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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곤


이해 6월 5일부터 인터넷 정치증권사이트 포스닥(posdaq.co.kr)에상장된 ‘노무현 주’는 상한가 행진을 계속해서 16일 수위에 오른 이후 그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이 같은 변화를 옛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는 감지하지 못했거나 간과했다.

‘거함론’에 도취돼 분열 나태 오만 착각노화 등 ‘보수의 고질’에 갇혀 있었다.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면서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민심을 되찾을 수 있다는 ‘가당찮은 오산’이나 하면서.정치도 선거도 갈수록 경박화그런데 노 당시 민주당 고문은 달랐다.

그는 이른바 ‘거대 권력’들에 대해 저돌적으로, 그러면서도 풍자적으로 대들었다.

같은 법조인 출신이었지만 그는 논리적 합리적 호소와 설득보다는 감성 파고들기 쪽을 선택했다.

이 점에서 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보다 훨씬 계산적이고 감각적인 승부사였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이회창 후보는 “아들 병역비리 은폐를 위한대책회의가 있었다”는 등의 흑색선전에 “그런 일이 없었다”는 무미건조한 논리적 대응으로 일관, 민심을 되돌리는 데 실패했다.

반면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장인의 좌익전력에 대한 공격을 받고 “아이들 잘 키우고 지금까지 서로 사랑하면서 잘 살고 있습니다.

이런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합니까?”라고 반문했다.

그 지극히상식적인 대답을 그는 대단히 감성적으로 구사했다.

대중의 갈채가 쏟아졌고 ‘장인의 좌익전력’은 잊혀졌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정당과 주자들은 ‘노무현의 승리’를 재현하고 싶어 한다.

특히 민주통합당의 경우 ‘박원순서울시장 만들기’에서 다시 그 효과가 입증된 단일화 드라마를 연출하기 위해 벌써부터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구애를 하고 있다.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할 정도로.새누리당 비박(非朴) 주자들도 제2의 노무현이 되고 싶어 하기는 마찬가지다.

경선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완전국민경선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이벤트로서도 성공하고 득표력도 높일 수 있다는 논리다.

당원 배제는 정당의 자기부정논란 가운데서 새누리당은 8월 19일 경선, 20일 전당대회 일정을 확정했다.

비박 주자들은 경선불참 으름장을 놓고 있다.

아마 끝까지 완전국민경선을 고집하지는 않을 것 같지만 국민의 참여폭을 획기적으로 늘리라는 요구는 계속할 눈치들이다.

당의 후보를 국민이 선택하게 하자는 것은 정당인으로서 자기 부정이나 마찬가지다.

전원책 자유기업원장이 완전국민경선제의 위헌성을 지적했다고 해서 갑론을박이 있었는데,법률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오픈프라이머리는 무리한 요구다.

민주당은 새누리당의 국민경선이 배제된 전당대회 확정에 대해 ‘제2의 10월 유신’이란 아주 호들갑스럽고 유치한 공격을 가했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면서 국민을 향해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비민주적 리더라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나름대로의 ‘책략’이겠다.

그런데 정당은 당원들의 정치적 결사다.

그리고 정당의 핵심적 기능 중 하나가 공직 후보를 내는 것이다.

그걸 국민의 선택에 맡고 한다.

전체 당원의 결의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는 당원의 존재의의 권리 의무 역할 등을 무시하자는 ‘비정당 선언’이나 다를 바 없다.

게다가 대선의 최종 선택권자인 ‘국민’에게 정당들의 후보를 정하게 하도록 ‘선거법’까지 고치자는 민주당의 주장은 복수정당제에 대한 원천부정이기도 하다.

감각정치, 감성 및 이미지 선거,공학적 표 계산, 이런 현상들이 정치와 선거의 경박화를 초래하고 있다.

정치판에도 선거판에도 진지함 엄숙함은 사라지고 ‘대박주의’ ‘한방주의’가 만연하는 인상이다.

이 분위기에 휩쓸리면 누구보다 무력해지는 게 유권자들이다.

