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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보낸이 이순행>>벌써 긴 세월이 지났다.

한시대가 지난 것이다.

1979년10월 26일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정앙정보부장 안재구는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했다.

 그렇게하여 한시대의 영웅은 사라져 갔다.

이후 "김재규가 살아 있다는 괴담이 난무하였지만 그때부터 35년 지난 지금 당시 처형당하는 김재규의 사진이 처음 공개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사진 보내는 이순행  m.cafe.daum.net  그것은 당연히 범법 행위이고 비난을 받을 행동이다.

그렇다면 박정희는 어떤 사람인가? 일제 시대에 만주군관학교 입학을 자원하는 혈서를 썼다거나, 해방 이후 남로당 프락치로 활동하다가 체포된 뒤 동지들을 밀고했다는 전력은 논외로 친다.

다만, 김재규에게 살해당한 계기가 된 박정희의 집권 과정을 문제 삼으려고 한다.

그는 대한민국의 현역 장성(소장)으로 있으면서 불법적으로 쿠데타를 계획하고 감행한 뒤 정권을 장악했다.

은밀히 계획을 세우고 궁정동 안가에서 대통령 살해를 감행한 김재규와 하등 차이점이 없는 것이다.

대통령을 보좌해야 할 최측근 중정부장으로서 대통령을 살해한 것은 용납할 수 없는 하극상이라고? 박정희 자신은 대통령과 국가를 보위해야 할 현역 장성으로서 자신의 상관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지 않았던가? 궁정동에서 부하들과 함께 은밀히 준비를 한 김재규와 병력을 거느리고 한강을 건넌 박정희! 과연 누가 더 지탄받을 행동을 했는가?박정희는 당시 대통령이나 총리 또는 국방장관이나 장군들을 살해하지 않았다고 강변할지 모른다.

그러나 쿠데타군에 저항하다 살상된 진압군측 장병의 목숨은 박정희보다 비천하다는 말인가? 다음에 사건(쿠데타, 대통령 시해) 이후의 행적을 살펴 보겠다.

박정희는 군정이양의 약속을 어기고 대통령에 출마했으며 국민을 속이고 삼선개헌과 유신을 단행하면서 장기 집권을 획책했다.

김재규는 일단 모든 권한을 정부와 육본측에 넘긴 뒤 법의 심판을 받았다.

이 점에 있어서도 박정희의 처신이 도덕적인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집권을 한 박정희는 경제 발전이라는 업적도 있었지만, 많은 의문사와 함께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과오도 저질렀다.

김재규의 거사는 전두환의 광주 학살 등 부정적인 일도 많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정권의 평화적인 이양과 민주주의 진전이라는 결실의 원인이 되었다.

그렇다.

김재규는 비난받을 행동을 했다.

그러나 최소한 박정희나 그의 가족은 김재규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

자신도 그렇게 정권을 장악한 처지에 누가 누구를 나무란다는 것인가?김재규의 대통령 시해가 비난을 받아야 한다면, 박정희의 쿠데타도 그 이상으로 비난을 받아야 한다.

김재규가 국립묘지에 묻힐 자격이 없다면, 박정희의 유해 역시 국립 묘지에서 나와야 할 것이다.

헬기를 타고 오면서반듯한 경지를 본 박정희는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고연회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오후 4시 경호실장 차지철이중정부장 김재규에게 전화했다.

 차지철 "오늘 저녁 6시 안가에서 대행사가 있을 거니 준비하세요." 김재규"네.."안가란 '안전가옥'의 줄임말로대통령이 연회를 하는 비밀 장소를 뜻했고,'대행사'는 대통령과 고위층 인사들이2

3명의 여성들과 함게 술을 마시겠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소행사는?대통령이 여성하고만 은밀하게 만나는 자리를 말한다.

청와대 인근에 만들어진궁정동 안가는▲ 궁정동의 안가는 여러개의 별채로 이루어졌었다외부는 전면 유리로 장식하고1층 거실의 절반은 양어장으로 꾸며놓고넓은 침실과고급스러운 가구, 화장실에는 비데가 비치되어 있는화려한 연회장이었다.

 ▲ 당시에는 생소했던 비데이곳에서 대행사가 월 2회, 소행사 월 8회꼴로 매달 10회가량 열렸던 것이다.

당시 중정의 주된 임무는 행사가 벌어지는 궁정동 안가의 관리와여기에 참석할 여성을조달하는 일이었다.

▲ 중앙정보부의 채홍사(採紅使 : 여자를 채집하는 관리) 중정요원"헐! 갑자기 대행사라니,한 시간 반밖에 안 남았는데.." 박선호 (중정 의전과장)"어서 가수랑 여자를 섭외해."때문에 그날은 몇 번 안가에 들렸던 가수 심수봉과배우 지망생이던여대생 신재순을 서둘러 섭외하여 사전에 교육을 시킨 후연회장으로 보낼 수 있었다.

 요리사도 바빠졌다.

급하게 동대문 시장에 들른 요리사는전복, 장어, 갈비, 수삼, 송이 등당시 돈 6만 원어치 가량의 안줏거리를 준비했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5년 5월 29일자)"6만 원이면 당시 여공들의 한 달 월급.재료비만 그 정도 들었던 거임."그런 바쁜 와중에 중정부장 김재규는한 가지 일을 더 했으니,육군참모총장 정승화에게 궁정동에서 저녁이나 하자는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이미 대통령과의 만찬이 있는데도이중으로 약속을 잡은 것이었다.

 그리고는 궁정동 안가 2층에 있는자신의 집무실 책상 속에서권총을 꺼내 실탄을 장전했다.

 김재규"고로시마스(殺します)!"(죽여버리겠다)누구를 죽이겠다는 말인가? 바로 대통령 박정희였다.

"헐!"사실 김재규는 79년 4월의 대통령 연회 때도 거사를 계획해3군 총장을 불렀었지만,상황이 여의치 않아 계획을 미룬 바 있었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4년 4월 4일자)● 거사 준비6시에 시작된 연회는분위기가 조금 무거웠다.

박정희와 차지철이 계속 정치 얘기만 하는 턱에 분위기가 쉽게 풀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천금성, 10·26 12·12 광주사태 p.55) 박정희"브라운 국방장관이 오기 전에김영삼이를 구속시키라고 했는데," 박정희"그동안 주위에서 말려서그냥 놔뒀더니 역시 좋지가 않아." 차지철 "맞습니다, 각하. 그래야 합니다.

" 김재규"각하, 이미 제명당한 사람을 구속시키는 건 너무 하지 않습니까." 김재규"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셔야죠."하지만 박정희는 버럭 화를 냈다.

 박정희"김 부장! 정보부가 좀 무서운 맛도 있어야지." 박정희"신민당 놈들 약점만 움켜쥐고 있으면 뭐해?딱딱 입건을 해야지." 차지철 "맞습니다.

신민당이고 데모대고지나치다 싶으면," 차지철 "탱크를 동원해서라도 좀 더 강압적으로 눌러야 됩니다.

" 김재규"..."김재규는 자꾸만 맞장구를 치는 차지철이 몹시도 불쾌했다.

그렇게 싸한 분위기는6시 30분 심수봉과 신재순이 들어오면서조금은 누그러졌지만김재규의 굳은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5년 5월 29일자) 차지철 "심수봉 씨, 그때 그 사람요즘 잘 듣고 있습니다.

" 김계원 "잘 됐네. 한 번 불러주세요." 김재규"..."▲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의 장면이때 김재규는잠시 나와옆 건물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육군참모총장 정승화에게로 갔다.

  김재규"오래 기다리셨죠." 정승화 "아, 아닙니다.

" 김재규"죄송합니다.

 갑자기 각하의 부름을 받고 참석 중입니다.

" 김재규"끝나는 대로 오겠습니다.

"> 더 보기 └ 접기그리고 나더니곧장 자신의 집무실에서 가서랍 속에서 권총을 꺼내 바지 속에 넣고는▲ 김재규가 암살 때 사용하던 소형 권총 발터 PPK자신의 심복 부하들을 불렀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5년 5월 29일자) 김재규"지금 시국이 위험해서,나라가 잘못될 수 있다고 보네." 김재규"(호주머니의 권총을 보이며)오늘 저녁 해치우겠어." 김재규"방 안에서 총소리가 나면 너희들은 경호원을 제압하도록!" 순간 부하들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김재규"지금 육군참모총장도 와 있어." 김재규"각오는 되어 있는가?" 박선호"부장님, 각하도 포함됩니까?" 김재규"그래!" 박선호"지금 경호원들의 수가 7명(사실은 4명)이나 되는데다음 기회로 미루면 어떻겠습니까?" 김재규"그건 안 돼!" 김재규"오늘 하지 않으면보안이 누설된다고." 박선호"알겠습니다.

