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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민목사



net/aoghk0511/7690743◆◆(속보) 美 오바마.. 朴에게 막말!!! .. 경악!!blog.daum.net=================================================================================================================        ================================================================================================================= 조웅 목사의 증언 ? ================================================================ 조웅 목사의 증언  동영상  동영상??????????????????????????? 5.16??????? ????????? ????? ??? ????????? ??????? ??!! ??????????????!...www.youtube.com?    (펌) 조웅 목사님의 폭로 동영상충격! 경악! 세상이 경악할 충격적인 동영상 (동영상 내용정리, 정윤회에 관한 기사, 동영상 밑에 있습니다)조웅 목사님, 박근혜의 엄청난 비리와 실체 폭로박근혜는 평생을 장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대통령까지 강탈했습니다.

부정선거, 국정원 대선 개입만으로도 박근혜의 대통령 취임을 막고 박근혜를 감옥으로 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아래의 동영상은 박근혜의 추잡하고 엄청난 비리를 폭로했습니다.

박근혜가 대통령에 취임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수치요 비극입니다.

박근혜의 대통령 취임을 막아야 합니다.

박근혜의 대통령 취임을 막기 위해 온 국민이 일어나야 합니다.

박근혜의 대통령 취임을 강력히 반드시 막읍시다.

  ● 인터뷰 조 웅 목사- 박정희와 함께 5.16쿠테타를 주도. [중앙정보부(現 국정원) 창설멤버] - 황태성 사건을 미 CIA에 제보 하여 미국에 한.미 합동조사단을 요구하였으나 무산 됨. - 그 일(황태성 사건)을 CIA에 제보했다는 이유로 박정희로 부터 무수한 암살 위협을 받음.- 박정희가 조 웅을 암살하라고 하자 김형욱(前 중앙정보부장)이 반대 (김형욱은 조 웅 목사님을 커버해주셨으나 1979년 프랑스에서 실종. 조 웅 목사는 또 김재규를 보호하려다가 테러도 당했다고 함.)--------------- 인터뷰 내용 요약. ---------------● 현재 상공회의소 소장인 '장자크구로아(EU 코리아 이사장)'는 북한에 7년 거주,김정일의 첩보라인. 박근혜는 EU코리아 이사이며 현재 박근혜와 밀접한 관계. ● 박근혜, 정윤회(최태민 딸의 남편), 장자크구로아,수행비서 총 4명이 김정일 전용기 편으로 평양 도착.● 박근혜와 김정일이 4시간 30분간 독대. 만찬에서 박근혜는 마약이 섞인'백두산삼독주'를 마심, 3박4일 동안 김정일을 만났고. 김정일과 동침(잠자리)함.(미국 CIA 정보라고 함)● 박근혜는 평양 방문 시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은 500억을 들고 감.(미국 CIA 정보 /조 웅 목사가 외환관리법위반으로 고발)● 박근혜는 김일성의 묘소에 참배 ( 고려연방제를 창설 하겠다고 선서 / 조 웅 목사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 박근혜는 최태민과 15년을 동거를 했고, 그의 아이를 두 번 지움. [조 웅 목사는 검사에게 박근혜 생식기 조사(임신 여부)를 하자고 했지만 검사가 거절.]● 박근혜는 최태민 사망 후 정윤회(최태민 딸의 남편)와 불륜관계를 가지며 16년을 동거. [현재 정윤회는 최태민이 박근혜에게 준 재산관리를 하며 인수위원 안에서 모든 키를쥐고있다.

]● 박근혜 뒤에는 정윤회가 있다.

돈. 인사 등등.. 박근혜는 허수아비다.

실질적인 실세는 정윤회라고 함.정윤회와의 불륜관계는 최태민 본처의 첫째 아들 최재석이 폭로한 것이고 함.● 박정희 집안 전체가 마약을 하고있다.

현재도 박근혜는 정윤회와 마약을 할 것이다.

박지만 뿐만아니라 집안 전체가 마약을 한다.

(마약 제공자는 '장자크구로아')● 박근혜 뒤에는 북한첩보라인인 장자크구로아가 있음.● 정윤회는 현재 박근혜의 통치자금을 관리하고 모든 인사권을 가지고 밀실정치를 한다.

현재 인수위 및 공직 임명자들도 모두 정윤회의 작품이며, 모조리 허수아비 일 뿐이다.

● 증거는 책과 수백장의 고발장이다.

책(제목: 황태성 박정희 김종필 커넥션) 은조 웅 목사가 직접 씀. 겨우10000부 발행만 허가를 받았고 현재는 품절.● " 박근혜의 집권을 필히 막아야 한다.

목숨걸고 하는 말이다.

아직까지도 신변의위협을 받는다.

박근혜는 도덕성, 이념에도 문제가 있고 절대 대통령이 되서는 안되는인물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기에 답답하고 원통해서 말한다.

박근혜가 안보 안보 하는것은 다 쑈이다.

북한첩보라인(장자크구로아)과 이미 깊숙히연관되어있다.

또 이 사실을 아는 분은 이항(?) 목사님 및 고발장 쓴 거 본 사람들이다 "-조 웅 목사-● 조 웅 목사는 불륜 및. 국가보안법위반. 외환관리법위반 사건으로 대검찰정에박근혜 고발을 수백번 하셨지만 흐지부지 되다가 묻혔다고 함. Posted on Wednesday, October 11, 2006 9:07:12 PM by Registered TOPICS: Editorial; Foreign Affairs; News/Current Events; Political Humor/CartoonsKEYWORDS: kimjungil; northkorea; smalleverything; smallman; soronery That's extreme. Reminds me of Tom Daschle. 1 posted on Wednesday, October 11, 2006 9:07:13 PM by Registered 정윤회 기사 링크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12/09/18/201209180500008/201209180500008_2.html[2012 대선] 최태민 사위 Mr.Q 정윤회 “박근혜 막후인물설 추적” 허만섭 | mshue@donga.com ● 朴 의원실 비서실장 ‘문고리 권력’ ● 2004년 朴 당대표 된 뒤 자취 감춰 ● “막후에서 공천 등 정치 개입” 소문 무성 ● “박근혜-정윤회, 결별 이유 없다”   최태민  정치권에서 회자되는 가장 미스터리한 남자. 바로 고(故) 최태민 목사의 사위 정윤회 씨다.

새누리당 대선 후보인 박근혜 의원의 전(前) 보좌관으로 알려진 정 씨는 2004년 이후 종적을 감췄다.

박근혜 후보 진영은 “2004년 이후 박 후보와 정윤회 씨 사이에 접촉은 일절 없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연합뉴스, , 등 여러 매체는 ‘지금도 박근혜의 숨은 실세?’ ‘공천에도 관여한다?’는 각종 설을 활자화한다.

“박근혜가 집권하면 정윤회는?”이라는 궁금증이 따라 나오는 게 현실이다.

정치권의 ‘선수들’ 사이에서 정윤회는 이미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 박근혜와 어떠한 관계를 맺어왔는지에 대해선 한 줄기의 빛도, 정보도 새어나오지 않는다.

새누리당에선 ‘정윤회’를 언급하는 것을 금기처럼 여긴다.

‘신동아’는 그와 접촉했던 인사들의 진술 등을 통해 이 남자를 스케치해봤다.

다른 증언을 소개하기 전에 우선 가 2000년대 초 정윤회 씨를 몇 번 만난 경험부터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약간 검고 호남형인 얼굴, 호리호리한 체형, 애연가, 부드러운 말투…. 국회 의원회관 박근혜 의원실에서 만난 그의 외형적 인상이었다.

그는 독일에서 유학했다고 했다.

박사 과정까지 거쳤다는 것으로 들었는데 확실치는 않다.

그의 집안, 고향, 학력은 박근혜 측 외에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좌장역 ‘비선(秘線) 비서실장’현재 여러 언론에 “박근혜 의원의 전 보좌관”으로 보도되는 것과 달리 당시 그는 “박근혜 의원의 비서실장”이라고 자신을 에게 소개했다.

그래서 그를 “실장”으로 불렀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는 박 의원실에서 풀타임으로 근무했지만 등록된 보좌관은 아니었던 것 같다.

박근혜 의원의 보좌관-비서관은 박 의원의 정계 입문 이래로 지금까지 변함없이 채워져왔다.

박 후보는 2007년 대선 경선 때 정윤회 씨를 “전직 입법보조원”이라고 설명했다.

이 발언 역시 정 씨가 공식 보좌관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일 것이다.

정 씨와 자주 만났다는 A씨는 에게 “박근혜의 입법보조원을 지금의 인턴직원 정도로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 씨에 대해 “‘박근혜 보좌진의 좌장 역할을 해온 비선 비서실장’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했다.

의원실 내에 비선을 두는 것은 지금의 시각으로 보자면 예외적인 운영체계이지만 그렇다고 법률이나 윤리에 저촉될 만한 사안은 아니었다고 한다.

이어지는 A씨의 증언은 당시 박근혜에게서 정윤회의 역할과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케 한다.

 정윤회     “1998년 박근혜 의원이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로 정계에 첫발을 내디딜 때부터 정윤회 실장이 박 의원을 도왔다.

2012년 현재까지 그대로 이어져오는 박 의원의 보좌진 세팅에도 정 실장이 어느 정도 관여한 것으로 안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정 실장은 공식 직함 없이 비서실장으로, 그러니까 당연히 월급이 안 나오는 무보수로, 박근혜 의원실에서 일했다.

그렇지만 박 의원실 내부를 종합적으로 컨트롤했다.

보통 보좌관이 의원 방에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조심스러워하고 예의를 갖추는 편인데 정 실장이 격의 없이 들어가는 것을 봤다.

그만큼 박근혜 의원과의 신뢰관계가 돈독했다.

박 의원이 대정부질의 같은 의정활동을 할 때 정 실장이 가끔 자문 교수단으로 알려진 외부 싱크탱크 같은 곳에서 자료를 만들어와 박 의원에게 제공해온 것으로 안다.

이런 연유로 정 실장이 의원실에서 나간 이후에도 ‘논현동팀’‘삼성동팀’ ‘강남팀’ 등 유사한 외곽조직을 운영하면서 박 의원을 돕고 있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돌고 있는 것이다.

정 실장의 거주지는 주로 강남이었다.

또한 정 실장은 박 의원실에 있을 때 박 의원과 만나기를 희망하는 외부인들을 함부로 박 의원에게 연결해주지 않았다.

정 실장에게 섭섭해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로 인해 정 실장은 소위 박근혜의 ‘문고리 권력’으로 알려졌다.

”  정윤회와의 술자리정윤회 씨와 여러 번 술자리를 가졌다는 B씨는 “박근혜 후보가 가장 믿는 사람은 가족 외에는 정윤회 실장과 이상렬 전 EG회장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B씨의 말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 경호실에서 근무한 이상렬 씨는 이후 박 대통령의 아들인 지만 씨가 오너로 있는 EG그룹의 회장으로 재임했다.

EG그룹의 이광형 부회장은 박 대통령 때 청와대 비서실에서 일했다.

고 최태민 목사의 사위인 정윤회, 아버지의 부하인 이상렬, 이광형을 박근혜 의원이 꽤 신뢰한 것으로 안다.

정윤회 실장은 담배는 좋아하지만 술은 잘 안 마시는데 이상렬 회장과는 많이 마시는 편이었다.

논현동 카페에서 만나면 나를 포함해 셋이서 양주 두 병을 비웠다.

이 회장이 가끔 자기 차 트렁크에서 양주를 꺼내오는 경우가 있었지만 술값은 대부분 정 실장이 냈다.

정 실장은 강남 등지에 부동산을 많이 갖고 있어서인지 부담 없이 냈다.

” 정윤회-최순실 부부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640-1 미승빌딩을 보유하고 있다.

2008년엔 보유하던 강남구 신사동 639-11 빌딩을 85억 원 정도에 매각했다.

2002년까진 강남구 역삼동 689-25 빌라를 소유했다.

2004년엔 강원 평창군 땅 18만㎡를 사들이기도 했다.

미승빌딩 5층엔 정 씨가 대표이사로 되어 있는 ㈜얀슨이 입주해 있다.

그러나 영업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고 정 씨도 출입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후보가 2002년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한 뒤 총재로 취임하자 정 씨는 총재비서실장으로 활동했다.

정치권 사정을 잘 아는 다른 관계자는 당시 정 씨의 영향력이 컸다고 회상했다.

“한국미래연합 창당 자금을 대어온 모 씨가 당무에 자주 간섭했다고 한다.

무리한 측면이 있었지만 누구도 나서지 못하고 있는데 정윤회 실장이 그를 제지했다.

격분한 모 씨가 정 실장을 제외할 것을 요구했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모 씨는 자금을 회수해 가버렸다.

” 또 다른 정치권 인사는 “당시 정 실장이 박근혜 의원 곁에서 창당 작업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여러 사람은 정윤회 씨가 박근혜 의원의 비서실장일 때도 은인자중(隱忍自重)해왔다고 말한다.

다음은 A씨의 설명이다.

 “나, 요양 가야 할 것 같다”“정윤회 실장은 의원실 일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면서도 소수의 사람과만 친하게 지냈다.

이들에게도 자신에 대해선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의 고향, 학력, 심지어 나이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와 술을 마시다 내가 궁금해 ‘서로 민증(주민등록증) 까보자’고 했다.

그때 그가 1954년생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꽤 의식했다.

저녁 약속을 잡을 때도 ‘국회에서 가까운 여의도에서 보는 건 어떤가’라고 하면 늘 ‘강남으로 가지’라고 했다.

또한 박 의원이나 본인과 관련해 질문 받는 것을 싫어했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에이, 뭐 그런 걸 물어보나’라고 했다.

” 박근혜 후보는 2004년 3월 한나라당 대표가 됐다.

이후 정윤회 씨는 박근혜 의원실을 떠나 종적을 완전히 감춘다.

이 상황을 모 인사는 이렇게 술회했다.

“더위가 채 가시기 전인 2004년 어느 날, 정윤회 실장이 ‘나 몸이 안 좋다.

요양가야 할 것 같다.

앞으로 한동안 못 보게 될 거다’라고 말했다.

얼마 뒤 그는 사라졌다.

그를 만나온 거의 모든 사람이 그와의 연락이 두절됐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스스로 신변을 정리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최태민 목사의 사위가 곁에 있으면 아무래도 박근혜 의원에게 부담이 될 터였다.

이후 ‘정윤회가 뒤에서 박근혜를 돕는다’는 이야기만 나왔다.

그러나 그를 접촉했다는 사람을 볼 수는 없었다.

그와 통화했다는 사람이 있기에 찾아가서 ‘정말이냐’고 물어보니 ‘아니다’라고 하더라.” 정윤회 씨와 관련되는 의문은,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의문은 ‘박근혜에게 있어 정윤회가 수평관계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 수평관계에 대해 정치권에선 추측이 무성하다.

이에 대해 2004년까지 정 씨를 만나본 사람들은 “핵심측근은 맞지만 멘토라는 주장은 억측”이라고 말한다.

“박근혜보다 나이가 어리고 박근혜를 깍듯하게 모셨다” “오랫동안 관찰한 바로는 스마트한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우직한 스타일이었다” “박근혜의 워딩을 만들어줄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박근혜의 주변을 관리하는 데에 주력했다”는 이야기였다.

둘째 의문은 ‘최태민 공세 차단 이외에 박근혜가 정윤회와 결별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선 정윤회 씨를 만나본 이들은 대체로 수긍했다.

이들은 “정윤회가 상관인 박근혜에 대한 의리가 대단하고 일을 신중하게 처리한다”고 했다.

박근혜의 관점에서 정윤회에게 내재적으로 접근하는 경우 “최태민 목사와의 인연도 있는데다 충성심과 능력을 갖춘 정윤회를 멀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근혜 후보는 2007년 대선 경선 검증청문회에서 “대통령이 돼도 최 목사 가족과 계속 관계를 가질 것인가”라는 질문에 “정윤회 비서가 능력이 있어 실무 도움을 받았다.

법적으로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실력이 있는 사람이면 쓸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윤회, 수면 위로 나와야이러한 정황상 같은 강남에 거주하면서 2004년 이후 박근혜와 정윤회가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현실이 오히려 비정상일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정윤회에 대해 궁금해하지만 언론을 비롯해 누구도 정윤회를 만나지 못하는 점 또한 이상하다고 하겠다.

이는 무엇인가 인위적이고 강력한 통제가 작동하고 있다는 반증으로 보인다.

왜 그래야 하는 걸까? 그의 증발이 더 불길해 보이는 이유다.

만약 박근혜 정권의 수립을 가정해본다면 말이다.

열린 사회에서 예측불가능성보다 더 나쁜 것은 없다.

앞으로의 정권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공적(公的) 시스템’에 의해서만 작동되어야 한다.

“정윤회가 ‘박근혜 정권의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정치권 일각의 시선에 당사자들이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정윤회 씨가 수면으로 등장해 할 말을 하는 게 낫다고 본다.

 최태민과 박근혜고(故) 최태민 목사는 육영수 여사 사망 이듬해인 1975년 퍼스트레이디 대리를 한 박근혜 후보에게 위로 편지를 보냈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만남을 가졌다.

박 후보는 2007년 대선 경선 검증청문회에서 “마음에 와 닿고 만나보고 싶어 만난 분 중 하나”라고 했다.

이후 최 목사는 목사 안수를 받았고 1975년 5월 개최한 구국기도회에서 박 후보를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로 추대했다.

구국선교단은 구국봉사단, 새마음봉사단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런데 당시 중앙정보부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최태민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최 목사에 대해 이권 개입, 횡령, 사기, 융자 알선 등의 권력형 비리와 여자관계 의혹이 제기됐다.

박정희 대통령 공보비서관을 지냈던 선우련 씨는 비망록에서 “1977년 박 전 대통령이 최 목사를 친국했다”고 썼다.

1979년 10·26사태 이후 최 목사는 전두환 합동수사부에 의해 강원도로 보내졌다.

그러나 이후 박 후보가 이사장을 맡은 육영재단의 고문을 지내는 등 박 후보와 인연을 유지해오다 1994년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대선 당시 ‘신동아’ 6월호는 중앙정보부의 최태민 관련 보고서를 최초로 공개하면서 보고서 내용의 사실성을 함께 검증했다.

1980년 보안사령부 처장으로서 최 목사를 수사한 이학봉 전 의원은 2007년 ‘신동아’ 인터뷰에서 “최태민 목사가 기업체로부터 돈을 뜯어낸 것으로 확인된 게 얼마나 되는지…별로 없었던 것 같다.

박근혜 전 대표는 최태민 의혹과 관계가 없었다”고 했다.

1970년대 말 중앙정보부 파견 검사로서 최 목사를 수사한 백광현 전 내무부 장관은 ‘신동아’에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최태민 문제를 억지로 갖다 붙였다.

최태민 비리가 사실인지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끝) ---------------------------------------------------------------------------            18)[48] 박근혜 대선가도 최대 적은 자신의 그림자             박정희 생전에 직접 친국한 사건    육영수의 사망 직후박근혜는 최태민으로 부터 편지를 받는다.

편지에는 ‘육여사(육영수)가 3차례에 걸처자신(최태민)에게 나타나근혜를 도와주라고 현몽했다’고 적혀 있었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된다.

박근혜는 그에게 구국봉사단 총재를 맡겼고,최태민은 박근혜와의 관계를 내세워기업들로부터 운영비와 입단찬조금을 걷으며각종 이권에 개입한다.

             당시 청와대 공보비서관이었던 선우련의 1977년 9월 20일자 비망록에는박정희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백광현 정보부 7국장과박근혜를 배석시켜 최태민의 비리와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직접 친국을 한 장면이 묘사돼 있다.

 “박대통령은 오늘 나에게큰 영애인 근혜양과 관련해 물의를 일으켰던최태민 구국봉사단 총재를 거세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대통령이 나에게 지시한 내용은 세 가지였다.

  ‘최태민을 거세하고,향후 근혜와 청와대 주변에 얼씬도 못 하게 하라.구국봉사단 관련 단체는 모두 해체하라.’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나는 곧 근혜양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렸다.

근혜양은 얼굴이 하얘지더니 낙담한 표정으로 눈물을 지었다.

”  오죽했으면 아버지가 딸을 친국했을까?박정희는 “최태민과 관련된 보고가 올라올 때마다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다”고 말했다고 한다.

  최태민과 딸 박근혜의 관계가 어땠으며,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당시 세간에서는 최태민을 ‘박근혜의 그림자’라고 불렀다.

   당시 중앙정보부도 특별수사를 했다  관련된 수사는 조심스럽게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영애이자 퍼스트레이디인 박근혜와의 관계 때문이다.

중정에 의해 밝혀진 ‘인간 최태민’의 모습을 보면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어떻게 저런 사람을 훌륭하고 고마운 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최태민은 해방 전후 경찰공무원으로 있다가1949년 육군헌병대 문관으로 근무했다.

1954년에는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됐고,이후 중학교를 설립해 교장이 되기도 했다.

‘영생교’를 만들어 사이비종교의 교주를 하다가박근혜를 만난 뒤 목사 안수를 받았다.

7개의 이름을 가지고 활동했으며,결혼도 6차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사정기관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최태민 가계보'>    최태민은 박근혜와의 친분과 관계를 내세워정계와 재계, 정부 관료와 접촉해 인사, 승진, 공천,공사 수주 등의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하고,입회비와 후원금을 빼돌리는 등공금을 횡령한 것으로 나타난다.

  중정 수사자료에는 총 44건 3억1700만원 (현재 약 40억원 상당)의 비리 사실이 적시돼 있다.

  ?     ‘박정희 사살’ 이유 중 하나가 ‘최태민’  박정희에게 총격을 가한 김재규는10.26사건의 정당성을 설파하면서항소이유서에 ‘최태민 사건’을 거론했다.

사기횡령 등의 비위사실과 여자들과의 온갖 추문까지 있는사이비 목사가 자칭 ‘태자마마’라며 청와대를 드나들고,박근혜를 내세워 부정을 저질러국민과 여성단체들의 원성이 되고 있어,이를 박정희에게 호소했지만 박정희가 듣지 않았다는 얘기다.

 김재규 변호인은“(박정희가)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했으면서도근혜양을 그 단체에서 손 떼게 하기는커녕오히려 근혜양을 총재로 하고, 최태민을 명예총재로 올려놓아결과적으로 개악을 시킨 일이 있었습니다”라고 밝혔다.

             주변의 비리에 대해 직보 하고 충언을 했지만딸을 감싸기만 한 채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는 박정희에 대해그의 측근 중 한 사람으로서 크게 실망했고,이것이 박정희 제거의 한 가지 이유가 됐다는 주장이다.

   전두환까지 ‘박근혜-최태민’ 관계를 우려했다 박근혜가 최태민을 크게 의존했다는 주장과 증언이 있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은 자신의 저서에‘박근혜에게 최태민과의 관계를 끊도록 건의한 비서 3명이 모두 잘렸고,최태민이 추천한 사람만 박근혜의 비서가 됐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 최태민은 탁명환(작고) 당시 현대종교연구소장에게‘박근혜의 지프를 타고 왔으며청와대를 수시로 출입하고 있다’고 자랑했다고 한다.

 박정희 피살 이후 ‘최태민 거세’가 흐지부지 되자박근혜를 걱정한 청와대 비서관이전두환 당시 합수부장에게 최태민을 처리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선우련의 부탁을 받은 전두환은최태민을 강원도 인제의 군부대로 보냈다가,12.12직후 사기와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1년6개월을 선고했다.

   형제들도 ‘박근혜-최태민’ 관계를 걱정했다 박근혜는 1982년 전두환 정권의 암묵적 배려로1969년 육영수가 설립한 육영재단 이사장에 취임한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는 두 동생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청와대 시절부터 ‘박근혜의 그림자’로 불리던최태민이 육영재단 운영 등에 깊숙이 관여해재산을 착취하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갈등과 반목이 깊어지던 1990년, 드디어 일이 터진다.

박근령과 박지만 두 남매가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보냈다.

    그 탄원서의 일부다.

“진정코 저희 언니(박근혜)는최태민씨에게 철저히 속은 죄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속고 있는 언니가 너무도 불쌍합니다.

대통령의 유족이라는 신분 때문에어디에 하소연 할 곳도 없고또 함부로 구원을 청할 곳도 없었습니다.

”          ?       결국 박근혜가 이사장직에서 물러나면서‘육영재단의 난’은 박근령과 박지만의 승리로 끝난다.

‘난’의 목적은 ‘박근혜 사퇴’ 보다 ‘최태민 제거’에 있었다.

형제들은 박근혜가 최태민에게 철저하게 속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주변의 반대 속에도 이어진 ‘30년 관계’  아버지 박정희도, 형제들도, 비서진도, 전두환도,중앙정보부도, 당시 언론과 사회단체들까지 부정적으로 봤던‘박근혜-최태민’의 관계는 30년 동안 이어진다.

  박정희의 사망사건이 터지고,전두환 군부에 의해 최태민이 격리되며소원해졌던 관계는박근혜가 육영재단 이사장에 취임하면서 복원된다.

 최태민은 육영재단의 이사로, 고문으로 활동하며운영에 깊숙이 개입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태민 뿐만 아니다.

그의 사위까지 육영재단에 관여했다.

  최태민이 사망(1994년)한 뒤 그이 다섯째 부인의 딸인최순실의 남편 정윤회는 1996년부터 2004년 까지박근혜의 보좌관 혹은 비서실장으로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   ?  2002년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탈당해‘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하고 총재가 됐을 때정윤회는 총재비서실장이었다.

  최태민의 딸 최순실은강남에 빌딩 두채를 보유한 수백억대 재산가로 알려졌다.

최순실이 부동산을 사들인 때와 최태민이육영재단의 운영에 깊숙이 개입했던시점이 일치해 이와 관련된 의혹도 무성하다.

또 항간에는 2004년 이후에도 ‘정윤회 보고라인’이 가동돼 왔고,  4.11 총선 공천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설’도 있다.

   최태민과 그 인척, 육영재단 영남학원까지 좌지우지  1980년 전두환 신군부는 박근혜에게 영남대 재단을 맡긴다.

이사장에 취임했지만 이에 반대하는 학생시위가 일어나몇달 만에 이사장직에서 물러난다.

하지만 부정입학, 장학금 횡령, 영남대병원 비리 등이 불거져관선이사 체제가 들어선 1988년까지 이사직을 유지했다.

  부정한 방법으로 영남대의 ‘교주(校主)’가 된어버지 덕분에 영남학원을 맡았지만,여기에도 ‘최태민의 흔적’이 발견된다.

  영남학원 비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재단운영을 좌지우지해 온 4명 중두 명이 최태민의 인척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영남학원 산하 영남투자금융 등을 관리하며재단의 실세였던 조순제는최태민 처의 전남편의 아들이었다.

  ? ? ?      ?? ?    영남대병원 관리부원장을 맡아 의료원 관련비자금 총책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손윤호는조순제의 외삼촌이었다.

편법과 비리가 판쳤다.

  병원장 해외출장비가 박지만의 항공료로 지급되고,육영재단에 수천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육영재단이 발행하던 <어깨동무> <보물섬> 등에영남투자금융이 장기 광고를 제재하거나거액을 기부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맡은 곳 마다 부실, 이런데도 ‘빅토리아 여왕’? 박근혜가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 가졌던 직함 중대표적인 게 육영재단과 영남학원 이사와 이사장이다.

두 곳 모두 부실운영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

  영남학원은 공금 횡령과 기금 전용, 부정 입학 등이 문제가 돼1988년 사학재단 처음으로 국정감사를 받았다.

이후 20년 동안 관선이사 체제로 운영되다가2009년에야 정상화가 됐다.

 육영재단은 방만한 운영과 경영부실에두 차례의 ‘형제의 난’까지 겹치며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우여곡절 끝에 2008년부터 박지만이 추천한임시이사 9인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선거에서는 ‘여왕’일지는 모르겠으나, 경영에는 재주가 없나 보다.

] 박근혜가 맡았던 두 기관 모두 풍비박산의 위기를 겪었다.

두 기관의 부실운영에 공교롭게도 최태민이 있었다.

 육영재단과 영남학원, 모두 현존해 있는 기관들이다.

또 관련 인물들 상당수가 생존해 있다.

제대로 검증한다면 ‘미스테리’가 웬만큼 해소될 수도 있어 보인다.

아무튼 ‘최태민 미스테리’는이번 대선의 최대 쟁점 중 하나가 될 게 분명하다.

     박성현 최태민 비선 라인설,정수장학회·육영재단 논란,형제간 불화설 등 걷어내기 위해 잰걸음… ?             ?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검색창에정치인 ‘박근혜’를 하면 관련 자료가 수두룩하다.

A4용지로 34쪽분량이나 된다.

  특히‘논란과 의혹’ 코너에는그를 둘러싼 소문과 의혹이 줄을 잇는다.

    순서대로 옮겨보면   ▶사생아 존재 여부  ▶전두환 정치자금 6억 수수▶성북동 주택 취득  ▶최태민씨와의 관계 ▶최태민씨 비리 옹호  ▶약혼설, 비밀 결혼설▶육영재단 운영관련  ▶영남대학교 관련▶정수장학회 세금 탈루  ▶5·16에 대한 관점 등이 있다.

      위키피디아는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는 데다진행 중이거나 검증되지 않은 사안도 실리는 탓에백과사전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정확도는 떨어진다.

그래도 수시로 정보가 오르내리고,누구나 공짜로 볼 수 있어 그 위상은 날로 높아져 간다.

  위키피디아에 오른 박 전 위원장 관련 의혹의 상당수는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걸러졌다고새누리당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   그러나‘고(故) 최태민 목사 인맥’,육영재단을 둘러싼 가족간 갈등과 반목,정수장학회 처리,박 전 위원장의 사생활 등은이번 대선에서도 쟁점으로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야당과 여권 내 비박(非朴) 진영은박전 위원장의 불투명한 사적 영역’을 집중 폭로해그의독주에 제동을 걸겠다는 심산이다.

?   새누리당도 박 전 위원장에 대한 음해성 공격은 방어하고,상대방에게는 예리한 검증의 칼날을 들이대는네거티브 대응팀 구성을서두른다.

  김재원, 김회선, 권영세 등 검찰 출신전·현직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팀을 꾸리리라는 전망이다.

  최근 박 전 위원장과 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 박태규씨와의유착 의혹을 제기했던 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그러했듯이구체적 사실관계를 들어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경우는즉각적인 사법대응으로 맞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   사실 관계의 거증 없는 ‘독재자의 딸’, ‘수첩공주’, ‘불통’, ‘오만’ 과 같은인신 공격에는 정치적 대응으로도 충분하다는 게 주류진영의 시각이다.

즉 법적 대응과 정치적 대응을 엄격하게 분리하면서도병행하는 전략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박 전 위원장 주변에서도행여 대선 가도의 아킬레스건이 될만한소재들을 하나 둘씩 정리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정윤회는 최태민의 아바타??   서울 여의도 정치권에서 아주 오래된 궁금증 중의 하나는박 전위원장의 비선(秘線) 조직이 과연 존재하는지 여부다.

이른바 ‘7인회’(박 전 위원장 주변의 원로그룹)와 같은정치권 인사들, 국회 보좌진, 외부의 자문팀같이 공개된 조직 말고,뒤에서 그야말로 은밀하게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그림자조직 말이다.

  박 전 위원장이 새누리당을 완벽하게 틀어쥐고,총선 승리를 거머쥐기까지는 신속하고도막강한 사조직의 뒷받침이 있었으리라는 추측이 무성하다.

그 실체가 드러난 적은 없지만정치권에선 이런저런 얘기가 입방아에 오른다.

 ?   그 중심에는 고(故) 최태민 목사와 그의 사위 정윤회 씨가 있다.

정윤회 씨는 최 목사의 딸 최순실 씨의 남편이다.

  1970년대 후반 박정희 대통령의큰 영애로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할 당시박 전 위원장과 친분 관계가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진 최목사는당시는 물론 고인이 된 이후까지각종 비리 의혹을 양산한 논쟁적 인물이었다.

  박 전위원장이 관계한 정수장학회, 육영재단, 영남대 등에는어김없이 ‘최태민 라인’으로 의심받는 인물들이 어른거렸고,내부 분규를 불러온 요인이 되곤 했다는 게 세간의 평가다.

 ?   심지어 새누리당 비박(非朴) 대선후보 진영의 한 주요 인사는요즘 떠도는 소문이라며 이렇게 전했다.

“서울 강남 삼성동 박 전 위원장 자택에고(故) 최태민 목사의 사위 정윤회씨가 드나든다고 한다.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로 이동하기에동네에서도 그를 본 사람이 별로 없다.

또 나갈 때도 삼성동 자택 문이 열리면오토바이를 타고 빠져 나와 쏜살같이 사라진다.

?   ”정씨의 역할을 두고 떠도는이런저런 소문들이 한자락이라도 사실로 밝혀지면과거 박 전위원장과 최목사와의 관계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이는 비선 정치’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   그런 까닭에 정씨는 “철저하고도 은밀하게 움직이며,취재진을 따돌리고자 일부러 오토바이로 이동한다는얘기가 그럴싸하게 나돈다”고 그 인사는 덧붙였다.

  마치 추리 소설의 한 토막 같지만 정씨를박 전 위원장과 최 목사 라인의 연결 고리로의심하는 뿌리가 대단히깊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   정윤회 씨는 박 전 위원장이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를 통해국회에 첫발을 내디딜 즈음부터2004년 3월 국회 입법보조원 등록을 취소할 때까지정치적 최측근으로 통했다.

  정씨는 박 전 위원장 주변에서 ‘2004년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대표직에 오른박전 위원장에게 누가 될까 봐 알아서떠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   그런 정씨인 만큼 2007년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도단연 뉴스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당시 이명박 후보 측은 정씨를 지목, 이른바 논현동 팀을 이끄는 배후 실세”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나아가 정씨를 비롯해 최 목사의 친·인척이박 전 위원장 관련 조직에 어김없이 관여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때를 즈음해 정씨는 정치권에서 행적이 묘연해졌다.

?   정씨 부부의 마지막 흔적은변동된 재산 내역에만 남아 있다.

부인 최순실 씨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차명재산 의혹을 샀던 강남 신사동 빌딩 두 채 중 한 채를 지난 2008년 1월 10일 동부상호저축은행에 매각했다.

이때가 이명박 대통령 취임직전이다.

그런 정씨가 다시, 아니 지금도박 전 위원장 주변에서 활동한 다는 게 가능할까?    박 전 위원장 측은정씨의 역할론을 한마디로 일축한다.

박 전위원장의 한 측근 인사는 공식 입장임을 전제로,?“(박 전 위원과) 정씨가 연락이 되고,조금이라도 그런 관계에 있으면 모르겠으되전혀 있을 수 없는 상황을 전제로엉뚱한 말이 나돈다”며 부인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한다거나,삼성동 자택 집사라는 소문도“100% 엉터리”라는 것이다.

?   하지만 새누리당 안에서도이런 입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않는 이들이 있다.

이를 테면 정씨가 박 전 위원장에게 누가 될까봐알아서 자발적으로 떠난 사람이니,외부에서 도움을 주지 못할 이유도 없다는 말도 그중 하나다.

  그들 말대로 만약 그가 2선에서 은밀하게박 전 위원장을 접촉하거나 보좌한다면그걸 알 만한 사람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박 전 위원장은 정윤회 필요로 하지않아”?   정씨는 현재 국내에 있다고 알려져 있다.

여의도 정치권은 물론심지어 친박계 주변에서도그와 관련한 소문은 유령처럼 떠돈다.

  그러나 그 소문은 아직까지는한 번도 사실로 확인된 적이 없다.

정치컨설턴트인 황태순 위즈덤센터 수석연구위원은박 전 위원장의 정치 스타일이“그런 소문을 불러오는 데 일조한다”고 말했다.

    황 수석연구위원은“박 전 위원장이 당 중진 등 공식 라인의 사람들과는그다지 깊은 대화가 없는 듯 한데 적재적소에 의사결정을 내려왔다.

그래서 어떤 형태로든 ‘비선 조직’의 보좌를 받는다는인식을 당내에 심어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총선 승리까지 박 전 위원장은선거 때마다 거의 불패의 신화를 이어왔다.

박 전 위원장 개인의 능력이 출중하거나,비선 라인이 탁월하거나 둘 중의 하나다.

 ? 그래서 정윤회씨와 같은 비선라인이 계속 회자되는 것이다.

”   또 일부에서는 박 전 위원장의 용인술이그런 소문의 진원지라는 지적도 한다.

박 전 위원장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신뢰할 수 있는가”“진취적인가” 등 크게 두 가지라고 그를 잘 아는 이들은 말한다.

그 중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박 전 위원장의 한 측근인사는 “박 전 위원장은 인생 역정에서 신뢰의 가치를누구보다 뼈저리게 절감했고,지향하는 정치 또한 신뢰에 방점을 둔다”고 밝혔다.

?   결국 박 전 위원장이 마음을 여는 상대는오랜 기간 같이 했던 사람들, 믿음을 준 사람들이다.

그래서 사정을 좀 아는 정치권 인사들은정윤회-최순실 부부가 그에 해당한다고 본다.

  중요한 사실은 1970년대 말 박 전 위원장이최태민 목사와 구국여성봉사단 활동 등을 매개로한 때 긴밀한 협력관계에 있었다는 점이다.

정씨는 그런 최씨의 사위이며,박 전 위원장의 대구 달성 보선을지척에서 도운 첫 정치 참모였다.

?   그래서인지 현 정부 고위직을 지낸 정치권 인사는“대선이라는 중요하고 결정적인 길목에서정씨가 아무런 역할을 안 한다고 볼 수겠는가”라고 오히려 반문했다.

정치의 생리상 정씨가 박 전위원장 의 대선 과정에어떤 식으로든 관여하리라고 짐작하는 시각이다.

?   박 전 위원장의 참모들과 정씨와의 관계에서도 그런 추론이 나올 법 하다.

박 전 위원장의 국회 보좌진 중 4급 보좌관, 5급 비서관,일부 비서 등은 1998년 첫 국회 입문 시점부터 같이 일해온 초창기 멤버들이다.

당시 정씨는 신분이 입법보조원이었지만 호칭은 처음부터 ‘정 실장’으로 통했다.

박 전 위원장 국회 보좌진의 좌장 역할을 했었다는 얘기다.

정씨의 존재감은 바로 이들 국회 보좌진에서 나온다는 말도 있다.

?   정씨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2000년대 중반까지 그를 접해 본이들이 그를 기억하는 내용은 제각각이다.

국회 쪽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당시 그는“정치권의 돌아가는 사정에 비교적 밝았다”는 평가가 많은 편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박 전위원장은 일개 의원에 지나지 않았고,국회 의원회관 직원들은 외부와의 교류가 활발한 편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정씨는 당내 주요 인사들의 동향에 훤했다고 한다.

그 시절 국회에서 정씨와 교류했던 한 인사는 “정씨가 정보를 어떻게수집하는지는 몰라도별의 별 걸 다 아는 듯 했다”고 돌이켰다.

 ?   반면 그가 “전략통의 이미지를풍기진 않았다”고 되새기는 인사도 있다.

정씨가 박 전 위원장의 복심(腹心)이라기 보다는차라리 전방위 활동형 참모에 가깝게 느껴졌다는 말이다.

  그래서 경호와 같은박전 위원장 신변 안전을 관리하고,일정을 챙겨주는 역할에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고도 말했다.

  박 전 위원장 주변에서는정씨는 최태민씨와 동의어처럼 곧잘 얘기된다.

그가 박 전 위원장 주변에 다시 나타난다면사람들은 자연스레‘박 전 위원장- 최태민 목사 관계’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

  야당은 이를 정치 공세의 소재로 활용하려 들게 뻔하다.

예컨대 박 전 위원장의 ‘비선 정치’ 위험성을 제기하는 식을 말한다.

당장 MB정부의 민간인 불법 사찰도 정부기관인공직윤리지원관실을 특정인사들로 채워 사조직화화는 바람에폐해가 더 컸다는 지적이고 보면 그럴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이와 관련해 박 전 위원장의법률 문제를 자문해온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친박계 내부에서 정씨는 전혀 언급될필요가 없는사람”이라고 선을 긋고 나섰다.

2007년 박근혜 대선 후보 캠프 대변인과경선 룰 협상을 담당한 측근이기도 한 그는“그 문제는 내가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   “2004년 박 전 위원장이 한나라당 대표가 되면서정윤회 씨의 보좌를 더 이상 받지 않게 됐고,연락도 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정리됐다.

  지금도 그런 소문이 나돈다면 반대 진영에서 박 전 위원장의정치력과 판단력을 평가 절하하려는불순한 의도에서 퍼뜨리는 것”이라고 ‘음모론’을 제기했다.

  또 박 전 위원장이“친박계 내 최고의 전략가이자, 정무적 판단도 탁월하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박 전 위원장은 정씨와 같은외부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내가 볼 때 박 전 위원장은전략적 판단에서 좀처럼 실수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는 어떤 사안을 판단할 때 정치적 함수를 따지기 보다는그게 나라를 위해 옳은 일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스타일이다.

개인의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국가 공동체와 애국심을 앞세워 판단하기에처음엔 불리하던 여론도 시간이 지나면유리하게 돌아서는 경우가 많다.

”       박근령과 신동욱, 꼬일대로 꼬인 집안 관계?   박 전 위원장은 가족 문제도 골칫거리인 것만은 틀림없다.

대부분 두 동생들과 관련된 문제들이다.

당장 남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은 이미 문제가 된삼화저축은행 신삼길 명예회장과 친분이 있고,   부인 서향희 변호사는 이곳의 고문변호사를 지냈다.

야권은 이를근거로 박 회장 부부가저축은행 구명 로비에 연루됐다고 의심한다.

 ?   서향희 변호사가 두 달간 일정으로 홍콩 연수를 떠난 것도혹여 앞으로 있을 지 모르는 야권의 네거티브 공세에 맞선선제적 대응이라는 해석까지 나올 지경이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서 변호사의 연수 결정과 관련해 “박 전위원장이 이제 주변정리를 준비하는것 같다”고언급했던것이 그 예다.

?   박 전 위원장이 박 회장 부부와 긴밀하게 소통하는 관계라면여동생 근령씨는 통제권 밖에 있다.

  육영재단 파동이 있던 2008년 이래박 전 위원장과 근령씨는 지속적으로 크고 작은 갈등을 빚었다.

게다가 근령씨 남편 신동욱 전 백석문화대 교수가박지만 회장을 비방한 혐의로2011년 8월 구속되는 바람에 둘 사이는 더 벌어졌다.

?   거기다 박 전위원장은 지난 해 9월 6일 5촌 조카 둘이불의에 숨지는 불상사로 적잖은 마음 고생을 하고 있다.

5촌 조카인 박용철(50)씨와 박용수(52) 씨가 그들이다.

  박용철 씨는 이날 오전 6시쯤 서울우이동북한산 국립공원 수유분소 앞 노상주차장에서얼굴과 몸에 10여 차례 칼에 찔려 사망했다.

     또 오전 9시20분쯤에는 박용수 씨가 3㎞ 정도 떨어진북한산 용암문 인근 등산로에서 나무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대리운전기사의 진술과 현장에서 확보한 혈흔 등을 토대로박용수 씨가 금전 문제로 원한을 품고박용철 씨를 살해한 뒤 자신도 목을 맸다는 결론을 내렸다.

?   이 사건의 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박용철 씨가 육영재단 분쟁에서 유발된재판의 주요 당사자인 까닭이다.

  1982년 박근혜 이사장이 이끌던 육영재단은1990년 12월부터 박근령 이사장 체제로 전환했다.

  일명 ‘박근혜-박근령의 난’ 이라고 불릴 정도로박근혜, 박근령 측 인사들이 격렬하게 충돌한 뒤의 일이다.

하지만 박근령 씨도 2001년 부실경영, 감사 거부 등의 이유로관할 교육청이 육영재단 이사장 자격을 박탈하는가 하면,2008년엔 대법원이 이사장직 해임이 정당하다는판결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이후 박지만 회장 측 인사들이육영재단을 물리적으로 접수하고, 이사회를 장악하면서육영 재단은 또 주인이 바뀌는 처지가 됐다.

  이 과정에서 근령씨와 지만씨 양측이서로 제기한 소송만도 20여 건에 달했다.

  근령씨의 남편 신동욱 전 백석문화대 교수가2011년 8월 박 전 위원장과박지만 회장의 명예를 훼손하고 무고한 혐의로 구속됐다.

?   박용철 씨는 구속된 신 전 교수 측 증인으로법정 증언 20여 일을 앞두고 변을 당했다는 게신 전 교수측의 설명이다.

  신 전 교수 변호를 맡은 조성래 변호사는“증언을 한다던 박용철씨가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살해당했다”면서“동생(박용철)은 죽임을 당하고,형(박용수)은 자살한 걸로 나오는 데우리는 그 과정을 전혀 몰라법원에다 이 사건 관련 기록 열람을 신청해두었다”고 밝혔다.

?   조 변호사는 지난 2002년노무현 대통령 후보 부산 선대위원장과17대 국회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박근령 육영재단 이사장 시절재단 이사로 10년 가까이 재임한자유언론수호국민 포럼 이경식 대표는“야권이 대선 정보 수집 차원에서신 전 교수에게 비상한 관심을 갖고 접근하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이렇듯 ‘혈육간 분쟁’은 박 전 위원장에게대선 과정에서도 큰 짐이 될 전망이다.

?   박근령씨는 또 총선 출마를 통해박 전 위원장에게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근령씨는 충북 보은·옥천·영동 선거구에자유선진당 후보로 출마하려다여의치 않자 무소속 출마를 택했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인 언니가정치 생명을 걸다시피한 총선에서 동생이 반대 편에 섰다.

그것도 어머니(고(故)육영수 여사)의고향(옥천)에서 언니와 동생이 맞대결을 벌이는 셈이 됐다.

?   선거일 이틀 앞둔 4월 9일보수대연합 동참을 명분 삼아 후보직을 사퇴하면서근령씨의 ‘거사’는 해프닝으로 끝나고새누리당 후보가 무난히 당선됐다.

하지만 당시 친박 진영은 근령씨의 예측하지 못한뜻밖의 정치 행보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   사실 가족 문제는 박 전 위원장 말고는측근 의원이나 핵심 참모라도 관여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당사자들이 푸는 게 가장 자연스럽지만  ‘신 전 교수 구속’이라는 현실적 장벽이 가로놓여 있다.

근령씨는 신 전 교수가 억울하게 영어의 몸이 됐으므로,사회로 복귀시켜 새 삶을 살도록 박 전 위원장과박 회장이 배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법원은 지난 2월 그에게 허위사실 유포 등의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게다가 검찰은 지난 5월 박 전 위원장이육영재단 폭력사건을 배후에서 조종했다는보도 자료를 인터넷 방송국 에게 보내기사화 되도록 한 혐의로 신 전 교수를 추가 기소했다.

  게다가 박 전 위원장은근령씨 결혼식장에도 가지 않을 정도로신 전 교수를 가족의 일원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처럼 박 전 위원장의 가족사는신 전 교수 문제로 꼬일 대로 꼬였다.

  그 가족사가 신 전 교수 구속과 박용철,박용수씨 사망 때문에 올 대선을 앞두고또 다시 정치권의 입방아에 오를 가능성이 높아졌다.

?   근혜, 근령 두 사람이여전히 대립각을 세우는 가운데서도화해의 기류가 감지된다는 전언도 있다.

  박지만 회장 쪽에서 보은·옥천·영동선거에 나선근령씨를 은밀하게 도왔다는 증언이 나온 것도 그런 맥락이다.

당시 박근령 씨 선거캠프에서 중요 역할을 한 인사의 말이다.

“어디서 어떤 과정을 거처 왔는지 모르겠으나박지만 회장 쪽 사람들도 후원팀이라고 해서 선거캠프에 합류했다.

10명가량 됐는데 그들은 경제적, 경호상으로도 적잖은 도움이 됐다.

”?   근령씨 선거 캠프에 참여한 다른 인사도 비슷한 말을 했다.

“선거 사무실에는 박지만 회장 측 사람들,새누리당 모 중진 측의 인사들이 따로 그룹을 지어박근령 후보의 주변을 맴돌았다.

특히 박회장 측 사람들은 박 후보의 경호를 담당하는 듯 했다.

나중에 박후보가 후보직을 사퇴할 때도박 회장 측 사람들의 역할이 있었다고 보인다.

”?   물론 박 회장 측은 “큰 언니가 비대위원장으로 있는새누리당 후보가 출마한 지역에서어떻게 무소속으로 출마한 근령씨를 도울수 있느냐”며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현장에 있던 이들은 적어도 박 회장과 교감하는 이들이선거에 개입했다고 확신하는 분위기가 더 강하다.

  박근령 씨 또한 자신의 사퇴가 명분,실리 양쪽에서 결과적으로 박 전 위원장을 도왔다고 여길 법하다.

나아가 가족 간의 분쟁과반목도 이제는 접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진 듯 했다.

  근령씨는 최근 “우리 가족 문제는언론이 좋은 쪽으로 써주면 좋겠다”고 희망하면서 “앞으로의 관계에 대해서는언니(박근혜)와 동생(박지만)이 대답할차례”라고 말했다.

?   자신이 총선에서 중도 사퇴라는 양보를 했으므로박 전 위원장과박 회장이 손을 내밀어줘야 한다는 뉘앙스로 읽혀진다.

나아가 그는 “이번 대선에서 우파가 승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령씨는 대선 향배와 관련해“자칫 잘못해서 대통령 선거에서우익을 대표하는 인사가 패배하면 나라가 큰일난다”고 말했다.

  박 전 위원장이 근령씨가 말하는‘우파’의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라는 점을 감안하면박 전 위원장에 대한 지지 의사표시로 받아들일 만한 여지가 충분하다.

