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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준



  1956년 서울生. 휘문高. 고려대.  . 2008년 청와대 문화체육관광비서관. 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 저서《한국, 너 잘났다》《나의 심장은 코리아로 벅차오른다》《마흔이 내게 준 선물》등.   프롤로그 - 우리 삶을 반성과 지혜로 이끄는 반전의 드라마들.  승승장구할 때는 세상의 진면목이 보이지 않는다.

늘 장밋빛처럼 보이기도 하고, 주변 사람이 모두 내 편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내려올 때는 세상의 참모습이 보인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 고은. <그 꽃>.    우리 검찰에는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다.

수사,구속,기소,재판에 이르는 전 과정을 검찰이 완벽하게 통제하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 수사는 경찰의 몫이고, 검찰은 기소 후 재판을 책임지는 게 보통이다.

우리처럼 경찰이 검찰 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동등하다.

 일본도 경찰이 독자적으로 수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검찰이 이 모든 것을 틀어쥐고 있다.

 권력의 집중은 반드시 부패를 부른다.

이 때문에 권력은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

이 단순한 원리를 우리 사법제도는 간과하고 있다.

 21세기에도 검찰을 둘러싼 온갖 스캔들과 분란이 벌어지고 있다.

 1997년 5월 이후, 아시아 각국의 독재정치와 금융부실이 본격적으로 도마에 올랐다.

 이미 한국에 빌려 준 돈의 회수가 본격화되면서 한국 금융기관과 기업은 돈이 마르고 도산하기 시작했다.

 홍콩의 주권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간 다음 날인 7월 2일, 태국 바트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동남아 전역으로 금융위기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8월 하순에는 홍콩마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세계적 위기에도 한국은 吾不關焉(none of my business)이었다.

 YS는 아들 김현철이 구속된 이후 사실상 식물 대통령이 되어 보이지 않았고, 여론은 이회창 대선후보의 아들 병역문제에 올인하고 있었다.

 홍콩에서 아무리 외환위기 기사를 송고해도 국민들의 관심은 오로지 대선이었다.

정부는 더욱 한심했다.

 9월 홍콩에서 열린 IMF 총회에 온 강경식 경제부총리는 "한국 경제력에 걸맞은 분담금을 내겠다.

"며 오히려 IMF 회비 증액 로비에 열중했다.

 그와 인터뷰를 한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경제부장 레이 베시포드는 이렇게 한탄했다.

 "일국의 경제 총수가 어쩌면 그렇게 상황을 모를 수 있나."  당시 IMF 총회에는 조지 소로스도 참석했다.

그는 일본 관리들에게 '금융위기 다음 타깃은 한국'이라고 귀띔했다.

 "한국 금융기관들이 인도네시아에 너무 많은 돈을 빌려 주었다.

줄잡아 100억 달러에 육박하는 돈이 인도네시아에 잠겨 있는데 대부분 단금이라 부실자금이 되어 버렸다.

곧 한국은 헤지펀드들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

"  10월 말 한국 주가는 500선이 붕괴되었다.

11월 들어 세계 언론들은 약속이나 한 듯 '한국이 위험하다'고 연일 보도했으나, 한국은 대응을 못했다.

 오히려 김영삼 대통령은 임기 중에 IMF 구제금융을 받지 않겠다며 외환보유고를 바닥상태까지 끌고 갔다.

 마침내 우리 외환시장과 증시가 붕괴 상황에 이른 11월 21일 밤, 정부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겠다고 발표했다.

 훗날 정부조사에서 밝혀진 바로는, YS가 외환위기를 처음 파악한 것은 경제관료를 통해서가 아니라 11월 10일 홍재형 의원과의 전화통화에서였다.

 국가적 위기사태를 맞아 통치자는 부지했고, 그런 징후를 보고한 관료도 없었다.

나라는 표류하고 있었다.

 YS는 측근들과 한보 사이의 유착을 제어하지 못했고, 세계화란 명목 하에 세심한 고려 없이 자본시장을 덜컥 개방해 버렸다.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의 언어에는 날 선 감정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부터 말의 품위를 잃고 막말을 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유행병처럼 번져 나갔다.

김훈은 언어의 폭력화,무기화를 지적했다.

 "언어는 타인에 의해 부정되고 수정될 수 있는 허약한 것이라는 점에서 힘을 갖는데, 우리시대 언어는 돌처럼 굳어지고 완강해 무기를 닮아 가고 있다.

"  그는 는 본질적으로 문장가가 아니라 스파이라고 규정했다.

至難한 사실확인 작업을 거쳐 정보를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A란 사람을 개자식이라고 하고 싶어도 그렇게 쓰는 순간, A가 아닌 내가 개자식이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A가 개자식일 수 밖에 없는 이유와 물증을 찾아야 한다.

"  그는 우리의 사고체계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다.

 "요즘 우리는 '이것이 무엇인가?' '왜 이런가?' '이것과 저것과의 관계는 어떤가?' 등의 과학적 사고 대신, '내 마음에 드나, 안 드나?' '내 생각과 맞나, 안 맞나?' '내 편인가, 아닌가?' 식의 정서적,이념적,정치적 생각을 한다.

신념의 언어가 아니라 과학의 언어로 사유해야 한다.

"  "지배적 언론이나 담론들이 당파성에 매몰돼 그것을 정의,신념이라고 믿고 있다.

나는 신념에 가득 찬 자들보다 의심에 가득 찬 자들을 신뢰한다.

"  김훈은 이 시대 언론기관이 권력기관 내지 사회 세력화되고 말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이 한때 몸담았던 한겨레에 대해서도 "사실에 입각한 객관적 저널리즘으로 존재할지, 아니면 하나의 사회 세력으로 존재할지를 고민하라."고 했으며, 반대편에 있는 에 대해선 "마치 자기네가 제상을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오만에서 벗어나라."고 했다.

 "사실에 바탕해서 의견을 만들고, 의견에 바탕해서 신념을 만들고, 신념에 바탕해서 정의를 만들고, 정의에 바탕해서 지향점을 만들어라. 이게 갈 길이다.

"  가장 감동적인 글은 필자가 말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당시 상황을 보여 줄 때 나온다.

필자가 일일이 설명하면 독자는 수동적이 되고, 필자가 묘사에 그치면 독자는 적극적인 상상력을 동원해 나름의 생각을 하게 된다.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를 쓰고 나서 한 말이다.

