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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편지 전문



그만큼 간략하고 정확하다.

'말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 중 손석희처럼 언어의 절제미를 보여주는 사람도 그리 흔치는 않을 것이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그의 절제된 이미지와 깔끔한 진행, 그가 지닌 합리성과 논리적 비판에 매료되어 그의 팬을 자처하는 '손석희 매니아'도 적지 않다.

그들이 보여주는 애정의 강도는 단순한 스타와 팬의 관계를 뛰어 넘는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그의 방송을 즐겨 듣는다는 한 청취자의 편지는 손석희에 대한 호감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고교생이 된 내 아이가 '어머니, 제가 어떤 인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까?'하고 자주 묻곤 하는데 저는 주저없이 '손석희씨같은 인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할만큼 손석희씨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그런 정도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종류의 사연은 수없이 많다.

손석희의 무엇이 자식에게 삶의 한 전범으로 제시하고 싶을만큼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일까. 단순히 그의 곱상한 외모와 조리있는 말솜씨때문이라고 하기엔 그들이 손석희에게 보내는 각별한 의미가 너무 무겁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손석희는 현재 문화방송 아나운서국 2부장으로 재직 중인 40대 후반의 방송인이다.

텔레비전에 얼굴을 내민지 20년이 되어 가는 사람이니 이력으로만 놓고 따지면 그의 명성과 호감도를 이해못할 바도 없다.

단순노출 효과 이론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시청자들은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는 인물에 대해서 친근감을 나타내고 그래서 그 인물은 텔레비전에 더 자주 나오게 된다고 한다.

자주 보는 인물에 대해선 어느 정도 예측을 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긴장을 하지 않아도 되므로 좋아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손석희처럼 한때 하루에 5개 프로그램을 진행할 정도로 노출이 많았던 사람에게 대중들이 어느 정도의 호감을 보이는 건 당연하다.

방송의 최종 전달자로서의 아나운서라는 그의 직업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예전에는 아나운서 시험에 떨어진 사람이 '그럼 하다못해 PD라도 시켜달라'는 얘기도 있었다지만, 스타 PD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요즘에는 그런 에피소드가 전설의 고향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대중들의 인식 속에는 아나운서가 방송인 중 가장 화려하고 친근한 직종으로 각인되어 있다.

지난해 3월 'MBC스페셜'은 대우자동차 직원 1750명의 해고사태를 공정한 시각에서 다룬 내용을 방영했다.

그 프로그램에서 손석희는 담당 PD의 강권에 의해 나래이터 역할을 담당했는데, 어느 해고노동자는 손석희에게 편지를 보내 이 프로그램이 천군만마의 도움을 주었다고 감사의 마음을 표시했단다.

그에 대한 손석희의 말은 이렇다.

"내가 받을 인사는 아니다.

넘치는 오락과 드라마 속에서 '반란'을 일으킨 'MBC스페셜' 제작진이 받아야 할 인사다"나도 손석희의 그러한 생각에 동의한다.

손석희는 단지 1-2시간 정도만 그 프로그램에 투자했을 뿐이지만 시청자들은 손석희=프로그램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아나운서에 대한 대중의 인식도 그와 비슷하다.

어떤 고참 아나운서는 "언제나 시청자에게 꽃다발을 안겨주는 자세"로 말하는 아나운서가 최고의 프로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손석희의 명성과 호감도는 이런 전통적 의미의 아나운서로서의 역할을 통해 얻어진 게 아닌 듯 하다.

손석희는 변웅전의 너털웃음식 소탈함이나 차인태의 다재다능함, 보는 사람을 단번에 무장해제 시켜 편안하게 만드는 김동건의 천재성 등과 같은 전통적인 아나운서의 이미지와는 궤를 달리 한다는 말이다.

그건 마치 음악성 자체를 중시하는 조용필과 음악을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를 중시하는 정태춘의 차이 같은 것이다.

그는 후자쪽이다.

언젠가 손석희는 '방송의 핵심이 이미지라면 아나운서에게도 일정분야의 전문가적 이미지가 필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런 논리에 따른다면 손석희는 많은 시청자들에게 뉴스 전문진행자로 알려져 있다.

그가 처음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1분뉴스'를 시작으로 한동안 문화방송 뉴스프로그램 진행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진행할만큼 뉴스와 손석희는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입사 3년차부터 만 2년 동안은 아나운서로는 최초로 보도국 로 발령을 받아 아예 내놓고 뉴스만을 전담하기도 했다.

손석희 자신은 그 이유를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깨끗한 이미지를 풍기는 것 같아서 시청률이 올라갔기 때문일 것"이라고 웃어 넘기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 이유를 손석희가 'here & now'를 중시하는 '지금 여기서의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또한 앞서 언급한 손석희 매니아들과 관련된 궁금증에 대한 해답이기도 하다.

     '지금 그리고 여기(Here & Now)' 의 인간형정신의학에서 'here & now'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자신의 '지금 그리고 여기'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깨닫게 하는 것이 정신분석치료의 한 목표일 정도다.

얼핏 정신치료의 궁극적 목표라는 게 너무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here & now'를 인식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어릴 때 돌아가신 아버지와 느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한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가 있을 경우, 그녀는 자신 앞에 있는 남자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느끼지 못하는 셈이다.

그녀는 자신의 'here & now'를 왜곡해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삶의 구석구석에 얼마나 많이 배어있는지 모른다.

비단 대인관계에서 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내적 'here & now'를 인식하기기는 더 힘들다.

지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아는 사람이 드문 것도 그런 이유다.

  정신치료의 역사를 보더라도 프로이드 시대에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통해서 나오는 '과거'에 그 사람을 설명하는 핵심키가 담겨 있다고 믿었다.

과거지향적인 치료방식이다.

그러나 현대 정신의학에서는 'here & now'를 더욱 중시한다.

현재 그 사람의 말과 행동, 그리고 대인관계 패턴안에서 그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자신의 'here & now'를 정확히 인식하고 그에 따라 최선을 다한다는 건 심리적으로 꽤나 성숙한 사람일 때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손석희는 'here & now'형 인간에 가깝다.

과거를 무시한다는 게 아니라 '바로 지금'  내가 하고 있고, 할 수 있는 일을 누구보다 명확하게 인지한다는 뜻이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손석희의 방송을 보고 들을 때마다 그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느낌을 전달받는다.

방송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 핵심을 통찰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그의 말은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진정으로 알고 싶은 것, 말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통로가 되어 준다.

당연히 손석희의 방송은 색깔이 뚜렷하다.

