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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철



 김종필, 정일권, 이후락, 차지철, 박종규, 김형욱, 김재규, 전두환 등...  그중에서 특히 나는 박정희 대통령의 그림자처럼 행동했던 차지철에 대한 내용을 서술하려 한다.

 ---------------------------------------------------------------------------------------------------------------------------------------    유명한 5.16군사혁명 짤방이지?   여기서 중앙에 계신 분이 박정희 대통령(당시 육군 소장) 좌측에 있는 분이 박종규 소령(박정희 정권 제2대 경호실장) 우측에 있는 사람이 바로 이 글에서 다룰 사람인 차지철이야. (당시 육군 대위)   차지철의 고등학교 시절 유일한 친구였던 허봉씨는   "그 친구 간에 어쩌다가 말다툼하고 싸우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나는 차지철하고 그런 적이 없었어요." "워낙 애가 내성적이고 그때는, 온순하고 선량하고 그래서 누구도 싸우는 걸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음... 소심했다! 이렇게 정의하면 되겠다.

그렇지?   이 사람은 박치옥 대령이라는 사람인데 5.16군사혁명 당시에 차지철의 직속상관이었어.  그런데, 박치옥 대령이 부하인 차지철을 불러서   "야 차지철이, 너 가서 소장님(박정희) 지켜드려!" 라고 명령을 했거든? 이 말 한마디에 의해서 박정희와 차지철이 인연을 맺게 되었어.   위의 자막에 이어서 차지철은 허봉에게  "역시 청렴결백한 사람을 좋아할 것 아니야?" 그러면서 "박정희 장군은 청렴결백하다.

" 라고 차지철이 허봉에게 말을 했다고 해.   5.16군사혁명 후 박정희 소장은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으로 취임하게 되는데, 여기서 차지철(윗줄 우측에서 두번째)은 박종규 소령(아랫줄 우측에서 두번째, 모자 안 쓰고 있는 사람)에게 발탁되어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의 경호를 맡게 돼. 이 때의 경호팀 이름은 GREAT TIGER. 줄여서 G.T팀이라고 했다고 해.    1963년 치루어진 대한민국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후보가 당선돼. 박정희 대통령은 차지철에게 말하기를 "지철아. 공부해. 공부해서 정치해. 똑똑해야 정치를 할 수 있는거야." 라고 했는데 차지철은 그 날로 공부를 시작해서 국민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 학위를 따게 돼... 그리고 국회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충복으로 활동을 했었지.   대한민국이 월남(베트남)에 군사를 파병하려 했을 때 몸값이 낮았었거든?   차지철은 당시 월남 파병을 반대하는 공화당 의원들의 리더격이었어. "우리 나라 군인들이 월남 가서 우리 나라의 안보가 위협받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파병을 하면 뭔가를 해줘야할 거 아니야!" "미국은 지금 우리 나라를 이용하려고만 하고 있지, 제놈들이 우리한테 해준게 뭐가 있어!"  대충 이런 논리의 주장을 펴면서 의회 내에서 큰 호응을 얻었었어. 차지철의 이러한 행동에 한국군은 병력을 증파하는 대신 군의 현대화, 경제 원조를 약속받게 되었어. 이 일을 계기로 하여 차지철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한층 더 신뢰를 쌓게 되었지.   (바쁜 게이들은 27초부터)  1974년 8월 15일,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던 문세광의 흉탄에 의해 육영수 여사께서 돌아가시는 사건이 발생해. 이 사건 이후로 경호실장 박종규가 사임하고 후임으로 차지철이 경호실장에 발탁돼.  (육영수 여사 운구차량의 뒤에서 눈물 흘리는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은 육영수 여사께서 돌아가신 후에 무너져 내렸다고 해.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어도 자신의 최고의 버팀목이자 조언자이며 안식처였던 육영수 여사께서 이제는 곁에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지.   이에 차지철은 '어떻게 하면 각하를 즐겁게 해드릴 수 있을까?' 하면서 고민하던 끝에 청와대 경호원들의 무술시범, 언급하면 안될 것 같지만 여자... 등 박정희 대통령을 다시 웃게끔 하도록 엄청난 노력을 하지.   차지철은 경호실장이 된 후에 뒤에 저거 뭐라 그러지... '각하를 지키는 것이 국가를 지키는 것이다.

' 라고 써놓고 붙여놨어. 그만큼 자신의 임무가 막중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거지.   차지철은 경호실장이 된 후에 대통령경호실의 문양 또한 이렇게 바꿨고   경호원들의 복장 또한 나치 독일의 SS친위대처럼 바꿔서 입히게 돼. 더 나아가서 차지철은 경호실에 군인 계급을 단 사람들을 등용해.(특히 전두환이 조직한 사조직인 하나회 출신) 전두환, 노태우역시 이 때 차지철에게 등용되어 경호실에서 근무하게 돼. 차지철은 박종규에 이어 경호실장이 된 후에 가려진 2인자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거야. 당시에 권력의 실세라고 한다면 중앙정보부장, 경호실장, 비서실장 즈음이 되겠지.   당시 차지철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차지철은 스스로 국기하기식이라는 의례를 제정해서 자기가 주관하고 개최하여 이런 행사를 열었었어.   박정희 대통령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당 ;ㅅ;   당시 야당인 신민당에서는 총재를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한창이었는데 여기에 김재규의 중앙정보부가 개입해서 김영삼을 낙선시키기 위해서 온갖 방해공작을 펼치고 있었어. 그런데, 차지철이 갑툭튀해서 "김부장, 그렇게 해서 김영삼이를 어떻게 떨어뜨리겠어요! 이제 신민당 문제는 경호실에서 맡을테니 손 떼요!" 김재규는 분통이 터졌지만 어쩔 수가 없었고 이 문제는 차지철의 경호실에서 맡게 돼. 하지만, 결국은 방해공작은 실패로 돌아가고 차지철은 자신이 실패한 것을 김재규에게 누명을 씌우게 돼.   당시 차지철과 김재규의 대립을 지켜보고 있던 전두환은 후에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 위의 기록처럼 회고했다고 해.   결국 박정희 대통령은 국회에서 김영삼을 제명하게 되는데, 이것이 후에 빌미가 되어 부마항쟁으로 번지게 돼. 김영삼이 제명되자 신민당(김영삼 소속당) 의원 66명이 집단 사퇴서를 제출하는 사건이 발생하지.   1979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유신 7주년 기념 리셉션을 진행하고 있었어. 청와대에 '부산에서 소요사태가 일어났다.

' 는 보고가 올라오기는 했지만, 이 보고로 급파된 내무부장관(현 행정안전부) 구자춘이 "부산 사태는 진압되었습니다.

" 하고 보고를 해서 박정희 대통령은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지.   그러다가 그 날 오후 11시(23시)가 되어서야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인사들은 부마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고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위와 같이 말했어. 부마사태 =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한 민란이다.

   경호실장 차지철은 위와 같이 말했고... ㅡㅡ;; ※며칠 전에 일베에서 이 짤방을 보고 찬탄하면서 이 말을 빨던 ㅄ들이 있던데 이건 빨 일이 아님 그런데 정작 중요한건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가 아닌 차지철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것이야. 당시 차지철은 경호실장이 된 후에 박정희 대통령과 외부의 틈을 철저히 차단했어.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옛날의 냉철한 판단력을 상실하게 되었지... ㅠㅠ -차지철이 박정희 대통령과 외부의 틈을 차단한 사례-  ex) 결재 서류에는 독이 묻었는지 확인한다는 이유로 자기가 먼저 검열 박 대통령에게 가는 전화 또한 자신이 먼저 받음 요인들이 박 대통령을 만나려면 자신을 먼저 거쳐야 함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은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에 참석하셨어.   그런데, 여기를 방문할 때 박 대통령은 헬리콥터(대통령 1호기)를 타고 가셨는데 헬리콥터에 탄 사람은 박정희 대통령, 차지철 경호실장, 김계원 비서실장 김재규도 참석하려 했는데 못 갔어. 왜냐? 차지철이 김재규에게 전화해서 말하기를 "아, 김 부장? 헬기(대통령 1호기)에 자리 없으니까 김 부장은 뒤에 헬기(대통령 2호기) 타고 오든지 말든지 해요!" 김재규는 이 말을 듣고 완전히 빡쳤지. 그래서 행사에 참석 안 하고 남산(중앙정보부)으로 돌아가버려.  이 날 대통령 비서실장인 김계원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궁정동에서 연회를 할 것을 제안하게 되고, 박정희 대통령은 승낙하시지. 이 때 박정희 대통령은 "김부장(김재규)은 왜 안 온거야? 김부장도 오라고 해." 라고 명령을 내리셨어... ㅠㅠㅠㅠ    결국 김재규도 이 날 연회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 날 얘기는 자연스레 신민당 의원 집단 사퇴, 부마사태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가게 되었는데 김재규는 사태의 심각성을 계속 말을 하게 되었고   차지철은 강경론을 펼쳐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말을 하게 돼. 더 나아가서는 김재규에게 "요즘 정보부는 물러터졌어요. 김부장, 무슨 일을 그따위로 하는거에요?" 그런데, 여기서 박정희 대통령 또한 차지철을 거들면서 "차실장 말이 맞아. 정보부는 뭐 하는거야?" 라고 하셨어...   (좌측은 비서실장 김계원. 김재규는 김계원을 죽이지 않았고) (김재규와 같이 박 대통령을 시해했다는 혐의를 받은 김계원은 사형선고를 받았으나)(후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가 특별사면 되어 풀려났다.

)  이에 김재규는 결국 차지철과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게 되지... ㅠㅠ 김재규는 밖으로 나가서 부하인 박흥주, 박선호에게 차지철과 박정희 대통령을 죽이겠다고 말하고 총을 품은 채 연회 자리로 돌아가게 돼. 김재규가 자리로 돌아가자 한양대생인 신재순이 심수봉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었지. 제5공화국 2회. (3분까지만 보면 된다.

)그 때. 김재규가 김계원에게 "형님, 각하를 좀 똑바로 모십시오!" 이에 멈추지 않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차지철을 가리키며 "각하, 이 따위 버러지같은 놈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 정치가 올바로 되겠습니까!" 그러고서는 총을 뽑아서 차지철을 쐈어. 차지철은 팔에 총을 맞았고 급히 화장실로 몸을 숨겼어. 경호실장인 차지철이 제 한 몸 지키고자 도망친 사이 김재규는 박정희 대통령의 가슴을 쐈고... 갑자기 총이 고장나자 급히 밖으로 나가 부하인 박선호의 총을 빼앗아 돌어와서는  화장실에서 나온 차지철의 복부를 쏘아 쓰러뜨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머리를 쐈어. 차지철은 그 때도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었는데 김재규의 부하인 박선호의 명령을 받은 궁정동 안가 경비원들이 확인사살할 때 죽었어.   국가는 차지철을 국립묘지에 안장하려 하였으나 반대로 무산되고 차지철은 어머니가 다니던 경기도 남양주시 영락교회에 묻혔어.    마지막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군법회의 최후진술. 김재규의 육성은 의외로 조급 조잡한(?) 면이 있는 것 같다.

 -------------------------------------------------------------------------------------------------------------------------------------------- 세줄 요약 1. 차지철 5.16군사혁명 때 등용됨 2.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 서거 이후 경호실장에 임명됨 3. 권력 믿고 너무 횡포부리면 안 된다.