 준비를 해야 하니 30분만 주십시오." 김재규"좋아! 자유 민주주의를 위하여!"그랬다! 김재규는 이 엄청난 일을 하면서자신의 심복들에게조차거사 직전에야 계획을 알렸던 것이다.

김재규는 그 이유를나중에 이렇게 밝혔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4년 4월 4일자) 김재규"부하를 못 믿어서가 아니다.

" 김재규"내가 정보부장을 해봐서 아는데," 김재규"한 번 입밖에 나간 말은어떻게든 첩보망에 걸려들게 되어있다.

" 김재규"이조시대 이래 2명 이상이 역모를 해서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김재규"그래서 혼자서만 골똘히 구상해왔던 것이다.

" 그런데 놀라운 점은부하들이 김재규의 말 한마디에대통령 살해 계획에 서슴없이 가담했다는 점이다.

▲ 10.26 사태의 핵심 요인● 박정희의 최후7시 40분경김재규는 부하로부터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보고를 받는다.

그러자 김재규는 지체없이차지철을 향해 총을 들이밀었다.

 김재규"이 새끼, 너 건방져!""탕!"첫 발은 차치철의 오른쪽 손목을 관통했다.

차지철"김 부장, 왜 이래!"놀란 차지철이 움찔거렸고박정희도 크게 놀랐다.

 박정희"지금 뭐 하는 짓들이야!"그러자 다음 총알은박정희의 가슴으로 향했다.

"탕!"뒤이어 당황하는 차지철에게 3발 째를 쏘았으나, 총이 격발 불량이었다.

김재규는 총을 바꾸기 위해밖에 있는 부하에게로 갔다.

그러던 중 차지철은 피를 흘리며 화장실로 도망갔고박정희는 총을 맞고'그르륵' 소리를 내며 앉은 자세로 있었다.

 신재순"각하! 괜찮으세요?" 박정희"난 괜찮아.."두 여인들은 부축하려 했지만 박정희는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고부하의 총을 쥐고다시 방으로 들어간 김재규는화장실에서 나온 차지철을 쏘아 쓰러트리고"탕!"쓰러진 박정희의 후두부에다시 격발을 했다.

"탕!"이때 총알은 그대로 두개골에 박혀무덤 속에 같이 잠들게 된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5년 5월 29일자) ▲ 궁정동 안가 나동의 내부한편 김재규가 첫 발을 쏘았을 때 부하들도 경호요원들을 차례로 제압하고 있었다.

▲ 휴게소"탕탕탕!"평소 호형호제하면서 친하게 지내던중정요원들과 경호요원들이었지만이날은 그런 사적인 감정일랑철저히 무시되어야만 했다.

▲ 식당 ▲ 식당을 공격하고 있는 중정요원들김재규의 계획은 여기까지는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다.

 ▲ 임무를 완수하고 확인사살까지 하는 중정요원들사실 김재규는경호요원들의 사격 실력으로 볼 때자신이 박정희 살해에 성공하더라도 '죽을 가능성을 90퍼센트'로 보았는데 기적적으로 성공했다고 고백했다.

☞ 참고하지만 그래서였을까?이후로 김재규는 냉철함을 잃고 돌발적으로 일을 추진하고 만다.

● 김재규의 오판거사를 마친 김재규는맨발로 뛰쳐나와▲ 김재규는 자신이 맨발이라는 것도 한동안 모르고 있었다정승화 총장을 차에 태우고는서둘러 안가를 빠져나왔다.

 김재규"각하가 돌아가셨습니다.

" 정승화"네?"차량은 중앙정보부가 있는남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4년 4월 4일자) 김재규"각하의 유고 소식에북한의 도발이 걱정되는군요." 정승화"그렇다면 남산보다는 육군본부가상황 파악에 더 좋지 않겠습니까?" 김재규"그래요? 그럼 거기로 갑시다.

"차는 이미 남산 방향으로 가고 있었는데도중에 그렇게 심경이 바뀌어차를 돌려 육본으로 간 것이었다.

▲ 김재규의 당시의 실수를 '운명의 U턴'이라고 한다하지만 계획에 없던 행선지 변경은최악의 실수였다.

자신의 거점인 중앙정보부로 가야 마땅했지만,김재규는 자신의 우군이라곤 전혀 없는,어쩌면 중정과는 가장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군인들의 소굴로 제 발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 더 보기 └ 접기이후로의 사건 진행은전혀 김재규의 뜻대로 되지 못했다.

그는 육본 회의실에서 열린긴급 국무회의에서 이렇게 거듭 주장했다.

  김재규"각하가 지금 유고 상태입니다.

" 김재규"이 사실을 북한이 알면 큰일이니,최소 48시간 동안 보안에 부치고.." 김재규"어서 빨리 계엄령을 선포해야만 합니다.

" 김치열 (법무장관)"이런 중대한 일을 48시이나 보안으로 숨기라뇨. 미국에도 알려야 합니다.

" 신현확 (부총리)"밑도 끝도 없이 계엄령이라뇨.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 김재규"아놔.."결국 그렇게 뭉그적거리다가정승화 총장의 지시로보안사령관 전두환이 김재규를 체포하면서, 전두환"김재규! 감히 각하를 시해해!"그의 거사는 허무하게 끝이 나고 말았다.

왜 이리 허술하게마무리되었단 말인가?박정희만 제거하면 독재정치가 끝이나고민주주의가 회복된다고 생각했던 걸까?그는 사형장으로 가기 전에이렇게 말했다.

(, 실록 박정희 p.246) 김재규"이 땅의 민주화를 위하여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습니다.

" 김재규"국민 여러분! 자유민주주의를 마음껏 누리십시오!" 김재규"저는 먼저 갑니다!"왜 김재규는 박정희를 쏘았나● 우발적 범죄였나?외무장관이었던 이동원은 이렇게 말한다.

(이동원, 대통령을 그리며 p.334) 이동원"김재규는 평소 '욱'하는 성격이 있어서대령 시절 참모총장에게 심하게 야단을 맞자," 이동원"에이 씨, 그럼 옷 벗으면 될 게 아냐!라며 문을 뻥 차고 나간 일이 있었다.

" 이동원"내가 보기에 김재규는우발적인 일에 혁명의 가면을 씌운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의문이다.

김재규가 부하들에게미리 지시를 내리고육군참모총장 정승화를 초청해 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때문에 김재규가차지철만을 살해하려 했다는 추측도 있다.

사실 10.26 당시김재규는 안가에 들어가기 전에안가의 정원에서 김계원과 만나 이런 얘기를 나눴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4년 4월 4일자) 김계원 "부마 사태는 잘 해결됐나요?" 김재규 "행님, 지가 부산 다녀와서 압니다.

거기는 민란이었어요." 김재규  "사태가 이 지경이된 건," 김재규"부마사태를 신민당이 주도한거라고 호도한 차지철 그너마 때문입니다.

"  김재규   "행님, 차지철 이 자식 오늘 해치워 버릴까요?"  김계원   "심정은 이해는 가지만, 각하께서 차실장을 워낙에 편애하시니.."당시 김계원은 홧김에 그런 말을 했거니 싶었다.

그런데 정말로 거사를 치르고 나더니부들부들 떨고 있는 김계원에게김재규는 이렇게 말한 것이다.

 김재규   "난 한다면 합니다!"때문에 김재규는원래 차지철만을 겨냥했었는데덤으로 대통령까지걸려들었다라는 추측이 나온 것이다.

"평소 김재규가 차지철하고 앙숙이었다잖아.""맞아. 그날도 대통령이 하도 차지철이만 편애하고김재규는 나무라니깐,""열받아서 차지철이를 쏜 것이고..""그러다가 대통령도 덩달아 쏜 거 아니겠어?"하지만 이런 추측 또한너무 빈약하다.

차지철이 밉다고국가 원수를 앉힌 자리에서 총격을 가한다는 것이과연 이치에 맞는 상황일까?총알을 발사하는 순간주위에 대기하고 있던대통령 경호원들에게 의해김재규도 사살되게 된다.

정말로 차지철만을 죽이고 싶었다면다른 장소에서 훨씬 안전하게 시행할 수 있었다.

 ▲ 전두환에게 경례를 받고 있는 차지철김재규는 차지철을 먼저 쏜 이유를이렇게 답했다.

☞ 참고 김재규"경호실장을 먼저 제압하지 않은 상태에서각하부터 쏠 수는 없었습니다.

"(차지철은 무술 유단자였다) 김재규"대통령을 그때 시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김재규"신문지상에 개편설이 거론되고 있었고," 김재규"새 중정부장직에 내무장관 구자춘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었기 때문에.." 김재규"그때가 아니고는기회가 없었습니다.

"● 미국이 사주했나?76년 미국에서는 코리아게이트가 터져세간을 시끄럽게 했다.

☞ 참고▲ 미국이 준 3.3억불의 쌀이, 한국의 독재자의 부패한 정권을 살찌우기 위해 되팔렸다.

