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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그리고 나오코는 행방불명이 된다.

시간이 흐른뒤 나는 나오코가 정신 질환을 앓고 있고 교토의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음을 그녀의 편지를 통해서 알 게 된다.

이 무렵 나는 무척 화려하고 개성이 강한 아가씨 미도리를 만난다.

그녀는 생생한 생동감, 마치 새롭게 피어나는 새싹과 같은 싱그러움을 느끼게한다.

나는 요양원 안에 나오코와 대도시 안에 있는 미도리를 같이 만나게 된다.

나는 미도리와의 여러차례의 만남을 통해 키스도 하게 되지만 결코 섹스를 하지 않는다.

대신 미도리의 속옷에 사정을 한다.

미도리와 나오코 이 둘은 서로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나오코는 현실과 단절된 깊은 산속에 마치 죽음의 세계를 보는 듯하고 미도리에게서는 동적이고 활기찬 모습을 마치 살아있는 세계를 볼 수 있다.

나는 이 두세계를 오가며 이 둘에게서 상반된 이미지를 느끼면서도 결코 한 사람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나는 늘 나오코를 생각하면서 그녀를 이해하면서 그녀를 도우려고 한다.

그리고 나와 나오코의 관계를 잘 이해해주면서 늘 조언을 해주는 레이코 여사. 이 모두의 모습은 현실을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마치 현실과는 괴리 되어있고 마치 우리가 만나기 힘든 신과 같은 이미지를 보여준다.

때로는 현실적으로 때로는 비 현실적으로 레이코 여사와 나오코와 나는 그렇게 공존하고있는 것이다.

책의 원제는 노르웨이 숲이다.

노르웨이 숲은 고양이의 한 종류이다.

마치 너구리처럼 풍성하고 긴 털을 추켜세운 재미있는 꼬리를 가졌다.

야생 생활에 걸맞게 폭우에도 겉만 젖을뿐 속털은 절대 젖지 않는 길고도 풍성한 털을 가졌다.

장모종이지만 봄에서 여름까지는 털이 다 빠져서 단모종 처럼 보인다.

그리고 또한 노르웨이 숲은 비틀즈의 노래이기도 하다.

존 레넌이 열일곱 살 때에 교통사고로 떠난 어머니  어머니의 이름이다.

그녀는 존이 열일곱 살 때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 곡은 어머니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을 요코와 중첩시켜, 깊은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는 1968년에 발표된 두 장짜리 앨범 'The Beatles(화이트앨범)'에 수록.된 아름다운 발라드곡이다.

하루키가 이 책의 제목을 노루웨이 숲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주인공은 나 와타나베와 노르웨이 숲의 관계는 무엇일까? 노르웨이 숲이라는 고양이는 여름까지 털이 다 빠져 털이 짧은 종류의 고양이로 보이지만 사실 너구리처럼 풍성한 털을 가진 고양이이다.

그리고 비틀즈의 노르웨이숲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아내 요코와의 사랑사이의 고뇌의 반영의 노래이기도 하다.

와타나베는 나오코와 미도리 사이를 오간다.

60년대 일본젊은이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지만 노르웨이숲의 작곡가 존 레넌이 본처와 요코사이를 오가는 모습의 반영은 아닐까? 노르웨이 숲 고양이처럼 단모종의 모습을 띄다가 너구리털과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처럼 인간의 다중인격과 양면성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주인공 와타나베는 마지막에 나오코의 죽음을 막지 못한다.

그는 고뇌에 빠지고 그녀를 구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빠진다.

소설의 마지막부분에 미도리에게 전화로 어떻게든 너와 꼭 이야기를 하고 싶다, 온 세상에서 너 외에 원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미도리는 당신 어디있어요? 라고 묻지만 와타나베는 대답할 수 없다.

이는 현실속에 방황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린 현대인의 모습의 반추인 것이다.

현실속의 방황이라기보다 현실에의 적응이라고 말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현대인은 이런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진짜 모습은 감추고 현실이 원하는 모습만을 보여주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마치 단모종으로 오해시키는 노르웨이 고양이처럼. 그리고 정신병원을 퇴원해 홋카이도로 가려는 레이코 여사와 하룻밤에 네 번이나 관계를 가졌음에도 미도리에게는 너밖에 없다라고 말을 하는 나. 우리는 과거와는 너무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음을 다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비틀즈의 <Norwegian Wood>가 주된 라이트모티브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곡과 아티스트들이 소설 속에 등장한다.

Dear Heart, 브람스의 심포니 4번, Sergean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Waltz for Debby, Lemon Tree, Puff, Where have all flowers gone, 바흐의 푸가, Julia, Nowhere Man 등등 줄잡아 7,80곡이 작중에 등장한다.

비틀즈의 노래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재즈, 클래식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음악이 등장한다.

소설의 끝 부분에서 레이코가 기타 반주로 노래하는 곡만 50곡이다.

하루키는 각종 잡기에 능하다.

야구는 광적으로 좋아한다.

야구장에서 야구 경기를 관람 하다가 갑자기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소설가가 되었을 정도다.

음악도 그 중 하나다.

<1Q84>처럼 한 곡이 반복적으로 라이트모티브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여러 곡이 중첩적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흔하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처럼 라이트모티브의 악보를 통째로 소설에 싣고 있지는 않지만 하루키의 음악사랑은 유별나다.

  삶의 일부로 존재하는 죽음   서른일곱 살의 와타나베를 실은 보잉747이 함부르크 공항에 막 착륙한다.

그 때 기내에서는 비틀즈의 <Norwegian Wood>가 흘러나온다.

와타나베는 18년 전의 과거로 되돌아간다.