      최필립의 마이웨이 행보를 막아라?   박정희 대통령의 ‘정’, 육영수여사의 ‘육’자를 땄다는 정수장학회. 박 전 위원장은 7년 전인 2005년이 단체의 이사장직에서 물러났음에도지난 총선에서 야권의 집요한 공세에 시달렸다.

  이번 대선에서도 야권은 이 문제를이슈로 삼겠다고 단단히 벼르는분위기다.

  민주통합당은 정수장학회가대주주인 부산일보에서 를 지낸배재정씨를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영입,정수장학회를 지렛대로 한 박 전 위원장주 공격수로 활용할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   정수장학회는 1961년 부산지역 사업가김지태(1982년 작고) 씨가 내놓은부산지역 땅 10만 평, MBC, 부산MBC,부산일보 주식을 기반으로 설립된 재단법인이다.

  훗날 김지태 씨는 5·16 군사쿠데타 직후국가재건최고회의의 강압 때문에각종 양도서에 강제로 날인했다고 주장했고,유가족은 정수장학회 반환소송을 벌인다.

?   총선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은정수장학회가 강탈된 장물’로서 사회에 환원돼야 하므로박 전 위원장이 이 문제를 털고 가야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문 고문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박 전 위원장이 이 장학회의 이사장직을 10년 가까이 역임했고,후임인 최필립 이사장도 이른바 ‘친박 인사’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최이사장은 1978년부터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영애였던 박 전 위원장을 담당하는 공보비서관으로 일했다.

  최 이사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임금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끔찍이 흠모할 뿐만 아니라2001년 박 전 위원장이 한나라당을 탈당, 한국미래연합을 만들 때 운영위원도 역임했다.

  두 사람이 아주 각별한 관계라는 공지의 사실이다.

박 전 위원장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부터“나는 이사장직을 그만 뒀으니정수장학회와 상관이 없다”고 누차 선을 그었다.

  하지만 야권은 박 전 위원장과최 이사장의 이런 인연을 부각시키며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 올해 대선에서는 그 강도가 더 세질 것으로 대부분 예상한다.

  민주통합당 배재정 의원은“최 이사장의 언론 인터뷰 발언을 보면서그가 박 전 위원장의 복심이라는 심증을 갖는다”면서“이른바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MBC 주식의 30%,부산일보 주식의 100%를 가진 정수장학회를측근을 통해 좌지우지하는 걸용납할 국민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정수장학회 논란은재산권다툼 차원을 뛰어넘어언론의 정치적 독립 문제로 번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심지어 정권이 언론을 손에 쥐고국민의 눈과 귀를 가린다는 식의논리 전개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대선에 출마하는 박 전 위원장이이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고 야권은 판단한다.

  게다가 장학회 이사진 5명 중최 이사장을 제외한 4명 모두박 전 위원장 혹은 최 이사장이 영입한 사람들이다.

  배의원은 “요즘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박 전 위원장이 2005년 이사 장직에서 물러났지만,마음속에서는 아직도정수장학회를 내놓지 못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   최 이사장은 완강하다.

그는 언론 등을 통해 “정수장학회 운영은 투명하고,박 전 위원장과 개인적인 관계가 있다고이사장을 할 수 없다는 건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며자리에서 물러날 의향이 없음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사석에서는 정수장학회에 관선 이사 시대가 열리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산 성격은 없어지고,‘진보’를 자처하는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과비슷한 성향의 인사들이 장악하게 된다고 우려를 표했다고도 한다.

 ?   또 자신이 물러나면 새 이사진이과거 정수장학회 운영과 회계상의 문제점을 들쳐 낼 수 있고그게 박 전 위원장의 발목을 잡을 까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그래서인지 최 이사장은 “내가 살아있는 한이걸 지켜줄 의무가 있다”며 배수진까지 쳤다.

    한술 더 떠 최 이사장은박 전 위원장 지원에 두 팔을 걷고 나설 공산도 없지 않다.

정수장학회는 그 자체로 거대한 인적 네트워크다.

1962년 설립된 정수장학회가 배출한 장학생은무려 3만8000여명에 이른다.

 ?   학생들은 대학 재학 때는 ‘청오회’, 졸업 후에는‘상청회’에서 활동한다.

장학회 출신 인사들은 학창 시절과 사회 진출 후에도끈끈한 유대를 형성하며 박 전 위원장 관련 행사에열성적으로 참여하는 걸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박 전 위원장이 위기에 처하거나,결정적인 순간에 상황을 반전하는외곽조직으로 가동될 가능성도 배제 못한다.

?   부산일보 출신의 배재정 의원도“최 이사장이 박 전 위원장을 위해서라면온몸을 던져 마지막 열정을 불사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새누리당 비박 진영의 한 관계자는“최 이사장과 그 주변에서 대선을 겨냥한별도의 캠프를 꾸린다는 정보를 접했다”고도 귀띔했다.

?   박 전 위원장이 다른 주자들에 비해확고한 우위를 점하는 요즘 같은 때“최 이사장이 나서면 되려 역풍을 부를 수도 있다”는우려도 일각에서 나온다.

  그래서인지 박 전 위원장의 한 측근은“정말 도와줄 참이면그 자리에서 물러 나주는 게 상책”이라고 말했다.

    야당이 정수장학회를 대선의최대 이슈의 하나로 부각시키려는 마당에최 이사장이 ‘마이웨이’를 외친다면그 부담은 고스란히 박전 위원장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몇몇 국회의원이 최 이사장을 만나용퇴를 종용했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박근혜의 딸? 황당무계한 망상??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차남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 박 전 위원장의 ‘사생활’에서 불투명한 부분이 너무 많아본선을 장담키 어렵다고 말했다.

YS가 박 전 위원장을 부도덕한 인물로 본다고도 했다.

    다음은 김 전 부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YS는 박 전 위원장이 부도덕하다는 걸 어떤 경로로 파악하고 계신가?? “많이 알고 계시다.

그것도 팩트(fact·사실)를 알고 계시다.

”     지난 2007년 당내 대선후보 경선 당시 거론된 가담항설(街談巷說) 수준 아닌가?? “아무튼 오는 대선에서 야당이 많이 들고 나올 거다.

일반 국민이 알아야 하는 것이니까.이건 숨긴다고 덮고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니다.

확실하게 끝을 내야 한다.

”    구체적인 예를 들어 달라.? “사생활 부분이라고 뭉뚱그리겠다.

이회창 씨의 아들 병역문제보다 훨씬 큰 논란거리가 될 거다.

”     YS가 대통령에 취임하고 나서 사실로 확인해 본 내용인가?? “박 전 위원장 본인도 2007년 경선 당시 한마디 했다.

DNA 검사를 받겠다고 말이다.

(당시 최태민 목사와 박 전 위원장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박 전 위원장은 자신에게 아이가 있으면DNA 검사라도 받겠다며 맞받아 쳤다.

그 이상의 얘기들이 더 나온다.

나중에 그게 밝혀지면 그때는 이미 늦지 않나.)      "팩트라면 검증이 돼야 하는데 가능한가?"? 아주 상당히 엄청난 충격을 줄 것으로 본다.

      ”확인이 된다는 말인가?“? 그렇다.

박 전 위원장 주변에서도그런 것들을 정리하고자 하는데 정리할 수 없다.

팩트인데 어떻게 정리가 되나.”     대부분 2007년 경선 당시 나온 얘기들이다.

예컨대 최태민 목사와의 사이에 자식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당시 박 전 위원장도 한 인터뷰에서‘아무리 네거티브지만 천벌받을 일’이라고 격분했었다.

경선 도중에 “아이가 있으면 DNA 검사라도 받겠다”고결백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   김 전 부소장이 말하는‘사생활’ 부분이 이 문제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요즘은 더 구체적인 얘기가 나온다.

  박 전 위원장이 낳은 자식이올해 30살 정도이며 일본에 살며,야당에서도 접촉을 꾀한다는 설명까지 붙는다.

  이와 관련해 5공의 실세로청와대 고위직을 지낸 한 원로 정치인은 사석에서“그럴 가능성은 제로”라고 일축했다.

  박 위원장이 1975년부터 퍼스트레이디 역할을하면서아이를 가졌으면 누가봐도 금방 표시가 났을것이고공식활동을 중단했어야 하는데 그런일은 없었다고 했다.

?   또 “5공 시절 그랬다면청와대에 있던 내가 몰랐을 리 없다”며헛소문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김재원 의원도 이와 관련해“박 전 위원장에게 다 물어봤다”면서“그건 황당무계한 망상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박 전 위원장의 입장을 대변했다.

  지금 추세라면 12월 대선에서창은 야권, 방패는 여권이 될 가능성이 큰 편이다.

새누리당은 공격하는 입장에서는 대선 날짜가 다가오고불리할수록 ‘상식 밖의 카드’를 들이밀 수 있다고 보고 대책을 마련 중이다.

그런 카드로는 ‘흑색 선전’과 ‘인신 비방’에‘조작된 서류’까지 나올 수도 있다는 걱정에서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으로 곤욕을 치렀다.

그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했던 김대업씨는나중에 ‘허위사실’ 유포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그런 사례가 박 전 위원장을 향해서도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이 후보가 군대에 가지 않은 두 아들을 뒀기에김대업 씨의 허위공세가 선거국면에서 먹혔다고 본다.

  하지만 박 전 위원장에게는그런 결정적 약점이 없다는 게친박 인사들의 기본적인 믿음이다.

          <자료 : 월간중앙 2012년 7월호 박성현 >   박근혜가 정치 일선에 나서자 이종사촌 형부인 김종필도 박근혜에게 포문,"최태민의 자식까지 있는 애가 무슨 정치냐?"     ?   ? ????‘박근혜 사생아’, YS-근혜 둘 중 하나는 죽는다 [보도비평] 유력 대선후보 관련 ‘충격적 폭로’ 불구 언론이 침묵하는 이유는?  등록:  2012-07-18 14:08:58   최종:  2012-07-18 23:08:23  -정운현 ? 만 이틀을 묵혔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비록 언론매체의 보도이긴 하지만 근거자료 하나도 없이증언만 딴 기사여서 ‘막장드라마’ 냄새가 조금 풍겼다.

  다음은 어디서 어떤 후속보도가 나올지,또 반응(시각)은 어떨지도 궁금했다.

그러나 만 이틀이 지나는 동안인터넷에는 문제의 기사를 퍼다나른 글들로 넘쳐나고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도 요란하다.

  그런데도 그 말 많던 매체들은이 시각까지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진보-보수매체 할 것 없이 다들 숨죽인 채 주변 반응을 살피고 있는 건가?아니면 후속취재 중인가?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다.

  그제(16일) 오후 4시 43분경, <뷰스앤뉴스>에놀랍고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떴다.

  새누리당, 아니 현 시점에서는 여야를 통털어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에게숨겨놓은 사생아가 있다는 보도였다.

  다들 알고 있는 대로 박 의원은 미혼이다.

만약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박 의원은 미혼 상태에서 아이를 낳았고그간 이런 사실을 숨겨왔다는 얘기가 된다.

  여염집 아낙도 아닌유력한 대선후보의 도덕성 문제와 관련된 것이니검증 차원은 물론이요,진실규명 차원에서라도 언론은 당연히 취재,보도하는 것이 맞다.

  <뷰스앤뉴스>가 인용 보도한 ‘박근혜 사생아’ 기사의 소스(출전)는17일 발매된 <월간중앙> 7월호다.

한 가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이런 특종성 기사의 경우 본지에서 먼저 다루는 게 보통인데웬일인지 <>가 아닌<뷰스앤뉴스>에서 이 특종(?)을 다뤘다.

조금은 의외다.

  그건 그렇다고 쳐도 사흘째모든 언론이 입을 다물고 있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만약 민주당의 문재인 고문이나 김두관 지사, 안철수 원장이 ‘사생아’ 의혹에 휩싸였다고 한번 가정해보자.  그래도 다들 이랬을까?모르긴 해도 조중동을 위시해거의 모든 매체들이 특별취재반을 편성해서전국을 이 잡듯 뒤졌을 것이다.

  우선 <월간중앙> 사이트에 들어가 해당 기사의 을 검색(유료)해 보았다.

문제의 ‘박근혜 사생아’ 관련 내용은 박성현 가 작성한‘박근혜 대선가도 최대 적은 자신의 그림자’라는 기사 말미에 실려 있었다.

   이 기사는 박 의원을 둘러싸고 그간 나돈최태민 목사와의 관계 등 각종 의혹과박 의원의 집안사를 다룬 것으로,그간 나온 얘기들의 종합판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기사 말미에 YS의 차남 김현철 씨의 증언을 통해‘박근혜 사생아’ 얘기가 등장하는 데조금은 뜬금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관련 내용 전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박근혜의 딸?  황당무계한 망상?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차남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박 전 위원장의 ‘사생활’에서 불투명한 부분이 너무 많아 본선을 장담키 어렵다고 말했다.

  YS가 박 전 위원장을 부도덕한 인물로 본다고도 했다.

다음은 김 전 부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YS는 박 전 위원장이 부도덕하다는 걸 어떤 경로로 파악하고 계신가?“많이 알고 계시다.

그것도 팩트(fact·사실)를 알고 계시다.

”- 지난 2007년 당내 대선후보 경선 당시 거론된 가담항설(街談巷說) 수준 아닌가?“아무튼 오는 대선에서 야당이 많이 들고 나올 거다.

일반 국민이 알아야 하는 것이니까.그건 숨긴다고 덮고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니다.

확실하게 끝을 내야 한다.

”- 구체적인 예를 들어 달라.“사생활 부분이라고 뭉뚱그리겠다.

이회창 씨의 아들 병역문제보다 훨씬 큰 논란거리가 될 거다.

”- YS가 대통령에 취임하고 나서 사실로 확인해 본 내용인가?“박 전 위원장 본인도 2007년 경선 당시 한마디 했다.

DNA 검사를 받겠다고 말이다 (당시 최태민 목사와 박 전 위원장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박 전 위원장은 자신에게 아이가 있으면 DNA 검사라도 받겠다며 맞받아쳤다).그 이상의 얘기들이 더나온다.

나중에 그게 밝혀지면 그때는 이미 늦지 않나.”- 팩트라면 검증이 돼야 하는데 가능한가?“아주 상당히 엄청난 충격을 줄 것으로 본다.

”- 확인이 된다는 말인가?“그렇다.

박 전 위원장 주변에서도그런 것들을 정리하고자 하는데 정리할 수 없다.

팩트인데 어떻게 정리가 되나.”  대부분 2007년 경선 당시 나온 얘기들이다.

예컨대 최태민 목사와의 사이에 자식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당시 박 전 위원장도 한 인터뷰에서 ‘아무리 네거티브지만 천벌받을 일’이라고 격분했었다.

경선 도중에 “아이가 있으면 DNA 검사라도 받겠다”고결백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김 전 부소장이 말하는‘사생활’ 부분이 이 문제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요즘은 더 구체적인 얘기가 나온다.

박 전 위원장이 낳은 자식이 올해 30살 정도이며일본에 살며, 야당에서도 접촉을 꾀한다는 설명까지 붙는다.

이와 관련해 5공의 실세로청와대 고위직을 지낸 한 원로 정치인은 사석에서  “그럴 가능성은 제로”라고 일축했다.

박 위원장이 1975년부터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면서아이를 가졌으면 누가 봐도 금방 표시가 났을 것이고공식 활동을 중단했어야 하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고 했다.

또 “5공 시절 그랬다면 청와대에 있던 내가 몰랐을 리 없다”며헛소문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김재원 의원도 이와 관련해“박 전 위원장에게 다 물어봤다”면서“그건 황당무계한 망상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박 전 위원장의 입장을 대변했다.

  <월간중앙>이 위 대목에서 언급한박 의원의 ‘부도덕’ 문제의 핵심은 ‘사생아’ 관련 얘기라고 할 수 있다.

“박 전 위원장이 낳은 자식이 올해 30살 정도이며 일본에 살며”라든가‘DNA 검사’ 운운한 대목이 그것이다.

  본문 속에서 관련 내용의 증언자는 김현철 씨로 나오지만사실상의 소소는 김 씨의 부친 김영삼(YS) 전 대통령인 셈이다.

  속성상 이런 내용은 증거자료를 구하기가 쉽지는 않지만충격적인 사안 치고는 관련 사진이나호적서류 등 물증이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는 객관적으로 신뢰도가 그리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후속보도에서 관련 자료를 공개할지는 모르겠다.

)   과거 우리 정치사에서 유명 정치인들의 ‘사생아’ 얘기가 더러 있어 왔다.

이는 남성우위의 가부장적 문화와 이른바 ‘요정정치’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박정희 정권 시절 소위 ‘정인숙 사건’이 대표적 사례랄 수 있다.

큰 선거 때만 되면 ‘믿거나 말거나’식의 마타도어가 난무했다.

  92년 대선 당시 YS는 일본에 숨겨놓은 딸이 있다며일본 주간지 등에 사진까지 공개됐다.

  또 김대중(DJ)도 마찬가지로 그와 비슷한 소문에 시달렸고  ‘친자소송’으로까지 비화됐다는 얘기도 있었다.

(참고로, 박정희도 첫 부인(김호남)과 이혼하기 전에이화여대생과 잠시 동거한 적이 있는데그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은 생후 6개월 만에 죽었다.

)    [관련글]  “박정희 동거녀 이현란, 아들 낳았다”http://blog.ohmynews.com/jeongwh59/280188  한편, <월간중앙>의 보도를 인용 보도한 <뷰스앤뉴스>에 따르면,박근혜 측은 이에 대해 “김현철 씨의 발언 수위가정치적 허용범위를 넘어서는 만큼캠프에서 법적 대응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한다.

  또 5년 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박근혜 캠프의 검증대변인을 맡았던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은“박 전 위원장에게 다 물어봤다”며 “그건 황당무계한 망상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의 얘기를 전적으로 믿기도 어렵고,그렇다고 구체적으로 반박할 근거도 없이 못 믿겠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현재로선 누구의 주장이 진실인지 단언하긴 어렵다.

  그렇다면 이번 <월간중앙> 보도가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지를 한번 점검해 보기로 하자.  우선, 무엇보다도 김현철(혹은 YS)씨가 올 연말 대선을 앞둔 이 시점에서이런 ‘중차대한’ 얘기를 꺼낸 배경이 대체 무엇일까?(혹자는 김현철이 의 질문에 대답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이런 문제는 가 묻는다고 선선히 대답해 줄 사안은 아니다.

)  하나 전제할 것은 YS는 박정희의 정적이었고,그로 인해 두 사람은 마치 ‘견원지간’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할 수 있다.

  박정희 정권 시절 김대중(DJ)과 함께민주진영의 한 축을 이뤘던 YS는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를‘민주주의의 적(敵)’ 정도로 여겼다.

  그런 감정은 어쩌면 그의 딸인박근혜에까지 이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어쩌면 이번 건은 YS측에서‘독재자의 딸’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작심하고 폭로(?)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그런데 우연하게도그런 ‘혐의’(?)를 둘 만한 ‘사건’이 최근에 하나 있었다.

  지난 11일 김문수 경기지사가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참여 발표를 앞두고 YS를 예방했다.

  이 자리에서 김 지사는“지금은 토끼가 사자를 잡는 격”이라며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토로했다.

  그러자 YS는 “(박근혜 의원은) 사자가 아니다.

아주 칠푼이다.

사자가 못 돼”라고 혹평하고는“(경선이 막상 시작되면) 박근혜는 별것 아닐 것”이라며박근혜 무시 발언을 쏟아냈다.

  평소 독설가로 통하는 YS라고는 하지만이날 박근혜를 향해 날린 ‘독설’은 예사롭지 않다.

극도의 불신과 그로인한 깊은 반감이 없지 않고서야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를 이렇게 표현할 수는 없다.

  어쩌면 YS는박근혜의 ‘부도덕’ 건을 잘 알고 있고그리고 그것이 바로 ‘사생아’ 건인지도 모르겠다.

    다음, 두 번째로는 YS측이박근혜의 ‘부도덕’과 관련된 확증자료를 과연 가지고 있을지의 여부다.

필자 개인적인 판단이긴 하나만약 박근혜의 사생아 건이 ‘팩트’라면,즉 실지로 박근혜의 사생아가 있다면YS가 관련 근거자료를 손에 넣었을 가능성은 커 보인다.

  일반적으로 정보기관은 여야, 재조-재야 할 것 없이거물급 인사들을 대상으로 수집, 작성한다.

소위 ‘존안자료’로 불리는 것이 그것이다.

  모르긴 해도 박 정권 시절 중앙정보부는박정희 관련 자료도 수집, 정리해뒀을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육영수 여사 사후5년가량 ‘영부인’을 대신했던박근혜 관련 자료도도 당연히 수집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정권은 유한(有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팩트’의 실존 여부인데 이에 대해김현철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세 차례에 걸쳐 거듭거듭 확인해 줬다.

  심지어 김현철은 ‘팩트’여서 ‘정리’,즉 어떻게 손을 쓸 수도 없다는 얘기까지 했다.

앞에서 소개한 내용 중 ‘팩트’ 부분을 재인용해 보면,  - YS는 박 전 위원장이 부도덕하다는 걸 어떤 경로로 파악하고 계신가?“많이 알고 계시다.

그것도 팩트(fact·사실)를 알고 계시다.

”- 팩트라면 검증이 돼야 하는데 가능한가?“아주 상당히 엄청난 충격을 줄 것으로 본다.

” - 확인이 된다는 말인가?“그렇다.

박 전 위원장 주변에서도그런 것들을 정리하고자 하는데 정리할 수 없다.

팩트인데 어떻게 정리가 되나.”  완전히 ‘뻥’이 아니라면YS측이 관련 자료를 손에 쥐지 않고서야이렇게 단언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 이들 두 사람의 전력을 감안하면이들이 관련자료를 입수했을 가능성은 크다고 하겠다.

  YS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 대통령을 지냈고,그의 아들 김현철은 ‘소통령’으로 불렸다.

YS는 대통령 시절 안기부 등권력기관을 속속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따라서 YS는 자기 자신을 포함해중앙정보부(->안기부->국정원)가 수집한일체의 ‘인비(人秘)자료’를 다 봤을 걸로 생각된다.

  (반면, DJ는 핵심자료를 다 보지는 못했다는 후문이다.

왜냐하면 정보기관 내 일부 극우보수파들이DJ의 사상(‘빨갱이’)을 의심하여특수정보는 제공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있었다.

)  <월간중앙> 기사에 따르면,‘박근혜 사생아’의 나이는‘올해 30살 정도’이며 일본에 살고 있다고 한다.

‘사생아’의 나이를 역으로 환산하면출생 시기는 1980년 전후,즉 ‘10.26사건’ 전후로 추정된다.

  ‘5공의 실세로 청와대 고위직을 지낸 한 원로 정치인’의 말대로박근혜가 청와대 시절 출산을 했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청와대 시절 박근혜는 육 여사를 대신해 영부인 노릇을 하며대외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시기는 ‘청와대를 나온 이후’라는 얘기가 된다.

  ‘10.26사건’ 후 박근혜-근영-지만 등 3남매는청와대에서 나와 부친의 사저인‘신당동 집’으로 거처를 옮겨 칩거에 들어갔다.

  이후 박근혜는 육영재단, 정수장학회 운영에 관여하였으나1998년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기 전까지는그의 행적에 대해 자세히 알려져 있지는 않다.

   마침 오늘자(18일) <한겨레>에서[대선주자 탐구-박근혜 편] 제3탄으로박근혜와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한겨레>는 글 첫 머리에서“지난 40년가량 박근혜(60)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는최태민(1912

1994)과의 관계에 대한 의혹이 자주 따라 붙었다”고 쓰고는그간 두 사람과 관련해 제기된 각종 의혹들을 기존 보도를 통해 추적했다.

  ‘박근혜 사생아’ 얘기가 나올 때마다최태민이 당사자로 지목돼 왔는데다른 의혹 건으로는 몰라도이 둘을 ‘남녀관계’로 묶는 것은 그리 온당해 보이지 않다.

  최태민은 부인이 6명, 이름이 7개라고 할 정도로 신원이 불명확한 인물이긴 하나출생연도는 1912년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최태민은 1917년생인 박정희보다 5세,1952년생인 박근혜보다 40세 연상이다.

그 점을 고려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끝으로, 이번 ‘사생아’ 논란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또 누가 어떤 상황에 처해질 것인지를 한번 짚어보자.우리 형법은 허위사실은 물론이요,비록 ‘사실’이라고 해도 이를 적시하여사람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죄가 된다.

(형법 제307조(명예훼손)①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  따라서 설사 ‘박근혜 사생아’가 사실이라고 해도박근혜 측에서 명예훼손 소송을 낼 경우 문제가 된다.

  YS측이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건만이같은 주장을 편 것은 왜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YS측에서는나름으로는 물증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러나 만에 하나 물증을 갖고 있지 않거나또는 공인받기 어려운 것이라면YS측은 엄청난 법률적, 사회적 비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공은 박근혜 쪽으로 넘어간다.

만약 ‘사생아’가 실존하는 걸로 밝혀진다면박근혜의 정치생명은 그날로 ‘끝’이다.

  이 건은 금전비리나 정책 실패 같은 문제가 아니다.

보수진영에서는 더러 '공주'로도 불리는,그것도 미혼여성인 박근혜에게 사생아가 있다고 한다면이는 남녀노소, 보수-진보, 영-호남을 떠나서공분을 금치 못할 일이다.

  따라서 박근혜 측은 이 문제에 대해단순히 ‘그런 일 없다’고 만 해명할 게 아니라이번 기회에 명확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혹 ‘사생아’로 지목된 사람이 나타난다면‘DNA검사’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신체검사라도 해야 할 판이다.

결국 이제 남은 것은 하나 뿐이다.

이번 '사생아' 논란의 당사자랄 수 있는 YS와 박근혜,이 둘 가운데 하나는 이번 일로 죽게 될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그 x 파일을 가지고 있었다.

  의문의 죽음 노무현 전대통령과 타계하신 김대중 정부에서는...   출처 http://cafe.daum.net/mizesagun/ 미제사건 추적 - 그들은 살고 싶었다.

  http://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GnA9&fldid=NtZc&datanum=74&q= %B9%DA%B1%D9%C7%FD%20%C3%D6%C5%C2%B9%CE%20%B1%E8%C1%BE%C7%CA&search=true  ?      - 주의 천사         ? ? "완전한 자의 공의는!  자기의 길을!  곧게 하려니와! 악한 자는!  자기의 악으로!  말미암아 넘어지리라!" (잠 11:5)? ? ? ?                "정수리, 입술, 눈, 코, 귀까지...  정말 많이 닮았네요."    정수리, 입술, 눈, 코, 귀까지... 유전자 검사가 필요 없을 듯...!!!    아버지(은지만)와...  어머니의 나이 차이가 29살?   믿으란 말인가???    최고 댓글: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못하는 은길동(은지원)"   ?    뭔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아래 입술이...  약간 내려오는 것도 그렇고...  눈썹도,  코도 그렇고...  정수리가 뾰족하게...  올라선 것도 그렇고...  귀까지...  암만 많이 봐도...  정말 닮았네요.   이 정도면...  거의 판박이 아닌가요?  친택인가요?     뭐, 김종필의 말까지...  종합해 보면...  유전자검사고...  나발이고... 필요없을 거 같습니다.

    그리고, 유전자검사 한다고 해도...  그 결과...  믿을 사람 누가 있겠습니까?     숨 쉬는 거 빼고...  모두 조작, 공작, 사기인데...                     그리고, 윗 사진 왼쪽이... 은지원 아버지라는분...  은희만씨 사진인데 많이 다르네요.     은지원의 옆 모습...  특히 툭 튀어나온 입술하며...  눈매하며...  최태민과...  정말...  판박이처럼 닮았지요?   우선, 얼굴 형이...  은희만씨는...  옆에서 보면...  타원형으로...  코를 중심으로...  앞으로 나온 형입니다.

   은지원은 수직이죠.   그리고, 코가...  은희만씨는 콧등이 좀 높고...  코가 두툼한 스타일이고...  은지원은...  콧등이 내려 앉았고...  매끈하죠.   귀도 많이 다르죠.   뭐, 아버지...  아들 사이에...  귀모양새가...  다른 사람도...  (아주)일부...  있긴 하지만...    은희만씨...  나이는 1926년생이니까...  87세인가요?   은지원이...  78년생이니까...  35살...   그럼...  은희만...  52살에 낳았다는 건가요?    ?  뭐, 우겨대는데는...  뭐가 있으니...            이 나이에...  은지원의...  엄마라는...  릴리시스터즈...  70년 활동 당시...  16세였다고 하니...   은지원을...  78년에...  낳았다고 하고...  그럼...  77년에 임신했을테고...  그 때 나이가 23살...   그런, 52살 은희만씨가...  23살 짜리...  은지원 엄마를... 29살...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했다는 건가?   아님, 후첩이란 소리인가?    아님, 하룻밤이었는데...  힘이 좋았다는건가?   차암...  이것도...  말이 안되는건데...    아무튼  뭐,  나라 꼴...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있는...   족속들이...  하는 짓이라니...!!!                             김종필 왈:  "최태민 자식까지 있는 애가 무슨 정치냐?"라고  [아래 기사 참조]?     아름다운너희들 (lhn***)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2515854&pageIndex=1                       ?"주한미대사 버시바우가...  본국에 보낸...  비밀문서 내용"?       ?    "충격적인 동영상(조웅 목사님의 박근혜 폭로):막을건 막았어야!"    단기 4349 (dangi****) 16.02.29 14:49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3548029?    *사진 원본 주소:  http://www.freerepublic.com/focus/f-news/1717888/postsPosted on Wednesday, October 11, 2006 9:07:12 PM by Registered ?  TOPICS: Editorial; ForeignAffairs; News/Current Events; Political Humor/CartoonsKEYWORDS: kimjungil; northkorea; smalleverything; smallman; soronery 최초로 공개되는 사진이다.

 박정희가 강탈하거나 축재한 재산은 지금 정수장학회 소유로 남아 있다.

정수장학회의 전 명칭은 5·16장학회이고, 5·16장학회의 전신은 부일장학회이다  최태민이 관리자이다.

 정수장학회는 박정희의 정자와 육영수의 수자를 합하여 만들었으며 5,16장학회를 이미지 목적상 정수장학회로 명칭을 바꿨습니다.

구국선교단은 영세교의 이름을 바꾼 단체를 말합니다.

 --------------------------------------------------------------------------------------------------------------------------- 다음 글은 블로그( 'So What? Why be Normal??' )에서 퍼온 글입니다.

 정치권 야사 - 박근혜와 최태민 목사 오늘은 박정희 정권 때 부터 30년 이상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는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에 대해 써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혹 잘못?㎢� 잡혀 들어갈수도 있으니, 민감한 부분은 패스하고, 세간에 떠돌던 얘기를 취합하는 수준에서 쓰겠습니다.

ㅎㅎ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최태민하고의 관계만 보더라도 박근혜는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녀는 지금껏 단 한번도 검증이라는 것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인적이 없습니다.

 김대중은 약관의 나이에 자기사업을 일으킨 사람이고, 만권이상의 책을 읽었고, 40권이상의 저서를 남겼습니다.

경제/통일분야에서 나름의 이론을 정립시켰고, 최고의 국무위원 중 한사람이었으며 국회도서관을 가장 많이찾는 의원이기도 했습니다.

 노무현은 판사를 역임했고, 변호사시절에 뛰어난 승소율을 보였으며, 노동자를 이해하는 의원이었고, 노사정을 중재하는 능력도 보여주었습니다.

지방행정과 분권에 일가견이 있었고, 해수부장관시절에는 뛰어난 행정능력도 보여주었습니다.

 반면에 박근혜는? 지 손으로 번돈이 단, 한푼도 없었습니다.

(국회의원 월급은 제외합시다.

) 행정능력도 검증받은적이 없습니다.

아버지 후광으로 국회의원 되고나서 지금껏 온게 다입니다.

이렇게 불안하고 검증받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아직 잘 모르시겠다고요? 그럼, 아래 제가 쓰는 것을 한번 보십시요. 최태민에 대해서 박근혜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럼, 아마, 저절로 한숨이 나올겁니다.

1990년 박근혜의 동생인 박근영과 박지만이 노태우대통령앞으로 탄원서를 한통 보냅니다.

이 탄원서는 12장이였고,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최태민 목사의 전횡과 횡포와 비리가 너무 심하다.

우리 언니와 우리 가족을 최태민에게서 부터 구해달라, 언니말은 믿지 말라, 언니는 최태민에게 속아 최태민을 옹호하고 있다.

대통령만이 우릴 구해줄 수 있다.

"  이 탄원서로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에 대해, 세상사람들이 궁금해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최태민과 박근혜의 이상한 관계는 박근혜가 최태민과 어울리기 시작할 때부터 여러곳에서 말이 나왔고, 이 둘사이를 떼어놓으려는 시도도 여러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도는 번번히 실패로 돌아갑니다.

문제가 불거질때마다 박근혜가 최태민을 보호했기 때문입니다.

 자, 그럼, 이 목사라고 하는 최태민은 어떤 인간인지 찬찬히 살펴봅시다.

최태민이 박근혜를 처음 만난게 75년 초의 일인데, 이 때 벌서 최태민은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였습니다.

그의 호적엔 그가 1912년에 태어났다고 되어있지만, 최태민은 호적을 여러번 바꾸었기 때문에 (이름도 여러번 바꾸었습니다.

)확실한 나이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단, 1910년대에 태어났다라고만 추측할 뿐입니다.

 어쨌든 이 최태민은 이북출신의 일본순사를 했는데, 해방 후 남한으로 와서 그의 순사경력을 살려 대한민국경찰이 됩니다.

(이 부분도 말이 많은데, 최태민의 아버지는 독립유공자입니다.

근데 그런 아들이 일본순사를 했다는게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최태민이 한국경찰이 되기 위해서 일본순사의 경력을 위조하지 않았나? 라는 의문을 제시 하기도 합니다.

 당시엔 조선인출신 일본경찰은 그냥 한국경찰이 되었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온것 같습니다.

씨바, 승만아, 승만아.) 그리고 전쟁이 터지고 이때부터 최태민은 기이한 인생역정을 살아가게 됩니다.

군대에 잠깐 복무했던, 최태민은 어느날 갑자기 절로 들어가 머리깍고 중이 됩니다.

(이 부분에서 떠도는 말은 최태민은 결혼도 여러번하고 자식도 많은 등 여성편력이 상당했습니다.

그래서 그 중 한 여성이나 부인이 최태민을 혼빙이나 간통으로 고소하여 그것을 피하기 위해 산으로 들어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주 삶 자체가 똥구린 냄새가 나는 인간이지요?) 그리고는 산을 내려와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은 최태민은 승려였던 경험을 살려 불교협회의 간부가 되고, 그것을 이용하여(최태민의 처세술은 상상이상입니다.

)어느 단체의 수장직에 오르지만, 곧 주가위반혐으로 검찰에 �i기는 신세가 되자 다시 잠수를 탑니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 그는 이번엔 천주교 세례를 받습니다.

 천주교 세례를 받은 최태민은 어느날 갑자기 사이비종교를 창설, 그 교주에 올라, 사이비애들이 많이 하는 뭐, 아픈사람 낳게 해준다.

어쩌고 저쩌고를 남발해서 많은 돈을 번것으로 보이는데, 우스운것은 최태민의 이런 사기가 먹혀들어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진짜 아픈사람들이 최태민을 보고 나면 안아파지고 그렇게 해서 교세는 확장되었습니다.

ㅋㅋㅋ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인간이 그만큼 나약한 존재인것 같습니다.

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최태민에게 갔다가, 스스로 믿는 거죠. 좋아진다, 안아프다.

그렇게 하다보면 심리적으로 진짜 안아파 지니(학문적인 의학명으로 일명  플라시보효과라고 하죠) 최태민에게 더욱 의지를 하게 되는 것이죠. (아, 요새 밥벌이도 제대로 안되는데 저도 종교나 하나 만들어야 겠습니다.

) 그런데 돈을 번것 까지는 좋으나 사이비교주의 타이틀로는 한계(그만큼 야망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가 있다는 것을 직감한 최태민은 다시 한번 비상한 머리를 씁니다.

그리하여 탄생한게 최태민 목사입니다.

(종교 그랜드슬램을 이루는 순간입니다.

) 혹자는 안수를 받지않은 사이비 목사라고도 하고, 혹자는 안수는 받았으나 그 안수해준 교회측이 사이비라는 이야기도 합니다만 확실한 것은 최태민은 기독교 공부를 한적이 없다라는 겁니다.

 어쨌든 최태민 목사님께서는 이렇게 목사질을 하며 주류에 편입할라고 기웃기웃거렸습니다.

그러다가 74년 8월 15일, 국모라는 육영수가 문세광의 총탄에 맞고 사망합니다.

박정희도 좌절했지만, 가장 큰 슬픔을 느낀것은 장녀 (배다른 언니 박재옥이 있지만)박근혜였습니다.

그렇게 의기소침해 하고 있던 박근혜에게 어느날 편지 한통이 날아듭니다.

발신인은 최태민 목사 라고 쓰여져 있었습니다.

 출처 : 구봉숙의 도시탈출 팬클럽 --------------------------------------------------------------------------------------------------------------------------- 노태우, 1990년 사직동팀에 최태민 내사 지시기사 2012-09-24 03:00:00 기사수정 2012-09-24 10:43:31 박근혜 검증 리포트, 최태민과 육영재단 잡음은?  최태민과 함께 선 박근혜 1977년 3월 16일 대한구국봉사단이 세운 경로병원 개원식에 당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오른쪽)와 구국봉사단 총재인 최태민 씨가 참석해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동아일보DB 죽어가는 치아? 뽑기전에 치아 <화제>로또 1등번호 패턴 밝혀《 5년의 ‘퍼스트레이디’ 생활과 15년의 정치활동을 통해 어느 정치인보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 하지만 사생활과 과거 행적 중엔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가족과 정수장학회 문제도 박 후보의 골칫거리. 동아일보는 24일부터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에 대한 검증리포트를 세 차례 연재한다.

각종 의혹과 궁금증, 도덕성과 국정운영능력 등을 짚어 본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올 6월경 동생 근령 씨에게 먼저 전화를 건 것으로 전해졌다.

근령 씨와의 불편한 관계를 풀고 가자는 한 친박 원로의 건의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화는 순조롭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두 사람 간 감정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박 후보와 동생들 간 불화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90년 8월. 근령 씨와 남동생 지만 씨가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냈다.

주요 내용은 ‘최태민을 엄벌해 최 씨에게 포위당한 언니(박 후보)를 구출해 달라’는 것. 노 대통령은 청와대 하명사건을 담당하는 이른바 ‘사직동팀’에 최 씨에 대한 내사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 때마다 제기되는 ‘최태민 의혹’ 현재 시중에 돌고 있는 이른바 ‘최태민 보고서’에 따르면 최 씨의 혐의는 횡령 사기 변호사법 위반 등 모두 44건에 이른다.

최 씨의 여성 관계도 상세히 기록돼 있다.

이 보고서는 1912년생인 최 씨의 나이가 76세로 기록돼 있어 1988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작성기관도 분명치 않다.

박 후보 측은 이 보고서가 조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박 후보 측도 박 후보와 최 씨가 상당히 밀접한 사이였음은 부인하기 힘들다.

최 씨가 언론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75년 5월 11일이다.

그는 신도 5000여 명을 경기 파주시 임진각에 모아 박정희 대통령을 위한 기도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박 후보는 최 씨가 총재로 있는 구국선교단의 명예총재로 추대됐다.

이후 박 후보는 1주일에 많을 때는 2, 3차례 최 씨가 주최하는 각종 행사에 참석했다.

박 후보가 1982년 육영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이후에도, 1988년과 89년 각각 박정희·육영수 기념사업회와 근화봉사단을 조직할 때도 최 씨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8년 정계에 입문해서는 최 씨의 사위인 정윤회 씨를 핵심 참모로 기용했다.

정 씨는 2004년 박 후보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를 맡을 때까지 비서실장 역할을 했다.

최근 본보 취재진이 2007년 한나라랑 대선후보 경선 당시 최 씨 관련 의혹을 제기한 인사들을 접촉한 결과 이들 대부분은 “최 씨와 관련해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많지만 아직은 공개할 때가 아니다”는 태도를 보였다.

최 씨의 의붓아들인 조모 씨가 최 씨의 비리를 폭로한 녹취록 등이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조 씨는 박 후보가 영남학원 이사장 시절 학원 운영에 깊이 관여했지만 박 후보는 2007년 검증 청문회에서 조 씨를 모른다고 했다.

조 씨는 2007년 대선 직후 지병으로 숨졌다.

박 후보는 검증 청문회 때 “최 씨에 대한 의혹의 실체가 없다.

최 씨에게 문제가 있었다면 아버지 시대나 이후 정권에서 법적 조치를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후보와 최 씨의 관계를 문제 삼는 이들은 최 씨가 박 후보의 후광을 업고 축재를 일삼았다고 지적한다.

최 씨의 자녀들이 20, 30대에 수백억 원대의 재산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최 씨의 다섯째 딸로 정윤회 씨의 부인은 서울 강남구에 시가 120억 원 상당의 7층짜리 M건물과 강원 평창군에 23만431m² 규모의 땅을 소유하고 있다.

M건물의 땅값은 평당 6000만 원 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로데오 거리와는 조금 떨어져 있어 신사동에서는 그나마 싼 편에 속한다고 한다.

M건물 5층에는 정 씨의 사무실도 있다고 건물 관계자는 전했다.

평창 땅은 알펜시아 리조트와는 거리가 있어 평당 2만, 3만 원 수준이었다.

이곳은 외진 데다 가구도 거의 없었다.

 ○ 육영재단 갈등은 ‘현재진행형’ 박 후보는 1990년 11월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근령 씨에게 물려줬다.

그해 10월 근령 씨를 지지하는 모임의 회원들이 육영재단으로 몰려와 박 후보의 퇴진을 요구하는 등 소란이 빚어진 뒤였다.

2007년 11월에는 회계부정 등을 이유로 교육청으로부터 이사장직 해임 처분을 받은 근령 씨가 육영재단을 떠나지 않자 지만 씨 측 인사인 정모 씨 등이 근령 씨를 육영재단에서 강제로 끌어냈다.

근령 씨의 남편인 신동욱 씨는 이를 ‘육영재단 강탈사건’이라고 주장하며 배후로 지만 씨를 지목했다가 허위사실 유포로 고소됐다.

법원은 정 씨가 이 사건을 모의할 당시 “회장님(지만 씨를 지칭)의 뜻”이라고 말했고 지만 씨가 이 사건에 관여한 이들에게 3억여 원을 빌려주면서 차용증을 쓰지 않은 점 등으로 미뤄 허위사실로 단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정 씨는 이 사건 이후 어린이회관 관장에 올랐다가 2009년 7월 근령 씨에 대한 공동상해 등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자 관장직에서 사임한 뒤 다시 지만 씨의 회사인 EG의 기획실장 겸 비서실장으로 복귀했다.

이때 의문의 살인사건도 발생한다.

같은 해 9월 6일 ‘육영재단 사건’에 깊이 개입한 지만 씨의 5촌 조카 박용철 씨가 피살됐다.

살해 용의자는 역시 지만 씨의 5촌 조카인 박용수 씨였다.

용수 씨는 용철 씨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

경찰은 애초 두 사람 사이에 채무관계가 있었다고 밝혔다가 계좌 추적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자 개인적 원한으로 살해 동기를 바꿨다.

 --------------------------------------------------------------------------------------------------------------------------- ??반대 속에 이어진 30년 관계, ‘최태민 미스테리’  공식적으로 ‘박근혜-최태민’에 대해 언급된 건 지난 대선 때다.

당시 이명박 후보측은 세간에 떠도는 ‘설’을 토대로 최태민과 관련된 다양한 의혹을 제기하며 공세를 폈다.

  부실 검증, 현대사 미스테리가 된 ‘최태민 의혹’  당시 경선후보청문회에서 박근혜는 “최 목사(최태민)는 내가 어려운 시절 나를 도운 사람”이며 “고맙고 훌륭한 분”이라며 그를 끝까지 두둔했다.

2007년의 ‘최태민 검증’은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당내 선거에서 이루어졌을 뿐이다.

상대 후보에게 가벼운 ‘상처’ 정도는 줄지언정, ‘목숨’을 거두어서는 안 되는 일종의 ‘스파링’이었다.

  ‘진검’ 승부가 아닌 ‘목검’ 승부였던 만큼 의혹이 제대로 밝혀지긴 어려웠다.

그러나 보니 최태민과 관련된 무성한 의혹들은 아무것도 밝혀진 것 없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은 ‘최태민 의혹’을 현대사의 ‘미스테리’로 만들고 말았다.

  이번 대선은 ‘최태민 미스테리’를 추적하는 선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태민 의혹’에는 풍부한 얘깃거리와 함께 박정희 시절의 ‘어두운 흔적’까지 담겨 있어 ‘흥행성’도 높은 편이다.

박근혜 측은 ‘단순한 과거사를 가지고 정치공세를 편다’며 ‘문제될 것 없다’는 입장이다.

과연 그럴까? ‘최태민 의혹’을 들여다보면  ‘뇌관’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박정희 생전에 직접 친국한 사건  육영수의 사망 직후 박근혜는 최태민으로 부터 편지를 받는다.

편지에는 ‘육여사(육영수)가 3차례에 걸처 자신(최태민)에게 나타나 근혜를 도와주라고 현몽했다’고 적혀 있었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된다.

박근혜는 그에게 구국봉사단 총재를 맡겼고, 최태민은 박근혜와의 관계를 내세워 기업들로부터 운영비와 입단찬조금을 걷으며 각종 이권에 개입한다.

  당시 청와대 공보비서관이었던 선우련의 1977년 9월 20일자 비망록에는 박정희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백광현 정보부 7국장과 박근혜를 배석시켜 최태민의 비리와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직접 친국을 한 장면이 묘사돼 있다.

  “박대통령은 오늘 나에게 큰 영애인 근혜양과 관련해 물의를 일으켰던 최태민 구국봉사단 총재를 거세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대통령이 나에게 지시한 내용은 세 가지였다.

‘최태민을 거세하고, 향후 근혜와 청와대 주변에 얼씬도 못 하게 하라. 구국봉사단 관련 단체는 모두 해체하라.’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나는 곧 근혜양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렸다.

근혜양은 얼굴이 하얘지더니 낙담한 표정으로 눈물을 지었다.

”  오죽했으면 아버지가 딸을 친국했을까? 박정희는 “최태민과 관련된 보고가 올라올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다”고 말했다고 한다.

최태민과 딸 박근혜의 관계가 어땠으며,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당시 세간에서는 최태민을 ‘박근혜의 그림자’라고 불렀다.

  당시 중앙정보부도 특별수사를 했다  관련된 수사는 조심스럽게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영애이자 퍼스트레이디인 박근혜와의 관계 때문이다.

중정에 의해 밝혀진 ‘인간 최태민’의 모습을 보면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어떻게 저런 사람을 훌륭하고 고마운 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최태민은 해방 전후 경찰공무원으로 있다가 1949년 육군헌병대 문관으로 근무했다.

1954년에는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됐고, 이후 중학교를 설립해 교장이 되기도 했다.

‘영생교’를 만들어 사이비종교의 교주를 하다가 박근혜를 만난 뒤 목사 안수를 받았다.

7개의 이름을 가지고 활동했으며, 결혼도 6차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사정기관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최태민 가계보'>  최태민은 박근혜와의 친분과 관계를 내세워 정계와 재계, 정부 관료와 접촉해 인사, 승진, 공천, 공사 수주 등의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하고, 입회비와 후원금을 빼돌리는 등 공금을 횡령한 것으로 나타난다.

중정 수사자료에는 총 44건 3억1700만원(현재 약 40억원 상당)의 비리 사실이 적시돼 있다.

  ‘박정희 사살’ 이유 중 하나가 ‘최태민’  박정희에게 총격을 가한 김재규는 10.26사건의 정당성을 설파하면서 항소이유서에 ‘최태민 사건’을 거론했다.

사기횡령 등의 비위사실과 여자들과의 온갖 추문까지 있는 사이비 목사가 자칭 ‘태자마마’라며 청와대를 드나들고, 박근혜를 내세워 부정을 저질러 국민과 여성단체들의 원성이 되고 있어, 이를 박정희에게 호소했지만 박정희가 듣지 않았다는 얘기다.

  김재규 변호인은 “(박정희가)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했으면서도 근혜양을 그 단체에서 손 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양을 총재로 하고, 최태민을 명예총재로 올려놓아 결과적으로 개악을 시킨 일이 있었습니다”라고 밝혔다.

  주변의 비리에 대해 직보 하고 충언을 했지만 딸을 감싸기만 한 채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는 박정희에 대해 그의 측근 중 한 사람으로서 크게 실망했고, 이것이 박정희 제거의 한 가지 이유가 됐다는 주장이다.

  전두환까지 ‘박근혜-최태민’ 관계를 우려했다  박근혜가 최태민을 크게 의존했다는 주장과 증언이 있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은 자신의 저서에 ‘박근혜에게 최태민과의 관계를 끊도록 건의한 비서 3명이 모두 잘렸고, 최태민이 추천한 사람만 박근혜의 비서가 됐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 최태민은 탁명환(작고) 당시 현대종교연구소장에게 ‘박근혜의 지프를 타고 왔으며 청와대를 수시로 출입하고 있다’고 자랑했다고 한다.

  박정희 피살 이후 ‘최태민 거세’가 흐지부지 되자 박근혜를 걱정한 청와대 비서관이 전두환 당시 합수부장에게 최태민을 처리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선우련의 부탁을 받은 전두환은 최태민을 강원도 인제의 군부대로 보냈다가, 12.12직후 사기와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1년6개월을 선고했다.