유권자가 한 표의 소중한 가치를 지키려면 정치 및 선거의 경박화 제어에 나서야 한다.

‘쇼’를 배격하자는 뜻이다.

ozmailer.com/userFile/16405/1165821565.jpg'); background-color: rgb(57, 77, 123);") -->www.freecolumn.co.kr반 총장 출마할 모양이네요.프랑스 정치가 조르주 클레망소와 아리스티드 브리앙은 스물한 살의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동시대, 그러니까 19세기 말쯤에서 20세기 들어 한 20년 간 함께 정계에서 활약했습니다.

당시의 대표적 정치 거두들이었는데요, 유감스럽게도 앙숙지간이었습니다.

1920년 대선에 출마한 클레망소는 자신의 당선을 장담하면서 절대로 브리앙을 총리로 기용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이를 들은 브리앙은 “그가 선거에서 낙선해주면 되지”라고 응수했다네요.며칠 후 브리앙은 가톨릭 신자 지도자였던 정치가 그루소를 만나 폴 데샤넬 후보 지지를 권유했습니다.

그루소는 클레망소가 신자들이 추천한 후보라며 난색을 표했지요. 브리앙은 천연스럽게 말했습니다.

“아, 그분이면 훌륭한 대통령이 될 겁니다.

당연히 사후엔 성대한 장례식을 치러드립시다.

단 종교 의식으로는 말고요.”“왜요?”“저런, 모르셨군요. 그분은 이혼 전력이 있지요. 게다가 무신론자이니까요.” 가톨릭 신자들은 일제히 데샤넬 쪽으로 돌아섰고, 클레망소는 고배를 들었습니다(데샤넬은 취임 155일 만에 정신질환으로 사임). 장수철이 엮은 〈세계인의 유머〉에 나오는 일화인데요, 문득 이 일이 떠오르게 한 이는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입니다.

25일 당 최고위원회 회의 후에 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과거 민주당 때 반기문 총장 측에서 뉴DJP연합을 통해 민주당 경선에 나가려고 우리 문을 두드린 건 사실이지만 그 이상의 것은 없었다.

”박 대표는 그간에도 간간이 유사한 이야기를 흘려왔지만 이번엔 달라진 입장에서 한 말이지요. 국민의당 차원에서 보자면 이젠 오히려 경쟁상대가 된 셈이니까요. 그래서 그랬는지, 지나가는 말처럼, 그런 듯 아닌 듯 슬쩍 아킬레스건을 건드려 놓은 겁니다.

“그 양반 알고 봤더니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는 사람이었구먼.”어느 정당 지지자, 어느 지방 유권자 가릴 것 없이, 공히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요? 이 점에서 박 대표의 수완,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 하겠습니다.

반 UN사무총장이 이날 제주공항으로 입국했습니다.

언론들은 어느 때보다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한 생각의 편린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해서 말이지요. 도착 직후 가진 관훈클럽 임원진과의 간담회에서 반 총장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선언성 언급을 했습니다.

“내년 1월 1일이 오면 한국 국민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를 그때 가서 고민하고 결심하겠다.

10년 간 유엔 사무총장을 했으니 (국민들의) 기대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겠다.

” 언론들이 ‘출마 시사’를 키워드로 보도를 했던데요, ‘시사’ 정도가 아니라 ‘의지의 천명’이었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친박 후보 내정설’과 관련해서는 “기가 막히다”는 말로 부인했습니다.

아직 ‘내정’ 운운할 때는 아니지요. 또 ‘친박’ 중심의 새누리당이 총선 참패에 더해 대혼란에 빠진 지금 운신의 폭을 스스로 제한할 까닭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반 총장의 시련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전장에 나서는 순간 경쟁자 측의 융단폭격이 시작되게 마련입니다.

언론도 얼굴을 싹 바꾸고(?) 무자비한 검증에 나서겠지요. 국제사회의 비판적 시각도 감당해 내야 합니다.

