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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대한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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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역대 언론에 보도 되었던 기사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청와대 실선 으로 거론되는 최순실은 누구...
최순실 1956년 6월 23일 출생..박근혜 대통령보다 4살 아래인 최순실 씨는 20대 때 박근혜 대통령의 말동무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수장학회, 박지만·근령씨와의 육영재단 분쟁과 관련이 깊은 인물은 최태민(1912

1994) 목사이다.

최태민 목사의 다섯째 딸인 최순실 씨는 1975년 단국대 영어영문과에 입학했다.

영어영문학과로 대학원 진학을 했지만 수료만 한 상태로 확인됐다.

최순실 씨는 대학 시절 ‘새마음 전국대학생연합회’ 회장(당시 23살)을 지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새마음봉사단(당시 27살) 총재였다.

최순실 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986년경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어린이회관 전통 예절교육장인 '근화원' 업무를 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태민 목사의 일가가 육영재단 업무에 관여하기 시작한 때는 지난 1982년 박근혜 대통령이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태민 목사는 최순실 씨가 업무를 봤다는 어린이회관 '근화원'을 설립했다.

당시 근화원에서는 최태민 목사가 어린이재단 직원들과 예배를 봤던 것으로 전해졌다.

1986년 3월 육영재단 부설 유치원 원장으로 취임한 최순실 씨가 근화원 업무에 관여하기 시작하자 1987년 육영재단 직원들은 최순실 씨의 재단운영 관여에 반대하며 집단행동을 하기도 했다.

이른바 ‘육영재단 사태’로 육영재단 산하 어린이회관이 최씨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운영하던 유치원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불거져 직원들이 시위를 벌였고 이 일을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이 이사장직을 내놓았다.

전 육영재단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 육영재단 어린이집이 잘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유아교육시설이 많지 않았을 때다.

신입 원아를 모으면 경쟁률이 5대 1이 넘었다.

반도 8개였던 것을 더 증설했다.

리라초등학교처럼 통학버스가 있었다.

능동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강남 압구정동이나 대치동, 역삼동을 거쳐 아이들을 태우고 오는 버스도 있었다.

강남에서 다니는 애들이 많았다.

그런데 최순실씨가 어린이집 원장을 그만둔 뒤 압구정동에 유치원을 열었다.

재단 사람들 사이에서는 결국 재단은 껍데기가 되고 최씨 일가가 단물은 다 빼간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 최씨의 재산형성 과정에 대한 의혹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최순실 씨는 27살 때인 1983년 서울 역삼동의 대지 149.1㎡(45평)을 산 적이 있다.

29살이던 1985년 9월 미승빌딩 맞은편의 대지 357.8㎡(108평)를 공동매입해 지상 4층 건물을 지었고, 1987년 5월 공동지분을사들여 단독소유주가 됐다.

박근혜 대통형이 이사장으로 있던 육영재단 어린이회관에서 최태민 최순실 부녀의 재단 개입 논란으로 직원들의 반발이 한창이던 시기에 땅도 사고 건물도 지은 셈이다.

최순실 씨는 32살 때인 1988년 7월 2명과 공동명의로 신사동에 661㎡(200평) 규모의 땅을 사들였다.

1988년 12월과 1996년 7월에는 공동지분을 차례로 사들여 단독소유주가 됐다.

정윤회...
정윤회 씨는 1974년(19살)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81년(26살) 8월 대한항공에 보안승무원으로 입사했다.

고교 졸업과 취직 사이 7년은 대학과 군대를 다녀온 시기로 추정된다.

26살이던 1981년 8월 대한항공 보안승무원으로 입사한 뒤 1980년대 후반에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씨의 대한항공 퇴사 시점은 명확하지 않다.

이후 5년 가량의 행적은 묘연하다.

정윤회 씨는 1993년 3월 경희대 경영대학원에서 관광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3년 3월에 받은 정씨의 경희대 석사논문의 제목은 ‘여행사 경영조직 발전에 관한 연구’다.

그는 대한항공 재직 시절 두번째 부인으로 알려진 최순실(58·최서원으로 개명)씨를 만났다.

최순실(60·최서원으로 개명)씨는 1994년 당시 대한항공에 재직 중이던 정윤회(당시 39) 씨와 1995년(40살) 결혼했다.

최순실 씨는 초혼, 정윤회 씨는 재혼이었다.

최순실 정윤회 부부의 승마선수인 딸 정유연(18)양은 1996년 10월 말에 태어났다.

최순실 딸 정유연...이화여대 특혜 논란※ 이 글은 역대 언론에 보도 되었던 기사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청와대 실선'으로 거론되는...blog.naver.com 최순실 씨는 1995년 전 남편 정윤회 씨와 공동으로 서울 역삼동의 대지 354.1㎡(107평)을 사들여 지하 1층 지상 3층의 다가구용 단독주택(19세대)을 지었다.

전형적인 ‘원룸촌’에 위치한 이 건물은 4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2003년 7월엔 이 땅에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의 건물 미승빌딩을 지었다.

정윤회 씨는 최순실 씨와 결혼 이후 대한항공에 사표를 내고 1994년 (주)얀슨을 시작해 대표이사를 맡았다.

정윤회 씨가 1994년 (주)얀슨의 대표이사를 맡았던 시기 사업자등록증에 '커피 및 커피기계의 수입·판매', '체육관련용품 수입·판매', '휴게실업' 외에 '승마장업'을 업종으로 신고한 바 있다.

2002년에는 강남구 역삼동 689-25 빌라를 매각했고 2004년엔 강원 평창군 땅 18만㎡를 사들이기도 했다.

최순실 정윤회 부부가 이 건물을 매각한 2002년 1월은 정윤회 씨가 자신이 대표로 있던 (주)얀슨의 대표이사직을 최순실 씨에게 넘긴 때와 일치한다.

2002년 2월 박근혜 대통령은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한국미래연합이라는 정당을 창당해 일시적으로 독자노선을 걷는데, 정윤회 씨는 이때 비서실장을 맡았다.

2012년 당시 인근 부동산에서 시세를 160억

200억대로 추산한 미승빌딩은 정윤회 씨 자신이 대표이사인 (주)얀슨이 위치한 건물로, 베트남식당과 마사지업소, 모델학원 등도 입주해있다.