  형제들도 ‘박근혜-최태민’ 관계를 걱정했다  박근혜는 1982년 전두환 정권의 암묵적 배려로 1969년 육영수가 설립한 육영재단 이사장에 취임한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는 두 동생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청와대 시절부터 ‘박근혜의 그림자’로 불리던 최태민이 육영재단 운영 등에 깊숙이 관여해 재산을 착취하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갈등과 반목이 깊어지던 1990년, 드디어 일이 터진다.

박근령과 박지만 두 남매가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보냈다.

그 탄원서의 일부다.

“진정코 저희 언니(박근혜)는 최태민씨에게 철저히 속은 죄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속고 있는 언니가 너무도 불쌍합니다.

대통령의 유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어디에 하소연 할 곳도 없고 또 함부로 구원을 청할 곳도 없었습니다.

”  결국 박근혜가 이사장직에서 물러나면서 ‘육영재단의 난’은 박근령과 박지만의 승리로 끝난다.

‘난’의 목적은 ‘박근혜 사퇴’ 보다 ‘최태민 제거’에 있었다.

형제들은 박근혜가 최태민에게 철저하게 속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주변의 반대 속에도 이어진 ‘30년 관계’  아버지 박정희도, 형제들도, 비서진도, 전두환도, 중앙정보부도, 당시 언론과 사회단체들까지 부정적으로 봤던 ‘박근혜-최태민’의 관계는 30년 동안 이어진다.

박정희의 사망사건이 터지고, 전두환 군부에 의해 최태민이 격리되며 소원해졌던 관계는 박근혜가 육영재단 이사장에 취임하면서 복원된다.

  최태민은 육영재단의 이사로, 고문으로 활동하며 운영에 깊숙이 개입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태민 뿐만 아니다.

그의 사위까지 육영재단에 관여했다.

최태민이 사망(1994년)한 뒤 그이 다섯째 부인의 딸인 최순실의 남편 정윤회는 1996년부터 2004년 까지 박근혜의 보좌관 혹은 비서실장으로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2002년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하고 총재가 됐을 때 정윤회는 총재비서실장이었다.

최태민의 딸 최순실은 강남에 빌딩 두채를 보유한 수백억대 재산가로 알려졌다.

최순실이 부동산을 사들인 때와 최태민이 육영재단의 운영에 깊숙이 개입했던 시점이 일치해 이와 관련된 의혹도 무성하다.

또 항간에는 2004년 이후에도 ‘정윤회 보고라인’이 가동돼 왔고, 4.11 총선 공천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설’도 있다.

  최태민과 그 인척, 육영재단 영남학원까지 좌지우지  1980년 전두환 신군부는 박근혜에게 영남대 재단을 맡긴다.

이사장에 취임했지만 이에 반대하는 학생시위가 일어나 몇달 만에 이사장직에서 물러난다.

하지만 부정입학, 장학금 횡령, 영남대병원 비리 등이 불거져 관선이사 체제가 들어선 1988년까지 이사직을 유지했다.

 부정한 방법으로 영남대의 ‘교주(校主)’가 된 어버지 덕분에 영남학원을 맡았지만, 여기에도 ‘최태민의 흔적’이 발견된다.

영남학원 비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재단운영을 좌지우지해온 4명 중 두 명이 최태민의 인척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영남학원 산하 영남투자금융 등을 관리하며 재단의 실세였던 조순제는 최태민 처의 전남편의 아들이었다.

  영남대병원 관리부원장을 맡아 의료원 관련 비자금 총책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손윤호는 조순제의 외삼촌이었다.

편법과 비리가 판쳤다.

병원장 해외출장비가 박지만의 항공료로 지급되고, 육영재단에 수천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육영재단이 발행하던 <어깨동무> <보물섬> 등에 영남투자금융이 장기 광고를 제재하거나 거액을 기부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맡은 곳 마다 부실, 이런데도 ‘빅토리아 여왕’?   박근혜가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 가졌던 직함 중 대표적인 게 육영재단과 영남학원 이사와 이사장이다.

두 곳 모두 부실운영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

영남학원은 공금 횡령과 기금 전용, 부정 입학 등이 문제가 돼 1988년 사학재단 처음으로 국정감사를 받았다.

이후 20년 동안 관선이사 체제로 운영되다가 2009년에야 정상화가 됐다.

  육영재단은 방만한 운영과 경영부실에 두 차례의 ‘형제의 난’까지 겹치며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우여곡절 끝에 2008년부터 박지만이 추천한 임시이사 9인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선거에서는 ‘여왕’일지는 모르겠으나, 경영에는 재주가 없나 보다.

박근혜가 맡았던 두 기관 모두 풍비박산의 위기를 겪었다.

두 기관의 부실운영에 공교롭게도 최태민이 있었다.

  육영재단과 영남학원, 모두 현존해 있는 기관들이다.

또 관련 인물들 상당수가 생존해 있다.

제대로 검증한다면 ‘미스테리’가 웬만큼 해소될 수도 있어 보인다.

아무튼 ‘최태민 미스테리’는 이번 대선의 최대 쟁점 중 하나가 될 게 분명하다.

 ---------------------------------------------------------------------------------------------------------  다음 글은 '우물에 빠진 개구리'님의 블로그에서 퍼온 글입니다.

 미 비밀 보고서, 최태민이 박근혜의 '몸과 마음을 통제했다'는 소문 보고 미 비밀 외교전문 분석 | 2012/08/23 14:42 뉴요코리안 '박근혜 최태민 소문' 관련 미 비밀문서 언급 내용을 밝힌다.

 최근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새누리당의 대통령 후보로 공식 선출된 바 있다.

이와 동시에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에 대한 여러 의혹들이 다시 인터넷을 휘감고 있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이러한 여러 의혹 중 최근에 다시 제기된 박근혜 후보와 최태민 목사(?)와의 관련 루머에 관해 미국의(정확히는 주한 미국 대사관의 본국 보고서) 비밀문서가 이에 관해 어떠한 언급을 하였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위키리크스에 의해 폭로된 미국 비밀문서는 그 양이 워낙 많고, 한국의 박근혜 정치인에 대한 기록도 엄청난 언급을 곳곳에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제반 사항에 관해서는 차후 글을 올리기로 하고 이번에는 여러 의혹 중 최태민과의 관계만 언급한 부분을 밝히기로 한다.

우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지금 한국의 인터넷에서는 위키리크스 폭로 비밀문서가 박근혜의 사생아 존재까지도 언급했다는 등 여러 사실이 아닌 것들이 유포되고 있어, 필자가 해당 미 외교 비밀문서의 내용을 밝히는 것임을 미리 전제하고자 한다.

 사생아 관련 언급은 없으나, 최태민 관련 의혹(소문)은 정확히 보고  박근혜 후보와 최태민과의 관계에 대한 의혹을 보고한 미 비밀문서는 더 있을 수도 있으나, 필자가 파악한 바로는 2007년 7월 20일 당시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가 본국으로 송고한 비밀문서에서 언급되고 있다.

  이 문서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정치'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가 한국의 정치인들이 특히, 당시 한나라당의 이명박(MB), 박근혜 등이 서로의 과거사를 들추어내는 데 혈안이 되어있다는 보고를 미 본국에 정치 상황 보고한 문서이다.

이 문서의 요약에는 당시 한나라당 안에서도 박근혜의 과거사를 들추어 내려는 시도들이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즉, 이를 번역하자면 "박근혜는 또한 자신의 과거를 해명하도록 강요받고 있는데, 그녀의 반대자들은 “한국판 라스푸틴”이라고 규정을 한, 최태민 목사와의 35년 전에 관계를 포함한, 그리고 그녀 모친이 암살된 이후 그녀가 영부인 역할이었을 당시, 청와대 안에서 그(최태민)가 어떻게 박근혜를 통제했는지도 해명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 정도일 것이다.

이는 그 당시 대통령 후보감으로 자리매김하던 박근혜 후보에 대한 소문이나 의혹을 비교적 자세히 본국에 보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태민을 '한국의 라스푸틴'이라 이색 평가 보고 눈길  또한, 최태민을 '한국의 라스푸틴'이라고 표현한 점도 눈길을 끌고 있다.

라스푸틴은 시베리아의 엉터리 승려였으나,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 때 사술(詐術)로써 황후를 손에 넣은 뒤 황제마저 장악해 온갖 못된 짓을 다 한 음란한 간신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 비밀보고서의 본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즉, 이 내용도 번역하자면, "아마도 그녀가 모친이 암살되었을 당시 자신을 희생해서 나라에 봉사했다는 이미지에 가장 심한 손상을 입게 된 것은, 박근혜가 카리스마가 있던 죽은 최태민 목사와 연결되는 있다는 점이다.

죽은 최 목사가 그녀의 인성 형성기에 박근혜의 몸과 영혼을 완전히 통제했으며, 그런 결과로 최태민의 자녀가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 정도가 될 것이다.

이 역시 미 외교 비밀문서가 이러한 소문이나 의혹의 사실을 보고하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소문이 널리 퍼졌다(rife)고 본국에 보고하고 있는 것이다.

 미 외교 비밀문서, 최태민 의혹은 보고, 그러나 사생아 관련 언급은 없어  다만, 외교관인 버시바우 대사가 소문을 전달함에 있어서도 왜? 최태민이 박근혜의 '몸과 마음(body and soul)을 완전히 통제했다.

'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는지는, (또는 소문 이외의 어떤 근거를 미국 정보기관이 가지고 있었는지 등을 감안할 때) 참으로 외교적 표현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고 하겠다.

본 보고서 요약에서처럼 그냥 통제라고 해도 충분할 내용을 (아무리 소문을 전달하는 차원이지만) 몸과 마음을 다 통제했다고 보고서를 작성한 것이 이채롭다고 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사항이 2007년 7월 20일에 보고된 주한 미국 대사관의 본국 비밀 송신 보고서 중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를 언급한 내용이다.

이미 언급한 대로, 새누리당 후보로 확정된 박근혜에 관한 여러 내용의 보고서도 많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나, 최태민 등 여러 관련 의혹이 제기되고 있고 많은 루머가 확산하고 있는 관계로, 본 필자는 폭로된 미 비밀보고서가 언급한 최태민과의 관계된 부분에 있어서 보고서에서 언급된 사실(fact)만을 다시 언급한 것임을 밝히고자 한다.

 ---------------------------------------------------------------------------------------------------------  다음 글은 '늘친구네 네이버둥지'님의 블로그에서 퍼온 글입니다.

  박근혜의 남자 최태민목사 이계선 ㆍ 2007/07/22 ㆍ추천: 0  ㆍ조회: 5095        한나라당 검증청문회를 TV로 보다가 아내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남자가 누구지?” “지난해까지는 ‘왕의 남자’였는데 요즘은 ‘근혜의 남자’래요”“‘왕의 남자’는 이준기 하나지만 ‘근혜의 남자‘는 너무 많은걸. 박근혜 대표를 누님 누님하면서 따라다니는 이성헌전의원이나 유승민 의원도 있고 늙은 내시처럼 박근혜 캠프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는 서청원 홍사덕도 있으니까”“박근혜의 남자는 최태민 목사래요”나는 한국최고의 인기여성 박근혜의 남자가 재벌이나 욘사마가 아니라 목사라는 말에 기분이 좋았다.

나도 목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태민은 죽은 목사다.

“최태민목사는 1994년에 죽었는데?”“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긴다고 하지 않아요?최태민은 죽어서도 박근혜를 움직이는 영원한 근혜의 남자랍니다”TV를 보니 박근혜 검증의 중심은 최태민 이었다.

질문자들은 중앙정보부장도 청와대공보관출신도 박정희추종자들도 심지어는 박근혜의 동생 근영이와 지만이도 최태민의 비리를 지적했다는 증거를 들이댔다.

박정희대통령은 최태민을 청와대로 불러들여 박근혜, 정보부장, 비서실장이 보는 앞에서 그 옛날 임금이 죄인을 친히 심문하는 친국(親鞫)을 했다.

그리고 최태민의 거세를 명했다.

그런데 박근혜의 읍소작전에 마음이 약해진 박대통령이 거세를 철회했다고 한다.

검증질문자들이 최태민의 비리를 낱낱이 들이대도 박근혜는 요지부동 이었다.

아버지도 정보부장도 동생들도 잘 몰라서 그렇다고 일편단심 춘향이었다.

 최태민은 도대체 얼마나 훌륭한 목사이기에 그럴까? 인터넷을 뒤져봤다.

 최태민. 1912년생. 초등학교졸업. 경찰생활을 하다가 사업가로 변신. 7개의 이름을 갖고 있고 6번 결혼을 했고 여러번 전과기록이 있는 남자. 불교 카토릭 기독교를 전전하면서 개태사의 스님이 됐다가 불교 천도교 기독교를 잡탕시켜 영생교를 만들고 1975년에 영생교 교주가 됐다.

그때부터 목사다.

영생교는 1980년 2대 교주 조희성이 신자들의 재산 갈취, 간음, 살인으로 악명을 떨친 사이비 사교다.

한국최대의 이단 박태선 전도관의 지파다.

이 영생교를 만든 이가 최태민이다.

최태민은 목사가 아니다.

고려말 요승 신돈같은 사이비 종교인일 뿐이다.

사이비와 이단들이 그렇듯 최태민은 혹세무민하는 영력이 있어서 딸 또래의 처녀들을 회롱 하더니 끝내 대통령의 딸을 세뇌(洗腦)시킨 모양이다.

 1974년 육영수여사가 총탄에 간 후 박근혜가 비탄에 빠져있는데 최태민으로 부터 편지한통이 날라 왔다.

 “어머니는 돌아가신 게 아니라 너의 시대를 열어주기 위하여 길을 비켜 주었다는 걸 네가 왜 모르느냐? 너를 한국, 나아가 아시아의 지도자로 키우기 위해 자리만 옮겼을 뿐이다.

어머니 목소리를 듣고 싶을 때 나를 통하면 항상 들을 수 있다”최태민 목사가 간밤 꿈에서 죽은 육영수여사를 만났다는 것이다.

근혜 에게는 최태민의 편지가 신(神)의 목소리를 담은 천서(天書)로 보였다.

문선명이 피 가름이라는 혼음교리(混淫敎理)로 여성들과 희열을 나누고, 정명석은 자신과 성교를 해야 원죄에서 깨끗하게 된다고 처녀들을 세뇌시켰다.

심령술을 부리는 고졸출신의 한국청년이 펜팔로 미스프랑스를 사로잡아 국제결혼에 성공한 적이 있었다.

신통력이 들통 나 이혼당하고 말았지만. 사교교주들의 공통점은 여자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영력(?)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박근혜는 최태민의 맹신자가 된 모양이다.

그래서 누가 최태민을 욕하면 “천벌 받을 짓이라”고 펄쩍 뛰었다.

“근혜는 천벌의 뜻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못된 짓을 해도 권력을 쥐고 있어서 아무도 벌을 내리지 못할 때, 하늘이 대신 벌을 내려주는걸 천벌이라고 하죠. 그래서 천벌은 대낮에 벼락 맞듯, 아주 참혹하게 마련이에요. 한국정치사에서 천벌 받은 이는 오직 박정희가문뿐이라고 하지요. 부인 육영수여사가 철통경호 속 에서 진행된 광복절식장에서 총탄에 맞아 숨졌어요. 남편 박정희대통령은 안가에서 여자 연예인들을 끼고 황음무도를 즐기다가 가장 가까운 고향후배인 김재규 정보부장의 총을 맞고 즉사했구요. 이런 걸 천벌이라고 하는 거예요” 박근혜가 시집도 안가고 대통령이 되겠다고 매달리는 건 최태민의 예언 때문이다.

그녀가 정상적인 여자라면 어머니를 비명에 가게하고, 아버지를 흉탄에 쓰러뜨리고 동생들을 불행하게 만든 정치권력에 환멸을 느끼고 치를 떨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불나비처럼 권력을 향해 날뛰고 있다.

독재자의 딸이라서 그럴까? 최태민의 망령에 사로잡혀서 그럴까? 요승 신돈 때문에 고려가 망했다.

최태민은 목사가 아니라 한국판 요승 신돈이다.

한나라당의 어느 중진은 이렇게 혀를 찼다.

 “박후보가 경선에 성공하더라도 본선에서는 결국 최태민 때문에 안 될 것이다” 오죽 하면 여권이 박후보를 도와 이명박죽이기에 그렇게 매달리고 있을까? 박근혜 이명박 검증청문회는 무려 7시간짜리인데도 지루하지 않았다.

죽은 최태민이가 ‘근혜의 남자’로 출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박근혜 '최태민 목사 나쁜 사람 아니다'??? 전과 44범을 감싸는 박근혜의 진실은???  세상을 돌아보다  2012/07/20 13:20 http://booyaso.blog.me/50145917931  기업에 돈 요구, 뇌물수수, 횡령. 국정 인사 및 이권 개입 등 44개의 전과 기록. 숱한 여성과의 염문, 성추행-성폭행 의혹, 6번의 결혼, 7개의 이름.최태민이라는 인물을 설명할때 나오는 말들이다.

박근혜는 이런 최태민에 대해 '나쁜사람이 아니다'라며 감싸는 말을 하기도 했다.

2007년 7월 19일 오전 효창공원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한 말이다.

검증위원회 김명곤 검증위원의 “최태민 목사가 아직도 결백하고 모함을 받고있다고 생각하느냐?” 하는 질문에 “내가 아는 한도 안에서는 그렇다.

비리의 실체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내가 최 목사와 관련하여 ‘천벌을 받는다’ 는 말을 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내가 그런 말을 하게 된 것은 최 목사가 이런 저런 비리가 있어 나쁜 사람이다.

라고 공격을 해놓고 ---그 다음에는 나하고 연결지어 잘못한 것으로 공격한다.

그러면 정말로 참을 수가 없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이야기들을 한다”즉 박근혜는 최태민 목사에 대해 감싸기를 하고 있는 것. 하지만 진실은 다르다.

최태민 목사의 수사자료에만 나타난 범죄행위만 44건. 횡령 14건, 사기 1건 변호사법 위반 11건 권력형 비리 13건 이권개입 2건 융자간여 3건 여기에 온갖 성추문과 성폭행 의혹까지 더해지만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인물인 셈. 대통령이 되겠다는 야심을 불태우고 있는 정치인 박근혜를 이해하려면 그림자처럼 남아있는 최태민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최태민은 청와대 온실 속 화초였던 박근혜에게 대외적인 활동을 하기를 권한 주요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최태민 목사>최태민은 1912년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 앞잡이 황해도경 순사였던 최태민은 해방이후 검거를 피해 이름을 상훈으로 바꾸고 월남한다.

원적지인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읍에서 본적을 경남 양산군 웅상면 삼호리로 바꾸고 강원도, 대전, 인천 등지에서 경찰 생활을 이어나간다.

이후 육군과 해병대에서 '비공식 문관' 으로 활동한다.

전쟁이 일어난 후 1951년 군을 떠나 이름을 다시 '봉수'로 바꾼다.

그리고 대한비누공업협회 이사장, 대한행정신문사 부사장을 지내다가 전쟁이 끝난후인 1954년 김모 여인과 결혼을 한다.

하지만 여성과의 추문을 몰고 다녔던 그는 아내 김모 여인이 최태민을 간통 고소 하자 도주 하여 부산 금화사에 의탁 머리를 깍고 승려가 되어 이름을 '퇴운'으로 바꿨다.

1년 후 돌아온 최태민은 전 부인 임모씨와 재결합을 했다고 한다.

수사자료에 따르면 최태민은 과거에도 수차례 결혼과 동거를 한바 있고 이에 따라 임모씨가 5번째 부인이었다고 서술한다.

최태민은 경남 양산에서 개운중학교를 설립해 교장으로 취임하지만 2년만에 그만두고 '대한농민회 조사부 차장' '전국 불교 청년회 부회장' '한국복지사회 건설회 회장' 등의 직책을 지낸다.

1963년 5월에는 민주공화당 중앙위원이 되고, 1965년에는 천일창고 회사 회장으로 취임하지만 유가증권 위조혐의로 서울지검에 입건된다.

이에 최태민은 다시 도주. 1969년 도피생활을 이어가던 최태민은 공해남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하다가 서울 중림동 성당에서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

이후 최태민은 충청도 계룡산에 들어가 사이비 종교인 영세계를 창립하여 교주가 되어 서울과 대전일대를 돌아다니며 종교사기를 벌였다.

영세계는 불교, 기독교, 천도교를 혼합한 종교라고 한다.

영생교 교주 시절에 최태민은 '방민'이라는 가명을 사용했고 별칭은 '원자경' '칙사' '태자마마'로 불렸다.

최태민이 영세계 교주였다는 사실은 '사이비종교 연구가'인 국제종교문제연구소 탁명환 소장 때문에 알려지게 되었다.

사이비 종교를 연구하고 있던 탁명환 소장은 신문에서 박근혜 옆에 있는 최태민을 발견하고 직접 찾아가 사실 확인을 했다고 한다.

  최태민이 박근혜를 만난것은 1974년 육영수가 총탄에 피격된 직후이다.

어머니를 잃고 슬퍼하는 박근혜에게 접근한 최태민은 박근혜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어머니는 돌아가신 게 아니라 너의 시대를 열어 주기 위해 길을 비켜 주었다는 것, 네가 왜 모르느냐. 너를 한국, 나아가 아시아의 지도자로 키우기 위해 자리만 옮겼을 뿐이다.

어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나를 통하면 항상 들을 수 있다.

육 여사가 꿈에 나타나 ‘내 딸이 우매해 아무 것도 모르고 슬퍼만 한다’면서 ‘이런 뜻을 전해달라’고 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현몽계시. 하지만 최태민이 유일하게 인터뷰한 <가정조선> 1990년 10월호에 따르면 최태민은 이런 현몽계시에 대해 부정했다고 한다.

“‘현몽’ 등의 말이 대학 교육을 받은 박(근혜) 이사장에게 먹혀들 것 같아요? '현몽’이나 정식으로 접견 신청 내용 따위는 쓰지 않았다.

‘위로 말씀을 전하며 기회 있으면 한번 만나주시길 바랍니다’는 말로 끝맺었다”박근혜도 '현몽설'에 대해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이름을 7개나 가진 행적이 수상한 이 남자를 박근혜는 다시 만난다.

1975년 3월 6일의 일이다.

청와대로 가서 박근혜를 만난 최태민은 박근혜에게 대외활동을 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했다고 한다.

그리고 박근혜를 만난 뒤 최태민은 다시한번 변신을 시도한다.

바로 목사 안수를 받은 것.하지만 <월간 중앙>의 보도에 의하면 최태민은 그전까지 신학을 공부한적이 없고 목사직을 돈주고 산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때 최태민은 이름을 '태민'으로 바꾸게 된다.

최태민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변신한 후 최태민 목사는 '대한구국선교단'을 발족하고 총재 자리에 오른다.

'대한구국선교단'의 1975년 5월 '구국기도회'를 통해 발족한다.

당시 참여한 인원은 대략 2000명 정도였다고 한다.

'구국기도회'에 초대받은 박근혜는 그 자리에서 명예총재로 추대되었고 1976년 '구국선교단'이 '구국봉사단'으로 1978년 '새마음 봉사단'으로 이름을 바꾼 뒤 직접 총재가 되어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박근혜가 새마음 봉사단의 총재가 되어 외부활동을 한 것에 대해서는 또다른 이야기가 전해진다.

최태민이 박근혜 이름을 팔고 다니며 사기행각을 벌인다는 소문과 함께 박근혜를 등에 없고 온갖 여성들과 성추문이 들끓게 되자 딸 자식 걱정이 되었던 박정희는 1977년 9월 최태민과 박근혜를 대통령 서재에 불러놓고 '친국'을 했다고 한다.

당시 중앙정보부의 김재규 부장과 백광현 국장도 같이 있었다고 한다.

최태민이 의심스러웠지만 장녀 박근혜가 적극적으로 최태민을 옹호했기에 박정희는 최태민을 처벌하지 않았고 이후 새마음 봉사단의 총재가 된 박근혜 옆에 최태민은 명예총재가 되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당시 최태민은 사석에서 '박근혜는 꼭두각시, 내가 하자는 대로 한다'며 떠벌리고 다녔다는 소문이 있는데, 이 소문에 대해 박근혜는 '최태민 목사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내가 누구 말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보이냐?'며 불쾌해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구국선교단'이 전신인 '새마음봉사단'은 기업인을 구국봉사단운영위원으로 위촉했으며 1인당 2000만원에서 5000만원 입단 찬조비를 받거나 월 200만원 운영비를 받았으며, 그리고 행정기관의 지원을 바탕으로 동단위까지 조직을 확대, 300만명의 단원을 확보했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최태민은 수십억의 돈을 횡령했다는 의혹도 전해진다.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진 10.26사태가 발생한 후 전두환이 정권을 잡고 1980년 11월 새마음 봉사단은 강제 해산된다.

박근혜는 전두환으로부터 당시 6억원을 하사받았고 1983년 육영재단과 영남대 이사장으로 취임하는 등 사회활동을 지속한다.

하지만 최태민은 전두환 정권에 의해 수사를 받고 강원도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1년 6개월 형을 받는다.

최태민과 박근혜와의 스캔들이 일파만파된 상황에서 전두환은 이학봉 합수부 수사국장에게 최태민을 수사하도록 했고 이에 따라 박근혜와 최태민을 떨어뜨려놓기 위해 최태민을 강원도로 보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박근혜가 청와대로 직접 전두환을 찾아가 구명운동을 벌였다는 소문도 들려온다.

물론 이 것에 대해서도 박근혜는 아니라고 답하고 있다.

같은 시기 박근혜는 당시 마약 복용으로 감호소에 갇혀있던 동생 박지만을 한번도 찾아가지 않았다고 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감옥에 있는 동생조차 면회 가지 않는 인물이 최태민 목사의 구명에 힘썼다는 소문이 돌면서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에 대한 의혹이 짙어지게 된것이다.

결국 1년 6개월 형을 받았지만 최태민은 1년만에 풀려나게 되고 다시 박근혜 곁으로 돌아온다.

최태민은 여전히 박근혜의 그림자가 되어 육영재단의 운영에 개입하게 된다.

심지어 최태민의 5번째 딸 최순실까지 육영재단의 어린이회관 운영에 개입하면서 육영재단 직원들은 분노하게 되고 결국 파업과 농성으로 이어진다.

이 일로 박근혜는 1990년 11월 15일 동생 근령에게 이사장직을 넘기게 된다.

당시 박근혜는 이사장직에서 물러나며 "내가 누구에게 조종당한다는 것은 인격 모독"이라며 매우 불쾌해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1990년 당시 박근혜 -근령 -지만 형제 사이에 일어난 편지 사건이다.

"진정코 저희 언니(박근혜)는 최태민씨에게 철저히 속은 죄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속고 있는 언니가 너무도 불쌍합니다! 대통령의 유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어디에 하소연 할 곳도 없고 또 함부로 구원을 청할 곳도 없었습니다.

" "(최태민 목사는) 순수한 저희 언니에게 교묘히 접근해 언니를 격리시키고 고립시킨다"며 "이번 기회에 언니가 구출되지 못하면 언니와 저희들은 영원히 최씨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의 장난에 희생되고 말 것" 이런 내용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 딸 박근령(현 육영재단 이사장)과 장남 박지만(현 EG 대표)은 1990년 8월 14일 A4용지 12장에 이르는 장문의 편지가 노태우 대통령에게 전달된 것이다.

편지의 내용은 대부분 최태민 목사에 대한 비리사실을 고발하고 있다.

  이 편지는 박근령 현 육영재단 이사장이 직접 쓴 것으로 보인다.

실제 <오마이뉴스>가 전문 필적감정소에 의뢰한 결과, 지난 1990년 <가정조선> 12월호에서 보도한 박 이사장의 친필편지와 <오마이뉴스>가 단독 입수한 편지의 필체가 동일인의 것으로 밝혀졌다.

최태민 목사는 이후 1994년 사망할때까지 지병으로 집에만 있었으며 1994년 5월 1일 심근경색으로 82세로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박근혜는 최태민 목사의 5번째 딸 최순실의 남편 정윤회를 비서실장으로 삼으며 정계에 입문한다.

박근혜 의원실의 보좌진을 구성한 것도 정윤회이며 박근혜와 최태민 스캔들을 우려한 주변에서 정윤회를 멀리할 것을 지속적으로 건의하자 현재는 비서실장 직에서 물러나있지만 여전히 박근혜를 위해 정윤회가 일하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이런 의혹이 계속되는 건 박근혜를 만나기 전 무일푼에 가까웠던 최태민의 딸들이 현재 수백억원의 부동산 재벌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최태민은 6명의 부인으로부터 3남6년 9명의 자녀를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태민의 다섯번째 딸인 최순실은  29살이던 1985년 9월 ㅁ빌딩 맞은편의 대지 357.8㎡(108평)를 임아무개씨와 공동매입해 지상 4층 건물을 지었고, 1987년 5월 공동지분을사들여 단독소유주가 된다.

32살 때인 1988년 7월 2명과 공동명의로 신사동에 661㎡(200평) 규모의 땅을 사들였고, 1988년 12월과 1996년 7월에는 공동지분을 차례로 사들여 단독소유주가 됐다.

2003년 7월엔 이 땅에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의 건물(ㅁ빌딩)을 지어 지금까지 보유하고 있으며 건물 시가는 200억 가량이라고 한다.

이 건물에는 최순실의 남편이자 박근혜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정윤회가 대표이사인 (주)얀슨이 입주해있으며 1994년 커피 및 커피기계의 수입·판매, 승마장업, 체육관련용품 수입·판매, 휴게실업 등의 업종을 신고했지만 2001년에 삭제, 곧이어 교육디지털콘텐츠 제작·유통·판매·컨설팅, 도서 출판 및 판매 등을 신고했다가 2003년 삭제. 같은 해 의류 및 가구의 수입·판매도 신고했으나 삭제. 2003년 말엔 국외 이주자 모집·알선, 이주신고 대행, 이주 상담 및 안내 등으로 업종이 계속 변경되어 사업자등록이 되어있다.

얀슨 사무실 직원들은 얀슨의 주 업무가 ㅁ빌딩 관리라고 말한다.

1995년 정윤회와 공동으로 서울 역삼동의 대지 354.1㎡(107평)을 사들여 지하 1층 지상 3층의 다가구용 단독주택(19세대)을 지었고 건물 시가는 40억원 정도이다.

부동산 재벌인 최태민과 그 딸들은 원래부터 부자는 아니었다.

전세를 전전했고 사기행각을 지속적으로 벌일 정도로 생활형편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헌데 어찌된 영문인지 박근혜와 만나 구국선교단, 새마음봉사단 활동을 하면서 최태민의 부동산과 재산이 늘어났던 것이다.

최태민과 박근혜가 남녀관계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사기, 횡령, 사이비 종교활동을 한 인물과 대통령이 되겠다는 인물이 여전히 엮여있다는 점. 박근혜는 여전히 최태민이 깨끗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최태민의 범죄 사실 및 최태민 및 그 자식들의 재산형성 과정에 대해서도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 박근혜와 16년 동고동락 ‘최태민 미스터리’(한겨레 / 김외현 / 2012-07-17)▲1976년 박정희 대통령(왼쪽)이 대한구국선교단 야간진료센터를 방문, 최태민 총재(오른쪽)와 얘기를 나누는 장면. 가운데는 박근혜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 2012 대선주자 탐구|박근혜③ 박근혜와 최태민 지난 40년 가량 박근혜(60)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는 최태민(1912

1994)과의 관계에 대한 의혹이 자주 따라붙었다.

1974년 어머니 육영수가 총탄에 쓰러진 뒤 ‘퍼스트레이디’ 구실을 하던 박근혜는 ‘새마음봉사단’을 대외활동의 중심으로 삼았다.

최태민과 함께 운영했던 단체다.

사이비종교 ‘교주’였다는 설도 있어 최태민의 전력이 불분명하던 터에, 아버지 박정희도 20대의 딸이 그에게 현혹됐다고 생각해 불만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80년대 후반 전두환 정권이 끝나고 대외 활동을 재개한 박근혜는 최태민과 함께 새마음봉사단의 후신인 근화봉사단을 꾸린다.

동생 근령(58)과 대립했던 1990년 육영재단 분란의 배경에도, 최태민과 그의 딸 최순실(56)의 전횡 논란이 있었다.

1998년 국회의원이 된 뒤에는, 최태민의 사위(최순실의 남편) 정윤회(57)가 비서실장이란 호칭을 달고 등장한다.

2004년 박근혜가 당 대표가 되면서 정윤회는 종적을 감췄지만, 2007년 경선 때도, 지금도 그가 박근혜의 비선 조직을 이끌며 핵심 측근으로 활약중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유신말기 새마음봉사단 함께 운영교계에선 “사이비” 구설수“부인 6명·이름 7개”박 “의혹 제기됐지만 실체 없었다” ■ ‘6명의 부인, 7개의 이름’ 최태민은 흔히 목사로 불린다.

1975년 4월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합총회로부터 목사 안수를 받은 뒤부터 생긴 호칭이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와 전두환의 합동수사본부를 거치며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수사자료’를 보면, 그는 불교 승려가 된 적도 있었고 천주교 세례를 받기도 했다.

‘태민’이란 이름도 각종 가명을 포함해 7번째 이름이다.

1912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최태민은 1942

45년 황해도경의 순사였다.

해방 뒤 남쪽에 둥지를 튼 그는 이름을 상훈으로 바꾸고 강원도, 대전, 인천에서 경찰로 일했다.

이후 최태민은 군으로 자리를 옮겨, 육군과 해병대에서 ‘비공식 문관’으로 일했다.

최태민은 1951년 군을 떠나며 이름을 봉수로 바꾸고, 대한비누공업협회 이사장, 대한행정신문사 부사장 등을 지냈다.

전쟁이 끝난 뒤 1954년엔 김아무개씨와 결혼했다가, 김씨가 그를 여자 문제로 고소하자 부산 금화사로 도피했다.

곧장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됐고, 이름을 퇴운으로 바꿨다.

1년여 뒤 김씨와의 문제가 잠잠해지자 산에서 내려와 부산에서 전 부인 임아무개씨와 다시 결합했다.

‘수사 자료’는 임씨가 5번째, 김씨는 6번째 부인이라고 표기했으나, 1

4번째 부인은 등장하지 않는다.

(<월간조선>(2007년 7월호)은 별도의 자료를 인용해 최태민이 6명의 부인으로부터 모두 3남6녀를 두었다며 가계도를 제시한 바 있다.

) 임씨와 결합한 뒤 경남 양산에서 ㄱ중학교를 설립해 교장에 취임한 최태민은 2년 만에 교장을 그만두고, 이후 몇가지 직책을 지냈다.

1965년엔 천일창고라는 회사의 회장으로 있다가 유가증권 위조혐의로 서울지검이 그를 입건하자 도피했다.

도피중이던 1969년엔 공해남이란 가명으로 등장해 서울 중림동 성당에서 영세를 받기도 했다.

70년대 들어 최태민은 서울과 대전 일대에서 난치병을 치료한다는 등 사이비 종교 행각을 벌였다.

불교, 기독교, 천도교를 종합했다는 교리를 내세웠고, 방민이란 가명을 쓰면서 ‘원자경’, ‘칙사’ 또는 ‘태자마마’라는 호칭을 자처했다.

■ 박근혜와의 만남 최태민이 박근혜를 처음 만난 것이 이 무렵이다.

최태민은 1974년 육영수 사망 직후 박근혜에게 편지를 보냈다.

<김형욱 회고록>은 편지 내용을 이렇게 전한다.

“어머니는 돌아가신 게 아니라 너의 시대를 열어 주기 위해 길을 비켜 주었다는 것, 네가 왜 모르느냐. 너를 한국, 나아가 아시아의 지도자로 키우기 위해 자리만 옮겼을 뿐이다.

어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나를 통하면 항상 들을 수 있다.

육 여사가 꿈에 나타나 ‘내 딸이 우매해 아무 것도 모르고 슬퍼만 한다’면서 ‘이런 뜻을 전해달라’고 했다.

” 이른바 ‘현몽(죽은 이가 꿈에 나타남)’이다.

최태민은 이를 부인했다.

그는 <가정조선>(1990년 10월호) 인터뷰에서 “‘현몽’ 등의 말이 대학 교육을 받은 박(근혜) 이사장에게 먹혀들 것 같아요?”라며 “‘현몽’이나 정식으로 접견 신청 내용 따위는 쓰지 않았다.

‘위로 말씀을 전하며 기회 있으면 한번 만나주시길 바랍니다’는 말로 끝맺었다”고 말했다.

박근혜도 현몽설을 부인했다.

박근혜는 1975년 3월6일 최태민을 청와대로 불러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최태민은 외부 활동을 적극 권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근혜를 만난 뒤, 최태민은 목사 안수를 받는다.

<월간중앙>(1993년 11월호)은 “(목사 직을) ‘돈 주고 샀다’는 것이 교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나 이 사실이 확인된 적은 없다.

분명한 한가지는, 목사 안수는 받았지만 신학대학이나 교단이 인정하는 신학교에서 신학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는 점”이라고 전했다.

‘태민’이라는 ‘마지막 이름’을 얻은 것도 이 즈음이다.

최태민 목사는 ‘대한구국선교단’을 발족하고 스스로 총재에 취임한다.

5월 임진강에서 연 ‘구국기도회’에는 2000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박근혜도 참석했다.

최태민의 즉석 제안으로 박근혜는 명예총재로 추대됐다.

이후 박근혜는 구국선교단 행사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고, 1976년 구국선교단은 ‘구국봉사단’으로, 2년 뒤인 1978년엔 다시 ‘새마음봉사단’으로 이름을 바꾼다.

바로 박근혜의 퍼스트레이디 경력의 핵심인 새마음운동의 본산이다.

10·26 뒤 전두환의 합동수사본부에서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최태민에 대한 ‘수사자료’엔 “형식상 모든 업무는 박근혜가 관장하였으나 실질적으로 비공식 고문격인 최태민이 전권을 위임받아 행정부, 정계, 경제계, 언론계 등 각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 봉사단 관계자는 “한마디로 미니 청와대였다”고도 했다.

최태민 주위에선 각종 이권 개입과 횡령, 사기 및 융자 알선 등 권력형 비리, 그리고 온갖 여성과의 스캔들 의혹이 들끓었다.

소문은 박정희 전 대통령 귀에도 들어갔다.

민정비서실과 중앙정보부 보고를 잇따라 받은 박정희는 1977년 9월 직접 최태민을 심문했다.

이른바 ‘친국’(임금이 직접 죄인을 심문함)이다.

대통령 서재에서 진행한 친국엔 중정의 김재규 부장과 백광현 국장이 동석했다.

박근혜도 참석해 “그런 일 없다”며 최태민을 옹호했다는 설도 있다.

박정희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검찰에 넘긴 뒤 검찰 판단에 따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최태민은 새마음봉사단의 명예총재(총재는 박근혜)를 맡는 등 10·26 때까지 박근혜의 옆을 지켰다.

‘박정희 친국’ 뒤에도 살아남아전두환 시절도 육영재단 등 활동박 “어머니 돌아가신뒤 힘들었을 때바로설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분” ■ 10·26 뒤 합수부 조사받고도 박근혜 곁에 10·26 뒤 김재규는 항소이유보충서에서 최태민을 언급한다.

“본인이 결행한 10·26 혁명의 동기 가운데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 한 가지는, 총재 최태민, 명예총재 박근혜양으로 되어 있는 구국여성봉사단 문제이며, 본인은 최 목사의 부정행위를 상세히 조사해 박대통령에게 보고했지만 박대통령은 근혜양을 그 단체에서 손을 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양을 총재로 최태민 목사를 명예총재로 올려놓았다.

” ▲ 1976년 박근혜(오른쪽)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가 최태민 목사와 함께 구국단체결연 단합대회에 참석한 장면. 최태민은 합수부가 진행하는 수사를 받는다.

전두환의 지시로 수사를 맡았던 당시 보안사 대공처장 이학봉은 <신동아>(2007년 6월호) 인터뷰에서 “(최태민을) 강원도로 보내 활동하지 못하도록 했다.

조용하게 자숙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강원도에 그리 오래 두지는 않았다.

구체적 비리 혐의는 기억나는 것이 없고, 그가 기업체로부터 돈을 뜯어낸 것으로 확인된 게 얼마나 되는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박근혜의 연루 의혹은 없었다.

”고 말했다.

새마음봉사단은 1980년 11월 강제해산 당한다.

박근혜는 육영재단과 영남대 등을 통해 사회활동을 이어간다.

최태민도 다시 등장한다.

박근혜는 1983년 1월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3년 뒤 1986년부터 육영재단의 어린이회관에선 최태민의 전횡이 입길에 올랐다.

<여성중앙> 1987년 10월호를 보면, 최태민에게 우선 보고를 해야 이사장(박근혜) 결재를 받을 수 있었으며, 최태민의 5번째 딸 최순실도 회관 운영에 개입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무렵 재단 잡지사 들의 파업과 직원들의 농성도, 모두 ‘외부 세력’이라고 표현된 최태민·최순실 부녀의 간섭이 원인이 됐다.

분란은 1990년 11월15일 박근혜가 동생 근령에게 이사장직을 넘길 때까지 계속됐다.

물러나는 박근혜는 “내가 누구에게 조종받는다는 것은 내 인격에 대한 모독”이라며 최태민의 전횡 의혹을 일축했다.

최태민은 이후 서울 역삼동 자택에 칩거한 것으로 전해지며, 1994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1994년 노환으로 세상 떴으나5번째 딸의 남편 정윤희씨박 ‘미래연합’ 창당때 비서실장최태민, 사후에도 여전히 ‘그림자’ ■ 대이은 ‘충성’ 최태민 사후에도 그의 그림자는 박근혜 곁에 남았다.

최순실의 남편 정윤회가 박근혜의 정계 입문 때부터 등장했다.

2002년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을 때는 비서실장을 맡았다.

박근혜가 한나라당 대표가 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곁을 떠난 것으로 알려진 2004년 6월

2006년 5월에는 국회 입법보조원으로 등록했다.

한 전직 는 “최순실은 박근혜가 장충동에 살던 시절부터 말동무로 지낸온 것으로 들었다”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박근혜 의원실의 보좌진을 구성한 것도 정윤회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박근혜는 2007년 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정윤회의 등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1998년 보궐선거에서) 대구 달성구에 국회의원으로 처음 나왔을 때다.

개인적으로 캠프를 차려 선거를 치르려니 전혀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상대 후보가 안기부 기조실장으로 실세의 기세가 등등했고 위협적인 상대였다.

…그런 상황에서 정윤회씨가 돕겠다 해서 순수하게 도운 것이다.

그게 인연이 돼 국회의원 됐을 때 입법보조원으로…, 이후 당 대표 때 그만뒀다.

” 2007년 7월 이명박 캠프에선 ‘박근혜의 국회 보좌진이 최태민과 친인척 관계다’, ‘박근혜 캠프의 홍윤식 전문가네트워크 위원장과 정윤회가 밀접한 관계다’ 등의 의혹을 제기했다.

전자에 대해선 해당 보좌진이 즉각 부인했고, 후자에 대해선 홍윤식이 최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지금까지 정윤회를 만나본 적도 없고 얼굴도 모른다”고 말했다.

박근혜는 최태민에 대해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힘들었을 때 흔들리지 않고 바로설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분”이라고 말한다.

각종 의혹에 대해선 “의혹은 많이 제기됐지만 실체가 없었다.

한가지라도 사실이었다면 내가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겠나”라며 일축한다.

그러나 박근혜가 다시 대통령에 도전하는 오늘도 정윤회의 이름은 여의도를 떠돈다.

친박 내부에선 친박끼리 “내가 모르는 보고서가 올라간다”며, 정윤회 라인을 의심한다.

반대파는 박근혜나 친박의 결정이 이상하다 싶어서 또 정윤회 라인을 의심한다.

<한겨레>는 각종 의혹에 대한 해명을 듣고자 6월부터 다양한 경로로 정윤회와의 접촉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2007년 경선 시기부터 많은 들이 그를 만나고자 했지만 성공한 바 없다.

■ 최태민 수사 자료?1980년 전두환 지시로 수사…2007년 한나라 경선서 흘러나와최태민 1990년 유일한 인터뷰 “이름 7개씩이나? 터무니 없다”▲ 최태민최태민(사진)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육영재단 분규 때다.

당시 기사를 보면, 최태민의 나이가 69살, 71살, 78살로 들쭉날쭉이다.

그때까지도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는 방증이다.

[최태민목사] 근본적 원인은 ?


<월간중앙>(1993년 11월호)은 ‘박근혜-최태민, 20년 커넥션’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재규가 항소이유보충서에서 10·26 사태의 한 동기로 최태민·박근혜씨의 관계를 거론하고, 그의 비행을 알고 있는 몇몇 사람이 ‘정리’를 권유하자 전두환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은 이학봉 수사국장에게 특별조사를 지시했다.

지금까지 그의 신상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대부분 당시 수사 결과에 근거한 것”이라며 최태민의 전력과 박근혜와의 관계를 다뤘다.

이 ‘수사자료’는 공개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가, 2007년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물위로 떠오른다.

<신동아>는 2007년 6월 “중앙정보부가 작성해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최태민 관련 수사보고서인 ‘최태민 관련 자료’를 최근 입수했다”며 그 내용을 상세히 전했다.

같은달 27일에는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경선 후보였던 이해찬의 누리집 게시판에 ‘안기부’라는 이용자가 신동아 자료와 같은 제목의 피디에프(PDF) 파일을 올려놓았다.

최태민의 유일한 인터뷰인 <가정조선> 1990년 10월호에서, 그는 수사자료에 대해 “1977년에 작성된 수사기록이다.

수사 결과 내가 기소된 뒤 기소중지되거나 불기소 등으로 처리됐던 게 아니라 아예 그냥 없었던 일로 처리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6번의 결혼, 7개의 이름’에 대해서도 그는, “이름이 7개씩이나 된다는 것은 터무니 없다”며, 해방 뒤 38선 이남으로 오면서 호적 정리가 되지 않아 이름과 결혼 기록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했다.

최태민 쪽은 1977년 9월 본인이 위출혈로 병원에 입원중일 때 사실상 병실에 감금된 상태에서 수사가 진행돼, 기록도 강압에 의해 작성됐다고 주장했다.

김외현    출처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42931.html01 12:59 목록 크게   이름 7개, 부인 6명, 승려 목사 ‘최태민 미스터리’1976년 박정희 대통령(왼쪽)이 대한구국선교단 야간진료센터를 방문, 최태민 총재(오른쪽)와 얘기를 나누는 장면. 가운데는 박근혜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  2012 대선주자 탐구|박근혜③ 박근혜와 최태민지난 40년 가량 박근혜(60)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는 최태민(1912

1994)과의 관계에 대한 의혹이 자주 따라붙었다.

   1974년 어머니 육영수가 총탄에 쓰러진 뒤 ‘퍼스트레이디’ 구실을 하던 박근혜는 ‘새마음봉사단’을 대외활동의 중심으로 삼았다.

최태민과 함께 운영했던 단체다.

사이비종교 ‘교주’였다는 설도 있어 최태민의 전력이 불분명하던 터에, 아버지 박정희도 20대의 딸이 그에게 현혹됐다고 생각해 불만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80년대 후반 전두환 정권이 끝나고 대외 활동을 재개한 박근혜는 최태민과 함께 새마음봉사단의 후신인 근화봉사단을 꾸린다.

동생 근령(58)과 대립했던 1990년 육영재단 분란의 배경에도, 최태민과 그의 딸 최순실(56)의 전횡 논란이 있었다.

   1998년 국회의원이 된 뒤에는, 최태민의 사위(최순실의 남편) 정윤회(57)가 비서실장이란 호칭을 달고 등장한다.

2004년 박근혜가 당 대표가 되면서 정윤회는 종적을 감췄지만, 2007년 경선 때도, 지금도 그가 박근혜의 비선 조직을 이끌며 핵심 측근으로 활약중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유신말기 새마음봉사단 함께 운영교계에선 “사이비” 구설수“부인 6명·이름 7개”박 “의혹 제기됐지만 실체 없었다”  ■ ‘6명의 부인, 7개의 이름’ 최태민은 흔히 목사로 불린다.

1975년 4월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합총회로부터 목사 안수를 받은 뒤부터 생긴 호칭이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와 전두환의 합동수사본부를 거치며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수사자료’를 보면, 그는 불교 승려가 된 적도 있었고 천주교 세례를 받기도 했다.

‘태민’이란 이름도 각종 가명을 포함해 7번째 이름이다.

   1912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최태민은 1942

45년 황해도경의 순사였다.

해방 뒤 남쪽에 둥지를 튼 그는 이름을 상훈으로 바꾸고 강원도, 대전, 인천에서 경찰로 일했다.

이후 최태민은 군으로 자리를 옮겨, 육군과 해병대에서 ‘비공식 문관’으로 일했다.

   최태민은 1951년 군을 떠나며 이름을 봉수로 바꾸고, 대한비누공업협회 이사장, 대한행정신문사 부사장 등을 지냈다.

전쟁이 끝난 뒤 1954년엔 김아무개씨와 결혼했다가, 김씨가 그를 여자 문제로 고소하자 부산 금화사로 도피했다.

곧장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됐고, 이름을 퇴운으로 바꿨다.

1년여 뒤 김씨와의 문제가 잠잠해지자 산에서 내려와 부산에서 전 부인 임아무개씨와 다시 결합했다.

‘수사 자료’는 임씨가 5번째, 김씨는 6번째 부인이라고 표기했으나, 1

4번째 부인은 등장하지 않는다.

(<월간조선>(2007년 7월호)은 별도의 자료를 인용해 최태민이 6명의 부인으로부터 모두 3남6녀를 두었다며 가계도를 제시한 바 있다.

)   임씨와 결합한 뒤 경남 양산에서 개운중학교를 설립해 교장에 취임한 최태민은 2년 만에 교장을 그만두고, 이후 몇가지 직책을 지냈다.

