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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석



 장정석은 남전 운수평에게 그림을 배웠다.

운수평은 사왕오운으로 약칭되던 청초 정동파 화가 중 한 명으로 화훼화의 대가였다.

따라서 장정석읠 작품들도 운수평을 떠올리게 하는 화사하고 장중한 채색화훼화가 대종을 이룬다.

그러나 만년에는 진수과 서위 등 명대 문인화가의 화풍을 추종하여 수묵 위주의 화훼화나 사군자화를 그리기도 했다.

이 <난죽도권>은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다.

 묵란 6포기와 묵죽 한 그루를 횡권에 맞춰 길게 벌여 놓았는데, 좌우 대칭으로 쳐낸 난을 중앙에 배치하여 전체화면에 중심을 잡았다.

그러나 각각의 난과 대나무가 독립된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 연속성보다는 개별성이 두드러져 보인다.

난의 양태도 다양하다.

한 꽃대에 꽃이 여러 개 달리는 혜와 꽃대 하나에 한 꽃만 달리는 난이 섞여있고, 난엽의 향배와 장단도 제각각이다.

게다가 주변의 토파나 풀도 생략하여 마치 묵란의 교본을 보는 느낌이다.

 기법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측의 두 포기는 소박하고 강건한 필치로 단엽 위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른 네 포기의 난은 유연한 필치로 너울거리듯 벋어나간 장엽이 인상적이다.

굳이 양식적 연원을 찾자면, 전자는 명대 화가 진순의 묵란과 상통하며, 후자는 문징명의 영향이 엿보인다.

두 화가 모두 명대 오파를 대표하는 화가로 묵란에 능했으니, 남종문인화의 정통 화맥을 이은 장정석이 이들의 영향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묵죽역시 단아하고 정중한 기풍에서 오파 계열 화가들의 영향이 감지된다.

 그림 끝에는 '갑오년 겨울 남병 형의 가르침을 청하며 그리다.

정석' 이라 관서했다.

남병은 장정석과 동시기에 활동했던 명신 남병 이주망으로 짐작되지만, 확언하기는 어렵다.

 관서 끝에는 '정석이 뜻을 그리다' 라는 의미의 '정석사의'라 새긴 주문방형의 인장을 찍었다.

관서 좌측에도 두 방의 인장이 있는데, 위의 것은 장정석의 호인 '유군'이며, 밑에는 '청송헌서화기'이다.

아마도 장정석의 당호가 청송헌이었던 듯하다.

 그림의 뒤로는 옹정년간 고위 관료이자 서화에도 능했던 왕도병과 여정의, 하도 등 지우와 후배 문인들의 발문이 작품의 가치와 품격을 높여주고 있다.

 또한 횡권 말미에는 섭지선이 함풍 계축년 3월에 화사, 즉 그림 가게에서 구입했다고 적었다.

이로써 이 횡권이 섭지선의 소장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섭지선은 추사 김정희와 사제의 연을 맺었던 옹방강의 문하로 추사를 비롯한 조선의 문인들과 교유가 깊었떤 인물이다.

그가 추사에게 보낸 서화만 70점에 이를 정도였다.

이 <난죽도>도 그 중 하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출처 : 간송문화 장정석은 강소성 상숙 출신의 문인으로 강희

옹정 양대에 걸쳐 한림원 내각학사, 호부상서, 태자태부를 지냈고, <고금도서집성>의 편찬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는 학식을 갖춘 중신으로 명망을 얻었지만, 청대 중기의 가장 뛰어난 궁정화가 중 한명으로 꼽힐 만큼 화명도 높았다.

 장정석은 남전 운수평에게 그림을 배웠다.

운수평은 사왕오운으로 약칭되던 청초 정동파 화가 중 한 명으로 화훼화의 대가였다.

따라서 장정석읠 작품들도 운수평을 떠올리게 하는 화사하고 장중한 채색화훼화가 대종을 이룬다.

그러나 만년에는 진수과 서위 등 명대 문인화가의 화풍을 추종하여 수묵 위주의 화훼화나 사군자화를 그리기도 했다.

이 <난죽도권>은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다.