소설은 와타나베의 회상으로 시작해서 회상으로 끝난다.

회상의 대상은 세 명의 여자와 두 명의 남자다.

나오코와 기즈키는 연인 사이다.

와타나베는 절친한 친구인 기즈키를 통해 나오코와 처음 만난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셋은 묘한 삼각관계가 된다.

숲을 뜻하는 한자 森(삼)이 세 그루의 나무로 삼각관계를 드러내는 메타포로 쓰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즈키가 자살을 한다.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좀처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루키는 이 지점에서 죽음을 도가적으로 인식한다.

“죽음은 삶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 기즈키가 죽은 후 나오코는 자연스럽게 와타나베의 연인이 된다.

나오코의 스무 번째 생일날 와타나베는 그녀를 가진다.

하루키 소설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성적 묘사가 노골적이라는 점이다.

외설적으로 보일 정도로 노골적인 경우가 많다.

남자의 성기를 페니스라는 영어 단어로 쓰는 것은 그나마 젊잖다.

여성의 성기는 이름 그대로 사용한다.

우리로서는 좀처럼 글로 쓰지 않는 단어다.

그 후 나오코는 종적을 감춘다.

그리고 정신병으로 요양원에 입원한다.

와타나베에게 몸은 허락했지만 마음은 첫사랑 기즈키를 잊지 못한 것이다.

와타나베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지만 나오코는 끝내 기즈키에게 간다.

그녀는 요양원 숲에서 목을 매 자살한다.

와타나베는 한 달 가까이 학교 수업을 빼먹고 정처 없이 여기 저기 떠돌아다닌다.

상실의 시대다.

  위대한 개츠비   하루키의 소설을 읽다 보면 파도타기 독서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상실의 시대>도 예외는 아니다.

<위대한 개츠비>, <호밀밭의 파수꾼>, <로드 짐>, <마의 산> 등 괜찮은 고전들이 많이 소개된다.

기즈키 외에 와타나베가 회상하는 또 다른 남자는 나가사와 선배다.

기숙사에서 둘은 서로 통한다.

나가사와는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있는 와타나베를 눈여겨보고 접근한다.

와타나베는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이나 읽었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는 남자라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군.” 나가사와는 발자크, 단테, 조셉 콘래드, 디킨스를 좋아한다.

와타나베와 취향이 같다.

나가사와는 상황 판단이 뛰어난 천재다.

영어, 독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를 모두 독학으로 마스터 한다.

집안도 빵빵하다.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외무고시에 합격한다.

나가사와는 신사처럼 품격 있게 행동하라고 와타나베에게 말한다.

“신사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이야.” 나가사와는 그러나 여자문제에서는 결코 신사가 아니다.

여자 문제에서는 책임감도, 윤리도 없이 오직 엔조이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닥치는 대로 여자랑 잔다.

하쓰미라는 애인이 있지만 필요할 때만 그녀에게 가서 잠을 잔다.

하쓰미는 나가사와랑 헤어지라는 와타나베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만큼 나가사와를 좋아한다.

하쓰미는 나가사와가 독일로 떠난 후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지만 2년 후 면도칼로 동맥을 잘라 자살한다.

  ????정상과 비정상   레이코는 요양원에서 나오코와 같은 방을 쓰고 있던 중년의 여자다.

와타나베보다는 나이가 열아홉 살 위다.

와타나베는 나오코를 만나러 갔다가 레이코를 알게 된다.

레이코는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음대 학생이었다.

소질도 있었다.

그러나 콘서트를 앞둔 어느 날 갑자기 새끼손가락이 마비되면서 그녀의 꿈은 산산조각이 난다.

그 후 간신히 학교를 졸업한 레이코는 동네에서 피아노 교습을 한다.

그러다가 제자와 결혼해서 아들도 하나 낳고 행복하게 산다.

그러나 피아노 레슨을 핑계로 교묘하게 접근한 여자 중학생 아이 때문에 과거의 정신병이 도진다.

열세 살의 그 아이는 레즈비언이었다.

레이코를 존경한다고 거짓말을 해서 환심을 산 후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레이코는 그 아이에게 말려들어 성행위를 한다.

동네에 나쁜 소문이 퍼져 레이코는 결국 남편과 이혼한다.

그리고 요양원으로 들어간다.

레이코는 요양원에서 나오코와 친자매 이상으로 친하게 지낸다.

와타나베는 이틀 동안 나오코와 레이코의 방에서 같이 자면서 지낸다.

저녁에는 와인을 마시면서 레이코의 기타 연주를 듣는다.

레이코는 격의 없이 자신을 대하는 와타나베를 좋아한다.

와타나베도 그녀에게 매력을 느낀다.

레이코는 지극히 정상이다.

“우리가 정상이라는 것은 자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지. 세상 사람들은 그걸 몰라. 자신들이 비정상이라는 걸.” 나오코는 자살하기 전 “모든 옷을 레이코에게 주라.”는 유서를 남긴다.

레이코는 나오코가 죽은 후 나오코의 옷을 걸친 채 와타나베를 찾아온다.

레이코는 촛불을 켜놓고 와타나베와 함께 나오코를 추념한다.

무려 50곡의 노래를 연주한다.

그리고 와타나베와 함께 잠을 잔다.

그날 밤 와타나베는 레이코와 네 번이나 관계를 가진다.

그리고 레이코는 떠난다.

  험프리 보가트  미도리는 와타나베와 <연극> 수업을 같이 듣는 여학생이다.

미도리는 나오코와는 달리 생기발랄하다.

와타나베에게 먼저 접근한 것도 미도리다.