1946년 유엔 총회가 결의 11호를 통해, 어떤 정부도 사무총장 퇴임 직후 정부 직을 제공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며 자신도 수락을 삼가야 한다고 권고했거든요. 사무총장이 퇴임하자마자 대선에 나선 예도 없었고요. 어쨌든 이로써 제19대 대통령선거 분위기는 조기에 고조될 모양입니다.

예비 주자들, 출마 희망자들, 그리고 정당들이 일제히 들메끈을 조여매고 나설 겁니다.

그거야 어쩌겠습니까만 제발이지 이 때문에 정치도 행정도 다시 마비되고 마는 사태는 없기를 바랍니다.

민생의 어려움이 여간 아니라고 하지 않습니까.  <蛇足> : 대선 때마다 국민은 ‘이번에만은’이라며 기대를 부풀렸다가 새 정부가 출범하면 어김없이 낙담하고, 원망하고, 심하게는 저주까지 하곤 합니다.

그런데도 또 대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슬슬 고조되기 시작한다니, 참으로 사람 마음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하긴 희망이야말로 삶의 의지를 북돋아주는 에너지원이지요.필자소개이진곤경희대 정외과 객원교수. 국민일보 주필 및 논설고문 역임.저서 <한국 정치리더십의 특성>, <오만한 마부들>, <풍차와 기사-노무현 리더십 리뷰>, <사정치의 덫>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ozmailer.com/userFile/16405/1165821565.jpg'); background-color: rgb(57, 77, 123);") -->www.freecolumn.co.kr반 총장 출마할 모양이네요.프랑스 정치가 조르주 클레망소와 아리스티드 브리앙은 스물한 살의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동시대, 그러니까 19세기 말쯤에서 20세기 들어 한 20년 간 함께 정계에서 활약했습니다.

당시의 대표적 정치 거두들이었는데요, 유감스럽게도 앙숙지간이었습니다.

1920년 대선에 출마한 클레망소는 자신의 당선을 장담하면서 절대로 브리앙을 총리로 기용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이를 들은 브리앙은 “그가 선거에서 낙선해주면 되지”라고 응수했다네요.며칠 후 브리앙은 가톨릭 신자 지도자였던 정치가 그루소를 만나 폴 데샤넬 후보 지지를 권유했습니다.

그루소는 클레망소가 신자들이 추천한 후보라며 난색을 표했지요. 브리앙은 천연스럽게 말했습니다.

“아, 그분이면 훌륭한 대통령이 될 겁니다.

당연히 사후엔 성대한 장례식을 치러드립시다.

단 종교 의식으로는 말고요.”“왜요?”“저런, 모르셨군요. 그분은 이혼 전력이 있지요. 게다가 무신론자이니까요.” 가톨릭 신자들은 일제히 데샤넬 쪽으로 돌아섰고, 클레망소는 고배를 들었습니다(데샤넬은 취임 155일 만에 정신질환으로 사임). 장수철이 엮은 〈세계인의 유머〉에 나오는 일화인데요, 문득 이 일이 떠오르게 한 이는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입니다.

25일 당 최고위원회 회의 후에 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과거 민주당 때 반기문 총장 측에서 뉴DJP연합을 통해 민주당 경선에 나가려고 우리 문을 두드린 건 사실이지만 그 이상의 것은 없었다.

”박 대표는 그간에도 간간이 유사한 이야기를 흘려왔지만 이번엔 달라진 입장에서 한 말이지요. 국민의당 차원에서 보자면 이젠 오히려 경쟁상대가 된 셈이니까요. 그래서 그랬는지, 지나가는 말처럼, 그런 듯 아닌 듯 슬쩍 아킬레스건을 건드려 놓은 겁니다.

“그 양반 알고 봤더니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는 사람이었구먼.”어느 정당 지지자, 어느 지방 유권자 가릴 것 없이, 공히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요? 이 점에서 박 대표의 수완,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 하겠습니다.

반 UN사무총장이 이날 제주공항으로 입국했습니다.

언론들은 어느 때보다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이진곤] 해부학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한 생각의 편린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해서 말이지요. 도착 직후 가진 관훈클럽 임원진과의 간담회에서 반 총장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선언성 언급을 했습니다.