(주)얀슨의 등기부를 보면, 2002년 1월 중순부터 11월 말까지 ‘초이교육연구원’으로 일시적으로 명칭을 바꾼 적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해 정씨가 비서실장으로 일했던 시기로, 부인 최순실씨가 신사동에서 운영했던 ‘초이유치원’과 같은 이름을 쓰는 게 눈길을 끈다.

이때부터 2005년까지는 부인 최씨가 정씨 대신 회사를 맡았다.

최순실씨는 창업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주)얀슨의 사내이사로 등기돼왔다.

그런데 지난 2013년 2월28일부터는 정윤회 씨가 얀슨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공교롭게도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직후다.

얀슨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얀슨의 주업무는 미승빌딩의 관리”라고 말했다.

이 건물에 입주한 업체 관계자들도 “입주 계약은 얀슨과 맺었다.

건물 관련 사항은 얀슨과 논의한다”고 했다.

한 입주자에게 정윤회 씨의 사진을 보여주자, “얀슨 사장님이 맞다.

가끔 오신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1979년 청와대를 나와 1998년 정치권에 입성하기 전까지 이른바 ‘은둔기’에 박근혜대통령과 근령?지만씨의 관계는 좋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곁에는 최순실 씨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순실 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1998년 대구달성 보궐선거를 통해 정계에 입문한 후에도 곁을 계속 지켰는데 거의 집사 수준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일상사를 챙겼다는 말도 나온다.

한 전직 의원은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대구의 한 행사에 갔을 때 옆에서 시중을 드는 최순실 씨를 처음 봤다”며 “로드매니저 같은 분위기였다”고 했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최순실 씨가 정치권 관계자들 사이에서 얼굴을 드러낸 것은 단 한 번, 2006년 지방선거 유세 당시 박근혜 의원이 신촌로터리에서 괴한에 피습당했던 시기이다.

당시 한나라당 한 당직자의 전언에 따르면 최순실 씨가 박근혜 대통령이 입원했던 병실로 찾아와 지근거리에서 간호했다고 한다.

▲  <뉴스타파>가 공개한 최순실 씨와  박근혜 대통령의 과거 영상. 1979년 6월10일 제1회 새마음 제전 당시의 모습이다.

박근혜 대통령(당시 27살)은 새마음봉사단 총재였고, 그 옆의 최순실(당시 23살)씨는 새마음대학생총연합회 회장이었다.

최태민 목사.....
1990년 박지만 EG회장은 둘째 누나 근령 씨와 고 최태민 목사가 육영재단 운영을 전횡한다며 노태우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냈다.

그해 8월 근령·지만 이름으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에 전달된 탄원서에는 '사기꾼 최태민을 엄벌해 최태민 씨에게 포위당해있는 언니(박근혜)를 전직 국가원수 유족의 보호차원에서 구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1987년부터 외부로 드러나 2007년 느즈막까지 계속되던 육영재단 분규와 관련한 당시 기사를 찾다보면 최태민 목사와 함께 거론되는 인물이 최순실 씨다.

최태민(1912

94) 목사가 박정희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건 故육영수 여사가 유명을 달리한 후다.

  아버지 최태민 목사는 1970년대 박근혜  대통령의 퍼스트레이디 시절부터, 다섯째 딸 최순실 씨는 육영재단 이사장 시절부터 인연을 맺었다.

1975년 박근혜 대통령이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로 활동을 할 당시 최태민 목사가 총재를 맡고 있었다.

최태민 목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후원으로 1975년 대한구국선교회를 설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1980년대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사장을 맡았던 육영재단 업무에 아버지인 최태민 목사와 최순실 씨가 함께 관여했다.

이후 최태민 목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후견인 역할을 맡았다.

최태민 목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부터 이어진 각종 비리 혐의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1998년 박근혜 의원이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로 정계에 첫발을 내디딜 때부터 정윤회 실장이 박근혜 의원을 도왔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정윤회 실장은 공식 직함 없이 비서실장으로, 그러니까 당연히 월급이 안 나오는 무보수로, 박근혜 의원실에서 일했다.

박근혜 의원이 2002년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한 뒤 총재로 취임하자 정씨는 총재비서실장으로 활동했다.

2002년 11월, 박근혜 총재의 한국미래연합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과 합당하고 2004년 3월 한나라당 대표가 된 이후 정윤회 씨는 고 최태민 목사의 사위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현직에서 물러났다.

2004년 박근혜 대통령은 "그분(최태민)이 저를 많이 도와주셨다"면서 "저에게는 고마운 분이고 그래서 음해도 많이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같은 정윤회 씨의 행보를 두고 일각에서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스스로 신변을 정리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정윤회 씨가 박근혜 후보의 보좌관을 그만둔 지난 2004년부터 최순실 정윤회 부부는 강원도 평창군 도사리 일대의 땅을 사들였다.

2008년 2월 사들인 임야 1필지(도사리 842번지)를 제외하곤 최순실 씨 70%, 정윤회 씨 30%의 비율로 나누어 땅을 사들였다.

그리고 지난 2009년 측량과 인허가 등을 진행한 뒤 공사를 시작했지만, 자금문제로 공사가 중단됐다.

서울 강남 등지에 수백억 원대의 부동산 등을 소유하고 있던 최순실 정윤회 부부가 자금 문제로 말목장 공사를 중단했다는 것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이 중 몇 군데 건물과 땅은 최순실 씨와 딸의 공동명의로 되어 있다.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대형음식점 부지도 최순실 씨 소유다.

부동산은 최순실 씨가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에 거액을 주고 사들인 것이다.

일각에서 부친 고 최태민 목사의 돈이 최 씨에게로 흘러들어갔을 것으로 추정하는 대목이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숨겨진 최순실 씨 일가의 3000억원대 재산이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기존에 알려진 강남의 빌딩 및 강원도의 목장지, 그리고 경기도 하남의 카페촌에 있는 최씨 소유의 땅들의 ‘시가’를 다 더하면 3000억대가 된다는 보도였다.

2012년 대선에서도 '최태민 스캔들'은 논란이 됐다.

하지만 최태민 목사 관련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를 감쌌다.

최순실 씨는 지난 대선 후보 검증 청문회 당시 자신의 재산이 부친 최태민 목사가 축재한 것 아니냐는 의혹과 관련해 “유치원 경영을 통해 번 돈으로 땅을 샀다”고 일축했다.