미도리는 우울한 듯 진지한 캐릭터의 와타나베에게 매력을 느낀다.

“자기 말투는 꼭 험프리 보가트 같아. 쿨하고 터프하고.” 미도리의 어머니는 뇌종양으로 죽었다.

서점을 경영하던 아버지도 어머니와 같은 병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

미도리는 사귀는 남자 친구가 있지만 와타나베 때문에 그와 헤어진다.

와타나베도 나오코가 요양원에 가 있는 동안 미도리와 가까워진다.

와타나베는 입원해 있는 미도리 아버지의 병간호를 함께 할 정도로 그녀를 좋아한다.

나오코가 죽은 후 방황하던 와타나베는 전화로 미도리를 찾는다.

미도리는 와타나베에게 묻는다.

“너 지금 어디 있니?” 상실의 시대에 하루키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너 지금 어디 있니?”    그리고 나오코는 행방불명이 된다.

시간이 흐른뒤 나는 나오코가 정신 질환을 앓고 있고 교토의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음을 그녀의 편지를 통해서 알 게 된다.

이 무렵 나는 무척 화려하고 개성이 강한 아가씨 미도리를 만난다.

그녀는 생생한 생동감, 마치 새롭게 피어나는 새싹과 같은 싱그러움을 느끼게한다.

나는 요양원 안에 나오코와 대도시 안에 있는 미도리를 같이 만나게 된다.

나는 미도리와의 여러차례의 만남을 통해 키스도 하게 되지만 결코 섹스를 하지 않는다.

대신 미도리의 속옷에 사정을 한다.

미도리와 나오코 이 둘은 서로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나오코는 현실과 단절된 깊은 산속에 마치 죽음의 세계를 보는 듯하고 미도리에게서는 동적이고 활기찬 모습을 마치 살아있는 세계를 볼 수 있다.

나는 이 두세계를 오가며 이 둘에게서 상반된 이미지를 느끼면서도 결코 한 사람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나는 늘 나오코를 생각하면서 그녀를 이해하면서 그녀를 도우려고 한다.

그리고 나와 나오코의 관계를 잘 이해해주면서 늘 조언을 해주는 레이코 여사. 이 모두의 모습은 현실을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마치 현실과는 괴리 되어있고 마치 우리가 만나기 힘든 신과 같은 이미지를 보여준다.

때로는 현실적으로 때로는 비 현실적으로 레이코 여사와 나오코와 나는 그렇게 공존하고있는 것이다.

책의 원제는 노르웨이 숲이다.

[상실의 시대] 와오.


노르웨이 숲은 고양이의 한 종류이다.

마치 너구리처럼 풍성하고 긴 털을 추켜세운 재미있는 꼬리를 가졌다.

야생 생활에 걸맞게 폭우에도 겉만 젖을뿐 속털은 절대 젖지 않는 길고도 풍성한 털을 가졌다.

장모종이지만 봄에서 여름까지는 털이 다 빠져서 단모종 처럼 보인다.

그리고 또한 노르웨이 숲은 비틀즈의 노래이기도 하다.

존 레넌이 열일곱 살 때에 교통사고로 떠난 어머니  어머니의 이름이다.

그녀는 존이 열일곱 살 때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 곡은 어머니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을 요코와 중첩시켜, 깊은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는 1968년에 발표된 두 장짜리 앨범 'The Beatles(화이트앨범)'에 수록.된 아름다운 발라드곡이다.

하루키가 이 책의 제목을 노루웨이 숲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주인공은 나 와타나베와 노르웨이 숲의 관계는 무엇일까? 노르웨이 숲이라는 고양이는 여름까지 털이 다 빠져 털이 짧은 종류의 고양이로 보이지만 사실 너구리처럼 풍성한 털을 가진 고양이이다.

그리고 비틀즈의 노르웨이숲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아내 요코와의 사랑사이의 고뇌의 반영의 노래이기도 하다.

와타나베는 나오코와 미도리 사이를 오간다.

60년대 일본젊은이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지만 노르웨이숲의 작곡가 존 레넌이 본처와 요코사이를 오가는 모습의 반영은 아닐까? 노르웨이 숲 고양이처럼 단모종의 모습을 띄다가 너구리털과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처럼 인간의 다중인격과 양면성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주인공 와타나베는 마지막에 나오코의 죽음을 막지 못한다.

그는 고뇌에 빠지고 그녀를 구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빠진다.

소설의 마지막부분에 미도리에게 전화로 어떻게든 너와 꼭 이야기를 하고 싶다, 온 세상에서 너 외에 원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미도리는 당신 어디있어요? 라고 묻지만 와타나베는 대답할 수 없다.

이는 현실속에 방황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린 현대인의 모습의 반추인 것이다.

현실속의 방황이라기보다 현실에의 적응이라고 말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현대인은 이런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진짜 모습은 감추고 현실이 원하는 모습만을 보여주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마치 단모종으로 오해시키는 노르웨이 고양이처럼. 그리고 정신병원을 퇴원해 홋카이도로 가려는 레이코 여사와 하룻밤에 네 번이나 관계를 가졌음에도 미도리에게는 너밖에 없다라고 말을 하는 나. 우리는 과거와는 너무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음을 다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02. 상세보기유명한 책인건 알지만, 아직 읽진 않았다.

우연한 기회에 영화를 먼저 접했다.

책을 안 봐서 영화와 책을 비교할 수는 없다.

영화 예고편으로 있는 동영상에서 몇 장면 이미지를 가져와 본다.

영화 리뷰라고는 할 수 없고, 그저 메모 정도?가 될 듯.. (영화 리뷰가 궁금하셨다면 '뒤로 가기' 눌러주세요

)주제가와 제목이 같은 '노르웨이의 숲'이 원제목이지만, 한국어로는 '상실의 시대'로 불리고 있다.