“내년 1월 1일이 오면 한국 국민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를 그때 가서 고민하고 결심하겠다.

10년 간 유엔 사무총장을 했으니 (국민들의) 기대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겠다.

” 언론들이 ‘출마 시사’를 키워드로 보도를 했던데요, ‘시사’ 정도가 아니라 ‘의지의 천명’이었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친박 후보 내정설’과 관련해서는 “기가 막히다”는 말로 부인했습니다.

아직 ‘내정’ 운운할 때는 아니지요. 또 ‘친박’ 중심의 새누리당이 총선 참패에 더해 대혼란에 빠진 지금 운신의 폭을 스스로 제한할 까닭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반 총장의 시련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전장에 나서는 순간 경쟁자 측의 융단폭격이 시작되게 마련입니다.

언론도 얼굴을 싹 바꾸고(?) 무자비한 검증에 나서겠지요. 국제사회의 비판적 시각도 감당해 내야 합니다.

1946년 유엔 총회가 결의 11호를 통해, 어떤 정부도 사무총장 퇴임 직후 정부 직을 제공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며 자신도 수락을 삼가야 한다고 권고했거든요. 사무총장이 퇴임하자마자 대선에 나선 예도 없었고요. 어쨌든 이로써 제19대 대통령선거 분위기는 조기에 고조될 모양입니다.

예비 주자들, 출마 희망자들, 그리고 정당들이 일제히 들메끈을 조여매고 나설 겁니다.

그거야 어쩌겠습니까만 제발이지 이 때문에 정치도 행정도 다시 마비되고 마는 사태는 없기를 바랍니다.

민생의 어려움이 여간 아니라고 하지 않습니까.  <蛇足> : 대선 때마다 국민은 ‘이번에만은’이라며 기대를 부풀렸다가 새 정부가 출범하면 어김없이 낙담하고, 원망하고, 심하게는 저주까지 하곤 합니다.

그런데도 또 대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슬슬 고조되기 시작한다니, 참으로 사람 마음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하긴 희망이야말로 삶의 의지를 북돋아주는 에너지원이지요.필자소개이진곤경희대 정외과 객원교수. 국민일보 주필 및 논설고문 역임.저서 <한국 정치리더십의 특성>, <오만한 마부들>, <풍차와 기사-노무현 리더십 리뷰>, <사정치의 덫>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사람들로 가득 찬 홍대 거리에서 짐을 가득 채운 캐리어는 여행자들에게 몸과 마음의 ‘짐’이 된다.

홍대입구역 9번 출구 부근에 자리 잡은 ‘짐프리’는 여행자들의 짐을 맡아 보관하면서 그들의 부담을 덜어준다.

짐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여행자들은 이렇게 외친다.

“아, 살았다!”  여행 경험을 나누는 소통의 공간지난해 12월 문을 연 짐프리가 1주년을 맞았다.

이곳에서는 홍대 거리를 방문한 여행자들의 짐을 보관해준다.

비용은 짐의 무게와 크기, 보관 시간에 따라 달라지지만 보통 하루 1만원 이하의 비용으로 짐 보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호주를 여행할 때 짐을 보관해주는 유인 서비스를 발견한 짐프리의 이진곤 대표는 짐 보관 서비스가 우리나라에도 꼭 필요하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러나 짐만 보관해주는 공간을 만드는 것은 뭔가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짐프리는 여행과 관련된 콘텐츠도 제공하고 있다.

 짐프리의 또 다른 정체성은 독립출판물을 판매하는 서점이라는 것이다.

최근 독립출판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으면서 짐프리를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독립 서점을 소개하는 책자에서 짐프리를 알고 찾아오는 이들도 많다.

여행을 주제로 하는 서적이 많은 것도 짐프리의 독특한 매력이다.

 짐프리에서는 총 700여 종에 이르는 다양한 책을 만나볼 수 있다.

짐프리는 일반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서적과 개인이 제작하는 독립출판물을 판매한다.

일반 서적은 모두 국내외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책이다.