1965년엔 천일창고라는 회사의 회장으로 있다가 유가증권 위조혐의로 서울지검이 그를 입건하자 도피했다.

도피중이던 1969년엔 공해남이란 가명으로 등장해 서울 중림동 성당에서 영세를 받기도 했다.

   70년대 들어 최태민은 서울과 대전 일대에서 난치병을 치료한다는 등 사이비 종교 행각을 벌였다.

불교, 기독교, 천도교를 종합했다는 교리를 내세웠고, 방민이란 가명을 쓰면서 ‘원자경’, ‘칙사’ 또는 ‘태자마마’라는 호칭을 자처했다.

  ■ 박근혜와의 만남 최태민이 박근혜를 처음 만난 것이 이 무렵이다.

최태민은 1974년 육영수 사망 직후 박근혜에게 편지를 보냈다.

<김형욱 회고록>은 편지 내용을 이렇게 전한다.

   “어머니는 돌아가신 게 아니라 너의 시대를 열어 주기 위해 길을 비켜 주었다는 것, 네가 왜 모르느냐. 너를 한국, 나아가 아시아의 지도자로 키우기 위해 자리만 옮겼을 뿐이다.

어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나를 통하면 항상 들을 수 있다.

육 여사가 꿈에 나타나 ‘내 딸이 우매해 아무 것도 모르고 슬퍼만 한다’면서 ‘이런 뜻을 전해달라’고 했다.

”   이른바 ‘현몽(죽은 이가 꿈에 나타남)’이다.

최태민은 이를 부인했다.

그는 <가정조선>(1990년 10월호) 인터뷰에서 “‘현몽’ 등의 말이 대학 교육을 받은 박(근혜) 이사장에게 먹혀들 것 같아요?”라며 “‘현몽’이나 정식으로 접견 신청 내용 따위는 쓰지 않았다.

‘위로 말씀을 전하며 기회 있으면 한번 만나주시길 바랍니다’는 말로 끝맺었다”고 말했다.

박근혜도 현몽설을 부인했다.

어쨌건 박근혜는 1975년 3월6일 최태민을 청와대로 불러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최태민은 외부 활동을 적극 권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근혜를 만난 뒤, 최태민은 목사 안수를 받는다.

<월간중앙>(1993년 11월호)은 “(목사 직을) ‘돈 주고 샀다’는 것이 교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나 이 사실이 확인된 적은 없다.

분명한 한가지는, 목사 안수는 받았지만 신학대학이나 교단이 인정하는 신학교에서 신학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는 점”이라고 전했다.

‘태민’이라는 ‘마지막 이름’을 얻은 것도 이 즈음이다.

   최태민 목사는 ‘대한구국선교단’을 발족하고 스스로 총재에 취임한다.

5월 임진강에서 연 ‘구국기도회’에는 2000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박근혜도 참석했다.

최태민의 즉석 제안으로 박근혜는 명예총재로 추대됐다.

이후 박근혜는 구국선교단 행사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고, 1976년 구국선교단은 ‘구국봉사단’으로, 2년 뒤인 1978년엔 다시 ‘새마음봉사단’으로 이름을 바꾼다.

바로 박근혜의 퍼스트레이디 경력의 핵심인 새마음운동의 본산이다.

   최태민에 대한 ‘수사자료’엔 “형식상 모든 업무는 박근혜가 관장하였으나 실질적으로 비공식 고문격인 최태민이 전권을 위임받아 행정부, 정계, 경제계, 언론계 등 각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 봉사단 관계자는 “한마디로 미니 청와대였다”고도 했다.

최태민 주위에선 각종 이권 개입과 횡령, 사기 및 융자 알선 등 권력형 비리, 그리고 온갖 여성과의 스캔들 의혹이 들끓었다.

   소문은 박정희 전 대통령 귀에도 들어갔다.

민정비서실과 중앙정보부 보고를 잇따라 받은 박정희는 1977년 9월 직접 최태민을 심문했다.

이른바 ‘친국’(임금이 직접 죄인을 심문함)이다.

대통령 서재에서 진행한 친국엔 중정의 김재규 부장과 백광현 국장이 동석했다.

박근혜도 참석해 “그런 일 없다”며 최태민을 옹호했다는 설도 있다.

박정희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검찰에 넘긴 뒤 검찰 판단에 따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최태민은 새마음봉사단의 명예총재(총재는 박근혜)를 맡는 등 10·26 때까지 박근혜의 옆을 지켰다.

  ‘박정희 친국’ 뒤에도 살아남아전두환 시절도 육영재단 등 활동박 “어머니 돌아가신뒤 힘들었을 때바로설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분”  ■ 10·26(1979년)뒤 합수부 조사받고도 박근혜 곁에 10·26 뒤 김재규는 항소이유보충서에서 최태민을 언급한다.

“본인이 결행한 10·26 혁명의 동기 가운데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 한 가지는, 총재 최태민, 명예총재 박근혜양으로 되어 있는 구국여성봉사단 문제이며, 본인은 최 목사의 부정행위를 상세히 조사해 박대통령에게 보고했지만 박대통령은 근혜양을 그 단체에서 손을 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양을 총재로 최태민 목사를 명예총재로 올려놓았다.

” 1976년 박근혜(오른쪽)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가 최태민 목사와 함께 구국단체결연 단합대회에 참석한 장면. 최태민은 합수부가 진행하는 수사를 받는다.

전두환의 지시로 수사를 맡았던 당시 보안사 대공처장 이학봉은 <신동아>(2007년 6월호) 인터뷰에서 “(최태민을) 강원도로 보내 활동하지 못하도록 했다.

조용하게 자숙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강원도에 그리 오래 두지는 않았다.

구체적 비리 혐의는 기억나는 것이 없고, 그가 기업체로부터 돈을 뜯어낸 것으로 확인된 게 얼마나 되는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박근혜의 연루 의혹은 없었다.

”고 말했다.

새마음봉사단은 1980년 11월 강제해산 당한다.

   박근혜는 육영재단과 영남대 등을 통해 사회활동을 이어간다.

최태민도 다시 등장한다.

박근혜는 1983년 1월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3년 뒤 1986년부터 육영재단의 어린이회관에선 최태민의 전횡이 입길에 올랐다.

<여성중앙> 1987년 10월호를 보면, 최태민에게 우선 보고를 해야 이사장(박근혜) 결재를 받을 수 있었으며, 최태민의 5번째 딸 최순실도 회관 운영에 개입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무렵 재단 잡지사 들의 파업과 직원들의 농성도, 모두 ‘외부 세력’이라고 표현된 최태민·최순실 부녀의 간섭이 원인이 됐다.

분란은 1990년 11월15일 박근혜가 동생 근령에게 이사장직을 넘길 때까지 계속됐다.

물러나는 박근혜는 “내가 누구에게 조종받는다는 것은 내 인격에 대한 모독”이라며 최태민의 전횡 의혹을 일축했다.

   최태민은 이후 서울 역삼동 자택에 칩거한 것으로 전해지며, 1994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1994년 노환으로 세상 떴으나5번째 딸의 남편 정윤회씨박 ‘미래연합’ 창당때 비서실장최태민, 사후에도 여전히 ‘그림자’  ■ 대이은 ‘충성’ 최태민 사후에도 그의 그림자는 박근혜 곁에 남았다.

최순실의 남편 정윤회가 박근혜의 정계 입문 때부터 등장했다.

그는 ‘비서실장’으로 불렸다.

2002년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을 때도 자리를 지켰다.

박근혜가 한나라당 대표가 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곁을 떠난 것으로 알려진 2004년 6월

2006년 5월에는 국회 입법보조원으로 등록했다.

박근혜의 정치 입문 초기에 정윤회와 여러 차례 직접 만났던 한 전직 는 “최순실은 박근혜가 장충동에 살던 시절부터 말동무로 지낸온 것으로 들었다”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박근혜 의원실의 보좌진을 구성한 것도 정윤회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박근혜는 2007년 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정윤회의 등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1998년 보궐선거에서) 대구 달성구에 국회의원으로 처음 나왔을 때다.

개인적으로 캠프를 차려 선거를 치르려니 전혀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상대 후보가 안기부 기조실장으로 실세의 기세가 등등했고 위협적인 상대였다.

…그런 상황에서 정윤회씨가 돕겠다 해서 순수하게 도운 것이다.

그게 인연이 돼 국회의원 됐을 때 입법보조원으로…, 이후 당 대표 때 그만뒀다.

”   2007년 7월 이명박 캠프에선 ‘박근혜의 국회 보좌진이 최태민과 친인척 관계다’, ‘박근혜 캠프의 홍윤식 전문가네트워크 위원장과 정윤회가 밀접한 관계다’ 등의 의혹을 제기했다.

전자에 대해선 해당 보좌진이 즉각 부인했고, 후자에 대해선 홍윤식이 최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지금까지 정윤회를 만나본 적도 없고 얼굴도 모른다”고 말했다.

   박근혜는 최태민에 대해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힘들었을 때 흔들리지 않고 바로설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분”이라고 말한다.

각종 의혹에 대해선 “의혹은 많이 제기됐지만 실체가 없었다.

한가지라도 사실이었다면 내가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겠나”라며 일축한다.

   그러나 박근혜가 다시 대통령에 도전하는 오늘도 정윤회의 이름은 여의도를 떠돈다.

친박 내부에선 친박끼리 “내가 모르는 보고서가 올라간다”며, 정윤회 라인을 의심한다.

반대파는 박근혜나 친박의 결정이 이상하다 싶어서 또 정윤회 라인을 의심한다.

<한겨레>는 각종 의혹에 대한 해명을 듣고자 6월부터 다양한 경로로 정윤회와의 접촉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2007년 경선 시기부터 많은 들이 그를 만나고자 했지만 성공한 바 없다.

김외현 oscar@hani.co.kr   ■ 최태민 수사 자료? 1980년 전두환 지시로 수사…2007년 한나라 경선서 흘러나와최태민 1990년 유일한 인터뷰 “이름 7개씩이나? 터무니 없다”  최태민최태민(사진)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육영재단 분규 때다.

당시 기사를 보면, 최태민의 나이가 69살, 71살, 78살로 들쭉날쭉이다.

그때까지도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는 방증이다.

<월간중앙>(1993년 11월호)은 ‘박근혜-최태민, 20년 커넥션’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재규가 항소이유보충서에서 10·26 사태의 한 동기로 최태민·박근혜씨의 관계를 거론하고, 그의 비행을 알고 있는 몇몇 사람이 ‘정리’를 권유하자 전두환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은 이학봉 수사국장에게 특별조사를 지시했다.

지금까지 그의 신상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대부분 당시 수사 결과에 근거한 것”이라며 최태민의 전력과 박근혜와의 관계를 다뤘다.

이 ‘수사자료’는 공개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가, 2007년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물위로 떠오른다.

<신동아>는 2007년 6월 “중앙정보부가 작성해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최태민 관련 수사보고서인 ‘최태민 관련 자료’를 최근 입수했다”며 그 내용을 상세히 전했다.

같은달 27일에는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경선 후보였던 이해찬의 누리집 게시판에 ‘안기부’라는 이용자가 신동아 자료와 같은 제목의 피디에프(PDF) 파일을 올려놓았다.

 최태민의 유일한 인터뷰인 <가정조선> 1990년 10월호에서, 그는 수사자료에 대해 “1977년에 작성된 수사기록이다.

수사 결과 내가 기소된 뒤 기소중지되거나 불기소 등으로 처리됐던 게 아니라 아예 그냥 없었던 일로 처리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6번의 결혼, 7개의 이름’에 대해서도 그는, “이름이 7개씩이나 된다는 것은 터무니 없다”며, 해방 뒤 38선 이남으로 오면서 호적 정리가 되지 않아 이름과 결혼 기록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했다.

최태민 쪽은 1977년 9월 본인이 위출혈로 병원에 입원중일 때 사실상 병실에 감금된 상태에서 수사가 진행돼, 기록도 강압에 의해 작성됐다고 주장했다.

김외현   최근 트위터에서는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박근혜와 최태민 관련 미국 정부 측의 자료 공주의 남자 최태민. 박정희교의 광신도 조갑제가 월간 조선에 기고한 글을 보면...당시 박정희는 선우연 공보비서관에게▲최태민을 거세하고▲구국봉사단 관련단체를 모두 해체하고▲최씨가 향후 박근혜와 청와대 주변에 얼씬도 못하게 하라는 세가지 지시를 내리자박 대표는 낙담한 표정으로 눈물을 지었다고 한다  최태민 딸 순실씨, 강남에 시가 160억

200억대 부동산  최태민의 딸 최순실의 서울 강남구 신사동 건물 <한겨레> 자료사진2012 대선주자 탐구|박근혜③ 최태민 일가의 재산최태민은 1994년 5월1일 서울 강남의 영동세브란스병원에서 심근경색으로 숨을 거둔다.

이 소식은 같은해 7월이 돼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에 실린 두 문장짜리 부음 기사엔 “최씨는 최근까지 근혜씨의 생활비를 대주며 재산관리인 행세를 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는 대목이 있다.

최태민이 박근혜의 재산관리인이라면, 그가 생전에 굴렸던 자산은 박근혜의 재산인 셈이다.

그 사실 여부는 차차하더라도, 박근혜를 처음 만날 때까지만 해도 이렇다 할 재산이 없었던 최태민의 딸들이 지금은 자산가가 된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최태민의 딸들은 강남 일대에 수백억원대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

최태민의 5번째 딸로 육영재단 분란에 등장하는 최순실은 32살 때인 1988년 7월 2명과 공동명의로 신사동에 661㎡(200평) 규모의 땅을 사들였다.

1988년 12월과 1996년 7월에는 공동지분을 차례로 사들여 단독소유주가 됐다.

2003년 7월엔 이 땅에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의 건물(ㅁ빌딩)을 지어 지금까지 보유하고 있다.

주변 부동산중개업자들은 이 건물 시가가 160억

200억원대라고 말한다.

   남편 정윤회씨 운영했던 얀슨 입주직원들 “빌딩 관리가 주업무”엘리베이터 안서는 등 출입통제  ㅁ빌딩 5층엔 최순실의 남편이자 한때 박근혜의 비서실장이었던 정윤회가 대표이사인 ㈜얀슨이 입주해있다.

얀슨은 1994년 커피 및 커피기계의 수입·판매, 승마장업, 체육관련용품 수입·판매, 휴게실업 등의 업종을 신고했지만 2001년에 삭제했고, 곧이어 교육디지털콘텐츠 제작·유통·판매·컨설팅, 도서 출판 및 판매 등을 신고했다가 2003년 삭제했다.

같은 해 의류 및 가구의 수입·판매도 신고했으나 삭제했다.

2003년 말엔 국외 이주자 모집·알선, 이주신고 대행, 이주 상담 및 안내 등의 업종을 신고해 오늘에 이른다.

  1993년부터 얀슨의 감사로 등기돼, 현재 얀슨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문아무개(50)씨는 “이것저것 시도해봤지만 다 잘 안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정윤회는 이밖에 1994년

96년 기간엔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얀슨’이라는 제과점을, 1995년

99년 기간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풍운’이라는 일식당을 운영하기도 했다.

  얀슨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얀슨의 주업무는 ㅁ빌딩의 관리”라고 말했다.

이 건물에 입주한 업체 관계자들도 “입주 계약은 얀슨과 맺었다.

건물 관련 사항은 얀슨과 논의한다”고 했다.

한 입주자에게 정윤회의 사진을 보여주자, “얀슨 사장님이 맞다.

가끔 오신다”고 했다.

부동산중개업자에게 물어보니 4층의 경우 보증금 3000만원, 월세 250만원에 입주할 이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접근성이 좋은 1·2층이 임대료가 더 높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얀슨 사무실엔 책상이 4개 있었지만 만날 수 있는 직원은 3명이었다.

서무 담당자의 책상 위에는 건물주 최순실 앞으로 온 각종 요금납부통지서가 눈에 띄었다.

직원들은 언론 접촉을 극도로 꺼렸고, 정윤회나 최순실에 대한 질문엔 “여기 안 나오신다.

직접 찾아가서 물어보라”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사무실도 평소엔 얀슨이 있는 5층에 엘리베이터가 서지 않고 계단 쪽 출입문도 잠가놓아 들어갈 수 없었다.

직원들이 드나들기 위해 열어둘 때만 출입이 가능했다.

정윤회·최순실 부부가 살았던 6층은 시종 접근이 불가능했다.

“이사 갔다”는 말도 있지만, 그 사실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최순실은 이보다 앞서 29살이던 1985년 9월 ㅁ빌딩 맞은편의 대지 357.8㎡(108평)를 임아무개씨와 공동매입해 지상 4층 건물을 지었고, 1987년 5월 공동지분을사들여 단독소유주가 됐다.

박근혜가 이사장으로 있던 육영재단 어린이회관에서 최태민-최순실 부녀의 재단 개입 논란으로 직원들의 반발이 한창이던 시기에 땅도 사고 건물도 지은 셈이다.

   이 건물 3층엔 최순실이 운영하던 ㅊ유치원이 있었다.

최순실이 유치원과 별도로 운영했다는 종합학원, 연구소 등도 이 건물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은 이 건물을 2008년 2월 ㄷ저축은행에 팔았다.

당시 이 건물은 50억원을 상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순실은 이밖에 1995년 정윤회와 공동으로 서울 역삼동의 대지 354.1㎡(107평)을 사들여 지하 1층 지상 3층의 다가구용 단독주택(19세대)을 지었다.

전형적인 ‘원룸촌’에 위치한 이 건물은 4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이들 부부가 배아무개씨에게 이 건물을 매각한 시점(2002년 1월)은, 정윤회가 자신이 대표로 있던 ㈜얀슨의 대표이사직을 최순실에게 넘긴 때와 일치한다.

다음달 박근혜는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한국미래연합이라는 정당을 창당해 일시적으로 독자노선을 걷는데, 정윤회는 이때 비서실장을 맡았다.

   <월간조선>(2007년 7월호)은 최순실이 27살 때인 1983년 서울 역삼동의 대지 149.1㎡(45평)을 산 적도 있다고 전했다.

잡지는 최태민의 여섯째 딸도 29살 때 남편 서아무개씨 등 3명과 함께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581㎡(176평)을 사들여 지분 4분의 1을 소유했다고 보도했다.

남편 서씨의 지분은 4분의 2였다.

이들 부부가 1991년 9월 이곳에 지은 지하 4층 지상 9층 규모의 건물은 당시 최소 150억원대였다고 했다.

이밖에 최태민의 넷째 딸도 남편과 공동명의로 서울 강남구 도곡동 빌라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들의 어머니 임아무개씨가 전 남편과 사이에 낳은 딸도 1988년 8월 남편과 공동명의로 서울 서초동에 아파트를 샀다가 2004년 12월 매각했다고 했다.

이들 형제와는 달리, 임씨가 아닌 다른 부인과 사이에서 낳은 자녀들은 “그다지 넉넉한 형편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박근혜 처음 만날 당시의 최태민전세 전전하는 등 형편 어려워수사자료엔 비리혐의만 44건 기록 최태민의 사위 정윤회씨. 파월 보상금 6500명전사자 유족에게 주지 않고 정윤회가 모두 스위스 계좌로 빼돌림.박정희는 월남전 파병장병 6,500명의 피맺힌 목숨값 60억불을 미국으로부터 받아챙겼고,박정희 사후 박근혜 3남매가 스위스 은행에 확인하러 다녀옴.방원철장군, 차국찬 목사, 조웅 목사 증언       최태민이 생전에 살았던 거주지와 그 자녀들의 거주지가 박근혜의 자택과 가까운 곳에 있는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박근혜의 삼성동 집에서 500m 떨어진 곳에 최태민이 살았고, 정윤회·최순실 부부가 소유했던 역삼동 건물도 멀지 않은 곳이었다.

박근혜는 <월간조선>의 서면 인터뷰에서 “집이 거기였다는 것도 처음 듣는 얘기지만, 성심껏 답변을 드리면서도 ‘왜 이렇게까지 나오는지’를 생각하니 여간 불유쾌한 게 아니다”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다른 형제들에 대해서는 알려진 내용이 거의 없고, 과거 최순실 쪽은 각종 부동산 매입 자금에 대해 “유치원 운영이 잘 돼서 강남에 부동산을 보유하게 됐다.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유치원의 성공적인 경영이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운영 개입 논란과 무관한지도 규명될 필요가 있다.

당시 최순실은 어린이회관이 주최하는 대회에서 자신이 운영하는 유치원과 학원의 성적이 좋지 않으면 전화를 걸어 경위를 따질 만큼 신경을 썼다는 보도도 있다.

이 과정에서 부당 해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박근혜는 2007년 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최태민씨나 최순실씨가 결코 육영재단 일에 관여한 적이 없다”며 정면 부인했다.

  만약 최순실의 부동산 보유 규모가 유치원 경영 성과를 뛰어넘는 규모라면, 20

30대였던 최순실의 나이를 감안할 때 아버지 최태민으로부터 상당 규모의 자산을 물려받았을 거란 추측이 가능하다.

최태민은 박근혜를 만나는 시점까지 결코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다.

최태민에 대한 ‘수사자료’를 보면, 그는 1973년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의 한 건물 3층(16평)에 전세로 입주해 “불교·기독교·천도교를 복합해 창업한 영세계의 교리인 영혼합일법을 주장하는” ‘교주’ 행각을 벌였고, 이듬해에도 동대문구 제기동의 한 가정집에 전세로 들어가 같은 일을 했다.

1974년 8월엔 서대문구 북아현동의 한 건물 2층(36평)에 입주했지만, 박근혜와의 첫 만남(1975년 3월) 전까지 더이상의 기록은 없다.

 수사자료는 최태민이 박근혜를 앞세워 구국여성봉사단, 새마음봉사단 등을 통해 부당하게 치부에 나섰다고 밝히고 있다.

수사자료가 적시하는 최태민의 비리는, 횡령이 14건(2억2135만6000원), 사기가 1건(200만원), 변호사법 위반이 11건(9420만원, 토지 14만1330평), 권력형 비리 13건, 이권개입 2건, 융자간여 3건 등 모두 44건이다.

적힌 혐의는 아주 구체적이다.

봉사단 공금을 빼돌려 차명 계좌로 세탁한 뒤 승용차를 사는가 하면, 중앙정보부 복직, 공화당 국회의원 공천, 대령의 장성 진급 등을 빌미로 금품을 받기도 했고, 서울시 발주 공사를 수주하게 해준다며 돈을 뜯어내기도 했다는 것이다.

 박근혜와 최태민의 유족은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각 당사자를 심문한 뒤 검찰에 수사를 하라고 할 정도로 관심을 가졌던 사안인데, 혐의가 사실로 밝혀졌다면 진작에 처벌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후에 법적 처분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최태민은 결백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외현 oscar@hani.co.kr  최태민의 재산 축적 과정에 대한 의혹에서 항상 등장하는 인물은 박근혜 전 위원장이다.

'한겨레'가 언급한 최태민 수사자료는 최태민이 박근혜를 앞세워 구국여성봉사단, 새마음봉사단 등을 통해 부당하게 치부에 나섰다는 내용을 담았다.

수사자료에는 최태민이 횡령, 사기, 변호사법 위반, 권려형 비리, 이권개입, 융자간여 등 각종 비리혐의에 대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다.

   최태민 목사 일가 숨겨진 3천억대 부동산 발견<단독>‘박근혜 차명재산’ 의혹 새로운 국면…이명박 후보도 수사 요청 2012.12.16  18:57:40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검증의 ‘아킬레스건’으로 불리는 최태민 목사 일가의 수천억대 숨겨진 재산이 새롭게 발견돼, 2007년에 이어 ‘박근혜 차명재산’ 의혹이 다시 불거질 전망이다.

‘go발뉴스’가 최태민 목사의 5녀 순실씨 명의의 등기부등본과 토지대장을 확인한 결과, 최씨는 지난 2008년 경기도 하남시 신장동 254-1 일대 300평 규모의 대형 음식점 부지를 매입, 현재까지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지 부동산 관계자는 “미사리 카페촌 도로변 땅인 만큼 40

50억원대는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최태민 목사의 딸 순실씨의 등기부등본과 토지대장을 확인한 결과,최씨는 경기도 하남시 신장동 254-1 일대 300평 규모의 대형 음식점 부지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300평 규모의 대형 음식점 부지 전경. ⓒ go발뉴스    최순실씨는 지난 95년에는 강남구 역삼동 689-25 일대 2개 필지도 사들여 다세대 주택 19세대를 지어 2002년 모두 매각한 것으로 ‘go발뉴스’ 취재결과 새롭게 밝혀졌다.

 ▲ 최순실씨는 지난 95년에는 강남구 역삼동 689-25 일대2개 필지도 사들여 다세대 주택 19세대를 지어 2002년 모두 매각했다.

ⓒ go발뉴스 지금까지 최씨 명의의 부동산은 강원도 평창군 일대 토지 23만431㎡(6만9705평, 10필지)와 200억대를 호가하는 신사동 640-1 소재 7층 빌딩 등 2개 만이 알려져 있었다.

취재팀이 최순실씨의 주소지인 신사동 640-1 소재 빌딩을 방문한 결과, 최순실씨 가족은 최근까지 6-7층을 가정집으로 이용해왔으며,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다.

     ▲ 최순실씨의 주소지인 신사동 640-1 소재 빌딩. 최순실씨 가족은최근까지 6-7층을 가정집으로 이용해 왔으며,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다.

ⓒ go발뉴스 ‘go발뉴스’ 현지 확인결과, 최순실씨는 인근 신사동 639-11 번지 소재 빌딩도 지난 85년부터 소유하고 있었으나, 지난 2008년 2월 동부상호저축은행 측에 매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들은 백억원대에서 거래가 이뤄졌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최순실씨는 인근 신사동 639-11 번지 소재 빌딩도 지난 85년부터 소유하고 있었으나,지난 2008년 2월 동부상호저축은행 측에 매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 다음 로드뷰  최순실씨는 박근혜 후보와 ‘구국봉사단’ 활동 등을 하며 오랜 협력관계를 유지해온 최태민 목사의 5녀로, 특히 남편인 정윤회씨의 경우 박근혜 후보의 보좌관과 비서실장을 지냈으며, 이른바 ‘강남팀’으로 알려진 박근혜 비선팀의 총책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최순실씨 외에도 그동안 언론의 주목을 받지 않았던 나머지 자매들 역시 부동산 큰 손으로 ‘go발뉴스’ 취재 결과 새롭게 확인됐다.

최태민씨의 6녀 최순천씨는 살고 있는 한남동 고급 아파트 외에, 강남 노른자위 땅에 1천억원대 빌딩을 소유하고 있었다.

최순천씨 가족이 소유하고 있는 빌딩은 청담4거리 119-3 일대 지상 9층 지하 4층 건물로 1층에 씨티은행이 입주해있다.

평당 2억원에 달하는 땅값과 빌딩 가격을 포함해 1천3백억원대 가치를 지닌 것으로 추산된다.

 ▲ 최순천씨 가족이 소유하고 있는 빌딩은 청담4거리 119-3 일대 지상 9층 지하 4층 건물로 1층에 씨티은행이 입주해 있다.

ⓒ go발뉴스   최순천씨 가족은 이밖에도 서초구 반포동 50-7 번지 일대 4층짜리 상가건물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최태민 목사의 6녀 최순천씨 가족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서초구 반포동 50-7 번지 일대 4층짜리 상가건물. ⓒ go발뉴스  이 상가 건물 역시 위치가 좋아 백억원대를 호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태민씨의 4녀 최순득씨 역시 도곡동 고급 빌라 외에도 삼성동 45-12 소재 7층 빌딩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층에 국민은행이 들어서 있는 이 건물은 땅값만 평당 1억원이 훌쩍 넘는 곳으로 역시 1천억원대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 최태민 목사의 4녀 최순득씨는 1층에 국민은행이 들어서 있는삼성동 45-12 소재 7층 빌딩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 go발뉴스   최태민 일가의 천문학적 재산증식과 관련해,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검증위원회는 “최태민이 1975년 박근혜를 처음 만날 당시 서울 불광동 쓰러져 가는 단칸방에 전화도 없이 살았다”고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명박 후보측은 당시 검증위원회의 조사결과를 근거로 ‘박근혜 후보의 차명재산’ 의혹을 제기하며, 검찰 수사를 요구하는 등 고강도 공세를 펼친 바 있다.

이에 대해, 최순실씨는 “당시 부모님은 서소문 근처 2층 양옥집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부동산은 내가 유치원을 운영해 모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번 ‘go발뉴스’ 취재결과, 최순실씨의 숨겨진 재산이 추가로 밝혀졌고, 2007년 당시 조명되지 않은 나머지 자매들 앞으로도 각각 천억원대 부동산이 있는 것으로 드러난 만큼, ‘박근혜 차명재산’ 의혹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ps.박근혜와 김종필은 남이 아니다.

인척이다.

헌데, 김영삼의 아들 김현철이가 박근혜 사생아 문제를 거론했지만, 김종필도 대놓고 포문을 열었다.

김종필은 선데이 저널 최근호에서 '최태민이 자식까지 있는 애가 뭔 정치를 한다는거냐?" 고 한 것이다.

  요즘은 더 구체적인 얘기가 나온다.

박 전 위원장이 낳은 자식이 올해 30살 (1983?)이며 일본에 살며..  박근혜는 그후 98년 4월에 치러진 대구 달서군 보궐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한다.

그런데 월간조선 과 가진 인터뷰에서 밝힌 정계입문 동기가 "아버지가 일으켜세운 나라가 IMF사태로 무너지는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가 없어서 결심하게 됐다"고 비장하게 말한  박근헤 그러자 가 "그런데 왜 IMF를불러들인 한나라당에서 일하려 하느냐" 고 묻자 "IMF로 무너진 나라를 위해 IMF를 불러들여 나라를 무너지게 만든정당에서 일하겠다는.." 좀 이상한 논리를 .. 'IMF는 대통령과 보좌관 잘못이다.

'라고 하면서..  김종필이 말했던 박근혜와 최태민 사이의 숨겨논 자식에 대한 기사가 삭제된 상태지만 PDF파일로 저장되어있네요. 선데이저널미국판 840호입니다.

      국감장에서 안철수하고 자신이 함께 나온 기사를 읽고 있다.

...   [잊혀진 특보] 박근혜가 남자에게 빠져 정신을 못차리니 구해달라!동생 박근령이 노태우에게 '충격적인 탄원서'를 보내...서울의소리 ㅣ 기사 2012/05/28 [09:43]1990년 11월23일 동아일보 17면에는 놀라운 기사가 하나 실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차녀 박근령이 당시 집권중이던 노태우 대통령 내외에게 탄원서를 보낸 것인데, 그 내용인즉 '언니 박근혜가 남자에게 최면이라도 걸린듯 빠져서 정신을 못차리고 있으니 구해달라'는 내용이었다.

 ▲ 1990년 11월 30일 동아일보 실제 기사 ⓒ 동아일보해당 기사에 따르면 박근령-지만 남매는 1990년 8월 '노태우 대통령 각하 내외분께 보내는 호소문을 청와대 민정수석실로 보냈고,그 내용인즉 '사기꾼 崔太敏(최태민)을 엄벌해崔(최)씨에게 포위당해있는 언니 朴槿惠(박근혜)를 전직 국가원수 유족의 보호차원에서 구출해달라. 누나와 최씨와의 관계를 끊게 해달라' 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그야말로 박근혜가 남자에게 빠져서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데 우리 남매 힘으로는 안되니 대통령이라도 나서서 구제해달라는 창피한 내용이었다.

박근령 친필 '남자에 빠진 언니 좀 구제..' 탄원서로 알려진 (노태우)대통령 각하 내외분께 드리는 호소문 이라는 A4용지 12매 분량의 문서는 다음과 같이 시중에 알려져 있다.

▲ 박근령-지만 남매가 '우리누이 살려달라' 노태우에게 보낸 호소문 ⓒ 오마이뉴스 참고로 최태민 목사는 1912년 출생하여 1994년 사망하였다.

사망 당시까지 최태민 목사가 '박근혜를 등에 업고 부정축재를 하였다' '좋아 지낸다'는 소문이 끊임없었고, 월간조선 7월호의 보도에 따르면 1955년 5월 30일 다섯 번째 부인인 林모씨와의 결혼을 마지막으로 모두 5명의 부인과 사이에 3남 6녀를 두었다.

어떤 이유에서 인지 잘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실제 70년대 박근혜는 아버지 박정희에 의해 서울시장 양택식의 아들과 약혼을 하였던 바가 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가 결국 결혼하지 못했다.

박근혜-최태민 목사 사이에 '아이가 미국에 가있다'는 등의온갖 루머가 2007년 박근혜-이명박 대선 레이스 당시에 크게 불거졌었다,당시 경선주자 였던 이명박도 '최태민 비리 왜 감싸냐,박근혜 일가 부동산 최태민 차명재산 아니냐?박근혜 불가론'을 펴 박을 큰 곤경에 빠뜨렸던 바가 있다.

  최태민과 박근혜 에비후보의 관계에 대해서 한나라당 내에서도 우려의 시선이 높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습니다.

 즉 이는 박근혜 후보가 도덕적 순결주의를 표방하며 이명박 전 시장에 대한 네거티브를 주도하며 본선경쟁력의 우위를 장담하고 있지만 역사적 팩트에 근거한 그와 관련된 어떤 사실 하나만 범여권이 물고 늘어져도 한방에 날아갈 메카톤급 사안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름 7개를 갖고 흰 피가 흐른다’ ‘계룡산에서 도를 닦았다’ ‘최면술로 박근혜를 유도했다’. 고려말 ‘요승’ 신돈을 연상시키는 다양한 구설. 박근혜 전 대표와 목사 최태민(1994년 사망)에 얽힌 의혹이다.

.심지어 당내 인사조차 “박 전 대표는 최태민 문제 때문에 절대 대권주자가 될 수 없다”고 단언하는 사람까지 있다고 합니다.

( 발행-뉴스메이커 금년 2월호에서)  ■ 최태민은 어떻게 박근혜에게 접근했을까? 안수도 받지 않은 사이비 목사인 최씨(당시 62세)는 지난 74년 육영수여사 사망 직후 자신을 목사로 소개하며 고 박정희 대통령의 장녀 근혜씨(당시 23세)에게 접근했다 최씨는 "꿈에 육여사가 나타나 근혜씨를 도와주라 는 얘기를 들었다"며 근혜씨에게 접근한 후 어머니를 잃은 근혜씨를 위로하며 신임을 얻었다.

 ■ 최태민과 박근헤가 국정을 농당했다는 말은 무엇인가요? 최태민 목사가 1978년 박 전 대표를 구국여성봉사단 명예총재로 추대한 뒤 당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박 전 대표를 배경으로 공직 인선에 개입하는 등 국정에 깊숙이 개입했다.

 김재규는 그의 공판기록에서 최태민은 박근혜를 등에 업고 기업에 돈을 요구하고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등 국정논단 수준이 도를 넘자 이를 박 대통령에게 직언했다고 한다.

김재규는 만약 박근혜와 최태민의 국정농단을 방치하면 민심을 잃고 있는 유신정권에 큰 치명타가 될 것이기에 박 대통령에게 중앙정보부가 수집한 내용을 그대로 보고했다는 것이다.

 최태민은 박정희 서거후 1980년 보안사에 의해 강원도로 쫓겨갔지만 박근혜가 전두환에게 간정해 다시 그녀 주변으로 복귀했다 합니다.

월간조선 7월호는 육영재단. 정수장학회. 영남대학 등 박근혜 후보가 비리의혹을 받고 있는 모든 일에 최태민이가 관계하고 있다고 보도 했다.

박근혜는 자신은 최목사와 무관한 관계임을 주장하지만 지금도 최목사의 사위가 지근거리에서 박근혜를 보좌하고 그의 딸이 재산을 관리한다는 보도가 있는 등 그와의 정신적 관계를 청산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한나라당의 한 중진의원은 “박 전 대표는 지금도 최태민 인척을 총애한다”며 “이는 대권주자로서 문제 있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최태민은 박근헤를 업고 자신이 관리하던 육영재단을 전횡햇다.

이로 인해 90년 육영재단 운영을 둘러싼 분규가 확대되고 박근혜는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동생과 법정다툼까지 간 결과 근영씨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일선에서 은퇴했다.

최씨도 이때 함께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 박정희가 최태민과 박근헤를 동시에 친국, " 그년(박근혜)    이 흐놈(최태민)한테 홀려-박근혜. 최태민-박정희 시해 원인제공  박근혜 1998.11.01 월간중앙 권말부록1 김계원의 최초 인터뷰 “나보고 갑자기 최태민이를 아는가”하고 물으셨다.

김재규한테 들었다는 소리는 안 하고 ‘예, 압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 놈이 말이야, 근혜를 홀려 가지고 내가 혼을 좀 내줬지.’하셨다.

경상도 사투리로 도깨비한테 홀린다는 표현을 쓰지 않나. 대통령은 ‘그년(근혜)이 그놈한테 홀려 도무지 시집 가려고 해야 말이지. 그러니 내가 어떻게 재혼할 수 있겠나’하셨다.

” 육영수 여사가 죽은 뒤 사실상의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대통령의 딸이 관계된 스캔들이라 쉬쉬하며 공개하지 않아 베일에 가려진 사건이다.

그러나 박근혜가 총재로 있는 새마음봉사단과 관계된 비리가 적지 않아 치안본부와 민정수석실과 중앙정보부 등이 직접 조사에 나서 비리사실을 대통령에게 보고까지 했다.

 박대통령은 유부남인 최목사와 20대 중반이던 박을 나란히 세우고 직접 최목사 비리에 대해 증거자료들까지 내밀면서 친국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박근혜가 극구 최태민을 변호하고 나서자 박대통령이 관계당사자들을 모두 불러 몸소 친국을 하는 헤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김계원 전 비서실장은 인터뷰에서 “김재규는 공개된 법정에서는 밝히지 않았지만, ‘10·26 혁명을 일으킨 간접적인 동기가 박정희의 문란한 사생활과 가족, 즉 자식들 문제 때문이었다’고 주장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도 “김재규는 큰영애인 박근혜가 관련된 구국여성봉사단의 부정과 행패를 보고 분개했다고 해요. 이런 일들이 ‘대통령이나 박근혜 자신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고 조사를 시켰다는 겁니다.

조사결과 로비나 이권 개입 등 여러 가지 비행이 드러나자 박 대통령에 게 그대로 보고했는데 대통령은 ‘정보부에서 이런 일까지 하느냐’면서 몹시 불쾌해 했다고 해요. 박정희는 영부인 육 여사가 돌아가신 다음부터 자식들을 애지중지하고 철저히 감싸고 돌았다고 해요. 구국여성봉사단 문제만 해도 그래요. 당시 항간에서 말이 많던 최태민이 총재, 박근혜가 명예총재를 맡고 있었는데 김재규가 구국여성봉사단의 문제점을 보고한 후 박근혜가 총재, 최태민이 명예총재가 됐습니다.

박정희가 최태민의 실권을 뺏는답시고 두 사람의 자리를 맞바꾼 거지요. 김재규는 자기가 괜히 조사를 해서 오히려 ‘개악(改惡)’이 됐다면서 뒷조사한 걸 후회했대요.”라며 김재규 전 정보부장은 구국여성봉사단의 비리 외에도 박근혜에게 불만이 많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와 함께 “박근혜가 지방 행사에 참석하면 할머니들이 전부 무릎을 꿇고 절을 했어요. 김재규는 ‘아무리 대통령 딸이라도 그렇지, 국모는 아니지 않습니까. 국민이 땅바닥에 엎드려 절을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고 제게 되묻기도 했어요. 촌로들이 그렇게 절을 하면 주위 사람들이 그걸 말려야 하는데 오히려 부추겼다는 겁니다.

 김재규가 특히 이런 사건들 때문에 박근혜의 미움을 받았다.

박근혜씨가 당시 김재규의 경질을 바라고 박대통령에게 이를 조르고 있었다.

김재규는 항소심 공판에서 최태민 사건이 박정희 시해의 동기를 제공했다고 진술했다.

  ■ 전두환의 합동수사본부에 체포된 최태민을 박근혜가 간청해서 석방 전두환본부장의 지시로 최태민을 긴급체포하여 조사를 벌이던 중 당시 수사관이었던 이학봉 중령은 박근혜씨가 최목사 구속 이후 전본부장에게 찾아와서 석방해 달라고 간청하는 바람에 서울을 떠난 조건으로 풀려났다고 증언 한바가 있다.

따라서 당시 권력핵심을 중심으로는 최태민 목사와 박근혜씨의 새마음 봉사단이 상당한 골치거리로 남아 있었고 문제시 되었다    애리조나州 세도나에 최태민 목사 아들이라고 소문난 28-29 살 정도의 남성이 살고있다.

그곳에 최태민 목사가 운영하던 영생교 라는 교회 신도들이 몇 가구 살고있고, 그 교인들 입을 통해 소문이 났는데 최태민 목사의 아들이 맞다고 한다.

교인들 입을 통해서 나온 이야기이니까최태민씨가 상당히 여색을 좋아해 많은 여성들을 편렵했으므로  어느 여성하고 사이에 태어난 아이인지 알수 없고, 아직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박근혜-최태민 목사 사이에 출생한 아이, 미국 애리조나州에 살고있다는데…?http://usinsideworld.com2007년 07월20일 15:58분 28초사이먼 Choi의 전체기사  (서울-로스앤젤레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최태민 목사 사이에 한명의 자식이 탄생했다” 는 소리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아무런 증거없이 나돌고 있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박근혜 의원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쾌한 이야기이며 화가 치밀어 오르는 이야기일수 있다.

그래서 박의원은 얼마 전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천벌을 받을 것이다” 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천벌’ 소리 때문에 약간의 말썽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천벌’ 발언에 대해 박근혜 의원은 19일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검증 청문회에서도 상당히 불편한 심정을 토로했다.

박 전 대표는 ‘천벌’ 발언에 언급 “가만히 보면 ‘최목사가 이런 저런 비리가 있어 나쁜 사람이다’ 하고 공격해 놓은 다음에 저 한테 연결해 내가 잘못한 것으로 저를 공격한다” 고 말했다.

그는 또 “정말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얘기-즉 ‘나에게 애가 있다’는 등의 얘기도 하는데 아무리 네거티브를 해도 ‘천벌’을 발을 일 아니냐? 그래서 그런 말을 한 것” 이라고 설명 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표는 “만약에 아이가 있다는 근거가 있다면 그 애를 데리고 와도 좋다.

천륜을 끊는 일인데-- 이렇게 까지 한다는 것은 한탄 스러운 일이다.

DNA 검사를 해줄 용의도 있다” 고 말했다.

“박근혜 의원에게 최태민 목사와의 사이에 아이가 있다” 는 말이 나돈 것은 지난 1990년 10월 경 서울 능동에 있는 어린이 재단 분규 사건 때 “최태민과 그의 딸 최순실은 어린이 재단에서 손을 떼고 떠나라” 하는 반대파들의 입을 통해 흘러다녔다.

그후 박 전 대표가 대구 달성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할 때부터 반대측 후보자들의 악선전 루머로 등장한 것이 상당히 널리 번지다가 사라졌다.

그러다가 이번 선거 판에 다시 등장했으며 마침내 그가 “천벌을 받을 소리”라고 흥분하여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지난 17일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한 ‘김대중 X-파일’의 저자이며 한국 언론계에서 처음으로 최태민 목사의 정체에 대하여 2차례 10회를 연재 보도한 국제저널리스트 손충무씨가 TV 특별 대담을 통해 “최태민 박근혜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소리는 상당히 오래 전에 나았지만 증거가 없는 루머이며 음해” 라고 말했다.

손충무씨(www.usinsideworld.com 편집인 겸 발행인) 는 미국 굴지의 TIME WARNER CABLE ? TV, KOREAN CHANNEL -24-TV 개국 10주년 특집방송 특별 손님으로 초대 되어 특별 출연 인터뷰했다.

사회 겸 대담자는 한국 KBS 아나운서 출신 원로 방송인 나영욱씨였다.

이날 특별프로는  ‘이명박 ?박근혜 X-파일의 정체?’였다.

손씨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정보기관이 만들어 놓은 이명박에 대한 X-파일은 모두 11개쯤 될 것이며 박근혜 것은 7-8개 정도가 될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의 X-파일 중에 가장 아픈 것은 재산이 너무 많다는 것이며 박근혜 것은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 정수장학회, 강제 수탈에 관한 것이 될 것” 이라고 말했다.

그때 사회자가 “박근혜 의원과 최태민 목사 사이에 아이가 있으며 그 아이가 애리조나州 세도나 라는 도시에 살고있다고 하는데 그런 소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고 질문 했다.

이에 대해 손씨는 “나도 그런 소리를 들었다.

특히 최근에 이곳 LA지역에서 그런 소문이 나돌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며칠 전에 모 인터넷 신문이 보도한 모양인데 나 자신은 아직 그 기사를 보지 못했다.

그런데 문제의 기사를 취재한 언론인과 만났다.

그리고 문제의 질문을 하기에 그런 것은 잘못된 루머라고 말해 주었다”    사회자가 다시 “그러면 최태민 박근혜 관계를 오랫동안 추적 취재해온 손 발행인께서는 박근혜씨의 사생아 문제는 없다는 결론을 갖고 계시다는 말씀인가요?” 하고 질문했다.

손씨는 그 질문에 대해 “우선 증거가 없습니다.

그리고 박근혜가 임신을 했다면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배가 불러 올 것이며 몸이 다소 뚱뚱해질 것입니다.

박근혜가 최태민 목사를 만나는 동안 박근혜씨의 몸이 뚱뚱하거나 배가 부른 적이 없었습니다.

또 아이를 출산했다면 최소한 1-2주일 병원에 있어야 할 것 입니다.

병원에 입원했다면 아무리 비밀로 취급한다고 해도 몇 사람은 알 것이며 오래 전에 소문이 났겠지요”사회자가 다시 “그러면 애리조나州 세도나에 최태민 목사 아들이라고 소문난 28-29 살 정도의 남성은 어떤 인물인가요”이에 대해 손씨는 “저도 오래 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소스를 통해 내사할 결과 그곳에 최태민 목사가 운영하던 영생교 라는 교회 신도들이 몇 가구 살고있더군요. 그 교인들 입을 통해 소문이 났는데 최태민 목사의 아들인 것은 맞는 것 같더군요. 교인들 입을 통해서 나온 이야기이니까 ?그러나 최태민 박근혜 사이의 아이는 아닙니다.

최태민씨가 상당히 여색을 좋아해 많은 여성들을 편렵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여성하고 사이에 태어난 아이라고 한다면 모르겠습니다 ? 박근혜 의원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 입니다” 라고 말했다.

한편 이 프로는 약 2만명 이상이 시청했다고 방송사 측에서 후에 이야기 했다.

(본사는 TV 방송국에 한 카피를 협조, 요청했으며 입수되는대로 독자들에게 동영상을 제공할 것이다)ㅁwww.usinsideworld.com 서울지사- 손충권 논설위원, LA 사이먼 Choi 특파원 2007년 07월20일 15:58분 28초 사이먼 Choi의 전체기사  위 기사를 구지 아까운 시간을 투자해서 올린 이유는..박근혜 변명 만들어 주려고 한 것이 아니다.

애리조나주에 현재 최태민의 아이가 살고 있다면,채동욱 전검찰총장과 같이 친자 유전자검사로 확인해 달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 둘 켜켜히 당신의 인생 뒤 안 길에 쌓인 의혹을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박근혜하면, 최태민이고 혼외자가 떠오르는 데..최태민이야 어쩔 수 없다해도 언제까지 혼외자의 문제를 달고 다닐 수 없지 않은가?부정선거에 혼외자 문제까지.. 어니언스가 따로 없다.

▣ 김재규의 박근혜에 대한 육성 증언   "박근혜가 지방 행사에 참석하면 할머니들이 전부 무릎을 꿇고 절을 했어요."   "아무리 대통령 딸이라해도 국모는 아니잖습니까?"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2531938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 그리고 김재규의 박정희 저격의 배경까지 숨은 뒷이야기를 볼 수 있는 글이다.

 출처: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1614549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2531988  지난 11일 김문수 경기지사가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참여 발표를 앞두고 YS를 예방했다.

이 자리에서 김 지사는 “지금은 토끼가 사자를 잡는 격”이라며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토로했다.

그러자 YS는 “(박근혜 의원은) 사자가 아니다.

아주 칠푼이다.

사자가 못 돼”라고 혹평하고는 “(경선이 막상 시작되면) 박근혜는 별것 아닐 것”이라며 박근혜 무시 발언을 쏟아냈다.

평소 독설가로 통하는 YS라고는 하지만 이날 박근혜를 향해 날린 ‘독설’은 예사롭지 않다.

극도의 불신과 그로인한 깊은 반감이 없지 않고서야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를 이렇게 표현할 수는 없다.

어쩌면 YS는 박근혜의 ‘부도덕’ 건을 잘 알고 있고 그리고 그것이 바로 ‘사생아’ 건인지도 모르겠다.

YS측이 박근혜의 ‘부도덕’과 관련된 확증자료를 과연 가지고 있을지...만약 박근혜의 사생아 건이 ‘팩트’라면, 즉 실지로 박근혜의 사생아가 있다면 YS가 관련 근거자료를 손에 넣었을 가능성은 커 보인다.

▲ 김영삼 전 대통령과 차남 현철 씨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그렇다면 문제는 ‘팩트’의 실존 여부인데 이에 대해 김현철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세 차례에 걸쳐 거듭거듭 확인해 줬다.

심지어 김현철은 ‘팩트’여서 ‘정리’, 즉 어떻게 손을 쓸 수도 없다는 얘기까지 했다.

앞에서 소개한 내용 중 ‘팩트’ 부분을 재인용해 보면, - YS는 박 전 위원장이 부도덕하다는 걸 어떤 경로로 파악하고 계신가?“많이 알고 계시다.