최순실 씨는 건물주일 뿐 아니라 유치원, 재단 이사장 등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인맥을 형성해왔다.

대외적으로 드러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를 아는 지인은 “계획적으로 사람에게 접근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대통령과의 친분은 어린 시절부터 만들어진 것이다”라는 사실을 전하면서도 최 씨가 재산가인 만큼 주변에 사람들도 끊이지 않는 편이라고 했다.

지난 2014년 12월 4일 최씨와 관련한 특이한 보도가 있었다.

고발뉴스는 “박근혜 대통령의 평소 옷을 최씨가 골라줬으며 대통령 취임식 날 입고 오른 한복도 최순실씨가 선택해 청와대에 반입한 것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3년 2월 취임식 때 입었던 한복을 디자인한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51)씨는 4일 비선(秘線)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정윤회씨의 전(前) 부인 최순실 씨가 당시 박 대통령의 한복을 챙겼다는 일부 언론 보도와 관련 해명을 했다"사실과 다르다.

취임식 당시에는 모르는 남자가 샘플을 가지고 와서 한복을 주문하고 갔고, 나는 박 대통령이 취임식 때 입을 한복이라는 것을 모른 채 옷을 지었다.

"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2014년 8월17일 독도에서 열린 ‘보고 싶다 강치야’ 음악회를 CJ그룹이 후원했으며, 그룹 부사장이 참석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정윤회 씨는 독도 입도허가서에 ‘정윤기’라는 이름을 기재했고, 행사장에서도 ‘정윤기’라는 명찰을 달고 다녔다고 <>가 지난달 4일 보도했다.

이 행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팬클럽 ‘호박사랑’의 대표이자 성악가인 임산씨 쪽이 주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박가족’이 주관한 것으로 알려진 이날 행사에 CJ그룹은 1억3000만원을 후원했다.

김영석 씨는 지난 2012년 1회와 올해 3회 콘서트에 참석했고, 1·2회 콘서트에서 공연한 임산씨 한복을 제작했다.

김영석 씨는 이날 통화에서 정윤회 씨의 전처인 최순실 씨가 박 대통령의 한복을 챙기고 있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며 “콘서트에는 갔지만 정윤회 씨가 누군지도 모르고,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고 일축했다.

김영석 씨는 "취임식 때 인연을 맺어 요즘도 대통령의 한복을 지어 청와대에 납품하고 있지만, '최순실이라는 사람이 박 대통령의 한복을 챙긴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라고 했다.

김영석 씨의 한복 부티크는 신라호텔 지하에 입점해 있다.

최순실 정윤회 부부는 지난해 5

6월 두 차례에 걸쳐 최씨 지분 중 20%와 정씨 지분 30%를 딸인 정유연(96년생)양에게 증여했다.

현재 이들이 사들인 강원도 평창 땅 지분의 50%는 최씨가, 나머지 50%는 딸이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도 최태민 목사와 정윤회 최순실 부부는 각종 전횡 논란에 휩싸이고 있는데 최태민 목사나 정윤회 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숨은 재산관리인 이라는 의혹이 있고, 최순실 씨(수백억원대) 재산 형성 과정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영향력을 미쳤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 보좌관을 지낸 정윤회(61)씨가 지난 2월 전처 최서원(최순실) 씨를 상대로 서울가정법원에 '재산명시 신청'과 '재산 분할 청구 소송'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재산명시 신청은 재산 분할을 위해 법원이 당사자에게 재산 공개를 명하는 제도로 법원 명령이 떨어지면 부동산은 물론 수표나 증권, 보석류 등의 재산 목록을 제출해야 한다.

최순실 정윤회 부부는 2014년 5월 이혼했다.

이혼 당시 정윤회씨는 양육권과 재산분할을 포기했지만 2년 만에 재산분할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혼 조정안에는 결혼 기간 중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다는 ‘비밀유지’ 조항, 상대방을 비난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주) 최순실 차은택......최순실 씨와 차은택 씨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계속 자료 조사를 하고 있는데 확인된 팩트는 이 두가지이다.

[최순실 대한항공] 놀랍네요.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순실 차은택 의혹과 관련 14일 차은택 CF감독이 최순실씨 집안에 어떤 아이를 연예계로 와서 일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이 인연이 됐다고 발언했다.

.9월 20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조응천 더민주 의원은 황교안 총리에게 질문하는 형식을 빌려 차 대표와 최순실씨가 각별하다는 의혹을 제기했지만 현재까지 두 사람의 인연이 직접적으로 드러난 것은 없었다.

.※ 최태민 목사의 의붓아들 전 영남투자금융 조순제 이사나 최순실 차은택의 연결고리가 될 근거 자료를 알고 계신 분은 댓글이나 안부글 부탁합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blog.naver.com
※ 이 글은 역대 언론에 보도 되었던 기사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청와대 실선 으로 거론되는 최순실은 누구...
최순실 1956년 6월 23일 출생..박근혜 대통령보다 4살 아래인 최순실 씨는 20대 때 박근혜 대통령의 말동무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수장학회, 박지만·근령씨와의 육영재단 분쟁과 관련이 깊은 인물은 최태민(1912

1994) 목사이다.

최태민 목사의 다섯째 딸인 최순실 씨는 1975년 단국대 영어영문과에 입학했다.

영어영문학과로 대학원 진학을 했지만 수료만 한 상태로 확인됐다.

최순실 씨는 대학 시절 ‘새마음 전국대학생연합회’ 회장(당시 23살)을 지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새마음봉사단(당시 27살) 총재였다.

최순실 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986년경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어린이회관 전통 예절교육장인 '근화원' 업무를 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태민 목사의 일가가 육영재단 업무에 관여하기 시작한 때는 지난 1982년 박근혜 대통령이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태민 목사는 최순실 씨가 업무를 봤다는 어린이회관 '근화원'을 설립했다.

당시 근화원에서는 최태민 목사가 어린이재단 직원들과 예배를 봤던 것으로 전해졌다.

1986년 3월 육영재단 부설 유치원 원장으로 취임한 최순실 씨가 근화원 업무에 관여하기 시작하자 1987년 육영재단 직원들은 최순실 씨의 재단운영 관여에 반대하며 집단행동을 하기도 했다.