 돌이켜 보면 세상살이의 이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상대방의 말보다 사소한 마음이나 행동에 더 감동을 받는다.

 "난 어려서부터 혼자 노는 걸 좋아했어. 커서도 번잡함이 싫어 평생 가본 영화관이 다섯 군데도 안 돼... 나이 오십 넘어 자전거를 배워 혼자 놀라 다녔지."  김훈은 자신에게 孤獨보다 單獨이란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고 했다.

고독은 정서적 사태인 반면 단독은 물리적 사태를 이르는 단어라는 것이다.

 "존재의 본디 모습이 단독 아닌가. 혼자 있으면 더 存在感이 충만해지는데 왜 사람들은 외롭다고 하지?"  그는 아무도 자신을 컨트롤할 수 없으며, 따라서 스스로 자신을 규율하며 근면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내가 스스로에게 강철 같은 기운을 부과하는 것이다.

그것에 의해서 나를 버텨 낼 수 밖에 없고, 그 기운을 상실하는 순간에 난 모든 것을 잃게 되리라 생각한다.

"  그의 작업실 벽에는 하루에 원고지 5장은 꼭 쓰자는 의미에서 '必日五'라고 쓰인 종이가 붙어 있다.

 어쩌면 "Show, Don't tell."이야말로 온갖 주장과 위선이 난무하는 지금 이 시대에서 가장 필요한 인생의 경구가 아닐까?  쉽지 않다.

어느새 남들을 향해 비판하고 주장하고 가르치고 자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신문 시절 글을 쓸 때 의견과 사실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예컨대 '그가 선하다'는 것은 의견이요, '그가 선행을 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의견을 사실처럼, 사실을 의견처럼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는 정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오피니언 리더나 지식인들이 당파성에 매몰돼 판단하고 그것을 정의나 신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어쩌면 시대의 전반적인 상황이 그런 방향으로 고착화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1988년 당시 뉴욕 지사에서 근무할 때 나는 전씨의 재산추적에 나섰다.

우선 전씨와 가까웠던 교포들부터 만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뉴욕 한인회장과 미주지역 한인회 총연합회장을 지낸 박지원을 거명했다.

 박지원을 전경환의 오른팔로 부르는 이도 있었고, 전씨가 뉴욕에 오면 그 사람이 다 책임 졌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박지원은 1970년대 초 이민 와서 사업가로 성공했고, 뉴욕 한인회장으로 있던 1981년 초 전두환 대통령 방미환영위원장을 맡았다.

 이때 전씨 형제의 눈에 들어온 박지원은 이후 전경환이 뉴욕에 올 때마다 지극정성으로 모셨고, 그 덕에 뉴욕 평통자문위 회장도 맡고 정계진출도 모색했다는 것이다.

 몇 년 뒤인 1992년 대선 때, 김영삼과 김대중 간의 격돌이 벌어졌다.

이때 김대중의 대변인으로 박지원이 등장했다.

 뉴욕 한인회장 출신인 그는 1987년 귀국 즉시 평민당에 입당했고, 1992년 14대 전국구 의원이 돼 김대중의 입으로 부상했다.

 순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5공 실력자의 측근 노릇을 하다가 5공 때 가장 핍박받던 야당 지도자의 측근으로 변신한 순발력과 적응력...  후일담을 들어보니 그는 전경환을 모시던 와중에도 1983년 당시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김대중을 만나 돈독한 관계를 맺었는가 하면, 수시로 한국에 와 공천받기 위해 민정당사를 들락거렸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김대중의 라이벌인 김영삼 측과도 교분을 넓혀 전국구 제의까지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2001년 6월 20일 청와대 정책수석을 맡고 있던 박지원이 시내 한정식 집에서 중앙 일간지 사회부장단을 초대했다.

 "박 수석, 뉴욕에서 전경환과 그렇게 친했다면서?"  "아... 뉴욕 한인회장을 하다 보면 의전상 다.

.."  "아니, 그게 아니고 자발적으로 매우 가까웠다고 하던데... 전경환의 가방 모찌 노릇을 했다며?"  그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 갑자기 박지원은 질펀한 술자리 대화로 화제를 바꾸었다.

 이제 70대 노정객이 된 지금, 그가 온갖 이해타산으로 뒤얽힌 정치판에서 先公後私의 마음으로 자신을 내려놓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면 너무 순진한 생각일까?  어윤대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보스가 자기 사람을 쓰는 스타일이라면, 리더는 좋은 사람을 쓰는 스타일이다.

"  정명훈은 세계적 지휘자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와 프랑스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을 가장 존경하는 음악가로 꼽았다.

 "그분들 같이 겸손해지겠다는 것, 그것이 내 인생의 목표입니다.

"  그 겸손함을 음악으로 연결시킨다면 순수함이라고 했다.

 "순수하려면 단순해져야 합니다.

"  평소 그렇게 바쁘게 살지만, 그는 휴대전화도 이메일도 이용하지 않는 전형적인 아날로그 맨이다.

 그의 일상은 음악,가족,요리,신앙이 전부다.

그러나 그는 현명하다.

[함영준] 할말이 없네요.


 단순한 삶이야말로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삶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해주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성공을 추구하는 전반부 삶과 의미를 추구하는 후반부 삶으로 나뉘는데, 승부는 후반전에 결정 난다.

" - 밥 버포드. <하프타임>.  중세 수도사들의 주된 가르침이었던 'Memento Mori' 즉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은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일깨워 주는 메시지다.

 일상의 욕망과 갈등이 사실은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를 느끼고 진정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박노해는 이제 더 이상 진보도 보수도 아닌, 제3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인간의 기본을 건너뛰고 나라 경영에는 무능한 채 절대이념에만 목청 높이는 진보 지식인'이나 '자기 먹고살 것은 물론 온갖 기득권과 특권을 다 누리며 도덕과 법질서를 떠드는 보수 지식인'들을 경계하라고 말한다.

'150812水 安晋弘     21 18:58:00    [프레시안 books] 스티브 마틴의 <레이시 이야기>              어쨌거나 현대 미술계가 폐쇄적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폐쇄적일 수밖에 없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가시적 현실의 재현이라는 숙제를 끝마친 미술은 모더니즘의 깃발 아래에서 그 자유를 만끽하며 왕성하게 번식했다.

그리고 그 번식을 가능하게 한 것은 손기술이나 영험한 예술적 자아라기보다는 시지각을 이용한 두뇌 놀이인 셈이었다.