 묵란 6포기와 묵죽 한 그루를 횡권에 맞춰 길게 벌여 놓았는데, 좌우 대칭으로 쳐낸 난을 중앙에 배치하여 전체화면에 중심을 잡았다.

그러나 각각의 난과 대나무가 독립된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 연속성보다는 개별성이 두드러져 보인다.

난의 양태도 다양하다.

한 꽃대에 꽃이 여러 개 달리는 혜와 꽃대 하나에 한 꽃만 달리는 난이 섞여있고, 난엽의 향배와 장단도 제각각이다.

게다가 주변의 토파나 풀도 생략하여 마치 묵란의 교본을 보는 느낌이다.

 기법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측의 두 포기는 소박하고 강건한 필치로 단엽 위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른 네 포기의 난은 유연한 필치로 너울거리듯 벋어나간 장엽이 인상적이다.

굳이 양식적 연원을 찾자면, 전자는 명대 화가 진순의 묵란과 상통하며, 후자는 문징명의 영향이 엿보인다.

두 화가 모두 명대 오파를 대표하는 화가로 묵란에 능했으니, 남종문인화의 정통 화맥을 이은 장정석이 이들의 영향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묵죽역시 단아하고 정중한 기풍에서 오파 계열 화가들의 영향이 감지된다.

 그림 끝에는 '갑오년 겨울 남병 형의 가르침을 청하며 그리다.

정석' 이라 관서했다.

남병은 장정석과 동시기에 활동했던 명신 남병 이주망으로 짐작되지만, 확언하기는 어렵다.

 관서 끝에는 '정석이 뜻을 그리다' 라는 의미의 '정석사의'라 새긴 주문방형의 인장을 찍었다.

관서 좌측에도 두 방의 인장이 있는데, 위의 것은 장정석의 호인 '유군'이며, 밑에는 '청송헌서화기'이다.

아마도 장정석의 당호가 청송헌이었던 듯하다.

 그림의 뒤로는 옹정년간 고위 관료이자 서화에도 능했던 왕도병과 여정의, 하도 등 지우와 후배 문인들의 발문이 작품의 가치와 품격을 높여주고 있다.

 또한 횡권 말미에는 섭지선이 함풍 계축년 3월에 화사, 즉 그림 가게에서 구입했다고 적었다.

이로써 이 횡권이 섭지선의 소장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섭지선은 추사 김정희와 사제의 연을 맺었던 옹방강의 문하로 추사를 비롯한 조선의 문인들과 교유가 깊었떤 인물이다.

그가 추사에게 보낸 서화만 70점에 이를 정도였다.

이 <난죽도>도 그 중 하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출처 : 간송문화 장정석은 강소성 상숙 출신의 문인으로 강희

옹정 양대에 걸쳐 한림원 내각학사, 호부상서, 태자태부를 지냈고, <고금도서집성>의 편찬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장정석] 최고의 방법은?


그는 학식을 갖춘 중신으로 명망을 얻었지만, 청대 중기의 가장 뛰어난 궁정화가 중 한명으로 꼽힐 만큼 화명도 높았다.

 장정석은 남전 운수평에게 그림을 배웠다.

운수평은 사왕오운으로 약칭되던 청초 정동파 화가 중 한 명으로 화훼화의 대가였다.

따라서 장정석읠 작품들도 운수평을 떠올리게 하는 화사하고 장중한 채색화훼화가 대종을 이룬다.

그러나 만년에는 진수과 서위 등 명대 문인화가의 화풍을 추종하여 수묵 위주의 화훼화나 사군자화를 그리기도 했다.

이 <난죽도권>은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다.

 묵란 6포기와 묵죽 한 그루를 횡권에 맞춰 길게 벌여 놓았는데, 좌우 대칭으로 쳐낸 난을 중앙에 배치하여 전체화면에 중심을 잡았다.

그러나 각각의 난과 대나무가 독립된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 연속성보다는 개별성이 두드러져 보인다.

난의 양태도 다양하다.

한 꽃대에 꽃이 여러 개 달리는 혜와 꽃대 하나에 한 꽃만 달리는 난이 섞여있고, 난엽의 향배와 장단도 제각각이다.