영화 제목도 그렇다.

영화의 시작 부분소중한 사람들을 잃은 사람들이 여러 명 나온다.

오랜 연인, 어머니, 아버지 등.날 기억해주었으면 해.나, 니 말투 개좋음..좋아하는 사람이 자살로 세상을 떠나, 옆에서 지켜보는 이들의 인생이 무너져가는 모습은 너무나 강렬하게 다가왔다.

자살로 죽는 사람이 세 명, 다른 사유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두 명...이랬던가? 영화에서는 '사람'을 잃는 것으로 표현이 되지만, '신앙'처럼 믿고 의지하던 어떤 다른 무엇을 상징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우정이든 정의이든 돈이든. 절대적인 것으로 기대던 것이 마음의 준비도 채 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그려진 내용 그대로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뭔가 상징하고 있는 바를 깊이 고민해보는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예고편에서는 '깊이 사랑할 것', '강하게 살아갈 것'이라는 메시지로 마무리를 짓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건,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라는 것. ;;이미지 출처 : 영화 <상실의 시대> 예고편하지만 여전히 내가 서있는 곳 조차 알 수 없는 삶대체 여기는 어디이고 나는 누구인가? 비틀즈의 <Norwegian Wood>가 주된 라이트모티브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곡과 아티스트들이 소설 속에 등장한다.

Dear Heart, 브람스의 심포니 4번, Sergean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Waltz for Debby, Lemon Tree, Puff, Where have all flowers gone, 바흐의 푸가, Julia, Nowhere Man 등등 줄잡아 7,80곡이 작중에 등장한다.

비틀즈의 노래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재즈, 클래식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음악이 등장한다.

소설의 끝 부분에서 레이코가 기타 반주로 노래하는 곡만 50곡이다.

하루키는 각종 잡기에 능하다.

야구는 광적으로 좋아한다.

야구장에서 야구 경기를 관람 하다가 갑자기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소설가가 되었을 정도다.

음악도 그 중 하나다.

<1Q84>처럼 한 곡이 반복적으로 라이트모티브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여러 곡이 중첩적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흔하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처럼 라이트모티브의 악보를 통째로 소설에 싣고 있지는 않지만 하루키의 음악사랑은 유별나다.

  삶의 일부로 존재하는 죽음   서른일곱 살의 와타나베를 실은 보잉747이 함부르크 공항에 막 착륙한다.

그 때 기내에서는 비틀즈의 <Norwegian Wood>가 흘러나온다.

와타나베는 18년 전의 과거로 되돌아간다.

소설은 와타나베의 회상으로 시작해서 회상으로 끝난다.

회상의 대상은 세 명의 여자와 두 명의 남자다.

나오코와 기즈키는 연인 사이다.

와타나베는 절친한 친구인 기즈키를 통해 나오코와 처음 만난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셋은 묘한 삼각관계가 된다.

숲을 뜻하는 한자 森(삼)이 세 그루의 나무로 삼각관계를 드러내는 메타포로 쓰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즈키가 자살을 한다.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좀처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루키는 이 지점에서 죽음을 도가적으로 인식한다.

“죽음은 삶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 기즈키가 죽은 후 나오코는 자연스럽게 와타나베의 연인이 된다.

나오코의 스무 번째 생일날 와타나베는 그녀를 가진다.

하루키 소설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성적 묘사가 노골적이라는 점이다.

외설적으로 보일 정도로 노골적인 경우가 많다.

남자의 성기를 페니스라는 영어 단어로 쓰는 것은 그나마 젊잖다.

여성의 성기는 이름 그대로 사용한다.

우리로서는 좀처럼 글로 쓰지 않는 단어다.

그 후 나오코는 종적을 감춘다.

그리고 정신병으로 요양원에 입원한다.

와타나베에게 몸은 허락했지만 마음은 첫사랑 기즈키를 잊지 못한 것이다.

와타나베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지만 나오코는 끝내 기즈키에게 간다.

그녀는 요양원 숲에서 목을 매 자살한다.

와타나베는 한 달 가까이 학교 수업을 빼먹고 정처 없이 여기 저기 떠돌아다닌다.

상실의 시대다.

  위대한 개츠비   하루키의 소설을 읽다 보면 파도타기 독서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상실의 시대>도 예외는 아니다.

<위대한 개츠비>, <호밀밭의 파수꾼>, <로드 짐>, <마의 산> 등 괜찮은 고전들이 많이 소개된다.

[상실의 시대] 세상에. 왜..



기즈키 외에 와타나베가 회상하는 또 다른 남자는 나가사와 선배다.

기숙사에서 둘은 서로 통한다.

나가사와는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있는 와타나베를 눈여겨보고 접근한다.

와타나베는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이나 읽었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는 남자라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군.” 나가사와는 발자크, 단테, 조셉 콘래드, 디킨스를 좋아한다.

와타나베와 취향이 같다.

나가사와는 상황 판단이 뛰어난 천재다.

영어, 독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를 모두 독학으로 마스터 한다.

집안도 빵빵하다.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외무고시에 합격한다.

나가사와는 신사처럼 품격 있게 행동하라고 와타나베에게 말한다.

“신사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이야.” 나가사와는 그러나 여자문제에서는 결코 신사가 아니다.

여자 문제에서는 책임감도, 윤리도 없이 오직 엔조이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닥치는 대로 여자랑 잔다.

하쓰미라는 애인이 있지만 필요할 때만 그녀에게 가서 잠을 잔다.