 -------------------------------------------------------------------------------------------------------------------------------------------- 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hilliee&logNo=40165599799 (다큐멘터리 원본) http://channel.pandora.tv/channel/video.ptv?ch_userid=happyworld&skey=%EC%9C%A1%EC%98%81%EC%88%98+%EC%95%94%EC%82%B4&prgid=12131860&ref=search&lot=prglist_2 (육영수 여사 피격사건) https://www.youtube.com/watch?v=FjkYeCuFJqo (제5공화국 2편) https://www.youtube.com/watch?v=tfSiJIEXqY4 (김재규 최후진술)  [출처] 각하가 곧 국가다 - 박정희 대통령의 경호실장 차지철[링크] http://www.ilbe.com/16416412916 군사 쿠데타 당시 철제 수류탄 2개를 양쪽 가슴으로 차지한 차지철    5.16 군사 쿠데타 당시 육사 생도들의 퍼레이드에 답례 경례를 붙여 주는 5.16의 주역들   2차 세계댜전이 끝난후 생산되었던 미군의 MK-2 파인애플형 수류탄(후반기 모델)  미군의 MK-2 수류탄 후반기 모델은 5.16 군사 쿠데타 당시 차지철이 장비했던 MK-2 세열 수류탄과 같은 MK-2 수류탄 모델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사용한 MK-2 파인애플형 수류탄     2차 세계대전 당시(상단)와 2차 세계대전 이후(하단)에 생산된 MK-2 수류탄의 모양 비교      1차 세계대전 이후 2차 세계대전 말기 까지 생산된 미군 MK-2 파인애플형 수류탄의 약간씩 변모된 외부 돌기 파편의 생김새       photo from : forums.filefront.com       90thidpg.us?       inert-ord.net16 군사 쿠데타 당시 철제 수류탄 2개를 양쪽 가슴으로 차지한 차지철    5.16 군사 쿠데타 당시 육사 생도들의 퍼레이드에 답례 경례를 붙여 주는 5.16의 주역들   2차 세계댜전이 끝난후 생산되었던 미군의 MK-2 파인애플형 수류탄(후반기 모델)  미군의 MK-2 수류탄 후반기 모델은 5.16 군사 쿠데타 당시 차지철이 장비했던 MK-2 세열 수류탄과 같은 MK-2 수류탄 모델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사용한 MK-2 파인애플형 수류탄     2차 세계대전 당시(상단)와 2차 세계대전 이후(하단)에 생산된 MK-2 수류탄의 모양 비교      1차 세계대전 이후 2차 세계대전 말기 까지 생산된 미군 MK-2 파인애플형 수류탄의 약간씩 변모된 외부 돌기 파편의 생김새       photo from : forums.filefront.com       90thidpg.us?       inert-ord.net 김재규는 박 대통령의 동기(육사 2기)·동향(경북 구미)이다.

[사진 국가기록포털] 1974년 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신 뒤 대통령의 정밀한 판단력이 흐려지는 징후는 여러 군데서 드러났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생활의 균형을 잡게 한 건 육 여사였다.

그분이 세상을 뜨자 대통령은 생각과 행동의 균형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분할하여 통치한다는 박 대통령의 ‘디바이드 앤 룰’(divide & rule)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권력의 추는 2인자 행세를 하는 차지철 경호실장 쪽으로 쏠리고 있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대통령의 신임을 얻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박 대통령은 차지철과 김재규에 둘러싸였다.

비서실장 김계원은 이들을 견제하지도 조정하지도 못했다.

차지철과 김재규의 충성경쟁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았다.

18년 정권, 종말의 무대에서 차지철은 불길했고 김재규는 불안했다.

  76년 12월 박 대통령은 신직수 중앙정보부장을 김재규로 바꾸었다.

‘박동선 대미 로비 의혹’으로 미국 내 한국 여론이 악화되고 있을 때였다.

여기에 고무돼 국내의 반정부 운동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대통령이 정권의 고삐를 바짝 죄는 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김재규는 겉으론 온건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일종의 병인데 욱하는 성질이 지나쳐 한번 흥분하면 얼굴이 빨개가지고 전후좌우 분간을 못하고 마구 욕을 해댄다.

세상에 보이는 것이 없고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자각하지 못한다.

그땐 발작증이라고 치부했다.

요즘 말로 분노 조절 장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재규는 육영수 여사 서거 뒤인 74년 9월 내가 총리로 있던 내각에 건설부 장관으로 입각했다.

그는 국무회의 땐 별로 발언도 하지 않고 조용했다.

그런데 국회의 정책질의에 답변하기 위해 상임위원회에 출석하면 사고를 치곤 했다.

야당 의원들이 장관을 윽박지르는 건 국회에서 예삿일인데 그걸 참지 못하는 것이다.

의원들이 장관을 공격하는 자극적인 발언을 하면 김재규는 느닷없이 벌떡 일어나 “에이, 나 이런 놈의 장관 안 한다”면서 문을 박차고 나가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여야 할 것 없이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느냐”며 혀를 찼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을 가장 가깝게 모시고 마구 돈을 쓰며 정치를 쥐락펴락하는 자리를 차지하게 됐으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김재규의 발작증은 여덟 살이나 아래인 차지철과 경쟁하면서 증세가 더욱 심해졌다.

박 대통령은 김재규를 고향 동생처럼 친밀하게 대했으나 그가 발작증이 있고 정보부장이 된 뒤 더 심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김재규가 10·26 당시 대통령을 향해 권총을 들이댈 때도 욱하는 충동에 발작증세에 빠져 있었다.

제정신이 들어 재판을 받을 때 자기가 민주투사라도 되는 양 오래전부터 준비한 거사라고 했는데, 그의 병을 알고 있는 나에겐 가소로운 얘기였다.

  김재규는 나와 동갑이지만 육사는 박 대통령과 동기생(육사 2기·46년 입교)이다.

고향도 경북 구미로 박 대통령과 동향인 데다 중·고등학교 교사를 한 경력이 있어 국민학교 선생님 출신인 박 대통령은 젊어서부터 그를 따뜻하게 살펴줬다.

박 대통령에게 김재규는 차지철과 비교(5·16 혁명 때 처음 만남)하면 인연과 세월의 깊이가 달랐다.

아랫사람을 앞에 두고 좀처럼 하대하지 않던 박 대통령도 “재규” “재규”하며 그의 이름을 편하게 불렀다.

혁명 뒤 김재규는 6사단장과, 6관구 사령관에 이어 육군방첩대장, 보안사령관을 지내고 3군단장 중장으로 예편해 바로 유정회(73년) 국회의원이 됐는데 박 대통령의 특별한 배려가 아니고선 설명할 수 없는 영전의 연속이었다.

박 대통령 입장에선 김재규처럼 30여 년을 알아온 인물을 옆에 두면 안전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했음직하다.

대통령이 그렇게 믿음을 준 자한테 목숨을 잃었으니 사람의 일이란 허망하기 그지없다.

 1961년 12월 나주 호남비료 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박정희 의장과 김재규 호남비료 사장(오른쪽·준장) .  나는 김재규를 건설부 장관으로 만나기 전까진 그저 그의 거동만 본 정도였다.

박 대통령은 내가 군부 인사들과 접촉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그와 교유(交遊)할 일도 없었다.

김재규가 3군단장 시절에는 ‘총도 제대로 쏠 줄 모르는 사람’이란 악평이 내 귀에까지 들려오기도 했다.

그런 연유 등으로 76년 말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임명 소식에 나는 ‘곤란한 인사’라고 느꼈다.

대통령이 그를 중용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나는 총리직에서 물러나 유정회 의원으로 비교적 한가한 시간을 보내던 때였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77년 12월, 5·16 때부터 나를 도왔고 국무총리 시절 내 정무비서관이었던 김진봉 의원(유정회)이 돌연 김재규 정보부장한테 붙들려 갔다.

청와대 옆에 있던 10·26의 현장, 궁정동 정보부장 안가였다.

김재규는 김진봉에게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김 의원, 당신 이제 큰일 났소. 어제 저녁 영감(박 대통령)을 모시고 조니워커 한 병을 따서 마셨는데 ‘진봉이란 놈, 국회의원은 내가 시켜줬는데 눈만 뜨면 종필이를 대통령 만들겠다고 안달하고 있다며? 그놈 잡아서 조사해 봐’라고 하셨어. 이것 좀 봐. 영감께서 던져주신 서류야.” 1979년 6월 일본 후쿠다 전 총리 방한 때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베푼 연회에 참석한 김계원 비서실장(왼쪽)과 차지철 경호실장. [중앙포토]  김재규의 언급은 있지도 않은 ‘김종필 대권 계획’을 억지로 꾸며 만들어대는 작업의 신호탄이었다.

2주일간 사라졌던 김 의원이 내 앞에 다시 나타난 건 크리스마스를 1주일쯤 남겨둔 때였다.

남산 정보부에 끌려가 취조를 받고 나오는 길이라고 했다.

퀭한 눈에 덥수룩한 수염 그대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동안 정보부는 요원들을 보내 내 집 사방을 감시·도청하는가 하면 각종 기록들을 가져가고 우리 집을 드나드는 인사들을 다 체크했다.

기업하는 나의 사돈과 친지들도 남산에 끌려가 갖은 협박과 회유로 고초를 겪었다.

김재규의 정보부는 내 행동에서 박 대통령에게 도전하는 낌새를 찾아내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

 김진봉 의원에겐 ‘스나이더 미 대사, 베시 주한미군 사령관이 JP의 서산목장을 왜 방문했느냐’ ‘JP는 왜 여당보다 야당 의원들을 자주 만나느냐’ ‘JP가 친한 군부 인사, 외교관, 언론인들이 누구냐’ 하는 것들을 캐물었다고 했다.

하나 우스운 신문 내용은 ‘김종필이 총리 때 야당 의원들이 대정부 질문을 안 하려고 한 이유, 하더라도 아프게 질문하지 않은 이유가 뭐냐’라는 것이다.

별로 나오는 것이 없자 ‘만에 하나 박정희 대통령 유고 시 최규하 총리와 백두진 국회의장, 김종필·정일권 전 국무총리, 윤치영 전 당의장 서리 다섯 명 중 누가 뒤를 잇는 게 좋다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해 “김종필”이라는 답을 유도했다고 하니 유치하기 그지없는 조사였다.

 김재규는 그동안 나에 관해 조사한 것들을 모두 쏟아내놓고 어떻게든 나를 제거할 그림을 그리려고 했다.

그 무렵 김재규와 차지철의 충성경쟁은 위험한 지경으로 치닫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78년 유신헌법 2기 대통령 선거를 한 해 앞두고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김영삼·김대중 등 야당 강경파와 재야 세력들은 헌법 자체를 폐기하라고 요구했다.

또 내가 정치권에 있는 한 나 역시 박 대통령에겐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대통령은 내가 당신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는 의심을 풀지 않았던 것이다.

김재규와 차지철에겐 공통 목표가 있었다.

박 대통령의 심기를 미리 읽어 ‘대통령의 종신집권’을 향해 달려 나가는 일이다.

이 목표를 위해 서로 더 큰 공을 세워 자기 자리를 유지하고 상대방을 쫓아내려다가 무리한 짓을 저지르기 십상이었다.

 박 대통령에게 나를 음해하는 투서를 올린 건 차지철이었다고 한다.

이 사실은 77년 크리스마스이브 때 청구동 내 집을 찾아온 김재규가 실토했다.

차지철 경호실장은 자기 밑에 사설 정보기관을 운영했는데 거기서 엉뚱한 정보를 수집해 왔다는 얘기였다.