특별히 뉴스나 시사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해서가 아니다.

지난 93년 노조활동의 여파로 손석희는 9개월만에 방송에 복귀했는데 뉴스전문 진행자로 굳어있던 그가 교양프로그램을 맡자 일부 신문들은 '변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손석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프로그램의 성격에 맞춰 표현의 방법을 달리하는 것은 '변신'이 아니다.

프로그램의 내용이나 형태의 차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방송에 대한 나의 자세와 방향성이 더욱 중요한 것이 아닐까. 나는 그것들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그게 바로 손석희의 색깔이다.

그런 뚜렷한 색깔에도 불구하고 손석희가 비교적 편향성 시비에 시달리지 않는 건 메시지 전달자로서의 그의 일관된 태도다.

손석희는 방송 입문후 부터 지금까지 뉴스는 객관성이 최고의 덕목인만큼 개인의 퍼스낼리티는 가급적 '죽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해왔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뉴스진행자가 뉴스를 외워서 진행하려고 하는데 자신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도 뉴스에서 진행자 개인이 부각될 필요가 없어 보인다는 판단에서라는 것이다.

2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앵커에 복귀하면서도 미국식 스타시스템을 비판하면서 "앵커 개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예를들어 손석희라는 진행자의 말을 믿게 하기보다는 MBC를 신뢰하도록 하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요"라고 말한다.

또한 토론 프로그램에 있어서도 사회자의 역할을 최소화해서 사회자가 아예 없는 듯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화방송 간판 진행자로서의 입지가 확고한 사람의 배부른 소리라고 삐딱하게 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러한 손석희의 태도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의 전체적인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데서 오는 절제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스타성이 많은 진행자이면서도 그에대해 '튄다'라는 표현이 거의 없다는 게 한 증거일 것이다.

튀지는 않지만 인간 손석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방송인 손석희와 너무 다른 그의 이미지 때문에 놀라기는 한다고 한다.

담백하고 진지한 이미지, 깨끗한 마스크에 차분한 분위기, 편안한 인상과 다정다감한 목소리 등이 방송인 손석희의 이미지인데 현실세계에서는 영 딴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손석희는 자신이 '절제된 형식주의'를 너무나 싫어하는 사람이라서 클래식 음악회의 가식적 분위기 때문에 클래식 공연장에 가지 않으며, 호사스럽게 꾸며놓은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몸에 맞지않는 옷을 입었을 때처럼 불편하고, 자신이 상소리를 잘하는 한 이유로 깨끗하고 정중한 언변으로 무장된 사람을 인간적으로 믿지 않는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그는 옷에 돈쓰는 걸 제일 큰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대학다닐 때 줄곧 한 가지 옷만 입고 다녀서 친구들이 그의 옷을 '교복'이라고 불렀을 정도고 방송국에 입사해서도 네 벌의 옷으로 1년을 버틴 적도 있단다.

하지만 손석희를 직접 만나본 적이 없는 일반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지난 92년 문화방송 파업당시 손석희가 보인 격렬한(?) 노조활동을 보면서 손석희의 이미지와는 전혀 딴판인 또다른 손석희를 만났을 것이다.

노조집행부 간부였던 손석희는 불법파업주동자로 몰려 '쟁의조정법 위반 및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되어 20일 간 구치소에 수감되었다가 회사측의 소송취하가 있고나서야 석방되었다.

방송초기 '아도니스형 미소년'이라고까지 불리던 손석희의 곱상한 이미지에 익숙해 있던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그 사건이 좀 '느닷없게' 느껴졌을 것이다.

손석희는 지금도 당시의 일을 회상하는 걸 불편해 한다.

그때의 행동을 후회해서가 아니라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닌데 자신이 마치 민주화 투사나 된 듯이 생각해주는 게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자신이 노조활동으로 인한 가장 수혜자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로인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애정과 관심을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노조활동 또한 손석희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는 데서 연유한 것이라고 믿는다.

'공정방송' 쟁취는 깨끗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아나운서 손석희보다 우선하는, 방송인 손석희를 지켜내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이자 의무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방송에 노동조합이 생겼을 때 '덜컥' 가입원서를 냈던 손석희는 왜 노조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이건 아주 단순한 문제입니다.

노조를 안 할 수 있는 명분이 없습니다.

운동가까지는 못되더라도 직업으로서 최소한의 양심, 소시민적 도덕성을 지키려만 해도 노조활동은 불가피합니다"하지만 노조에 얼굴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주위사람의 만류를 받을만큼 유명세가 있었던 손석희의 입장에서 확실히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 쟁의투쟁위원으로 구속된 손석희의 면회기를 실은 10월 7일치 문화방송 노조 파업투쟁 속보의 내용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이 연민의 정을 불러 일으킬만한 선한 인상의 미남청년을 투사로 만들었는가. 타락한 세상에서 숨죽이고 조용히, 혹은 적당히 살았더라면 세속적 인기와 일상의 안일함 속에 두 다리 뻗고 살 수 있었을텐데...." 원래 쉬운 건 안하는 남자이 대목쯤에서 손석희의 노조활동을 너무 미화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할 수도 있는 사람에겐 현재 방송에서 손석희가 전달하는 노사관련 멘트를 유심히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무턱대고 노조의 편을 들거나 약자의 감정적 대응을 촉발하지는 않지만 '지금은 파업에 적절한 시기가 아니다'라는 따위의 무책임하고 저질스런 멘트를 남발하지도 않는다.

아마도 손석희는 1992년 10월7일 문화방송 민주의 터에서 자신을 비롯한 쟁의투쟁위원들의 구인을 막기위해 수백명의 사복경찰과 맞서 싸운 정혜정, 김현경, 정보영, 황선숙을 비롯한 문화방송 조합원들의 피눈물나는 전투장면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그가 그 사실을 잊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환기시켜주면 된다.

그것으로 족하다.

정치적인 관점에서 사회자의 편향성을 문제삼는 사람들에 대한 손석희의 대답은 이렇다.

"저는 어떠한 정치적 당파성으로부터도 자유롭습니다.

자유롭다는 것은 무색무취하다는 것이 아니라 전방위로 비판적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손석희는 원래 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중학생 시절 아는 사람이 였는데 기사를 잘못 썼다고 어딘가에 끌려가서 맞고 왔다는 말을 들은 직후였는데 그 이유가 희안하다.