하쓰미는 나가사와랑 헤어지라는 와타나베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만큼 나가사와를 좋아한다.

하쓰미는 나가사와가 독일로 떠난 후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지만 2년 후 면도칼로 동맥을 잘라 자살한다.

  ????정상과 비정상   레이코는 요양원에서 나오코와 같은 방을 쓰고 있던 중년의 여자다.

와타나베보다는 나이가 열아홉 살 위다.

와타나베는 나오코를 만나러 갔다가 레이코를 알게 된다.

레이코는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음대 학생이었다.

소질도 있었다.

그러나 콘서트를 앞둔 어느 날 갑자기 새끼손가락이 마비되면서 그녀의 꿈은 산산조각이 난다.

그 후 간신히 학교를 졸업한 레이코는 동네에서 피아노 교습을 한다.

그러다가 제자와 결혼해서 아들도 하나 낳고 행복하게 산다.

그러나 피아노 레슨을 핑계로 교묘하게 접근한 여자 중학생 아이 때문에 과거의 정신병이 도진다.

열세 살의 그 아이는 레즈비언이었다.

레이코를 존경한다고 거짓말을 해서 환심을 산 후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레이코는 그 아이에게 말려들어 성행위를 한다.

동네에 나쁜 소문이 퍼져 레이코는 결국 남편과 이혼한다.

그리고 요양원으로 들어간다.

레이코는 요양원에서 나오코와 친자매 이상으로 친하게 지낸다.

와타나베는 이틀 동안 나오코와 레이코의 방에서 같이 자면서 지낸다.

저녁에는 와인을 마시면서 레이코의 기타 연주를 듣는다.

레이코는 격의 없이 자신을 대하는 와타나베를 좋아한다.

와타나베도 그녀에게 매력을 느낀다.

레이코는 지극히 정상이다.

“우리가 정상이라는 것은 자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지. 세상 사람들은 그걸 몰라. 자신들이 비정상이라는 걸.” 나오코는 자살하기 전 “모든 옷을 레이코에게 주라.”는 유서를 남긴다.

레이코는 나오코가 죽은 후 나오코의 옷을 걸친 채 와타나베를 찾아온다.

레이코는 촛불을 켜놓고 와타나베와 함께 나오코를 추념한다.

무려 50곡의 노래를 연주한다.

그리고 와타나베와 함께 잠을 잔다.

그날 밤 와타나베는 레이코와 네 번이나 관계를 가진다.

그리고 레이코는 떠난다.

  험프리 보가트  미도리는 와타나베와 <연극> 수업을 같이 듣는 여학생이다.

미도리는 나오코와는 달리 생기발랄하다.

와타나베에게 먼저 접근한 것도 미도리다.

미도리는 우울한 듯 진지한 캐릭터의 와타나베에게 매력을 느낀다.

“자기 말투는 꼭 험프리 보가트 같아. 쿨하고 터프하고.” 미도리의 어머니는 뇌종양으로 죽었다.

서점을 경영하던 아버지도 어머니와 같은 병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

미도리는 사귀는 남자 친구가 있지만 와타나베 때문에 그와 헤어진다.

와타나베도 나오코가 요양원에 가 있는 동안 미도리와 가까워진다.

와타나베는 입원해 있는 미도리 아버지의 병간호를 함께 할 정도로 그녀를 좋아한다.

나오코가 죽은 후 방황하던 와타나베는 전화로 미도리를 찾는다.

미도리는 와타나베에게 묻는다.

“너 지금 어디 있니?” 상실의 시대에 하루키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너 지금 어디 있니?”      주위가 어두우면 잠시 가만히 있으면서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기를 기다릴수 밖에 없듯이 사람을 사랑한다는건 멋진일이고그 애정이 진실하다면 누구도 미궁속에 내동댕이 쳐지지는 않아 사랑에 빠지면 거기에 자신을 내맡기는게 자연스럽겠지 그것도 하나의 성실한 모습이니까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中   02. 상세보기유명한 책인건 알지만, 아직 읽진 않았다.

우연한 기회에 영화를 먼저 접했다.

책을 안 봐서 영화와 책을 비교할 수는 없다.

영화 예고편으로 있는 동영상에서 몇 장면 이미지를 가져와 본다.

영화 리뷰라고는 할 수 없고, 그저 메모 정도?가 될 듯.. (영화 리뷰가 궁금하셨다면 '뒤로 가기' 눌러주세요

)주제가와 제목이 같은 '노르웨이의 숲'이 원제목이지만, 한국어로는 '상실의 시대'로 불리고 있다.

영화 제목도 그렇다.

영화의 시작 부분소중한 사람들을 잃은 사람들이 여러 명 나온다.

오랜 연인, 어머니, 아버지 등.날 기억해주었으면 해.나, 니 말투 개좋음..좋아하는 사람이 자살로 세상을 떠나, 옆에서 지켜보는 이들의 인생이 무너져가는 모습은 너무나 강렬하게 다가왔다.

자살로 죽는 사람이 세 명, 다른 사유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두 명...이랬던가? 영화에서는 '사람'을 잃는 것으로 표현이 되지만, '신앙'처럼 믿고 의지하던 어떤 다른 무엇을 상징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우정이든 정의이든 돈이든. 절대적인 것으로 기대던 것이 마음의 준비도 채 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그려진 내용 그대로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뭔가 상징하고 있는 바를 깊이 고민해보는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예고편에서는 '깊이 사랑할 것', '강하게 살아갈 것'이라는 메시지로 마무리를 짓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건,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라는 것. ;;이미지 출처 : 영화 <상실의 시대> 예고편하지만 여전히 내가 서있는 곳 조차 알 수 없는 삶대체 여기는 어디이고 나는 누구인가?txt  오늘은 저물어가는 한 시대에 관해 얘기하려 합니다.