"한국의 독재정권이미국 내의 反한, 反박정희 여론을 무마시키기 위해..""거액의 로비 활동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에 핵 개발을 운운하며박정희는 미국의 여론을 술렁이게 했다.

 ☞ 참고 박정희 "한국은 핵개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박정희 "유사시 핵무기를 생산할 것입니다.

"때문에 당시 미국인들에게 있어 한국은 정말로 말썽 많은 독재국가였다.

오죽했으면이런 기사들이 있었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4년 4월 4일자)한국 정부는 박정희 정권을 대신하여 온건하고 보다 민주적인 정권으로 교체되어야만 한다.

(뉴욕타임즈 1975년 9월 7일자) 한국 정부의 인권 탄압이 국가의 안보를 불안정하게 하고미국의 국가 이익을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

(뉴욕타임즈 1976년 12월 23일자) 그런데 하필 77년에'인권 대통령'으로 불리던 카터가 미국의 새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그는 집권과 동시에한국의 비민주적인 독재정권을 비판하면서주한미군 철수 등을 운운하며여러 차례 경고를 보냈다.

 카터"코리안 독재자, 프레지던트 팍!" 카터"한국은 독재정치를 버리고어서 민주정치를 시행하라!"당시 CIA 서울 지부장도이렇게 경고했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4년 4월 4일자) 그레그 (CIA 서울지부장)"박정희가 독재정치를 계속한다면살아서 임기를 못 채울 것이다.

"하지만 한미관계가 그렇게 날카롭게대치되던 상황에서박정희는 미사일을 날리며미국에 핵 개발 의지를 재차 알렸고,"피유우웅

"미국 "아놔, 골치 아파.."결국 카터는 박정희를 다독거리기 위해79년 6월 말에 한국을 방문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때 카터를 배석한 자리에서박정희는 장장 40분이 넘는 연설을 했으니, 박정희"한미 양국의 동맹은 앞으로도 굳건히.."카터의 표정이매우 안 좋았다고 한다.

리무진을 타고 돌아가는 길에화가 난 카터를 달래느라고참모진들이진땀을 쏟았으니 말이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4년 4월 4일자) 카터"이건 재앙이야!내가 지금 독재자한테 이용당한 거야?" 카터"당장 주한미군을 철수하도록 해!"그리고 몇 달 후, 김영삼 제명 사건이 터지자소식을 들은 카터는 또다시 분노를 터뜨렸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4년 4월 4일자) 카터"박정희 정권은 제거되어야 할악마의 정권임!"이런 격앙된 분위기를중정부장이던 김재규가 모를 리 없었다.

더욱이 김재규는미국이 인정한 '말이 통하는' 몇 안되는 유신의 수뇌부였기 때문에평소 미국 측 인사들과긴밀한 만남을 가졌던 터였다.

79년 9월 26일,김재규가 미 대사와 가진 얘기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4년 4월 4일자) 김재규   "지금 한국 정치에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라이틴 대사"한국 정치는 양극화될 위험이 있고," 글라이틴 대사"평화로운 정권 이양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 글라이틴 대사"현행 헌법과 정치조직으로는결코 평화적 정권 이양이 어려울 겁니다.

" 김재규   "..."79년 10월 19일, 김재규가 미 CIA 서울지부장과 나눈 대화다.

 브루스터 "여러가지로 피곤하시죠? 김재규   "나만 피곤한가요?우리 공화국 자체가 피곤하죠." 브루스터 "거참, 적절한 표현입니다.

[김재규] 대체 무엇때문에.


피곤한 공화국. 18년이면 피곤할 때도 됐죠." 브루스터 "피곤한 통치자는 국민들 마음을생각할 겨를이 없죠." 브루스터 "우리는 민주주의를 외면하는 지도자를외면합니다.

" 브루스터 "나는 김 부장께서 민주주의를 바라는애국자라고 생각합니다.

" 김재규   "..."그리고 그 말에 김재규는 크게 고무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였나? 김재규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 1970년대편 3권 p.268) 김재규"내 뒤에 미국이 있습니다!"물론 괜히 해본 말인지 진위는 알 수 없지만,아무튼 이 때문에 온갖 추측이 난무하기도 했었다.

"후일 'CIA 박정희 암살공작','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의 책이 나오기도 했다능."● 정말로 민주화를 갈망했기 때문인가?김재규는 박정희보다 나이는 9살 어렸지만같은 육사 2기 동기생으로 같은 고향(경북 구미)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박정희를 형처럼 따르고 지내왔었다.

그가 군사정권에서요직을 꿰찰 수 있었던 것은순전히 박정희와의이런 인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정희를 믿고 따랐던 김재규는 생각과 철학이 박정희와는 너무도 달랐고이런 점 때문에 박정희에게 점점 실망을 하게 되어평소 많은 고민을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재규"..."71년 대선 당시박정희에게'이번 출마가 마지막'이라고 대중들에게 말하라고 조언을 했던 이는다름 아닌, 당시 보안사령관 김재규였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4년 4월 4일자) 박정희"나를 대통령으로 한번 더 뽑아주십시오하는 정치연설은," 박정희"오늘 이 기회가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72년 10월 박정희는유신을 선포하게 된다.

이때 3군단장으로 있었던 김재규는 단단히 화가 났던 모양이다.

부하 장교에게 이렇게내뱉은 것이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4년 4월 4일자) 부하"유신헌법이 공포되었으니깐앞으로 군대서 일하기 참 쉽게 되었습니다.

"  김재규"아니야, 박정희가 다 망쳐버렸어." 부하"네?"그리고 그런 감정은말로만 그치지 않았다.

당시 김재규는 박정희를 연금해버릴 생각으로3군단 사령부에 위치한 군단장 관사 울타리를최전방에 세우는 철책으로 교체하고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철책 상단을 안쪽으로 꺾어놓기까지 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군 관계자들도 인정을 하고김재규가 법정에서 진술했던 내용과도 일치한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4년 4월 4일자) 김재규"그때 대통령이 연말까지 쭉 전방을 순시하고 있었는데," 김재규"3군단에 순시해 올 때 각하를 연금 해 놓고.." 김재규"그 자리에서 녹음테이프를 갖다 놓고.." 김재규"각하에게 하야 권고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 더 보기 └ 접기하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고1976년 12월 중앙정보부장이 된 이후 김재규는 박정희에게'직선제'를 건의하는가 하면,'긴급조치'를 해제하자고 건의하게도 했지만역시 아무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1979년 5월 전당대회에서김영삼이 총재로 당선될 수 있도록,연금 중이던 김대중의 외출을 눈감아주어 ▲ 원래는 24시간 출입을 통제했었다김대중이 김영삼 측 단합대회에 참가하도록 해주기도 했었다.

☞ 참고사실 1975년 장준하가의문사를 당하자,그의 식솔을 찾아가조그만 전세를 얻을 수 있도록몰래 경제적인 도움을 줬던 이도바로 김재규였다.

☞ 참고10.26 당시 김재규의 명령에대통령 시해에 가담했던박흥주 중정 수행비서의말에 의하면 이렇다.

☞ 참고 박흥주"김재규 부장은 평소 인간성이 매우 좋았어요." 박흥주"중정부장에 부임하고 난 뒤남산의 고문실을 없애고 강압수사를 금지시켰고요." 박흥주"또 자신에게 할당된 판공비 8억 원을 내놓아직원들 퇴직연금을 마련해주기도 했어요." 박흥주"부마사태 때는 최루가스에 맞아초주검이 된 어린아이를 구하기도 했습니다.

"● 김재규가 말한 '시해 동기'79년 대내외적으로유신 체제의 붕괴가 감지되고 있었다.

▲ 10.26사태 1주일전에 발생한 부마항쟁경제는 여러 가지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었고"경기 침체, 인플레이션,양극화 심화, 무역적자 심화, 조세 불만.."정치적으로도 공화당은신민당보다 지지율이 낮았다.

"야당이 여당을 꺾은 것은건국 이래 최초의 일이었음."한미 관계도 극도로 악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박정희는 차지철 경호실장을 의지했다.

 '각하가 곧 국가'라며정권의 파수꾼을 자처한 차지철은경호실의 권력을 과도하게 확장했고,대통령의 등 뒤에서 실권을 휘두르며 2인자를 자처했지만,예전과는 달리 박정희는 차지철의 그런 전횡을 묵인했다.

 ▲ 경호실장에 임명되자, 엎드려 절하며 충성을 다짐했던 차지철때문에 김재규는 불만이 많았고, 그걸 대변하는 듯79년 들어, '자유민주주의', '대의를 위하여' 등의 파격적인 글을 자주 남겼다.

김재규는 시해 동기를 이렇게 말했다.

☞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4년 4월 4일자)▲ 김재규의 친필 김재규"호적에는 53살로 되어있지만,본래 제 나이 55살입니다.