"가 기사를 잘못 썼다고 맞나? 누가 때리나? 불현 듯 가 되고 싶었어요"손석희의 방송국 후배 한 사람은 손석희가 '그 어려운' 김종서 노래를 즐겨 부른다면서 원래 쉬운 건 안하려는 성격이라고 말했다는데,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손석희는 단정한 외모와 정확한 멘트, 위기 처리능력이 뛰어나 텔레비전 뉴스에서 뉴스, 재난방송, 대형 특집 프로그램 등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도맡아 진행하는 사람이다.

어렵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발휘되는 방송인 손석희의 순발력이나 순간 집중력은 당대 최고라는 평가다.

시사평론가 유시민은 이산가족 상봉 프로그램을 진행한 손석희를 보면서 감탄했다고 말한다.

손석희는 0.5초 이내에 직관적 판단을 내리고 시청자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사람들로부터 끌어냈다는 것이다.

현재 9시 뉴스를 진행하는 김주하 앵커도 돌발뉴스에 강한 손석희의 순발력에 경탄하면서 "위급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가장 이성적인 멘트를 할 수 있는 손석희처럼 그런 앵커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타고난 재능이기도 하겠지만 'here & now'에 강력한 집중력을 보이는 손석희의 성향을 보여 주는 한 증거일 수도 있을 것이다.

손석희는 유난히 '좋은 방송'을 강조한다.

그만한 유명세가 있으면서도 프리랜서가 되지 않는 한 이유도 돈을 더 받을 순 있어도 당장 '좋은 방송'이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란다.

그는 '좋은 방송'을 만들기 위해선 사람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방송 초창기 르포형식의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을 때 그는 이따끔 카메라도 자신이 들고 다녔다고 털어 놓는다.

방송용 카메라는 제법 무거워서 카메라맨이 그걸 하루종일 들고 다니면 힘이 빠져 좋은 그림이 안 나올 것 같아서였단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좋은 방송'의 기준은 무엇일까. "상식적인 수준에서 옳은 것이요. 힘없는 사람, 약한 사람, 소외된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하는 거지요"지난 해 연말 손석희는 자신이 진행하는 '손석희의 시선집중' 게시판에 '좋은 방송'을 할 수 있는 자신의 처지를 행복하다고 표현한 글 하나를 올린다.

"한 해를 마감하면서 저는 개인적으로 무척 행복한 방송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평범한 이들이 갖고 있는 건강한 상식을 반영하면서 방송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복된 일입니다"'상식'이 좋은 방송의 잣대라는 건 손석희의 개인적 성향을 잘 보여주는 일인 동시에 유쾌한 일이다.

그는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상식적 판단에서 옳은 일이라면 바꾸지 말자. 내가 죽을 때까지 그 원칙에서 흔들리지 말고 나아가자'고 다짐한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또 지위가 달라진다고 해서 자신을 바꾸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사회란 개인의 그런 건강한 일관성을 바탕으로 진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손석희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출연자들이 말할 때는 반발짝 물러서고, 진행멘트를 할 때는 반발짝 앞선다고 말한다.

출연자의 말허리를 자르지 않기 위해 반발짝 물러 선다는 것은 금방 이해가 되는데, 반발짝 앞선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시청자들의 견해보다 조금 진보된 의견을 개진해 여론을 환기시키려 한다는 게 손석희의 설명이다.

그의 이런 성향은 실천을 통해서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단언하긴 어렵지만 나는 손석희가 방송국이외의 외부행사를 통해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는 말을 들은 바 없다.

방송과 관련이 없는 각종 행사에서 그의 이름을 자주 접할 수 있기는 하다.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 '20% 지방의회 여성참여 후원회' '노동자 대바자회'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언론학교 강사'. 예를 들자면 일반인들은 이름도 잘 들어본 적이 없는 이런 행사들이다.

나는 그런 손석희를 보면서 '이름값'의 용도를 새삼스레 떠올린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손석희는 자신이 속한 직장에서 열심히 일했고 다행히 재능과 적성이 뒷받침되어 명성을 얻었다.

열심히 일한다고 누구나 그런 행운을 잡는 건 아니다.

[손석희 편지 전문] 진실 또는 거짓..


만일 손석희가 그의 첫직장이었던 한 신문사의 총무부에서 계속 일했다면 지금과 같은 유명인사가 되었을리 만무다.

직업의 우열을 가리자는 것이 아니라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특수해서 그의 뜻과는 상관없이 유명해 졌다는 말이다.

손석희는 자신이 방송을 제외한 타매체에 얼굴을 내밀기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인터뷰를 극구 꺼리는 유명인 중 한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의 직업상 얼굴을 내놓고 지낼 뿐이지, 그 외 어떤 방법으로도 자신을 알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대중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야 할 의무도 자신에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어떤가. 지난 92년 문화방송 파업 당시 조합원들은 수갑차고 포승줄에 묶인 손석희의 사진을 시내 곳곳에 걸어놓고 시민들로부터 가두서명과 쟁의성금을 모집했는데, 손석희 사진의 효과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걸 두고 노조에서 손석희의 이름값을 이용했다고 비난하면 나름으로의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당사자인 손석희는 노조의 이런 전략을 흔쾌히 인정했다.

운동의 당위성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름값이 무거워진 그의 역할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손석희라는 이름값은 더 무거워졌다.

그가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에서 읊은 시 한구절로 인해 양심수라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또 그 가족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 생각해 보게 된다면, 혹은 왜 지방의회에 일정 비율의 여성이 꼭 참여해야 하는지를 따져보는 일에 손석희의 이름값이 쓰이게 된다면 그 또한 복된 일이라고 나는 믿는다.

어느 조사에서 행정관료와 시민단체들이 좋아하는 언론인 1위에 손석희를 선정하고, 여성운동가들이 선정한 한국의 페미니스트 99명에 손석희가 포함된 게 우연은 아닐 것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손석희의 방송진행 능력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모양이다.

1995년엔 대한민국 방송대상 아나운서 대상을 수상하더니 문화방송이 창사 40주년을 기념해 4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최고 아나운서로 선정되었다.

그보다 더 반가운 건 지난해 한 진보잡지의 송년호 특집 설문조사 '희망을 주는 언론인'에서 손석희가 2위로 선정된 사실과 또다른 조사에서 '전문가 그룹이 좋아하는 언론인' 2위에 손석희가 뽑혔다는 사실이다.

그가 공정하고 상식적인 태도가 돋보이는 신뢰할만한 언론인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한 징표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선거 때마다 손석희는 각 당의 영입대상 1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손석희는 그럴 때마다 거론되는 자체가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늙어서도 방송인으로 남겠다지만 나는 솔직히 그 말을 100% 믿지 못한다.