박 대통령은 차지철로부터 보고받은 투서를 김재규에게 전달했다.

김재규는 실적을 올리기 위해 강박적으로 나와 내 주변을 조사했지만 아무것도 나오는 게 없었다.

나한테 미안했던지 자기가 조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변명하느라 투서의 전달 경로를 토로한 것이었다.

김재규는 차지철한테 피해의식이 컸다.

서로 경쟁하다 자기가 모자란 것을 대통령이 탓하면 차지철 때문에 당했다는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김재규는 입버릇처럼 “차지철, 이놈을 죽여버려야 한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78년 새해가 됐다.

김재규는 또 새로운 일을 꾸몄다.

박 대통령의 종신집권 계획이었다.

종신집권은 종말의 예고였다.

2월 어느 날, 김재규가 우리 집을 찾아온 게 그 시작이다.

◆중앙정보부의 위상=민주화 시대(1987년) 이전 정권 수호의 기둥이자 정치공작의 중심이었다.

[차지철] 노하우를 알려주마


61년 5·16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산하기관으로 혁명과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김종필 전 총리가 창설, 초대 수장을 맡았다.

기본 임무는 국가 주요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 검찰의 지휘를 받지 않는 독립된 수사권을 보유하고, 국회의 세부 심사를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예산 사용이 가능해 권한이 막강했다.

김형욱 부장(63

69년) 시절 정치공작으로 악명을 떨쳤고, 이후락 부장 재임(70

73년) 중엔 김대중 납치사건을 일으켰다.

박정희 정권 말기엔 청와대 경호실과 충성경쟁을 벌였다.

 ● 인물 소사전김진봉(金振鳳·81)=9대 국회의원. 1961년 5·16 직후 육군 대위로 근무하던 중 김종필(JP) 중앙정보부장 비서관으로 발탁된 뒤 80년 5·17까지 JP 측근으로 활동했다.

민주공화당 창당준비위원장이었던 JP가 1차 외유(63년 2

10월)를 떠난 뒤 당을 지켰다.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63년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 8월 30일 공화당에 들어갈 때 입당원서를 직접 받았다.

71년부터 김종필 총리의 정무비서관을 지내다 73

79년 유신정우회 1, 2기 의원에 지명됐다.

80년 신군부에 의해 정치 규제에 묶였다.

학계(경영학)로 진로를 바꿔 명지대 부총장까지 올랐다.

현재 운정(雲庭·JP의 호)문화재단 이사장이다.

마치 단도직입(單刀直入)적으로 상대방에게 직설(直說)하는 모양새를 짙게 풍기는 이른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이라는 말 말입니다.

그런데 이 직설이 불편하지만은 그래도 왠지 가슴에 와 닿는 분들이 많을 줄 압니다.

언제부터인가 아니. 오래 전부터 우리들은 그 종목이 무엇이든 간에 1등만 신봉하는 자세와 열성을 보여 왔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 말이죠. 그래서 차마 이 말을 차마 부정하기가 어려워 했을 테지요.예를 들어 여러 스포츠종목은 뭐,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우리들이 죽는 그 날까지 손에서 떼지 말아야 할 공부 역시도 1등 지상주의(至上主義)에 젖어 든 것이 언제부터인가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미 일상화 되다시피 하였던 것은 여러분들도 인식을 같이 하실 겁니다  물론. 우리들 스스로 피부로 직접 느끼고 또한 살아 오고 있기도 했으니까 말입니다.

또한 이러한 1등 목표의식을 자연스레 사회로 통해. 학습을 통해서 아니면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당연시 가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라 말하고 싶기도 하고요.’물론, 이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시는 분들도 많을 터인데  그 이유를 들자면은 다름아닌, 오히려 이러한 1등주의 만연으로 인하여 1등 지상주의 페해가 자구 발생 된다는것이 그 방증이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모든 것을(1등 지상주의를 강요하는 일종의 묵시적 사회합의나 정치적 목적 따위 말이죠.) 실로 부정하기에는 스스럼 없이 선뜻 나서기가 어려워 하시는 분들 역시 계실 겁니다.

우리들은(물론, 우리들이라 하여 전부로 일반화 시킨것은 아닙니다.

)   어차피 사회로 진출하여 어떤 동기부여를(1등주의 따위 등) 통해서 야망을 키우기 위함의 초석으로 밟아야 하기에 (자신만의 구역을 만들기 위함 목적으로도)1등주의 대세에 따를 수 밖에 없다고 항변 할 수 있으니까요. , 절대권력자 중심 한 뒷편에는 이를 (권력을) 한층 더 뒷받침 해주는 제 2 인자도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 입니다.

   쉽게 말해 1등이 있으면 1등을 더욱 빛나게 만드는(?) 나머지도 존재하기 마련일 테니 누군가를 빛나게 만드는 사람보다는 빛을 스스로 만드는 사람으로 살기를 원하는 것은 누구나 대부분 인지상정일 것임은 분명하다라는 애기일 겁니다.

.그런데 솔직히,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조차 1등에 목메어 있는데 하물며 그래도 각각의 분야별로 최고들만 밀집해 있다는 정치세계에서는 오직 하겠습니까?그래서 정치에 직접 발을 내 놓은 사람도 아니면 정치라는 구덩이 안 속으로 손이라도 한번 집어 보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도 모두가 다 절대 권력자의 1인자가 되려는 환상과 사심으로 해서 아귀다툼이 지속적이고도 하염없이 벌어 지고 있는 것일 겁니다.

이처럼 아귀다툼의 정치세계로 인하여 실로 숨통과 명줄이 담벼락으로 넘나드는 끔찍스러운 모습 등을 직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목격한 우리들 보통사람들로서는 최고권력자의 자질과 정치세계관에 의해서 얼마나 국가와 국민들의 명줄 등이 왔다 갔다 하는지를 여기서 일목요연하게 말하지 않더라도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어찌 보면 과거를 돌이켜 돌아보면 문득 생 소름과 함께 진저리가 날 정도일 지도 모르지요. 왜냐하면 최고 권력자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자신의 인생의 승패가 갈렸던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말입니다.

.사실 정치라는 오묘하고도 복잡한 세상에서만큼 정치 최고권력자의 행실(行實)과 언행은 정치적 능력만큼 매우 중요하다라는 것은 굳이 여기서 필요 이상으로 말할 필요성조차 없을 겁니다그런데 굳이 여기서 최고 권력자의 의해 세상이 뒤바뀌는 연유를 한번 찾아 보자면은 물론 여러 사유와 변수가 많겠지만은, 최고 권력자의 자질뿐만 아니라 권력의 수성을 뒷받침 해주는 절대 권력자를 보필하는 권력의 제2인자의 능력 또한 결코 빼 놓아서는 안될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선 제2인자를 논하기 전에 우리들은 언제부터인가 무조건적인 신앙심으로 똘똘 뭉친 열렬한 신앙인이 된 기분으로 오직 최고 권력자의 모든 행동을 주시하고 바라 보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최고 권력자의 모든 언행을 비판 없이 그저 추종하기만 했었던 때가 많았던 것이 사실일 겁니다,물론,  여기에 반대급부로 한쪽에서는 맹목적인 마음으로 해서 최고 권력자의 한쪽 면만 파헤치려고 하는 묘한 습성 또한 가지고 있기도 했고요,(잘 잘못이든 잘한 면이든 간에 오직 한 면 쪽으로만 말입니다.

)   권력앞세서 줄서기는 가히 상상을 초월 할 정도라 여겨 집니다.

이른바 무한충성심이야말로 절대권력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여기는것은 어쩌면 인지상정 일지도 모르지요.  물론. 권력의 모든 것을 움켜 쥔 냉엄하고 준엄한 현실 앞에서는 무시무시한 최고 권력자의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없을 터인즉, 그러한 비판의 강도를 조절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이러한 면을(속절없이 정치에 야합하고 기대고 있다라는) 무조건적인 비판만 하기에는 우리들 자신은 무소불의의 현실 정치에 홀로 마주치고 부딪치기에 매우 감당하기가 어려워 했을 겁니다.

뭐, 멀리 갈 것도 없이 군사독재 시절에는 감히 자기 의견을 내놓고 말 할 수 가 없는 시대였지요..분명 좋은 것은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은 나쁜 것임을 만 천하가 다 알고 있고 또한 이를 잘 아는 본인이 자신의 입 밖으로 내 놓고 싶을 때가 제법 있었을 텐데 말이죠솔직히 배운 사람치고 이를 잘 모르는 사람은 없었고 그래서 최고 권력자의 행실이 그리 탐탁지 않았지만 우선 자기 몸보신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자기 가족 생각도 해야 하는, (다소 복잡 다난한 생각으로 빠져드니까) 그래서 모르긴 해도 적지 않게 인생의 딜레마에 뼈져 들어던 여지가 많았을 겁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들은 스스로 되뇌며 희대의 실수를 또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무척이나 심사숙고하고 또 나름대로 정치에 대해서 공부도 많이 하고 고민도 많이 했었을 겁니다.

결국 이러한 고민 등을 아무래도 적지 않은 숙제로 다가오게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머릿속 안이 제법 난해한 숙제로 인하여 뒤엉켜 지며 그럼으로 해서 부담스러워 했을 지도 모릅니다.

당연히 정치라는 과제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거니와 수학 방정식 풀 듯이 척척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 어쩔 수 없이 기나긴 숙제들이 넓디 넓은 공원 저 너머까지 끝없이 펼쳐져 있을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마냥 드넓은 초원에 펼쳐진 많은 숙제를 핑계 삼아서 정치가 좋아지든 더 나빠지든 간에 방관자 입장에서 그저 손 놓고 바라만 볼 수 만은 없을 테지요.   혹, 다량의 숙제를 혼자서 풀지 못할지라도 (결과물만 쭉 펴놓고 속절없는 반항만 할 것이 아니라) 미리 과정에서부터 직간접적으로 참여하여 잘잘못이 있다면은 당연히 비판을 하되 다른 면에서 잘한 면이 보이면 오히려 이를 적극 장려하여 확대 재생산 시키는 것도 오히려 더 좋을 듯 싶다는 애기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일종의 행실장애(行實障碍)로 인해서 압박을 당하여 괴로움과 더불어서 실익(實益)을 놓친 경험이 혹시라도 있을 지 모릅니다,그렇게 되노라면 우리들은 적극적으로 이를 거울삼아서 이러한 실익을 더 이상 놓치지 않기 위해서 부단하게 실수를 만회하려 노력할 겁니다.

  경기도 시흥시에 위치한 이숙번의 묘. 시흥시에서 유일한 사각형 묘라고 합니다.

    그런데 개인의 실익은 상당히 챙겨 들려고 하면서도 국가의 실익은 왠지 모르게 등한시 하는 경향을 어느 정도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물론 소수의 사람의 예이기는 할 테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자신의 실익을 철저히 챙기는 마음이상으로 국가의 실익을 철저하게 챙기기 위해서는 우선은 정치에 관한 무관심 자체를 배제시켜야 할 것임은 자명할 것이고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믿습니다.

또한 이에 못지않게 각각의 정치인들의 신상명세서를 철저하게 파악하고 분석하는 노력 또한 게흘리 하지 말아야 할 테지요.   이숙번의 묘.  훼손된 묘를 다시 복원했다고 합니다.