" 김재규"어쨌든, 제 나이를 한 십 년이나 이십 년 끊어바쳐도 좋으니까.." 김재규"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회복시켜 놓자." 김재규"나의 명예고 지위고 목숨이고또 각하와 나의 관계에 있어서 의리도," 김재규"소의(少義)에 속하는 건 다 끊어바치고대의(大義)를 위해서 내 목숨 하나 버려 버린다.

" 김재규"이런 생각에서 한 겁니다.

"혹시 대통령을 시해하고집권에 대한 욕심이 있었던 게 아닌가?라는 질문에그는 이렇게 답했다.

 김재규"집권에 대한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어떤 사리사욕도 없었습니다.

" 김재규"오로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겠다는일념에서 행한 겁니다.

" 김재규"또 이 혁명의 결과, 자유민주주의는 회복됐습니다.

" 당시 합동수사본부는취조를 마치고 이렇게 발표했다.

수사 국장"그 사람이 집권욕? 그런 거 생각하고 한 게 아니에요."수사 국장"정말로 그럴 생각이면이렇게 부실하게 하지 않았죠."수사 국장"중정부장이라는 직위만 이용했어도충분히 성공했을 일입니다.

"그러나 합동수사본부는 최종 발표 때 이 부분을 전면 뒤집었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4년 4월 4일자)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김재규의 암살은집권을 노린 내란 음모였다.

""?�?"하지만 누가 김재규를 옹호하겠는가?합수부의 발표에이의를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미 정권은 전두환이 주축이 된'신군부'가 장악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비하인드 스토리● 도를 넘은 차지철의 월권74년 문세광 사건으로육영수 여사가 살해된 이후박정희는 민심을 전달해주던'조언자'를 잃게 되어더욱 주색에 빠져들고 판단력이 흐려지게 된다.

그리고 그 틈을권력욕이 대단했던 차지철이 파고들면서박 대통령 특유의 1인 독재체제 전략이 사라지고그동안 용납되지 않았던정권의 2인자가 만들어지게 된다.

"오죽했으면 '차지철 부통령 각하'라는 말까지 생겼을 정도.."박정희가 죽은 직후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까지 긴박했던 몇 시간 동안 유신정권의 요인들은차지철이 박정희를 해친 것으로 의심했다고 한다.

  전두환"뭐? 각하가...!차지철이 이놈!"그만큼 차지철의 월권은 심각했던 것이다.

 대체 어느 정도였길래?차지철은 수도경비사령부를 경호실장의 통제를 받도록 하여성대한 규모의 열병식을 거행하게 하며스스로 장성들 앞에서대장 행세를 했는가 하면,▲ 이때 차지철은 경호요원들에게 나치 독일군과 비슷한 제복을 입히기까지 했다"아니, 차 실장은 대위 출신인데 저래도 되는 거야?""어쩌겠나! 육 여사 피살 이후로..""경호실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해서 저렇게 된 건데.."대통령에게 먼저 보고하겠다고 치졸한 신경전을 청와대의 여러 인사들과 벌이며'서열 정하기'를 통해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자 했다.

  김재규 "행님, 와 이라고 계십니까?" 김계원 "아, 글쎄. 차지철이 이놈이나이도 새까맣게 어린 게.." 김계원 "각하 께 먼저 보고하겠다고순서를 양보하지 않잖아요." 김계원 "내 이 놈을.." 김재규 "참으시소. 대장 출신이 대위 출신하고 싸우면대장만 욕을 먹습니더."그러나 차지철은 곧 김재규도 밟아버리기 시작했으니, ☞ 이때 김재규도 지지 않으려고 했기에당시 이런 증언들이 있다.

(김진, 청와대 비서실 1권 p.91) 김계원"서로 먼저 보고하려고신경전이 대단했죠." 김계원"어찌 보면 교실에서 선생님을 향해'저요, 저요'하는 식이었어요." 전두환"아, 말도 마!"  전두환"아군끼리의 싸움이 김일성이와의 싸움보다 더 심했다니깐."(김충식, 남산의 부장들 2권 p.295)하지만 차지철의 권력욕은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경호실에 비공식적으로 정보부서까지 운영하며정보 수집에 나서는가 하면 "헐! 중앙정보부가 있는데도?"국회나 신민당에 대한 정치공작을 자신이 직접 계획하며중앙정보부로 하여금 이를 실행케 하는 등, 월권을 자행한 것이다.

  차지철 "내가 국회의원만 4선이야." 차지철 "정치를 해도 내가 잘 알지 않겠어?"그런데 차지철의 월권은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1979년 10월 초, 박정희가 주관한 술자리에 낀 적이 있었던영화배우 김희갑의 증언이다.

(, 1992년 8월 8일자) 김희갑"공화당 의장이 '각하 일본 노래를 해도 되겠습니까?'라고 허락을 구했어요." 김희갑"그런데 박 대통령이 답하기도 전에건너편의 차실장이 '해, 해' 이러는 거예요." 김희갑"차 실장이 실세라는 소문은 들었지만그 정도로 나서댈 줄은 몰랐어요." 김희갑"그런데 정작 박 대통령은 잠자코 넘겨 버리고..야, 이거 위계질서가 말이 아니구나, 느꼈죠."● 박정희의 엽색행각10.26 사건 당시대통령의 살해 소식과 더불어국민들을 놀래케한 다른 모습들이 있었다.

"어? 시바스 리갈? 양주를 마셨네." "그러게, 서민들은 평소 맥주도 못 마셔보는데..""빈농의 아들이라며평소 막걸리 마시는 모습만 비춰주더니.."그보다 더 놀라운 건연회장에 합석했던 두 여인.▲ 가수 심수봉과 배우지망생 신재순평소 소박한 대통령의 이미지만 생각하던 국민들로서는전혀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모습이었다.

▲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의 장면사실 순진한 국민들만 모르고 있었지,박정희 정권은'요정정치'라는 별칭을 가졌을 정도로엽색문화가 판을 치고 있었고 ☞ 참고그 정점에 서있었던 인물은다름 아닌 박정희였다.

야밤에 몰래 여배우를 만나러 갔다가육 여사가 직접 그 집까지 찾아와 육영수"나예요, 문 열어요."하고는 박 대통령과 문 앞에서 얼굴을 붉히기까지 했을 정도니 말이다.

(, 실록 박정희 p.297)"헐!"하지만 육영수 사후박정희의 엽색 행각은 더욱 대담해졌으니,70년대 후반 서울 압구정동 H아파트에서는이런 일도 있었다.

 H아파트 X동에갑자기 불이 꺼지더니배우 J양을 만나기 위해어떤 남자가 엘리베이트를 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주부가 우연히 그 모습을 봤는데,세상에! 그 남자는바로 대통령이 아닌가!"에잇, 그런 말을 어떻게 믿어."그런데 81년 서울 민사지법에서사실로 확인된다.

(김충식, 남산의 부장들 1권 p.231)81년경 기이한 민사소송이 들어왔으니,H아파트 6동에 사는 한 주부가경찰관을 상대로 그동안 갈취당한 돈에 대한반환 청구소송을 낸 것이다.

 주부"야밤에 승강기에서 대통령을 목격했는데," 주부"경호원들로부터 발설하지 말라는경고를 들었어요." 주부"그런데 참지 못하고 제가 그만동네 주부들에게 말했거든요." 주부"그러자 그 사실이경찰관의 귀에 들어갔고.." 주부"경찰관은 저를 유언비어 사범으로입건하겠다고 협박을 하더군요."  주부"그러면서 눈 감아 주겠다는 조건으로돈을 요구하는 거예요." 주부"그렇게 수차례 갈취당한 돈이1000만 원이 넘어요." 주부"대통령도 죽고 세상이 바뀌었는데생각해보니깐 너무 분하잖아요."10.26 사건을 수사한 합동수사본부는김재규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월간중앙 1992년 10월호 p.268) 김재규"각하의 여자 관계는지나칠 정도로 난잡했어요." 김재규"그것 때문에 불만도 많았고미움으로까지 증폭됐습니다.

"하지만 김재규의 말에수사를 했던 합동수사본부는대통령의 여자 관계가 너무도 광범위해서 도중에 수사를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도대체 어느 정도였길래그랬단 말인가?당시 중정 의전과장 박선호의증언이다.

(김충식, 남산의 부장들 1권 p.227

232) 박선호"한 달에 10여 차례 음탕한 술자리가 마련되었고,," 박선호"궁정동 안가를 다녀간 연예인만 해도100명이나 되었습니다.

[김재규] 대단하네요.



" 박선호"경호실장 차지철이 직접 채홍사가 되어여자를 발탁하기도 했는데요,"  박선호"차지철이 TV를 보다가 지망한 경우만30%쯤 됩니다.

" 박선호"오죽했으면 달력에 걸린 미녀 모두가안가를 다녀갔다는 말도 있었을 정도였죠."전 국회의원 김재홍은 이렇게 말한다.