그에 반대되는 모범사례(?)를 수도 없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정치를 한다는 자체가 무슨 사기꾼이 되겠다는 선언을 하는 것처럼 몹쓸 일로 치부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떤 내용의 정치를 하느냐 하는 게 문제지 정치 자체에 대해서 펄펄 뛸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치판에 뛰어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했다고 미루어 때려 잡을 일도 아니다.

앞서 어느 청취자가 말한 것처럼 '내 자식이 닮게 하고 싶은 정치인'이 될 자신이 있다면 손석희는 마땅히 정치에 뛰어 들어 공정방송을 위해 더 큰 일을 해야 마땅하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의 소원대로 곱게 늙어서 자기 자리를 지키는 방송인으로 남아 후배들의 귀감이 되는 게 옳다.

손석희의 개인적 성향도 정치와 썩 어울리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2년전쯤 문화방송 아나운서로 있는 친구 덕분에 아나운서실에 있는 손석희를 얼핏 볼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나는 그에게서 무리속에 있는 섬같은 느낌, 현실과 교통하지 않고 자기세계에 빠져 있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중학교 시절 매일 하교길에 일부러 차를 타지 않고 걸으면서 자기만의 세계를 즐겼다는 소년 손석희의 모습이 언뜻 보이는 듯도 했다.

손석희는 98년 한 잡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골프를 못 배워서 사람 사귀는 게 불가능한 사회라면 이미 썩은 사회이므로 혼자 지내는 쪽을 택하겠다'는 비정치적인(?) 발언을 한 적도 있다.

그러는 한편으로 손석희는 자신에 대해서 '세상에 대한 직선적 시각만을 키워오는 와중에 따뜻한 상상력, 즐거운 창의력은 퇴화되고 강퍅함만 남은 것은 아닌가' 걱정된다고 고백한다.

그의 말처럼 자기반성을 먼저 그것도 철저하게 한 쪽이, 그리고 반성한만큼 '실천'한 쪽이 그렇지 않은 쪽을 이기는 것이라면 나는 많은 실천을 통해 손석희가 이 세상과의 싸움에서 이겼으면 좋겠다.

심리학자에 의하면 사람들은 좋은 경험과 연합되어 있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나쁜 경험과 연합되어 있는 사람들을 싫어한다고 한다.

이 원리에 따르면 처음에는 아무런 좋고 싫은 감정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상황과 지속적으로 짝지워질 경우 그 상황에 맞는 감정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가령, 어떤 사람을 볼 때마다 즐거운 일이 생긴다면 처음에는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없었지만 그 사람은 즐거움과 연합되어 좋게 평가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합은 대개 의식적이기보다는 무의식적으로 이루어 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거의 매일이다시피 우리와 접하는 손석희는 어떤 감정과 연합되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일까. 어린 시절 어느날의 아버지를 회상하는 손석희의 육성으로 그 해답 혹은 소망을 여운으로 남겨보자.  "아버지는 당신 앞에 나를 불러 앉히시더니 내게 법(法)을 한자로 써보라 하셨다.

물 水변에 갈 去, 물이 흐르는 이치대로 양심이 편한 쪽으로 행동하면 그것이 곧 법과 같다는 말씀이셨다"바로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의 삶은 물흐르듯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군더더기가 없다.

2년전 손석희는 '나이 쉰에 무엇을 보여줄까'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이제 몇 년있으면 손석희도 쉰이 된다.

그때 손석희는 어떤 모습으로 무슨 얘기를 하고 있을 것인가. 나는 그게 정말 궁금하다.

 정혜신 (2002년 3월) 출처] http://www.hyeshin.co.kr/bbs/view.php?id=b_person&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8 문재인입니다.

진심을 담아 축하드립니다.

 69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셨다니  너무나 기쁘고 또 너무나 감격스러운 소식입니다.

  베니스 영화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그런 영화제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영화로는 우리 김감독님이 첫 황금사자상 수상이라지요한국 영화에 큰 기념비를 세워주셨습니다.

문화 예술의 나라 대한민국에 큰 자부심을 심어주셨습니다.

우리 국민들과 함께 거듭 축하와 격려의 큰 박수를 보냅니다.

  얼마전 김감독님께서 베니스 영화제로 떠나기전에 하셨던인터뷰 내용 참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김감독님께서 존경하고 배우고 싶은 사람으로언론인 손석희 씨와 이창동 감독님 그리고 많은 것이 부족한 저를 언급하셨더군요.  김감독님의 덕담처럼 꼭 수평 사회를 이루어내 우리 사회 곳곳이 균형이 이루어지고 변화가 이루어져사람이 먼저이고 사람이 살 맛나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을감독님과 저,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함께 열어가길 희망합니다.

  승자독식이라는 우리 사회의 횡포와 야만성 때문에 우리 보통사람들의 인간적 삶이 극도로 황폐화되고 허물어져가고 있습니다그 절망과 아픔을 드러내고 고발하여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반성과 성찰을 갖게 하는 자극제가바로 김감독님의 영화예술이라면 그 반성적 성찰을 끌어안고 대안을 마련하여 사회 곳곳의 아픔을 치유하는 노력과 실천이바로 저의 정치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독님을 비롯하여 우리 사회 훌륭하신 많은 예인들이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우려하고 걱정하는 그 마음들과 시선들을 꼭 제 가슴에 담아상식이 통하고 정의와 공평함이 본래의 자리를 찾아가는사람 사는 세상 꼭 만들겠다는 약속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아리랑.김감독님의 수상식 아리랑 답가를 들으며 마음이 참 뭉클했습니다.

모든 국민이 그랬을 것입니다.

 예술가가 선물해준 마음의 정화 카타르시스라고 하지요. 참 찡했습니다.

  이제 백일여 앞으로 다가온 대선12월 19일 저도 김감독님처럼 아리랑을 꼭 한번 불러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우리 국민들의 아팠던 마음을노래로 씻어주고 어루만져주고 싶습니다.

그런 자리를 고대합니다.

감사합니다.

      김기덕 감독의 편지 전문  제가 외국에 있어 먼저 편지로 감사 인사 드립니다.

[손석희 편지 전문] 완전 대박



이번 저의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으로  그 동안 말없이 저를 지지해 준 제 영화 팬과 사회 각 계층의 인사들로부터 많은 축하를 받았습니다.