이른바 ‘육영재단 사태’로 육영재단 산하 어린이회관이 최씨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운영하던 유치원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불거져 직원들이 시위를 벌였고 이 일을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이 이사장직을 내놓았다.

전 육영재단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 육영재단 어린이집이 잘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유아교육시설이 많지 않았을 때다.

신입 원아를 모으면 경쟁률이 5대 1이 넘었다.

반도 8개였던 것을 더 증설했다.

리라초등학교처럼 통학버스가 있었다.

능동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강남 압구정동이나 대치동, 역삼동을 거쳐 아이들을 태우고 오는 버스도 있었다.

강남에서 다니는 애들이 많았다.

그런데 최순실씨가 어린이집 원장을 그만둔 뒤 압구정동에 유치원을 열었다.

재단 사람들 사이에서는 결국 재단은 껍데기가 되고 최씨 일가가 단물은 다 빼간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 최씨의 재산형성 과정에 대한 의혹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최순실 씨는 27살 때인 1983년 서울 역삼동의 대지 149.1㎡(45평)을 산 적이 있다.

29살이던 1985년 9월 미승빌딩 맞은편의 대지 357.8㎡(108평)를 공동매입해 지상 4층 건물을 지었고, 1987년 5월 공동지분을사들여 단독소유주가 됐다.

박근혜 대통형이 이사장으로 있던 육영재단 어린이회관에서 최태민 최순실 부녀의 재단 개입 논란으로 직원들의 반발이 한창이던 시기에 땅도 사고 건물도 지은 셈이다.

최순실 씨는 32살 때인 1988년 7월 2명과 공동명의로 신사동에 661㎡(200평) 규모의 땅을 사들였다.

1988년 12월과 1996년 7월에는 공동지분을 차례로 사들여 단독소유주가 됐다.

정윤회...
정윤회 씨는 1974년(19살)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81년(26살) 8월 대한항공에 보안승무원으로 입사했다.

고교 졸업과 취직 사이 7년은 대학과 군대를 다녀온 시기로 추정된다.

26살이던 1981년 8월 대한항공 보안승무원으로 입사한 뒤 1980년대 후반에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씨의 대한항공 퇴사 시점은 명확하지 않다.

이후 5년 가량의 행적은 묘연하다.

정윤회 씨는 1993년 3월 경희대 경영대학원에서 관광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3년 3월에 받은 정씨의 경희대 석사논문의 제목은 ‘여행사 경영조직 발전에 관한 연구’다.

그는 대한항공 재직 시절 두번째 부인으로 알려진 최순실(58·최서원으로 개명)씨를 만났다.

최순실(60·최서원으로 개명)씨는 1994년 당시 대한항공에 재직 중이던 정윤회(당시 39) 씨와 1995년(40살) 결혼했다.

최순실 씨는 초혼, 정윤회 씨는 재혼이었다.

최순실 정윤회 부부의 승마선수인 딸 정유연(18)양은 1996년 10월 말에 태어났다.

최순실 딸 정유연...이화여대 특혜 논란※ 이 글은 역대 언론에 보도 되었던 기사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청와대 실선'으로 거론되는...blog.naver.com 최순실 씨는 1995년 전 남편 정윤회 씨와 공동으로 서울 역삼동의 대지 354.1㎡(107평)을 사들여 지하 1층 지상 3층의 다가구용 단독주택(19세대)을 지었다.

전형적인 ‘원룸촌’에 위치한 이 건물은 4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2003년 7월엔 이 땅에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의 건물 미승빌딩을 지었다.

정윤회 씨는 최순실 씨와 결혼 이후 대한항공에 사표를 내고 1994년 (주)얀슨을 시작해 대표이사를 맡았다.

정윤회 씨가 1994년 (주)얀슨의 대표이사를 맡았던 시기 사업자등록증에 '커피 및 커피기계의 수입·판매', '체육관련용품 수입·판매', '휴게실업' 외에 '승마장업'을 업종으로 신고한 바 있다.

2002년에는 강남구 역삼동 689-25 빌라를 매각했고 2004년엔 강원 평창군 땅 18만㎡를 사들이기도 했다.

최순실 정윤회 부부가 이 건물을 매각한 2002년 1월은 정윤회 씨가 자신이 대표로 있던 (주)얀슨의 대표이사직을 최순실 씨에게 넘긴 때와 일치한다.

2002년 2월 박근혜 대통령은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한국미래연합이라는 정당을 창당해 일시적으로 독자노선을 걷는데, 정윤회 씨는 이때 비서실장을 맡았다.

2012년 당시 인근 부동산에서 시세를 160억

200억대로 추산한 미승빌딩은 정윤회 씨 자신이 대표이사인 (주)얀슨이 위치한 건물로, 베트남식당과 마사지업소, 모델학원 등도 입주해있다.

(주)얀슨의 등기부를 보면, 2002년 1월 중순부터 11월 말까지 ‘초이교육연구원’으로 일시적으로 명칭을 바꾼 적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해 정씨가 비서실장으로 일했던 시기로, 부인 최순실씨가 신사동에서 운영했던 ‘초이유치원’과 같은 이름을 쓰는 게 눈길을 끈다.

이때부터 2005년까지는 부인 최씨가 정씨 대신 회사를 맡았다.

최순실씨는 창업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주)얀슨의 사내이사로 등기돼왔다.

그런데 지난 2013년 2월28일부터는 정윤회 씨가 얀슨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공교롭게도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직후다.

얀슨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얀슨의 주업무는 미승빌딩의 관리”라고 말했다.

이 건물에 입주한 업체 관계자들도 “입주 계약은 얀슨과 맺었다.

건물 관련 사항은 얀슨과 논의한다”고 했다.

[최순실 대한항공] 세상에. 왜..



한 입주자에게 정윤회 씨의 사진을 보여주자, “얀슨 사장님이 맞다.

가끔 오신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1979년 청와대를 나와 1998년 정치권에 입성하기 전까지 이른바 ‘은둔기’에 박근혜대통령과 근령?지만씨의 관계는 좋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곁에는 최순실 씨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순실 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1998년 대구달성 보궐선거를 통해 정계에 입문한 후에도 곁을 계속 지켰는데 거의 집사 수준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일상사를 챙겼다는 말도 나온다.