(신동아, 1998년 11월호 p.304

321) 김재홍"채홍사가 구해온 여자들은 먼저차지철이 품평과 심사를 했어요." 김재홍"차지철은 돈은 얼마든지 주더라도좋은 여자를 구해 오라고 투정을 부리곤 했죠." 김재홍"섭외되어 온 여인들은 술자리에 들어가기 전," 김재홍"경호실의 규칙에 따라 보안 서약을 하고그 날 접대법을 엄격하게 교육받았어요."▲ 20만원의 일당을 받은 심수봉과 신재순 : 당시 대기업 과장급 월급이었다물론 박정희가 직접 여자들을 지명하기도 했으니,영화나 TV를 보다가도맘에 든 배우나 가수의 이름을 대며'한번 보고 싶다'고 그러면즉시 불려왔던 것이다.

(신동아, 1998년 11월호 p.304

321) 박정희"누구야?" "○○○라고 합니다.

" 박정희"한번 보고 싶은데.."그냥 어중간한연예인들이 아니었다.

누구나 한번 듣기만 하면입을 딱 벌릴 만한 은막의 스타들이안가의 밤 연회에 왔다는 것이다.

▲ 안가의 건물들때문에 궁정동 연회의 차출 지시로영화나 TV 촬영 스케줄이 펑크나는 일이 종종 일어 났는데,이럴 때면 협회에서는 무조건 출두하라는 연락이 갔다.

(김재홍, 박정희의 유산 p.26)다만 이런 일이 한두 차례가 아니었기에소문이 돌지 않을 수 없었다.

헬기를 타고 오면서반듯한 경지를 본 박정희는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고연회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오후 4시 경호실장 차지철이중정부장 김재규에게 전화했다.

 차지철 "오늘 저녁 6시 안가에서 대행사가 있을 거니 준비하세요." 김재규"네.."안가란 '안전가옥'의 줄임말로대통령이 연회를 하는 비밀 장소를 뜻했고,'대행사'는 대통령과 고위층 인사들이2

3명의 여성들과 함게 술을 마시겠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소행사는?대통령이 여성하고만 은밀하게 만나는 자리를 말한다.

청와대 인근에 만들어진궁정동 안가는▲ 궁정동의 안가는 여러개의 별채로 이루어졌었다외부는 전면 유리로 장식하고1층 거실의 절반은 양어장으로 꾸며놓고넓은 침실과고급스러운 가구, 화장실에는 비데가 비치되어 있는화려한 연회장이었다.

 ▲ 당시에는 생소했던 비데이곳에서 대행사가 월 2회, 소행사 월 8회꼴로 매달 10회가량 열렸던 것이다.

당시 중정의 주된 임무는 행사가 벌어지는 궁정동 안가의 관리와여기에 참석할 여성을조달하는 일이었다.

▲ 중앙정보부의 채홍사(採紅使 : 여자를 채집하는 관리) 중정요원"헐! 갑자기 대행사라니,한 시간 반밖에 안 남았는데.." 박선호 (중정 의전과장)"어서 가수랑 여자를 섭외해."때문에 그날은 몇 번 안가에 들렸던 가수 심수봉과배우 지망생이던여대생 신재순을 서둘러 섭외하여 사전에 교육을 시킨 후연회장으로 보낼 수 있었다.

 요리사도 바빠졌다.

급하게 동대문 시장에 들른 요리사는전복, 장어, 갈비, 수삼, 송이 등당시 돈 6만 원어치 가량의 안줏거리를 준비했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5년 5월 29일자)"6만 원이면 당시 여공들의 한 달 월급.재료비만 그 정도 들었던 거임."그런 바쁜 와중에 중정부장 김재규는한 가지 일을 더 했으니,육군참모총장 정승화에게 궁정동에서 저녁이나 하자는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이미 대통령과의 만찬이 있는데도이중으로 약속을 잡은 것이었다.

 그리고는 궁정동 안가 2층에 있는자신의 집무실 책상 속에서권총을 꺼내 실탄을 장전했다.

 김재규"고로시마스(殺します)!"(죽여버리겠다)누구를 죽이겠다는 말인가? 바로 대통령 박정희였다.

"헐!"사실 김재규는 79년 4월의 대통령 연회 때도 거사를 계획해3군 총장을 불렀었지만,상황이 여의치 않아 계획을 미룬 바 있었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4년 4월 4일자)● 거사 준비6시에 시작된 연회는분위기가 조금 무거웠다.

박정희와 차지철이 계속 정치 얘기만 하는 턱에 분위기가 쉽게 풀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천금성, 10·26 12·12 광주사태 p.55) 박정희"브라운 국방장관이 오기 전에김영삼이를 구속시키라고 했는데," 박정희"그동안 주위에서 말려서그냥 놔뒀더니 역시 좋지가 않아." 차지철 "맞습니다, 각하. 그래야 합니다.

" 김재규"각하, 이미 제명당한 사람을 구속시키는 건 너무 하지 않습니까." 김재규"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셔야죠."하지만 박정희는 버럭 화를 냈다.

 박정희"김 부장! 정보부가 좀 무서운 맛도 있어야지." 박정희"신민당 놈들 약점만 움켜쥐고 있으면 뭐해?딱딱 입건을 해야지." 차지철 "맞습니다.

신민당이고 데모대고지나치다 싶으면," 차지철 "탱크를 동원해서라도 좀 더 강압적으로 눌러야 됩니다.

" 김재규"..."김재규는 자꾸만 맞장구를 치는 차지철이 몹시도 불쾌했다.

그렇게 싸한 분위기는6시 30분 심수봉과 신재순이 들어오면서조금은 누그러졌지만김재규의 굳은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5년 5월 29일자) 차지철 "심수봉 씨, 그때 그 사람요즘 잘 듣고 있습니다.

" 김계원 "잘 됐네. 한 번 불러주세요." 김재규"..."▲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의 장면이때 김재규는잠시 나와옆 건물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육군참모총장 정승화에게로 갔다.

  김재규"오래 기다리셨죠." 정승화 "아, 아닙니다.

" 김재규"죄송합니다.

 갑자기 각하의 부름을 받고 참석 중입니다.

" 김재규"끝나는 대로 오겠습니다.

"> 더 보기 └ 접기그리고 나더니곧장 자신의 집무실에서 가서랍 속에서 권총을 꺼내 바지 속에 넣고는▲ 김재규가 암살 때 사용하던 소형 권총 발터 PPK자신의 심복 부하들을 불렀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5년 5월 29일자) 김재규"지금 시국이 위험해서,나라가 잘못될 수 있다고 보네." 김재규"(호주머니의 권총을 보이며)오늘 저녁 해치우겠어." 김재규"방 안에서 총소리가 나면 너희들은 경호원을 제압하도록!" 순간 부하들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김재규"지금 육군참모총장도 와 있어." 김재규"각오는 되어 있는가?" 박선호"부장님, 각하도 포함됩니까?" 김재규"그래!" 박선호"지금 경호원들의 수가 7명(사실은 4명)이나 되는데다음 기회로 미루면 어떻겠습니까?" 김재규"그건 안 돼!" 김재규"오늘 하지 않으면보안이 누설된다고." 박선호"알겠습니다.

 준비를 해야 하니 30분만 주십시오." 김재규"좋아! 자유 민주주의를 위하여!"그랬다! 김재규는 이 엄청난 일을 하면서자신의 심복들에게조차거사 직전에야 계획을 알렸던 것이다.

김재규는 그 이유를나중에 이렇게 밝혔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4년 4월 4일자) 김재규"부하를 못 믿어서가 아니다.

" 김재규"내가 정보부장을 해봐서 아는데," 김재규"한 번 입밖에 나간 말은어떻게든 첩보망에 걸려들게 되어있다.

" 김재규"이조시대 이래 2명 이상이 역모를 해서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김재규"그래서 혼자서만 골똘히 구상해왔던 것이다.

" 그런데 놀라운 점은부하들이 김재규의 말 한마디에대통령 살해 계획에 서슴없이 가담했다는 점이다.

▲ 10.26 사태의 핵심 요인● 박정희의 최후7시 40분경김재규는 부하로부터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보고를 받는다.

그러자 김재규는 지체없이차지철을 향해 총을 들이밀었다.

 김재규"이 새끼, 너 건방져!""탕!"첫 발은 차치철의 오른쪽 손목을 관통했다.

차지철"김 부장, 왜 이래!"놀란 차지철이 움찔거렸고박정희도 크게 놀랐다.

 박정희"지금 뭐 하는 짓들이야!"그러자 다음 총알은박정희의 가슴으로 향했다.

"탕!"뒤이어 당황하는 차지철에게 3발 째를 쏘았으나, 총이 격발 불량이었다.

김재규는 총을 바꾸기 위해밖에 있는 부하에게로 갔다.