바쁜 해외 순방 중이심에도 대통령께서 진심 어린 축전을 보내주셨고, 새누리당도 영화인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긴 메세지를 발표하셨고, 노회찬 의원님도,김동호 전 부산영화제 위원장님도,이외수선생님도,진중권님도,이현승감독님도,문재인님도, 그 외 아직 파악하지 못한 분들까지 모두 축하해 주셨습니다.

이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중에서,특히 진심이 가득 담긴 감동적인 긴 편지를 보내주신 문재인님의 편지는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특히 건강한 수평사회를 위해 같이 노력하자는 말씀과연말에 아리랑을 부르고 싶다는 말씀은 뭉클합니다.

모든 분들이 훌륭하시지만저는 개인적으로문재인님이 고름이 가득 찬 이 시대를 가장 덜 아프게 치료하실 분이 아닐까 생각하며,저는 문재인의 국민이 되어 대한민국에 살고 싶습니다.

이 상은 제 개인적으로 받은 상이기도 하지만세계영화계에 한국 영화의 위상을 알린 모든 한국영화인에게 준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임권택 감독님과 김동호 위원장님이 없었다면 결코 저에게 이런 영광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번 수상기회로 메이져 책임자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은지금 메이져에서 활동하는 유명감독 배우들은 바로 수년 전,저와 같이 독립영화 저예산 영화 감독들이었고 가난해도 열정으로 연기하던 배우들이었습니다.

진정한 천만 관객은 중요하지만, 수직 계열화된 극장을 몇 관씩 독점해 천만을 하면 허무한 숫자일뿐이며그런 수익은 휴지일뿐이고 그 누구도 진정한 영광은 아닐 것입니다.

열정으로 창작을 포기하지 않은 영화인들과 좋은 영화에 투자해준 메이져 자본이 함께 만든 공동의 가치일 것입니다.

영화산업의 백년대계를 내다보신다면 다양한 영화가 같이 성장할 수 있도록독립영화 저예산영화에도 균형 잡힌 투자와 상영기회를 진심으로 부탁 드립니다.

다시한번 제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앞으로도 의미 있고 재미있는 영화를계속 만들겠습니다.

  김기덕 감독       다음 아고라 화가 님의 글

    ?참 많은 시간이 흐른듯합니다.

  몇개월간 새벽에 일어나 몸추스르고 생업에 메달리며 살아왔네요.   열심히 살았다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나름 땀흘리며 매사에 충실했다고 말은 할수 있었던 시간이었네요.   나 이외 시간을 바라볼 시간조차 없었던...   솔직히 온갖거짖과 은폐에 감추어진 나라꼴을보며 외면 하려 했었네요..   하지만 작은 몸짖 이었을지언정 앞으로 나가려는 분들의 끊임없는 글들을 보았을때..   큰 후회와 반성에 몇시간을 담배를 벗삼아 하늘을 보게 되었습니다.

  작은 움직임 ..꿈틀거림..    다른이에게는 미친짖일지모를 행동 하나하나가 내일을 바꾼다는 마음을 다시금 되새기며 글을 옮겨봅니다.

        그만큼 간략하고 정확하다.

'말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 중 손석희처럼 언어의 절제미를 보여주는 사람도 그리 흔치는 않을 것이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그의 절제된 이미지와 깔끔한 진행, 그가 지닌 합리성과 논리적 비판에 매료되어 그의 팬을 자처하는 '손석희 매니아'도 적지 않다.

그들이 보여주는 애정의 강도는 단순한 스타와 팬의 관계를 뛰어 넘는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그의 방송을 즐겨 듣는다는 한 청취자의 편지는 손석희에 대한 호감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고교생이 된 내 아이가 '어머니, 제가 어떤 인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까?'하고 자주 묻곤 하는데 저는 주저없이 '손석희씨같은 인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할만큼 손석희씨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그런 정도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종류의 사연은 수없이 많다.

손석희의 무엇이 자식에게 삶의 한 전범으로 제시하고 싶을만큼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일까. 단순히 그의 곱상한 외모와 조리있는 말솜씨때문이라고 하기엔 그들이 손석희에게 보내는 각별한 의미가 너무 무겁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손석희는 현재 문화방송 아나운서국 2부장으로 재직 중인 40대 후반의 방송인이다.

텔레비전에 얼굴을 내민지 20년이 되어 가는 사람이니 이력으로만 놓고 따지면 그의 명성과 호감도를 이해못할 바도 없다.

단순노출 효과 이론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시청자들은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는 인물에 대해서 친근감을 나타내고 그래서 그 인물은 텔레비전에 더 자주 나오게 된다고 한다.

자주 보는 인물에 대해선 어느 정도 예측을 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긴장을 하지 않아도 되므로 좋아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손석희처럼 한때 하루에 5개 프로그램을 진행할 정도로 노출이 많았던 사람에게 대중들이 어느 정도의 호감을 보이는 건 당연하다.

방송의 최종 전달자로서의 아나운서라는 그의 직업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예전에는 아나운서 시험에 떨어진 사람이 '그럼 하다못해 PD라도 시켜달라'는 얘기도 있었다지만, 스타 PD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요즘에는 그런 에피소드가 전설의 고향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대중들의 인식 속에는 아나운서가 방송인 중 가장 화려하고 친근한 직종으로 각인되어 있다.

지난해 3월 'MBC스페셜'은 대우자동차 직원 1750명의 해고사태를 공정한 시각에서 다룬 내용을 방영했다.

그 프로그램에서 손석희는 담당 PD의 강권에 의해 나래이터 역할을 담당했는데, 어느 해고노동자는 손석희에게 편지를 보내 이 프로그램이 천군만마의 도움을 주었다고 감사의 마음을 표시했단다.

그에 대한 손석희의 말은 이렇다.

"내가 받을 인사는 아니다.

넘치는 오락과 드라마 속에서 '반란'을 일으킨 'MBC스페셜' 제작진이 받아야 할 인사다"나도 손석희의 그러한 생각에 동의한다.

손석희는 단지 1-2시간 정도만 그 프로그램에 투자했을 뿐이지만 시청자들은 손석희=프로그램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아나운서에 대한 대중의 인식도 그와 비슷하다.

어떤 고참 아나운서는 "언제나 시청자에게 꽃다발을 안겨주는 자세"로 말하는 아나운서가 최고의 프로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손석희의 명성과 호감도는 이런 전통적 의미의 아나운서로서의 역할을 통해 얻어진 게 아닌 듯 하다.

손석희는 변웅전의 너털웃음식 소탈함이나 차인태의 다재다능함, 보는 사람을 단번에 무장해제 시켜 편안하게 만드는 김동건의 천재성 등과 같은 전통적인 아나운서의 이미지와는 궤를 달리 한다는 말이다.