그것도 팩트(fact·사실)를 알고 계시다.

”- 팩트라면 검증이 돼야 하는데 가능한가?“아주 상당히 엄청난 충격을 줄 것으로 본다.

”- 확인이 된다는 말인가?“그렇다.

박 전 위원장 주변에서도 그런 것들을 정리하고자 하는데 정리할 수 없다.

팩트인데 어떻게 정리가 되나.” 완전히 ‘뻥’이 아니라면 YS측이 관련 자료를 손에 쥐지 않고서야 이렇게 단언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 이들 두 사람의 전력을 감안하면 이들이 관련자료를 입수했을 가능성은 크다고 하겠다.

YS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 대통령을 지냈고, 그의 아들 김현철은 ‘소통령’으로 불렸다.

YS는 대통령 시절 안기부 등 권력기관을 속속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따라서 YS는 자기 자신을 포함해 중앙정보부(->안기부->국정원)가 수집한 일체의 ‘인비(人秘)자료’를 다 봤을 걸로 생각된다.

 <월간중앙> 기사에 따르면, ‘박근혜 사생아’의 나이는 ‘올해 30살 정도’이며 일본에 살고 있다고 한다.

‘사생아’의 나이를 역으로 환산하면 출생 시기는 1980년 전후, 즉 ‘10.26사건’ 전후로 추정된다.

‘5공의 실세로 청와대 고위직을 지낸 한 원로 정치인’의 말대로 박근혜가 청와대 시절 출산을 했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청와대 시절 박근혜는 육 여사를 대신해 영부인 노릇을 하며 대외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시기는 ‘청와대를 나온 이후’라는 얘기가 된다.

‘10.26사건’ 후 박근혜-근영-지만 등 3남매는 청와대에서 나와 부친의 사저인 ‘신당동 집’으로 거처를 옮겨 칩거에 들어갔다.

이후 박근혜는 육영재단, 정수장학회 운영에 관여하였으나 1998년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기 전까지는 그의 행적에 대해 자세히 알려져 있지는 않다.

    김현철 "박근혜 사생활, 엄청난 충격 줄 것"<월간중앙> "사생아 얘기 나돌아", 박근혜측 "법적대응하겠다"2012-07-16 16:43:58   YS 차남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이 박근혜 전 위원장에 대해 "이회창 씨의 아들 병역문제보다 훨씬 큰 논란거리"가 있다며 사생활 의혹을 제기하고 나서 박근혜 캠프측이 법적대응을 하기로 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월간중앙> 7월호에 따르면 김 전 부소장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한 뒤, 구체적 내용에 대해선 "사생활 부분이라고 뭉뚱그리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아버지 YS가 "많이 알고 계시다.

그것도 팩트를 알고 계시다"며, YS가 박 전 위원장을 "부도덕한 인물로 본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무튼 오는 대선에서 야당이 많이 들고 나올 것"이라며 "일반 국민이 알아야 하는 것이니까. 그건 숨긴다고 덮고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니다.

확실하게 끝을 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박 전 위원장 본인도 2007년 경선 당시 한마디 했다.

'DNA 검사를 받겠다'고 말이다.

그 이상의 얘기들이 더 나온다.

나중에 그게 밝혀지면 그때는 이미 늦지 않나?"라며 "아주 상당히 엄청난 충격을 줄 것으로 본다"고 말해, 자신이 제기한 사생활 문제가 2007년 경선때 한나라당 후보위원회가 질문을 던졌던 '사생아 논란'임을 시사했다.

2007년 7월19일 후보청문회에서 '자녀가 있다'는 시중의 소문에 대해 묻자, 박 후보는 "내가 애가 있다는 말이 떠도는데 DNA검사라도 받겠다"며 "그래야 그 자식의 부모를 위한 길"이라고 답한 바 있다.

김 전 소장은 '확인이 된다는 말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

박 전 위원장 주변에서도 그런 것들을 정리하고자 하는 데 정리할 수 없다.

팩트인데 어떻게 정리가 되나?"라고 장담했다.

<월간중앙>은 이에 대해 "요즘은 더 구체적인 얘기가 나온다.

박 전 위원장이 낳은 자식이 올해 30살 정도이며 일본에 살며, 야당에서도 접촉을 꾀한다는 설명까지 붙는다"고 정가의 풍문을 전하기도 했다.

이같은 의혹 제기에 친박진영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5년전 경선때 박근혜 캠프 검증대변인을 맡았던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은 "박 전 위원장에게 다 물어봤다"며 "그건 황당무계한 망상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5공 실세로 청와대 고위직을 지낸 원로정치인 역시 "그럴 가능성은 제로"라며 "박 위원장이 1975년부터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면서 아이를 가졌으면 누가 봐도 금방 표시가 났을 것이고 공식활동을 중단했어야 하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며 "5공 시절 그랬다면 청와대에 있던 내가 몰랐을 리 없다"고 말했다.

박근혜 캠프에서는 법적대응도 추진한다는 방침으로 알려졌다.

캠프 관계자는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김현철 씨의 발언 수위가 정치적 허용범위를 넘어서는 만큼 캠프에서 법적 대응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박근혜, 왜 YS는 고소하지 않을까시사INLive | 주진우·김은지 | 2012.09.26 03:17     박근혜 후보가 고소·고발을 남발한 것만도 아니다.

아량을 보일 때도 있었다.

사안보다는 대상이 중요하다.

최근 불거진 사생아 논란이 대표적이다.

YS의 아들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 < 월간중앙 > 7월호를 통해 박근혜 후보의 사생아 문제를 제기했다.

"아버지가 많이 알고 계시다.

그것도 팩트를 알고 계시다.

아무튼 오는 대선에서 야당이 많이 들고 나올 것이다.

일반 국민이 알아야 하는 것이니까… 박 전 위원장 본인도 2007년 경선 당시 한마디했다.

'DNA 검사를 받겠다'고 말이다(2007년 7월19일 한나라당 대선 후보청문회에서 자녀가 있다는 시중의 소문에 대해 묻자, 박 후보는 "내가 애가 있다는 말이 떠도는데 DNA 검사라도 받겠다.

그래야 그 자식의 부모를 위한 길이다"라고 답한 바 있다). 그 이상의 얘기들이 더 나온다.

나중에 그게 밝혀지면 그때는 이미 늦지 않나? 아주 상당히 엄청난 충격을 줄 것으로 본다.

박 전 위원장 주변에서도 그런 것들을 정리하고자 하는데 정리할 수 없다.

팩트인데 어떻게 정리가 되나?"ⓒ노컷뉴스 박근혜 후보가 8월22일 김영삼 전 대통령(가운데)을 예방했다.

왼쪽이 김현철씨.김현철 전 부소장의 발언은 박 후보 사생아 논란에서 가장 정도가 심했다.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는 '악의적이다'라며 즉각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나섰다.

대변인 논평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소송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서울 상도동 김영삼 전 대통령 자택을 찾은 김문수 지사가 "지금은 토끼가 사자를 잡는 격이다"라고 하자 김 전 대통령은 "(박근혜는) 사자가 아니다.

아주 칠푼이다"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한 바 있다.

YS는 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했던 당시의 상황을 언급하면서 "박정희가 나를 국회의원에서 제명 안 했으면 죽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비난했다.

박 후보 그리고 후보 진영의 성격상 고소는 불가피해 보였다.

하지만 YS에 대해서는 일절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 한 의원은 "YS는 대통령을 지냈고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정치력과 표가 있는데 어떻게 고소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지난 8월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된 박근혜 후보는 김영삼 전 대통령 자택을 방문했다.

박근혜 후보는 "나라가 한 번 더 도약해 국민이 행복하려면 대통합이 필요하다.

대통합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려는데, 잘 지켜봐달라"고 당부했다.

두 사람 모두 표정이 밝지 않았다.

이 자리에는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이 배석했다.

주진우·김은지 /    정윤회 아닌 최순실 비선권력 몸통설 ‘솔솔’ 왜?[뉴스분석] 최순실, 박근혜 대통령과 깊은 사이 정황 나오며 관계 부각돼 : 2014-12-04  21:05:45   노출 : 2014.12.05  10:35:02이재진  비선권력의 국정개입 의혹이 정윤회씨의 전 부인 '최순실 몸통론'으로 확산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관계가 집중 부각되면서 실질적인 비선권력의 핵심은 최순실씨가 아니냐는 의혹이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씨의 관계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인의 관계로 보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최순실씨는 최태민 목사와 그의 다섯번째 부인인 임모씨 사이에 태어났고, 최 목사의 다섯 번 째 딸이다.

최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986년경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어린이회관 전통 예절교육장인 '근화원' 업무를 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태민 목사의 일가가 육영재단 업무에 관여하기 시작한 때는 지난 1982년 박근혜 대통령이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태민 목사는 최순실씨가 업무를 봤다는 어린이회관 '근화원'을 설립했다.

당시 근화원에서는 최태민 목사가 어린이재단 직원들과 예배를 봤던 것으로 전해졌다.

최순실씨가 근화원 업무에 관여하기 시작하자 1987년 육영재단 직원들은 최씨의 재단운영 관여에 반대하며 집단행동을 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07년 월간조선과 인터뷰에서 '육영재단 이사장 재직시 최태민 목사의 다섯째 딸이 어린이회관 내 근화원 원장으로 내정되었던 적이 있다고 하는데 사실이냐'는 질문을 받고 "내정한 사실이 전혀 없다.

왜 이런 말이 나오는지 짐작 가는 것조차 없다"고 답한 적이 있다.

또한 ‘최태민 목사는 박 후보(박근혜 대통령)께서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하시면서부터 재단 운영에 관여했다는 게 당시 직원들의 주장이다.

이 부분에 대한 후보님의 생각은 무엇이냐’라는 질문에도 "관여라는 게 무슨 뜻인지 되묻고 싶다.

무슨 명목으로든 돈이 지출되었을리도 결재를 했을 리도 없고, 육영재단과 관련하여 무슨 업무를 맡은 적도 없는데 도대체 관여라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며 관계를 부인했다.

최순실씨는 상당한 자산가로 알려져 있다.

최씨는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소지 200여평 지상 7층 규모 빌딩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건물은 정윤회씨가 대표이사로 있었던 (주)얀슨이 입주해 있던 건물이다.

월간조선에 따르면 최씨는 1985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 대지 108평을 매입했고, 1986년 부지에 지상 4층 규모의 빌딩을 건립했다.

또한 1995년 정윤회씨와 공동명의로 서울 강남구 역삼동 소재 대지 100평을 매입해 지하 1층 지상 지상 3층 규모의 다가구용 단독주택을 신축했다.

당시 최씨의 강남일대 부동산은 100억대에 이른다.

최씨의 재산은 육영재단 업무를 보면서 이권개입으로 부당하게 취득해 형성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후보 측은 '정윤회 최순실 부부의 재산과 박 후보가 무슨 상관이냐'고 한 바 있다.

 ▲ 4일자 고발뉴스 보도 내용 최씨가 언론에 존재를 드러낸 것은 지난 2006년 서울시장 선거 유세 현장에서 박 대통령이 피습을 당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박 대통령을 극진히 간호한 것이 알려지면서다.

그리고 한동안 종적을 감췄지만 최근 전 남편인 정윤회씨가 비선권력으로 떠오르면서 도마에 오르고 있다.

 한겨레는 '정씨 부부'가 자신의 딸의 국가대표 선발전 특혜 시비가 일자 승마협회 감사에 나서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원치 않은 내용의 감사 보고서가 나왔고 청와대 지시에 따라 감사 조사에 참여한 문화체육관광부 간부 2명이 좌천성 인사를 당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보고를 받은 직후 당시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청와대 집무실로 불러 수첩을 꺼낸 뒤, 문체부 간부 2명의 이름을 직접 부르며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라고 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박 대통령이 '정씨 부부'의 영향을 받고 문체부 간부 2명을 좌천시킨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승마협회 관계자가 "정윤회씨 부인의 치맛바람이 워낙 셌는데"라고 한 대목도 최순실씨의 영향력을 짐작케 한다.

정윤회씨는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승마협회 감사 영향력 의혹에 대해 "그건 확인해보시면 되겠지. 저는 전혀 그런 일이 없다"고 했지만 '부인이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라고 질문하자 "그건 모르겠다"며 부인을 하지 않았다.

또한 최순실씨가 지난해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식 당일 입었던 한복을 직접 골라 청와대에 반입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최고권력자인 박 대통령과 대면을 할 정도로 긴밀한 사이가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4일 고발뉴스와 인터뷰한 서울시내 호텔에 위치한 A한복점 전문점 관계자는 "지난 대통령 취임식 직전 최순실씨측으로부터 주문을 받고 340만원짜리한복을 제작해 납품했으며 요즘도 대통령의 한복을 지어 납품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처음에는 최순실씨가 직접 한복 색깔과 디자인까지 챙겼던 것 같은데 요즘은 잘 안 나오시고 대신 비서실을 통해 일이 진행된다"고 말했다.

최순실씨가 정씨와 지난 7월 이혼하면서 '이혼 조정문에 결혼기간 있었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지 않고 서로 비난하지 않기'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는 있었던 것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정씨가 재산분할 및 위자료를 청구하지 않은 것도 의아한 일이다.

일각에서 위장이혼설도 제기되고 있다.

두 사람이 연을 끊어서라도 박 대통령의 비선권력이라고 의심하는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최영일 시사평론가는 최순실 비선권력 몸통 의혹에 대해 "최태민 일가하고는 자기를 도와줘 의지했지만 깊은 관계는 아니고 현재 관계가 없다고 부인했는데 자꾸 정씨 부부를 감싸는 정황이 나오고 최씨가 급부상되는 모습"이라며 "최씨가 청와대에 수시로 드나들고 청와대에 자리까지 마련해놓고 있다는 설까지 나온다.

청와대는 이번 사태를 문건 유출 국기문란행위 처벌로 끝내고 싶겠지만 비선권력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이런 루머들이 나도는 등 자발적으로 터진 산탄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0442     박정희시대 국민의 자유와 박근혜의 자유를 아십니까?  최태민과 박근혜 박근혜는 어머니 육영수가 서거한 다음 해인 1975년에 위로, 격려편지와 전화를 준 최태민이라는 목사를 알게 된다 1975년 5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구국여성봉사단 총재로 있는 최태민이 사이비 목사이며 자칭 태자마마라고 하고 사기횡령 등의 비위사실이 있는데다 여자들과의 상상도 못할 추문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청와대 민정수석 박승규 비서관조차 박정희에게 말을 못할 정도로 문제 삼는 사람이 없어서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더니 ‘정보부에서 그런 것까지 하냐?’면서 반문하길래 대통령의 태도를 보고 놀랐으며, 대통령은 큰딸인 박근혜에게 그 사실을 알렸으나 근혜가 그렇지 않다고 부인하였다 그후 박정희는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1977년 9월 12일 밤 공보비서관 선우연에게 "최태민을 거세하고, 최태민과 관련된 구국봉사단도 해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그러나 박근혜의 요청으로 손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박근혜가 총재가 되고, 최태민은 명예총재가되어 상상도 못할 부정부패는 계속되었다 전두환의 신군부에서 최태민의 활동을 중지 시켰으나 1982년 박근혜는 육영재단 이사장에 취임하였고, 최태민도 육영재단에 합류하였다.

이후 박근혜와 최태민은 함께 1989년 육영수를 추모하는 단체인 근화봉사단을 조직하였고, 박정희와 육영수를 추모하는 월간 신문인 근화보도 발행하였다.

육영재단의 간부는 1987년 9월 2일 어린이회관 노조원들이 외부세력 물러가라며 1주일 동안 농성하였던 것은 최태민을 겨냥한 것이라고 한다.

또 '특별한 직책도 없으면서 육영재단 운영을 좌우해온 최태민을 싫어하면서도 박근혜와 막역한 관계 때문에 어느 누구도 기를 펴지 못하였다'고 밝혔다(인용: 박정희 공보비서관 선우연 인터뷰기사와 김재규 재판진술 -중-) 1978년 구국여성봉사단 총재 자격으로 도열한 시민들의 환호를 받고 있는 현 대통령후보 박근혜 이명박정권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후보에게 묻습니다이유야 어떻던 박정희시대 군사독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국민들은 고 박정희와 육영수 여사의 죽음에 대하여 당신에게 연민을 느끼는게 현실입니다 그러나 국가권력의 핵심인 청와대와 중앙정보부 마저 최태민 관련 당신의 주장에 무력화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원칙과 약속을 지키고 과거 논의로 국론을 분열시키지 말고 미래로 가야만 대한민국이 발전을 할 수 있다"고 당신은 늘 말합니다 그런 당신이 국민 봉사단으로 위장하여 국민들이 상상도 할 수 없을 권력형비리를 저지른 최태민의 공범자이거나 방조자란  생각은 들지 않습니까? 지금도 백범 김구 독립군과 안중근 독립군을 테러리스트라 하고,유관순 열사를 깡패라 칭하고,독도는 일본땅이고,위안부는 창녀라고 주장하며, 일제 식민지 시대는 일본이 대한민국을 근대화시켰으니 일본에 고마워 해야 한다는 뉴라이트를 우리 아이들의 희망이고 바른 역사이자 대한민국의 발전이며 함께 하겠다는 당신의 모습은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 박근혜가 아니라 대한민국 여자들에게 수치스러운 일본 총리후보 박근혜로 보이는 것은  왜 일까요?  1. 신원사항○ 인적 사항원적 :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읍 서동 34   본적 : 경남 양산군 웅상면 삼호리 532주소 : 서울 강남구 역삼동 689-25  직업 : 전 대한구국봉사단 총재  성명: 최태민, 76세(1912. 5. 5생)○ 사용 성명최도원(선녀가 지었다는 아명)   최상훈(월남후 개명, 경찰, 육군 및 해병대 비공식문관 재직시 사용)최봉수(부산 거주시)  최퇴운(법명, 77. 3 .9 이전 호적상 성명)  공해남(천주교 중림동 성당에서 영세시 개명)방  민(계시에 의해 개명하였다고 자칭, 영혼합일법 등 사이비 행각시 사용)최태민(75. 4 대한구국봉사단 취임계기 개명 77. 3. 9이후 호적상 성명)○ 학·경력 및 성향27. 3 황해도 재령보통학교 졸업(최도원)42-45. 8 황해도경 고등과장 서 포의 추천으로 황해도경 순사45. 9 월남  46. 3 강원도경(최상훈)47. 3 대전경찰서 경사47. 4 인천경찰서 경위(사찰주임)49. 6 육군 제1사단 헌병대 비공식 문관50. 7 해병대 비공식 문관51. 3 사단법인 대한비누공업협회 이사장53. 초 대한행정신문사 부사장(부산)53. 9 환도로 단신 상경54. 초 6번째 처 김제복(63세)와 결혼, 동거자가 여자관계로 인한 가정불화로 경남 동래군 금화사로 도피, 삭발 승려(최퇴운)55. 4 부산으로 내려와, 현재처 임선이(5번째 처)와 재결합, 경남양산군 개운중학교장(비인가 교)56. 12 대한농민회 조사부 차장57. 2 국민회 경남도본부 사업부장58. 2 서울로 이사59. 6 전국불교청년회 부회장60. 5 한국복지사회 건설회장(임의단체)63. 5 공화당 중앙위원65. 7 대한근민회장(임의단체)65. 1 천일창고(주)회장  ※65. 2. 15 서울지검에서 유가증권 위조혐의로 입건되자 도피(약4년)  69. 초 천주교 중림성단에서 영세(공해남)71. 10 서울영등포구 방화동 592-7 호국사에서 불교를 신앙타가 불교. 기독교. 천도교를 복합, 창업한 영세계의 교리인 영혼합일법을 주장, 사이비종교 행각 ※ 독경 및 안찰기도로 환자치유73. 5 대정시 현대예식장에서 영세계 칙사를 자칭, 영혼합일법 설교73. 11 서울 서대문구 3대현동 67-5 대현빌딩 3층(16평)에 전세입주, 동일방법으로 원자경 자칭, 사이비행각74. 5 서울 동대문구 제기2동 122-16 박경순집에 전세입주, 동일방법으로 칙사, 태자마마 등 자칭, 사이비행각74. 8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154-5 선승규 소유 빌딩 2층(약36평)에 이전, 동일방법으로 사이비행각75. 3 박근혜에게 “꿈에 육여사가 나타나 근혜양을 도와주라하였다”는 요지의 서신을 발송 끝에 동 3. 6 박근혜와의 접근을 성취75. 4. 10 대한구국선교단 총재 취임계기, 사이비 교파인 예장종합총회장 조현종 목사로부터 목사안수(최태민)75. 4. 29 대한구국선교단 총재76. 12. 10 대한구국선교단으로 개칭, 총재77. 10. 5 총재직사퇴 2. 비리 사실○ 최태민은 영혼합일법(일종의 최면술)등 사이비종교 행각으로 전전하던 75. 2말경 박근혜에게 3차에 걸쳐 꿈에 “육여사가 나타나 근혜를 도와주라”는 현몽이 있었다는 내용의 서신을 발송하여- 75. 3. 6 박근혜와 접견, 당시 교계의 난맥상을 개탄하면서 구국선교를 역설 끝에- 75. 4. 29 박근혜의 후원으로 자신의 심복및 사이비종교인 중심으로 대한구국선교단(76. 12. 10 구국봉사단명, 79. 5. 1 새마음 봉사단으로 각 개칭)을 설립하고 총재(박근혜는 명예총재)로 취임하여 구국선교를 빙자, 매사 박근혜명의를 매명하여 이권개입 및 불투명한 거액금품징수 등 이권단체화로 치부하는 한편- 복잡한 여자관계와 반대파에 대한 무자비한 보복 등으로 원성이 고조되자○ 잠시 근신을 하는 듯 하면서 박근혜의 동정을 관망, 심복들로 하여금 자신이 아니면 봉사단 운영을 할 수 없는 양 박근혜를 현혹케하여 막후에서 봉사단을 관장하여 오다가- 78. 2. 22 봉사단을 사단법인으로 개편발족, 박근혜가 총재로 취임이래 형식상 모든 업무는 박근혜가 관장하였으나 실직적으로 비공식 고문격인 최태민이 전권을 위임받아 행정부, 정계, 경제계, 언론계 등 각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 78. 7. 14 운영비 조달목적으로 대한통운(주)회장 최원석등 10인의 실업인을 운영위원으로 위촉, 운영위원회를 발족한 이래 계속 증원하여 79.10에는 국내 재벌급 기업인을 거의 망라한 60명선에 육박, 1인당 입단 찬조비 2,000

5,000만원에다 매월 200만원씩 운영자금을 조달- 이와 별도로 장학기금, 새시대지 운영기금 및 기타행사 지원비등 명목으로 수천만원씩 개별적으로 갹출(운영위 멤버가 아닌 기업체에 대하여도 박근혜를 매명, 동일명목으로 수천만원씩 갹출)- 위 운영위원 등으로부터 갹출한 막대한 자금과 행정기관의 지원을 바탕으로 업무기능이 유사한 정부육성단체인 부인회, 주부클럽, 어머니회 등의 조직을 조식하는 등 무리한 조직확대와 사업추진으로 각종마찰과 부작용을 야기하면서 각 시·도·리·동에 이르기까지 조직을 확대, 300만명 단원을 확보- 이 기간조직을 주축으로 대학·고·중·국교·유치원 및 약사회, 의사회 등 10개 참가단체와 각 직장봉사대 등을 망라 새마음 인구 2,000만명을 호언하면서 충·효·예·도 국민도의 앙양과 사회봉사사업을 표방, 각종사업을 추진하여 왔으나● 무리한 행사준비로 예산낭비와 부담과중● 기능과 역할에 상응한 사업비를 자체조달보다는 각 기업체 및 행정지원 등 대외의존으로 민관폐 막심● 최태민등 봉사단 간부의 각종 부조리 자행 및 월권행위 등으로 참여인물이나 관민 등으로부터 공히 내면적인 호응을 받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국민적 빈축을 초래하여 왔으며● 최태민은 그간 롯데, 신라, 도큐호텔 및 국인대 한반점 등을 무대로 매일같이 정.관.재.언론계등 각계 중진인사와 접촉, 초호화판으로 행세하면서 박근혜를 빙자한 이권개입, 금품수수등으로 치부 및 엽색행각으로 물의를 야기하여 오다가 은신중에도 박근혜와는 은밀히 연락을 유지, 후견인역을 계속 자행3. 구체적비리내용가. 횡령 : 14건 221,356,000 원○ 76. 8.16 구국봉사단대지 및 건물구입시 주택채권 465만원 상당을 매수, 자기집에 은닉○ 76. 1. 29 봉사단 공금에서 처의 주택구입자금으로 1,000만원 지출○ 76. 6. 14

77. 8 .29  봉사단 공금에서 자녀 등록금 등 도합 238만원 지출○ 76. 8. 14

77. 4. 15 봉사단 공금에서 김OO(비서 및 정부)에게 3회에 걸쳐 생활비 등으로 220만원 지출○ 76. 7

77. 6. 25 봉사단 공금에서 김OO(부단장 및 정부)에게 2회에 걸쳐 생활비 등으로 460만원을 가옥 구 입비 등으로 지출○ 76. 9. 7-77. 1초 수 주OO(경리담당)에게 5회에 걸쳐 봉사단 공금에서 무상공여○ 봉사단 장부상 3,000만원 지출기장없이 경노병원 장부에 전액 입금된양 허위기장한후 77. 4. 27

8. 27 경노병원 경리과장인 次女 崔OO과 공모, 4회에 걸쳐 병원자금 424만원 인출○ 77. 2. 17

77. 6. 7 3회에 걸쳐 국민은행 관악지점에 봉사단6,000만원으로 처임OO 명의3구좌를 정기예금하여 은닉○ 76.11.

77.8.25 서울농협 불광지소에 奉仕團公金 합계 155,176,000원을 2

3회에 회전분산한후 가명 이송자, 임부전, 金기옥 명의26구좌로 정기예금, 통지예금, 정기적금하여 은닉○ 75. 봉사단전총재처OO에게 주택매수 대금 100만원 지출○ 76.3.2 봉사단수위 임OO에게 생활보조비로 200만원 지출○ 76.11.처박OO에게 2회에 걸쳐 감자 사업자금으로 1,000만원 지출○ 77.3.14 장녀최OO에게 개인아파트 분양자금조로 200만원 지출○ 77.5 처박OO 명의로 브리사 승용차 1대 구입, 대금 300만원 지출 나. 사기 : 1건 2,000,000원○ 75.5 중순 총재 비서실장 임OO에게 불하해주기로 약속한 장수광산규석이 63년 김OO에게 불하된 사실을 뒤늦게 알고 임OO에게 줄 명목으로 봉사단이 기증받은 것 같이 가장하고 김OO으로부터 하급하여 규석2만 트럭분 취득 다.

변호사법 위반 : 11건 94,200,000원, 토지 141,330평 등○ 76. 6 중순 성O교회 원OO목사에게 서울시장에게 청탁하여 서울성북구 석관동 시유지 50평을 동 교회 부지로 불하해주고 그 대가로 동 부지 싯가 1할 상당액을 받기로 약속, 불하실패○ 75. 5 중순 총재비서실장 임OO에게 국세청장에게 청탁하여 전북 장수군소재 장수광산 규석을 불하받아 준다는 명목으로 300만원 받기로 약속, 그중 170만원 받음○ 75. 9. 15 경 전 2군 감찰참모 이OO대령의 처 김OO에게 국방부장관에게 청탁하여 이OO을 준장으로 진급시켜준다고 하고 그 대가로 200만원 받음○ 76. 6. 4 한신공영 사장 金OO에게 서울시장에게 청탁하여 서울시 비상유류 저장탱크 공사를 맡게 해 준다고 하고 그 대가로 5,000만원 받음○ 76. 11. 5 李OO에게 원고 李OO, 피고 현대건설간 강남구 압구정동 소재 모래채취로 인한 손해배상소송에 관하여 현대건설과 5

6억원에 화해시켜 준다고 하고 그 대가로 동 화해금으로 토지매수대 2억원, 생활비 300만원, 소송경비 등을 제한 잔액을 받기로 약속○ 76. 7. 21 위 이OO에게 강남구청장에게 청탁하여 등기부상에만 동인 명의로 있고 지적이 없는 강남구 압구정동 잡종지 268,661평의 지적을 찾아준다고하고 그 대가로 동 잡종지의 반을 기증 받기로 약속○ 76. 10 초순 한국소방기구 공업협동조합 이사장 이OO에게 내무부 차관에게 청탁하여 소방기구 신규제조 허가를 억제해주고 동 기구 검정권을 동조합에 주도록 해준다는 조건으로 200만원 받음○ 76. 10. 22 경 중앙건어물(주) 대표 정OO에게 서울시장에게 청탁하여 동사에 농수산물 도매시장 개설허가를 내어주고 허가 후에는 신규허가 억제와 유사매매 행위를 단속하도록 해 준다는 대가로 76.12.22

77.4.22 5회에 걸쳐 1,700 만원 받음○ 77. 2. 21 金OO에게 경기도로부터 안양종축장(토지 70,788평, 건물 36동)을 봉사단명의로 수의계약, 매수하여 준다는 댓가로 동 토지 7,000평과 동 지상건물 36동을 받기로 약속○ 76. 8 중순 전 중앙정보부 강원지부장 김OO 처 박OO에게 남편을 중앙정보부에 복직시켜준다고 하고 그 대가로 金OO부터 2차에 걸쳐 150만원 받음○ 76. 10초순 최OO에게 울산시장에게 청탁하여 울산시 동천강 병영교 밑 하천 토사채취 허가를 봉사단 부산지부 명의로 받아주겠다고 하고 허가되면 2,000만원 받기로 약속라. 비리 : 13건○ 75. 9. 27 한신공영 사장 김OO에게 대한화재보험협회 이사장 오OO에게 청탁하여 동협회 청사 신축공사를 맡게 해 준다고 하고 그 댓가로 7,000만원 받음※ 1,000만원은 받은 증거 없음○ 76. 1. 17 이OO의 처 이OO으로 부터 1948년 이후 李OO와 변호사 김OO 사이에 소유권 다툼이 있는 서대문구 연희동 산 2번지 임야 15만평에 대한 기증서를 받고 봉사단이 동 임야의 소유권을 취득하면 동인에게 1억 5,000만원을 지급하기로 약속○ 76. 2. 8 경 안O산업 대표 안OO에게 동 공장을 봉사단십자군 군복(180만착분) 납품공장으로 지정해주고 동 대가로 200만원 받음○ 76. 4. 16 동O공영(주) 대표 백OO에게 동인이 부산-제주 간을 운항키 위해 일본삼정조선에서 건조한 ‘하버크레프트’고속여객선을 도입할시 승객유치관계로 대한항공이 반대하면 무마해주겠다고 하고 그대가로 십자군 군복 2만착분 대금 1억원의 기증서를 받음○ 76. 9 초순 서O관광(주) 대표 진OO에게 대덕, 연기 지역구 차기 공화당 국회의원 입후보자 공천을 받게 해준다고 하고 76.9.17

12.10 5회에 걸쳐 500만원 받음○ 77. 3. 24 흥아타이아(주) 사장 강OO에게 구국봉사단 부산지부장에 임명해준다고 하고 그 댓가로 200만원 받음○ 77. 5. 8 경 동대문시장 상인 방OO 외 8명에게 박근혜 명예총장 대구 새마음갖기발대식 참석시(5.11) 비행기에 동승시켜 준다는 조건으로 전세비 부담명목으로 100만원 받음○ 78. 2. 6 동원OO 개발 (주) 상무 이OO로부터 경로한방병원 운영비를 빙자, 1,000만원 (보수) 받음○ 78. 2. 8 (주)미원 사장 한OO으로부터 임OO을 통하여 3,000만원 받음○ 78. 4 경 당시 봉사단자문위원 한OO (파리제과 점주)에게 자금조달을 강요, 동녀가 기업체로부터 갹출한 200만원 (보수 2매) 받음○ 78. 4 경 봉사단운영비를 빙자, 구로공단 이사장 崔OO을 통하여 평안섬유 (주)에서 500만원, 협진양행에서 300만원 계 800만원 받음○ 78. 5. 6 봉사단운영비를 빙자, 요업개발(주)에서 500만원, 국제보세 (주)에서 500만원, 대협에서 500만원 게 1,500만원 받음○ 78. 7 경 대한통운 (주) 회장 최석원을 봉사단운영위원으로 발탁 하는 조건으로 금품을 받고 임명 후 수시로 100만원씩 받음마. 이권 개입○ 78. 12. 30 부산시가 시행하는 서면지하상가 건설공사 (공사비 58억원) 업자지명에 개입, 공사능력이 없는 대현실업(주)(성사장)에 지정토록 하기위해 박근혜비서관 김OO으로 하여금 박근혜의 의도임을 빙자, 부산시 기획관리국 및 건설국장에게 압력 작용하여 동사를 가인가자로 선정○ 79. 1. 21 진주시장에게 진주시 도시계획에 저촉된 신흥고무공장에 대하여 구획 재조정, 해제를 요구하는 서신발송바. 융자 알선○ 78. 3월 동산유지 (주) 에 대한 은행융자 알선 등 후원조건으로 동사 명예회장에 취임, 동년 10월 서울신탁은행 등을 작용, 10여억원의 융자알선하고 거액받음○ 79. 1. 31 김OO를 통하여 金OO재무부장관에게 한성기업(대표:오OO) 등 2개 업체에 각 5억원씩 은행융자를 청탁하여 제일은행에서 융자하기로 내락○ 78. 1 초순 부실 금융실업인 조치대상자 이OO이 경영하는 (주)아시아중석에 은행융자 알선 및 해외여행 제한조치 해제주선을 조건으로 동사 회장직 취임을 내락하고 78.12.18 박근혜비서관 김OO으로 하여금 재무부 등 관계관에게 청탁, 이OO의 서독 헬텔사와의 중석가공 합작회사 설립추진을 위해 동인의 출국을 주선  사. 여자 관계(1) OOO (27세, 전 총재 비서)○ 72. 12 하순

76.4 초순 영등포 옥호불상 여관, 세검정 옥수장, 신촌 신성여관 및 대전시내 에덴여관 등에서 전후 10회 성교○ 76. 1 초

4 초 총재실에서 주 3회 정도 포옹, 키스 등 애무행위(2) OOO(45세, 전 부총재)○ 75. 8-75. 12. 10 총재실에서 수시 키스, 포옹 및 애무하고○ 동녀의 손으로 음경을 만지게 하는 등 음란행위(3) OOO (31세, 전 부단장)○ 76. 4

77. 5 중순 세검동 옥수장 (방갈로), 신촌 신성여관 등에서 3회에 걸쳐 性交코져 하였으나 성기 불발기로 실패○ 동 기간 중 총재실에서 수시 키스, 포옹 등 애무 및 음란행위(4) OOO (41세, 전 여군국장)○ 76. 3. 26 영등포 금성호텔 302호실에서 성교하려다 성기 불발기로 음경을 빨게 하는 등 음란행위(5) OOO (40세, 전 OO병원 간호과장)○ 76. 8. 6

76. 9 중순 총재실에서 4회에 걸쳐 키스, 포옹하고 음경을 빨게하는 등 음란행위(6) OOO (24세, 전 OO병원 경리담당)○ 76. 8초순-77. 6하순 총재실에서 4회에 걸쳐 키스, 포옹, 유방 및 음부를 만지면서 주OO에게 강제로 음경을 을 빨게하는 등 음란행위(7) OOO (42세, 전 사무총장, 과부)최태민으로부터 검찰에 피소된 자신의 사기사건 선처조건등으로 스스로 몸을 바치라는 요구를 받고 이를 거절할 경우 해임 등 보복이 두려워○ 78. 5. 14 사직공원옆 옥호미상 호텔에서 최태민의 성기 불발기로 尹OO의 국부와 유방을 빨면서 손가락을 국부에 삽입, 음란행위(8) OOO (35세, 사무총장, 유부녀)○ 봉사단 기획관리실장 및 건물관리실장실에서 중요 업무회의를 가장, 문을 잠그고 음란행위 또는 호텔에서 통정※ 최OO는 정조제공으로 최태민의 총애를 받게 되었으며 도산에 직면한 남편 김OO의 경영업체 (OO교역)를 최태민의 지원으로 회복(9) OOO (51세, 조직국장 과부)○ 조직국장실 또는 호텔 등에서 통정설(10) OOO (25세, 전 비서, 사직 후 결혼)○ 총재실 또는 호텔 등에서 통정설(11) OOO (42세, 제2 대 서울지구,시단장)○ 남편 갑OO (국회의원) 공천문제로 접근 총재실 또는 호텔 등지에서 통정설(12) OOO (43, 전 사무총장)○ 유정희국회의원 공천, 박근혜 총재에게 간청 공천 따냄 (사무총장은 국회의원이 되어야 한다고 과시하기 위함) 남편 OOO이 OO대학 운영자임을 기화로 접근. 상당한 액수의 돈을 최태민에게 바쳤다고 함. 총재실 또는 지방출장 중 호텔 등에서 통정설(출처:인터넷 매체  서울의소리 기사중 한자는 한글로 변경하였고 박근혜측은 정보부 보고서가 허위사실이라 주장했습니다)  박근혜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교육이 올바른 역사다"박근혜의 7인회는 군사독재정부의 고위직과 일본천황과 군사독재를 찬양하는 언론인들이며 안병훈은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 박근혜 선거대책위원장, 부사장출신으로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출판사 기파랑 사장이다박근혜가 올바른 역사교육이라 하는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 style="HEIGHT: 390px; WIDTH: 565px" altHtml=""> 박근혜 "뉴라이트가 대한민국의 희망입니다" " style="HEIGHT: 331px; WIDTH: 566px" altHtml=""> 뉴라이트 대통령을 꿈꾸는 박근혜의 정체를 아십니까? 카톡카스트윗페북그룹메일더보기8월 4주 이 블로그 인기글박정희 차녀, 박근령 통일교 합동결혼식박정희 가계도 (이현란과 박정희)윗 글아소 나치발언.아랫글[한일전] ‘붉은악마 응원 보이콧’ 전범기 등장, 명언으로 대응했지만…글목록 | 방명록블로그 바로가기 홈화면에 추가맨위로DaumPC화면전체보기� Kakao Corp. 최 목사는 75년 '대한구국선교단'을 발족시키고 총재에 취임한다.

박 후보는 명예총재로 추대 됐다.

2007년 공개된 중앙정보부(이하 중정)의 '최태민 수사자료'(1977년 작성 추정)에 따르면 최 목사는 당시 박 후보를 등에 업고 여러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각종 이권에 개입했고 권력형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돼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 목사의 비리 의혹은 횡령, 사기 등 44건. 김재규 전 중정부장은 10·26 항소이유서에서 자신이 최 목사 문제를 박정희 당시 대통령에게 보고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게 10·26을 일으킨 한 요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중정 발(發) 자료와 주장이 최 목사 의혹의 실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2012년 8월 22일, )   “구국여성봉사단이라는 단체는 총재에 최태민, 명예총재에 박근혜양이었는 바, 이 단체가 얼마나 많은 부정을 저질러왔고 따라서 국민, 특히 여성단체들의 원성의 대상이 되어왔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아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영애가 관여하고 있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아무도 문제 삼는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민정수석 박승규 비서관조차 말도 못 꺼내고 중정부장인 본인에게 호소할 정도였습니다.

본인은 백광현 당시 안정국장을 시켜 상세한 조사를 하게 한 뒤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던 것이나 박 대통령은 근혜양의 말과 다른 이 보고를 믿지 않고 직접 친국까지 시행하였고, 그 결과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하였으면서도 근혜양을 그 단체에서 손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양을 총재로 하고, 최태민을 명예총재로 올려놓아 결과적으로 개악을 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 (2007년 6월 1일, 신동아)   최태민은 흔히 목사로 불린다.

1975년 4월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합총회로부터 목사 안수를 받은 뒤부터 생긴 호칭이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와 전두환의 합동수사본부를 거치며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수사자료’를 보면, 그는 불교 승려가 된 적도 있었고 천주교 세례를 받기도 했다.

‘태민’이란 이름도 각종 가명을 포함해 7번째 이름이다.

70년대 들어 최태민은 서울과 대전 일대에서 난치병을 치료한다는 등 사이비 종교 행각을 벌였다.

불교, 기독교, 천도교를 종합했다는 교리를 내세웠고, 방민이란 가명을 쓰면서 ‘원자경’, ‘칙사’ 또는 ‘태자마마’라는 호칭을 자처했다.

(2012년 7월 29일, 한겨레) 최태민 의혹  1970년대부터 최태민 목사는 그의 측근으로 활동하였다.

그 과정에서 최태민과 그 일가들의 비리 행위를 묵인하였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박근혜가 육영재단, 정수장학회 등을 운영하면서 그를 보좌하였던 최태민의 비리 문제는 오랫동안 도마에 올랐다.

7개의 이름과 6번 결혼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구국선교단, 구국봉사단 총재 등으로 박 후보를 보좌하면서 박 후보의 이름을 팔아 이권에 개입한 의혹을 받았다.

박근혜의 정계 입문 이후 이 문제는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경선 후보 검증 청문회 당시 '중정 조사에 의하면 최 목사는 공사 수주, 장군 승진, 국회의원 공천 명목 등으로 돈을 받은 단서가 포착되는 등 비리 건수가 40여 건 된다고 한다.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하여서도 "아버지가 나와 중정 부장, 최 목사, 관계되는 사람들을 불러 직접 조사를 하실 때 어떻게 횡령하고 사기를 쳤는지 답하라고 했다.

(비리) 내용이 막연했다.

실체가 없는 얘기로 끝나서 아버지가 대검에서 조사하여 보고 문제가 있으면 법적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하셨다.

아버지는 친척을 감옥에 보낼 정도로 엄격하신 분이다.

그 쪽에 가서도 별다른 일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정권들이 나를 봐주거나 돌볼 상황이 아니었다.

굉장한 매도의 기간이었다.

잘못이 있었다면 굉장히 시끄러웠을 거다.

"라고 반박하였다.

  또한 '검증위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최초에 중정은 최 목사를 구속하자고 건의했고, 검찰이 조사하여 보니 중정 조사보다 훨씬 많은 비리가 나왔다.

결국 최 목사가 봉사단 총재에서 물러나는 선에서 이 문제가 일단락됐다.

그런데도 최 목사의 비리 혐의가 불확실하다고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하여서도 "대검에서 엄청난 비리가 나와서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처리해야지 왜 덮나. 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세무조사, 검찰 조사가 있었는데 왜 법적 조치를 안 했는지 의아하게 생각한다.

"고 반박하였다.

  최태민과 그 가족들의 비리 행위나 비위 의혹에 대하여 박근혜는 최태민이 모함을 받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하였다.

2007년의 청문회 당시 "최 목사가 지금도 결백하고 모함 받고 있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대하여 "내가 아는 한도에서는 의혹의 실체가 없지 않나 생각한다.

현실이 그러니까. 앞으로 실체가 나온다면 내가 모르던 일이니까 굉장히 유감스럽고 잘못된 일이다.

"라고 말하였다.

  2007년의 청문회 초반 고 최태민 목사에 대한 질문이 집중되면서 박 전 대표의 목소리 톤이 약간 높아졌다.

다른 검증위원이 최태민과의 자녀 존재 여부를 묻자 박근혜는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에 김명곤 한나라당 검증위원은 "최 목사와 관련된 질문만 나오면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냐"고 꼬집자 박 전 대표는 작심한 듯 "아기가 있다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얘기까지 나온다.

DNA 검사라도 해줄 테니 애를 데려오라"며 언성을 높였다.

박근혜 밀실정치, 밀실인사, 자금관리 실세는 정윤회”"   ● 현재 상공회의소 소장인 '장자크구로아(EU 코리아 이사장)'는 북한에 7년 거주, 김정일의 첩보라인. 박근혜는 EU코리아 이사이며 현재 박근혜와 밀접한 관계. ● 박근혜, 정윤회(최태민 딸의 남편), 장자크구로아, 수행비서 총 4명이 김정일 전용기 편으로 평양 도착.  ● 박근혜와 김정일이 4시간 30분간 독대. 만찬에서 박근혜는 마약이 섞인 '백두산삼독주'를 마심, 3박4일 동안 김정일을 만났고. 김정일과 동침(잠자리)함. (미국 CIA 정보라고 함)  ● 박근혜는 평양 방문 시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은 500억을 들고 감. (미국 CIA 정보 /조 웅 목사가 외환관리법위반으로 고발)  ● 박근혜는 김일성의 묘소에 참배 ( 고려연방제를 창설 하겠다고 선서 / 조 웅 목사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  ● 박근혜는 최태민과 15년을 동거를 했고, 그의 아이를 두 번 지움. [조 웅 목사는 검사에게 박근혜 생식기 조사(임신 여부)를 하자고 했지만 검사가 거절.]  ● 박근혜는 최태민 사망 후 정윤회(최태민 딸의 남편)와 불륜관계를 가지며 16년을 동거. [현재 정윤회는 최태민이 박근혜에게 준 재산관리를 하며 인수위원 안에서 모든 키를 쥐고있다.

]  ● 박근혜 뒤에는 정윤회가 있다.

돈. 인사 등등.. 박근혜는 허수아비다.

실질적인 실세는 정윤회라고 함. 정윤회와의 불륜관계는 최태민 본처의 첫째 아들 최재석이 폭로한 것이고 함.  ● 박정희 집안 전체가 마약을 하고있다.

현재도 박근혜는 정윤회와 마약을 할 것이다.

박지만 뿐만아니라 집안 전체가 마약을 한다.

(마약 제공자는 '장자크구로아')  ● 박근혜 뒤에는 북한첩보라인인 장자크구로아가 있음.  ● 정윤회는 현재 박근혜의 통치자금을 관리하고 모든 인사권을 가지고 밀실정치를 한다.

현재 인수위 및 공직 임명자들도 모두 정윤회의 작품이며, 모조리 허수아비 일 뿐이다.

  ● 증거는 책과 수백장의 고발장이다.

책(제목: 황태성 박정희 김종필 커넥션) 은 조 웅 목사가 직접 씀. 겨우10000부 발행만 허가를 받았고 현재는 품절.  ● " 박근혜의 집권을 필히 막아야 한다.

목숨걸고 하는 말이다.

아직까지도 신변의 위협을 받는다.

박근혜는 도덕성, 이념에도 문제가 있고 절대 대통령이 되서는 안되는 인물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기에 답답하고 원통해서 말한다.

박근혜가 안보 안보 하는것은 다 쑈이다.

북한첩보라인(장자크구로아)과 이미 깊숙히 연관되어있다.

또 이 사실을 아는 분은 이항(?) 목사님 및 고발장 쓴 거 본 사람들이다 " -조 웅 목사-  ● 조 웅 목사는 불륜 및. 국가보안법위반. 외환관리법위반 사건으로 대검찰정에 박근혜 고발을 수백번 하셨지만 흐지부지 되다가 묻혔다고 함.  최초로 공개되는 사진이다.

 박정희가 강탈하거나 축재한 재산은 지금 정수장학회 소유로 남아 있다.

정수장학회의 전 명칭은 5·16장학회이고, 5·16장학회의 전신은 부일장학회이다  최태민이 관리자이다.

[최태민목사] 분석을 해보면



 정수장학회는 박정희의 정자와 육영수의 수자를 합하여 만들었으며 5,16장학회를 이미지 목적상 정수장학회로 명칭을 바꿨습니다.

구국선교단은 영세교의 이름을 바꾼 단체를 말합니다.

 --------------------------------------------------------------------------------------------------------------------------- 다음 글은 블로그( 'So What? Why be Normal??' )에서 퍼온 글입니다.

 정치권 야사 - 박근혜와 최태민 목사 오늘은 박정희 정권 때 부터 30년 이상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는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에 대해 써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혹 잘못?㎢� 잡혀 들어갈수도 있으니, 민감한 부분은 패스하고, 세간에 떠돌던 얘기를 취합하는 수준에서 쓰겠습니다.

ㅎㅎ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최태민하고의 관계만 보더라도 박근혜는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녀는 지금껏 단 한번도 검증이라는 것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인적이 없습니다.

 김대중은 약관의 나이에 자기사업을 일으킨 사람이고, 만권이상의 책을 읽었고, 40권이상의 저서를 남겼습니다.

경제/통일분야에서 나름의 이론을 정립시켰고, 최고의 국무위원 중 한사람이었으며 국회도서관을 가장 많이찾는 의원이기도 했습니다.

 노무현은 판사를 역임했고, 변호사시절에 뛰어난 승소율을 보였으며, 노동자를 이해하는 의원이었고, 노사정을 중재하는 능력도 보여주었습니다.

지방행정과 분권에 일가견이 있었고, 해수부장관시절에는 뛰어난 행정능력도 보여주었습니다.

 반면에 박근혜는? 지 손으로 번돈이 단, 한푼도 없었습니다.

(국회의원 월급은 제외합시다.

) 행정능력도 검증받은적이 없습니다.

아버지 후광으로 국회의원 되고나서 지금껏 온게 다입니다.

이렇게 불안하고 검증받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아직 잘 모르시겠다고요? 그럼, 아래 제가 쓰는 것을 한번 보십시요. 최태민에 대해서 박근혜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럼, 아마, 저절로 한숨이 나올겁니다.

1990년 박근혜의 동생인 박근영과 박지만이 노태우대통령앞으로 탄원서를 한통 보냅니다.

이 탄원서는 12장이였고,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최태민 목사의 전횡과 횡포와 비리가 너무 심하다.

우리 언니와 우리 가족을 최태민에게서 부터 구해달라, 언니말은 믿지 말라, 언니는 최태민에게 속아 최태민을 옹호하고 있다.

대통령만이 우릴 구해줄 수 있다.

"  이 탄원서로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에 대해, 세상사람들이 궁금해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최태민과 박근혜의 이상한 관계는 박근혜가 최태민과 어울리기 시작할 때부터 여러곳에서 말이 나왔고, 이 둘사이를 떼어놓으려는 시도도 여러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도는 번번히 실패로 돌아갑니다.