그러므로 꽤 복잡한 배경 지식과 논리를 필요로 한다.

현재 한국의 일반적인 고등 교육을 떠올려 보면, 현대 미술을 이해하는 방법은 정규 교육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혹자는 여기에 '예술'은 감상자가 느끼는 대로 정의가 가능하다고 반문할지도 모르고, 실제로 교육과 경험으로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한 부분도 있지만, 현대 미술이 축척해 온 가시적 세계의 비가시적 논리는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현대 미술계를 폐쇄적으로 만드는 좀 더 본질적이고 간단한 이유는 바로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가격의 재화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백 억 원에 달하는 전설 속의 명작들 뿐 아니라, 우리가 갤러리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미술 작품은 한국 가정의 평균 월수입을 가뿐하게 뛰어 넘는다.

오로지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혹은 시세 차익을 노리기 위해 그 정도의 돈을 투자할 수 있는 계층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사회에서 '선택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두 가지 조건, 돈과 지식이 결부되어 있다 보니 현대 미술은 어느새 저 멀리에 혼자 존재하는 어떤 것이 되었다.

 위에 언급한 조건이 계급적 차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예민한 것이다 보니, 현대 미술에 대한 사람들의 '이상한 불만'도 생겨나는 듯하다.

직관적인 이해가 불가한 작품 앞에서 관객은 자신이 가진 배경 지식을 총동원해 작품을 이해해보려고 하다가 이내, '취미 판단은 미감적'이라는 칸트의 아포리즘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자위하곤 한다.

그리고 그 작품의 가격을 알게 됨과 동시에 마음속 셔터를 내리고, 나와는 상관없는 세상의 어떤 부분으로 현대 미술을 단정 짓곤 한다.

그러다 낸시 랭 등의 요상한 '예술'이 모니터 앞에 나타나면 댓글로 심술을 부리기도 하고, 실제로 예산을 집행하는 정부 기관의 공무원들은 "지역 사회 발전"이나 "대중과의 호흡"을 핑계 삼아 현대 미술가에게 요구할 수 없는 것을 주문하기도 한다.

그에 비해 서구의 대도시에서 현대 미술에 대한 관용도는 조금 더 높은 것 같다.

예술가 앞에 쳐진 시펀 커튼의 종류가 다르다고 할까. 굳이 마르셀 뒤샹의 혁명적인 작품이나 앤디 워홀의 묘하고 가벼운 태도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수많은 현대 미술 전시에 노출된 생활을 당연하게 살아가는 대도시의 사람들에게 그 방법론이 낯설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큰 미술관을 빌려놓고 아르바이트를 고용해서 관객에게 말을 건다거나, 전시장 안에 그야말로 평범한 돌덩이를 갖다놓는다고 해도 "현대 미술이란 원래 이런 거야. (싱겁고 덧없지…)"라는 맥락으로 수용되는 듯하다.

물론 돈과 지식이라는 조건과 얽힌 여러 설왕설래는 늘 함께 하고 있지만. ▲ <레이시 이야기>(스티브 마틴 지음, 이재경 옮김, 홍시 펴냄). ⓒ홍시 <레이시 이야기>(스티브 마틴 지음, 이재경 옮김, 홍시 펴냄)는 바로 이런 폐쇄적이고 쉽게 형체가 드러나지 않는 서구의 미술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설에는 레이시의 가장 친한 이성친구이자 빛바랜 성적 긴장으로 그녀와 별다른 이해관계에 얽매여 있지 않은 '고자화'된 남성 내레이터를 배치한다.

이러한 방식은 <위대한 개츠비>(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민음사 펴냄)를 비롯한 수많은 서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이다.

기존의 굳건한 질서 속에 잠입하여 그 속에서 원하는 것을 거머쥐기 위해 갈등하는 주인공을 관찰하며 그 이야기를 들려주기. 그럼으로써 독자는 주인공과 적당한 거리감을 얻을 수 있고, 서사 속에 묘사된 실재 세계의 한 부분은 가상의 인물들이 딛고 서 있을 수 있는 토양으로 쉽게 테라포밍(Terraforming)된다.

앞서 말한 폐쇄적인 미술계의 특성은 다르게 표현하자면 '그들만의 논리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현대 미술 시장은 그 가치를 쉽게 매기기 힘든 '작품'을 만드는 미술가와 그 '작품'을 기꺼이 엄청난 가격에 구입해주는 콜렉터, 그리고 미술가와 콜렉터 간 모종의 거래에 지적 논리를 부여해주는 시장 친화적인 평론가와 매체가 세 꼭짓점을 이루는 삼각형과 닮았다.

그 안에서 가격과 의미, 즉, 돈과 지식이 생겨나는 봉이 김선달식 방식은, 외부의 세계를 열심히 참조하지만 참조점이 드러날수록 그 영업 비밀을 공개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감상자로서 그 연결 지점을 집어내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자연스럽게 수많은 갱스터 서사를 떠올리게 한다.

외부에 그 행적이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 내부자들끼리만 공유하는 질서, 외부의 경제 법칙과는 상이한 점 등으로 인해 미술계는 갱스터와 닮아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고전적인 유사 갱스터 서사가 성취해 왔던 음험한 비극의 광경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전반부에서 잔뜩 날이 선 묘사와 냉소적인 유머로 소더비와 업타운 갤러리 주변의 풍경을 자신 있게 파헤치던 필치는, 후반부에 이르며 면밀함을 잃는다.

마치 자신이 소설에서 창조해 낸 콜렉터나 현대 미술은 어떻게 팔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탄하던 딜러처럼, 작가 역시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고 단지 새롭기만 한 것에 대해 '새로워봤자 별 거 없을 것'이라는 안일한 태도를 유지한다.

 대부분의 갱스터 영화는 두 가지 재미의 축을 갖고 있다.

한참 커리어를 쌓아가며 경쟁자를 축출하고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발랄한 속도감과 정상에 오른 이후 서서히 추락하며 새로운 세계의 질서에 의해 축출당하기까지의 안타깝고 아스라한 백일몽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장대한 비극은 만화경 같은 배경이 홀로그램처럼 '짱짱하게' 묘사되지 않으면 쉽게 생명력을 잃는다.