그건 마치 음악성 자체를 중시하는 조용필과 음악을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를 중시하는 정태춘의 차이 같은 것이다.

그는 후자쪽이다.

언젠가 손석희는 '방송의 핵심이 이미지라면 아나운서에게도 일정분야의 전문가적 이미지가 필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런 논리에 따른다면 손석희는 많은 시청자들에게 뉴스 전문진행자로 알려져 있다.

그가 처음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1분뉴스'를 시작으로 한동안 문화방송 뉴스프로그램 진행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진행할만큼 뉴스와 손석희는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입사 3년차부터 만 2년 동안은 아나운서로는 최초로 보도국 로 발령을 받아 아예 내놓고 뉴스만을 전담하기도 했다.

손석희 자신은 그 이유를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깨끗한 이미지를 풍기는 것 같아서 시청률이 올라갔기 때문일 것"이라고 웃어 넘기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 이유를 손석희가 'here & now'를 중시하는 '지금 여기서의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또한 앞서 언급한 손석희 매니아들과 관련된 궁금증에 대한 해답이기도 하다.

     '지금 그리고 여기(Here & Now)' 의 인간형정신의학에서 'here & now'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자신의 '지금 그리고 여기'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깨닫게 하는 것이 정신분석치료의 한 목표일 정도다.

얼핏 정신치료의 궁극적 목표라는 게 너무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here & now'를 인식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어릴 때 돌아가신 아버지와 느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한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가 있을 경우, 그녀는 자신 앞에 있는 남자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느끼지 못하는 셈이다.

그녀는 자신의 'here & now'를 왜곡해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삶의 구석구석에 얼마나 많이 배어있는지 모른다.

비단 대인관계에서 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내적 'here & now'를 인식하기기는 더 힘들다.

지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아는 사람이 드문 것도 그런 이유다.

  정신치료의 역사를 보더라도 프로이드 시대에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통해서 나오는 '과거'에 그 사람을 설명하는 핵심키가 담겨 있다고 믿었다.

과거지향적인 치료방식이다.

그러나 현대 정신의학에서는 'here & now'를 더욱 중시한다.

현재 그 사람의 말과 행동, 그리고 대인관계 패턴안에서 그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자신의 'here & now'를 정확히 인식하고 그에 따라 최선을 다한다는 건 심리적으로 꽤나 성숙한 사람일 때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손석희는 'here & now'형 인간에 가깝다.

과거를 무시한다는 게 아니라 '바로 지금'  내가 하고 있고, 할 수 있는 일을 누구보다 명확하게 인지한다는 뜻이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손석희의 방송을 보고 들을 때마다 그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느낌을 전달받는다.

방송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 핵심을 통찰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그의 말은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진정으로 알고 싶은 것, 말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통로가 되어 준다.

당연히 손석희의 방송은 색깔이 뚜렷하다.

특별히 뉴스나 시사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해서가 아니다.

지난 93년 노조활동의 여파로 손석희는 9개월만에 방송에 복귀했는데 뉴스전문 진행자로 굳어있던 그가 교양프로그램을 맡자 일부 신문들은 '변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손석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프로그램의 성격에 맞춰 표현의 방법을 달리하는 것은 '변신'이 아니다.

프로그램의 내용이나 형태의 차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방송에 대한 나의 자세와 방향성이 더욱 중요한 것이 아닐까. 나는 그것들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그게 바로 손석희의 색깔이다.

그런 뚜렷한 색깔에도 불구하고 손석희가 비교적 편향성 시비에 시달리지 않는 건 메시지 전달자로서의 그의 일관된 태도다.

손석희는 방송 입문후 부터 지금까지 뉴스는 객관성이 최고의 덕목인만큼 개인의 퍼스낼리티는 가급적 '죽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해왔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뉴스진행자가 뉴스를 외워서 진행하려고 하는데 자신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도 뉴스에서 진행자 개인이 부각될 필요가 없어 보인다는 판단에서라는 것이다.

2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앵커에 복귀하면서도 미국식 스타시스템을 비판하면서 "앵커 개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예를들어 손석희라는 진행자의 말을 믿게 하기보다는 MBC를 신뢰하도록 하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요"라고 말한다.

또한 토론 프로그램에 있어서도 사회자의 역할을 최소화해서 사회자가 아예 없는 듯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화방송 간판 진행자로서의 입지가 확고한 사람의 배부른 소리라고 삐딱하게 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러한 손석희의 태도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의 전체적인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데서 오는 절제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스타성이 많은 진행자이면서도 그에대해 '튄다'라는 표현이 거의 없다는 게 한 증거일 것이다.

튀지는 않지만 인간 손석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방송인 손석희와 너무 다른 그의 이미지 때문에 놀라기는 한다고 한다.

담백하고 진지한 이미지, 깨끗한 마스크에 차분한 분위기, 편안한 인상과 다정다감한 목소리 등이 방송인 손석희의 이미지인데 현실세계에서는 영 딴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손석희는 자신이 '절제된 형식주의'를 너무나 싫어하는 사람이라서 클래식 음악회의 가식적 분위기 때문에 클래식 공연장에 가지 않으며, 호사스럽게 꾸며놓은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몸에 맞지않는 옷을 입었을 때처럼 불편하고, 자신이 상소리를 잘하는 한 이유로 깨끗하고 정중한 언변으로 무장된 사람을 인간적으로 믿지 않는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그는 옷에 돈쓰는 걸 제일 큰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대학다닐 때 줄곧 한 가지 옷만 입고 다녀서 친구들이 그의 옷을 '교복'이라고 불렀을 정도고 방송국에 입사해서도 네 벌의 옷으로 1년을 버틴 적도 있단다.

하지만 손석희를 직접 만나본 적이 없는 일반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지난 92년 문화방송 파업당시 손석희가 보인 격렬한(?) 노조활동을 보면서 손석희의 이미지와는 전혀 딴판인 또다른 손석희를 만났을 것이다.

노조집행부 간부였던 손석희는 불법파업주동자로 몰려 '쟁의조정법 위반 및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되어 20일 간 구치소에 수감되었다가 회사측의 소송취하가 있고나서야 석방되었다.

방송초기 '아도니스형 미소년'이라고까지 불리던 손석희의 곱상한 이미지에 익숙해 있던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그 사건이 좀 '느닷없게' 느껴졌을 것이다.

손석희는 지금도 당시의 일을 회상하는 걸 불편해 한다.

