힌 정계입문 동기가 "아버지가 일으켜세운 나라가 IMF사태로 무너지는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가 없어서 결심하게 됐다"고 비장하게 말한  박근헤 그러자 가 "그런데 왜 IMF를불러들인 한나라당에서 일하려 하느냐" 고 묻자 "IMF로 무너진 나라를 위해 IMF를 불러들여 나라를 무너지게 만든정당에서 일하겠다는.." 좀 이상한 논리를 .. 'IMF는 대통령과 보좌관 잘못이다.

'라고 하면서..  김종필이 말했던 박근혜와 최태민 사이의 숨겨논 자식에 대한 기사가 삭제된 상태지만 PDF파일로 저장되어있네요. 선데이저널미국판 840호입니다.

      국감장에서 안철수하고 자신이 함께 나온 기사를 읽고 있다.

...   [잊혀진 특보] 박근혜가 남자에게 빠져 정신을 못차리니 구해달라!동생 박근령이 노태우에게 '충격적인 탄원서'를 보내...서울의소리 ㅣ 기사 2012/05/28 [09:43]1990년 11월23일 동아일보 17면에는 놀라운 기사가 하나 실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차녀 박근령이 당시 집권중이던 노태우 대통령 내외에게 탄원서를 보낸 것인데, 그 내용인즉 '언니 박근혜가 남자에게 최면이라도 걸린듯 빠져서 정신을 못차리고 있으니 구해달라'는 내용이었다.

 ▲ 1990년 11월 30일 동아일보 실제 기사 ⓒ 동아일보해당 기사에 따르면 박근령-지만 남매는 1990년 8월 '노태우 대통령 각하 내외분께 보내는 호소문을 청와대 민정수석실로 보냈고,그 내용인즉 '사기꾼 崔太敏(최태민)을 엄벌해崔(최)씨에게 포위당해있는 언니 朴槿惠(박근혜)를 전직 국가원수 유족의 보호차원에서 구출해달라. 누나와 최씨와의 관계를 끊게 해달라' 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그야말로 박근혜가 남자에게 빠져서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데 우리 남매 힘으로는 안되니 대통령이라도 나서서 구제해달라는 창피한 내용이었다.

박근령 친필 '남자에 빠진 언니 좀 구제..' 탄원서로 알려진 (노태우)대통령 각하 내외분께 드리는 호소문 이라는 A4용지 12매 분량의 문서는 다음과 같이 시중에 알려져 있다.

▲ 박근령-지만 남매가 '우리누이 살려달라' 노태우에게 보낸 호소문 ⓒ 오마이뉴스 참고로 최태민 목사는 1912년 출생하여 1994년 사망하였다.

사망 당시까지 최태민 목사가 '박근혜를 등에 업고 부정축재를 하였다' '좋아 지낸다'는 소문이 끊임없었고, 월간조선 7월호의 보도에 따르면 1955년 5월 30일 다섯 번째 부인인 林모씨와의 결혼을 마지막으로 모두 5명의 부인과 사이에 3남 6녀를 두었다.

어떤 이유에서 인지 잘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실제 70년대 박근혜는 아버지 박정희에 의해 서울시장 양택식의 아들과 약혼을 하였던 바가 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가 결국 결혼하지 못했다.

박근혜-최태민 목사 사이에 '아이가 미국에 가있다'는 등의온갖 루머가 2007년 박근혜-이명박 대선 레이스 당시에 크게 불거졌었다,당시 경선주자 였던 이명박도 '최태민 비리 왜 감싸냐,박근혜 일가 부동산 최태민 차명재산 아니냐?박근혜 불가론'을 펴 박을 큰 곤경에 빠뜨렸던 바가 있다.

  최태민과 박근혜 에비후보의 관계에 대해서 한나라당 내에서도 우려의 시선이 높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습니다.

 즉 이는 박근혜 후보가 도덕적 순결주의를 표방하며 이명박 전 시장에 대한 네거티브를 주도하며 본선경쟁력의 우위를 장담하고 있지만 역사적 팩트에 근거한 그와 관련된 어떤 사실 하나만 범여권이 물고 늘어져도 한방에 날아갈 메카톤급 사안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름 7개를 갖고 흰 피가 흐른다’ ‘계룡산에서 도를 닦았다’ ‘최면술로 박근혜를 유도했다’. 고려말 ‘요승’ 신돈을 연상시키는 다양한 구설. 박근혜 전 대표와 목사 최태민(1994년 사망)에 얽힌 의혹이다.

.심지어 당내 인사조차 “박 전 대표는 최태민 문제 때문에 절대 대권주자가 될 수 없다”고 단언하는 사람까지 있다고 합니다.

( 발행-뉴스메이커 금년 2월호에서)  ■ 최태민은 어떻게 박근혜에게 접근했을까? 안수도 받지 않은 사이비 목사인 최씨(당시 62세)는 지난 74년 육영수여사 사망 직후 자신을 목사로 소개하며 고 박정희 대통령의 장녀 근혜씨(당시 23세)에게 접근했다 최씨는 "꿈에 육여사가 나타나 근혜씨를 도와주라 는 얘기를 들었다"며 근혜씨에게 접근한 후 어머니를 잃은 근혜씨를 위로하며 신임을 얻었다.

 ■ 최태민과 박근헤가 국정을 농당했다는 말은 무엇인가요? 최태민 목사가 1978년 박 전 대표를 구국여성봉사단 명예총재로 추대한 뒤 당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박 전 대표를 배경으로 공직 인선에 개입하는 등 국정에 깊숙이 개입했다.

 김재규는 그의 공판기록에서 최태민은 박근혜를 등에 업고 기업에 돈을 요구하고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등 국정논단 수준이 도를 넘자 이를 박 대통령에게 직언했다고 한다.

김재규는 만약 박근혜와 최태민의 국정농단을 방치하면 민심을 잃고 있는 유신정권에 큰 치명타가 될 것이기에 박 대통령에게 중앙정보부가 수집한 내용을 그대로 보고했다는 것이다.

 최태민은 박정희 서거후 1980년 보안사에 의해 강원도로 쫓겨갔지만 박근혜가 전두환에게 간정해 다시 그녀 주변으로 복귀했다 합니다.

월간조선 7월호는 육영재단. 정수장학회. 영남대학 등 박근혜 후보가 비리의혹을 받고 있는 모든 일에 최태민이가 관계하고 있다고 보도 했다.

박근혜는 자신은 최목사와 무관한 관계임을 주장하지만 지금도 최목사의 사위가 지근거리에서 박근혜를 보좌하고 그의 딸이 재산을 관리한다는 보도가 있는 등 그와의 정신적 관계를 청산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한나라당의 한 중진의원은 “박 전 대표는 지금도 최태민 인척을 총애한다”며 “이는 대권주자로서 문제 있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최태민은 박근헤를 업고 자신이 관리하던 육영재단을 전횡햇다.

이로 인해 90년 육영재단 운영을 둘러싼 분규가 확대되고 박근혜는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동생과 법정다툼까지 간 결과 근영씨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일선에서 은퇴했다.

최씨도 이때 함께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 박정희가 최태민과 박근헤를 동시에 친국, " 그년(박근혜)    이 흐놈(최태민)한테 홀려-박근혜. 최태민-박정희 시해 원인제공  박근혜 1998.11.01 월간중앙 권말부록1 김계원의 최초 인터뷰 “나보고 갑자기 최태민이를 아는가”하고 물으셨다.

김재규한테 들었다는 소리는 안 하고 ‘예, 압니다.

’하고 대답했다.

[박근혜 최태민] 대체 무엇때문에.


그랬더니 ‘그 놈이 말이야, 근혜를 홀려 가지고 내가 혼을 좀 내줬지.’하셨다.

경상도 사투리로 도깨비한테 홀린다는 표현을 쓰지 않나. 대통령은 ‘그년(근혜)이 그놈한테 홀려 도무지 시집 가려고 해야 말이지. 그러니 내가 어떻게 재혼할 수 있겠나’하셨다.

” 육영수 여사가 죽은 뒤 사실상의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대통령의 딸이 관계된 스캔들이라 쉬쉬하며 공개하지 않아 베일에 가려진 사건이다.

그러나 박근혜가 총재로 있는 새마음봉사단과 관계된 비리가 적지 않아 치안본부와 민정수석실과 중앙정보부 등이 직접 조사에 나서 비리사실을 대통령에게 보고까지 했다.

 박대통령은 유부남인 최목사와 20대 중반이던 박을 나란히 세우고 직접 최목사 비리에 대해 증거자료들까지 내밀면서 친국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박근혜가 극구 최태민을 변호하고 나서자 박대통령이 관계당사자들을 모두 불러 몸소 친국을 하는 헤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김계원 전 비서실장은 인터뷰에서 “김재규는 공개된 법정에서는 밝히지 않았지만, ‘10·26 혁명을 일으킨 간접적인 동기가 박정희의 문란한 사생활과 가족, 즉 자식들 문제 때문이었다’고 주장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도 “김재규는 큰영애인 박근혜가 관련된 구국여성봉사단의 부정과 행패를 보고 분개했다고 해요. 이런 일들이 ‘대통령이나 박근혜 자신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고 조사를 시켰다는 겁니다.

조사결과 로비나 이권 개입 등 여러 가지 비행이 드러나자 박 대통령에 게 그대로 보고했는데 대통령은 ‘정보부에서 이런 일까지 하느냐’면서 몹시 불쾌해 했다고 해요. 박정희는 영부인 육 여사가 돌아가신 다음부터 자식들을 애지중지하고 철저히 감싸고 돌았다고 해요. 구국여성봉사단 문제만 해도 그래요. 당시 항간에서 말이 많던 최태민이 총재, 박근혜가 명예총재를 맡고 있었는데 김재규가 구국여성봉사단의 문제점을 보고한 후 박근혜가 총재, 최태민이 명예총재가 됐습니다.

박정희가 최태민의 실권을 뺏는답시고 두 사람의 자리를 맞바꾼 거지요. 김재규는 자기가 괜히 조사를 해서 오히려 ‘개악(改惡)’이 됐다면서 뒷조사한 걸 후회했대요.”라며 김재규 전 정보부장은 구국여성봉사단의 비리 외에도 박근혜에게 불만이 많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와 함께 “박근혜가 지방 행사에 참석하면 할머니들이 전부 무릎을 꿇고 절을 했어요. 김재규는 ‘아무리 대통령 딸이라도 그렇지, 국모는 아니지 않습니까. 국민이 땅바닥에 엎드려 절을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고 제게 되묻기도 했어요. 촌로들이 그렇게 절을 하면 주위 사람들이 그걸 말려야 하는데 오히려 부추겼다는 겁니다.

 김재규가 특히 이런 사건들 때문에 박근혜의 미움을 받았다.

박근혜씨가 당시 김재규의 경질을 바라고 박대통령에게 이를 조르고 있었다.

김재규는 항소심 공판에서 최태민 사건이 박정희 시해의 동기를 제공했다고 진술했다.

  ■ 전두환의 합동수사본부에 체포된 최태민을 박근혜가 간청해서 석방 전두환본부장의 지시로 최태민을 긴급체포하여 조사를 벌이던 중 당시 수사관이었던 이학봉 중령은 박근혜씨가 최목사 구속 이후 전본부장에게 찾아와서 석방해 달라고 간청하는 바람에 서울을 떠난 조건으로 풀려났다고 증언 한바가 있다.

따라서 당시 권력핵심을 중심으로는 최태민 목사와 박근혜씨의 새마음 봉사단이 상당한 골치거리로 남아 있었고 문제시 되었다    애리조나州 세도나에 최태민 목사 아들이라고 소문난 28-29 살 정도의 남성이 살고있다.

그곳에 최태민 목사가 운영하던 영생교 라는 교회 신도들이 몇 가구 살고있고, 그 교인들 입을 통해 소문이 났는데 최태민 목사의 아들이 맞다고 한다.

교인들 입을 통해서 나온 이야기이니까최태민씨가 상당히 여색을 좋아해 많은 여성들을 편렵했으므로  어느 여성하고 사이에 태어난 아이인지 알수 없고, 아직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박근혜-최태민 목사 사이에 출생한 아이, 미국 애리조나州에 살고있다는데…?http://usinsideworld.com2007년 07월20일 15:58분 28초사이먼 Choi의 전체기사  (서울-로스앤젤레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최태민 목사 사이에 한명의 자식이 탄생했다” 는 소리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아무런 증거없이 나돌고 있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박근혜 의원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쾌한 이야기이며 화가 치밀어 오르는 이야기일수 있다.

그래서 박의원은 얼마 전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천벌을 받을 것이다” 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천벌’ 소리 때문에 약간의 말썽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천벌’ 발언에 대해 박근혜 의원은 19일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검증 청문회에서도 상당히 불편한 심정을 토로했다.

박 전 대표는 ‘천벌’ 발언에 언급 “가만히 보면 ‘최목사가 이런 저런 비리가 있어 나쁜 사람이다’ 하고 공격해 놓은 다음에 저 한테 연결해 내가 잘못한 것으로 저를 공격한다” 고 말했다.

그는 또 “정말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얘기-즉 ‘나에게 애가 있다’는 등의 얘기도 하는데 아무리 네거티브를 해도 ‘천벌’을 발을 일 아니냐? 그래서 그런 말을 한 것” 이라고 설명 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표는 “만약에 아이가 있다는 근거가 있다면 그 애를 데리고 와도 좋다.

천륜을 끊는 일인데-- 이렇게 까지 한다는 것은 한탄 스러운 일이다.

DNA 검사를 해줄 용의도 있다” 고 말했다.

“박근혜 의원에게 최태민 목사와의 사이에 아이가 있다” 는 말이 나돈 것은 지난 1990년 10월 경 서울 능동에 있는 어린이 재단 분규 사건 때 “최태민과 그의 딸 최순실은 어린이 재단에서 손을 떼고 떠나라” 하는 반대파들의 입을 통해 흘러다녔다.

그후 박 전 대표가 대구 달성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할 때부터 반대측 후보자들의 악선전 루머로 등장한 것이 상당히 널리 번지다가 사라졌다.