이 소설에서라면 19세기 미국 회화를 모으던 촌뜨기 콜렉터와 업타운의 딜러들이 앤디 워홀과 힙스터 미술가를 거쳐 결국 중국 미술과 함께 파멸을 맞이하는 약 20년에 걸친 파란만장한 과정이 아스라하게 추적되어야 하는데, 그 환락과 거품의 현장이 묘사되는 방식은 그것이 아우르는 각 시대에 따라 밀도가 꽤 큰 폭으로 흔들린다.

그러므로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이 있었던 2008년까지 이르면, 전반부에서 그렇게 활달하게 온 맨해튼을 쑤시고 다녔던 '욕망 아가씨' 레이시는 주욱 달려온 관성에 의해 움직이는 수동적인 캐릭터가 되고 만다.

마치 유비, 관우, 장비가 모두 죽은 삼국지처럼, 혹은 지루한 바둑 대국의 끝내기처럼 소설로서의 남은 절차를 마무리하는 과정일 뿐으로 싱겁기 그지없다.

게다가 전형적 '비치(Bitch)'로서 갤러리스트 레이시가 갖는 태생적 매력의 한계도 존재한다.

그녀의 젊음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데엔 유리할지 몰라도, 갱스터 영화 주인공의 교활한 책략이나 하드보일드 탐정들의 직진성처럼 사건의 얼개와 포개진 자기장을 형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섹스에 임하는 레이시의 모습이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든가 콜렉터와 벌이는 '밀당'의 흔적이 싱겁다든가 하는 것은 그녀의 성품이 능동적인 주인공으로서 이 백일몽의 서사를 좌지우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좋은 서사라고 하기에는 몇 가지 단점을 떠안게 된다.

중간에 벌어지는 자그마한 미스터리는 차라리 생략했어도 좋을 정도로 싱겁다.

특히 비극적 아스라함을 자아내기 위해 마치 <시민 케인>의 로즈버드처럼 준비한 '할머니가 물려주신 미국 근대 회화'는 슬프기까지 하다.

[함영준] 최선의 선택



시대적 배경에 대한 묘사가 무너져 버린 시점에 그 아스라한 느낌이 잘 살아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 그림이 맥거핀으로서 레이시의 야망을 함축적으로 담아내지 못하는 것도 그렇다.

 이것은 아마도 뉴욕의 문화계에서 오랫동안 잔뼈가 굵었던 중년 백인 셀러브리티 작가 스티브 마틴이 어쩔 수 없이 갖게 된 관점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뱅크시를 연상하게 하는 '파일럿 마우스'의 인디 락스타적 활동은 컨트리 음악으로 그래미를 받은 중년 백인 '보수 리버럴' 셀러브리티에게는 족보 없는 어떤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소설의 전반부 묘사들이 콜렉터로서의 자신의 미술적 지식을 은근히 드러내며 세심하게 구성된 것에 반해, 중반 이후부터 대표적인 힙스터 예술가로 등장하는 자의 이름이 고작 '파일럿 마우스'인 것은, 마치 회사 야유회에 반바지와 정장 양말을 동시에 입고 참석한 부장님을 보는 것 같은 '민망미'를 자아내기도 한다.

 ▲ 배우, 코미디언으로도 잘 알려진 <레이시 이야기>의 작가 스티브 마틴. ⓒen.wikipedia.org그러나 순전히 작가의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는 것은, 요즘의 미술계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세계 전쟁과 겹쳐진 모더니즘의 세상에서 미술가들은 세계 전쟁이 끝난 뒤의 포스트모던한 세상까지 끊임없이 작품을 만들며 기존의 미학을 흔들고 경매 가격을 경신해왔다.

그러나 더 이상 무엇이 있을까? 마치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두 차례의 사건이 뉴욕을 휩쓸었다.

9.11 사태 이후에는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중국 미술을 끌어들여 한 몫 잡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이후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과 함께 더 이상 미술계는 새로운 작가가 등장하여 새로운 미학적 성과를 누리거나 거액의 거래는 더 이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미술계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야망에 넘치는 젊은이가 자발적으로 사자우리에 들어가 먹이사슬의 위쪽으로 올라가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서사는 미술계뿐만 아니라 어디든지 통용되는 스릴 넘치는 '동물의 왕국'형 서사이기 때문이다.

또한 마이애미 아트페어의 파티 장면 등, 작가가 정확히 경험했던 것을 묘사할 때는 베테랑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서의 재기가 여실히 드러난다.

미술계를 둘러싼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완벽한 캐릭터로 재현해 저녁 식사에 초대한 듯 묘사하는 대목은 마치 한 편의 부조리극을 보는 것처럼 실없는 웃음을 터지게 한다.

돼지 같은 콜렉터와 이미 미라가 되었음직한 미술가, 미술 작품의 미학적 의미를 교조적으로 파헤치는 데 경도된 유사 평론가, 어떻게든 사람들 눈에 띄어 인맥을 넓히려는 시끄러운 신출내기 딜러 아가씨 등이 모인 자리는 작가가 오랫동안 미술계를 드나들며 꾸준히 관찰해 온 것을 풀어낸 부분이다.

 게다가 미술 시장에 대한 추상적인 관념을 걷어내기 위한 입문서적으로 이 소설은 꽤 괜찮은 성과를 갖고 있기도 하다.

특히 한국에서 미술 시장에 대한 관심이 신문의 문화면보다 사회면에 치중되어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미술계를 굴리는 돈은 모조리 뒤가 구린 검은 돈일 거라는 몹쓸 편견도 이해는 간다.

실제로 그동안 고가의 미술품을 돈세탁의 도구로 이용하는 경우가 허다했으니까. 하지만 미술계를 굴러가게끔 하는 동력이 그렇게 질 낮은 파렴치 범죄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미술계에 편견을 가진 독자라면 일단 마음을 좀 풀고 이 소설을 읽음으로써 이 괴상한 세상의 한 구석을 좀 더 정확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함영준 자유기고가, 도미노 동인의 글 스크랩, 프레시안 뉴스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69048'???'?? ????? ???? '??? ??'!???? ?? ???? ?????? ?? ??? ? ?? ????. ???? ??? ?? ? ?? ??? ??. ?????? ??? ??? ?...www.pressian.com?."‘도미노(DOMINO)’ 이 잡지는 설명하기가 좀 그런데요, 왜냐면 농담이 섞인 잡지라서요. 농담을 설명하려는 순간, 사람은 초라해지거든요!"www.999archive.com21 18:58:00    [프레시안 books] 스티브 마틴의 <레이시 이야기>              어쨌거나 현대 미술계가 폐쇄적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폐쇄적일 수밖에 없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가시적 현실의 재현이라는 숙제를 끝마친 미술은 모더니즘의 깃발 아래에서 그 자유를 만끽하며 왕성하게 번식했다.