그때의 행동을 후회해서가 아니라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닌데 자신이 마치 민주화 투사나 된 듯이 생각해주는 게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자신이 노조활동으로 인한 가장 수혜자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로인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애정과 관심을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노조활동 또한 손석희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는 데서 연유한 것이라고 믿는다.

'공정방송' 쟁취는 깨끗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아나운서 손석희보다 우선하는, 방송인 손석희를 지켜내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이자 의무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방송에 노동조합이 생겼을 때 '덜컥' 가입원서를 냈던 손석희는 왜 노조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이건 아주 단순한 문제입니다.

노조를 안 할 수 있는 명분이 없습니다.

운동가까지는 못되더라도 직업으로서 최소한의 양심, 소시민적 도덕성을 지키려만 해도 노조활동은 불가피합니다"하지만 노조에 얼굴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주위사람의 만류를 받을만큼 유명세가 있었던 손석희의 입장에서 확실히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 쟁의투쟁위원으로 구속된 손석희의 면회기를 실은 10월 7일치 문화방송 노조 파업투쟁 속보의 내용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이 연민의 정을 불러 일으킬만한 선한 인상의 미남청년을 투사로 만들었는가. 타락한 세상에서 숨죽이고 조용히, 혹은 적당히 살았더라면 세속적 인기와 일상의 안일함 속에 두 다리 뻗고 살 수 있었을텐데...." 원래 쉬운 건 안하는 남자이 대목쯤에서 손석희의 노조활동을 너무 미화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할 수도 있는 사람에겐 현재 방송에서 손석희가 전달하는 노사관련 멘트를 유심히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무턱대고 노조의 편을 들거나 약자의 감정적 대응을 촉발하지는 않지만 '지금은 파업에 적절한 시기가 아니다'라는 따위의 무책임하고 저질스런 멘트를 남발하지도 않는다.

아마도 손석희는 1992년 10월7일 문화방송 민주의 터에서 자신을 비롯한 쟁의투쟁위원들의 구인을 막기위해 수백명의 사복경찰과 맞서 싸운 정혜정, 김현경, 정보영, 황선숙을 비롯한 문화방송 조합원들의 피눈물나는 전투장면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그가 그 사실을 잊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환기시켜주면 된다.

그것으로 족하다.

정치적인 관점에서 사회자의 편향성을 문제삼는 사람들에 대한 손석희의 대답은 이렇다.

"저는 어떠한 정치적 당파성으로부터도 자유롭습니다.

자유롭다는 것은 무색무취하다는 것이 아니라 전방위로 비판적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손석희는 원래 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중학생 시절 아는 사람이 였는데 기사를 잘못 썼다고 어딘가에 끌려가서 맞고 왔다는 말을 들은 직후였는데 그 이유가 희안하다.

"가 기사를 잘못 썼다고 맞나? 누가 때리나? 불현 듯 가 되고 싶었어요"손석희의 방송국 후배 한 사람은 손석희가 '그 어려운' 김종서 노래를 즐겨 부른다면서 원래 쉬운 건 안하려는 성격이라고 말했다는데,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손석희는 단정한 외모와 정확한 멘트, 위기 처리능력이 뛰어나 텔레비전 뉴스에서 뉴스, 재난방송, 대형 특집 프로그램 등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도맡아 진행하는 사람이다.

어렵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발휘되는 방송인 손석희의 순발력이나 순간 집중력은 당대 최고라는 평가다.

시사평론가 유시민은 이산가족 상봉 프로그램을 진행한 손석희를 보면서 감탄했다고 말한다.

손석희는 0.5초 이내에 직관적 판단을 내리고 시청자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사람들로부터 끌어냈다는 것이다.

현재 9시 뉴스를 진행하는 김주하 앵커도 돌발뉴스에 강한 손석희의 순발력에 경탄하면서 "위급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가장 이성적인 멘트를 할 수 있는 손석희처럼 그런 앵커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타고난 재능이기도 하겠지만 'here & now'에 강력한 집중력을 보이는 손석희의 성향을 보여 주는 한 증거일 수도 있을 것이다.

손석희는 유난히 '좋은 방송'을 강조한다.

그만한 유명세가 있으면서도 프리랜서가 되지 않는 한 이유도 돈을 더 받을 순 있어도 당장 '좋은 방송'이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란다.

그는 '좋은 방송'을 만들기 위해선 사람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방송 초창기 르포형식의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을 때 그는 이따끔 카메라도 자신이 들고 다녔다고 털어 놓는다.

방송용 카메라는 제법 무거워서 카메라맨이 그걸 하루종일 들고 다니면 힘이 빠져 좋은 그림이 안 나올 것 같아서였단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좋은 방송'의 기준은 무엇일까. "상식적인 수준에서 옳은 것이요. 힘없는 사람, 약한 사람, 소외된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하는 거지요"지난 해 연말 손석희는 자신이 진행하는 '손석희의 시선집중' 게시판에 '좋은 방송'을 할 수 있는 자신의 처지를 행복하다고 표현한 글 하나를 올린다.

"한 해를 마감하면서 저는 개인적으로 무척 행복한 방송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평범한 이들이 갖고 있는 건강한 상식을 반영하면서 방송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복된 일입니다"'상식'이 좋은 방송의 잣대라는 건 손석희의 개인적 성향을 잘 보여주는 일인 동시에 유쾌한 일이다.

그는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상식적 판단에서 옳은 일이라면 바꾸지 말자. 내가 죽을 때까지 그 원칙에서 흔들리지 말고 나아가자'고 다짐한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또 지위가 달라진다고 해서 자신을 바꾸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사회란 개인의 그런 건강한 일관성을 바탕으로 진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손석희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출연자들이 말할 때는 반발짝 물러서고, 진행멘트를 할 때는 반발짝 앞선다고 말한다.

출연자의 말허리를 자르지 않기 위해 반발짝 물러 선다는 것은 금방 이해가 되는데, 반발짝 앞선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시청자들의 견해보다 조금 진보된 의견을 개진해 여론을 환기시키려 한다는 게 손석희의 설명이다.

그의 이런 성향은 실천을 통해서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단언하긴 어렵지만 나는 손석희가 방송국이외의 외부행사를 통해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는 말을 들은 바 없다.

방송과 관련이 없는 각종 행사에서 그의 이름을 자주 접할 수 있기는 하다.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 '20% 지방의회 여성참여 후원회' '노동자 대바자회'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언론학교 강사'. 예를 들자면 일반인들은 이름도 잘 들어본 적이 없는 이런 행사들이다.