한 전직 의원은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대구의 한 행사에 갔을 때 옆에서 시중을 드는 최순실 씨를 처음 봤다”며 “로드매니저 같은 분위기였다”고 했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최순실 씨가 정치권 관계자들 사이에서 얼굴을 드러낸 것은 단 한 번, 2006년 지방선거 유세 당시 박근혜 의원이 신촌로터리에서 괴한에 피습당했던 시기이다.

당시 한나라당 한 당직자의 전언에 따르면 최순실 씨가 박근혜 대통령이 입원했던 병실로 찾아와 지근거리에서 간호했다고 한다.

▲  <뉴스타파>가 공개한 최순실 씨와  박근혜 대통령의 과거 영상. 1979년 6월10일 제1회 새마음 제전 당시의 모습이다.

박근혜 대통령(당시 27살)은 새마음봉사단 총재였고, 그 옆의 최순실(당시 23살)씨는 새마음대학생총연합회 회장이었다.

최태민 목사.....
1990년 박지만 EG회장은 둘째 누나 근령 씨와 고 최태민 목사가 육영재단 운영을 전횡한다며 노태우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냈다.

그해 8월 근령·지만 이름으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에 전달된 탄원서에는 '사기꾼 최태민을 엄벌해 최태민 씨에게 포위당해있는 언니(박근혜)를 전직 국가원수 유족의 보호차원에서 구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1987년부터 외부로 드러나 2007년 느즈막까지 계속되던 육영재단 분규와 관련한 당시 기사를 찾다보면 최태민 목사와 함께 거론되는 인물이 최순실 씨다.

최태민(1912

94) 목사가 박정희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건 故육영수 여사가 유명을 달리한 후다.

  아버지 최태민 목사는 1970년대 박근혜  대통령의 퍼스트레이디 시절부터, 다섯째 딸 최순실 씨는 육영재단 이사장 시절부터 인연을 맺었다.

1975년 박근혜 대통령이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로 활동을 할 당시 최태민 목사가 총재를 맡고 있었다.

최태민 목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후원으로 1975년 대한구국선교회를 설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1980년대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사장을 맡았던 육영재단 업무에 아버지인 최태민 목사와 최순실 씨가 함께 관여했다.

이후 최태민 목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후견인 역할을 맡았다.

최태민 목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부터 이어진 각종 비리 혐의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1998년 박근혜 의원이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로 정계에 첫발을 내디딜 때부터 정윤회 실장이 박근혜 의원을 도왔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정윤회 실장은 공식 직함 없이 비서실장으로, 그러니까 당연히 월급이 안 나오는 무보수로, 박근혜 의원실에서 일했다.

박근혜 의원이 2002년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한 뒤 총재로 취임하자 정씨는 총재비서실장으로 활동했다.

2002년 11월, 박근혜 총재의 한국미래연합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과 합당하고 2004년 3월 한나라당 대표가 된 이후 정윤회 씨는 고 최태민 목사의 사위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현직에서 물러났다.

2004년 박근혜 대통령은 "그분(최태민)이 저를 많이 도와주셨다"면서 "저에게는 고마운 분이고 그래서 음해도 많이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같은 정윤회 씨의 행보를 두고 일각에서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스스로 신변을 정리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정윤회 씨가 박근혜 후보의 보좌관을 그만둔 지난 2004년부터 최순실 정윤회 부부는 강원도 평창군 도사리 일대의 땅을 사들였다.

2008년 2월 사들인 임야 1필지(도사리 842번지)를 제외하곤 최순실 씨 70%, 정윤회 씨 30%의 비율로 나누어 땅을 사들였다.

그리고 지난 2009년 측량과 인허가 등을 진행한 뒤 공사를 시작했지만, 자금문제로 공사가 중단됐다.

서울 강남 등지에 수백억 원대의 부동산 등을 소유하고 있던 최순실 정윤회 부부가 자금 문제로 말목장 공사를 중단했다는 것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이 중 몇 군데 건물과 땅은 최순실 씨와 딸의 공동명의로 되어 있다.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대형음식점 부지도 최순실 씨 소유다.

부동산은 최순실 씨가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에 거액을 주고 사들인 것이다.

일각에서 부친 고 최태민 목사의 돈이 최 씨에게로 흘러들어갔을 것으로 추정하는 대목이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숨겨진 최순실 씨 일가의 3000억원대 재산이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기존에 알려진 강남의 빌딩 및 강원도의 목장지, 그리고 경기도 하남의 카페촌에 있는 최씨 소유의 땅들의 ‘시가’를 다 더하면 3000억대가 된다는 보도였다.

2012년 대선에서도 '최태민 스캔들'은 논란이 됐다.

하지만 최태민 목사 관련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를 감쌌다.

최순실 씨는 지난 대선 후보 검증 청문회 당시 자신의 재산이 부친 최태민 목사가 축재한 것 아니냐는 의혹과 관련해 “유치원 경영을 통해 번 돈으로 땅을 샀다”고 일축했다.

최순실 씨는 건물주일 뿐 아니라 유치원, 재단 이사장 등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인맥을 형성해왔다.

대외적으로 드러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를 아는 지인은 “계획적으로 사람에게 접근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대통령과의 친분은 어린 시절부터 만들어진 것이다”라는 사실을 전하면서도 최 씨가 재산가인 만큼 주변에 사람들도 끊이지 않는 편이라고 했다.

지난 2014년 12월 4일 최씨와 관련한 특이한 보도가 있었다.

고발뉴스는 “박근혜 대통령의 평소 옷을 최씨가 골라줬으며 대통령 취임식 날 입고 오른 한복도 최순실씨가 선택해 청와대에 반입한 것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3년 2월 취임식 때 입었던 한복을 디자인한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51)씨는 4일 비선(秘線)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정윤회씨의 전(前) 부인 최순실 씨가 당시 박 대통령의 한복을 챙겼다는 일부 언론 보도와 관련 해명을 했다"사실과 다르다.

취임식 당시에는 모르는 남자가 샘플을 가지고 와서 한복을 주문하고 갔고, 나는 박 대통령이 취임식 때 입을 한복이라는 것을 모른 채 옷을 지었다.