어쩌면 일기에 가까울 수 있겠군요. 블로그니까 촉촉하게 적셔도 되는 거잖아요? 마침 자유도 높은 5주차 포스팅이니까요.  한 시대가 저물었습니다.

  이럴 줄 몰랐습니다.

몇 년 전 저라면 이런 마음이 들 거란 상상도 못 했을 겁니다.

 군대도 안 갔을 대학생 시절에 몇 년 후엔 민방위마저 끝나는 지금의 나를 상상하지 못한 것처럼 말이죠.며칠 전 이 사진을 봤습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우) 피겨지요. 그냥 피겨가 아닙니다.

트로피입니다.

긴 세월 와우와 함께한 고객들만 획득할 수 있는 영광의 증표. 10주년 기념 선물입니다.

눈이 부셨습니다.

갖고 싶었습니다.

자격 조건은 이랬습니다.

일단,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한국 지역 서버에서 2005년 3월 이전에 시작하신 분.   제 얘기였습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클로즈베타 서비스 때부터 플레이했습니다.

당시 저는 영화 주간지에서 로 일했습니다.

 영화 였지만 게임도 좋아했습니다.

굳이 없던 게임 기사 페이지를 만들어 넣기도 했으니까요. 특히 MMORPG, 더 특히 와우를 좋아했습니다.

  좋아했다는 말로는 부족했습니다.

 (첫 캐릭터는 성기사였습니다.

인간 성기사. 룩이 구려서 40까지 키우다 버렸죠.)그냥 삶이었습니다.

 제 삶은 로 살아가는 시간과 와우를 하는 시간으로 양분될 정도였습니다.

상황을 몇몇 예로 들어본다면 이렇습니다.

와우를 하고 싶어 여자친구를 후딱 만나고 집에 보낼 정도였으니까요. 와우 하면서 식음을 전폐해 와우다이어트라는 신종 체중 조절법을 체득할 정도였으니까요. 와우를 (밤새며) 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모니터를 보면서도 웃으며 마우스를 조작할 정도였으니까요. (두 번째 캐릭터는 드워프 사냥꾼이었죠. 당시 만렙까지 키워 열심히 쏘고 다녔죠.)사람들이 중독이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저도 알았습니다.

알면서도 좋았습니다.

기꺼이 빠져들고픈 중독이었으니까요. 먼 훗날 와우를 하며 노년을 보낼 제 모습을 상상하며 괜히 흐뭇해지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와우 10주년 피겨를 받았느냐고요?  자격 조건이 또 있었습니다.

  -게임 출시 이후부터 2015년 6월까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매달 접속하신 분.  (언데드 도적은 언제나 로망이었죠. 제대로 끝까지 키우진 못했지만.)이 조건엔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와우를 하지 않으니까요. <아레나>에 들어오면서 접속 회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었습니다.

 그러다 몇 달 전에 열정을 불태워 다시 뛰어들었지만, 역시 지금은 접속하지 않습니다.

 (아... 블엘 여캐는 와우 세계에 내린 천상의 미녀였죠. 하악하악 캐릭터랄까요?)그냥 멀어져 버렸습니다.

  그런 거 있잖습니까? 오래 사귄 여자친구와 큰 이유 없이 어느 날 헤어지게 된 순간. 싸우지도 울지도 매달리지도 않고 서로 손을 놓아버린 순간. 와우와 저도 그렇게 멀어졌습니다.

물론 따지고 보면 이유가 있겠지요. 서로 미래를 바라보지 못하게 됐다든가 하는.만나도 흥이 나지 않는 관계. 더 이상 진전이 없는 관계. 만나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관계.(언데드 여캐도 블엘이 나오기 전엔 하악하악 캐릭터였죠. 음침하니 섹시했어요.) 헤어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이제 사람답게 사는구나.”물론 덕분에 시간을 많이 뺏기지 않게 됐습니다.

와우를 하면 밤새는 일도 없고요. 굳은살을 벗겨낸 것처럼 산뜻하기도 합니다.

 (가시덤불골짜기야말로 와우 최대의 카오스였죠.)하지만 의외의 감정이 차오릅니다.

  상실감.   삶의 커다란 즐거움이 사라졌다는 상실감.  (가시덤불골짜기에선 조낸 뛰는 게 일인 겁니다.

안 뛰면 죽어요. 막 죽이고 죽어요.)PC방에서 와우를 하는 걸 즐겼습니다.

와우를 하기 위해 고사양 데스크톱을 구입했는데도 PC방에 자주 갔습니다.

 푹신한 의자에 앉아 믹스커피를 한 잔 놓고 담배를 피우며 와우를 하는 시간. 그 시간만큼은 중동 갑부 부럽지 않았습니다.

몇 달 전, 시간이 남아 PC방에 갔습니다.

당연히 와우를 실행했습니다.

판타지 세계를 노니는데... 지루했습니다.

낯설었습니다.

 모니터 속 캐릭터도, 모니터를 보는 나 자신도 어색했습니다.

1시간도 못 채우고 나와야 했습니다.

  그때 느낀 쓸쓸함. (와우 탈것은 현실에선 차가 없던 제게 꿈과 희망을 줬죠.)시간도둑인 게임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도 아닌, 게임 말고 운동을 하겠다는 목표도 아닌, 그냥 하고 싶은데 재미가 없어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느 날 삶이 시시해진 염세주의자 같은 마음으로 PC방을 나왔습니다.