나는 그런 손석희를 보면서 '이름값'의 용도를 새삼스레 떠올린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손석희는 자신이 속한 직장에서 열심히 일했고 다행히 재능과 적성이 뒷받침되어 명성을 얻었다.

열심히 일한다고 누구나 그런 행운을 잡는 건 아니다.

만일 손석희가 그의 첫직장이었던 한 신문사의 총무부에서 계속 일했다면 지금과 같은 유명인사가 되었을리 만무다.

직업의 우열을 가리자는 것이 아니라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특수해서 그의 뜻과는 상관없이 유명해 졌다는 말이다.

손석희는 자신이 방송을 제외한 타매체에 얼굴을 내밀기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인터뷰를 극구 꺼리는 유명인 중 한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의 직업상 얼굴을 내놓고 지낼 뿐이지, 그 외 어떤 방법으로도 자신을 알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대중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야 할 의무도 자신에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어떤가. 지난 92년 문화방송 파업 당시 조합원들은 수갑차고 포승줄에 묶인 손석희의 사진을 시내 곳곳에 걸어놓고 시민들로부터 가두서명과 쟁의성금을 모집했는데, 손석희 사진의 효과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걸 두고 노조에서 손석희의 이름값을 이용했다고 비난하면 나름으로의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당사자인 손석희는 노조의 이런 전략을 흔쾌히 인정했다.

운동의 당위성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름값이 무거워진 그의 역할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손석희라는 이름값은 더 무거워졌다.

그가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에서 읊은 시 한구절로 인해 양심수라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또 그 가족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 생각해 보게 된다면, 혹은 왜 지방의회에 일정 비율의 여성이 꼭 참여해야 하는지를 따져보는 일에 손석희의 이름값이 쓰이게 된다면 그 또한 복된 일이라고 나는 믿는다.

어느 조사에서 행정관료와 시민단체들이 좋아하는 언론인 1위에 손석희를 선정하고, 여성운동가들이 선정한 한국의 페미니스트 99명에 손석희가 포함된 게 우연은 아닐 것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손석희의 방송진행 능력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모양이다.

1995년엔 대한민국 방송대상 아나운서 대상을 수상하더니 문화방송이 창사 40주년을 기념해 4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최고 아나운서로 선정되었다.

그보다 더 반가운 건 지난해 한 진보잡지의 송년호 특집 설문조사 '희망을 주는 언론인'에서 손석희가 2위로 선정된 사실과 또다른 조사에서 '전문가 그룹이 좋아하는 언론인' 2위에 손석희가 뽑혔다는 사실이다.

그가 공정하고 상식적인 태도가 돋보이는 신뢰할만한 언론인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한 징표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선거 때마다 손석희는 각 당의 영입대상 1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손석희는 그럴 때마다 거론되는 자체가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늙어서도 방송인으로 남겠다지만 나는 솔직히 그 말을 100% 믿지 못한다.

그에 반대되는 모범사례(?)를 수도 없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정치를 한다는 자체가 무슨 사기꾼이 되겠다는 선언을 하는 것처럼 몹쓸 일로 치부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떤 내용의 정치를 하느냐 하는 게 문제지 정치 자체에 대해서 펄펄 뛸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치판에 뛰어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했다고 미루어 때려 잡을 일도 아니다.

앞서 어느 청취자가 말한 것처럼 '내 자식이 닮게 하고 싶은 정치인'이 될 자신이 있다면 손석희는 마땅히 정치에 뛰어 들어 공정방송을 위해 더 큰 일을 해야 마땅하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의 소원대로 곱게 늙어서 자기 자리를 지키는 방송인으로 남아 후배들의 귀감이 되는 게 옳다.

손석희의 개인적 성향도 정치와 썩 어울리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2년전쯤 문화방송 아나운서로 있는 친구 덕분에 아나운서실에 있는 손석희를 얼핏 볼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나는 그에게서 무리속에 있는 섬같은 느낌, 현실과 교통하지 않고 자기세계에 빠져 있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중학교 시절 매일 하교길에 일부러 차를 타지 않고 걸으면서 자기만의 세계를 즐겼다는 소년 손석희의 모습이 언뜻 보이는 듯도 했다.

손석희는 98년 한 잡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골프를 못 배워서 사람 사귀는 게 불가능한 사회라면 이미 썩은 사회이므로 혼자 지내는 쪽을 택하겠다'는 비정치적인(?) 발언을 한 적도 있다.

그러는 한편으로 손석희는 자신에 대해서 '세상에 대한 직선적 시각만을 키워오는 와중에 따뜻한 상상력, 즐거운 창의력은 퇴화되고 강퍅함만 남은 것은 아닌가' 걱정된다고 고백한다.

그의 말처럼 자기반성을 먼저 그것도 철저하게 한 쪽이, 그리고 반성한만큼 '실천'한 쪽이 그렇지 않은 쪽을 이기는 것이라면 나는 많은 실천을 통해 손석희가 이 세상과의 싸움에서 이겼으면 좋겠다.

심리학자에 의하면 사람들은 좋은 경험과 연합되어 있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나쁜 경험과 연합되어 있는 사람들을 싫어한다고 한다.

이 원리에 따르면 처음에는 아무런 좋고 싫은 감정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상황과 지속적으로 짝지워질 경우 그 상황에 맞는 감정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가령, 어떤 사람을 볼 때마다 즐거운 일이 생긴다면 처음에는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없었지만 그 사람은 즐거움과 연합되어 좋게 평가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합은 대개 의식적이기보다는 무의식적으로 이루어 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거의 매일이다시피 우리와 접하는 손석희는 어떤 감정과 연합되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일까. 어린 시절 어느날의 아버지를 회상하는 손석희의 육성으로 그 해답 혹은 소망을 여운으로 남겨보자.  "아버지는 당신 앞에 나를 불러 앉히시더니 내게 법(法)을 한자로 써보라 하셨다.

물 水변에 갈 去, 물이 흐르는 이치대로 양심이 편한 쪽으로 행동하면 그것이 곧 법과 같다는 말씀이셨다"바로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의 삶은 물흐르듯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군더더기가 없다.

2년전 손석희는 '나이 쉰에 무엇을 보여줄까'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이제 몇 년있으면 손석희도 쉰이 된다.

그때 손석희는 어떤 모습으로 무슨 얘기를 하고 있을 것인가. 나는 그게 정말 궁금하다.

 정혜신 (2002년 3월) 출처] http://www.hyeshin.co.kr/bbs/view.php?id=b_person&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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