그러던 중 차지철은 피를 흘리며 화장실로 도망갔고박정희는 총을 맞고'그르륵' 소리를 내며 앉은 자세로 있었다.

 신재순"각하! 괜찮으세요?" 박정희"난 괜찮아.."두 여인들은 부축하려 했지만 박정희는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고부하의 총을 쥐고다시 방으로 들어간 김재규는화장실에서 나온 차지철을 쏘아 쓰러트리고"탕!"쓰러진 박정희의 후두부에다시 격발을 했다.

"탕!"이때 총알은 그대로 두개골에 박혀무덤 속에 같이 잠들게 된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5년 5월 29일자) ▲ 궁정동 안가 나동의 내부한편 김재규가 첫 발을 쏘았을 때 부하들도 경호요원들을 차례로 제압하고 있었다.

▲ 휴게소"탕탕탕!"평소 호형호제하면서 친하게 지내던중정요원들과 경호요원들이었지만이날은 그런 사적인 감정일랑철저히 무시되어야만 했다.

▲ 식당 ▲ 식당을 공격하고 있는 중정요원들김재규의 계획은 여기까지는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다.

 ▲ 임무를 완수하고 확인사살까지 하는 중정요원들사실 김재규는경호요원들의 사격 실력으로 볼 때자신이 박정희 살해에 성공하더라도 '죽을 가능성을 90퍼센트'로 보았는데 기적적으로 성공했다고 고백했다.

☞ 참고하지만 그래서였을까?이후로 김재규는 냉철함을 잃고 돌발적으로 일을 추진하고 만다.

● 김재규의 오판거사를 마친 김재규는맨발로 뛰쳐나와▲ 김재규는 자신이 맨발이라는 것도 한동안 모르고 있었다정승화 총장을 차에 태우고는서둘러 안가를 빠져나왔다.

 김재규"각하가 돌아가셨습니다.

" 정승화"네?"차량은 중앙정보부가 있는남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4년 4월 4일자) 김재규"각하의 유고 소식에북한의 도발이 걱정되는군요." 정승화"그렇다면 남산보다는 육군본부가상황 파악에 더 좋지 않겠습니까?" 김재규"그래요? 그럼 거기로 갑시다.

"차는 이미 남산 방향으로 가고 있었는데도중에 그렇게 심경이 바뀌어차를 돌려 육본으로 간 것이었다.

▲ 김재규의 당시의 실수를 '운명의 U턴'이라고 한다하지만 계획에 없던 행선지 변경은최악의 실수였다.

자신의 거점인 중앙정보부로 가야 마땅했지만,김재규는 자신의 우군이라곤 전혀 없는,어쩌면 중정과는 가장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군인들의 소굴로 제 발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 더 보기 └ 접기이후로의 사건 진행은전혀 김재규의 뜻대로 되지 못했다.

그는 육본 회의실에서 열린긴급 국무회의에서 이렇게 거듭 주장했다.

  김재규"각하가 지금 유고 상태입니다.

" 김재규"이 사실을 북한이 알면 큰일이니,최소 48시간 동안 보안에 부치고.." 김재규"어서 빨리 계엄령을 선포해야만 합니다.

" 김치열 (법무장관)"이런 중대한 일을 48시이나 보안으로 숨기라뇨. 미국에도 알려야 합니다.

" 신현확 (부총리)"밑도 끝도 없이 계엄령이라뇨.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 김재규"아놔.."결국 그렇게 뭉그적거리다가정승화 총장의 지시로보안사령관 전두환이 김재규를 체포하면서, 전두환"김재규! 감히 각하를 시해해!"그의 거사는 허무하게 끝이 나고 말았다.

왜 이리 허술하게마무리되었단 말인가?박정희만 제거하면 독재정치가 끝이나고민주주의가 회복된다고 생각했던 걸까?그는 사형장으로 가기 전에이렇게 말했다.

(, 실록 박정희 p.246) 김재규"이 땅의 민주화를 위하여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습니다.

" 김재규"국민 여러분! 자유민주주의를 마음껏 누리십시오!" 김재규"저는 먼저 갑니다!"왜 김재규는 박정희를 쏘았나● 우발적 범죄였나?외무장관이었던 이동원은 이렇게 말한다.

(이동원, 대통령을 그리며 p.334) 이동원"김재규는 평소 '욱'하는 성격이 있어서대령 시절 참모총장에게 심하게 야단을 맞자," 이동원"에이 씨, 그럼 옷 벗으면 될 게 아냐!라며 문을 뻥 차고 나간 일이 있었다.

" 이동원"내가 보기에 김재규는우발적인 일에 혁명의 가면을 씌운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의문이다.

김재규가 부하들에게미리 지시를 내리고육군참모총장 정승화를 초청해 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때문에 김재규가차지철만을 살해하려 했다는 추측도 있다.

사실 10.26 당시김재규는 안가에 들어가기 전에안가의 정원에서 김계원과 만나 이런 얘기를 나눴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4년 4월 4일자) 김계원 "부마 사태는 잘 해결됐나요?" 김재규 "행님, 지가 부산 다녀와서 압니다.

거기는 민란이었어요." 김재규  "사태가 이 지경이된 건," 김재규"부마사태를 신민당이 주도한거라고 호도한 차지철 그너마 때문입니다.

"  김재규   "행님, 차지철 이 자식 오늘 해치워 버릴까요?"  김계원   "심정은 이해는 가지만, 각하께서 차실장을 워낙에 편애하시니.."당시 김계원은 홧김에 그런 말을 했거니 싶었다.

그런데 정말로 거사를 치르고 나더니부들부들 떨고 있는 김계원에게김재규는 이렇게 말한 것이다.

 김재규   "난 한다면 합니다!"때문에 김재규는원래 차지철만을 겨냥했었는데덤으로 대통령까지걸려들었다라는 추측이 나온 것이다.

"평소 김재규가 차지철하고 앙숙이었다잖아.""맞아. 그날도 대통령이 하도 차지철이만 편애하고김재규는 나무라니깐,""열받아서 차지철이를 쏜 것이고..""그러다가 대통령도 덩달아 쏜 거 아니겠어?"하지만 이런 추측 또한너무 빈약하다.

차지철이 밉다고국가 원수를 앉힌 자리에서 총격을 가한다는 것이과연 이치에 맞는 상황일까?총알을 발사하는 순간주위에 대기하고 있던대통령 경호원들에게 의해김재규도 사살되게 된다.

정말로 차지철만을 죽이고 싶었다면다른 장소에서 훨씬 안전하게 시행할 수 있었다.

 ▲ 전두환에게 경례를 받고 있는 차지철김재규는 차지철을 먼저 쏜 이유를이렇게 답했다.

☞ 참고 김재규"경호실장을 먼저 제압하지 않은 상태에서각하부터 쏠 수는 없었습니다.

"(차지철은 무술 유단자였다) 김재규"대통령을 그때 시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김재규"신문지상에 개편설이 거론되고 있었고," 김재규"새 중정부장직에 내무장관 구자춘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었기 때문에.." 김재규"그때가 아니고는기회가 없었습니다.

"● 미국이 사주했나?76년 미국에서는 코리아게이트가 터져세간을 시끄럽게 했다.

☞ 참고▲ 미국이 준 3.3억불의 쌀이, 한국의 독재자의 부패한 정권을 살찌우기 위해 되팔렸다.

"한국의 독재정권이미국 내의 反한, 反박정희 여론을 무마시키기 위해..""거액의 로비 활동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에 핵 개발을 운운하며박정희는 미국의 여론을 술렁이게 했다.

 ☞ 참고 박정희 "한국은 핵개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박정희 "유사시 핵무기를 생산할 것입니다.

"때문에 당시 미국인들에게 있어 한국은 정말로 말썽 많은 독재국가였다.

오죽했으면이런 기사들이 있었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4년 4월 4일자)한국 정부는 박정희 정권을 대신하여 온건하고 보다 민주적인 정권으로 교체되어야만 한다.

(뉴욕타임즈 1975년 9월 7일자) 한국 정부의 인권 탄압이 국가의 안보를 불안정하게 하고미국의 국가 이익을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

(뉴욕타임즈 1976년 12월 23일자) 그런데 하필 77년에'인권 대통령'으로 불리던 카터가 미국의 새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그는 집권과 동시에한국의 비민주적인 독재정권을 비판하면서주한미군 철수 등을 운운하며여러 차례 경고를 보냈다.

 카터"코리안 독재자, 프레지던트 팍!" 카터"한국은 독재정치를 버리고어서 민주정치를 시행하라!"당시 CIA 서울 지부장도이렇게 경고했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4년 4월 4일자) 그레그 (CIA 서울지부장)"박정희가 독재정치를 계속한다면살아서 임기를 못 채울 것이다.