"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2014년 8월17일 독도에서 열린 ‘보고 싶다 강치야’ 음악회를 CJ그룹이 후원했으며, 그룹 부사장이 참석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정윤회 씨는 독도 입도허가서에 ‘정윤기’라는 이름을 기재했고, 행사장에서도 ‘정윤기’라는 명찰을 달고 다녔다고 <>가 지난달 4일 보도했다.

이 행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팬클럽 ‘호박사랑’의 대표이자 성악가인 임산씨 쪽이 주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박가족’이 주관한 것으로 알려진 이날 행사에 CJ그룹은 1억3000만원을 후원했다.

김영석 씨는 지난 2012년 1회와 올해 3회 콘서트에 참석했고, 1·2회 콘서트에서 공연한 임산씨 한복을 제작했다.

김영석 씨는 이날 통화에서 정윤회 씨의 전처인 최순실 씨가 박 대통령의 한복을 챙기고 있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며 “콘서트에는 갔지만 정윤회 씨가 누군지도 모르고,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고 일축했다.

김영석 씨는 "취임식 때 인연을 맺어 요즘도 대통령의 한복을 지어 청와대에 납품하고 있지만, '최순실이라는 사람이 박 대통령의 한복을 챙긴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라고 했다.

김영석 씨의 한복 부티크는 신라호텔 지하에 입점해 있다.

최순실 정윤회 부부는 지난해 5

6월 두 차례에 걸쳐 최씨 지분 중 20%와 정씨 지분 30%를 딸인 정유연(96년생)양에게 증여했다.

현재 이들이 사들인 강원도 평창 땅 지분의 50%는 최씨가, 나머지 50%는 딸이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도 최태민 목사와 정윤회 최순실 부부는 각종 전횡 논란에 휩싸이고 있는데 최태민 목사나 정윤회 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숨은 재산관리인 이라는 의혹이 있고, 최순실 씨(수백억원대) 재산 형성 과정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영향력을 미쳤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 보좌관을 지낸 정윤회(61)씨가 지난 2월 전처 최서원(최순실) 씨를 상대로 서울가정법원에 '재산명시 신청'과 '재산 분할 청구 소송'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재산명시 신청은 재산 분할을 위해 법원이 당사자에게 재산 공개를 명하는 제도로 법원 명령이 떨어지면 부동산은 물론 수표나 증권, 보석류 등의 재산 목록을 제출해야 한다.

최순실 정윤회 부부는 2014년 5월 이혼했다.

이혼 당시 정윤회씨는 양육권과 재산분할을 포기했지만 2년 만에 재산분할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혼 조정안에는 결혼 기간 중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다는 ‘비밀유지’ 조항, 상대방을 비난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주) 최순실 차은택......최순실 씨와 차은택 씨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계속 자료 조사를 하고 있는데 확인된 팩트는 이 두가지이다.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순실 차은택 의혹과 관련 14일 차은택 CF감독이 최순실씨 집안에 어떤 아이를 연예계로 와서 일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이 인연이 됐다고 발언했다.

.9월 20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조응천 더민주 의원은 황교안 총리에게 질문하는 형식을 빌려 차 대표와 최순실씨가 각별하다는 의혹을 제기했지만 현재까지 두 사람의 인연이 직접적으로 드러난 것은 없었다.

.※ 최태민 목사의 의붓아들 전 영남투자금융 조순제 이사나 최순실 차은택의 연결고리가 될 근거 자료를 알고 계신 분은 댓글이나 안부글 부탁합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불장난을 한 주체는 ‘정윤회 문건’을 작성한 박관천(48) 경정과 그의 직속상관 조응천(52)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불장난에 춤춘 ‘누구’는 박 회장을 겨냥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정씨는 박 회장이 잘못된 정보를 갖고 자신을 오해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정윤회(59)씨의 출신은 상당 부분 베일에 가려져있다.

주민등록상 1955년에 태어난 것으로 나타나지만 정확한 출생연도는 확인된 바 없다.

또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서 자랐다고도 하지만, 이 또한 확인되지 않았다.

정씨는 1974년(19살)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81년(26살) 8월 대한항공에 보안승무원으로 입사했다.

고교 졸업과 취직 사이 7년은 대학과 군대를 다녀온 시기로 추정된다.

26살이던 1981년 8월 대한항공 보안승무원으로 입사한 뒤 1980년대 후반에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씨의 대한항공 퇴사 시점은 명확하지 않다.

이후 5년 가량의 행적은 묘연하다.

정씨는 지난 7월 <> 인터뷰에서 “나는 대학원까지 졸업했는데 구체적인 학력을 밝히지 않는 건 불필요한 잡음을 피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후 정씨는 1993년 3월 경희대 경영대학원에서 관광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3년 3월에 받은 정씨의 경희대 석사논문의 제목은 ‘여행사 경영조직 발전에 관한 연구’다.

논문의 구성이나 내용을 살펴보면 일반대학원이 아니라 전형적인 경영대학원 논문이다.

ⓒ 일러스트 신춘성1994년 당시 39살이던 정씨는 (주)얀슨을 시작해 대표이사를 맡았다.

그는 대한항공 재직 시절 두번째 부인으로 알려진 최순실(58·최서원으로 개명)씨를 만나 1995년(40살) 결혼했다.

승마선수인 딸 유연(18)양은 1996년 10월 말에 태어났다.

이밖에 정씨는 1994

96년 기간엔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얀슨’이라는 제과점을, 1995

99년 기간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풍운’이라는 일식당을 운영하기도 했다.

일부 과거 보도와 달리 정씨가 얀슨커피숍을 연 것은 1991년 9월로 장소도 청담동이었다.

커피숍에서는 제과제빵 시설을 직접 갖추고 ‘독일풍’의 빵과 케이크를 팔았다.

대한항공 승무원 시절 독일을 오가면서 사업아이템을 구상한 것으로 추정된다.

얀슨은 1994년 6월 주식회사로 등기되었다.

최순실씨는 1975년 단국대 영어영문과에 입학했다.

대학원도 영어영문학과로 진학을 했지만 수료만 한 상태로 확인됐다.

최씨는 1986년 3월 육영재단 부설 유치원 원장으로 취임했다.