이진곤 대표가 자신의 풍부한 여행 경험을 활용하여 여행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선별적으로 들여온다.

독립출판물은 입고 과정에서 여행을 소재로 하는 콘텐츠를 선호하지만 장르에 상관없이 다룬다.

껌으로 할 수 있는 999가지 일들을 나열한 《껌 북》,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일상적 사물들의 이름을 제대로 인지시키기 위해 기획된 《things》 등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책들이 진열되어 있다.

 짐프리는 책을 판매하는 것에만 만족하지 않고 직접 출판물을 제작하기도 한다.

‘내일로’ 기차여행자를 위한 지도와 소책자, 또 제주도 관광객을 위한 교통 노선도 등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아코디언 북 형식으로 해외 시티 가이드북을 출간했는데 한 장의 지도에 여행지의 정보를 압축적으로 전달한다.

 짐프리를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어주는 또 다른 요소는 이곳에서 진행하는 각종 프로그램들이다.

여행자들이 소중한 추억을 책으로 남길 수 있도록 출판물 제작 워크숍을 진행하고, 또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투어 토크를 열고 있다.

 “‘나만의 책 만들기’라는 워크숍을 운영하고 있어요. 다른 출판물 제작 워크숍들과 달리 제작 이론부터 실습까지 전 과정을 통합해서 교육해요. 참가자들은 6주 동안 서적의 제작 이론, 본문과 표지 디자인에 관한 수업을 들은 후 한 권의 여행 책을 만들어냅니다.

[이진곤] 최선의 선택

투어 토크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보 공유 모임으로 운영 중입니다.

미얀마, 라오스, 남미 대륙 등을 여행한 사람들이 종종 짐프리를 찾아오는데, 그들을 강연자로 초청해서 여행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 서버 개발자에서 여행 전문가로이진곤 대표는 짐프리를 열기 전 17년 동안 IT 회사에서 근무하던 서버 개발자였다.

공대를 졸업한 후 회사에서 홈페이지 개발 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나 일상은 무료했다.

회사와 집만 오가는 따분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던 시기에 이 대표는 ‘주말여행’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알게 되었다.

온라인으로 다른 사람들의 여행 이야기를 접한 뒤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전까지는 여행에 관심이 없었고 자유 여행을 해본 적도 거의 없었다.

이 대표는 카페를 통해 8명의 멤버를 모아 백제역사지구로 여행을 떠났다.

생애 처음으로 본인이 직접 계획한 여행이었다.

첫 여행에서 돌아온 후 이 대표는 그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그는 6년 전부터 여행작가로도 활동하면서 《여행작가들은 여행 가서 뭘 먹을까?》 《대한민국 다시 걷고 싶은 길》 등 세 권의 책을 공동 집필했다.

때로는 혼자, 때로는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호주?터키?두바이?남아공?캄보디아 등 수많은 여행지를 다니면서 그는 잊을 수 없는 경험들을 했다.

호주 여행을 할 때는 차가 끊겨서 새벽 3시에 전혀 모르는 도시에 혼자 남겨진 적이 있었다.

다행히 한 외국인의 도움으로 게스트하우스에서 그날 밤을 무사히 넘겼다.

또 한번은 터키 여행을 갔을 때 팀원들끼리 일정 문제로 큰 갈등을 겪기도 했다.

일행 중 두 사람은 힘든 일정을 탓하며 대열에서 빠지겠다고 했다.

그러나 서로 대화와 배려를 통해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이 대표는 “여행을 할 때 어떤 위기가 찾아올지 모르지만 문제 상황을 해결해나가면서 인생의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대표는 한 달에 1박 이상의 여행을 두 번 이상 떠난다.

여행 경험이 늘수록 여행 노하우도 쌓여갔다.

“여행지를 선택할 때는 가장 먼저 현재 나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생각해요. 문화유적, 먹거리, 자연 풍경 등 테마를 먼저 선정하고 여행지를 선택합니다.

여행지가 현재 여행을 하기에 적합한 계절과 날씨인지도 고려해요. 여행지가 선정되면 여행 계획을 짭니다.