그러다가 이번 선거 판에 다시 등장했으며 마침내 그가 “천벌을 받을 소리”라고 흥분하여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지난 17일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한 ‘김대중 X-파일’의 저자이며 한국 언론계에서 처음으로 최태민 목사의 정체에 대하여 2차례 10회를 연재 보도한 국제저널리스트 손충무씨가 TV 특별 대담을 통해 “최태민 박근혜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소리는 상당히 오래 전에 나았지만 증거가 없는 루머이며 음해” 라고 말했다.

손충무씨(www.usinsideworld.com 편집인 겸 발행인) 는 미국 굴지의 TIME WARNER CABLE ? TV, KOREAN CHANNEL -24-TV 개국 10주년 특집방송 특별 손님으로 초대 되어 특별 출연 인터뷰했다.

사회 겸 대담자는 한국 KBS 아나운서 출신 원로 방송인 나영욱씨였다.

이날 특별프로는  ‘이명박 ?박근혜 X-파일의 정체?’였다.

손씨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정보기관이 만들어 놓은 이명박에 대한 X-파일은 모두 11개쯤 될 것이며 박근혜 것은 7-8개 정도가 될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의 X-파일 중에 가장 아픈 것은 재산이 너무 많다는 것이며 박근혜 것은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 정수장학회, 강제 수탈에 관한 것이 될 것” 이라고 말했다.

그때 사회자가 “박근혜 의원과 최태민 목사 사이에 아이가 있으며 그 아이가 애리조나州 세도나 라는 도시에 살고있다고 하는데 그런 소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고 질문 했다.

이에 대해 손씨는 “나도 그런 소리를 들었다.

특히 최근에 이곳 LA지역에서 그런 소문이 나돌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며칠 전에 모 인터넷 신문이 보도한 모양인데 나 자신은 아직 그 기사를 보지 못했다.

그런데 문제의 기사를 취재한 언론인과 만났다.

그리고 문제의 질문을 하기에 그런 것은 잘못된 루머라고 말해 주었다”    사회자가 다시 “그러면 최태민 박근혜 관계를 오랫동안 추적 취재해온 손 발행인께서는 박근혜씨의 사생아 문제는 없다는 결론을 갖고 계시다는 말씀인가요?” 하고 질문했다.

손씨는 그 질문에 대해 “우선 증거가 없습니다.

그리고 박근혜가 임신을 했다면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배가 불러 올 것이며 몸이 다소 뚱뚱해질 것입니다.

박근혜가 최태민 목사를 만나는 동안 박근혜씨의 몸이 뚱뚱하거나 배가 부른 적이 없었습니다.

또 아이를 출산했다면 최소한 1-2주일 병원에 있어야 할 것 입니다.

병원에 입원했다면 아무리 비밀로 취급한다고 해도 몇 사람은 알 것이며 오래 전에 소문이 났겠지요”사회자가 다시 “그러면 애리조나州 세도나에 최태민 목사 아들이라고 소문난 28-29 살 정도의 남성은 어떤 인물인가요”이에 대해 손씨는 “저도 오래 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소스를 통해 내사할 결과 그곳에 최태민 목사가 운영하던 영생교 라는 교회 신도들이 몇 가구 살고있더군요. 그 교인들 입을 통해 소문이 났는데 최태민 목사의 아들인 것은 맞는 것 같더군요. 교인들 입을 통해서 나온 이야기이니까 ?그러나 최태민 박근혜 사이의 아이는 아닙니다.

최태민씨가 상당히 여색을 좋아해 많은 여성들을 편렵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여성하고 사이에 태어난 아이라고 한다면 모르겠습니다 ? 박근혜 의원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 입니다” 라고 말했다.

한편 이 프로는 약 2만명 이상이 시청했다고 방송사 측에서 후에 이야기 했다.

(본사는 TV 방송국에 한 카피를 협조, 요청했으며 입수되는대로 독자들에게 동영상을 제공할 것이다)ㅁwww.usinsideworld.com 서울지사- 손충권 논설위원, LA 사이먼 Choi 특파원 2007년 07월20일 15:58분 28초 사이먼 Choi의 전체기사  위 기사를 구지 아까운 시간을 투자해서 올린 이유는..박근혜 변명 만들어 주려고 한 것이 아니다.

애리조나주에 현재 최태민의 아이가 살고 있다면,채동욱 전검찰총장과 같이 친자 유전자검사로 확인해 달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 둘 켜켜히 당신의 인생 뒤 안 길에 쌓인 의혹을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박근혜하면, 최태민이고 혼외자가 떠오르는 데..최태민이야 어쩔 수 없다해도 언제까지 혼외자의 문제를 달고 다닐 수 없지 않은가?부정선거에 혼외자 문제까지.. 어니언스가 따로 없다.

▣ 김재규의 박근혜에 대한 육성 증언   "박근혜가 지방 행사에 참석하면 할머니들이 전부 무릎을 꿇고 절을 했어요."   "아무리 대통령 딸이라해도 국모는 아니잖습니까?"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2531938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 그리고 김재규의 박정희 저격의 배경까지 숨은 뒷이야기를 볼 수 있는 글이다.

 출처: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1614549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2531988  지난 11일 김문수 경기지사가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참여 발표를 앞두고 YS를 예방했다.

이 자리에서 김 지사는 “지금은 토끼가 사자를 잡는 격”이라며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토로했다.

그러자 YS는 “(박근혜 의원은) 사자가 아니다.

아주 칠푼이다.

사자가 못 돼”라고 혹평하고는 “(경선이 막상 시작되면) 박근혜는 별것 아닐 것”이라며 박근혜 무시 발언을 쏟아냈다.

평소 독설가로 통하는 YS라고는 하지만 이날 박근혜를 향해 날린 ‘독설’은 예사롭지 않다.

극도의 불신과 그로인한 깊은 반감이 없지 않고서야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를 이렇게 표현할 수는 없다.

어쩌면 YS는 박근혜의 ‘부도덕’ 건을 잘 알고 있고 그리고 그것이 바로 ‘사생아’ 건인지도 모르겠다.

YS측이 박근혜의 ‘부도덕’과 관련된 확증자료를 과연 가지고 있을지...만약 박근혜의 사생아 건이 ‘팩트’라면, 즉 실지로 박근혜의 사생아가 있다면 YS가 관련 근거자료를 손에 넣었을 가능성은 커 보인다.

▲ 김영삼 전 대통령과 차남 현철 씨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그렇다면 문제는 ‘팩트’의 실존 여부인데 이에 대해 김현철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세 차례에 걸쳐 거듭거듭 확인해 줬다.

심지어 김현철은 ‘팩트’여서 ‘정리’, 즉 어떻게 손을 쓸 수도 없다는 얘기까지 했다.

앞에서 소개한 내용 중 ‘팩트’ 부분을 재인용해 보면, - YS는 박 전 위원장이 부도덕하다는 걸 어떤 경로로 파악하고 계신가?“많이 알고 계시다.

그것도 팩트(fact·사실)를 알고 계시다.

”- 팩트라면 검증이 돼야 하는데 가능한가?“아주 상당히 엄청난 충격을 줄 것으로 본다.

”- 확인이 된다는 말인가?“그렇다.

박 전 위원장 주변에서도 그런 것들을 정리하고자 하는데 정리할 수 없다.

팩트인데 어떻게 정리가 되나.” 완전히 ‘뻥’이 아니라면 YS측이 관련 자료를 손에 쥐지 않고서야 이렇게 단언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 이들 두 사람의 전력을 감안하면 이들이 관련자료를 입수했을 가능성은 크다고 하겠다.

YS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 대통령을 지냈고, 그의 아들 김현철은 ‘소통령’으로 불렸다.

YS는 대통령 시절 안기부 등 권력기관을 속속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따라서 YS는 자기 자신을 포함해 중앙정보부(->안기부->국정원)가 수집한 일체의 ‘인비(人秘)자료’를 다 봤을 걸로 생각된다.

 <월간중앙> 기사에 따르면, ‘박근혜 사생아’의 나이는 ‘올해 30살 정도’이며 일본에 살고 있다고 한다.

‘사생아’의 나이를 역으로 환산하면 출생 시기는 1980년 전후, 즉 ‘10.26사건’ 전후로 추정된다.

‘5공의 실세로 청와대 고위직을 지낸 한 원로 정치인’의 말대로 박근혜가 청와대 시절 출산을 했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청와대 시절 박근혜는 육 여사를 대신해 영부인 노릇을 하며 대외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시기는 ‘청와대를 나온 이후’라는 얘기가 된다.

‘10.26사건’ 후 박근혜-근영-지만 등 3남매는 청와대에서 나와 부친의 사저인 ‘신당동 집’으로 거처를 옮겨 칩거에 들어갔다.

이후 박근혜는 육영재단, 정수장학회 운영에 관여하였으나 1998년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기 전까지는 그의 행적에 대해 자세히 알려져 있지는 않다.

    김현철 "박근혜 사생활, 엄청난 충격 줄 것"<월간중앙> "사생아 얘기 나돌아", 박근혜측 "법적대응하겠다"2012-07-16 16:43:58   YS 차남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이 박근혜 전 위원장에 대해 "이회창 씨의 아들 병역문제보다 훨씬 큰 논란거리"가 있다며 사생활 의혹을 제기하고 나서 박근혜 캠프측이 법적대응을 하기로 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월간중앙> 7월호에 따르면 김 전 부소장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한 뒤, 구체적 내용에 대해선 "사생활 부분이라고 뭉뚱그리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아버지 YS가 "많이 알고 계시다.

그것도 팩트를 알고 계시다"며, YS가 박 전 위원장을 "부도덕한 인물로 본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무튼 오는 대선에서 야당이 많이 들고 나올 것"이라며 "일반 국민이 알아야 하는 것이니까. 그건 숨긴다고 덮고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니다.

확실하게 끝을 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박 전 위원장 본인도 2007년 경선 당시 한마디 했다.

'DNA 검사를 받겠다'고 말이다.

그 이상의 얘기들이 더 나온다.

나중에 그게 밝혀지면 그때는 이미 늦지 않나?"라며 "아주 상당히 엄청난 충격을 줄 것으로 본다"고 말해, 자신이 제기한 사생활 문제가 2007년 경선때 한나라당 후보위원회가 질문을 던졌던 '사생아 논란'임을 시사했다.

2007년 7월19일 후보청문회에서 '자녀가 있다'는 시중의 소문에 대해 묻자, 박 후보는 "내가 애가 있다는 말이 떠도는데 DNA검사라도 받겠다"며 "그래야 그 자식의 부모를 위한 길"이라고 답한 바 있다.

김 전 소장은 '확인이 된다는 말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

박 전 위원장 주변에서도 그런 것들을 정리하고자 하는 데 정리할 수 없다.

팩트인데 어떻게 정리가 되나?"라고 장담했다.

<월간중앙>은 이에 대해 "요즘은 더 구체적인 얘기가 나온다.

박 전 위원장이 낳은 자식이 올해 30살 정도이며 일본에 살며, 야당에서도 접촉을 꾀한다는 설명까지 붙는다"고 정가의 풍문을 전하기도 했다.

이같은 의혹 제기에 친박진영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5년전 경선때 박근혜 캠프 검증대변인을 맡았던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은 "박 전 위원장에게 다 물어봤다"며 "그건 황당무계한 망상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5공 실세로 청와대 고위직을 지낸 원로정치인 역시 "그럴 가능성은 제로"라며 "박 위원장이 1975년부터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면서 아이를 가졌으면 누가 봐도 금방 표시가 났을 것이고 공식활동을 중단했어야 하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며 "5공 시절 그랬다면 청와대에 있던 내가 몰랐을 리 없다"고 말했다.

박근혜 캠프에서는 법적대응도 추진한다는 방침으로 알려졌다.

캠프 관계자는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김현철 씨의 발언 수위가 정치적 허용범위를 넘어서는 만큼 캠프에서 법적 대응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박근혜, 왜 YS는 고소하지 않을까시사INLive | 주진우·김은지 | 2012.09.26 03:17     박근혜 후보가 고소·고발을 남발한 것만도 아니다.

아량을 보일 때도 있었다.

사안보다는 대상이 중요하다.

최근 불거진 사생아 논란이 대표적이다.

YS의 아들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 < 월간중앙 > 7월호를 통해 박근혜 후보의 사생아 문제를 제기했다.

"아버지가 많이 알고 계시다.

그것도 팩트를 알고 계시다.

아무튼 오는 대선에서 야당이 많이 들고 나올 것이다.

일반 국민이 알아야 하는 것이니까… 박 전 위원장 본인도 2007년 경선 당시 한마디했다.

'DNA 검사를 받겠다'고 말이다(2007년 7월19일 한나라당 대선 후보청문회에서 자녀가 있다는 시중의 소문에 대해 묻자, 박 후보는 "내가 애가 있다는 말이 떠도는데 DNA 검사라도 받겠다.

그래야 그 자식의 부모를 위한 길이다"라고 답한 바 있다). 그 이상의 얘기들이 더 나온다.

나중에 그게 밝혀지면 그때는 이미 늦지 않나? 아주 상당히 엄청난 충격을 줄 것으로 본다.

박 전 위원장 주변에서도 그런 것들을 정리하고자 하는데 정리할 수 없다.

팩트인데 어떻게 정리가 되나?"ⓒ노컷뉴스 박근혜 후보가 8월22일 김영삼 전 대통령(가운데)을 예방했다.

왼쪽이 김현철씨.김현철 전 부소장의 발언은 박 후보 사생아 논란에서 가장 정도가 심했다.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는 '악의적이다'라며 즉각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나섰다.

대변인 논평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소송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서울 상도동 김영삼 전 대통령 자택을 찾은 김문수 지사가 "지금은 토끼가 사자를 잡는 격이다"라고 하자 김 전 대통령은 "(박근혜는) 사자가 아니다.

아주 칠푼이다"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한 바 있다.

YS는 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했던 당시의 상황을 언급하면서 "박정희가 나를 국회의원에서 제명 안 했으면 죽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비난했다.

박 후보 그리고 후보 진영의 성격상 고소는 불가피해 보였다.

하지만 YS에 대해서는 일절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 한 의원은 "YS는 대통령을 지냈고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정치력과 표가 있는데 어떻게 고소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지난 8월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된 박근혜 후보는 김영삼 전 대통령 자택을 방문했다.