이미 머리말에서 말했듯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지만 사실 정치세계에서는 기억은 1등만 할지라도 현실적인 파워와 실세를 쥐락펴락 한 장본인은 오히려 제2인자가 도맡아서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것이 사실 일겁니다,모든 행동반경을 제1인자인 절대 권력자가 일일이 좌지우지 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세계사를 돌아 보아도 아니, 가까운 우리 역사를 돌아 보도라도 1인자 못지않은 2인자의 절대권력의 파워를 능히 직간접적으로 느끼고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절대권력의 제 2인자들의 정치적 속성을 가만히 들여다 볼 지라면 마치 "모든 일을 망설이는 것보다 불완전할 때시작하는 것이 한 걸음 앞서는 것이다! " 라는 절대명제를 걸고 권력의 파워를 앞세우는 듯 하더군요.다시 말해 무슨 일이든 가만히 기다릴 바에는 (자신의 주인인 절대권력자 1인자의 심정을 미리 헤아려 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우선 시작하여 끝을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 라는 불도저식 정치관의 속성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애기입니다.

문제는 제법 끝마무리가 상쾌(?)하여 마무리 하는 모양새가 좋아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은 이에 반대급부로 피치 못하게 여러 상황이나 변수들이 튀어 나오는 경우 또한 많은 것이 사실일 겁니다.

,   이른바 피 바람이 몰아치고 난 후의 이미 예견되어 있는 순차적인(돌발적이 아닌) 저항 정도의 상황이라 생각하시면 무난 하겠군요.  이러한 상황이 직면 한 이유는 어차피 권력의 제2인자들의 생각을 권투로 치면 본인이 스웨이(sway)동작과 더킹(ducking)동작으로 해서 제 아무리 상대방의 주먹을 피한들 언젠가는 맞게 되어있다! 라는 다소 이러한 생각을 품고서 절대권력자의 묵시적 승낙을 확대 해석하여 무리한 결론을 내린 탓에 좋지 못한 결과로 이어지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제2 인자들이 자신의 주인인 1인자의 절대 경계선을 넘으려는 행동을 하려는 속뜻은 결코 아닐 겁니다.

누구보다도 논어에 나오는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의 말처럼 군왕은 군왕답게 신하는 신화답게 행실을 보이는 것이야 말로 자신의 명줄과 권력의 수성을 오래 버텨 낼 수 있다! 라는 냉엄한 정치적 현실을 꿰?箚� 있을 테니까요. 박정희 전 대통령을 향해서 "각하가 곧 국가다 !"라는 절대적 명제처럼 만들어서 만 세상에 외쳐 부르짖었던 제 2 의 권력자 차지철  그래서 절대권력자 1인자 앞에서만큼은 2인자인 자신은 절대 권력자의 말 한마디에도 추풍낙엽 신세도 마다 하지 않는 그러한 충성심을 다 보이려 할 테지요. 이것은 마치."하질(下秩)의 개가 감히 당요(唐堯)를 보고 짖어대는 것은 자신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 이라는 옛 고사처럼 자신이 섬기는 절대권력자1인자의 입김이 아니라면 남한테는 짖는 한이 있더라도 감히 나서지 않는 그러한 속성 말입니다.

이러한 자세와 정치적 논리를 너무나 행동으로 잘 표현해준 (절대 권력자의 양지와 그림자 사이를 절묘하게 넘나 들었던) 2인자들은 우리 역사에도 꽤 많습니다.

 그 사례 중에서 (막강한 무소불위라 할 수 있는) 조선 시대의 왕실과 왕권의 권력을 수성한 이방원의 수족으로 일임을 담당했던 이숙번이 그 예일 겁니다.

[차지철] 대단하네요.



이숙번은 이방원의 무소불위의 권력의 수성을 지켜 주지 위해서는 피 바람이 몰아 치는 절대숙명의 상황임에도 일사천리로 수행해 나간 명실공히 이방원의 오른팔 이였고 절대 권력의 2 인자임을 숨기려 들지 않았던 이른바, 지(知) 와 포악함을 동시에 갖춘 문무를 겸비한 인물 이였습니다.

사실 1차 왕자의 난과 2차 왕자의 난을 수습한 경로(徑路)를 보고 따지자면 이숙번의 공로는 가히 으뜸이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침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꼭 여기서 멀리 가서 살필 이유도 없이 (역사를 보면) 가까운 곳에도 어렵지 않게 보실 수 가 있을 겁니다.

다름아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수족이나 다를 바 없었던 경호실장 차지철과 이 역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호실장이자 중앙정보부장이었던 (철저한 오른팔로 자청했었던) 장세동이 그 예입니다.

이들의 하나 같은 공통점은(이숙번, 차지철, 장세동) "어른한테(자신의 주인인 절대 권력자의 1인자)어떠한 일이 발생한다면은 내가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막을 것이며 그러하지 못한다면 나는 어른의 뒤를 따라 가겠다! " 라는 굳은 신념과 결의를 보였던 인물들 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자신을 권력의 제 2인자임을 결코 숨기려 하지 않았고 또한 당연시 했었던 사실상 1인자의 그림자임을 몸소 자청한 그러한 정치적 철학관을 내심 깊은 속에 간직했었던 인물이라는 것이지요.물론 당연하겠지만, 절대권력의 2인자임을 스스로 자청했기에 절대 권력자의 신임과 더불어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왔던 것일 겁니다.

그래서 이들로 의해서 (막강한 권력 앞에 휘 들 리고) 피치 못하게 누군가가 아니면 본인 자신이 피해를 상당히 입었다 하더라도 감히 나서지 못했고 또한 이와는 반대편에서는 은연중에 이들의 그림자 노릇이라도 해 볼 심산으로 줄서기도 심심찮게 일어 나기도 했었던 것이지요..아이러니 하게도 그림자 아래에 또 다른 그림자 노릇을 해 보겠다는 심산 이였으니 권력의 단맛은 참으로 대단하고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나 봅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위해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는 신념 하나로 평생을 모시며 제2의 권력을 행사했었던 장세동  물론, 권불십년이라 하여 이들의 절대권력 2인자의 자리 역시 영원할 수 는 없었습니다 어차피 1인자의 권력의 날개가 꺾어져 버린 이상 그림자 노릇을 했던 2인자는 자연스레 똑 같은 수순의 절차를 밟게 마련이니까요.물론 이 세 명의 경우가 조금은 다른 상황으로 해서 물러 난 것이지만 말입니다.

  이숙번인 경우에는 지나친 자기 과신으로 해서 사치와 거만의 정도가 넘어서 결국 탄핵을 받고 삭탈관직(削奪官職)되어 지방으로 유배당하는 이른바, 토사구팽격으로 전략한 것이지만, 차지철과 장세동은 절대권력자의 1인자와 똑같은 신세로 전략된 것이지요. 아무튼 시간을 돌려보건대 절대권력자 1 인자의 숙명과 명줄은 고스란히 2 인자에게도 전가된다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가 있게 됩니다.

이를 테면 이것을 보고 역사적 숙명 이라고 할 테지요. 하지만, 이를 너무나 잘 인지하고 있고 살펴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노골적이고 아니면 은연중에 절대권력자의 명운에 따라 인생이 엇갈림임에도 불구하고 절대권력자의 제2인자의 그림자 노릇에 기꺼이 동참하려고 무척이나 애쓰는 모양새를 숨기려 들지 않습니다.

꼭 절대권력자가 왕이나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또한 권력의 범위가 크건 작건 간에 줄서기는 정치가 존재하는 한, 권력의 단맛이 존재하는 한, 계속 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하늘위에 태양은 오직 하나이고 하늘 아래 태양 역시 오직 하나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권력의 제 2인자는 하나일 수 도 있지만, 여럿명일 수 도 있지요.그래서 오히려 권력의 제 2인자끼리의 권력 다툼이 더욱 치열하고 또한 아귀다툼이라 표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                       김종필, 정일권, 이후락, 차지철, 박종규, 김형욱, 김재규, 전두환 등...  그중에서 특히 나는 박정희 대통령의 그림자처럼 행동했던 차지철에 대한 내용을 서술하려 한다.

 ---------------------------------------------------------------------------------------------------------------------------------------    유명한 5.16군사혁명 짤방이지?   여기서 중앙에 계신 분이 박정희 대통령(당시 육군 소장) 좌측에 있는 분이 박종규 소령(박정희 정권 제2대 경호실장) 우측에 있는 사람이 바로 이 글에서 다룰 사람인 차지철이야. (당시 육군 대위)   차지철의 고등학교 시절 유일한 친구였던 허봉씨는   "그 친구 간에 어쩌다가 말다툼하고 싸우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나는 차지철하고 그런 적이 없었어요." "워낙 애가 내성적이고 그때는, 온순하고 선량하고 그래서 누구도 싸우는 걸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음... 소심했다! 이렇게 정의하면 되겠다.

그렇지?   이 사람은 박치옥 대령이라는 사람인데 5.16군사혁명 당시에 차지철의 직속상관이었어.  그런데, 박치옥 대령이 부하인 차지철을 불러서   "야 차지철이, 너 가서 소장님(박정희) 지켜드려!" 라고 명령을 했거든? 이 말 한마디에 의해서 박정희와 차지철이 인연을 맺게 되었어.   위의 자막에 이어서 차지철은 허봉에게  "역시 청렴결백한 사람을 좋아할 것 아니야?" 그러면서 "박정희 장군은 청렴결백하다.

" 라고 차지철이 허봉에게 말을 했다고 해.   5.16군사혁명 후 박정희 소장은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으로 취임하게 되는데, 여기서 차지철(윗줄 우측에서 두번째)은 박종규 소령(아랫줄 우측에서 두번째, 모자 안 쓰고 있는 사람)에게 발탁되어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의 경호를 맡게 돼. 이 때의 경호팀 이름은 GREAT TIGER. 줄여서 G.T팀이라고 했다고 해.    1963년 치루어진 대한민국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후보가 당선돼. 박정희 대통령은 차지철에게 말하기를 "지철아. 공부해. 공부해서 정치해. 똑똑해야 정치를 할 수 있는거야." 라고 했는데 차지철은 그 날로 공부를 시작해서 국민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 학위를 따게 돼... 그리고 국회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충복으로 활동을 했었지.   대한민국이 월남(베트남)에 군사를 파병하려 했을 때 몸값이 낮았었거든?   차지철은 당시 월남 파병을 반대하는 공화당 의원들의 리더격이었어. "우리 나라 군인들이 월남 가서 우리 나라의 안보가 위협받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파병을 하면 뭔가를 해줘야할 거 아니야!" "미국은 지금 우리 나라를 이용하려고만 하고 있지, 제놈들이 우리한테 해준게 뭐가 있어!"  대충 이런 논리의 주장을 펴면서 의회 내에서 큰 호응을 얻었었어. 차지철의 이러한 행동에 한국군은 병력을 증파하는 대신 군의 현대화, 경제 원조를 약속받게 되었어. 이 일을 계기로 하여 차지철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한층 더 신뢰를 쌓게 되었지.   (바쁜 게이들은 27초부터)  1974년 8월 15일,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던 문세광의 흉탄에 의해 육영수 여사께서 돌아가시는 사건이 발생해. 이 사건 이후로 경호실장 박종규가 사임하고 후임으로 차지철이 경호실장에 발탁돼.  (육영수 여사 운구차량의 뒤에서 눈물 흘리는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은 육영수 여사께서 돌아가신 후에 무너져 내렸다고 해.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어도 자신의 최고의 버팀목이자 조언자이며 안식처였던 육영수 여사께서 이제는 곁에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지.   이에 차지철은 '어떻게 하면 각하를 즐겁게 해드릴 수 있을까?' 하면서 고민하던 끝에 청와대 경호원들의 무술시범, 언급하면 안될 것 같지만 여자... 등 박정희 대통령을 다시 웃게끔 하도록 엄청난 노력을 하지.   차지철은 경호실장이 된 후에 뒤에 저거 뭐라 그러지... '각하를 지키는 것이 국가를 지키는 것이다.