문제가 불거질때마다 박근혜가 최태민을 보호했기 때문입니다.

 자, 그럼, 이 목사라고 하는 최태민은 어떤 인간인지 찬찬히 살펴봅시다.

최태민이 박근혜를 처음 만난게 75년 초의 일인데, 이 때 벌서 최태민은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였습니다.

그의 호적엔 그가 1912년에 태어났다고 되어있지만, 최태민은 호적을 여러번 바꾸었기 때문에 (이름도 여러번 바꾸었습니다.

)확실한 나이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단, 1910년대에 태어났다라고만 추측할 뿐입니다.

 어쨌든 이 최태민은 이북출신의 일본순사를 했는데, 해방 후 남한으로 와서 그의 순사경력을 살려 대한민국경찰이 됩니다.

(이 부분도 말이 많은데, 최태민의 아버지는 독립유공자입니다.

근데 그런 아들이 일본순사를 했다는게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최태민이 한국경찰이 되기 위해서 일본순사의 경력을 위조하지 않았나? 라는 의문을 제시 하기도 합니다.

 당시엔 조선인출신 일본경찰은 그냥 한국경찰이 되었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온것 같습니다.

씨바, 승만아, 승만아.) 그리고 전쟁이 터지고 이때부터 최태민은 기이한 인생역정을 살아가게 됩니다.

군대에 잠깐 복무했던, 최태민은 어느날 갑자기 절로 들어가 머리깍고 중이 됩니다.

(이 부분에서 떠도는 말은 최태민은 결혼도 여러번하고 자식도 많은 등 여성편력이 상당했습니다.

그래서 그 중 한 여성이나 부인이 최태민을 혼빙이나 간통으로 고소하여 그것을 피하기 위해 산으로 들어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주 삶 자체가 똥구린 냄새가 나는 인간이지요?) 그리고는 산을 내려와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은 최태민은 승려였던 경험을 살려 불교협회의 간부가 되고, 그것을 이용하여(최태민의 처세술은 상상이상입니다.

)어느 단체의 수장직에 오르지만, 곧 주가위반혐으로 검찰에 �i기는 신세가 되자 다시 잠수를 탑니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 그는 이번엔 천주교 세례를 받습니다.

 천주교 세례를 받은 최태민은 어느날 갑자기 사이비종교를 창설, 그 교주에 올라, 사이비애들이 많이 하는 뭐, 아픈사람 낳게 해준다.

어쩌고 저쩌고를 남발해서 많은 돈을 번것으로 보이는데, 우스운것은 최태민의 이런 사기가 먹혀들어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진짜 아픈사람들이 최태민을 보고 나면 안아파지고 그렇게 해서 교세는 확장되었습니다.

ㅋㅋㅋ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인간이 그만큼 나약한 존재인것 같습니다.

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최태민에게 갔다가, 스스로 믿는 거죠. 좋아진다, 안아프다.

그렇게 하다보면 심리적으로 진짜 안아파 지니(학문적인 의학명으로 일명  플라시보효과라고 하죠) 최태민에게 더욱 의지를 하게 되는 것이죠. (아, 요새 밥벌이도 제대로 안되는데 저도 종교나 하나 만들어야 겠습니다.

) 그런데 돈을 번것 까지는 좋으나 사이비교주의 타이틀로는 한계(그만큼 야망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가 있다는 것을 직감한 최태민은 다시 한번 비상한 머리를 씁니다.

그리하여 탄생한게 최태민 목사입니다.

(종교 그랜드슬램을 이루는 순간입니다.

) 혹자는 안수를 받지않은 사이비 목사라고도 하고, 혹자는 안수는 받았으나 그 안수해준 교회측이 사이비라는 이야기도 합니다만 확실한 것은 최태민은 기독교 공부를 한적이 없다라는 겁니다.

 어쨌든 최태민 목사님께서는 이렇게 목사질을 하며 주류에 편입할라고 기웃기웃거렸습니다.

그러다가 74년 8월 15일, 국모라는 육영수가 문세광의 총탄에 맞고 사망합니다.

박정희도 좌절했지만, 가장 큰 슬픔을 느낀것은 장녀 (배다른 언니 박재옥이 있지만)박근혜였습니다.

그렇게 의기소침해 하고 있던 박근혜에게 어느날 편지 한통이 날아듭니다.

발신인은 최태민 목사 라고 쓰여져 있었습니다.

 출처 : 구봉숙의 도시탈출 팬클럽 --------------------------------------------------------------------------------------------------------------------------- 노태우, 1990년 사직동팀에 최태민 내사 지시기사 2012-09-24 03:00:00 기사수정 2012-09-24 10:43:31 박근혜 검증 리포트, 최태민과 육영재단 잡음은?  최태민과 함께 선 박근혜 1977년 3월 16일 대한구국봉사단이 세운 경로병원 개원식에 당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오른쪽)와 구국봉사단 총재인 최태민 씨가 참석해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동아일보DB 죽어가는 치아? 뽑기전에 치아 <화제>로또 1등번호 패턴 밝혀《 5년의 ‘퍼스트레이디’ 생활과 15년의 정치활동을 통해 어느 정치인보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 하지만 사생활과 과거 행적 중엔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가족과 정수장학회 문제도 박 후보의 골칫거리. 동아일보는 24일부터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에 대한 검증리포트를 세 차례 연재한다.

각종 의혹과 궁금증, 도덕성과 국정운영능력 등을 짚어 본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올 6월경 동생 근령 씨에게 먼저 전화를 건 것으로 전해졌다.

근령 씨와의 불편한 관계를 풀고 가자는 한 친박 원로의 건의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화는 순조롭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두 사람 간 감정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박 후보와 동생들 간 불화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90년 8월. 근령 씨와 남동생 지만 씨가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냈다.

주요 내용은 ‘최태민을 엄벌해 최 씨에게 포위당한 언니(박 후보)를 구출해 달라’는 것. 노 대통령은 청와대 하명사건을 담당하는 이른바 ‘사직동팀’에 최 씨에 대한 내사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 때마다 제기되는 ‘최태민 의혹’ 현재 시중에 돌고 있는 이른바 ‘최태민 보고서’에 따르면 최 씨의 혐의는 횡령 사기 변호사법 위반 등 모두 44건에 이른다.

최 씨의 여성 관계도 상세히 기록돼 있다.

이 보고서는 1912년생인 최 씨의 나이가 76세로 기록돼 있어 1988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작성기관도 분명치 않다.

박 후보 측은 이 보고서가 조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박 후보 측도 박 후보와 최 씨가 상당히 밀접한 사이였음은 부인하기 힘들다.

최 씨가 언론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75년 5월 11일이다.

그는 신도 5000여 명을 경기 파주시 임진각에 모아 박정희 대통령을 위한 기도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박 후보는 최 씨가 총재로 있는 구국선교단의 명예총재로 추대됐다.

이후 박 후보는 1주일에 많을 때는 2, 3차례 최 씨가 주최하는 각종 행사에 참석했다.

박 후보가 1982년 육영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이후에도, 1988년과 89년 각각 박정희·육영수 기념사업회와 근화봉사단을 조직할 때도 최 씨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8년 정계에 입문해서는 최 씨의 사위인 정윤회 씨를 핵심 참모로 기용했다.

정 씨는 2004년 박 후보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를 맡을 때까지 비서실장 역할을 했다.

최근 본보 취재진이 2007년 한나라랑 대선후보 경선 당시 최 씨 관련 의혹을 제기한 인사들을 접촉한 결과 이들 대부분은 “최 씨와 관련해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많지만 아직은 공개할 때가 아니다”는 태도를 보였다.

최 씨의 의붓아들인 조모 씨가 최 씨의 비리를 폭로한 녹취록 등이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조 씨는 박 후보가 영남학원 이사장 시절 학원 운영에 깊이 관여했지만 박 후보는 2007년 검증 청문회에서 조 씨를 모른다고 했다.

조 씨는 2007년 대선 직후 지병으로 숨졌다.

박 후보는 검증 청문회 때 “최 씨에 대한 의혹의 실체가 없다.

최 씨에게 문제가 있었다면 아버지 시대나 이후 정권에서 법적 조치를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후보와 최 씨의 관계를 문제 삼는 이들은 최 씨가 박 후보의 후광을 업고 축재를 일삼았다고 지적한다.

최 씨의 자녀들이 20, 30대에 수백억 원대의 재산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최 씨의 다섯째 딸로 정윤회 씨의 부인은 서울 강남구에 시가 120억 원 상당의 7층짜리 M건물과 강원 평창군에 23만431m² 규모의 땅을 소유하고 있다.

M건물의 땅값은 평당 6000만 원 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로데오 거리와는 조금 떨어져 있어 신사동에서는 그나마 싼 편에 속한다고 한다.

M건물 5층에는 정 씨의 사무실도 있다고 건물 관계자는 전했다.

평창 땅은 알펜시아 리조트와는 거리가 있어 평당 2만, 3만 원 수준이었다.

이곳은 외진 데다 가구도 거의 없었다.

 ○ 육영재단 갈등은 ‘현재진행형’ 박 후보는 1990년 11월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근령 씨에게 물려줬다.

그해 10월 근령 씨를 지지하는 모임의 회원들이 육영재단으로 몰려와 박 후보의 퇴진을 요구하는 등 소란이 빚어진 뒤였다.

2007년 11월에는 회계부정 등을 이유로 교육청으로부터 이사장직 해임 처분을 받은 근령 씨가 육영재단을 떠나지 않자 지만 씨 측 인사인 정모 씨 등이 근령 씨를 육영재단에서 강제로 끌어냈다.

근령 씨의 남편인 신동욱 씨는 이를 ‘육영재단 강탈사건’이라고 주장하며 배후로 지만 씨를 지목했다가 허위사실 유포로 고소됐다.

법원은 정 씨가 이 사건을 모의할 당시 “회장님(지만 씨를 지칭)의 뜻”이라고 말했고 지만 씨가 이 사건에 관여한 이들에게 3억여 원을 빌려주면서 차용증을 쓰지 않은 점 등으로 미뤄 허위사실로 단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정 씨는 이 사건 이후 어린이회관 관장에 올랐다가 2009년 7월 근령 씨에 대한 공동상해 등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자 관장직에서 사임한 뒤 다시 지만 씨의 회사인 EG의 기획실장 겸 비서실장으로 복귀했다.

이때 의문의 살인사건도 발생한다.

같은 해 9월 6일 ‘육영재단 사건’에 깊이 개입한 지만 씨의 5촌 조카 박용철 씨가 피살됐다.

살해 용의자는 역시 지만 씨의 5촌 조카인 박용수 씨였다.

용수 씨는 용철 씨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

경찰은 애초 두 사람 사이에 채무관계가 있었다고 밝혔다가 계좌 추적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자 개인적 원한으로 살해 동기를 바꿨다.

 --------------------------------------------------------------------------------------------------------------------------- ??반대 속에 이어진 30년 관계, ‘최태민 미스테리’  공식적으로 ‘박근혜-최태민’에 대해 언급된 건 지난 대선 때다.

당시 이명박 후보측은 세간에 떠도는 ‘설’을 토대로 최태민과 관련된 다양한 의혹을 제기하며 공세를 폈다.

  부실 검증, 현대사 미스테리가 된 ‘최태민 의혹’  당시 경선후보청문회에서 박근혜는 “최 목사(최태민)는 내가 어려운 시절 나를 도운 사람”이며 “고맙고 훌륭한 분”이라며 그를 끝까지 두둔했다.

2007년의 ‘최태민 검증’은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당내 선거에서 이루어졌을 뿐이다.

상대 후보에게 가벼운 ‘상처’ 정도는 줄지언정, ‘목숨’을 거두어서는 안 되는 일종의 ‘스파링’이었다.

  ‘진검’ 승부가 아닌 ‘목검’ 승부였던 만큼 의혹이 제대로 밝혀지긴 어려웠다.

그러나 보니 최태민과 관련된 무성한 의혹들은 아무것도 밝혀진 것 없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은 ‘최태민 의혹’을 현대사의 ‘미스테리’로 만들고 말았다.

  이번 대선은 ‘최태민 미스테리’를 추적하는 선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태민 의혹’에는 풍부한 얘깃거리와 함께 박정희 시절의 ‘어두운 흔적’까지 담겨 있어 ‘흥행성’도 높은 편이다.

박근혜 측은 ‘단순한 과거사를 가지고 정치공세를 편다’며 ‘문제될 것 없다’는 입장이다.

과연 그럴까? ‘최태민 의혹’을 들여다보면  ‘뇌관’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박정희 생전에 직접 친국한 사건  육영수의 사망 직후 박근혜는 최태민으로 부터 편지를 받는다.

편지에는 ‘육여사(육영수)가 3차례에 걸처 자신(최태민)에게 나타나 근혜를 도와주라고 현몽했다’고 적혀 있었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된다.

박근혜는 그에게 구국봉사단 총재를 맡겼고, 최태민은 박근혜와의 관계를 내세워 기업들로부터 운영비와 입단찬조금을 걷으며 각종 이권에 개입한다.

  당시 청와대 공보비서관이었던 선우련의 1977년 9월 20일자 비망록에는 박정희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백광현 정보부 7국장과 박근혜를 배석시켜 최태민의 비리와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직접 친국을 한 장면이 묘사돼 있다.

  “박대통령은 오늘 나에게 큰 영애인 근혜양과 관련해 물의를 일으켰던 최태민 구국봉사단 총재를 거세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대통령이 나에게 지시한 내용은 세 가지였다.

‘최태민을 거세하고, 향후 근혜와 청와대 주변에 얼씬도 못 하게 하라. 구국봉사단 관련 단체는 모두 해체하라.’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나는 곧 근혜양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렸다.

근혜양은 얼굴이 하얘지더니 낙담한 표정으로 눈물을 지었다.

”  오죽했으면 아버지가 딸을 친국했을까? 박정희는 “최태민과 관련된 보고가 올라올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다”고 말했다고 한다.

최태민과 딸 박근혜의 관계가 어땠으며,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당시 세간에서는 최태민을 ‘박근혜의 그림자’라고 불렀다.

  당시 중앙정보부도 특별수사를 했다  관련된 수사는 조심스럽게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영애이자 퍼스트레이디인 박근혜와의 관계 때문이다.

중정에 의해 밝혀진 ‘인간 최태민’의 모습을 보면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어떻게 저런 사람을 훌륭하고 고마운 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최태민은 해방 전후 경찰공무원으로 있다가 1949년 육군헌병대 문관으로 근무했다.

1954년에는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됐고, 이후 중학교를 설립해 교장이 되기도 했다.

‘영생교’를 만들어 사이비종교의 교주를 하다가 박근혜를 만난 뒤 목사 안수를 받았다.

7개의 이름을 가지고 활동했으며, 결혼도 6차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사정기관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최태민 가계보'>  최태민은 박근혜와의 친분과 관계를 내세워 정계와 재계, 정부 관료와 접촉해 인사, 승진, 공천, 공사 수주 등의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하고, 입회비와 후원금을 빼돌리는 등 공금을 횡령한 것으로 나타난다.

중정 수사자료에는 총 44건 3억1700만원(현재 약 40억원 상당)의 비리 사실이 적시돼 있다.

  ‘박정희 사살’ 이유 중 하나가 ‘최태민’  박정희에게 총격을 가한 김재규는 10.26사건의 정당성을 설파하면서 항소이유서에 ‘최태민 사건’을 거론했다.

사기횡령 등의 비위사실과 여자들과의 온갖 추문까지 있는 사이비 목사가 자칭 ‘태자마마’라며 청와대를 드나들고, 박근혜를 내세워 부정을 저질러 국민과 여성단체들의 원성이 되고 있어, 이를 박정희에게 호소했지만 박정희가 듣지 않았다는 얘기다.

  김재규 변호인은 “(박정희가)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했으면서도 근혜양을 그 단체에서 손 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양을 총재로 하고, 최태민을 명예총재로 올려놓아 결과적으로 개악을 시킨 일이 있었습니다”라고 밝혔다.

  주변의 비리에 대해 직보 하고 충언을 했지만 딸을 감싸기만 한 채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는 박정희에 대해 그의 측근 중 한 사람으로서 크게 실망했고, 이것이 박정희 제거의 한 가지 이유가 됐다는 주장이다.

  전두환까지 ‘박근혜-최태민’ 관계를 우려했다  박근혜가 최태민을 크게 의존했다는 주장과 증언이 있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은 자신의 저서에 ‘박근혜에게 최태민과의 관계를 끊도록 건의한 비서 3명이 모두 잘렸고, 최태민이 추천한 사람만 박근혜의 비서가 됐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 최태민은 탁명환(작고) 당시 현대종교연구소장에게 ‘박근혜의 지프를 타고 왔으며 청와대를 수시로 출입하고 있다’고 자랑했다고 한다.

  박정희 피살 이후 ‘최태민 거세’가 흐지부지 되자 박근혜를 걱정한 청와대 비서관이 전두환 당시 합수부장에게 최태민을 처리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선우련의 부탁을 받은 전두환은 최태민을 강원도 인제의 군부대로 보냈다가, 12.12직후 사기와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1년6개월을 선고했다.

  형제들도 ‘박근혜-최태민’ 관계를 걱정했다  박근혜는 1982년 전두환 정권의 암묵적 배려로 1969년 육영수가 설립한 육영재단 이사장에 취임한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는 두 동생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청와대 시절부터 ‘박근혜의 그림자’로 불리던 최태민이 육영재단 운영 등에 깊숙이 관여해 재산을 착취하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갈등과 반목이 깊어지던 1990년, 드디어 일이 터진다.

박근령과 박지만 두 남매가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보냈다.

그 탄원서의 일부다.

“진정코 저희 언니(박근혜)는 최태민씨에게 철저히 속은 죄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속고 있는 언니가 너무도 불쌍합니다.

대통령의 유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어디에 하소연 할 곳도 없고 또 함부로 구원을 청할 곳도 없었습니다.

”  결국 박근혜가 이사장직에서 물러나면서 ‘육영재단의 난’은 박근령과 박지만의 승리로 끝난다.

‘난’의 목적은 ‘박근혜 사퇴’ 보다 ‘최태민 제거’에 있었다.

형제들은 박근혜가 최태민에게 철저하게 속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주변의 반대 속에도 이어진 ‘30년 관계’  아버지 박정희도, 형제들도, 비서진도, 전두환도, 중앙정보부도, 당시 언론과 사회단체들까지 부정적으로 봤던 ‘박근혜-최태민’의 관계는 30년 동안 이어진다.

박정희의 사망사건이 터지고, 전두환 군부에 의해 최태민이 격리되며 소원해졌던 관계는 박근혜가 육영재단 이사장에 취임하면서 복원된다.

  최태민은 육영재단의 이사로, 고문으로 활동하며 운영에 깊숙이 개입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태민 뿐만 아니다.

그의 사위까지 육영재단에 관여했다.

최태민이 사망(1994년)한 뒤 그이 다섯째 부인의 딸인 최순실의 남편 정윤회는 1996년부터 2004년 까지 박근혜의 보좌관 혹은 비서실장으로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2002년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하고 총재가 됐을 때 정윤회는 총재비서실장이었다.

최태민의 딸 최순실은 강남에 빌딩 두채를 보유한 수백억대 재산가로 알려졌다.

최순실이 부동산을 사들인 때와 최태민이 육영재단의 운영에 깊숙이 개입했던 시점이 일치해 이와 관련된 의혹도 무성하다.

또 항간에는 2004년 이후에도 ‘정윤회 보고라인’이 가동돼 왔고, 4.11 총선 공천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설’도 있다.

  최태민과 그 인척, 육영재단 영남학원까지 좌지우지  1980년 전두환 신군부는 박근혜에게 영남대 재단을 맡긴다.

이사장에 취임했지만 이에 반대하는 학생시위가 일어나 몇달 만에 이사장직에서 물러난다.

하지만 부정입학, 장학금 횡령, 영남대병원 비리 등이 불거져 관선이사 체제가 들어선 1988년까지 이사직을 유지했다.

 부정한 방법으로 영남대의 ‘교주(校主)’가 된 어버지 덕분에 영남학원을 맡았지만, 여기에도 ‘최태민의 흔적’이 발견된다.

영남학원 비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재단운영을 좌지우지해온 4명 중 두 명이 최태민의 인척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영남학원 산하 영남투자금융 등을 관리하며 재단의 실세였던 조순제는 최태민 처의 전남편의 아들이었다.

  영남대병원 관리부원장을 맡아 의료원 관련 비자금 총책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손윤호는 조순제의 외삼촌이었다.

편법과 비리가 판쳤다.

병원장 해외출장비가 박지만의 항공료로 지급되고, 육영재단에 수천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육영재단이 발행하던 <어깨동무> <보물섬> 등에 영남투자금융이 장기 광고를 제재하거나 거액을 기부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맡은 곳 마다 부실, 이런데도 ‘빅토리아 여왕’?   박근혜가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 가졌던 직함 중 대표적인 게 육영재단과 영남학원 이사와 이사장이다.

두 곳 모두 부실운영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

영남학원은 공금 횡령과 기금 전용, 부정 입학 등이 문제가 돼 1988년 사학재단 처음으로 국정감사를 받았다.

이후 20년 동안 관선이사 체제로 운영되다가 2009년에야 정상화가 됐다.

  육영재단은 방만한 운영과 경영부실에 두 차례의 ‘형제의 난’까지 겹치며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우여곡절 끝에 2008년부터 박지만이 추천한 임시이사 9인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선거에서는 ‘여왕’일지는 모르겠으나, 경영에는 재주가 없나 보다.

박근혜가 맡았던 두 기관 모두 풍비박산의 위기를 겪었다.

두 기관의 부실운영에 공교롭게도 최태민이 있었다.

  육영재단과 영남학원, 모두 현존해 있는 기관들이다.

또 관련 인물들 상당수가 생존해 있다.

제대로 검증한다면 ‘미스테리’가 웬만큼 해소될 수도 있어 보인다.

아무튼 ‘최태민 미스테리’는 이번 대선의 최대 쟁점 중 하나가 될 게 분명하다.

 ---------------------------------------------------------------------------------------------------------  다음 글은 '우물에 빠진 개구리'님의 블로그에서 퍼온 글입니다.

 미 비밀 보고서, 최태민이 박근혜의 '몸과 마음을 통제했다'는 소문 보고 미 비밀 외교전문 분석 | 2012/08/23 14:42 뉴요코리안 '박근혜 최태민 소문' 관련 미 비밀문서 언급 내용을 밝힌다.

 최근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새누리당의 대통령 후보로 공식 선출된 바 있다.

이와 동시에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에 대한 여러 의혹들이 다시 인터넷을 휘감고 있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이러한 여러 의혹 중 최근에 다시 제기된 박근혜 후보와 최태민 목사(?)와의 관련 루머에 관해 미국의(정확히는 주한 미국 대사관의 본국 보고서) 비밀문서가 이에 관해 어떠한 언급을 하였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위키리크스에 의해 폭로된 미국 비밀문서는 그 양이 워낙 많고, 한국의 박근혜 정치인에 대한 기록도 엄청난 언급을 곳곳에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제반 사항에 관해서는 차후 글을 올리기로 하고 이번에는 여러 의혹 중 최태민과의 관계만 언급한 부분을 밝히기로 한다.

우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지금 한국의 인터넷에서는 위키리크스 폭로 비밀문서가 박근혜의 사생아 존재까지도 언급했다는 등 여러 사실이 아닌 것들이 유포되고 있어, 필자가 해당 미 외교 비밀문서의 내용을 밝히는 것임을 미리 전제하고자 한다.

 사생아 관련 언급은 없으나, 최태민 관련 의혹(소문)은 정확히 보고  박근혜 후보와 최태민과의 관계에 대한 의혹을 보고한 미 비밀문서는 더 있을 수도 있으나, 필자가 파악한 바로는 2007년 7월 20일 당시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가 본국으로 송고한 비밀문서에서 언급되고 있다.

  이 문서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정치'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가 한국의 정치인들이 특히, 당시 한나라당의 이명박(MB), 박근혜 등이 서로의 과거사를 들추어내는 데 혈안이 되어있다는 보고를 미 본국에 정치 상황 보고한 문서이다.

이 문서의 요약에는 당시 한나라당 안에서도 박근혜의 과거사를 들추어 내려는 시도들이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즉, 이를 번역하자면 "박근혜는 또한 자신의 과거를 해명하도록 강요받고 있는데, 그녀의 반대자들은 “한국판 라스푸틴”이라고 규정을 한, 최태민 목사와의 35년 전에 관계를 포함한, 그리고 그녀 모친이 암살된 이후 그녀가 영부인 역할이었을 당시, 청와대 안에서 그(최태민)가 어떻게 박근혜를 통제했는지도 해명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 정도일 것이다.

이는 그 당시 대통령 후보감으로 자리매김하던 박근혜 후보에 대한 소문이나 의혹을 비교적 자세히 본국에 보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태민을 '한국의 라스푸틴'이라 이색 평가 보고 눈길  또한, 최태민을 '한국의 라스푸틴'이라고 표현한 점도 눈길을 끌고 있다.

라스푸틴은 시베리아의 엉터리 승려였으나,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 때 사술(詐術)로써 황후를 손에 넣은 뒤 황제마저 장악해 온갖 못된 짓을 다 한 음란한 간신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 비밀보고서의 본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즉, 이 내용도 번역하자면, "아마도 그녀가 모친이 암살되었을 당시 자신을 희생해서 나라에 봉사했다는 이미지에 가장 심한 손상을 입게 된 것은, 박근혜가 카리스마가 있던 죽은 최태민 목사와 연결되는 있다는 점이다.

죽은 최 목사가 그녀의 인성 형성기에 박근혜의 몸과 영혼을 완전히 통제했으며, 그런 결과로 최태민의 자녀가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 정도가 될 것이다.

이 역시 미 외교 비밀문서가 이러한 소문이나 의혹의 사실을 보고하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소문이 널리 퍼졌다(rife)고 본국에 보고하고 있는 것이다.

 미 외교 비밀문서, 최태민 의혹은 보고, 그러나 사생아 관련 언급은 없어  다만, 외교관인 버시바우 대사가 소문을 전달함에 있어서도 왜? 최태민이 박근혜의 '몸과 마음(body and soul)을 완전히 통제했다.

'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는지는, (또는 소문 이외의 어떤 근거를 미국 정보기관이 가지고 있었는지 등을 감안할 때) 참으로 외교적 표현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고 하겠다.

본 보고서 요약에서처럼 그냥 통제라고 해도 충분할 내용을 (아무리 소문을 전달하는 차원이지만) 몸과 마음을 다 통제했다고 보고서를 작성한 것이 이채롭다고 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사항이 2007년 7월 20일에 보고된 주한 미국 대사관의 본국 비밀 송신 보고서 중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를 언급한 내용이다.

이미 언급한 대로, 새누리당 후보로 확정된 박근혜에 관한 여러 내용의 보고서도 많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나, 최태민 등 여러 관련 의혹이 제기되고 있고 많은 루머가 확산하고 있는 관계로, 본 필자는 폭로된 미 비밀보고서가 언급한 최태민과의 관계된 부분에 있어서 보고서에서 언급된 사실(fact)만을 다시 언급한 것임을 밝히고자 한다.

 ---------------------------------------------------------------------------------------------------------  다음 글은 '늘친구네 네이버둥지'님의 블로그에서 퍼온 글입니다.

  박근혜의 남자 최태민목사 이계선 ㆍ 2007/07/22 ㆍ추천: 0  ㆍ조회: 5095        한나라당 검증청문회를 TV로 보다가 아내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남자가 누구지?” “지난해까지는 ‘왕의 남자’였는데 요즘은 ‘근혜의 남자’래요”“‘왕의 남자’는 이준기 하나지만 ‘근혜의 남자‘는 너무 많은걸. 박근혜 대표를 누님 누님하면서 따라다니는 이성헌전의원이나 유승민 의원도 있고 늙은 내시처럼 박근혜 캠프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는 서청원 홍사덕도 있으니까”“박근혜의 남자는 최태민 목사래요”나는 한국최고의 인기여성 박근혜의 남자가 재벌이나 욘사마가 아니라 목사라는 말에 기분이 좋았다.

나도 목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태민은 죽은 목사다.

“최태민목사는 1994년에 죽었는데?”“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긴다고 하지 않아요?최태민은 죽어서도 박근혜를 움직이는 영원한 근혜의 남자랍니다”TV를 보니 박근혜 검증의 중심은 최태민 이었다.

질문자들은 중앙정보부장도 청와대공보관출신도 박정희추종자들도 심지어는 박근혜의 동생 근영이와 지만이도 최태민의 비리를 지적했다는 증거를 들이댔다.

박정희대통령은 최태민을 청와대로 불러들여 박근혜, 정보부장, 비서실장이 보는 앞에서 그 옛날 임금이 죄인을 친히 심문하는 친국(親鞫)을 했다.

그리고 최태민의 거세를 명했다.

그런데 박근혜의 읍소작전에 마음이 약해진 박대통령이 거세를 철회했다고 한다.

검증질문자들이 최태민의 비리를 낱낱이 들이대도 박근혜는 요지부동 이었다.

아버지도 정보부장도 동생들도 잘 몰라서 그렇다고 일편단심 춘향이었다.

 최태민은 도대체 얼마나 훌륭한 목사이기에 그럴까? 인터넷을 뒤져봤다.

 최태민. 1912년생. 초등학교졸업. 경찰생활을 하다가 사업가로 변신. 7개의 이름을 갖고 있고 6번 결혼을 했고 여러번 전과기록이 있는 남자. 불교 카토릭 기독교를 전전하면서 개태사의 스님이 됐다가 불교 천도교 기독교를 잡탕시켜 영생교를 만들고 1975년에 영생교 교주가 됐다.

그때부터 목사다.

영생교는 1980년 2대 교주 조희성이 신자들의 재산 갈취, 간음, 살인으로 악명을 떨친 사이비 사교다.

한국최대의 이단 박태선 전도관의 지파다.

이 영생교를 만든 이가 최태민이다.

최태민은 목사가 아니다.

고려말 요승 신돈같은 사이비 종교인일 뿐이다.

사이비와 이단들이 그렇듯 최태민은 혹세무민하는 영력이 있어서 딸 또래의 처녀들을 회롱 하더니 끝내 대통령의 딸을 세뇌(洗腦)시킨 모양이다.

 1974년 육영수여사가 총탄에 간 후 박근혜가 비탄에 빠져있는데 최태민으로 부터 편지한통이 날라 왔다.

 “어머니는 돌아가신 게 아니라 너의 시대를 열어주기 위하여 길을 비켜 주었다는 걸 네가 왜 모르느냐? 너를 한국, 나아가 아시아의 지도자로 키우기 위해 자리만 옮겼을 뿐이다.

어머니 목소리를 듣고 싶을 때 나를 통하면 항상 들을 수 있다”최태민 목사가 간밤 꿈에서 죽은 육영수여사를 만났다는 것이다.

근혜 에게는 최태민의 편지가 신(神)의 목소리를 담은 천서(天書)로 보였다.

문선명이 피 가름이라는 혼음교리(混淫敎理)로 여성들과 희열을 나누고, 정명석은 자신과 성교를 해야 원죄에서 깨끗하게 된다고 처녀들을 세뇌시켰다.

심령술을 부리는 고졸출신의 한국청년이 펜팔로 미스프랑스를 사로잡아 국제결혼에 성공한 적이 있었다.

신통력이 들통 나 이혼당하고 말았지만. 사교교주들의 공통점은 여자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영력(?)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박근혜는 최태민의 맹신자가 된 모양이다.

그래서 누가 최태민을 욕하면 “천벌 받을 짓이라”고 펄쩍 뛰었다.

“근혜는 천벌의 뜻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못된 짓을 해도 권력을 쥐고 있어서 아무도 벌을 내리지 못할 때, 하늘이 대신 벌을 내려주는걸 천벌이라고 하죠. 그래서 천벌은 대낮에 벼락 맞듯, 아주 참혹하게 마련이에요. 한국정치사에서 천벌 받은 이는 오직 박정희가문뿐이라고 하지요. 부인 육영수여사가 철통경호 속 에서 진행된 광복절식장에서 총탄에 맞아 숨졌어요. 남편 박정희대통령은 안가에서 여자 연예인들을 끼고 황음무도를 즐기다가 가장 가까운 고향후배인 김재규 정보부장의 총을 맞고 즉사했구요. 이런 걸 천벌이라고 하는 거예요” 박근혜가 시집도 안가고 대통령이 되겠다고 매달리는 건 최태민의 예언 때문이다.

그녀가 정상적인 여자라면 어머니를 비명에 가게하고, 아버지를 흉탄에 쓰러뜨리고 동생들을 불행하게 만든 정치권력에 환멸을 느끼고 치를 떨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불나비처럼 권력을 향해 날뛰고 있다.

독재자의 딸이라서 그럴까? 최태민의 망령에 사로잡혀서 그럴까? 요승 신돈 때문에 고려가 망했다.

최태민은 목사가 아니라 한국판 요승 신돈이다.

한나라당의 어느 중진은 이렇게 혀를 찼다.

 “박후보가 경선에 성공하더라도 본선에서는 결국 최태민 때문에 안 될 것이다” 오죽 하면 여권이 박후보를 도와 이명박죽이기에 그렇게 매달리고 있을까? 박근혜 이명박 검증청문회는 무려 7시간짜리인데도 지루하지 않았다.

죽은 최태민이가 ‘근혜의 남자’로 출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박근혜 '최태민 목사 나쁜 사람 아니다'??? 전과 44범을 감싸는 박근혜의 진실은???  세상을 돌아보다  2012/07/20 13:20 http://booyaso.blog.me/50145917931  기업에 돈 요구, 뇌물수수, 횡령. 국정 인사 및 이권 개입 등 44개의 전과 기록. 숱한 여성과의 염문, 성추행-성폭행 의혹, 6번의 결혼, 7개의 이름.최태민이라는 인물을 설명할때 나오는 말들이다.

박근혜는 이런 최태민에 대해 '나쁜사람이 아니다'라며 감싸는 말을 하기도 했다.

2007년 7월 19일 오전 효창공원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한 말이다.

검증위원회 김명곤 검증위원의 “최태민 목사가 아직도 결백하고 모함을 받고있다고 생각하느냐?” 하는 질문에 “내가 아는 한도 안에서는 그렇다.

비리의 실체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내가 최 목사와 관련하여 ‘천벌을 받는다’ 는 말을 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내가 그런 말을 하게 된 것은 최 목사가 이런 저런 비리가 있어 나쁜 사람이다.

라고 공격을 해놓고 ---그 다음에는 나하고 연결지어 잘못한 것으로 공격한다.

그러면 정말로 참을 수가 없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이야기들을 한다”즉 박근혜는 최태민 목사에 대해 감싸기를 하고 있는 것. 하지만 진실은 다르다.

최태민 목사의 수사자료에만 나타난 범죄행위만 44건. 횡령 14건, 사기 1건 변호사법 위반 11건 권력형 비리 13건 이권개입 2건 융자간여 3건 여기에 온갖 성추문과 성폭행 의혹까지 더해지만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인물인 셈. 대통령이 되겠다는 야심을 불태우고 있는 정치인 박근혜를 이해하려면 그림자처럼 남아있는 최태민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최태민은 청와대 온실 속 화초였던 박근혜에게 대외적인 활동을 하기를 권한 주요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최태민 목사>최태민은 1912년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 앞잡이 황해도경 순사였던 최태민은 해방이후 검거를 피해 이름을 상훈으로 바꾸고 월남한다.

원적지인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읍에서 본적을 경남 양산군 웅상면 삼호리로 바꾸고 강원도, 대전, 인천 등지에서 경찰 생활을 이어나간다.

이후 육군과 해병대에서 '비공식 문관' 으로 활동한다.

전쟁이 일어난 후 1951년 군을 떠나 이름을 다시 '봉수'로 바꾼다.

그리고 대한비누공업협회 이사장, 대한행정신문사 부사장을 지내다가 전쟁이 끝난후인 1954년 김모 여인과 결혼을 한다.

하지만 여성과의 추문을 몰고 다녔던 그는 아내 김모 여인이 최태민을 간통 고소 하자 도주 하여 부산 금화사에 의탁 머리를 깍고 승려가 되어 이름을 '퇴운'으로 바꿨다.

1년 후 돌아온 최태민은 전 부인 임모씨와 재결합을 했다고 한다.

수사자료에 따르면 최태민은 과거에도 수차례 결혼과 동거를 한바 있고 이에 따라 임모씨가 5번째 부인이었다고 서술한다.

최태민은 경남 양산에서 개운중학교를 설립해 교장으로 취임하지만 2년만에 그만두고 '대한농민회 조사부 차장' '전국 불교 청년회 부회장' '한국복지사회 건설회 회장' 등의 직책을 지낸다.

1963년 5월에는 민주공화당 중앙위원이 되고, 1965년에는 천일창고 회사 회장으로 취임하지만 유가증권 위조혐의로 서울지검에 입건된다.

이에 최태민은 다시 도주. 1969년 도피생활을 이어가던 최태민은 공해남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하다가 서울 중림동 성당에서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

이후 최태민은 충청도 계룡산에 들어가 사이비 종교인 영세계를 창립하여 교주가 되어 서울과 대전일대를 돌아다니며 종교사기를 벌였다.

영세계는 불교, 기독교, 천도교를 혼합한 종교라고 한다.

영생교 교주 시절에 최태민은 '방민'이라는 가명을 사용했고 별칭은 '원자경' '칙사' '태자마마'로 불렸다.

최태민이 영세계 교주였다는 사실은 '사이비종교 연구가'인 국제종교문제연구소 탁명환 소장 때문에 알려지게 되었다.

사이비 종교를 연구하고 있던 탁명환 소장은 신문에서 박근혜 옆에 있는 최태민을 발견하고 직접 찾아가 사실 확인을 했다고 한다.

  최태민이 박근혜를 만난것은 1974년 육영수가 총탄에 피격된 직후이다.

어머니를 잃고 슬퍼하는 박근혜에게 접근한 최태민은 박근혜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어머니는 돌아가신 게 아니라 너의 시대를 열어 주기 위해 길을 비켜 주었다는 것, 네가 왜 모르느냐. 너를 한국, 나아가 아시아의 지도자로 키우기 위해 자리만 옮겼을 뿐이다.

어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나를 통하면 항상 들을 수 있다.

육 여사가 꿈에 나타나 ‘내 딸이 우매해 아무 것도 모르고 슬퍼만 한다’면서 ‘이런 뜻을 전해달라’고 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현몽계시. 하지만 최태민이 유일하게 인터뷰한 <가정조선> 1990년 10월호에 따르면 최태민은 이런 현몽계시에 대해 부정했다고 한다.

“‘현몽’ 등의 말이 대학 교육을 받은 박(근혜) 이사장에게 먹혀들 것 같아요? '현몽’이나 정식으로 접견 신청 내용 따위는 쓰지 않았다.

‘위로 말씀을 전하며 기회 있으면 한번 만나주시길 바랍니다’는 말로 끝맺었다”박근혜도 '현몽설'에 대해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이름을 7개나 가진 행적이 수상한 이 남자를 박근혜는 다시 만난다.

1975년 3월 6일의 일이다.

청와대로 가서 박근혜를 만난 최태민은 박근혜에게 대외활동을 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했다고 한다.

그리고 박근혜를 만난 뒤 최태민은 다시한번 변신을 시도한다.

바로 목사 안수를 받은 것.하지만 <월간 중앙>의 보도에 의하면 최태민은 그전까지 신학을 공부한적이 없고 목사직을 돈주고 산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때 최태민은 이름을 '태민'으로 바꾸게 된다.

최태민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변신한 후 최태민 목사는 '대한구국선교단'을 발족하고 총재 자리에 오른다.

'대한구국선교단'의 1975년 5월 '구국기도회'를 통해 발족한다.

당시 참여한 인원은 대략 2000명 정도였다고 한다.

'구국기도회'에 초대받은 박근혜는 그 자리에서 명예총재로 추대되었고 1976년 '구국선교단'이 '구국봉사단'으로 1978년 '새마음 봉사단'으로 이름을 바꾼 뒤 직접 총재가 되어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박근혜가 새마음 봉사단의 총재가 되어 외부활동을 한 것에 대해서는 또다른 이야기가 전해진다.

최태민이 박근혜 이름을 팔고 다니며 사기행각을 벌인다는 소문과 함께 박근혜를 등에 없고 온갖 여성들과 성추문이 들끓게 되자 딸 자식 걱정이 되었던 박정희는 1977년 9월 최태민과 박근혜를 대통령 서재에 불러놓고 '친국'을 했다고 한다.

당시 중앙정보부의 김재규 부장과 백광현 국장도 같이 있었다고 한다.

최태민이 의심스러웠지만 장녀 박근혜가 적극적으로 최태민을 옹호했기에 박정희는 최태민을 처벌하지 않았고 이후 새마음 봉사단의 총재가 된 박근혜 옆에 최태민은 명예총재가 되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당시 최태민은 사석에서 '박근혜는 꼭두각시, 내가 하자는 대로 한다'며 떠벌리고 다녔다는 소문이 있는데, 이 소문에 대해 박근혜는 '최태민 목사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내가 누구 말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보이냐?'며 불쾌해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구국선교단'이 전신인 '새마음봉사단'은 기업인을 구국봉사단운영위원으로 위촉했으며 1인당 2000만원에서 5000만원 입단 찬조비를 받거나 월 200만원 운영비를 받았으며, 그리고 행정기관의 지원을 바탕으로 동단위까지 조직을 확대, 300만명의 단원을 확보했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최태민은 수십억의 돈을 횡령했다는 의혹도 전해진다.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진 10.26사태가 발생한 후 전두환이 정권을 잡고 1980년 11월 새마음 봉사단은 강제 해산된다.

박근혜는 전두환으로부터 당시 6억원을 하사받았고 1983년 육영재단과 영남대 이사장으로 취임하는 등 사회활동을 지속한다.

하지만 최태민은 전두환 정권에 의해 수사를 받고 강원도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1년 6개월 형을 받는다.

최태민과 박근혜와의 스캔들이 일파만파된 상황에서 전두환은 이학봉 합수부 수사국장에게 최태민을 수사하도록 했고 이에 따라 박근혜와 최태민을 떨어뜨려놓기 위해 최태민을 강원도로 보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박근혜가 청와대로 직접 전두환을 찾아가 구명운동을 벌였다는 소문도 들려온다.

물론 이 것에 대해서도 박근혜는 아니라고 답하고 있다.

같은 시기 박근혜는 당시 마약 복용으로 감호소에 갇혀있던 동생 박지만을 한번도 찾아가지 않았다고 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감옥에 있는 동생조차 면회 가지 않는 인물이 최태민 목사의 구명에 힘썼다는 소문이 돌면서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에 대한 의혹이 짙어지게 된것이다.

결국 1년 6개월 형을 받았지만 최태민은 1년만에 풀려나게 되고 다시 박근혜 곁으로 돌아온다.

최태민은 여전히 박근혜의 그림자가 되어 육영재단의 운영에 개입하게 된다.

심지어 최태민의 5번째 딸 최순실까지 육영재단의 어린이회관 운영에 개입하면서 육영재단 직원들은 분노하게 되고 결국 파업과 농성으로 이어진다.

이 일로 박근혜는 1990년 11월 15일 동생 근령에게 이사장직을 넘기게 된다.

당시 박근혜는 이사장직에서 물러나며 "내가 누구에게 조종당한다는 것은 인격 모독"이라며 매우 불쾌해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1990년 당시 박근혜 -근령 -지만 형제 사이에 일어난 편지 사건이다.

"진정코 저희 언니(박근혜)는 최태민씨에게 철저히 속은 죄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속고 있는 언니가 너무도 불쌍합니다! 대통령의 유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어디에 하소연 할 곳도 없고 또 함부로 구원을 청할 곳도 없었습니다.

" "(최태민 목사는) 순수한 저희 언니에게 교묘히 접근해 언니를 격리시키고 고립시킨다"며 "이번 기회에 언니가 구출되지 못하면 언니와 저희들은 영원히 최씨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의 장난에 희생되고 말 것" 이런 내용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 딸 박근령(현 육영재단 이사장)과 장남 박지만(현 EG 대표)은 1990년 8월 14일 A4용지 12장에 이르는 장문의 편지가 노태우 대통령에게 전달된 것이다.

편지의 내용은 대부분 최태민 목사에 대한 비리사실을 고발하고 있다.

  이 편지는 박근령 현 육영재단 이사장이 직접 쓴 것으로 보인다.

실제 <오마이뉴스>가 전문 필적감정소에 의뢰한 결과, 지난 1990년 <가정조선> 12월호에서 보도한 박 이사장의 친필편지와 <오마이뉴스>가 단독 입수한 편지의 필체가 동일인의 것으로 밝혀졌다.

최태민 목사는 이후 1994년 사망할때까지 지병으로 집에만 있었으며 1994년 5월 1일 심근경색으로 82세로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박근혜는 최태민 목사의 5번째 딸 최순실의 남편 정윤회를 비서실장으로 삼으며 정계에 입문한다.

박근혜 의원실의 보좌진을 구성한 것도 정윤회이며 박근혜와 최태민 스캔들을 우려한 주변에서 정윤회를 멀리할 것을 지속적으로 건의하자 현재는 비서실장 직에서 물러나있지만 여전히 박근혜를 위해 정윤회가 일하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이런 의혹이 계속되는 건 박근혜를 만나기 전 무일푼에 가까웠던 최태민의 딸들이 현재 수백억원의 부동산 재벌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최태민은 6명의 부인으로부터 3남6년 9명의 자녀를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태민의 다섯번째 딸인 최순실은  29살이던 1985년 9월 ㅁ빌딩 맞은편의 대지 357.8㎡(108평)를 임아무개씨와 공동매입해 지상 4층 건물을 지었고, 1987년 5월 공동지분을사들여 단독소유주가 된다.

32살 때인 1988년 7월 2명과 공동명의로 신사동에 661㎡(200평) 규모의 땅을 사들였고, 1988년 12월과 1996년 7월에는 공동지분을 차례로 사들여 단독소유주가 됐다.

2003년 7월엔 이 땅에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의 건물(ㅁ빌딩)을 지어 지금까지 보유하고 있으며 건물 시가는 200억 가량이라고 한다.

이 건물에는 최순실의 남편이자 박근혜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정윤회가 대표이사인 (주)얀슨이 입주해있으며 1994년 커피 및 커피기계의 수입·판매, 승마장업, 체육관련용품 수입·판매, 휴게실업 등의 업종을 신고했지만 2001년에 삭제, 곧이어 교육디지털콘텐츠 제작·유통·판매·컨설팅, 도서 출판 및 판매 등을 신고했다가 2003년 삭제. 같은 해 의류 및 가구의 수입·판매도 신고했으나 삭제. 2003년 말엔 국외 이주자 모집·알선, 이주신고 대행, 이주 상담 및 안내 등으로 업종이 계속 변경되어 사업자등록이 되어있다.

얀슨 사무실 직원들은 얀슨의 주 업무가 ㅁ빌딩 관리라고 말한다.

1995년 정윤회와 공동으로 서울 역삼동의 대지 354.1㎡(107평)을 사들여 지하 1층 지상 3층의 다가구용 단독주택(19세대)을 지었고 건물 시가는 40억원 정도이다.

부동산 재벌인 최태민과 그 딸들은 원래부터 부자는 아니었다.

전세를 전전했고 사기행각을 지속적으로 벌일 정도로 생활형편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헌데 어찌된 영문인지 박근혜와 만나 구국선교단, 새마음봉사단 활동을 하면서 최태민의 부동산과 재산이 늘어났던 것이다.

최태민과 박근혜가 남녀관계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사기, 횡령, 사이비 종교활동을 한 인물과 대통령이 되겠다는 인물이 여전히 엮여있다는 점. 박근혜는 여전히 최태민이 깨끗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최태민의 범죄 사실 및 최태민 및 그 자식들의 재산형성 과정에 대해서도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 박근혜와 16년 동고동락 ‘최태민 미스터리’(한겨레 / 김외현 / 2012-07-17)▲1976년 박정희 대통령(왼쪽)이 대한구국선교단 야간진료센터를 방문, 최태민 총재(오른쪽)와 얘기를 나누는 장면. 가운데는 박근혜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 2012 대선주자 탐구|박근혜③ 박근혜와 최태민 지난 40년 가량 박근혜(60)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는 최태민(1912

1994)과의 관계에 대한 의혹이 자주 따라붙었다.

1974년 어머니 육영수가 총탄에 쓰러진 뒤 ‘퍼스트레이디’ 구실을 하던 박근혜는 ‘새마음봉사단’을 대외활동의 중심으로 삼았다.

최태민과 함께 운영했던 단체다.

사이비종교 ‘교주’였다는 설도 있어 최태민의 전력이 불분명하던 터에, 아버지 박정희도 20대의 딸이 그에게 현혹됐다고 생각해 불만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80년대 후반 전두환 정권이 끝나고 대외 활동을 재개한 박근혜는 최태민과 함께 새마음봉사단의 후신인 근화봉사단을 꾸린다.

동생 근령(58)과 대립했던 1990년 육영재단 분란의 배경에도, 최태민과 그의 딸 최순실(56)의 전횡 논란이 있었다.

1998년 국회의원이 된 뒤에는, 최태민의 사위(최순실의 남편) 정윤회(57)가 비서실장이란 호칭을 달고 등장한다.

2004년 박근혜가 당 대표가 되면서 정윤회는 종적을 감췄지만, 2007년 경선 때도, 지금도 그가 박근혜의 비선 조직을 이끌며 핵심 측근으로 활약중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유신말기 새마음봉사단 함께 운영교계에선 “사이비” 구설수“부인 6명·이름 7개”박 “의혹 제기됐지만 실체 없었다” ■ ‘6명의 부인, 7개의 이름’ 최태민은 흔히 목사로 불린다.