박근혜 후보는 "나라가 한 번 더 도약해 국민이 행복하려면 대통합이 필요하다.

대통합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려는데, 잘 지켜봐달라"고 당부했다.

두 사람 모두 표정이 밝지 않았다.

이 자리에는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이 배석했다.

[박근혜 최태민] 궁금증 해소



주진우·김은지 /    정윤회 아닌 최순실 비선권력 몸통설 ‘솔솔’ 왜?[뉴스분석] 최순실, 박근혜 대통령과 깊은 사이 정황 나오며 관계 부각돼 : 2014-12-04  21:05:45   노출 : 2014.12.05  10:35:02이재진  비선권력의 국정개입 의혹이 정윤회씨의 전 부인 '최순실 몸통론'으로 확산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관계가 집중 부각되면서 실질적인 비선권력의 핵심은 최순실씨가 아니냐는 의혹이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씨의 관계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인의 관계로 보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최순실씨는 최태민 목사와 그의 다섯번째 부인인 임모씨 사이에 태어났고, 최 목사의 다섯 번 째 딸이다.

최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986년경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어린이회관 전통 예절교육장인 '근화원' 업무를 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태민 목사의 일가가 육영재단 업무에 관여하기 시작한 때는 지난 1982년 박근혜 대통령이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태민 목사는 최순실씨가 업무를 봤다는 어린이회관 '근화원'을 설립했다.

당시 근화원에서는 최태민 목사가 어린이재단 직원들과 예배를 봤던 것으로 전해졌다.

최순실씨가 근화원 업무에 관여하기 시작하자 1987년 육영재단 직원들은 최씨의 재단운영 관여에 반대하며 집단행동을 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07년 월간조선과 인터뷰에서 '육영재단 이사장 재직시 최태민 목사의 다섯째 딸이 어린이회관 내 근화원 원장으로 내정되었던 적이 있다고 하는데 사실이냐'는 질문을 받고 "내정한 사실이 전혀 없다.

왜 이런 말이 나오는지 짐작 가는 것조차 없다"고 답한 적이 있다.

또한 ‘최태민 목사는 박 후보(박근혜 대통령)께서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하시면서부터 재단 운영에 관여했다는 게 당시 직원들의 주장이다.

이 부분에 대한 후보님의 생각은 무엇이냐’라는 질문에도 "관여라는 게 무슨 뜻인지 되묻고 싶다.

무슨 명목으로든 돈이 지출되었을리도 결재를 했을 리도 없고, 육영재단과 관련하여 무슨 업무를 맡은 적도 없는데 도대체 관여라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며 관계를 부인했다.

최순실씨는 상당한 자산가로 알려져 있다.

최씨는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소지 200여평 지상 7층 규모 빌딩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건물은 정윤회씨가 대표이사로 있었던 (주)얀슨이 입주해 있던 건물이다.

월간조선에 따르면 최씨는 1985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 대지 108평을 매입했고, 1986년 부지에 지상 4층 규모의 빌딩을 건립했다.

또한 1995년 정윤회씨와 공동명의로 서울 강남구 역삼동 소재 대지 100평을 매입해 지하 1층 지상 지상 3층 규모의 다가구용 단독주택을 신축했다.

당시 최씨의 강남일대 부동산은 100억대에 이른다.

최씨의 재산은 육영재단 업무를 보면서 이권개입으로 부당하게 취득해 형성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후보 측은 '정윤회 최순실 부부의 재산과 박 후보가 무슨 상관이냐'고 한 바 있다.

 ▲ 4일자 고발뉴스 보도 내용 최씨가 언론에 존재를 드러낸 것은 지난 2006년 서울시장 선거 유세 현장에서 박 대통령이 피습을 당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박 대통령을 극진히 간호한 것이 알려지면서다.

그리고 한동안 종적을 감췄지만 최근 전 남편인 정윤회씨가 비선권력으로 떠오르면서 도마에 오르고 있다.

 한겨레는 '정씨 부부'가 자신의 딸의 국가대표 선발전 특혜 시비가 일자 승마협회 감사에 나서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원치 않은 내용의 감사 보고서가 나왔고 청와대 지시에 따라 감사 조사에 참여한 문화체육관광부 간부 2명이 좌천성 인사를 당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보고를 받은 직후 당시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청와대 집무실로 불러 수첩을 꺼낸 뒤, 문체부 간부 2명의 이름을 직접 부르며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라고 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박 대통령이 '정씨 부부'의 영향을 받고 문체부 간부 2명을 좌천시킨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승마협회 관계자가 "정윤회씨 부인의 치맛바람이 워낙 셌는데"라고 한 대목도 최순실씨의 영향력을 짐작케 한다.

정윤회씨는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승마협회 감사 영향력 의혹에 대해 "그건 확인해보시면 되겠지. 저는 전혀 그런 일이 없다"고 했지만 '부인이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라고 질문하자 "그건 모르겠다"며 부인을 하지 않았다.

또한 최순실씨가 지난해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식 당일 입었던 한복을 직접 골라 청와대에 반입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최고권력자인 박 대통령과 대면을 할 정도로 긴밀한 사이가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4일 고발뉴스와 인터뷰한 서울시내 호텔에 위치한 A한복점 전문점 관계자는 "지난 대통령 취임식 직전 최순실씨측으로부터 주문을 받고 340만원짜리한복을 제작해 납품했으며 요즘도 대통령의 한복을 지어 납품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처음에는 최순실씨가 직접 한복 색깔과 디자인까지 챙겼던 것 같은데 요즘은 잘 안 나오시고 대신 비서실을 통해 일이 진행된다"고 말했다.

최순실씨가 정씨와 지난 7월 이혼하면서 '이혼 조정문에 결혼기간 있었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지 않고 서로 비난하지 않기'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는 있었던 것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정씨가 재산분할 및 위자료를 청구하지 않은 것도 의아한 일이다.

일각에서 위장이혼설도 제기되고 있다.

두 사람이 연을 끊어서라도 박 대통령의 비선권력이라고 의심하는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최영일 시사평론가는 최순실 비선권력 몸통 의혹에 대해 "최태민 일가하고는 자기를 도와줘 의지했지만 깊은 관계는 아니고 현재 관계가 없다고 부인했는데 자꾸 정씨 부부를 감싸는 정황이 나오고 최씨가 급부상되는 모습"이라며 "최씨가 청와대에 수시로 드나들고 청와대에 자리까지 마련해놓고 있다는 설까지 나온다.

청와대는 이번 사태를 문건 유출 국기문란행위 처벌로 끝내고 싶겠지만 비선권력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이런 루머들이 나도는 등 자발적으로 터진 산탄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0442     박정희시대 국민의 자유와 박근혜의 자유를 아십니까?  최태민과 박근혜 박근혜는 어머니 육영수가 서거한 다음 해인 1975년에 위로, 격려편지와 전화를 준 최태민이라는 목사를 알게 된다 1975년 5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구국여성봉사단 총재로 있는 최태민이 사이비 목사이며 자칭 태자마마라고 하고 사기횡령 등의 비위사실이 있는데다 여자들과의 상상도 못할 추문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청와대 민정수석 박승규 비서관조차 박정희에게 말을 못할 정도로 문제 삼는 사람이 없어서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더니 ‘정보부에서 그런 것까지 하냐?’면서 반문하길래 대통령의 태도를 보고 놀랐으며, 대통령은 큰딸인 박근혜에게 그 사실을 알렸으나 근혜가 그렇지 않다고 부인하였다 그후 박정희는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1977년 9월 12일 밤 공보비서관 선우연에게 "최태민을 거세하고, 최태민과 관련된 구국봉사단도 해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그러나 박근혜의 요청으로 손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박근혜가 총재가 되고, 최태민은 명예총재가되어 상상도 못할 부정부패는 계속되었다 전두환의 신군부에서 최태민의 활동을 중지 시켰으나 1982년 박근혜는 육영재단 이사장에 취임하였고, 최태민도 육영재단에 합류하였다.

이후 박근혜와 최태민은 함께 1989년 육영수를 추모하는 단체인 근화봉사단을 조직하였고, 박정희와 육영수를 추모하는 월간 신문인 근화보도 발행하였다.

육영재단의 간부는 1987년 9월 2일 어린이회관 노조원들이 외부세력 물러가라며 1주일 동안 농성하였던 것은 최태민을 겨냥한 것이라고 한다.

또 '특별한 직책도 없으면서 육영재단 운영을 좌우해온 최태민을 싫어하면서도 박근혜와 막역한 관계 때문에 어느 누구도 기를 펴지 못하였다'고 밝혔다(인용: 박정희 공보비서관 선우연 인터뷰기사와 김재규 재판진술 -중-) 1978년 구국여성봉사단 총재 자격으로 도열한 시민들의 환호를 받고 있는 현 대통령후보 박근혜 이명박정권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후보에게 묻습니다이유야 어떻던 박정희시대 군사독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국민들은 고 박정희와 육영수 여사의 죽음에 대하여 당신에게 연민을 느끼는게 현실입니다 그러나 국가권력의 핵심인 청와대와 중앙정보부 마저 최태민 관련 당신의 주장에 무력화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원칙과 약속을 지키고 과거 논의로 국론을 분열시키지 말고 미래로 가야만 대한민국이 발전을 할 수 있다"고 당신은 늘 말합니다 그런 당신이 국민 봉사단으로 위장하여 국민들이 상상도 할 수 없을 권력형비리를 저지른 최태민의 공범자이거나 방조자란  생각은 들지 않습니까? 지금도 백범 김구 독립군과 안중근 독립군을 테러리스트라 하고,유관순 열사를 깡패라 칭하고,독도는 일본땅이고,위안부는 창녀라고 주장하며, 일제 식민지 시대는 일본이 대한민국을 근대화시켰으니 일본에 고마워 해야 한다는 뉴라이트를 우리 아이들의 희망이고 바른 역사이자 대한민국의 발전이며 함께 하겠다는 당신의 모습은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 박근혜가 아니라 대한민국 여자들에게 수치스러운 일본 총리후보 박근혜로 보이는 것은  왜 일까요?  1. 신원사항○ 인적 사항원적 :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읍 서동 34   본적 : 경남 양산군 웅상면 삼호리 532주소 : 서울 강남구 역삼동 689-25  직업 : 전 대한구국봉사단 총재  성명: 최태민, 76세(1912. 5. 5생)○ 사용 성명최도원(선녀가 지었다는 아명)   최상훈(월남후 개명, 경찰, 육군 및 해병대 비공식문관 재직시 사용)최봉수(부산 거주시)  최퇴운(법명, 77. 3 .9 이전 호적상 성명)  공해남(천주교 중림동 성당에서 영세시 개명)방  민(계시에 의해 개명하였다고 자칭, 영혼합일법 등 사이비 행각시 사용)최태민(75. 4 대한구국봉사단 취임계기 개명 77. 3. 9이후 호적상 성명)○ 학·경력 및 성향27. 3 황해도 재령보통학교 졸업(최도원)42-45. 8 황해도경 고등과장 서 포의 추천으로 황해도경 순사45. 9 월남  46. 3 강원도경(최상훈)47. 3 대전경찰서 경사47. 4 인천경찰서 경위(사찰주임)49. 6 육군 제1사단 헌병대 비공식 문관50. 7 해병대 비공식 문관51. 3 사단법인 대한비누공업협회 이사장53. 초 대한행정신문사 부사장(부산)53. 9 환도로 단신 상경54. 초 6번째 처 김제복(63세)와 결혼, 동거자가 여자관계로 인한 가정불화로 경남 동래군 금화사로 도피, 삭발 승려(최퇴운)55. 4 부산으로 내려와, 현재처 임선이(5번째 처)와 재결합, 경남양산군 개운중학교장(비인가 교)56. 12 대한농민회 조사부 차장57. 2 국민회 경남도본부 사업부장58. 2 서울로 이사59. 6 전국불교청년회 부회장60. 5 한국복지사회 건설회장(임의단체)63. 5 공화당 중앙위원65. 7 대한근민회장(임의단체)65. 1 천일창고(주)회장  ※65. 2. 15 서울지검에서 유가증권 위조혐의로 입건되자 도피(약4년)  69. 초 천주교 중림성단에서 영세(공해남)71. 10 서울영등포구 방화동 592-7 호국사에서 불교를 신앙타가 불교. 기독교. 천도교를 복합, 창업한 영세계의 교리인 영혼합일법을 주장, 사이비종교 행각 ※ 독경 및 안찰기도로 환자치유73. 5 대정시 현대예식장에서 영세계 칙사를 자칭, 영혼합일법 설교73. 11 서울 서대문구 3대현동 67-5 대현빌딩 3층(16평)에 전세입주, 동일방법으로 원자경 자칭, 사이비행각74. 5 서울 동대문구 제기2동 122-16 박경순집에 전세입주, 동일방법으로 칙사, 태자마마 등 자칭, 사이비행각74. 8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154-5 선승규 소유 빌딩 2층(약36평)에 이전, 동일방법으로 사이비행각75. 3 박근혜에게 “꿈에 육여사가 나타나 근혜양을 도와주라하였다”는 요지의 서신을 발송 끝에 동 3. 6 박근혜와의 접근을 성취75. 4. 10 대한구국선교단 총재 취임계기, 사이비 교파인 예장종합총회장 조현종 목사로부터 목사안수(최태민)75. 4. 29 대한구국선교단 총재76. 12. 10 대한구국선교단으로 개칭, 총재77. 10. 5 총재직사퇴 2. 비리 사실○ 최태민은 영혼합일법(일종의 최면술)등 사이비종교 행각으로 전전하던 75. 2말경 박근혜에게 3차에 걸쳐 꿈에 “육여사가 나타나 근혜를 도와주라”는 현몽이 있었다는 내용의 서신을 발송하여- 75. 3. 6 박근혜와 접견, 당시 교계의 난맥상을 개탄하면서 구국선교를 역설 끝에- 75. 4. 29 박근혜의 후원으로 자신의 심복및 사이비종교인 중심으로 대한구국선교단(76. 12. 10 구국봉사단명, 79. 5. 1 새마음 봉사단으로 각 개칭)을 설립하고 총재(박근혜는 명예총재)로 취임하여 구국선교를 빙자, 매사 박근혜명의를 매명하여 이권개입 및 불투명한 거액금품징수 등 이권단체화로 치부하는 한편- 복잡한 여자관계와 반대파에 대한 무자비한 보복 등으로 원성이 고조되자○ 잠시 근신을 하는 듯 하면서 박근혜의 동정을 관망, 심복들로 하여금 자신이 아니면 봉사단 운영을 할 수 없는 양 박근혜를 현혹케하여 막후에서 봉사단을 관장하여 오다가- 78. 2. 22 봉사단을 사단법인으로 개편발족, 박근혜가 총재로 취임이래 형식상 모든 업무는 박근혜가 관장하였으나 실직적으로 비공식 고문격인 최태민이 전권을 위임받아 행정부, 정계, 경제계, 언론계 등 각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 78. 7. 14 운영비 조달목적으로 대한통운(주)회장 최원석등 10인의 실업인을 운영위원으로 위촉, 운영위원회를 발족한 이래 계속 증원하여 79.10에는 국내 재벌급 기업인을 거의 망라한 60명선에 육박, 1인당 입단 찬조비 2,000