' 라고 써놓고 붙여놨어. 그만큼 자신의 임무가 막중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거지.   차지철은 경호실장이 된 후에 대통령경호실의 문양 또한 이렇게 바꿨고   경호원들의 복장 또한 나치 독일의 SS친위대처럼 바꿔서 입히게 돼. 더 나아가서 차지철은 경호실에 군인 계급을 단 사람들을 등용해.(특히 전두환이 조직한 사조직인 하나회 출신) 전두환, 노태우역시 이 때 차지철에게 등용되어 경호실에서 근무하게 돼. 차지철은 박종규에 이어 경호실장이 된 후에 가려진 2인자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거야. 당시에 권력의 실세라고 한다면 중앙정보부장, 경호실장, 비서실장 즈음이 되겠지.   당시 차지철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차지철은 스스로 국기하기식이라는 의례를 제정해서 자기가 주관하고 개최하여 이런 행사를 열었었어.   박정희 대통령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당 ;ㅅ;   당시 야당인 신민당에서는 총재를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한창이었는데 여기에 김재규의 중앙정보부가 개입해서 김영삼을 낙선시키기 위해서 온갖 방해공작을 펼치고 있었어. 그런데, 차지철이 갑툭튀해서 "김부장, 그렇게 해서 김영삼이를 어떻게 떨어뜨리겠어요! 이제 신민당 문제는 경호실에서 맡을테니 손 떼요!" 김재규는 분통이 터졌지만 어쩔 수가 없었고 이 문제는 차지철의 경호실에서 맡게 돼. 하지만, 결국은 방해공작은 실패로 돌아가고 차지철은 자신이 실패한 것을 김재규에게 누명을 씌우게 돼.   당시 차지철과 김재규의 대립을 지켜보고 있던 전두환은 후에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 위의 기록처럼 회고했다고 해.   결국 박정희 대통령은 국회에서 김영삼을 제명하게 되는데, 이것이 후에 빌미가 되어 부마항쟁으로 번지게 돼. 김영삼이 제명되자 신민당(김영삼 소속당) 의원 66명이 집단 사퇴서를 제출하는 사건이 발생하지.   1979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유신 7주년 기념 리셉션을 진행하고 있었어. 청와대에 '부산에서 소요사태가 일어났다.

' 는 보고가 올라오기는 했지만, 이 보고로 급파된 내무부장관(현 행정안전부) 구자춘이 "부산 사태는 진압되었습니다.

" 하고 보고를 해서 박정희 대통령은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지.   그러다가 그 날 오후 11시(23시)가 되어서야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인사들은 부마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고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위와 같이 말했어. 부마사태 =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한 민란이다.

   경호실장 차지철은 위와 같이 말했고... ㅡㅡ;; ※며칠 전에 일베에서 이 짤방을 보고 찬탄하면서 이 말을 빨던 ㅄ들이 있던데 이건 빨 일이 아님 그런데 정작 중요한건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가 아닌 차지철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것이야. 당시 차지철은 경호실장이 된 후에 박정희 대통령과 외부의 틈을 철저히 차단했어.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옛날의 냉철한 판단력을 상실하게 되었지... ㅠㅠ -차지철이 박정희 대통령과 외부의 틈을 차단한 사례-  ex) 결재 서류에는 독이 묻었는지 확인한다는 이유로 자기가 먼저 검열 박 대통령에게 가는 전화 또한 자신이 먼저 받음 요인들이 박 대통령을 만나려면 자신을 먼저 거쳐야 함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은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에 참석하셨어.   그런데, 여기를 방문할 때 박 대통령은 헬리콥터(대통령 1호기)를 타고 가셨는데 헬리콥터에 탄 사람은 박정희 대통령, 차지철 경호실장, 김계원 비서실장 김재규도 참석하려 했는데 못 갔어. 왜냐? 차지철이 김재규에게 전화해서 말하기를 "아, 김 부장? 헬기(대통령 1호기)에 자리 없으니까 김 부장은 뒤에 헬기(대통령 2호기) 타고 오든지 말든지 해요!" 김재규는 이 말을 듣고 완전히 빡쳤지. 그래서 행사에 참석 안 하고 남산(중앙정보부)으로 돌아가버려.  이 날 대통령 비서실장인 김계원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궁정동에서 연회를 할 것을 제안하게 되고, 박정희 대통령은 승낙하시지. 이 때 박정희 대통령은 "김부장(김재규)은 왜 안 온거야? 김부장도 오라고 해." 라고 명령을 내리셨어... ㅠㅠㅠㅠ    결국 김재규도 이 날 연회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 날 얘기는 자연스레 신민당 의원 집단 사퇴, 부마사태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가게 되었는데 김재규는 사태의 심각성을 계속 말을 하게 되었고   차지철은 강경론을 펼쳐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말을 하게 돼. 더 나아가서는 김재규에게 "요즘 정보부는 물러터졌어요. 김부장, 무슨 일을 그따위로 하는거에요?" 그런데, 여기서 박정희 대통령 또한 차지철을 거들면서 "차실장 말이 맞아. 정보부는 뭐 하는거야?" 라고 하셨어...   (좌측은 비서실장 김계원. 김재규는 김계원을 죽이지 않았고) (김재규와 같이 박 대통령을 시해했다는 혐의를 받은 김계원은 사형선고를 받았으나)(후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가 특별사면 되어 풀려났다.

)  이에 김재규는 결국 차지철과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게 되지... ㅠㅠ 김재규는 밖으로 나가서 부하인 박흥주, 박선호에게 차지철과 박정희 대통령을 죽이겠다고 말하고 총을 품은 채 연회 자리로 돌아가게 돼. 김재규가 자리로 돌아가자 한양대생인 신재순이 심수봉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었지. 제5공화국 2회. (3분까지만 보면 된다.

)그 때. 김재규가 김계원에게 "형님, 각하를 좀 똑바로 모십시오!" 이에 멈추지 않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차지철을 가리키며 "각하, 이 따위 버러지같은 놈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 정치가 올바로 되겠습니까!" 그러고서는 총을 뽑아서 차지철을 쐈어. 차지철은 팔에 총을 맞았고 급히 화장실로 몸을 숨겼어. 경호실장인 차지철이 제 한 몸 지키고자 도망친 사이 김재규는 박정희 대통령의 가슴을 쐈고... 갑자기 총이 고장나자 급히 밖으로 나가 부하인 박선호의 총을 빼앗아 돌어와서는  화장실에서 나온 차지철의 복부를 쏘아 쓰러뜨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머리를 쐈어. 차지철은 그 때도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었는데 김재규의 부하인 박선호의 명령을 받은 궁정동 안가 경비원들이 확인사살할 때 죽었어.   국가는 차지철을 국립묘지에 안장하려 하였으나 반대로 무산되고 차지철은 어머니가 다니던 경기도 남양주시 영락교회에 묻혔어.    마지막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군법회의 최후진술. 김재규의 육성은 의외로 조급 조잡한(?) 면이 있는 것 같다.

 -------------------------------------------------------------------------------------------------------------------------------------------- 세줄 요약 1. 차지철 5.16군사혁명 때 등용됨 2.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 서거 이후 경호실장에 임명됨 3. 권력 믿고 너무 횡포부리면 안 된다.

 -------------------------------------------------------------------------------------------------------------------------------------------- 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hilliee&logNo=40165599799 (다큐멘터리 원본) http://channel.pandora.tv/channel/video.ptv?ch_userid=happyworld&skey=%EC%9C%A1%EC%98%81%EC%88%98+%EC%95%94%EC%82%B4&prgid=12131860&ref=search&lot=prglist_2 (육영수 여사 피격사건) https://www.youtube.com/watch?v=FjkYeCuFJqo (제5공화국 2편) https://www.youtube.com/watch?v=tfSiJIEXqY4 (김재규 최후진술)  [출처] 각하가 곧 국가다 - 박정희 대통령의 경호실장 차지철[링크] http://www.ilbe.com/164164129생활신조가 ‘청렴’만이 자신이 걸어가야 할 최선의 길이다라고 생각했던 그였다.

김신조.문세광 붉은 마수로부터 청와대가 뚤렸다.

이는 용인 할 수가 없다.

‘각하를 지키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것이다’. 그것이 그의 철학이다.

또한 미국만은 믿을 수 없다.

‘자주국방’, ‘자주경제’만이 조국이 살길이다.

신앙은 항상 머리맡에 두어라.항상 공부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으면 권력은 지배 할 수가 없다.

차지철은 완벽에 가까운 정신무장을 하였다.

-태권도 5단, 유도 4단, 검도 3단 도합 12단으로 유단자이며,-입법을 장악하기 위하여 6대 유정회, 7.8.9대 여주.이천 지역의 지역구 4선 국회의원이며, -한양대 법학박사학위를 받아 법률가요.-행정 경호실장을 부총리급으로 승격하여 행정을 지배하였으며, -경호실 내에 사설 정보팀을 구성하여 중앙정보부를 능가하는 국무위원, 당직자, 측근비리 척결에 노력하였으며,-군 통수권자인 군 휘하부대 차장(소장), 차장보(준장)를 자기 휘하부대에 두고 지휘하였다.

이는 육사 열등감 보상이었다.

  차지철 카페http://cafe.daum.net/chajicheol    김재규는 무척 불운한 사람이다.

 그는 결혼 20년이 되도록 자식이 없어 양녀로 생의 위안을 삼아야 했다.

 한데 「무자식이 상팔자」란 말도 있지만 그것은 그에게 만큼은 불운의 씨였다.

자식으로 인해 인간은 늙어 갈수록 주춤하는 삶을 살게 마련이거늘 그는 자식이 없음으로 해서 충동을 억누를 자제력을 키우지 못했던 것이다.

더욱이 그는 「욱」하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게다가 박대통령 곁에서 권총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김재규와 차지철 둘뿐. 때문에 김재규는 악역을 맡을 운명을 지고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김재규는 당시 「정서불안」까지 겹쳐 보기에도 안타까울 정도였다.

한가지 일관된 게 있다면 박대통령에 대한 충성뿐, 그런데 바로 이 점이 위장선동세력이 주장하는, 「10. 26」의 김재규가 민주인사가 될 수 없는 증거이다.

다음은, 이 동원 장관과 김재규의 대화 이다.

「이 장관, 정말 각하 대할 때마다 죄스럽습니다.

 각하는 우리나라가 운이 따라 줘서 만난 지도자 아닙니까. 단군 이래 기적을 일군 오직 한 분....., 그런데 이런 분을 우리가 잘못 모셔 일이 이토록 꼬이다니.......」그의 충성은 사실 「10. 26」의 그날까지도 한결같았다.

 그리고 박대통령의 그에 대한 애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지금 위장선동세력이 주장하는 10.26을 일으킨 김재규 민주투사 운운하는 것은 당치 않는 것이다.

그럼 「우발」이란 증거를 따져 보겠다.

사실 김재규는 그 때 당시 순전히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러므로, 자칫 체력이 한계를 밑돈다면 자식까지 없는 그로선 「막다른 골목」일 수도 있다.

 거기다 「욱」하는 성격이 튀어나올 구멍을 차지철이 뚫어 준다.