그리고 그 번식을 가능하게 한 것은 손기술이나 영험한 예술적 자아라기보다는 시지각을 이용한 두뇌 놀이인 셈이었다.

그러므로 꽤 복잡한 배경 지식과 논리를 필요로 한다.

현재 한국의 일반적인 고등 교육을 떠올려 보면, 현대 미술을 이해하는 방법은 정규 교육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혹자는 여기에 '예술'은 감상자가 느끼는 대로 정의가 가능하다고 반문할지도 모르고, 실제로 교육과 경험으로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한 부분도 있지만, 현대 미술이 축척해 온 가시적 세계의 비가시적 논리는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현대 미술계를 폐쇄적으로 만드는 좀 더 본질적이고 간단한 이유는 바로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가격의 재화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백 억 원에 달하는 전설 속의 명작들 뿐 아니라, 우리가 갤러리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미술 작품은 한국 가정의 평균 월수입을 가뿐하게 뛰어 넘는다.

오로지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혹은 시세 차익을 노리기 위해 그 정도의 돈을 투자할 수 있는 계층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사회에서 '선택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두 가지 조건, 돈과 지식이 결부되어 있다 보니 현대 미술은 어느새 저 멀리에 혼자 존재하는 어떤 것이 되었다.

 위에 언급한 조건이 계급적 차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예민한 것이다 보니, 현대 미술에 대한 사람들의 '이상한 불만'도 생겨나는 듯하다.

직관적인 이해가 불가한 작품 앞에서 관객은 자신이 가진 배경 지식을 총동원해 작품을 이해해보려고 하다가 이내, '취미 판단은 미감적'이라는 칸트의 아포리즘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자위하곤 한다.

그리고 그 작품의 가격을 알게 됨과 동시에 마음속 셔터를 내리고, 나와는 상관없는 세상의 어떤 부분으로 현대 미술을 단정 짓곤 한다.

그러다 낸시 랭 등의 요상한 '예술'이 모니터 앞에 나타나면 댓글로 심술을 부리기도 하고, 실제로 예산을 집행하는 정부 기관의 공무원들은 "지역 사회 발전"이나 "대중과의 호흡"을 핑계 삼아 현대 미술가에게 요구할 수 없는 것을 주문하기도 한다.

그에 비해 서구의 대도시에서 현대 미술에 대한 관용도는 조금 더 높은 것 같다.

예술가 앞에 쳐진 시펀 커튼의 종류가 다르다고 할까. 굳이 마르셀 뒤샹의 혁명적인 작품이나 앤디 워홀의 묘하고 가벼운 태도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수많은 현대 미술 전시에 노출된 생활을 당연하게 살아가는 대도시의 사람들에게 그 방법론이 낯설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큰 미술관을 빌려놓고 아르바이트를 고용해서 관객에게 말을 건다거나, 전시장 안에 그야말로 평범한 돌덩이를 갖다놓는다고 해도 "현대 미술이란 원래 이런 거야. (싱겁고 덧없지…)"라는 맥락으로 수용되는 듯하다.

물론 돈과 지식이라는 조건과 얽힌 여러 설왕설래는 늘 함께 하고 있지만. ▲ <레이시 이야기>(스티브 마틴 지음, 이재경 옮김, 홍시 펴냄). ⓒ홍시 <레이시 이야기>(스티브 마틴 지음, 이재경 옮김, 홍시 펴냄)는 바로 이런 폐쇄적이고 쉽게 형체가 드러나지 않는 서구의 미술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설에는 레이시의 가장 친한 이성친구이자 빛바랜 성적 긴장으로 그녀와 별다른 이해관계에 얽매여 있지 않은 '고자화'된 남성 내레이터를 배치한다.

이러한 방식은 <위대한 개츠비>(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민음사 펴냄)를 비롯한 수많은 서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이다.

기존의 굳건한 질서 속에 잠입하여 그 속에서 원하는 것을 거머쥐기 위해 갈등하는 주인공을 관찰하며 그 이야기를 들려주기. 그럼으로써 독자는 주인공과 적당한 거리감을 얻을 수 있고, 서사 속에 묘사된 실재 세계의 한 부분은 가상의 인물들이 딛고 서 있을 수 있는 토양으로 쉽게 테라포밍(Terraforming)된다.

앞서 말한 폐쇄적인 미술계의 특성은 다르게 표현하자면 '그들만의 논리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현대 미술 시장은 그 가치를 쉽게 매기기 힘든 '작품'을 만드는 미술가와 그 '작품'을 기꺼이 엄청난 가격에 구입해주는 콜렉터, 그리고 미술가와 콜렉터 간 모종의 거래에 지적 논리를 부여해주는 시장 친화적인 평론가와 매체가 세 꼭짓점을 이루는 삼각형과 닮았다.

그 안에서 가격과 의미, 즉, 돈과 지식이 생겨나는 봉이 김선달식 방식은, 외부의 세계를 열심히 참조하지만 참조점이 드러날수록 그 영업 비밀을 공개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감상자로서 그 연결 지점을 집어내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자연스럽게 수많은 갱스터 서사를 떠올리게 한다.

외부에 그 행적이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 내부자들끼리만 공유하는 질서, 외부의 경제 법칙과는 상이한 점 등으로 인해 미술계는 갱스터와 닮아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고전적인 유사 갱스터 서사가 성취해 왔던 음험한 비극의 광경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전반부에서 잔뜩 날이 선 묘사와 냉소적인 유머로 소더비와 업타운 갤러리 주변의 풍경을 자신 있게 파헤치던 필치는, 후반부에 이르며 면밀함을 잃는다.

마치 자신이 소설에서 창조해 낸 콜렉터나 현대 미술은 어떻게 팔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탄하던 딜러처럼, 작가 역시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고 단지 새롭기만 한 것에 대해 '새로워봤자 별 거 없을 것'이라는 안일한 태도를 유지한다.

 대부분의 갱스터 영화는 두 가지 재미의 축을 갖고 있다.

한참 커리어를 쌓아가며 경쟁자를 축출하고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발랄한 속도감과 정상에 오른 이후 서서히 추락하며 새로운 세계의 질서에 의해 축출당하기까지의 안타깝고 아스라한 백일몽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장대한 비극은 만화경 같은 배경이 홀로그램처럼 '짱짱하게' 묘사되지 않으면 쉽게 생명력을 잃는다.