여행은 준비한 만큼 얻어갈 수 있어요. 숙박 정보, 교통편 등에 대한 정보가 많으면 그만큼 즐길거리가 많아져요. 실제로 여행을 떠나기 직전, 짐을 꾸릴 때는 꼭 필요한 것만 챙겨 짐을 최소화합니다.

짐은 말 그대로 짐만 되거든요(웃음). 비행기로 이동할 때는 수하물 적재 용량이 있기 때문에 항공사별로 확인하지 않으면 초과금액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도 유의해야 합니다.

” 이진곤 대표는 본인이 여행을 다닐 때 느꼈던 어려움을 다른 여행자들은 겪지 않도록 해주고 싶어서 짐프리를 열었다.

그는 책을 사거나 짐을 맡기지 않더라도 여행자들이 짐프리에 와서 편하게 쉬다 가기를 바란다.

 “짐프리의 다양한 책과 프로그램을 접하고 만족스러워하는 분들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그리고 힘들게 여행을 다니다가 저희를 찾아와 짐을 맡긴 후, ‘아 살았다’ 하면서 만족해하는 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힘을 얻어요.”이진곤 대표는 짐프리를 독립출판서점 및 여행자를 위한 짐 보관소로 소개한다.

이 두 가지 정체성은 서로 어떤 관련이 있을까.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과 독립출판물 창작자들은 공통점이 있어요. 둘 다 새로움과 모험을 즐기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도 나누고, 글과 작품을 통해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 전문가들과 함께 앞으로 한국사회에 필요한 리더, 존경받는 리더가 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자세를 알아보자.    첫 번째 전문가는 부산일보 정치경제부 였으며 현재 경희대학교 교수, 국민일보 논설고문인 “이진곤 교수” 이다.

    Q. 반갑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정치부 이셨고, 또 논설위원으로 활동하시면서 정치현안에 대한 칼럼을 많이 쓰셨기 때문에 리더들 중에서도 정치지도자와 관련된 얘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A. 좋습니다.

  Q. 교수님께서 , 논설위원을 하시는 동안 느꼈던 한국 정치지도자들, 특히 대통령들의 문제점은 무엇이었습니까?     A. 한국 정치 지도자들의 문제점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의 헌정사를 알아야 합니다.

한국의 헌정사는 한마디로 “단절의 역사”입니다.

1948년 민주 공화국을 표방하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조선왕조는 전면적으로 배제됐습니다.

이미 1919년 4월 상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때부터 민주공화국이 표방됐습니다.

일제와는 말할 것도 없고, 조선왕조와도 단절을 명확히 선언한 셈이지요. 초대 정부인 이승만 정권은 4?19혁명으로 성립된 민주당 정권에 의해 전면적으로 부정됐습니다.

민주당 정권은 이승만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비판했지요. 이와 흡사하게 민주당 정부는 5?16 군사 정변 이후 들어선 박정희 정권에 의해 무능정부로 격하되고 매도당했습니다.

군사정권을 이어간 전두환 정부도 박정희 정부의 계승을 선언하지 않았지요. 유신체제와 장기집권을 비판하면서 일정한 거리를 두었습니다.

전두환의 후계자였던 노태우도 집권을 하자 이전 정부와의 차별화부터 서둘렀습니다.

국민의 직선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임을 부각시키면서 5공 정권에 대한 단죄에 나섰지요.        이어 등장한 김영삼 정부 또한 직전 정부를 거의 전면적으로 부정했습니다.

김영삼의 경우 노태우, 김종필과 더불어 ‘3당 합당’을 감행했고, 그에 힘입어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노태우 정부까지를 군사정부로, 자신이 이끄는 정부를 “문민정부”로 대비시키면서 민주적 정통성을 강조했지요. 김영삼에 이어 대통령이 된 김대중은 전임자가 군사정권과 야합했다는 점을 들어 그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국민의 대통령임을 강조하면서 ‘국민의 정부’를 선언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를 계승하는 모습을 어느 정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차별화 의지는 숨기려 하지 않았지요. 그는 자신의 정부를 ‘참여정부’로 명명했습니다.