  (첫 번째 패치 후 차원의 문을 들어서기 위해 대 몇 천 명을 기다리던 때도 있었죠.) 허탈했습니다.

 동심을 잃어버린 아저씨가 된 것 같았습니다.

(리치왕이야말로 와우 최고 간지 끝판왕이라 생각합니다.

) 이젠 그런 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론 게임 말고도 다른 즐거움이 있긴 합니다.

새로 생긴 것도 있고, 예전부터 이어온 것도 있지요. 와우만큼은 아니지만 즐기고 있습니다.

  돈이 많이 드는 텍사스홀덤이나, 역시 돈이 많이 드는 바이크나.   하지만 와우(게임)를 즐기는 나는 상실한 거죠. 이런 상실이 저한테만 일어난 일은 아닐 겁니다.

 누군가에게나 자신만의 와우가 있었을 테니까요. 아직 상실하지 않았다면 그것 또한 삶의 축복일 겁니다.

  당신의 와우는 무엇인가요?   오늘은 저물어가는 한 시대에 관해 얘기하려 합니다.

어쩌면 일기에 가까울 수 있겠군요. 블로그니까 촉촉하게 적셔도 되는 거잖아요? 마침 자유도 높은 5주차 포스팅이니까요.  한 시대가 저물었습니다.

  이럴 줄 몰랐습니다.

몇 년 전 저라면 이런 마음이 들 거란 상상도 못 했을 겁니다.

 군대도 안 갔을 대학생 시절에 몇 년 후엔 민방위마저 끝나는 지금의 나를 상상하지 못한 것처럼 말이죠.며칠 전 이 사진을 봤습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우) 피겨지요. 그냥 피겨가 아닙니다.

트로피입니다.

긴 세월 와우와 함께한 고객들만 획득할 수 있는 영광의 증표. 10주년 기념 선물입니다.

눈이 부셨습니다.

갖고 싶었습니다.

자격 조건은 이랬습니다.

일단,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한국 지역 서버에서 2005년 3월 이전에 시작하신 분.   제 얘기였습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클로즈베타 서비스 때부터 플레이했습니다.

당시 저는 영화 주간지에서 로 일했습니다.

 영화 였지만 게임도 좋아했습니다.

굳이 없던 게임 기사 페이지를 만들어 넣기도 했으니까요. 특히 MMORPG, 더 특히 와우를 좋아했습니다.

  좋아했다는 말로는 부족했습니다.

 (첫 캐릭터는 성기사였습니다.

인간 성기사. 룩이 구려서 40까지 키우다 버렸죠.)그냥 삶이었습니다.

 제 삶은 로 살아가는 시간과 와우를 하는 시간으로 양분될 정도였습니다.

상황을 몇몇 예로 들어본다면 이렇습니다.

와우를 하고 싶어 여자친구를 후딱 만나고 집에 보낼 정도였으니까요. 와우 하면서 식음을 전폐해 와우다이어트라는 신종 체중 조절법을 체득할 정도였으니까요. 와우를 (밤새며) 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모니터를 보면서도 웃으며 마우스를 조작할 정도였으니까요. (두 번째 캐릭터는 드워프 사냥꾼이었죠. 당시 만렙까지 키워 열심히 쏘고 다녔죠.)사람들이 중독이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저도 알았습니다.

알면서도 좋았습니다.

기꺼이 빠져들고픈 중독이었으니까요. 먼 훗날 와우를 하며 노년을 보낼 제 모습을 상상하며 괜히 흐뭇해지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와우 10주년 피겨를 받았느냐고요?  자격 조건이 또 있었습니다.

  -게임 출시 이후부터 2015년 6월까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매달 접속하신 분.  (언데드 도적은 언제나 로망이었죠. 제대로 끝까지 키우진 못했지만.)이 조건엔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와우를 하지 않으니까요. <아레나>에 들어오면서 접속 회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었습니다.

 그러다 몇 달 전에 열정을 불태워 다시 뛰어들었지만, 역시 지금은 접속하지 않습니다.

 (아... 블엘 여캐는 와우 세계에 내린 천상의 미녀였죠. 하악하악 캐릭터랄까요?)그냥 멀어져 버렸습니다.

  그런 거 있잖습니까? 오래 사귄 여자친구와 큰 이유 없이 어느 날 헤어지게 된 순간. 싸우지도 울지도 매달리지도 않고 서로 손을 놓아버린 순간. 와우와 저도 그렇게 멀어졌습니다.

물론 따지고 보면 이유가 있겠지요. 서로 미래를 바라보지 못하게 됐다든가 하는.만나도 흥이 나지 않는 관계. 더 이상 진전이 없는 관계. 만나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관계.(언데드 여캐도 블엘이 나오기 전엔 하악하악 캐릭터였죠. 음침하니 섹시했어요.) 헤어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이제 사람답게 사는구나.”물론 덕분에 시간을 많이 뺏기지 않게 됐습니다.

와우를 하면 밤새는 일도 없고요. 굳은살을 벗겨낸 것처럼 산뜻하기도 합니다.

 (가시덤불골짜기야말로 와우 최대의 카오스였죠.)하지만 의외의 감정이 차오릅니다.

  상실감.   삶의 커다란 즐거움이 사라졌다는 상실감.  (가시덤불골짜기에선 조낸 뛰는 게 일인 겁니다.

안 뛰면 죽어요. 막 죽이고 죽어요.)PC방에서 와우를 하는 걸 즐겼습니다.

와우를 하기 위해 고사양 데스크톱을 구입했는데도 PC방에 자주 갔습니다.

 푹신한 의자에 앉아 믹스커피를 한 잔 놓고 담배를 피우며 와우를 하는 시간. 그 시간만큼은 중동 갑부 부럽지 않았습니다.