5,000만원에다 매월 200만원씩 운영자금을 조달- 이와 별도로 장학기금, 새시대지 운영기금 및 기타행사 지원비등 명목으로 수천만원씩 개별적으로 갹출(운영위 멤버가 아닌 기업체에 대하여도 박근혜를 매명, 동일명목으로 수천만원씩 갹출)- 위 운영위원 등으로부터 갹출한 막대한 자금과 행정기관의 지원을 바탕으로 업무기능이 유사한 정부육성단체인 부인회, 주부클럽, 어머니회 등의 조직을 조식하는 등 무리한 조직확대와 사업추진으로 각종마찰과 부작용을 야기하면서 각 시·도·리·동에 이르기까지 조직을 확대, 300만명 단원을 확보- 이 기간조직을 주축으로 대학·고·중·국교·유치원 및 약사회, 의사회 등 10개 참가단체와 각 직장봉사대 등을 망라 새마음 인구 2,000만명을 호언하면서 충·효·예·도 국민도의 앙양과 사회봉사사업을 표방, 각종사업을 추진하여 왔으나● 무리한 행사준비로 예산낭비와 부담과중● 기능과 역할에 상응한 사업비를 자체조달보다는 각 기업체 및 행정지원 등 대외의존으로 민관폐 막심● 최태민등 봉사단 간부의 각종 부조리 자행 및 월권행위 등으로 참여인물이나 관민 등으로부터 공히 내면적인 호응을 받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국민적 빈축을 초래하여 왔으며● 최태민은 그간 롯데, 신라, 도큐호텔 및 국인대 한반점 등을 무대로 매일같이 정.관.재.언론계등 각계 중진인사와 접촉, 초호화판으로 행세하면서 박근혜를 빙자한 이권개입, 금품수수등으로 치부 및 엽색행각으로 물의를 야기하여 오다가 은신중에도 박근혜와는 은밀히 연락을 유지, 후견인역을 계속 자행3. 구체적비리내용가. 횡령 : 14건 221,356,000 원○ 76. 8.16 구국봉사단대지 및 건물구입시 주택채권 465만원 상당을 매수, 자기집에 은닉○ 76. 1. 29 봉사단 공금에서 처의 주택구입자금으로 1,000만원 지출○ 76. 6. 14

77. 8 .29  봉사단 공금에서 자녀 등록금 등 도합 238만원 지출○ 76. 8. 14

77. 4. 15 봉사단 공금에서 김OO(비서 및 정부)에게 3회에 걸쳐 생활비 등으로 220만원 지출○ 76. 7

77. 6. 25 봉사단 공금에서 김OO(부단장 및 정부)에게 2회에 걸쳐 생활비 등으로 460만원을 가옥 구 입비 등으로 지출○ 76. 9. 7-77. 1초 수 주OO(경리담당)에게 5회에 걸쳐 봉사단 공금에서 무상공여○ 봉사단 장부상 3,000만원 지출기장없이 경노병원 장부에 전액 입금된양 허위기장한후 77. 4. 27

8. 27 경노병원 경리과장인 次女 崔OO과 공모, 4회에 걸쳐 병원자금 424만원 인출○ 77. 2. 17

77. 6. 7 3회에 걸쳐 국민은행 관악지점에 봉사단6,000만원으로 처임OO 명의3구좌를 정기예금하여 은닉○ 76.11.

77.8.25 서울농협 불광지소에 奉仕團公金 합계 155,176,000원을 2

3회에 회전분산한후 가명 이송자, 임부전, 金기옥 명의26구좌로 정기예금, 통지예금, 정기적금하여 은닉○ 75. 봉사단전총재처OO에게 주택매수 대금 100만원 지출○ 76.3.2 봉사단수위 임OO에게 생활보조비로 200만원 지출○ 76.11.처박OO에게 2회에 걸쳐 감자 사업자금으로 1,000만원 지출○ 77.3.14 장녀최OO에게 개인아파트 분양자금조로 200만원 지출○ 77.5 처박OO 명의로 브리사 승용차 1대 구입, 대금 300만원 지출 나. 사기 : 1건 2,000,000원○ 75.5 중순 총재 비서실장 임OO에게 불하해주기로 약속한 장수광산규석이 63년 김OO에게 불하된 사실을 뒤늦게 알고 임OO에게 줄 명목으로 봉사단이 기증받은 것 같이 가장하고 김OO으로부터 하급하여 규석2만 트럭분 취득 다.

변호사법 위반 : 11건 94,200,000원, 토지 141,330평 등○ 76. 6 중순 성O교회 원OO목사에게 서울시장에게 청탁하여 서울성북구 석관동 시유지 50평을 동 교회 부지로 불하해주고 그 대가로 동 부지 싯가 1할 상당액을 받기로 약속, 불하실패○ 75. 5 중순 총재비서실장 임OO에게 국세청장에게 청탁하여 전북 장수군소재 장수광산 규석을 불하받아 준다는 명목으로 300만원 받기로 약속, 그중 170만원 받음○ 75. 9. 15 경 전 2군 감찰참모 이OO대령의 처 김OO에게 국방부장관에게 청탁하여 이OO을 준장으로 진급시켜준다고 하고 그 대가로 200만원 받음○ 76. 6. 4 한신공영 사장 金OO에게 서울시장에게 청탁하여 서울시 비상유류 저장탱크 공사를 맡게 해 준다고 하고 그 대가로 5,000만원 받음○ 76. 11. 5 李OO에게 원고 李OO, 피고 현대건설간 강남구 압구정동 소재 모래채취로 인한 손해배상소송에 관하여 현대건설과 5

6억원에 화해시켜 준다고 하고 그 대가로 동 화해금으로 토지매수대 2억원, 생활비 300만원, 소송경비 등을 제한 잔액을 받기로 약속○ 76. 7. 21 위 이OO에게 강남구청장에게 청탁하여 등기부상에만 동인 명의로 있고 지적이 없는 강남구 압구정동 잡종지 268,661평의 지적을 찾아준다고하고 그 대가로 동 잡종지의 반을 기증 받기로 약속○ 76. 10 초순 한국소방기구 공업협동조합 이사장 이OO에게 내무부 차관에게 청탁하여 소방기구 신규제조 허가를 억제해주고 동 기구 검정권을 동조합에 주도록 해준다는 조건으로 200만원 받음○ 76. 10. 22 경 중앙건어물(주) 대표 정OO에게 서울시장에게 청탁하여 동사에 농수산물 도매시장 개설허가를 내어주고 허가 후에는 신규허가 억제와 유사매매 행위를 단속하도록 해 준다는 대가로 76.12.22

77.4.22 5회에 걸쳐 1,700 만원 받음○ 77. 2. 21 金OO에게 경기도로부터 안양종축장(토지 70,788평, 건물 36동)을 봉사단명의로 수의계약, 매수하여 준다는 댓가로 동 토지 7,000평과 동 지상건물 36동을 받기로 약속○ 76. 8 중순 전 중앙정보부 강원지부장 김OO 처 박OO에게 남편을 중앙정보부에 복직시켜준다고 하고 그 대가로 金OO부터 2차에 걸쳐 150만원 받음○ 76. 10초순 최OO에게 울산시장에게 청탁하여 울산시 동천강 병영교 밑 하천 토사채취 허가를 봉사단 부산지부 명의로 받아주겠다고 하고 허가되면 2,000만원 받기로 약속라. 비리 : 13건○ 75. 9. 27 한신공영 사장 김OO에게 대한화재보험협회 이사장 오OO에게 청탁하여 동협회 청사 신축공사를 맡게 해 준다고 하고 그 댓가로 7,000만원 받음※ 1,000만원은 받은 증거 없음○ 76. 1. 17 이OO의 처 이OO으로 부터 1948년 이후 李OO와 변호사 김OO 사이에 소유권 다툼이 있는 서대문구 연희동 산 2번지 임야 15만평에 대한 기증서를 받고 봉사단이 동 임야의 소유권을 취득하면 동인에게 1억 5,000만원을 지급하기로 약속○ 76. 2. 8 경 안O산업 대표 안OO에게 동 공장을 봉사단십자군 군복(180만착분) 납품공장으로 지정해주고 동 대가로 200만원 받음○ 76. 4. 16 동O공영(주) 대표 백OO에게 동인이 부산-제주 간을 운항키 위해 일본삼정조선에서 건조한 ‘하버크레프트’고속여객선을 도입할시 승객유치관계로 대한항공이 반대하면 무마해주겠다고 하고 그대가로 십자군 군복 2만착분 대금 1억원의 기증서를 받음○ 76. 9 초순 서O관광(주) 대표 진OO에게 대덕, 연기 지역구 차기 공화당 국회의원 입후보자 공천을 받게 해준다고 하고 76.9.17

12.10 5회에 걸쳐 500만원 받음○ 77. 3. 24 흥아타이아(주) 사장 강OO에게 구국봉사단 부산지부장에 임명해준다고 하고 그 댓가로 200만원 받음○ 77. 5. 8 경 동대문시장 상인 방OO 외 8명에게 박근혜 명예총장 대구 새마음갖기발대식 참석시(5.11) 비행기에 동승시켜 준다는 조건으로 전세비 부담명목으로 100만원 받음○ 78. 2. 6 동원OO 개발 (주) 상무 이OO로부터 경로한방병원 운영비를 빙자, 1,000만원 (보수) 받음○ 78. 2. 8 (주)미원 사장 한OO으로부터 임OO을 통하여 3,000만원 받음○ 78. 4 경 당시 봉사단자문위원 한OO (파리제과 점주)에게 자금조달을 강요, 동녀가 기업체로부터 갹출한 200만원 (보수 2매) 받음○ 78. 4 경 봉사단운영비를 빙자, 구로공단 이사장 崔OO을 통하여 평안섬유 (주)에서 500만원, 협진양행에서 300만원 계 800만원 받음○ 78. 5. 6 봉사단운영비를 빙자, 요업개발(주)에서 500만원, 국제보세 (주)에서 500만원, 대협에서 500만원 게 1,500만원 받음○ 78. 7 경 대한통운 (주) 회장 최석원을 봉사단운영위원으로 발탁 하는 조건으로 금품을 받고 임명 후 수시로 100만원씩 받음마. 이권 개입○ 78. 12. 30 부산시가 시행하는 서면지하상가 건설공사 (공사비 58억원) 업자지명에 개입, 공사능력이 없는 대현실업(주)(성사장)에 지정토록 하기위해 박근혜비서관 김OO으로 하여금 박근혜의 의도임을 빙자, 부산시 기획관리국 및 건설국장에게 압력 작용하여 동사를 가인가자로 선정○ 79. 1. 21 진주시장에게 진주시 도시계획에 저촉된 신흥고무공장에 대하여 구획 재조정, 해제를 요구하는 서신발송바. 융자 알선○ 78. 3월 동산유지 (주) 에 대한 은행융자 알선 등 후원조건으로 동사 명예회장에 취임, 동년 10월 서울신탁은행 등을 작용, 10여억원의 융자알선하고 거액받음○ 79. 1. 31 김OO를 통하여 金OO재무부장관에게 한성기업(대표:오OO) 등 2개 업체에 각 5억원씩 은행융자를 청탁하여 제일은행에서 융자하기로 내락○ 78. 1 초순 부실 금융실업인 조치대상자 이OO이 경영하는 (주)아시아중석에 은행융자 알선 및 해외여행 제한조치 해제주선을 조건으로 동사 회장직 취임을 내락하고 78.12.18 박근혜비서관 김OO으로 하여금 재무부 등 관계관에게 청탁, 이OO의 서독 헬텔사와의 중석가공 합작회사 설립추진을 위해 동인의 출국을 주선  사. 여자 관계(1) OOO (27세, 전 총재 비서)○ 72. 12 하순

76.4 초순 영등포 옥호불상 여관, 세검정 옥수장, 신촌 신성여관 및 대전시내 에덴여관 등에서 전후 10회 성교○ 76. 1 초

4 초 총재실에서 주 3회 정도 포옹, 키스 등 애무행위(2) OOO(45세, 전 부총재)○ 75. 8-75. 12. 10 총재실에서 수시 키스, 포옹 및 애무하고○ 동녀의 손으로 음경을 만지게 하는 등 음란행위(3) OOO (31세, 전 부단장)○ 76. 4

77. 5 중순 세검동 옥수장 (방갈로), 신촌 신성여관 등에서 3회에 걸쳐 性交코져 하였으나 성기 불발기로 실패○ 동 기간 중 총재실에서 수시 키스, 포옹 등 애무 및 음란행위(4) OOO (41세, 전 여군국장)○ 76. 3. 26 영등포 금성호텔 302호실에서 성교하려다 성기 불발기로 음경을 빨게 하는 등 음란행위(5) OOO (40세, 전 OO병원 간호과장)○ 76. 8. 6