이 소설에서라면 19세기 미국 회화를 모으던 촌뜨기 콜렉터와 업타운의 딜러들이 앤디 워홀과 힙스터 미술가를 거쳐 결국 중국 미술과 함께 파멸을 맞이하는 약 20년에 걸친 파란만장한 과정이 아스라하게 추적되어야 하는데, 그 환락과 거품의 현장이 묘사되는 방식은 그것이 아우르는 각 시대에 따라 밀도가 꽤 큰 폭으로 흔들린다.

그러므로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이 있었던 2008년까지 이르면, 전반부에서 그렇게 활달하게 온 맨해튼을 쑤시고 다녔던 '욕망 아가씨' 레이시는 주욱 달려온 관성에 의해 움직이는 수동적인 캐릭터가 되고 만다.

마치 유비, 관우, 장비가 모두 죽은 삼국지처럼, 혹은 지루한 바둑 대국의 끝내기처럼 소설로서의 남은 절차를 마무리하는 과정일 뿐으로 싱겁기 그지없다.

게다가 전형적 '비치(Bitch)'로서 갤러리스트 레이시가 갖는 태생적 매력의 한계도 존재한다.

그녀의 젊음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데엔 유리할지 몰라도, 갱스터 영화 주인공의 교활한 책략이나 하드보일드 탐정들의 직진성처럼 사건의 얼개와 포개진 자기장을 형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섹스에 임하는 레이시의 모습이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든가 콜렉터와 벌이는 '밀당'의 흔적이 싱겁다든가 하는 것은 그녀의 성품이 능동적인 주인공으로서 이 백일몽의 서사를 좌지우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좋은 서사라고 하기에는 몇 가지 단점을 떠안게 된다.

중간에 벌어지는 자그마한 미스터리는 차라리 생략했어도 좋을 정도로 싱겁다.

특히 비극적 아스라함을 자아내기 위해 마치 <시민 케인>의 로즈버드처럼 준비한 '할머니가 물려주신 미국 근대 회화'는 슬프기까지 하다.

시대적 배경에 대한 묘사가 무너져 버린 시점에 그 아스라한 느낌이 잘 살아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 그림이 맥거핀으로서 레이시의 야망을 함축적으로 담아내지 못하는 것도 그렇다.

 이것은 아마도 뉴욕의 문화계에서 오랫동안 잔뼈가 굵었던 중년 백인 셀러브리티 작가 스티브 마틴이 어쩔 수 없이 갖게 된 관점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뱅크시를 연상하게 하는 '파일럿 마우스'의 인디 락스타적 활동은 컨트리 음악으로 그래미를 받은 중년 백인 '보수 리버럴' 셀러브리티에게는 족보 없는 어떤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소설의 전반부 묘사들이 콜렉터로서의 자신의 미술적 지식을 은근히 드러내며 세심하게 구성된 것에 반해, 중반 이후부터 대표적인 힙스터 예술가로 등장하는 자의 이름이 고작 '파일럿 마우스'인 것은, 마치 회사 야유회에 반바지와 정장 양말을 동시에 입고 참석한 부장님을 보는 것 같은 '민망미'를 자아내기도 한다.

 ▲ 배우, 코미디언으로도 잘 알려진 <레이시 이야기>의 작가 스티브 마틴. ⓒen.wikipedia.org그러나 순전히 작가의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는 것은, 요즘의 미술계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세계 전쟁과 겹쳐진 모더니즘의 세상에서 미술가들은 세계 전쟁이 끝난 뒤의 포스트모던한 세상까지 끊임없이 작품을 만들며 기존의 미학을 흔들고 경매 가격을 경신해왔다.

그러나 더 이상 무엇이 있을까? 마치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두 차례의 사건이 뉴욕을 휩쓸었다.

9.11 사태 이후에는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중국 미술을 끌어들여 한 몫 잡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이후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과 함께 더 이상 미술계는 새로운 작가가 등장하여 새로운 미학적 성과를 누리거나 거액의 거래는 더 이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미술계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야망에 넘치는 젊은이가 자발적으로 사자우리에 들어가 먹이사슬의 위쪽으로 올라가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서사는 미술계뿐만 아니라 어디든지 통용되는 스릴 넘치는 '동물의 왕국'형 서사이기 때문이다.

또한 마이애미 아트페어의 파티 장면 등, 작가가 정확히 경험했던 것을 묘사할 때는 베테랑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서의 재기가 여실히 드러난다.

미술계를 둘러싼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완벽한 캐릭터로 재현해 저녁 식사에 초대한 듯 묘사하는 대목은 마치 한 편의 부조리극을 보는 것처럼 실없는 웃음을 터지게 한다.

돼지 같은 콜렉터와 이미 미라가 되었음직한 미술가, 미술 작품의 미학적 의미를 교조적으로 파헤치는 데 경도된 유사 평론가, 어떻게든 사람들 눈에 띄어 인맥을 넓히려는 시끄러운 신출내기 딜러 아가씨 등이 모인 자리는 작가가 오랫동안 미술계를 드나들며 꾸준히 관찰해 온 것을 풀어낸 부분이다.

 게다가 미술 시장에 대한 추상적인 관념을 걷어내기 위한 입문서적으로 이 소설은 꽤 괜찮은 성과를 갖고 있기도 하다.

특히 한국에서 미술 시장에 대한 관심이 신문의 문화면보다 사회면에 치중되어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미술계를 굴리는 돈은 모조리 뒤가 구린 검은 돈일 거라는 몹쓸 편견도 이해는 간다.

실제로 그동안 고가의 미술품을 돈세탁의 도구로 이용하는 경우가 허다했으니까. 하지만 미술계를 굴러가게끔 하는 동력이 그렇게 질 낮은 파렴치 범죄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미술계에 편견을 가진 독자라면 일단 마음을 좀 풀고 이 소설을 읽음으로써 이 괴상한 세상의 한 구석을 좀 더 정확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함영준 자유기고가, 도미노 동인의 글 스크랩, 프레시안 뉴스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69048'???'?? ????? ???? '??? ??'!???? ?? ???? ?????? ?? ??? ? ?? ????. ???? ??? ?? ? ?? ??? ??. ?????? ??? ??? ?...www.pressian.com?21 18:58:00    [프레시안 books] 스티브 마틴의 <레이시 이야기>              어쨌거나 현대 미술계가 폐쇄적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폐쇄적일 수밖에 없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가시적 현실의 재현이라는 숙제를 끝마친 미술은 모더니즘의 깃발 아래에서 그 자유를 만끽하며 왕성하게 번식했다.