몇 달 전, 시간이 남아 PC방에 갔습니다.

당연히 와우를 실행했습니다.

판타지 세계를 노니는데... 지루했습니다.

낯설었습니다.

 모니터 속 캐릭터도, 모니터를 보는 나 자신도 어색했습니다.

1시간도 못 채우고 나와야 했습니다.

  그때 느낀 쓸쓸함. (와우 탈것은 현실에선 차가 없던 제게 꿈과 희망을 줬죠.)시간도둑인 게임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도 아닌, 게임 말고 운동을 하겠다는 목표도 아닌, 그냥 하고 싶은데 재미가 없어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느 날 삶이 시시해진 염세주의자 같은 마음으로 PC방을 나왔습니다.

  (첫 번째 패치 후 차원의 문을 들어서기 위해 대 몇 천 명을 기다리던 때도 있었죠.) 허탈했습니다.

 동심을 잃어버린 아저씨가 된 것 같았습니다.

(리치왕이야말로 와우 최고 간지 끝판왕이라 생각합니다.

) 이젠 그런 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론 게임 말고도 다른 즐거움이 있긴 합니다.

새로 생긴 것도 있고, 예전부터 이어온 것도 있지요. 와우만큼은 아니지만 즐기고 있습니다.

  돈이 많이 드는 텍사스홀덤이나, 역시 돈이 많이 드는 바이크나.   하지만 와우(게임)를 즐기는 나는 상실한 거죠. 이런 상실이 저한테만 일어난 일은 아닐 겁니다.

 누군가에게나 자신만의 와우가 있었을 테니까요. 아직 상실하지 않았다면 그것 또한 삶의 축복일 겁니다.

  당신의 와우는 무엇인가요? txt20리뷰보기?   상실의 시대는 원제 노르웨이의 숲으로써 유명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유명해진 까닭도 아마 이 상실의 시대라는 작품에 있지 않나 싶다.

이 소설 이후로 한국에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의 입지는 갈수록 넓어졌고,요즘도 신작이 나왔다하면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보증수표가 되어버린 작가다.

그런 상실의 시대의 줄거리를 한번 살펴볼까 한다.

더불어 명대사(?)도.   일단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에 대해서 조금 알아본다면, 상실의 시대가 왜 그런 분위기로 씌였는 지 알 수 있다.

허무주의가 일본에 팽배하던 시절, 그는 서구 문화에 굉장히 익숙했다.

더욱 즐겼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문체는 굉장히 서구적으로 깔끔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가진다.

더불어 허무함이 문체를 감싸그의 작풍을 '고독'으로 하는 것이 맞지 않겠냐는 이야기도 간혹 들려오곤 한다.

시대와 더불어개인의 인생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작가중 하나다.

  상실의 시대는 역시 영화보다는 책이 더 유명하다.

영화 자체는 나온 지 얼마 안되었고, 그렇게까지평이 좋았던 것 같지도 않다.

책 자체의 줄거리를 찾아보자면 이렇다.

시작은 와타나베라는 남자의 이야기다.

상실의 시대 스토리 라인은 이 남자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와타나베의 1인칭 시점으로써그가 만나는 기즈키, 나오코 그리고 미도리와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삼각관계식으로 이루어져 가는그들의 사랑은 와타나베가 30대가 될 때까지 이어진다.

분명 사랑이야기이건만, 다른 곳에서 볼 수 있는무언가 가득하고 기름진, 그런 긍정적인 감정으로써의 사랑이라고 볼 수 없는 이미지들이다.

   와타나베는 무언가 텅 비어있다.

한 명의 여자로는 끝나지 않는 그의 연애생활. 질투와 고독, 미움까지그런 허무한 감정들을 망라하여 집어넣은 것이 바로 상실의 시대의 줄거리다.

많은 이들이 이 소설을 읽고같이 고독을 느끼며, 자신이 느꼈던 고독에 공감하며 보는 터라, 현실시대에서 상처가 많은 이들을 대변하는그런 책인지도 모르겠다.

상실의 시대를 너무나도 좋다며, 잊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매일같이 상실해가는 젊은 이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매일같이 얻어가는 것을 잃어가는 그들. 허무한 나날 가운데 사랑 마저 제대로 채워지지 않는다면그 조금 고인 자리는 썩어버리지 않을까.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는 사실은, 그만큼 많은 이들이 공허하고상처받았다는 사실인데, 이런 사회현상이 그렇게 썩 낭만적이지 않다.

오히려 걱정되고 안타까운 것이다.

   상실의 시대, 그 줄거리들을 보다보면 이런 명대사들이 나온다.

 "확실히 그것은 진리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동시에 죽음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죽음은 삶의 반대편 극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나는 아무데도 아닌 장소의 한가운데서 계속 미도리를 부르고 있었다.

" 이런 심금을 울리는 명대사들은 상실의 시대 한가운데 살고 있는 와타나베의 상실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이런 상실의 시대의 줄거리와 명대사들을 살펴보다보니, 나 역시 허무해지고 무언가 없어진 듯한 상실감에굉장히 우울해지고 기분이 착 가라앉는다.

그렇게까지 질질 짤 정도로 슬프지 않지만, 오히려 허무해서진득하게 나를 괴롭히는 무언가보다 더 힘든 감정이라고 생각된다.

매일같이 이런 허무감을 무시하며 살아왔는데,그것을 일깨워 사회의 한 면을 콕콕 찌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장들.모두들 가득 찬 자신을 만들 수 있을까. 이 상실은 어떻게 치유하는 것일까.모두들 이 소설 상실의 시대를 보며 자문자답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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