 본래는 친했던 그 둘은 당시 심각한 의견대립을 보이고 있었다.

다음은 차지철과 김재규의 대화이다.

「각하, 이런 난국을 풀려면 주동자 몇 명을 처벌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합니다.

 주저 마시고 용단을 내려 주십시오.」「아닙니다.

 각하, 지금은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니 참으면서 서서히 대화로 야당과 미국을 설득해야 합니다」양극에서 김재규와 차지철은 온건과 강경을 대표하며 서로 삿대질, 급기야는 오해의 피크까지 오른다.

「중정부장이 저 모양이니 난국이 더 꼬일밖에.....」「저런 몹쓸 녀석 같으니라고. 난 정말 각하를 좋은 길로 이끌려는데 왜 나서서 훼방이야. 훼방이.......」옛날 같았으면 총명과 결단력이 뛰어난 박대통령께서 쉽게 단언을 내려 수습될 일이었지만, 그 땐 그렇지 못했으니 안타까울 수 밖에. 박대통령은 깜짝 놀랄 독창성과 결단력을 가졌지만, 그 땐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박대통령은 때로는 부하를 다룰 때 너무 가혹하리만치 혹독한 일면이 있었다.

 가령 잘못한 부하를 질책할 때는 추상같았던 것이다.

이동원 역시 외무장관 시절 「모욕」이란 단어가 눈물과 함께 눈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따끔하게 야단맞은 적도 있었다.

 그러니 아마 같은 군인 출신인 김재규나 차지철에게는 더 심했으리라 짐작된다.

김재규는 YH사건 때  강경진압을 해서 박대통령에게 질책받았으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일로질책을 받았다.

운명의 10월 26일, 삽교천 완공 행사를 마친 다음 술좌석에서 어떤 대화가 오고 갔을까.술이 한 잔 돈 다음, 분명 박대통령은 중정부장의 정보 보고에 불만이 있었을 것이다.

「바보 같은 자식, 도대체 뭐하는 거야. 아직도 그 사태를 제대로 처리 못하는 거야」박대통령은 김재규를 질책했을 것이고, 그 옆의 차지철이 끼어 들었을 것이다.

「각하, 그러니 제 말대로 강경하게 나가셔야지, 왜 김부장 말만 듣고 주저하십니까」김재규의 운명의 손은 결국 옆구리의 권총으로 향한다.

 눈이 뒤집혀진 김재규는 속으로 분명 이렇게 외쳐댔을 것이다.

「저런, 현실이라곤 눈꼽만큼도 모르는 버러지 같은 놈. 너 같은 놈이 각하 옆에 붙어 있으니 나라가 이 모양이지!」「욱」하는 성격을. 단지 일생동안 두 번밖에 써먹지 않은 그 무기가 진짜 권총을 통해 차지철의 심장을 뚫는다.

그리고 그 이후는 인간 김재규가 아닌 정신병자 김재규의 행동이었다.

 붉은 피를 본 그는 황소처럼 이성을 잃곤 자신의 충정을 몰라 주는 박대통령을 향해 「야속함」의 대가치곤 너무나 큰 총알을 발사해 박대통령의 생명을 앗는다.

그렇게「박정희 시대」를 마감시킨 김재규는 그리하여 주목받는 인물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든 자신을 미화하려는 속성이 있는 법. 피가 닦여지고 정신이 밝아지자, 이름 석자라도 남는 심정으로  그는 민주 운운 하며 큰소리로 외친다.

「나는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결국 그는 순간의 감정을 못이겨 엄청난 큰일을 저지른 것이다.

세간에 또 김재규 배후에 미 CIA가 있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런데 이 주장은 크게 신빙성이 없다.

  [출처] 김재규와 차지철의 충성경쟁|작성자 새물결)+ 박정희 대통령 경호실장 시절... 차지철(경호실장)-전두환-노태우    (나름 의미있는 사진!!)왼쪽 첫번째 : 노태우 / 왼쪽 두번째 : 차지철 / 오른쪽 끝 : 전두환     ?      + 1979/10/26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박정희 대통령의 비극) + 궁정동 안가 (박정희, 차지철 생을 달리한 마지막 1026 현장)     + 10,26으로 박정희, 차지철 사망하고... + 1979/12/12 군사 구테타를 계기로 전두환-노태우 순으로 대통령이 되다 !!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드라마틱하고 재미있는 불행한 정치 현대사 입니다.

역사는 어찌보면 되풀이 되고 과거를 무시 못하는 학습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고려때 위화도 회군으로 군사 구테타로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했듯이...박정희가 군사 구테타로 대통령 되고, 또 이어서 군사 구테타로 전두환이 대통령 되고


좌든 우든... 상관 없습니다.

모든 것을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사실들을 투명하게 알려주고, 공유하고 그리고...판단은 각자 국민들이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들도 교육수준이 높아서 좌/우, 진보/보수를 상관하지 않고 옳고 그름을 판단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김종필, 정일권, 이후락, 차지철, 박종규, 김형욱, 김재규, 전두환 등...  그중에서 특히 나는 박정희 대통령의 그림자처럼 행동했던 차지철에 대한 내용을 서술하려 한다.

 ---------------------------------------------------------------------------------------------------------------------------------------    유명한 5.16군사혁명 짤방이지?   여기서 중앙에 계신 분이 박정희 대통령(당시 육군 소장) 좌측에 있는 분이 박종규 소령(박정희 정권 제2대 경호실장) 우측에 있는 사람이 바로 이 글에서 다룰 사람인 차지철이야. (당시 육군 대위)   차지철의 고등학교 시절 유일한 친구였던 허봉씨는   "그 친구 간에 어쩌다가 말다툼하고 싸우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나는 차지철하고 그런 적이 없었어요." "워낙 애가 내성적이고 그때는, 온순하고 선량하고 그래서 누구도 싸우는 걸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음... 소심했다! 이렇게 정의하면 되겠다.

그렇지?   이 사람은 박치옥 대령이라는 사람인데 5.16군사혁명 당시에 차지철의 직속상관이었어.  그런데, 박치옥 대령이 부하인 차지철을 불러서   "야 차지철이, 너 가서 소장님(박정희) 지켜드려!" 라고 명령을 했거든? 이 말 한마디에 의해서 박정희와 차지철이 인연을 맺게 되었어.   위의 자막에 이어서 차지철은 허봉에게  "역시 청렴결백한 사람을 좋아할 것 아니야?" 그러면서 "박정희 장군은 청렴결백하다.

" 라고 차지철이 허봉에게 말을 했다고 해.   5.16군사혁명 후 박정희 소장은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으로 취임하게 되는데, 여기서 차지철(윗줄 우측에서 두번째)은 박종규 소령(아랫줄 우측에서 두번째, 모자 안 쓰고 있는 사람)에게 발탁되어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의 경호를 맡게 돼. 이 때의 경호팀 이름은 GREAT TIGER. 줄여서 G.T팀이라고 했다고 해.    1963년 치루어진 대한민국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후보가 당선돼. 박정희 대통령은 차지철에게 말하기를 "지철아. 공부해. 공부해서 정치해. 똑똑해야 정치를 할 수 있는거야." 라고 했는데 차지철은 그 날로 공부를 시작해서 국민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 학위를 따게 돼... 그리고 국회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충복으로 활동을 했었지.   대한민국이 월남(베트남)에 군사를 파병하려 했을 때 몸값이 낮았었거든?   차지철은 당시 월남 파병을 반대하는 공화당 의원들의 리더격이었어. "우리 나라 군인들이 월남 가서 우리 나라의 안보가 위협받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파병을 하면 뭔가를 해줘야할 거 아니야!" "미국은 지금 우리 나라를 이용하려고만 하고 있지, 제놈들이 우리한테 해준게 뭐가 있어!"  대충 이런 논리의 주장을 펴면서 의회 내에서 큰 호응을 얻었었어. 차지철의 이러한 행동에 한국군은 병력을 증파하는 대신 군의 현대화, 경제 원조를 약속받게 되었어. 이 일을 계기로 하여 차지철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한층 더 신뢰를 쌓게 되었지.   (바쁜 게이들은 27초부터)  1974년 8월 15일,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던 문세광의 흉탄에 의해 육영수 여사께서 돌아가시는 사건이 발생해. 이 사건 이후로 경호실장 박종규가 사임하고 후임으로 차지철이 경호실장에 발탁돼.  (육영수 여사 운구차량의 뒤에서 눈물 흘리는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은 육영수 여사께서 돌아가신 후에 무너져 내렸다고 해.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어도 자신의 최고의 버팀목이자 조언자이며 안식처였던 육영수 여사께서 이제는 곁에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지.   이에 차지철은 '어떻게 하면 각하를 즐겁게 해드릴 수 있을까?' 하면서 고민하던 끝에 청와대 경호원들의 무술시범, 언급하면 안될 것 같지만 여자... 등 박정희 대통령을 다시 웃게끔 하도록 엄청난 노력을 하지.   차지철은 경호실장이 된 후에 뒤에 저거 뭐라 그러지... '각하를 지키는 것이 국가를 지키는 것이다.

' 라고 써놓고 붙여놨어. 그만큼 자신의 임무가 막중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거지.   차지철은 경호실장이 된 후에 대통령경호실의 문양 또한 이렇게 바꿨고   경호원들의 복장 또한 나치 독일의 SS친위대처럼 바꿔서 입히게 돼. 더 나아가서 차지철은 경호실에 군인 계급을 단 사람들을 등용해.(특히 전두환이 조직한 사조직인 하나회 출신) 전두환, 노태우역시 이 때 차지철에게 등용되어 경호실에서 근무하게 돼. 차지철은 박종규에 이어 경호실장이 된 후에 가려진 2인자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거야. 당시에 권력의 실세라고 한다면 중앙정보부장, 경호실장, 비서실장 즈음이 되겠지.   당시 차지철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차지철은 스스로 국기하기식이라는 의례를 제정해서 자기가 주관하고 개최하여 이런 행사를 열었었어.   박정희 대통령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당 ;ㅅ;   당시 야당인 신민당에서는 총재를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한창이었는데 여기에 김재규의 중앙정보부가 개입해서 김영삼을 낙선시키기 위해서 온갖 방해공작을 펼치고 있었어. 그런데, 차지철이 갑툭튀해서 "김부장, 그렇게 해서 김영삼이를 어떻게 떨어뜨리겠어요! 이제 신민당 문제는 경호실에서 맡을테니 손 떼요!" 김재규는 분통이 터졌지만 어쩔 수가 없었고 이 문제는 차지철의 경호실에서 맡게 돼. 하지만, 결국은 방해공작은 실패로 돌아가고 차지철은 자신이 실패한 것을 김재규에게 누명을 씌우게 돼.   당시 차지철과 김재규의 대립을 지켜보고 있던 전두환은 후에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 위의 기록처럼 회고했다고 해.   결국 박정희 대통령은 국회에서 김영삼을 제명하게 되는데, 이것이 후에 빌미가 되어 부마항쟁으로 번지게 돼. 김영삼이 제명되자 신민당(김영삼 소속당) 의원 66명이 집단 사퇴서를 제출하는 사건이 발생하지.   1979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유신 7주년 기념 리셉션을 진행하고 있었어. 청와대에 '부산에서 소요사태가 일어났다.

' 는 보고가 올라오기는 했지만, 이 보고로 급파된 내무부장관(현 행정안전부) 구자춘이 "부산 사태는 진압되었습니다.

" 하고 보고를 해서 박정희 대통령은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지.   그러다가 그 날 오후 11시(23시)가 되어서야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인사들은 부마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고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위와 같이 말했어. 부마사태 =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한 민란이다.