1975년 4월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합총회로부터 목사 안수를 받은 뒤부터 생긴 호칭이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와 전두환의 합동수사본부를 거치며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수사자료’를 보면, 그는 불교 승려가 된 적도 있었고 천주교 세례를 받기도 했다.

‘태민’이란 이름도 각종 가명을 포함해 7번째 이름이다.

1912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최태민은 1942

45년 황해도경의 순사였다.

해방 뒤 남쪽에 둥지를 튼 그는 이름을 상훈으로 바꾸고 강원도, 대전, 인천에서 경찰로 일했다.

이후 최태민은 군으로 자리를 옮겨, 육군과 해병대에서 ‘비공식 문관’으로 일했다.

최태민은 1951년 군을 떠나며 이름을 봉수로 바꾸고, 대한비누공업협회 이사장, 대한행정신문사 부사장 등을 지냈다.

전쟁이 끝난 뒤 1954년엔 김아무개씨와 결혼했다가, 김씨가 그를 여자 문제로 고소하자 부산 금화사로 도피했다.

곧장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됐고, 이름을 퇴운으로 바꿨다.

1년여 뒤 김씨와의 문제가 잠잠해지자 산에서 내려와 부산에서 전 부인 임아무개씨와 다시 결합했다.

‘수사 자료’는 임씨가 5번째, 김씨는 6번째 부인이라고 표기했으나, 1

4번째 부인은 등장하지 않는다.

(<월간조선>(2007년 7월호)은 별도의 자료를 인용해 최태민이 6명의 부인으로부터 모두 3남6녀를 두었다며 가계도를 제시한 바 있다.

) 임씨와 결합한 뒤 경남 양산에서 ㄱ중학교를 설립해 교장에 취임한 최태민은 2년 만에 교장을 그만두고, 이후 몇가지 직책을 지냈다.

1965년엔 천일창고라는 회사의 회장으로 있다가 유가증권 위조혐의로 서울지검이 그를 입건하자 도피했다.

도피중이던 1969년엔 공해남이란 가명으로 등장해 서울 중림동 성당에서 영세를 받기도 했다.

70년대 들어 최태민은 서울과 대전 일대에서 난치병을 치료한다는 등 사이비 종교 행각을 벌였다.

불교, 기독교, 천도교를 종합했다는 교리를 내세웠고, 방민이란 가명을 쓰면서 ‘원자경’, ‘칙사’ 또는 ‘태자마마’라는 호칭을 자처했다.

■ 박근혜와의 만남 최태민이 박근혜를 처음 만난 것이 이 무렵이다.

최태민은 1974년 육영수 사망 직후 박근혜에게 편지를 보냈다.

<김형욱 회고록>은 편지 내용을 이렇게 전한다.

“어머니는 돌아가신 게 아니라 너의 시대를 열어 주기 위해 길을 비켜 주었다는 것, 네가 왜 모르느냐. 너를 한국, 나아가 아시아의 지도자로 키우기 위해 자리만 옮겼을 뿐이다.

어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나를 통하면 항상 들을 수 있다.

육 여사가 꿈에 나타나 ‘내 딸이 우매해 아무 것도 모르고 슬퍼만 한다’면서 ‘이런 뜻을 전해달라’고 했다.

” 이른바 ‘현몽(죽은 이가 꿈에 나타남)’이다.

최태민은 이를 부인했다.

그는 <가정조선>(1990년 10월호) 인터뷰에서 “‘현몽’ 등의 말이 대학 교육을 받은 박(근혜) 이사장에게 먹혀들 것 같아요?”라며 “‘현몽’이나 정식으로 접견 신청 내용 따위는 쓰지 않았다.

‘위로 말씀을 전하며 기회 있으면 한번 만나주시길 바랍니다’는 말로 끝맺었다”고 말했다.

박근혜도 현몽설을 부인했다.

박근혜는 1975년 3월6일 최태민을 청와대로 불러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최태민은 외부 활동을 적극 권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근혜를 만난 뒤, 최태민은 목사 안수를 받는다.

<월간중앙>(1993년 11월호)은 “(목사 직을) ‘돈 주고 샀다’는 것이 교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나 이 사실이 확인된 적은 없다.

분명한 한가지는, 목사 안수는 받았지만 신학대학이나 교단이 인정하는 신학교에서 신학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는 점”이라고 전했다.

‘태민’이라는 ‘마지막 이름’을 얻은 것도 이 즈음이다.

최태민 목사는 ‘대한구국선교단’을 발족하고 스스로 총재에 취임한다.

5월 임진강에서 연 ‘구국기도회’에는 2000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박근혜도 참석했다.

최태민의 즉석 제안으로 박근혜는 명예총재로 추대됐다.

이후 박근혜는 구국선교단 행사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고, 1976년 구국선교단은 ‘구국봉사단’으로, 2년 뒤인 1978년엔 다시 ‘새마음봉사단’으로 이름을 바꾼다.

바로 박근혜의 퍼스트레이디 경력의 핵심인 새마음운동의 본산이다.

10·26 뒤 전두환의 합동수사본부에서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최태민에 대한 ‘수사자료’엔 “형식상 모든 업무는 박근혜가 관장하였으나 실질적으로 비공식 고문격인 최태민이 전권을 위임받아 행정부, 정계, 경제계, 언론계 등 각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 봉사단 관계자는 “한마디로 미니 청와대였다”고도 했다.

최태민 주위에선 각종 이권 개입과 횡령, 사기 및 융자 알선 등 권력형 비리, 그리고 온갖 여성과의 스캔들 의혹이 들끓었다.

소문은 박정희 전 대통령 귀에도 들어갔다.

민정비서실과 중앙정보부 보고를 잇따라 받은 박정희는 1977년 9월 직접 최태민을 심문했다.

이른바 ‘친국’(임금이 직접 죄인을 심문함)이다.

대통령 서재에서 진행한 친국엔 중정의 김재규 부장과 백광현 국장이 동석했다.

박근혜도 참석해 “그런 일 없다”며 최태민을 옹호했다는 설도 있다.

박정희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검찰에 넘긴 뒤 검찰 판단에 따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최태민은 새마음봉사단의 명예총재(총재는 박근혜)를 맡는 등 10·26 때까지 박근혜의 옆을 지켰다.

‘박정희 친국’ 뒤에도 살아남아전두환 시절도 육영재단 등 활동박 “어머니 돌아가신뒤 힘들었을 때바로설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분” ■ 10·26 뒤 합수부 조사받고도 박근혜 곁에 10·26 뒤 김재규는 항소이유보충서에서 최태민을 언급한다.

“본인이 결행한 10·26 혁명의 동기 가운데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 한 가지는, 총재 최태민, 명예총재 박근혜양으로 되어 있는 구국여성봉사단 문제이며, 본인은 최 목사의 부정행위를 상세히 조사해 박대통령에게 보고했지만 박대통령은 근혜양을 그 단체에서 손을 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양을 총재로 최태민 목사를 명예총재로 올려놓았다.

” ▲ 1976년 박근혜(오른쪽)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가 최태민 목사와 함께 구국단체결연 단합대회에 참석한 장면. 최태민은 합수부가 진행하는 수사를 받는다.

전두환의 지시로 수사를 맡았던 당시 보안사 대공처장 이학봉은 <신동아>(2007년 6월호) 인터뷰에서 “(최태민을) 강원도로 보내 활동하지 못하도록 했다.

조용하게 자숙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강원도에 그리 오래 두지는 않았다.

구체적 비리 혐의는 기억나는 것이 없고, 그가 기업체로부터 돈을 뜯어낸 것으로 확인된 게 얼마나 되는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박근혜의 연루 의혹은 없었다.

”고 말했다.

새마음봉사단은 1980년 11월 강제해산 당한다.

박근혜는 육영재단과 영남대 등을 통해 사회활동을 이어간다.

최태민도 다시 등장한다.

박근혜는 1983년 1월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3년 뒤 1986년부터 육영재단의 어린이회관에선 최태민의 전횡이 입길에 올랐다.

<여성중앙> 1987년 10월호를 보면, 최태민에게 우선 보고를 해야 이사장(박근혜) 결재를 받을 수 있었으며, 최태민의 5번째 딸 최순실도 회관 운영에 개입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무렵 재단 잡지사 들의 파업과 직원들의 농성도, 모두 ‘외부 세력’이라고 표현된 최태민·최순실 부녀의 간섭이 원인이 됐다.

분란은 1990년 11월15일 박근혜가 동생 근령에게 이사장직을 넘길 때까지 계속됐다.

물러나는 박근혜는 “내가 누구에게 조종받는다는 것은 내 인격에 대한 모독”이라며 최태민의 전횡 의혹을 일축했다.

최태민은 이후 서울 역삼동 자택에 칩거한 것으로 전해지며, 1994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1994년 노환으로 세상 떴으나5번째 딸의 남편 정윤희씨박 ‘미래연합’ 창당때 비서실장최태민, 사후에도 여전히 ‘그림자’ ■ 대이은 ‘충성’ 최태민 사후에도 그의 그림자는 박근혜 곁에 남았다.

최순실의 남편 정윤회가 박근혜의 정계 입문 때부터 등장했다.

2002년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을 때는 비서실장을 맡았다.

박근혜가 한나라당 대표가 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곁을 떠난 것으로 알려진 2004년 6월

2006년 5월에는 국회 입법보조원으로 등록했다.

한 전직 는 “최순실은 박근혜가 장충동에 살던 시절부터 말동무로 지낸온 것으로 들었다”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박근혜 의원실의 보좌진을 구성한 것도 정윤회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박근혜는 2007년 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정윤회의 등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1998년 보궐선거에서) 대구 달성구에 국회의원으로 처음 나왔을 때다.

개인적으로 캠프를 차려 선거를 치르려니 전혀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상대 후보가 안기부 기조실장으로 실세의 기세가 등등했고 위협적인 상대였다.

…그런 상황에서 정윤회씨가 돕겠다 해서 순수하게 도운 것이다.

그게 인연이 돼 국회의원 됐을 때 입법보조원으로…, 이후 당 대표 때 그만뒀다.

” 2007년 7월 이명박 캠프에선 ‘박근혜의 국회 보좌진이 최태민과 친인척 관계다’, ‘박근혜 캠프의 홍윤식 전문가네트워크 위원장과 정윤회가 밀접한 관계다’ 등의 의혹을 제기했다.

전자에 대해선 해당 보좌진이 즉각 부인했고, 후자에 대해선 홍윤식이 최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지금까지 정윤회를 만나본 적도 없고 얼굴도 모른다”고 말했다.

박근혜는 최태민에 대해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힘들었을 때 흔들리지 않고 바로설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분”이라고 말한다.

각종 의혹에 대해선 “의혹은 많이 제기됐지만 실체가 없었다.

한가지라도 사실이었다면 내가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겠나”라며 일축한다.

그러나 박근혜가 다시 대통령에 도전하는 오늘도 정윤회의 이름은 여의도를 떠돈다.

친박 내부에선 친박끼리 “내가 모르는 보고서가 올라간다”며, 정윤회 라인을 의심한다.

반대파는 박근혜나 친박의 결정이 이상하다 싶어서 또 정윤회 라인을 의심한다.

<한겨레>는 각종 의혹에 대한 해명을 듣고자 6월부터 다양한 경로로 정윤회와의 접촉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2007년 경선 시기부터 많은 들이 그를 만나고자 했지만 성공한 바 없다.

■ 최태민 수사 자료?1980년 전두환 지시로 수사…2007년 한나라 경선서 흘러나와최태민 1990년 유일한 인터뷰 “이름 7개씩이나? 터무니 없다”▲ 최태민최태민(사진)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육영재단 분규 때다.

당시 기사를 보면, 최태민의 나이가 69살, 71살, 78살로 들쭉날쭉이다.

그때까지도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는 방증이다.

<월간중앙>(1993년 11월호)은 ‘박근혜-최태민, 20년 커넥션’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재규가 항소이유보충서에서 10·26 사태의 한 동기로 최태민·박근혜씨의 관계를 거론하고, 그의 비행을 알고 있는 몇몇 사람이 ‘정리’를 권유하자 전두환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은 이학봉 수사국장에게 특별조사를 지시했다.

지금까지 그의 신상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대부분 당시 수사 결과에 근거한 것”이라며 최태민의 전력과 박근혜와의 관계를 다뤘다.

이 ‘수사자료’는 공개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가, 2007년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물위로 떠오른다.

<신동아>는 2007년 6월 “중앙정보부가 작성해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최태민 관련 수사보고서인 ‘최태민 관련 자료’를 최근 입수했다”며 그 내용을 상세히 전했다.

같은달 27일에는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경선 후보였던 이해찬의 누리집 게시판에 ‘안기부’라는 이용자가 신동아 자료와 같은 제목의 피디에프(PDF) 파일을 올려놓았다.

최태민의 유일한 인터뷰인 <가정조선> 1990년 10월호에서, 그는 수사자료에 대해 “1977년에 작성된 수사기록이다.

수사 결과 내가 기소된 뒤 기소중지되거나 불기소 등으로 처리됐던 게 아니라 아예 그냥 없었던 일로 처리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6번의 결혼, 7개의 이름’에 대해서도 그는, “이름이 7개씩이나 된다는 것은 터무니 없다”며, 해방 뒤 38선 이남으로 오면서 호적 정리가 되지 않아 이름과 결혼 기록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했다.

최태민 쪽은 1977년 9월 본인이 위출혈로 병원에 입원중일 때 사실상 병실에 감금된 상태에서 수사가 진행돼, 기록도 강압에 의해 작성됐다고 주장했다.

김외현    출처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42931.html 최초로 공개되는 사진이다.

 박정희가 강탈하거나 축재한 재산은 지금 정수장학회 소유로 남아 있다.

정수장학회의 전 명칭은 5·16장학회이고, 5·16장학회의 전신은 부일장학회이다  최태민이 관리자이다.

 정수장학회는 박정희의 정자와 육영수의 수자를 합하여 만들었으며 5,16장학회를 이미지 목적상 정수장학회로 명칭을 바꿨습니다.

구국선교단은 영세교의 이름을 바꾼 단체를 말합니다.

 --------------------------------------------------------------------------------------------------------------------------- 다음 글은 블로그( 'So What? Why be Normal??' )에서 퍼온 글입니다.

 정치권 야사 - 박근혜와 최태민 목사 오늘은 박정희 정권 때 부터 30년 이상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는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에 대해 써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혹 잘못?㎢� 잡혀 들어갈수도 있으니, 민감한 부분은 패스하고, 세간에 떠돌던 얘기를 취합하는 수준에서 쓰겠습니다.

ㅎㅎ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최태민하고의 관계만 보더라도 박근혜는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녀는 지금껏 단 한번도 검증이라는 것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인적이 없습니다.

 김대중은 약관의 나이에 자기사업을 일으킨 사람이고, 만권이상의 책을 읽었고, 40권이상의 저서를 남겼습니다.

경제/통일분야에서 나름의 이론을 정립시켰고, 최고의 국무위원 중 한사람이었으며 국회도서관을 가장 많이찾는 의원이기도 했습니다.

 노무현은 판사를 역임했고, 변호사시절에 뛰어난 승소율을 보였으며, 노동자를 이해하는 의원이었고, 노사정을 중재하는 능력도 보여주었습니다.

지방행정과 분권에 일가견이 있었고, 해수부장관시절에는 뛰어난 행정능력도 보여주었습니다.

 반면에 박근혜는? 지 손으로 번돈이 단, 한푼도 없었습니다.

(국회의원 월급은 제외합시다.

) 행정능력도 검증받은적이 없습니다.

아버지 후광으로 국회의원 되고나서 지금껏 온게 다입니다.

이렇게 불안하고 검증받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아직 잘 모르시겠다고요? 그럼, 아래 제가 쓰는 것을 한번 보십시요. 최태민에 대해서 박근혜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럼, 아마, 저절로 한숨이 나올겁니다.

1990년 박근혜의 동생인 박근영과 박지만이 노태우대통령앞으로 탄원서를 한통 보냅니다.

이 탄원서는 12장이였고,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최태민 목사의 전횡과 횡포와 비리가 너무 심하다.

우리 언니와 우리 가족을 최태민에게서 부터 구해달라, 언니말은 믿지 말라, 언니는 최태민에게 속아 최태민을 옹호하고 있다.

대통령만이 우릴 구해줄 수 있다.

"  이 탄원서로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에 대해, 세상사람들이 궁금해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최태민과 박근혜의 이상한 관계는 박근혜가 최태민과 어울리기 시작할 때부터 여러곳에서 말이 나왔고, 이 둘사이를 떼어놓으려는 시도도 여러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도는 번번히 실패로 돌아갑니다.

문제가 불거질때마다 박근혜가 최태민을 보호했기 때문입니다.

 자, 그럼, 이 목사라고 하는 최태민은 어떤 인간인지 찬찬히 살펴봅시다.

최태민이 박근혜를 처음 만난게 75년 초의 일인데, 이 때 벌서 최태민은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였습니다.

그의 호적엔 그가 1912년에 태어났다고 되어있지만, 최태민은 호적을 여러번 바꾸었기 때문에 (이름도 여러번 바꾸었습니다.

)확실한 나이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단, 1910년대에 태어났다라고만 추측할 뿐입니다.

 어쨌든 이 최태민은 이북출신의 일본순사를 했는데, 해방 후 남한으로 와서 그의 순사경력을 살려 대한민국경찰이 됩니다.

(이 부분도 말이 많은데, 최태민의 아버지는 독립유공자입니다.

근데 그런 아들이 일본순사를 했다는게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최태민이 한국경찰이 되기 위해서 일본순사의 경력을 위조하지 않았나? 라는 의문을 제시 하기도 합니다.

 당시엔 조선인출신 일본경찰은 그냥 한국경찰이 되었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온것 같습니다.

씨바, 승만아, 승만아.) 그리고 전쟁이 터지고 이때부터 최태민은 기이한 인생역정을 살아가게 됩니다.

군대에 잠깐 복무했던, 최태민은 어느날 갑자기 절로 들어가 머리깍고 중이 됩니다.

(이 부분에서 떠도는 말은 최태민은 결혼도 여러번하고 자식도 많은 등 여성편력이 상당했습니다.

그래서 그 중 한 여성이나 부인이 최태민을 혼빙이나 간통으로 고소하여 그것을 피하기 위해 산으로 들어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주 삶 자체가 똥구린 냄새가 나는 인간이지요?) 그리고는 산을 내려와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은 최태민은 승려였던 경험을 살려 불교협회의 간부가 되고, 그것을 이용하여(최태민의 처세술은 상상이상입니다.

)어느 단체의 수장직에 오르지만, 곧 주가위반혐으로 검찰에 �i기는 신세가 되자 다시 잠수를 탑니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 그는 이번엔 천주교 세례를 받습니다.

 천주교 세례를 받은 최태민은 어느날 갑자기 사이비종교를 창설, 그 교주에 올라, 사이비애들이 많이 하는 뭐, 아픈사람 낳게 해준다.

어쩌고 저쩌고를 남발해서 많은 돈을 번것으로 보이는데, 우스운것은 최태민의 이런 사기가 먹혀들어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진짜 아픈사람들이 최태민을 보고 나면 안아파지고 그렇게 해서 교세는 확장되었습니다.

ㅋㅋㅋ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인간이 그만큼 나약한 존재인것 같습니다.

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최태민에게 갔다가, 스스로 믿는 거죠. 좋아진다, 안아프다.

그렇게 하다보면 심리적으로 진짜 안아파 지니(학문적인 의학명으로 일명  플라시보효과라고 하죠) 최태민에게 더욱 의지를 하게 되는 것이죠. (아, 요새 밥벌이도 제대로 안되는데 저도 종교나 하나 만들어야 겠습니다.

) 그런데 돈을 번것 까지는 좋으나 사이비교주의 타이틀로는 한계(그만큼 야망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가 있다는 것을 직감한 최태민은 다시 한번 비상한 머리를 씁니다.

그리하여 탄생한게 최태민 목사입니다.

(종교 그랜드슬램을 이루는 순간입니다.

) 혹자는 안수를 받지않은 사이비 목사라고도 하고, 혹자는 안수는 받았으나 그 안수해준 교회측이 사이비라는 이야기도 합니다만 확실한 것은 최태민은 기독교 공부를 한적이 없다라는 겁니다.

 어쨌든 최태민 목사님께서는 이렇게 목사질을 하며 주류에 편입할라고 기웃기웃거렸습니다.

그러다가 74년 8월 15일, 국모라는 육영수가 문세광의 총탄에 맞고 사망합니다.

박정희도 좌절했지만, 가장 큰 슬픔을 느낀것은 장녀 (배다른 언니 박재옥이 있지만)박근혜였습니다.

그렇게 의기소침해 하고 있던 박근혜에게 어느날 편지 한통이 날아듭니다.

발신인은 최태민 목사 라고 쓰여져 있었습니다.

 출처 : 구봉숙의 도시탈출 팬클럽 --------------------------------------------------------------------------------------------------------------------------- 노태우, 1990년 사직동팀에 최태민 내사 지시기사 2012-09-24 03:00:00 기사수정 2012-09-24 10:43:31 박근혜 검증 리포트, 최태민과 육영재단 잡음은?  최태민과 함께 선 박근혜 1977년 3월 16일 대한구국봉사단이 세운 경로병원 개원식에 당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오른쪽)와 구국봉사단 총재인 최태민 씨가 참석해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동아일보DB 죽어가는 치아? 뽑기전에 치아 <화제>로또 1등번호 패턴 밝혀《 5년의 ‘퍼스트레이디’ 생활과 15년의 정치활동을 통해 어느 정치인보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 하지만 사생활과 과거 행적 중엔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가족과 정수장학회 문제도 박 후보의 골칫거리. 동아일보는 24일부터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에 대한 검증리포트를 세 차례 연재한다.

각종 의혹과 궁금증, 도덕성과 국정운영능력 등을 짚어 본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올 6월경 동생 근령 씨에게 먼저 전화를 건 것으로 전해졌다.

근령 씨와의 불편한 관계를 풀고 가자는 한 친박 원로의 건의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화는 순조롭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두 사람 간 감정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박 후보와 동생들 간 불화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90년 8월. 근령 씨와 남동생 지만 씨가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냈다.

주요 내용은 ‘최태민을 엄벌해 최 씨에게 포위당한 언니(박 후보)를 구출해 달라’는 것. 노 대통령은 청와대 하명사건을 담당하는 이른바 ‘사직동팀’에 최 씨에 대한 내사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 때마다 제기되는 ‘최태민 의혹’ 현재 시중에 돌고 있는 이른바 ‘최태민 보고서’에 따르면 최 씨의 혐의는 횡령 사기 변호사법 위반 등 모두 44건에 이른다.

최 씨의 여성 관계도 상세히 기록돼 있다.

이 보고서는 1912년생인 최 씨의 나이가 76세로 기록돼 있어 1988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작성기관도 분명치 않다.

박 후보 측은 이 보고서가 조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박 후보 측도 박 후보와 최 씨가 상당히 밀접한 사이였음은 부인하기 힘들다.

최 씨가 언론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75년 5월 11일이다.

그는 신도 5000여 명을 경기 파주시 임진각에 모아 박정희 대통령을 위한 기도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박 후보는 최 씨가 총재로 있는 구국선교단의 명예총재로 추대됐다.

이후 박 후보는 1주일에 많을 때는 2, 3차례 최 씨가 주최하는 각종 행사에 참석했다.

박 후보가 1982년 육영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이후에도, 1988년과 89년 각각 박정희·육영수 기념사업회와 근화봉사단을 조직할 때도 최 씨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8년 정계에 입문해서는 최 씨의 사위인 정윤회 씨를 핵심 참모로 기용했다.

정 씨는 2004년 박 후보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를 맡을 때까지 비서실장 역할을 했다.

최근 본보 취재진이 2007년 한나라랑 대선후보 경선 당시 최 씨 관련 의혹을 제기한 인사들을 접촉한 결과 이들 대부분은 “최 씨와 관련해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많지만 아직은 공개할 때가 아니다”는 태도를 보였다.

최 씨의 의붓아들인 조모 씨가 최 씨의 비리를 폭로한 녹취록 등이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조 씨는 박 후보가 영남학원 이사장 시절 학원 운영에 깊이 관여했지만 박 후보는 2007년 검증 청문회에서 조 씨를 모른다고 했다.

조 씨는 2007년 대선 직후 지병으로 숨졌다.

박 후보는 검증 청문회 때 “최 씨에 대한 의혹의 실체가 없다.

최 씨에게 문제가 있었다면 아버지 시대나 이후 정권에서 법적 조치를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후보와 최 씨의 관계를 문제 삼는 이들은 최 씨가 박 후보의 후광을 업고 축재를 일삼았다고 지적한다.

최 씨의 자녀들이 20, 30대에 수백억 원대의 재산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최 씨의 다섯째 딸로 정윤회 씨의 부인은 서울 강남구에 시가 120억 원 상당의 7층짜리 M건물과 강원 평창군에 23만431m² 규모의 땅을 소유하고 있다.

M건물의 땅값은 평당 6000만 원 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로데오 거리와는 조금 떨어져 있어 신사동에서는 그나마 싼 편에 속한다고 한다.

M건물 5층에는 정 씨의 사무실도 있다고 건물 관계자는 전했다.

평창 땅은 알펜시아 리조트와는 거리가 있어 평당 2만, 3만 원 수준이었다.

이곳은 외진 데다 가구도 거의 없었다.

 ○ 육영재단 갈등은 ‘현재진행형’ 박 후보는 1990년 11월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근령 씨에게 물려줬다.

그해 10월 근령 씨를 지지하는 모임의 회원들이 육영재단으로 몰려와 박 후보의 퇴진을 요구하는 등 소란이 빚어진 뒤였다.

2007년 11월에는 회계부정 등을 이유로 교육청으로부터 이사장직 해임 처분을 받은 근령 씨가 육영재단을 떠나지 않자 지만 씨 측 인사인 정모 씨 등이 근령 씨를 육영재단에서 강제로 끌어냈다.

근령 씨의 남편인 신동욱 씨는 이를 ‘육영재단 강탈사건’이라고 주장하며 배후로 지만 씨를 지목했다가 허위사실 유포로 고소됐다.

법원은 정 씨가 이 사건을 모의할 당시 “회장님(지만 씨를 지칭)의 뜻”이라고 말했고 지만 씨가 이 사건에 관여한 이들에게 3억여 원을 빌려주면서 차용증을 쓰지 않은 점 등으로 미뤄 허위사실로 단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정 씨는 이 사건 이후 어린이회관 관장에 올랐다가 2009년 7월 근령 씨에 대한 공동상해 등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자 관장직에서 사임한 뒤 다시 지만 씨의 회사인 EG의 기획실장 겸 비서실장으로 복귀했다.

이때 의문의 살인사건도 발생한다.

같은 해 9월 6일 ‘육영재단 사건’에 깊이 개입한 지만 씨의 5촌 조카 박용철 씨가 피살됐다.

살해 용의자는 역시 지만 씨의 5촌 조카인 박용수 씨였다.

용수 씨는 용철 씨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

경찰은 애초 두 사람 사이에 채무관계가 있었다고 밝혔다가 계좌 추적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자 개인적 원한으로 살해 동기를 바꿨다.

 --------------------------------------------------------------------------------------------------------------------------- ??반대 속에 이어진 30년 관계, ‘최태민 미스테리’  공식적으로 ‘박근혜-최태민’에 대해 언급된 건 지난 대선 때다.

당시 이명박 후보측은 세간에 떠도는 ‘설’을 토대로 최태민과 관련된 다양한 의혹을 제기하며 공세를 폈다.

  부실 검증, 현대사 미스테리가 된 ‘최태민 의혹’  당시 경선후보청문회에서 박근혜는 “최 목사(최태민)는 내가 어려운 시절 나를 도운 사람”이며 “고맙고 훌륭한 분”이라며 그를 끝까지 두둔했다.

2007년의 ‘최태민 검증’은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당내 선거에서 이루어졌을 뿐이다.

상대 후보에게 가벼운 ‘상처’ 정도는 줄지언정, ‘목숨’을 거두어서는 안 되는 일종의 ‘스파링’이었다.

  ‘진검’ 승부가 아닌 ‘목검’ 승부였던 만큼 의혹이 제대로 밝혀지긴 어려웠다.

그러나 보니 최태민과 관련된 무성한 의혹들은 아무것도 밝혀진 것 없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은 ‘최태민 의혹’을 현대사의 ‘미스테리’로 만들고 말았다.

  이번 대선은 ‘최태민 미스테리’를 추적하는 선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태민 의혹’에는 풍부한 얘깃거리와 함께 박정희 시절의 ‘어두운 흔적’까지 담겨 있어 ‘흥행성’도 높은 편이다.

박근혜 측은 ‘단순한 과거사를 가지고 정치공세를 편다’며 ‘문제될 것 없다’는 입장이다.

과연 그럴까? ‘최태민 의혹’을 들여다보면  ‘뇌관’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박정희 생전에 직접 친국한 사건  육영수의 사망 직후 박근혜는 최태민으로 부터 편지를 받는다.

편지에는 ‘육여사(육영수)가 3차례에 걸처 자신(최태민)에게 나타나 근혜를 도와주라고 현몽했다’고 적혀 있었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된다.

박근혜는 그에게 구국봉사단 총재를 맡겼고, 최태민은 박근혜와의 관계를 내세워 기업들로부터 운영비와 입단찬조금을 걷으며 각종 이권에 개입한다.

  당시 청와대 공보비서관이었던 선우련의 1977년 9월 20일자 비망록에는 박정희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백광현 정보부 7국장과 박근혜를 배석시켜 최태민의 비리와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직접 친국을 한 장면이 묘사돼 있다.

  “박대통령은 오늘 나에게 큰 영애인 근혜양과 관련해 물의를 일으켰던 최태민 구국봉사단 총재를 거세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대통령이 나에게 지시한 내용은 세 가지였다.

‘최태민을 거세하고, 향후 근혜와 청와대 주변에 얼씬도 못 하게 하라. 구국봉사단 관련 단체는 모두 해체하라.’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나는 곧 근혜양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렸다.

근혜양은 얼굴이 하얘지더니 낙담한 표정으로 눈물을 지었다.

”  오죽했으면 아버지가 딸을 친국했을까? 박정희는 “최태민과 관련된 보고가 올라올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다”고 말했다고 한다.

최태민과 딸 박근혜의 관계가 어땠으며,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당시 세간에서는 최태민을 ‘박근혜의 그림자’라고 불렀다.

  당시 중앙정보부도 특별수사를 했다  관련된 수사는 조심스럽게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영애이자 퍼스트레이디인 박근혜와의 관계 때문이다.

중정에 의해 밝혀진 ‘인간 최태민’의 모습을 보면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어떻게 저런 사람을 훌륭하고 고마운 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최태민은 해방 전후 경찰공무원으로 있다가 1949년 육군헌병대 문관으로 근무했다.

1954년에는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됐고, 이후 중학교를 설립해 교장이 되기도 했다.

‘영생교’를 만들어 사이비종교의 교주를 하다가 박근혜를 만난 뒤 목사 안수를 받았다.

7개의 이름을 가지고 활동했으며, 결혼도 6차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사정기관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최태민 가계보'>  최태민은 박근혜와의 친분과 관계를 내세워 정계와 재계, 정부 관료와 접촉해 인사, 승진, 공천, 공사 수주 등의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하고, 입회비와 후원금을 빼돌리는 등 공금을 횡령한 것으로 나타난다.

중정 수사자료에는 총 44건 3억1700만원(현재 약 40억원 상당)의 비리 사실이 적시돼 있다.

  ‘박정희 사살’ 이유 중 하나가 ‘최태민’  박정희에게 총격을 가한 김재규는 10.26사건의 정당성을 설파하면서 항소이유서에 ‘최태민 사건’을 거론했다.

사기횡령 등의 비위사실과 여자들과의 온갖 추문까지 있는 사이비 목사가 자칭 ‘태자마마’라며 청와대를 드나들고, 박근혜를 내세워 부정을 저질러 국민과 여성단체들의 원성이 되고 있어, 이를 박정희에게 호소했지만 박정희가 듣지 않았다는 얘기다.

  김재규 변호인은 “(박정희가)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했으면서도 근혜양을 그 단체에서 손 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양을 총재로 하고, 최태민을 명예총재로 올려놓아 결과적으로 개악을 시킨 일이 있었습니다”라고 밝혔다.

  주변의 비리에 대해 직보 하고 충언을 했지만 딸을 감싸기만 한 채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는 박정희에 대해 그의 측근 중 한 사람으로서 크게 실망했고, 이것이 박정희 제거의 한 가지 이유가 됐다는 주장이다.

  전두환까지 ‘박근혜-최태민’ 관계를 우려했다  박근혜가 최태민을 크게 의존했다는 주장과 증언이 있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은 자신의 저서에 ‘박근혜에게 최태민과의 관계를 끊도록 건의한 비서 3명이 모두 잘렸고, 최태민이 추천한 사람만 박근혜의 비서가 됐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 최태민은 탁명환(작고) 당시 현대종교연구소장에게 ‘박근혜의 지프를 타고 왔으며 청와대를 수시로 출입하고 있다’고 자랑했다고 한다.

  박정희 피살 이후 ‘최태민 거세’가 흐지부지 되자 박근혜를 걱정한 청와대 비서관이 전두환 당시 합수부장에게 최태민을 처리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선우련의 부탁을 받은 전두환은 최태민을 강원도 인제의 군부대로 보냈다가, 12.12직후 사기와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1년6개월을 선고했다.

  형제들도 ‘박근혜-최태민’ 관계를 걱정했다  박근혜는 1982년 전두환 정권의 암묵적 배려로 1969년 육영수가 설립한 육영재단 이사장에 취임한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는 두 동생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청와대 시절부터 ‘박근혜의 그림자’로 불리던 최태민이 육영재단 운영 등에 깊숙이 관여해 재산을 착취하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갈등과 반목이 깊어지던 1990년, 드디어 일이 터진다.

박근령과 박지만 두 남매가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보냈다.

그 탄원서의 일부다.

“진정코 저희 언니(박근혜)는 최태민씨에게 철저히 속은 죄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속고 있는 언니가 너무도 불쌍합니다.

대통령의 유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어디에 하소연 할 곳도 없고 또 함부로 구원을 청할 곳도 없었습니다.

”  결국 박근혜가 이사장직에서 물러나면서 ‘육영재단의 난’은 박근령과 박지만의 승리로 끝난다.

‘난’의 목적은 ‘박근혜 사퇴’ 보다 ‘최태민 제거’에 있었다.

형제들은 박근혜가 최태민에게 철저하게 속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주변의 반대 속에도 이어진 ‘30년 관계’  아버지 박정희도, 형제들도, 비서진도, 전두환도, 중앙정보부도, 당시 언론과 사회단체들까지 부정적으로 봤던 ‘박근혜-최태민’의 관계는 30년 동안 이어진다.

박정희의 사망사건이 터지고, 전두환 군부에 의해 최태민이 격리되며 소원해졌던 관계는 박근혜가 육영재단 이사장에 취임하면서 복원된다.

  최태민은 육영재단의 이사로, 고문으로 활동하며 운영에 깊숙이 개입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태민 뿐만 아니다.

그의 사위까지 육영재단에 관여했다.

최태민이 사망(1994년)한 뒤 그이 다섯째 부인의 딸인 최순실의 남편 정윤회는 1996년부터 2004년 까지 박근혜의 보좌관 혹은 비서실장으로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2002년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하고 총재가 됐을 때 정윤회는 총재비서실장이었다.

최태민의 딸 최순실은 강남에 빌딩 두채를 보유한 수백억대 재산가로 알려졌다.

최순실이 부동산을 사들인 때와 최태민이 육영재단의 운영에 깊숙이 개입했던 시점이 일치해 이와 관련된 의혹도 무성하다.

또 항간에는 2004년 이후에도 ‘정윤회 보고라인’이 가동돼 왔고, 4.11 총선 공천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설’도 있다.

  최태민과 그 인척, 육영재단 영남학원까지 좌지우지  1980년 전두환 신군부는 박근혜에게 영남대 재단을 맡긴다.

이사장에 취임했지만 이에 반대하는 학생시위가 일어나 몇달 만에 이사장직에서 물러난다.

하지만 부정입학, 장학금 횡령, 영남대병원 비리 등이 불거져 관선이사 체제가 들어선 1988년까지 이사직을 유지했다.

 부정한 방법으로 영남대의 ‘교주(校主)’가 된 어버지 덕분에 영남학원을 맡았지만, 여기에도 ‘최태민의 흔적’이 발견된다.

영남학원 비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재단운영을 좌지우지해온 4명 중 두 명이 최태민의 인척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영남학원 산하 영남투자금융 등을 관리하며 재단의 실세였던 조순제는 최태민 처의 전남편의 아들이었다.

  영남대병원 관리부원장을 맡아 의료원 관련 비자금 총책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손윤호는 조순제의 외삼촌이었다.

편법과 비리가 판쳤다.

병원장 해외출장비가 박지만의 항공료로 지급되고, 육영재단에 수천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육영재단이 발행하던 <어깨동무> <보물섬> 등에 영남투자금융이 장기 광고를 제재하거나 거액을 기부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맡은 곳 마다 부실, 이런데도 ‘빅토리아 여왕’?   박근혜가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 가졌던 직함 중 대표적인 게 육영재단과 영남학원 이사와 이사장이다.

두 곳 모두 부실운영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

영남학원은 공금 횡령과 기금 전용, 부정 입학 등이 문제가 돼 1988년 사학재단 처음으로 국정감사를 받았다.

이후 20년 동안 관선이사 체제로 운영되다가 2009년에야 정상화가 됐다.

  육영재단은 방만한 운영과 경영부실에 두 차례의 ‘형제의 난’까지 겹치며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우여곡절 끝에 2008년부터 박지만이 추천한 임시이사 9인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선거에서는 ‘여왕’일지는 모르겠으나, 경영에는 재주가 없나 보다.

박근혜가 맡았던 두 기관 모두 풍비박산의 위기를 겪었다.

두 기관의 부실운영에 공교롭게도 최태민이 있었다.

  육영재단과 영남학원, 모두 현존해 있는 기관들이다.

또 관련 인물들 상당수가 생존해 있다.

제대로 검증한다면 ‘미스테리’가 웬만큼 해소될 수도 있어 보인다.

아무튼 ‘최태민 미스테리’는 이번 대선의 최대 쟁점 중 하나가 될 게 분명하다.

 ---------------------------------------------------------------------------------------------------------  다음 글은 '우물에 빠진 개구리'님의 블로그에서 퍼온 글입니다.

 미 비밀 보고서, 최태민이 박근혜의 '몸과 마음을 통제했다'는 소문 보고 미 비밀 외교전문 분석 | 2012/08/23 14:42 뉴요코리안 '박근혜 최태민 소문' 관련 미 비밀문서 언급 내용을 밝힌다.

 최근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새누리당의 대통령 후보로 공식 선출된 바 있다.

이와 동시에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에 대한 여러 의혹들이 다시 인터넷을 휘감고 있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이러한 여러 의혹 중 최근에 다시 제기된 박근혜 후보와 최태민 목사(?)와의 관련 루머에 관해 미국의(정확히는 주한 미국 대사관의 본국 보고서) 비밀문서가 이에 관해 어떠한 언급을 하였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위키리크스에 의해 폭로된 미국 비밀문서는 그 양이 워낙 많고, 한국의 박근혜 정치인에 대한 기록도 엄청난 언급을 곳곳에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제반 사항에 관해서는 차후 글을 올리기로 하고 이번에는 여러 의혹 중 최태민과의 관계만 언급한 부분을 밝히기로 한다.

우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지금 한국의 인터넷에서는 위키리크스 폭로 비밀문서가 박근혜의 사생아 존재까지도 언급했다는 등 여러 사실이 아닌 것들이 유포되고 있어, 필자가 해당 미 외교 비밀문서의 내용을 밝히는 것임을 미리 전제하고자 한다.

 사생아 관련 언급은 없으나, 최태민 관련 의혹(소문)은 정확히 보고  박근혜 후보와 최태민과의 관계에 대한 의혹을 보고한 미 비밀문서는 더 있을 수도 있으나, 필자가 파악한 바로는 2007년 7월 20일 당시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가 본국으로 송고한 비밀문서에서 언급되고 있다.

  이 문서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정치'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가 한국의 정치인들이 특히, 당시 한나라당의 이명박(MB), 박근혜 등이 서로의 과거사를 들추어내는 데 혈안이 되어있다는 보고를 미 본국에 정치 상황 보고한 문서이다.

이 문서의 요약에는 당시 한나라당 안에서도 박근혜의 과거사를 들추어 내려는 시도들이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즉, 이를 번역하자면 "박근혜는 또한 자신의 과거를 해명하도록 강요받고 있는데, 그녀의 반대자들은 “한국판 라스푸틴”이라고 규정을 한, 최태민 목사와의 35년 전에 관계를 포함한, 그리고 그녀 모친이 암살된 이후 그녀가 영부인 역할이었을 당시, 청와대 안에서 그(최태민)가 어떻게 박근혜를 통제했는지도 해명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 정도일 것이다.

이는 그 당시 대통령 후보감으로 자리매김하던 박근혜 후보에 대한 소문이나 의혹을 비교적 자세히 본국에 보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태민을 '한국의 라스푸틴'이라 이색 평가 보고 눈길  또한, 최태민을 '한국의 라스푸틴'이라고 표현한 점도 눈길을 끌고 있다.

라스푸틴은 시베리아의 엉터리 승려였으나,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 때 사술(詐術)로써 황후를 손에 넣은 뒤 황제마저 장악해 온갖 못된 짓을 다 한 음란한 간신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 비밀보고서의 본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즉, 이 내용도 번역하자면, "아마도 그녀가 모친이 암살되었을 당시 자신을 희생해서 나라에 봉사했다는 이미지에 가장 심한 손상을 입게 된 것은, 박근혜가 카리스마가 있던 죽은 최태민 목사와 연결되는 있다는 점이다.

죽은 최 목사가 그녀의 인성 형성기에 박근혜의 몸과 영혼을 완전히 통제했으며, 그런 결과로 최태민의 자녀가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 정도가 될 것이다.

이 역시 미 외교 비밀문서가 이러한 소문이나 의혹의 사실을 보고하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소문이 널리 퍼졌다(rife)고 본국에 보고하고 있는 것이다.

 미 외교 비밀문서, 최태민 의혹은 보고, 그러나 사생아 관련 언급은 없어  다만, 외교관인 버시바우 대사가 소문을 전달함에 있어서도 왜? 최태민이 박근혜의 '몸과 마음(body and soul)을 완전히 통제했다.

'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는지는, (또는 소문 이외의 어떤 근거를 미국 정보기관이 가지고 있었는지 등을 감안할 때) 참으로 외교적 표현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고 하겠다.

본 보고서 요약에서처럼 그냥 통제라고 해도 충분할 내용을 (아무리 소문을 전달하는 차원이지만) 몸과 마음을 다 통제했다고 보고서를 작성한 것이 이채롭다고 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사항이 2007년 7월 20일에 보고된 주한 미국 대사관의 본국 비밀 송신 보고서 중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를 언급한 내용이다.

이미 언급한 대로, 새누리당 후보로 확정된 박근혜에 관한 여러 내용의 보고서도 많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나, 최태민 등 여러 관련 의혹이 제기되고 있고 많은 루머가 확산하고 있는 관계로, 본 필자는 폭로된 미 비밀보고서가 언급한 최태민과의 관계된 부분에 있어서 보고서에서 언급된 사실(fact)만을 다시 언급한 것임을 밝히고자 한다.

 ---------------------------------------------------------------------------------------------------------  다음 글은 '늘친구네 네이버둥지'님의 블로그에서 퍼온 글입니다.

  박근혜의 남자 최태민목사 이계선 ㆍ 2007/07/22 ㆍ추천: 0  ㆍ조회: 5095        한나라당 검증청문회를 TV로 보다가 아내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남자가 누구지?” “지난해까지는 ‘왕의 남자’였는데 요즘은 ‘근혜의 남자’래요”“‘왕의 남자’는 이준기 하나지만 ‘근혜의 남자‘는 너무 많은걸. 박근혜 대표를 누님 누님하면서 따라다니는 이성헌전의원이나 유승민 의원도 있고 늙은 내시처럼 박근혜 캠프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는 서청원 홍사덕도 있으니까”“박근혜의 남자는 최태민 목사래요”나는 한국최고의 인기여성 박근혜의 남자가 재벌이나 욘사마가 아니라 목사라는 말에 기분이 좋았다.

나도 목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태민은 죽은 목사다.

“최태민목사는 1994년에 죽었는데?”“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긴다고 하지 않아요?최태민은 죽어서도 박근혜를 움직이는 영원한 근혜의 남자랍니다”TV를 보니 박근혜 검증의 중심은 최태민 이었다.

질문자들은 중앙정보부장도 청와대공보관출신도 박정희추종자들도 심지어는 박근혜의 동생 근영이와 지만이도 최태민의 비리를 지적했다는 증거를 들이댔다.

박정희대통령은 최태민을 청와대로 불러들여 박근혜, 정보부장, 비서실장이 보는 앞에서 그 옛날 임금이 죄인을 친히 심문하는 친국(親鞫)을 했다.

그리고 최태민의 거세를 명했다.

그런데 박근혜의 읍소작전에 마음이 약해진 박대통령이 거세를 철회했다고 한다.

검증질문자들이 최태민의 비리를 낱낱이 들이대도 박근혜는 요지부동 이었다.

아버지도 정보부장도 동생들도 잘 몰라서 그렇다고 일편단심 춘향이었다.

 최태민은 도대체 얼마나 훌륭한 목사이기에 그럴까? 인터넷을 뒤져봤다.

 최태민. 1912년생. 초등학교졸업. 경찰생활을 하다가 사업가로 변신. 7개의 이름을 갖고 있고 6번 결혼을 했고 여러번 전과기록이 있는 남자. 불교 카토릭 기독교를 전전하면서 개태사의 스님이 됐다가 불교 천도교 기독교를 잡탕시켜 영생교를 만들고 1975년에 영생교 교주가 됐다.

그때부터 목사다.

영생교는 1980년 2대 교주 조희성이 신자들의 재산 갈취, 간음, 살인으로 악명을 떨친 사이비 사교다.

한국최대의 이단 박태선 전도관의 지파다.

이 영생교를 만든 이가 최태민이다.

최태민은 목사가 아니다.

고려말 요승 신돈같은 사이비 종교인일 뿐이다.

사이비와 이단들이 그렇듯 최태민은 혹세무민하는 영력이 있어서 딸 또래의 처녀들을 회롱 하더니 끝내 대통령의 딸을 세뇌(洗腦)시킨 모양이다.

 1974년 육영수여사가 총탄에 간 후 박근혜가 비탄에 빠져있는데 최태민으로 부터 편지한통이 날라 왔다.

 “어머니는 돌아가신 게 아니라 너의 시대를 열어주기 위하여 길을 비켜 주었다는 걸 네가 왜 모르느냐? 너를 한국, 나아가 아시아의 지도자로 키우기 위해 자리만 옮겼을 뿐이다.

어머니 목소리를 듣고 싶을 때 나를 통하면 항상 들을 수 있다”최태민 목사가 간밤 꿈에서 죽은 육영수여사를 만났다는 것이다.

근혜 에게는 최태민의 편지가 신(神)의 목소리를 담은 천서(天書)로 보였다.

문선명이 피 가름이라는 혼음교리(混淫敎理)로 여성들과 희열을 나누고, 정명석은 자신과 성교를 해야 원죄에서 깨끗하게 된다고 처녀들을 세뇌시켰다.

심령술을 부리는 고졸출신의 한국청년이 펜팔로 미스프랑스를 사로잡아 국제결혼에 성공한 적이 있었다.

신통력이 들통 나 이혼당하고 말았지만. 사교교주들의 공통점은 여자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영력(?)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박근혜는 최태민의 맹신자가 된 모양이다.

그래서 누가 최태민을 욕하면 “천벌 받을 짓이라”고 펄쩍 뛰었다.

“근혜는 천벌의 뜻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못된 짓을 해도 권력을 쥐고 있어서 아무도 벌을 내리지 못할 때, 하늘이 대신 벌을 내려주는걸 천벌이라고 하죠. 그래서 천벌은 대낮에 벼락 맞듯, 아주 참혹하게 마련이에요. 한국정치사에서 천벌 받은 이는 오직 박정희가문뿐이라고 하지요. 부인 육영수여사가 철통경호 속 에서 진행된 광복절식장에서 총탄에 맞아 숨졌어요. 남편 박정희대통령은 안가에서 여자 연예인들을 끼고 황음무도를 즐기다가 가장 가까운 고향후배인 김재규 정보부장의 총을 맞고 즉사했구요. 이런 걸 천벌이라고 하는 거예요” 박근혜가 시집도 안가고 대통령이 되겠다고 매달리는 건 최태민의 예언 때문이다.

그녀가 정상적인 여자라면 어머니를 비명에 가게하고, 아버지를 흉탄에 쓰러뜨리고 동생들을 불행하게 만든 정치권력에 환멸을 느끼고 치를 떨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불나비처럼 권력을 향해 날뛰고 있다.

독재자의 딸이라서 그럴까? 최태민의 망령에 사로잡혀서 그럴까? 요승 신돈 때문에 고려가 망했다.

최태민은 목사가 아니라 한국판 요승 신돈이다.

한나라당의 어느 중진은 이렇게 혀를 찼다.

 “박후보가 경선에 성공하더라도 본선에서는 결국 최태민 때문에 안 될 것이다” 오죽 하면 여권이 박후보를 도와 이명박죽이기에 그렇게 매달리고 있을까? 박근혜 이명박 검증청문회는 무려 7시간짜리인데도 지루하지 않았다.