"하지만 한미관계가 그렇게 날카롭게대치되던 상황에서박정희는 미사일을 날리며미국에 핵 개발 의지를 재차 알렸고,"피유우웅

"미국 "아놔, 골치 아파.."결국 카터는 박정희를 다독거리기 위해79년 6월 말에 한국을 방문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때 카터를 배석한 자리에서박정희는 장장 40분이 넘는 연설을 했으니, 박정희"한미 양국의 동맹은 앞으로도 굳건히.."카터의 표정이매우 안 좋았다고 한다.

리무진을 타고 돌아가는 길에화가 난 카터를 달래느라고참모진들이진땀을 쏟았으니 말이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4년 4월 4일자) 카터"이건 재앙이야!내가 지금 독재자한테 이용당한 거야?" 카터"당장 주한미군을 철수하도록 해!"그리고 몇 달 후, 김영삼 제명 사건이 터지자소식을 들은 카터는 또다시 분노를 터뜨렸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4년 4월 4일자) 카터"박정희 정권은 제거되어야 할악마의 정권임!"이런 격앙된 분위기를중정부장이던 김재규가 모를 리 없었다.

더욱이 김재규는미국이 인정한 '말이 통하는' 몇 안되는 유신의 수뇌부였기 때문에평소 미국 측 인사들과긴밀한 만남을 가졌던 터였다.

79년 9월 26일,김재규가 미 대사와 가진 얘기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4년 4월 4일자) 김재규   "지금 한국 정치에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라이틴 대사"한국 정치는 양극화될 위험이 있고," 글라이틴 대사"평화로운 정권 이양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 글라이틴 대사"현행 헌법과 정치조직으로는결코 평화적 정권 이양이 어려울 겁니다.

" 김재규   "..."79년 10월 19일, 김재규가 미 CIA 서울지부장과 나눈 대화다.

 브루스터 "여러가지로 피곤하시죠? 김재규   "나만 피곤한가요?우리 공화국 자체가 피곤하죠." 브루스터 "거참, 적절한 표현입니다.

피곤한 공화국. 18년이면 피곤할 때도 됐죠." 브루스터 "피곤한 통치자는 국민들 마음을생각할 겨를이 없죠." 브루스터 "우리는 민주주의를 외면하는 지도자를외면합니다.

" 브루스터 "나는 김 부장께서 민주주의를 바라는애국자라고 생각합니다.

" 김재규   "..."그리고 그 말에 김재규는 크게 고무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였나? 김재규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 1970년대편 3권 p.268) 김재규"내 뒤에 미국이 있습니다!"물론 괜히 해본 말인지 진위는 알 수 없지만,아무튼 이 때문에 온갖 추측이 난무하기도 했었다.

"후일 'CIA 박정희 암살공작','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의 책이 나오기도 했다능."● 정말로 민주화를 갈망했기 때문인가?김재규는 박정희보다 나이는 9살 어렸지만같은 육사 2기 동기생으로 같은 고향(경북 구미)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박정희를 형처럼 따르고 지내왔었다.

그가 군사정권에서요직을 꿰찰 수 있었던 것은순전히 박정희와의이런 인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정희를 믿고 따랐던 김재규는 생각과 철학이 박정희와는 너무도 달랐고이런 점 때문에 박정희에게 점점 실망을 하게 되어평소 많은 고민을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재규"..."71년 대선 당시박정희에게'이번 출마가 마지막'이라고 대중들에게 말하라고 조언을 했던 이는다름 아닌, 당시 보안사령관 김재규였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4년 4월 4일자) 박정희"나를 대통령으로 한번 더 뽑아주십시오하는 정치연설은," 박정희"오늘 이 기회가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72년 10월 박정희는유신을 선포하게 된다.

이때 3군단장으로 있었던 김재규는 단단히 화가 났던 모양이다.

부하 장교에게 이렇게내뱉은 것이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4년 4월 4일자) 부하"유신헌법이 공포되었으니깐앞으로 군대서 일하기 참 쉽게 되었습니다.

"  김재규"아니야, 박정희가 다 망쳐버렸어." 부하"네?"그리고 그런 감정은말로만 그치지 않았다.

당시 김재규는 박정희를 연금해버릴 생각으로3군단 사령부에 위치한 군단장 관사 울타리를최전방에 세우는 철책으로 교체하고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철책 상단을 안쪽으로 꺾어놓기까지 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군 관계자들도 인정을 하고김재규가 법정에서 진술했던 내용과도 일치한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4년 4월 4일자) 김재규"그때 대통령이 연말까지 쭉 전방을 순시하고 있었는데," 김재규"3군단에 순시해 올 때 각하를 연금 해 놓고.." 김재규"그 자리에서 녹음테이프를 갖다 놓고.." 김재규"각하에게 하야 권고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 더 보기 └ 접기하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고1976년 12월 중앙정보부장이 된 이후 김재규는 박정희에게'직선제'를 건의하는가 하면,'긴급조치'를 해제하자고 건의하게도 했지만역시 아무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1979년 5월 전당대회에서김영삼이 총재로 당선될 수 있도록,연금 중이던 김대중의 외출을 눈감아주어 ▲ 원래는 24시간 출입을 통제했었다김대중이 김영삼 측 단합대회에 참가하도록 해주기도 했었다.

☞ 참고사실 1975년 장준하가의문사를 당하자,그의 식솔을 찾아가조그만 전세를 얻을 수 있도록몰래 경제적인 도움을 줬던 이도바로 김재규였다.

☞ 참고10.26 당시 김재규의 명령에대통령 시해에 가담했던박흥주 중정 수행비서의말에 의하면 이렇다.

☞ 참고 박흥주"김재규 부장은 평소 인간성이 매우 좋았어요." 박흥주"중정부장에 부임하고 난 뒤남산의 고문실을 없애고 강압수사를 금지시켰고요." 박흥주"또 자신에게 할당된 판공비 8억 원을 내놓아직원들 퇴직연금을 마련해주기도 했어요." 박흥주"부마사태 때는 최루가스에 맞아초주검이 된 어린아이를 구하기도 했습니다.

"● 김재규가 말한 '시해 동기'79년 대내외적으로유신 체제의 붕괴가 감지되고 있었다.

▲ 10.26사태 1주일전에 발생한 부마항쟁경제는 여러 가지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었고"경기 침체, 인플레이션,양극화 심화, 무역적자 심화, 조세 불만.."정치적으로도 공화당은신민당보다 지지율이 낮았다.

"야당이 여당을 꺾은 것은건국 이래 최초의 일이었음."한미 관계도 극도로 악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박정희는 차지철 경호실장을 의지했다.

 '각하가 곧 국가'라며정권의 파수꾼을 자처한 차지철은경호실의 권력을 과도하게 확장했고,대통령의 등 뒤에서 실권을 휘두르며 2인자를 자처했지만,예전과는 달리 박정희는 차지철의 그런 전횡을 묵인했다.

 ▲ 경호실장에 임명되자, 엎드려 절하며 충성을 다짐했던 차지철때문에 김재규는 불만이 많았고, 그걸 대변하는 듯79년 들어, '자유민주주의', '대의를 위하여' 등의 파격적인 글을 자주 남겼다.

김재규는 시해 동기를 이렇게 말했다.

☞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4년 4월 4일자)▲ 김재규의 친필 김재규"호적에는 53살로 되어있지만,본래 제 나이 55살입니다.

" 김재규"어쨌든, 제 나이를 한 십 년이나 이십 년 끊어바쳐도 좋으니까.." 김재규"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회복시켜 놓자." 김재규"나의 명예고 지위고 목숨이고또 각하와 나의 관계에 있어서 의리도," 김재규"소의(少義)에 속하는 건 다 끊어바치고대의(大義)를 위해서 내 목숨 하나 버려 버린다.

" 김재규"이런 생각에서 한 겁니다.

"혹시 대통령을 시해하고집권에 대한 욕심이 있었던 게 아닌가?라는 질문에그는 이렇게 답했다.

 김재규"집권에 대한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어떤 사리사욕도 없었습니다.

" 김재규"오로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겠다는일념에서 행한 겁니다.

" 김재규"또 이 혁명의 결과, 자유민주주의는 회복됐습니다.

" 당시 합동수사본부는취조를 마치고 이렇게 발표했다.

수사 국장"그 사람이 집권욕? 그런 거 생각하고 한 게 아니에요."수사 국장"정말로 그럴 생각이면이렇게 부실하게 하지 않았죠."수사 국장"중정부장이라는 직위만 이용했어도충분히 성공했을 일입니다.

"그러나 합동수사본부는 최종 발표 때 이 부분을 전면 뒤집었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4년 4월 4일자)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김재규의 암살은집권을 노린 내란 음모였다.