76. 9 중순 총재실에서 4회에 걸쳐 키스, 포옹하고 음경을 빨게하는 등 음란행위(6) OOO (24세, 전 OO병원 경리담당)○ 76. 8초순-77. 6하순 총재실에서 4회에 걸쳐 키스, 포옹, 유방 및 음부를 만지면서 주OO에게 강제로 음경을 을 빨게하는 등 음란행위(7) OOO (42세, 전 사무총장, 과부)최태민으로부터 검찰에 피소된 자신의 사기사건 선처조건등으로 스스로 몸을 바치라는 요구를 받고 이를 거절할 경우 해임 등 보복이 두려워○ 78. 5. 14 사직공원옆 옥호미상 호텔에서 최태민의 성기 불발기로 尹OO의 국부와 유방을 빨면서 손가락을 국부에 삽입, 음란행위(8) OOO (35세, 사무총장, 유부녀)○ 봉사단 기획관리실장 및 건물관리실장실에서 중요 업무회의를 가장, 문을 잠그고 음란행위 또는 호텔에서 통정※ 최OO는 정조제공으로 최태민의 총애를 받게 되었으며 도산에 직면한 남편 김OO의 경영업체 (OO교역)를 최태민의 지원으로 회복(9) OOO (51세, 조직국장 과부)○ 조직국장실 또는 호텔 등에서 통정설(10) OOO (25세, 전 비서, 사직 후 결혼)○ 총재실 또는 호텔 등에서 통정설(11) OOO (42세, 제2 대 서울지구,시단장)○ 남편 갑OO (국회의원) 공천문제로 접근 총재실 또는 호텔 등지에서 통정설(12) OOO (43, 전 사무총장)○ 유정희국회의원 공천, 박근혜 총재에게 간청 공천 따냄 (사무총장은 국회의원이 되어야 한다고 과시하기 위함) 남편 OOO이 OO대학 운영자임을 기화로 접근. 상당한 액수의 돈을 최태민에게 바쳤다고 함. 총재실 또는 지방출장 중 호텔 등에서 통정설(출처:인터넷 매체  서울의소리 기사중 한자는 한글로 변경하였고 박근혜측은 정보부 보고서가 허위사실이라 주장했습니다)  박근혜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교육이 올바른 역사다"박근혜의 7인회는 군사독재정부의 고위직과 일본천황과 군사독재를 찬양하는 언론인들이며 안병훈은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 박근혜 선거대책위원장, 부사장출신으로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출판사 기파랑 사장이다박근혜가 올바른 역사교육이라 하는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 style="HEIGHT: 390px; WIDTH: 565px" altHtml=""> 박근혜 "뉴라이트가 대한민국의 희망입니다" " style="HEIGHT: 331px; WIDTH: 566px" altHtml=""> 뉴라이트 대통령을 꿈꾸는 박근혜의 정체를 아십니까? 카톡카스트윗페북그룹메일더보기8월 4주 이 블로그 인기글박정희 차녀, 박근령 통일교 합동결혼식박정희 가계도 (이현란과 박정희)윗 글아소 나치발언.아랫글[한일전] ‘붉은악마 응원 보이콧’ 전범기 등장, 명언으로 대응했지만…글목록 | 방명록블로그 바로가기 홈화면에 추가맨위로DaumPC화면전체보기� Kakao Corp.            박근혜의 미친정책과  대통령 자격  박탈사항 ==========================================?    *  부정선거 당선 무효 소송 3년째 계류 시킨 상태                                   *  세월호 사망보상금 11억4천 만원 선포 / 원인규명없이    *  성게이트 8명 부정선거 사망진단서  총살감을  무혐의 조치        /  이완구 전총리  유죄  희생양    *  집단자위권  자위대 한반도입국 허용 황교안 . 박근혜 라인 안보 재앙 잉태    *  한일 정상회담 위안부 10억엔은 독약의 산물         ( 대일청구권에서 이미  위안부 문제청산)    *  한미정상화담 밑물조공 협상 자위대 입국허용 서명 / 총리가 대타로 국회서 화답   *  북한 핵실험 장거리 미사일 위성발사 대미책 마련 못함     / 안보전략 안절부절, 위탁안보, 구걸안보는 미친정책    *  Thaad 배치는  북한의 핵무기 방어 작전으로 불가는 하다.

   * ? 박근혜 최태민 사생아 김종필 폭로에 대한 탄핵 조치  및 대통령 자격박탈      *2007.8.17.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정두언(새누리당 의원): "최태민과 박근혜 관계를 낱낱이 드러내면요,                                  온 국민이 경악할 것입니다.

그리고 박근혜 대표를 많이                                  좋아 했던 많은 분들이 밥도 못 먹을 것입니다.

"                                                박근혜에게 사생아가 있음을 밝힌 김종필"최태민 아이까지 있는 애가 뭔 정치를 한다는게냐?"http://cafe.daum.net/sisaview/96gK/9   박근혜에게 사생아가 있음을 밝힌 김종필"최태민 아이까지 있는 애가 뭔 정치를 한다는게냐?"http://cafe.daum.net/sisaview/96gK/9 [시사뷰타임즈]아직도 모르는 국민들이 있긴 하지만, 꽤 많은 국민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박근혜의 사촌 형부이기도 한 김종필은 아이까지 '있다는'이라는 들은 이야기 화법이 아니라, 아이까지 '있는'이라는 확정적인 말을 썼다.

김종필의 말에 의하면 박근혜가 애를 낳아 사생아로 어딘가에 있는게 확실하다는 뜻이다.

[출처] 김종필, "박근혜와 최태민 사이에 사생아가 있다!"  ---------------------------------------------------------------------------------------------------이하는 박정희의 실체에 관한 글들에 대한 링크이니 눈이 있는자 볼것이며,귀 있는자 들을수 있기를 바랍니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00n0011&logNo=60100255376 http://society-true.blogspot.kr/ http://blog.daum.net/sjfkd3312/586 

문명자(JulieMoon)님을 기리며..

옳은게 옳은것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진리를 추구했던 존경스러운 분들께 바침..2013년 3월 1일 금요일

see_moon

=======================================================================================================================          ================================================================================================================= 조웅 목사의 증언 ? ================================================================ 조웅 목사의 증언 동영상  동영상??????????????????????????? 5.16??????? ????????? ????? ??? ????????? ??????? ??!! ??????????????!...www.youtube.com?    (펌) 조웅 목사님의 폭로 동영상충격! 경악! 세상이 경악할 충격적인 동영상 (동영상 내용정리, 정윤회에 관한 기사, 동영상 밑에 있습니다)조웅 목사님, 박근혜의 엄청난 비리와 실체 폭로박근혜는 평생을 장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대통령까지 강탈했습니다.

부정선거, 국정원 대선 개입만으로도 박근혜의 대통령 취임을 막고 박근혜를 감옥으로 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아래의 동영상은 박근혜의 추잡하고 엄청난 비리를 폭로했습니다.

박근혜가 대통령에 취임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수치요 비극입니다.

박근혜의 대통령 취임을 막아야 합니다.

박근혜의 대통령 취임을 막기 위해 온 국민이 일어나야 합니다.

박근혜의 대통령 취임을 강력히 반드시 막읍시다.

● 인터뷰 조 웅 목사 - 박정희와 함께 5.16쿠테타를 주도. [중앙정보부(現 국정원) 창설멤버]- 황태성 사건을 미 CIA에 제보 하여 미국에 한.미 합동조사단을 요구하였으나 무산 됨.- 그 일(황태성 사건)을 CIA에 제보했다는 이유로 박정희로 부터 무수한 암살 위협을 받음. - 박정희가 조 웅을 암살하라고 하자 김형욱(前 중앙정보부장)이 반대 (김형욱은 조 웅 목사님을 커버해주셨으나 1979년 프랑스에서 실종. 조 웅 목사는 또 김재규를 보호하려다가 테러도 당했다고 함.)--------------- 인터뷰 내용 요약. ---------------● 현재 상공회의소 소장인 '장자크구로아(EU 코리아 이사장)'는 북한에 7년 거주,김정일의 첩보라인. 박근혜는 EU코리아 이사이며 현재 박근혜와 밀접한 관계. ● 박근혜, 정윤회(최태민 딸의 남편), 장자크구로아, 수행비서 총 4명이 김정일 전용기 편으로 평양 도착.● 박근혜와 김정일이 4시간 30분간 독대. 만찬에서 박근혜는 마약이 섞인 '백두산삼독주'를 마심, 3박4일 동안 김정일을 만났고. 김정일과 동침(잠자리)함.(미국 CIA 정보라고 함)● 박근혜는 평양 방문 시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은 500억을 들고 감.(미국 CIA 정보 /조 웅 목사가 외환관리법위반으로 고발)● 박근혜는 김일성의 묘소에 참배( 고려연방제를 창설 하겠다고 선서 / 조 웅 목사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 박근혜는 최태민과 15년을 동거를 했고, 그의 아이를 두 번 지움. [조 웅 목사는 검사에게 박근혜 생식기 조사(임신 여부)를 하자고 했지만 검사가 거절.]● 박근혜는 최태민 사망 후 정윤회(최태민 딸의 남편)와 불륜관계를 가지며 16년을 동거. [현재 정윤회는 최태민이 박근혜에게 준 재산관리를 하며 인수위원 안에서 모든 키를쥐고있다.

]● 박근혜 뒤에는 정윤회가 있다.

돈. 인사 등등.. 박근혜는 허수아비다.

실질적인 실세는 정윤회라고 함. 정윤회와의 불륜관계는 최태민 본처의 첫째 아들 최재석이 폭로한 것이고 함.● 박정희 집안 전체가 마약을 하고있다.

현재도 박근혜는 정윤회와 마약을 할 것이다.

박지만 뿐만아니라 집안 전체가 마약을 한다.

(마약 제공자는 '장자크구로아')● 박근혜 뒤에는 북한첩보라인인 장자크구로아가 있음.● 정윤회는 현재 박근혜의 통치자금을 관리하고 모든 인사권을 가지고 밀실정치를 한다.

현재 인수위 및 공직 임명자들도 모두 정윤회의 작품이며, 모조리 허수아비 일 뿐이다.

● 증거는 책과 수백장의 고발장이다.

책(제목: 황태성 박정희 김종필 커넥션) 은조 웅 목사가 직접 씀. 겨우10000부 발행만 허가를 받았고 현재는 품절.● " 박근혜의 집권을 필히 막아야 한다.

목숨걸고 하는 말이다.

아직까지도 신변의위협을 받는다.

박근혜는 도덕성, 이념에도 문제가 있고 절대 대통령이 되서는 안되는인물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기에 답답하고 원통해서 말한다.

박근혜가 안보 안보 하는것은 다 쑈이다.

북한첩보라인(장자크구로아)과 이미 깊숙히연관되어있다.

또 이 사실을 아는 분은 이항(?) 목사님 및 고발장 쓴 거 본 사람들이다 " -조 웅 목사-● 조 웅 목사는 불륜 및. 국가보안법위반. 외환관리법위반 사건으로 대검찰정에박근혜 고발을 수백번 하셨지만 흐지부지 되다가 묻혔다고 함.Posted on Wednesday, October 11, 2006 9:07:12 PM by Registered TOPICS: Editorial; Foreign Affairs; News/Current Events; Political Humor/CartoonsKEYWORDS: kimjungil; northkorea; smalleverything; smallman; soronery That's extreme. Reminds me of Tom Daschle. 1 posted on Wednesday, October 11, 2006 9:07:13 PM by Registered 정윤회 기사 링크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12/09/18/201209180500008/201209180500008_2.html [2012 대선] 최태민 사위 Mr.Q 정윤회 “박근혜 막후인물설 추적” 허만섭 | mshue@donga.com ● 朴 의원실 비서실장 ‘문고리 권력’ ● 2004년 朴 당대표 된 뒤 자취 감춰 ● “막후에서 공천 등 정치 개입” 소문 무성 ● “박근혜-정윤회, 결별 이유 없다”   최태민  정치권에서 회자되는 가장 미스터리한 남자. 바로 고(故) 최태민 목사의 사위 정윤회 씨다.

새누리당 대선 후보인 박근혜 의원의 전(前) 보좌관으로 알려진 정 씨는 2004년 이후 종적을 감췄다.

박근혜 후보 진영은 “2004년 이후 박 후보와 정윤회 씨 사이에 접촉은 일절 없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연합뉴스, , 등 여러 매체는 ‘지금도 박근혜의 숨은 실세?’ ‘공천에도 관여한다?’는 각종 설을 활자화한다.

“박근혜가 집권하면 정윤회는?”이라는 궁금증이 따라 나오는 게 현실이다.

정치권의 ‘선수들’ 사이에서 정윤회는 이미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 박근혜와 어떠한 관계를 맺어왔는지에 대해선 한 줄기의 빛도, 정보도 새어나오지 않는다.

새누리당에선 ‘정윤회’를 언급하는 것을 금기처럼 여긴다.

‘신동아’는 그와 접촉했던 인사들의 진술 등을 통해 이 남자를 스케치해봤다.

다른 증언을 소개하기 전에 우선 가 2000년대 초 정윤회 씨를 몇 번 만난 경험부터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약간 검고 호남형인 얼굴, 호리호리한 체형, 애연가, 부드러운 말투…. 국회 의원회관 박근혜 의원실에서 만난 그의 외형적 인상이었다.

그는 독일에서 유학했다고 했다.

박사 과정까지 거쳤다는 것으로 들었는데 확실치는 않다.

그의 집안, 고향, 학력은 박근혜 측 외에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좌장역 ‘비선(秘線) 비서실장’현재 여러 언론에 “박근혜 의원의 전 보좌관”으로 보도되는 것과 달리 당시 그는 “박근혜 의원의 비서실장”이라고 자신을 에게 소개했다.

그래서 그를 “실장”으로 불렀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는 박 의원실에서 풀타임으로 근무했지만 등록된 보좌관은 아니었던 것 같다.

박근혜 의원의 보좌관-비서관은 박 의원의 정계 입문 이래로 지금까지 변함없이 채워져왔다.

박 후보는 2007년 대선 경선 때 정윤회 씨를 “전직 입법보조원”이라고 설명했다.

이 발언 역시 정 씨가 공식 보좌관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일 것이다.

정 씨와 자주 만났다는 A씨는 에게 “박근혜의 입법보조원을 지금의 인턴직원 정도로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 씨에 대해 “‘박근혜 보좌진의 좌장 역할을 해온 비선 비서실장’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했다.