게다가 주변의 토파나 풀도 생략하여 마치 묵란의 교본을 보는 느낌이다.

 기법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측의 두 포기는 소박하고 강건한 필치로 단엽 위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른 네 포기의 난은 유연한 필치로 너울거리듯 벋어나간 장엽이 인상적이다.

굳이 양식적 연원을 찾자면, 전자는 명대 화가 진순의 묵란과 상통하며, 후자는 문징명의 영향이 엿보인다.

두 화가 모두 명대 오파를 대표하는 화가로 묵란에 능했으니, 남종문인화의 정통 화맥을 이은 장정석이 이들의 영향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묵죽역시 단아하고 정중한 기풍에서 오파 계열 화가들의 영향이 감지된다.

 그림 끝에는 '갑오년 겨울 남병 형의 가르침을 청하며 그리다.

정석' 이라 관서했다.

남병은 장정석과 동시기에 활동했던 명신 남병 이주망으로 짐작되지만, 확언하기는 어렵다.

 관서 끝에는 '정석이 뜻을 그리다' 라는 의미의 '정석사의'라 새긴 주문방형의 인장을 찍었다.

관서 좌측에도 두 방의 인장이 있는데, 위의 것은 장정석의 호인 '유군'이며, 밑에는 '청송헌서화기'이다.

아마도 장정석의 당호가 청송헌이었던 듯하다.

 그림의 뒤로는 옹정년간 고위 관료이자 서화에도 능했던 왕도병과 여정의, 하도 등 지우와 후배 문인들의 발문이 작품의 가치와 품격을 높여주고 있다.

 또한 횡권 말미에는 섭지선이 함풍 계축년 3월에 화사, 즉 그림 가게에서 구입했다고 적었다.

이로써 이 횡권이 섭지선의 소장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섭지선은 추사 김정희와 사제의 연을 맺었던 옹방강의 문하로 추사를 비롯한 조선의 문인들과 교유가 깊었떤 인물이다.

그가 추사에게 보낸 서화만 70점에 이를 정도였다.

이 <난죽도>도 그 중 하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출처 : 간송문화  장정석은 남전 운수평에게 그림을 배웠다.

[장정석] 알고싶다.



운수평은 사왕오운으로 약칭되던 청초 정동파 화가 중 한 명으로 화훼화의 대가였다.

따라서 장정석읠 작품들도 운수평을 떠올리게 하는 화사하고 장중한 채색화훼화가 대종을 이룬다.

그러나 만년에는 진수과 서위 등 명대 문인화가의 화풍을 추종하여 수묵 위주의 화훼화나 사군자화를 그리기도 했다.

이 <난죽도권>은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다.

 묵란 6포기와 묵죽 한 그루를 횡권에 맞춰 길게 벌여 놓았는데, 좌우 대칭으로 쳐낸 난을 중앙에 배치하여 전체화면에 중심을 잡았다.

그러나 각각의 난과 대나무가 독립된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 연속성보다는 개별성이 두드러져 보인다.

난의 양태도 다양하다.

한 꽃대에 꽃이 여러 개 달리는 혜와 꽃대 하나에 한 꽃만 달리는 난이 섞여있고, 난엽의 향배와 장단도 제각각이다.

게다가 주변의 토파나 풀도 생략하여 마치 묵란의 교본을 보는 느낌이다.

 기법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측의 두 포기는 소박하고 강건한 필치로 단엽 위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른 네 포기의 난은 유연한 필치로 너울거리듯 벋어나간 장엽이 인상적이다.

굳이 양식적 연원을 찾자면, 전자는 명대 화가 진순의 묵란과 상통하며, 후자는 문징명의 영향이 엿보인다.

두 화가 모두 명대 오파를 대표하는 화가로 묵란에 능했으니, 남종문인화의 정통 화맥을 이은 장정석이 이들의 영향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묵죽역시 단아하고 정중한 기풍에서 오파 계열 화가들의 영향이 감지된다.

 그림 끝에는 '갑오년 겨울 남병 형의 가르침을 청하며 그리다.

정석' 이라 관서했다.

남병은 장정석과 동시기에 활동했던 명신 남병 이주망으로 짐작되지만, 확언하기는 어렵다.