   경호실장 차지철은 위와 같이 말했고... ㅡㅡ;; ※며칠 전에 일베에서 이 짤방을 보고 찬탄하면서 이 말을 빨던 ㅄ들이 있던데 이건 빨 일이 아님 그런데 정작 중요한건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가 아닌 차지철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것이야. 당시 차지철은 경호실장이 된 후에 박정희 대통령과 외부의 틈을 철저히 차단했어.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옛날의 냉철한 판단력을 상실하게 되었지... ㅠㅠ -차지철이 박정희 대통령과 외부의 틈을 차단한 사례-  ex) 결재 서류에는 독이 묻었는지 확인한다는 이유로 자기가 먼저 검열 박 대통령에게 가는 전화 또한 자신이 먼저 받음 요인들이 박 대통령을 만나려면 자신을 먼저 거쳐야 함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은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에 참석하셨어.   그런데, 여기를 방문할 때 박 대통령은 헬리콥터(대통령 1호기)를 타고 가셨는데 헬리콥터에 탄 사람은 박정희 대통령, 차지철 경호실장, 김계원 비서실장 김재규도 참석하려 했는데 못 갔어. 왜냐? 차지철이 김재규에게 전화해서 말하기를 "아, 김 부장? 헬기(대통령 1호기)에 자리 없으니까 김 부장은 뒤에 헬기(대통령 2호기) 타고 오든지 말든지 해요!" 김재규는 이 말을 듣고 완전히 빡쳤지. 그래서 행사에 참석 안 하고 남산(중앙정보부)으로 돌아가버려.  이 날 대통령 비서실장인 김계원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궁정동에서 연회를 할 것을 제안하게 되고, 박정희 대통령은 승낙하시지. 이 때 박정희 대통령은 "김부장(김재규)은 왜 안 온거야? 김부장도 오라고 해." 라고 명령을 내리셨어... ㅠㅠㅠㅠ    결국 김재규도 이 날 연회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 날 얘기는 자연스레 신민당 의원 집단 사퇴, 부마사태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가게 되었는데 김재규는 사태의 심각성을 계속 말을 하게 되었고   차지철은 강경론을 펼쳐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말을 하게 돼. 더 나아가서는 김재규에게 "요즘 정보부는 물러터졌어요. 김부장, 무슨 일을 그따위로 하는거에요?" 그런데, 여기서 박정희 대통령 또한 차지철을 거들면서 "차실장 말이 맞아. 정보부는 뭐 하는거야?" 라고 하셨어...   (좌측은 비서실장 김계원. 김재규는 김계원을 죽이지 않았고) (김재규와 같이 박 대통령을 시해했다는 혐의를 받은 김계원은 사형선고를 받았으나)(후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가 특별사면 되어 풀려났다.

)  이에 김재규는 결국 차지철과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게 되지... ㅠㅠ 김재규는 밖으로 나가서 부하인 박흥주, 박선호에게 차지철과 박정희 대통령을 죽이겠다고 말하고 총을 품은 채 연회 자리로 돌아가게 돼. 김재규가 자리로 돌아가자 한양대생인 신재순이 심수봉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었지. 제5공화국 2회. (3분까지만 보면 된다.

)그 때. 김재규가 김계원에게 "형님, 각하를 좀 똑바로 모십시오!" 이에 멈추지 않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차지철을 가리키며 "각하, 이 따위 버러지같은 놈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 정치가 올바로 되겠습니까!" 그러고서는 총을 뽑아서 차지철을 쐈어. 차지철은 팔에 총을 맞았고 급히 화장실로 몸을 숨겼어. 경호실장인 차지철이 제 한 몸 지키고자 도망친 사이 김재규는 박정희 대통령의 가슴을 쐈고... 갑자기 총이 고장나자 급히 밖으로 나가 부하인 박선호의 총을 빼앗아 돌어와서는  화장실에서 나온 차지철의 복부를 쏘아 쓰러뜨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머리를 쐈어. 차지철은 그 때도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었는데 김재규의 부하인 박선호의 명령을 받은 궁정동 안가 경비원들이 확인사살할 때 죽었어.   국가는 차지철을 국립묘지에 안장하려 하였으나 반대로 무산되고 차지철은 어머니가 다니던 경기도 남양주시 영락교회에 묻혔어.    마지막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군법회의 최후진술. 김재규의 육성은 의외로 조급 조잡한(?) 면이 있는 것 같다.

 -------------------------------------------------------------------------------------------------------------------------------------------- 세줄 요약 1. 차지철 5.16군사혁명 때 등용됨 2.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 서거 이후 경호실장에 임명됨 3. 권력 믿고 너무 횡포부리면 안 된다.

 -------------------------------------------------------------------------------------------------------------------------------------------- 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hilliee&logNo=40165599799 (다큐멘터리 원본) http://channel.pandora.tv/channel/video.ptv?ch_userid=happyworld&skey=%EC%9C%A1%EC%98%81%EC%88%98+%EC%95%94%EC%82%B4&prgid=12131860&ref=search&lot=prglist_2 (육영수 여사 피격사건) https://www.youtube.com/watch?v=FjkYeCuFJqo (제5공화국 2편) https://www.youtube.com/watch?v=tfSiJIEXqY4 (김재규 최후진술)  [출처] 각하가 곧 국가다 - 박정희 대통령의 경호실장 차지철[링크] http://www.ilbe.com/164164129마치 단도직입(單刀直入)적으로 상대방에게 직설(直說)하는 모양새를 짙게 풍기는 이른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이라는 말 말입니다.

그런데 이 직설이 불편하지만은 그래도 왠지 가슴에 와 닿는 분들이 많을 줄 압니다.

언제부터인가 아니. 오래 전부터 우리들은 그 종목이 무엇이든 간에 1등만 신봉하는 자세와 열성을 보여 왔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 말이죠. 그래서 차마 이 말을 차마 부정하기가 어려워 했을 테지요.예를 들어 여러 스포츠종목은 뭐,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우리들이 죽는 그 날까지 손에서 떼지 말아야 할 공부 역시도 1등 지상주의(至上主義)에 젖어 든 것이 언제부터인가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미 일상화 되다시피 하였던 것은 여러분들도 인식을 같이 하실 겁니다  물론. 우리들 스스로 피부로 직접 느끼고 또한 살아 오고 있기도 했으니까 말입니다.

또한 이러한 1등 목표의식을 자연스레 사회로 통해. 학습을 통해서 아니면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당연시 가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라 말하고 싶기도 하고요.’물론, 이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시는 분들도 많을 터인데  그 이유를 들자면은 다름아닌, 오히려 이러한 1등주의 만연으로 인하여 1등 지상주의 페해가 자구 발생 된다는것이 그 방증이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모든 것을(1등 지상주의를 강요하는 일종의 묵시적 사회합의나 정치적 목적 따위 말이죠.) 실로 부정하기에는 스스럼 없이 선뜻 나서기가 어려워 하시는 분들 역시 계실 겁니다.

우리들은(물론, 우리들이라 하여 전부로 일반화 시킨것은 아닙니다.

)   어차피 사회로 진출하여 어떤 동기부여를(1등주의 따위 등) 통해서 야망을 키우기 위함의 초석으로 밟아야 하기에 (자신만의 구역을 만들기 위함 목적으로도)1등주의 대세에 따를 수 밖에 없다고 항변 할 수 있으니까요. , 절대권력자 중심 한 뒷편에는 이를 (권력을) 한층 더 뒷받침 해주는 제 2 인자도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 입니다.

   쉽게 말해 1등이 있으면 1등을 더욱 빛나게 만드는(?) 나머지도 존재하기 마련일 테니 누군가를 빛나게 만드는 사람보다는 빛을 스스로 만드는 사람으로 살기를 원하는 것은 누구나 대부분 인지상정일 것임은 분명하다라는 애기일 겁니다.

.그런데 솔직히,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조차 1등에 목메어 있는데 하물며 그래도 각각의 분야별로 최고들만 밀집해 있다는 정치세계에서는 오직 하겠습니까?그래서 정치에 직접 발을 내 놓은 사람도 아니면 정치라는 구덩이 안 속으로 손이라도 한번 집어 보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도 모두가 다 절대 권력자의 1인자가 되려는 환상과 사심으로 해서 아귀다툼이 지속적이고도 하염없이 벌어 지고 있는 것일 겁니다.

이처럼 아귀다툼의 정치세계로 인하여 실로 숨통과 명줄이 담벼락으로 넘나드는 끔찍스러운 모습 등을 직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목격한 우리들 보통사람들로서는 최고권력자의 자질과 정치세계관에 의해서 얼마나 국가와 국민들의 명줄 등이 왔다 갔다 하는지를 여기서 일목요연하게 말하지 않더라도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어찌 보면 과거를 돌이켜 돌아보면 문득 생 소름과 함께 진저리가 날 정도일 지도 모르지요. 왜냐하면 최고 권력자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자신의 인생의 승패가 갈렸던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말입니다.

.사실 정치라는 오묘하고도 복잡한 세상에서만큼 정치 최고권력자의 행실(行實)과 언행은 정치적 능력만큼 매우 중요하다라는 것은 굳이 여기서 필요 이상으로 말할 필요성조차 없을 겁니다그런데 굳이 여기서 최고 권력자의 의해 세상이 뒤바뀌는 연유를 한번 찾아 보자면은 물론 여러 사유와 변수가 많겠지만은, 최고 권력자의 자질뿐만 아니라 권력의 수성을 뒷받침 해주는 절대 권력자를 보필하는 권력의 제2인자의 능력 또한 결코 빼 놓아서는 안될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선 제2인자를 논하기 전에 우리들은 언제부터인가 무조건적인 신앙심으로 똘똘 뭉친 열렬한 신앙인이 된 기분으로 오직 최고 권력자의 모든 행동을 주시하고 바라 보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최고 권력자의 모든 언행을 비판 없이 그저 추종하기만 했었던 때가 많았던 것이 사실일 겁니다,물론,  여기에 반대급부로 한쪽에서는 맹목적인 마음으로 해서 최고 권력자의 한쪽 면만 파헤치려고 하는 묘한 습성 또한 가지고 있기도 했고요,(잘 잘못이든 잘한 면이든 간에 오직 한 면 쪽으로만 말입니다.

)   권력앞세서 줄서기는 가히 상상을 초월 할 정도라 여겨 집니다.

이른바 무한충성심이야말로 절대권력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여기는것은 어쩌면 인지상정 일지도 모르지요.  물론. 권력의 모든 것을 움켜 쥔 냉엄하고 준엄한 현실 앞에서는 무시무시한 최고 권력자의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없을 터인즉, 그러한 비판의 강도를 조절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이러한 면을(속절없이 정치에 야합하고 기대고 있다라는) 무조건적인 비판만 하기에는 우리들 자신은 무소불의의 현실 정치에 홀로 마주치고 부딪치기에 매우 감당하기가 어려워 했을 겁니다.

뭐, 멀리 갈 것도 없이 군사독재 시절에는 감히 자기 의견을 내놓고 말 할 수 가 없는 시대였지요..분명 좋은 것은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은 나쁜 것임을 만 천하가 다 알고 있고 또한 이를 잘 아는 본인이 자신의 입 밖으로 내 놓고 싶을 때가 제법 있었을 텐데 말이죠솔직히 배운 사람치고 이를 잘 모르는 사람은 없었고 그래서 최고 권력자의 행실이 그리 탐탁지 않았지만 우선 자기 몸보신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자기 가족 생각도 해야 하는, (다소 복잡 다난한 생각으로 빠져드니까) 그래서 모르긴 해도 적지 않게 인생의 딜레마에 뼈져 들어던 여지가 많았을 겁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들은 스스로 되뇌며 희대의 실수를 또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무척이나 심사숙고하고 또 나름대로 정치에 대해서 공부도 많이 하고 고민도 많이 했었을 겁니다.