의원실 내에 비선을 두는 것은 지금의 시각으로 보자면 예외적인 운영체계이지만 그렇다고 법률이나 윤리에 저촉될 만한 사안은 아니었다고 한다.

이어지는 A씨의 증언은 당시 박근혜에게서 정윤회의 역할과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케 한다.

 정윤회         “1998년 박근혜 의원이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로 정계에 첫발을 내디딜 때부터 정윤회 실장이 박 의원을 도왔다.

2012년 현재까지 그대로 이어져오는 박 의원의 보좌진 세팅에도 정 실장이 어느 정도 관여한 것으로 안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정 실장은 공식 직함 없이 비서실장으로, 그러니까 당연히 월급이 안 나오는 무보수로, 박근혜 의원실에서 일했다.

그렇지만 박 의원실 내부를 종합적으로 컨트롤했다.

보통 보좌관이 의원 방에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조심스러워하고 예의를 갖추는 편인데 정 실장이 격의 없이 들어가는 것을 봤다.

그만큼 박근혜 의원과의 신뢰관계가 돈독했다.

박 의원이 대정부질의 같은 의정활동을 할 때 정 실장이 가끔 자문 교수단으로 알려진 외부 싱크탱크 같은 곳에서 자료를 만들어와 박 의원에게 제공해온 것으로 안다.

이런 연유로 정 실장이 의원실에서 나간 이후에도 ‘논현동팀’‘삼성동팀’ ‘강남팀’ 등 유사한 외곽조직을 운영하면서 박 의원을 돕고 있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돌고 있는 것이다.

정 실장의 거주지는 주로 강남이었다.

또한 정 실장은 박 의원실에 있을 때 박 의원과 만나기를 희망하는 외부인들을 함부로 박 의원에게 연결해주지 않았다.

정 실장에게 섭섭해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로 인해 정 실장은 소위 박근혜의 ‘문고리 권력’으로 알려졌다.

”  정윤회와의 술자리정윤회 씨와 여러 번 술자리를 가졌다는 B씨는 “박근혜 후보가 가장 믿는 사람은 가족 외에는 정윤회 실장과 이상렬 전 EG회장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B씨의 말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 경호실에서 근무한 이상렬 씨는 이후 박 대통령의 아들인 지만 씨가 오너로 있는 EG그룹의 회장으로 재임했다.

EG그룹의 이광형 부회장은 박 대통령 때 청와대 비서실에서 일했다.

고 최태민 목사의 사위인 정윤회, 아버지의 부하인 이상렬, 이광형을 박근혜 의원이 꽤 신뢰한 것으로 안다.

정윤회 실장은 담배는 좋아하지만 술은 잘 안 마시는데 이상렬 회장과는 많이 마시는 편이었다.

논현동 카페에서 만나면 나를 포함해 셋이서 양주 두 병을 비웠다.

이 회장이 가끔 자기 차 트렁크에서 양주를 꺼내오는 경우가 있었지만 술값은 대부분 정 실장이 냈다.

정 실장은 강남 등지에 부동산을 많이 갖고 있어서인지 부담 없이 냈다.

” 정윤회-최순실 부부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640-1 미승빌딩을 보유하고 있다.

2008년엔 보유하던 강남구 신사동 639-11 빌딩을 85억 원 정도에 매각했다.

2002년까진 강남구 역삼동 689-25 빌라를 소유했다.

2004년엔 강원 평창군 땅 18만㎡를 사들이기도 했다.

미승빌딩 5층엔 정 씨가 대표이사로 되어 있는 ㈜얀슨이 입주해 있다.

그러나 영업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고 정 씨도 출입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후보가 2002년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한 뒤 총재로 취임하자 정 씨는 총재비서실장으로 활동했다.

정치권 사정을 잘 아는 다른 관계자는 당시 정 씨의 영향력이 컸다고 회상했다.

“한국미래연합 창당 자금을 대어온 모 씨가 당무에 자주 간섭했다고 한다.

무리한 측면이 있었지만 누구도 나서지 못하고 있는데 정윤회 실장이 그를 제지했다.

격분한 모 씨가 정 실장을 제외할 것을 요구했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모 씨는 자금을 회수해 가버렸다.

” 또 다른 정치권 인사는 “당시 정 실장이 박근혜 의원 곁에서 창당 작업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여러 사람은 정윤회 씨가 박근혜 의원의 비서실장일 때도 은인자중(隱忍自重)해왔다고 말한다.

다음은 A씨의 설명이다.

 “나, 요양 가야 할 것 같다”“정윤회 실장은 의원실 일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면서도 소수의 사람과만 친하게 지냈다.

이들에게도 자신에 대해선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의 고향, 학력, 심지어 나이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와 술을 마시다 내가 궁금해 ‘서로 민증(주민등록증) 까보자’고 했다.

그때 그가 1954년생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꽤 의식했다.

저녁 약속을 잡을 때도 ‘국회에서 가까운 여의도에서 보는 건 어떤가’라고 하면 늘 ‘강남으로 가지’라고 했다.

또한 박 의원이나 본인과 관련해 질문 받는 것을 싫어했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에이, 뭐 그런 걸 물어보나’라고 했다.

” 박근혜 후보는 2004년 3월 한나라당 대표가 됐다.

이후 정윤회 씨는 박근혜 의원실을 떠나 종적을 완전히 감춘다.

이 상황을 모 인사는 이렇게 술회했다.

“더위가 채 가시기 전인 2004년 어느 날, 정윤회 실장이 ‘나 몸이 안 좋다.

요양가야 할 것 같다.

앞으로 한동안 못 보게 될 거다’라고 말했다.

얼마 뒤 그는 사라졌다.

그를 만나온 거의 모든 사람이 그와의 연락이 두절됐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스스로 신변을 정리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최태민 목사의 사위가 곁에 있으면 아무래도 박근혜 의원에게 부담이 될 터였다.

이후 ‘정윤회가 뒤에서 박근혜를 돕는다’는 이야기만 나왔다.

그러나 그를 접촉했다는 사람을 볼 수는 없었다.

그와 통화했다는 사람이 있기에 찾아가서 ‘정말이냐’고 물어보니 ‘아니다’라고 하더라.” 정윤회 씨와 관련되는 의문은,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의문은 ‘박근혜에게 있어 정윤회가 수평관계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 수평관계에 대해 정치권에선 추측이 무성하다.

이에 대해 2004년까지 정 씨를 만나본 사람들은 “핵심측근은 맞지만 멘토라는 주장은 억측”이라고 말한다.

“박근혜보다 나이가 어리고 박근혜를 깍듯하게 모셨다” “오랫동안 관찰한 바로는 스마트한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우직한 스타일이었다” “박근혜의 워딩을 만들어줄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박근혜의 주변을 관리하는 데에 주력했다”는 이야기였다.

둘째 의문은 ‘최태민 공세 차단 이외에 박근혜가 정윤회와 결별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선 정윤회 씨를 만나본 이들은 대체로 수긍했다.

이들은 “정윤회가 상관인 박근혜에 대한 의리가 대단하고 일을 신중하게 처리한다”고 했다.

박근혜의 관점에서 정윤회에게 내재적으로 접근하는 경우 “최태민 목사와의 인연도 있는데다 충성심과 능력을 갖춘 정윤회를 멀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근혜 후보는 2007년 대선 경선 검증청문회에서 “대통령이 돼도 최 목사 가족과 계속 관계를 가질 것인가”라는 질문에 “정윤회 비서가 능력이 있어 실무 도움을 받았다.

법적으로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실력이 있는 사람이면 쓸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윤회, 수면 위로 나와야이러한 정황상 같은 강남에 거주하면서 2004년 이후 박근혜와 정윤회가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현실이 오히려 비정상일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정윤회에 대해 궁금해하지만 언론을 비롯해 누구도 정윤회를 만나지 못하는 점 또한 이상하다고 하겠다.

이는 무엇인가 인위적이고 강력한 통제가 작동하고 있다는 반증으로 보인다.

왜 그래야 하는 걸까? 그의 증발이 더 불길해 보이는 이유다.

만약 박근혜 정권의 수립을 가정해본다면 말이다.

열린 사회에서 예측불가능성보다 더 나쁜 것은 없다.

앞으로의 정권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공적(公的) 시스템’에 의해서만 작동되어야 한다.

“정윤회가 ‘박근혜 정권의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정치권 일각의 시선에 당사자들이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정윤회 씨가 수면으로 등장해 할 말을 하는 게 낫다고 본다.

 최태민과 박근혜고(故) 최태민 목사는 육영수 여사 사망 이듬해인 1975년 퍼스트레이디 대리를 한 박근혜 후보에게 위로 편지를 보냈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만남을 가졌다.

박 후보는 2007년 대선 경선 검증청문회에서 “마음에 와 닿고 만나보고 싶어 만난 분 중 하나”라고 했다.

이후 최 목사는 목사 안수를 받았고 1975년 5월 개최한 구국기도회에서 박 후보를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로 추대했다.

구국선교단은 구국봉사단, 새마음봉사단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런데 당시 중앙정보부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최태민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최 목사에 대해 이권 개입, 횡령, 사기, 융자 알선 등의 권력형 비리와 여자관계 의혹이 제기됐다.

박정희 대통령 공보비서관을 지냈던 선우련 씨는 비망록에서 “1977년 박 전 대통령이 최 목사를 친국했다”고 썼다.

1979년 10·26사태 이후 최 목사는 전두환 합동수사부에 의해 강원도로 보내졌다.

그러나 이후 박 후보가 이사장을 맡은 육영재단의 고문을 지내는 등 박 후보와 인연을 유지해오다 1994년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대선 당시 ‘신동아’ 6월호는 중앙정보부의 최태민 관련 보고서를 최초로 공개하면서 보고서 내용의 사실성을 함께 검증했다.

1980년 보안사령부 처장으로서 최 목사를 수사한 이학봉 전 의원은 2007년 ‘신동아’ 인터뷰에서 “최태민 목사가 기업체로부터 돈을 뜯어낸 것으로 확인된 게 얼마나 되는지…별로 없었던 것 같다.

박근혜 전 대표는 최태민 의혹과 관계가 없었다”고 했다.

1970년대 말 중앙정보부 파견 검사로서 최 목사를 수사한 백광현 전 내무부 장관은 ‘신동아’에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최태민 문제를 억지로 갖다 붙였다.

최태민 비리가 사실인지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   문명자  40년 백아관 출입 X 파일 수첩  참조 ( 박정희 비자금 유니온 뱅크, 김대중과 박정희의 발자취)                                                   http://blog.daum.net/skyripper/16899049???? ??? ??? ??? ???(??? ??? ???) 03 ??blog.daum.net               당사자들의 강력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언급되는 이유가 뭘까.  허핑턴포스트코리아가 그동안 나온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최태민 목사와 그의 사위 정윤회씨의 관계를 정리했다.

    1. 1975년 최태민 목사와의 만남   박근혜 대통령은 1974년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가 총탄에 쓰러진 뒤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1975년, 최태민 목사를 만나게 된다.

   박 후보와 최 목사가 처음 만난 것은 1975년이다.

  육영수 여사 사망 직후 최 목사가 박 후보에게 면담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낸 게 계기라고 한다.

  최 목사는 75년 '대한구국선교단'을 발족시키고 총재에 취임한다.

 박 후보는 명예총재로 추대 됐다.

    1976년 당시 박근혜(오른쪽)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가 최태민 목사와 함께 ?구국단체결연 단합대회에 참석한 장면.  2007년 공개된 중앙정보부(이하 중정)의 '최태민 수사자료'(1977년 작성 추정)에 따르면  최 목사는 당시 박 후보를 등에 업고 여러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각종 이권에 개입했고  권력형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돼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 목사의 비리 의혹은 횡령, 사기 등 44건.  김재규 전 중정부장은 10·26 항소이유서에서 자신이 최 목사 문제를 박정희 당시 대통령에게 보고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게 10·26을 일으킨 한 요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중정 발(發) 자료와 주장이 최 목사 의혹의 실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2012년 8월 22일, )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수괴미수죄로  1980년 5월24일 서울구치소에서 교수형됐다.

  ?신동아에 따르면 재판과정에서 김재규 변호인은 ‘항소이유서’와 ‘항소이유 보충서’를 군법회의 측에 제출했는데,  이 두 서류에 992자(字) 분량으로 최태민 관련 내용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신동아가 보도한 ‘박근혜 X파일 & 히든카드’의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구국여성봉사단이라는 단체는 총재에 최태민, 명예총재에 박근혜양이었는 바,  이 단체가 얼마나 많은 부정을 저질러왔고 따라서 국민,  특히 여성단체들의 원성의 대상이 되어왔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아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영애가 관여하고 있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아무도 문제 삼는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민정수석 박승규 비서관조차 말도 못 꺼내고 중정부장인 본인에게 호소할 정도였습니다.

  본인은 백광현 당시 안정국장을 시켜 상세한 조사를 하게 한 뒤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던 것이나  박 대통령은 근혜양의 말과 다른 이 보고를 믿지 않고 직접 친국까지 시행하였고,  그 결과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하였으면서도 근혜양을 그 단체에서 손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양을 총재로 하고, 최태민을 명예총재로 올려놓아 결과적으로 개악을 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  (2007년 6월 1일, 신동아)   ?2. 이름 7개, 부인 6명 승려목사 최태민 미스테리    ?그렇다면, 최태민 목사의 전력은 어땠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최태민 목사와 함께 ‘새마음봉사단’을 대외활동의 중심으로 삼았다.

  사이비종교 ‘교주’였다는 설도 있어 최태민의 전력이 불분명하던 터였다.

  아버지 박정희도 20대의 딸이 그에게 현혹됐다고 생각해 불만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최태민은 흔히 목사로 불린다.

  1975년 4월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합총회로부터 목사 안수를 받은 뒤부터 생긴 호칭이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와 전두환의 합동수사본부를 거치며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수사자료’를 보면,  그는 불교 승려가 된 적도 있었고 천주교 세례를 받기도 했다.

  ‘태민’이란 이름도 각종 가명을 포함해 7번째 이름이다.

  70년대 들어 최태민은 서울과 대전 일대에서 난치병을 치료한다는 등 사이비 종교 행각을 벌였다.