(주)얀슨의 등기부를 보면, 2002년 1월 중순부터 11월 말까지 ‘초이교육연구원’으로 일시적으로 명칭을 바꾼 적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해 정씨가 비서실장으로 일했던 시기로, 부인 최순실씨가 신사동에서 운영했던 ‘초이유치원’과 같은 이름을 쓰는 게 눈길을 끈다.

이때부터 2005년까지는 부인 최씨가 정씨 대신 회사를 맡았다.

정씨는 2012년 <>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생계와 관련해, “아내가 강남에 빌딩을 가지고 있다.

아내의 수입으로 생활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전부인 최순실(58·최서원으로 개명)씨의 빌딩은 강남구 신사동의 미승빌딩으로 보인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640-1 미승빌딩 5층엔 정윤회가 대표이사로 되어 있는 (주)얀슨이 입주해 있으나 영업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고 정윤회도 출입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순실씨는 창업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주)얀슨의 사내이사로 등기돼왔다.

지난 2013년 2월28일부터는 정씨가 얀슨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공교롭게도 박 대통령의 취임 직후다.

얀슨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얀슨의 주업무는 미승빌딩의 관리”라고 말했다.

이 건물에 입주한 업체 관계자들도 “입주 계약은 얀슨과 맺었다.

건물 관련 사항은 얀슨과 논의한다”고 했다.

한 입주자에게 정윤회의 사진을 보여주자, “얀슨 사장님이 맞다.

가끔 오신다”고 했다.

정윤회·최순실 부부가 살았던 6층은 시종 접근이 불가능했다.

“이사 갔다”는 말도 있지만, 그 사실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2012년 당시 인근 부동산에서 시세를 160억

200억대로 추산한 이 빌딩은 정씨 자신이 대표이사인 (주)얀슨이 위치한 건물로, 베트남식당과 마사지업소, 모델학원 등도 입주해있다.

1993년부터 얀슨의 감사로 등기돼, 현재 얀슨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문아무개(52)씨는 2012년 <>와 인터뷰 당시 “정씨가 이것저것 시도해 봤지만 다 잘 안 된 것”이라고 말했다.

(주)얀슨은 1994년 커피 및 커피기계의 수입·판매, 승마장업, 체육관련용품 수입·판매, 휴게실업 등의 업종을 신고했지만 2001년에 삭제했고, 곧이어 교육디지털콘텐츠 제작·유통·판매·컨설팅, 도서 출판 및 판매 등을 신고했다가 2003년 삭제했다.

같은 해 의류 및 가구의 수입·판매도 신고했으나 삭제했다.

2003년 말엔 국외 이주자 모집·알선, 이주신고 대행, 이주 상담 및 안내 등의 업종을 신고해 오늘에 이른다.

1990년 박지만 EG회장은 둘째 누나 근령 씨와 고 최태민 목사가 육영재단 운영을 전횡한다며 노태우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냈다.

그해 8월 근령·지만 이름으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에 전달된 탄원서에는 '사기꾼 최태민을 엄벌해 최씨에게 포위당해있는 언니(박근혜)를 전직 국가원수 유족의 보호차원에서 구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정수장학회, 박지만·근령씨와의 육영재단 분쟁과 관련이 깊은 인물은 최태민 목사이다.

1987년부터 외부로 드러나 2007년 느즈막까지 계속되던 육영재단 분규와 관련한 당시 기사를 찾다보면 최태민 목사와 함께 거론되는 인물이 최태민 목사의 다섯째 딸인 최순실씨다.

정윤회씨는 최순실씨의 남편이자 최태민의 사위다.

최씨는 박 대통령이 ‘퍼스트레이디’로 활동했던 시기의 측근 최태민(1912

1994)씨의 딸로, 박 대통령과 정씨가 연결된 고리로 보인다.

최씨를 ‘집안을 해친 사람’으로 보고 있는 근영씨 말을 보면 정씨에 대한 박 회장의 인식 역시 최 목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1998년 박근혜 의원이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로 정계에 첫발을 내디딜 때부터 정윤회 실장이 박근혜 의원을 도왔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정 실장은 공식 직함 없이 비서실장으로, 그러니까 당연히 월급이 안 나오는 무보수로, 박근혜 의원실에서 일했다.

당시 박 회장이 정씨를 불편하게 바라봤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으로서는 당연히 달갑지 않은 소식일 수밖에 없었다.

박 회장과 정씨 간 갈등과 대립의 근원이 꽤 오래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박근혜 의원이 2002년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한 뒤 총재로 취임하자 정씨는 총재비서실장으로 활동했다.

2002년 11월, 박근혜 총재의 한국미래연합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과 합당하고 2004년 3월 한나라당 대표가 된 이후 정씨는 고 최태민 목사의 사위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현직에서 물러났다.

이같은 정씨의 행보를 두고 일각에서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스스로 신변을 정리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기간에 주요 보좌진은 바뀐 바 없다.

대선 직전 교통사고로 숨진 이춘상 전 보좌관을 제외하면, 이재만 대통령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은 고스란히 청와대로 자리를 옮겼다.

박 대통령의 국회 활동 초기 정씨가 비서실장이었음을 감안하면, 정씨와 이들의 깊은 인연은 짐작할 수 있다.

혹자는 보좌진 4인방을 구성한 게 정씨라고도 한다.

이들은 '4대천왕'이라는 비아냥 섞인 별명 속에서 '문고리 권력' '환관 권력'이란 비판을 받아왔다.

정씨가 이들로부터 별도의 보고를 받으며 계속 박 대통령의 행보에 개입한다는 의혹도 제기돼왔다.

박 대통령은 2007년 대선 경선 때 정씨를 '전직 입법보조원'이라고 설명했다.

정씨가 공식 보좌관이 아니었음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박 대통령은 2007년 대선 경선 검증청문회에서 “대통령이 돼도 최 목사 가족과 계속 관계를 가질 것인가”라는 질문에 “정윤회 비서가 능력이 있어 실무 도움을 받았다.

법적으로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실력이 있는 사람이면 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하 바 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이나 지난해 대선 때도 관여했다는 의혹이 나와 들이 찾아다녔다.

2007년 경선 때는 이른바 '강남팀'이란 조직을 이끈다는 구체적인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정윤회의 그림자’는 박 대통령 주변에서 어른거렸지만 정씨가 실제로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다보니 2007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대선 후보 경선 시절부터 ‘친박’을 맡았던 들도 ‘비선 조직’의 존재 가능성에 무게를 두기를 꺼리는 이들이 많았다.