""?�?"하지만 누가 김재규를 옹호하겠는가?합수부의 발표에이의를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미 정권은 전두환이 주축이 된'신군부'가 장악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비하인드 스토리● 도를 넘은 차지철의 월권74년 문세광 사건으로육영수 여사가 살해된 이후박정희는 민심을 전달해주던'조언자'를 잃게 되어더욱 주색에 빠져들고 판단력이 흐려지게 된다.

그리고 그 틈을권력욕이 대단했던 차지철이 파고들면서박 대통령 특유의 1인 독재체제 전략이 사라지고그동안 용납되지 않았던정권의 2인자가 만들어지게 된다.

"오죽했으면 '차지철 부통령 각하'라는 말까지 생겼을 정도.."박정희가 죽은 직후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까지 긴박했던 몇 시간 동안 유신정권의 요인들은차지철이 박정희를 해친 것으로 의심했다고 한다.

  전두환"뭐? 각하가...!차지철이 이놈!"그만큼 차지철의 월권은 심각했던 것이다.

 대체 어느 정도였길래?차지철은 수도경비사령부를 경호실장의 통제를 받도록 하여성대한 규모의 열병식을 거행하게 하며스스로 장성들 앞에서대장 행세를 했는가 하면,▲ 이때 차지철은 경호요원들에게 나치 독일군과 비슷한 제복을 입히기까지 했다"아니, 차 실장은 대위 출신인데 저래도 되는 거야?""어쩌겠나! 육 여사 피살 이후로..""경호실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해서 저렇게 된 건데.."대통령에게 먼저 보고하겠다고 치졸한 신경전을 청와대의 여러 인사들과 벌이며'서열 정하기'를 통해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자 했다.

  김재규 "행님, 와 이라고 계십니까?" 김계원 "아, 글쎄. 차지철이 이놈이나이도 새까맣게 어린 게.." 김계원 "각하 께 먼저 보고하겠다고순서를 양보하지 않잖아요." 김계원 "내 이 놈을.." 김재규 "참으시소. 대장 출신이 대위 출신하고 싸우면대장만 욕을 먹습니더."그러나 차지철은 곧 김재규도 밟아버리기 시작했으니, ☞ 이때 김재규도 지지 않으려고 했기에당시 이런 증언들이 있다.

(김진, 청와대 비서실 1권 p.91) 김계원"서로 먼저 보고하려고신경전이 대단했죠." 김계원"어찌 보면 교실에서 선생님을 향해'저요, 저요'하는 식이었어요." 전두환"아, 말도 마!"  전두환"아군끼리의 싸움이 김일성이와의 싸움보다 더 심했다니깐."(김충식, 남산의 부장들 2권 p.295)하지만 차지철의 권력욕은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경호실에 비공식적으로 정보부서까지 운영하며정보 수집에 나서는가 하면 "헐! 중앙정보부가 있는데도?"국회나 신민당에 대한 정치공작을 자신이 직접 계획하며중앙정보부로 하여금 이를 실행케 하는 등, 월권을 자행한 것이다.

  차지철 "내가 국회의원만 4선이야." 차지철 "정치를 해도 내가 잘 알지 않겠어?"그런데 차지철의 월권은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1979년 10월 초, 박정희가 주관한 술자리에 낀 적이 있었던영화배우 김희갑의 증언이다.

(, 1992년 8월 8일자) 김희갑"공화당 의장이 '각하 일본 노래를 해도 되겠습니까?'라고 허락을 구했어요." 김희갑"그런데 박 대통령이 답하기도 전에건너편의 차실장이 '해, 해' 이러는 거예요." 김희갑"차 실장이 실세라는 소문은 들었지만그 정도로 나서댈 줄은 몰랐어요." 김희갑"그런데 정작 박 대통령은 잠자코 넘겨 버리고..야, 이거 위계질서가 말이 아니구나, 느꼈죠."● 박정희의 엽색행각10.26 사건 당시대통령의 살해 소식과 더불어국민들을 놀래케한 다른 모습들이 있었다.

"어? 시바스 리갈? 양주를 마셨네." "그러게, 서민들은 평소 맥주도 못 마셔보는데..""빈농의 아들이라며평소 막걸리 마시는 모습만 비춰주더니.."그보다 더 놀라운 건연회장에 합석했던 두 여인.▲ 가수 심수봉과 배우지망생 신재순평소 소박한 대통령의 이미지만 생각하던 국민들로서는전혀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모습이었다.

▲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의 장면사실 순진한 국민들만 모르고 있었지,박정희 정권은'요정정치'라는 별칭을 가졌을 정도로엽색문화가 판을 치고 있었고 ☞ 참고그 정점에 서있었던 인물은다름 아닌 박정희였다.

야밤에 몰래 여배우를 만나러 갔다가육 여사가 직접 그 집까지 찾아와 육영수"나예요, 문 열어요."하고는 박 대통령과 문 앞에서 얼굴을 붉히기까지 했을 정도니 말이다.

(, 실록 박정희 p.297)"헐!"하지만 육영수 사후박정희의 엽색 행각은 더욱 대담해졌으니,70년대 후반 서울 압구정동 H아파트에서는이런 일도 있었다.

 H아파트 X동에갑자기 불이 꺼지더니배우 J양을 만나기 위해어떤 남자가 엘리베이트를 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주부가 우연히 그 모습을 봤는데,세상에! 그 남자는바로 대통령이 아닌가!"에잇, 그런 말을 어떻게 믿어."그런데 81년 서울 민사지법에서사실로 확인된다.

(김충식, 남산의 부장들 1권 p.231)81년경 기이한 민사소송이 들어왔으니,H아파트 6동에 사는 한 주부가경찰관을 상대로 그동안 갈취당한 돈에 대한반환 청구소송을 낸 것이다.

 주부"야밤에 승강기에서 대통령을 목격했는데," 주부"경호원들로부터 발설하지 말라는경고를 들었어요." 주부"그런데 참지 못하고 제가 그만동네 주부들에게 말했거든요." 주부"그러자 그 사실이경찰관의 귀에 들어갔고.." 주부"경찰관은 저를 유언비어 사범으로입건하겠다고 협박을 하더군요."  주부"그러면서 눈 감아 주겠다는 조건으로돈을 요구하는 거예요." 주부"그렇게 수차례 갈취당한 돈이1000만 원이 넘어요." 주부"대통령도 죽고 세상이 바뀌었는데생각해보니깐 너무 분하잖아요."10.26 사건을 수사한 합동수사본부는김재규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월간중앙 1992년 10월호 p.268) 김재규"각하의 여자 관계는지나칠 정도로 난잡했어요." 김재규"그것 때문에 불만도 많았고미움으로까지 증폭됐습니다.

"하지만 김재규의 말에수사를 했던 합동수사본부는대통령의 여자 관계가 너무도 광범위해서 도중에 수사를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도대체 어느 정도였길래그랬단 말인가?당시 중정 의전과장 박선호의증언이다.

(김충식, 남산의 부장들 1권 p.227

232) 박선호"한 달에 10여 차례 음탕한 술자리가 마련되었고,," 박선호"궁정동 안가를 다녀간 연예인만 해도100명이나 되었습니다.

" 박선호"경호실장 차지철이 직접 채홍사가 되어여자를 발탁하기도 했는데요,"  박선호"차지철이 TV를 보다가 지망한 경우만30%쯤 됩니다.

" 박선호"오죽했으면 달력에 걸린 미녀 모두가안가를 다녀갔다는 말도 있었을 정도였죠."전 국회의원 김재홍은 이렇게 말한다.

(신동아, 1998년 11월호 p.304

321) 김재홍"채홍사가 구해온 여자들은 먼저차지철이 품평과 심사를 했어요." 김재홍"차지철은 돈은 얼마든지 주더라도좋은 여자를 구해 오라고 투정을 부리곤 했죠." 김재홍"섭외되어 온 여인들은 술자리에 들어가기 전," 김재홍"경호실의 규칙에 따라 보안 서약을 하고그 날 접대법을 엄격하게 교육받았어요."▲ 20만원의 일당을 받은 심수봉과 신재순 : 당시 대기업 과장급 월급이었다물론 박정희가 직접 여자들을 지명하기도 했으니,영화나 TV를 보다가도맘에 든 배우나 가수의 이름을 대며'한번 보고 싶다'고 그러면즉시 불려왔던 것이다.

(신동아, 1998년 11월호 p.304

321) 박정희"누구야?" "○○○라고 합니다.

" 박정희"한번 보고 싶은데.."그냥 어중간한연예인들이 아니었다.

누구나 한번 듣기만 하면입을 딱 벌릴 만한 은막의 스타들이안가의 밤 연회에 왔다는 것이다.

▲ 안가의 건물들때문에 궁정동 연회의 차출 지시로영화나 TV 촬영 스케줄이 펑크나는 일이 종종 일어 났는데,이럴 때면 협회에서는 무조건 출두하라는 연락이 갔다.

(김재홍, 박정희의 유산 p.26)다만 이런 일이 한두 차례가 아니었기에소문이 돌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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