 관서 끝에는 '정석이 뜻을 그리다' 라는 의미의 '정석사의'라 새긴 주문방형의 인장을 찍었다.

관서 좌측에도 두 방의 인장이 있는데, 위의 것은 장정석의 호인 '유군'이며, 밑에는 '청송헌서화기'이다.

아마도 장정석의 당호가 청송헌이었던 듯하다.

 그림의 뒤로는 옹정년간 고위 관료이자 서화에도 능했던 왕도병과 여정의, 하도 등 지우와 후배 문인들의 발문이 작품의 가치와 품격을 높여주고 있다.

 또한 횡권 말미에는 섭지선이 함풍 계축년 3월에 화사, 즉 그림 가게에서 구입했다고 적었다.

이로써 이 횡권이 섭지선의 소장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섭지선은 추사 김정희와 사제의 연을 맺었던 옹방강의 문하로 추사를 비롯한 조선의 문인들과 교유가 깊었떤 인물이다.

그가 추사에게 보낸 서화만 70점에 이를 정도였다.

이 <난죽도>도 그 중 하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출처 : 간송문화 장정석은 강소성 상숙 출신의 문인으로 강희

옹정 양대에 걸쳐 한림원 내각학사, 호부상서, 태자태부를 지냈고, <고금도서집성>의 편찬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는 학식을 갖춘 중신으로 명망을 얻었지만, 청대 중기의 가장 뛰어난 궁정화가 중 한명으로 꼽힐 만큼 화명도 높았다.

 장정석은 남전 운수평에게 그림을 배웠다.

운수평은 사왕오운으로 약칭되던 청초 정동파 화가 중 한 명으로 화훼화의 대가였다.

따라서 장정석읠 작품들도 운수평을 떠올리게 하는 화사하고 장중한 채색화훼화가 대종을 이룬다.

그러나 만년에는 진수과 서위 등 명대 문인화가의 화풍을 추종하여 수묵 위주의 화훼화나 사군자화를 그리기도 했다.

이 <난죽도권>은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다.

 묵란 6포기와 묵죽 한 그루를 횡권에 맞춰 길게 벌여 놓았는데, 좌우 대칭으로 쳐낸 난을 중앙에 배치하여 전체화면에 중심을 잡았다.

그러나 각각의 난과 대나무가 독립된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 연속성보다는 개별성이 두드러져 보인다.

난의 양태도 다양하다.

한 꽃대에 꽃이 여러 개 달리는 혜와 꽃대 하나에 한 꽃만 달리는 난이 섞여있고, 난엽의 향배와 장단도 제각각이다.

게다가 주변의 토파나 풀도 생략하여 마치 묵란의 교본을 보는 느낌이다.

 기법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측의 두 포기는 소박하고 강건한 필치로 단엽 위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른 네 포기의 난은 유연한 필치로 너울거리듯 벋어나간 장엽이 인상적이다.

굳이 양식적 연원을 찾자면, 전자는 명대 화가 진순의 묵란과 상통하며, 후자는 문징명의 영향이 엿보인다.

두 화가 모두 명대 오파를 대표하는 화가로 묵란에 능했으니, 남종문인화의 정통 화맥을 이은 장정석이 이들의 영향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묵죽역시 단아하고 정중한 기풍에서 오파 계열 화가들의 영향이 감지된다.

 그림 끝에는 '갑오년 겨울 남병 형의 가르침을 청하며 그리다.

정석' 이라 관서했다.

남병은 장정석과 동시기에 활동했던 명신 남병 이주망으로 짐작되지만, 확언하기는 어렵다.

 관서 끝에는 '정석이 뜻을 그리다' 라는 의미의 '정석사의'라 새긴 주문방형의 인장을 찍었다.

관서 좌측에도 두 방의 인장이 있는데, 위의 것은 장정석의 호인 '유군'이며, 밑에는 '청송헌서화기'이다.

아마도 장정석의 당호가 청송헌이었던 듯하다.

 그림의 뒤로는 옹정년간 고위 관료이자 서화에도 능했던 왕도병과 여정의, 하도 등 지우와 후배 문인들의 발문이 작품의 가치와 품격을 높여주고 있다.