한나라당 당원이던 김해호씨는 2007년 박근혜 당시 경선 후보와 관련된 허위 사실 유포 혐의 등 으로 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 2심에 선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김씨는 경선 도중 회견을 열어 박 대통령과 최태민씨의 관계 등에 대한 의 혹을 제기했던 인물이다.

정씨의 장인 최태민(1912

94) 목사는 1970년대 박 대통령의 퍼스트레이디 시절부터, 부인 최순실(57)씨는 육영재단 이사장 시절부터 인연을 맺었다.

아버지와 딸 내외는 각종 전횡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최태민 목사나 정씨가 박 대통령의 숨은 재산관리인 이라는 의혹이 있고, 부인 최순실씨(수백억원대) 재산 형성 과정에도 박 대통령이 영향력을 미쳤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숨겨진 최씨 일가의 3000억원대 재산이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기존에 알려진 강남의 빌딩 및 강원도의 목장지, 그리고 경기도 하남의 카페촌에 있는 최씨 소유의 땅들의 ‘시가’를 다 더하면 3000억대가 된다는 보도였다.

정씨 부부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640-1 미승빌딩을 보유하고 있으며 강남구 역삼동 689-25 빌라를 소유한 바 있다.

2002년에는 강남구 역삼동 689-25 빌라를 매각했고 2004년엔 강원 평창군 땅 18만㎡를 사들이기도 했다.

2008년엔 보유하던 강남구 신사동 639-11 빌딩을 85억 원 정도에 매각했다.

하남 땅의 경우, 땅을 담보로 최씨가 올해 2월 21억6000만원을 대출한 것이 확인된다.

국가대표 승마선수로 있는 딸이 갖고 있는 고가의 마장마술용 말과 관련한 ‘풍문’에 대한 알리바이가 얼추 만들어지는 셈이다.

대관업무를 하고 있는 한 기업 관계자는 이번 문건 유출사태에 왜 한화가 끼여 있었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화 회장 셋째가 정씨의 딸과 같이 승마선수를 하고 있는 것은 알려져 있는 일 아닌가. 막후 실세로 정윤회라는 이름이 거론되는 한, 어떻게든 그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고 선을 대려고 하는 것은 내가 그 기업 관련자라도 당연히 했어야 하는 일이었다.

”지난 8월 정씨의 독도 방문 동행설 및 거액 후원설이 나온 CJ그룹도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될 것이라는 것이 이 인사의 설명이다.

지난달 28일 <매일경제>는 지난 8월17일 독도에서 열린 ‘보고 싶다 강치야’ 음악회를 CJ그룹이 후원했으며, 그룹 부사장이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정씨는 독도 입도허가서에 ‘정윤기’라는 이름을 기재했고, 행사장에서도 ‘정윤기’라는 명찰을 달고다녔다고 <>가 지난달 4일 보도했다.

이 행사는 박 대통령의 팬클럽 ‘호박사랑’의 대표이자 성악가인 임산씨 쪽이 주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박가족’이 주관한 것으로 알려진 이날 행사에 CJ그룹은 1억3000만원을 후원했다.

세간에서는 그룹 총수 이재현 회장의 재판이라는 현안이 걸려 있는 CJ그룹이 정씨에게 접근했던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물론 CJ그룹은 고위 임원이 참가한 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해명했다.

CJ그룹 홍보실은 “후원사 자격으로 참석해달라는 주최측 요청이 있었고 해당 임원의 아들이 독도 방문을 원해 같이 가게 된 것”이라고 석연찮은 부연설명을 했다.

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았던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도 정윤회씨와 얽힌 소문으로 난처해 한 바 있다.

공식적으로 법적 이혼한 상태인 정씨의 전 부인 최순실씨가 한화그룹의 한 임원과 오랜 동향 친구이며, 한화그룹이 이를 통해 정씨에게 접근을 한다는 식의 말이 나돌았다.

특히 김승연 회장의 셋째 아들 동선씨가 정윤회씨의 딸과 마찬가지로 국가대표 승마선수라는 점이 소문을 증폭시켰다.

지난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김승연 회장의 아들과 정윤회씨의 딸이 모두 승마 국가대표로 출전한 바 있다.

한화그룹은 이 때문에 지난 국정감사 기간 동안 정씨를 둘러싼 비선 실세 논란, 또는 정씨 딸이 국가대표 승마선수로 발탁된 것을 둘러싼 특혜설 등이 불거져 자신들에게까지 불똥이 튀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기도 했다.

한 주간지는 올해 3월 말 '정윤회 씨가 박지만을 미행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4월 초에는 '승마협회를 좌지우지하는 정윤회 씨의 딸이 아시안게임 승마대표로 특혜 선발된 의혹이 있다'는 내용의 보도를 한 바 있다.

정씨는 이에 대해 모 주간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정씨는 고소장에서 "3월부터 시작된 보승마협회 관련 보도 때문에 고등학교 3학년 딸과 부인이 최소한의 명예와 평범한 시민으로서의 삶을 지키지 못하게 돼, 결국 지난 5월 이혼까지 이르렀다.

"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는 지난 3월 말 정씨를 상대로 이혼조정 신청서를 서울가정법원에 제출했고, 법원은 이 사건을 조정위원회에 회부해 지난 5월 초 이혼이 확정됐다.

최씨는 이름까지 개명한 뒤 이혼 소송을 낼 정도로  극도로 신경을 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혼 조정안에는 최씨가 자녀양육권을 갖고 재산분할 및 위자료 청구는 하지 않는다는 내용과 결혼기간 중 있었던 일을 외부에 알리지 않을 것과 서로를 비난하지 말자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져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올해 이화여대에 승마특로 정 씨의 딸이 입학한 사실도 화제가 됐다.

학교 역사상 최초로 승마특를 선발했는데, 정 양이 유일한 합격자였다.

체육특 전형에는 약 60명이 지원해 요트 2명, 수영 2명, 스키와 승마 분야 특기생이 각각 1명씩 6명 합격했다.

이화여대 측은 정 양이 중학교 때부터 국내외 대회 수상 기록이 많아서 선발했고, 아버지는 누군지 전혀 몰랐다고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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