그에게 있어 자신의 대통령 당선은 ‘시민혁명’에 의한 ‘지배세력’의 교체였습니다.

자신의 등장이야말로 온전히 시민혁명의 결과라고 인식하고 과시한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노무현의 재임기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표현했습니다.

앞선 두 정부의 경제적 실패를 부각시키려는 말이었지만 은연중에 정치적 격하의도도 드러났지요. 이와 같은 한국의 헌정사속에서 “계승”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한국의 헌정사는 단절에서 단절로 이어지는 역사입니다.

단절의 역사란 후임자에 의한 전임자 비판 격하의 역사이지요. 새로운 리더들은 전 리더를 부정하고 자신의 능력을 돋보이려 했습니다.

자신만이 한국을 발전시킬 수 있다, 자신이 한국의 진정한 리더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말하자면 ‘빅맨 콤플렉스’입니다.

위대한 인물이 되고 싶다는 욕구가 커지면 스스로를 그런 사람으로 여기게 되고 독선적 리더십으로 굳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유형의 리더일수록 거래적 리더십의 행태를 보입니다.

표를 얻기 위해 거래를 하고, 인기를 얻기 위해 또 거래를 하는 것이지요. 이 바람에 정치과정은 일종의 상거래 양상을 띠게 됩니다.

그것도 질서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거래입니다.

자연 정치의 장에는 술수가 난무하고 불신이 부풀어 오르게 마련이지요. 최근에 우리사회가 앓고 있는 ‘대선공약 몸살’이 그 전형적인 예 아니겠습니까? 대통령이 되면 동남권 신공항을 건설해주겠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만들어 주겠다, 반값등록금을 실현하겠다는 등으로 표의 대가를 내걸었던 후유증을 톡톡히 겪게 된 것입니다.

    Q.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사회를 이끌어갈 리더에게는 어떤 자질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A. 우선, 국민을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사랑이 없는 리더십은 비극입니다.

국가 리더의 책무는 국민을 행복의 나라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리더가 국민이 행복해지는 길을 알겠습니까? 둘째는 책임감을 가진 당당한 리더입니다.

리더는 어떤 난제나 과제 앞에서 당당해야합니다.

요령 것 피하고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리더는 진정한 리더가 아닙니다.

자신의 잘못을 알고 그것을 스스로 책임지고 고치는 리더가 진정한 리더입니다.

세 번째는 민주시민의 자질을 갖춘 리더입니다.

법과 질서를 존중하고 민주적 가치를 지키는 사람이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네 번째는 단절의 역사를 극복해 낼 수 있는 리더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한국의 헌정사는 단절의 역사입니다.

후임자는 전임자의 실패만을 강조하여 자신의 능력을 과시했습니다.

이런 것 보다는 전임자의 성공과 실패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성공한 것은 계승하며 실패한 것은 고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이루어질 때 한국 민주주의의 전통이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이런 자질을 갖춘 리더는 “변혁적 리더십”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민들과의 합의를 통해서 사회를 보다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켜나가는 리더십이 변혁적 리더십입니다.

이런 리더십이 우리사회에서 발휘되기 위해서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Q. 전제조건은 무엇입니까?   A. 국민들도 민주의식을 갖는 것입니다.

변혁적 리더십을 가진 리더와 민주의식을 갖춘 국민들이 함께 상호작용 할 때 한국사회는 발전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수입 민주주의 입니다.

한국은 독립 후 선진 국가의 민주제도를 모방해서 따라갔습니다.

이러다 보니 제도는 어느 정도 발전했지만 의식은 이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을 우리의 몸에 체질화 시키지 못한 것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한국만큼 짧은 역사에 민주제도를 제대로 정착시킨 나라는 없습니다.

이것은 자랑할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민주주의에 월반은 없습니다.

제도와 의식이 함께 차근차근 발전해 나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들이 민주의식을 갖춘 진정한 민주시민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특히 국민들에게 책임감이 필요합니다.