 또한 횡권 말미에는 섭지선이 함풍 계축년 3월에 화사, 즉 그림 가게에서 구입했다고 적었다.

이로써 이 횡권이 섭지선의 소장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섭지선은 추사 김정희와 사제의 연을 맺었던 옹방강의 문하로 추사를 비롯한 조선의 문인들과 교유가 깊었떤 인물이다.

그가 추사에게 보낸 서화만 70점에 이를 정도였다.

이 <난죽도>도 그 중 하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출처 : 간송문화 장정석은 강소성 상숙 출신의 문인으로 강희

옹정 양대에 걸쳐 한림원 내각학사, 호부상서, 태자태부를 지냈고, <고금도서집성>의 편찬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는 학식을 갖춘 중신으로 명망을 얻었지만, 청대 중기의 가장 뛰어난 궁정화가 중 한명으로 꼽힐 만큼 화명도 높았다.

 장정석은 남전 운수평에게 그림을 배웠다.

운수평은 사왕오운으로 약칭되던 청초 정동파 화가 중 한 명으로 화훼화의 대가였다.

따라서 장정석읠 작품들도 운수평을 떠올리게 하는 화사하고 장중한 채색화훼화가 대종을 이룬다.

그러나 만년에는 진수과 서위 등 명대 문인화가의 화풍을 추종하여 수묵 위주의 화훼화나 사군자화를 그리기도 했다.

이 <난죽도권>은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다.

 묵란 6포기와 묵죽 한 그루를 횡권에 맞춰 길게 벌여 놓았는데, 좌우 대칭으로 쳐낸 난을 중앙에 배치하여 전체화면에 중심을 잡았다.

그러나 각각의 난과 대나무가 독립된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 연속성보다는 개별성이 두드러져 보인다.

난의 양태도 다양하다.

한 꽃대에 꽃이 여러 개 달리는 혜와 꽃대 하나에 한 꽃만 달리는 난이 섞여있고, 난엽의 향배와 장단도 제각각이다.

게다가 주변의 토파나 풀도 생략하여 마치 묵란의 교본을 보는 느낌이다.

 기법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측의 두 포기는 소박하고 강건한 필치로 단엽 위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른 네 포기의 난은 유연한 필치로 너울거리듯 벋어나간 장엽이 인상적이다.

굳이 양식적 연원을 찾자면, 전자는 명대 화가 진순의 묵란과 상통하며, 후자는 문징명의 영향이 엿보인다.

두 화가 모두 명대 오파를 대표하는 화가로 묵란에 능했으니, 남종문인화의 정통 화맥을 이은 장정석이 이들의 영향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묵죽역시 단아하고 정중한 기풍에서 오파 계열 화가들의 영향이 감지된다.

 그림 끝에는 '갑오년 겨울 남병 형의 가르침을 청하며 그리다.

정석' 이라 관서했다.

남병은 장정석과 동시기에 활동했던 명신 남병 이주망으로 짐작되지만, 확언하기는 어렵다.

 관서 끝에는 '정석이 뜻을 그리다' 라는 의미의 '정석사의'라 새긴 주문방형의 인장을 찍었다.

관서 좌측에도 두 방의 인장이 있는데, 위의 것은 장정석의 호인 '유군'이며, 밑에는 '청송헌서화기'이다.

아마도 장정석의 당호가 청송헌이었던 듯하다.

 그림의 뒤로는 옹정년간 고위 관료이자 서화에도 능했던 왕도병과 여정의, 하도 등 지우와 후배 문인들의 발문이 작품의 가치와 품격을 높여주고 있다.

 또한 횡권 말미에는 섭지선이 함풍 계축년 3월에 화사, 즉 그림 가게에서 구입했다고 적었다.

이로써 이 횡권이 섭지선의 소장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섭지선은 추사 김정희와 사제의 연을 맺었던 옹방강의 문하로 추사를 비롯한 조선의 문인들과 교유가 깊었떤 인물이다.

그가 추사에게 보낸 서화만 70점에 이를 정도였다.

이 <난죽도>도 그 중 하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출처 : 간송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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