  불교, 기독교, 천도교를 종합했다는 교리를 내세웠고,  방민이란 가명을 쓰면서 ‘원자경’, ‘칙사’ 또는 ‘태자마마’라는 호칭을 자처했다.

 (2012년 7월 29일, 한겨레)  ? 이처럼 주변에서 손가락질을 하는 최 목사에게 박근혜 대통령이 의지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형욱 회고록’에 따르면 1974년 육영수 사망 직후 최 목사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씌어있다.

   “어머니는 돌아가신 게 아니라 너의 시대를 열어 주기 위해 길을 비켜 주었다는 것, 네가 왜 모르느냐.  너를 한국, 나아가 아시아의 지도자로 키우기 위해 자리만 옮겼을 뿐이다.

  어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나를 통하면 항상 들을 수 있다.

  육 여사가 꿈에 나타나 ‘내 딸이 우매해 아무 것도 모르고 슬퍼만 한다’면서 ‘이런 뜻을 전해달라’고 했다.

”   물론 최 목사는 부인했다.

  그는 ‘가정조선’(1990년 10월호) 인터뷰에서 “‘현몽’ 등의 말이  대학 교육을 받은 박(근혜) 이사장에게 먹혀들 것 같아요?”라며 내용을 부인했다.

    3. 동생 박근령과 박지만, 노태우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다   박근령씨가 지난 2013년 10월25일에 열린 제1회 박정희 전 대통령 추모예배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전두환 정권이 끝나고 대외 활동을 재개한 박근혜 대통령은 최태민 목사와 함께  새마음봉사단의 후신인 근화봉사단을 꾸린다.

  그러나 이후에도 계속 최 목사는 논란이 됐고,  1990년 육영재단 분란 당시 최태민 목사의 딸 최순실 씨 전횡 논란이 불거졌다.

      박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과 박지만은 1990년 노태우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낸다.

   "진정코 저희 언니(박근혜)는 최태민씨에게 철저히 속은 죄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속고 있는 언니가 너무도 불쌍합니다!  대통령의 유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어디에 하소연 할 곳도 없고 또 함부로 구원을 청할 곳도 없었습니다.

 최씨는 아버님 재직시 아버님의 눈을 속이고 우리 언니인 박근혜의 비호 아래 치부하였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최씨는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자신의 축재 행위가 폭로될까봐  계속해 저희 언니를 자신의 방패막이로 삼아 왔습니다.

" (2007년 8월 6일, 오마이뉴스) ? 1990년 12월 우먼센스 인터뷰에 따르면 박지만 씨는 “큰 누나와 최씨와의 관계를 그냥 두는 것은 큰 누나를 욕먹게 하고 부모님께도 누를 끼치게 되는 것 같아  떼어놓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4. 최태민의 사위, 정윤회의 등장   은둔 생활을 하던 박근혜 대통령이 1998년 국회의원이 된다.

  이후 최태민 목사의 사위(최순실의 남편) 정윤회 씨가 비서실장이란 호칭을 달고 등장한다.

   최태민 사후에도 그의 그림자는 박근혜 곁에 남았다.

  최순실의 남편 정윤회가 박근혜의 정계 입문 때부터 등장했다.

 그는 ‘비서실장’으로 불렸다.

  2002년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을 때도 자리를 지켰다.

  박근혜가 한나라당 대표가 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곁을 떠난 것으로 알려진 2004년 6월

2006년 5월에는  국회 입법보조원으로 등록했다.

  박근혜의 정치 입문 초기에 정윤회와 여러 차례 직접 만났던 한 전직 는  “최순실은 박근혜가 장충동에 살던 시절부터 말동무로 지낸온 것으로 들었다”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박근혜 의원실의 보좌진을 구성한 것도 정윤회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2012년 7월17일, 한겨레)    그런 정씨는 국정에 계속 개입한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특히 올해 초부터 이런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세계일보는 지난달 28일 세계일보가 단독입수한 청와대 내부 문건에 따르면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올 1월6일  ‘靑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제목의 동향 감찰 보고서를 작성했다.

   세계일보는 “감찰 조사에서 정씨는 이들과 매달 두 차례 정도 서울 강남권 중식당과 일식집 등에서 만나  청와대 내부 동향과 현 정부 동향을 논의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이들 모임에는 소위 ‘비선 실세’로 불리는 이재만(48) 총무비서관과 정호성(45)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48) 제2부속비서관을 비롯한 청와대 내부 인사 6명,  정치권에서 활동하는 청와대 외부 인사 4명이 참석한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이들을 중국 후한 말 환관에 빗대 ‘십상시’로 지칭하고 실명으로 언급했다.

   시사저널 '박지만-정윤회 권력암투'가 보도된 1275호 ? 그동안 정윤회씨의 청와대 개입설은 꾸준히 제기돼 온 바있다.

  지난 3월 ‘시사저널’은 정 씨가 사람을 시켜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회장을 미행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박 회장은 자신의 자택으로 접어드는 골목길에 차를 세운 채 서둘러 자신의 운전기사를 퇴근시켰다.

  아니나 다를까. 오토바이가 그 골목길로 들어왔다.

 박 회장은 오토바이 운전기사를 그 자리에서 붙잡았다.

  그리고 ‘왜 나를 미행하느냐’고 추궁했다.

 박 회장은 이 오토바이 기사로부터 자술서 여러 장을 받아냈다.

  누구의 지시로, 언제부터 자신을 미행했는지 등이 자술서에 자세히 적혔다.

  오토바이 기사는 자술서에 ‘정윤회씨의 지시로 미행하게 됐다’고 실토했다.

  박 회장은 이후 자신의 지인들과의 사석에서 당시 사건을 전하며 상당히 분노했다.

  사석에서 박 회장은 자신을 미행했던 오토바이 기사를 ‘정윤회의 사주를 받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박 회장이 정씨에겐 항의하지 않았다.

  그 대신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에 김 실장은 ‘그럴 리가 없다’고 해명했다.

 (2014년3월23일, 시사저널)  ?  지난해 7월19일 경기 과천시 주암동 서울경마공원에서 딸이 출전한 마장마술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정윤회씨.    또한 정씨의 딸이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 당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지난 6월 시사저널을 통해 보도되는 등  정씨가 박근혜 정권의 '실세'라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됐다.

  5. 청와대 축출된 조응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이처럼 현 정부의 '비선 실세'로 거명된 정윤회씨 관련 동향을 다룬 청와대의 내부 보고서가 나오자  언론 접촉을 꺼려왔던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당사자 정윤회씨가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양측이 전면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은 2일  인터뷰에서  "지난 4월 10

11일 이틀에 걸쳐 청와대 공용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는데 모르는 번호여서 받지 않았다"면서  "그 직후 '정윤회입니다.

 통화를 좀 하고 싶습니다'라는 문자가 왔다"고 했다.

   그는 "당시 '정윤회씨가 박지만 EG 회장을 미행했다'는 시사저널 보도로 정씨가 소송을 제기하는 등  화가 나 있는 상황이었고 순간적으로 고민하다가 받지 않았다"고 했다.

   또 조 전 비서관은 "정윤회씨가 건 전화를 받지 않은 그 다음주 화요일 홍경식 민정수석이 갑자기 불러서 갔더니  ‘그동안 수고했다’며 그만두라고 하더라”며  “문건 내용은 실제 모임에 참석해서 얘기를 듣지 않았으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세한 것이었다”면서  신빙성이 “6할 이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조 전 비서관은 지난 1월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정윤회씨가 3인방을 포함한 청와대 핵심 비서관 등과  매월 두 번씩 만나 국정에 개입한다'는 취지의 구두 보고를 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내부적으로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결론을 내렸고,  문건을 작성한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박모 경정(행정관)을 2월 경찰로 원대 복귀 조치됐다.

  반면 정윤회씨는 와의 인터뷰에서 문제의 보고서가  과거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조작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정씨는 1일 와의 인터뷰를 통해 "내가 실세라는 것은 싸구려 음모론"이라면서 "하나라도 잘못이 있으면 감방에 가겠다"고 주장했다.

  또 정씨는 "대통령은 물론 3인 측근 비서관들과는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10과 회동설에 대해 "낭설이자 소설"이라고 강력 부인했다.

 ?특히 정씨는 "2007년 대선 때 정치인 박근혜의 10년 비서실장을 그만둔 이래 나는 7년간 야인으로 살고 있다"며  "국정 개입은커녕 청와대 비서관들과는 연락도 끊고 있다"고 말했다.

 국정개입을 했다는 사실, 그리고 청와대 비서관들과 연락을 끊고 있다는 사실에서  서로 간의 의견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윤회씨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하루사이에 밝혀졌다.

 정윤회 씨는 2일 YTN과 한 전화인터뷰에서 이 비서관을 통해 조 전 비서관에게 연락을 부탁한 사실은 인정했다.

  당시 자신이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회장을 미행했다는, 이른 바 '박지만 미행설'과 관련해  조 전 비서관과 전화통화를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이 비서관을 통해 부탁했다는 요지였다.

    또 현 정권 출범 때부터 지난 4월 사퇴할 때까지 초기 조각(組閣)을 담당했던 조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인사검증에 전혀 손쓰지 못한 대목은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했음을 짐작케하고 있다.

   조 전 비서관은 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아예 검증할 기회를 얻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며  "올봄에 청와대에 근무하는 행정관들을 선임행정관(2급)으로 승진시키는 인사가 있었다.

  이재만 총무비서관에게 '2급이면 인사 검증 대상이니 미리 명단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그냥 발표가 나버렸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원칙과 신뢰'가 전혀 지키지 않은 셈이다.

   최태민, 정윤회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40여년을 이어온 인연의 뿌리는 과연 이번에 잘릴 것인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박 대통령의 주장대로 ‘근거 없는 낭설’에 불과한 것일까.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작성자 원성윤   2014년 12월 02일 ???http://www.huffingtonpost.kr/2014/12/02/story_n_6252770.html#???, ???, ????? 5?? ?????? ???? ??? ??? ??? ?? ??, ??? ???? ??? ???(1912

1994) ??? ??? ??? ???. ? ??? ?? ??...www.huffingtonpost.kr  또 한겨레에 따르면 두 재단 사무실은 불과 440m 떨어져 있다.

모두 재단과 최씨 신사동 집과의 거리는 걸어서 20분 남짓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삼성동 사저와 재단은 더 가까워 800m 안팎이다.

한겨레는 “대통령이 퇴임 뒤 활동 공간으로 삼기 위해 두 재단이 만들어졌다는 추정이 지리적으로 설득력을 얻는 대목”이라고 분석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야권이 제기한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의혹에 대해 “이런 비상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폭로성 발언들은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왼쪽부터 우병우 민정·안종범 정책조정 수석, 박 대통령, 김재원 정무수석. <iframe width="640" height="360" src="http://videofarm.daum.net/controller/video/viewer/Video.html?vid=v385c5s02T5M0SswTV0P2o2&play_loc=daum_news&play_loc=daum_news&width=640&height=360&wmode=transparent&autoplay=false" frameborder="0" scrolling="no"></iframe> http://tvpot.daum.net/v/v385c5s02T5M0SswTV0P2o2[Daum tv?]? ??? "????.. ???? ??, ???? ?? ??? ?? ?? ?...[22? ?? ????? ?? ???????? ??? ??? ???? ????? ?? "????? ???? ??? ???? ?? ??? ??...tvpot.daum.net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일 박근혜 대통령이 착용하고 있는 브로치와 목걸이 등 액세서리를 최순실씨가 강남에서 구입해 제공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x-style type="text/css">      <iframe width="640" height="360" src="http://videofarm.daum.net/controller/video/viewer/Video.html?vid=v1d38iyy0yIuYW0St0BEBBD&play_loc=daum_news&play_loc=daum_news&width=640&height=360&wmode=transparent&autoplay=false" frameborder="0" scrolling="no"></iframe> http://tvpot.daum.net/v/v1d38iyy0yIuYW0St0BEBBD[Daum tv?]??? "'???? ??' ???.. ?? ?? ????? ?? ?? ? ?...[??? ?????? ??? 20? ?? ?? ??? ?? ?????? ?? ?? ?? ??????? ??? ?????? "?? ?? ??? ...tvpot.daum.net    <x-style type="text/css">      </x-style> </x-style>???출처 :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3723807&pageIndex=1?<??>??? ????? ???? 800m - Daum ?????? ?????? ??? K??? ??? ????? ???? ? ?? ??? ?? ????? ??? ??? ???? ??? ????? ?...bbs1.agora.media.daum.net  아래기사 참조.   "최태민 목사 일가 박근혜 만나기 전까지 가난했다"- 최태민목사 5번째 처 아들 조순제 진정서관련기사 바로가기  ☞  http://blog.naver.com/oes21c/220180187301??? ?? ?? ???? ????? ??? ??(2007? 8? 8?)??? 5?? ? ?? ???? ????? ??? ?? ??? ?? ?? ????? 8? ? ??? ???? ??? ? ???? ??...blog.naver.com 최태민 목사 5번째 딸인 최순실 씨는 20

30대 부터 부동산 거래를 많이 했다고 한다.

그 자금의 출처는 최순실 자신이 유치원을 운영하여 벌었다는데 납득이 안되는 답변이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측도 최순실씨가 땅을 매입할 때 최태민 목사 재산이 유입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특별한 소득원 없이 부동산 재벌이 되어있는 최태민 목사 딸들.제대로 된 나라라면 한번 쯤은 조사해 봐야하지 않을까?이 부동산 재벌이 되기까지 최태민 목사와 박근혜의 기여도는 어디까지인지 궁금하다.

?최태민 목사의 뇌물 비리들과 박근혜?관련기사 바로가기  ☞  http://blog.naver.com/oes21c/220058413878????? ??? ???? ???? ? ??? ??? ???. ?? 14?, ?? 1?, ???? ?? 11?, ?? 13?, ???? 12?...????? ??? ????. ??? ...blog.naver.com?? 최순실 씨가 소유한 강남구 신사동 7층짜리 건물로 시가는 200억 원대라고 한다.

?그리고 최순실 씨는 하남시 신장동에 위치한 음식적 부지를 2008년 매입해 보유하고 있는데 시세는 40억원대라고한다.