그리고 그 번식을 가능하게 한 것은 손기술이나 영험한 예술적 자아라기보다는 시지각을 이용한 두뇌 놀이인 셈이었다.

그러므로 꽤 복잡한 배경 지식과 논리를 필요로 한다.

현재 한국의 일반적인 고등 교육을 떠올려 보면, 현대 미술을 이해하는 방법은 정규 교육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혹자는 여기에 '예술'은 감상자가 느끼는 대로 정의가 가능하다고 반문할지도 모르고, 실제로 교육과 경험으로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한 부분도 있지만, 현대 미술이 축척해 온 가시적 세계의 비가시적 논리는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현대 미술계를 폐쇄적으로 만드는 좀 더 본질적이고 간단한 이유는 바로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가격의 재화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백 억 원에 달하는 전설 속의 명작들 뿐 아니라, 우리가 갤러리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미술 작품은 한국 가정의 평균 월수입을 가뿐하게 뛰어 넘는다.

오로지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혹은 시세 차익을 노리기 위해 그 정도의 돈을 투자할 수 있는 계층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사회에서 '선택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두 가지 조건, 돈과 지식이 결부되어 있다 보니 현대 미술은 어느새 저 멀리에 혼자 존재하는 어떤 것이 되었다.

 위에 언급한 조건이 계급적 차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예민한 것이다 보니, 현대 미술에 대한 사람들의 '이상한 불만'도 생겨나는 듯하다.

직관적인 이해가 불가한 작품 앞에서 관객은 자신이 가진 배경 지식을 총동원해 작품을 이해해보려고 하다가 이내, '취미 판단은 미감적'이라는 칸트의 아포리즘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자위하곤 한다.

그리고 그 작품의 가격을 알게 됨과 동시에 마음속 셔터를 내리고, 나와는 상관없는 세상의 어떤 부분으로 현대 미술을 단정 짓곤 한다.

그러다 낸시 랭 등의 요상한 '예술'이 모니터 앞에 나타나면 댓글로 심술을 부리기도 하고, 실제로 예산을 집행하는 정부 기관의 공무원들은 "지역 사회 발전"이나 "대중과의 호흡"을 핑계 삼아 현대 미술가에게 요구할 수 없는 것을 주문하기도 한다.

그에 비해 서구의 대도시에서 현대 미술에 대한 관용도는 조금 더 높은 것 같다.

예술가 앞에 쳐진 시펀 커튼의 종류가 다르다고 할까. 굳이 마르셀 뒤샹의 혁명적인 작품이나 앤디 워홀의 묘하고 가벼운 태도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수많은 현대 미술 전시에 노출된 생활을 당연하게 살아가는 대도시의 사람들에게 그 방법론이 낯설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큰 미술관을 빌려놓고 아르바이트를 고용해서 관객에게 말을 건다거나, 전시장 안에 그야말로 평범한 돌덩이를 갖다놓는다고 해도 "현대 미술이란 원래 이런 거야. (싱겁고 덧없지…)"라는 맥락으로 수용되는 듯하다.

물론 돈과 지식이라는 조건과 얽힌 여러 설왕설래는 늘 함께 하고 있지만. ▲ <레이시 이야기>(스티브 마틴 지음, 이재경 옮김, 홍시 펴냄). ⓒ홍시 <레이시 이야기>(스티브 마틴 지음, 이재경 옮김, 홍시 펴냄)는 바로 이런 폐쇄적이고 쉽게 형체가 드러나지 않는 서구의 미술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설에는 레이시의 가장 친한 이성친구이자 빛바랜 성적 긴장으로 그녀와 별다른 이해관계에 얽매여 있지 않은 '고자화'된 남성 내레이터를 배치한다.

이러한 방식은 <위대한 개츠비>(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민음사 펴냄)를 비롯한 수많은 서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이다.

기존의 굳건한 질서 속에 잠입하여 그 속에서 원하는 것을 거머쥐기 위해 갈등하는 주인공을 관찰하며 그 이야기를 들려주기. 그럼으로써 독자는 주인공과 적당한 거리감을 얻을 수 있고, 서사 속에 묘사된 실재 세계의 한 부분은 가상의 인물들이 딛고 서 있을 수 있는 토양으로 쉽게 테라포밍(Terraforming)된다.

앞서 말한 폐쇄적인 미술계의 특성은 다르게 표현하자면 '그들만의 논리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현대 미술 시장은 그 가치를 쉽게 매기기 힘든 '작품'을 만드는 미술가와 그 '작품'을 기꺼이 엄청난 가격에 구입해주는 콜렉터, 그리고 미술가와 콜렉터 간 모종의 거래에 지적 논리를 부여해주는 시장 친화적인 평론가와 매체가 세 꼭짓점을 이루는 삼각형과 닮았다.

그 안에서 가격과 의미, 즉, 돈과 지식이 생겨나는 봉이 김선달식 방식은, 외부의 세계를 열심히 참조하지만 참조점이 드러날수록 그 영업 비밀을 공개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감상자로서 그 연결 지점을 집어내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자연스럽게 수많은 갱스터 서사를 떠올리게 한다.

외부에 그 행적이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 내부자들끼리만 공유하는 질서, 외부의 경제 법칙과는 상이한 점 등으로 인해 미술계는 갱스터와 닮아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고전적인 유사 갱스터 서사가 성취해 왔던 음험한 비극의 광경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전반부에서 잔뜩 날이 선 묘사와 냉소적인 유머로 소더비와 업타운 갤러리 주변의 풍경을 자신 있게 파헤치던 필치는, 후반부에 이르며 면밀함을 잃는다.

마치 자신이 소설에서 창조해 낸 콜렉터나 현대 미술은 어떻게 팔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탄하던 딜러처럼, 작가 역시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고 단지 새롭기만 한 것에 대해 '새로워봤자 별 거 없을 것'이라는 안일한 태도를 유지한다.

 대부분의 갱스터 영화는 두 가지 재미의 축을 갖고 있다.