국민들은 주권을 가지고 권리행사를 하면 그에 따른 문제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책임감이 자리 잡을 때 정치인들의 공약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지속되면, 자연스럽게 거래적 리더십은 자리 잡기가 힘들어 집니다.

국민을 속이고 기만하여 지지를 끌어 모으려는 공약은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진곤 교수는 진실한 사랑을 가진 리더, 책략보다는 가치를 추구하는 리더, 책임의식이 확고한 리더, 민주의식이 체질화된 리더를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리더로 꼽았습니다.

이 교수는 천박하고 무질서한 상거래 양상을 보이고 있는 우리의 정치인, 정치과정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했습니다.

그는 또 국민의 책임을 강조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국민이 정치인보다 더 정치에 책임이 있다는 게 그의 생각입니다.

민주의식이 투철한 국민, 정의로운 국민, 서로 사랑하는 국민, 서로 믿는 국민과 이런 국민의 뜻을 성실히 받드는 정치인만이 성숙한 민주정치를 구현해 낼 수 있다고 그는 믿고 있습니다.

   대학생경제단 12조 이형종    (??) ?? ?? ??, ?? ????...남자셋 여자하나"  주로 동원형 = 내부주도형인데동원형이 내부주도형에 포함된다는 주장내부주도형이 동원형에 포함된다는 주장 있어서상대적으로 접근해야함언제나 답은 '가장' 옳은 것-동원형은 정부의 힘이 강하고 민간의 힘이 취약한 후진국에서 많이 나타나며,내부접근형은 의도적이고 일방적으로 국민을 무시하는 정부에서 나타날 수 있는 유형이다.

(0)-내부접근형은 정책담당자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정책의제화가 진행되는 유형이다.

2010국가7급 (O) ㅡ상대적 접근, '자발적'은 주로 동원형-동원형은 정책담당자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정책의제가 형성되는 경우이다.

2010국회9급 (O)-내부접근형은 부와 권력이 집중된 나라에서 흔히 나타나는 유형이다.

2010국회9급 (O)-동원형은 정부의 힘이 강하고 민간부문의 힘이 취약한 후진국에서 주로 나타나는 유형이다.

2009국회8급(O)-심볼이나 매스미디어를 통해 이슈화되는 것은 외부주도형-동원형은 공공관계(캠페인)을 이용해 국가가 이슈화ㅡPR-동원형의 정책담당자는 최고통치자, 고위관료내부접근형의 정책담당자는 낮은 지위의 고관 '만'은 앞말에 붙여 쓰는 경우와 띄어 쓰는 경우로 나누어집니다.

'만'이 보조사로 쓰여 '한정', '비교'와 같은 뜻을 나타낼 때는 붙여 씁니다.

 (1) ㄱ. 철수만 오너라.ㄴ. 너 혼자만 알고 있어라.ㄷ. 아무렴 개가 송아지만 할까? 그렇지만 '만'이 시간의 경과를 나타낼 때는 의존 명사이므로 앞말과 띄어 써야 합니다.

이때는 주로 '∼만에', '∼만이다'의 꼴로 쓰이는 일이 많습니다.

(2) ㄱ. 우리가 얼마 만에 만난 거야.ㄴ. 아마 삼 년 만이지.ㄷ. 정말 오랜만이군.  "얼마 만에"와 같이 구체적인 시간을 나타내지 않는 경우라도 역시 시간과 관련이 있는 표현이므로 '얼마 만에'로 띄어 쓰는 것입니다.

"일 년 만에"로 띄어 쓰는 것이 맞습니다.

'일 년'은 '일 년, 이 년, 삼 년, 사년 ......'과 같이 수를 나타내는 말과 단위를 나타내는 말이 결합한 구입니다.

이처럼 '년' 앞에 수를 나타내는 말이 올 경우에는 띄어 쓰는 일이 많습니다.

다만 '오랜만'은 '오랜 만'으로 띄어 쓰지 않습니다.

'오랜만'은 '오래간만'의 준말로 띄어 쓸 이유가 없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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