? 최순실 씨는 강원도 평창군 일대 23만 431㎡(약 6만 9705평)의 땅을 보유했으나 2011년 최순실의 딸 정유연 양에게 증여했다.

?  최태민 목사 6녀 최순천씨 일가가 보유하고 있는 청담동 9층 건물 시가는 약 1000억원 이상호 고발뉴스의 취재를 막는 경비?최태민 목사 6녀 최순천씨 일가가 보유한 서초구 반포동 4층짜리 건물, 시가는 100억원 대 ?최태민 목사 4녀 최순득씨 일가가 보유한 강남구 삼성동 7층 건물, 시가 1000억원 대?  당사자들의 강력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언급되는 이유가 뭘까.  허핑턴포스트코리아가 그동안 나온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최태민 목사와 그의 사위 정윤회씨의 관계를 정리했다.

    1. 1975년 최태민 목사와의 만남   박근혜 대통령은 1974년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가 총탄에 쓰러진 뒤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1975년, 최태민 목사를 만나게 된다.

   박 후보와 최 목사가 처음 만난 것은 1975년이다.

  육영수 여사 사망 직후 최 목사가 박 후보에게 면담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낸 게 계기라고 한다.

  최 목사는 75년 '대한구국선교단'을 발족시키고 총재에 취임한다.

 박 후보는 명예총재로 추대 됐다.

    1976년 당시 박근혜(오른쪽)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가 최태민 목사와 함께 ?구국단체결연 단합대회에 참석한 장면.  2007년 공개된 중앙정보부(이하 중정)의 '최태민 수사자료'(1977년 작성 추정)에 따르면  최 목사는 당시 박 후보를 등에 업고 여러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각종 이권에 개입했고  권력형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돼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 목사의 비리 의혹은 횡령, 사기 등 44건.  김재규 전 중정부장은 10·26 항소이유서에서 자신이 최 목사 문제를 박정희 당시 대통령에게 보고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게 10·26을 일으킨 한 요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중정 발(發) 자료와 주장이 최 목사 의혹의 실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2012년 8월 22일, )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수괴미수죄로  1980년 5월24일 서울구치소에서 교수형됐다.

  ?신동아에 따르면 재판과정에서 김재규 변호인은 ‘항소이유서’와 ‘항소이유 보충서’를 군법회의 측에 제출했는데,  이 두 서류에 992자(字) 분량으로 최태민 관련 내용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신동아가 보도한 ‘박근혜 X파일 & 히든카드’의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구국여성봉사단이라는 단체는 총재에 최태민, 명예총재에 박근혜양이었는 바,  이 단체가 얼마나 많은 부정을 저질러왔고 따라서 국민,  특히 여성단체들의 원성의 대상이 되어왔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아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영애가 관여하고 있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아무도 문제 삼는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민정수석 박승규 비서관조차 말도 못 꺼내고 중정부장인 본인에게 호소할 정도였습니다.

  본인은 백광현 당시 안정국장을 시켜 상세한 조사를 하게 한 뒤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던 것이나  박 대통령은 근혜양의 말과 다른 이 보고를 믿지 않고 직접 친국까지 시행하였고,  그 결과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하였으면서도 근혜양을 그 단체에서 손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양을 총재로 하고, 최태민을 명예총재로 올려놓아 결과적으로 개악을 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  (2007년 6월 1일, 신동아)   ?2. 이름 7개, 부인 6명 승려목사 최태민 미스테리    ?그렇다면, 최태민 목사의 전력은 어땠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최태민 목사와 함께 ‘새마음봉사단’을 대외활동의 중심으로 삼았다.

  사이비종교 ‘교주’였다는 설도 있어 최태민의 전력이 불분명하던 터였다.

  아버지 박정희도 20대의 딸이 그에게 현혹됐다고 생각해 불만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최태민은 흔히 목사로 불린다.

  1975년 4월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합총회로부터 목사 안수를 받은 뒤부터 생긴 호칭이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와 전두환의 합동수사본부를 거치며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수사자료’를 보면,  그는 불교 승려가 된 적도 있었고 천주교 세례를 받기도 했다.

  ‘태민’이란 이름도 각종 가명을 포함해 7번째 이름이다.

  70년대 들어 최태민은 서울과 대전 일대에서 난치병을 치료한다는 등 사이비 종교 행각을 벌였다.

  불교, 기독교, 천도교를 종합했다는 교리를 내세웠고,  방민이란 가명을 쓰면서 ‘원자경’, ‘칙사’ 또는 ‘태자마마’라는 호칭을 자처했다.

 (2012년 7월 29일, 한겨레)  ? 이처럼 주변에서 손가락질을 하는 최 목사에게 박근혜 대통령이 의지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형욱 회고록’에 따르면 1974년 육영수 사망 직후 최 목사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씌어있다.

   “어머니는 돌아가신 게 아니라 너의 시대를 열어 주기 위해 길을 비켜 주었다는 것, 네가 왜 모르느냐.  너를 한국, 나아가 아시아의 지도자로 키우기 위해 자리만 옮겼을 뿐이다.

  어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나를 통하면 항상 들을 수 있다.

  육 여사가 꿈에 나타나 ‘내 딸이 우매해 아무 것도 모르고 슬퍼만 한다’면서 ‘이런 뜻을 전해달라’고 했다.

”   물론 최 목사는 부인했다.

  그는 ‘가정조선’(1990년 10월호) 인터뷰에서 “‘현몽’ 등의 말이  대학 교육을 받은 박(근혜) 이사장에게 먹혀들 것 같아요?”라며 내용을 부인했다.

    3. 동생 박근령과 박지만, 노태우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다   박근령씨가 지난 2013년 10월25일에 열린 제1회 박정희 전 대통령 추모예배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전두환 정권이 끝나고 대외 활동을 재개한 박근혜 대통령은 최태민 목사와 함께  새마음봉사단의 후신인 근화봉사단을 꾸린다.

  그러나 이후에도 계속 최 목사는 논란이 됐고,  1990년 육영재단 분란 당시 최태민 목사의 딸 최순실 씨 전횡 논란이 불거졌다.

      박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과 박지만은 1990년 노태우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낸다.

   "진정코 저희 언니(박근혜)는 최태민씨에게 철저히 속은 죄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속고 있는 언니가 너무도 불쌍합니다!  대통령의 유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어디에 하소연 할 곳도 없고 또 함부로 구원을 청할 곳도 없었습니다.

 최씨는 아버님 재직시 아버님의 눈을 속이고 우리 언니인 박근혜의 비호 아래 치부하였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최씨는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자신의 축재 행위가 폭로될까봐  계속해 저희 언니를 자신의 방패막이로 삼아 왔습니다.

" (2007년 8월 6일, 오마이뉴스) ? 1990년 12월 우먼센스 인터뷰에 따르면 박지만 씨는 “큰 누나와 최씨와의 관계를 그냥 두는 것은 큰 누나를 욕먹게 하고 부모님께도 누를 끼치게 되는 것 같아  떼어놓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4. 최태민의 사위, 정윤회의 등장   은둔 생활을 하던 박근혜 대통령이 1998년 국회의원이 된다.

  이후 최태민 목사의 사위(최순실의 남편) 정윤회 씨가 비서실장이란 호칭을 달고 등장한다.

   최태민 사후에도 그의 그림자는 박근혜 곁에 남았다.

  최순실의 남편 정윤회가 박근혜의 정계 입문 때부터 등장했다.

 그는 ‘비서실장’으로 불렸다.

  2002년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을 때도 자리를 지켰다.

  박근혜가 한나라당 대표가 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곁을 떠난 것으로 알려진 2004년 6월

2006년 5월에는  국회 입법보조원으로 등록했다.

  박근혜의 정치 입문 초기에 정윤회와 여러 차례 직접 만났던 한 전직 는  “최순실은 박근혜가 장충동에 살던 시절부터 말동무로 지낸온 것으로 들었다”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박근혜 의원실의 보좌진을 구성한 것도 정윤회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2012년 7월17일, 한겨레)    그런 정씨는 국정에 계속 개입한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특히 올해 초부터 이런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세계일보는 지난달 28일 세계일보가 단독입수한 청와대 내부 문건에 따르면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올 1월6일  ‘靑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제목의 동향 감찰 보고서를 작성했다.

   세계일보는 “감찰 조사에서 정씨는 이들과 매달 두 차례 정도 서울 강남권 중식당과 일식집 등에서 만나  청와대 내부 동향과 현 정부 동향을 논의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이들 모임에는 소위 ‘비선 실세’로 불리는 이재만(48) 총무비서관과 정호성(45)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48) 제2부속비서관을 비롯한 청와대 내부 인사 6명,  정치권에서 활동하는 청와대 외부 인사 4명이 참석한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이들을 중국 후한 말 환관에 빗대 ‘십상시’로 지칭하고 실명으로 언급했다.

   시사저널 '박지만-정윤회 권력암투'가 보도된 1275호 ? 그동안 정윤회씨의 청와대 개입설은 꾸준히 제기돼 온 바있다.

  지난 3월 ‘시사저널’은 정 씨가 사람을 시켜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회장을 미행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박 회장은 자신의 자택으로 접어드는 골목길에 차를 세운 채 서둘러 자신의 운전기사를 퇴근시켰다.

  아니나 다를까. 오토바이가 그 골목길로 들어왔다.

 박 회장은 오토바이 운전기사를 그 자리에서 붙잡았다.

  그리고 ‘왜 나를 미행하느냐’고 추궁했다.

 박 회장은 이 오토바이 기사로부터 자술서 여러 장을 받아냈다.

  누구의 지시로, 언제부터 자신을 미행했는지 등이 자술서에 자세히 적혔다.

  오토바이 기사는 자술서에 ‘정윤회씨의 지시로 미행하게 됐다’고 실토했다.

  박 회장은 이후 자신의 지인들과의 사석에서 당시 사건을 전하며 상당히 분노했다.

  사석에서 박 회장은 자신을 미행했던 오토바이 기사를 ‘정윤회의 사주를 받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박 회장이 정씨에겐 항의하지 않았다.

  그 대신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에 김 실장은 ‘그럴 리가 없다’고 해명했다.

 (2014년3월23일, 시사저널)  ?  지난해 7월19일 경기 과천시 주암동 서울경마공원에서 딸이 출전한 마장마술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정윤회씨.    또한 정씨의 딸이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 당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지난 6월 시사저널을 통해 보도되는 등  정씨가 박근혜 정권의 '실세'라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됐다.

  5. 청와대 축출된 조응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이처럼 현 정부의 '비선 실세'로 거명된 정윤회씨 관련 동향을 다룬 청와대의 내부 보고서가 나오자  언론 접촉을 꺼려왔던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당사자 정윤회씨가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양측이 전면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은 2일  인터뷰에서  "지난 4월 10

11일 이틀에 걸쳐 청와대 공용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는데 모르는 번호여서 받지 않았다"면서  "그 직후 '정윤회입니다.

 통화를 좀 하고 싶습니다'라는 문자가 왔다"고 했다.

   그는 "당시 '정윤회씨가 박지만 EG 회장을 미행했다'는 시사저널 보도로 정씨가 소송을 제기하는 등  화가 나 있는 상황이었고 순간적으로 고민하다가 받지 않았다"고 했다.

   또 조 전 비서관은 "정윤회씨가 건 전화를 받지 않은 그 다음주 화요일 홍경식 민정수석이 갑자기 불러서 갔더니  ‘그동안 수고했다’며 그만두라고 하더라”며  “문건 내용은 실제 모임에 참석해서 얘기를 듣지 않았으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세한 것이었다”면서  신빙성이 “6할 이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조 전 비서관은 지난 1월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정윤회씨가 3인방을 포함한 청와대 핵심 비서관 등과  매월 두 번씩 만나 국정에 개입한다'는 취지의 구두 보고를 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내부적으로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결론을 내렸고,  문건을 작성한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박모 경정(행정관)을 2월 경찰로 원대 복귀 조치됐다.

  반면 정윤회씨는 와의 인터뷰에서 문제의 보고서가  과거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조작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정씨는 1일 와의 인터뷰를 통해 "내가 실세라는 것은 싸구려 음모론"이라면서 "하나라도 잘못이 있으면 감방에 가겠다"고 주장했다.

  또 정씨는 "대통령은 물론 3인 측근 비서관들과는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10과 회동설에 대해 "낭설이자 소설"이라고 강력 부인했다.

 ?특히 정씨는 "2007년 대선 때 정치인 박근혜의 10년 비서실장을 그만둔 이래 나는 7년간 야인으로 살고 있다"며  "국정 개입은커녕 청와대 비서관들과는 연락도 끊고 있다"고 말했다.

 국정개입을 했다는 사실, 그리고 청와대 비서관들과 연락을 끊고 있다는 사실에서  서로 간의 의견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윤회씨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하루사이에 밝혀졌다.

 정윤회 씨는 2일 YTN과 한 전화인터뷰에서 이 비서관을 통해 조 전 비서관에게 연락을 부탁한 사실은 인정했다.

  당시 자신이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회장을 미행했다는, 이른 바 '박지만 미행설'과 관련해  조 전 비서관과 전화통화를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이 비서관을 통해 부탁했다는 요지였다.

    또 현 정권 출범 때부터 지난 4월 사퇴할 때까지 초기 조각(組閣)을 담당했던 조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인사검증에 전혀 손쓰지 못한 대목은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했음을 짐작케하고 있다.

   조 전 비서관은 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아예 검증할 기회를 얻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며  "올봄에 청와대에 근무하는 행정관들을 선임행정관(2급)으로 승진시키는 인사가 있었다.

  이재만 총무비서관에게 '2급이면 인사 검증 대상이니 미리 명단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그냥 발표가 나버렸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원칙과 신뢰'가 전혀 지키지 않은 셈이다.

   최태민, 정윤회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40여년을 이어온 인연의 뿌리는 과연 이번에 잘릴 것인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박 대통령의 주장대로 ‘근거 없는 낭설’에 불과한 것일까.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작성자 원성윤   2014년 12월 02일 ???http://www.huffingtonpost.kr/2014/12/02/story_n_6252770.html#???, ???, ????? 5?? ?????? ???? ??? ??? ??? ?? ??, ??? ???? ??? ???(1912

1994) ??? ??? ??? ???. ? ??? ?? ??...www.huffingto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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