한참 커리어를 쌓아가며 경쟁자를 축출하고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발랄한 속도감과 정상에 오른 이후 서서히 추락하며 새로운 세계의 질서에 의해 축출당하기까지의 안타깝고 아스라한 백일몽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장대한 비극은 만화경 같은 배경이 홀로그램처럼 '짱짱하게' 묘사되지 않으면 쉽게 생명력을 잃는다.

이 소설에서라면 19세기 미국 회화를 모으던 촌뜨기 콜렉터와 업타운의 딜러들이 앤디 워홀과 힙스터 미술가를 거쳐 결국 중국 미술과 함께 파멸을 맞이하는 약 20년에 걸친 파란만장한 과정이 아스라하게 추적되어야 하는데, 그 환락과 거품의 현장이 묘사되는 방식은 그것이 아우르는 각 시대에 따라 밀도가 꽤 큰 폭으로 흔들린다.

그러므로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이 있었던 2008년까지 이르면, 전반부에서 그렇게 활달하게 온 맨해튼을 쑤시고 다녔던 '욕망 아가씨' 레이시는 주욱 달려온 관성에 의해 움직이는 수동적인 캐릭터가 되고 만다.

마치 유비, 관우, 장비가 모두 죽은 삼국지처럼, 혹은 지루한 바둑 대국의 끝내기처럼 소설로서의 남은 절차를 마무리하는 과정일 뿐으로 싱겁기 그지없다.

게다가 전형적 '비치(Bitch)'로서 갤러리스트 레이시가 갖는 태생적 매력의 한계도 존재한다.

그녀의 젊음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데엔 유리할지 몰라도, 갱스터 영화 주인공의 교활한 책략이나 하드보일드 탐정들의 직진성처럼 사건의 얼개와 포개진 자기장을 형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섹스에 임하는 레이시의 모습이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든가 콜렉터와 벌이는 '밀당'의 흔적이 싱겁다든가 하는 것은 그녀의 성품이 능동적인 주인공으로서 이 백일몽의 서사를 좌지우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좋은 서사라고 하기에는 몇 가지 단점을 떠안게 된다.

중간에 벌어지는 자그마한 미스터리는 차라리 생략했어도 좋을 정도로 싱겁다.

특히 비극적 아스라함을 자아내기 위해 마치 <시민 케인>의 로즈버드처럼 준비한 '할머니가 물려주신 미국 근대 회화'는 슬프기까지 하다.

시대적 배경에 대한 묘사가 무너져 버린 시점에 그 아스라한 느낌이 잘 살아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 그림이 맥거핀으로서 레이시의 야망을 함축적으로 담아내지 못하는 것도 그렇다.

 이것은 아마도 뉴욕의 문화계에서 오랫동안 잔뼈가 굵었던 중년 백인 셀러브리티 작가 스티브 마틴이 어쩔 수 없이 갖게 된 관점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뱅크시를 연상하게 하는 '파일럿 마우스'의 인디 락스타적 활동은 컨트리 음악으로 그래미를 받은 중년 백인 '보수 리버럴' 셀러브리티에게는 족보 없는 어떤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소설의 전반부 묘사들이 콜렉터로서의 자신의 미술적 지식을 은근히 드러내며 세심하게 구성된 것에 반해, 중반 이후부터 대표적인 힙스터 예술가로 등장하는 자의 이름이 고작 '파일럿 마우스'인 것은, 마치 회사 야유회에 반바지와 정장 양말을 동시에 입고 참석한 부장님을 보는 것 같은 '민망미'를 자아내기도 한다.

 ▲ 배우, 코미디언으로도 잘 알려진 <레이시 이야기>의 작가 스티브 마틴. ⓒen.wikipedia.org그러나 순전히 작가의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는 것은, 요즘의 미술계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세계 전쟁과 겹쳐진 모더니즘의 세상에서 미술가들은 세계 전쟁이 끝난 뒤의 포스트모던한 세상까지 끊임없이 작품을 만들며 기존의 미학을 흔들고 경매 가격을 경신해왔다.

그러나 더 이상 무엇이 있을까? 마치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두 차례의 사건이 뉴욕을 휩쓸었다.

9.11 사태 이후에는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중국 미술을 끌어들여 한 몫 잡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이후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과 함께 더 이상 미술계는 새로운 작가가 등장하여 새로운 미학적 성과를 누리거나 거액의 거래는 더 이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미술계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야망에 넘치는 젊은이가 자발적으로 사자우리에 들어가 먹이사슬의 위쪽으로 올라가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서사는 미술계뿐만 아니라 어디든지 통용되는 스릴 넘치는 '동물의 왕국'형 서사이기 때문이다.

또한 마이애미 아트페어의 파티 장면 등, 작가가 정확히 경험했던 것을 묘사할 때는 베테랑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서의 재기가 여실히 드러난다.

미술계를 둘러싼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완벽한 캐릭터로 재현해 저녁 식사에 초대한 듯 묘사하는 대목은 마치 한 편의 부조리극을 보는 것처럼 실없는 웃음을 터지게 한다.

돼지 같은 콜렉터와 이미 미라가 되었음직한 미술가, 미술 작품의 미학적 의미를 교조적으로 파헤치는 데 경도된 유사 평론가, 어떻게든 사람들 눈에 띄어 인맥을 넓히려는 시끄러운 신출내기 딜러 아가씨 등이 모인 자리는 작가가 오랫동안 미술계를 드나들며 꾸준히 관찰해 온 것을 풀어낸 부분이다.

 게다가 미술 시장에 대한 추상적인 관념을 걷어내기 위한 입문서적으로 이 소설은 꽤 괜찮은 성과를 갖고 있기도 하다.

특히 한국에서 미술 시장에 대한 관심이 신문의 문화면보다 사회면에 치중되어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미술계를 굴리는 돈은 모조리 뒤가 구린 검은 돈일 거라는 몹쓸 편견도 이해는 간다.

실제로 그동안 고가의 미술품을 돈세탁의 도구로 이용하는 경우가 허다했으니까. 하지만 미술계를 굴러가게끔 하는 동력이 그렇게 질 낮은 파렴치 범죄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미술계에 편견을 가진 독자라면 일단 마음을 좀 풀고 이 소설을 읽음으로써 이 괴상한 세상의 한 구석을 좀 더 정확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함영준 자유기고가, 도미노 동인의 글 스크랩, 프레시안 뉴스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69048'???'?? ????? ???? '??? ??'!???? ?? ???? ?????? ?? ??? ? ?? ????. ???? ??? ?? ? ?? ??? ??. ?????? ??? ??? ?...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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