죽은 최태민이가 ‘근혜의 남자’로 출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박근혜 '최태민 목사 나쁜 사람 아니다'??? 전과 44범을 감싸는 박근혜의 진실은???  세상을 돌아보다  2012/07/20 13:20 http://booyaso.blog.me/50145917931  기업에 돈 요구, 뇌물수수, 횡령. 국정 인사 및 이권 개입 등 44개의 전과 기록. 숱한 여성과의 염문, 성추행-성폭행 의혹, 6번의 결혼, 7개의 이름.최태민이라는 인물을 설명할때 나오는 말들이다.

박근혜는 이런 최태민에 대해 '나쁜사람이 아니다'라며 감싸는 말을 하기도 했다.

2007년 7월 19일 오전 효창공원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한 말이다.

검증위원회 김명곤 검증위원의 “최태민 목사가 아직도 결백하고 모함을 받고있다고 생각하느냐?” 하는 질문에 “내가 아는 한도 안에서는 그렇다.

비리의 실체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내가 최 목사와 관련하여 ‘천벌을 받는다’ 는 말을 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내가 그런 말을 하게 된 것은 최 목사가 이런 저런 비리가 있어 나쁜 사람이다.

라고 공격을 해놓고 ---그 다음에는 나하고 연결지어 잘못한 것으로 공격한다.

그러면 정말로 참을 수가 없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이야기들을 한다”즉 박근혜는 최태민 목사에 대해 감싸기를 하고 있는 것. 하지만 진실은 다르다.

최태민 목사의 수사자료에만 나타난 범죄행위만 44건. 횡령 14건, 사기 1건 변호사법 위반 11건 권력형 비리 13건 이권개입 2건 융자간여 3건 여기에 온갖 성추문과 성폭행 의혹까지 더해지만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인물인 셈. 대통령이 되겠다는 야심을 불태우고 있는 정치인 박근혜를 이해하려면 그림자처럼 남아있는 최태민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최태민은 청와대 온실 속 화초였던 박근혜에게 대외적인 활동을 하기를 권한 주요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최태민 목사>최태민은 1912년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 앞잡이 황해도경 순사였던 최태민은 해방이후 검거를 피해 이름을 상훈으로 바꾸고 월남한다.

원적지인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읍에서 본적을 경남 양산군 웅상면 삼호리로 바꾸고 강원도, 대전, 인천 등지에서 경찰 생활을 이어나간다.

이후 육군과 해병대에서 '비공식 문관' 으로 활동한다.

전쟁이 일어난 후 1951년 군을 떠나 이름을 다시 '봉수'로 바꾼다.

그리고 대한비누공업협회 이사장, 대한행정신문사 부사장을 지내다가 전쟁이 끝난후인 1954년 김모 여인과 결혼을 한다.

하지만 여성과의 추문을 몰고 다녔던 그는 아내 김모 여인이 최태민을 간통 고소 하자 도주 하여 부산 금화사에 의탁 머리를 깍고 승려가 되어 이름을 '퇴운'으로 바꿨다.

1년 후 돌아온 최태민은 전 부인 임모씨와 재결합을 했다고 한다.

수사자료에 따르면 최태민은 과거에도 수차례 결혼과 동거를 한바 있고 이에 따라 임모씨가 5번째 부인이었다고 서술한다.

최태민은 경남 양산에서 개운중학교를 설립해 교장으로 취임하지만 2년만에 그만두고 '대한농민회 조사부 차장' '전국 불교 청년회 부회장' '한국복지사회 건설회 회장' 등의 직책을 지낸다.

1963년 5월에는 민주공화당 중앙위원이 되고, 1965년에는 천일창고 회사 회장으로 취임하지만 유가증권 위조혐의로 서울지검에 입건된다.

이에 최태민은 다시 도주. 1969년 도피생활을 이어가던 최태민은 공해남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하다가 서울 중림동 성당에서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

이후 최태민은 충청도 계룡산에 들어가 사이비 종교인 영세계를 창립하여 교주가 되어 서울과 대전일대를 돌아다니며 종교사기를 벌였다.

영세계는 불교, 기독교, 천도교를 혼합한 종교라고 한다.

영생교 교주 시절에 최태민은 '방민'이라는 가명을 사용했고 별칭은 '원자경' '칙사' '태자마마'로 불렸다.

최태민이 영세계 교주였다는 사실은 '사이비종교 연구가'인 국제종교문제연구소 탁명환 소장 때문에 알려지게 되었다.

사이비 종교를 연구하고 있던 탁명환 소장은 신문에서 박근혜 옆에 있는 최태민을 발견하고 직접 찾아가 사실 확인을 했다고 한다.

  최태민이 박근혜를 만난것은 1974년 육영수가 총탄에 피격된 직후이다.

어머니를 잃고 슬퍼하는 박근혜에게 접근한 최태민은 박근혜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어머니는 돌아가신 게 아니라 너의 시대를 열어 주기 위해 길을 비켜 주었다는 것, 네가 왜 모르느냐. 너를 한국, 나아가 아시아의 지도자로 키우기 위해 자리만 옮겼을 뿐이다.

어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나를 통하면 항상 들을 수 있다.

육 여사가 꿈에 나타나 ‘내 딸이 우매해 아무 것도 모르고 슬퍼만 한다’면서 ‘이런 뜻을 전해달라’고 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현몽계시. 하지만 최태민이 유일하게 인터뷰한 <가정조선> 1990년 10월호에 따르면 최태민은 이런 현몽계시에 대해 부정했다고 한다.

“‘현몽’ 등의 말이 대학 교육을 받은 박(근혜) 이사장에게 먹혀들 것 같아요? '현몽’이나 정식으로 접견 신청 내용 따위는 쓰지 않았다.

‘위로 말씀을 전하며 기회 있으면 한번 만나주시길 바랍니다’는 말로 끝맺었다”박근혜도 '현몽설'에 대해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이름을 7개나 가진 행적이 수상한 이 남자를 박근혜는 다시 만난다.

1975년 3월 6일의 일이다.

청와대로 가서 박근혜를 만난 최태민은 박근혜에게 대외활동을 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했다고 한다.

그리고 박근혜를 만난 뒤 최태민은 다시한번 변신을 시도한다.

바로 목사 안수를 받은 것.하지만 <월간 중앙>의 보도에 의하면 최태민은 그전까지 신학을 공부한적이 없고 목사직을 돈주고 산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때 최태민은 이름을 '태민'으로 바꾸게 된다.

최태민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변신한 후 최태민 목사는 '대한구국선교단'을 발족하고 총재 자리에 오른다.

'대한구국선교단'의 1975년 5월 '구국기도회'를 통해 발족한다.

당시 참여한 인원은 대략 2000명 정도였다고 한다.

'구국기도회'에 초대받은 박근혜는 그 자리에서 명예총재로 추대되었고 1976년 '구국선교단'이 '구국봉사단'으로 1978년 '새마음 봉사단'으로 이름을 바꾼 뒤 직접 총재가 되어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박근혜가 새마음 봉사단의 총재가 되어 외부활동을 한 것에 대해서는 또다른 이야기가 전해진다.

최태민이 박근혜 이름을 팔고 다니며 사기행각을 벌인다는 소문과 함께 박근혜를 등에 없고 온갖 여성들과 성추문이 들끓게 되자 딸 자식 걱정이 되었던 박정희는 1977년 9월 최태민과 박근혜를 대통령 서재에 불러놓고 '친국'을 했다고 한다.

당시 중앙정보부의 김재규 부장과 백광현 국장도 같이 있었다고 한다.

최태민이 의심스러웠지만 장녀 박근혜가 적극적으로 최태민을 옹호했기에 박정희는 최태민을 처벌하지 않았고 이후 새마음 봉사단의 총재가 된 박근혜 옆에 최태민은 명예총재가 되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당시 최태민은 사석에서 '박근혜는 꼭두각시, 내가 하자는 대로 한다'며 떠벌리고 다녔다는 소문이 있는데, 이 소문에 대해 박근혜는 '최태민 목사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내가 누구 말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보이냐?'며 불쾌해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구국선교단'이 전신인 '새마음봉사단'은 기업인을 구국봉사단운영위원으로 위촉했으며 1인당 2000만원에서 5000만원 입단 찬조비를 받거나 월 200만원 운영비를 받았으며, 그리고 행정기관의 지원을 바탕으로 동단위까지 조직을 확대, 300만명의 단원을 확보했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최태민은 수십억의 돈을 횡령했다는 의혹도 전해진다.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진 10.26사태가 발생한 후 전두환이 정권을 잡고 1980년 11월 새마음 봉사단은 강제 해산된다.

박근혜는 전두환으로부터 당시 6억원을 하사받았고 1983년 육영재단과 영남대 이사장으로 취임하는 등 사회활동을 지속한다.

하지만 최태민은 전두환 정권에 의해 수사를 받고 강원도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1년 6개월 형을 받는다.

최태민과 박근혜와의 스캔들이 일파만파된 상황에서 전두환은 이학봉 합수부 수사국장에게 최태민을 수사하도록 했고 이에 따라 박근혜와 최태민을 떨어뜨려놓기 위해 최태민을 강원도로 보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박근혜가 청와대로 직접 전두환을 찾아가 구명운동을 벌였다는 소문도 들려온다.

물론 이 것에 대해서도 박근혜는 아니라고 답하고 있다.

같은 시기 박근혜는 당시 마약 복용으로 감호소에 갇혀있던 동생 박지만을 한번도 찾아가지 않았다고 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감옥에 있는 동생조차 면회 가지 않는 인물이 최태민 목사의 구명에 힘썼다는 소문이 돌면서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에 대한 의혹이 짙어지게 된것이다.

결국 1년 6개월 형을 받았지만 최태민은 1년만에 풀려나게 되고 다시 박근혜 곁으로 돌아온다.

최태민은 여전히 박근혜의 그림자가 되어 육영재단의 운영에 개입하게 된다.

심지어 최태민의 5번째 딸 최순실까지 육영재단의 어린이회관 운영에 개입하면서 육영재단 직원들은 분노하게 되고 결국 파업과 농성으로 이어진다.

이 일로 박근혜는 1990년 11월 15일 동생 근령에게 이사장직을 넘기게 된다.

당시 박근혜는 이사장직에서 물러나며 "내가 누구에게 조종당한다는 것은 인격 모독"이라며 매우 불쾌해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1990년 당시 박근혜 -근령 -지만 형제 사이에 일어난 편지 사건이다.

"진정코 저희 언니(박근혜)는 최태민씨에게 철저히 속은 죄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속고 있는 언니가 너무도 불쌍합니다! 대통령의 유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어디에 하소연 할 곳도 없고 또 함부로 구원을 청할 곳도 없었습니다.

" "(최태민 목사는) 순수한 저희 언니에게 교묘히 접근해 언니를 격리시키고 고립시킨다"며 "이번 기회에 언니가 구출되지 못하면 언니와 저희들은 영원히 최씨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의 장난에 희생되고 말 것" 이런 내용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 딸 박근령(현 육영재단 이사장)과 장남 박지만(현 EG 대표)은 1990년 8월 14일 A4용지 12장에 이르는 장문의 편지가 노태우 대통령에게 전달된 것이다.

편지의 내용은 대부분 최태민 목사에 대한 비리사실을 고발하고 있다.

  이 편지는 박근령 현 육영재단 이사장이 직접 쓴 것으로 보인다.

실제 <오마이뉴스>가 전문 필적감정소에 의뢰한 결과, 지난 1990년 <가정조선> 12월호에서 보도한 박 이사장의 친필편지와 <오마이뉴스>가 단독 입수한 편지의 필체가 동일인의 것으로 밝혀졌다.

최태민 목사는 이후 1994년 사망할때까지 지병으로 집에만 있었으며 1994년 5월 1일 심근경색으로 82세로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박근혜는 최태민 목사의 5번째 딸 최순실의 남편 정윤회를 비서실장으로 삼으며 정계에 입문한다.

박근혜 의원실의 보좌진을 구성한 것도 정윤회이며 박근혜와 최태민 스캔들을 우려한 주변에서 정윤회를 멀리할 것을 지속적으로 건의하자 현재는 비서실장 직에서 물러나있지만 여전히 박근혜를 위해 정윤회가 일하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이런 의혹이 계속되는 건 박근혜를 만나기 전 무일푼에 가까웠던 최태민의 딸들이 현재 수백억원의 부동산 재벌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최태민은 6명의 부인으로부터 3남6년 9명의 자녀를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태민의 다섯번째 딸인 최순실은  29살이던 1985년 9월 ㅁ빌딩 맞은편의 대지 357.8㎡(108평)를 임아무개씨와 공동매입해 지상 4층 건물을 지었고, 1987년 5월 공동지분을사들여 단독소유주가 된다.

32살 때인 1988년 7월 2명과 공동명의로 신사동에 661㎡(200평) 규모의 땅을 사들였고, 1988년 12월과 1996년 7월에는 공동지분을 차례로 사들여 단독소유주가 됐다.

2003년 7월엔 이 땅에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의 건물(ㅁ빌딩)을 지어 지금까지 보유하고 있으며 건물 시가는 200억 가량이라고 한다.

이 건물에는 최순실의 남편이자 박근혜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정윤회가 대표이사인 (주)얀슨이 입주해있으며 1994년 커피 및 커피기계의 수입·판매, 승마장업, 체육관련용품 수입·판매, 휴게실업 등의 업종을 신고했지만 2001년에 삭제, 곧이어 교육디지털콘텐츠 제작·유통·판매·컨설팅, 도서 출판 및 판매 등을 신고했다가 2003년 삭제. 같은 해 의류 및 가구의 수입·판매도 신고했으나 삭제. 2003년 말엔 국외 이주자 모집·알선, 이주신고 대행, 이주 상담 및 안내 등으로 업종이 계속 변경되어 사업자등록이 되어있다.

얀슨 사무실 직원들은 얀슨의 주 업무가 ㅁ빌딩 관리라고 말한다.

1995년 정윤회와 공동으로 서울 역삼동의 대지 354.1㎡(107평)을 사들여 지하 1층 지상 3층의 다가구용 단독주택(19세대)을 지었고 건물 시가는 40억원 정도이다.

부동산 재벌인 최태민과 그 딸들은 원래부터 부자는 아니었다.

전세를 전전했고 사기행각을 지속적으로 벌일 정도로 생활형편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헌데 어찌된 영문인지 박근혜와 만나 구국선교단, 새마음봉사단 활동을 하면서 최태민의 부동산과 재산이 늘어났던 것이다.

최태민과 박근혜가 남녀관계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사기, 횡령, 사이비 종교활동을 한 인물과 대통령이 되겠다는 인물이 여전히 엮여있다는 점. 박근혜는 여전히 최태민이 깨끗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최태민의 범죄 사실 및 최태민 및 그 자식들의 재산형성 과정에 대해서도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 박근혜와 16년 동고동락 ‘최태민 미스터리’(한겨레 / 김외현 / 2012-07-17)▲1976년 박정희 대통령(왼쪽)이 대한구국선교단 야간진료센터를 방문, 최태민 총재(오른쪽)와 얘기를 나누는 장면. 가운데는 박근혜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 2012 대선주자 탐구|박근혜③ 박근혜와 최태민 지난 40년 가량 박근혜(60)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는 최태민(1912

1994)과의 관계에 대한 의혹이 자주 따라붙었다.

1974년 어머니 육영수가 총탄에 쓰러진 뒤 ‘퍼스트레이디’ 구실을 하던 박근혜는 ‘새마음봉사단’을 대외활동의 중심으로 삼았다.

최태민과 함께 운영했던 단체다.

사이비종교 ‘교주’였다는 설도 있어 최태민의 전력이 불분명하던 터에, 아버지 박정희도 20대의 딸이 그에게 현혹됐다고 생각해 불만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80년대 후반 전두환 정권이 끝나고 대외 활동을 재개한 박근혜는 최태민과 함께 새마음봉사단의 후신인 근화봉사단을 꾸린다.

동생 근령(58)과 대립했던 1990년 육영재단 분란의 배경에도, 최태민과 그의 딸 최순실(56)의 전횡 논란이 있었다.

1998년 국회의원이 된 뒤에는, 최태민의 사위(최순실의 남편) 정윤회(57)가 비서실장이란 호칭을 달고 등장한다.

2004년 박근혜가 당 대표가 되면서 정윤회는 종적을 감췄지만, 2007년 경선 때도, 지금도 그가 박근혜의 비선 조직을 이끌며 핵심 측근으로 활약중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유신말기 새마음봉사단 함께 운영교계에선 “사이비” 구설수“부인 6명·이름 7개”박 “의혹 제기됐지만 실체 없었다” ■ ‘6명의 부인, 7개의 이름’ 최태민은 흔히 목사로 불린다.

1975년 4월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합총회로부터 목사 안수를 받은 뒤부터 생긴 호칭이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와 전두환의 합동수사본부를 거치며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수사자료’를 보면, 그는 불교 승려가 된 적도 있었고 천주교 세례를 받기도 했다.

‘태민’이란 이름도 각종 가명을 포함해 7번째 이름이다.

1912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최태민은 1942

45년 황해도경의 순사였다.

해방 뒤 남쪽에 둥지를 튼 그는 이름을 상훈으로 바꾸고 강원도, 대전, 인천에서 경찰로 일했다.

이후 최태민은 군으로 자리를 옮겨, 육군과 해병대에서 ‘비공식 문관’으로 일했다.

최태민은 1951년 군을 떠나며 이름을 봉수로 바꾸고, 대한비누공업협회 이사장, 대한행정신문사 부사장 등을 지냈다.

전쟁이 끝난 뒤 1954년엔 김아무개씨와 결혼했다가, 김씨가 그를 여자 문제로 고소하자 부산 금화사로 도피했다.

곧장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됐고, 이름을 퇴운으로 바꿨다.

1년여 뒤 김씨와의 문제가 잠잠해지자 산에서 내려와 부산에서 전 부인 임아무개씨와 다시 결합했다.

‘수사 자료’는 임씨가 5번째, 김씨는 6번째 부인이라고 표기했으나, 1

4번째 부인은 등장하지 않는다.

(<월간조선>(2007년 7월호)은 별도의 자료를 인용해 최태민이 6명의 부인으로부터 모두 3남6녀를 두었다며 가계도를 제시한 바 있다.

) 임씨와 결합한 뒤 경남 양산에서 ㄱ중학교를 설립해 교장에 취임한 최태민은 2년 만에 교장을 그만두고, 이후 몇가지 직책을 지냈다.

1965년엔 천일창고라는 회사의 회장으로 있다가 유가증권 위조혐의로 서울지검이 그를 입건하자 도피했다.

도피중이던 1969년엔 공해남이란 가명으로 등장해 서울 중림동 성당에서 영세를 받기도 했다.

70년대 들어 최태민은 서울과 대전 일대에서 난치병을 치료한다는 등 사이비 종교 행각을 벌였다.

불교, 기독교, 천도교를 종합했다는 교리를 내세웠고, 방민이란 가명을 쓰면서 ‘원자경’, ‘칙사’ 또는 ‘태자마마’라는 호칭을 자처했다.

■ 박근혜와의 만남 최태민이 박근혜를 처음 만난 것이 이 무렵이다.

최태민은 1974년 육영수 사망 직후 박근혜에게 편지를 보냈다.

<김형욱 회고록>은 편지 내용을 이렇게 전한다.

“어머니는 돌아가신 게 아니라 너의 시대를 열어 주기 위해 길을 비켜 주었다는 것, 네가 왜 모르느냐. 너를 한국, 나아가 아시아의 지도자로 키우기 위해 자리만 옮겼을 뿐이다.

어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나를 통하면 항상 들을 수 있다.

육 여사가 꿈에 나타나 ‘내 딸이 우매해 아무 것도 모르고 슬퍼만 한다’면서 ‘이런 뜻을 전해달라’고 했다.

” 이른바 ‘현몽(죽은 이가 꿈에 나타남)’이다.

최태민은 이를 부인했다.

그는 <가정조선>(1990년 10월호) 인터뷰에서 “‘현몽’ 등의 말이 대학 교육을 받은 박(근혜) 이사장에게 먹혀들 것 같아요?”라며 “‘현몽’이나 정식으로 접견 신청 내용 따위는 쓰지 않았다.

‘위로 말씀을 전하며 기회 있으면 한번 만나주시길 바랍니다’는 말로 끝맺었다”고 말했다.

박근혜도 현몽설을 부인했다.

박근혜는 1975년 3월6일 최태민을 청와대로 불러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최태민은 외부 활동을 적극 권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근혜를 만난 뒤, 최태민은 목사 안수를 받는다.

<월간중앙>(1993년 11월호)은 “(목사 직을) ‘돈 주고 샀다’는 것이 교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나 이 사실이 확인된 적은 없다.

분명한 한가지는, 목사 안수는 받았지만 신학대학이나 교단이 인정하는 신학교에서 신학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는 점”이라고 전했다.

‘태민’이라는 ‘마지막 이름’을 얻은 것도 이 즈음이다.

최태민 목사는 ‘대한구국선교단’을 발족하고 스스로 총재에 취임한다.

5월 임진강에서 연 ‘구국기도회’에는 2000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박근혜도 참석했다.

최태민의 즉석 제안으로 박근혜는 명예총재로 추대됐다.

이후 박근혜는 구국선교단 행사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고, 1976년 구국선교단은 ‘구국봉사단’으로, 2년 뒤인 1978년엔 다시 ‘새마음봉사단’으로 이름을 바꾼다.

바로 박근혜의 퍼스트레이디 경력의 핵심인 새마음운동의 본산이다.

10·26 뒤 전두환의 합동수사본부에서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최태민에 대한 ‘수사자료’엔 “형식상 모든 업무는 박근혜가 관장하였으나 실질적으로 비공식 고문격인 최태민이 전권을 위임받아 행정부, 정계, 경제계, 언론계 등 각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 봉사단 관계자는 “한마디로 미니 청와대였다”고도 했다.

최태민 주위에선 각종 이권 개입과 횡령, 사기 및 융자 알선 등 권력형 비리, 그리고 온갖 여성과의 스캔들 의혹이 들끓었다.

소문은 박정희 전 대통령 귀에도 들어갔다.

민정비서실과 중앙정보부 보고를 잇따라 받은 박정희는 1977년 9월 직접 최태민을 심문했다.

이른바 ‘친국’(임금이 직접 죄인을 심문함)이다.

대통령 서재에서 진행한 친국엔 중정의 김재규 부장과 백광현 국장이 동석했다.

박근혜도 참석해 “그런 일 없다”며 최태민을 옹호했다는 설도 있다.

박정희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검찰에 넘긴 뒤 검찰 판단에 따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최태민은 새마음봉사단의 명예총재(총재는 박근혜)를 맡는 등 10·26 때까지 박근혜의 옆을 지켰다.

‘박정희 친국’ 뒤에도 살아남아전두환 시절도 육영재단 등 활동박 “어머니 돌아가신뒤 힘들었을 때바로설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분” ■ 10·26 뒤 합수부 조사받고도 박근혜 곁에 10·26 뒤 김재규는 항소이유보충서에서 최태민을 언급한다.

“본인이 결행한 10·26 혁명의 동기 가운데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 한 가지는, 총재 최태민, 명예총재 박근혜양으로 되어 있는 구국여성봉사단 문제이며, 본인은 최 목사의 부정행위를 상세히 조사해 박대통령에게 보고했지만 박대통령은 근혜양을 그 단체에서 손을 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양을 총재로 최태민 목사를 명예총재로 올려놓았다.

” ▲ 1976년 박근혜(오른쪽)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가 최태민 목사와 함께 구국단체결연 단합대회에 참석한 장면. 최태민은 합수부가 진행하는 수사를 받는다.

전두환의 지시로 수사를 맡았던 당시 보안사 대공처장 이학봉은 <신동아>(2007년 6월호) 인터뷰에서 “(최태민을) 강원도로 보내 활동하지 못하도록 했다.

조용하게 자숙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강원도에 그리 오래 두지는 않았다.

구체적 비리 혐의는 기억나는 것이 없고, 그가 기업체로부터 돈을 뜯어낸 것으로 확인된 게 얼마나 되는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박근혜의 연루 의혹은 없었다.

”고 말했다.

새마음봉사단은 1980년 11월 강제해산 당한다.

박근혜는 육영재단과 영남대 등을 통해 사회활동을 이어간다.

최태민도 다시 등장한다.

박근혜는 1983년 1월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3년 뒤 1986년부터 육영재단의 어린이회관에선 최태민의 전횡이 입길에 올랐다.

<여성중앙> 1987년 10월호를 보면, 최태민에게 우선 보고를 해야 이사장(박근혜) 결재를 받을 수 있었으며, 최태민의 5번째 딸 최순실도 회관 운영에 개입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무렵 재단 잡지사 들의 파업과 직원들의 농성도, 모두 ‘외부 세력’이라고 표현된 최태민·최순실 부녀의 간섭이 원인이 됐다.

분란은 1990년 11월15일 박근혜가 동생 근령에게 이사장직을 넘길 때까지 계속됐다.

물러나는 박근혜는 “내가 누구에게 조종받는다는 것은 내 인격에 대한 모독”이라며 최태민의 전횡 의혹을 일축했다.

최태민은 이후 서울 역삼동 자택에 칩거한 것으로 전해지며, 1994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1994년 노환으로 세상 떴으나5번째 딸의 남편 정윤희씨박 ‘미래연합’ 창당때 비서실장최태민, 사후에도 여전히 ‘그림자’ ■ 대이은 ‘충성’ 최태민 사후에도 그의 그림자는 박근혜 곁에 남았다.

최순실의 남편 정윤회가 박근혜의 정계 입문 때부터 등장했다.

2002년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을 때는 비서실장을 맡았다.

박근혜가 한나라당 대표가 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곁을 떠난 것으로 알려진 2004년 6월

2006년 5월에는 국회 입법보조원으로 등록했다.

한 전직 는 “최순실은 박근혜가 장충동에 살던 시절부터 말동무로 지낸온 것으로 들었다”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박근혜 의원실의 보좌진을 구성한 것도 정윤회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박근혜는 2007년 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정윤회의 등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1998년 보궐선거에서) 대구 달성구에 국회의원으로 처음 나왔을 때다.

개인적으로 캠프를 차려 선거를 치르려니 전혀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상대 후보가 안기부 기조실장으로 실세의 기세가 등등했고 위협적인 상대였다.

…그런 상황에서 정윤회씨가 돕겠다 해서 순수하게 도운 것이다.

그게 인연이 돼 국회의원 됐을 때 입법보조원으로…, 이후 당 대표 때 그만뒀다.

” 2007년 7월 이명박 캠프에선 ‘박근혜의 국회 보좌진이 최태민과 친인척 관계다’, ‘박근혜 캠프의 홍윤식 전문가네트워크 위원장과 정윤회가 밀접한 관계다’ 등의 의혹을 제기했다.

전자에 대해선 해당 보좌진이 즉각 부인했고, 후자에 대해선 홍윤식이 최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지금까지 정윤회를 만나본 적도 없고 얼굴도 모른다”고 말했다.

박근혜는 최태민에 대해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힘들었을 때 흔들리지 않고 바로설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분”이라고 말한다.

각종 의혹에 대해선 “의혹은 많이 제기됐지만 실체가 없었다.

한가지라도 사실이었다면 내가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겠나”라며 일축한다.

그러나 박근혜가 다시 대통령에 도전하는 오늘도 정윤회의 이름은 여의도를 떠돈다.

친박 내부에선 친박끼리 “내가 모르는 보고서가 올라간다”며, 정윤회 라인을 의심한다.

반대파는 박근혜나 친박의 결정이 이상하다 싶어서 또 정윤회 라인을 의심한다.

<한겨레>는 각종 의혹에 대한 해명을 듣고자 6월부터 다양한 경로로 정윤회와의 접촉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2007년 경선 시기부터 많은 들이 그를 만나고자 했지만 성공한 바 없다.

■ 최태민 수사 자료?1980년 전두환 지시로 수사…2007년 한나라 경선서 흘러나와최태민 1990년 유일한 인터뷰 “이름 7개씩이나? 터무니 없다”▲ 최태민최태민(사진)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육영재단 분규 때다.

당시 기사를 보면, 최태민의 나이가 69살, 71살, 78살로 들쭉날쭉이다.

그때까지도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는 방증이다.

<월간중앙>(1993년 11월호)은 ‘박근혜-최태민, 20년 커넥션’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재규가 항소이유보충서에서 10·26 사태의 한 동기로 최태민·박근혜씨의 관계를 거론하고, 그의 비행을 알고 있는 몇몇 사람이 ‘정리’를 권유하자 전두환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은 이학봉 수사국장에게 특별조사를 지시했다.

지금까지 그의 신상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대부분 당시 수사 결과에 근거한 것”이라며 최태민의 전력과 박근혜와의 관계를 다뤘다.

이 ‘수사자료’는 공개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가, 2007년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물위로 떠오른다.

<신동아>는 2007년 6월 “중앙정보부가 작성해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최태민 관련 수사보고서인 ‘최태민 관련 자료’를 최근 입수했다”며 그 내용을 상세히 전했다.

같은달 27일에는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경선 후보였던 이해찬의 누리집 게시판에 ‘안기부’라는 이용자가 신동아 자료와 같은 제목의 피디에프(PDF) 파일을 올려놓았다.

최태민의 유일한 인터뷰인 <가정조선> 1990년 10월호에서, 그는 수사자료에 대해 “1977년에 작성된 수사기록이다.

수사 결과 내가 기소된 뒤 기소중지되거나 불기소 등으로 처리됐던 게 아니라 아예 그냥 없었던 일로 처리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6번의 결혼, 7개의 이름’에 대해서도 그는, “이름이 7개씩이나 된다는 것은 터무니 없다”며, 해방 뒤 38선 이남으로 오면서 호적 정리가 되지 않아 이름과 결혼 기록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했다.

최태민 쪽은 1977년 9월 본인이 위출혈로 병원에 입원중일 때 사실상 병실에 감금된 상태에서 수사가 진행돼, 기록도 강압에 의해 작성됐다고 주장했다.

김외현    출처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42931.html18)[48] 박근혜 대선가도 최대 적은 자신의 그림자             박정희 생전에 직접 친국한 사건    육영수의 사망 직후박근혜는 최태민으로 부터 편지를 받는다.

편지에는 ‘육여사(육영수)가 3차례에 걸처자신(최태민)에게 나타나근혜를 도와주라고 현몽했다’고 적혀 있었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된다.

박근혜는 그에게 구국봉사단 총재를 맡겼고,최태민은 박근혜와의 관계를 내세워기업들로부터 운영비와 입단찬조금을 걷으며각종 이권에 개입한다.

             당시 청와대 공보비서관이었던 선우련의 1977년 9월 20일자 비망록에는박정희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백광현 정보부 7국장과박근혜를 배석시켜 최태민의 비리와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직접 친국을 한 장면이 묘사돼 있다.

 “박대통령은 오늘 나에게큰 영애인 근혜양과 관련해 물의를 일으켰던최태민 구국봉사단 총재를 거세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대통령이 나에게 지시한 내용은 세 가지였다.

  ‘최태민을 거세하고,향후 근혜와 청와대 주변에 얼씬도 못 하게 하라.구국봉사단 관련 단체는 모두 해체하라.’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나는 곧 근혜양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렸다.

근혜양은 얼굴이 하얘지더니 낙담한 표정으로 눈물을 지었다.

”  오죽했으면 아버지가 딸을 친국했을까?박정희는 “최태민과 관련된 보고가 올라올 때마다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다”고 말했다고 한다.

  최태민과 딸 박근혜의 관계가 어땠으며,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당시 세간에서는 최태민을 ‘박근혜의 그림자’라고 불렀다.

   당시 중앙정보부도 특별수사를 했다  관련된 수사는 조심스럽게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영애이자 퍼스트레이디인 박근혜와의 관계 때문이다.

중정에 의해 밝혀진 ‘인간 최태민’의 모습을 보면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어떻게 저런 사람을 훌륭하고 고마운 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최태민은 해방 전후 경찰공무원으로 있다가1949년 육군헌병대 문관으로 근무했다.

1954년에는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됐고,이후 중학교를 설립해 교장이 되기도 했다.

‘영생교’를 만들어 사이비종교의 교주를 하다가박근혜를 만난 뒤 목사 안수를 받았다.

7개의 이름을 가지고 활동했으며,결혼도 6차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사정기관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최태민 가계보'>    최태민은 박근혜와의 친분과 관계를 내세워정계와 재계, 정부 관료와 접촉해 인사, 승진, 공천,공사 수주 등의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하고,입회비와 후원금을 빼돌리는 등공금을 횡령한 것으로 나타난다.

  중정 수사자료에는 총 44건 3억1700만원 (현재 약 40억원 상당)의 비리 사실이 적시돼 있다.

  ?     ‘박정희 사살’ 이유 중 하나가 ‘최태민’  박정희에게 총격을 가한 김재규는10.26사건의 정당성을 설파하면서항소이유서에 ‘최태민 사건’을 거론했다.

사기횡령 등의 비위사실과 여자들과의 온갖 추문까지 있는사이비 목사가 자칭 ‘태자마마’라며 청와대를 드나들고,박근혜를 내세워 부정을 저질러국민과 여성단체들의 원성이 되고 있어,이를 박정희에게 호소했지만 박정희가 듣지 않았다는 얘기다.

 김재규 변호인은“(박정희가)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했으면서도근혜양을 그 단체에서 손 떼게 하기는커녕오히려 근혜양을 총재로 하고, 최태민을 명예총재로 올려놓아결과적으로 개악을 시킨 일이 있었습니다”라고 밝혔다.

             주변의 비리에 대해 직보 하고 충언을 했지만딸을 감싸기만 한 채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는 박정희에 대해그의 측근 중 한 사람으로서 크게 실망했고,이것이 박정희 제거의 한 가지 이유가 됐다는 주장이다.

   전두환까지 ‘박근혜-최태민’ 관계를 우려했다 박근혜가 최태민을 크게 의존했다는 주장과 증언이 있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은 자신의 저서에‘박근혜에게 최태민과의 관계를 끊도록 건의한 비서 3명이 모두 잘렸고,최태민이 추천한 사람만 박근혜의 비서가 됐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 최태민은 탁명환(작고) 당시 현대종교연구소장에게‘박근혜의 지프를 타고 왔으며청와대를 수시로 출입하고 있다’고 자랑했다고 한다.

 박정희 피살 이후 ‘최태민 거세’가 흐지부지 되자박근혜를 걱정한 청와대 비서관이전두환 당시 합수부장에게 최태민을 처리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선우련의 부탁을 받은 전두환은최태민을 강원도 인제의 군부대로 보냈다가,12.12직후 사기와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1년6개월을 선고했다.

   형제들도 ‘박근혜-최태민’ 관계를 걱정했다 박근혜는 1982년 전두환 정권의 암묵적 배려로1969년 육영수가 설립한 육영재단 이사장에 취임한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는 두 동생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청와대 시절부터 ‘박근혜의 그림자’로 불리던최태민이 육영재단 운영 등에 깊숙이 관여해재산을 착취하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갈등과 반목이 깊어지던 1990년, 드디어 일이 터진다.

박근령과 박지만 두 남매가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보냈다.

    그 탄원서의 일부다.

“진정코 저희 언니(박근혜)는최태민씨에게 철저히 속은 죄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속고 있는 언니가 너무도 불쌍합니다.

대통령의 유족이라는 신분 때문에어디에 하소연 할 곳도 없고또 함부로 구원을 청할 곳도 없었습니다.

”          ?       결국 박근혜가 이사장직에서 물러나면서‘육영재단의 난’은 박근령과 박지만의 승리로 끝난다.

‘난’의 목적은 ‘박근혜 사퇴’ 보다 ‘최태민 제거’에 있었다.

형제들은 박근혜가 최태민에게 철저하게 속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주변의 반대 속에도 이어진 ‘30년 관계’  아버지 박정희도, 형제들도, 비서진도, 전두환도,중앙정보부도, 당시 언론과 사회단체들까지 부정적으로 봤던‘박근혜-최태민’의 관계는 30년 동안 이어진다.

  박정희의 사망사건이 터지고,전두환 군부에 의해 최태민이 격리되며소원해졌던 관계는박근혜가 육영재단 이사장에 취임하면서 복원된다.

 최태민은 육영재단의 이사로, 고문으로 활동하며운영에 깊숙이 개입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태민 뿐만 아니다.

그의 사위까지 육영재단에 관여했다.

  최태민이 사망(1994년)한 뒤 그이 다섯째 부인의 딸인최순실의 남편 정윤회는 1996년부터 2004년 까지박근혜의 보좌관 혹은 비서실장으로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   ?  2002년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탈당해‘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하고 총재가 됐을 때정윤회는 총재비서실장이었다.

  최태민의 딸 최순실은강남에 빌딩 두채를 보유한 수백억대 재산가로 알려졌다.

최순실이 부동산을 사들인 때와 최태민이육영재단의 운영에 깊숙이 개입했던시점이 일치해 이와 관련된 의혹도 무성하다.

또 항간에는 2004년 이후에도 ‘정윤회 보고라인’이 가동돼 왔고,  4.11 총선 공천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설’도 있다.

   최태민과 그 인척, 육영재단 영남학원까지 좌지우지  1980년 전두환 신군부는 박근혜에게 영남대 재단을 맡긴다.

이사장에 취임했지만 이에 반대하는 학생시위가 일어나몇달 만에 이사장직에서 물러난다.

하지만 부정입학, 장학금 횡령, 영남대병원 비리 등이 불거져관선이사 체제가 들어선 1988년까지 이사직을 유지했다.

  부정한 방법으로 영남대의 ‘교주(校主)’가 된어버지 덕분에 영남학원을 맡았지만,여기에도 ‘최태민의 흔적’이 발견된다.

  영남학원 비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재단운영을 좌지우지해 온 4명 중두 명이 최태민의 인척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영남학원 산하 영남투자금융 등을 관리하며재단의 실세였던 조순제는최태민 처의 전남편의 아들이었다.

  ? ? ?      ?? ?    영남대병원 관리부원장을 맡아 의료원 관련비자금 총책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손윤호는조순제의 외삼촌이었다.

편법과 비리가 판쳤다.

  병원장 해외출장비가 박지만의 항공료로 지급되고,육영재단에 수천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육영재단이 발행하던 <어깨동무> <보물섬> 등에영남투자금융이 장기 광고를 제재하거나거액을 기부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맡은 곳 마다 부실, 이런데도 ‘빅토리아 여왕’? 박근혜가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 가졌던 직함 중대표적인 게 육영재단과 영남학원 이사와 이사장이다.

두 곳 모두 부실운영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

  영남학원은 공금 횡령과 기금 전용, 부정 입학 등이 문제가 돼1988년 사학재단 처음으로 국정감사를 받았다.

이후 20년 동안 관선이사 체제로 운영되다가2009년에야 정상화가 됐다.

 육영재단은 방만한 운영과 경영부실에두 차례의 ‘형제의 난’까지 겹치며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우여곡절 끝에 2008년부터 박지만이 추천한임시이사 9인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선거에서는 ‘여왕’일지는 모르겠으나, 경영에는 재주가 없나 보다.

] 박근혜가 맡았던 두 기관 모두 풍비박산의 위기를 겪었다.

두 기관의 부실운영에 공교롭게도 최태민이 있었다.

 육영재단과 영남학원, 모두 현존해 있는 기관들이다.

또 관련 인물들 상당수가 생존해 있다.

제대로 검증한다면 ‘미스테리’가 웬만큼 해소될 수도 있어 보인다.

아무튼 ‘최태민 미스테리’는이번 대선의 최대 쟁점 중 하나가 될 게 분명하다.

     박성현 최태민 비선 라인설,정수장학회·육영재단 논란,형제간 불화설 등 걷어내기 위해 잰걸음… ?             ?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검색창에정치인 ‘박근혜’를 하면 관련 자료가 수두룩하다.

A4용지로 34쪽분량이나 된다.

  특히‘논란과 의혹’ 코너에는그를 둘러싼 소문과 의혹이 줄을 잇는다.

    순서대로 옮겨보면   ▶사생아 존재 여부  ▶전두환 정치자금 6억 수수▶성북동 주택 취득  ▶최태민씨와의 관계 ▶최태민씨 비리 옹호  ▶약혼설, 비밀 결혼설▶육영재단 운영관련  ▶영남대학교 관련▶정수장학회 세금 탈루  ▶5·16에 대한 관점 등이 있다.

      위키피디아는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는 데다진행 중이거나 검증되지 않은 사안도 실리는 탓에백과사전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정확도는 떨어진다.

그래도 수시로 정보가 오르내리고,누구나 공짜로 볼 수 있어 그 위상은 날로 높아져 간다.

  위키피디아에 오른 박 전 위원장 관련 의혹의 상당수는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걸러졌다고새누리당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   그러나‘고(故) 최태민 목사 인맥’,육영재단을 둘러싼 가족간 갈등과 반목,정수장학회 처리,박 전 위원장의 사생활 등은이번 대선에서도 쟁점으로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야당과 여권 내 비박(非朴) 진영은박전 위원장의 불투명한 사적 영역’을 집중 폭로해그의독주에 제동을 걸겠다는 심산이다.

?   새누리당도 박 전 위원장에 대한 음해성 공격은 방어하고,상대방에게는 예리한 검증의 칼날을 들이대는네거티브 대응팀 구성을서두른다.

  김재원, 김회선, 권영세 등 검찰 출신전·현직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팀을 꾸리리라는 전망이다.

  최근 박 전 위원장과 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 박태규씨와의유착 의혹을 제기했던 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그러했듯이구체적 사실관계를 들어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경우는즉각적인 사법대응으로 맞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   사실 관계의 거증 없는 ‘독재자의 딸’, ‘수첩공주’, ‘불통’, ‘오만’ 과 같은인신 공격에는 정치적 대응으로도 충분하다는 게 주류진영의 시각이다.

즉 법적 대응과 정치적 대응을 엄격하게 분리하면서도병행하는 전략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박 전 위원장 주변에서도행여 대선 가도의 아킬레스건이 될만한소재들을 하나 둘씩 정리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정윤회는 최태민의 아바타??   서울 여의도 정치권에서 아주 오래된 궁금증 중의 하나는박 전위원장의 비선(秘線) 조직이 과연 존재하는지 여부다.

이른바 ‘7인회’(박 전 위원장 주변의 원로그룹)와 같은정치권 인사들, 국회 보좌진, 외부의 자문팀같이 공개된 조직 말고,뒤에서 그야말로 은밀하게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그림자조직 말이다.

  박 전 위원장이 새누리당을 완벽하게 틀어쥐고,총선 승리를 거머쥐기까지는 신속하고도막강한 사조직의 뒷받침이 있었으리라는 추측이 무성하다.

그 실체가 드러난 적은 없지만정치권에선 이런저런 얘기가 입방아에 오른다.

 ?   그 중심에는 고(故) 최태민 목사와 그의 사위 정윤회 씨가 있다.

정윤회 씨는 최 목사의 딸 최순실 씨의 남편이다.

  1970년대 후반 박정희 대통령의큰 영애로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할 당시박 전 위원장과 친분 관계가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진 최목사는당시는 물론 고인이 된 이후까지각종 비리 의혹을 양산한 논쟁적 인물이었다.

  박 전위원장이 관계한 정수장학회, 육영재단, 영남대 등에는어김없이 ‘최태민 라인’으로 의심받는 인물들이 어른거렸고,내부 분규를 불러온 요인이 되곤 했다는 게 세간의 평가다.

 ?   심지어 새누리당 비박(非朴) 대선후보 진영의 한 주요 인사는요즘 떠도는 소문이라며 이렇게 전했다.

“서울 강남 삼성동 박 전 위원장 자택에고(故) 최태민 목사의 사위 정윤회씨가 드나든다고 한다.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로 이동하기에동네에서도 그를 본 사람이 별로 없다.

또 나갈 때도 삼성동 자택 문이 열리면오토바이를 타고 빠져 나와 쏜살같이 사라진다.

?   ”정씨의 역할을 두고 떠도는이런저런 소문들이 한자락이라도 사실로 밝혀지면과거 박 전위원장과 최목사와의 관계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이는 비선 정치’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   그런 까닭에 정씨는 “철저하고도 은밀하게 움직이며,취재진을 따돌리고자 일부러 오토바이로 이동한다는얘기가 그럴싸하게 나돈다”고 그 인사는 덧붙였다.

  마치 추리 소설의 한 토막 같지만 정씨를박 전 위원장과 최 목사 라인의 연결 고리로의심하는 뿌리가 대단히깊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   정윤회 씨는 박 전 위원장이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를 통해국회에 첫발을 내디딜 즈음부터2004년 3월 국회 입법보조원 등록을 취소할 때까지정치적 최측근으로 통했다.

  정씨는 박 전 위원장 주변에서 ‘2004년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대표직에 오른박전 위원장에게 누가 될까 봐 알아서떠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   그런 정씨인 만큼 2007년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도단연 뉴스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당시 이명박 후보 측은 정씨를 지목, 이른바 논현동 팀을 이끄는 배후 실세”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나아가 정씨를 비롯해 최 목사의 친·인척이박 전 위원장 관련 조직에 어김없이 관여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때를 즈음해 정씨는 정치권에서 행적이 묘연해졌다.

?   정씨 부부의 마지막 흔적은변동된 재산 내역에만 남아 있다.

부인 최순실 씨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차명재산 의혹을 샀던 강남 신사동 빌딩 두 채 중 한 채를 지난 2008년 1월 10일 동부상호저축은행에 매각했다.

이때가 이명박 대통령 취임직전이다.

그런 정씨가 다시, 아니 지금도박 전 위원장 주변에서 활동한 다는 게 가능할까?    박 전 위원장 측은정씨의 역할론을 한마디로 일축한다.

박 전위원장의 한 측근 인사는 공식 입장임을 전제로,?“(박 전 위원과) 정씨가 연락이 되고,조금이라도 그런 관계에 있으면 모르겠으되전혀 있을 수 없는 상황을 전제로엉뚱한 말이 나돈다”며 부인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한다거나,삼성동 자택 집사라는 소문도“100% 엉터리”라는 것이다.

?   하지만 새누리당 안에서도이런 입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않는 이들이 있다.

이를 테면 정씨가 박 전 위원장에게 누가 될까봐알아서 자발적으로 떠난 사람이니,외부에서 도움을 주지 못할 이유도 없다는 말도 그중 하나다.

  그들 말대로 만약 그가 2선에서 은밀하게박 전 위원장을 접촉하거나 보좌한다면그걸 알 만한 사람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박 전 위원장은 정윤회 필요로 하지않아”?   정씨는 현재 국내에 있다고 알려져 있다.

여의도 정치권은 물론심지어 친박계 주변에서도그와 관련한 소문은 유령처럼 떠돈다.

  그러나 그 소문은 아직까지는한 번도 사실로 확인된 적이 없다.

정치컨설턴트인 황태순 위즈덤센터 수석연구위원은박 전 위원장의 정치 스타일이“그런 소문을 불러오는 데 일조한다”고 말했다.

    황 수석연구위원은“박 전 위원장이 당 중진 등 공식 라인의 사람들과는그다지 깊은 대화가 없는 듯 한데 적재적소에 의사결정을 내려왔다.

그래서 어떤 형태로든 ‘비선 조직’의 보좌를 받는다는인식을 당내에 심어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총선 승리까지 박 전 위원장은선거 때마다 거의 불패의 신화를 이어왔다.

박 전 위원장 개인의 능력이 출중하거나,비선 라인이 탁월하거나 둘 중의 하나다.

 ? 그래서 정윤회씨와 같은 비선라인이 계속 회자되는 것이다.

”   또 일부에서는 박 전 위원장의 용인술이그런 소문의 진원지라는 지적도 한다.

박 전 위원장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신뢰할 수 있는가”“진취적인가” 등 크게 두 가지라고 그를 잘 아는 이들은 말한다.

그 중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박 전 위원장의 한 측근인사는 “박 전 위원장은 인생 역정에서 신뢰의 가치를누구보다 뼈저리게 절감했고,지향하는 정치 또한 신뢰에 방점을 둔다”고 밝혔다.

?   결국 박 전 위원장이 마음을 여는 상대는오랜 기간 같이 했던 사람들, 믿음을 준 사람들이다.

그래서 사정을 좀 아는 정치권 인사들은정윤회-최순실 부부가 그에 해당한다고 본다.

  중요한 사실은 1970년대 말 박 전 위원장이최태민 목사와 구국여성봉사단 활동 등을 매개로한 때 긴밀한 협력관계에 있었다는 점이다.

정씨는 그런 최씨의 사위이며,박 전 위원장의 대구 달성 보선을지척에서 도운 첫 정치 참모였다.

?   그래서인지 현 정부 고위직을 지낸 정치권 인사는“대선이라는 중요하고 결정적인 길목에서정씨가 아무런 역할을 안 한다고 볼 수겠는가”라고 오히려 반문했다.

정치의 생리상 정씨가 박 전위원장 의 대선 과정에어떤 식으로든 관여하리라고 짐작하는 시각이다.

?   박 전 위원장의 참모들과 정씨와의 관계에서도 그런 추론이 나올 법 하다.

박 전 위원장의 국회 보좌진 중 4급 보좌관, 5급 비서관,일부 비서 등은 1998년 첫 국회 입문 시점부터 같이 일해온 초창기 멤버들이다.

당시 정씨는 신분이 입법보조원이었지만 호칭은 처음부터 ‘정 실장’으로 통했다.

박 전 위원장 국회 보좌진의 좌장 역할을 했었다는 얘기다.

정씨의 존재감은 바로 이들 국회 보좌진에서 나온다는 말도 있다.

?   정씨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2000년대 중반까지 그를 접해 본이들이 그를 기억하는 내용은 제각각이다.

국회 쪽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당시 그는“정치권의 돌아가는 사정에 비교적 밝았다”는 평가가 많은 편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박 전위원장은 일개 의원에 지나지 않았고,국회 의원회관 직원들은 외부와의 교류가 활발한 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