결국 이러한 고민 등을 아무래도 적지 않은 숙제로 다가오게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머릿속 안이 제법 난해한 숙제로 인하여 뒤엉켜 지며 그럼으로 해서 부담스러워 했을 지도 모릅니다.

당연히 정치라는 과제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거니와 수학 방정식 풀 듯이 척척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 어쩔 수 없이 기나긴 숙제들이 넓디 넓은 공원 저 너머까지 끝없이 펼쳐져 있을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마냥 드넓은 초원에 펼쳐진 많은 숙제를 핑계 삼아서 정치가 좋아지든 더 나빠지든 간에 방관자 입장에서 그저 손 놓고 바라만 볼 수 만은 없을 테지요.   혹, 다량의 숙제를 혼자서 풀지 못할지라도 (결과물만 쭉 펴놓고 속절없는 반항만 할 것이 아니라) 미리 과정에서부터 직간접적으로 참여하여 잘잘못이 있다면은 당연히 비판을 하되 다른 면에서 잘한 면이 보이면 오히려 이를 적극 장려하여 확대 재생산 시키는 것도 오히려 더 좋을 듯 싶다는 애기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일종의 행실장애(行實障碍)로 인해서 압박을 당하여 괴로움과 더불어서 실익(實益)을 놓친 경험이 혹시라도 있을 지 모릅니다,그렇게 되노라면 우리들은 적극적으로 이를 거울삼아서 이러한 실익을 더 이상 놓치지 않기 위해서 부단하게 실수를 만회하려 노력할 겁니다.

  경기도 시흥시에 위치한 이숙번의 묘. 시흥시에서 유일한 사각형 묘라고 합니다.

    그런데 개인의 실익은 상당히 챙겨 들려고 하면서도 국가의 실익은 왠지 모르게 등한시 하는 경향을 어느 정도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물론 소수의 사람의 예이기는 할 테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자신의 실익을 철저히 챙기는 마음이상으로 국가의 실익을 철저하게 챙기기 위해서는 우선은 정치에 관한 무관심 자체를 배제시켜야 할 것임은 자명할 것이고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믿습니다.

또한 이에 못지않게 각각의 정치인들의 신상명세서를 철저하게 파악하고 분석하는 노력 또한 게흘리 하지 말아야 할 테지요.   이숙번의 묘.  훼손된 묘를 다시 복원했다고 합니다.

이미 머리말에서 말했듯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지만 사실 정치세계에서는 기억은 1등만 할지라도 현실적인 파워와 실세를 쥐락펴락 한 장본인은 오히려 제2인자가 도맡아서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것이 사실 일겁니다,모든 행동반경을 제1인자인 절대 권력자가 일일이 좌지우지 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세계사를 돌아 보아도 아니, 가까운 우리 역사를 돌아 보도라도 1인자 못지않은 2인자의 절대권력의 파워를 능히 직간접적으로 느끼고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절대권력의 제 2인자들의 정치적 속성을 가만히 들여다 볼 지라면 마치 "모든 일을 망설이는 것보다 불완전할 때시작하는 것이 한 걸음 앞서는 것이다! " 라는 절대명제를 걸고 권력의 파워를 앞세우는 듯 하더군요.다시 말해 무슨 일이든 가만히 기다릴 바에는 (자신의 주인인 절대권력자 1인자의 심정을 미리 헤아려 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우선 시작하여 끝을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 라는 불도저식 정치관의 속성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애기입니다.

문제는 제법 끝마무리가 상쾌(?)하여 마무리 하는 모양새가 좋아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은 이에 반대급부로 피치 못하게 여러 상황이나 변수들이 튀어 나오는 경우 또한 많은 것이 사실일 겁니다.

,   이른바 피 바람이 몰아치고 난 후의 이미 예견되어 있는 순차적인(돌발적이 아닌) 저항 정도의 상황이라 생각하시면 무난 하겠군요.  이러한 상황이 직면 한 이유는 어차피 권력의 제2인자들의 생각을 권투로 치면 본인이 스웨이(sway)동작과 더킹(ducking)동작으로 해서 제 아무리 상대방의 주먹을 피한들 언젠가는 맞게 되어있다! 라는 다소 이러한 생각을 품고서 절대권력자의 묵시적 승낙을 확대 해석하여 무리한 결론을 내린 탓에 좋지 못한 결과로 이어지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제2 인자들이 자신의 주인인 1인자의 절대 경계선을 넘으려는 행동을 하려는 속뜻은 결코 아닐 겁니다.

누구보다도 논어에 나오는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의 말처럼 군왕은 군왕답게 신하는 신화답게 행실을 보이는 것이야 말로 자신의 명줄과 권력의 수성을 오래 버텨 낼 수 있다! 라는 냉엄한 정치적 현실을 꿰?箚� 있을 테니까요. 박정희 전 대통령을 향해서 "각하가 곧 국가다 !"라는 절대적 명제처럼 만들어서 만 세상에 외쳐 부르짖었던 제 2 의 권력자 차지철  그래서 절대권력자 1인자 앞에서만큼은 2인자인 자신은 절대 권력자의 말 한마디에도 추풍낙엽 신세도 마다 하지 않는 그러한 충성심을 다 보이려 할 테지요. 이것은 마치."하질(下秩)의 개가 감히 당요(唐堯)를 보고 짖어대는 것은 자신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 이라는 옛 고사처럼 자신이 섬기는 절대권력자1인자의 입김이 아니라면 남한테는 짖는 한이 있더라도 감히 나서지 않는 그러한 속성 말입니다.

이러한 자세와 정치적 논리를 너무나 행동으로 잘 표현해준 (절대 권력자의 양지와 그림자 사이를 절묘하게 넘나 들었던) 2인자들은 우리 역사에도 꽤 많습니다.

 그 사례 중에서 (막강한 무소불위라 할 수 있는) 조선 시대의 왕실과 왕권의 권력을 수성한 이방원의 수족으로 일임을 담당했던 이숙번이 그 예일 겁니다.

이숙번은 이방원의 무소불위의 권력의 수성을 지켜 주지 위해서는 피 바람이 몰아 치는 절대숙명의 상황임에도 일사천리로 수행해 나간 명실공히 이방원의 오른팔 이였고 절대 권력의 2 인자임을 숨기려 들지 않았던 이른바, 지(知) 와 포악함을 동시에 갖춘 문무를 겸비한 인물 이였습니다.

사실 1차 왕자의 난과 2차 왕자의 난을 수습한 경로(徑路)를 보고 따지자면 이숙번의 공로는 가히 으뜸이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침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꼭 여기서 멀리 가서 살필 이유도 없이 (역사를 보면) 가까운 곳에도 어렵지 않게 보실 수 가 있을 겁니다.

다름아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수족이나 다를 바 없었던 경호실장 차지철과 이 역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호실장이자 중앙정보부장이었던 (철저한 오른팔로 자청했었던) 장세동이 그 예입니다.

이들의 하나 같은 공통점은(이숙번, 차지철, 장세동) "어른한테(자신의 주인인 절대 권력자의 1인자)어떠한 일이 발생한다면은 내가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막을 것이며 그러하지 못한다면 나는 어른의 뒤를 따라 가겠다! " 라는 굳은 신념과 결의를 보였던 인물들 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자신을 권력의 제 2인자임을 결코 숨기려 하지 않았고 또한 당연시 했었던 사실상 1인자의 그림자임을 몸소 자청한 그러한 정치적 철학관을 내심 깊은 속에 간직했었던 인물이라는 것이지요.물론 당연하겠지만, 절대권력의 2인자임을 스스로 자청했기에 절대 권력자의 신임과 더불어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왔던 것일 겁니다.

그래서 이들로 의해서 (막강한 권력 앞에 휘 들 리고) 피치 못하게 누군가가 아니면 본인 자신이 피해를 상당히 입었다 하더라도 감히 나서지 못했고 또한 이와는 반대편에서는 은연중에 이들의 그림자 노릇이라도 해 볼 심산으로 줄서기도 심심찮게 일어 나기도 했었던 것이지요..아이러니 하게도 그림자 아래에 또 다른 그림자 노릇을 해 보겠다는 심산 이였으니 권력의 단맛은 참으로 대단하고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나 봅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위해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는 신념 하나로 평생을 모시며 제2의 권력을 행사했었던 장세동  물론, 권불십년이라 하여 이들의 절대권력 2인자의 자리 역시 영원할 수 는 없었습니다 어차피 1인자의 권력의 날개가 꺾어져 버린 이상 그림자 노릇을 했던 2인자는 자연스레 똑 같은 수순의 절차를 밟게 마련이니까요.물론 이 세 명의 경우가 조금은 다른 상황으로 해서 물러 난 것이지만 말입니다.

  이숙번인 경우에는 지나친 자기 과신으로 해서 사치와 거만의 정도가 넘어서 결국 탄핵을 받고 삭탈관직(削奪官職)되어 지방으로 유배당하는 이른바, 토사구팽격으로 전략한 것이지만, 차지철과 장세동은 절대권력자의 1인자와 똑같은 신세로 전략된 것이지요. 아무튼 시간을 돌려보건대 절대권력자 1 인자의 숙명과 명줄은 고스란히 2 인자에게도 전가된다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가 있게 됩니다.

이를 테면 이것을 보고 역사적 숙명 이라고 할 테지요. 하지만, 이를 너무나 잘 인지하고 있고 살펴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노골적이고 아니면 은연중에 절대권력자의 명운에 따라 인생이 엇갈림임에도 불구하고 절대권력자의 제2인자의 그림자 노릇에 기꺼이 동참하려고 무척이나 애쓰는 모양새를 숨기려 들지 않습니다.

꼭 절대권력자가 왕이나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또한 권력의 범위가 크건 작건 간에 줄서기는 정치가 존재하는 한, 권력의 단맛이 존재하는 한, 계속 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하늘위에 태양은 오직 하나이고 하늘 아래 태양 역시 오직 하나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권력의 제 2인자는 하나일 수 도 있지만, 여럿명일 수 도 있지요.그래서 오히려 권력의 제 2인자끼리의 권력 다툼이 더욱 치열하고 또한 아귀다툼이라 표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천) 1967년 제7대 국회의원(공화,광주.이천) 1971년 제8대 국회의원(공화,광주.이천) 1973년 제9대 국회의원(공화,여주.광주.이천) 1974년 제3대 대통령경호실장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살해 중앙정보부장 수행비서(대령) : 40초반 육사 18기 당시 40세 80년 3월 6일 총살형 집행 김재규가 잠시 김천중학교 교사로 있을 때 제자 1973년 해병대 대령, 서울보안부대장 74년 중앙정보부 총무과장(부이사관) 74년 9월 부산지부 정보과장 75년 부산 공작선 밀수사건 관련 도청사건으로 파면 76년 12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취임 후 사우디아라비에 파견, ※ 현지 현대건설 노사분규가 폭동처럼 터지고 있을 때 현지조정관 78년 귀국 → 궁정동 안가 의전과장 79년 10월 26일 박정희 시해사건 연루 체포 80년 5월 24일 교수형 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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